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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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으로 흔히들 부자라고 하루 다섯 끼 먹을 수는 없다는 말을 하지만,

이 말은 비교하는 기준이나 단서가 명확하지 않으니 잘못된 말이 되시겠다.

부의 척도로야 하루 다섯끼 아니라 열끼도 먹을 수 있었을,

조선시대 왕들이 하루에 다섯끼를 먹었던 것은 수라상의 식재료를 살피는 과정을 통하여 나라살림과 백성들의 고뇌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요즘도 농촌이나 공사장 등의 일터에서는 새참을 사이에 두번 더하여 다섯끼를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걸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봐야지 부자여서 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부자라고 하루 다섯 끼 먹을 수는 없다'는 이 말 앞에, 특정 연령대를 기준이나 단서로 달아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와 남이 다를게 없다는 그럴듯한 얘기가 된다, 앗싸~!

'부자라고 하루 다섯 끼 먹을 수는 없다'는 연령대는 70대로 굳이 이름 붙이자면 부의 평준화쯤 될텐데,

이 연령대가 되면 일반적으로 하루 다섯 끼를 소화시킬 여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연령대별 평준화를 나열해보면 이렇다.

40대는 미의 평준화.

소싯적 황금비율의 조각같은 몸매를 자랑했었더라도 지금은 나너 없는 이웃집 아줌 되시겠다.

50대에는 학력의 평준화.

두뇌가 비상하고 SKY대 출신이고 빽이 악어가죽이고 다 소용없다.

스마트 세대앞에선 컴맹, 넷맹에다가 인터넷 용어 미숙으로 소통불가이다.

60대는 정력의 평준화.

카사노바도 굴 대신 비아그라가 필요한 시기이다.

80대에는 병약하든 건강하든 다 그만그만하고,

90대에는 집에 있으나 무덤에 있으나 누워있기는 매한가지란다.

100세시대라지만 반짝반짝 빛나게 사는건 순간이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다.

이 책은 '왕의 밥상'-밥상으로 보는 조선왕조사-여서 표면적으로 '밥상'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저자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고, 피터싱어의 '죽음의 밥상'을 번역한 이력의 소유자라는 걸 감안할때,

'왕의 밥상'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윤리적 의미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쪽으로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읽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한권의 책 속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다루려 하다보니까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책의 맨뒤 참고문헌의 방대한 양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게 이 책의 장점이자 맹점이 될 수도 있을텐데,

이 책처럼 동서를 종횡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책을 또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고 하더라도,

밥상머리에서 의학까지 언급하니까 자료가 방대해지게 마련이고, 아무래도 자료가 방대하면 표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책의 서술에 어떤 규칙도 없는것도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시대순으로 정렬해 나간게 아니고, 5장으로 나누어,

1장에서 왕의 식사장면을 재연했으며,

2장에서는 역대 왕별로 치세와 음식을 연계해 풀이한다.

3장에서는 밥상을 차리기 위해 있었던 제도와 관청, 요리사들과 음식들을 소개하고,

4ㆍ5장에선 이를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데,

왕위 계승 과정을 시대순으로 나열한 것도 아니고,

계속 반복하며 덧입히는, 동어반복일 뿐이다.

 

본인이 쉬웠고, 쉽게 접근했다고 하여,

그것을 읽는 사람도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쉬운 글은 근거가 명확하여야 한다.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타당하여야 하는데,

한문단에서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에 논리적으로 모순이 생기면 글을 해석하기 힘들어 지고, 그러다보면 어렵지 않은 단어로 쓰여진 문장이라도 어려운 글이 되어버린다.

 

이런 사진(92쪽)의 경우 어찌보면 상당히 친절한듯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진만으로는 보시기와 쟁첩, 접시, 종지, 푼주, 합 크기의 차이를 짐작할 수조차 없다.

차라리 한데 어울려 찍는게 나았을 것 같다.

 

인간 세종이 개인적으로 좋아한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고기인데, 주로 소고기였을 것이다. 돼지고기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으며, 세종 때에는 제사 음식의 형식을 맞추기 위한 돼지를 특별히 중국에서 수입해 쓸 정도였다. 또 세종 12년(1430년)에는 세종의 소갈증을 달래는 藥食으로 흰색 장닭, 노란색 암꿩, 양고기를 올리겠다는 말에 "임금이 되어서 스스로를 그렇게 후하게 봉양할 수는 없다. 특히 양고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으니 공연한 일을 벌이지 마라"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51쪽)

위 문단에서 세종이 고기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전후 사정을 살피면 설득력이 약하다.

태종이 "주상(세종)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몸이 비중하시니 마땅히 때때로 나와 노니셔서 몸을 존절히 하셔야 하겠으며,ㆍㆍㆍㆍㆍㆍ"와 "고기가 아니면 식사를 들지 못하시니"라고 한 것은,

태종이 사냥을 나가고 싶었는데 신하들이 못하게 하니 한소리였지 고기를 좋아한다는 소리는 없었으며,

'고기가 아니면 식사를 들지 못하시니'따위의 말은 아무리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다고 해도 쉽게 할 수 있었던 말은 아닐터, 정권이 안정되지 않았던 시절, '죽은 이를 위하여 생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교훈을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백번 양보하여, 세종이 고기를 좋아하였다고 한다면,

재위 초기에 관을 짤 정도로 그렇게 병이 위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고기의 경우, 소갈증이었기 때문에 소고기를 좋아했을것 같지만,

저 위의 문장에선 타당한 근거가 없다. 

게다가 돼지고기는 당시 조선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다고 했는데,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은게 아니라,

소는 밭을 갈고 개는 집을 지키지만,

돼지는 아무 하는 일 없이 먹기만 한다는 인식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아무래도 식량난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기에,

돼지를 키울 여력이 없었고,

때문에 돼지고기를 잘 안 먹게 되었다고 해야 이해될 수 있겠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사적인 밥상이 되었지만, 적어도 전기에는 굳이 그런 불편한 방식으로 진어했던 까닭은 왕의 식사가 한 개인의 사적인 활동이라기 보다는 공적이고 엄숙한 행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ㆍ왕의 식사는 한 개인에게는 단순한 끼니 때움이지만, 온 백성들에게는 나라와 조정이 계속해서 운영되어감을 의미했다. 온 백성의 정성으로 마련한 먹을거리를 왕이 듬뿍 섭취하고 한껏 힘을 내서 영명한 정사를 베푸는 것, 그것은 해와 달의 운행과 같은 중대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30쪽)

그 사람이 먹는 걸로 미루어 그 사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왕에게 적용될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먹는 것조차 맘대로 못하는 왕이라 비춰질수도 있지만,

밥상을 통하여 나라 살림과 백성들의 고뇌를 파악하는 어진 왕이었을 수도 있고,

편식에 탐식을 밥 먹듯 한 왕은 아니나 다를까 폭군이었다.

신하들의 분쟁을 잠재우고 자신앞에 무릎을 꿇리기 위해,

감선과 철선, 감선을 왕권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영조 같은 왕도 있었다.

다시말해, 영조는 밥상을 통하여 나라 살림과 백성의 고뇌를 읽으려한 왕이라기보다는,

자기마음대로 신하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자기관리를 했던 왕이었다.

 

하지만, 이걸 부정적으로만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사관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예를 들어,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은 자식도 너무 똑똑한 행동을 보이면 표적이 될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ㆍ하지만 그처럼 어릴 때부터 유교적 소양을 주입받지 않은 결과, 새로운 문물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되기도 했다.(162쪽)

하는걸 보면 말이다.

 

어찌되었건 우리나라 왕의 '밥상'은 음식이 되었건 약이 되었건 간에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얘기되어진다.

음양은 바꾸어 말하면 자연이다.

세상 모든 것은 둘로 나누어 구분할 수가 있는데, 여기서 음과 양이 비롯된다는 견해다.

음도 더 잘게 둘로 나누어, 더한 음과 덜한 음으로 얘기하고,

양도 더한 양과 덜한 양으로 얘기하며,

어느 쪽으로도 치우쳤다고 하기 어려운 중간도 얘기한다.

상생, 상극, 상충을 얘기하기도 하며,

그러다가 '결국 어느정도 '적당하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260쪽)''중간'처럼 얘기하는데,

음양오행과 음양화합을 확실하게 이룬다는 뜻을 설명하는데 섣부른 감이 있다.

 

이 책에서는 영조, 고종, 숙종 등을 예로 들며 '적당한 스트레스'를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장수의 비결로 꼽고 있다.

책의 맺음말 '밥상의 도'에선 '밥상의 윤리'에 대해서 얘기하며,

로컬 푸드, 신토불이,공정무역 등으로 개념을 확산시킨다.

그러면서 음식 윤리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식사 방침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개인적으로 MSG가 왕창 들어간 인스턴트 식품이더라도 명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좋다.

참고 절제하고 아무거나 되는대로 먹겠다는 식의,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니맛도 내맛도 아닌 사람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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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3-04 16:35   좋아요 0 | URL
저는 좋은 글을 ˝~때문에˝와 ˝그러나˝를 잘썼을 때 빛을 발한다고 봅니다. 때문에와 그러나는 논증적 진술이라 자칫 모순과 반격을 부르기 십상이라서 말이죠. 이런 문장을 적재적소에 쓸 정도가 되면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문이 되더군요!
장문이라도 계속 정리식의 문장 또한 좋지 않다고 봅니다.
시적 문장을 좋아하는 제 취향도 문제가 많지만 말이죠^^;;

sslmo 2015-03-04 20:37   좋아요 1 | URL
저는 좋은 글은 잘 모르겠고 읽기 쉬운 글이 좋아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저도 그렇게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하고 문법이나 맞춤법따위와 상관없이 호흡을 고려하여 문장을 끊어쓰게 되더라구요.
암튼 그럴더라구요~^^

역쉬~, 시적 문장을 좋아하셔서 운율과 대구가 예술이었군요~^^

cyrus 2015-03-04 17:47   좋아요 1 | URL
볼 만한 자료가 가득한 역사책이라도 내용 정리가 산만하거나 독자가 저자의 글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역사를 더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sslmo 2015-03-04 20:43   좋아요 1 | URL
그런 방대한 자료를 한데 모아놓은 것만으로도 특기할 일이지만,
기준이 모호한 채로 마구 쓸어담다 보니까 만성체증으로 소화불량에 걸릴것 같았어요, 헤에~^______^

쉽싸리 2015-03-05 09:27   좋아요 0 | URL
아, 찌게!
대관절 왕의 밥상을 알아서 뭐하겠다고. 조선시대 왕들이 반찬 종류와 가짓수에서 백성들을 긍휼히 여겼다는 식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고 봅니다.
괜히 딴지..

sslmo 2015-03-09 09:41   좋아요 1 | URL
전 얼큰한 찌개도 좋고, 맑은 지리도 좋다는~^^
저도 조선시대 왕들의 반찬종류와 가짓수가 백성들을 궁휼히 여긴거란 생각은 안해요.
다만, 왕만의 파업방식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왜 저희들도 맘에 안 들면 단식투쟁으로 동참 하는 것처럼이요.
그러나 저는 먹는걸 좋아해서, 절대 단식 같은건 엄감생심이라는~--;

만병통치약 2015-03-07 20:38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읽고 나서 ˝사슴꼬리 요리˝먹으러 갈 회원을 모집중입니다. ㅋㅋ 생각있으세요?

sslmo 2015-03-09 09:43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님이 사슴꼬리요리 먹으러 가기 협회 회장하시는 건가요?
생각뿐이겠습니까? 황공무지로소이다죠~^^
 
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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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 길에 은행 자동화기기에 돈을 입금시키면서 이 책을 잠시 손에서 놓았다가,

영영 놓아 버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책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은 자기와 아들이 아닌 책을 잃어버린걸 다행으로 알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한다.

어제 잃어버린 책이 바로, '서재에 살다' 되시겠다.

어차피 읽은 책을 향하여 미련이 없는데, 왜 이리 연연하게 되는건지~--;

잊혀지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그렇게 다른가 보다.

 

그러고보면, 난 책들을 의인화하다 못해, 추앙하고 있었나 보다.

이 책의 제목 '서재에 살다'를 보면서,

'사람' 이 서재에 사는 것이 아니라, '책'이 서재에 사는 것인데,

뭐 이리 당연한 것을 제목으로 뽑았나 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동안의 나의 사고 방식이나 행태는,

'사람은 집에 살고, 책은 서재에 산다'가 말이 될 정도로 책탐을 부렸었다.

그러던 차에, 언젠가 소유한 책의 1/10정도만을 읽게 된다는 이권우의 말에 위로가 됐었는데,

이 책의 저자 박철상 같은 경우도 서재의 이름을 '수경실;긴 두레박줄'이라고 한걸 보면,

책탐이 만만치 않음이 분명하다, ㅋ~.

 

그런데, 그동안 난, 책을 읽었어도 헛 읽었었던 게다.

책을 탐한다는건 어찌보면 지식을 탐한다는 건데,

책을 탐하고 쌓아두기만 한다고 하여,

책 속의 내용들이 내 머릿속으로 순간이동 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엔 요즘의 서재 관련 책들처럼 조선 지식인들 24인의 서재가 그림이나 책의 목록 만으로라도 쭈욱 나열되어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었다.

이들이 어떤 종류의 서재에 기거했는지에 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떤 책을 읽고 소장했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들과 교류했었는지를,

그들이나 후손이 남긴 글이나 그림 따위를 통해서 엿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재의 이름을, 그 시대엔 호를 서재의 이름으로 사용했으니,

호를 쭈욱 나열하고 호의 의미를 새겨보는 수준이어서 아쉬웠다.

서재의 이름은 조선 문화를 탐색하는 하나의 실마리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8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2년 반 동안 『국회도서관보』'서재이야기'코너에 매월 연재했던 것이다. '서재이야기'는 본래 조선시대 지식인의 서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실으려고 기획되었지만, 서재 자체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은 탓에 서재의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형식으로 바꿨다.(10쪽)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서재를 통해서 내가 엿보고 싶었던 것은,

단지 그가 읽은 책 제목, 책 속에 담겨있는 죽은 지식은 아니라,

그가 읽은 책들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리하여 그와 교류했던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였고,

나아가서 내 삶에 어떻게 받아들여, 적용해야 할지였다.

 

이 정도를 끄집어내어 삶에 적용하겠다는 것도,

어찌보면 정조와 북학파라고 불리우던 19세기 조선시대 지식인들, 좀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실학자들 덕분이지 싶다.

난 한때, 김탁환에 열광하였었기에,

다른 이들의 얘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접했던 내용이었는데,

이분이 '금석학 전문가'여서 그런지, '유금의 기하실'같은 경우 재미있었다.

 

'정조'의 '홍재' 얘기를 하면서,

이산이 아니라 이성으로 읽어야 한다는 얘기도 흥미로웠다.

 

유득공의 서재 '사서루'라고 했나보다.

유득공의 아들이 지은 '사서루기'에는 이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전한다고 한다.

사서는 임금이 신하에게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임금으로부터 받은 글씨나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따로 누각을 짓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서루' 역시 그런 의미로 지은 건물이었다.

  이 사서루 횡액에는 누구에게 써준 것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추사가 유득공의 사서루 편액으로 써준 글씨가 분명하다. 당시 유득공처럼 사서루라는 명칭에 걸맞는 장서를 갖춘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95쪽)

라고 되어 있으나, 성해응 부자라는 다른 의견도 있어서 여기 링크를 걸어둔다.

 

저자의 약력에 논문으로 '『완당평전』, 무엇이 문제인가'가 있는 것을 보니,

이쯤되면 허투루 유득공을 끌어들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사서루에 걸맞는 장서를 갖춘 다른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사실 이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언젠가 읽었던 '쓰레기고서들의 반란'과 비교하여, 글이 투박하고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는데,

읽다보니,

참고가 되는 문헌의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않고,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그걸 다시한번 해설하면서 살을 입혀 설명을 하니,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원문을 번역하여 옮기는 부분의 글씨가 좀 작고 빽빽했다.

'사서루' 같은 경우는 여러명이 사용했을 수도 있는 서재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득공'만을 내세워 일관성을 유지한 반면,

다른 사람들의 경우엔,

한사람이 호를 여러개 사용한 경우,

그 뜻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관련된 사람과 에피소드를 등장시키다보니 그리 된 것인지,

내가 설렁설렁 읽어 내용을 제대로 파악을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가난한 시인의 서재 조수삼 이이엄'으로 시작해서 장혼의 이이엄이 어쩌구 하면서 마무리가 되는 종류의,

구렁이가 담을 넘은건지, 용두사미인건지 모르겠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역사적 관점과 문제의식, 행동력, 실천력 따위는 치열하다.

배울 점이다.

나도 서재를 '책이 사는 집'으로만 여기지 말고,

책에서 보고 배운 것을 실생활에 접목시키고 실천하는 것으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역사가 과거에 책 속에 묻혀 있는 그것이 아니고,

현재의 삶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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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5-02-25 10:51   좋아요 1 | URL
`서재`라는 공간이 가지는 함축된 의미가 오늘날에도 유용했으면 합니다. 서재가 사라지면서 우리가 누려야 할 많은 것들도 함께 사라졌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넘어선 마음입니다.

sslmo 2015-02-25 13: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서재나 공부라는 것이 학이시습지 뿐만 아니라, 유붕이 자원방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텐데 말이에요~^^

해피북 2015-02-25 11:14   좋아요 1 | URL
예전에 제 여동생도 은행에 볼일보러가며 <오만과 편견>들고 갔다가 잃어버려서 마음 고생하더라구요 실은 제 책이였는데도 말이죠 동생이 그 책을 너무 좋아했던 탓에 결국 다시 구입하더라구요ㅋㅡㅋ

저두`서재에 살다`읽으며 좀 아쉬운 느낌을 받았어요 한 인물이라도 깊이있게 다뤄주셨거나 책과 관련해서 사람사이의 이야기를 다루주셨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으로 말이죠 ^~^

sslmo 2015-02-25 13:33   좋아요 0 | URL
제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말이죠~,
책에 들이는 돈이 아까운 줄 모르는 저도,
이 책이 다시 사서 읽을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랍니다~^^


만병통치약 2015-02-25 11:17   좋아요 1 | URL
지하철에 두고 내린 책만 모아도 한질되죠 ㅋㅋ

sslmo 2015-02-25 13:35   좋아요 0 | URL
전 지하철에 책을 두고 내리진 않고,
책을 보는 대신 손에 들었던 다른 소지품들을 두고 내리죠, ㅋ~.

붉은돼지 2015-02-25 12:39   좋아요 1 | URL
주인 잃은 그 책이 험한 꼴 당하지 않고 부디 또다른 애서가의 손에 들어가기를 기원합니다 ^^

sslmo 2015-02-25 13:36   좋아요 0 | URL
호, 불호를 타게 생긴 책이라서 과연 그럴 수 있을지...원~(,.)

쉽싸리 2015-02-26 09:05   좋아요 1 | URL
잘 잃어버리셨군요! 라는 얘기는 너무 과격하겠죠? 예날 양반들 서재라는게 도통 현재 우리네와 다른 점이 많은거 같아요.

sslmo 2015-02-26 09:13   좋아요 0 | URL
과격하기는요, 일상인걸요~^^
박지원이랑 이덕무는 책을 팔아 밥을 빌어먹었다는데,
전 책을 잃어버리고도 밥만 잘 먹더라는~--;
(모라는거래니~?@@)

서니데이 2015-02-26 15:47   좋아요 0 | URL
다른 것도 그렇긴 하지만 책도 잃어버리면 마음이 좀 그래요, 특히 다 읽지 않은 책이면 아쉬운 것도 있구요,
그 책은 다시 돌아올 수는 없을까요,

sslmo 2015-02-28 10:07   좋아요 1 | URL
제 책이 아니다 생각하고 잊는 수밖에요~--;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은 돌아오고, 가래떡을 만들고 떡국 떡을 써느라고 다들 분주하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더 이상 나이 먹는게 싫다며 난 떡국을 안 먹는다고 했었고, ㅋ~.

귀요미 조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며 떡국을 두그릇, 세그릇 욕심내곤 했었다.

 

우리 조상들은 추석엔 송편을, 동지엔 새알이 들어간 팥죽을, 설날엔 떡국과 두텁떡을 해먹었단다.

모두 추운 계절이다.

긴긴 겨울밤에 입이 심심해서 떡을 해먹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여기엔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단다.

 

떡이란 쌀을 가장 차지게 만든 음식이다.

차진 것은 주리와 피부를 단단하게 틀어막아주고 피부를 단단하게 해주므로 겨울 추위를 이기게 해준단다.

한마디로 쌀에 뭉치게 하는 힘(vector)이 추가된 것이 떡(236쪽)이란다.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최철한 지음 / 라의눈 / 2015년 2월

 

 

의식동원(醫食同源), 약식동원(藥食同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생명체의 이런 노력과 운동성을 관찰해 치료에 이용해 왔고,

이러한 원리를 음식 문화로 발전시켜왔다.

 

이 책이 좋은 것은 '무엇이 어디에 좋다'가 아니라 '왜 그런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쌀을 밥으로 먹을 때와 떡으로 먹을때, 누룽지를 눌려 숭늉을 마셨을때의 효능이 달라진다.

식당 음식과 엄마가 만든 음식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원리를 설명하고 있으니,

실생활에 적용,

생명력 넘치는 삶을 누리기만 하면 되겠다.

 

오랜만에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여,

실생활에 적용하기 쉽겠다 싶어서 이쪽에 관심을 갖는 친구에게 일부를 캡쳐하여 보내주었었다.

 

 

그랬더니, 잠시 후,

 

이런 내용을 캡쳐하여 보내왔다.

 

 

 

 

그리하여,

내가 '친히' 저 차이를 분석해주시는 수고를 해주셨다.

밀은 가을에 심어서 추운 겨울을 나고 여름이 되어 열매를 맺으면서 사계절을 거치는 식물이다.

그 겉 껍질인 밀기울은 성질이 차고, 속 열매는 성질이 오히려 따뜻하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밀이라고 할때는 밀의 겉껍질째인 밀기울의 속성을 얘기해주지만,

속 열매를 갈아서 만든 밀가루는 따뜻한 성질을 지닌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선 33가지 종류의 물이 있다고 하고,

엄밀하게 말하면, 소와 뱀의 습성상, 같은 종류의 물을 먹을리가 만무하다.

 

음식도 그렇고, 약도 그렇다.

음식을 만들고, 약을 짓는 사람의 정성도 중요하지만,

음식의 효능, 약의 효능을 판단하는 기준점은,

'나 자신'이다.

 

내가 맨날 하는 말,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와 더불어,

'각자 다름을 인정하는' 속에서 삶은 풍요롭고 값질 수 있다.

이 말은 곧,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와 다름 아니지만,

오늘 하고 싶은 얘긴 나름 간단하고 소박하다, ㅋ~.

 

 

 

 

 본초기
 최철한 지음 / 대성의학사 / 2009년 11

 
 圖表 本草問答
 당종해 지음, 최철한 옮김 / 대성의학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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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5-02-17 16:31   좋아요 0 | URL
여전히 수많은 독서와 글 속에서 사시는군요 ㅎ 전 언제나 그렇듯 너무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ㅋ
고립된 독서실에서 절에 들어온 듯이 열 몇시간 씩 보내고 있어요 허허
공부라는 게 참 힘들다고 뼈 져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보내고 즐거운 봄을 맞이 해야죠 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

sslmo 2015-02-25 10:43   좋아요 0 | URL
여전히 열.공.하시면서 잘 지내시는군요~^^
님을 보면 고립이나 고독 따위를 즐기시는 듯 느껴지는 것이,
달래 제가 교주님으로 모시는게 아니죠, ㅋ~.

봄이 오는 것일수도 있지만,
맞이하는 봄이야말로 즐거울 거예요, 그쵸~?^^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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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때 꿈은 헌책방 주인이었다.

그러다가 구겨지고 먼지 묻고 낡은 책들, 다시말해 다른 사람의 손때 묻은 책을 힘들어하는 날 발견하곤 서점, 북까페 주인으로 방향선회 하였다.

지금도 가게 한칸을 빌려 공방 겸 북까페로 꾸미는 것이 나의 로망이지만,

꿈은 좀 실현 불가능하여도 좋지않나? ㅋ~.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은,

안달루시아과였던 나의 기본적인 성향도 넉넉하게 바뀐 것을 들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이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지 말든지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을 하는 부류로 바뀌었는데,

그런 내가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일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다른 사람의 서재나 책장을 엿볼때이다.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집을 읽는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들의 서평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그러니까 서평을 쓸 정도의 고수들은 어떤 책을 콜렉션하는지가 궁금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전 '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면서 '적독'-즉, 쌓아 놓는 즐거움은 졸업하기로 다짐하였고,

한번 읽은 책을 나중에 다시 들춰보게 되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건 예전에 터득하였다.

그러니까 내가 부러운건,

책이 좀 많은 책장도 아니고,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도 아니고,

정리가 잘된 책장도 아니고,

읽고 싶은 책의 레파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대기 중인 책장이다.

 

도대체 어쩌면 이렇게도 책 모으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 또한 즐길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책을 사랑하면 된다. 책을 정말 사랑하니까 한 시라도 책하고 떨어지기 싫은 것이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것이, 책이란 곧 평생을 함께하는 사랑하는 연인 같다고 그이는 말한다. 이렇게 폭넓게 읽으면 책에서 얻는 지식이 편협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알고 싶은 분야의 책 몇 권만 읽고서 쉽게 단정하고, 자기 지식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처럼 위험한 게 없다. 좁게 쌓아 올린 지식은 높아질수록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바람이 불면 한꺼번에 무너진다.(17쪽)

 

사람들은 자기가 관심을 갖는 특정 분야에만 한정적으로 관심을 갖게 마련이고,

그얘긴 전문화된다는 거지만, 바꾸어 말하면 편협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깊어질수는 있지만,

자칫 책을 다양하게 읽기는 힘들어지는데,

요즘 인터넷이 발달하여 좋은 것은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심 분야 외의 책을 처음 선택할때는,

자신의 선택이 바른 것인지 어떤 것인지,

자신의 독법이 제대로 된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경우,

인터넷에서 만나게 되는 각 분야의 고수들이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게 관심 분야를 넓혀 갔다.

 

글을 보면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책으로 만들려고 안철수 교수 원고를 받아서 검토했는데, 거의 손볼 곳이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잘 쓴 글이어서 놀랐어요.이공계 학자들이 쓴 글은 대부분 그렇지 않거든요. 안 교수의 정치적인 성향이 어떠냐를 떠나서 제가 지금껏 편집자로서 겪은 사람 중에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건 확실합니다.(28쪽)

이젠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글 말고도 사람 됨됨이를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편집자의 입장에서 손볼 곳 없는 매끄럽고 잘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종류의 글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논리의 비약이 없는 매끄러운 문장이었다는 말일텐데,

그건 사고력의 균형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이 특별히 모나지 않았다는 소리이지,

그게 그 사람이 좋은 사람과 동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 하면, 글 말고도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수영 시인처럼,

시를 쓰는 것은 머리도 아니고, 심장도 아니고, 몸의 일부분도 아닌,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김수영 시인은 말한다. "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기억해낼 때마다 가슴이 뜨뜻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읽을 때도 되도록 내 온몸으로 동시에 읽어내고 싶다. 시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시를 읽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저 친구가 아니라 더 끈끈한 동지가 된다. 한 시대를 함께 고민하는 동지다.(70쪽)

그렇게 김수영의 그것에 안철수를 대입시켜보자면,

글 또한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 실천이랑 결부시켜서 얘기할 수 있어야 할텐데,

실천, 행동력이랑 결부시켜서 얘기했을때 그의 글들은 너무 매끄럽고 잘 씌여서,

일반인들이 읽고 따라하기엔 숨고르기마저 버겁지 않을까?

 

"제게 책읽기는 무엇을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비우는 느낌입니다.무위자연이라는 말도 있듯이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그건 제 안에서 깔끔하게 소화돼 없어지는 겁니다. 한번은 이곳에 와서 만난 어느 후배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제가 덜컥 화를 낸 일이 있습니다, 그분은 심리학을 깊이 공부해서 말끝마다 비트겐슈타인이 어쨌다는 둥 어려운 사람들이 한 말을 끌어다 쓰기를 즐겼어요. 듣고 있자니 꽁해져서 한마디 했죠. '너는 왜 네 얘기를 안 하고 다른 사람 얘기만 하느냐'고. 후배는 공부를 많이 해서 보고, 듣고, 읽은 게 그만큼 쌓였는지는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그저 그것뿐이었어요. 그걸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해서 마냥 쌓여 있는 거예요.ㆍ수업의 기본은 지식 전달이라는 걸 바탕에 깔고 하는 거지만, 그 위에 제가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양념처럼 뿌려주니 소화가 잘 되죠. "(288~289쪽)

 

책이 빼곡히 꽂힌 서재면 다 부러운게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의 레파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대기 중인 책장이 부러운건, 이런 이유에서이지만,

이젠 이마저도 졸업해야 하려나 보다.

한권의 책을 읽고 거기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생되어 읽고 싶은 책이 생기는 걸로 만족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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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2-16 21:46   좋아요 1 | URL
오늘 책을 읽는데
지성을 갖는다는 것이 선의를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라고 하는 말에 공감~

글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인 마음으로 다가가기보다는 머리로 한번 먼저 거른다는 글도 읽었는데 이것도 공감했어

그래두 평생 안 질리는게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야 그징~♥

하늘바람 2015-02-17 01:55   좋아요 0 | URL
전 님의 마지막 그징~♥이 넘 부러운데요.
그징 언니♥

sslmo 2015-02-17 16:04   좋아요 0 | URL
요즘은 알라딘서재 마실도 다니고,
어째 좀 덜 바쁜건가?

바쁜 일 한풀 꺾이면 얼굴 한번 보자구,
정말 행복할거야~^^

sslmo 2015-02-17 16:06   좋아요 0 | URL
하늘 바람님도 부러워만 말고,
`그징~♥`하시면 되져~^^

전 언제나 대환영이예요~^^
그징~♥

AgalmA 2015-02-17 00:06   좋아요 1 | URL
제 꿈은 만화책방 주인이였는데 ㅎ... 절친이랑 얘기할 때 그런 구박 자주 했죠. 누군 어떻고 회사는 저떻고... 언제나 그러길래 네 속의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요즘은 둘이서 정치와 세상 욕을 실컷ㅋ;; 서로의 자아비판은 너무 들어서 통과ㅎ;;

sslmo 2015-02-17 16:14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에 어릴때 꿈이었는지는 모르겠고,
책 좋아하시는 분들 중 어릴때 만화방 하셨다는 분들이 좀 계세요.
번역가 중에도 한분 알고 있구요, ㅋ~.

근데 말이죠, 댓글이 힙합버전인거 알까요?
라임이 끝내주는걸요~^^
˝~욕을 실컷 ㅋ/~들어서 통과 ㅎ˝
완전 멋져욧~!

AgalmA 2015-02-17 17:50   좋아요 0 | URL
만화방 일화들 재밌네요ㅎㅎ
힙합버전ㅋㅋ...다시 보니 말이 너무 거친가 싶기도 한데a; 좋게 봐주셔서 다행^^
양철나무꾼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욥!
 
[전자책] 역사 e 3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3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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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건,

한 나라의 역사도 그렇고,

개인의 삶도 그렇고,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이론의 그것마냥,

모든게 일정한 패턴을 그린다는걸 깨닫게 되고 나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가만히 돌이켜보게 된다는 것은, 

일정한 주기로 반복해온, 내가 속해 있는 나라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예측해보게 된다는 의미일터,

스케일의 차이는 있겠지만,

맨날 그날이 그날 같은 것이, 도돌이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패턴을 그리면서도 눈곱만큼씩 변하는데,

그 변화가 나은 방향으로의 그것이었고, 그래야 하겠다는걸 깨달아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그동안 나는 역사를 재미없어 했었는데,

그 이유가 역사라는 것은 유적이나 기록으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인데,

유적도 그러하지만, 기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대의 권력자들과 함께 가는 특성이 있어서 왜곡되거나 과장된 채로 전해져 오는 것이어서 진의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사라는 것이,

프랙탈이론 마냥, 자기유사성을 띠면서 되풀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역사를 돌이켜보고 되짚어보다보면,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왜곡되거나 과장되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는걸 알게 되자,

역사가 재미있어졌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는 왕조의 기록이다. 당대를 알기 위해선 사료에 기록된 내용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만 역사를 바라봐서는 당시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없다. 기록 사이사이, 그 행간에서 숨 쉬며 살았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거리를 정처 없이 걸어다녔던 민낯의 선조들을 제대로 만날 수 없다. 역사를 가장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은,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해서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상상해보는 것이다.(6쪽)

기록 사이사이, 그 행간에 숨쉬며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민낯을 만난다는 것은,

왕조의 기록인 역사라기 보다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옛이야기에 가까운 것이고,

그렇게 선조들 개개인의 삶을 확장시켜 나가다보면 그게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 있다.

역사에 대해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

사관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그런 역사관은 내가 아는 만큼만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내가 독선적이고 편협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면,

'부분을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이론에 근거하더라도,

딱 그만큼의 생각들을 펼쳐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일례로 생각해 볼 수 있는게, 초딩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단일민족'이라는 단어다.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그리 내세울만한 자랑거리가 아니란걸 깨닫게 된 것도 어른이 되고 나서였지만,

그나마 우리민족이 단일한 혈통인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아주 오래전으로 올라가서부터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짐작하게 되었다.

혈통이라는 것이 인재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영조 때를 보면, 왕위를 놓고는 부자지간도 암암리에 암투가 있었던 것을 볼때,

혈통에 근거한 신분제, 그리고 단일민족이라는 것에 그렇게 얽매였다는 건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통로로 열어 놓은 것이 '과거제도'인데,

 이마저도 제한적이어서,

'경국대전'에서는 서얼 외에도 역적의 자손이나 뇌물을 받은 관리의 자손, 재가한 여자의 자손은 과거시험을 절대 볼 수 없도록 제한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닌데, 퇴계는 아무래도 비범한 인물이 틀림없다.

아들이 일찍 죽자 며느리를 몰래 앞장 서서 재가시켰단다.

그때의 풍습으로 미루어 봤을때는 아들이 죽고 며느리가 집안을 잘 일구고 혼자 수절하면 열녀문을 짓는 그런 세상이었을텐데 말이다.

 

이건 오늘날에는 다문화사회라는 개념으로 우리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하고 있다.

서양에서 동양을 얕잡아보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월한 입장에서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 약소국의 이주민들을 바라보게 되는 걸 그렇게 얘기한단다.

이러저러한 이유와 그로 인한 망명, 귀화를 설명하는 예도 보인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조선 문제는 결코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평화의 문제다. 이 강연을 압박하는 것은 조선 문제만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압박하는 것이다."(305쪽)

 

이 책이 좋은 것은 역사를 인식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안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의식과 관련된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해결책을 다함께 강구하려는데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좋은 것은, 왕 중심의 왕조의 기록을,

우리 같은 일반인 중심의 기록으로 바꾸어 놓았다는데 있다.

왕 중심의 왕조의 기록을 우리 같은 일반인 중심의 기록으로 바꾸어 놓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기록 사이사이, 그 행간에 숨어있는 문맥의 뜻을 살려내는 방법을 통해서친근감을 갖고 애정하게 된다.

 

시대를 사는 것은 우리지만,

우리가 흠뻑 담굼질하고 살아갈때는 어느쪽으로 치우쳤는지 제대로 판달할 수 없다.

고로 역사를 판단하는 것은 현재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 이 순간을 가열차게 살면 되는 것이고,

판단은 후대의 몫의 남겨두어야 하겠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지금은 우리의 외모와 성격들을 사실적으로 남겨둘 수 있으니, 

후대에 제법 정확한 평가를 기대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00년전만 하더라도 왕의 그것 또한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었다.

일례로 세종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어떤 책에서는 육식을 아주 좋아한 임금으로 알려졌었는데,

또 어느 책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육식을 즐기지 않았다고도 하고,

영조나 사도세자, 정조의 외모와 성격, 건강 상태 따위 등에 대해서도 그렇다.

 

정확한 평가, 자세한 기록은 또 다른 이름의 역사이고,

우리는 그 역사를 읽음으로,

갈팔질팡하는 우리가,

헤매이지 않고 가야할 길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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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6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2-13 18:21   좋아요 0 | URL
저는 역사를 암기하는 것이 싫었어요. 그 다음으로 싫어하는 것이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거요. ^^

sslmo 2015-02-16 18:20   좋아요 0 | URL
사관이나, 관점이라는 거...
나로부터냐, 나로말미암음이냐 겠죠?
그래도, 내 인생은 내 입맛대로 살고 싶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