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기독교 - 환상의 미래와 예수의 희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예수나 기독교를 인식하게 된 것은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가 시작이었나 보다.

시 속에서,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라고 읊조리고 있는데...

나는 어린 나이에, 모든 예수나 기독교는 저 시 속에 등장하는 예수 같은 줄 알았나 보다.

그랬으니 종교로서의 기독교,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지지고 볶는 삶 자체로, 내지는 연장선 상에서 받아들이려 했었을 테고 말이다.

암튼, 내가 정호승의 저 시집을 읽었을 때가 스물 언저리였고,

그로부터 그때 그 나이만큼의 세월이 흘렀고,

저 시 속에 등장하는 예수가 이제 실재(實在)하지 않는다는 걸 믿어가려던 찰나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 불을 피우면 따뜻해지는 것'을 희망해도 좋으려나?

부질없는 희망,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예수가 있었으니 반드시 '(당신들의) 기독교'가 필요치 않으나, 굳이 기독교인으로 남고자 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에 불과한 신자가 아니라 제자의 길, 그러니까 어렵사리 몸을 끄-을-고 남을 따르려는 삶의 양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제자란 '타자성의 소실점을 향해 몸을 끄-을-고 다가서는 검질기고도 슬금한 노력'입니다. 쉽게, '자기 십자가를 지기'로 고쳐 말할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제자는 촛농의 힘에 의지한 이카루스처럼 어렵고, 신자는 쓰레기통의 파리 떼처럼 번성합니다. 이제 '신자'의 파리 떼와 그 파리대왕들의 틈 속에서 유일한 가능성은 '제자'이지만, 아,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것이 그 스승을 '믿지' 않은 채 그보다 앞서 '걸어가는' 공전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처럼, 다만 불가능한 꿈을 지피면서, 걷고 걷다가, 죽어버리십시오.(5쪽,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그동안 김영민의 전작들을 읽어 김영민의 논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커다란 제목 '당신들의 기독교'와 목차, 소제목들만을 훑어보고 책의 내용을 대충 미루어 짐작하는 사람들은 낭패를 볼 수도 있겠다.

물론, 큰 제목과 목차, 소제목 등 모두 다 잘 뽑은 것은 맞지만,

큰 제목 '당신들의 기독교' 아래 엮인 10개의 소제목이 어떤 서술도 없기 때문에...

그냥 그렇고 그런 구태의연한 내용이겠거니 하다가는 허를 찔리는 꼴이 되고 만다.

 

이책을 끝까지 차근차근 읽고 나야,

비단 '예수'나 '기독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쪽으로 시야를 확장시킬 수도 있고,

'기독교' 대신에 여타 다른 종교나 각자가 맹목하는 '철학적 신념'을 대입시켜 볼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말이다,

이 책에 나온 10개의 예시 중에 난 저 시집에 나왔던 예수의 실재(實在)를 본 것도 같다.

그러니 이 책 '당신들의 기독교'를 읽고,

'사람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 불을 피우면 따뜻해지는 것'을 희망해 보게도 된다.

 

좀 길지만 부분, 옮겨 보겠다.

j는 기독교인이다. 스스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그리 밝힌 까닭에 그를 기독교인(개신교인)이라 여기긴 해도, 체계가 승인하는 '사회적 동화(social assimilation)'의 지표에서 보자면 j를 굳이 종교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좌표는 희미하다. 우선 그는 정한 교회를 두고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는다. 전라도의 외진 향리에 거처하는 j는 전형적인 농사꾼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눈매가 맵고 말씨가 담담해서 선비풍을 짐작할 수 있는 데다가 일없는 날에는 정갈한 한복을 입은 채 매양 책을 읽고 앉았으니 마을에서는 그를 일러 '농사(農士)'라고 추켜주곤 하였다. ㆍㆍㆍㆍㆍㆍ그가 유독 골독하는 책은 신약성서인데,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지만, 마치 신약성서의 원어가 한글이기라도 한 듯이 ㆍㆍㆍㆍㆍㆍ일견 다석 일파를 연상시키기도 하였다.

 

언젠가 나는 j의 글과 그 필체를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얼핏 초등학생의 글씨를 방불케 해, 비록 잠깐이었지만 지역의 근면하고 학식 있는 처사로 고명한 그에 대한 기대가 일순간 허물어지는 듯도 하였다. 물론 '박필이 천재'라고도 하고, 심지가 곧고 깊으면 오히려 그 겉가량이 어렵기도 하다.

ㆍㆍㆍㆍㆍㆍ

덕망과 재식을 갖춘 지역의 처사인 j는 유능한 지관으로도 이름을 얻었는데, 특히 동기감응설에 근거한 음덕풍수는 기독교의 교리와 양립할 수 앖는 이치를 지녀, 인근 주민들의 상사(喪事)에 도움을 주고자 한 데서 비롯한 선의가 그가 충실히 섬기는 교회의 적의로 되갚음을 당하는 꼴이 몇 차례 있었다. 이웃의 요청에 응해 그가 지관 행세를 할 적마다 손바닥만 한 마을에 소문이 흐르는 게 당연해서 그가 종종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거나 징벌적 교도의 메시지를 보내곤 하였다.

 

j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람살이'인데, 거기에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풍수를 비롯하여 지역의 민속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더러 과감하게 지원하는 이유도 '지금-이곳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는 그의 일관된 '세속적'관심 - 이것은 가히 사이드(E.Said)를 따라 '세속적 관심'이라고 할 만하다-때문이다. 대개의 종교가 '어느 먼 곳'이나 '어느 다른 때'의 유토피아를 명분으로 내거는 대신 지상의 삶을 부차적으로 폄하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j의 개신교는 차라리 일종의 '삶의 종교'-니체가 기독교를 '삶을 고사시키는 종교'로 타매한 점에 착안한다면-로서 그의 일탈적인 행위 속에서 역설적으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j가 기성교회와 불화하는 부분은 교리적 각론이라기보다 사실 어떤 총체적인 '분위기'에서 더 깊어진다. 한결같이 양복에 넥타이를 맨 인간들 사이에서 강기갑 의원이나 처음 등단한 유시민의원의 입성이 되려 낯설게 보이듯이, 일할 때가 아니면 늘 정갈한 한복을 챙겨 입고 입을 열면 동아시아의 고전에다 한시를 주워섬기며 좀처럼 개신교회에서 통용되는 어휘들에 마음을 열지 않는 j의 동태에는 마치 눈엣가시처럼 여타의 교인들과는 쉽게 동화되지 않는 이물감이 있었다.

 

나는 종교의 완성-종교는 결국 믿는 자의 일생에 근거한 한시성과 실존성에 제한적으로 유효하므로 '완성'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긴 하지만-이 어떤 정서와 분위기에 젖어 있는 생활양식, 그리고 그 생활양식에 의해 검질기게 몸을 끄-을-고 다가서려는 어떤 희망에 의해서만 가능해지리라고 전망한다.ㆍㆍㆍㆍㆍㆍ마치 못난 인간들이 못난 신을 제 꼴처럼 품은 채로 역시 못난 생활과 못난 욕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거꾸로 좋은 사람들의 좋은 생활과 좋은 희망은 종교를 완성하고, 그 속의 신을 아름답게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26~133쪽.'j혹은 창의적 스캔들'부분 인용)

 

또 다시 5월이다.

이땅의 꽃들이 피고 지는,

이 땅의 숨은 넋들이 피어나고 스러지는 5월이다.

'예수'나 '기독교' 자리에는 어떨지 몰라도,

저 시의 '예수'나 '기독교'에는 '사람'또는 '삶'을 대입시켜도 좋겠을 5월이다.

 

적어도,

나는 '신'이나 '신성' 대신에 '지금-이곳의 삶'을 대입시키겠다.

때문에 가장 신적인 것은 가장 육체적인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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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5-01 21:56   좋아요 1 | URL
5월 한 달도 즐겁게 누리셔요~
 

밤새 비가 몹시도 내렸다.

바람은 또 얼마나 거세게 불던지,

꽃이 져야 열매가 맺을 수 있다는 말은 다 까먹어버리고,

비바람에 꽃이 떨어져 버리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었다.

점심시간에 친구랑 베란다 캐노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운치있다면서 카.톡.으로 노닥거렸다.

창문을 여니, 해가 환하길래...

서울은 해가 쨍쨍이라고 했더니,

그 동네의 해를 이곳으로 출장보냈기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ㅋ~.

 

어찌 되었건,

지난 주말 난 꼼짝 안 하고 이런 책을 봤다.

 

두명의 만화가가 쓴 책, 두권...ㅋ~.

 

 

 야구생각
 박광수 글.그림 / 미호 /

 2013년 3월

 

 미생 6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요즘 아무래도 일이 힘들어서 그런지,

아니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읽든지 간에,

거기에서 '열정과 재미'라는 글자가 돌출되어 다가온다, ㅋ~.

 

이숭용  그날 땅이 너무 불규칙해서 다칠까봐 못했어.

           우리들은 몸이 재산이잖아.

나        야, 우리는 맨날 그런 곳에서 해.

이숭용  그러니까 나 사실 그날 형네 팀에서 뛰고 많은 걸 배웠어.

        정말? 프로인 니가 아마추어인 우리한테 뭘 배워?

이숭용  프로인 우리에게 없는 것. 열정과 재미.

        열정과 재미?

이숭용  나도 처음에는 야구가 좋아서 시작했거든.

           근데 시간이 지나고 그게 직업이 되니까 어느 순간 내가 야구를 즐기지 못하고 있더라고.

           근데 그날 형네 팀에서 뛰어보면서,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야구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반성했어.
           그날 이후 내가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야구가 즐거워지더라고.(88쪽)

 

 

 평소 생활이 자유롭지 않을 만큼 연습을 하면 운동장에서는 그만큼이 더 자유로워진진다.박광수 (155쪽)

 

 

 

 

봄...하면 아무래도 프로야구가 먼저 떠오르는걸 보면,

그동안 남편과 아들의 주입식에 가까운 세뇌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ㅋ~.

 

또 한권,

내 마음의 겨울에 불을 지른 또 한 권, 미생 6권 되시겠다.

 

기존의 판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후,

나 역시 판 위에 있었음을 새삼 자각했다.

판을 흔들려는 자가 함께 흔들리는 것은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50쪽)

 

 

 

 

술은 열을 올리거든.

즐겁지 않은 기운으로 술을 마시면 뇌가 울어.

크게 울어.

그러다 후회가 쌓이게 되는 거야.

 

기쁘고 싶을 때,

가장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마셔.(158~159쪽)

 

 

 

 

일을 기획할때까진 불덩이를 껴안은 심정으로 확 태워버려야 해.(154쪽)

 

불이다!

 

바둑의 고수들은 대개 다혈질이다.

승부를 결정하는 그 순간만큼은 불이다.

불이어야 한다.

난 불을 꺼내지 못해 프로가 못 된 것이다!(258~259쪽)

 

 

 

 

 

 

 

양미리는 언제 어느 계절에 먹어야 하는건지,

그래야 통통한 알이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난 오늘 양미리에 소주 一盞을 하며,

내린 봄비를 기념하든지,

또는 출장 나온 해님을 환영하든지, 해야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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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3-04-29 20:29   좋아요 1 | URL
이상하게 5월 대구의 날씨는 예전 같지 않네요. 서울 경기도는 날씨가 많다던데 여기는 비 오다가 흐리네요. 흡사 선선한 가을 날씨 같아요. 옛날에 대구 날씨는 봄이 아니라 초여름 정도였는데..

하늘바람 2013-04-30 02:49   좋아요 1 | URL
만화책을 보셔도 시집같은 느낌으로 ㅎㅎ

세실 2013-04-30 10:40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예요. 바쁘셨나보다~~
미생 볼수록 재밌더라구요.
봄이라 그런가 저두 많이 파곤하네요.
밤이면 꾸벅꾸벅 졸아요. 어제도 11시에 취침. 애들 시험공부하는 동안 옆에 있어주어야 하는데.....

다크아이즈 2013-05-01 18:45   좋아요 1 | URL
양철님 잘 계시지요?
미생을 여기서 만나네요.
지인 왈, 아들이 말하길 어른들께 선물할 마땅한 거리가 없다면 미생 1,2권을 포장해서 말 없이 드릴 거래요.
그 다음 권은 알아서 사보게 될 거라네요. 사실 전 내용 모르거든요. 양철님 덕에, 지인 덕에 읽어볼게요.
오월도 잘 맞이하시어요.^^*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책을 읽어도 문장들이 내 눈을, 음악을 들어도 선율이 내 귀를...비껴갈 때가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꽃들이 만발한 봄날에 독서나 음악 감상 따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만...

만발하다는 건 다른 의미로 흐드러졌다는 얘기이고,

흐드러졌다는건 이내 지고 열매 맺는다는 말일테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쿨하게 털어버리고 일어나야 할텐데 요번엔 자꾸 엉뚱한 상념에 젖는다.

 

요즘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다고 이곳 서재에 광고를 했더니,

누군가 땡큐하게도 톨스토이는 '박형규' 번역본으로 읽어야 한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어디선가,

국내 번역가 1세대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 권위자라는 기사를 봤었던 것도 같다.

올해 82세인 그는 내년 말까지 '톨스토이 전집'(뿌쉬낀하우스)을 펴낼 계획인데,

그 뿌쉬낀 하우스에서 현재 '안나 까레니나' 한권이 먼저 나왔다.

요번 '안나 까레니나'는 문학동네에서 나와 현재 반값에 후려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뿌쉬낀 하우스의 것을 한권 한권 콜렉션하고 싶은 마음에 구입해 주셨다, ㅋ~.

 

 

 

 

 

 

 

 

 안나 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13년 4월

 

암튼,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새 책을 집어들도록 내 마음을 움직인건 '권위자'라는 단어였는데,

시대에 뒤지지 않도록 유행어를 바로 바로 반영해야 하는 언어의 속성 상,

나이 80이 넘어 시대상을 반영하는게 가능할까 하는 우려를 했었고,

또 간담회에서 노환으로 청력이 떨어져 같은 질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해 전달받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 한 구석에선 한분야에 60년 이상을 매진한 노학자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유명한 이 첫문장을 보는 순간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청력은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청력외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시대와 소통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당신 만의 더듬이로 언어에 대한 감을 유지하고 계셨던 거다.

'권위자'란 그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를 일컫는단다.

언어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언어에 대한 감을 유지하는게 중요한데,

그 감이라는건 세월이 흐를수록 무디어져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허를 찌른 것이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박형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민음사)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김의기)

 

자신의 분야에서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나 권위자까지는 아니어도,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신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의 신뢰 구축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의 '영거한 외모'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내 스스로는 이미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뻑.하고 있지만, (언젠가 썼던 '타인의 취향' 링크)

그런 나도 한 번씩 좌절을 겪긴 한다.

내가 이 부분에서 자.뻑.이 아니고 진짜 달인이어도 해결을 볼 수 없는 세 부류가 있는데,

환자가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이어서 의학의 효능을 신뢰하지 않거나,

치료방법을 신뢰하지 않거나,

치료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그런 예이다.

 

이들 부부를 알고 지낸건 7, 8년 정도 된다.

할머니는 키 크고 곱고 늘씬하였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활달하였다.

음식 솜씨 좋아 음식을 해서 나눠 먹기를 좋아하여 주변에 할머니 친구들이 끊이질 않았다.

반면 할아버지는 곱상하게 생기신데다가 말을 많이 아끼셔서 선비 같은 성품이라고 짐작했었는데,

한번 화가 나면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손찌검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고 살아온 세월 때문인지 잘 참고 살아오셨다.

 

나의 오너께서는 엄청 부자니까 비싼 약재 팍팍 넣어 약을 권하라고 종용하셨지만,

구시대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의 최첨단을 걸으시다가도,

둘이 합해 이천 원 남짓한 진료비를 계산할때만 되면,

신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더치페이를 구사하시는 이분들에게 이도 안들어갈 소리 같았다.

내가 결정적으로 이들 부부, 아니 할머니에게  충격을 받은건,

할머니가 편찮으시다고 동네에서 왕계란 두판을 들고 병문안을 왔는데,

계란말이 좋아하는 손주들 오면 해주려고 모셔 두느라고 하나도 드시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를 들었을때 였다.

 

그런 할머니가 얼마전에 오셔서는 많이 편찮으시다면서,

좋은 약재 넣어 약 한재 지어달라고 하셨는데,

당뇨가 심하여 인슐린 주사까지 맞으시는 기왕력에다가,

요즘은 그나마 그 인슐린 주사로도 혈당 수치를 조절하지 못하시는 듯 하여...

더구나 등쪽 날개쭉지 끝나는 부분이 아프다는 말씀에,

간에 부담을 주는 한약이라니 싶어,

큰병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시라고 돌려보낸게 한달쯤 전이었다.

다른 한의원에 가서 보름치 한약을 지어 드시고는 차도가 없으셨는지 여기저기 병원을 돌고 돌았으며...

검사 결과, 췌장암이란다.

 

물론 내 말이 설득력 있게 작용하여 한 달 전에 큰 병원에 가셨다고 한들,

검사결과나 진단명을 번복하지는 못했을테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좀 길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내가 일하는 분야에 있어서 나의 권위나 신뢰라는 것은,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할 정도,

나중에 후회하며 연락해 올 정도, 밖에 안되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것이다.

 

박형규 님의 안나 까레니나를 읽으면서 단어와 문장을 벼리는 품이 남다르다는 걸,

언어를 가다듬는 센스랄까 하는게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이게 타고나기만 한 게 아니라, 오랜 삶의 체득을 통하여 둥글린 느낌이다.

그렇다고 세월이나 나이만큼 올드하거나 고루하지도 않다.

소위,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깨닫는다는 '온고지신'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박형규 님의 권위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권위나 신뢰라는 것이, 외모나 나이 같은 것으로가 아니라  그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성으로 판가름나는 것이니 좀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 하다가도,

내가 가꾸고 노력해야 할 것이 외모나 나이 따위 또는 학문에 힘쓰는 등 나의 노력으로 성취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성이라는, 어찌보면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인 다른 사람들의 판단력이 개입되는 문제라고 생각 하니...앞으로 무엇을 더 갈고 닦아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며칠전에 읽은 <뇌미인>이라는 이 책을 보면,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해야만 뇌에 알통이 생긴다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더하다.

 

 

 

 

 

뇌미인
나덕렬 지음 / 위즈덤스타일 /

 2012년 10월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해야만 뇌에 알통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뇌 알통을 만드는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 방법은 신체 운동이다.ㆍㆍㆍㆍㆍㆍ우리 치매 연구팀에서는 뇌 유연성에 대한 연구를 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들에게 뇌 유연성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젊은 사람에게서 근육 알통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노인들에게서 오히려 뇌 유연성이 좀 더 많이 나타났다. 물론 똑같은 과제를 하면서 젊은 사람과 노인을 비교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ㆍㆍㆍㆍㆍㆍ노인들은 은퇴 이후에 아무래도 뇌를 덜 쓰게 된다. 고령이 될수록 더욱 그렇다. 따라서 쓰지 않던 뇌에 자극을 주면 더 큰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인도 뇌를 사용하는 횟수를 늘리거나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뇌 알통이 생긴다는 것이다.(28~29쪽) 

 

박형규 님을 보면서 든 생각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행운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행운이지만,

적어도 그 일을 하면서 밥을 안 굶을 수 있고 가족들 밥을 안 굶길 수 있어야겠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자리가 잡히고 가족들 밥은 안 굶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준비는 갖추어 졌는데,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배우고 또 배운대로 실천할 수 없다면 다 부질없다.

 

그러니 한번 사는 인생,

죽을 때 돈을 싸들고 갈 수 있는것도 아니니,

아등바등 하고 참지 말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 하고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라는 저 자리에 대입시켰을때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건,

'보고싶은 사람' 이다.

보고싶은 사람들이 많아 미치겠는,

미치고 팔짝 뛰겠는,

근데 아직 '꼴까닥~'내지는 '깰꾸닥~'까지는 아닌,

그런 비 내리는 봄밤이다.

이 비 그치면 목련이, 그리고 벚꽃이 이울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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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4-21 09:24   좋아요 0 | URL
번역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또 저처럼 한국말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헌책방에서 박형규 님 '여러 가지 번역책'을
일부러 하나하나 사서
견주어 읽기도 해요.

박형규 님이 번역한 톨스토이는
'시대에 따라' 말투가 조금씩 다르답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책이 나온 때에 따라서
말투가 조금씩 바뀌곤 해요.
스스로 꾸준하게 가다듬고 손질하시거든요.

늘 스스로 번역을 새로 하고
당신 스스로 한국말을 날마다 새롭게 배우시거든요.

북극곰 2013-04-22 09:18   좋아요 0 | URL
안나 까레리나의 저 첫 문장은 아주 어릴 적에 보고도 참 기막힌 말이다. 싶었는데. ^
삼중당 문고판이었던 것 같은데, 같은 번역가였을까요? 꼭 저 문장이었거든요.
나름나름, 고만고만.... ^^

나무꾼님 잘 지내시죠?

간만에 어젠 남한산성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너무 과식하는 바람에
저녁도 건너띄고 아침도 조금 먹었는데도 아직 위가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소화도 못 시키면서 식탐이 이렇게 많아서야. ㅠㅠ
 

요즘 고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다.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라는게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옛것이라고 하여 고루하거나 진부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깊이있는 사고(思考)를 요하면서도 품격을 두루 갖춘 것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난 옛날에 도스토옙스키 옹의 책을 좀 읽다가 넘 어려워서,

고전은 그렇게 다 어렵고 재미없는건 줄 알았었다는~--;

물론 세월이 흐르고,

나도 생각이 여물고,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삶을 해석하는 관점 같은 것들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실은, '안나 까레니나'를 그냥 읽게 되지는 않았었다.

어쩌다가 읽게된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가 계기가 되어 고전문학에 feel이 제대로 꽂혀 주셨다.
'김의기'와 '안나 카레리나'를 읽으면서 느끼는건,

고전문학 중에는 중고등학생들이 필독서로 읽기엔 쉽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거다.

나처럼 반 평생을 산 사람의 눈으로 전후좌우 사정을 고려하여도 어림짐작하게 되는 것들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개중에는 번역까지 난해하여 우리말로 적혀있어도 무슨 뜻인지 못 알아먹겠는 것도 있더라~--;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로마서 12:1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1부/13쪽/1줄)

 

  

 

반면,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에 나온 이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내가 갚을 것이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누구의 번역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두 번역을 놓고 봤을 때, 같은 내용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난 고민을 하다가 '로마서 12장 19절'을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여러분이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이 나에게 있으니 내가 갚을 것이라.'"

라고 되어있다.

번역의 잘, 잘못을 떠나서 적어도 원수나 복수를 갚는 주체가 '주님'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는데,

작가의 의도가 그런 것인지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안나카레니나를 읽으면서 '톨스토이'가 시대를 넘나드는 거장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의 부단한 노력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대의 사조나 조류, 유행에 대해서 폭넓고 깊이있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뿐더러, 그걸 그의 작품 곳곳에 녹여냈는데...그것이 요즘의 삶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올드하거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였는지, 달아놓은 각주를 보면서 였는지...기억이 가물가물한데...러시아어가 재밌게 느껴져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키티는 안나의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산문적인 용모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러시아어에서 '시적'이라는 말은 '예술적인'이나 '아름다운'의 뜻을, '산문적'이라는 말은 '일상적이고 범속한'이나 '무미건조한'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1권/162쪽)

 

레빈이 이런 상상을 하는 부분도 재밌다.

그럼 손님이 물을 거야. 어떻게 이런 일에 그토록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까? 남편이 흥미를 느끼는 일이라면 저도 흥미를 느끼게 돼요.(212쪽)

단순히 레빈의 그것이라고 생각했을때는, 좀 권위주의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 상대방이 흥미를 느끼는 일에 같이 흥미를 느끼게 되는 그런 사랑이라면, 참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이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
 김의기 지음 / 다른세상 / 2013년 1월

 

 

 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겹쳐 읽은 책은, 이택광의 '마녀프레임'이다.

이 책은 이웃 a님의 서재에서 보고 혹하여 읽게 되었는데 '동종요법'이나 '고대의학'관련된 장르소설을 좀 읽어줬던 터라 그랬는지 어쨌는지, 책의 내용이 너무 가볍고 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암튼~--;

  마녀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존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히브리 신화에도 마녀는 분명히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마법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다. 즉 날씨나 출산 또는 의술처럼 생존과 밀접한 일들을 마녀가 관장했다.히브리어로 마녀는 므카세파인데 이 말은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특별히 '여성'이라는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마녀하면 떠오르는 섹스와 관련한 뉘앙스도 없다. 대체로 마법은 병을 고치거나 기후를 변하게 하는 요술이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대개 여신 숭배에서 기원했다.(28쪽)

 

마녀사냥이란 "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라는 문구가 번역 문제에서 의미적 혼란 때문에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발생한 것이었다.ㆍㆍㆍㆍㆍㆍ마법사(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는 말은 이렇게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반해서 마법을 사용한 경우에 처벌하라는 말이었다. 아이를 납치하거나 질병을 퍼뜨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다 오늘날로 보면, 의학과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진 존재들이 고대의 마법사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29쪽)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해 본 것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이라는 '틀'은 '예외'를 만들고 약자, 소수자, 희생양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과거에는 그것이 마녀였고, 여성이었고, 유태인이었고, 빨갱이였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무슬림이고 동성애자고 이주노동자의모습으로 현신하고 있는 것이란다.

 

프레임은 어찌보면 군중심리 같은 것이다.

교집합, 여집합, 합집합의 관계에 따라...마녀로 지목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마녀를 지목해야 하고,

이런 상호감시체계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이 '인터넷'이다.

 

 

 

 

 마녀 프레임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나영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그리고, 그런 군중심리를 가장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연예인이 아닐까 싶지만, 잘못 틀어지면 '타.진.요'같은 인터넷 카페가 생겨나기도 하고 눈덩이나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곳이 연예계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과 호기심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된 책, 1박2일 '나영석'PD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정함'이다. 집중과 편애는 한 끗 차이다. 공정함을 잃는 순간 오해가 만들어지고 팀워크는 깨진다. 누군가를 편애해서 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받을 기량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너도 저 기회가 탐이 난다면 최소한 패스를 받을 기량 정도는 스스로 터득해서 갖춰야 한다. 그것만 갖춰진다면 언제라도 너에게 공을 주겠다. 이런 식이다. 어쩌면 야박해 보일 수 있는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호동이 형이 철저하게 유지했던 그 기회에 대한 '공정함'때문이다. 멤버들은 누군가를 질투하기보단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빠른 길임을 알게 된다. 한 예로, <1박 2일>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운 사람은 이수근이다.(143~144쪽)

 

심각하지 않게 설렁설렁 넘겨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그런 책에서 다른 어떤 책에서 깨달을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예전에 한번 김C와 술을 먹다가 인간은 대체 몇 살쯤에 철이 드는가, 라는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잇다. 김C의 대답은 이랬다. 사람은 말이야.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 30대가 되면 마흔이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근데 너는 철들었니? 아니, 하고 나는 대답한다. ...결론은 이거야.87살쯤 먹고 죽기 직전에 드디어 깨닫는 거지. 아들딸 주변에 모아놓고 숨은 넘어가는데 창피해서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거지. '아아....철든다는 건 없구나.' 이렇게 말이야. 최종결 결론을 내리고 저세상으로.

  흠. 묘하게 설득력 있는 애기. 과연 그럴듯하다. 철이 든다는 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철이 든 척.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어른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실을 직시하고 저는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 김C는 가능하면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177~178쪽)

암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날씨가 변덕스럽다거나,

(4월에 눈이 내린게 51년만에 있는 일이란다, ㅋ~.)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하여 나 또한 변덕스럽게 책 한권 읽지않고...

어쨌거나 이 봄을 건너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뭔가를 읽기는 꾸준히 읽었는데 단지 기록으로 남길 시간이 없었을 뿐이고,

내가 열심히 읽는데도 불구하고 신간은 새록새록 나와주고 계신다는 거다.

'책.탑.타.파.'를 고려하여 당분간은 책을 구입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지만...불끈~!!!

이 책 꼭 한권만 구입한 뒤로 결심은 잠시 유보다~--;

 

 

 

 

 

 

 

 

 

 로스트 라이트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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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04-12 13:18   좋아요 1 | URL
제 경우엔 러시아작가들 중엔 도스토예프스키 한 사람만 편애하고 톨스토이 이 할배는 어려서부터 정이 안가서 유명하다는 소리만 풍문으로 들었어요. 전 당분간 해리보슈 형님하곤 결별. 해리 홀레 형님하고 새 교분을 맺는 중이어서 ㅎㅎ 이 캐릭터 너무 어썸합니다.

2013-04-1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9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여전히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아직 덜깬 눈을 비비고는,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이런저런 이슈를 반찬 삼아 밥을 우겨넣다가는 어느 대목에서 목에 걸린 듯 '케겍'거린다. 눈물을 눌러 삼키느라 맨밥을 서둘러 눌러 삼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며칠전에는 쌍용차와 관련 인도 마힌드라 경영진이 제 2의 론스타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불거져 애를 태우더니,

오늘 새벽엔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되어 있던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천막이 기습 철거되고, 거기에 화단을 만들었단다.

분향소 천막이 철거된 명분이 시민들이 다니는 인도를 점유해서라고 하는데, 그럼 그 자리에 설치된 화단은 시민들이 짓밟고 다녀도 된다는 말인가, 끙~=3=3=3

내가 이 책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러니까 '시선집중'의 <토요일에 만난 사람'> 코너가 있을 당시,

누군가가 나와 손석희와 얘기를 풀어나가는데, 그게 너무 군더더기 없는것이 진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였다.

유명 만화가라는데,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끼'라는 작품으로 이미 이름을 날렸다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암튼, 그가 하는 얘기 하나하나가 다 솔깃했는데...

그는 몸으로 부딪쳐 경험한 것을 직접 만화로 그려내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노숙을 밥먹듯 한것이라든지, 허영만 문하생으로 들어가기 까지의 고생 과정...그리고 들어가서, 살아남기 까지의 과정을 하나 하나 차근 차근 밟아 나간다.

예전에 피카소가 왜 유명한 화가인지 모르겠었을 때가 있었다. 인상파 화가라 불리우는 그의 어떤 그림들을 놓고 봤을때 아이디어는 몰라도 비슷하게 흉내낼 수는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의 사실주의 작품을 봤을때 '흡~!'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기본이 제대로 됐기 때문에 다른 어떤 그림이든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생의 '윤태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이 만화를 단숨에 2권까지 읽은 지금...

난 다른 이유에서 '킹왕짱' 이 책을  재밌고 그를 멋지다고 설레발을 칠 수 있겠다.

 

처음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는 과정은 차라리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멜로 드라마다.

 

기재가 부족하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 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것보다는,

열심히 하지 않은 쪽을 택하기로 하는데...이때부터 좀 멋지다, ㅋ~.

 

그러면서 바둑을 포기하면서 들고나온 유일한 재산은 집중력이란 말을 한다.

생각이 번져가는 것은 잡념에 빠졌다는 뜻이란다.

 

이 만화책에서 또 나오는 개념.

솔직한게 진실된 거라 생각하는 착각

변명이나 핑계를 위해 사람은 얼마든지 솔직할 수 있다.

진실과는 별개로.

 

암튼, 어찌어찌하여...인턴 사원 딱지를 떼고,

신입사원으로 살아 남은 이들을 데리고 간 곳이 이곳이다.

 

 

 

근로자로 산다는 것.

버틴다는 것.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

이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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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4-05 22:27   좋아요 1 | URL
다들 '살아남기'보다 '즐겁게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알케 2013-04-05 23:35   좋아요 1 | URL
오늘 자 연재 미생...울컥. 저도 겪어 본 상황이라..윤태호는 정말.

saint236 2013-04-06 12:05   좋아요 0 | URL
흠...꼭 구매해야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