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엎어라 - 드라마틱한 역전의 승부사 이세돌의 반상 이야기
이세돌 지음 / 살림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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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을 볼때, 류준열이 훨씬 좋았지만 바둑 기사 최택으로 분한 박보검도 싫진 않았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등장했는데, 새롭지 않았지만 추억을 돌이킨다는 의미에서 감동적이었다.

'응.팔.'과 동시대를 살았던 내게 생소한 직업이 있었는데 그게 바둑 기사였다.

바둑기사가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는게 아니라, 바둑기사의 일상을 몰랐다.

 

간혹 텔레비전 뉴스를 통하여 엄청난 상금 액수를 듣고 부럽다 싶긴 했지만,

정규 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것도 몰랐고, 두통과 불면증으로 맨날 약을 달고 사는 것도 몰랐을 때의 얘기다.

울아들이 7세때, 바둑을 전문적으로 시켜보라는 주위의 권유에 심사숙고했던건,

이 같은 지난함을 몰라서 였을 것이다.

 

전에 이런 궁금증을 해갈할 요량으로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법(==>리뷰 링크)을 읽기는 했었지만,

그 책을 볼때만 하더라도,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완 격이 다른 사람, 고수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는, 일종의 신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치가들처럼 출판 기념회용 도서라는 느낌도 살짝 들었었는데,

책을 내고 얼마후에 정계진출을 하더라~--; 

 

암튼 조훈현의 그것이 일종의 자서전이나 위인전을 읽는 기분이었다면, 이 책 '판을 엎어라'는 자기계발서의 느낌이 강하다.

인생을 먼저 산 엉아가 동생이나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덕담 같다.

그래서일까?

언뜻 보기엔 바둑을 두는 후배들이 대상인것 같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하고 삶의 방향을 묻는 모든 이들로 확대 할 수도 있겠다.

일종의 덕담이니 일반론적이고 깊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다.

 

물론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것도 실력의 일부이긴 하지만 운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특히나 중요한 판에서 상대방이 실수를 안 해주면 역전승은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이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지만 아무런 실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희망이 없는 국면에서도 상대의 어이없는 착각이나 실수로 역전승을 거둔 적이 많으니 내가 '행운의 기사'라는 말은 맞는 듯하다.(65쪽)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바둑을 남긴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한판의 바둑에서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런데 상대 역시 실수를 안 한다면 대국은 더 어려워진다. 좀 다른 얘기지만 내가 실수를 '못'할 때도 있다. 상대가 먼저 중반에 너무 큰 실수를 해버렸을 때가 그렇다.상대가 쉬운 수를 착가해서 큰 실수를 해버렸을 때가 그렇다. 상대가 쉬운 수를 착각해서 큰 실수를 하면 나에게는 실수할 타이밍이 없어져버릴 만큼 바둑이 허무하게 끝난다.(169쪽)

 

실력에 자만하지 않고, 실력이 비슷비슷한 상황에선 실수를 운과 동일선 상에 놓는 건 어찌보면 좀 멋지다.

 

내 경우에는 바둑을 둘 때 적당한 긴장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편이다. 오히려 아무 부담 없이 너무 편한 마음으로 바둑을 두다 보면 자칫 기백이 빠진 무기력한 내용으로 흐르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긴장이 지나칠 경우에는 바둑의 행마(行馬)나 흐름이 경직되고 활발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긴장감 조절이 필요하다. 사실 '적절하다'는 게 말은 쉽지만 수치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84쪽)

 

마인드 컨트롤도 마찬가지다. 대국에서 지고 자신감과 확신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억지로 자신감을 끌어올리려고 하다 보면 오버 페이스가 되어 경솔해질 수 있다. 내 마음이지만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되지는 않는 것이다.

바둑판 앞에서든 바깥에서든 평소에 지속적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상대방이 누구든,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하든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단시간에 만들어낸 자신감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 우승컵을 놓친 대가랄까?(90쪽)

긴장을 하고 부담을 갖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건 바둑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삶이라고 불리우는 일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을까?

통증의 역치를 낮추듯이,

긴장과 부담의 역치를 낮추는 자기만의 비법을 개발해야지 싶다가도,

그게 반복되면 무뎌질지도 모를 일이니, 그걸 경계하는게 우선이지 싶기도 하다.

 

이세돌의 경운 그걸 극복하였고 적절한 긴장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듯 보이지만,

적절한 긴장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을 갖기 위해선 실력을 키우는게 우선이다.

실력을 갖춘 후라면 자신감은 저절로 생겨날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행운'이 따라오는 것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무모한 자신감은 자신을 위장할 순 있을지 몰라도 타인을 설득할 수는 없다.

 

아예 잡념이 들지 않도록 그 싹을 잘라버릴 방법이 있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아무리 중요한 대국에서라도 무의식 속에서 느닷없이 치고 올라오는 잡생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예방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선책이 필요하다. 잡념이 생길 때 어떻게 처신하고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프로바둑기사라면 각자 성격이나 스타일에 맞는 비법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억지로 뿌리치려고 애쓰기 보다는 오히려 잡생각에 잠깐 응답을 해준다, '오늘 이키면 삼겹살에다가 소주나 한잔하지''이따 대국 끝나고 전화해서 딸아이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이렇게 정리하고 넘겨버리게 된다.

  잡생각이 들면 드는 대로 순응해서 넘겨버리고 나면 잠깐에 그치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팔자 좋게 이런 거나 생각할 때야? 바둑에 집중해야 될 때란 말이야'라는 마음으로 자책하면서 잡생각을 자꾸 떨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그 생각에 발목을 잡혀서 자꾸 떨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그 생각에 발목을 잡혀서 잡념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흔들리고 바둑의 페이스까지 잃게 된다. 강물이 흐르듯 순응하면서, 그 강물에 잡다한 이물질(?)이 흘러내려오면 그냥 흘러내려 가게 놔두는 게,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내게는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이다.(100~101쪽)

 

잘라내는 것과 가라앉히는 것은 고통이나 추억이라고 불리우는 나쁜 기억들에만 적용되는게 아닌 것 같다.

그걸 이 책에선 잡생각 정도로 축소시켰고,

잘라내는 것과 가라앉하는 것을 두고 어느게 더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이렇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기 자신을 구슬리고 타협하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엉뚱한것 같기도 하고 사차원 같기도 한데, 내가 보기엔 멋졌다.

그의 이 같은 행동을 멋지다고 할 수 있는건,

짬뽕공 마냥 생각이 어디로 튈지 자신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닮음꼴이고,

우리는 흔히 자기랑 닮은 꼴이거나 사고방식의 사람들을 보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급 호감을 갖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인가 보다.

 

바둑기사라면 상대가 약하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갓 프로가 된 신인이든, 정상의 자리에 오른 고수든 상대를 얕잡아보는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나쁜 습관이 생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이렇게 합리화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약하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데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잖아? 강한 상대와 둘 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두면 되지. 그게 페이스 조절이잖아."

얼핏 그럴듯하다. 상대가 약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바둑 두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하면 자신의 바둑 전체가 오염된다. 약한 상대인지 강한 상대인지 따지는 것도 나의 주관에 불과하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는 심리가 조금씩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가 아닌데도 얕잡아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버릇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누구와 둬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바둑을 두게 된다. 그때의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ㆍㆍㆍㆍㆍㆍ자신의 대국 일정이나 컨디션에 따라서 페이스 조절을 하는 것과 상대가 약해 보인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158쪽)

 

여러 생각을 하게 하고,

그의 가치관이랄까, 인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다. 가령 호각지세인 길이 A에서 D까지 네 가지가 있다고 했을 때, 그런 상황에서 다른 기사들이라면 보통 B라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내 감이 '그건 느낌도 별로 좋지 않고 내가 둘 바둑이 아니다'라고 신호를 보낸다면 빨리 포기해 버린다. ㆍㆍㆍㆍㆍㆍ

실전으로 다져진 감이란 정말 무섭다. 호각지세인 여러 갈림길이 있을 때 어떤 게 내 스타일인가는 빠른 시간 안에 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감으로 초기 단계에서 경우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165쪽)

 

신변잡기 식이어서 생각을 깊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방면으로 생각거리들을 제공해주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 중에, 몇몇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이  있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지만),

하난, 바둑도 앞에 '내기'를 붙이게 되면 도박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난, 그런 바둑의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 채택 여부를 논의하는걸 보니, 바둑을 스포츠로 분류해야 하는가 보다 하는게 다른 하나였다.

이 두가지 생각은 하나의 결과로 모두어졌는데,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를 지향해야 겠다는 것이다.

 

바둑이 스포츠라는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 부분은 실은 나이 40이면 은퇴를 고려한다는 부분이었다.

바둑처럼 정적인 것이 어느 정도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몰랐던 내겐 일종의 기준점처럼 작용했다.

 

이 책으로 궁금증들이 전부다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직 길 위에 있는 사람이고,

나머지 궁금증을 해갈하기 위하여 이창호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럭저럭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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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8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8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8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6-09-12 14:34   좋아요 1 | URL
전 어렸을때 할아버지를 따라 마실을 다녀서,
바둑이랑 장기를 쫌 둘 줄 압니다.
노인정 바둑과 장기라고 해야 하려나?
어깨 넘어로 배운게 야무진 눈썰미 덕인지(으쓱으쓱~^^)...
지금 노인정에 데려다 놔도 용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근데 화투는 짝도 못 맞춘다는 거~--;
하지만 그래도 남편 친구들이랑 내기를 하면,
판돈은 제가 다 쓸어 모은다는 사실~^^

지금은 아주 많이 나아졌는데,
아무래도 지고는 못 사는 성격 탓인 것 같습니다~^^


책읽는나무 2016-09-09 06:45   좋아요 1 | URL
응팔 드라마를 통해서 저도 바둑에 대한 관심이 생겼었어요
그리고 저도 류준열을 좋아해서 `어남류`의 결말로 이루어지질 않아 어찌나 화가 나던지~~한 며칠 박보검 얼굴만 봐도 속이 쓰려서~~ㅜ
그러다 꽃청춘에서 박보검의 인성을 보고서 화를 달래고 마음을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그러면서 박보검 하면 아직 사극을 보질 못해서 그런지 항상 바둑이 먼저 떠올라요!!
어릴적 생각해보면 응팔 그시절였던 것같아요!! 친정아버지께서 늘 바둑판만 잡고 계셨던 기억이 많이 나네요~그러고보면 그시절쯤 바둑이 유행이었었나?싶기도 하구요
암튼 바둑이라하면 어렵지만 괜스레 친근감이 가고 약간 추억의 스포츠 같단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자기계발서라 생각하고 관심없었던 책이었는데 나무꾼님의 글을 읽고 나니 이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직장생활 하시느라 힘드시죠?
건강 조심하시고 다가오는 명절도 잘 보내시구요
(넘 이른 인사에 괜히 심란하게??ㅋ)

sslmo 2016-09-12 14:39   좋아요 2 | URL
저 지금 이창호 부득탐승 읽고 있는데,
이세돌보다는 가독성이 뛰어나요.
거기다가 최택(박보검)의 설정이 전부 다 이창호에서 비롯되었지 싶네요.

전 시어머니가 살아 계실땐 명절에 시골 가는게 그리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남들이 다 가니까, 체면에 물려 형식적으로 오가는 것 같아서...시간 낭비이지 싶지만,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오랜 전통인데...악법도 법이다 이러면서 따라야죠~(,.)

님도 보름달처럼 풍성한 추석 보내시길~^^

2016-09-11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2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 지음, 조영학 옮김 / 구픽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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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을 제대로 읽을 깜냥이 안 되나 보다.

고등학교때 이과였던 나는 국사와 세계사에 한참 약해서,

이런 역사 소설의 경우, 궁여지책으로 그 시대의 역사책을 먼저 훑어본다.

이 책 '아우구스투스'도 읽기전에 그 무렵 로마의 역사를 공부를 하는 걸로 워밍업을 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을 보면 작가 생전보다는 사후에 회자되고 인기를 얻기도 하는 걸로 미루어,

이 책도 그렇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아무런 상 따위는 수상하지도 않은 '스토너'가 나름 괜찮았었기에,

찬사가 쏟아지고 1973년에 전미도서상도 수상한 이 책은 더 나으려니 했었다.

 

이 책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내 견해를 밝혀보자면, 속빈 강정이고 빈수레가 요란한 꼴이다.

우리나라에 이제서야 소개된건 다 이유가 있지 싶다.

 

미국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에는 반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미국에서 받은 상은 뭐냐고, 어떻게 받게 되었냐고 할 수도 있겠다.

1973년 무렵, 미국의 정세나 상황에 이 책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았을까 소심하게 추측해 본다.

 

번역도 그리 깔끔하지 않다.

조영학 님의 다른 번역 작품들을 좀 읽었었던 터라,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타 작렬에다, 문장에서 시제가 일치하지도 않는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두고 편지를 쓰며 회상하는건데, 현재시제여도 이상할텐데 미래시제로 번역된다.

또 '물주구문'이라는 것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이지 싶은데,

사람을 주어로 바꾸었을때 시킴과 당함을 혼동하고 있다.

 

고백하건데==>고백하건대(20쪽)

이 정도는 '숨은그림찾기' 급의 퀴즈이고,

21쪽의 이 부분을 읽다가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한 나는,

아마존까지 꾸역꾸역 들어가서 원서를 미리보기로 비교하였다.

 

 

그저 성격좋은 애송이 정도였지. 얼굴은 너무 섬세해 혹독한 운명을 이겨낼 것 같지도 않고 성격은 내성적이라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고, 목소리도 감미로워 지도자의 거친 언어를 담아낼 것 같지 않았네. 그저 한가로운 학자나 문인이라면 또 모르지. 가문과 부가 있으니 자격이야 충분하지만 솔직히 저렇게 빈약해서는 원로도 어려울 듯싶어.(24쪽)

위 박스 안은 서기전13년, 마에케나스가 리비우스에게 보낸 서한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쓴 편지 글인데,

편지를 쓸 당시에는 이미 황제가 되어있는 옥타비우스를 얘기하면서 현재시제를 사용하니 완전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원로도 어려울 듯 싶었어'정도가 어떨까 싶다.

친구들이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날은 물론 그 후로도 한동안 다들 나를 바보같다고 생각할 거네. (23쪽)

이 부분도 '생각했을 거네'정도로 바꿔 주는게 낫지 않을까?

25쪽의 카이사르가 옥타비우스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아무리 편지 글이 그런 형식을 띤다고 해도 '친애하는 옥타비우스'는 좀 웃기는 번역이다.

 

초반부에 집중되던 이런 오류들은 중반부로 넘어가면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몰입에 실패해서 맥이 빠져버리니 재미가 없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의 전미 문학상 수상은 어찌보면,

황제라는 미명하에 독재를 정당화하고, 그리하여 왕권을 강화시켰던 로마 시대의 그것을,

1973년 당시 강대국인 미국이 재현해 내려했던 욕구와,

그 당시 강대국을 열망하고 선민 의식을 키우려던 미국 국민들의 그것에 부응하려는 기대심리가 맞물려 이뤄낸 성과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서신과 일기, 회고록 등 여러 형식의 글들이 엮여 한 편의 소설이 되는데,

서신도 어느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게 아니고,

일기, 회고록 또한 어느 한사람의 것이 아닌데,

이런 것들이 남아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존 윌리엄스의 창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한사람이 쓴 것 같다.

그 시대에는 모든 글을 연설체로 씌여서 문체에서 자신만의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인지, 

존 윌리엄스가 그렇게 써서 그런 것인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그 섬세함을 잡아내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쉬웠다.

암튼 이러저러한 편견을 버리고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보니,

옥타비우스 보다는 '브루투스'가 오히려 멋지다.

브루투스라 함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음의 순간에 '브루투스 너마저도'했던 그 브루투스이다.

 

그동안 난 브루투스를 반역을 꿈꾼 포악한 정치가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도덕적'이라는 관점에 있어서는 사람들에 따라 입장이 다를테니 차치하고,

행동가이기 전에 학구적이었던 것 같다.

변론가로서도 명성이 높았고 정치적·철학적인 작품의 저자로도 유명했다는데,

따로 그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고 서신만 몇 편 존재한다니 아쉽다.

 

이 소설 속에서 브루투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보낸 서신을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지금의 지위가 얼마나 위중한지 자네가 제대로 이해할 것 같지는 않구먼. 내게 애정이 남아 있지도 않겠지. 나 또한 바보가 아니니 자네를 걱정하는 척 위선을 부릴 생각은 없네. 이 편지를 쓰는 이유도 자네가 아니라 이 나라를 걱정해서일세. 안토니우스는 미친놈이니 편지를 받을 수 없고 레피두스는 멍청이라 편지를 이해조차 못할 터이니. 자네는 미치지도 않고 바보도 아니니,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주리라 믿네.(116쪽)

 

암튼, 원로회 의사록과 개개인의 일기를 보니,

미신과 점성술, 예언가나 주술가 따위가 그 시대, 그 국가에도 성행했었나 본데,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독재의 시대'에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들이 기승을 부리나 보다.

나처럼 긍정적이 못해 맨날 투덜거리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감정이입을 하다가 뒷목을 잡고 뒤로 넘어갈 수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다보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세력을 튼튼히 하여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시킨 카리스마 짱 넘치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명의 철학자 내지는 선각자를 만나는 기분인데,

이건 왠지 스토너 교수를 닮은 듯도 하고, 존 윌리엄스 작자 본인을 닮은 듯도 싶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의미가 없어질수록 세월을 버텨낸 힘에 대해서까지 점점 회의가 든다네. 인간이야 운명을 향해 발버둥친다지만 신들은 분명 그런 미천한 존재들한테 관심조차 없다네. 신탁도 모호하기 짝이 없기에 결국 그 예언도 직접 뜻을 헤아려야 하지. 사제 노릇을 할때도 난 짐승 수백 두를 잡아 내장과 간을 실험했고, 그 결과 설령 신들이 실존한다 해도 인간사에 개의치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네. 그래서 내가 사람들한테 로마의 고대 신을 따르라 부추겼다면 그건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필요 때문이었네.(382~383쪽)

위 문단을 곱씹어보게 되면 알 수 있듯이,

아우구스투스 이기 전에 옥타비우스였던 그는 정치적이지도 않고 종교적이지도 않고,

"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삶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26쪽)의 그것처럼 살기 위한 여정이었을 수도 있다.

 

ㆍㆍㆍㆍㆍㆍ어차피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네. 아무리 초라하다 해도 본질을 넘어선 그 누구도 되지 못해. 나는 지금 말라빠진 정강이, 쭈글거리는 손, 세월에 얼룩지고 처진 살갗을 보고 있네. 한때 이 육신이 그 자체에서 벗어나 타인의 육신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니 우습기까지 하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혹자는 쾌락의 찰나에 온 생을 걸고는, 육신이 말을 듣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외로워하지.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육신이 아닌 것이 오로지 쾌락뿐이건만, 그 쾌락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야. 오히려 우리 믿음과는 달리, 성애란 그 무엇보다도 이타적이라네. 타인과 하나가 되어 스스로를 탈피하려 하기 때문일세. 그 때문에 대부분 가장 저급하다고 여기네만 성애도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네. 성애가 더욱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이야. 하지만 일단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자아에 갇히지도, 자아 속으로 쫒겨나지도 않는다네.ㆍㆍㆍㆍㆍㆍ동성애는 내가 볼 때 육체적 쾌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네. 동성의 몸을 애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애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야.오컨대 자아의 탈출이 아니라 자아로의 구속이라는 뜻이라네. 친구를 사랑할 경우 자신을 타자화할 수 없어. 온전히 자신으로 남아, 될 수도 없고, 되어본 적도 없는 자아의 신비를 관조해야 하지. 아이를 향한 사랑은 이 신비에서도 가장 순수한 형식이라네. 아이의 내면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잠재력이 많은데다, 가장 극단에 있는 자아가 관찰자로부터 분리되기 때문이라네.(384~385쪽)

 

존 윌리엄스의 전작 '스토너'도 그렇고 요번 '아우구스투스'를 읽고 느낀 점은,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스토너가 학문을 광적으로 사랑하거나,

아우구스투스에게 전쟁을 불사하는 독재자나 폭군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가 아니라,

나름 자기자신에게 집중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어낼지 모르겠지만,

난 이 책이 별로였던 이유를 내 자신에게서 찾아야할 듯 싶다.

이 책을 읽을 깜냥이 아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단 가랭이가 찟어진다는 말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고 툴툴거린다.

뱁새도 황새도 조류여서 날개로 날아가면 되는데, 굳이 종종 거리면서 걸어가다가 가랭이가 찟어질 일도 아니다.

 

때문에 '부루투스, 너마저도'했던 부루투스를 멋지다고 설레발을 칠 수도 있는 것이고,

거기서 '브로콜리 너마저도'를 유추해 낼 수도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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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9-02 16:16   좋아요 1 | URL
ㅎㅎ마지막 브로콜리 너마저에서 빵 터졌어요!

sslmo 2016-09-03 09:46   좋아요 1 | URL
따뜻한 유자차 한잔으로 시작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저 브루투스 멋지다고 했다가, 친구한테 엄청 욕먹었어요.
아무리 카이사르가 폭군이었다 하더라도,
친아버지가 아닌 양부였던 하더라도,
정당화할 수 없다나 어쨌다나~ㅠ.ㅠ

비록 아버지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자식은 아버지를 편들어야 한다...해가면서 공자를 인용하는데,
저 죽는줄 알았어요.

전 소설을 읽은 것이고, 소설 속 브루투스가 멋지다는 것인데 말이죠.
근데 소설 속 브루투스의 저 말, 쫌 멋지지 않아요?^^

2016-09-02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6-09-03 09:58   좋아요 1 | URL
충분히 좋았고~,
님의 선물이어서 가치가 배가 됐습니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나혼자산다`를 보는데, 전현무랑 기안84가 그러더라구요.
악플에 상처받았다고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그렇지만 악플보다 더 나쁜게 무플이라구요.

이런 리뷰도 마찬가지일거예요.
비판은 장기적으로 봤을때 출판사를 성장시키는 것이고,
그 성장은 독자에게로 되돌아 오리라 믿습니다~^^

좋은 책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ㅅ!

[그장소] 2016-09-02 17:20   좋아요 0 | URL
조목조목 신랄한 글 ㅡ잘 읽고 가요~^^
거침없어 시원한 ~~^^

sslmo 2016-09-03 10:13   좋아요 1 | URL
맵더이까, 쓰더이까?ㅋㅋㅋ~.

장렬했던 여름이 전사한 느낌이예요.
독서의 계절 가을이 왔습니다.
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책을 읽어보자구요~^^

[그장소] 2016-09-03 20:19   좋아요 0 | URL
저는 간이 고른게 맵짜고 칼칼한거 좋아해요!^^

초딩 2016-09-02 17:55   좋아요 0 | URL
시대상, 시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 강제하고 싶은 이야기. 그렇게 상을 받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 속으면 안되는데 ㅎㅎㅎ
개츠비도 같은 맥락이라고 슬쩍 내밀어 봅니다.

sslmo 2016-09-03 10:16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개츠비도 그런 듯 해요~^^

하지만 개츠비는 디카프리오 땜에 다 용서할 수 있어요.
완전 후덜덜한 외모고 연기였잖아요~^^

초딩 2016-09-03 10:1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네에 디카프리오 맞네요 ㅎㅎㅎ
좋은 주말 되세요~

다귀찮아 2016-09-02 19:17   좋아요 4 | URL
안녕하세요, 아우구스투스 담당자입니다. 평소에 양철나무꾼 리뷰들을 즐겁게 읽는 팬이에요. 아우구스투스는 특히나 좋은 평 받고 싶다 생각했는데 찬찬히 읽다보니 느끼시는 부분들이 이해가 갑니다. 저는 담담하고 재미있게 읽어내려갔는데 소설은 역시 여러 분들이 많이 읽으시고 각각 느끼시는 부분이 달라서 재미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오탈자 부분은 제가 잘 살피지 못했네요. 잘 살피고 다음 쇄 때 수정 반영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많이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sslmo 2016-09-03 10:26   좋아요 1 | URL
불쾌하셨을 수도 있을텐데, 이렇게 호의적인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위 댓글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이 모두가 이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다른 표현이니까 이해해주실거라 믿습니다~^^
귀사와 귀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구픽 출판사 낯설어서 검색해보니, 올 1월 신생이더군요.
저 한때 장르소설에 열광했었는데, 아무래도 종종 넷상에서 리뷰로 만나게 되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감정선을 따라가는 장르소설을 좋아했었는데,
존 코널리도 출간 예정이시더군요.

감정선을 따라가는 장르소설로, 존 카첸바크 출간해 주실 의향없으신지?
완전 강력 추천이요~^^

다귀찮아 2016-09-03 17:09   좋아요 2 | URL
실은 예전 회사에서 마이클 코넬리를 오랫동안 담당해서 그때 좋은 리뷰 써주신 것도 기분 좋게 보고 그랬습니다. 스토너도 그곳에 있을 때 저희 팀에서 출간한 책이라 좋은 리뷰 보고 아우구스투스도 좋게 보셨으면 좋겠다, 기대를 했고요. ㅎㅎ 앞으로 구픽에서 존 코널리와 기타 좋은 작가들도 소개하려고 하고요. 존 하트 작가의 책도 곧 출간됩니다. 카첸바크도 잊고 있었는데 말씀해주시니 다시 검토해봐야겠네요. (그러고 보니 존 윌리엄스-존 코널리-존 하트에 만약 말씀하신 존 카첸바크까지 더하면 존들만 계속...)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6-09-02 19:19   좋아요 2 | URL
책표지만 있는 페이퍼보다 읽고난 뒤 책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밝힌 리뷰가 좋습니다.

sslmo 2016-09-03 10:29   좋아요 0 | URL
저 이렇게 주제 넘는 짓(?) 했다가 벌써 몇번이나 욕먹었었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멈출 수 없는 이유는
책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소심하게 고백해 봅니다~--;

cyrus 2016-09-03 14:43   좋아요 0 | URL
누가 우리 양철나무꾼님을 욕한답니까? 밑에 시이소오님 댓글의 답글에 있는 링크를 확인했는데요, 예나 지금이나 비회원 계정으로 남을 비판하는 건 정말 쉽군요. 자신의 비판이 맞으면 떳떳하게 닉네임을 밝히고, 비판 내용의 문제점이 있으면 정중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 어려운 가 봅니다.

sslmo 2016-09-08 14:50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비회원 계정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고,
도깨비 방망인가, 그런 닉으로 들어왔던 그 책 편집자였던 걸로 기억해요.

본인이 편집한 책에 열정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그러기 위해선 본인이 실력을 키우는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꼽으라면, 독해능력을 키웠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봅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떤 뜻과 의도에서 쓴 리뷰라는거 충분히 알 수 있을테니까 말예요~^^

요즘은 보면 출판사도 그렇고 이런 서점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고,
불황이라는 이유만으로, 잔뜩 독기만 머금은거 같아서,

출판사나 서점, 독자 모두 윈윈하는 존재가 아니라,
제로 썸 게임을 하는 것 같아,
아니, 모두들 제 살 깎아먹기인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ㅠ.ㅠ

시이소오 2016-09-02 20:40   좋아요 2 | URL
원문비교독서시라니, 번역하시는분들 정신이 번쩍들겠네요. ^^

sslmo 2016-09-03 10:55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책을 향하여 과욕을 부리다보니,
때론 오지라퍼로 발현되기도 하더군요.

저를 이해해주시는 호의적인 출판 관계자 분들도 계시지만, 때론 욕을 먹기도 하죠.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http://blog.aladin.co.kr/745144177/4538065

지금행복하자 2016-09-02 23:20   좋아요 2 | URL
좋아요. 신랄한 비판. 읽으면서 감안해야겠어요~ ㅎㅎ

sslmo 2016-09-03 10:59   좋아요 2 | URL
저와는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실 수도 있을 거예요.
세상에 수많은 사람만큼 수많은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어여 읽고 리뷰 남겨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16-09-04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8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09-04 20:34   좋아요 1 | URL
카시우스의 부추김으로 시저를 암살한 부르투스의 흑역사마저 수용? ㅎㅎ
존 윌리엄스의 뚝심으로 아우구스투스를? 하며 약간 기대됐는데 양철나무꾼님 평이 이래서 의외....

sslmo 2016-09-08 14:41   좋아요 1 | URL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들처럼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제각각 개인적인 감성과 취향이 맞물려 책이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오는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라이 투 해보셔도, 후회 안하실거예요~ㅅ!

제가 별 셋 미만은 리뷰로 안 쓰는데,
별 하나인데도 리뷰를 쓴 적이 딱 두번 있었습니다.

하나는 왕꽃선녀님 류의 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4대강 찬성 류의 책이었어요--;

asnever 2016-10-03 15:25   좋아요 1 | URL
관심이 비슷한 것 같아서 주제넘게 링크를 걸어봅니다.

http://asnever.blog.me/220825922818

sslmo 2016-10-06 10:58   좋아요 1 | URL
평소 님의 열정과 노력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네이버 블로그는 하지 않아 인사를 남기지 못했었습니다.

이리 주소를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__))
 

어렸을땐 세상을 잘 못랐었다.

국민(=초등)학교 땐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해서 선생님들은 화장실도 안 가고 잠도 안 자고 그러고 살 줄 알았다.

시인들을 향하여서도 비슷한 환상을 품고 있었는데,

시 속의 언어처럼 예쁜 말만 하고 시 속의 삶처럼 그렇게 예쁘게 살 줄로만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나이를 먹고 삶을 살면서,

이젠 선생님들도, 시인들도,

환상을 품고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지지고 볶고 그렇게 그렇게 삶을 사는 존재들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당신들이 산 삶의 경험과 체험들을 함께 나누려고 선생님을 하고 시를 쓰는 것일 게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고기잡는 법을 알려줘야지 고기를 잡아줘선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알지만,

때론 함께 하는것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걸 알고 실천에 옮긴 이들이 아닐까 싶다.

 

 

 

 

 집에 가자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6월

 

'김해자'라고하면 '데드슬로우'란 시에 익숙해 있던 나는,

요번 시집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알던 그 '김해자'가 맞나 하고 갸우뚱했었다.

시를 통해서 느끼게 되는 정서가 무게 잡지 않는 것이 가볍고 경쾌하지만,

그렇다고 태양을 향해 날아들어 소진하고 녹아내리는 밀랍인형같은 것이 아니라,

인생 살아보니 뭐 별거 없더라 하는 달관의 경지에서 비롯된 가벼움 같은 것이었다.

시들도 그랬다.

어려운 말을 쓰거나  시적인 수사법을 일부러 구사한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느 시보다도 큰 감동과 진한 여운을 주었다.

니가 좋으면

가끔 찾아와 물들이는 말이 있다

두레박 만난 우물처럼 빙그레 퍼져나가는 말

전생만큼이나 아득한 옛날 푸른 이파리 위에

붉은 돌 찧어 뿌리고 토끼풀꽃 몇 송이 얹어

머시마가 공손히 차려준 손바닥만한 돌 밥상 앞에서

이뻐, 맛있어, 좋아,

안 먹고도 냠냠 먹던 소꿉장난처럼

덜 자란 풀꽃 붉게 물들이던 말

덩달아 사금파리도 반짝 빛나게 하던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말한 게 다인 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말

나만 얻어먹고 되돌려주지 못한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붉은 돌에 오소록 새겨진

평범한 일상이고,

그런 일상에서 포착해낸 평범한 단어들인데,

적재적소에 자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건 있어야 할게 제자리에 있는 거란다.

 

지그시

소나기 몇 줄금 지나간 어스름 옥수수 몇 개 땄지요 흘

러내리는 자주와 갈칠 섞인 수염, 아무렇게나 겹겹 두른

거친 옷들 한 겹 두 겹 벗기다 그만 그의 연한 병아리 빛

속 털 보고 만 것이네 무게조차도 없이 그저 지그시, 알

알 감싸고 있는 한없이 보드라운 속내 만지고 만 것인데

요, 진안 동향면 지나다 왜가리숲 아주 오랫동안 바라본

적 있어요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왜가리들, 꼼짝 않고

있는 새들은 모두 알을 품고 있었죠 폭우가 쏟아져도 한

자리에서 지그시, 입과 날개 거두고 지그시, 소중한 것

깊이 품어본 자들은 알죠 왜 한없이 엎드릴 수밖에 없는

지, 왜 한사코 여리고 보드라워질 수밖에 없는지, 왜 하

염없이 그를 감싸줄 수밖에 없는지, 사랑은 그런 것이다,

지그시 덮어주는 일에 골몰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사랑

이다, 혼자 중얼거리며 온갖 생각도 지우고 지그시, 중얼

거림도 멈추고 그냥 지그시

'지그시'라는 시도 좋다.

시가 어쩜 이렇게 순하고 맑을 수가 있는지,

어떻게 이토록 여리고 보드러워질 수 있는지,

이 시를 생각하면 중얼거림도 노래가 되고, 중얼거리다 멈추는 것도 춤이 된다.

왼손이란 시는 또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왼손

오른손으로 김치찌개를 푸다 왼손에 엎질렀다

오른손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 했는데

글렀다, 오른손이 한 짓 왼손도 알아버렸을 게다

벌겋게 부어오른 자리가 쉬지 않고 욱신거리므로

생각해보니 다친 손은 대부분 왼쪽,

사과 깎다 칼에 찔린 것도 왼손 엄지고

못질하다 망치에 두드려 맞은 것도 왼손 검지

오른발이 미끄러졌는데도 부러진 건 왼쪽 손목 아니었나

내 짓 생각해보더라도 제 손으로 제 손 찍는 일

이 행성에선 드물지 않다 내가 잠시 살아본 오른손잡이

세상에선 칼 쥔 오른손에 왼손이 자주 베이고 피 흘렸다

상한 왼손에 성한 오른손이 약 바르고 방대 감아준다

할 일 대충 마친 오른손이 볼펜 잡고 글도 못 쓰는

왼 손을 잠시 바라본다 친친 감겨 입까지 틀어 막힌

왼손이 불뚝거리고 있다

합일

거기, 밖이 무너지고

여기, 안으로 삼켜져

눈 감는 음저를

거기까지 너였다,

여기까지 나였다,

경계가 차츰 무뎌지고 무너지다

문득 모든 말들이 끊긴다

하지 못한 말,

이미 한 말,

들이키고서야 합쳐지는 입과 입

여기서부터 검은 숲,

침묵이 범람한다

말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나조차 잊어버려야 나로 돌아갈 수 있다

너조차 잊어버려야 너에게 들어갈 수 있다

'합일'이라는 시는 '날선 울음'이라는 시와 닮았다.

'날선울음'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가진 것만 잃어버릴 수 있다

나인 것은 도저히 잃어버릴 수가 없다

가진 것은 더하거나 잃어버릴 수 있지만,

체화하여 내 안에 들인, 나 자체는 잊어버릴 수는 있어도 잃어버릴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욕심부리지말고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

 

김해자는 시만 좋은 것이 아니라, 수필도 멋지다.

수필이란 붓가는대로 쓰는 글이라는데,

그것이 시든 수필이든 간에,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건 나름대로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어서 멋진 것인가 보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김해자 지음 / 아비요 /

 2013년 7월

 

요즘은,

집 안에 쌓아둔 책을 정리하고 버리는데 집중하다보니,

책이 안 읽히고 비껴가기만 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겠지 싶어 집어든 책들이었는데,

책의 무게가 가벼웠을 뿐이었고,

의외로 진하고 강한 여운을 주는 책들이었다.

 

책구매를 최대한 자제하다보니, 알라딘 서재 마실도 뜨문뜨문이다.

오래간만에 책 마실을 다니다가 이런 책을 발견하였다.

아무리 자제를 해도 이런 시집의 구매까지 자제할 필요는 없고, 자제해서도 안 되지 싶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그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정여민 시, 허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6년 8월

 

요즘 내가 열쉬미 듣는 앨범'페이퍼컷 프로젝트'

 

 페이퍼컷 프로젝트 - 1집 불공정연애
 페이퍼컷 프로젝트 (Papercut Project) 노래 /

 미러볼뮤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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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4 15:57   좋아요 1 | URL
읽을 분량이 조금 되어서 일까요 ..먼저 ,,,선 댓 후 감...하겠습니다.^^..

아무튼, 시인들은 존재의 감성특공대^^...혹은 감성 선발대....아닐까 싶어요..
유난히 삶에 대한 촉수가 민감한 감도가 있는 분들이니까요..

흔히 저처럼 무덤덤한 것들에게 까지 세밀한 농도의 감각 촉수를 내미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좋은 시가 많아서 엄지척!~

sslmo 2016-08-24 16:18   좋아요 3 | URL
yureka님이 무덤덤하시다구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ㅅ!

그럼 님의 사진이나 페이퍼에 매번 감동을 받는 전~
넘쳐나서 질질 흘리고 다니는 걸까요? 으허엉~ OTL

님에게 적절한 수식어가 생각났는데,
감정 깡패 어떠세요~ㅅ?
(자신을 과소평가한 벌입니다여~!ㅎㅎ)

yureka01 2016-08-24 16:2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감정 깡패..완전 웃었습니다..ㅋ 뭐 감정 말미잘 쯤 했으면 좋겠...촉수가 흐느적흐느적 ㅋㅋㅋ ^^ 덕분에 웃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sslmo 2016-09-02 16:13   좋아요 0 | URL
이 한 몸 망가져 웃음을 드릴 수 있다면야, ㅋ~.

2016-08-24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2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8-24 18:11   좋아요 0 | URL
시집은 얇고, 가볍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싸니까 많이 살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첫 문장에 오타가 있어요.

sslmo 2016-09-02 16:16   좋아요 0 | URL
시집을 사면서 감성의 수혈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저렴한 가격으로 감정적으로 호사를 누리는건, 시집이 으뜸아닐까 싶어요~^^

2016-08-24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09-01 12:18   좋아요 0 | URL
그 쇳물 쓰지마라 에 실린 시인 제페토님 .. 오래전에 인터넷 찾아가면서 열심히 읽었었는데 시집으로 나와서 저도 너무 반가왔어요.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긴 하지만, 뉴스와 연결되어 있어서 더욱더 절절함이 느껴졌었어요~

저는 부모님이 선생니이셔서, 그런 신비감은 없었는데, 부모님(엄마만)이 선생님 같았어요. 마주치면 뭔가 잘못한 거 같아서 슬금슬금 피하고 싶은 ㅋ

sslmo 2016-09-02 16:33   좋아요 0 | URL
제가 님을 어떻게 유추했느냐 하면, 리뷰 쓰는 문체 때문이었어요.
문장과 단락을 나누는 솜씨도 그렇지만, 길게 늘어지지 않고 간결하고 단정한 느낌.

부모님이 선생님이셨다고 하셔서 드리는 말씀인데,
님은 왠지 일상도 간결하고 단정할 것 같다는, 헤에~^^

짧게 쓰는게 더 힘든 저로서는 마냥 부러울 뿐이랍니다~ㅅ!
 

입추, 말복도 지나고 다음주엔 처서도 있다는데, 왜 이리 더운지 모르겠다.

40년 만의 불볕더위라고 하는데,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는 신기록이 이제 놀라울 일도 아니다.

 

며칠전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가 전기요금 누진제 관련 형평성에 어긋난다는걸 알게 되어 화가 났었는데,

(오마이 뉴스 관련기사 링크)

어젠 김구라가 진행하는 '썰전'에서 유시민과 전원책이 제대로 염장을 질러 주셨다.

 

그동안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이라고 해서, 하루라도 글(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는 옛성현을 본받으려 했었는데,

오늘은 이런 위기상황에서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없이, 책만 읽는다는 것이 왠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요금 누진제가 아무리 무섭다 한들,

개개인의 일도 아니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에서 에어컨을 제대로 켜지 못해서 단축 수업을 하거나 임시 휴교에 들어간다고 하는 건가 싶어서 파르르 하게 된다.

 

덥다고 호들갑을 떨던게 민망하여, 이열치열해가며 설레발을 친다~--;

 

 

 

 

 만병을 고치는 냉기제거 반신욕 건강법
 신도 요시하루 지음, 고선윤 옮김 / 중앙생활사 /

 2012년 11월

 

그러던 차에 이런 책들을 만났다.

이 책의 요지는 만병의 근원은 냉기이고, 냉기를 제거하기 위해선 반신욕만한 게 없다, 는 내용이다.

그럴듯한 부분도 있고, 터무니 없는 부분도 있는데,

기전과 원리에 충분한 설명없이 두루뭉술 넘어간 것은 그렇다고 쳐도,

시골 장터의 '배암이 왔어요~'하는 약장수도 아니고 만병통치약-통치방인것처럼 설명하는데,

참고하는 정도로 만족해야지, 진지하게 달려들면 안 되겠다.

 

냉기 제거 건강법을 개발한 신도 요시하루 박사는 원래 공립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의사로 근무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진료하는 동안 신도 박사는 한 가지 의문에 부딪혔다고 한다. 분명히 완치되었어야 할 환자가 몇 년쯤 뒤에 같은 증상으로 다시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닌가? 신도 박사는 환자가 같은 병으로 여러 차례 병원을 찾지 않고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국소적인 치료에 집중하는 서양의학의 한계를 느끼고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차에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파악하고 전제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동양의학을 접하고 새로운 배움을 시작했다.

이후 동서양의학을 병용하여 치료하면서 증상에 관계없이 모든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차가운 기운(냉기 또는 한기(寒邪))'이었다. (23~24쪽)

냉기 제거 건강법을 개발한 신도 요시하루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되고 있어서,

언뜻 보기엔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는데,

이 책을 쓴 사람은 신도 요시하루 박사가 아니라 그의 딸이라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딸의 직업에 대해서 명확한 언급은 없지만,

어머니의 자릴 이어받아 신도 요시하루 박사의 개인 의원에서 접수를 맞았던 사람이다.

 

큰 틀에서 내가 공감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파악하고' 하는 부분 때문이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볼게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이고 자연의 연장선 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을 자연과 따로 떼어놓고 일부니 전체니 하는 것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인 인간의 사유니까 말이다.

냉기제거를 위해 권장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두한족열(頭寒足熱)을 하고,

식사는 자기 양의 70% 만,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몸의 독은 모두 내보내고,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냉기제거 건강법에서 권하는 반신욕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반신욕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굳이 차이점을 말하자면 물 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오래 있을수록 좋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가려움을 느끼면 '시원한 느낌이 들 때까지 긁어도 괜찮다'는 점 따위이다.

 

보통은 긁어서 상처가 나거나 흉터가 남을 것을 걱정하여 가려워도 긁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냉기 제거 건강법에서는 피나 고름이 조금 나오더라도 그것을 곧 독소가 배출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란다.(33쪽)

 

그렇다면 독이란 무엇일까?

몸밖으로 내보내지 않아 쌓이는 걸 독이라고 한다.

식품첨가물, 농약, 방사능 처럼 몸밖에서 들어오는 것도 있으며,

스트레스, 심리적 불안 따위로 머리에 피가 몰리면 몸 속에 냉기가 쌓인다.

혈액순환이 나빠져서 끈적끈적해진 피도 쌓이면 몸의 이상을 초래한다.

독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 밖으로 나올 때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 책이 완전 허무맹랑하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엔 두루뭉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의학적 지식을 어느정도 기본으로 깔고 있어야, 오행과 오감을 제대로 연결시켜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암튼, 난 이열치열을 주문처럼 외며, 냉기제거를 위해 반신욕에 정진하여야 겠다.

 

그런데, 실상 내가 하고 싶은 얘긴,

전기요금 누진제도 아니고,

이열치열 냉기제거 반신욕도 아니다.

 

유니크하지만 매력적이었던 소설 '스토너'를 쓴 '존 윌리암스'의 또다른 작품 '아우구스투스'가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려, 내가 요즘 하트 눈으로 바라보는 '상차리는 상남자', 조영학 님의 번역이며,

이쪽 분야로 내가 인정하는 리뷰어 '이박사'님의 상찬을 받은 작품이다.

기대된다.

책장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는 이 마당에,

사고 싶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고,

갖고 싶어서 환장하겠다~--;

 

 

 

 

 

 

 

 

 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 지음, 조영학 옮김 /
 구픽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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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19 18:02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 ㅡ님이 왜요? 하고 쫓아올듯 싶네요!^^

sslmo 2016-08-24 16:25   좋아요 1 | URL
만병통치약 님, 잘 계실까 궁금하네요.
그래도 다행인 것이 아직 만병통치약 님이 추천하신 책들, 다 못 읽었거든요.
아마도 책장이 비워지기 전에 돌아오시지 않을까 하고 제멋대로 미루어 짐작을 해봅니다.

슬픈 예감만 틀림없는 것이 아니라,
제 촉은 쓸만하다고 자위하면서 말이죠~^^

서니데이 2016-08-19 18:04   좋아요 1 | URL
오늘도 더운 날이예요. 양철나무꾼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sslmo 2016-08-24 16:31   좋아요 2 | URL
또 다른 오늘인데, 여전히 덥네요~--;
처서도 지났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더울거냐고 하늘님 전에 전화 한통 넣어봐야겠어요~^^

yureka01 2016-08-19 18:38   좋아요 1 | URL
올 여름은 더워서 책읽는 것도 상당한 고역이었드랬습니다...ㄷㄷㄷㄷㄷ 게다가 학교 학생들도 더위에 시달렸을테구요..방학이라도 계속 학교 나가서 더운 교실에서 시달렸을테니까요..학교 전기요금 단가가 제일 비싸고..이도 누진제더군요..공부하는 아이들에게 까지..누진제.....

sslmo 2016-08-24 16:35   좋아요 2 | URL
전 올여름 전기요금에다가,
날이 더워서 집에서 해먹지 못하고 외식을 하거나 시켜서 간단한 조리를 해먹는 형태를 취해서,
전기요금 폭탄에, 식비폭탄까지...이중고에 시달릴것 같습니다~ㅠ.ㅠ

지치고 아픈 것보다는 낫지 하면서~

`뭣이 중한데~?`자문자답하며 세뇌 중입니다~ㅅ!

2016-08-19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6-08-24 16:37   좋아요 2 | URL
이힛~, 받아도 돼요?
아, 좋아라~^^
감사히 넙쭉 받겠습니다~ㅅ!

AgalmA 2016-08-19 23:35   좋아요 2 | URL
악플러가 심장병 질환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에 신빙성 추가하게 되네요. 저기 [냉혹] 부분 도표 보면요 ㅎㅎ
[오만]과 [이기심] 부분도 잘 보이게 올려주시지...

독하게 살면 냉독 올라 빨리 죽을 것도 같은데, 그 냉정함으로 편하게 장수하며 사는 사람들 보면 또 갸웃~

sslmo 2016-08-24 16:43   좋아요 2 | URL
Agalma님 댓글 억만년만에 보는것 같애요, 좋아라.
저 감정 도표는 오행의 상생과 상극을 알면 새로울 것이 없어서 간과했나 봅니다.
제가 한번 쓴 글을 다시 복기 안하는 버릇이 있어서,
저리 찌그러졌는지 몰랐습니다.

`독하게 살면 냉독 올라 빨리 죽을 것도 같은데~`이 부분 읽으면서 한참 웃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청량제 같은 댓글이었습니다, 감솨~^^

2016-08-23 22:4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더운데 그사이 잘 지내셨는지요. 더위에도 왕성한 독서와 글쓰기...선생님 글방에 들어와 새로운 의욕을 느낍니다. 한 가지 출간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었어요. 제가 감수자로 참여한 만화가 김경일의 {공자, 안 될 줄 알면서 하는 사람}(문사철)이란 만화작품이 나왔습니다. (책을 보내드리고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요.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교보문고 등에는 이번 주말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네요. 제 서재에 이미지를 붙였는데 잘 나오지 않아 출판사 사장님이 만든 페이스북 주소를 붙여놓았습니다. 그사이 감수 작업과 공저 원고 등 여러 글짐에 제 서재에도 못 들어가고 있었네요. 아직 더운데 더욱 건강하시고요^^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2016-08-24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4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4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08-24 17:09   좋아요 1 | URL
^^ 네 ~ 저만 못보고있는건 아녔군요!^^
가을 전어 같은 북플횐님들!!
 

1.

지난 일주일동안 여름 휴가였다.

쭉 이어서 일주일을 쉬어보는게, 직장생활을 한 이후로 처음인것 같다.

처음엔 설레이고 좋아 죽겠더니 며칠 못가 시큰둥해지고,

어제는 급기야 출근이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던걸 보면 내 안에 워커홀릭이 숨어있나 보다.

 

올해는 그동안의 연휴나 휴가때와는 약간 달랐는데,

그동안은 휴가가 계획되면 일단 책부터 무더기로 들이고 보았는데, 요번엔 책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 바람에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고, 그리하여 나의 독서 목록은 홀쭉해졌지만,

버리고 비우면 홀가분해진다는 걸 깨달은, 나름 의미있는 휴가였다.

 

휴가 전엔 동네에 생긴 알라딘 중고 서점의 오프라인 매장을 이용하여,

책을 대대적으로 정리해버릴 야무진 계획에 들뜨고 설레이기까지 했는데,

직접 이용해본 후 내린 결론은,

'명품백들을 그리 사모으면 나중 아쉬울때 팔아먹을 수라도 있다'는 것이었다.

책은 읽고 느낀 바가 있어 어떤 식으로든 삶을 변화시켰을때 의미있는 것이지, 

쌓아두면 자리만 차지할뿐 종이가 바래거나 좀 먹어버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하여야 겠다.

 

2.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의자에 걸터앉으면 생각이 이성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엉덩이가 닿는 면적이 넓어지면 감성적이 된단다.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난 엄청 감성적이라는데,

실상의 난 책상에 북스탠드를 놓고 바른 자세로 앉아 책을 읽는게 좋다.

 

 나무로 만든 스툴
 니시카와 타카아키 지음, 송혜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8월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봤다.

법정스님의 따라쟁이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이 직업이 아니면 하고 싶은 일 목록에 목수가 들어있긴 했다.

목수라고 하면 연장을 가지고 뚝딱거리고 손으로 꼼지락거리는걸 연상하게 되는데,

나무의 결을 고르고 쓰다듬고 윤을 내는,

손때를 입히는 그 과정이 좋은 것이지,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로 만들어내고 말고는 고려대상이 아닌걸 보면,

책도 그렇고, 목공도 그렇고...나는 나무를 사랑하는 '나무성애자'인지도 모르겠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를 '스툴'이라고 한단다.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순 있지만,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스툴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표현한다.

 

부분적으로 나무를 만지는 사람들이 "적당한 긴장감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 느낌을 알아주신다면 정말 좋겠어요. 그렇다고 긴장감이 넘치면 금방 피곤해지지만요."15쪽)

 

"나무를 지나치게 사랑하면 안 됩니다. 저는 나무를 철저히 소재로만 볼 때가 있어요. 그러니 다른 목공예가들이 거의 하지 않는 페인트칠 같은 것도 해보고 천연 염색(초목염)도 해보는 거죠."

그는 나가타 씨에게서 전수받은 가치관과 셰이커적인 발상을 자신만의 방삭으로 소화해, 이후지 특유의 개성으로 승화해왔다. 그리고 여기에 작품 제작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가치관이 더해졌다. ㆍㆍㆍㆍㆍㆍ이렇게 유연하고 합리적인 가치관을 통해 일반 소비자가 구하기 쉬우면서 일상에서 쓰기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리라.(31쪽)

그러고 보면, 사물이고 사람이고 간에 '과유불급'인 모양이다.

내가 한살한살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 또한, 지나치치 않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엔 여러 종류의 스툴과 여러명의 스툴을 만드는 목수들이 나오는데,

일본 사람에 의해 기획된 책이라서 그렇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작품이 없다는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기억에 남는 스툴이 없나 돌이켜보았더니,

이병헌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중독'에 나왔던 목마 형태의 것이 한때 갖고 싶었었다.

 

이 책 속의 누군가는 스툴의 기능적인 면을 부각시켜 '걸터앉아보고 싶어지는 의자'를 만들어보고 싶다는데,

난 '걸터앉아 보고싶은 의자'가 아니라,

목마를 타듯 올라탈 수 있는 그런 형태의 것이 갖고 싶다.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이라고 해야할까?

 

책 속의 또 다른 누군가는 '심플한 보통 의자.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이지 않은 일상의 도구'를 이상적인 의자로 꼽았다.

디자인을 할 때 늘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은 너무 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짠! 이거 어때, 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것이 놓인 자리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공간에 녹아들어가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것으로요. 그러면서도 보고 있으면 즐거운 것으로."(165쪽)

이런 것들과 더불어 중요한걸 한가지 더 꼽으라면,

장식적이거나 심미적인 기능이 아니라, 안전성이다.

 

3.

책은 읽으라고 있는 것이지 쌓아두기 위한 것이 아니듯,

의자 또한 앉기 위한 것이지 장식용이나 전시용은 아니다.

심미적인 기능보다는 안전성이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암튼,

책도 쌓아두지 않겠다, 의자도 심미적인 기능보다 안전성을 고려하겠다, 라고 했는데,

그게 자연이고 무위가 아닐까?

그걸 다른 말로 바꾸면, '튼튼하면서 그 공간에 녹어들어간 것'이고 말이다.

 

더 이상 책을 쌓아두지는 않겠다고 하면서도,

난 오늘도 책마실을 다니고,

이 책이 사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난리 블루스를 추는 걸 보면,

아직 사람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쓰기의 말들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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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8-16 18:13   좋아요 2 | URL
저도 미니멀리즘 이야기하니 가족이 --;; 책 때문에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딱 잘라 말하는데 일견 들킨 것 같아 움찔했어요. 저도 계속 비우는 중인데 또 계속... 그래서 더 나이들어 확실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일단 미루어 두었습니다.

sslmo 2016-08-24 15:52   좋아요 0 | URL
언제던가 blanca님이 책장 하나 분량으로 책정리를 하려고 애쓰신다고 하셨던거 기억해요.
저도 그렇게 해볼려고 노력중인데,
어찌된게 책이 여기저기서 새록새록 신기루처럼 생겨나요~ㅠ.ㅠ

순오기 2016-08-16 18:41   좋아요 0 | URL
수원가는 고속버스에서 적당히 흔들리며 페이퍼 읽는 맛도 좋아요!^^

sslmo 2016-08-24 15:55   좋아요 0 | URL
수원이면 따님 만나러 가시면서였을까요?
이젠 다시 댁으로 귀환하셨겠죠?
전 버스에선 못 읽어요~,흔들거리며 읽다보면 제대로 멀미를 하는지라~.

참으로 더운 여름이예요.
더위에 쉬이 지치지 않게 힘내시자구요~ㅅ!

[그장소] 2016-08-16 19:02   좋아요 0 | URL
오늘 문득 쌓은 책이 너무 많은게 아닌가...그랬어요..
책욕심이 줄을 것도 아니면서..어쩐지 생을 정리하고픈 맘처럼! (그냥 기분이 그렇단 말!)ㅎㅎㅎ
웃기죠!^^
주질러 앉을지 꼿꼿히 앉을지 어쩌나..그러는중!^^
좋은 휴가셨길 바래요!

sslmo 2016-08-24 16:00   좋아요 1 | URL
제가 그동안 들이고 쌓아놓은 책들을 보다가, 이건 병이다~, 환자다~, 그랬어요.
저한테 들어온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됐달까요?
그동안 책에 너무 감정이입을 했는지,
책이 아닌 제가 버림받는 것처럼 행동했었어요--;


우리 [그장소]님도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말고 이 여름 잘 건너가자구요~^^

[그장소] 2016-08-24 16:09   좋아요 0 | URL
아 ..핫~^^ 공감 동감 !!^^

지금행복하자 2016-08-16 19:24   좋아요 1 | URL
툇마루가 의자에 들어갈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의자보다 툇마루가 좋아요. 퍼지기엔 좁지만 앉기엔 충분히 넓은 툇마루요. 툭 걸터 앉아안을 들여다 볼수도 있고 바깥을 내다 볼수도 있는 툇마루요~~

멋진 휴가 보내시고 오셨나요? ㅎㅎ 책은 놔두면 누래지거나 좀 먹을수 있다는것 명심하겠습니다^^

sslmo 2016-08-24 16:02   좋아요 1 | URL
우와~, 멋진걸요~^^
댓글도 이렇게 멋지게 쓰면 어쩌란 말입니까?

댓글을 보는데, 뭐랄까...잘 찍은 님의 사진 한점 보는것 같았어요~^^
눈과 맘이 같이 호사를 누리네요~, 감솨~!!!

cyrus 2016-08-16 20:54   좋아요 0 | URL
안 보는 책은 생각날 때마다 팔아요. 한꺼번에 모아서 처리하면 분명 한 두 권은 매입 불가 판정 받거든요. 제가 발견하지 못한 물에 젖은 흔적, 조그만 변색 자국을 매장 직원들은 잘 찾아요. 예상치 못한 매입 불가 판정을 받으면 저도 할 말이 없더라고요. ㅎㅎㅎ

sslmo 2016-08-24 16:13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하고 있는 책정리를 끝내면 그렇게 해야겠어요.
제가 요번에 책정리를 하면서 보니까,
알라딘 중고서점의 경우 cyrus님의 말씀처럼 매의 눈으로 잡아내더란 것이죠.

주객이 전도되어 책님을 모시고 살게 될까봐 두렵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