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헛돈 쓰지 마라 - 합리적인 의사 함익병의 경제적인 피부 멘토링
함익병.옥지윤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여러가지 면에서 나의 선입견을 깨뜨린 책이다.

그를 여러 방송매체에서 볼 수 있었던 고로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실력만큼이나 언변도 뛰어나다는건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런 책까지 냈길래 글솜씨도 뛰어난 줄로만 알았는데,

말은 잘 하지만 글은 그렇지 못한걸 잘 파악하고 있는 까닭에 일종의 인터뷰집 형태를 띄게 된 것이었다.

 

사람은 각자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데에 나도 적극 동의하는데,

예를 들어 인기만발하고 준비가 철저한 지승호 같은 사람이 인터뷰어였다면,

함익병에게서 이런 얘기가 아닌 정치관련 사안이나 사회나 환경 문제 따위에 비중을 두었을 것이고,

그의 피부에 대한 소신과 생각들을 끌어내기는 했겠지만,

불철주야 공부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맞추려 했겠지,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언어를 구사하여,

누구든 알아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이긴 힘들었을 것이다.

 

피부에 대해서 얘기할때, 명심할 사항이 하나 있다.

'피부는 흡수기관이 아니라 방어기관이다.'라는 것이다.

아무리 몸에 좋다는 것을 몸에 발라도 피부는 전혀 흡수하지 못하며,

만약 피부가 이런 것들을 흡수한다면,

세균이나 바이러스들도 피부 속으로 들어가서 세균 감염으로 죽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함익병, 그가 말을 잘하는지까지는 모르겠고,

그의 평소 말하는 스타일대로 쓰인 구어체를 구사하고 있는데,

다소 과격하고 파격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힌다는 것이다.

 

이걸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피부 건강은 정확한 정보, 합리적인 판단, 그리고 '제대로 된' 돈으로 얻을 수 있다는 거죠.(5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할때 좋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이 좋은 치료효과는 '비용대비효과'라는 수식어의 제한을 받는다.

 

 

그런데, 다소 과격하고 파격적인 느낌까지 드는 이 책과 그를 향하여 툴툴거릴 수 없는 이유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오래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비용대비효과'라는 말과 ,

무엇보다 피부로 인해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 피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매순간 삶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자는 말이,

획일적인 만인의 평등이 아니라,

제각기 개성에 따른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상대적인 평등 같아서 좋아 보였고,

내가 나이 마흔을 넘어 깨달은 가치관이랄까 삶의 방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듯 여겨져서이다.

 

부자가 되려면 저축부터 하고 남는 걸로 쓰는거고요, 건강해지려면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운동을 하고 학교나 직장에 가는 겁니다. 반드시 새벽에 운동부터 하세요.(53쪽)

부자가 되려면 저축부터 하고 남는 걸로 쓰는 거라는 말은,

남는게 없으면 쓰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부자들의 수중에 돈이 남는 일은 결코 없다.

돈이 남기 전에 새로운 저축 상품을 알아볼테니까 말이다.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하여서도 나랑 사고방식이 비슷하다.

세끼 밥을 잘 챙겨 먹고 있는 상황에서 인스턴트식품을 굳이 찾아서 먹을 이유는 없지만, 어떻게 하나 보니 찌개를 끓여 밥을 챙겨 먹을 시간은 안 되고 햄버거를 사 먹을 시간 정도는 된다고 하면 그냥 굶는 게 나을까요, 먹는 게 나을까요?ㆍㆍㆍㆍㆍㆍ식사를 거르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건강에 훨씬 나빠요. 그러니 그때 햄버거를 먹으면서 불안에 떨지 마세요. 몸에 해롭지 않을까, 방부제가 많이 들어 있지는 않을까, 살이 찌거나 여드름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고 먹으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오늘은 시간이 안 되니까 햄버거를 맛있게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기분좋게 드십시오. 행복하게 먹는 음식은 우리 몸에 좋은 음식입니다. 그렇지만 세 끼를 다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지는 마세요. 챙길 수 있으면 밥을 잘 차려 먹는 게 좋지만 바쁠 때는 가끔 그렇게 먹어도 된다는 겁니다.

음식을 피부에 발라서 피부가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에요.(65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토피 피부염이 오염된 도시 환경이나 인공적인 식품첨가물이 들어 있는 먹거리 때문에 생긴다고들 생각하죠. 정말 그럴까요?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아토피 발병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뉴질랜드와 스웨덴인데, 이들 나라가 정말 환경이 나쁘고 먹거리가 오염된 나라들인가요? 이두 나라는 공통적으로 과거에 이민자를 잘 받지 않고 고정된 인구 구성을 가진 나라예요. 다양한 인종들과 섞여서 아토피 유전인자가 희석이 돼야 하는데 고립된 채 아토피가 있는 사람들끼리 자꾸 아이를 낳으니까 유전자가 농축이 돼서 아토피가 많아진 거예요.ㆍㆍㆍㆍㆍㆍ물론 대기 오염이 아토피의 증상을 악화시킬 순 있지만, 우리의 생각처럼 큰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일부 환경보호론자들이 아토피라는 흔한 병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일방적인 논리를 만들어나가는 거고, 지금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렇다고 오해를 하고 사는 거예요. 제가 기분이 나쁜 건, 정확하지도 않은 의학 정보를 퍼뜨려서 왜 대중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냐는 겁니다.

그래서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값비싼 유기농 음식을 먹이지 않아서 아이가 아토피에 걸렸다는 비과학적인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ㆍㆍㆍㆍㆍㆍ그런 식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에게 질병을 갖다 붙여서 마음 상하게 하는 악질적인 이데올로기 장사는 하지 말자는 겁니다. 아토피는 체질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라서 재산의 정도에 관계없이 나타날 수 있고, 방부제가 없다고 하는 유기농 과자를 먹든, 방부제가 들어 있는 저렴한 과자를 사 먹든, 아이의 아토피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171쪽)

 

한가지를 손에 넣기 위해선 다른 하나는 양보하여야 한다.

양손에 쥐고 있다가 넘어지면 코가 깨지니까 말이다.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서 오랫동안 자주, 그리고 많이 술을 먹었다고 쳐요. 그럼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혹은 알코올성 치매가 오거나, 술로 인해 간이 상해서 일찍 죽을 수도 있겠구나, 예상을 하고 각오도 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정말 그런 병이 찾아들면 몰랐던 바도 아니니까 그저 받아들이면 돼요. 대신 남들이 오래 살면서 즐길 만큼의 술은 이미 다 마셨으니까 됐잖아요. 그런데도 막상 병이 생기면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싶고 억울한 심정마저 들어 그때부터 당황하거나 분주해지는 게 일반적인 모습입니다.(71쪽)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견디게 해주는 호르몬을 자쳬적으로 분비하는데 그게 바로 스테로이드 호르몬입니다. 스테로이드라는 게 합성된 약 성분이 아니고 원래 사람의 몸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이에요. 예를 들어 엄청나게 화가 나는 일이 생겨서 심장이 떨리고 혈관이 확장될때 우리 몸에서 스테로이드가 분비되면서 혈관이 늘어나지 않도록 조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ㆍㆍㆍㆍㆍㆍ몸의 정상적인 생리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호르몬이 바로 스테로이드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우리 몸에서도 스테로이드가 많이 만들어지는데,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테로이드도 끊임없이 분비되고, 결국 혈관은 계속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혈압이 올라가는 거예요. ㆍㆍㆍㆍㆍㆍ모든 건 양면성이 있어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나와서 우리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점은 참 좋지만, 그게 지속되면 부작용이 따르는 거죠.우리 몸의 작용기전이 다 그렇습니다.(187쪽)

 

이 책을 읽다보면, 모든게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마음 먹기에 따라 지금 있는 곳이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할 뿐더러,

삶에서 행복을 찾아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도 결정지어지는 것이니,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미리 예측하여 걱정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좌절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말고,

내 나름대로의 소신과 가치관을 가졌다면,

매순간순간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도 좋겠다.

 

나이드는게 아름답고 좋은건 그래서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5-10-23 16:22   좋아요 0 | URL
소개해주시니 저도 이 책 읽어볼게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sslmo 2015-10-28 14:59   좋아요 1 | URL
날이 갑자기 추워졌어요.
맘 가난한 사람 얼어죽기 딱이에요.
우리 옷이라도 따땃하게 입고 다니자구요~^^

2015-10-23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10-28 15:02   좋아요 0 | URL
전 게을러서 피부에 양보 몬하던 1人이예요, ㅋ~.
얼굴에 책임지는건, 마흔부터라던가 그렇던데...
님이 동안이어서가 아니라,
아직 마흔이 안 되어서, 가 아닐까요?

괜히 동안이라는 사람보면 딴지가 걸고 싶어지는 놀부심뽀의 아줌이~, ㅋㅋㅋ~.

알케 2015-10-23 22:25   좋아요 0 | URL
함익병 ..ㅎ 이 아저씨 재밌죠.
저 하고도 일 하나 같이 할 뻔했는데.

sslmo 2015-10-28 15:09   좋아요 1 | URL
전 이렇게 얼굴 허여멀건하고 키는 멀대 같이 큰,
거기다가 흰밥 먹고 쉰소리까지하면 진짜 밥맛인데~(,.)
제 취향은 아니지만 책은 재밌습니다~^^
 
북유럽 스타일 실용 소품 - 재봉틀로 만드는
박정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어디선가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라는 광고를 보고 아이디어에 감탄을 한 적도 있지만,

그만큼 여러가지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게 집이고,

사람들의 스타일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중점을 두는 기능도 다 다르게 마련이다.

 

이쁘고 아기자기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련되고 모던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먹고 사는데 치여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 대로 꾸미고 사는건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심플하고 젠틱한 스타일이 좋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특별한 스타일이 없어서 하는 대외적인 멘트일 뿐이다.

 

요즘 인테리어 책을 보거나 소품 따위를 구입하려 할때 자주 접하게 되는 말이 북유럽 스타일이다.

그냥 '북유럽 스타일'했을때는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한마디로 정의해보라고 하면 머뭇거리게 되는 터라,

책제목 '북유럽 스타일'에 혹해서 구입하게 되었다.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아름답고 완벽한 집을 짓는 것이 목표라면 이탈리아인 건축가, 독일인 기술자, 영국인 정원사를 고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집의 인테리어는 누가 뭐래도 북유럽의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고로,

'인테리어'하면 '북유럽스타일'이 대세인건 알겠지만,

그 북유럽스타일을 한마디로 단정지어 말하기엔 추상적이어서 너무 방대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에선 몇가지 원칙으로 '북유럽스타일'을 정의하고 있는데,

원칙1 나무 ㆍ산 ㆍ꽃 등 자연을 모티프로 한 패턴

원칙2 동물무늬 원단

원칙3 기하학무늬 원단

원칙4 나무, 가죽 등 자연 친화적인 소재와 믹스&매치

이 그것이다.

 

'재봉틀로 만드는' 소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나와있는 '북유럽스타일의 실용소품'들은 손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인데 하나 같이 예쁘다.

패턴이 만들기에 까다롭거나 한게 아니라,

원단의 색감이나 무늬에 따라 '북유럽스타일'로 거듭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브랜드의 특징을 알아뒀다가 원단에 적용하면,

손쉽게 '북유럽스타일'의 인테리어로 변신을 시도할 수 있겠다.

 

그런 원단을 구할 수 있는 곳을 보너스로 알려주고,

책의 뒤에는 또 다른 보너스로 도안이 딸려있다.

확대를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재봉틀로 소품을 만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도안 하나하나가 다 돈이고,

이 도안들의 정확도에 따라서 완성품의 정교함과 마감처리의 깔끔함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잘 모르지만 북유럽이면 좀 추운 곳일거 같은데,

원색을 다채롭게 배열해서 따뜻하면서 환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이래저래  책값 이상을 하는 책이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5-10-19 19:46   좋아요 0 | URL
원형본이 실제 크기라면 좋을텐데, 양철나무꾼님 말씀처럼 그건 좀 아쉽네요.^^; 그래도 좋은 점이 많은 책처럼 보입니다.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sslmo 2015-10-23 16:2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직접 바느질을 하는 사람들끼리라서 그런지 서니데이님과 찌찌뽕이네요.
암튼 너무 예쁜 원단들이 많이 나와서 완전 지름신이지 뭐예요~ㅠ.ㅠ

하늘바람 2015-11-24 13:48   좋아요 0 | URL
이쁩니다용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금(불타는 금요일밤)의 뜻을 아냐고 물었더니, 불허하다와 같은 의미쯤으로 생각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언어를 문어체로 사용하기를 즐겼는데,

유독 '허한다'와 '금한다'는 그에게 잘어울려서 은근 그런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곤 했었다.

오늘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의 '광야를 달리는 말'이라는 꼭지를 읽다가 그가 생각났다.

"요사스럽다. 곡을 금한다." 내 아버지한테서 배운 말투였다. 여동생들은 질려서 울지 못했다.(33쪽)나,

"너희는 배산임수를 모르느냐"(40쪽) 따위의 말들에서 그가 빙의한듯 겹쳐졌다.

 

'광야를 달리는 말'처럼 호방함을 흉내내었지만,

그리하여 쿨한듯 행동했지만 속 마음은 누구보다도 다정다감하였을 듯 하다.

 

 

내게 김훈은, 김현과 더불어 깔끔하고 명징하여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의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여우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감정이 넘치지 않고 똑 떨어지는 것이,

큐싸인 나기 바로 전까지 전화통 붙들고 깔깔거리다가 막이 오르면 눈물을 뚝뚝 떨구는 베테랑 연기자처럼,

독자를 자신의 의도대로 몰입하게 만들 수 있는 소설가라고 생각했었다.

너무 완벽하면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그의 산문들 또한 소설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따뜻한 온기를 가진 것이 숨통이 트이게 한다고 해야 할까?

내게만 그런지도 모르겠다. 

암튼, 난 그가 아직도 글을 쓸때면 사각사각 연필을 깎아서 원고지에 쓴다는 것이,

커피는 케냐AA를 즐긴다는 것이, 좋았었다.

내가 결정을 잘 못하는 병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천안 삼거리에 걸린 능수버들처럼 '이것도 흥~, 저것도 흥~' 만사 오케이하는 사람들을 보면 수더분해서 좋아보이는게 아니라, 줏대가 없어 희미하게 보이기까지 하는걸 보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라면을 끓이며'의 표제글이라 할 수 있는 '라면을 끓이며'를 보면,

깔끔하고 명징하여 군더더기 없는 문장력은 그대로인데 따뜻함이 배어있다.

 

나는 센불로 3분 이내에 끓여낸다. 가정에서 쓰는 도시가스로는 어렵고, 야외용 휘발유 버너의 불꽃을 최대한으로 크게 해서 끓이면 면발이 붇지 않고 탱탱한 탄력을 유지한다.ㆍㆍㆍㆍㆍㆍ물이 넉넉해야 라면이 편안하게 끓는다. 수영장이 넓어야 헤엄치기 편한 것과 같다. 라면이 끓을 때, 면발이 서로 엉키지 않아야 하는데, 물이 넉넉하고 환산 터지듯 펄펄 끓어야 면발이 깊이, 또 삽시간에 익는다. 익으면서 망가지지 않는다.(29쪽)

 

이 책은 그렇게 '라면을 끓이며'로 가볍게 시동을 거는 듯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얘기들이 가득하다.

밥 얘기, 삶 얘기, 목숨 얘기가 나온다.

돈에 관한 얘기도 나온다.

열대밀림 속에서 무위자연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 말은 허망해서 그야말로 무위하다.ㆍㆍㆍㆍㆍㆍ자연은 인간에게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지만 인간은 우호적이지 않은 자연을 적대적으로 느낀다. '무위'는 자연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손댈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열대의 밀림은 가르쳐 주었다.(80쪽)

 

자연을 인간이나 삶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했던 내게,

자연과 인간이 친화적인 것이 아니라 적대적이란 얘기는 무척 충격적이었지만,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볼때 '인간을 위한'이나 '인간에게 이로운'이란 자연에 친화적이거나 공생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는 인간 중심의 편협한 사고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평상시 깨달았던, 글쓰기도 그렇고 독서도 그렇고 경험을 수반해야 의미가 있다고 했던 것과 관련,

나도 그렇지만 김훈 또한 몸을 움직여서 일하는-소위 노동이라고 하는 일들에 익숙하지 않은 타입인 것이 글 곳곳에서 드러나서 겉도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것이 그로 하여금 노동을 숭고하게 보이게 하고 숭배하는 것으로까지 비춰지는데,

노동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게 아니라,

지나친 숭상은 자리매김이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듯 여겨져서 아쉬웠다.

 

그 노동이라는 것이 과연 지휘자도 없는 오케스트라에 비견 될만한 것인지,

암벽등반가와 선원들의 그것과 소방관들의 소방호스를 연결시켜도 좋은 것인지, 말이다.

 

그외에도 세월호며 여자가 7까지 번호를 달고 이어지고 손과 발 온통 좋은 글 뿐이다.

일독을 권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단다.

여기에 내가 한마디 첨언하자면,

내자신의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 그리 많이 돌이킬 일도 그리하여 뉘우칠 일도 없지 싶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조금쯤은 슬프고 조금쯤은 누추한 것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거기다가 때론 케냐AA 커피처럼 씁쓸하고 알싸하기도 하고,

때론 퉁퉁 불은 라면 면발 같이 퍽퍽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행복하자 2015-10-15 18:49   좋아요 1 | URL

이제 막 유레카님 글보고 왔는데 또 라면을 끓이며가 떠서 내 눈이 잘못 됬나? 했어요 ㅎㅎ

저에게 김훈은 소설보다는 산문이에요~ 말씀하신대로 산문에서는 무뚝뚝하지만 숨겨진 온기가 느껴지는 느낌이라서요~~ ^^

caesar 2015-10-15 19:14   좋아요 1 | URL
소설보다 산문이라는 데 저도 공감합니다^^

sslmo 2015-10-19 14:12   좋아요 1 | URL
누구나, 특히 이곳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비슷한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아요, ㅋ~.

반갑습니다, caesar님~^^

yureka01 2015-10-15 19:07   좋아요 2 | URL
ㅎㅎㅎ 방금 리뷰 올렸는데.묘하게 교차되었네요.^^..

잘읽었어요 ^^..

정말 뉘우쳐야 할 사람은 안뉘우치는데,
작가들은 왜이렇게 뉘우침이 점점 늘어나는건지 말이죠..^^ㅎ

sslmo 2015-10-19 14:14   좋아요 1 | URL
리뷰가 그렇게 멋지면 어쩌라는 거예요, 췟~(,.)
저도 님 완전 멋진 리뷰 잘 봤어요...ㅋ~.

[그장소] 2015-10-16 04:29   좋아요 0 | URL
전체보단 부분 부분 맘에들어 어머나...하다가..케냐 AA에 홀딱 넘어가 버리는 ...이 가벼움 ㅡ아 ..이 글의 부분이 그렇다함이 아니고 저는 워낙 산문을 안좋아 했다는 말 이랍니다 ㅡ^^

sslmo 2015-10-19 14:16   좋아요 1 | URL
저는 김훈은 `자전거여행`이 시작인지라...ㅋ~.
그 자전거여행을 읽고 자전거가 타고 싶어 어쩌지 못해,
한때 머리를 프랑켄슈타인으로 만들었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죠~^^

[그장소] 2015-10-19 15:00   좋아요 0 | URL
아하핫 ~ 왜..에세이를 경원시했나 몰라요.
너무 빠져들까봐..그 사람의 생활관이 대게 보이곤 하잖아요. 그래서 안보면 싶은 것도 보이니 그랬는데. .저는 하루키 ㅡ달리기를 말할때.. 그 에세이에서 그냥 에세이 자체를 받아들이자..내 고집 내려놓고..그랬어요. 전설은 못되지만 양철나뭇꾼 님 덕에 제가 웃다 갑니다.

sslmo 2015-10-23 16:22   좋아요 1 | URL
님께 소소한 웃음이라도 드릴 수 있었다니,
이 댓글의 덧글도 선방이었네요~^^

프레이야 2015-11-22 08:37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과 동시 당선이군요. 축하 더블로 드려요.ㅎㅎ
꼬들한 면발 좋아하시는 거, 저랑 같아요.
퍼지면 어쩐지 서글프지요.

yureka01 2015-11-22 09:42   좋아요 1 | URL
외우.그러게요.축하축하...역시.ㅎㅎㅎ 적립금은 벌써 또 책에 투자되는 흡족함이 제일 좋더군요..어제 밤.또 라면 먹고 퉁퉁 불었어요.ㅎㅎㅎ
 

 

처음부터 망설임이나 굴곡 없이 한길로만 가는 탄탄대로의 그것이라면 거칠 것은 없겠지만 재미는 없을 것이고,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어느 길로 가야할 지를 몰라 좌충우돌 망설인다면 그건 또 너무 가벼워서 경박할 것 같다.

그렇게 그렇게 적당히 흔들리고 좌절하기도 하고,

퍼질러 앉아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떨고 일어나 앞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는 게 인지상정일게다.

한때 김탁환을 정말 좋아해서 김탁환의 그것이 나오는 쪽쪽 읽어댔지만,

어느 순간을 경계로 애정이 식었었다.

그때가 아마 백탑파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었던거 같은데,

그속의 박지원이고 이덕무, 이옥 등의 글들이 인용되는 것을 보고는 창작이 아닌 모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프로필 란에 붙는 소설가 말고 이야기수집가라는 수식의 의미를 이해 못했던 셈이다.

 

이제는 어설프게나마 그의 독서 방법과 글쓰기 방법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책을 부르는 책'이란 소제목도 그렇지만,

<아비 그리울 때 보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겠다.

세상엔 책상에 앉아서 엉덩이의 뚱뚱함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별을 보기 위해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는 행위를 해야 하는 법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책을 읽기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개인적인 체험에서 세대의 경험으로 확장시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하는듯 보인다.

세월호 관련 행사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고,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의 SNS에 적극 참여하고,

핵폐기물 문제에도 관심을 보이는데, 탈핵의 입장만이 아니라 친핵의 논리에도 관심을 보인다.

서민의 기생충열전을 읽으며 생물에 감정이입(54쪽)을 얘기하길래,

이 모두가 정치적 활동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드래곤'의 '삐딱하게'와 '강산에'의 '삐딱하게'를 대조하면서,

작가란 공직자들의 공적인 발언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말들을 믿지 않고 되살필 운명을 타고 났으며,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정치적 활동들이 아니고 작가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않는 이들의 삶을 조사하고 관찰하여 정리한 후 이야기로 담는 이가 또한 작가다.(63쪽)

법칙을 이끌어내는 건 경험이다.(109쪽)

 

필사의 핵심은 공감과 자발성(82쪽)이라고 하며,

결혼한 딸이 아우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친정에 와서 '임경업전'을 베끼다가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버지가 소설 애독자인 딸을 위해 종남매와 숙질까지 불러 함께 필사를 마친 뒤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단다.

'아비 그리운때 보라'

 

아무래도 감동적이었던 것은, 혜초의 여정을 그대로 되밟아 그려낸 소설 '혜초'의 그것과,

'글도 춤도 결국 발바닥으로 시작하는 것이다'의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을 위한 그의 행보였다.

 

굳이 이 책을 분류 하자면 책을 읽은 서평이나 독후감 모음집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뿐만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조금 다른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 한종류로 통일한다고 하여 논란이다.

김탁환 같은 소설가도 글을 개인적인 삶을 고백하는 사소설 형식으로는 쓸 자신이 없다고 하는걸 보면,

글은 어떻게 쓰이고 읽혀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그의 글들이 세대의 경험을 감당할 수 있는지, 의 여부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의 몫은 아닐 것이다.

빛이 있어야 그림지가 있고, 새벽이 있어야 황혼이 있으며, 전쟁과 평화, 상승과 몰락을 다 경험해야 하듯이,

개개인의 삶이 모인 역사라는 것도 한 종류로는 제대로 된 역사라고 할 수가 없다.

 

 

김탁환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인용하며 책을 이렇게 끝맺고 있는데,

읽는 내내 같이 아프다.

 

ㆍㆍㆍㆍㆍㆍ 츠바이크는 그림자를 앞세워 지나갔고, 나는 이제 내 그림자를 돌아보려 하는 것이다. 갈 길이 멀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내 앞에 나의 그림자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이번 전쟁의 뒤에 지난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음을 보았던 것과 같았다. 그 그림자는 내내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가 밤낮으로 나의 모든 생각 위를 떠다녔다. 아마도 그 그림자의 어두운 윤곽은 이 회상의 書의 많은 페이지 위에도 드리워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그림자는 궁극적으로 빛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벽과 황혼, 전쟁과 평화, 상승과 몰락을 경험한 자만이, 그러한 인간만이 진정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의 세계』,551~552쪽

  

 

 

                     

 아비 그리울 때 보라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5-11-24 13:51   좋아요 0 | URL
김탁환 작가는 제목도 참 잘 지어요.
 
사부의 요리 - 요리사 이연복의 내공 있는 인생 이야기
이연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누가 나에게 좋아하는 요리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박찬일이라고 대답하지만,

제대로된 대답이 되지않는 이유는 그가 만든 요리고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백년식당이란 책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가 추천하는 식당들을 가서 먹어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맛이 있을때도 있고 내 입맛에 영 아닐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쓰는 글만큼은 언제나 맛깔스러워서 혹하게 되는데,

이 책도 본문보다 '아이고, 형, 연복이 형'이라는 '추천의 글'을 더 열심히 읽었다는 걸 조심스레 밝힌다.

 

텔레비전에서 그를 몇번 보고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며 멋지다고 생각했었지만, 박찬일이 쓴 '추천의 글'을 볼때까지만 해도 나의 선택을 신뢰할 수 없었다.

요리 뒤로 그가 인사를 나왔다. 꾸깃꾸깃한 싸구려 조리복 상의에 아무렇게나 입은 낡은 청바지, 요리 모자 삼아 대충 눌러쓴 게리슨모, 게다가 앞주머니에는 누런색 말보로 담배가 떡하니 꽂혀 있었다.(5쪽)

그와의 첫만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데,

나를 혼란스럽게 한건 꾸깃꾸깃한 싸구려 조리복 상의나, 요리사의 자존심이라는 모자를 아무거나 대충 눌러쓴 때문은 아니었다.

음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감각이 그렇지만 미각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라, '앞주머니에 꽂힌 누런 말보로 담배란 단어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이 둘의 첫 만남이 십년도 더 전의 일이고, 담배를 끊은지가 13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계속 그랬다.

책을 읽으면서 이십대에 축농증 수술을 잘못 받아 후각이 마비되어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요리사로서 그가 지키는 철칙에 관해 읽고나서야 '역쉬~, 나의 사람보는 눈은 틀림없구나. 음화화화~'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가 요리사로서 지키는 철칙은,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 내 배가 부르면 미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예전에는 피웠는데 어느 날인가 담배가 혀를 텁텁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어 끊어버렸다.

폭음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3가지인데 다 미각과 연관된 것들이다.

 

언젠가 김제동의 모친이 '가식도 10년이면 예절로 봐주어야 한다' 고 했다던게 떠올랐다.

처음엔 가식이었다 하더라도, 몸에 익어 버릇이나 습관이 되어버리면...성격이나 본성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미 일텐데,

그런 의미의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이 참 좋았었다.

다른 요리책들처럼 레시피를 공개한 책이 아니어서 좋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가 직접 썼다고 폼잡지 않고 녹취했다고 고백해주어서 더 좋았었다.

솔직히 중화요리라는게 레시피가 있고,

그 레시피를 고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맛이 똑같이 나는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지만 말이다, ㅋ~.

 

 

암튼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엿본 것은,

43년 경력을 넘어 이 시대가 기억해야 할 땀과 맛을 일깨워준 중화요리사 이연복의 인생이야기 였다.

물론 세월이 세월이니 만큼 생략되고 미화되고 각색되었겠지만,

그래도 한가지 일을 43 년동안 했다는 것은,

기술자 장인의 경지를 넘어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킨 자의 내공이 느껴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난 개인적으로 달인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게 숙련된 자의 매너리즘으로 비춰져서 였다.

그런데, 이연복 님이라면 달인이 아니라 달관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에 그가 하는 얘기들이 요리와 관련된 얘기들인데도 불구하고 삶 전반에 관한 얘기로 읽혔고,

그렇기 때문에 주방의 후배들이 그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는 '사부'란 호칭으로 나도 불러보고 싶어졌다.

ㆍㆍㆍㆍㆍㆍ내가 만들었던 음식들은 한식, 일식, 중식이 섞여 있는 스타일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바로 중식이 갖고 있는 장점 때문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세계 어느 나라에나 중국 음식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쉽게 배달해 먹는 만큼 중식은 어떤 환경에서든 변형이 쉬운 음식인 것이다. 한식이나 이탈리아 음식만 해도 확고한 자기 스타일이 있는데 중식은 상대적으로 응용이 빠르다. 전 세계적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고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그 이유가 클 것이다.ㆍㆍㆍㆍㆍㆍ일본에서 직접 가게를 운영하면서 크게 느낀 것은, 열심히 하려고 시작했으면 사람들의 성향에 맞춰서 메뉴를 연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ㆍㆍㆍㆍㆍㆍ

일본에 있으면서 사람 대하는 법도 많이 배웠다. 친구 고르는 법부터 사람을 파악하는 법, 배짱 있게 사람들을 대하는 법까지 다양하게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욱하던 성격도 많이 죽었다. 대사관에서 일하던 시절만 해도 48킬로그램에 눈에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날카로운 모습이라, 대사에게 웃는 연습을 좀 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한번은 대사가 자기처럼 아침, 점심, 저녁에 거울을 보면서 미소 짓는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2~3개월 동안 내가 제대로 연습했는지 확인할 정도였다.(82쪽)

그가 일본에 있으면서 사람 대하는 법을 배웠다는 부분은,

나를 포함하여 사람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배우고 적용시켜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이게 그의 자존심이나 자신이 만드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관련한 올곧음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한다.

음식을 팔아서 매출이 오른다는 건 당연히 재료비도 예전보다 더 든다는 뜻이다. 그래도 매출이 엄청나게 올랐으니, 전보다 훨씬 많이 남기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런 걸 생각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장님이 그랬다. 나는 말해봐야 소용없는 사람들과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세히 이야기해봤자 이 사람에게는 변명밖에 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73쪽)

 

'주방사람들의 뒷모습만 봐도, 앞에 들고 있는 음식 온도가 몇 도인지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호통을 칠 수밖에 없다.(117쪽)'는 대목 같은 경우는 연륜이나 내공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그의 정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내 몸이 조금 편하자고 변칙을 쓰면, 그건 요리사가 아니다.ㆍㆍㆍㆍㆍㆍ그건 막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청결이 몸에 배야 하기 때문이다.(176쪽)

ㆍㆍㆍㆍㆍㆍ

"음식 만들때 가장 중요한게 뭐라고 생각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 있게 '간'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다 뒤이은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간도 중요하지만, 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나는 그때까지 그런 말을 입밖에 내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 그게 기본이었지.ㆍㆍㆍㆍㆍㆍ그러면서  내 마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음식을 대하는 마음을 표현하자면 '정확하게, 정직하게'이다.(177쪽)

 

음식 만드는 사람이냐, 장사하는 사람이냐?(242쪽)

 

간혹 병원이나 약국 등도 이익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 학교나 학원도 수업료나 강의료를 내야한다...따위의 얘기를 한다.

여러가지 생각이 복잡하지만 이연복을 흉내내어 한 마디만 하고 싶다.

사람 몸으로 가는 거,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거 갖고 장난치지 말자.

음식이 사람 몸에 들어 가서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5-10-07 18:36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이 제대로 보신 분이라면~~두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책 재미나겠어요~~
근데 오랜만이어요?
양철나무꾼님!!^^

sslmo 2015-10-19 14:21   좋아요 0 | URL
제가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이 있는게 아니라,
인생의 간난신고를 겪은 사람들 끼리 통하는 일종의 `찌찌뽕`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데 잘 지내세요, 책 읽는 나무 님~?

세실 2015-10-07 20:53   좋아요 0 | URL
모든 요리사가 음식=정직한 마음으로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요리는 영 젬병이네요...

sslmo 2015-10-19 14:23   좋아요 0 | URL
세실 님처럼 미모로우신 분이라면,
요리 정도 젬병인거... 용서할 수 있습니다~ㅅ!

저라면 세실님 얼굴만 쳐다보고 살아도 배부를 것 같거덩여~^^

세실 2015-10-19 17:05   좋아요 0 | URL
호호호 울 신랑은 전혀 그리 생각안하는게 문제죠?

해피북 2015-10-08 09:04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이세요~~양철나무꾼님^~^
저희 엄마두 어릴때부터 냄새를 맡지 못하셔서 엄마 코대신 식구들이 냄새를 맡아서 말해주곤 했는데 이연복님 사연듣고 엄마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ㅎ 43년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것. 저는 물질적 부유함보다 그런 가치관이 더 멋져보이더라구요 ㅋㅂㅋ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sslmo 2015-10-19 14:25   좋아요 0 | URL
전 달인이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삶이 배어있고 생활이 녹아있는 그런걸...이길 것은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