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일곱 시, 나를 만나는 시간
최아룡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보대끼며 살아가기 마련이고,

그 관계 속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기도 하고, 때로 다른 누군가에게 그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받기도 한다.

 

유약한 성격 탓인지, 또는 소심한 성격 탓인지 자잘한 일에도 상처를 받고 눈물 흘리고 하지만,

그건 텔레비젼이나 책 속의 사정일 경우이고,

잔뜩 움추러들고 그리하여 더 단단하고 높게 벽을 쌓아 올릴 뿐, 누군가에게 얘기해본 적도 그러니 위로받고 치유받은 기억도 없다.

직업 상, 자기 몸도 돌보지 못하면서 누구를 치료하느냐고 할까봐 두려워서 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가정 교육을 그렇게 받아왔었던 것이고,

내 자신을 말끄러미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택한 것이 익명의 글쓰기였다.

 

책을 읽고 읽은 느낌이나, 거기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을 글로 옮겨 쓰는 행위를 통하여,

나를 돌아보고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찾고,

무엇보다 배설해낸다는 행위를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다. 나를 위한 해우소.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글쓰기가 누구에게 보이거나 말을 걸거나 소통을 위한게 아니었다.

만약 그런 기능이 있다면, 그건 파생적이다.

 

언젠가, 여자들의 관계는 수다에 의해서, 남자들의 관계는 네트워킹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하지만 그건 10여년전 기사이고 지금은 모든 관계가 네트워킹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관계라는 것이 상호적인데 반해 네트위킹이라는 것은 선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여지껏의 관계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네트워킹에 의해 형성되는 관계는 피상적이고 표면적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의 관계도 일종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쉬이 공허해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즐찾 수나, 공감 수, 댓글 수 따위에 연연하다 보면,

내가 쓰는 글이나 내가 토해내는 고민, 들은 미미하게 느껴지는데,

빵빵한 즐찾 수나, 공감 수, 댓글 수, 들을 자랑하는 이들의 댓글과 덧글을 읽다보면,

전혀 본문의 내용과 상관없는 피드백도 있게 마련이다.

시인컨대, 나도 뜬금없기론 둘째가라면 서럽다.

나름 과도기를 겪었지만,

이젠 글쓰기는 행위 자체가 주는 카타르시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심할 수 있고, 그리하여 홀가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책 한권을 읽었다.

장금이 버전으로 좋은 걸 좋다고 하는데 왜 좋냐고 물으시니,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다.

부제에 '요가'라는 단어가 들어가 지루할까 걱정할건 전혀 없어 주신다.

그렇게 따지면, 요즘 대세인 강신주도 '철학'을 매개로 '힐링'을 가장 싫어한다면서 힐링하지 않았던가?

체력이 약하면 강하게 만들면 되지 굳이 '저질체력'이라고 규정할 필요는 없다. 저질체력이라는 표현은 건강하고 활동적이고자 하는 마음을 반어적으로 보여준다.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 (19쪽)

요가가 연관된 내용은 딱 요기까지이고, 힐링 에세이라고 해야 한다.

글 자체로 치유의 힘을 지녔다.

 

이 책의 저자는 최아룡이다.

최아룡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치유의 힘을 지녔음을 아는 사람은 알것이다.

 

 

 

얘기는 다시 카타르시스, 해우소, 또는 대숲으로 돌아간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면 그 옛날에 대숲에 가서 구덩이를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를 외친 이발사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하겠으면 나처럼 이렇게 글쓰기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네트워킹이 좋은것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이고,

다 털어놓을 필요 없이, 선별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중요한건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혼한스럽거나 정리가 안된 마음을 정리하거나 가다듬는 그 과정이다.

그러니까, 내 글을 읽을수도 있고 안 읽을수도 있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얘기하면 된다.

 

마음(, 다시말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고 가다듬는 과정을 글쓰기를 통해서 하다보면,

언젠가는 사람을 상대로 할 수도 있게 된다.

 

나는 이제 사람은 독립적인 객체이면서, 상대적인 존재라는 걸 안다.

부부나 연인 또는 부모나 자녀 와의 사이에서 통용되는 진리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알때, 내게 맞는 상대를 택할 수 있는 것이고,

(어쩜 이건 거울에 비친 나의 또다른 상의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내 자신의 위치와 영역이 있을때, 상대방의 위치와 영역을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로 전에 읽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이 고전인 이유는,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건데, 이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치유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이는 나의 위치를 자리매김 할 수 없고,

상대가 있어야 나의 위치를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 그게 정체성이다.

 

치료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에서 얻은 가장 값진 교훈은 이거다.

사람 마음 속에 여러가지 감정이 있는데, 그 여러가지 감정 중에는 상처도 있다.

사람의 상처를 보고 맞닥뜨리는데는 힘이 필요하다.

자기자신을 객관화하는게 중요한 이유는,

자기 자신의 힘이나 상처의 크기를 알아야 상대의 그것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틸 수 있는 힘보다 상처가 클때는 맞닥뜨리기가 힘들고 위험하다.

그러니까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는, 번짓수를 잘못 찾거나 오지랖을 부리지 말고 볼 일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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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2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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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4-02-25 15:35   좋아요 1 | URL
작년에 어느 요가 영상을 보고, 내년에는 요가를 한번 배워볼까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핸드스탠드 즉 물구나무서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영상이었는데,
단번에 매료되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네요.
 

 

 

여자의 솜씨라고 해도 좋다 싶은 이건 울아들의 작품되시겠다.

얼마전 날 추웠던 어느날 더이상 책은 보기 싫고 할일은 없어 심심해서 만들었단다.

난생 처음 만든거라는데, '마음씨, 맵씨, 솜씨' 3씨를 자랑하는 날 닮지 않았다고 할까봐 손끝이 야무지다.

 

이게 정체성이란 말로 대치 되어도 좋을까 싶지만,

어렸을때 난 이 야무진 솜씨를 자랑하는 무언가를 직업으로 갖게 될 줄 알았었지만,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고, 아직도 그게 회한으로 남는다.

 

 

책을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대충 골라 읽는 타입이기 때문에,

보통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게 된다.

이를테면, 영국 남자와 중국 여자의 러브 라인을 그린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을 읽은 다음엔,

영국 조각가 남자가 등장하지는 않더라도 '런던 디자인 산책'을 읽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독서는 말 그대로 내 기분 내키는 대로이기 때문에, 선택을 할때 신중하지도 않지만,

읽다가 별로이면 집어던지면 그만이었다.

 

근데, 근래에 읽은 책 두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는 것이,

끝까지 읽느라 인내심을 발휘하는 수고를 하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게, 

고전이나 명작이라고 하는게 일반적인 검증을 거친작품인 것은 맞지만,

다른 사람이 큰 감동을 느낀 책이라고 해서,

나도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것이다.

 

 

 

 

 

 

 

우선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 같은 경우,

'밀란 쿤데라'라는 이름 만으로도 결의를 다지기 충분한데,

강신주의 감정수업, '자긍심'편에서 언급되어 읽어봐야 겠다 싶었었다.

강신주는 '자긍심'을 일컬어 '사랑이 만드는 아름다운 기적'이라고 한다.

 

솔직히  '정체성'의 개념조차 모호했던 난,

책을 읽고나니까 선명해지는게 아니라 더 모르겠었고,

그리하여 네이버를 찾아보니,
'어린이가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차별화되고 사회에서 취득하는 과정을 발전시키게 되는 '자아'의 의미를 말한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래도 애매모호해서,

강신주가 언급한 자긍심이란 단어와 연결시켜 생각해보았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본인만의 고유한 개성을 얘기하는듯 한데,

그중 지속되어 자신의 것으로 습관화 돼고,

긍정적이어서 본인이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겠다.

'자긍심','자아존중감' 정도가 되면 뜻이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이렇게 무덤덤한걸,

처음 너무 어려웠거나 내 취향이 아니어서라고 생각했다.

'정체성'은 신프로이트주의 이론가인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 언급한거라고 하는데,

프로이트 이론도 모르는 내게 신프로이트주의라니 머리에 쥐가 날 수밖에~--;

 

근데 곰곰 생각해 보니, 이 책이 별로였던 이유는 샹탈이라는 여자 때문이었다.

자신이 늙어 간다는 사실에 서글퍼하던 샹탈이라는 여자가, 어느 날 연하의 애인 장마르크에게 '남자들이 더 이상 날 쳐다보지 않아.'라고 하소연 하게 되고,

애인 장마르크는 그런 샹탈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시라노'라는 익명으로 편지를 보낸다는 내용인데,

'사랑하는 여자와 다른 여자를 혼동하는 것. 그는 얼마나 여러 번 그런 일을 겪었던가. 그때마다 놀라움은 또 얼마나 컸던가. 그녀와 다른 여자들의 차이점이 그렇게 미미한 것일까. 이 세상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실루엣을 어떻게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

라고 한다.

 

어린 아들이 죽은 후 또다시 임신을 하라고 부추기는 시누이와 거기에 동조하는  남편에게 회의를 느껴 이혼하고,

일 잘하고 돈 잘버는 캐리어우먼이 된다.

연하의 연인 장마르크와 같이 사는데, 잘은 모르지만 연하의 연인 장마르크는 변변치 못한것 같다. 

 

나이가 먹고 늙어가는 걸 피해갈 수는 없지만, 그 사실을 가지고 서글퍼할 수는 있다.

평생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하여 남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내가 샹탈이 별로인건 이런 것들 때문이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라면,

이건 마음가짐의 문제이고 실천의 방법이지,

장마르크에게 그렇게 표현한 순간 또 다른 애인이 가능하다는 허용이 되어버리는게 아닌가 말이다.

같은 의미에서 '시라노'라는 익명에게서 받은 편지를 감추는 그 마음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들을 '정체성'으로 제한시켜 버린 작가도 별로가 되어버리는 까닭이다.

 

 

 

 

 

 

 


또 한권, '올리버 키터리지'가 그렇다.

 

인간의 감정은 얼마나 세밀한가.

감정이 느끼는 파동은 얼마나 섬세할 수 있나?

인간과 인간이 내는 파동이 물결처럼 어우러져,

서로 간섭 현상을 일으키는 점이지대도 있겠지만,

어떤 파동에도 휩쓸리지 않는 소외지대도 있는 법.

 

이 책은 'ㄱ'님의 리뷰의 이 구절이 너무 좋아 외우다가, 내 편견이 잊혀질때쯤 되어 집어 들었다.

이 책 같은 경우는,

꽃이 피어 붉기는 잠깐이고 줄기에 이파리를 매단 채 견뎌내는 시간이 더 오래임을 조용히 얘기한다.

우리의 불편하고 추레한 현실 한쪽 자락을 건드려 감성을 자극하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인지는 모르겠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조각조각 단편의 삶을 통하여 엿볼 수 있는 것은,

삶은 매순간 우리가 계획하거나 맘 먹은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거나 늙었거나, 나이를 먹었거나 덜 먹었거나, 에 관계없이,

우리가 매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 거기 나오는 '샹탈'과 '장 마르크'로 돌아가,

내가 별로라고 침을 튀기며 흥분하는 이유는,

그들의 도덕성을 비난해서도 아니고,

사랑이 영원할거라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다만, 그순간에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순간조차도 서로를 비껴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현세의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라는 책이 궁금하다.

이 책엔 '해지기전 한걸만 더 걷다보면' 류의 글이 가득할 것 같다.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이현세 지음 / 토네이도 /

 2014년 2월

 

다시 처음의 만두 빚는 울아들로 돌아가서,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고 그것을 발휘하며 살 수 있으면 행복하겠지만,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것을 선택한다고 하여 삶도 2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부를 할땐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서,

놀땐 노는데서,

만두를 빚을땐 만두를 이쁘게 빚는데서, 울아들은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샹탈은 그순간 뭇 남자들이 아닌 장 마르크가 쳐다봐주지 않는다면 서글퍼하면 그만인 것이고,

장 마르크 또한 샹탈을 여러번 다른 여자와 혼동한 과거를 놓고 그럴게 아니라,

그순간 샹탈을 헤아릴 수 없다면 그때 놀라면 된다.

 

흔히들, 몸이 나이를 먹지 마음이 나이가 먹지를 않는다는 말을 한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게 마련이고 언제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사는 인생이라면,

밥을 꼭꼭 씹어먹듯, 내 발로 한걸음씩 내딛듯,온 몸으로 통과하며 살고 볼 일이다.

이것은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랑은 좀 다른 의미인데,

사람이 항상 전력질주를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항상 최선을 다하고 살려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하겠는가?

잘하고 못하고, 의 개념이 아니라,

나를 올곧이 내어맡기는 의미라고 해야할까?

하고 싶어할 수도 있고, 하기 싫어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지만, 그게 다 한 대상을 상대로 한 것이고,

그 관계가 정리되면 또 다른 관계를 시작할 수도 있고 밍기적거릴 수도 있고 그런 것.

 

정체성을 난 '자긍심' 내지는 '자아존중감' 정도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었다.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거기서 최선의 자아를 발휘하는 것일 수도 있고,

두번째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차선의 자아를 발휘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이 얘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다' 정도로 바꾸어 말할 수 있겠다.

 

그게 사람이어도 좋고 사물이어도 좋다.

사랑이 영원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그 순간에는 대상에 집중하고 볼 일이다.

그게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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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4-02-20 10:46   좋아요 0 | URL
아드님이 빚은 만두 정말 이쁘네요. 맛나보여요.
감동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느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이 좋다고해도 내겐 읽기 어렵고 별 감동없는 것들도 많더라구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는 것이라 아마도 죽을때까지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알케 2014-02-21 08:43   좋아요 0 | URL
아이고 딸래미를 키우시는군요ㅎㅎ 맵시하고는..강신주의 감정수업을 사다놓긴 했는데 저는 어째 시들합니다 ,

하늘바람 2014-02-22 07:45   좋아요 0 | URL
만두 만두 정말 아드님솜씨여요? 것도 첨 만든?와 정말 감탄에 입이 쩍 벌어지네요.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샤오루 궈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제목만 보고 김소연의 '마음사전' 류의 책일거라고 생각했었던 나는 좀 아쉬웠지만,

설정과 내용은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오너가 누구든지 책은 믿을 수 있는 출판사의 그것이고, 번역도 내공 있는 변용란 되시겠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이런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은것도 아니고,

연애의 고수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니,

이런 로맨스소설을 놓고 개연성을 얘기한다는것 자체가 아주 웃기는 일이니 그저 재밌게 읽으면 된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다짐은 그저 다짐일뿐,

내가  로맨스소설을 즐기기엔 너무 올드하거나,

감정이 메말랐거나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딴지를 걸고 혼자 귀신 씨나락 까먹듯 툴툴거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재미있었다.

이런 작품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번역자의 내공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화가 처음에는 높임말로 번역되다가 나중에는 예삿말로 번역된다.

영어에는 높임말이 없다는 얘길 들었다.

1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들의 관계가 친밀해졌음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지만,

차리리 이런 존칭의 구분보다는,

처음엔 격식을 차린 언어, 나중에는 그런 것의 생략 정도가...오히려 그럴듯 하지 않았을까 싶다.

 

로맨스를 로맨스로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만,

스물네 살 먹도록 부모님 밑에서 살다가 영국으로 혼자 어학연수를 간 중국 여자가,

만난지 일주일 만에 스무살이나 많은 남자랑 같이 사는 게,

게다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녀의 필요에 의해서 얹혀 사는 것이면서,

전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낯선 이국땅에서 늘 혼자이고 혼잣말을 하는게 싫어,

뭔가 따뜻한 것을 붙잡고 싶어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찾고 싶다'고 한다.

 

이 얘기는 소통을 하고 싶다는 것일테고,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상호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인 것에 전제조건이,

그 남자를 나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의미에서 봤을때, 언어가 달라서도 쉽지않은 그것이, 스무 살이나 연상이 되어버리면 더 요원한 일이 아닐까?

 

그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소통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매개체로 몸짓 언어, 섹스가 언급되는데,

글쎄, 처음엔 어떨지 몰라도,

나이에 따라 신체적 조건과 건강상태, 피로 회복도 등이 다를 수밖에 없을텐데,

사랑과 신뢰에서 비롯되는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위가 아니라면,

차이나 다름은 소통의 매개체가 아니라 단절과 불신의 골을 깊어지게 하진 않을까?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은 개방적인데 반해, 사고방식은 폐쇄적이고 유아적이다.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니, 로맨스소설이 전혀 로맨틱하지 않게 읽힐 밖에~--;

하지만, 뜨문 뜨문 독백처럼 이어지는 몸에 대한 성찰은 충분히 깊이있고 로맨틱하며 아름답다.

강한 냄새와 강한 영혼. 나는 심지어 그것을 느끼고 만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당신 몸은 어쩌면 역시 아름답다 생각한다. 당신 영혼의 집이니.(79쪽)

 

섹스는 원래 이런것인가? 관통함은 당신이 나의 영혼에 들어오는 방식이다.(151쪽)

 

그녀의 일기장에 더 많은 단어들이 적히고 언어 실력이 늘면서 그와의 다툼은 늘어만 가는게 몹시 안타까웠다.

그녀의 단어들이 늘어가면서, 그녀의 사고방식 또한 넓고 깊어져 간다.

다른 단어는 그녀의 견해로 받아들이겠는데, 비관주의와 낙천주의에 대한 부분은 집고 넘어 가야겠다.

꽃잎은 비관주의자다. 꽃잎은 시들어 버릴 것이다.

노인의 몸은 비관주의자다. 몸은 썪고 무너져 내린다.

불교신자는 현실에서는 비관주의자이지만, 마지막에 죽음을 대할 때는 죽음의 평화를 환영할 수 있도록 삶 전체를 준비했으므로 낙천주의자다.ㆍㆍㆍㆍㆍㆍ사랑은 참으로 비관적일 수 있고, 사랑은 참 파괴적일 수 있다. 사랑은 한 여자가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이끌 수 있으며, 그 잃어버린 세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떠나는 것 뿐일 것이다.(316~317쪽)

 

"하지만 당신도 미래에 나와 함께 있기를 바라지 않아?"

당신은 3초간 침묵한다. 이 질문에 3초면 매우 긴 시간이다. 그러고 나서 당신이 대답한다. "당신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당신을 위해 결정을 내리는 거야. 당신은 불교 국가 출신이라 당신도 그 정도는 알 거라 생각했어."

"오케이. 지금부터 우리 미래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말자.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야. 우리 중국인들은 기대감으로 살아. 기대감, 그게 미래와 가까운 말인가?

ㆍㆍㆍㆍㆍㆍ

이모든 과정을 겪는 건 그래야만 한 가족이 겨울과 다가오는 봄 축제 때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야. 겨울에는 다음해 재경작을 위해, 땅에 영양분을 주려고 들판에서 뿌리와 풀을 태워. 모든 게 다음 단계를 위한 일이지. 그러니까 이 자연을 봐. 인생은 지금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늘이나 오늘 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감에 관한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오늘만을 살 순 없는 거야. 그런 날은 최후의 날이 될 테니까."(347~348쪽)

내세나 천국 따위를 믿는 사람은 현재가 불행한 사람이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이순간 행복에 겨운 사람이 내세나 천국 따위를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은 힘들고 꿀꿀하지만, 언젠가 더 나아질거라는 믿음과 기대감 따위가 내세를 얘기하도록 하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중반을 넘어 황혼을 바라보는 남자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여자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다.

다시 한번 나이가 걸림돌이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몸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요.

나는 당장 당신에게 답장을 쓴다. 나는 나 홀로 떠난 여정이 너무도 외롭다고 말한다. 나는 요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답장을 쓴다.

 

서양에서 우리는 외로움에 익숙해요. 나는 당신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당신 혼자 있는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탐험해 보는 것이 당신을 위해 좋다고 생각해요. 얼마 지나면, 당신은 고독을 즐기기 시작할 거예요. 당신도 더 이상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예요.(246쪽)

이 책을 읽고,

관계는 누구나 맺을 수 있지만, 사랑은 어른만이 할 수 있다는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보여지는 표면적인 관계맺기에만 익숙한 난,

다시말해 관계가 채 무르익고 않아 성숙하다고 느낄 수 없는 난,

성숙하지 않았으니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어른이 아니니 제대로된 사랑을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말이다~--;

 

언어는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있지만,

사랑과 삶은 내가 주체가 되어 하는 것이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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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12 20:21   좋아요 0 | URL
20 살 차이보다 어쩌면 사랑에 대해 성숙하지 못한 , 건강하지 못한 바램 때문이라는 생각이 저도 드네요..양철나무꾼님..~~^^

사랑은 배워질 수 있는거라고 하지만 그건 가르쳐서 얻어지는 건 아닌거같아요...~~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ㅠ

sslmo 2014-02-20 10:22   좋아요 0 | URL
새벽숲길님, 댓글이 늦었네요.
어디 한국에 계신가요?
어쩜 성숙이란건 나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경험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하고...님을 보면서 해봤습니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바람 끝이 매서워요.
건강 조심하시구요~^^

파란놀 2014-02-13 00:08   좋아요 0 | URL
맑은 마음일 때에는 어른이 될 테고,
어른은 밥그릇 아닌
맑은 넋을 고이 건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얻는 이름이리라 느껴요.
그러니, 사랑은 어른만 할 수 있겠지요.

sslmo 2014-02-20 10:25   좋아요 0 | URL
요즘 마실도 못 다니고 댓글도 한없이 늦었네요.
산들보라랑 사금벼리랑 다 잘지내나요?

그런 의미에서,
산들보라랑 사금벼리에게서 맑음을 무한 수혈 받으시는 님은 만년 어른이실 수 있겠다는~^^
부럽~~~~~^^

감은빛 2014-02-13 13:49   좋아요 0 | URL
노래 잘 들었습니다. ^^

sslmo 2014-02-20 10:26   좋아요 0 | URL
It's my pleasure
 
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숲 가운데 있을때는 나무는 볼 수 있어도 숲 전체는 볼 수 없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가 사는 우물 안이 세상의 전부인줄 안다.

 

내게 책은 두가지 상반된 용도로 읽힌다.
양 한마리, 양 두마리...잠을 부르는 수면제로 쓰일 때와,
눈을 '말똥말똥~@@' 말똥을 굴리다가 밤을 꼴딱 새우게 만드는 각성제로 쓰일 때이다.

이 책에 관한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 터였지만 이상하게 나를 비껴갔었는데,

요번에도 책의 초반부를 읽다가 집어던질뻔 하였지만,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또 다른 날 보고 있는 듯 하여 심기가 불편하여서였고,

그걸 견디고 나면,

근간에 보지못했던 훌륭한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겉표지에 '일단 읽어라!' 라고 되어있는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난 이렇게 덧붙이겠다.

평일밤에는 시작하지 마라.

한번 손에 쥐면 결코 내려놓을 수가 없어,
말똥을 굴리다가 아침을 맞이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책을 읽느라 밤을 새워본게 너무 오랫만인지라, 이 책의 흡입력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책의 시작에서 끝을 짐작할 수 있으니 내용이나 줄거리는 특별할게 없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며 쉽다.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리얼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품은 무척 오래간만이다.

보통 인간의 심리를 묘사할때,

날씨가 어떻고 자연경관이 어떻고 잔뜩 복선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단도직입적이다.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머리 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 시간에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악하기 때문에 악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선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다가 그렇게 될 뿐이다.'

                                                                                            - 윌스톤크래프트 -

 

책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말이다.
난 이 문장을 읽다말고, 살짝 비틀어 보았다.
선과 악이 상반되는 관계의 조합이라는는건 알겠는데,

그럼 행복과 상반되는 말은 불행이어야 하지 않을까?

저 문장의 논리대로라면 선은 행복이어야 하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을 살아왔지만,
선을 추구하는 과정이 그리 행복하기만 하던가 말이다.

 

난 이 책의 화자인  행크가 일을 벌이고 자신을 납득시키고 정당화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남의 일 같지 않았었고,

그리하여 일부러 감정이입하려고 상상할 것도 없이, 완전 몰입하여 아프게 읽었다.

 

농장을 하시며 빚에 허덕이던 부모님은 불의의 사고로 행크가 결혼하기 일 년전 유명을 달리하셨고,
고교 중퇴인 세살 위 형은 아직 결혼 전이고, 겨울이면 변변한 일자리도 없어 실업수당으로 살아간다.

행크는 집안에서 최초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였고,

방 세개짜리 집을 소유하고, 아내는 임신중이고, 사료상의 부지배인이라는 직업도 가지고 있다.

화자 행크의 입으로 중산층의 삶을 산다고 하는데,

이 중산층이라는게 경제적인 것만을 얘기하는 것인지, 삶의 질 전반에 관한 문제인지, 를 놓고 봤을때는 '글쎄~'다.

 

내가 지루할 정도로 행크를 자세히 설명한 것은,

행크의 이런 면들이 어떤 점에서는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어릴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결혼해선 남편이 시키는 대로,

직장에선 직장 상사가 하라는 대로,

내 뜻이라는 걸 가져보지 못했다.

말 잘듣고, 착한, 공부 잘하는 아이였지만,

내 나름대로의 주관이나 가치관을 갖지 못하였고, 그래도 되는 것인줄 알았다.

 

이후 며칠 동안, 세상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ㆍㆍㆍㆍㆍㆍ이 모든 자발적인 배려는 놀랄만큼 너그러웠지만, 나는 그 때문에 이상하게도 불안했다. 전에는 정말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의 인생에는 없는 것이 있었다. 친구가 전혀 없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정확히 집어낼 수 없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친구가 있었다. 아내에게는 친구가 많았다.그러나 어쩌다 보니, 델피아로 이사 온 뒤로, 친구들이 사라졌다. 우리는 그 자리를 새 친구로 채우지도 않았다. 친구가 없어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외롭지 않았으니까-그냥 그 사실에 놀랐다.그렇게 오랫동안 폐쇄된 생활을 해왔다니, 서로에게 전적으로 만족하며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바깥세상과 연결되려는 욕구가 없었다니, 나쁜 징조 같았다. 건강하지 않은 것 같았고 비정상적인 것 같았다.ㆍㆍㆍㆍㆍㆍ이웃은 우리가 너무 비사교적이고, 너무 반사회적이고, 너무 비밀스러워서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언제나,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었다. 외로운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348~348쪽)

 

내 나름대로의 주관이나 가치관이 없었을 때는 차치해두고,

난 내 스스로 담을 높이 쌓아올리고 '외로워, 외로워'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언제부턴가,

가식적인 웃음과 형식적인 인사말을 스펙으로 장착하였고,

사람 좋아보이는 농담과 초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장하였었다.

걱정하는 척 하였지만 진심으로 걱정하진 않았고,

칭찬을 하면서도 샘이 나 속은 타들어갔었고,

웃어도 즐겁고 유쾌한 줄 몰랐었다.

 

알라딘 서재, 이곳에서도 통용되는 법칙이었지만, 이제 제법 수위를 조절하는 법을 알겠다.

인간 관계란 거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관한 문제인가 싶었을 때가 있었는데,

거리나 네트워크가 아닌 마음에 관한 문제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배운 셈이다.

 

이들은 담을 허물기는 커녕, 더 높이 쌓아올리고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감옥에 갇히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유폐시킨채 하루 하루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죽음으로써,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태어난 딸아이가 사고로 장애아가 된다.

처음엔 왜 부모의 죄가 자식에게 되물림되나 싶어서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들의 딸은 어린시절, 그 무렵에 정지되어 스스로 생각과 판단이라는 걸 할 수 없으니,

행복한지 불행한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것도 낙관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딸아이의 부모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 벌 중 최고는 자신의 그런 자식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 남은 날들을 그렇게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살아갈 것이다.

 

어려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때는 가정과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이 중요하고,

크고 나이가 들수록 고착된 생각을 바꾸기 힘들겠지만,

친구나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기는 할 것이다.

책이나 그밖의 것들도 사람의 가치관과 인간성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행크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행크의 잘못되고 외통수인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만한 사람도 책도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이가 들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털어놓을 대상이 없어,

독백하듯 돌이켜보는 행크를 보면서,

마음을 열고 의지할 상대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나마 담을 허물고 대할 수 있는 친구라도 있어서,

책을 향하여선 담을 쌓아 올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굳고 단단해지는 면이 있지만,

그러면서 사고도 고착되어, 유연해지기가 어렵다.

 

내 자신이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할수도 있지만,

나는 사람들과의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삶 속에서의 나의 위치와 위상은 바라보기 힘들다.

그래서 관계가 필요한 것이고, 우물 밖을 내다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우물안에 갇힌 개구리들의 경우, 우물을 만든건 적어도 개구리들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담 안에 갇혔을 경우, 그 담을 만든건 사람이다.

 

갑자기 '살다가'라는 이 노래가 생각났다.

이 노래가 이들에게 위로가 되긴 힘들것 같고, 이들의 주제곡쯤이라고 해야겠다.

기꺼이 이들을 숲 밖으로, 우물 밖으로...인도해 줄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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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2-13 13:57   좋아요 0 | URL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가식적인 웃음과 형식적인 인사말을 스펙으로 장착하였고, ~ 웃어도 즐겁고 유쾌한 줄 몰랐었다." 까지의 문장이 와닿네요.
저도 아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듯해요.
누구나 (늘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런 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sslmo 2014-02-20 10:37   좋아요 0 | URL
사회생활, 직장생활 하는 사람의 애환이 아닐까 싶어요.
거기다가 자기가 가진 실력에 비해 욕심만 무지 크다면...저 같이 악순환의 반복일테고 말예요~--;
욕심을 줄이는게 먼저일지, 실력을 키우는게 먼저일지,
맨날 궁리만 하다가 날이 저문다는~(,.)
 
몽키스 레인코트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ㆍㆍㆍㆍㆍㆍ터진 입술을 꿰매려고 기다리는 한 어린 녀석이 어쩌다 이렇게 두들겨 맞았냐고 내게 묻기에 나는 간호사의 귀에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스파이와 싸우다 그랬다고 대답했다. 이제 내가 런던 포그 코트를 어깨에 자연스럽게 걸치고 담배 한 대만 입에 물면 간호사는 나를 덮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356쪽)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저 담배와 런던포그코트를 보고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거트'를 떠올렸고,
주인공 엘비스 콜이 카사블랑카에 감정이입하여 만들어낸 제목이 아닌가 상상해 보았다.

난 로버트 크레이스를 편애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은 그렇게 회자되는 것만큼 '강력한 중독성을 자랑하는 진짜 스릴러' 는 아니라는게 개인적인 견해다.
사람을 그렇게 여럿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죽이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개연성이라고 하는 것이 부족하다.
다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TV드라마 대본을 썼던 전적에 걸맞게 인물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전에 내가 애정하는 마이클 코넬리와 로버트 크레이스가 친구라는 얘기를 하면서,
로버트 크레이스가 마이클 코넬리보다 좋은 것은, 
둘 다 외롭고 쓸쓸함을 마구 발산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외로움과 쓸쓸함이란 바꾸어말하면,
남을 해칠 수 없어 제 스스로를 해치고 갉아먹어야 하는 상황의 동의어 정도가 될 수 있을거고,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외롭고 쓸쓸함이 자기 자신을 잡아먹고 잠식당하도록 놔두는 사람들이라면,
로버트 크레이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시켜 자체치유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의 우정 조합도 한몫하고 말이다.)

다시말해, 절망의 밑바닥에서 희망과 긍정을 얘기하는데,
그게 다소 대책없고 엉뚱하지만, 퍼뜨리는 해피바이러스는 강력하고 힘이 세다.
그의 대책없고 엉뚱함을 보며 우리는 은근 위로를 받고, 강력한 중독성이 아니라 은근 중독성을 느끼는게 아닐까?

기실 언젠가 이 책을 읽다 집어던졌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습관이군. 누군가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일을 감당해내기에는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 같았다.(70쪽)

등장 인물 중 의뢰인 여자의 캐릭터가 너무 답답해서였다.
여자는 결혼한 이후로 당당한 자아이기를 거부하고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인물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그녀는 남편에게 보살핌을 받아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남편이 행방불명이 되니 찾아줄 것을 의뢰하게 된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건 팟캐스트로 고전 읽기 '오즈의 마법사'를 듣다보니,
회오리바람에 집이 날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쿨쿨 잠을 자던 무한긍정 아가씨인 도로시의 고향이 '캔자스'였었는데,
이 의뢰인의 고향 또한 캔자스였기 때문이다.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어린 시절, 그래요, 인간의 선한 덕목은 모두 어린 시절에만 존재해요. 순수함, 고결함, 진실, 지금 당신이 열여덟 살인데 논바닥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봐요. 대부분은 그걸 포기해버리고 말죠. 나는 열여덟 살이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시절에 머물러 있기로 결심했죠."(108쪽)

어린 시절의 순수함, 고결함, 진실은,
자아라는 것이 형성되기 전이어서 다른 사람이 내 삶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될게 없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시절이다.
그런 의미에서 '쓸쓸한 존재다'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게 정신적인 것이 됐든 실제적인 것이 됐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것에서 비껴갔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바꾸어 말하면 '나는 독립적 존재다'내지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쯤이 될 수 있겠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의 캐릭터에 답답함을 느꼈던건,
서른여덟 살씩이나 먹은 여자가 무엇 하나 자기 주도적이지 못하고,
남편에게, 또 친구에게 의존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비춰졌기 때문이었는데,
요번에 다시 읽다 보니까 그녀는 의존적인 삶을 산게 아니라 사회성이 결여되었던 것이고,
그렇게 된건 주변과의 상호적인 문제이지, 그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여 14년이 된 부부가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부담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긴,
나이랑은 별개로 미성숙한 아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어제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강신주가 나와서 이런 말을 했나보다.
성유리의 고민은 쿨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고 그래서 밤잠을 못잘 정도라고 하자,
'애인이 없냐'고 물음으로 이어졌고 대답으로 이어졌고,
그것에 대한 강신주의 처방은,
"내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써도 괜찮다. 하지만 혼자 있다 보면 가면 썼던 기억이 생각나서 힘든 거다. 그리고 맨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 사랑을 해야 한다. 친구라도 상관없다. 우리가 친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 맨 얼굴을 보여줘도 되기 때문이다. 친구, 우정, 사랑의 소중한 가치는 내가 가면을 벗게 만드는 거다."
였다.

다시말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여자의 잘못은 자기 혼자의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적인 삶을 산 것도,
오랜 세월을 같이 산 사람에 대해서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 것도,
엘비스콜의 말처럼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을 신뢰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녀가 남편에게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 애물단지였기 때문이다.
어른이란 성숙한 사람을 일컫는 것일테고,
그 성숙한 사람이란 자기자신에 대한 애정, 자긍심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일게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새를 새장 속에 가두어 내 곁에 두는게 아니라, 멍석을 넓게펴서 지친 날개를 쉬고 날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일게다.

친구란 모름지기 모든 걸 나누는 법이라지만(108쪽),
"ㆍㆍㆍㆍㆍㆍ너무 가까워서 불필요하게 자주 상처를 줘서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이미 다 예상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엘런이 반드시 당신처럼 반응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당신이 엘런은 아니잖아요."(107쪽)
이건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을 때야 말로,
누군가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더라도 기꺼이 시중드는 삶과 동격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땐 외로움과 쓸씀함과 고독함에 몸부림을 치더라도,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시켜 해피 바이러스를 마구 마구 퍼뜨릴 수 있게 될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중성, 아니 다중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중성이나 다중성을 가지고 살아가는게 나쁜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은 친구라고 하여 그 본모습을 반드시 봐야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제자가 물구나무서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냐고 묻자 성인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물구나무서기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어차피 변하는게 인간이 속성이지만,
불편해서는 오래지속시킬 수 없을뿐더러,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기도 힘들지 않을까?

정정해야겠다.
로버트 크레이스가 마이클 코넬리보다 좋은 것은, 
둘 다 외롭고 쓸쓸함을 마구 발산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지만,
로버트 크레이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시켜 해피 바이러스를 마구 마구 퍼뜨려서가 아니라,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탐정놀음 같이 보이지만,
우리 삶의 자화상 같이 느껴져서 감정이입이 쉽고,
그러다보니 인간적으로 느껴져 한뼘은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실은 명절에 시댁에 갔다가 맘이 제대로 상했었다.
새로 들어오신 아줌이 둘째동서와 딸딸 두 중딩 조카를 붙잡고,
여자팔자는 뒤웅박 팔자이니 공부 열쉬미 해서 좋은 대학 가서 부잣집에 시집가라는 마리 앙토와네트 같은 말을 했다.
난 이말을 이렇게 정정하고 싶다.
여자뿐만 아니고, 사람 팔자는 때때로 가면을 벗고 무장해제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가졌는가 그렇지 못했는가, 에 관한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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