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 - 이권우의 책읽기와 세상읽기
이권우 지음 / 황금비율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마다 읽을 책을 마련하는 방법이 각양각색이겠지만,

난 서평집을 읽거나 다른 사람이 쓴 리뷰를 보고 고른다.

지금은 읽지 않고, 아니 읽지 못하고 쌓아올린 책탑이 오늘 무너질까 내일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느라,

아주 많이 자제하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의 리뷰나 페이퍼, 또는 서평집 따위는 책을 고르는 나만의 '보물찾기'비법이다.

뭐, 그렇다고 하여...다른 사람의 리뷰나 페이퍼, 또는 서평집의 내용을 정독, 숙독하는 것은 아니고...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나 하고 경향을 탐색하고 훔쳐보는 정도라고 해야 겠다.

독서 취향이 나와 비슷하면 비슷해서 좋고,

독서 취향이 나와 다르면 다른대로,

눈에 띄는 책들을 골라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만들면서 내내 행복하니까 말이다.

 

'이권우'는 <죽도록 책만 읽는>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을 읽다가 그의 전작들을 다 찾아 꼼꼼히 챙겨 읽어보고 싶어졌다.

 

지난주 토요일이었던것 같다.

라디오를 이리저리 돌려 듣다가 '방현주의 라디오 북클럽' 이라는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고,

그 방송의 '책마을 소식'이라는 꼭지를 그가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지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을 정도로,

책을 읽지 않거나 대충 발췌하여 읽고도 독서를 한듯 만용을 부리고 서평을 써댈 수는 있지만,

그가 책을 소개하는 방법은 다소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되어서,

절대로 읽지않은 책을 막무가내로 소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그가 내세우는 주관적인 견해가 책에 어떤 대단한 영향을 미치겠는가...라고 하겠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그가 특별한 서평가나 독서가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한사람의 책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보다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나도 이곳 알라딘 서재에 둥지를 튼지 제법 되었다.

내가 리뷰나 페이퍼를 쓸때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다.

인터넷 검색 몇번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줄거리나 내용은 될 수 있으면 적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다.

그 책이나, 그 책을 읽을 때의 상황과 관련된 주관적인 느낌을 기록해 두기위해 노력한다.

읽지 않은 책을 가지고, 내맘대로 작문을 하거나 추측난무한 글들은 쓰지 않는다.

칭찬 일색의 주례사 서평이나 리뷰, 댓글을 달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인 주관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서평이나 리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목적과 방향이 없이 온통 책들로 도배된 책소개 페이퍼가 참 싫어,

그런 글은 보려고도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암튼, 내가 이권우를 가지고...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나와 묘하게 독서 취향이 겹치기 때문인것 같다.

난 아직 <정보는 아름답다>류의 책에 관심을 갖고 소개하는 서평을 또 못봤다.

  도표나 그림으로 표현해서 내용을 더 극적으로 바꾸는 예도 있다.ㆍㆍㆍㆍㆍ주문하면서 눈치보지 않으려면 이 항목을 보면 좋다. 마로키는 에스프레소+초콜릿 파우더+ 우유 거품으로 이루어진다. 많이 마시는 카페 라테는 에스프레소+ 따뜻한 우유+우유 거품이다. 역시 많이 마시는 카페 모카는 약간 복잡하다. 에스프레소+초콜릿 시럽+따뜻한 우유+휘핑 크림이다. 아이리시는 에스프레소+물+위스키+휘핑크림이다.(42쪽)

<정보는 아름답다>라는 책을 가지고 '주문하면서 눈치보지 않으려면'하면서 너스레를 떠는게,

의뭉스러운것 같으면서도 맛깔나다.

책은 어찌보면 지극히 고전적인 도구이다.

<정보는 아름답다>라는 책은 어찌보면 이렇게 고전적인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가뜩이나 책을 읽는사람, 개 중에서 종이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어떻게 하여야... '도표나 그림으로 표현해서 내용을 더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하는,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 할 수 있고,

그리하여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을지...

대책과 보완책을 강구하는 의미에서도 생각해볼만 하다.

  이 시대, 우리가 왜 소설을 읽고,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전율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49쪽)

이렇게 멋진 프로포즈를 해대는데, 그가 권하는 책을 안 읽고 견디겠는가 말이다.

 

이 책을 통하여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 것은, '강신주'이다.

이권우가 꼬집어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강신주의 책들을 읽은 이권우라면...

그리고, '푸페이룽'의 '장자교양강의'라는 책을 소개할 정도의 내공이라면,

강신주의 장자 해석법이 푸페이룽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권우는 아무것도 모르는듯 은근슬쩍 퉁치고 넘어간다.

ㆍㆍㆍㆍㆍ양의 동서를 넘나들며 장자를 이해 가능하게 풀어 준다는 점에서 <장자교양강의>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오로지 비교 철학 관점에서만 장자를 풀고 있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길. 붕이 왜 하필이면 남쪽으로 날아갔다고 했는가 하면, 구대 중국인들은 남쪽을 빛의 상징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근거로 해, 지혜를 추구하고 장자를 풀이하고 있다.장자를 무성한 이야기 책으로 읽어도 된다. 그래서 통이 크고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을 느끼기만 해도 된다. 그런데 이왕이면 푸페이룽의 새로운 해석에 기대 읽으면 더 흥미로울 터다. 이야기 안에 담겨 있는 삶의 지혜라는 알맹이를 만나게 되니까 말이다.(46쪽)

 

이권우가 좋은 이유는 또 하나, 같이 읽어볼만한 책들을 적절하게 권해준다는 것이다.

안 좋은 점은, 제대로 지름신 강림이다.

읽어 없애기보다는, 읽고 싶어 새로 들이는 책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 책을 향하여서만 지름신을 보내시진 않는다.

  세상은 변하는 법이다. 굳이 석가가 남긴 마지막 말이라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정한다. 이즈음에는 그냥 변한다고 말하면 적절하지 않은 듯싶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한다고 해야 할 성싶다. 그런데 묘한 일이 있다. 다 변하는 듯 싶은데, 변하지 않는게 있으니 말이다. 여기저기서 고전이라는 우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길어 올리는 풍경을 보면 딱 그렇다.ㆍㆍㆍㆍㆍ한마디로 만시지탄이나 반가운 일이다. 본디 세상일이 그런 법이다. 근본으로 되돌아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마르지 않는 샘이 고전이다. 문제는 그곳으로 달려가지 않는 데 있다.(59쪽)

이쯤되면 눈치 챘겠지만, 고전을 향하여서도 골고루다.

 

옛말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이권우가 권하는 책들이랑 놀다가는 파파 할아버지, 호호 할머니가 되는 것은 눈깜짝할 새일 것 같다.

나이 들면서 가장 무서운 새가 '눈깜짝할 새'가 아닐까?

이권우를 소개하는 것까지만 내몫이다.

이권우가 권하는 책들은 내 소관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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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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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었다.

얽히고 섥힌 인디언의 가족사를 내 자신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재단하려 들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지난한 삶이라는 것이,

여러 작가와 언론에서 입을 모아 칭찬하는 아름다운 삶 내지는 사랑이라는 것이,

너무 가까운 친척끼리 얽히고 섥혀, 이름마저 비슷비슷하여 분간하기 힘든 콩가루 집안의 그것처럼 여겨져서 너무 별로였다.

 

그리하여 내 자신의 가치관을 배재하고 객관성을 유지할 요량으로 한동안 묵혀두었다가 펼쳐보아도 마찬가지인거라...

찬찬히 살펴보니, 내가 이 책에 너무 감정이입을 했었던 것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 하나하나에 너무 몰입하고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또 다른 나인듯 여겨져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 책을 읽는데는 간단한 준비운동이 필요할 수 있겠는데,

그 중 하나가 인디언 수우 족과 인디언보호구역에 관해서 간단하게 알아두어야 겠고,

다른 하나가 이 책의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나처럼 단일민족이 뭐 대단한 것처럼 교육받은 그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그 윤리적 기준이나 도덕적 기준이 옳은것처럼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는 것이다.

모지스 필라저를 사랑한 뒤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옳고 그름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의미의 명암이었다.(106쪽)

항상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지만,

옳고 그름은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의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흑백 논리로 판단할 수 있는게 아니라,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 교묘하게 속하기도 하고 비껴가기도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래야 기억상실과 관련하여, 증손자와 할아버지의 전혀 상반된 논리로 엮인 다음의 문단이 설득력 있게 된다.

 

어쩌면 기억상실은 그에게 과거로부터의 보호이자 과거의 일로부터 그를 용서하는 것이었다. 그의 시절에 그는 고달픈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멍하니 웃으며, 죄책감도 허탈감도 없이 평온하게 살고 있었다. 예컨대 그가 기억하는 준은 그의 입속에 검은 자두를 넣어주던 어린 소녀였다. 그의 기억 속에 그녀는 영원히 그런 모습일 것이다. 그의 증손자 킹 주니어는 아직 기억이란 것이 생기지 않아 행복했지만, 할아버지는 기억을 잃어서 행복했다.(34쪽)

 

이 책의 미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문장의 아름다움도 한몫한다.

저자 '루이스 어드리크'가 아름다운 언어와 문장을 쓴것도 물론이지만,

번역도 훌륭하여 그 아름다움을 전혀 훼손시키지 않았다

  나는 약해졌다. 내 생각들은 가엾게도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고통은 나를 강하게 했지만, 그것이 나를 떠나자 나는 곧 잊기 시작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녀가 정말 주전자로 내게 화상을 입혔는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을 기억해내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같았다. ㆍㆍㆍㆍㆍㆍ내 마음이 경첩에서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며 나 지신의 고통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81쪽)

 

  그녀는 절대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아마 내가 자기 얼굴을 보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자리에 앉아 각자 혼자다. 세상 저편으로 해가 지고 언덕에 어스름이 깔린다. 내 손에 잡힌 그녀의 손은 점점 농밀해지고, 뜨거워지고, 무거워지고, 나는 그녀를 원하지 않지만 원하고, 그래서 잡은 손을 놓을 수 없다. (95쪽)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 하나하나에 너무 몰입하고 감정이입을 하였다고 했는데, 그 중 '가장'은 아무래도 '마리 라자르' 또는 '마리 캐시포' 였다.

어린 시절 하나의 사건으로, 수녀원에서 도망나오게 되고 ,

(입장에 따라서는 무사히 빠져 나온 것이 될 수도 있다.)

그 후로 기도따위는 하지 않던 그녀는 사랑 앞에서,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 무릎을 꿇는다.

  나는 계속 감자 껍집을 벗겼다. 한 번만 길게 돌려 깎으면 끝이다.ㆍㆍㆍㆍㆍㆍ라드 깡통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이 닿기도 전에 알았다. 그애의 검은 구슬목걸이가 거기 있는 것을.

  나는 기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신에게 애원하는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구할 것이다. 내가 성당에 가는 이유는 오로지 늙은 암탉들이 나를 낙심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나는 기도하지 않지만 이따금 구슬목걸이를 만진다.

  그것은 비밀이 되었다. 나는 절대 들여다보지 않고, 아무도 없을 때 그저 손가락으로 그것을 만지작거릴 뿐이다. 즐거운 시간이다. 만지작거릴 때마다 작은 돌멩이를 생각한다. 호수 밑바닥에서 파도에 정처 없이 휩쓸리며 반드럽게 깎이는 돌멩이. 많은 사람들은 그 돌멩이를 따스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파도에 깎여 자꾸만 작아지다 마침내 사라지는 돌멩이가 전혀 따스하지 않다.(130~131쪽)

 

ㆍㆍㆍㆍㆍㆍ지금까지 나는 하느님에게든 누구에게든 무릎을 꿇고 기도한 적이 없으니 그날 밤 바닥을 닦은 것은 무릎을 꿇기 위한 핑계일 수도 있다. 나는 흐릿한 왁스 자국과 먼지를 문질러 없애면서 기분이 좋아졌고,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남편에게 버림받아도 바닥을 깨끗이 닦을 수 있는 여자가 나라는 사실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예전에 나는 오만했다. 지금 나는 무릎을 꿇었다. 멋진 자주색 드레스를 입고 바닥을 닦았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나 자신을 비웃지 않앗지만 지금은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나는 이 장막을 가위로 잘라버리기로 했다. 그 수녀는 영악했다. 내 약점을 알았다.

  그는 나를 떠났지만 나는 주저앉지 않을 것이었다.

ㆍㆍㆍㆍㆍㆍ

  사랑이 내 고개를 돌려 남편과 라마르틴 여자 사이에 벌어진 일을 보지 못하게 했다. 넥터가 내게 줄 상처가 아직 남았지만, 지금 나는 늙은 암탉들이 수군거릴 일 따위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아프다.

ㆍㆍㆍㆍㆍㆍ

그래서 나는 넥터 캐시포에게 수녀에게 배운 대로 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에 손을 쑥 넣은 것이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팔을 뻗어 힘껏 내 손을 잡자 나는 그를 끌어 당겼다.(213~215쪽)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 하나하나에 몰입하고 감정이입 하였다고 해서,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겠는 것은 아니다.

난, 넥터 캐시포를...그의 나이듦에 관한 두려움을 몸과 마음으로 격하게 느껴가며 공감하겠다.

  이따금 나는 달아났다. 휴식이 필요했다. 술을 마시러 쏘다녔고 마리는 나를 야멸차게 나무랐다. 몇 년이 지나자 아기들이 걷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다만 아이들이 신을 신발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나는 항복햇다. 말 그대로 코를 박았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났고, 고개를 들어 세상이 경이와 창조물을 가득 담고 흘러가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백인 농부들의 건초 다발을 묶으며 늙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것에 나는 새삼 놀란다, 사람들이 이미 많은 물이 흘러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세월이다. 급류였나보다. 순식간에 휩쓸어 옆도 보지 못하고 눈앞에 떠밀려오는 것에만 시선을 붙박아야 하는 소용돌이 같은 급류. 십칠 년의 결혼생활, 오기도 가기도 한 아이들.

  그뒤 강물은 고인 느낌이었다.

  어쩌면 흐르는 강물에서 너무 빨리 눈을 뗀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시간의 빠른 움직임 때문에 정신이 아찔해진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일이 일어난 날을 기억한다. 계단에 앉아 망가진 마리의 냄비를 철사로 묶는데 만물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함성도 멈추었다. 마리가 바가지 긁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기들은 잠들었다. 소는 여물만 잘근댔다. 개는 뙤약볕 아래 길게 늘어졌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뭇잎도, 종도, 사람도, 소리도 없었다. 공기 자체가 함몰된 것 같았다.

  그 괴괴함 속에서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본 것은 흐르는 시간, 순간순간이 내 뒤에 쌓이는 장면이었다. 내가 시간으로부터 삶을 쥐어짜기도 전에. 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서 나는 그저 넋 놓고 앉아 있었다. 강물이 커다란 바위에 부딪는 것처럼 시간은 내게 득달같이 밀려왔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바위처럼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순식간에 닳을 것이다. 이미 닳아가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가렸다. 나는 줄었다. 근육도 줄었고, 머리카락도 줄었고, 턱 힘도 줄었고, 허리 밑으로 하던 일도 줄었다. 제안도 줄었다.ㆍㆍㆍㆍㆍㆍ(166~167쪽)

 

나도 우리아들이 열일곱 살이니, 결혼 십칠 년이 되었다.

한때는 시대와 내가 같이 빨리 움직여 멀미를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정지는 아니어도 슬로우 모션으로 느리게 동작하고 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휙휙 지나간다는 느낌이 들어, 멀미가 날 지경이다.

누군가는 함몰이라고 표현하는데,

다들 바쁘게 분주히 움직이는데 나만 제자리에 있으니 삶이 저만치 뒤로 도태된 것처럼 느껴져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육체는 세월에 의해 닳아가고 있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내가 도인이라고 부르는 이가 어느날 이런 말을 해주셨다.

근육도 줄고, 머리카락도 줄고, 턱힘도 줄고, 허리 밑으로 하던 일도 주는 이 일련의 과정들을,

'닳음'이 아니라 '닮음'의 과정이라고 봐도 좋지 않겠느냐?

번지고 스미고 물들어 스스로 '자연'이 되어가는 과정을 자연을 닮아가는 과정 말고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느냐?

그러고 보니, 자신의 내세우고 주장하기에 급급해서는, '닳을 것'도 그리하여' 닮아갈 것'도 없는 것이 맞긴 하다.

 

이것과 상반되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한데,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인 '사람이 나이가 들지, 마음이 나이가 들지 않는다'는 말과 관련하여서도 많은 생각을 해봤다.

 

ㆍㆍㆍㆍㆍㆍ그녀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그에게 얼마나 큰 슬픔과 사랑을 느끼는지 보았다. 그것은 내게 사랑의 체계에 대한 진정한 충격이었다. 나는 사랑이란 시간이 지나면 더 편안해져서, 아파도 많이 아프지 않고 좋아도 그렇게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반들반들 닳아 늙으면 잘 알아채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는 사랑이 쪼그라들다 죽는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제 나는 채찍처럼 분연히 일어서는 사랑을 보았다.(297쪽)

이십 대 중반의 나는, 사랑에 서툴렀었다.

하지만, 그때 젊은 날의 사랑은 열정적이고 불같은 반면,

이 글에서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닳아 쪼그라들다 죽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빠가 혼자 사시는 것도,

그런 우리 아빠가 아주 자유 분망하게 사시는 것도,

머리로는 알 것 같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나이가 들지, 마음이 나이가 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육체가 닳고 쪼그라 들다 죽는 것일지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은 닳지도, 쪼그라들지도, 죽지도 않는 것이다. 

ㆍㆍㆍㆍㆍㆍ어느 날 나는 하루종일 손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야릇한 감각을 느꼈다. 손의 감각을 타고나면 열망이 당신을 거기로 데려간다. 나는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불타올랐고, 밖으로 나가 둘 중 한명이 죽거나 미칠 때까지 사랑할 여자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따금 나는 누군가의 내면을 훌륭히 치료하지만, 장기전을 하기에는 지구력이 부족한 것 같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그런 지구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자질이 아무 노력없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생각을 다시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로 돌렸다. 할머니의 생각은 내 손과 뒤엉킨 창자로 느꼈고, 할아버지의 생각은 내 정신력으로 느꼈다.(298쪽)

 

신앙은 어리석을 수 있으나 우리를 끝까지 버티게 한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마침내 나는 사랑의 묘약의 진정하고 실제적인 힘은 기러기의 심장이 아니라 치유에 대한 신앙에서 나온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313쪽)

오늘,

내가  슬픈것은 나이가 들고 육체가 닳고 쪼그라 들다 죽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마리 라자르' 또는 '마리 캐시포'처럼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번역이 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부분이 딱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맥의 흐름 상 상관 관계가 모호한 것 같아 딴지를 걸어본다.

 

"ㆍㆍㆍㆍㆍㆍ.악어거북은 멍청하기 짝이 없어서 머리가 잘려도 살아 있잖아요."

ㆍㆍㆍㆍㆍㆍ

"그건 멍청한 게 아니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놈들은 심장에 있단다. 너처럼."

  나는 고개를 들었고, 내 심장정신 사이가 끊어진 것을, 그리고 어떤 끔찍한 사실을 조만간 알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321쪽)

 

  내 생각에, 눈을 뜨고 있을 때는 괴로워서 자꾸 미루게 되는 어려운 결정은 실컷 자고 나서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 날 깨자마자 나는 할머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지난주에 나는 겸손해졌는데, 손의 능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내게 계속 머무를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슴이 어디 있는지 깨달으면 삶이 다르게 느껴진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시력이 나빠져 괴로웠고, 노인주택에 말없이 앉아 인간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시야도 더욱 안으로 향해 결국 바깥 세상에는 완전히 눈멀게 되는 기분이었다.(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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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0-02 07:00   좋아요 0 | URL
스물에는 스물다운 사랑이고
서른에는 서른다운 사랑이며
마흔에는 마흔다운 사랑이라
쉰 예순 일흔 여든에는
또 그 나이에 걸맞게 아름다운
새로운 사랑이 빛나리라 생각해요.
 
이모부의 서재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
임호부 지음 / 산과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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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맨날 완전 생얼로 다니면, 날 아는 사람들은 질색팔색을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가 꾸미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속한다, 뻔뻔스러운거다, 낯 두껍다...어쩐다 해가면서 그런 무모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는 말들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백옥같이 고운 살결을 자랑하느냐 하면,

켈로이드 피부에다가(얼씨구~) 햇볕에 검게 내려앉은 스팟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한마디만 하자면,

이건 자신감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 일종의 무장해제이다, ㅋ~.

 

요즘,

아니다...요즘 뿐이 아니라, 언제나 사는 건 장난이 아니게 치열했었다.

그 치열하고 가열찬 삶에 휴식 같은 것이 책이고 이곳 알라딘 서재이고 했었다.

다만, 휴식을 취하는 방법으로...

그동안은 책을 들입다 팠다면,

이젠 책과 더불어 적절하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모부의 서재, 이 책은 외주교정자의 독서일기라고 하지만...

한 섬세한 영혼의 내적독백이자 자아성찰이며,

이 치열하고 가열찬 세상을 살아가는, 내지는 건너가는 방법론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글들은 크게 네개의 나뉘었는데,

사는게 참 치사하다, 소리 내 울다, 당신 거기 있어요?, 백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내가 전에 이곳 서재에서 읽은 글들도 있들도 있고, 처음 보는 글들도 있으나,

이렇게 제대로 된 제목을 달고 책의 형태를 갖추니 울림이 배가 된다.

사는게 참 치사하다,

소리 내 울어도 괜찮다,

당신 거기 있어 줄거죠?

숨어 있기 좋은 백개의 방까지는 아니어도 백개의 서랍,

난 이렇게 내 맘대로 해석해가며 읽었다.

 

내가 처음 이분의 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책에 나온 날짜가 맞다면 2010년 8월 무렵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는 글의 시초가 된 페이퍼를 보고나서였다.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

 

서울 지하철 6호선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플랫폼에 들어서면 벽 한쪽에 시 한편이 걸려 있다. 대개는 교정지가 하나 가득 든 가방을 둘러메고 그곳을 지나게 되는데 어서 집에 가서 어머니 저녁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만 급해질 때라도, 나는 시 앞에 멈춰 서서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여러 번 그 시를 읽곤 한다. 이런 시다.

ㆍㆍㆍㆍㆍㆍ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이고, 대개의 삶과 별다를 것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내 몫의 다름이 없지 않다는 것, 그 차이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 두렵지만 위안을 주는, 그림자이면서 동시에 그늘인 마음처럼.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 그럼 됐지 뭐, 그럼 된거야.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다시 무거운 가방을 힘차게 둘러메고 노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씩씩하게, 밥을 하러 간다. (131쪽)

고백을 하자면...이 페이퍼를 읽었을때, 여자분인줄 알았었다.

그래서 '효녀 ㅇㅇ님'으로 시작하는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 페이퍼를 읽으면서 잘난 척 한다고 할까봐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난 '프렉탈이론'을 떠올렸다.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쯤으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을 사는 그것과,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이지만 내몫의 다름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순환성(recursiveness)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미세하고 미미한 변화이지만 순환이 만들어 내는 원은 눈곱만큼씩이라도 커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프랙탈 이론의 창시자는,

자연계의 모든 것...이를테면 해안선의 모습, 동물혈관 분포형태, 나뭇가지 모양, 창문에 성에가 자라는 모습, 산맥의 모습, 우주의 모든 것을 프랙탈로 보았고,

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네들 사는 것도 다 똑같은 아니,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는 프랙탈 구조를 읽어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안나까레니나의 첫 문장도 잠깐 떠올랐었고,

지지고 볶고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는 깨달음이 나름 위안을 주었다.

 

그러고 나니까 세상에 대하여,

사람들을 대하기가,

세상을 살아나가기가,

좀 홀가분하여졌다.

이제는 화장을 안한 맨얼굴만 뻔뻔하게 아무에게나 들이밀 수 있는게 아니라,

내 자신을 치장하거나 내숭떨지 않고도(나쁜 의미의 변장이나 용인술이 아니라) 내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보이고,

그리하여 내 감정을 들켜서...

손해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래 좀 손해보고 말지 뭐,

욕을 하면 욕을 좀 먹지 뭐, 욕먹으면 오래산다잖아...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삶에 지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내 등을 다독다독 두들겨주는 듯한 구절들로만 되어 있다.

 

옛날에 독서 처방전이 있다면 이떤 형태나 형식을 취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가 떠올랐다.

아니, 독서처방전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지난한 우리네 삶에 대한 36.5도짜리 따뜻한 감성의 위로이자 쓰다듬이자 격려이다.

 

앞으로도 이런 지지고 볶는 삶을 같이,

한쪽 어깨가 됐든,

발가락 한개가 됐든,

마음 한켠이 됐든,

책의 한구절이 됐든,

같이 이고 사는 하늘의 하얀 구름 한점이 됐든지 간에...

떠걸고 의지하고 살아가자는 프로포즈로 들린다.

 

좋은 책이다.

다 옮겨적을 수 없다, 부디 일독을 권한다.

 

ㆍㆍㆍㆍㆍㆍ퇴지 (退之) 한유(韓愈)의 문장에서 힌트를 얻었다.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 내 운다. 초목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소리 내 울고, 물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치면 소리 내 운다. 솟구치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쳤기 때문이고, 내달리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며, 끓어오르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에 불질을 했기 때문이다. 금석(金石)은 본디 소리가 없지만 두들기면 소리 내 운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어쩔 수가 없어서 말을 하는 것이니, 노래를 하는 것은 생각이 있어서고, 우는 것은 가슴에 품은 바가 있어서다.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들은 모두 평정치 못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ㆍㆍㆍㆍㆍㆍ(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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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9-21 13:48   좋아요 0 | URL
고운 책들로
언제나 고운 마음 잇도록
삶밥 기쁘게 누리시기를 빌어요.
 
의대담 醫對談 - 교양인을 위한 의학과 의료현실 이야기
황상익.강신익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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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맨날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그런데 쳇바퀴에서 일부러 벗어나기를 꿈꾸지도 않는다.

그니의 이런 루틴 같은 일상은 빠짐없이 적혀 있고, 기록되고, 예정되고, 규정되어 있는 '80일간의 세계일주'의 그것을 닮았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는 그것을 돌아다니길 좋아하지 않고, 규칙적인 사람, 진짜 기계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급기야 기계를 섬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얘기 한다.

 

그러니까, 그니는 누가봐도 좀 독특한 감성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변덕이 죽 끓듯 하기가 일상다반사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두드러지는 인간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니가 직업과 관련하여,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현실과 그니가 생각하는 이상향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

'빨리 빨리', '직빵으로', '세게', '독하게', '한번에 쇼부를 볼 수 있게' 같은 말들은 너무 흔하게 듣는 멘트이다 보니,

그니가 생각하는 '명의'란,

'빨리 빨리', '직빵으로', '세게', '독하게', '한번에 쇼부를 볼 수 있게' 같은 말들과 관련된,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추상명사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황1  과거에 생각했던 '명의'라는 개념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죠. 왜냐하면 진료하는 방법이 모두 표준화 되었거든요. 이제는 의사 개인만의 독자적인 치료법이란 없다는 뜻입니다. 한의학과의 차이점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현대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표준화'라는 게 필요하지요. 그래야만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용한 의사에 대한 신뢰는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의사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수 없겠지요. 진단과 처방이 의사마다 다르다면 기준이 없으니 누굴 믿겠어요?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점은 바로 이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의사들마다 진단방법이나 치료법이 달랐어요. 지금도 그런 경우가 있죠. '체질'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데, 병원마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한의사라 해도 1년 전과 현재 진단이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만큼 표준화, 과학화가 쉽지 않다는 얘기겠지요. 현대에는 과학화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해서 계량화, 과학화했는데 오히려 그 점 때문에 한의학이 더 쇠락의 길로 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과거처럼 나만의 비방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아닙니다.

ㆍㆍㆍㆍㆍㆍ

강1 과거의 명의에게는 예후가 중요했거든요.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능력보다는 환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환자를 정해진 유령 속에 넣어 규격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유령'이 아니라 '유형'이겠지~--;)

황1 ㆍㆍㆍㆍㆍㆍ환자가 의사를 믿는 일도 참 중요합니다. 일단 내 몸을 맡겼으면 믿어야 해요. 믿지 못하겠으면 다른 의사에게 가야죠.ㆍㆍㆍㆍㆍㆍ믿는 것이 복이다, 하고 믿었어요. 그래야 효과가 있거든요.(50~51쪽)

그러던 중,

그니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진료하는 방법이 표준화되고,

그리하여 '표준화'된 잣대를 드리운다면...

규칙적인 사람, 진짜 기계 같은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표준화된 잣대가 아니라,

그 사람만의 독특한 개성이라고 생각했었던 그니였었는데 말이다.

 

표준화된 잣대에서 벗어나게 되면,

의료보험 수가는 차등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삭감'이라는 고상한 단어를 사용하여 지급되지 않는다.

 

'명의'가 아무리 의미있는 타이틀이라고 해도,

환자가 있어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게 '의사'라는 존재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진료하는 방법이 표준화되고,

그리하여 '표준화'된 잣대를 드리우게 되고,

거기서 비껴가지 않는 규칙적인 사람, 진짜 기계 같은 사람만 존재한다면...

의사보다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더 제대로된 데이터를 뽑아내 진단을 하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 책은 두 의학자들의 대담으로 쓰여진, 인문학을 표방하고 있는 의료 대담집이다.

인문학이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을 위한' 내지는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내지는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자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독특하고 두드러진 곳을 다듬어 넣고, 두들겨 넣고...하여서는 인문학을 가장한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나는 이 책이 진정한 '인문학'서적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다시말해, '인문학'서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담'에 실천과 행동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리고 대담집인데...독자들의 질문을 수록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맹점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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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3-09-16 18:09   좋아요 0 | URL
표준화는 산업 현장에만 적용되는 기준이 아니군요. 전 대부분 산업현장과 연계하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네요.
 
800만 가지 죽는 방법 밀리언셀러 클럽 13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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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산다는 것은 그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었다.

특별히 어디 아픈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게,

이 모진 세상에서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는 날들의 연속일 때가 있었다.

 

세상에서 지독히 쓸쓸하고 외로워본 사람은 안다.

그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오히려 안도할 일이라는 깨달음이 주는 묘한 쾌감을.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이름은 매트예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했다.
“내 이름은 매트고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그리고 빌어먹을 일이 벌어졌다. 내가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난 이 책의 명문장은 뭐니 뭐니 해도 이 마지막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종일 지독히 많은 사람과 만나고 부딪치며 살아가지만,

상대방에게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에게조차 솔직할때는 얼마나 있을까?

맑은 거울을 들여다보듯,

또는 물무늬가 없는 샘물이나 우물물을 들여다보듯,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는 과연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뭐라고 하는 것은 고사하고,

과연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서너 번 읽은 것 같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었는데,

그동안은 '오즈의 마법사'의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소원을 이루어가듯...

이 책을 통하여 수많은 삶의 군상들을 보았었고,

나의 삶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양철나무꾼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은 후,

사랑하는 애인을 다시 찾아갔으나 그 애인은 양철나무꾼을 따라나서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그녀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 거다.

 

매튜 스커터는 이 책의 끝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시인하고 인정한다.

그의 그런 용기가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얘길 하는 이유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존재나 자아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비춰주는 아상,

다시말해, 상대방이나 친구도 참 중요하다.

상대방이 어떤 멍석을 어떻게 깔아주느냐에 따라,

타인이 지옥이 되기도 하고,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암튼, 내 자신을 솔직히 맘껏 펼쳐보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친구가 이 가을 고맙고,

그런 친구가 있어, 이 가을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ㆍㆍㆍㆍㆍㆍ여기 오면 그는 신을 벗고 긴장도 풀어요. 숙명적인 인연이란 걸 아세요?"

"글쎄."

"그건 환생과 관게있는 거엥. 환생을 믿으시는지 모르겠네요."

"거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걸."

"그렇군요. 환생을 믿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가끔 챈스랑 내가 전생에 서로 아는 사이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꼭 연인이나 남편과 아내 같은 사이가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어쩌면 오누이였을지도 모르죠. 그가 내 아버지였거나 아니면 내가 그의 엄마였을 수도 잇겠죠. 아니면 우리가 동성있을지도 몰라요. 하나의 생에서 다른 생으로 갈 때 성이 바뀔 수도 있다니까요. 말하자면 우리가 자매라든가 아니면 그 비슷한 사이였을 수도 있다는 거죠. 진짜로요."(204쪽)

 

 

 

"매튜? 한 가지만 약속해."

"뭔데?"

"술 마시려거든 꼭 내게 먼저 전화해 줘."

"오늘은 마시지 않을 거야."

"알아. 그래도 마실 생각이 있으면, 만약에 마실 거라면 내게 먼저 전화해. 약속하지?"

"알았어."

  업타운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그 대화가 생각났다. 바보같이 약속을 하다니! 그래, 적어도 그 약속이 그녀를 기쁘게 해 주었다. 그 약속 때문에 그녀가 기뻤다면 나쁠 게 뭔가.(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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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2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