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너무 좋아서 오랜만에 책에 띠지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읽었다.

그 유명한 '테스'를 쓴 고전작가 '토마스 하디'가 쓴 것이라는데 제목부터 낯설었다.

 

책표지에 이 동네 유명인사이신 로쟈 이현우 님의 해제라고 광고하고 있었으며,

'국내 정식 완역본'이라는 노란 색 돌출 글씨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 스토리' 라는 <가디언>의 문구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책이 나오자 마자 집어들었다.

처음 해제를 읽을때만 해도 '재밌겠다, 재밌겠다~'를 연발 했었는데,

본문으로 접어드니, 웬걸~--;

문장이 시적이고 아름답기는 한데,

배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인지,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종 잡을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서 공부하면서 읽느라 한참 걸렸다.

 

보통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이나 찾아보고 싶은게 생기고,

그리하여 다른 책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좋은 책읽기라는 느낌이 들고 뿌듯한데,

이 책은 읽으면서 참고서나 백과사전을 찾아 공부해 가며 읽어야 해서,

책 읽는데 걸리는 시간도 늘어지고 그래서 부담스러웠다.

 

물론 러브스토리로 접근해서 읽는다면 얼마든지 가볍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읽어서는 소설의 매력이랄 수 있는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정당화하기 힘든고로,

작가에 감정이입을 하려다 보니,

오래된 세월과 언어와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 내는 차이를 극복하려는 공부가 필요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원래 까다롭고 뾰족한 친구라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만들어서 스트레스 받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거였다.

"작가의 느낌을 살려내기가 참 어려운 문장이다.

  한문장을 아주 길게 쓰는 작가인지라...문장을 자를 수도 없고,

  역자의 고뇌가 눈에 보인다.

  한글처리가 거의 불가능한 표현들을 쓰는 작가인데,

  그 고뇌를 모르는 너에게 무시받기 딱이다.

  번역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차이이며,

  언어와 문화, 역사의 벽이기 때문에 넘기가 불가능하다."

 

'고뇌를 모른다'는 소리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소리처럼 들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하였는데, 본문을 몇장 읽지도 않아,

 

남자 주인공인 가브리엘 오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급기야 속상했던 마음이 북받치고 말았다.

wear를 무조건 '옷을 입다'로 해석하는 부분과 관련,

입던 옷처럼 편안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으로 보는게 낫지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더 타당한걸 놔두고 구태여 저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

고 하자,

"역자들도 머리 맞대고 고민하다가, 정답을 못내고 저리 결론을 지었을 거다."

라고 하길래,

공손하게 의견을 구하려던 것도 까먹고,

"오크가 옷으로 자신의 결함이나 감출 그런 캐릭터더냐?

 한 사람이 끝까지 번역을 했으면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도 파악이 안됐겠나?"

해가며 툴툴거리고 말았다.

 

그제서야 친구는 마지 못해,

좀 까다롭다 싶으면 생략한 군데군데 이빠진 번역이라고 하면서도,

'번역하기는 어려워도 번역해 놓은 거 평하기는 쉽다'면서 말을 아꼈다.

 

글처럼 그 사람의 자아를 잘 반영하는 것도 없지 싶다.

작가의 그것이 해석되고 번역되는 과정에서,

시대, 문화, 역사, 언어의 특성 등 그 작품을 그 작품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만 틀어져도 의미가 바뀌어 버릴 수 있다.

 

예전에 강신주가,

조삼모사 고사는 원숭이가 원하는 대로 저공이 원숭이를 대접해주는 긍정적인 얘기인데,

우리가 잔꾀나 술수에 관한 고사성어로 잘못 알고 있다고 했었던 게 떠오른다.

새를 너무 아낀 나머지, 새에게 자기처럼 사람 대접을 해서 죽여버리는 노나라 임금처럼 말이다.

 

원서를 대조 하는 것은 이렇게 친구가 질색팔색하는 문제이니 차치하고라도,

영국의 역사와 성경에 대해서 좀 알아야 책이 작가의 의도에 가깝게 읽힐 것 같다.

 

그리고  밧세바 에버딘과 가브리엘 오크라는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책을 읽다보면 밧세바와 가브리엘은 성경에 나오는 이들 마냥 이름대로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은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에 따라 종교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피의 숙청이라 할 정도로 대대적이고 가혹한 처형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역사와 성공회, 가톨릭, 청교도 따위의 상관 관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볼드우드를 청교도 적인 특성에 비유하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고,

ㆍㆍㆍㆍㆍㆍ우선 그의 목소리는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낮고 조용한 억양이었다. 강렬하고 깊은 의미가 겉으로는 간단하게 표현되었다. 침묵은 때로 육신에서 분리된 채 떠도는 영혼으로서 스스로를 보여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그런 면에서 침묵은 말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마찬가지로 말을 적게 하는 것이 많이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전달할 때가 자주 잇다. 볼드우드가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말했다.(209쪽)

 

말없이 비난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말보다 침묵이 훨씬 호과적인 수단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이들은 혀로는 할 수 없는 강력한 말을 눈으로 한다. 또한 창백한 입술에서는 한쪽 귀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이 나오는 법이다. 두 경우 모두 말이라는 통로를 비껴간 위엄에서 멀어졌다는 기분에 느끼는 고통 때문이리라. (331쪽)

트로이를 영국과 프랑스적인 성격을 반반씩 가지고 있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 등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밧세바는 지금 외롭고 불행했다. 사실 결혼 전만큼 외롭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외로움과 현재의 외로움을 비교한다면 마치 동굴 속의 고독과 산 속의 고독을 비교하는 것 같았다.(475쪽)

"이런! 나를 모욕하지 말아요, 부인. 이 여인이 비록 죽기는 했으나 나한테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당신보다 더 소중하다고. 만약 악마가 당신의 얼굴과 그 저주스런 교태로 나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와 결혼해야 했을 거요. 나는 당신이 내 앞길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결코 없어. 그 일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물어보시오.ㆍㆍㆍㆍㆍㆍ"

"결혼식을 올렸다고 해서 진짜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니지. 나는 도덕적으로도 당신의 남편이 아닌 거야."(489쪽)

 

다음은, 스무 살의 밧세바를 처음 보고, 스물 여덟의 가브리엘이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이다.

"반반한 처녀네요"

"그렇지만 완벽하진 않소."오크가 대답했다.

ㆍㆍㆍㆍㆍㆍ

"허영심이죠."(24쪽)

나의 스무 살 무렵을 돌이켜볼때,

스무 살이면 충분히 완벽하지 않고,

vanity, 허영심이나 자만심이라 불리우는 것들을 가지고 있어도 좋을 무모한 나이였지 싶은데,

너무 야박한게 아닌가 싶다.

 

반면 가브리엘 오크를 향하여선,

ㆍㆍㆍㆍㆍㆍ지성과 감성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남자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젊은 혈기 탓에 지성과 감성이 뒤죽박중 섞여 충동적인 성격이었으나 그 시기는 지났고, 그렇다고 아내와 가족 때문에 또 다시 그것들이 뒤섞여 편협한 성격을 형성할 상태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스물여덟 살의 총각이었다. (19~20쪽)

이렇게 너그럽게 얘기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 소설을 쓸 무렵 30대 초반이었던 토마스 하디가 가브리엘 오크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탓이 아닌가 싶지만,

이름처럼 천사도 아니고 성인군자도 아닌, 그냥 나이 서른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라고 생각하면 답답하다.

(여기서 '좀'은 '아주'와 바꿔 쓸 수 있겠다.)

 

밧세바의 성격묘사도 일관되지 않다.

치마를 입은채로 말을 탈 정도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가 하면,

농장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하면,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여자치고는 참신하게도 충분히 생각한 다음에야 할 말을 입밖으로 내는 사람이었다. 생각을 마친 뒤에야 자기 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45쪽)

한창 때라 생기 넘치는 여자로서는 특이하게도 그녀는 항상 상대방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기 말을 시작했다. 가격에 대해 논쟁할 때면 판매하는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이 자기가 제사한 가격을 굳게 고수했으며, 여성의 필연적인 속성대로 끊임없이 상대방의 가격을 깎았다. 하지만 그녀의 단호함은 완고함과는 달라서 융통성을 동반했으며, 가격흥정을 하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데가 있어 인색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150쪽)

상대방이 말이 마칠때까지 귀를 기울이고, 충분히 생각한 다음 입밖으로 내어 문장을 만든다고 했었는데,

발렌타인데이라고 하여, 섣불리 카드를 보내는 설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사람은 맥아 제조소 주인이었다.

태어난 해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어른으로서의 무게중심을 잃지 않는다.

"저는 자연스럽게 묻은 먼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뭐가 묻었는지 알면 상관없어요." 잔을 받은 그는 깊숙이 담긴 내용물을 3센티미터 넘게 마셨고 적당한 때에 다음 사람에게 잔을 넘겼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 많은 세상인데 제 이웃에게 설거지하는 수고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크는 술을 크게 한 들이켜고 난 다음 가빠진 숨을 고르고는 촉촉해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이로군." 제이콥이 말했다.(96쪽)
"굽은 사람이 오래 버티는 법이다."(109쪽)

경지에 이르면, 지극함에 이르면, 오히려 간결해진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다음 구절은 언젠가 내 친구를 빗대어 얘기했던 '낭중지추'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미 인정받은 장점을 스스로 강조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을 우스꽝스러워 보이도록 만들기에 충분한가 보다.

스스로의 존재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보였다. 꽤나 짓궂은 짐작이었지만 바라보는 자가 그 짐작을 대체로 사실로 느꼈기 때문에 모욕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천재의 어조에 이례적으로 실리는 강한 음색과 같이 평범한 사람을 우스꽝스러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이미 인정받은 장점을 스스로 강조하는 것이다.(39쪽)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지어낸 것도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부분은 나이 서른 무렵에 쓰여졌다고는 믿기 어려운 '깊이'이다.

그녀의 분명한 결점은 반박하는 일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뭔가를 좋아하는 일에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물체는 흡수하는 빛이 아니라 거부하는 빛 때문에 색을 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반감과 적대감은 전문적으로 고찰되는 반면 선의는 결코 그 사람의 특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246쪽)

 

vanity, 허영심 또는 자만심은 밧세바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그런 밧세바에게 자만심을 버리는 것, 즉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가장 아프게 찌르는 고통일텐데,

상대방 앞에서 이렇게 무모할 정도로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을 향하여 무장해제를 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겠다.

 

ㆍㆍㆍㆍㆍㆍ"그리고 좋건 나쁘건 내가 그러기로 한 진정한 이유는, 아직 누구한테도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약속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가브리엘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밧세바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자만심과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이렇게 말한다는 건 하느님만이 아시겠지요. 그 때문에 마음이 슬프고 괴로워요. 나는 그 사람의 미래를 내 손안에 쥐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 사람의 앞날은 전적으로 내가 그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아, 가브리엘. 내가 지고 있는 책임만 생각하면 몸이 떨려요.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573쪽)

 

가련한 밧세바는 이제 가장 아프게 찌르는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632쪽)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겠고,

난 이 부분을 읽으며 펑펑 눈물을 쏟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지만,

이 부분의 해석도 좀 어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성경이나 불경 따위를 인용할 때는 성경의 본문을 그대로 옮겨주는게 관례인걸로 알고 있는데,

원서를 나름 해석하다 보니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문장이 되어 탄생했다.

ㆍㆍㆍㆍㆍㆍ두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은 친구 사이에 간지러운 말이나 따사러운 말은 새삼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그들의 애정은 우연히 첫 만남을 가진 이후 거친 성격을 아는 것부터 출발하여 엄하고 단조로운 현실 틈바구니에서 피어나 자란 것이기에, 아주 나중에야 겨우 알게 되는 견고한 애정이었다. 공동의 것을 함께 추구할 때 발생하는 이 우의(친구애)가 남녀 간의 사랑에 더해지는 일은 드물다. 남자와 여자는 일반적으로 노동이 아닌 쾌락을 통해 서로 엮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한 환경이 마련됨으로써 관계가 진전될 때, 이렇게 여러 가지가 뒤섞인 감정은 죽음만큼 강한 유일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 뜨거운 사랑은 아무리 많은 양의 물로도 끌 수 없고, 홍수로도 삼킬 수 없다(구약성서 아가 8장 7절 인용- 옮긴이). 이것과 비교하면 흔히 애정이라 불리는 정열은 사라지는 수증기만큼 덧없는 것이다.(639쪽)

 

이 책에는, 음식과 술은 기분을 북돋아준다고 나온다.

적당한 음식과 적당한 술이겠지만 말이다.

적당한 음식과 술은 힘없는 사람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줘서,

육체의 복음에 비유되고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복음은 뭘까?

종교인이라면 신의 사랑을,

연인간이라면 남녀간의 사랑을 얘기할테지만,

난 그보다는, 책과 그림과 음악을 영혼의 복음이라고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책과 그림과 음악이 내게 그런 것은 아니고,

나에게 와서, 내 영혼의 복음이 되어준 것들이여, 메리 베리 땡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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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5-21 16:55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이 나온 줄도 몰랐는데 너무 근사한 책이네요.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시다는데 완전 부럽네요. 저도 공부하자,고 말하는 친구가 되어볼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는 님의 페이퍼 읽는 것으로 읽기는 `패스`해도 될까요?

sslmo 2015-05-22 13:43   좋아요 0 | URL
네, 근사한 책이예요.
근데 같이 공부를 한 건 아니구요.
질문을 하고 답을 얻는 식의 1대1 맞춤 과외라고나 할까요?
두서없이 써서 할말을 쏘옥 빼고 쓴 리뷰를 좋다고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책은 이 리뷰보다 백배, 천배는 더 좋아서 말이지요, 헤헷~^^

프레이야 2015-05-21 16:59   좋아요 0 | URL
담아갑니다 토마스 하디의 이런 작품이 있군요. 비평은 하기 쉽지요. 그래서 아무리 대댠한 비평가도 창작하는사람만은 못하다고 하나봐요. 꼼꼼하게 붙은 띠지들^^

sslmo 2015-05-22 13:45   좋아요 0 | URL
띠지만 꼼꼼하게 붙이고, 정작 리뷰는 날림으로 썼네요, ㅋ~.

저의 부족한 부분은 프레이야님께서 마저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헤에~^_____^

에이바 2015-05-21 18:28   좋아요 0 | URL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다음달 쯤엔 이 책을 읽어볼까 했는데요, 양철나무꾼님의 정성어린 글을 보니 개봉예정인 영화를 먼저 보는게 나은가 싶고... 또 감독의 해석을 먼저 보게 되면 제 문학 세계(?)가 좁아지니 고민입니다.

sslmo 2015-05-22 13:52   좋아요 0 | URL
영화도 재밌을 것 같지만, 책도 충분히 매력적이랍니다.
영화가 먼저든, 책이 먼저든 에이바 님의 좋은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blanca 2015-05-21 19:5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좋았어요. 그런데 리뷰를 못 쓰겠더라고요. 양철나무꾼님 말씀처럼 토마스 하디가 덜 영글어서 그런건지 군데 군데 한계와 결점이 보이는데도 도저히 폄하할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이 있었어요. 친구분과의 대화가 부럽네요. 저는 책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관계가 부족해서 항상 아쉬워요.

sslmo 2015-05-22 13:58   좋아요 1 | URL
그쵸~?
이게 토마스 하디의 문제인지, 번역 상의 문제인지,
아님 제가 그 시대의 역사관과 종교관, 문화적 배경들을 이해못해서 그런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폄하하거나 만만히 볼 수 없는 묘한 매력, blanca님도 느끼셨군요?
찌찌뽕이예요~^^

cyrus 2015-05-21 21:09   좋아요 1 | URL
절판되었지만 영풍문고에서 `광란의 무리를 멀리하고`라는 제목으로 2권으로 된 번역본이 나온 적이 있어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속된 무리를 떠나서`라는 제목으로 나온 적도 있고요. 영풍문고 번역본이 제일 먼저 나왔는데 출판사 문구 때문에 독자들은 이번에 나온 번역본을 국내 첫 정식 번역본으로 오해할 수가 있겠어요.

sslmo 2015-05-22 14:04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전에 한번 번역된 적이 있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전 생소한거 있죠.
하지만 `완역본`이란 의미 상으로 완전 다른 의미일테니까 말이죠~^^

근데 cyrus님은 책에 관해선 만물박사이신겁니까?
모르시는게 뭐에요~ㅅ!

아무개 2015-05-21 21:34   좋아요 1 | URL
아이쿠 저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내겠어요.

sslmo 2015-05-22 14:06   좋아요 1 | URL
저같은 사람도 읽었으니까 아무개 님은 엄두 내셔도 좋습니다여~^^
제가 고전과 역사, 성경 기타 등등에 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어서 그런 것이지,
책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랍니다.
충분히 좋고, 재밌는 책이랍니다~^^

2015-08-04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7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허준'의 '동의보감'에만 나오는 표현은 아닌가 보다.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되시겠다.

 

'글을 쓰는 사람'을 일컬어 작가라고 한다고 '작가'의 의미를 글로만 축소시켜 얘기 하더라도,

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려고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얼마전 친구들이 얘기했던 내 글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극복해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때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듣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았었다.

근데, 이 책 '서문'에서

대학 바깥 학문공동체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도 독서가 아니라 독서를 경유한 글쓰기로 바뀌었다. 모르던 것을 배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글로 소화하는 과정이 곧 공부가 됐다. 이들에게 파워라이터의 글쓰기는 좋은 본보기이자 영감의 원천이다.(5쪽)

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글을 본 후에야 알 것 같았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긴 시대에는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어떻게 문장력을 발휘해서 설득력 있고 멋지게 전달하느냐가 관심사였던 데 비해, 지식의 생명이 짧은 시대에는 문장에 대한 관심 이상으로 어떤 지식을 신속하게 담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아예 지식을 생산해가면서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도 무리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7쪽)

라는 철학자 김용석의 말을 재인용하고 있는데,

파워라이터가 필요하게된 시대적 요구와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를 알 수 있게 된 키워드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작가가 독자와 소통을 하지 못하거나, 소통이 더디다는 것은,

요즘처럼 쌍방향으로 실시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대에서는 구식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니까 아예 지식을 생산해가면서 글을 쓰는 실천력과 행동력이 요구되는게 무리도 아니겠고,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 작가의 필요충분 조건이 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는 보이는 24명의 파워라이터가 있고,

이들과 인터뷰를 하고 글로 옮긴 5명의 또 다른 파워라이터가 있다.

글쓰기, 책쓰기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지만, 인터뷰어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좋은 참고자료가 되겠다.

 

암튼 이 분들이 얘기하는 글쓰기 비법을 다 전수받을 수는 없는 고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취합하였고,

나머지는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것을 골라서 선별적으로 적용해 보려고 하였다.

 

요즘 대세가 지식을 신속ㆍ 정확하게 전달하는 거라고 하지만,

작가의 개성, 그리고 글을 읽는 독자의 취향 또한 무시할 수 없을 듯 싶은데,

나는 주영재 기자가 글을 쓴 강신주, 김두식, 박찬일, 선대인, 이병률 편이 좋았는데,

작가들의 그것을 신속ㆍ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무생물인 글에 온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어 따뜻하게 만들어 주어서 였다.

 

주영재를 소개하는 끄뜨머리 각주를 보면 'ㆍ지혜로운 아내 선경과 귀여운 아들 윤건이와 함께 보내는 지금이 늘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 생각한다.'고 되어 있다.

나까지 따뜻하고 훈훈해진다~^^

 

다시 얘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의 글쓰기라곤 이곳에 리뷰를 쓰거나 페이퍼를 쓰는 정도가 고작인데,

얼마나 더 힘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의 경우,

책을 읽다보면 오탈자나 문장 오류 등이 돌출되어 눈에 띄는 고로 꼭 언급하고 넘어가는 반면,

내 글은 변학도 생일 잔치에 초대된 암행어사도 아니면서,

일필휘지로 쓰고나면 그뿐,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 참 안 좋은 버릇이 있다.

그렇게 무르익지 않아 부족하고 어설픈 글을,

무장해제하고 쓴 맨얼굴로 쓴 가식없는 글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 사람이 쓴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겠다.

성격이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사람이 수식이 화려한 만연체의 문장을 쓰기는 쉽지않을 것이고,

어설프고 부족한 글을 쓰는 사람이 논리적이거나 똑 부러지는 반듯한 성격일리는 없다.

 

그러니까 나의 글쓰기라는 것은,

'유려하지만 힘을 필요'로 하는 그런'논리적 글쓰기'나 '문학적 글쓰기'가 아니라,

쓴다는 행위를 통한 배설과 그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겠고,

그걸, 나의 호프(호프라고 하니까 시원한 그 HOF가 생각나지만서도 패쓰해주시고~), Hope, 희망, 강신주 님께서 이렇게 구실을 마련해 주신다.

아울러 글쟁이가 되려는 사람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변비'와 '비만'이다. 글을 잘 쓰려면 좋은 책을 무턱대고 많이 읽기보다는 일단 지금까지 읽고 배운 것들을 글이나 말로 '배설'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독서 모임에 나가든, 블로그에 글을 쓰든, 책을 써서 풀든 속을 비워내서 더는 말이나 글로 떠들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책도 읽힌다. "먹고 싸는 것을 함께해야 순환이 되는데 만성 변비 상태인 사람들이 많아요. 책은 많이 읽는데 세상에 대한 판단이 별로 없는 사람들의 문제는 배설기관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거죠."(26쪽)

여기서 '변비'와 '비만'은 '불통(不通)'의 의미겠지만,

(난 불통(不通)을 비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소화불량이나 '체증'이 더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여기선 변비와 비만 모두 욕심으로 인해, 놓고 버리지 못함으로 인한 소통장애라는 의미일테니까...이해는 된다.)

 

사람은 in put, out put만 제대로 되면 걱정할게 없는 셈이다.

먹는 것도 그렇지만,

읽어 들이기는 하는데 말을 하거나 글을 써서 내놓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고,

읽어 들이는 것보다 과한 양을 말하거나 쓰는 것도,

큰 흐름에선 일종의 '장애'이다.

 

언젠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와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된,

많이 읽기만 하고 소통을 거부하고 주위와 단절된 채로 살아,

자기 안에 갇힌 사람들이 맞이하는 극단적인 파국을 엿보면서 받았던 충격이 다시 떠올랐다.

 

전에 다른 책에서도 언급됐었던 내용인데, 강신주 편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독자들이 자신을 멘토로 여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책을 쓰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삶이 완전히 변했다는 독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라고 하는데,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여겨져서 말이다.

 

또 한가지, 이 책에 나온 24명의 파워라이터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하는 글쓰기 비법은 '꾸준히'이고,

그도 말은 '꾸준히'라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

개인적인 글쓰기 성향이야 내가 뭐랄 수 없는 부분이고,

그의 강연이고 글이고 오래도록 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셔서,

부디 알아서 건강관리를 하셨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는 글쓰기 비법들이 여럿 있는데,

 

김두식은 글을 쓸때 일단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렇게나 적고 나서 많이 고치는 편이라고 하면서도,

글을 많이 고칠 때의 함정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전제를 많이 깔고 예상되는 공격에 자꾸 방어를 하다 보면 글이 밋밋해진다는 점이다.(47쪽)

 

친근하고 순한 인상이지만 글은 독하게 쓰는 '김원' 같은 경우,

'좋은 글이란 무엇보다 독자가 저자의 고민을 읽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격을 얻는다(57쪽)'고 하면서,

요즘 같은 전자 복제 시대에 자기만의 고유한 글쓰기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나'와 지금의 '현실'을 글 속에 넣으려는 시도 그 자체라(58쪽)고 역설하는 걸 보면,

지식을 생산해가면서 글을 쓰는 '파워라이터' 일선에 선 사람이 아닌가 싶다.

 

군대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김종대' 같은 경우는, 글쓰기에도 통섭이 필요하다고 애기하고 있다.

자기 분야의 책만 읽으면 쓸 수 있는 어휘가 제한돼 표현 능력에 제약이 생긴다며,

다른 분야로 자꾸 시야를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한다.

탄소는 다른 원소와 결합해서 화합물을 만들지만 불소는 화합물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박근혜 정부의 인재 주기율표상에는 성격이 다른 두 존재가 있다. 탄소 같은 김장수와 불소 같은 남재준이다."라는 문장의 도입부를 만들어낸 분이다.(72쪽)

'말과 술과 글은 많이 할수록 늘어나죠'는 김종대의 수사니까 멋지다.

 

박찬일이 좋은 것은 '요리를 인문의 영역으로 확장'시켰기 때문 이다.

하나의 음식이 생기고 모습을 바꿔가는 데는 당대의 경제적 조건이나 유행 등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영향을 미친단다.

요리가 인문의 영역에 들어갔다는 또 다른 근거로...그는,

인문학이 인간의 상처를 쓰다듬으려는 것처럼 요리를 통해 치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점을 꼽았다.(79쪽)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박찬일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지만, 박찬일이니까 맞춤한 표현이 있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콩나물 국밥을 먹을 때는 미리 다져놓은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다진 마늘과 풋고추를 넣어 먹으면서 콩나물 국밥의 핵심이 양념을 갓 다졌을때 터져 나오는 향이라는 것을 알았다.(85쪽)

 

그동안 그의 직업으로 미루어 개인적인 캐릭터가 일치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던 사람으로는 '선대인'이 있다.

옛날에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 경제연구소 소장이라고 소개되고 있었는데,

하는 애길 들으면 상대방을 참 많이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었었다.

요즘 선대인 다음으로 그 코너를 진행하는 사람의 경우,

사회자가 노트와 연필을 준비하고 설명을 요구하는데 '그냥 외우시면 된다'고 하는 걸 들으면서,

경제전문가나 그런 사람들은 시간마저 돈으로 환산하려 드는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었다.

라디오를 통해서 그의 어리숙한 목소리와 어투를 들으면서 정말 경제 전문가가 맞나 싶었는데,

경제 지표나 동향을 분석해 내는 건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고 논리정연했다.

 

이 책에서도,

그의 저술이 호응을 얻는 이유로,

부동산과 세금 등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 문제를 쉽게 풀어 설명해주고 대안까지 제시해주기 때문이라고 하는걸 보면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글을 써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리고,

블로그 글은 그 짧게 쓴 글들을 다듬은 것이고,

반면 블로그에 차분하게 쓴 글은 다시 SNS를 통해 유통시키기도 하는 글쓰기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래서일까, 읽는 사람에게는 글이 어렵다는 느낌이나 억지로 쥐어 짜냈다는 느낌이 없고,

본인에게는 글을 쓰다 막힌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뿐더러,

마감임박하여 글빚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좋은 글쓰기 습관인것 같다.

 

그동안은 읽는 만큼 말하고 쓰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했다면,

신형철을 얘기하면서는 말하고 쓰기의 절제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 의미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고,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은 정확하게 쓴다는 것이다.

"김현 선생의 비평이 섬세해서 좋다는 빤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섬세함은 비평의 여러 가치 중 하나가 아니라 비평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비평이 미세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사회적 실천일 수 있으려면, 섬세함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김현 비평의 힘은 제게 근원적인 것이에요."(125쪽)

 

본인은 사양할지도 모르지만,

지식이나 논리는 기본인데다가,

비평이란 글이 지녀야 하는 따뜻함과 섬세함을 장착해서,

글을 읽는 이들의 지성과 감성에 깊이 각인되고 있으니 말이다.

 

 

글쓰기는,

누군가에게는 지식을 나눠주는 행위이고,

누군가에게는 배설을 통한 카타르시스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얻는 방법이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쓰다듬는 힐링이 된다.

 

책읽기의 연장선인 글쓰기와 말하기는 누군가에겐 '읽은 만큼 충분히'여야 하고,

어느 누군가에겐 '읽은 만큼 말하지 않고 쓰지 않는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겠지만,

공감과 소통이라는 큰 흐름에서 봤을 때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인 것 같다.

 

나는 여기에,

다소 밑지고 손해봐도 좋으니, 체온만큼의 온기와 따뜻함은 챙겨가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모든 얘기는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얘기였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데다가, 즐기기까지 하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얼마전 인테넷에 떠도는 '스타킹'이란 프로그램에 나왔던 '헨리'라는 친구의 동영상을 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완전 멋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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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08 16:43   좋아요 1 | URL
책과 글을 처음 읽을 때는 나를 위해 시작했지만, 많이많이 읽을수록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고민하고 염려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독서의 참맛이겠죠. 그래서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은 이들은 다시 연대하며 글을 쓰고 그런 이어짐들... 비관주의, 내 생각의 전달만 있는 움직임도 개인의 자유임을 인정합니다. 어쨌거나 표현과 행동과 결과도 각자의 몫.
글의 첫머리에 양철나무꾼님이 `통즉불통 불통즉통`을 가져오시게 된 것도 그런 연결들로 읽힙니다^^

sslmo 2015-05-08 17:44   좋아요 1 | URL
저의 책 읽기와 글쓰기는 세상이나 연대를 생각할 정도로 고차원적이진 결코 않구요.
오히려 어떤 이즘을 띠고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는걸 경계한다고 할까요?
만약 제 글에서 어떤 이런 의식이 느껴졌다면 그건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지, 의도된 것은 아니랍니다.
저는 더디더라고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기꺼이 내켜서 였으면 좋겠습니다~^^
헨리처럼요, 완전 멋지지 않아요~?^^

AgalmA 2015-05-08 17:49   좋아요 1 | URL
아직 세상에 정답이라고 나온 건 없지 않나요... 문득 연결하고, 연결짓다가 어? 아! 하게 되는 거겠죠 :)
그 헨리, 수많은 헨리들에게도...

sslmo 2015-05-08 18:00   좋아요 1 | URL
그런데, 말이죠.
전 제가 좋아하는 책읽기와 글쓰기에 있어서 제가 내켜서이고 싶지,
세상과의 연대를 먼저 생각하면서, 이념에 의해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물론 그런 책읽기와 글쓰기 또한 삶의 한 방법임은 인정하지만 말이죠~^^

AgalmA 2015-05-08 18:11   좋아요 1 | URL
저도 하다보니 그리로, 저리로 간다는 거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삶은 모든 것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감은빛 2015-05-08 18:54   좋아요 0 | URL
칼럼이나 기사 형식의 글을 써보려고 몇 번 시도하다보니 제 글쓰기의 한계에 대해 많이 깨달았습니다.
글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드러내야 하는데,
제 글은 길고, 밋밋하고, 주제를 잘 보여주지 못하더라구요.
완전 절망하고 있습니다. ㅠㅠ

이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sslmo 2015-05-13 16:34   좋아요 0 | URL
이거 이거 너무 욕심이 과하시거나 겸손하신거 아닙니까?
도대체, 감은빛 님께서 글쓰기의 한계라고 말씀하시면,
전 항상 좌절이지 말입니다~OTL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고 백견이 불여일행(百見 不如一行)이라지만,

저보다 이 말을 절감하는 사람은 없지 싶어요.

 

북플만 해도 그래요.

직접 사용해보기 전에는 이렇게 애물단지일지 몰랐거든요.

 

이런 글을 쓰는게 아주 조심스럽긴 해요.

왜냐, 이런 글을 쓰는 순간 제가 북플 죽순이라는게 들통이 날테고,

들통이 나서 뭐 어떨 건 없지만,

그게 긍정적인 어떤 말도 아니고, '중독'이란 어마무시한 말이니까 말예요~--;

 

일단 북플에서 비밀 댓글을 확인 할 수 없다는 건 이런 얘기였어요.

 

아래 댓글이 공개 댓글인지, 비밀 댓글인지 맞춰보세요~^^

 

 

모바일 어플인 북플 화면을 캡쳐한 것입니다. 이 화면만으로는 저 위의 댓글이 비밀댓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죠.

물론 'ㅇㅇ님이 비밀 댓글을 남겼습니다' 하는 북플 알림이 뜨기는 하지만,

저 같은 경우 북플 알림을 실시간으로 확인 못할 수도 있고,

그러다보면 북플 알림이 폰 상태표시창에 뜨는데,

하나의 알림 위에 다른 게 겹쳐질 경우 알림창에 들어가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최종것으로 링크가 되더군요.

암튼, 위 내용의 경우, 컴 화면을 보시겠습니다.

 

컴 화면엔 비밀글이라고 확실히 뜨죠.

 

하나 더 보실까요?

 

 

이건 공개댓글과 덧글 사이에 있는 비밀 댓글이예요.

저기 자물쇠 표시가 뜨네요.

재미있는 건 말이죠~^^

 

 

 

위의 것도 다 비밀댓글인데, 말이죠.

자물쇠표시는 하나밖에 안 떴다는 거, ㅋ~.

 

알라딘 서재와 북플의 경우 설정값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지만,

알라딘 서재 글의 경우는 비밀 글에는 항상 그 옆에 비밀 글이라고 표시가 뜨는데 비해,

북플의 경우는 비밀 댓글이어서 자물쇠 표시에 클릭을 하고 글을 썼더라도,

북플 화면에 뜰때는 대부분 저 자물쇠 표현이 인색하게 뜬다는 거죠.

그렇다면 비밀댓글에 덧글을 다는 경우는,

자물쇠 표시가 기본값으로 주어져 있어서,

덧글을 달때 비밀덧글 설정이 풀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 설정이 바로 풀려버린다는 거죠.

주의를 기울여 다시 자물쇠 설정을 누르고 댓글을 남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예요.

 

근데, 이게 북플에서 '좋아요'버튼을 누를 경우에도 적용되더군요.

(알라딘 서재에 '좋아요 취소'기능이 있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됐지만요, ㅋㅋㅋ~.)

암튼, 북플에서 '좋아요'버튼을 누르고 댓글 창을 클릭하여 댓글을 남길려고 하면,

'좋아요'가 어느새 사라져 버려서 다시 확인을 해야해요.

 

중언부언 말이 길었는데,

이게 핸드폰 기종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겠죠?

다른 분들은 괜찮으신데, 저만 여지껏 이렇게 불편하게 사용했나 싶어 여쭙는거예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니고,

알라딘 서재에는,

그리고 북플에는,

고수들이 많다는 거,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보고싶은 책들이 마구 늘어난다는 거,

그 중에는 이런 책도 있다는 거...ㅋ~.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한결 같은 얘기는 타고난 재주가 아니라 노력이라고 한다는거,

근데 난 노력할 생각은 안하고, 잘 쓰고만 싶어한다는 거, ㅋ~.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고 백견이 불여일행(百見 不如一行)이라고,

직접 보고, 직접 행하는 것을 능가하는 건 없다는 거,

근데 요즘은 그렇게 기획되어 나오는 좋은 책이 많다는거,

그런 책을 잘 활용만 하면 타고난 재주꾼 만큼은 아니어도,

맨날 지적질을 받지는 않을테니,

일단 이 책을 지르고 보겠다는 것, ㅋ~.

 

 

 

 

 

 

 

 

 

 너의 시 나의 책
 박준.송승언.오은.유희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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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플에서의 비밀댓글
    from 마지막 키스 2015-05-07 11:29 
    제 핸드폰 기종은 아이폰5s 이고요, 제 경우엔 북플에서 비댓인 걸 한 눈에 알 수 있어요.일단 비밀댓글과 공개댓글은 이렇게 다릅니다.제 닉네임 옆에 자물쇠 보이시죠? 비밀댓글엔 이게 뜹니다. 당연히 밑에 해피북님 댓글은 공개댓글이고요. 자물쇠가 없으니까요.그리고 제가 남긴 비밀댓글에만 이렇게 뜨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제게 비밀댓글을 달면(그게 다른 사람의 서재이든 나의 서재이든) 똑같이 저 자물쇠가 그려져요.위는 해피북님이 제게 비밀댓글을 적으신
 
 
다락방 2015-05-07 11:11   좋아요 2 | URL
저는 다른 분들이 북플에서 비댓인줄 모른다는 걸 어제 해피북님 글로 알았어요. 제 경우엔 제가 남긴 비댓도 다른 사람이 남긴 비댓도 다 닉네임 옆에 자물쇠가 뜨거든요. 아 이거 그냥 제걸 캡쳐해 보여드릴게요. 지금 양철님이 캡쳐하신 거 보면 내용 옆에 자물쇠 표시잖아요. 전 닉넴 옆이라 확인도 쉽거든요.

sslmo 2015-05-07 11: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핸드폰 기종마다 차이가 나는 걸까요?

제 경우는, 갤럭시 S6거든요.

sslmo 2015-05-07 12:28   좋아요 0 | URL
친구가 제 폰 S5라고 하는데요.
언제 바꿧냐고 하는걸요, ㅋㅋㅋ~.
제 폰 기종도 정확히 모른다는...(,.)

yureka01 2015-05-07 11:11   좋아요 0 | URL
비밀글은 어쨋거나 다른 분들이 못보거군요.

sslmo 2015-05-07 11:19   좋아요 1 | URL
이게 왜 문제가 되냐 하면,
비밀 댓글의 덧글은 흔히 비밀 덧글이리라고 생각하고 덧글을 달게 되니까 문제인거죠.

비밀 댓글이어도 뭐 별 다른 건 없지만,
좀 창피하거나 쑥스럽거나,
내지는 저 같은 경우는 너무 오지랖이다 싶은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ㅋ~.

yureka01 2015-05-07 11:28   좋아요 2 | URL
저도 비밀댓글 자주 다는 편입니다.ㅎㅎㅎ
개인적인 솔직함의 이야기가 쑥스러운 글은 비밀글 쓰게 되더라구요.
뭐 가끔 북친의 친밀감과 은밀감을 올려주기도하는글에는 필수적.ㅎㅎㅎ

sslmo 2015-05-07 11:41   좋아요 1 | URL
우리는 `자주`라는 면에서 북플 비밀댓글 동지군요?
모종의 유대감과 친근감이 막 밀려오네요~^^

2015-05-07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7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재지기 2015-05-07 12:01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서재지기입니다.
비밀댓글 표기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문제는 북플 버전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계신 북플의 버전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주세요.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신고 부탁드립니다.


sslmo 2015-05-07 12:04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빠른 답변 감사드립니다.
꾸벅~(__)

해피북 2015-05-07 12:53   좋아요 1 | URL
명쾌한 설명 잘 읽었습니닷~~쿄쿄
저두 다락방님 글 보구 알았는데 아이폰은 되는가봐요 ㅋㅡㅋ,
저는 노트4고 현재 북플 최신버젼 사용중인데도 자물쇠 표식이 안나오더라구요 서재지기 님께 댓글 달았는데 개선이 되었음 좋겠어요 비밀글 사용할때마다 여간 신경쓰인게 아니라서 말이죵~ㅎㅎ

sslmo 2015-05-08 16:2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북플 최신버전의 문제가 아니고,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문제인 것 같죠?^^

cyrus 2015-05-07 18:34   좋아요 0 | URL
업그레이드 최신 버전인데도 제 폰이 안드로이드라서 그런지 자물쇠 표시가 없네요. 쳇! ㅎㅎㅎ

sslmo 2015-05-08 16:23   좋아요 0 | URL
그 안드로이드 폰으로도 cyrus님은 충분히 스마트한 생활을 즐기시니 상관없습니다여~^^

2015-05-07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5-08 16:24   좋아요 0 | URL
좋죠, 콜~!

2015-05-07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5-08 16:25   좋아요 0 | URL
폰 기종의 문제가 아니고,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여.
월마만이래유, 이게~?ㅋㅋㅋ~.
 
목수의 인문학 - 목수가 된 인문학자의 인생·철학·고전 3막 18장
임병희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아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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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발견했을때 오지랖 넓은 아줌의 심사가 발동하였다고나 할까,

어쩌려는 것일까, 어떤 차별화 전략을 쓰려는 것일까 걱정이 앞섰었다.

목수이자 인문학자로 입지를 굳힌 분들 중 내가 알고 있는 분 만으로도 '김진송'님이 계시는데 말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목수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한참 잘못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인문학자의 좌충우돌 목수 입문기'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먼저, 제목의 '인문학'은 어떤가?

여러가지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난 사람의, 사람에 의한,사람을 위한 학문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있지만,

책만 읽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문학적 사고를 하는 것 만으로도 부족하며,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제목의 '목수'는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김진송의 그것이 목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예술가의 예술작품들과 그에 대한 군더더기 없는 찬사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면,

이 책의 임병희는 목수와 나무, 공구, 마감재에 이르는 목공 재료와 목공을, 사람과 삶의 재료들과 삶으로 치환시켜 버무려내고 있다.

 

김진송의 그것이 예술작품을 보고 즐기기 위한 -감상을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 책은 저자 임병희는 책을 읽고 있는 나와 다를게 없는 초보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의 삶 안쪽으로 깊숙히 잡아 당겨, 조곤조곤 늘어놓는다.

 

국문학, 문화인류학, 동북아 신화, 동양 고전,신화와 고전에 담긴 철학 등

그동안 그가 배우고 갈고 닦아온 인문학적 성찰들이 그의 목공품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는 것이고,

바로 그 점이 내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인문학을 공부했다는 것과 인문학을 삶에 접목시키는 것은 좀 다른 얘기인 것 같다.

특히 신화와 고전은 그 시대상을 반영했을때 생명력을 발휘하는 고로,

그 시대와 장소가 갖는 의의에 대해 성찰을 하고, 재현해 내고, 의미를 되살려내는 것도 일이지만,

그걸 오늘날 삶에 적절하게 반영하고 접목시키는 것도 쉽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든 인문학을 삶에 접목시키는데 성공하여, 그렇게 물리가 트이는 경험을 하고 나면,

어려운 책들은 쉽게 읽히고,

인생의 험난한 가시밭길은 비단길ㆍ꽃길과 지름길이 되어 펼쳐질것이니,

그렇다고 우리모두가 목수가 될 수는 없는 일,

인문학을 공부하려 들지 말고, 인문학을 삶에 접목시키도록 애쓰는 것이 이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 되겠다.

 

그러니까 어렵게만 생각했던 인문학을,

어려운 인문학의 정점에 있는 사서(四書)와 노장(老莊)을,

삶의 한 가운데로, 목공예 과정 속으로 끌어 들여  대비하여 설명하는 방식을 취해,

인문학과 목공, 양쪽의 문턱을 낮춰 주었다는게 이 책이 갖는 매력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친근한 그림체로 내용 전달을 쉽게 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다.

아직 전문가가 아니라고 겸양을 부려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나무, 공구, 마감재에 이르는 목공 재료와 목공을 삶과 버무려 글로 써내는 건 일품인데,

목공품으로 만들어낸 실물 사진은 별로 없는 점이 아쉬웠다.

그나마 '그가 만든 가구로 채워진 서재의 모습'이라고 하여,

가구를 자세히 볼 수 없는 아쉬움을,

서재를 엿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암튼 발끝으로 서는 자는 오래 설 수 없다는 '도덕경'을 인용하며,

공방친구들이 '선제작 후도면'이라는 엄청난 칭호를 붙여주었다고 하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엄청난 칭호'는 지나친 겸양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ㅋ~.

 

몇 개 잡아내다 관뒀는데, 오ㆍ탈자가 제법 있다.

이 책이 인문학 초보자들에게 타겟을 맞춘 것을 감안한다면, 치명적이다.

성격이 급하고 덜렁대더라도,

책은 혼자 내는 것은 아닐텐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없다.

 

 

(규규-->규구)

 (갖지않았다-->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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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04 14:33   좋아요 0 | URL
저도 김진송씨 목수일기 재밌게 봤던 기억나요. 덩달아 목공 조각을 잠시 배워봤는데, 정말 인문학 취향과 접목처럼ㅎ 사람들이 나무를 고르고 다듬는 데서 성격 다 나오더군요ㅋㅋ
나무들을 찾고, 말리는 데 또 몇 년씩 걸리고, 다듬는 데 또한 공을 들이고서야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듯이, 평생을 가져갈 자신의 인문학도 그러해야 하겠지요^^

sslmo 2015-05-04 16:58   좋아요 0 | URL
아니, 아니~...
Agalma님이 말로만 듣던 팔방미인이신가요?
목공조각은 또 언제요?

언제 님의 목공 조각품 좀 보여주세요~^^

해피북 2015-05-04 17:57   좋아요 1 | URL
` 인문학을 공부하려 들지 말고 인문학을 삶에 접목시키도록 애쓰는 것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되겠다` 오늘 양철나무꾼님 강의실에서 울림을 받은 글귀랍니다~^^ 아까 병원 대기실에서 글 읽으며 순서 기다렸는데 이 글귀가 눈에 똭!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으면 `배움`에 치중하고 더 많은 배움에만 매달리게 되는것 같아요 그리고 잊어버리고...반성해야 겠습니닷 ㅋㅡㅋ,,

sslmo 2015-05-05 09:53   좋아요 0 | URL
해피북 님 어디가 아프신가요? 벌써 여러번 병원이라는 낱말을 글에서 마주하네요.
아프지 마세요~, 너무 아름다운 5월이예요~ㅅ!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을 참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게 보냈다.

'응답하라,1997'이나 뭐 그런 종편의 드라마를 봐도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나 스포츠 선수가 있어서,

길게 줄을 서고 밤을 지새워가며 팬심을 발휘하고 하던데,

나는 학창시절 뭘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기억력이 제법 되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날만한 굵직한 뭔가 한방이 없더라~--;

 

고딩 시절 못했던 걸, 난 다 커서...

그러니까 결혼하고나서,

책이랑 연애를 하고, 작가들을 향해 열을 올린것 같다.

암튼 내가 애정한 책, 나를 거쳐간 작가는 하도 많아서 두손과 두발을 모두 사용해도 부족할 판인데,

비교적 최근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철학자 강신주에 열을 올릴때 실은 난 강유원을 좋아했었다.

뭐, 강유원을 좋아한다고 해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거나 우비를 유니폼으로 맞춰입어주신건 아니고,

전작주의자가 되는 정도인데,

이 마저도 철학자의 그것은 어려워서리~

읽었어도 읽었다고 명함을 내밀기는 좀 민망스러운 지경이었다, ㅋ~.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갈게 있다.

강유원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철학공부를 다시한 사람이다.

기존에 차근차근 공부하여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우리가 문학, 역사, 철학을 흔히 인문학이라고 얘기하게 되는데,

그렇게 정적인 학문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게는 생활이고 실천인 학문인 것이다.

 

그것이 그동안의 철학자들과 직업인이었던 철학자 강유원과의 큰 차이점이다.

 

암튼, 하려고 했던 얘기는 그게 아니고, ㅋ~.

어젠가, 이곳 알라디너 '붉은돼지' 님께서 <곁에 두는 세계사>를 추천하시는데,

강유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근 반가울 수밖에 없었고~.

원래 자식 자랑하는 넘은 팔출출에 속한다고,

가진 책 자랑은 하면 안된다지만,

(나 지금 뭐래니, 응~(,.))

너무 너무 기꺼운 마음에 이렇게 몇장 올려본다.

좋은 책이고,

좋은 사람들이 좋은 의도로 기힉한 거니까 말이다.

 

 

 

 

 

 

 

 

 

 곁에 두는 세계사
 수요역사연구회 엮음 /

 석필 / 2007년 7월

 

 

 

 

먼저 책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서 나란히 인증샷~^^

 

 

 

 

 

 

 

 

 

 

 

 

 

 

두쪽이 펼쳐진 한장으로 되는데,

왼쪽에 한국사, 오른쪽에 동양사와 서양사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있고,

기원전부터 현대사까지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가상하게 여기고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만,

한편으론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2001년, 젊은 혈기의 그들이었으니까 가능했을 것이라 사료되는 부분을 책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머리말의 이런 구절은 지금 다시 봐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ㆍㆍㆍㆍㆍㆍ낱낱이 대조하고 종합해서 새로 정리해내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ㆍㆍㆍㆍㆍㆍ역사학자들이 흔히 쓰는 용어나 술어 중에 비논리적인 것이 많이 발견되었다. 필자 같은 사람들이 읽어도 그 분명한 뜻을 모를 표현들을 연구자들은 크게 괸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사용했던 표현들을 크게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ㆍㆍㆍㆍㆍㆍ연표는 정확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ㆍㆍㆍㆍㆍㆍ두고두고 갈고 다듬을 생각이다.

 

 

전진하는 세계고, 성찰하는 인간이라지만,

다른 이들은 아무 관심도 없을지도 모를 책들이지만,

그런 책들 얘기를 멍석깔아 놓은 듯 맘껏 할 수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책 얘기를 맘껏 할 수 있으니,

내가 알라딘서재 이곳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저 위의 돌출 부분과 관련, 이런 비밀 댓글이 달렸습니다.

 

쓰신 내용 중에 ˝강유원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철학공부를 다시한 사람이다. 기존에 차근차근 공부하여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는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잘못 알고 계신것 같아 철학자 강유원에 대한 위키백과 내용을 덧붙여 드립니다. ˝ 1980년에 동국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1] 홉스 연구[2] 로써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 1992년 헤겔에 관한 연구[3] 로써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강의하다가 그만둔 이후 회사원으로서 일하면서 번역가와 서평가로 활동했다. 이때 ˝회사원 철학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아마도 `회사원철학자`라는 예전 별칭 때문에 오해가 있으신듯 하네요. 강유원씨는 철학전공 학부-석사-박사를 중단없이 공부해 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98년까지 강의 하다가 그 이후에 회사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는 전업철학교사로서 시민교육을 하고 있구요.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잘못된 내용은 수정하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직장 생활을 하다가'부분이 '직장생활'을 하면서'로 바뀌어야 하겠네요.

제가 힘주어 얘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직장생활을 했느냐'는 부분과

직장생활을 해서 직장인의 애환을 몸소 느꼈었느냐 하는 부분이었었습니다.

 

암튼, 비밀 댓글 달아주신 분의 의견도 소중하여, 이렇게 꼬리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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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4-30 22:55   좋아요 0 | URL
호호호 제가 알라딘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다른데서 얘기하면 잘난척한다고 하겠지만 여기서는 책 이야기 마음껏하고 오히려 자극 받아서 좋아요^^
인문고전강의는 저도 있네요~~

sslmo 2015-05-04 12: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극 받아서 좋은데...
지름신 강림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저도 세실 님처럼 좋은 도서관이 가까이 있어서,
적절히 병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붉은돼지 2015-05-01 08:36   좋아요 0 | URL
아! 나무꾼님은 이 연표 가지고 계시는군요...
사실 저는 강유원님은 초문입니다만 --;;;; 100자평에 보니 강유원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구요
세계사 연표 내용도 깔끔하니 좋은 것 같아요...근데 가격이 조금 쎄서 지금은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구입할겁니다. 아마^^

만병통치약님도 궁금해 하시던데...^^

sslmo 2015-05-04 12:43   좋아요 0 | URL
강유원 님이 재미는 없으신데, ㅋㅋㅋ~.
내공은 보통이 아니시더라구요.

이분이 누구냐 하면, 이윤기가 번역한 `장미의 이름`에 문제점을 지적하여 `장미의 이름 읽기`란 책을 내신 분입니다.
그리고 열린책들 출판사와 이윤기님을 멋지다고 하는 것이 이 분의 지적을 반영하여, 다시 번역 수정본을 다시 낸다는 거죠, ㅋ~.

카타유 2015-05-01 10:50   좋아요 0 | URL
혹시 the piano guys 좋아하세요? 전 팬이거든요. 세계사 연표를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요.^^

sslmo 2015-05-04 13:01   좋아요 0 | URL
전 피아노도 피아노지만 가이들이 더 좋다는..ㅋ~.
실은 말이져, 얼마전 내한 공연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님 따라 이제부터 팬 해보려구요.

세계사 뿐만 아니라 국사, 동양사를 넘나드는 것이 강추합니다여~^^

해피북 2015-05-01 13:09   좋아요 0 | URL
저는 살림지식 총서 ` 책과 세계` 때문에 강유원님을 알게되었는데 (아직 읽진 않았답니다ㅜㅜ) 검색해보니 단단한 독자층을 유지하시는 분이시더라구요 말씀처럼 쉬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쉬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저자님이시지만 `인문 고전 강의`책은 구입하고 싶더라구요 ㅋ

저두 알라딘 북플 너무 좋아요! 이웃님들이 모르는 책도 소개해주시구 관심가는 작가님 신간 나오면 발빠르게 알려주시니 자주 들어와보게 되더라구요ㅋㅡㅋ,,

sslmo 2015-05-04 13:06   좋아요 0 | URL
또 살림지식총서는 모래여~?@@(참아야 하느니라~--)

인문고전 강의도 좋지만, 그 뒤에 쭈루룩 나오는 참고도서 목록은 더 좋거덩요.
보면 님이나 저처럼 책욕심 있는 사람들은 완전 죽을 맛이죠~ㅠ.ㅠ

해피북 2015-05-04 18:01   좋아요 0 | URL
ㅋ 출판사 살림에서 발행한 책인데요 `살림지식총서` 시리즈로 500호까지 발행했다고 전에 읽은 적이 있어요 뚝심있는 출판사라는 ㅋ 그중 085번이 강유원 저자가 쓴 `책과세계`라는 책이 있는데 무지 저렴해요4800원이고 문고본 처럼 얇고 작은 크기랍니다 아이패드 미니 보다 조금 작아요~^^ 역사 고전강의는 꼭 구입해야겠어요 불끈!

cyrus 2015-05-01 16:47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만 봐서 책의 실제 크기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곁에 두는 세계사>라는 책이 무거워 보여요. 들고 다니기에는 불편해서 책상에 앉아 있을 때 곁에 두어야만 하는 책일 것 같아요. ^^

sslmo 2015-05-04 13: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제대로 보셨어요.
하드커버에 크기도, 두께도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내용으로 보나, 짜임으로 보나 알차요.
에헤~, 더 두꺼운 책도 두루 섭렵하시는 분이 약한 모습~~~?^^

2015-05-05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5-04 12:06   좋아요 0 | URL
어이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