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선악이나 정오(正誤)처럼 이분법으로만 나누어야 할까?

예를 들어 '비가 내리는 것과 그 비가 내리다가 그치는 것이 잠시 멈춘 시간' 따윈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침묵하지 않고 말은 하되 섞지는 않는다'정도가 될까?

이 책은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황량하고 황폐하지만,

오아시스를 품고 있어서 아름다운 사막 같은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다 읽고난 지금은,

1권 중반부를 읽을때까지만 해도 뻥이라고 생각했던 호킹지수에 대한 신뢰는 어느정도 회복됐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줄거리를 따라가며 읽어도,

중후반에 이르면 스토리라인이 뛰어나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

워너브라더스사에서 판권을 확보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책을 읽은 사람 중에 몇 퍼센트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도나타트는 '비밀의 계절'때도 '천재작가'라는 소리를 들었었다지만,

이번 작품도 명성에 걸맞게 다분히 중의적으로 읽힌다.

겉으로는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라는 그림을 모티브로,

미술관테러에서 엄마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소년의 성장과정을 그리고 있는듯 보이지만,

중의적으로는 아인슈타인도 설명하려다가 실패한 이론이라는,

자연과 우주의 근원을 물질과 힘에 있다고 믿는 '통일장이론'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담고 있다.

 

통일장이론과 비교되는 초끈이론이 있는데,

수학적으로 완벽할지라도 실험을 통한 실제적인 끈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이라기 보다는 수학적 이론이나 불완전한 이론, 철학적 차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인 운명이나 신 따위도,

보는 '관점'이나 '기준'을 강조하는 등 '우연'을 가장하는 듯 보이지만,

그 마저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철학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ㆍㆍㆍㆍㆍㆍ나는 좀 지쳤어. 내 방이랑 우리 개, 내 침대가 그리웠지. 그때 아빠가 행사장에서 나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 달을 보라고 했어. 아빠가 말했지. '집이 그리우면 하늘을 봐. 어딜 가든 달은 똑같으니까.' 그래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베스 이모네에 같을 때, 아니 뉴욕에 사는 지금도, 보름달을 보면 꼭 아빠가 나한테 말하는 것 같아. 뒤돌아보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어디든 내가 있는 곳이 집이라고 말이야." 엄마가 내 코에 입 맞췄다. "아니. 네가 있는 곳이 내 집이야, 우리 강아지. 나라는 지구의 중심은 너야."(1권, 344쪽)

꺼벙한 안경을 쓴게 해리포터와 닮았다고 하여 '포터'라고도 불리우는 '시오'가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이 말은 '관점'이나 '기준'을 강조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관점'이나 '기준'은 우리가 어찌 증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나와 파브리티우스에게 무작위로 닥친 재난은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보지 못했던 똑같은 지점에서, 즉 우연이라는 점에서 만났다. 아빠는 그것을 빅뱅이라고 불렀는데, 비꼬거나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의 힘을 존중하며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몇 년 동안 연구해도 인과관계를 절대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나로 합쳐지는 것들, 여러개로 나뉘는 걸들, 시간 왜곡, 엄마가 미술관 앞에 서 있는데 시간이 흔들리고 빛이 이상해지는 것, 광대한 빛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불확실성. 모든 것을 바꿀 수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는 길 잃은 확률.(1권, 413쪽)

과학적인 용어처럼 들리는 '빅뱅'은 '우연'이라는 용어로 바꿀 수 있겠고,

'우연'이 반복되면 '신' 또는 '운명'이 되는데,

그걸 몇 년 동안 연구해도 인과관계를 절대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며,

'시간왜곡' 또는 '불확실성'이라고 하며,

바꿀 수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는 '확률'이라는 수학적인 용어를 과학적인 용어인양 사용하지만 과학용어는 아니다.

 

"왜냐면 웰티는 말하자면 광장기호증이었거든. 사람을 정말 좋아하고 시장을 정말 좋아했지. 시장의 그 끊임없는 움직임을 좋아했어. 거래, 상품, 대화, 흥정, 전부 말이야.ㆍㆍㆍㆍㆍㆍ웰티는 골동품상으로서 재능이 있었단다, 누구에게 어떤 물건이 맞는지 잘 알았지. ㆍㆍㆍㆍㆍㆍ학생이 물건을 보고 감탄하며 구경하려고 들어오면 웰티는 조그맣고 비싸지 않은 판화를 내놓는 식이었어. 모두가 행복했지. 웰티는 모두가 이 가게에 들어와서 크고 중요한 물건을 살 형편은 아니라는 걸 잘 알았어. 중매를 하는 것, 맞는 집을 찾아주는 게 중요했지."ㆍㆍㆍㆍㆍㆍ"웰티는 자기한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좋은 판매원이 될 수 있는 거라고 항상 말했는데, 나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동정심이 가는 절뚝발이.' 딴 속셈이 없어. 항상 외부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는 사람인 거지."

"아, 웰티는 어디서도 절대 외부인이 아니었어."(1권, 538쪽)

 

물건을 치켜세우면서 팔 때는 (한발 물러나서 속이기 쉬운 고객이 덫으로 걸어 들어오게 놔둘 때와 반대로)고객을 평가하여 그들이 투사하고 싶은 이미지를, 즉 실제 모습(잘난 척하는 실내장식가나 뉴저지의 주부, 남들 눈을 의식하는 동성애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을 파악하는 것에 승부가 달려 있었다. 아주 훌륭해 보이는 사람도 교묘한 속임수일 뿐이었고, 다들 무대 세트를 꾸미고 있었다. 비결은 내 앞에 서있는 자신감 없는 사람이 아니라 투사된 환상 속의 인물 - 감식가, 안식이 있고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약간 머뭇거리면서 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나는 곧 옷 입는 법(보수와 유행의 경계)을 배우고 공손함과 오만함의 정도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까다로운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어떤 유형의 고객이든 골동품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가정하고 얼른 비위를 맞추다가 딱 적절한 순간에 얼른 흥미를 잃은 척하거나 한발 물러나는 것이었다.(2권, 44쪽)

골동품상을 하는 '웰티'와 '시오'를 묘사하는 대목인데, 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비교가 된다.

웰티는 고객들을 향하여 '관점'과 '기준'의 잣대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딴 속셈이 없는 마음.

반면 시오는 고객을 평가하여 그들의 유형을 나누었고, 주관적으로 가정하고 비위를 맞추다가 어긋나기도 한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고나 할까?

그러니  '관점'과 '기준'의 잣대에 따라 딴 마음, 속셈과 동의어가 될 수도 있는 셈이고,

'관점'과 '기준'의 잣대라는 것은 일정하게 유지하고 볼 일이다.

영혼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와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안개 낀 어딘가에서 다른 영혼들 사이를 떠다니는 것 같았다.(2권, 134쪽)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편의 책들이 겹쳐졌는데,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그 하나였고,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데이워치'나이트워치''더스크워치' 시리즈가 또 하나였다.

 

'관점'이나 '기준'의 잣대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멋지구리한 말로 탈바꿈한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으면 말이야."

ㆍㆍㆍㆍㆍㆍ

"그 여자를 사랑하는구나. 너무 많이는 아닌 것 같고."

"왜 그렇게 말해?"

"미친 듯이 화를 내지도 않고 난리를 피우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네 손으로 그 여자 목을 조르겠다고 펄펄 뛰지 않잖아! 그건 네 영혼이 그 여자의 영혼과 너무 깊이 얽혀 있지 않다는 뜻이거든. 좋은 거야. 내 경험을 생각해보면, 너무 사랑하는 사람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아. 네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널 죽일 사람이거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여자는 자기 삶이 있고 너에게도 네 삶을 갖게 해주는 여자야."(2권, 237쪽)

그동안 '너무'나 '아주' 따위의 수식어가 사용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사랑 또한 일방적인 '너무, 아주, 많이'는 '집요함'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ㆍㆍㆍㆍㆍㆍ나한테 먹을 것도 주고, 이야기도 나누고, 시간도 같이 보내고, 자기 집에 들여보내주고, 옷도 주고ㆍㆍㆍㆍㆍㆍ. 넌 아빠를 정말 싫어했지만 너희 아빠는 어떤 면에서는 좋은 사람이었어."

ㆍㆍㆍㆍㆍㆍ기백이 대단했어. 그래서 정말 힘드셨던 거야! 너희 아빠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줬어.ㆍㆍㆍㆍㆍㆍ"(2권, 441쪽)

 

그리고 '부모에게서 자식으로의' 한방향으로의 맹목적인 그것 또한,

나 또한 부모 보다는 자식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바라본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내경험으로는 선이 틀린 적도 많아. 선과 악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야.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는 존재할 수 없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면서 내가 아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넌 -판단에 둘러싸여서 항상 과거를 후회학, 자신을 저주하고, 자신을 탓하고, '만약에 이랬다면.''만약에 저랬다면.'묻지.'삶은 잔인해.' '그냥 죽어으면 더 좋았을걸 그랬어.' 음 - 이렇게 생각해봐. 신이 볼 때 너의 모든 행동과 선택이 선하든 악하든 아무 차이가 없다면? 패턴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아니, 아니야-기다려봐-이건 고민해볼 만한 문제야.우리의 악함과 실수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고 우리가 선에 다가가게 만든다면? 만약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길을 통해서만 그곳에 도달 할 수 있다면?"(2권, 444쪽)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때로는 세상을 선악이나 정오(正誤)처럼 이분법으로 보는 데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분법으로 보는 세상마저도 '관점'이나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경우의 수로 나뉠 수 있다.

 

흔한 예로 '내가 아는 최선'이라는 것마저도,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에 따라서 결과가 천양지차이다.

 

저 그림 속의 '황금방울새'도 그렇다.

발목에 매단 쇠고리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족쇄가 되기도 할 것이고,

편안하고 안락한 새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할테니까 말이다.

 

시오의 그 무엇도 부럽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보리스 같은 친구를 두었다는 사실이 내내 부러웠고,

이 책의 호킹지수 98.5%에 일조한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5-08-27 22:04   좋아요 1 | URL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 저는 참 좋아라하고 봤는데...^^ 그 워치 시리즈 3개 ..흥미로웠어요. 악과선이 태어나는 것을 마법사들이 지켜보는 것도..어스름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도.. 이 황금 방울새 열어놓고 얼른 나가지지는 않는 다는...ㅡㅡ;(빨리 읽는 편인데 요즘은 게으름이 포텐 터진 게 틀림없어! 그러는 중! 입니다~) 건강하게 8월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sslmo 2015-08-28 08:59   좋아요 2 | URL
`세르게이 루키야넨코`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던데, 반갑습니다, 와락~((__))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또 다른 영역이 있다는 발상은, 그 시리즈를 읽은 후여서 자유로웠다고 할까요~^^
1권 중반부만 넘기면, 속도가 붙으실겁니다~!!!

마녀고양이 2015-08-28 15:16   좋아요 1 | URL
책보다는 자기 리뷰가 더 좋다눈~
참으로 꾸준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네. 나는
성격이 하두 끈기가 없다보니 한동안 열나게 쓰던 리뷰는 거의 손 놓았어.

말을 하되 섞지는 않는다, 그거 슬픈 관계지... 아무 상관 없는 사이인거네. ^^

[그장소] 2015-08-30 23:49   좋아요 1 | URL
루키야넨코~♥ 좋지않아요?^^전 이런 차원이 화기애애~한 스토리가 좋아요!^^저도 양처나무꾼님과 동지애가 모락모락~~♥♥♥
 

8월 중순이 되어 여름 휴가를 다녀왔고,

책 몇권을 이렇게 저렇게 건드리고 있는데,

난독증에 걸린 것마냥 글이 비껴간다.

 

호킹지수 98.5%를 자랑한다던 황금방울새는 내 개인적인 기준으론 뻥인듯

1.5%라고 해도 믿어줄까 말까이고,

'도나타트'의 '황금방울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

 

'대지의 기둥'을 '켄 폴릿'의 '20세기 3부작 시리즈' '거인들의 몰락'은 1,2권 완간되었건만

'3부작 시리즈'라는 수식어에 눈이 멀어 여지껏 3부작이 완간되기만 기다리다 며칠전 주문을 넣었다.

 

그리고 '먹는 존재' '읽는 인간'이런 책들도 읽었고,

'야생초밥상'과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를 읽었다.

 

난 일본작가의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에 겐자부로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그것과 인간으로서 존경을 표하게 되는 것은 다른 일,

제목 또한 내공을 짐작할 수 있게 '읽는 인간'이다.

 

먹는건 숨쉬고 살아가기 위해선 누구라도 해야하는 일이지만,

읽는 건 인간이 먹는 존재와 차별화 될 수 있는 특징이다.

 

살기 어려워지고 각박해진다고 하지만,

그건 알라딘서재를 비껴간 일들로 인식되었었다.

책을 읽는다는건,

등 따숩고 배 부른 후에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라고 생각했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잠 자고 쉴 시간도 부족한데,

책 읽을 시간이,

또는 독후감이나 리뷰를 끄적거릴 시간이, 어디 있으며,

책 얘기를 빙자하여 노닥거리거나 이웃 서재를 마실 다닐 시간이 어디 있겠나 말이다.

이건 육체나, 정신 모두에 적용되는 말이다.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서 책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단순히 그저 '먹는존재'를 넘어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처럼 나이 먹어가고,

깜박깜박 하는 기억력을 붙들어두기 위하여 기록으로 남기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 들어줄 귀를 위하여,

또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또는 자신의 지적 허영을 과시하기 위해,

또는 파워리뷰어를 가장한 지름신들도 있고,

책 얘기로 위장해서 진심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게 조금조금씩 엮여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더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는 박형규 님의 안나 까레니나 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왜 나만 이토록 아프고,

왜 나만 이렇게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사나 하지만,

어떤 의미로든 아프지 않거나 궁상 떨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통각을 느끼는 역치가 다르거나 궁상을 받아들이는 척도가 다를 뿐이지...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책 읽고 글을 쓰고 책이라도 낸다고 하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야 한다 생각했나 보다, 난.

그래서 실망감이랄까 상실감이 더한가 보다.

책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글을 써서 반성하고 돌이켜 나아지지 못한다면,

그럴거면,

책은 읽어 모하며...글은 써서 모하냔 말이다.

 

'먹는 존재'와 '읽는 인간'이 달라야 하는 까닭이고,

그동안 나의 난독증의 근원이라면 근원이랄 수 있겠다.

 

 

 

 

 거인들의 몰락 1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거인들의 몰락 2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행복하자 2015-08-20 19:21   좋아요 0 | URL
황금방울새 사놓고 못 읽고 있는데 더 엄두가 안나요~~ ㅎㅎ

sslmo 2015-08-20 21:06   좋아요 0 | URL
도나 타트 이 작가가 되게 철학적으로 글을 써서 켄폴릿과 비교해 보게 됐어요, ㅋ~.
저 지금 1권 후반부로 접어드는데, 막 재밌어져요.
트라이 투해보세요, 아자, 아자~^^

혜덕화 2015-08-20 20:59   좋아요 1 | URL
식욕과 색욕은 인간의 기본 욕망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 기본이 충족되고 나면
실체 없는 이름-我 , 내가 나라고 생각하고 규정지어 놓은 것들에 얼마나 휘둘리고 사는 지
보게 됩니다.
그것도 나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관계 속에서의 나를 실제하는 나로 착각하고 사는 거겠지요.
자신을 바로 보기가 참 어려운 일이구나, 타인의 삶을 통해 다시 느낍니다.

sslmo 2015-08-20 21:17   좋아요 1 | URL
혜덕화 님,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제가 요번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차치해 두기로 하고,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나를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는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였습니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아무리 그럴 듯 하게 얘기하는 듯 해도 그런 얘기는 그래서 공허한 법이지요.

cyrus 2015-08-20 20:27   좋아요 1 | URL
저는 글쓰기와 독서가 무조건 인생을 달라지게 만드는 행위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런 생각 속에는 독서를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지성의 독서론을 좋아하지 않아요. 성공에 초점을 맞춘 독서는 억지로 책을 읽게 하는 강제성이 느껴져요. ‘이 책을 읽어야 성공할 수 있어, 성공한 사람은 이런 책을 다 읽더라.’ 오히려 이런 문구가 독서를 멀리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나무꾼님이 독서와 글쓰기에 회의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도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sslmo 2015-08-20 21:32   좋아요 0 | URL
cyrus님, 이지성의 책들은 한권도 읽어보지 못해서 모라고 코멘트하기 어려운데요~--;(아이고, 땀나라~``)
저도 독서와 글쓰기가 인생을 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보지도 않고,
그런 의도로 하지 않은 말이란걸 님도 잘 알고 계시죠?
제가 얘기하고자 한것은,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되지 말도록 노력하자,
아니 적어도...
나를 재는 기준이나 잣대와 다른 사람을 재는 기준이나 잣대에 형평성을 가질려고 노력하자, 는 얘기였어요.

당근,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깜박깜박 하는 기억력을 붙들어 두는 것만으로도 완전 만족하는 단순한 타입이지만서도, ㅋㅋㅋ~.

AgalmA 2015-08-20 21:36   좋아요 0 | URL
<읽는 인간> 나왔을 때 신영복 선생님 <담론> 생각이 떠올랐어요. 세상풍파를 견디며 읽고 쓰며 살아온 거목들의 울림...시간되시면 살짝 비교 말씀도 부탁드립니다^^...혹 모두에게 실례일까요;

sslmo 2015-08-20 21:43   좋아요 0 | URL
언제 시간이 되면 `읽는 인간`도 리뷰로 써볼까요?
오에 겐자부로와 신영복 님은 완전 스타일부터 다르신데,
오에 같은 경우는, 읽는 해와 쓰는 해를 따로 분리해서,
읽는 해에는 2년이고 3년이고 한권을 집중적으로 읽는다고 하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세요.
한권을 읽어도 깊이 읽는 타입이라고 할까요?
책상에 앉아서 완전 몰입하고 연구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은 이분의 작품을 읽은게 없어서리~ㅠ.ㅠ

반면 신영복 님은 뭐랄까, 바닥을 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여유 같은게 느껴지죠~^^
팟케스트 방송<담론> 들어보세요, 느끼실 수 있을거예요.

AgalmA 2015-08-20 21:51   좋아요 1 | URL
<담론> 팟캐스트에서 신영복 선생님 목소리 듣고 박원순 시장 목소리랑 비슷하단 생각했어요ㅎ;
오에 겐자부로 책들 읽으면 이 분도 만만찮게 바닥을 친 분이란 생각이 든단 말이죠. 그런데 오에 겐자부로는 아무래도 소설가라서 그럴 테지만, 여유보다는 자신을 첨예함 속에 둔다고 할까요...작가란 무엇인가...참 형벌 같다고 할 밖에.

sslmo 2015-08-20 21:54   좋아요 0 | URL
저도 작가란 무엇인가는 읽었는데...그건 아무래도 인터뷰 집이다 보니 치열하다는 느낌은 안 들더군요.
박원순이라고 하시니 강용석이 떠오르는 것이...ㅋ~.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봐요~--;

프레이야 2015-08-23 23:31   좋아요 0 | URL
님, 휴가 잘 보내셨어요?
뜬금없이, 좋은 페이퍼에 므쓱해서 인사드려요^^

sslmo 2015-08-27 16:14   좋아요 0 | URL
전 그럼 밤낮없이 불쑥 인사드려야겠네요~^^
카카오스토리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그렇고,
한밤중이나 새벽이어서 알람이 설정되어 있을까봐,
조용히 되돌아나오기도 하는걸요~--;

프레이야 2015-08-27 19:02   좋아요 0 | URL
ㅎㅎ모두 알람 꺼놓으니 신경 안 쓰고 마구 날려도 좋아요 ~^^

yureka01 2015-09-02 12:37   좋아요 0 | URL
깊은 공감 !~~~~~~~~~~~~~~~~~~
 

언젠가 어떤 알라디너가 책 제목만으로도 보고싶어지는 책이 있다고 했는데,

내게 이 책이 그런 책이 아니었나 싶다.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말도 좋았고,

'책에 대한 책 이야기'라는 것도 좋았고,

난 책 한권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을 책을 얻게 되는 그런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서른 개의 키워드로 '삼백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왜 책고집인가?'라고 묻고,

본문에서 대답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책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고, 글은 나를 위로해 줬다!(23쪽)

가 되겠다.

 

20대 이후 10년을 주기로 갖가지 좌절과 불행의 시간을 맞았단다.

20대 말엔 극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나섰다가 나동그라졌고,

30대엔 하필이면 IMF 외환위기의 한 중간에 입시학원을 차렸다가 쫄딱 망했단다.

40대 후반에는 노숙인 인문학에 참여했던 걸 계기로 <빅이슈>라는 노숙인의 생계를 돕는 잡지,

창간 운동을 펼치다가 시쳇말로 모든 걸 날려버렸단다.

 

매번 다른 내용의 좌절이었지만 그때마다 그를 구원해준 건 책읽기와 글쓰기였단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어 고립감에 빠져 든 순간,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단다.

글쓰기는 고통을 잊게 해주었단다.

눈만 뜨면 도서관을 찾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읽은 뒤엔 꼼꼼하게 기록하는,

그렇게 읽고 쓰기를 수년간 반복했단다.

 

블로그에 서평을 꾸준히 올렸던 덕분에 책 열심히 읽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도서평론가'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계기가 되어,

그 후 10년 동안 줄기차게 방송활동을 했단다.

 

다시말해, 그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에게 글쓰기는,

'살아있음의 증거'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공부로서의 과정'이며,

인정욕구에 더불어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소통에 대한 의지'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책 표지의 그것처럼 내용은 '훅~!' 와닿았는지 모르겠지만,

찰싹 달라붙는 감칠맛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분명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가 모이지만, 모호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비평가만 몰려들 뿐이다.'

하는 '알베르 카뮈'의 <글쓰기의 힘>을 인용하여 그의 입장을 표명하는데,

불필요한 수식을 빼고, 채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이리저리 비틀고 휘젓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담은 간결한 글을 좋은 글로 친다.(18쪽)

 

결국,

'천천히, 거듭해서, 항상 질문을 던져가며 읽어라'라는,

그가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명확하게 전달되었지만,

그가 이 책에서 '나를 찾는 책 읽기', '앎을 찾는 책 읽기', '일상의 책 읽기' 라는 목록의 책들은

아쉽게도 내가 읽은 것들과 거의 겹치는 것들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책의 내용들을 친절하게 발췌하고 제시하고 있어서 새로울 것이 없었다.

 

알라딘 서재, 이곳의 다른이들 또한 다들 나 정도의 내공은 될 것으로 사료되는 고로,

그렇다면 이 책이 화제가 된 건,

SNS에서 <22인의 대권주자 품인록>과 <10대 그룹 촌철살인 한 줄 평>과 관련해서 였나 보다.

 

최 준영 님은 책고집이라는 둥, 新독서주의라는 둥의 말로 표현하지만,

난 이 책과 관련하여 SNS 이상 떠오르는 것이 없는고로,

이렇게 한마디 하며 마무리해야 겠다.

 

단련은 千日을 하고, 연습은 萬日을 한다.

그러나 승부는 일순간, ㅋ~.

 

 

 

 

 

 

 

 

 

 최준영의 책고집
 최준영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6월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5-08-06 19:02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하루에 책 한 권씩 읽으시는겁니까!!!

sslmo 2015-08-07 12:31   좋아요 0 | URL
아웅, 다락방님, 아니 락방님~!!!(저 요렇게 함 불러보고 싶었어요~^^)
제가 락방 님께 명함을 못 내미는데 무슨 말씀을요~!

전 일주일에 서너권을 읽으려고 하는데,
보통 한권정도 읽을만한 책과, 서너권의 그렇지 않은 책을 추려내는 것 같아요.

집에서 따로 보는 인문서적이나 과학서적은 어떤건 한달, 어떤건 1년도 걸리구요~ㅠ.ㅠ

책읽는나무 2015-08-06 19:16   좋아요 0 | URL
찰싹달라붙는 감칠맛 나는 리뷰 아니 독후감?은 님을 비롯한 알라디너들의 글만큼 좋은 글이 없는 것같사옵니다^^

sslmo 2015-08-07 12:39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라고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요~^^

다른 알라디너의 것은 몰라도,
제것은 형식도 없고, 경계도 없는 것이,
감상문 수준도 아니고,
걍 Feel 충만하여 쓴 느낌 정도라고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공을 안 들인다는 얘긴 아니고,
그때 그 순간의 느낌에 충실하려다가 보니,
나중에 봐서 영 아닌것 같고,
글이 늘어지거나,
그 얘기가 왜 적혀야 하는지 모르겠는 뜬금없는 얘기여도,
오탈자가 뒤늦게 보여도,
퇴고나 교정을 잘 안하게 되더라구요~ㅠ.ㅠ

yureka01 2015-09-02 12:38   좋아요 0 | URL
빌리 조엘..오랜만에 듣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좋아하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 독서는 새로울 것이 없고,

독서와 대구를 이루는 것이 글쓰기 일텐데,

글쓰기라고 하면 문학작품처럼 거창한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예전이라면 일기 쓰기와 편지 쓰기 정도,

요즘으로 치자면 독서 일기나 블로그 관리 따위를 그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정민'의 <오직 독서뿐>을 보면,

책만 읽는 바보로 알려진 이덕무는 독서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하고 있다.

(알라딘서재에도 '만병통치약'이란 멋진 닉을 가진 분이 계시더라, ㅋ~.)

그런데, 독서만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하기(또는 사유하기)와 글쓰기가 적절히 어우러졌을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과 치유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편지글은,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한사람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것으로 읽히는데,

그게 '어느 일부분이냐' 또는 '비교적 긴 시간이냐'가 차이점일 뿐이다.

이런 것들은 그동안 내게 주는 교훈보다 남의 사생활을 엿본다는데서 오는 께름칙함,

사람을 비교의 대상으로 놓고 보는데서 생기는 경쟁의식 따위 때문에,

썩 내키지 않았었다.

더우기 오래전에 쓰여진 편지글이기 때문에,

한분은 초등학교 선생님, 또 한분은 교회의 종치기라고 하셔서,

감동을 주기보다는 고리타분하고 교과서 같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지 모르겠는데,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오덕 님의 면면을 깨닫고 느꼈다.

사람이 배웠다는게 이런 거구나,

배워서 아는 걸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하신 분이 계시구나,

그래서 당신의 그것은 소박할지라도 큰 울림을 주는구나, 하는 것들.

 

권정생 님이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한데다가 가난하고 병까지들어 사람을 싫어했었다는건,

그리하여 그렇게 잔뜩 안으로 움추러든 그를 이오덕 님이 끄집어내주고 어루만져 줬다는 것을,

머리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마음을 여는 과정을 직접 쓴 편지 글을 통하여 보기 전까지는 실감할 수 없었다.

1년여라는 시간의 경과 동안,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더욱이 거짓말 잘하는 어른은 보기도 싫었습니다.(13쪽,197328일)'

라던 그가,

'아직 친구를 가져 보지 제가 이제야 친구가 어떤 것인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ㆍㆍㆍㆍㆍㆍ저 역시 현주 같은 동생(?) 잃어버리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숨김없이, 그러나 예의바른 사람 드물 것입니다.(107쪽, 1975년 4월9일)'

라는 변화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오덕 님은 그런 권정생 님에게 항상 위로와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물론,

권정생 님이 경험이 없어 놓치는 부분까지 간과하지 않고 세심하게 챙겨주는걸 잊지않는다.

선생님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는 분이 있다니 다행한 일입니다. 책이 나오면 상당한 부수가 나갈 것 같습니다만, 대중들의 유행 취미물이 아니어서 크게 팔리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동화란 것을 심심풀이 오락물로 읽는 백만 명의 독자보다 단 백 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들과 진실한 삶을 찾는 젊은이들이 읽어 주는 것이 더욱 기쁘고 보람 있는 것이지요.(58쪽,1974년 4월 30일, 이오덕)

이들의 관계를 보고, 운근성풍(風)고사의 장석과 영인이 생각났다.

1976년 4월에는,

'제가 못 배운 것도, 그리고 가난한 것도, 병든 것도 제 잘못이라면 너무도 억울합니다. 그런데도 역시, 책임은 제게 있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라고 했던 권정생은, 1977년 9월24일에는,

'지금부터라도 저는 인간학을 공부하겠습니다. 한 인간의 선행이나 악행은 모두 그 역사와 사회의 소산물이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한 살인 강도가 있었다면 그건 그 사회 모두의 공동 책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고 발전되고 성숙한 속내를 이오덕에게 내비칠 수 있게 된다.

 

처음엔 이들의 관계가 마냥 부럽기만 했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관계란 상호적인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장석이었으니 영인이었을 수 있는거다.

내 주변에 나의 장석과 영인이 없는 것을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손내밀어 그들의 장석과 영인이 되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배우지 못한 것이 제일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책 한 권을 읽는데도 사전을 펼쳐 놓고 봐야 되니, 글 한편 쓰는 데야 말할 나위 없지요. 그래도 자꾸 틀립니다. 어려운 말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쉬운 말로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계속 글은 쓰겠습니다. 앉아서 배길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무엇이곤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니까요. 아무와 얘기할 것이 없으니, 자연 책에 눈이 가고, 하고 싶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지요.(60쪽, 1974년, 5월6일, 권정생)

 

이 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본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책의 '교육성'에 관해서이다.

이건 내가 주변에서 '책같은 책을 읽으라'는 충고를 들을때마다 생각해보는 문제이기도 한데,

책이 약이 되고 치유가 되고 한다지만...매번 그런 목적성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냥 책이 좋아서 읽는 것이다.

책에서 뭔가 배울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그냥 시간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동화도 마찬가지이다.

'동화'의 '교육성'에 방점을 찍게 되면,

동화를 통하여 어떤 교육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만 치중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동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영역이 되어버리는데,

그렇게되면 '다른건 차치하고'라도 창작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한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동화에 대한 '교육성'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으로는 굳이 동화라는 이름을 의식하지 않고 글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왜 이렇게 부끄러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못 배운 것도, 그리고 가난한 것도, 병든 것도 제 잘못이라면 너무도 억울합니다. 그런데도 역시, 책임은 제게 있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ㆍㆍㆍㆍㆍㆍ(132쪽, 1976년 4월 26일, 권정생)

 

책은 그냥 읽으면 되는 것이지,

책같은 책을 골라 읽으라고 한들 만병통치약이나 치유가 되는 책을 읽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책의 경계가 명확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대신 이렇게 이오덕 님처럼' 삶이 책'이신 분들을 통하여 저절로 깨우치게 되는게 제대로 된 전인교육이 아닐까 싶다.

 

독서가 곰곰이 생각하기(또는 사유하기), 글쓰기와 적절히 어우러졌을때에라야만,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과 치유책이 될 수 있는 걸 명심하고,

방안에 앉아서 책만 읽지 말 것이고, 이오덕 님처럼 삶에서 실천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져야 겠다.

 

다른 사람들은 손편지 쓰기가 어떻고 로맨틱하고 알콘달콩한 것이 어떻고 하는 이 책을 읽고,

엉뚱한 것을 느껴서 좀 그렇긴 하지만,

 

하나는 제대로된 독서란 삶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에겐 왜 장석과 영인 같은 친구가 없나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손내밀어 장석과 영인이 되어주고 볼 일이라는 거다.

 

그동안은 책상 앞에 앉아 책만 읽는 다소 소극적인 타입이었는데,

이제 책상에서 일어나 실행으로 옮겨 보아야 겠다, ㅋ~.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8-04 19:35   좋아요 0 | URL
사유하기와 글쓰기가 일치되는 삶을 산다는 건 참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이 두 가지 행위가 서로 어긋나면 그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편이에요. 두 가지 행위가 어긋난 상태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곤란하게 되고, 애써 외면하려고 해요. 하지만 잘못된 격차를 받아들이고, 고쳐나간다면 사유하기와 글쓰기가 일치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sslmo 2015-08-06 17:52   좋아요 0 | URL
뜨끔하고 민감한 사안이예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겠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언젠가는 나아지고 발전할 것이고,
그냥 그렇게 외면하면 답보하고 마는 거겠죠, ㅋ~.

AgalmA 2015-08-05 01:45   좋아요 0 | URL
지, 덕, 예는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 글을 통해 또 확인합니다. 항상 실천이 문제겠지만요~_~;
만병통치약님을 기네스님이 치약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저도 치약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더라고요ㅎ 그런데, 기네스님이 그렇게 부르시는 특별함을 아끼고자 저는 그렇게 안 부르려고요^^
양철나무꾼님이 원하는 정도는 못 되겠지만 저는 양철나무꾼님의 장석이자 영인 같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더라도.

sslmo 2015-08-06 17:58   좋아요 0 | URL
그거 모르셨죠?
제가 혼자 님 닉을 `아~, 글마`는 말야 할때의 `아글마`로 부르는 거, ㅋ~.

아니, 근데 장석이랑 영인이랑 한꺼번에 다 하시겠다구요?
욕심도 많으셔라.
제가 나무꾼이니까 하나만 하셔도 될거 같은데,
왠지 이리되면, 제가 휘두르는 도끼에 콧등을 베이실까 부들부들 떨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는,,,
아이, 땀나라~``

페크pek0501 2015-08-06 13:58   좋아요 0 | URL
책은 읽어서 뭐하나, 나아지는 게 없는데, 하고 생각했던, 그리고 지금도 의문을 품고 있는 1인으로서
한 말씀 드립니다.
제 친구가 하는 말. - 자기 친척 중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있대요. 박학다식하대요.
그런데 문제는 타인을 이해할 줄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자기 중식적으로만 생각하고 이기적이라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고 남을 무시한대요.
그렇다면 독서를 해서 무엇하고, 공부를 해서 무엇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거예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책을 많이 읽어서 앎과 다르게 생활 속의 사람은 다른 경우를 보거든요.
그래서 책의 가치는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 라는 점에서 찾게 되더라고요.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독서만이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는 독서는 오히려 오만함만 갖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독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만드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sslmo 2015-08-06 18:03   좋아요 0 | URL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 할것 같아요.
님의 댓글이 오히려 저를 겸허하게 만드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독서는 차치하고라도,
공부라는 것이 말이죠, 책 속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오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파킨슨병 이렇게 하면 낫는다 - 꼭 알아야 할 치료법과 생활관리법, 환자 돌보기
조기호 옮김, 사쿠타 마나부 감수 / 리스컴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꼭 알아야 할 치료법과 생활관리법, 환자 돌보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다른 의료 관계 서적에 비해서 턱없이 얇고 일본 사람이 감수(일본 사람이 썼다는 얘기)했다고 해서,

대충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앞으로 이 출판사의 책은 믿고 신뢰하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읽어온 이런 책들은 건강 염려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듯,

대상도 모호하고,

일본 책을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용어도 통일되지 않아 혼란스러웠고,

누구를 독자로 설정하고 만들어지는지도 불명확하고,

때문에 막상 그런 질병에 걸린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웠었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그냥 의사의 말만 믿고 따를 수 있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정보의 홍수라고 할 정도로, 넘쳐나는 시대이니 그런 환자나 보호자들은 없다.

환자나 보호자도 그렇고,

의료인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환자 개개인의 기왕력에 맞춰 적응과 금기를 나누고 고려해야 하는데,

 

다른 책들의 경우, 설명이 없이 '~라 카더라'로 기술해 놓고 있고,

그걸 무조건 외우게 되니까 양이 방대해진다.

 

게다가 참 이상한 습성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은 알리랬다고 하면서,

이 사람 저사람에게 병을 떠벌린다.

그렇게 되면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정확한 의학지식이 아닌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병의 민간 요법까지,

심지어 사돈의 팔촌까지 총출동시킨다.

 

이 책의 좋은 점이기도 한데,

파킨슨병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정의 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뇌질환이나 뇌외상으로 흑질이 손상되어 도파민 분비량이 줄어들어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나,

향정신성 약, 위궤양 약, 구토억제제 따위의 부작용으로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향정신성 약, 위궤양 약, 구토억제제 따위의 복용 여부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필수적인 것이 되는데,

우리는 가족력이나 기왕력에 대해서 소극적이다.

 

파킨슨 병은 다른 노인성 질환과 마찬가지로 해를 거듭하면서 천천히 진행되는 병으로,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상태가 호전되고 증세가 가벼워지는 듯 보일 수도 있다.

약을 사용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고 방치하면 악화된다.

궁극적으로 호전이 아니라 유지를 목표로 한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goal을 너무 높게 잡으면 환자가 쉽게 좌절할 수 있고,

적정 goal을 알아야 가족과 환자가 하나가 되어,

기다리면서 지켜볼 수 있는 부분은 기다리고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파킨슨병 약과 함께 사용할 수 없는 약이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환자 또는 가까운 보호자가 약 이름은 몰라도, 어떤 종류의 약인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환자는 파킨슨병으로 알고 있는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약물 부작용도 있는데,

향정신성은 그렇다고 쳐도,

소화기약이나 위산억제제 변비약 정도는 흔히 아무 생각없이 먹게되는 약이니까 말이다.

 

내가 이 책이 좋은 책이라고 계속 설레발을 치는 이유는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택해서 꾸준히 하는 것은 다른 책에서도 언급할 수 있는 내용이고,

작은 동작도 천천히 정성스럽게 하는, 소근육을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파킨슨병의 전조 증상 중 하나가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집어내고,

목소리에 이상이 나타날때 당황하지 말고 꾸준히 발성연습을 하라고 권하는 것,

다시말해, 배로 복식호흡을 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웬만해선 쉽지 않은 일이다.

 

파킨슨병 환자와의 대화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얘기하고 있다.

파킨슨병 환자는 이야기할 때 말이 빨라지거나 반대로 도중에 멈춰버리기도 한다. 파킨슨병 환자와 이야기를 나눌때는 묵묵히 듣고만 있거나 그냥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소리를 내서 반응해주도록 한다. '응', '그래서?'와 같이 맞장구를 쳐주면 좋다. 듣는 사람의 이런 반응이 신호가 되어 환자는 이야기하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만약 대답이 늦어질 경우에는 재촉하는 표정을 짓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려준다.(123쪽)

 

이 책은 파킨스병 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유용한 이유이다.

지나친 도움과 간섭은 역효과이니,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환자로선 항상 도와주기만 하면 의지하느라 점점 더 할 수 없게 되거나,

간섭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 질 수도 있고,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가까이 있으면 간과하게 되는 것이 있을 수도 있으며,

너무 멀리 있으면 만일의 사태에 대처하기 어렵다.

자기 생활을 유지하며 환자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의 끝부분에 정부의 의료지원정책에 대해서 안내되고 있다.

일본 책을 번역한 것인데도, 이 부분은 우리나라 최근 자료다.

이것마저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니,

그때그때 효용에 맞게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에는 '대한 파킨슨병협회'가 있으니, 궁금한 자료는 공유하는 것도 좋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5-08-03 07:5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 지인 한 분이 파킨슨병 투병중인데..
혹시 책에 글루타치온 이야기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sslmo 2015-08-03 09:04   좋아요 0 | URL
아, 혹시 글루타치온 점적 요법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백옥주사로 알려진게 글루타치온이죠.

뭐든지 그렇지만, 몸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잇는게 제일 좋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고,
그걸 보충해줄 방법을 찾는 거겠죠.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다른 사람의 `~카더라`를 믿지 마시고,
그냥 주치의를 믿고 따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비로그인 2015-08-05 20:18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sslmo 2015-08-06 18:05   좋아요 0 | URL
뭘요, 매번 좋은 리뷰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