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 삶의 역풍도 나를 돕게 만드는 고전의 지혜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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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옛 선인들이 너나 없이 읽은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았는데, 그동안 그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그 이유를 찾지 못하니까 내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었고,

그러니 아무리 잘 쓰인 주역서를 읽어도 책이 재미있을리 없었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람이 운명이라는 것을 왜 점 따위에 의지해야 하느냐 하는 거였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하고,

차라리 내 자신에게, 내 자신의 가능성에 미래를 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상수 님, 이분께서 이 책에서 천기를 제대로 누설해 주셨다.

이 책은 그러니까 별 다섯개, 열개 따위로는 부족한 책인 것이다.

 

이분이 주역을 공부해온 과정은 주역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를 깨달아 오는 과정이었단다.

주역을 만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덕과 지혜였지만,

그렇다면 왜 덕을 쌓고 지혜를 기르라는 책을 쓰지 않고, 점치는 책 '주역'을 편찬했을까?

그것은 부정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어차피 점을 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란다.

그럴바엔 애먼 거북을 죽이고 정인들을 괴롭히는 대신 '주역'에 담긴 덕과 지헤의 틀을 통해 세계를 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을 했을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점의 형태를 띄었다 뿐이지,

주역 책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사행이나 요행을 조장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다.

 

64가지 경우의 수가 나와 있는데, 이게 항상 좋은 얘기만은 아니다.

그래서 인간적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탁상공론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

 

'이렇게 하면 길할 것이다' 뒤에 숨은 얘기는, 그렇게 못했을때는 흉할 것이라는 경고가 숨어 있는 셈이지만,

그래도 저 짧은 구절을 읽고 안도하게 되는 것은,

길하면 더 없이 좋지만,

흉하더라도 그게 나혼자만 감당하는 흉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도 한번쯤은 흉함을 당했었다는 무언의 동료의식, 동료애,

내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 임을 짐작할 수 있어서,

사람 사는 세상 다 그렇게 그렇게 '지지고 볶고' 임을 알 수 있어서,

안도하고 위안을 얻게 되는 셈이다.

바꾸어 말하면, 흉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심기일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지, 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간단히 얘기했지만,

주역에서 유사한 맥락을 찾자면 '동인괘'라고 하여 네가지나 등장한단다.

* 피붙이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어려워질 것이다.

*문잒에 나서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교외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

*벌판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형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길함에서 흉함까지 낱낱의 상황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것일까?

위에서 주역은 인간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고 했듯이,

어떤 실천이 길하고 흉한지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기 위해서란다.

 

내가 이 책이 좋다고 설레발 치는 것은 이 같은 발상의 전환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발상의 전환만 보인다고 하여,

'내 인생은 나의 것'내지는 '냅둬, 이대로 살다죽게~(,.)' 이랬던 내가 이 책에 혹했을 리는 만무이다.

일단 이 사람이 인용한 '순자'를 나도 인용해 보겠다.

자기가 힘써야 할 일에 힘쓰고 씀씀이를 아끼면 하늘도 그를 가난하게 할 수 없고, 몸을 잘 돌보고 때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은 하늘도 그를 병이 나게 할 수 없으며, 길을 따라 오로지 한 마음으로 걸어가면 하늘도 그에게 재앙을 내릴 수 없다. 장마와 가뭄도 이런 사람은 굶주리게 할 수 없고, 모진 추위와 모진 더위도 이런 사람은 병들게 할 수 없으며, 요괴 잡신도 이런 사람은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순자>의 <천론>

이상수 님은 글을 쓸 줄 아는 분이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다'라고 하지 않고,

'의 운명을 경정하는 것은 의 생각과 행동이다'라고 해서,

독자를 책에 적극적인 사유와 행동, 실천의 주체로 끌어들일 줄 안다.

 

암튼, 이책을 통하여 깨닫게 된 주역이란 이런 것이다. 

점을 부정한다는 것, 미래는 점괘에 달려있는게 아니라는 것과,

점은 비록 한번 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최고통치자가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다시 칠 수도 있었단다...

주역점이라는 것이 만방을 잠 재우고 포용하는 도구일 때는 원칙에서 벗어나 재차 점을 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길한 것과 흉한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주역' 책에는 실제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도 있는데,

땅 속에 산이 파묻혀 있는 <겸괘>라든가,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는 <태괘>같은 것들이다.

자연계라면 이 둘은 아무런 교감도 생기지 않는 불통이겠지만,

'주역'에서는 상징이기 때문에 이런 뒤죽박죽의 상황도 가능하고,

위에 있을것이 위에 있고 아래에 있을 것이 아래에 있다고 하여 길한 것도 아니고,

위와 아래가 뒤바뀌었다고 해서 흉한 것도 아니다.

 

미래가 상반상성과 물극필반의 동그라미 운동을 깨닫게 되면,

공짜로 길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조건 흉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변화의 조짐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복을 짓고, 덕을 쌓는 '행함'으로 까지 이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왕이라면 어떻게 점을 쳐야 하는지 <상서>에 중요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임금님께 큰 의문이 있거든 먼저 임금님의 마음에 물어보고, 귀족과 관리들에게 물어보고, 백성들에게 물어보고, 거북점과 시초첨에 물어보십시오...그렇게 해서

(1)임금님의 마음에 좋고,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며, 귀족과 관리들이 따르고, 백성들까지 따른다면 이를 일러 크게 하나됨(大同)이라고 합니다. 임금님께서는 안락하고 자손들은 창성하게 되니, 길합니다.

                                                                                                                                 - '상서'홍범'

라고 되어 있단다.

 

갑자기 그니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수첩에게 물어보려나나?

그렇다면 수첩을 소셜 네트워크 기능이 빵빵하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쉬운 걸로 하나 선물해야 하려나? 

그럴거 없다.

알라딘 램프의 지니를 선물하면 되겠다, 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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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8 11:16   좋아요 0 | URL
운명앞에서 주역을 읽다 표지가 왜 서양스타일일까용???^^;;;;

sslmo 2015-02-08 11:22   좋아요 0 | URL
저거, 르네 마그리트 그림 이잖아요~^^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고 그런 `관점`을 잘 표현한것 같아요.

라로 2015-02-09 03:13   좋아요 0 | URL
저도 마그리트 팬이라 그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이 고정관념에 쩔어 있는 늙은이 눈에는 안 어울려 보여요~~~^^;;;

sslmo 2015-02-09 09:46   좋아요 1 | URL
저 그림의 제목이 `백지 위임장`인가 그렇죠?
르네 마그리트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는 거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둘다 중요하다.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요.

`삶의 역풍도 나를 돕게 만드는`
그러니깐, 저 그림에서 반대로 음양처리된, 삶의 역풍으로 느껴지는 시련도 꼭 시련만은 아니다... 이런 거겠죠?

마그리트의 그림을 넣은 이윤, 삶이란 곧, `백지 위임장`이다... 이런 의미 아닐까요?
외적인 조건은 그저 삶의 역풍으로나 존재할 뿐이고,
나에게 주어진 `백지 위임장`의 내용을 채울 사람은 결국 나`라는 의미.
아, 땀나라~ㅠ.ㅠ

님처럼 한 센스, 한아트 하시는 분께서 고정관념에 쩔어게시다고 하니,
제가 어찌해야할까 몸둘바를 모르겠다는~ㅠ.ㅠ

만병통치약 2015-02-08 13:27   좋아요 1 | URL
주역책에 마그리트 그림을 표지로 쓴게 핵심같네요. 해석하기 나름이니까요. 주역이란게 우주의 원리를 해석하고 싶은 마음아닐까요? 황제내경은 인간의 육체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같고요.

sslmo 2015-02-09 09:54   좋아요 1 | URL
님 같은 고수 분께는 댓글에 덧글 달기가 겁이 난다는, ㅋ~.

우와, 멋져요.
주역이 우주의 윈리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라~.
황제내경은 그럼 인간을 우주의 윈리에 빗대어 이해하고 싶은 마음쯤으로 할까요?^^

2015-02-08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2-09 10:01   좋아요 1 | URL
전 항상 님이 엄청 부럽고, 항상 속으로 응원하고 했었습니다.

갑자기 생활에 변화가 생기신듯 한데,
작년 울아들이 고3인바람에,
고3엄마놀이를 하느라고 지난해 좀 경황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꾸벅(__)


사람이 종교가 없다는 것 또한 기고만장한 것 같아서 별로이지만,
현대 과학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사주니, 점이니, 미신 따위를 절대 신봉하는 것도,
결코 옳은 일은 아닌것 같아요.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하지요?
그게 젤 그럴듯 한거 같아요, ㅋ~.

단발머리 2015-02-13 10:2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새로운 걸 많이 배우게 되네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 읽어도 사실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요.
길한 것과 흉한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네요.
댓글까지 꼼꼼하게~~ 많이 배우고 읽고 갑니다^^

sslmo 2015-02-13 16:33   좋아요 1 | URL
우리는 보통 자기랑 성향이 닮은 사람에게서만 배우게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시간 안배의 면도 있고,
최선을 택할 것이냐, 차선을 택할 것이냐, 는 개인의 선택에 딸린 문제겠지요.

저도 단발머리님의 글들을 보면서 자극 받던 일들이 떠올라서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네요~^^
 

나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다.

혼자 있는게 심심하고 아쉬워야 어울릴려고 노력을 하는데,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가 않으니,

접근금지 철조망을 높이 쌓아올리고는,

'외로워 외로워~'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취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도 그렇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이해하기도 쉽고,

그리고 또 쉽게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고 '서울대학교 주제탐구 세미나 모음집'인 '사랑'이라는 책에 나와있더라.

책은 좋고 재밌다, ㅋ~.

근데, 내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거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니나라의 '내로라'하는 대학의 주제 탐구 세미나이면,

적어도 결과 내지는 나아갈 방향정도는 제시해주어야 할 거 아닌가?

그냥 '사랑'에 대해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하기 쉽다, 하고 끝내서는,

너무 맹숭맹숭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랑
 주경철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1월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ㅋ~.

내가 또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졌는데,

대책은 없고,

패턴을 분석해보니,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하기 쉽다, 는 전철을 아주 잘 밟아 나가고 계신다.

 

내 첫사랑의 대상은 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언젠가 대학가요제에 나와서 '저 넘어 빈들에...'를 불렀던 '에밀레'의 강승원이다.

그때 수소문한바에 따르면, 강승원은 서강대 물리학과 출신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물리학도가 아닌, KBS 음악 감독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가 만든 좋은 C.M 송들과 곡들이 많은데,

난 그의 곡 만드는 스타일, 노래하는 스타일을 다 좋아해서,

어느게 제일 좋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의 음악적 열정은 어느 청춘 못지않지만, 머리 허연 중년의 아저씨가 겉모습이다.

 

암튼, 그의 음악적 열정과 재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강승원1집만들기 프로젝트' (=>네이버 뮤직 링크)라는 걸 만들었나 보다.)

나보다 나이 한참 많은 아저씨의, 앞날이 설레이고 기대되어 보기는 처음이다, ㅋ~.

 

또 한명 이 분도 서강대 물리학과란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쓰신 '이기진'님이신데,

이분의 딸은 그러니까 2ne1의 씨엘이란다.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이분이 멋진것은,

이 분의 '딴짓'이라는 것이,

소위 내가 그동안 꿈꾸었던 '공방'과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럭셔리하게 포장하여 '공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는데,

이분의 그것은 정원달린 한옥으로, 이름하여 '창성동 실험실'이란다.

 

이분의 딴짓은 남이 보기엔 딴짓일지 모르지만,

본인을 그순간 사로잡는 그것을 불살라내는 열정이고 몰입인 것이다.

 

책의 삽화와 일러스트도 본인이 그린 것이라는데, 수준급이고,

글솜씨도 훌륭하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이분에게 폭 빠져들게 된건,

그러니까 유니크한 콜렉션 때문인데,

누구가에겐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기들을 골동품으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뛰어나다.

그러니까 안목이란 돈이나 시간의 여유가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하트 뿅뿅한 시선'이면 충분하겠다.

 

그걸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거기다가 글맛을 더하여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흔히 SF에서 상상하는 거처럼, 물리학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있을까?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미래로 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어쩜 현실이 아닌 수학적인 공간에서라면 또 모르겠다. 아니면 지극의 작은 원자핵 내부, 그것도 절대로 인간이 확인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는 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한다. 같은 시간 축 속에 모든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축복이다. 만약 사람마다 다른 시간 스케일을 가진다면 세상은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물론 어린 아이의 시간, 젊은 20대의 시간, 나이 든 중년의 시간이 서로 다른 상대적 의미를 가질 수는 있다.느리게 간다거나 빠르게 간다거나 하는 느낌. 하지만 우리가 사는 물리학적 시간의 틀은 모두 같다. 내가 오래된 물건을 단순한 물건 자체로 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안에 서로 다른 시간 여행의 축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야말로 곧 벼룩시장이 아닌가. 어떤 사람에게는 버려진 물건이나 쓰레기 정도로 치부되겠지만 그곳엔 분명 서로 다른 시간의 축이 만드는 타임캡슐 같은 공간이 있다. 물리학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이 눈앞에서 벌어진다.(17~19쪽)

 

같은 물리학자이고, 같은 얘기를 하고 있지만,

어제 페이퍼에 올린 '이명현' 같은 경우엔 '거짓말이냐, 아니냐'조차도 상대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전혀 다른 애기가 될 수 있다고 했었던걸 떠올린다면,

 

과학이란건 어쩜, 냉철하고 이지적이고 답이 똑똑 떨어져야 하고 그런 학문이 아니라,

이렇게 예술적인 학문인지도 모르겠다, ㅋ~.

 

그의 유니크한 안목으로 골라낸 콜렉션들을 볼것 같으면,

 

이게 뭘까? 설탕을 자르는 가위란다.

 

 

이건 병따개, ㅋ~.

 

 

 

포도주를 담는 '암포라'라고 하는데, 액체의 증발을 막고 입구를 쉽게 봉하기 위해 주둥이를 좁게 만든단다.

 

각챕터의 소제목을 뽑아낸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남지도 않고, 남아도 좋은 브라우니, 라든지,

빵은 사연과 함께 먹어야 맛있다, 티를 마시는 것은 마술을 부리는 것,

막대 사탕의 창시자, 피에로 구르망, 등 제목도 한편의 시같은 것이 운율까지 갖추어 격조가 느껴진다.

 

이쯤에서 이 책의 처음에서, 이기진 님이 영화 '러브 어페어'의 대사를 인용한 걸 옮겨 보겠다.

"내 나이에 열네 시간은 그냥 열네 시간이 아닙니다."

 

삶의 질이 현저히 개선되고, 의료수준이 월등히 향상되어, 백세 시대를 내다보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천년, 만년을 살것처럼 굴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물리학적 시간의 틀을,

느리게 간다거나 빠르게 가게 할 수 있는 건, 개인의, 상대적인 느낌 상의 시간일 뿐이고,

오늘 이 시간, 이 순간이 두번 다시 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 이시간, 지금 이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그러니까,  '서울대학교 주제탐구 세미나 모음집'인 '사랑'이라는 책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하기 쉽다, 는 패턴을 분석해 내는데서 그칠게 아니라,

그 사랑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주제탐구 세미나'를 했어야 한다.

 

뭐, 나 같은 혼자 놀기의 달인은 어찌되었건 간에,

낄낄거리면서,

혼자 잘 놀 궁리를 해주시겠지만 말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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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2-06 19:11   좋아요 0 | URL
글 감상, 사진 감상, 노래 감상까지 잘하고 갑니다. ^^

sslmo 2015-02-08 09: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카스피 2015-02-06 23:41   좋아요 0 | URL
와우 좋은 글이네요^^

sslmo 2015-02-08 09:58   좋아요 0 | URL
요즘 님 뜸하시더군요, 잘 지내시나요~?^^

2015-02-27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28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입춘이다.

봄이 기다려지고, 초록이 기다려지는건 아줌 마음일뿐이고,

입춘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고, 코끝이 맵다.

 

겨우내 죽음과 소멸을 맛봤다면, 이제 봄은 새로운 시작인건가?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모든 세상의 이치와 기운이라는 것은 그 패턴을 갖게 마련인데,

그 패턴이 영원한 도돌이처럼 보이지만,

간혹 비끼거나 어긋나 보일 때도 있다는걸,

냉담가계의 퇴계를 엿보면서 깨달았다.

 

그럴때, 한걸음 떨어져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세상은 더 큰 원을 그리면서 도돌이더라.

이치와 기운은 그대로이더라.

그걸 어려운 말로 하게 되면, '프렉탈'이론 쯤 되려나?

 

 

 과학하고 앉아있네 - 전2권
 원종우.이정모.이명현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1월

 

 

 

 

그리고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읽었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이책에선 이 '관점'에 대한 부분을, 점 더 명확하고 쉽게 얘기한다.

 

 

 

 

 

 

 

원종우-x,y,z축으로 해서 3차원으로 말이죠?

이명현-x,y,z축으로 하고, 그 0점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우주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거였는데,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는 어떤 기준점이 중요한 것이지 0점이 중요한 건 아니게 되었어요. 예를 들자면 팽창을 하는데, 이 팽창은 서로가 팽창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앉아 있지만, 우주 공간이 팽창한다는 얘기는 나는 가만히 있는데 이 바닥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만 서로가 멀어지잖아요. 그래서 서로가 멀어진다는 개념이 중요해져요. 그러면 나를 기준으로 보면 내가 정지해 있고, 모든 게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그 사람은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고 나머지가 멀어진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중심이 어디냐, 기준점이 어디냐 하는 문제가 생기지만 그건 관측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죠. 그러니까 절대적인 기준점이 없다는 식의 패러다임으로 팽창 우주, 빅뱅 우주론이 나오면서 바뀌어버렸죠.

원종우-그러니까 좌표라는 것이 절대적인 의미는 없어진 것이죠.(2권, 106~107쪽)

 

 

 

 

 

그러니까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고, 필요도 없고,

기준이라는 것도 '비롯함'이냐, 말미암음'이냐 하는 방향성을 정할 때나 필요한 것이 된다.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깨달음은 '신'의 존재를 곰곰이 생각하게도 하지만,

세상에 인간만이 우월하다는 인간 우월주의를 깨뜨려주었으며,

아울러 자연 앞에, 우주 만물 앞에, 인간이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게도 해주어,

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이걸 깨달아야, 스티븐 호킹 박사의 "세티 프로젝트 하지 말자, 외계인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라는 말이, 맥락이 있는 얘기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젊었을때부터 외계지적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사고하던 사람이란다. 호킹박사의 생각은 우리 이런 생물학적 몸뚱이를 갖고 있는 인간이란 종은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회의를 가졌고, 조만간 우리는 기계, 로봇, 사이보그, 이런 것들한테 우리 종의 아이덴티티를 뺏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렇다면 우리가 선수를 치자.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계인간이 되자는 그런거, ㅋ~.

 

근데, 이런 얘기의 맥락을 알게 되면,

그동안 열광하면서 읽었던 책들,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 라던가,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따위가 심드렁해지니 주의할 필요는 있겠다.

 

다시 얘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입춘대길이라고 해서,

새로운 시작에서 죽음으로의 도돌이인 프랙탈 이론을 떠올린 것은 차치하고 라도,

퇴계를 떠올린 이유가 있었다.

그가 '활인심방'등 양생에 힘쓴 사람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은 매화를 엄청 좋아해서, 매화와 연애를 했다고 표현될 정도였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제 어느 편지글에선가는 '매화'처럼 날도 따뜻해지기전에, 홀로 두드러지면 목숨을 연명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천지분간을 못하는 것으로 얘기하고 있어서였다.

 

어찌보면 비겁해보이기까지한 그 목숨보존의 방법이,그러니까 퇴계의 장수 비결이었던게다.

두드러지지 않는것.

 

또 한가지 43세에 '주자대전'을 손에 넣게 되자, 관직에서 물러나서 낙향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서 이상하 님이 해설을 붙이시길,

43세면 그때 나이로는 중년이 아니라, 노년으로 접어든다고 하는걸 보고, 쫌 충격을 받았었다.

43세를 지난지 두해나 지났으니, 난 할매여도 꼬부랑 할매인 셈이다, ㅋ~.

 

근데 충격은 잠시,

관점, 즉 기준을 바꾸니까 이내 느긋하고 넉넉해진다.

 

이제는 자체발광이나 낭중지추 따위는 꿈꾸지 않는다.

그나마 얼마안되는, 내가 가졌던 색깔의 채도와 명도를 낮추어 주변과의 조화를 꿈꿔 본다.

색깔 자체가 독특해서 채도와 명도만으론 조화가 어림도 없다 싶을땐,

색을 흐릿하고 희미하게 다 빼고 보는 거다.

 

그래도 얼마든지, 좋고 충분하다.

 

입춘이다.

고은 시인은 '머슴 대길이'라는 시를 오늘을 위해서 썼나보다, ㅋ~.

 

 

 

 

 

접힌 부분 펼치기 ▼

 

     머슴 대길이

                 --고은--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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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가계 - 소박하고 서늘한 우리 옛글 다시 읽기
이상하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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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환자분 한분이 소양증 搔癢症 증세를 호소하시길래,

기왕력에 미루어,

머리 염색을 새로 하셨던지,

아님 출처분명의 온갖 약을 장복하셔서 내부장기가 견뎌내지 못하고 겉으로 발현한 것이겠거니 하고

등허리를 들추다가 깜놀하고 말았다.

이유인즉슨, 나의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갔기 때문인데,

일단 피부는 멀쩡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어주시고, 휴우~=3

깔깔이 내복을 뒤집어 입으셨는데,

맨질맨질한 겉이 피부에 닿게 속으로 가고,

속의 보플들이 겉으로 온 아이디어까지는 그럴듯 한데,

내복 전체를 앞뒤로 뒤덮은 머리카락이 어찌보면 고슴도치의 가시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전사들의 갑옷 같기도 해 보였다.

 

"엄마, 옷 속에 머리카락이 한 두개만 붙어도 가려워서 난리인데,

 머리카락이 이렇게 붙어있으니 안 가렵고 배기나?"

넓은 박스테이프를 가져다가 머리카락을 일일이 떼어드리는데, '배시시'웃음이 피어올랐다.

 

언젠가는 그런 일도 있었다.

소화가 안되고 진땀이 나신다는데,

내가 보기엔 푸루둥둥해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숨쉬기가 힘들어보이셨다.

 

복진을 위해 손으로 슬쩍 배를 누르는데 튕겨져 나온다.

들춰보니, 짱짱한 '보정용 속옷' 가장자리로 살들이 비어져 올라온다.

뭐냐고 묻자, 그제서야,

다이어트를 위해 그 전날 새로 장만한 신제품인데,

입긴 입었는데 꼭 껴서 벗질 못하겠더란다.

밤에 잠은 어찌 주무셨냐고 묻자,

입고 잤는데 불편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셨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어째 띄엄띄엄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는것 같기래,

가위로 보정용 속옷을 자르고 벗겨드린 적도 있다.

 

한살 한살 나이 먹는게 좋다.

예전엔 서울 깍쟁이 소리를 듣고 살았다.

손끝으로 떨어내는 것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었다.

 

근데, 요즘은 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할 정도로,

타인에 대해서도, 내 자신에 대해서도 넉넉해졌다.

 

예전엔 가슴 시려 어쩌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그럴라치면, 친구는 브레지어를 두개를 하라고 농을 하곤 하였다.

요즘은 가슴이 넓어졌으니, 친구는 가슴을 모아주는 볼륨업 브레지어를 권하려나 모르겠다, ㅋ~.

 

'소박하고 서늘한 우리 옛글 다시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냉담가계(冷淡家計)', 이 책은 조선시대 우리선인들의 글을 '이상하'라는 분이 읽기 쉽게 재해석해 주셨다.

  사서는 요열(鬧熱)하고 경서는 냉담하네. 역사서는 사람이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와 같아 흥미를 끌기 쉬운데 경서는 그 내용이 냉담하여 맛이 없다는 것이다. 즉 냉담가계는 경서와 같이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을 말한다. (206~207쪽)

위 글은 '장자'나 '근사록'이나 '주자어류'의,

'마음이 바르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텅비고 텅비면 의식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31쪽)'는 구절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이다.

 

예전엔 책을 읽어도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모르는 용어나 추상적인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읽다가 딱 막혀 버려서 애를 먹었었는데,

요즘은 읽다가 막혔던 그 구절에서 갑자기 문리가 트이는 경험을 한다.

그러면 책읽기가 너무 너무 신나고 즐거워진다.

 

이상하, 이분은 우리 옛글 중에서 소박하고 고졸한 멋을 가진 것을 골라낸 것도 그렇지만,

옛글에 대한 해석과 이분의 감상 또한 소박하고 고졸하다.

 

책이란 것도, 가르침이나 깨달음이란 것도 그런 것 같다.

좋은 책이라고 하여 누구에게나 좋은 책일 수 없고,

명강의라고 해도 모두에게 깨우침을 주지는 못한다.

 

책이라면 자기가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고,

강의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야겠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고수란 좋은 책이나 명강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과 강의를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적절하게 운용의 묘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분은,

좋은 글이 가슴에 와 닿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개 일이라는 중압감을 벗어났을 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이거나 아니먄 조금 과장을 보태어 자족하는 경우일 터다. 따라서 나처럼 고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고전은 농부의밭과 같은 것이라 오히려 고전이 나의 감성을 좀처럼 적셔주지 않는다.(6쪽)

겸양을 보이신다.

하지만, 석주 '권필'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를 학자가 아닌 시인으로 본 대목 같은 경우는,

그의 내공의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하나의 기일 뿐인데, 기는 모이고 흩어짐이 있고 오르내림이 있습니다. 대저 바람이란 기의 자취인데 무엇이 이것을 불게 하는가? 理가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손이 손인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는 고요했고 지금은 움직이며 조금 전에는 굽혔고 지금은 폈으니,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기는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늘입니다. 하늘은 무엇인가? 기일 뿐이고 理일 뿐입니다. 하늘에 리와 기가 있어 만물이 생겨나니, 만물의 관점에서 자신을 보면 만물은 제각각 만물일 뿐이지만 하늘의 관점에서 만물을 보면 만물도 하늘입니다. 그러니 바람이 내가 아니며 내가 바람이 아니라고 어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두 사람이 서로 돌아보며 탄식하였다.

"아침에 밖에서 오는데 길에 있는 자들이 모두 남 아님이 없었습니다. 이제 주인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정신이 아득하여 다르게 느껴집니다. 나 자신을 찾아도 스스로 찾을 수 없거늘 누가 남이겠습니까."(49쪽)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편견과 선입견에 젖어,

또는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똑같은 일상 속에서 타성에 젖어,

그렇게 조금씩 본질을 비껴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때, 이 책을 만나게 된게 행운이지 싶다.

 

주자와 소동파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고봉과의 26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포용해주었던 퇴계를 치하한다.

그러면서,

이름난 학자가 되려면 명석한 두뇌,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겠지만,

좋은 학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사랑하는 푸근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분이야말로 푸근한 마음을 가진 분인것 같다.

 

귀하게 아껴 읽겠다고 하고 싶지만,

이 분이 원하는 건 곁에 두고 손때 묻혀가며 읽는 것일게다.

 

( 고칠 곳 )

권질은 퇴계의 고향인 예안으로 귀양간다. 거듭되는 집안의 참화를 겪으면서 허씨부인은 심한 충격을 받아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고 한다. 퇴계가 예안으로 귀양 온 권질을 찾아갔을때,(78쪽)

=>퇴계의 두 번째 부인은 허씨부인이 아니라 권씨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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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03 16:3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도 이미 소박 담담한 글맛을 내고 계시는데요 :)

sslmo 2015-02-04 16:46   좋아요 0 | URL
소박마담으로 읽었다나, 어쨌다나~(,.)

고맙지만, 과찬이시라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이 안 느껴지는걸요~ㅠ.ㅠ

AgalmA 2015-02-04 16:51   좋아요 0 | URL
소박마담, 냉면가게...여기 왜 이럽니까-ㅋ-;)...제가 틀렸을 수는 있지만, 맘에 없는 소리나 겉치레는 안합니다. 다음부터 너무한 과찬은 자진 반타작 할께요ㅎ

cyrus 2015-02-03 17:32   좋아요 0 | URL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제목이 ‘냉면가게’인 줄 알았어요... 제 개인적 생각이지만 고전은 마음 비우고 읽는 게 낫더라고요. 널리 알려지고 줄거리가 익숙한 고전을 읽게 되면 예전 해석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려요. 이러면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아요. 줄거리 일부를 조금 알고 있다고 제대로 읽지 않고, 읽은 척하는 경우도 있죠. 남의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고전을 읽고 해석하는 올바른 독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sslmo 2015-02-04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고전은 저만의 페이스를 잃지않고,
제 깜냥에 맞게 읽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근데, 이 냉담가계는 워낙 번역과 해석, 거기다가 이상하 님의 성찰도 좋아서 말이죠, ㅋ~.
저 완전 반해버렸다니까요~^^

yamoo 2015-02-03 18:39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 당시 분위기로 기고봉이 대학자 퇴계의 해석을 문제삼는 것도 대단히 이례적이었지만 그걸 받아준 퇴계의 도량이 참으로 컸다고 생각합니다. 퇴계가 아니었다면 조선의 사단칠정 논쟁은 없었을 테니까요~ 확실히 퇴계는 치하받아 마땅하다 생각합니다..ㅎㅎ 기고봉의 문제의식은 그대로 율곡으로 이어지니...그러고보니 퇴계는 살아 생전 자기 이론의 반대자인 이 두 사람을 모두 만났군요~^^

sslmo 2015-02-04 16:54   좋아요 0 | URL
퇴계의 도량을 엿볼 수 있는건 그 누구더라, 남명학파의 계승자라고 알려진 조식의 외손주던가요?
그 사람마저도 퇴계를 흠모했다죠?
암튼 멋진거 같아요, ㅋ~.

마녀고양이 2015-02-03 23:19   좋아요 0 | URL
이제 볼륨 업을 해서 모아주겠다니
자기의~ 아직 미모를 가꾸는 넓고 여유있는 가슴이 부러우이...
난 이제 중년 아저씨 비슷해지고 이뜸~♥

sslmo 2015-02-04 16:56   좋아요 0 | URL
난, 냉담가계 읽다가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음.
퇴계 나이 43세를 두고 노년이라 칭하더라.
우리는 그럼 할머니들인겨, ㅋ~.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 배우긴 배운것 같은데 잊고 지내다가, 지난해 변호인 때문에 떠올렸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더불어,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따위.

 

나름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은데,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의 연속이지 싶은게, 삶이 폭폭하다 싶을 때가 한 번씩 있다.

그럴땐 지난 해 저 영화를 본걸 돌이켜 후회해야 할지,

아님, 아직도 저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을 안까먹고 있는 머리를 한대 쥐어박아야 할지,

아님, 신성한 대한민국의 헌법이라는 것이,

그것도 1조 1항과 2항부터 어긋나냐고 어디 헌법소원 같은거라도 내봐야 되는건지,

한참 헷갈린다.

 

근데, 나의 이런 헷갈림을 일축시키는 건지 부추기는 건지 모르겠는 이가 한명 더 있는데,

이 책'나의 한국현대사'를 쓴 '유시민이 되시겠다.

아마, 난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라는 팟케스트 프로그램을 통하여 조봉암 선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공산당이나 간첩쯤으로 알았을 정도로 반공교육을 제대로(?) 받은 세대이다.

 

암튼, 그가 태어난 1959년, 당시는 무늬만 민주공화국이었지,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최소한의 능력도 없었단다.(43쪽)

그러던 것이, 이책을 쓰던 2014년, 풍요롭고 화려하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로 바뀌었다고 했다가,(45쪽)

188쪽에 가서는, 그런데 최근 우리의 민주주의가 과연 성숙해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도 하니까 말이다.

 

자유와 평등은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두 개의 큰 기둥으로,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동시에 상반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동전의 양면이랄 수도 있고, 해와 달이랄 수도 있겠다.

 

이말은,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기 마련이고,

자유와 평등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종의 제한이 따른다는 아이러니컬한 얘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획일화 되고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다르게 태어나서,

다르게 성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각자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골고루 보장하는,

일종의 차별-차이가 만들어내는 자유와 평등인 셈이다.

 

난 역사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이유가 일부 특권층 내지는 소수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강해서였고,

그렇게 역사를 기록하는 소수의 시선을 인정하지 않으면,

소신있는 기록의 산물이 등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때문에 역사는 얼마든지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인데,

그동안의 난, 제도권 교육에 익숙해져 놔서,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고,

다르면 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라는 띠지의 문구가 조마조마했다.

흔히 '숲 한가운데 있을 때는 숲 전체를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살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살아가고 있는- 나름 역사의 한획을 긋고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아무리 '글쓰는 일로 밥을 벌어 먹고'내지는 '문장가'여도,

그가 통과했고 통과하는 순간들의 팩트만을 전달해야지,

판단을 해서도, 그렇다고 칼자루를 우리에게 넘겨주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팩트를 전달하는 것까지'만' 그의 몫이고,

판단을 하는 건 나중에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하는 것은 권리라기 보다는 오지랖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가  '글쓰는 일로 밥을 벌어 먹고'내지는 '문장가'여도 당시 '정치 권력'에 몸담고 있었던 이력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삶에서 안전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인생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내가 보고 겪고 참여했던 대한민국현대사를 썼다. 1959년부터 2014년까지 55년을 다루었으니, '현대사'보다는 '현재사' 또는 '댕대사'가 더 적합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ㆍ과거를 회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11쪽)

그리고,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역사는 과거를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방송뉴스와 신문보도가 현재를 '실제 그러한 그대로' 전해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8쪽, 서문)'

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역사는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지,

현재 살아있는 사람의 번민하는 삶을 기록하는 예는 잘보지 못했다.

 

이 얘긴 그간의 역사 책의 관례로 미루어 보면,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으리라는 건데,

요즘 세상의 살아있는 역사를 실제 그러한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현대사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얘기로 '전환'되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역사가들이 일하는 방식도 언론인과 다르지 않다. 역사가도 각자 나름의 개성과 취향이 있고 서로 다른 욕망과 감정에 끌리며 저마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사실 가운데 자신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선택해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 역사 서술의 핵심인 두 가지가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9쪽)

ㆍ국군이 베트남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일본에 대해서는 잘못된 과거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라고 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잘못된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은 완강히 거부한다.(10쪽)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며 주관적이다.

개개인들의 삶의 기록이 모이면 그걸 우린 역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혹자들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들 한다.

유시민이 이 책 '나의 한국 현대사'를 쓴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라고 한다.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과정을 통하여,

'그릇된 역사의 방향은 바꿀려고 노력하는 것까지'로 봐야하지 그의 돌아봄이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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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01 13:49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혹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아직 안 읽어보셨으면 꼭 읽어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이 글에서 유시민과 양철나무꾼님이 방점을 찍는 부분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폴리스에선 [가치있는 삶]과 [단순한 삶,생명 자체]가 이분법적으로 공존됐는데 왜 근대 국가 결성이후 후자가 전자에 포섭되었는지. 왜 배제가 동시에 포함인지(주권자의 딜레마). 푸코가 천착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권력적 법과 제도가 인간을 억압하는 구조에 대한 탐구를 이어받아 아감벤이 말하고 있거든요. 저도 읽고 있는 중이라 자세한 얘긴 드릴 수 없지만 투박한 번역너머 양철나무꾼님과 저의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주지하다시피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내적으로 결탁되어 있다는 것.

만병통치약 2015-02-01 13:47   좋아요 1 | URL
역사논쟁이나 이슈에 대한 양 진영의 해석과 대응을 보면 진보와 보수 모두 피로해진 것같아요. 활력넘치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 지쳐가고 정해진 룰대로 대응하고 반응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역사에서 20세기말과 21세기 초를 어떻게 봐줄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에 뭔가 달라진 것 같아요. 국가 발전과 개인발전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서 개혁이라는 단어는 의미없어지고 실종된듯 합니다. 유시민은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겠지만 뭔가 안타까와요

AgalmA 2015-02-02 10:08   좋아요 1 | URL
예. 만병통치약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역사를 많이 봐오셔서 더 잘 보이실거라 생각되는데요. 민주주의 또한 주권자의 권력모임이죠. 국민이라는 대단찮은 직위. 다수결의 맹점에서 이미 여실히 보여지듯이(선거 실패하면 끝 아닙니까). 그런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까지 기생하는 상황이니 초극의 길은 더 묘연해진거죠. 민주주의로 자본주의를 수정하긴 매우 어려워진 거 같고요 긍정적 전체주의 메스를 들고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방법이 지금으로선 대안이겠죠. 사회민주주의라 말하는 그것이요. 헌데 이 낱낱의 개인들이 반발하면 답이 없죠. 당장 복지세금 올리겠다고 하면 자기 이익챙겨주겠다는 정당에 표를 주니까요. 아, 지구 떠나고 싶은 상황들;;

sslmo 2015-02-01 21:59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만병통치약님 좋은 댓글 감사드려요.
새겨 듣겠습니다.
아감벤은 언젠가 박가분님이 번역을 하셨을때 읽어볼 기회가 있렀는데 좀 벅찼습니다, 헤헷~^^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유시민이 리영희님의 책제목을 인용하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글을 어딘가에 기고한걸 본적이 있는데, 그걸보고 참 명징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요번 책은 뭐랄까, 충분히 잘 쓰긴 잘 쓴 책이고, 그의 스타일도 맞고, 필력도 여전한데 말이죠~, 뭔가가 빠진 느낌이예요.
가만보니까, 글쓰는 그, 문장가로서의 그는 건재한데 말이죠, 그 자신이 빠진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책을 굳이 분류하자면 역사서라기보다는, 글빨 좋은 한권의 책을 봤다고 해야할까여~? 헤에~, 땀나라~``

AgalmA 2015-02-02 04:14   좋아요 0 | URL
다시 한번 도전해보세요. 혹시 모르니까 도서관 대여로... 저도 오래전이면 호모 사케르 글만 읽었을 거예요. 지금도 좀 벅차긴 해요ㅎ 법학자라 언어 쓰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렵더군요. 하지만 한 자 한 자 읽어내려가며 갯벌의 낙지잡듯이 합니다. 초보자가 갯벌에서 낙지 잡는 거 아렵다는 거 아시죠ㅎ?
유시민씨 이 책을 못 봐서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유시민씨 그간 뚫고온 화마가 얼마나 강했나요. 팟캐스트 나와서 이젠 가족 챙기고 낚시하며 맛난 거 먹으며 살거라 하는 거 들으니, 양철나무꾼님이 아쉬워하는 부분이 뭔지 짐작이 됩니다. 그가 정치하면서 잃고 나온 칼날이거나 감춘 칼날이거나 그렇겠죠^^;

마녀고양이 2015-02-02 17:06   좋아요 0 | URL
난, 이 책 참 좋아~
주관적인 고민들, 너무 맘에 들었고
그 주관적인 고민과 해석에 공감이 되어서 참 좋았징.

실은 아직도 읽는 중이야... ㅋㅋ (벌써 서너달째 읽는 중. 에공)

sslmo 2015-02-03 16:21   좋아요 0 | URL
나도 시민으로서의 유시민이 싫은게 아니고,
공인으로서의 유시민이 쫌 비겁해보인다는 얘기지.
근데, 오늘 보니까 문재인과 박지원도 그리 모양새가 좋아보이진 않더라.

정치에는 신경 끄고 살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역사를 외면하게 되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