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인문학 -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는 사주, 풍수, 주역 강의
이지형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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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동네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의료기 체험장이나 약장사한테 다니시는 어르신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곳들이 뿌리 뽑히지 않고 성행 되는게 이상했었다.

어르신들이 아무리 세상물정에 어둡고 어리숙하더라도,

그것들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이나 가짜 약이라는걸 모르실 정도는 아니실텐데 하던 어느 날,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되었다.

"애들 아범이 날 그렇게 귀하게 대접해주겠어, 아님, 애들이 날 그렇게 재밌게 해주겠어?

 한번 가봐, 얼마나 재밌는 줄 알어?

 가서 한나절 웃다 오는 거지.

 재미 없어봐, 억지로 잡아 끈다고 가겠나~!"

 그러니 우리에겐 만병통치약이고 비싸도 하나 비싼게 아니지."

 

언제부턴가 인문학이 대세인가 보다.

출간되어 나오는 책 제목들을 보면 '무슨 인문학' 또는 '어쩌구 인문학'해서 단어를 잘 선별해서 끝에 인문학만 갖다 붙이면 하나의 새로운 분야가 뚝딱 태어나는 둣 했고, 때문에 이 책 제목인 '강호인문학'을 봤을때도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상술로 여겨져서 씁쓸했었다.

 

자연과학과 서양학의 대칭 관계에 있는 것이 인문학과 동양학이 아닐까 싶다.

인문학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동양의 전통적 가치를 지닌 사상체계들은 아직도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되고 있고,

이것들의 학문적 연구는 동양이 아닌 하버드 옌칭 도서관(20쪽)에 똬리를 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동양학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완전 소외되어야 하겠지만,

반대로 거리를 떠돌며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능력을 얻게 된다.

그걸 책에서는,

삶이 힘겨울 때마다 골목 후미진 곳의 점집을 찾아가는 동료들을 떠올려보십시오. 도서관의 동양학이 서구의 학문체계와 융합하고 소통하는 동안, 거리의 동양학은 은거 속에서 전통 가치들을 더욱 공고히 하며 우리네 삶을 위로해왔습니다.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해온 거리의 동양학에 '강호인문학'이란 이름을 선사했으면 싶습니다.(21쪽)

라고 하고 있다.

 

그동안 이쪽 분야의 책을 좀 찾아 읽었던 나는,

이 책을 만나기 위해서 돌아왔었던가 싶은 것이,

그동안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감격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이 책이 좋은 것은,

제목은 '강호인문학'으로 위의 조어방식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제목이고,

논리의 전개방식이 구태의연하지 않은 것이 설득력이 있고 문체가 세련됐다.

내가 애정하는 손철주에 버금가는 것 같다.

 

전에 읽었던 '새벽에 읽는 주역인문학'이란 책도 물론 좋았지만,

그 책이 좋았던 이유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였고,

문체가 다소 투박했고,

주역 한 분야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이 책은 사주, 풍수, 주역 전반에 걸쳐 고루 다루고는 있지만,

세상 또는 삶의 본질을 알게 되면, 이들- 사주, 풍수, 주역 따위를 경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얘기하는 듯 하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뭐니뭐니 해도 이 분이 멋졌고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싶었던 부분은,

이 책에서 언급되는 사주, 풍수, 주역 따위를 오늘날의 입장에서 접근하되 무조건 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취할건 취하고 보완할건 보완하여,

인간, 그 중에서도 소외되고 외로운 인간을 위하고 위로하는 인문학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략적인 사주보는 법에 대해서 안내하면서,

'思之思之 鬼神通知란 말을 하고, 머릿속으로만 아는 것과 직접 풀어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77쪽)'는 말도 한다.

 

사주의 원리란 한마디로 오행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덜고 더하는 것으로 '중화(中和)'라고 하는데,

중화를 위해 필요한 오행요소를 사주명리에서는 용신'(用神)'이라고 한다.

 

이걸 한의학적으로 얘기하게 되면 보법(補法)과 사법(瀉法)쯤이 되는 것이고,

중용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중화, 중용이 되어...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게 마냥 긍정적이기만 할까 싶은게,

고이게 되면 마침내 썩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차에,

 

이 책에선,

여기서 부족한 오행을 보충하고 과도한 오행을 쳐내는게 간단할 것 같아도 실전으로 가면 아주 애매해진다는 말과 함께,

용신을 쓰자면 지나치게 발달한 그 특성을 제압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면서(98쪽),

용신 무용론까지 내세우며 나의 기우를 일축시킨다.

 

아무리 빼어나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지식을 자랑하는 선에서 그쳤다면, 내가 이 책을 멋지다고 설레발을 쳤을 리가 없다~--;

그렇게 타인을 자신의 삶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때에만 자신의 사주적 한계, 즉 운명이 무너집니다.(116쪽)

라는 해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풍수에 대해서도 오랜 타성에서 벗어나 풍수가 가야할 길, 모색할 방법들을 소극적으로라도 제시하고 있다.

풍수를 복원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방법으로 우리산하를 활보하던 선승 집단들에게서 전해져 내려왔으나 이제는 지지부진해져 명맥을 찾을 수 없는 그곳, 풍수의 혈처들을 찾고, 풍수를 새롭게 이끌어 갈 기운을 찾아내자고 얘기한다.(193쪽)

 

끝으로 주역의 활용방식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하나가 점(占)이고 하나가 마음공부이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이제야 밝히는데,

내가 이 책의 저자를 멋지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역의 64괘 중 마지막 괘인 '화수미제'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어린 여우 한 마리가 먼 길을 돌아 목적지에 왔습니다. 이제 강만 건너면 됩니다. 마음을 다잡고 강을 뛰어넘는데, 다 건너갔다 싶은데 그만 꼬리를 물에 적시고 맙니다. 그 작은 여우는 소리 없이 물에 젖은 꼬리를 흠칫 쳐다 보니다.

ㆍㆍㆍㆍㆍㆍ강을 깔끔하게 건너는데 실패하고만 어린 여우는 이 세상 모든 미완성의 상징입니다.

저는 이 괘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이 세상에 완성은 없다는 얘기니까요. 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완성은 끝입니다. 더 이상의 순환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비극일 수도 있습니다. 64번째 미완성의 괘 덕분에, 주역의 괘는 돌고 또 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미덕은 완성이 아니라, 미완성입니다. 미완성을 끌어안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완성된 삶이라고 주역은 역설합니다.(244쪽)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기 때문에 영원한 도돌이이고,

인간을 비롯한 자연계의 모든 것은 자기유사성과 순환성을 가지고 일정한 패턴을 그리면서 반복을 되풀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사주, 풍수, 주역 따위를 자연계의 법칙에 적용시킨다 한들 크게 어긋나지 않을 지도 모르고,

난 그 가부를 알지 못하지만,

운명론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학문적인 호기심에서 헤아리게 될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쩜 그런 것일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행하는 일들이 그렇게 그렇게 자연에 가까워지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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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2-31 23:21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 님 도 새해 복 많이 짓고 받고 하셔요!^^
올 한해 고마웠습니다 ~^^

sslmo 2016-01-02 16:50   좋아요 1 | URL
새해 이틀째인데, 잘 지내시나요?
올해는 뭔가 새롭고 근사한 일이 생길 거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들지 않나요?^^

[그장소] 2016-01-02 17:28   좋아요 0 | URL
오...옵니다..뭔가 거대하고 큰 불길한...것이.. (응?)ㅋㅋㅋㅋ
메일이..잔뜩 ~~신간소식이군요.
에휴..올해는 가능함 빌려 보려고 단디 맘먹고 있는데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니...ㅎㅎㅎㅎ묵은 해와 새 해의 구분 방법은 그저 달력을 보는 것..엊그제의 나는 평행우주에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불길한 기운 대박 기운 잘 받고 가요~^^♡

caesar 2015-12-31 23:30   좋아요 1 | URL
새해복많이받으세요!^^

sslmo 2016-01-02 16:50   좋아요 1 | URL
네, 님도요~^^
올해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ㅅ!

프레이야 2015-12-31 23:40   좋아요 2 | URL
미완성을 끌어안는 삶이 진정 완성의 삶,이라는 역설이 마음에 듭니다. 태도면에서 무슨 일에든 여유를 주고 힘이 되는 말이기도 하네요. 새해 더욱 복 많이 짓고 받고 좋은 일 많이 합시다^^ 늘 감사해요 양철나무꾼님.

sslmo 2016-01-02 17:01   좋아요 2 | URL
작가님 답게 댓글도 완전 멋지신걸요~^^

제가 이제는 안달루시아를 극복하고 나아졌으니 이리 얘기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저도 한때는 제 스스를 들볶느라고 힘들었습니다여~--;(속닥~``)

물고기자리 2015-12-31 23:41   좋아요 2 | URL
부적을 보니 마음이 밝아집니다^^ 양철나무꾼 님의 좋은 글들을 종종 읽었는데 인사는 처음 남기는 것 같아요ㅎ 양철나무꾼 님도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세요^^

sslmo 2016-01-02 17:03   좋아요 2 | URL
올해 이 부적이 완전 인기더라구요.
친구가 보내준건데 님들과도 나누고 싶어서요~^^

물고기자리 님, 우리가 처음인가요?
근데 완전 오래된 친구인것 같아요.
자주 귀하게 뵈요~^^

yureka01 2016-01-01 00:20   좋아요 1 | URL
새해에도 늘 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sslmo 2016-01-02 17:05   좋아요 1 | URL
님은 두 몫이니 어깨가 무거우십니다.
글뿐만 아니리, 좋은 사진도 종종 올려주시면...이 곳이 더 풍성해지겠죠?^^

AgalmA 2016-01-01 01:31   좋아요 1 | URL
모든 교향곡의 끝은 미완성 교향곡이듯이...:)

sslmo 2016-01-02 17:20   좋아요 1 | URL
사작은 미약하였지만 끝은 창대하다는 말을 들어봤는데,
제겐 창대하게만 들렸던 모든 교향곡의 끝부분이 미완성 교향곡이었단 말이죠?^^

근데 제 귀는 저렴해서 그런가, 착해서 그런가 마냥 좋게만 들리던데...헤에~^_____^

붉은돼지 2016-01-01 01:38   좋아요 1 | URL
멋진 부적입니다
새해에는 로또가 되든 북불복이 되든 뭔가 될듯합니다^^
나무꾼님도 새해 꼭 로또 당첨되셍요 ^^

sslmo 2016-01-02 17:28   좋아요 2 | URL
저도 왕 멋지다 싶어서 이곳에서 같이 나누고 싶어서 올려봤습니다.
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세트로 당첨됐으면 좋겠네요~^^
근데 당첨이 되려면 복 또는 운이 굴러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로또를 구입해야겠죠, 불끈~^^

2016-01-01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6-01-02 17:32   좋아요 2 | URL
네, 님도요.
올해는 가끔 말고, 귀하게 종종 뵈요~^^

해피북 2016-01-01 08:16   좋아요 3 | URL
히얏. 새해 아침부터 이런 멋진 부적이라니요.ㅋㅋ 기운 팍팍 받아 즐겁고 행복한 일이 만땅 일거같습니다. 양철나무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sslmo 2016-01-02 17:36   좋아요 2 | URL
해피북 님의 `히얏`하는 기합이 막강 파워를 발휘할 것 같습니다.
기운 팍팍 주고 받으며 우리 올해도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보아요~^^
님도 당근, 말밥...복 대빵 많이 받으셔야 합니다~ㅅ!

비로그인 2016-01-07 11:36   좋아요 1 | URL
선생님, 부족함 많은 책에 멋진 서평 감사드립니다. <강호인문학> 저자예요. 주신 격려가 글 써나가는데 큰 도움 될 것 같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새해 좋은 일 많이 맞이하십시요~!

sslmo 2016-01-08 09:28   좋아요 0 | URL
저자 분이 직접 왕림해 주시고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죠~^^
제 글을 읽으실 줄 알았다면, `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 리뷰의 별점 좀 더 후하게 주는건데...말이죠~--;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건필하십시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동네서점의 유쾌한 반란
백창화.김병록 지음 / 남해의봄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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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였나?

이곳에 알라딘 중고서점 채용공고가 떴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내가 사는 동네여서 그런가 한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동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겠구나 싶은 것도 잠시,

이게 마냥 반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가본 중고서점은 종로점, 신촌점 두 곳인데,

그곳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이동하는 번화가였고,

다른 서점이라고 해도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서점이었지만,

이곳은 사람이 거주하고 터를 일구고 사는 동네, 즉 지역사회이다.

중간크기의 지역서점이 있지만,

이 동네를 오랫동안 지키고 명맥을 유지하는건 아무래도 동네 작은 서점과 헌책방이 있다.

그 중 한 곳은 내가 중학생 때부터 지나다니면서 봤던 곳이니 근 30년은 됐을 거다.

30년간 지역에 터를 닦아온 영세 서점의 기반을 흔들면서 대형서점이 거주 지역으로 깊숙히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왠지 자본주의의 횡포 같아서 씁쓸하다.

 

혹자는 자본주의의 논리라는게 원래 그런게 아니겠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형서점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가지고 생겨나고 성행하는 작은 서점이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뭐라고 할게 아니라,

동네에 그렇게 산재하는 서점들이 영업전략을 일신하고 매너리즘을 극복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점이라는 곳은 종이책을 매개로 하는 아날로그적인 곳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런 곳이라면 논리나 이성을 내세우기보다는, 정을 매개로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좀 과격하다.

 

서점 같은 업종은 더군다나 만인에게 열린 공간이다. 서점에 들어온 이들이 모두 책을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책을 살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공짜로 책을 보기 위해 입장한다고 해도 아무런 제지가 없을뿐더러 그런 행위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곳, 서점이란 이렇게 맘 편한 곳이라는 게 우리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다. 약속 시간 전 잠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들르는 곳, 친구랑 만날 곳이 저당치 않을 때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는 곳, 그런 곳이 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 시골 마을 작은 책방에서 서점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 서점이란, 그곳에 들어가면 반드시 책을 한 권이라도 사들고 나와야 하는 곳. 그곳에서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었거나 친구와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다면 더더욱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책 구매 행위로 치러야만 하는 곳.

  왜? 지금 모든 서점은 아사 직적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골목 안 작은 서점들은 이미 굶어 죽은 지 오래고, 이젠,ㄴ 대형서점, 중형서점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위기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서점들이 있어주어서 고마웠던 이들, 이왕이면 내 집 옆에 술집이 있기 보다는 서점이 있었으면 하는 이들이라면 서점에서 지갑을 열어달라는 뜻이다. 서점은 더 이상 고객의 주머니를 뒤져서라도 돈을 찾아내야 할 지경에 다다른 배고픈 좀비 상태가 되어버렸다. 무슨 수를 써서든 한 권의 책이라도 더 팔아서 수명을 연장해야 하는 중증 환자들인 것이다.(39쪽)

 

과격하고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 책을 주의깊게 읽다보면 이들이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하는 주거 지역이나 동네 골목, 지방의 산골마을에 있는 서점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 모색해야할 방법이라고 하여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대형서점과 작은 서점이 공존하며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함은 물론이다.

 

왜냐하면 서점이나 종이책이란 것은 아직까지는 정을 매개로 하며,

지식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감성도 같이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은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 불을 피우면 따뜻해'진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걸 누군가는 정이라고 할테고,

누군가는 지식뿐만 아니라 감성을 어우르는 것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힘, '품위'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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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9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9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타유 2015-12-29 18:11   좋아요 1 | URL
책방에 가면 책 한권씩은 사서 나와야죠. 다만, 서점 들어갔을 때 뭐 찾으세요는 안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

sslmo 2015-12-29 19:34   좋아요 0 | URL
근데 지역사회의 작은 서점들은 뭘 찾는지 물을 수밖에 없는 체계인것 같아요. 골고루 갖춰져 있지도 않고...
저는 책방에 가서 책 한권씩 사서 나오는건 글쎄요~--;
원하거나 관심이 있는 책이 있으면 사는거고,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거죠.
읽지도 않거니 관심 없는 분야의 책을 체면에 물려서 사들고 나오는건 베어넘겨진 나무가 아깝잖아요~--;

카타유 2015-12-29 22:17   좋아요 1 | URL
음. 체면일수도 있겠네요. 전 관심있는 책이 없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정 없으면 잡지 한권 사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네책방 아끼기라고 혼자 착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동네책방도 이제는 별로 없어요. 쩝..

서니데이 2015-12-30 21:56   좋아요 0 | URL
이제는 동네 서점이 많이 없어지기도 했고, 새로 생기더라도 주로 학생들 참고서가 많더라구요,
양철나무꾼님, 편안하고 좋은밤 되세요^^

2015-12-31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옛날에 나는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여기서 방점은 '살아 있다'는 것에 찍혀야 한다.

보거나 만질 수 없어도,

이 땅 위 하늘 아래 어딘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보거나 만질 수 없는 걸,' 안전거리를 확보했다'로 치환시켜 겸허히 받아들이려 했었다.

 

그러니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은,

감정을 공유하거나 공감하는데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내 자신을 세뇌시켜왔었다.

 

그런데 나이는 공평하게 먹어서,

내가 한 살, 또 한살 먹으면, 상대방도 한 살, 또 한살 먹게 마련이다.

나이를 먹으며 주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아픈 곳도 한 곳, 두 곳 생겨난다.

곁에 있으면 이마라도 한번 짚어주고, 배라도 한번 쓸어주고, 아니 손이라도 가만히 잡아줄 수 있을텐데,

떨어져 있어 마음이 번거로워지는 걸 에방할 수 있는...안전거리를 확보하는덴 성공했지만,

아프다는데 어떻게도 손쓸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어, 좌절한다.

'아프지 마라, 아프면 안된다'는 공허한 소리만 반복한다.

'롤랑 바르트'가 어떤 의미로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아프다.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직ㆍ간접 경험을 하게 되고,

경험한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만큼 식견도 넓어졌다.

한컷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고 짱짱했던 내가 느슨해지고 둥글어졌다.

이젠 포기하고 양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함부로 욕심내면 안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대학생 때 이모에게서 걸려온 전회를 받았다. 이모는 다짜고짜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부분을 읽어주었다. 내겐 딱히 와 닿는 부분이 없는 한 구절이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내게 이모가 말했다.

"죽이지 않냐? 세익스피어는 마흔이 넘어서 다시 읽으니까 진짜 좋네. 구절구절이 너무 좋아서 다 필사할 지경이야. 너는 어려서 모르겠지. 근데 진짜 ㆍㆍㆍㆍㆍㆍ!"

나는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세익스피어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그건 읽은 것일까? 마흔이 넘어 내게도 셰익스피어의 시간이 올까? 간절히 오기를 바랄 뿐이다.(32쪽)

김민철의 이모는 마흔이 넘으니 세익스피어가 다시 읽힌다고 하는데,

나에게 고전은,

한 번쯤 읽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거나,

어디에선가 줄거리나 내용만 주워 듣고는 읽었다고 착각을 하거나,

읽지를 않았으니 다시 읽을게 없다.

게다가 그동안 앞만 보고 내달려와서,

고전이 아니더라도 읽은 책을 묶혀두었다 다시 읽을 생각을 모했다.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시 읽고 필사할 수 있는 책을 갖고 싶다.

   결혼 후, 대구 엄마 집에 내려가서 엄마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치고, 남편은 엄마의 악보를 넘겨주고, 나는 아예 건넌방에 누워 그 소리를 듣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의 위대한 음악 선생님 두 명이 그들끼리 음악으로 교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먼 방에서 혼자 감격하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즐길 줄 아니까. 그 순간에 그 음악에 뛰어들 줄 아니까. 그 정도면 넘치도록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훌륭한 선생님 두 분을 옆에 모시고도 학생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고? 어쩔 수 없다. 그게 나다.(105쪽)

 

그리고 나도 김민철, 그녀처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즐길 줄 아니까. 그 순간에 그 음악에 뛰어들 줄 아니까. 그 정도면 넘치도록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라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한해의 끝에서 돌아보고 정리하고 새해를 계획해보자면,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이 말을 하려고 넘 멀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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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2015-12-29 01:20   좋아요 1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sslmo 2015-12-29 01:27   좋아요 1 | URL
넋두리인데 좋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__)

하늘바람 2015-12-29 01:25   좋아요 0 | URL
언니
서재 왔는데 언니 글 있어서 반가웠어여

sslmo 2015-12-29 01:30   좋아요 1 | URL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하남요?

누군가 아픈데,
아픈걸 해결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주변의 그들에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싶어 자괴감에 빠졌습니다여~ㅠ.ㅠ

서니데이 2015-12-29 01:3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도 아프지 마시고 건강한 연말 보내세요^^

sslmo 2015-12-29 01:31   좋아요 3 | URL
네, 서니데이 남 댁내에도 두루 평안하시길~!!!
어여, 주무셔요~ㅅ!

AgalmA 2015-12-29 02:07   좋아요 1 | URL
요즘 베토벤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데, 베토벤이 열렬히 좋아한 작가 중에 하나가 셰익스피어^^...곡을 쓰기도 했고.

sslmo 2015-12-29 14:59   좋아요 0 | URL
베토벤의 굿 프렌은 살리에르 아니었나요?
아니다, 모짜르트의 굿 프렌이다, ㅋ~.

그랬군요, 베토벤이 셰잌 아저씨를 좋아했군요.
덕분에 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꾸벅~(__)

AgalmA 2015-12-30 04:16   좋아요 0 | URL
살리에르는 베토벤이 음악작법을 잠깐 배웠던 선생님이었을 뿐 이후 친분은 없었어요^^

yureka01 2015-12-29 08:52   좋아요 1 | URL
하기야 면역력을 높이는 노오력도 없이 건강이 그냥 주어 지는 것은 유전뿐네요..
나이들수록 운동하고..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노오력...단지 노오력이 노오력으로 끝나지 않고
조금 즐기면..더 건강해지니까요.그런데 너무 안하기도 하고..그렇다고 너무 과잉이기도 하고..
뭐든 적당한 시간이라야 하는데..참 어렵..이 적적성의 노오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은데..
저도 사실 잘 못합니다 ㅎㅎㅎ

sslmo 2015-12-29 15:05   좋아요 1 | URL
언젠가 헬스를 하신다는 댓글을 본 것도 같은데...
무늬만 헬스셨남여?

근데 나이 들어 운동은 조금 즐기면 더 건강해지는 그런게 아니라죠.
필수불가결한거 라는데,
이 뚱뚱한 엉덩이를 어쩔거냐구요, 글쎄~(,.)

단발머리 2015-12-29 12:51   좋아요 1 | URL
저도 뛰어들고 싶어요.
음악에도 뛰어들어서 치다 만 소나타들도 마저 치고 싶고,
책들도.... 책들도 마구마구 읽고 싶네요.

고전이 다시 읽히는 시간이네요, 저한테도 그런 시간이예요.
읽기만 하면 된다는 ㅎㅎㅎ
행복한 연말 되세요, 양철나무꾼님~~

sslmo 2015-12-29 15:19   좋아요 1 | URL
저도요, 저도요.
음악에도 뛰어들고, 책에도 뛰어들고 하고 싶은데,
음반을 사고, 책들을 사 모으면...다 충족될거라고 착각하고 산다는~ㅠ.ㅠ

근데, 요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다보면,
예전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시야가 확 넓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돼요.
그 재미에 자꾸만 클래식을 찾게 된다는...ㅋ~.

님도 행복한 하루하루 되셔요~^^

해피북 2015-12-29 13:4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책들이 있는거 같아요. 이십대에 읽었을때는 뭐 이런게 다있노 했는데 삼십대에 읽어보니 아! 감탄사가 나오는 책이 말이죠. 하지만 이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게 슬프더라고요. 지극히 개인적일수밖에 없는 감정이라서요ㅜㅜ
그리고 양철나무꾼님을 올해 만난 중반까지 글을 자주 접할 수 있다가 후반기부터 드문드문 만나게 된게 참 아쉬웠지만 드물게 만날수록 더 곰삭은 맛이 나는 글이었어요. 깊이 생각하게 되고 느끼게 되는 글들 말이죠. 그래서 참 좋습니다. 올 한해 마무리 잘하시구 내년을 부탁드려요 으흐흐^~^

sslmo 2015-12-29 15:22   좋아요 0 | URL
이 짧은 댓글에서도...전 님을 무한 부러워 한답니다.
삼십대셨군요~!
좋을 때예요, 즐기셔요~^^

제가 젓갈은 못 먹는데, 곰삭다고 해주셔서 좋아요.
그렇게 나이 먹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님 글 참 맛깔나거덩여~^^

2015-12-30 0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병통치약 2016-01-03 21:21   좋아요 1 | URL
복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아니라 복 많이 지으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네요. 이제는 받을 나이가 아니라 지을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두고 두고 새기겠습니다.

만병통치약 2016-01-03 21:25   좋아요 0 | URL
(사실 저 새해인사글에 단 글인데 마우스 잘못 움직였는지 이 글에 남았네요 ^^)
 

1.

보사노바풍의 음악이 좋다.

사시사철 즐겨듣는 음악은 윤상의 '바람에게'이고,

겨울 시즌을 앞두고는 김광진의 '눈이 와요'를 듣는다.

노래 잘하는 '김범수'가 리메이크 하기도 했지만,

난 김광진의 목소리로 듣는 '눈이 와요'가 더 좋다. 

올해는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위해 기우제(祈雨祭) 아니 祈雪祭용 음악으로 아껴두었는데,

그러다가 까먹고 지나갔다~--;

 

올해 들은 크리스마스용 음악은 Bing Crosby & Martha Mears가 1942년에 부른 White Christmas다.

몇 번 되돌려 듣다보니,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영화가 연상됐다.

 

 

2.

(엊저녁의 럭키문)

 

'마이 페어 레이디'가 연상된 까닭은 이 노래 전반에 걸쳐 Bing Crosby가 Martha Mears를 리드하고 있어서 였는데,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피그말리온 효과'가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이다.

 

어찌 보면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여겨지지만,

관점을 살짝 비틀어보면 이 '간절히 원하는' 게 상호적이지 않을 때는 지독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버나드쇼의 '피그말리온 효과'까지 얘기하려면 너무 거슬러 올라가게 되니, 마이 페어 레이디의 꽃파는 처자만 놓고 얘기해보자.

 

꽃파는 처자는 신사의 노력에 부응하여 상류층의 억양과 발음을 완벽하게 익히게 되는데,

(원작자인 버나드 쇼는 사회주의자였고,) 그런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 주려고 한 것은,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는 교육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반면 꽃파는 처자는 귀부인은 어떻게 행동하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하느냐(어떤 대접을 받느냐)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작품 전반에 걸쳐 항변하고 있다.

 

3.

며칠 전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김도균을 보았는데,

예능프로를 같이 하고 있는,

상대파트너 양금석이 전화속에서 '김도균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 뒤,

'거기까진 좋은데 혼자 오래 살다 보니 옆에 사람을 챙기기보다는 자기가 우선이다.'라고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양금석이 챙김을 받아야 하는데, 김도균이 제대로 못챙겨줘서 아쉬웠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 해서...왠지 씁쓸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상대방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비춰 위치를 자리매김하며, 성장하는 동물이다.

 

'우린 대화가 잘 통한다. 그래서 좋은 거지 그 외에 감정은 없다. '라고 하는데,

상대가 이성이고 아니고, 를 떠나서,

아무래도 영혼의 찝찌름한 냄새랄까, 감성의 리트머스 파장이 비슷하면 동질감을 느끼게 되나 보다.

양금석은 그 외에 감정은 없다고 하는데,

난 대화가 잘 통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4.

 

 

 

 

 

 

 

 

 흐린 세상 맑은 말
 정민 지음 / 해냄 /

 2015년 12월

 

 

정민의 '흐린 세상 맑은 말'을 읽고 있다.

저자는 겉표지에서 마음은 멀리 달아나고 내 속에 괴물이 날뛴다고 하면서,

명청 지식인들의 말을 처방전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1997년에 다른 이름으로 출간되었던 걸 재출간했단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선가 봤었던 구절 같았고,

그래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절판된 지 오래된 것을 이번 참에 체재를 다시 흔들어 평설을 고쳐쓰고 편집도 대폭 바꿔 면모를 일신했다.(6쪽)'는데,

난 책이 거듭 태어나는건 형식이나 외형이 아니라, 내용이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체재를 흔들고 평설을 고쳐쓰고 편집도 대폭 바꿔 면모를 일신했다'고 해서 새로운 탄생이라고 명함을 내밀긴 좀 민망하지 않았을까?

 

돈 주고 산게 아깝지만 내칠 수는 없으니,

책을 앞뒤로 이렇게 저렇게 마구 넘기면서, 글씨연습이나 해야겠다.

 

한참을 '흐린세상 맑은 날'로 잘못 읽고 읊조리다 보니...

그러다보니 '흐린세상 맑은 말'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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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2-26 23:53   좋아요 0 | URL
오늘 눈이 조금 왔던것 같은데, 낮에는 다 녹았어요, 어제 저녁엔 슈퍼문이 뜬다고 해서 내다 보았는데, 저런 달이 떴는데도 구름이 많아서 흐린 하늘만 봤어요, 달이 반짝반짝빛나는 느낌이예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잘 이해하고 잘 맞춰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일것 같고요,
양철나무꾼님, 크리스마스의 짧은 연휴도 하루 남았어요,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2015-12-26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5-12-27 12:56   좋아요 0 | URL
흐린 세상에 맑은 말이 많이 필요한 세상이네.
기쁜 일이 많은 연말 되시게~

cyrus 2015-12-27 18:15   좋아요 0 | URL
정민 교수의 신작이 예전에 나왔던 절판본을 새로 펴낸 책이라길래 궁금해서 책 정보를 확인했어요. 그 절판본이 《마음을 비우는 지혜》였군요. 이 책은 구입 안해도 되겠어요. 그래도 구판과 한 번 비교해보고 싶어져요.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시선 37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1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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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이를 먹은 것은 헛먹은 것이고,

요즘에서야 제대로 옹골차게 나이를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의 기능이 서서히 퇴화를 하고,

그에 비례해서 포기할 것이 하나 둘 생겨나는 걸 온몸과 마음으로 실감하는 요즘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포물선을 그리며 서서히, 가 아니라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뚝 떨어지는 계단의 형태를 취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다른 모든 것들에는 무방비 상태일지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삶의 또다른 이면으로 받아 들이고 대비하려고 마음 먹었었고,

늘 죽음을 직시하려 노력했었다.

 

죽음을 직시하는 순간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체념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흔히 빛을 얘기할때,

어둠이 있어야 대조하여 빛이 난다고 얘기한다지만,

난 그 어둠과 빛의 중간의 어스름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이건...어둠과 빛이 아니라,

맑은 날을 기준으로 비가 오는 것에 대해서 얘기할 때 좀더 이미지를 객관화하기 쉬울텐데,

비가 내리는 것과 그 비가 내리다가 잠시 멈춘 그 순간이나 찰나 같은 경우 말이다.

 

그걸 책 뒷표지에서 함민복 님은 이렇게 얘기한다.

손택수 시인의 시는 일단 명징해서 좋다. 무슨 문제풀이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듯 난해함을 섬기는 작금의 유행 시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탁월한 중매쟁이다. 그는 늘 무엇과 무엇 사이에 관절 튼튼한 접속사로 존재한다. 그를 만나면 세계는 벽을 벗고 경계 이전의 알몸을 허한다. 서로 영통하는 길들을 내어놓는다.

'명징'이라고 하면 어려운 말처럼 들리니까,

경계나 나눔을 명확하게 구별한다는...뭐 그런 말 대신,

번짐이나 스며듬 따위의,

경계를 허무는,

경계없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경계'라는 말을 구체화시켜야만 경계를 허물 수도 있고,

그 '경계'가 생기기 이전의 '경계 (따윈) 없음'을 형상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수묵의 사랑

 

수묵은 번진다

너와 나를 이으며,

누군들 수묵의 생을 살고 싶지 않을까만

번짐에는 망설임이 있다

주저함이 있다

네가 곧 내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

경계를 넘어가면서도 수묵은

숫저운 성격, 물과 몸을 섞던

첫마음 그대로 저를 풀어헤치긴 하였으나

이대로 굳어질 순 없지

설렘을 잃어버릴 순 없지

부끄러움을 잃지 않고 희부연히 가릴 줄 아는,

그로부터 아득함이 생겼다면 어떨까

아주 와서도 여전히 오고 있는 빛깔,

한 몸이 되어서도 까마득

먹향을 품은 그대로 술렁이고 있는

수묵은 번진다 더듬

더듬 몇백년째 네게로

가고 있는 중이다

암튼,

목련전차에서도 그랬고,

삶에서 자연스레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예비하게 하는 그를 나와 같은 나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극점'을 통하여 그는,

그동안 '기준과 방향'이 있어야 비롯함과 말미함을 얘기할 수 있다고 했던 나의 생각 또한,

선입견이고 편견이라고 통렬히 깨부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극점

 

극점엔 동서남북이 없다

오직 마주한 방향만이 있을 뿐

눈 폭풍 몰아치는 극점이

극점에만 있을까

둘 데 없는 시선이

돋보기 속 빛처럼

골똘해지는 가로수

우듬지 끝

팔랑,

잎 하나 떨어진다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는 도로변

매미 울음소리도 따갑게 이글거리는 정오

내가 한점으로 가장 단순해진

극점

거기선 네가

지워진 모든 방향이다

 

이 '극점'이라는 말은 삶의 밑바닥을 맛봐야 날아오를 수 있다는 의미로 내게 읽혔다.

때문에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처럼 무의미한 말이 없는 것이고,

내가 있고 네가 있어야,

다시 말해 '기준점과 동시에 방향'이 주어졌을때 극점을 논할 수 있는 것이고,

바닥인 동시에 꼭대기이고,

끝이면서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일게다.

 

이렇게 읽어야,

함민복 님이 얘기하셨듯이 그의 그것들이 명징함이 된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기'를 보게되면 그는 명징함으로 내게 마법을 건다.

이건 햇살이 눈부셔 실눈 뜨고 바라보는 듯 보이지만,

실은 '떠도는 먼지들이 빛나'는 형상을 바라보기 위해 햇살을 향해 실눈 뜨고 바라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ㆍㆍㆍㆍㆍ

  나는 기억한다 타이어 바퀴에 착 감기던 땅의 굴곡을, 끔틀거리던 말잔등처럼 숨결을 따라 오르내리던 리듬을

  그 리듬을 어깨 위에 싣기 위해선 적당히 바람을 뺄 줄 아는 것도 내 쓸쓸한 나이가 가르쳐준 기술이다 너무 빵빵하면 엉덩이가 아파오므로, 길바닥과 나 사이에 부질없는 긴장을 불러오기도 하므로

  땅과 바퀴 사이애, 그리고 바퀴와 나 아이에 가장 알맞은 쿠션을 위해서는 부푸는 어느 지점에서 펌프질을 그만 멈추어야 한다

  짓눌려 있던 타이어 거죽이 툭툭 꺾은 무릎을 펴고 일어선다 발굽이 땅을 짚는가 싶던니 장딴지에 제법 힘이 실리면서 시무룩하게 내려앉아 있던 인장이 올라가는 그때,

  안장 위의 하늘도 덩달아 들어올려졌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기' 중 '일부')

'차심'도 좋았고,

'쥐는 것이 아니라 벌어지는 것이,/너무 벌어지기보단 살짝 오므려지는 것이/꽃에게 가는 길인 걸 알겠다'라고 읊는 '손바닥을 파다'도 좋았다.

'물수제비 잘 뜨는 법'은 너무 황홀하여 '떠도는 먼지들'의 형태가 아니어도 내내 반짝거릴 듯 하다, 좋다.

 

물수제비 잘 뜨는 법

 

1

물결의 미끄러움에 볼을 부볐다 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미끈한 돌을 찾아 한나절쯤을 순전히

길바닥만 보고 돌아다녀본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 손바닥에 폭 감싸인 돌을 만지작만지작

체온과 맥박소리를 돌에게 고스란히 전달해본 적이 있는가

돌을 쥘 땐 꽃잎을 감싸쥐듯, 돌을 날릴 땐

나뭇가지가 꽃잎을 놓아주듯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한다

바람 한점 없는데 나뭇가지가 툭, 자신을 흔들 때의 느낌으로

손목 스냅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 그건

이별의 끝에서 돌과 함께 날아갈 채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스침에도 몰입이 있어, 딱

성냥을 긋듯이

단번에 한 점을향해 화락

타들어가는 정신,

 

2

그러나 처음 물에 닿은 돌을 튕겨올린 건 내가 아니라 수면이다 나의 일은 수면을 깨우는 것으로 족하다 그다음 돌을 튕겨올리는 건 물결들이 알아서 할 일, 앞물결의 설렘이 뒷물결까지 이어지도록 그냥 내버려둘 일

 

똑똑똑, 가능한 한 긴 노크 속에

나른하게 퍼져 있던 수면을 바짝 잡아당기면서

 

스침에도 몰입이 있단다.

난 이 시집과의 스침을 몰입으로 간직하고 싶다.

그리곤 앞물결의 설렘이 뒷물결까지 이어지도록,

앞 시집과 이 시집의 설렘을,

다음 시집가지 주욱~ 연결시켜 갈 수 있도록,

내게 다가온 이 스침을 감사하며 온몸과 마음의 감관을 열고 받아들이고 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맥낚시' 한구절을 또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물의 속내를 놓치지 않게 하는 힘은 제약과 불편이란다.

어찌보면 퇴영이라 하겠으나, 최고의 손맛은 생략에서 온다, 고 퉁치는 이 시인을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아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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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2-24 00:09   좋아요 1 | URL
문장도 아름답다는 표현 이럴때 쓰게 되나 봅니다.
타이어 바퀴에 땅의 굴곡이 착 감긴다는 표현..ㅎㅎㅎ
물수재비가 글쎄 물의 미끄러운,그리고 스침의 몰입 !~~~

와우...

sslmo 2015-12-26 23:22   좋아요 1 | URL
님의 감탄사도 멋진걸요.
이 시의 옵션(플러스 알파)라는 생각이 듭니다.
럭키하고 해피한 크리스마스 되셨나요?^^

서니데이 2015-12-25 15:4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sslmo 2015-12-26 23:25   좋아요 1 | URL
나이 한살 더 먹는다는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나이가 됐는데,
내가 나이를 먹어야 님 같은 자라나는 새싹도 같이 풍성해질 수 있겠죠?
메리 베리 해피 크리스마스 주간 보내셔요~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