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독법이란 인간의 삶 전반에 걸친 가변적인 것이다

때때로 누군 말로써 자신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 글이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는 말과 글 양쪽 다 자신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웅현 님의 '다시, 책은 도끼다'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실전에 적용시켜 볼 수 있는 근사한 책이었다.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얼마 전,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다가 혼란스러웠던 부분을 잘라내어, 지인에게 여쭙는 과정을 리뷰에 올린 적이 있다.

난 이 지인이라는 사람과 계속 책에 관해서 이것 저것 여쭙는 사이였고,

그래서 용어가 통일되다보니,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서,

박웅현보다 쉽게 이해가 되었지만, 모두가 그런건 아니었나 보다.

 

혼란스러움을 줄이겠다는 선의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키는 꼴이 되어 버렸나 보다~--;

 

그리고 이 책의 한 부분, 불교와 관련하여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어, 지인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이런 답을 주셨다.

나도 지인의 생각에 동의한다.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불교의 개념 자체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할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었고,

이책에서 궁금하였던 부분에 관해서 였다.

'불교에서  수행의 최종 목적은 환생이 아니라 멸이랍니다'라고 한 저 문장과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이 호응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 강의내용을 토대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강의 도중에는, 말하기 중에는 말외의 모든 공감각적인 표현들이 감정전달의 수단이기 때문에 의미하는 바가 충분히 전달되었겠지만, 책으로만 읽어선 충분히 오해할 여지가 있다 싶어서 였다.

 

그러다 보니, 일이 커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냥 침묵을 지킨다는 것도 비겁한 일인것 같아 바로 잡아본다.

 

내가 책에서 궁금했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인의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같은 경우도,

처음 저 구절만을 접한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나 또한 그 부분을 간과했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가 '언어도단'을 일걷는 것만 인지하고는,

언어도단을 말함으로써 진리를 말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근데, 사실은...

불교의 언어는 언어도단의 세계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어서 이렇듯 오해가 생길 여지가 다분하다는데,

이건 넷상에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인, 반어법이랑도 닮았다.

나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역설이나 반어를 많이 사용해서, 때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곤 한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다던지, 감정이 목소리에 실리는 대화의 경우에는 덜 한데,

글자로 어떤 상황이나 사실을 전달할 경우, 분위기까지 통째로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때문에 여간 아쉽지가 않다.

 

태어남도 없고 소멸됨도 없는 것,

그리하여 멸 자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해탈이 아닐까?

모든 고뇌를 멸해서 새로운 연을 이루는 게 아니라,

모든 고뇌 자체가 망상임을 깨달으면, 그것이 곧 열반이요, 해탈이 아닐까?

그러니 내 마음이 곧 부처고,

모든 것이 허상임을 깨달으면,

곧 부처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박웅현 님이 책에서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고통임을 깨달으라'는 말을 빼먹은 채로, 

그냥 멸만을 얘기해서, 의미를 모호하게 한것을 바로 잡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시 한번 얘기하는데,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불교의 개념 자체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할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었다.

 

길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하는데, 난 때로 너무 집착하고 연연해 하는 것 같다.

 




댓글(6) 먼댓글(1)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해탈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6-06-21 13:4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님께서도 지적했듯이, '맥락' 없이 인용하는 글들은 곧잘 '말도 안되는 소리'로 매도될 때가 자주 있는 듯합니다. 저 역시 (바로 그런 '표현'을 앞세운 지인의 글을 보고) 대뜸 그런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지요. '연도 멸도 없는 해탈의 세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저도 한동안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해탈'이 곧 불교도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그 해탈에 이르면 곧 '윤회'를 벗어난다는 뜻일진대, 왜 거기서 다시 '새로
 
 
2016-06-20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1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06-20 16:51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버려야 하는데.. 아직도 아내를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옳은 생각입니다.

sslmo 2016-06-21 17:26   좋아요 1 | URL
낭만인생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버려야 할 건 아니지요.
잠시 접어두는 것일 수도 있고,
살다보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잠시 잊혀지거나 잃어버릴 수는 있지만 말예요.

구태여 칼로 무우자르듯이, 상처를 도려내듯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충분히 애도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빠져버리거나 침잠하지만 않는다면...요~^^
힘 내세요~^^

2016-06-21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두번째 애인인 아들이 대학교 2학년이라고 하면, 첫번째 애인인 남편에 대해선 더이상 묻지 않는다.

으레 그렇고 그런 과정을 거쳐 애정을 남발하기보다는 유지하는 쪽으로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려니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이런 관계가 나름 괜찮은 것은, 애먼 데 에너지 소모를 안 하게 되기 때문이지만,

결정적인 한방 내지는 극적인 순간, 인생의 정점이라고 할만한 변곡점이 없다는 점에선 좀 아쉽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나의 유일한 樂은 사촌 여동생의 딸내미이다.

5촌 당숙 간이니까, '이모~, 조카~'하는 사이지만, 혈연적이나 유전적으로 유전적으로 유기적 관계를 따지기엔 아주 미미하지 싶다.

그런데 이 조카가 야무지고 똑부러지는 것이 내 맘에 쏘옥 들게 행동을 한다.

어릴때 나를 보는 것 같은 것이, 어찌보면 표정도 닮은 것 같고, 내 속으로 낳았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겠다, ㅋ~.

당연히 애정 표현도 과할 수밖에 없고, 응원하는 의미에서 해주는 칭찬도 항상 하이톤이다.

얼마 전 이 조카와 전화통화 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 두번째 애인은,

"엄마 그러는 거 아니지~,

 난 이제 다 커서 엄마가 의욕을 북돋워주려고 그냥 오버하는 거라는 걸 알지만,

 어린애가 그런 말 들으면, 정말 잘해야 한다는 뜻인줄 알잖아.

 이것 저것 다 잘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랑 비교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생각해 봤어?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애한테 맨날 뭘 잘해라, 열심히 해라 야?

 어릴땐 아프지 않고 잘 놀면 되는거지,

 좀만 더 커봐라, 걔도 학원 여기저기 다니느라고 엄마랑 전화통화 할 시간도 없달거다."

맹세컨대,

난 우리 아들에게 나와의 경쟁심을 불태워야 한다고 한 적도 없고,

앞만 보고 내달리라고 한 적도 없으며,

나를 닮으라고 한 적은 더더욱 없다.

반대로만 하는 청개구리 아들을 둔 청개구리 엄마 마냥,

산에다 묻으라고 하면 개울에 묻어 떠내려 가게 될까봐,

반대로 개울에다 묻으라고 했는데, 

청개구리 아들이 처음으로 엄마 말 듣고 개울가에 묻어서,

진짜 떠내려가게된 엄마의 신세라면 모를까~(,.)

암튼 내 뜻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조물주의 독자적인 창작품이 확실하다.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독특하다고 하는 것과 관련,

내가 아들 녀석을 볼때 유니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한번씩 나랑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체념을 하게 될뿐이다.

 

분위기를 바꾸어, 인문학 강독회'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어떤 강연을 갈무리 한 것 같은데,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와는 또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것이,

그동안은 박웅현이 좋을때도 있고 별로일 때도 있었던 내게,

그만의 고유한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그동안  이 책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독서록이라든지 서평집, 책 읽는 법에 관한 책을 좀 읽어왔었다.

그의 전작들을 포함한 그동안의 책들은 '왜 읽느냐'고 묻고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요번 책 '다시, 책은 도끼다'는 '어떻게 읽느냐'고 묻고 '천천히'라는 독법을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천천히 책을 읽는다'에서 '천천히'란 물론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읽고 있는 글에 내 감정을 들이밀어 보는 일, 가끔 읽기를 멈추고 한 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 가끔 읽기를 멈추고 한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 화자의 상황에 나를 적극적으로 대입시켜 보는 일, 그런 노력을 하며 천천히 읽지 않고서는 책의 봉인을 해제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6쪽)

'저자의 말'을 빌어 이렇게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문학ㆍ역사ㆍ철학'을 아우르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책을 막 시작할때까지만 해도, '인문학 강독'이라는 소제목과 첫 텍스트로 소개되는 '쇼팬하우어'의 '문장론'과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를 보고, 지레 겁을 먹었었다.

고백하자면, 이런 책들은 우리 말로 적혀 있어서 읽더라도 읽을 수 있다 뿐이지, 무슨 뜻인지 알아먹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었다.

뭐 좀 묵히고 이리저리 굴리고 둥글리다 보면 다른 해법이 나와줄지도 모르겠지만,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내게 책 한권을 상대로 묵히고 굴리기까지 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을 매달려야 하는데,

세상은 넓고 책은 무한정 많다는건 핑계고, 앞만 보고 내달리기 바빴으니까 말이다,ㅋ~.

 

그런데, 인문학을 막연하게 '문학ㆍ역사ㆍ철학'따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바꿔놓고 보면 한결 접근하기가 쉬워지는데,

내가 '인간'인 이상 지금 이 시간에도 숨을 쉬고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놓고보면 한결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접근하기가 수월해진다.

 

언제부턴가 나만의 리듬과 속도를 가지고 책을 읽을려고 노력해왔고,

책을 읽은 느낌을 나름 정리해 내것으로 만들려고 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많은 양의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나 읽은 느낌을 잘 갈무리하여 기록으로 남겨놓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 박웅현은 논어와 쇼펜하우어를 인용해,

알기 위해서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라고 하고 있으며,

지혜보다 높은 것이 있다. 느끼는 것

이라며 시인 고은의 목소리를 인용해 이 부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인데 반해서,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라는 것이며,

읽기 쉽고 정확하게 이해되는 문체를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주장하고 싶은 사상을 소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말은, 책을 읽기만 해선 아무 소용이 없고, 읽었으면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하고, 깨달았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미이겠다.

 

이것이 인문학을 학문의 틀 안에서 접근하면 마냥 어렵지만,

살아 숨쉬는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바꾸어 놓고 보면 한결 수월해진다는 의미이겠다.

 

그러니 인문학서적을 계속 확장시키다 보면 우리가 읽는 도서 전체가 될 것이고,

그러니 인문학의 의미를 확대시키다보면 인간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될 수 있는 까닭이겠다.

 

그러면서,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하며, 『생각의 탄생』에 나온 꽃을 그리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숨을 거두기 직전 '관찰'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하는데,

"꽃을 보려면 시간이 걸려.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말이지"라고요. 마찬가지로 책도, 여행도, 생각도, 천천히 나의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57쪽)

가 그것이다.

 

이 얘긴 책도 제대로 읽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정도의 의미가 될 수 있겠으며,

바꾸어 말하면 각 연령대 별로 책이나 삶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는 의미이겠으며,

또 다른 의미로, 각 연령대 별로 삶의 방식 내지는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변한다는 얘기이겠다.

 

때문에 인문학적인 독서를 한다는 것은,

읽은 것을 깨닫고 느낀 것으로 전환시키느냐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고,

독서를 시각적인 영역에서 오감을 이용한 공감각적인 영역으로 얼마나 잘 확장시키느냐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각 연령 대 별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얘기는,

전에는 읽으면서 재미없거나 내용이 이해가 안 된던 책들이,

나이가 들면서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기에 따라선 재미있을 수도 있고 충분히 공감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저자 박웅현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몇가지 기행문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좋다고 설레발을 치면서 강력 추천하고 있는 책을 읽지않고 견딜 도리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렇지만) 그가 나이 지긋한 중년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만약 그가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이었어도,

(그는 인간을 주체로 놓고 이런 비교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ㅋ~.)

삶의 매순간순간을 아름답다고 했을 것이며, 매 순간을 우아하게 보내는 법 따위를 언급했을까 싶었다.

 

삶의 매 순간순간이 아름답게 보이는건, 연령대 별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얘기이겠고,

삶 대신 책을 적용시켜도 마찬가지 이겠다.

다만 연령대 별로 달라지는 책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적용시킬려면, 살아온 날만큼 견뎌낼 수 있도록 책의 수명이 길어야 하겠고,

그런 것들로 고전을 적용시키는 게 가장 적절한 방법이겠다.

나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고전들이 이제 무한감동을 주듯이 말이다.

 

젊은 시절은 서정적일 수가 있어요. 한 여자에게 반했을 때, 온전히 그 사랑의 긍정적인 측면만 보이죠. 오십이 되고 나면 그 뒤가 보여요. 그게 보이니까 사랑에 집중을 못해요. 그런데 젊은 시절에는 사랑에만 집중하기가 쉽죠.ㆍㆍㆍㆍㆍㆍ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한테 로맨스가 쉽지 않은 거죠.(247쪽)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젊은 여자들이 자기 또래의 남자가 아니라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서투름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남자의 성격적 매력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주는 매력에 매혹된다는 거죠.(258~259쪽)

 

이렇게 젊은시절과 중년시절을 모두 아우르는 얘기들을 하는데,

젊은 시절을 통과한 중년의 그가 하는 얘기니까 수긍할 수 있는 것이고 멋져 보이는 거 겠지만,

만약 젊은 청춘이 이런 얘기를 관조적으로 늘어놓거나,

그 같은 중년이 젊은 청춘의 로맨스에 대해서 '로망을 갖고' 이런 얘기를 했다면, 

글쎄~, 처량 맞아 보이는 차원을 넘어서, 주책이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이 책에서의 '인문학'을 '인간의 삶 전반'으로 바꿔도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랑에만 집중하게 되는 젊은 날에는 안 보이고, 못 보고 지나갈지 모르는 것들인,

방귀뀌는 습관과 짜증내는 모습,이런 걸 다 알고는 사랑에 빠질 수 없다고 하지만,

중년에 이르면, 방귀뀌는 습관과 짜증내는 모습 따위, 우리의 삶에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산재해 있다는 걸 깨닫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누구도 거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토를 달지 않으니까 말이다.

 

박웅현은 마르케스를 현실적이고도 낭만적인 아름다운 이야기로 표현하며, 시대상와 문예사조로 설명하려 드는데,

난 사람마다 연령대 별로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쯤으로 바꾸고 싶다.

아무리 매혹적인 로맨스라도 너무 어렸을때 읽어선 그 의미를 모를 것이고,

사랑에 목숨거는 젊은 시절엔 머리는 다 빠졌고, 지팡이를 짚고, 의치를 끼는 중년이나 노년의 유대 방식은 이해불가일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걸 그는 이렇게 멋진 말로 마무리 한다.

모든 사람의 독법은 저마다 다 다를 겁니다. 글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 삶의 모습과 닮은 부분들을 눈여겨본다면 공감이 되면서 더욱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겁니다. 말의 정글을 여행하고 나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생길 거라고 믿습니다.(294쪽)

 

암튼, 여기까지 읽게 되면 '인문학'을 '인간의 삶 전반'으로 바꿔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될 뿐더러,

젊음이나, 청춘, 중년이나 노년 따위의 한 단어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 단어가 아니란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기존의 가치와 형식들이나 현재의 그것을 놓고, 어떤게 더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따위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만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자연과 인간 사이에 경계가 없어지게 되면서,

'죽음'도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난 개인적으로 '장자'를 참 좋아하는데,

이 책에선, 『천상의 두나라』에 나온 장자를 인용하고 있다.

 

땅이 내 관이 되고, 하늘이 내 묘비가 될 게야. 해와 달과 별이 내 무덤을 장식할 게야. 그보다 더 아름다운 어떤 것을 더할 수 있는가? 장례식 없이 나를 보내도록 하라. 나는 무덤을 원치 않는다.ㆍㆍㆍㆍㆍㆍ'하지만 독수리가 시신을 먹어 치울 텐데요. ㆍㆍㆍㆍㆍㆍ나를 묻지 않으면 독수리가 먹어 치울 것이다. 하지만 나를 묻게 되면 벌레들이 나를 먹어 치울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를 선호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187쪽)

성장하면서, 살아가면서,

각 연령대 별로 책이나 삶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수도 있다.

바꾸어서, 각 연령대 별로 삶의 방식 내지는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어느게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따위를 판단할 수 있는 가치 판단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나는, 나만의 리듬과 속도를 가지고 그렇게,

나만의 책을 읽을려고 노력해하고,

책을 읽은 느낌을 나름 정리해 내것으로 만들고,

깨달았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실천으로 옮기려고 애쓰면서 그렇게 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한 부분, 불교와 관련하여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어, 지인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이런 답을 주셨다.

나도 지인의 생각에 동의한다.

 


댓글(5) 먼댓글(1)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길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데...
    from Insure safety distance 2016-06-20 14:46 
    때때로 누군 말로써 자신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 글이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또는 말과 글 양쪽 다 자신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웅현 님의 '다시, 책은 도끼다'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실전에 적용시켜 볼 수 있는 근사한 책이었다.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얼마 전,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다가 혼란스러웠던
 
 
oren 2016-06-18 10:49   좋아요 1 | URL
저는 지인의 글이 오히려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지인의 말씀대로 `해탈의 세계는 연도 멸도 없는 것`이라고 했는데, 불교가 `해탈`이 목적이라면 지인의 말씀대로 `연도 멸도 없는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거야 말로 박웅현 님의 글 속 주장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게 아닐까요?(비록 최종 목적이 `멸도 없는`이 아니라 `멸`이라고는 밝혔지만, 결국 그 뜻은 `다시는 무엇으로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궁국적으로는 `연도 멸도 없는 상태`를 말할 따름이니까요.)

지인의 글은 어쨌든 제게는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해탈`을 설명해 놓고, 뒤이어 곧바로 `해탈`과는 반대되는 말씀을 하시니까 말이지요. 곧 `연도 멸도 없는 상태`를 바라는 게 아니라, `새로운 연`을 이루고, 그 연을 따라 무엇이 되고, 또 무엇이 되는, 해탈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쪽으로 흘러가니까 말이지요.

sslmo 2016-06-18 12:32   좋아요 1 | URL
네, oren 님의 입장 충분히 이해하고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불교의 목적을 `멸로 보느냐, 해탈로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얘기이고, 이건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테면 용어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팔꿈치를 삐끗했을 경우, 병원 가면 어떤 사람은 부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염좌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며칠 치료하면 나을거라고 하는 것처럼 말예요.

박웅현 님 말씀에서 혼란스러웠던게 제가 인용한 저 문장`불교에서 수행의 최종 목적은 환생이 아니라 멸이랍니다`에서 멸을 환생의 반대개념처럼 놓았다는 것이지요. 그래놓고 그 다음에 설명되는 것들은 환도, 멸도 아닌 `해탈`의 개념이라는 것이었고, 님도 그부분을 명확하게 짚어 주셨구요.

제가 지인의 말에 수긍하겠다고 한 이유는 `해탈`이나 `空`의 개념과 관련하여서인데,
환의 반대 개념이 멸이라면, 멸의 반대 개념은 환이 되어야 하지만,
환생과 멸을 따로 떼어 있음과 없음 처럼 대척점으로 둘것이 아니라,
`환생과 멸이 있는 상태`를 한데 묶어 `있음`으로 보았고
`환생도 멸도 없는 상태`를 또 한데 묶어 `없음`으로 보았다는 것이지요.

아, 저는 이해가 가는데, 설명에 한계를 느끼네요.
박웅현 님 말씀대로라면, 이건 알아도 아는게 아닐텐데 말예요~ㅠ.ㅠ

2016-06-18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8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8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파트릭 모디아노'라는 작가를 인식하게 된 건 재작년인가 노벨 문학상 때문이었겠고,

나와 독서 취향이 비슷한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했었고,

책을 추천해주는 여러 사이트와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에서도 소개되어 집어 들었지만,

책을 펼치고 몇 쪽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내 귀가 팔랑귀인건 아닌가, 또는 나의 독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로 혼란스러웠었다.

사람들은 김화영의 번역이라고 하면 찬사를 아끼지 않던데, 나는 어쩐 일에선지 자꾸 삐그덕거리고 엇나가기만 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반양장)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마저 읽을 것인가 집어던질것인가 고민하며 책을 팔랑팔랑 뒤로 넘기던 중,

끝부분 김화영의 '해설'과 맨 뒤 도서 정보를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내가 가진 것은 개정판 5쇄(2013년 8월 21일)였는데,

2010년 4월에 김화영이 쓴 해설을 보면 그가 파트릭 모디아노를 처음 번역 소개한 것은 1978년이었단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고, 그사이 널리 알려졌고, ㆍㆍㆍㆍㆍㆍ이제 수십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번역으로 새로운 독자들에게 이 매혹적인 소설을 다시 내보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271쪽)'고 소회를 밝히고 있는데~--;

 

책을 읽으며 1978년에 처음 번역이 된 후로 한번도 손 본 일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었다.

백번 양보하여, 2010년 해설을 쓸 당시에 먼지만 떼어내고 새로 번역을 하지 않았던건 아닌가?

그런데 관점을 조금 바꾸니,

번역을 새로 하려고 시도는 하였으나 시늉에 그친 것이어도 그렇지만,

제대로 번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어도, 우울하긴 매한가지다.

 

불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내가, 번역을 가지고 툴툴거리니 의아해 하겠지만,

사실 내가 딴지를 거는 것들은 번역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것들이다.

 

가장 흔한 것이, 용어 사용 방식이 일관되지 않은 것이다.

제목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도 책을 다 읽고난 후라면 '어두운'보다는 '희미한'이나 '아련한' 따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미묘한 어감은 차치하기로 하자.

폴 두메르 가(街)(10쪽)

아나톨 드 라 포르주 가(16쪽)

부티크 옵스퀴르 가(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88쪽)

를 보면 알겠지만,

어디에는 원어를 소리나는 그대로 적었고, 어디에는 억지로 우리말로 번역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 둘 사이엔 아무런 일관성도 없어 보인다. 즉, 마음대로다.

 

처음 9쪽의 '우유빛의 전등 불빛'이, 77쪽에서 젖빛 램프로 번역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놀라웠던 건, 이 책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장치일수도 있는 '전화번호부와 연감'을 나중에는 '사교계신사록' 또는 '신사록'이란 용어로 번역해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지난 오십년 동안의 각종 전화번호부들과 연감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것들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필요 불가결한 작업도구라고 위트는 몇 번이나 내게 말하곤 했었다. 그 전화번호부들과 연감들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귀중하고 가장 감동적인 도서관을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 페이지마다에는 오직 그것들만이 증언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사물들과 세계들이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10쪽)

 

나는 옛날 전화번호부들, 그리고 그보다 좀더 근래의 것들을 열람하면서 발견되는 것이 있을때마다 노트를 한다.ㆍㆍㆍㆍㆍㆍ이런 것이 기록된 사교계 신사록은 삼십여 년 전 것이다.(77쪽)

내 앞에는 신사록들과 전화번호부들이 가지런히 꽂힌 선반이 있다.(106쪽)

 

그애를 안 적이 있으세요?(136쪽)

같은 경우는 번역할때 흔히 보게 되는 오류이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불어번역자라고 일컬어지는 그에게선 보고 싶지 않은 문장이었다.

 

나는 건물의 문을 지나서 시간제한등을 켰다. 낡은 바닥돌이 검은 색과 회색의 장미 무늬였던 복도, 쇠로 된 그물, 받침벽, 노란 벽의 우편함들, 그리고 여전히 풍기는 저 돼지기름 냄새.(141쪽)

위 문장에서 '시간제한등'이란 단어도 생소했지만, 앞뒤에서 수식해주는 말들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서 더 모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120쪽)

심근은 불수의근인데 내가 마음대로 두근거리게 할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쯤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소소한것까지 따지다보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용어 사용 방식을 통일시키지 않은 것과 어법과 관련된 기본적인 것 몇 가지만 언급하였다.

 

이런 것들부터 어긋나 버리니, 아무리 좋은 소설이라고 할 지라도 내용을 알아먹을 수가 없고 감정이입 될 턱이 없다.

한국 문학의 국제화나, 외국 문학의 한국화가 갈 길은 멀고도 요원하기만 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의 '맨부커 인터네셔널 상'수상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위기를 바꾸어,

종편의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였던 건 잃어버린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로처럼 좁은 비탈길이나 골목길을 이리저리 걷다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오고,

그 좁은 골목에 담장과 대문을 나란히 하고 고만고만 집들이 있고, 고만고만한 동네 꼬마 녀석들이 있었다.

누구네 집 쌀독이 비었는지, 누구네 집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동네 통장이나 반장이 아니어도 훤히 알았고,

동네 어귀의 평상은 온갖 '~카더라'하는 소문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지만,

혼자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거나 먹을게 없어 배곯아죽는 야박한 인심은 피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언제부턴가 1인 가족이 특별할게 없는 삶의 형태가 되었으며,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형태라고 하더라도 하루에 1,2끼 정도 혼자 밥먹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주거형태도 변하여 아파트, 빌라, 다세대 다가구 주택, 원룸 뿐만 아니라,

고시원이나 쪽방촌 등 특수한 주거형태에 사는 사람도 많아졌고,

그 사람들 모두를 이웃으로 일일이 기억하기엔 역부족이다.

 

때로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거나,

마무것도 기억 못하는 치매어르신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억해야만 하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이 책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중 화자인 '기 볼랑'과 탐정 '콘스탄틴 폰 위트'는 생애 한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간판은 흥신소라고 되어 있고, 호칭은 탐정이라고 되어 있는 묘한 번역이다.홍신소는 소장이고, 탐정사무소는 탐정일것 같은데, 끙~(,.))

난 1987년에 고딩이었던 고로, 6월 10일 무렵의 우리나라 상황을 최근에야 비교적 자세히 들었는데, 

이 책의 그것들과 닮은 듯도 하고,

어찌보면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는 듯한 착각에도 빠져드는 것이,

두번의 큰 전쟁의 정점에 있었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쟁과 망명자, 국경, 위조된 여권 따위는 자유, 민주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고,

1987년 6월의 우리나라는 독재와 외력에 항거하는 그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소설은 그 전쟁으로 인한 폐해의 한가지를 쟁점으로 하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쟁이 진행중인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이 책에 나오는 '기 롤랑'이라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오히려  '콘스탄틴 폰 위트'처럼 어디 휴양 도시에서 말년을 조용히 늙어가는 쪽을 택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기 롤랑이 어떤 이유에서 기억을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것과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이전의 기억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어쩜 살아가는데 더 편리하거나 유리하기 때문에,

그의 무의식이 그로 하여금 기억을 잃어버리는 쪽으로 사주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위트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안개 속을 더듬거리는 그에게 기 롤랑이라는 신분을 만들어 주고,

'지금부터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라'고 했지만,

은퇴 후  니스로 가서 어린 시절을 하나하나 되살리게 되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내게 되고,

기 롤랑의 지난 기억을 찾을 수 있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의 말은 모두 맞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모두 틀리기도 하는데,

삶에 있어서 '기준과 방향성'이 같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청춘들에게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건 잠시 미뤄 두어도 좋겠다.

지금 현재, 여기에서, 이 순간을 살면 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도, 언제일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도, 연연해 하는 순간 집착이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하지만, 은퇴 후,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에서라도, 하루하루가 똑같은 모습으로만 흘러간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겠다.

거리를 가다가 우연히 삼십 년이나 못 보았던 사람이라든가 죽은 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안개속을 더듬는 듯한 흐릿한 기억도 쓸모가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가지, 인간이란 제 멋대로인 존재들이어서,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진정한 나이며,

타인이 보는 나는, 과연 나의 본 모습일까?

우리는 엄청나게 큰 코끼리를 눈 감고 만지면서,

누군가는 코끼리의 다리를, 누군가는 코끼리의 코를, 누군가는 몸통을 만지면서, 코끼리 전체라고 우기는 눈뜬 장님들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타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지랖 넓게 너무 깊숙히 관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들이 보는 사람이 기 볼랑이 찾는 그 사람이라는 정확한 근거가 없으면서도 섣부르게 판단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상처를 꽁꽁 사매서 곪아터지게 할 것이 아니라,

잘 소독해주고 바람도 통하고 세월의 더께도 앉게 해주고,

딱지도 앉았다 떨어지고,

그리하여 나무에 단단히 박힌 옹이처럼 고통을 이겨낸 자리마다 굳은 살로 자라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댓글(16) 먼댓글(1)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1984년에 나온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번역본
    from 개썅마이리딩 2016-06-11 11:44 
    작년 헌책방에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번역본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번역본 제목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누구나 제목만 보면 프루스트의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책 뒤편에 소설 원제가 있습니다. ‘Rue Des Boutiques Obscures’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원작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984년 한국출판공사에서 나온 번역본입니다. 펼쳐 보면 세로쓰기로 되어 있습니다. 지
 
 
서니데이 2016-06-10 23:27   좋아요 0 | URL
외국원서는 번역본이 여러 권 나와있었으면 좋겠어요. 같은 원문이라도 번역자에 따라 조금 느낌이 다를 때가 있어서요.^^
양철나무꾼님 좋은밤되세요.^^

sslmo 2016-06-11 09:31   좋아요 1 | URL
좋은 아침이예요~^^
전에 까뮈의 이방인 때도 그랬지만, 기존의 번역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게 학계의 관행인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참 편하네요.
이쪽으론 학계라고 할만한 학맥이 없어서리~, ㅋ~.

시이소오 2016-06-10 23:57   좋아요 0 | URL
꼼꼼한 독해시네요. 전 다른 번역본을 읽었는데, 별 감흥은 없었어요. `심근의 불수의근`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김화영 역자,실망스럽네요. 양철나무꾼
님 말씀대로 재번역이 필요할것같습니다 . 문동 문학전집에 대한 판타지가 깨지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

sslmo 2016-06-11 09:43   좋아요 0 | URL
얼마전 까뮈 `이방인` 이정서 역으로도 읽으신것 같던데요.
어떠시던가요~?^^

학계의 원로라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번역을 신성불가침의 그것처럼 생각하는 건 재고의 여지가 있어요.

심근의 불수의근이라 함은,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120쪽)`에서,
심장은 내가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고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근육이 아니라는거죠. 심장은 움직임을 멈추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말예요, ㅋ~.

그러니까 `나는`이라는 주어를 빼주던지, `나는`을 넣고 싶었다면 심장이 움직이는걸 느끼며 정도로 바꿔줬어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너무 어려운 용어를 고른 저도 설명에 인색했네요, 죄송~(__)

문학동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으로 만들어내는 품이나 적극적인 마케팅 따위는 타의추종을 불허하죠~^^


시이소오 2016-06-11 09:47   좋아요 0 | URL
이정서 역에도 문제가 많아서 설득이 안되던데
양철나무꾼님 설명에 설득되네요. ^^

sslmo 2016-06-13 16:13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정서 의 이방인이 완전 잘된 번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출판 번역계의 정서가 뭐랄까,
그런 것에 대해 감추고 쉬쉬하는 걸 관행으로 했다면,
이정서의 그것은...과거의 그런 것에서 탈피했다는 걸 높이 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종의 `내부고발자`라는 개념으로 보고,
`죄가 없는 사람만 돌을 던질 수 있다`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종류의 다양한 시도를 용인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이겠죠~^^

시이소오 2016-06-13 16:29   좋아요 0 | URL
이정서 씨가 번역 관행의 문제를 좀 더 부각시켰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워낙에 자아도취적인 글이어서 본질이 왜곡되어 보였거든요.
양철나무꾼님, 말씀을 들으니 역자의 과보단 공을 더 높이 사야할것 같네요.^^


cyrus 2016-06-11 11:42   좋아요 0 | URL
작년 헌책방에서 1984년에 나온 <어두운 거리의 상점> 번역본을 만난 적이 있어요. 1978년에도 나온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

sslmo 2016-06-13 16:15   좋아요 0 | URL
이런게 헌책방의 묘미이겠군요.
헌책방은 고사하고, 도서관이라도 맘 편히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처럼 일에 치여서는 말이죠~ㅠ.ㅠ

루쉰P 2016-06-11 11:52   좋아요 0 | URL
전 한국의 번역은 신뢰를 하지 않아요 ㅋ 그렇다고 한국작가 책만 읽는 것도 아니에요 ㅋ 번역은 제2의 창작인데 그러고 보면 한강의 상 받은 건 대단한 일이네요 ㅋ 우리는 번역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고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항의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ㅋ 하여튼 집단의 체제안에서는 무얼 못하는 한국의 근성 최악이에염

sslmo 2016-06-13 16:20   좋아요 0 | URL
저도 한국 소설 잘 안 읽는 경향이 있는데, 장르소설은 진짜 우리나라 작가거 안 읽는다, 반성~!__!
제가 이렇게 번역에 민감한 건, 예전에 장르소설 번역 해보고 싶어했어서 그럴거예요, 아마.

전 우리나라 소설가, 예전엔 성석제, 지금은 이기호 좋아하는데, 재밌어서 이지만,
성석제에서 이기호로 갈아탄 이유는 재밌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어서예요~^^

교주님, 날 더운데 잘 지내세요?
쉬이 지치지 않게 우리, 힘내자구요~ㅅ!

세실 2016-06-12 07:35   좋아요 0 | URL
대번역가, 대출판사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저! 반성합니다^^ 비판적 독서력이 부족해요. 역시!
이 책 읽다 말았지요.

sslmo 2016-06-13 16:26   좋아요 1 | URL
전 지금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는데, 거기서 박웅현이 그래요.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사용했다`고요.
그러고 보면, 책을 읽고 체화하는 것까지가 중요할 듯 한데,
그런 의미에서 세실 님은 잘 하고 계실뿐만 아니라, 훌륭하십니다여~^^

2016-06-14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4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5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의 시간 - 아기가 행복한 엄마 마음 색칠태교
이상미 글, 이보라.김연주 그림 / 책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전 휴일, 더는 미룰 수 없이 가까운 근교로 꽃놀이라도 가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침 첫번째 두번째 애인이 세트로 장염에 걸려주시는 바람에,

집에서 이리저리 떼구르르 구르며 아주 맘 편하게 죽과 보리차, 이온음료만 준비, 항시대기하는 걸로 '상황 종료', ㅋ~.

덕분에 첫번째, 두번째 애인과 쪼르르 거실에 누워 종.편.에서 해주는 '또오해영'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몰아서 보게 되었다.

남편과 아들은 시간 죽이기 용으로 졸다 보다가 하고 있었고, 때문에 요즘 대세라는 인기없는 오해영(=서현진)에 주목하며 히히덕 거리고 있었는데,

반해 난 전혜빈 분으로 나오는 인기있는 오해영에게 완전 몰입하여 오열을 했다.

인기있는 오해영의 성장과정이, 미움받지 않고 다 잘하려고 애를 쓰는 그 모습이 그동안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애잔했다고 해야할까?

 

에릭(박도경)의 어머니가 그런 인기있는 오해영의 뒷조사를 한 후 에릭에게 버리라고 하자,

 "나 걔 불쌍해서 못 버린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나한테도 버림받아야 하냐. 걔 사람들에게 엄청 상냥하다. 미움 받지 않으려고 강아지처럼 살랑살랑. 웃으면서도 눈동자는 떨린다. 그런 애를 어떻게 버리냐"고 말한다.

박도경의 어머니가

"그게 사랑이냐. 측은지심이지."

라고 하자

"측은지심이어도 된다."고 한다.

박도경의 어머니가 그 대활 녹음하여 인기있는 오해영에게 꼭 들어보라고 전해준다.

인기있는 오해영은,
"그날 처음 과호흡이 왔다. 가장 들키기 싫은 사람에게 치부를 들킨 느낌이었다. 저질스러운 부모가 아닌 자유로운 부모를 둔 것처럼, 상처 없는 것처럼 악착같이 생글거리며 살아왔는데 그걸 다 꿰뚫어보고 있었다니. 밤에는 치욕에 이가 갈리다가도 아침에는 보고 싶어 울었다. 끔찍하게 사랑했던 사람을 치욕으로 떠올리며 살았다."

라고 되새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인기있는 오해영 같았다.

왜 그랬는지는 여러 번 언뜻언뜻 얘기했었으니, 미루어 짐작을 하시든 찾아 읽으시든 재량에 맡기겠다.

그래서 인기있는 오해영처럼 악착같이 했고, 힘들어도 힘들다 소리 한번 안 하고 생글거리고 살아왔는데,

내가 사랑했고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었던 단 한명의 사람으로부터 저런 얘기를 전해들었다면,

난 어땠을까 생각하니 폭풍눈물이 났다.

 

암튼 서론이 길었다.

내가 잡기에 능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느라 이리 되었는데,

나도 인기있는 오해영처럼 학창시절 잡기에 능하다는 이유로 이쁨 받기보단 질투와 시샘의 대상이 되었다.

때문에 오해영 앞에 붙인 '인기있는'이란 수식어는 '구별을 위해서'붙인 수식어일뿐 실제에선 잡기에 능하면서 인기도 있긴 힘들다.

뭐, 하지만 이젠 나이도 좀 되어 주시고, 그런 것들이 거추장스러운 옵션일지라도, 그런 재능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 '이상미' 님도 잡기에 능한 팔방미인이다.

언젠가 린넨 주머니에 이쁘게 그림을 그려 보내준 적이 있는데,

난 토스터기 커버로 쓸 린넨 천이 부족하여 뜯어 조각잇기를 했을 뿐이고~--;

 

요번엔 '엄마의 시간'이란 색칠태교 그림책에 글을 썼다는데,

난 색칠 태교가 필요한 엄마의 마음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컬러링을 '쫌' 하며 마음을 갈고 닦아온 터라,

도구도 빵빵하게 갖춰져 있다, ㅋ~.

수채색연필과 유성색연필 번갈아 사용하는데, 난 개인적으로 수채색연필을 사용하는게 더 좋다.

요즘은 붓펜을 사용하면 투명대롱안에 물을 담아 덧칠을 할 수 있어서,

편안하게 물감 없이 색연필만으로도 원하는 수채화의 질감을 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는 알록달록하고 연한 듯하면서도 화사한 색감이다.

수채화가 좋은 건,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내면서도 번지고스며들고 물들어 색을 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재지도 않는 것이, 그러고보면 수묵담채화와도 닮았다.

 

이 책이 좋은 것은,'아기가 행복한 엄마 마음 색칠 태교'라고 하여,

그림과 함께 임신주수에 따른 몸과 마음의 변화 상태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실어,

색칠을 하면서 태교가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으로 가늠하며 준비를 할 수 있어서이다.

 

다른 컬러링 책과의 차이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행복한 색칠태교를 위한 컬러링 가이드'라고 하여 '태교'에 방점을 찍는다.

때문에 다른 컬러링 책들은 그냥 자기가 색칠하고 싶은 대로 칠해도 되겠지만,

이 책은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과 사물을 다루어서 친근한 느낌을 주지만,

그것들을 대충 칠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칠할때 가장 어울리는 조합인지 찾아 보는 방법도 안내해 주고 있다.

 

하긴 마음대로 칠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도 하지만,

미술치료라고 하여 하나의 치료법이 따로 존재하는 추세이기도 하니,

색깔과 감성과의 관계를 대충 알아두면

스트레스를 받았을때나, 기분이 울적할때에, 화가 날때 등,

컬러링을 기분전환에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않을까 싶다.

 

컬러링 책이라고 하여 그림만 가득이지 않다.

이렇게 이쁜 글들도 넘쳐난다.

그림도 단순한 그림만이 아니고,

메인 그림이 있고, 그 그림 주변에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

그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도, 사람도, 부분은 전체를 대표하고...자기유사성과 순환성을 가지고 일정한 패턴을 반복한다. 

얼핏보면 컬러링 그림책 한권이지만, 참 많은 것들을 야무지게 제대로 담고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6-06-13 10:03   좋아요 1 | URL
언니의 재주는 어쩌시구요 넘 멋져요
 
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현의 기술'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은 아무래도 좀 아쉬운 배열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니까 글을 쓰는 유시민과 만화를 그리는 정훈이가 똑같은 비중으로 '표현의 기술'에 대해서 쓰거나 그리고 있기 때문에,

제목도 제목이지만, 지명도 문제로 유시민을 앞에 놓고 싶었다면,

정훈이를 똑같은 비중으로 뒤에  놓아야 했을텐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여느 작업들처럼 유시민이 글쓰기 작업을 하는데 정훈이가 삽화를 그린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 유시민의 글 다음에 정훈이의 만화가 서너쪽 분량으로 나오고,

책의 끝부분에 정훈이의 만화가 본격적으로 나와서,

정훈이라는 만화가의 표현의 기술도 있는, 그런 책이란걸 실감하게 되었지만,

이런 식의 배열인줄 알았더라면 난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유시민으로부터 글쓰기 비법을 배울게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러니 표현의 기술은 더더욱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

이 것은 내가 글쓰기 능력이나 표현의 기술이 어느정도 되어줘서 그로부터 배울게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랑 나랑 사고하는 바가 많이 다르다보니 중간에서 비껴가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삐그덕거리기만 하는게,

오히려 스트레스의 연속이어서 였다.

지난번 책을 통하여 절실하게 깨닫았으면서도,

그러고도 요번 책을, 나오자마자 또 사들인걸 보면 나의 책 욕심은 중증인가 보다~ㅠ.ㅠ

 

처음 '책을 내면서'를 보게 되면, '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나옵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고 있다.

글쓰는 일 뿐만 아니라, 집을 설계하고 노래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등은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이다.

따라서,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면서,

이 책에서는 그동안 강연과 온라인 상담실에서 주고 받았던 말을 정리하고 내용을 보탰다고 하는데,

그 표현의 기술이라는 것이, 마음, 즉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치중한다기 보다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얘기들을 하소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제 1장 '왜 쓰는가'에선, 김훈을 예로 들고 있는데,

전후좌후 사정을 다 생략하고,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하고 한부분만 떼어내서 인용하고 있다.

글의 시작 부분에서 강렬하고 자극적인 문장을 인용해서, 주위를 환기시키고 몰입하게 해주었지만,

그 다음 김훈의 말인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 주면 좋기는 하죠."를 의도적으로 뒤에 배치한 듯한 인상을 받았고,

때문에 섣부르다는 느낌이 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글쓰기의 목적은 언제나 여론 형성이었다고 하면서, 김훈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데,

우리는 같은 글쟁이지만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른 겁니다.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어느 한쪽이 틀린 건 아니죠.(14쪽)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어느 한쪽이 틀린 건 아닐지 모르지만, 김훈과의 경계는 분명하고...

때문에 차이가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예로 들면서, 글을 쓰는 네가지 이유를 드는데,

첫째,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둘째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 셋째, 역사에 무엇을 남기려는 충동, 넷째, 정치적인 목적인데, 넷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단다.

이 네가지가 비중을 달리하며 조금씩 섞여 있는 경우도 있고,

이 네가지 외에 돈을 벌려고 쓰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정치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고 힘을 주어 얘기하는데,

이게 자신에게 비추어 얼마나 타당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혹 자신의 글쓰기가 '정치적 글쓰기'를 지향한다고 하여 돈을 벌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자위하고 싶었나 본데,

이런 '표현의 기술'같은 책이나 글쓰기 관련 서적의 경우 '정치적 글쓰기'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모르겠다.

혹 어떤 사람은 나에게 요번 그의 책을 제대로 읽기나 한거냐고 딴지를 걸 수도 있을텐데,

그런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설혹 그가 내가 읽고 해석한 목적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중의적으로 읽도록 한데에 대해서,

그가 완전히 책임을 비껴가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콩떡 같이 써놨는데, 개떡 같이 읽어낸 나의 독해력에 대단한 문제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표현의 기술과 직접 관련되었다 싶은건, 2장 '제가 진보냐고요?'한 장인것 같은데,

글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말은 그럴듯하게 정치적 글쓰기도 예술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내용은 사스 파동과 메르스 사태를 비교하며 자기자랑 일색이다.

이걸 자아정체성이란 말로 정당화하진 않겠지?

 

3장 '악플은 어찌할꼬'에선 악플엔 무플로 대응하라고 하면서,

글쓰기 고민상담소에 올라온 '떡시루'라는 사람의 글을 인용한다.

ㆍㆍㆍㆍㆍㆍ우리는 남들이 주는 것을 안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물건은 주고받을때 요리조리 살펴서 받는데 마음은 그냥 덥석 받고 맙니다. 마음도 살펴서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83쪽)

마음이라는 말 안에는 이미 '헤아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다소 당혹스런 인용이었지만,

본인의 글이 아닌걸로 위안을 삼아본다.

하지만, 정치적 글쓰기를 지향한다는 사람인데, 모든 정치적인 것의 근본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근본이라고 생각했던 내겐 인용이라지만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대신 악플과 정상적인 비판 글을  구별해야 한다(88쪽)고 하는데,

악플엔 무플로 대응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는 이의 의견이어서인지,

난 이 의견도 동의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누구나 논리를 갖추어 근거를 제시해가면서 정상적인 형식의 비판 글을 쓰도록 교육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의사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표현이 거칠고 어조가 결렬하다면 일정한 근거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헤아리고 다가가는데는 실패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어떤 형식을 갖추고, 논리적 전개방식을 따르는 글 만을 정상적인 비판 형식의 글이라고 한다는 건 유시민 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지 싶다.

 

책값이 아까워 대충 훑어라도 봐야지 하던 나의 생각은 책 중반 '마음이 먼저입니다'(232쪽)하는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완전 비껴 나가고 말았고,

암튼, 그리하여...난 그가 가르쳐주는 '표현의 기술'을 하나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했고,

정훈이가 보여주는 그림만을 만화책 보듯 낄낄거리며 봤음을 이 리뷰를 빌어 고백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깜박깜박하는 기억을 붙들어두려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일뿐,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6-07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6-06-08 10:18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기분 좋지만,
전 문과생도 아니었고, 책읽기, 글쓰기, 등은 계속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해야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제 나이가 제법 되어 그런 건지,
에고가 강해져서 그런건지,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책읽고 싶은 생각은 없더라구요.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또 한가지 책을 읽다보면 책의 내용만 읽게 되는게 아니라,
여백까지도 읽게 되는데,
그 여백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참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도 하더라구요.

에고가 강해지되,
에고를 고집하는 꼰대는 되지말아야 하는데 말이죠~, ㅋ~.

2016-06-07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8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7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6-06-08 10: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 의견에 이렇게 힘을 실어주시는 님 같은 분이 계셔서 위안이 됩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고 접어버리기엔 정훈이 님의 `표현의 기술`이 넘 멋져서 말이지요~^^
정훈이라는 만화가가 이미 있어서, 그분이 정해주신 필명이 `정훈2`였답니다, ㅋ~.
전 오히려 정훈이 님의 `표현의 기술`이 신선한게 많았달까요, 좋았어요.

북다이제스터 2016-06-07 20:41   좋아요 0 | URL
요즘 넘 다작한다는 느낌 지울 수 없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ㅠㅠ

sslmo 2016-06-08 10:45   좋아요 0 | URL
전 작가로서의 유시민은 좋아하기 힘들고요~(죄송~땀나라~``)
가끔 썰전을 보게 되면 김구라, 전원책, 유시민...이렇게 나와 되도 않는 말씨름을 하는 걸 보면...
귀엽(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던걸요~^^
언행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지를 차치하고 본다면,
논객으로서의 유시민은 좀 매력적이죠~^^

잘잘라 2016-06-07 21:40   좋아요 1 | URL
와아아~! 저도 지금 이 책 리뷰 쓰려도 들어왔거든요!
거의 동시에 이 책을 읽었나봐요. 신기방기^^ ㅎㅎ

이번에 유시민씨 책을 처음 사서 읽었는데요, 그 이유 중 반은 `표현의 기술`이라는 제목때문이고, 나머지 반은 5만원 맞춰서 사은품 받으려고 한 것이예요. 저도 읽으면서 내내 `제목에 낚였군` 하는 생각을 했고, `이건 뭐 틈만 나면 자기 합리화 아니면 자기자랑이로구만. 쩝..`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었어요. 왜냐? 흐흣, 딱 저에게 맞는 수준으로 쓴 책이라서지요. 흐흐흣. 아무튼 기분 좋아요. 님이랑 같은 책을 읽어서요. ^^

이러면서 룰루랄라 저는 이만 퇴근할랍니다요. 리뷰는 뭐.. ㅎㅎㅎ

sslmo 2016-06-08 10:48   좋아요 1 | URL
메리포핀스님~!
부비, 부비~^^))((^^
정말 정말 반가워요.
게다가 제 리뷰에 이렇게 힘을 실어 주셔서 더 감사하구요.
근데 근데, 전 님의 리뷰도 기대되는 거 있죠?ㅎㅎ

잘 지내시나요?
잘 지내셔야 합니다~ㅅ!

이주은 2016-06-08 18:01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의 의견 저도 무척 공감합니다.
저자분께서 이 리뷰를 보실것 같네요. 많은 독자들의 쓴소리입니다. 달갑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