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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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물은 겉으로 졸졸 흐르고, 깊은 물은 안으로 소리 없이 흐른다.

하지만 깊든 얕든 간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70대 노교수인 라종일과 30대 청춘인 김현진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글인 이 책'가장 사소한 구원'은,

김현진이 쓴 것이라니까 찾아 읽기는 했지만, 사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편지글이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이미 고인이 되어 다른 쪽으로 업적이 회자되는 것도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편지글을 엿보는 것 같아 왠지 께름칙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라종일이 누군지 몰랐던 터라 불거진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편지글의 형태를 띄었고,

내용은 개인적이나 사적인 것도 있지만,

사유나 성찰의 깊이는 엄청난 것이어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70대 노교수가 30대 청춘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해 쓰여진 편지글을 우리가 엿볼 수 있는게,

엄청난 영광이고 김현진이 베푼 수혜가 되는 셈이다.

 

한사람의 사상과 종교, 아니 삶을 송두리째로 경험하게 되는 건 '아주 사소한 구원'일수는 없고,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김현진이 나눠준 수혜에 감지덕지해야 한다.

때문에 편지글의 형태를 가장한 대담집 내지는 인터뷰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고,

전기나 자서전이라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겠다.

 

사람만이 사람을 망쳐 놓을 수도 있고,

사람만이 사람에게 구원일 수도 있다지만,

그 구원이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냥 아무나 구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외로움에 사무치고 고독에 몸무림 치더라도 자신의 취향이 아니면,

구원이 아니라 쳐다보기도 싫은 원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나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개성이나 취향, 성품에 관한 문제일텐데,

난 그 기준으로 적어도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꼽는다.

 

예를 들어, 같은 음식을 좋아하진 않더라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의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다면,

아주 사소하지만 사람이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구원은 커녕 애물단지일테고 말이다.

 

김현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88만원 세대이고 알콜리즘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 따위는 전작을 통하여 다 아는 내용이고,

가난하고 솔직함을 당당하게 표현해 내는게 매력인,

어느 정도 아픈 것 가지고는 엄살 떨지 않는, 당찬 청춘이라고 생각했었다.

 

라종일은 누구인지 몰랐던 터라,

70대 중반의 노교수라고 하니, 고루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올드한 사람이 아닐까 지레짐작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둘의 설정이 바뀌었다.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엄살 떨지 않는,

씩씩하고 당찬 청춘인 줄 알았던 김현진의 내부에,

실은 누구보다 부드럽고 유연한 자아가 들어앉아 있었고,

상처받기 쉬운 유약하고 연약한 영혼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종의 위장과 방어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씩씩하고 당찬 겉모습이었던 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야말로 누구보다도 다정다감하고 그리하여 길들여짐에 연연해 하는,

바꾸어 말하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고루하고 올드한 영혼이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딸로 태어나 자신을 괴롭힌 수많은 남자들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하는거나,

음악 취향이 편협해서 카펜터스와 비틀즈 그리고 조용필 밖에 듣지않는다고 하는 것들이,

보수적이고 복고적이라는 나의 추측을 뒷받침해준다.

 

김현진이 겉으로는 씩씩하고 당찬 청춘인양 하면서,

안으로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을 시대와 부모탓을 해가며 상처에 아파하고 피흘리고 퍼질러 앉아 있을때,

라종일은 격변하는 세월의 변화를 제때에 제대로 읽어내는 안목과 더불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까지, 를 꿰뚫어 통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개혁에 주도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구차하고 기나긴 사정을 다 듣고 난 선생님은 세가지를 이야기하셨다. 첫째,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둘째, 나는 네편이다. 셋째, 글 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당신도 그것을 알지 않느냐?(6쪽)

궁지에 몰린 쥐가 도망칠 틈새를 찾아내듯이,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구원에 매달렸다. 그것이 선생님과의 서신 교환이었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선생님은 고통을 활자로 옮기라며 단호하게 이야기하셧다. "이야기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당신이 그 고통들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소 낫게 될 것이다."(7쪽)

진단이 제대로이니 처방도 적절할 수밖에 없다.

 

보통 편협하다거나 독선적이라는 말을 할때,

시야가 좁고 낮아서 어느 한부분 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눈 흐리고 귀 어두워져 갖게 되는,

주변과 타협을 안하게 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에고(ego)와 동의어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나이 먹는다는 것은,

연륜에다가 경제력이 주는 여유로움을 옵션으로 장작하게 되어,

오히려 그 어느 쪽보다 유연하고 부드럽고 너그러워지는 것이라는걸,

70대 중반의 노교수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제각각의 불우했던 경험이나, 상처나 고통 따위를 지니고 살아간다.

유독, 어느 누구만, 특별하게 불우하거나, 깊은 상처나 큰 고통 따위로 몸부림 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이들면서 느끼는건,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상처나 고통도 개인 한사람 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상이나 사회상을 반영하는 집단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이나 상처, 고통으로 범위를 좁히더라도, 적어도 가해자와 피해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암튼, 나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것은, 피해와 상처는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적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상처입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 어디엔가 가해자를 발생시키는 일이다.

자신이 상처입은 피해자라는 사실만으로, 누군가 맘 아파하고 상처 입은 사람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렇게 나약하게 '아파요, 아파요~'하면서 엄살을 부릴 순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걸 70대 중반의 노신사는,

현진의 예리한 비판 의식은 그리고 그것을 섬뜩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글재주는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것입니다.ㆍㆍㆍㆍㆍㆍ그런 능력은 현진이 허공에서 혼자 얻은 것입니까? 내가 높이 평가하고 부러워하기까지 하는 현재의 현진을 이루고 있는 어떤 자질은 선천적으로나 혹은 후천적으로라도 부모님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입니까? 부모님은 현재 현진이 처한 어려움의 원인이고 상처만 주었을 뿐입니까?(176쪽)

라고 끄집어내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이쯤에서 끝냈다면,

그냥 70대 중반의 노신사 정도로 치부해 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는 여기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얘기하고, 그 근원으로 효를 끄집어낸다.

효는 부모님께 잘해드리는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

다시말해, 효의 근본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관한 큰 긍정이라고 얘기하는데,

이쯤되면 내공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처 입었다면 그것은 상대방만 탓할 수는 없다고...툭 한마디 던진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언젠가, 신선이 되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썼었단다.

우리 민간신앙에서 신선은 매우 매력적인, 사람으로서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인 존재입니다. 신선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함께 있습니다. 자연의 한 과정으로 산다기보다는 존재한다고 해야겠지요. 그 대가는 사람들에 대한 일체의 공감, 일체의 동정이나 연민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결국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48쪽)

어찌 되었건, 그가 들려주는 사사로운 얘기들이 하나하나 내게 손내밀어주는 사소한 구원인것 같아서,

위안이 되고 힘을 얻게 되는 그런 좋은 책이었다.

(물론 정치를 할 요량으로 쓰여진 인터뷰집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끙~(,.))

 

아쉬운 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나는 김현진에게 하고싶은 말인데, 사랑과 관련하여...

나이 70대 중반의 노교수라도 남성은 남성이라는 것이고,

그걸 라교수는,

언어의 그리고 사고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고대 희랍 사람들처럼 사랑이라는 말을 특별한 경우에만 국한해 사용하고, 다른 경우에는 다른 낱말을 사용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호감가는 이성(혹은 동성)을 봤을때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어떤 말을 쓰면 좋겠습니까?ㆍㆍㆍㆍㆍㆍ(99쪽)

라고 내심을 얘기하고 있다.

김현진이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내용이 편지글만 발췌한것 같다.

그 사이에 따로 오고간 전화통화나 문자 메시지 따위가 있는 듯 한데 생략되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내용을 맘대로 미루어 짐작하고 상상하게 되는 경우도 었었다.

 

또 하나는 라종일 교수를 향한 것인데,

리영희 교수님이랑 관련하여,

나는 아직도 교수님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두루뭉술 넘어가 버린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색깔을 달리하는 경우, 이렇게 대충 넘어가 버리게 되면,

또 다른 모호함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니까 말이다.

 

김현진의 지명도 때문에 택한 책이지만,

이 책을 읽고 느끼고 깨닫고 배우는 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라종일에게서가 더 많았는데,

간단히 요약하라면 이쯤이 되겠다.

 

얕은 물은 겉으로 졸졸 흐르고, 깊은 물은 안으로 소리 없이 흐른다.

하지만 깊든 얕든 간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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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클리닉 - 목적을 달성하는 결정적 한 방
임승수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난 이과 출신이지만, 글쓰기에 일종의 로망을 갖고 있다 보니까,

(꿈 많은 여고 시절 글 쫌 안 되어준 사람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ㅋ~.)

그런 걸 이 동네에도 몇번 자랑 삼아 광고 했었고,

그 여파로 아직도 글쓰기 작법서만 보면 무조건 사들인다.

 

몇몇 마음씨 좋은 문.청.들이 공짜로 나의 글쓰기를 첨삭지도해주겠다고 솔선수범하기도 했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의욕만 앞설뿐,

문.청.들의 부지런함을 꽁무니도 따라가지 못하여 흐지부지 되기 여러번,

그래도 각종 문학상 작품집과 글쓰기 작법서들은 펼쳐보지 않아 더께가 뿌옇게 앉더라도 열심히 사들인다.

 

이 책은 제목을 보자마자 혹해서 사들였다.

'헐~' 글쓰기 클리닉이라니, 뭔가 나를 위한 맞춤한  1대 1 처방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책의 부제도 '목적을 달성하는 결정적 한 방'이란다.

게다가,

서류탈락, 무플, 텅 빈 방명록에는 분명 이유가 있고,

지금 내 글쓰기에 필요한 것으로 공부가 아니라 치료라고 진단하니 얼마나 땡큐하고 안도할 일인가 말이다.

 

당근, 캐럿, 말밥,

수많은 작법서를 뒤로 하고, 젤 먼저 집어들었다.

속지를 펼쳐보니, 1판 1쇄가 2011년 12월20일인데,

내가 가진건, 1판 4쇄로, 2014년 4월 15일이다.

그렇다, 더 신뢰가 간다, 불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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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야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으로 참 혼란스러웠다.

 

일단은 저자 임승수에게 경의를 표한다.

역쉬나, 서울대 출신답게 똘똘한 친구다.

여기서 '친구'란 나와 진짜 친구여서 택한 단어가 아니다.

인터넷을 떠도는 사진 속의 얼굴을 보니,

나보다 한참 영거해 보여서 택한,

젊은 청춘에 대한 일종의 예우와 경의의 호칭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책의 제목은 잘못 되었다.

다만 이 친구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혜안을 가졌고,

그걸 적절하게 상품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지,

이 책은 글쓰기 책도 작법 책도 아니다.

 

독해책 내지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책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문장과 문장 사이, 즉 행간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책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말해, 우리가 기존 제도권 교육에서 배웠던 그런 것들,

반듯하고 틀에 박히고 규격화 되고 했던 바른생활 같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요령과 실전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그러니 클리닉이고 치료라는 말이 통용될 수 있는 거지만,

직접 몸으로 움직여야지,

책으로 읽기만 해서 무언가 어떻게 될거라고 기대를 한다면,

꿈만 야무진게 되시겠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별 다섯개를 꽉꽉 채워서 평가 했던데,

책값만큼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실함을 이기는 잔재주는 없다(179쪽)'고 하면서,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사이트의 목록을 따로 기록해 둔다고 하면서,

구렁이 담을 넘을뿐, 귓뜸조차 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에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파워블로거가 된 '이인'을 예로 들면서,

블로그의 RSS기능도 모른다는 둥,

무인의 무공이라는 둥,

15도씩 온도를 올려주는 책이라는 둥, 의 표현이 나오는데,

혼자만 아는, 내지는 몇몇 사람만 아는 은어나 수사법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불친절한 글이었다, ㅋ~.

 

암튼, 이 책에서 주장하는 건 목적에 맞는 글을 쓰자는 것이고,

혹자들은 그것도 모르겠냐고 하겠지만,

떠먹여주는,

심지어 잘게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그런 제도권 교육의 과잉 친절 속에 살고 우리들에게,

결코 시큰둥 할 수도,

웃어 넘길 수도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공부가 아니고 치료여도 좋고,

이 책에서 가르쳐 주는 게 요령과 실전이어도 좋고,

다 좋은데,

임승수- 이친구는 똘똘해서 제대로인지 모르겠지만,

내 삶이란건 매번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로만 흘러가 버리는데,

그래도 그렇게 실패하거나 잘못 산 인생이라는 생각은 안들더라.

 

항상은 아니어도,

때로 때때로 만족하고,

지금 이순간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면,

너무 행복해서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 싶을 때가 한번씩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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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9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뜨거운 한입 - 박찬일의 시간이 머무는 밥상
박찬일 지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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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 주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듣는데,

'박찬일의 맛'코너에서 신년 벽두인데도 불구하고 스파게티를 소개한다고 하길래,

허를 찌르는 메뉴선택에 낄낄거리고 웃었었다.

 

박찬일 하면,

여러가지 타이틀로 불릴 수 있지만,

뭐니 뭐니해도 이탈리아 음식을 하는 요리사이다.

그 이탈리아  음식을 요리 하는데,

우리나라 식재료를 사용했는지 어쨌는지,

어떤 식으로 우리 입맛에 맞게 재탄생시켰는지, 는 차치할 문제다.

그렇게 본다면 그가 이탈리아의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파게티'를 소개하는건 어쩜 당연지사인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그는, 그 시간에 타자를 쳐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요리를 할 시간이 없단다.

그런 그가 오직 단 하나의 요리를 하는데, 그게, 딸아이의 요청으로 만드는 풍성한 쏘스의 토마토쏘스 스파게티라는 걸 보면 말이다.

 

요번 책은 '뜨거운 한입'인데,

실은 '백년식당'과 며칠 간격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와서 내용이 빈약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띠지를 통해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박찬일의 든든하고 맛있는 문장들' 이라며,

인생이 차가우니 밥은 뜨거워야 한다고 역설하길래,

설레발이 아닌가 싶었고,

그렇게 의심을 할게 아니라 직접 읽어보자 하고 집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빈약하지 않을까 싶었던건 역시나 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스마트폰의 NFC기능을 이용해서 '더북'이라는 앱을 내려받으면,

박찬일이 직접추천하고 시연한 10가지 이탈리아 요리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동영상을 통하여 박찬일의 요리사로서의 소신을 엿볼 수 있었던게,

신선하고 좋았다.

'알리오올리오 뻬뻬론치노 스파게티'를 시연하는데, 재료 선별하는 과정부터 남다르다.

'알리오'는 마늘, '올리오'는 올리브 오일, '뻬뻬론치노'는 매운 고추의 일종이란다.

마늘 망태기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시는 저 모습을 보다가 '흡~'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손에 모자이크 설정이라도 하면,

흡사 장미꽃 향기에 취해있는 모습이다, ㅋ~.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져보고 그리고 맛보고,

온몸의 감관과 촉수를 열어 느끼려고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애인과의 열애장면도 아니고,

금테를 두른 마늘도 아니고,

이태리 요리에서 마늘의 쓰임을 설명하는 중이다.

 

이태리 요리에 마늘은 대부분 들어가지만, 많은 양이 들어가지는 않는단다.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다른 재료의 맛을 가리기 때문에,

재료를 은근히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을 흘리면서,

좋은 요리사는 재료를 사는 과정에서부터 참여한다고 하면서,

이탈리아엔 깐마늘이 없다고 딱 한마디 한다.

 

요즘은 누군가 다 해준걸 쓰게 된다.

기계화되고 분업화되어, 요리는 편해지지만 재료에서 멀어지게 된다.

 

언젠가도 얘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난 글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수식이 화려한 것 보다는 소박하고 수더분한걸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박찬일의 미문은 넘치는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박찬일이 쉽게 이해가 가는 것은 이태리 요리(=양식)라고 해서 럭셔리한 재료를 쓰거나,

어려운 조리법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소박하고 수더분한걸 좋아한다는 건 바꾸어 말하면, 길들여진 것에 익숙하다는 얘기다.

그가 소개하는 재료나 조리법이,

우리 땅에서 나고 우리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여서 그런 것도 있고,

그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져보고 맛본 그 경험과 느낌을 현실감 있고 구체적으로 형상화시켜 전달하는 재주가 뛰어나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고, 먹어보지 못했어도 충분히 공감을 하겠는 이유이다.

 

길가에 막 파프리카색 양귀비꽃이 피어날 게절이었지만, 알프스는 아직 뼈마디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눈썹 위로는 아예 하얀 지붕을 이고 줄지어 선 봉우리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흰 지붕 위에 토마토쏘스를 뿌린 듯 붉은 저녁 햇빛이 물들어가고 있었다.(20쪽)

경치를 묘사하는데,

색상의 선명한 대비만을 통하여...이렇게 친근하면서도 발랄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라면을 다시 먹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컵라면이 처음 나왔을 무렵부터,

대입 공부를 하며 컵라면을 너무 많이 먹었던 터라,

한동안 라면의 스프 냄새만 맡아도 입맛을 잃었었다.

 

라면의 종류가 버라이어티 해지면서, 다시 라면을 찾게 되었는데,

라면을 끓일때 될 수 있으면 바닥이 얇은 냄비가 좋다.

봉지에 나온 조리법대로 시간과 물의 양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라면을 4등분으로 잘라서 넣는데,

그러면 미식가임을 자처하는 울아들은 맛이 없다면서 툴툴거린다.

목을 타고 '스르르~' 넘어오는 식감이 없단다.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한다.

"빠바로띠가 말이우, 인생이 살 만한 건 때가 되면 밥상에 앉아 무언가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수."

ㆍㆍㆍㆍㆍㆍ

스스루(후루룩), 일본은 국수를 소리 내어 먹는다. 그것으로 입술의 육감적인 쾌감을 얻는다. 저 사누끼 사람들이 국수가 놓인 탁자에서 목구멍까지 우동 면발이 단 한번도 끊어지지 않도록 '스스루'하는 것을 진미로 치는 건 그런 이유다. 입술에서 얻는 쾌감이 식도로 이어지는 탐미다.(43쪽)

울아들이 말하는 그 식감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되리라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음식은 경험이기는 하지만,

그 경험을 뒷받침해줄만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지식들이 그저 '~다 카더라.'하는 선에서 끝나고 말지,

음식과 버무려져 하나의 사연으로 재탄생하게 되는지는,

그 지식이 얼마나 탄탄한가에 달려있는 것 같다.

요리만 계속 하는게 아니라,

꾸준히 공부도 해야 하는 까닭이다.

 

 

암튼 이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재료와 요리법 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연등천 45번집 기 여사 기절 전말기'이다.

스무살에 시집와서 30년을 지켜온 '아짐'이 여전히 이 집에서 안주를 만든다. 그이의 부엌은 마법 같다. 포장마차이니 변변한 설비도 없고, 냉장시설도 빈약하다. 그러나 오직 30년을 지켜온 그이의 솜씨와 물을 물어보면 실례인 싱싱한 해물이 마법의 재료다.

  이집에는 먹는 법이 있다. 입 다물고 주는 대로 먹는 게 고수고, 먹고 싶은 걸 줄줄이 외는 건 중수다. 제일 하수는 '이거 물 좋아요?'하고 되묻는 이다. 그러면 아짐은 딱 한마디 하신다.

  "물 안 좋으믄 저 개천(연등천)에다 확 버려야쓰것네."

ㆍㆍㆍㆍㆍㆍ

아짐의 요리 배열은 미슐랭 스타 쉐프 뺨도 쳐버린다.(59쪽)

명함도 못내민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뺨을 친다는 얘기가 이렇게 어울리게 들리긴 처음이다.

입담이 걸쭉하고 구수하다.

 

음식은 혀의 기억을 불러오고, 그것은 충동이 되기도 한단다. (200쪽)

그걸 박찬일 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언젠가의 책 제목이기도 했던 '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일텐데,

난 이말에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맛의 대부분은 추억이다'라고, ㅋ~.

 

맛을 이루는 것은 대부분, 아니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추억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책에도 촌놈인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럭셔리한 요리가 나오는데,

그게 '어란'이다.

'어란'은 요리의 재료로는 나랑 이질감이 들지만,

대신 요리에 대한 철학이 나랑 같아서 애정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ㅋ~.

 

원래 원재료가 특미가 있다면, 요리는 간단할수록 좋다. 송로버섯은 그저 저며서 빠스따나 전채요리에 얹는 것이 요리의 전부고, 캐비어도 아무런 가공 없이 호밀빵에 얹거나 달걀 위에 얹어 먹는다. 그것이 절품(絶品)에 대한 예의다.(240쪽)

 

박찬일과 나의 차이라고 할 것 같으면,

난 원재료의 특미를 알아차리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모든 요리를 초간단하게 한다는 것이다, ㅋ~.

 

또 한가지, 버섯류는 좋아해서 웬만하면 다 먹어보려고 하는데,

저 송로버섯은 '한니발'의 마지막 만찬 장면에 등장해서,

묘한 선입견으로 먹지 못하는 음식이다.

 

개인적으로,

편식을 심하게 하는데,

조개도 잘 먹고, 밀가루도 잘 먹고, 이탈리아 음식의 재료가 되는 것들은 잘 먹는다.

육류는 안 먹어도 달걀은 잘 먹는다.

그러니 조개로 조개탕을 끓이고,

밀가루로 파전을 굽고

달걀로 몽글몽글 달걀찜을 만들어서,

이탈리아 음식의 재료를 갖고,

양철나무꾼표, 추억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 뭐 그런 얘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데, 입으로 할 수 있는게 세가지란다.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음식을 나눠먹고,

나머지 하나는 상상에 맡기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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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달인에서 '똑' 떨어졌다.
지난해 고3 학부모이다 보니,
하는 것도 없으면서 마음만 분주해서 서재 활동을 한참 소홀히 한 것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어디에서 제외되고, 소외되고, 떨어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지라,

 

'똑'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쫌 충격적이다, ㅋ~.

 

뭐, 올해 서재 활동을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 없지만서도,
양보다 질적으로 풍요로운 서재활동을 해야겠다, 다짐해 본다~ㅅ!

 

그동안 독서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

독서는 나의 몇 안되는 일상이어서,

다시말해,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우면 자고,

추우면 옷을 껴입는 것처럼,

영혼이 허기질때 책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어서, 계획을 세워본적이 없다.

 

독서-책을 읽는다는 건,

내겐 숨을 쉬는 일에 비유될 수 있어서,

어쩜 먹고 자고 옷 입는것보다도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살기 위해서 숨을 쉬지 않지만, 살아있는 동안 숨을 쉬듯이,

나는 살기 위해서 독서를 하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동안 독서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버리고 비워내고 그리하여 소박하고 단출해져야지 하는 느낌이 든다.

버리고 비워낸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무얼 소유하고 싶거나, 갖고 싶거나, 욕심내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필요한 것이 별로 없어진다는 뜻이다.

 

지난 리뷰에서 언급하긴 했었는데,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괜한 삼단논법의 형태이니, 가언적 삼단논법이니 하는 오류만 낳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내가 하고싶었던 얘기는 그런 것이었다.

그릇을 예로 들어, 밥을 떠먹으면 밥그릇이 되고,

물을 담아먹으면 컵이 된다.

사람이 밥그릇에 세수를 할 수는 없더라도,

작은 강아지를 세수시키려 물을 모아두면 대야가 되는 것이다.

법도에 어긋난다느니, 안된다는 말은 하지말자.

그건 사람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 만든 규칙이고 고정관념 때문이지,

효용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헝겊도 추위를 피하고 더위를 가릴 용도나 부끄러움을 감출 용도일때는 옷감이 되기도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런 옷감으로 만든 의복의 경우,

그렇게 많은 옷이 필요하지도 않고, 화려한 장식이 달릴 필요도 없어진다.

그 헝겊으로 책을 싸면 책보가 되고, 짐을 싸면 봇짐이 된다.

터지면 꿰매입고, 해지면 기워 입으면 된다.

 

이게 내가 말한,

검소하고 소박해지며,

버리고 단출해지며,

안으로 여미고 응축시키고,

흩어지고, 성기게 하고,

번지고 스며 물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그리 연연할 것도 많지 않고,

사람이나 사물의 형태나 모양이나 이름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해골바가지에 빗물을 받아마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이 눈에 보이는 사물의 형상을 가지고 명명하는 순간에서야 그런 의미가 되니까 말이다.

그전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면서도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내게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한해다.

아주 오래전에 어떤 분의 조각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얻은 건 이분이 나무랑 관련된 일에 종사하시는 분이라는게 전부여서,

나무와 관련된 책을 만나면 무조건 사들였었지만, 이분이 아니었다.

 

이렇게 포기하게 되는 걸까 하던 차에, 이분의 책을 재회하게 되었다.

어제, 오늘 이 책을 읽으며 너무 행복하다.

 

 

 

 

 

 

 

 

 

 다시, 나무를 보다
 신준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그런 의미에서, 2015년의 독서계획은,

정리 안된 책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신준환의 <다시, 나무를 보다>를 두고 두고 아껴 읽을 것이고,

그리고 두고 두고 쓸고 닦고 매만지고 아껴 읽다가 지겨워질 즈음이면,

이분이 또 한권의 책을 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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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4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1-08 09:3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저 책은 엄지 손가락이 두개인게 부족해서,
엄지 발가락이라도 들이밀고 싶은 책이지만서도, ㅋ~.

서재는 정리도 안되고 이런 곳에 올리기 민망한 수준이죠.
그리고 저게 보일 수 있는,
그나마 사진으로 찍어 올릴 수 있는 곳의 수준입니다~ㅠ.ㅠ

그런데 저렇게 찍어올린 것은,
어떻게든 정리를 해보겠다는 결심의 표현입니다여, 불끈~^^

2015-01-04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1-08 09:44   좋아요 0 | URL
저도 서재의 달인에서 떨어졌다는게 어떻지는 않구 말이져, ㅋ~.
떨어진다는 행위, 결과에 익숙하지 않다...그런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겸허히랄것도 없이 이내 익숙해지더군요.^^

겹치는 책이 많다시는걸 보니, 님도 한 오지랖?
아니 독서 취향이 잡식성?

세상에 많은 일들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은 자식 일이더군요.

암튼, 내가 아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아들이 지금 이순간을 되돌려 살 수 있는게 아니니까,
전 아들이 지금 이순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2015-01-04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1-08 09:53   좋아요 0 | URL
돌이켜보면,
지나가버린 매순간순간이 제겐 축복이었던것 같아요.
그런데, 과거에 연연해하기보단 지금 이순간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려구요.
지금 이순간을 소중하게, 온몸의 감관으로 느끼고 통과하는 느낌,
제가 님 엿보면서 깨달은 거잖아요~^^

님이 전해주시는 좋은 기운 안고,
올 한해도, 아니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될거라고 주문을 외워봅니다엿~^^

해피북 2015-01-04 22:28   좋아요 0 | URL
와,, 두번 놀랐습니다. 첫번째는 글을 읽으며 말씀마다 울림을 주는 글귀에서, 두번째는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책들을 보면서요. 두고두고 읽고 싶다는 책, 손때를 묻혀 가며 읽고 싶다는 책. 제게 그런 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저녁입니다^^

sslmo 2015-01-08 09:5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부족한 글이고, 정리가 안되어 부끄러운 저재인데 칭찬을 해주시니, 으쓱 으쓱~하는 걸요~^^
님께 전해받은 이 경쾌함을 좋은 에너지로 전환시켜 여기저기 저도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려야겠어요.
굿모닝, 좀 춥지만 상쾌한 아침입니다~^^

라파엘 2015-01-04 23:29   좋아요 1 | URL
양적인 평가는 정말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양적인 평가로 측정되지 않는 질적인 부분은, 굳이 상을 받지 않더라도 주변의 사람들이 다 느끼게 되어 있어요... 독서 계획도 멋지고, 서재도 정말 매력적이네요 ~ ^^

sslmo 2015-01-08 10:04   좋아요 1 | URL
물론 평가나 잣대는 필요한 것이겠지만요~^^
이젠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좀 여유롭고 넉넉해지려구요, ㅋ~.
안단테 버전도 괜찮을 것 같고요.

독서계획은 괜찮은 것 같은데,
정리가 안된 서재를 매력적이라고 해주시니,
정리가 잘된 다른 분들 서재가 떠올라 부끄럽지만서도,
뭐, 어쩌겠어요.
이게 난데...
이렇게 정리안된 모습이 제 본모습인데...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드리는게 적절한건가요?^^

cyrus 2015-01-04 23:46   좋아요 0 | URL
서재가 부럽습니다. 올해 책과 늘 가까이 생활하면 서재의 달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독서계획 꼭 이루어지길 응원합니다. 좋은 책 많이 소개해주세요. ^^

sslmo 2015-01-08 10:07   좋아요 0 | URL
책과는 늘 가까이 하고 있는데~~~!!!
물론 님께는 명함을 못 내밀지만서도, ㅋ~.

님도 새해 복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시는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여~^^.

서니데이 2015-01-09 22:05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많은 책을 읽으셨다니^^ 사진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도 더 있을 것 같아서요, 사진 속에서 어쩌다 제가 제목이라도 아는 책을 찾으면 반가운 마음도 들었어요, 올해의 멋진 독서계획이 잘 되셨으면 좋겠어요^^
 
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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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참 행복할 것 같다.

그가 쓴 책들을 읽다보면,

그가 퍼뜨리는 행복함이 마치 햇살조각처럼 여겨진다.

난 그 햇살조각을 주워모아서라도 좋으니,

수해(혜)를 누리고 싶어진다.

가끔 ‘열하’가 미웠다. 나는 혼자 읽을 때는 이런 생각을 단 한 순간도 한 적이 없지만, 그녀가 온통 책에만 빠져, 나를 무시하고, 나와 운우지락을 나눌 때처럼 흥분할 때, 책이야말로 만만치 않은 연적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는 책 대신 나만 보라 말할 수도 없다. 책을 질투하는 사내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이런 내 마음이 때론 우습고 때론 한심했다. 더욱 비참한 사실은 이 책이야말로 너무 멋지고 사랑스러워, 내가 여자라도 매혹당하리라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책과 사귀었다. 깨끗하게 멀찍이 두고 조심스럽게 한 장 한 장 넘기는 식이 아니라 연모하는 사내 대하듯 그 책에 자신의 감정을 옮겼다. 겉표지에 입 맞추고 손바닥으로 쓸고 글자 하나하나를 검지로 만지며 내려가고 옆구리에 끼거나 젖가슴에 댄 채 잠들고 머리맡에 두었다가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냄새 맡고 여백에는 검지로 도장 찍는 흉내를 내며, 이 책과 영원히 함께 머무를게요 맹세했다. 그 책에 비하자면 나와의 사랑은 드문드문 허거웠다. 그녀와 나 사이에 책이 낀 것이 아니라 그녀와 책 사이에 내가 불청객처럼 찾아드는 격이다. 내가 슬쩍 책을 서안 밑으로 밀어두기라도 하면 그녀는 냉큼 책을 찾아서 품에 안고 앙처럼 웃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도 분명 저는 살았었죠. 한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요. 제삶의 첫 자리엔 이 책이 놓였고, 그때부터 전 비로소 숨 쉬고 걷고 밥 먹기 사작하였답니다.”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 고백이었다.(열하광인 상,114쪽)

책읽기를 이렇게 황홀하게 표현하니 말이다.

이렇게 행복한 그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그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책을 자기가 좋아서 기꺼이 읽는다는 느낌이 든다.

 

책을 두고 많은 말들을 한다.

그리고 알라딘 서재, 이 동네는 책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보니,

책을 읽고 권하고 추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책을 읽고 권하는 행위가 재밌고 좋아서, 인 경우도 있지만,

직업과 관련된 경우도 있고,

개인이나 집단의 신념과 이익과 관련된 경우도 있다.

내지는 습관처럼 책을 읽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책팔이나 도서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어쩔 수 없이 읽는 경우도 봤다.

 

이렇게 자기가 좋아서 책을 읽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그 느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건 (그들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덕분에,

그의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행복했고,

'읽어가겠다'를 통해 그를 엿보는 동안,

한 없이 유쾌했다.

 

기실, 한때 그에게 열광했었다.

그가 책을 내놓을때마다 잉크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사서 읽었었고,

그가 다작의 작가라는 사실이 축복 같았다.

그런 내가 그를 향하여 시큰둥해진 것은 아마도 내가 책을 좀 넓고 깊게 읽어보겠다며 고전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였나보다.

그의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문장이나 내용들이,

언젠가 읽었던 박지원에서도 본것 같고,

노자, 장자에서도 본것 같고,

이옥의 그것이랑도 일치하고 하는데,

그걸 개연성과 핍진성의 관점에서 소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고,

고전을 베껴 자기 것인양 젠 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걸 중복해서 읽는건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나이를 점점 더 먹어가고,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게 아닌데도,

읽다보면 내용이 중첩되는 부분이 생겼다.

그걸 꼭 모방이나 베껴 쓴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는데,

그런 상황이 자주 생겼다.

 

그건 고전 이론이나 사상, 학설의 핵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또는 정수,

또는 근간이나 엑기스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일텐데,

그게 같은 걸 두고 모방이나 베껴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읽어가겠다'를 고전을 읽듯 야금 야금 아껴 읽었다.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검소하고 소박해지자고 많이 얘기한다.

그리고 검소해지고 소박해지는 방법으로 버리고 단출해지는 걸 얘기한다.

난 여지껏 버리고 단출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안으로 여미고 응축시키는 것을 내포한다는 의미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건 편견과 선입견 안에 날 가두는 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

어느 누구도 버리고 단출해지고, 여미고 응축시키고, 를 등가로 놓지 않았었는데,

나혼자서 '홀쭉해진다'는단어를 가지고 그리 상상한 것이었다.

 

흔한 물을 가지고 예로 들자면,

잘 벼리어 성체하는데 쓰면 성수가 되고,

오물을 닦는데 쓰면 개숫물이 된다.

 

바람도,

불씨를 부추겨 불길을 활활 타오르게도 하지만,

안개나 연기를 흩어 성기게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버리고 단출해지는 것도 검소하고 소박해지는 한 방법이지만,

흩어넣고, 성기게 하고, 번지고 스며 물들게 하는 것 또한,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처럼 어떤 의미로는 검소하고 소박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들,

이를테면 하늘이나 땅, 해, 달, 바람, 물, 쇠 같은 것들은,

속성을 달리한다고 하여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들을 가지고 누구의 소유를 주장할 수 없으므로 가짜나 도둑 따위를 얘기할 수 없듯이,

자연의 또 다른 이름인, 고전을 어찌 하였다고 해서 모방이나 베껴쓰기 따위의 말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검소하고 소박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덜어내고 홀쭉해지는 방법이 아니라,

때로는 응축시키고 농축시키기도 하고,

그리하여 더 단단하게 집약시키기도 하는 걸 보면서 의문이 들었었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그것들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중심부엔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랬다가도 이내 점묘법처럼 점점이 흩어져서,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섥히고,

번지고 스며 물들 수 있는 것들처럼,

 

모양이나 형태를 바꾸더라도,

그러면서 번지고 스며 물들더라도,

끝내 잃지 않고 지키는 본성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자연이라고 불러야 하고,

또 다른 이름으론 고전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나 지금 여기'의 문제에 주먹을 내지르며, 어깨를 비비며, 입을 맞추며!'(9쪽)라며,

김탁환이 '젊음'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다른 이름으론 '고전'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걸 삼단논법형태로 전개시키면 이렇게 되겠다.

젊음은 고전이다.

고전은 자연이다.

자연은 오랫동안 변치않는다.

고로, 오랫동안 변치않는건 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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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2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1-02 14:27   좋아요 1 | URL
ㅋㅋㅋ~.
계속 `티`를 섞어야 겠는 걸요.
님의 이런 고견도 듣고 말이죠, ㅋ~.

근데 말이죠~,
저 삼단논법형태는 고 위의 볼트 체에만 걸리는 내용이 아니고,
전체에 고루 적용되는,
말하자면, 삼단논법을 가장한 반어법의 형태를 띤 `강조`쯤이라고나고나~ 할까요~(,.)
그냥 제멋에 겨운거죠.

아니다, 더 그럴 듯 하게 변명을 하자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도 아닌데 얽혀진들 어떠하리 버전이랄까여, ㅋ~.

새해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__)

2015-01-02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1-02 15:27   좋아요 1 | URL
저 볼드체 부분은 그러니까 `젊음`을 얘기하는건데,
이 책의 부제가`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이라는걸 간과한다면,
논리적 비약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군요.

지적질이어도 좋고, 손가락질이어도 상관없습니다여.
친히 왕림해주신것만으로도 제겐 버선발로 `후다닥~!`인거 아시죠~?
저 벌써 충분히 감읍했습니다여~^^

차트랑 2015-01-03 22:51   좋아요 1 | URL
대글에 대한 답을 보니
흥미로운 삼단논법 이야기가 오고간 듯 합니다요~

삼.단.논.의. 형.태.는 결코 삼.단.논.법.이 될수가 없으니
위 글에서 삼단논법을 논할 여지는 없어보인다 싶고요

어째거나, 젊음은 고전이다.는 가언적 삼단논법의 형태라 볼수 있겠군요 ㅋ

결론은,
형태는 형태일 뿐, 본질은 아니다^^
그러니 본질이 아닌 것의 허물을 탓하면
진짜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 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겠다
뭐 그런 헛소리였습니다여~~(앙철나무꾼님 버전으로^^)

오랫만에 들어와서 헛소리하고 갑니다여 ㅠ.ㅠ

올해는 서재질을 좀 해야겠다 싶은데
영 손이 가질 않네요 에혀~

아무쪼록, 양철나무꾼님, 그리고 어느 분이신지는 알수가 없사오나
삼단논법의 형.태.에 문제를 제기하신 분,
두분 모두 새해에는 더욱 평안하시고
더욱 건강하시길 빌어드립니다

차트랑공 올림

어헛, 알고보니 제 닉네임도 까먹었네요

차트랑 올림 ㅠ.ㅠ


sslmo 2015-01-04 15:22   좋아요 1 | URL
가언적 삼단논법은 또 뭐래여~?@@
괜히 무식한 사람이 문자 썼다가,
이 참에 밑천이 톡톡히 드러나네여~ㅠ.ㅠ

제 생각에 가장 큰 오류는,
저기 수혜라고 써야할 것을 수해라고 써서,
물에 싹쓸이 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게 아닌가 싶은데 말이져.

모쪼록,
차트랑 님도 그렇고,
저 위에 속삭이신 분도 그렇고,
우리 새해에는 `서재질도` 쫌 열쉬미 해보자구여,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