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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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웃기면서 동시에 가장 시니컬한 작가인 커트 보니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작가들이 좋아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공학과 문학의 길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1943년 2차대전 막바지에 징집돼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경험을 했는데요. 연합군의 공습으로 13만명이 몰살당한 이 지옥에서 살아남은 뒤 결국 반전작가로 거듭납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소방수, 영어교사, 자동차 외판원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글쓰기를 계속해 ‘제 5도살장’, ‘고양이요람’ 등의 소설과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등 풍자적 에세이집을 써냅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문체가 정말 좋다는 느낌입니다. 우선 내용은 진지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주제들을 담고 있는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유머와 비유 등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듭니다. 동시에 쉽지만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습니다. 짧은 글 속에서는 인권, 반전, 환경, 유머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몇 장을 읽자마자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좋아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한 모습에는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도 휴머니스트적인 시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4편 모두 아무 때고 꺼내들어 한 편씩 음미하며 아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작가의 사후에도 이런 작품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커트 보니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세 수긍할 법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갸우뚱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통찰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방대한 상상력을 동원해 풀어낸, 시종일관 블랙유머와 날카로운 풍자, 넘치는 위트있는 이야기는 독자를 계속 끌어들이기에 충분할 만합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그건 우리 마음 속 최악의 부분에 직통으로 연결되는 물건이야, 헨리." 엘런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저걸 가져선 안돼, 헨리. 그 누구도! 그 작은 목소리는 지금도 이미 충분히 시끄러워."
- P41

조금이라도 신경을 쓸 만한 테스트는 단 하나뿐이란다. 바로 인생 테스트야. 그 테스트에서 얻는 점수가 진짜 중요한 점수지 - P184

마크가 진지하게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찰리는 열 살이 얼마나 멋진 나이인지 떠올렸다. 찰리는 모두가 평생 열 살인 채 지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만약 모두가 열 살 이라면, 어쩌면 규칙과 일반적인 예의, 상식에서도 미약하나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찰리는 생각했다 - P319

그녀가 진짜로 하고 있는 말은 헨리와 앤이 성장하는 것, 헨리와 앤이 가까이에서 비극을 보게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가 진정으로 성장한 적이 없다고, 가까이에서 비극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평생 어린아이로 지낼 수 있는 거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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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Looking Glass (Paperback) Collins Classics 41
루이스 캐럴 지음 / HarperPress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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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하는 토끼를 쫓아 땅속 이상한 나라를 모험하고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초겨울날, 앨리스는 방 안에 걸린 거울 속으로 뛰어들어 거울 나라를 모험하게 됩니다. 그곳은 거울 나라답게 모든 것이 반대였는데 글자도 거꾸로 보이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려면 반대방향으로 달려야 하며 벌을 받은 뒤에 잘못을 저지르는 식입니다. 앨리스는 거대한 체스 판처럼 생긴 거울 나라에서 하얀 여왕의 졸이 되어 직접 경기를 펼칩니다. 졸로 시작한 앨리스는 여왕이 될 것이고, 이야기의 각 장은 이러한 졸의 움직임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 앨리스는 여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붉은 여왕, 하얀 여왕과 함께 즐기던 파티가 엉망이 되면서 앨리스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하고 환상과 넌센스 요소도 탁월하며 등장인물과 묘사도 다채롭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체스 규칙이 반영되었는데 그만큼 이야기꾼이자 수학자로서의 루이스 캐롤이 치밀하게 계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를 너무도 사랑하고 영원히 친구가 되고 싶었던 저자는 교훈과 도덕보다는 이야기와 말장난이 주는 재미를 담고 있는 듯 했습니다. 또, 유쾌한 상상력과 말놀이, 시적인 묘사와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 재치 넘치는 패러디와 날카로운 사회 풍자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열심히 달려온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언제나 제자리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작품 속의 앨리스도 그러한 경험을 하죠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손에 이끌려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하지만 곧 자신이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치 우리들의 업무 현실이나 일상을 묘사한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앨리스가 자신의 꿈에서 깨어나자, 흰여왕과 붉은 여왕은 모두 집에서 함께 키우는 아기 고양이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셋이 함께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합니다. 앨리스가 매트릭스를 비롯한 현대의 여러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구석구석 루이스 캐럴이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황당한 이야기 조각들에는 정말로 그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환상과 과학 사이의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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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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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둔 부모라면 모두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최근 여러가지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학폭위(학교폭력위원회)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약국을 운영하는 세영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워킹맘입니다. 14살 중학생 아이의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합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아이들이 연루되어 열린 학폭위에 참석할 일이 너무 괴롭기만 합니다. 결국 세영은 불참을 선언하고 남편이 지내는 지방으로 홀로 내려갑니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 자기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남편에게 어떠한 위로도 얻지 못하고, 세영이 불참한 그날의 학폭위는 가해자 아이들에게 유리하게 결론이 내려집니다. 결국 피해자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들 앞에 벌어진 엄청난 일 앞에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고, 도우를 비롯한 몇몇의 아이들은 자발적 조문으로 죽은 친구를 위로합니다.

작품 속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세영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주저앉고 싶기도 하고 나가고 싶기도 하고 오래오래 울고 싶기도 하는 마음 중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하는 갈팡질팡한 모습. 작가의 말인지 세영의 독백인지 그것이-‘중산층의 조그만 바램’-죄라면 죄에 대해 신들에게 간구하는 밤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영과 세영의 남편, 세영의 딸의 시점으로 각각 전개되는데, 세 명 모두 가족구성원 간 직접적인 갈등이나 다툼이 없었음에도 어딘가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풀어내어 이해가 가면서도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

‘핀시리즈’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 책 자체가 굉장히 분량이 짧기 때문인 이유도 있겠지만, 문제를 너무 피상적으로 다룬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남의 인생에 그렇게까지 개입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세영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 P45

어떤 말들은 그 위에 티끌 하나 날아와 앉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다. - P49

사람들이 그 침묵을 수긍과 순응의 의미로 해석한다는 걸 성인이 되고서 알았다. 자신에 대해 착하고 순한 인간이라는 평가가 내려져 있다는 것도. 무원은 수긍한 것도 순응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속에 떠도는 말들을 꺼내지 않은 것뿐이었다 - P69

누가 아프다고 하면 심장 안쪽에 손을 넣어 눈물을 닦아줄 필요까지는 없었다. 피부와 피부는 반드시 닿지 않아도 되었다. 닿지 않아서, 희미해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들이 있었다. - P97

도대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에게, 어디에 존재하는지조차 불확실한 사람들에게 어쩌자고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고 시간과 열정을 바쳤단 말인가. 길에서 마주친대도 아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이제 그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당신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고 속삭여주는 타인은 하나도 없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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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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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오정, 오륙도, 마흔 다섯살이면 정년, 56살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적 정년은 예순 살이지만, 조기 퇴직을 종용하는 기업의 문화 때문에 일찍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는 아무리 능력 성과 평판이 탁월해도 50세 전후면 보직 해임되기도 합니다. 이들에겐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위로금을 받고 퇴사하거나, 계약직으로 전환해 몇 년 더 일하는 것입니다. 둘 다 거부하면 평소 일과는 다른 업무가 부여됩니다.

이 작품은 수십 년간 일에 대한 열정과 회사에 대한 충성을 바치고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로 부터 비참하게 버림받은 중년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통신 공기업에 입사해 26년간 현장 팀에서 수리와 설치를 담당하던 주인공은 저성과자로 분류돼 재교육 직전 상사로부터 퇴사를 권유 받습니다. 주인공에게 아직 부양해야 할 고등학교 자녀와 홀어머니가 있고 노후를 대비해 마련한 변두리 다세대 주택 구입의 빚도 남아 있습니다.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노하우를 익히고 실력이 늘어가는 것. 주인공에게 직장과 일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 대가로 그가 회사에 기대했던 것은 “존중과, 감사, 이해와 예의 같은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회사의 사직 요청을 거절하자 돌아 온 것은 모욕이었습니다. 회사는 지역의 거점센터로 영업 일을 하라며 그를 쫓아냈고 26년간 통신 설비 설치와 수리를 담당한 기술자에게 인터넷 가입 영업을 지시했습니다. 회사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일을 뺏음으로써 모욕을 줬던 겁니다.

결국 주인공은 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약속을 받고 송전탑 건설을 대행하는 자회사에 편입되어 이름도 없이 78구역 1조 9번으로 불리며 송전탑 건설에 앞장서다가 이를 막는 마을 주민들과 갈등하다 파국을 맞습니다.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일과 삶의 분리 없이 평생직장의 신화를 만들어온 베이비붐 세대가 떠올랐습니다. 한때 산업 역군이라 불렸던 분들이 은퇴연령에 가까워지면서 자의든,타의든 일을 그만 두게 됩니다.

그저 ‘당연히 열심히 해야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먼 이야기라서, 나의 윗세대의 이야기라서 멀게만 느껴졌지만, 결국 열심히 일만해서는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시대가 된 듯합니다. 회사를 ‘자신의 일부이자 전부’라 여기고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회사 인간’이 설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게 되겠죠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까마득하게 길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잠이 들 무렵이면 하루가 또 이처럼 순식간에 지나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16

회사를 그만 두지 못하는 이유가 다만 경제적 어려움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는지, 26년간 회사와 자신을 이어주던게 겨우 얄팍한 월급 통장 하나뿐이라고 여기는지 그는 되묻고 싶었다. - P33

긴 시간 회사를 통해 자신이 얻은 것과 배운 것, 바라고 원한 것, 이루고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순간들을 부정할 마음은 없었다. 회사에 속해 있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그 시간들 모두를 부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에 쏟았던 시간과 노력이 다만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 P85

그러니까 가까운 사람들 틈에서 너무나 쉽게 갈등을 만들고, 무엇이 미움과 불만을 부풀리는지 아는 영악하고 지능적인 회사의 실체를 비로소 목격한 기분이 들었다. - P159

작은 불안의 조짐이 감지되면 그것은 곧장 공포감으로 몸집을 키웠고 거기에 휩쓸려버리는 거였다. 그가 맞서고 있는 것도 실은 실체도 없이 수시로 자신을 휘젓고 다니는 그런 감정들일지도 몰랐다. - P168

다만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그래서 마침내 닿게 되는 곳이 어디인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이르러야만 이 기이한 집착과 이상한 오기를 모두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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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 -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정찬일 지음 / 책과함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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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직업에 귀천은 없지요. 하지만 사회적인 인식이 부정적이었던 직업은 있었습니다.

‘식순이’라 불린 식모와 ‘차순이’라 불린 버스안내양과 더불어 여공인 ‘공순이’들이 그것이죠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부잣집 식모살이’는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많은 맏언니, 10대 소녀들이 ‘식모’가 되었습니다.

박카스와 ‘무언지 모르는’ 주사약으로 버티며 철야 작업을 하던 외딴방의 ‘여공’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남동생과 오빠의 학비를 대고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안내양’을 했던 영자는 그렇게 번 돈으로 남동생과 오빠의 학비를 대고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는 어느 가족의 착한 딸이자 누나 혹은 여동생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1960~1970년대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다른 이름입니다.

저자는 식모, 버스 차장, 여공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과 투쟁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식모를 고용하는 집에서는 침식을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적은 월급을 주고 값싼 노동력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식모살이는 고되고 비참했습니다. 주인들로부터 욕설을 듣거나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고 월급을 제때 받지도 못했습니다. 휴일도 거의 없었고 밥도 주인 식구들과 같이 먹지 못했습니다.

p37 임금도 최저 수준이었다. 조선인 가정의 경우 1910년대 중반까지는 월 3원정도였고, 1920년대 후반에 5-6원, 10940년대 8-10원으로 인상되었다. 1921년 기준 쌀 한 가마니 가격은 16원 4전이었다. 두 달 뼈 빠지게 일해도 쌀 한가미 살 수 없었다.

p63 전쟁으로 수많은 가정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식모를 두던 습관은 전쟁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식모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식모를 구하기가 쉬운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전쟁까지 겹치면서 식모를 구하는 사람들이 훨씬 유리해졌다.

p103 가장 큰 고역은 겨울에 찬물로 일하는 것이다. 찬물로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걸레질하노라면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물을 데워 쓰는 건 아궁이 좋을 때고, 시간을 벌기 위해 찬물로 후닥 해치운다. 겨울에 손등이 밭이랑처럼 터도 어쩔 수 없다

식모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더러 있었다. 범죄는 멸시하고 학대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과 보복 심리가 원인이었다. 주인집 귀중품을 훔쳐 달아나다 절도죄로 처벌받거나 주인집 아이를 유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p133 신문들은 주인집의 횡포보다는 식모가 저지른 범죄를 더 많이, 더 비중있게 다루었다. 이는 실제로 식모에게 가해진 폭행이나 횡포가 많지 않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식모와 주인이라는 종속적 관계 속에서 주인이 식모에게 저지른 범죄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묵인되었음을 의미한다.

p161 '식모‘라는 말도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간 대접 못 받는 인상이 워낙 강해 ’식모‘라는 말 자체가 비하하는 단어로 굳어졌다. 하녀,식순이,부엌데기보다는 나았지만, 식모들은 자신을 ’식모‘라고 부르는 데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식모가 점차 줄어든 것은 산업화로 여성들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서입니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 변화와 핵가족화도 식모의 필요성을 감소시켰습니다.

 

‘버스안내양’이라는 직업이 등장한 것은 서울에서 1961년부터 버스안내원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면서였습니다. 1965년 전국의 버스안내양 수는 1만7160명. 대부분 18세 전후의 나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배움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업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버스안내양은 인기 직종이었습니다. 별다른 훈련이 필요없는 데다 다른 직종에 비해 보수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침식이 제공된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농촌 출신의 상경 소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숙식 제공의 실태도 들여다보면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보통 2평짜리 방에 9명이 모여 살고 나머지는 차주집에서 횡포에 가까운 감시·감독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p288 저임금과 더불어 악명을 떨친 것은 근무시간이었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 형태로서 승무하는 날 근무시간은 18시간이었다. 휴일하루를 감안하면 일일 평균 근로시간은 12시간이 된다...임금,후생복지 등이 해마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1인당 하루 18시간 근무는 버스안내양이 사라질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버스가 제 속도를 내고 달릴 때에도 버스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다 태우고 안전하게 문 닫고 출발하기에는 배차 시간이 밟혔습니다. 미처 문을 닫을 수가 없던 차 안에서 그 열린 문을 두 팔로 버티고 수십 명의 체중을 감당해야 했던 건 안내양들의 초인적인 힘이었습니다.

p308 달리는 차에 아슬아슬 매달려가는 안내양들은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안내양은 미어터지려는 버스의 최후 보루였다. 그가 못 버티면 승객들이 쏟아져 나와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다.

p322-323 늘 교통사고에 노출되고, 승객과 흔들리는 버스에 시달리는 안내양의 몸은 ‘종합병동’이었다. 맨손을 대면 차문에 쩍 달라붙는 겨울에는 동상에 자주 걸렸다. 손발이 트는 것을 예방하는 값산 ‘동동구리무’는 화장품이라기보다는 생활필수품이었다.

1970년대 중반 5만 명에 육박했던 안내양은 1982년 9월 10일 시민자율버스가 등장하면서 줄기 시작했습니다. 안내양이 지키던 문 하나뿐이던 시내버스에 앞문이 달리고, 승객들이 돈을 내게 된 것입니다.

 

여공들은 섬유ㆍ의류ㆍ봉제ㆍ전자업에서 주로 일했습니다.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 인권의 사각지대는 그들이 처해 있던 현주소였습니다. 수출산업의 70%를 차지할 만큼 수출에 기여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공순이’라 불렀습니다.

p442 여공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이중적이었다. ‘고향의 가족을 부양하는 소녀’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그 뒷면에는 ‘타락과 문란’이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공들이 또래끼리 모여 생활하므로 성적으로 탈선하기 쉽다고 단정했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구로동과 가리봉동 일대에 크고 작은 공장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먼지로 가득한 공장 안에선 시골에서 갓 상경한 언니, 오빠들이 밤낮없이 기계를 돌렸다.

p383 고향을 떠나 취직한 그들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임금 형태는 대체로 일급제였고 생산량에 따라 임금이 지불되는 도급제였다. 하루 12시간 주야 교대로 일했고 일요일만 쉬었다.

1970년대에는 노동 야학, 대학생 위장 취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을 비관하지 않고 부당한 법과 제도,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운 여공들도 많았는데, 이들의 투쟁은 노동조합의 설립 등 한국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이 달라진 느낌을 받습니다. 여성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던 과거 정부에 대한 반작용인지, 아니면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충분히 높아졌다는 일부의 인식인지 모르겠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인식개선이 과거보다는 많이 변화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여성상위시대’니 ‘남성역차별’이니 하는 용어가 스스럼없이 사용되고 있지만, 직업 전선에서 많은 여성들이 부딪치는 현실은 아직 냉혹하기만 합니다. 일부 여성의 사회경제적 약진 뒤에는 아직도 저임금과 차별로 고민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만 존재했던, 이제는 사라진 ‘식모, 여공, 버스안내양’은 우리의 어머니일수도 있고, 우리의 언니(누나)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계를 위한 처절함과 가족을 위해 희생을 무릅쓴 그녀들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이 겪었던 고초를 인터뷰, 신문 기사, 대중 문화, 사진 등으로 생생하게 고증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특히 당시의 신문 기사를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의 여성들이 가진 직업이 30년,5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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