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사건과 사고가 많은 하루하루를 살아서 그런가,

언제부턴가 내 작은 힘이나 생각으로는 세상을 어떻게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고,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전염력과 파급력이 엄청 강해서,

무기력함이나 어쩔 수 없다는 좌절감을 봄의 나른함과 혼동하고 있었나 보다.

 

지금 이순간을 열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돌변하여 '냅둬, 이대로 살다 죽게~--;'라며 시큰둥하게 되고,

이렇게 무기력 속에 침잠하다가는 집단 우울증에 빠져 버리게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몸서리 치기도 한다.

 

세상의 변화는 내 삶과 가치관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걸 세상이 소박하고 단출하게 변하다 보니, 나도 거기에 발 맞추어서 라고 해야 할지,

아님 나이가 먹어 변화를 두려워하다보니 일상이 소박하고 단출해져서 그런거 라고 해야 할지,

생각마저 지극히 단순해졌다.

그런데, 생각이 한쪽으로 집요해지는 폐해도 낳았는데, 그게 책과 관련하여서 이다.

책을 들이는 속도에 읽는 속도가 미치질 못하니까 책에 깔려 죽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지금부터 책을 사지않고 읽기만 해도, 내가 가진 책들을 다 못 읽고 죽을텐데 하는 기우로 이어졌고,

아무리 가족끼리 닮는다고 해도 남겨진 나의 가족들은 책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닮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책을 들이는데, 좀 더 신중을 기하게 됐다.

 

그리하여,

또 다시, 두권 내놓고 한권 들이기 모드를 실천하려고 결심 중이었는데,

나의 이런 결심을 작심삼일이 되게 만든,

국내도서나, e-북, 외국도서를 5만원어치 이상 구입하면 북파우치나, 북마크를 주는 이벤트가 진행중이다.

 

내가 택한 건 '백지혜'의 꽃이핀다'파우치인데,

실제로 보면 선명한 빨강으로 더 예쁘다.

 

고른 책은 여러권인데, '노유진'의 '생각해봤어?'는 코멘트하고 넘어가야겠다.

사은품으로 <말빨사전)과 <말빨껌>이 딸려 왔는데,

'말빨사전'은 유명 인사의 격언집 정도 되는거 같고,

'말빨껌'은 풍선껌에 커버를 한거다.

'아무것도 아니다'하고 간과할 수도 있지만,

상술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마음 씀씀이가 너무 이쁘지 않은가 말이다.

책의 내용도 좋고 취지도 좋고, 부디 대박 났으면 좋겠다.

 

 

 

 

 

 

 

 

생각해봤어?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5년 3월

 

 

이 책은 팟케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가 그동안 다룬 이야기 중에서,

꼭 알아야 할 주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힌트가 될 내용만 추려 담은 것이란다.

 

실은, 그랬었다.

그동안 유시민의 저작들을 빼놓지않고 읽으면서도 그를 향하여 툴툴거린건,

그가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후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걸 두고,

그게 정치적 변절을 의미하는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의 앞부분 '책을 펴내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답이 분명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서로 판이하게 다른 문제에서 의외로 일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회의원과 노동운동가, 문화평론가와 현장활동가, 집권 여당의 장관과 소수 정당의 대표 등 노, 유, 진, 세 사람의 지난 경험들이 서로 부딪치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이 책의 내용이 다소 정밀하지 않을 수 있고, 읽는 이들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소통과 공감은 머리가 똑같아지는 게 아니라, 함께 즐거워하는 마음 혹은 아파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ㆍㆍㆍㆍㆍㆍ

끝으로 우리는 어떤 답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 책을 내지 않았다. 그보다는 삶에 필요한 무기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무기력한 시대일수록 냉소가 지배한다. 그 냉소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바로 말과 글이다. 세상을 바꿀 권력이나 자본이 없다고 여기는가. 우리는 여전히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글로 나눌 수 있다. 마르코스가 말했던 것처럼 말과 글은 우리의 무기이다. 이 책이 작으나마 그와 같은 역할을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작가란 무엇인가2'를 겹쳐읽기로 읽다보니, '살만 루슈디'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작가란 무엇인가 2
 파리 리뷰 지음, 김진아.권승혁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옛날이라고 하여 삶에 정치가 개입하지 않았을까?

루슈디가 제인오스틴의 그것과 비교를 할 수 있는 것은 삶 전체를 어우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단편을 그려내는 소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나 까레니나'나 '닥터지바고'같은 작품들을 보게 되면 시대적 배경은 충분히 옛날이지만,

정치가 소설 곳곳에 깊숙히 개입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정치적 색깔을 부각시키거나, 삶의 전체로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데,

제인 오스틴의 그것은 로맨스소설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게 설득력 있었을 것 같다.

 

암튼 내가 이 책들을 겹쳐 읽으면서 느낀 것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맞설 수 있는 힘은 여러가지라는 것이다.

 

그동안은 책을 읽고 느꼈으면, 행동에 옮기는 것까지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삶의 무기를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자기가 찾은 삶의 무기들을 글이나 말로 옮겨 표현하는 것도,

직접 정치를 하는 거나, 삶을 사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기력함과 좌절감에 빠져 침잠하지 않고,

그것들에 맞서 생각할 수 있음을 이 봄 감사한다.

말하고 글로 쓸 수 있음을 감사한다,

행동으로 옮기고 삶으로 살아낼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거다, ㅋ~.

 

김수영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나는 모래나, 바람, 먼지나, 풀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작지만,

그렇게 작고 미미한 나여서 혼자는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맞설 수 있는 힘을 얻는 방법은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게 아니라,

책을 읽고, 보고 배우고 느끼는,

말과 글과 나아가 행동이라고 부르는 실천을 통해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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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08 19:0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때문에 작가란 무엇인가 점점 더 읽고 싶어지잖아요! 천천히, 아주 나중에 읽으려고 했더니;; 안 그래도 읽고 싶은,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인데ㅜㅜ

sslmo 2015-04-13 17:46   좋아요 1 | URL
벌써 읽고 계신듯~?^^
부지런도 하셔라~~~~

AgalmA 2015-04-13 18:52   좋아요 0 | URL
다 양철나무꾼님 덕택입니다. 공부가 참 많이 되는 책입니다!

새아의서재 2015-04-08 21:13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이 책 지금 한국에서 날라오고 있는중요. 오믄 ㅇ빨랑 읽싶어요.

sslmo 2015-04-13 17:48   좋아요 1 | URL
어떤 책이요?
`작가란 무엇인가?`요, 아님 `노유진`이요?
아무리 빨리 읽고 싶으셔도 그렇지,
`읽`고` 싶어요`의 `고`를 빼잡수실것까지야...ㅋ~.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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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 졸업자 90퍼센트가 논다'고 하여 '인.구.론.'이란 신조어가 생긴 이면을 뒤집어 보게 되면,

인문학의 중요성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것과는 반대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나 국가기간산업 등에 요구되는 인문학과 출신자들의 거처가  턱 없이 부족하다고 애기하고 있는것 같다.

여기서 인문학의 자리에 '인간'을 바꾸어 대입시킬 수 있겠고,

그렇게 하면, 인간의 중요성과 인간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져서,

나에게 집중하고, 상대방에게 나를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말로 전환시킬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에게 집중하고, 상대방에게 나를 알리려는 이유가 뭘까?

내가 잘났기 때문에, 그 잘난 나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대한 우주 속, 자연 속의 인간이라 치면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존재이다 싶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이 거대한 우주만물 속, 자연 속, 세상 속에서 개별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도, 상대방도, 누구나 소중한 존재라는 말의 이면에는

상대방을 헤아리고 이해하고 싶고, 나도 상대방에게 알리고 존중받고 심은 마음이 담겨 있다.

있는 그대로 공감과 소통을 주고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감과 소통이 드나들고 흐르며 만들어 내는 물길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감과 소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걸음 떨어져서보면 거기에도 일정한 흐름의 발자취 내지는 길이 있는거고,

우린 그걸 경험이나 행동이라고 부르게 되는 걸텐데,

학문이 경험이나 행동을 동반한 실천적인 학문이 되는게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유시민 또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작가를 최종 직업으로 선택하여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글쓰기'와 아무 연관이 없는 과를 나온 그가,

지난 30년동안  베스트셀러를 여러권 냈으니까,

'작가'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고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을 내도 좋은걸까?

 

그가 '(논리적)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을 내놓을 수 있었던걸 놓고,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대학시절 민주화운동 청년연합(민청년)에서 활동을 하면서,

텍스트 독해, 텍스트요약, 사유와 토론으로 이어지는 훈련을 꾸준히 한것을 그 저변으로 봐야 하니까,

그의 경험과 행동을 반영한 실천적인 학문으로 봐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글을 쓰게 되든지 논리적 글쓰기는 이렇게 반복훈련하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과거 그의 발자취를 삶의 반영으로 봐야할까?

 

텍스트를 읽고 요약한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문제점과 한계까지 탐색하면서 읽는다는 건데,

한걸음 나아가면 그 문제점과 한계가 어디서 왔는지도 추론해볼 수 있다...고 하면서 두루뭉술 얼버무리는데,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다 넘어지는지, 딛고 일어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서 라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위해선 여러번 주의깊게 읽어야 할테고,

그러다 좋으면 필사를 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사유와 토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훈련과정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논리적(또는 인문학적) 책읽기와 글쓰기를 한 사람만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데 적극적일 수 있겠다 싶다.

 

그가 제시하는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규칙'은 이런 것들이 있다.

첫째, 취향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둘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섯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19쪽)

 

글쓰기는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말하기에 비견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주는 이가 없는 글은 난해하고 들어주는 이가 없는 말은 공허하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누구나 쉽게 글이나 말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세종대왕께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져 하는 바가 있으면 제뜻을 쉽게 펼 수 있도록 선처하신 덕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아울러, 세종대왕이 인자하기만한 성군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같은 견해를 만나니 반가웠다.

왕의가마가 부러졌다고 과학자 장영실을 곤장을 때려 내쫒았고, 사소한 연애 사건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궁녀를 처형했다. 두만강 6진 지역을 우리 영토로 만들 목적으로 강력한 강제이주정책을 시행해 백성을 괴롭히기도 했다.ㆍㆍㆍㆍㆍㆍ그러나 한글을 창제, 반포한 것이 '위대한 일'이었다는 것은 다툴 여지가 없다.(274쪽)

 

이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과하게 주억거리며 백배 공감한 것은,

'글은 쓴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지만 인격 그 자체는 아니다.'라는 문장이었 였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쪽에서 귀에 거슬리는 말이 듣기 싫어 수정을 요구한다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하겠지만,

그외에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견해는 독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게 현명하단다.(92쪽)

 

글을 썼으면 남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혹평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글이 는다.

쓴 글을 아무도 모르게 혼자 끌어안고만 있으면 글이 늘 수 없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 서재는 좋은 친구도 되고 첨삭지도를 해주는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너무 어렵게 써놓으면 독자가 이해를 못 하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글로는 소통도 교감도 할 수 없다.ㆍㆍㆍㆍㆍㆍ어려운 용어를 쓰고 복잡한 문제를 다루어도 독자가 쉽다고 느낄 수 있도록 써서 그런 것이다. 나는 주제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도 주의 깊게 읽기만 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끔 텍스트를 쓴다. 어떤 주제, 어떤 형식의 글이든 마찬가지다. 읽기 쉬운 글이라고 해서 쓰기도 쉬운 건 아니다. 쉽게 쓰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라는 부분과 관련,

한가지 내용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한가지 규칙을 무시하였다.

이런 글에서 취향고백과 주장은 자칫 한끗 차이로 비춰질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글로는 소통과 교감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예를 든다는게, 진은영의 <문학의 아토포스>란 책의 서평이었는데,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독자 서평 가운데 한대목이란다.

난 과연 이 글을 쓰면서, 진은영 님에게 양해를 구했는지, 또는 이 서평을 쓴 그 '알라디너'에게 양해를 구했는지를 묻고 싶다.

그러지 않아서 누군가 한명 내지는 둘 모두 상처를 받았다면,

어려운 글로 써서 소통과 교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하여,

논리적 또는 인문학적 글쓰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답게를 포기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글쓰기의 수사법에선 어떤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는,

자기가 높아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비교'라고 하는 것이 가장 아랫질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글쓰기 실력이 별볼일 없어서,

그래서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수사법을 쓰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까지 내는 내로라 하는 실력자가 이래야만 했을까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자만심과 허영심으로 가득차 어렵게 쓴 글이나 말도, 꾹 참고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진은영이라는 작가가 그 글을 어떻게 썼는지 알아볼 생각도 않고,

알라딘서재에 그 리뷰를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써서 올리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않고,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로 만들어버라는데,

독자들이 무조건 동의하고 수긍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자기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인 것이고,

글은 쓴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지만, 인격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라는 말과 관련하여,

' 글로 타인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교감하려고 한다'며 '글쓰기 특강'이라는 멋진 책을 낸 그가,

그 책의 한쪽 지면을 할애해서 한말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걸 하고, 하기싫은걸 하지 않고 사는게 인생이다.

하지만 하고싶은 개인적인 것이 다수에 위배될 때는 다수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는 것도 좋겠고,

그리고 사유와 토론의 과정을 거쳐...의견을 수렴해 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자세히 알아볼 생각도 않고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은, 평소에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타인과 교감하려고 애쓰는 그답지 않다.

 

좋게 시작한 책인데,

논리적 글쓰기, 인문학적 글쓰기는 삶의 반영이라는데,

그에게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중간에 맥이 빠져버린 후 영 회복 불가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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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05 04:26   좋아요 0 | URL
덩달아 ˝고개를 과하게 주억거리며˝ 오늘 제가 고민하던 것과 유사한 고민이시네요. 저는 읽은 책이 흡족해서 다행; 번역자에게 감사해야 할 지도;
그런데 제가 흠모하는 철학자, 비평가들이 줄줄이 저기 서 있다니 속상합니다ㅜㅜ

sslmo 2015-04-06 10:29   좋아요 0 | URL
저도 유시민을 향하여,
`글은 쓴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지만 인격 그 자체는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체념할 수 있어야 할테지만,
기대가 너무 만발했나 봐요~--;

2015-04-05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4-06 10:33   좋아요 1 | URL
네, 알라딘 서재의 글이 인용될 수 있었던 것도 놀랍지만,
글쓰기 특강의 전제조건으로 제대로 읽기를 내세우신 분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면서,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느껴질 수도 있게 인용한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설혹 그 글을 잘못 읽었더라도,
전후 그 알라디너의 글을 몇개씩만 읽었더라면,
그 알라디너가 어떤 의도로 그런 글을 썼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테니까 말예요.


돌궐 2015-04-06 22:11   좋아요 1 | URL
원래 맥락에서 벗어난 해석으로 유도하는 인용은 매우 잘못된 인용방식이죠.
그것이 고의가 아니라면 원저자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sslmo 2015-04-08 09:32   좋아요 0 | URL
어려운 용어를 쓰는 문제를 두드러지게 하려다보니까 저렇게 된것 같아요.
우리도 글을 쓰면서 흔히 범하게 되는 오류죠.
부분을 미루어 전체를 대표한다고 착각하는 거요.

제가 요즘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저자도 중요하지만,
저자와 균형을 맞춰줄 `편집자`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저 위 편집자의 견해를 `독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하시는 유시민 님이라면,
아직 그런 맞춤한 편집자를 찾지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고싶습니다여~--;
 
한의사는 무당이 아니다
이하림 지음 / 에이치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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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a diary of a korean medicine student'라는 영문 제목을 보기 전까지는 책의 방향이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

1부 한의학과 한의사, 2부 미술과 신체로 되어있는데, 얼핏 보기에도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조합으로 묶여있었다.

저자 이하림이,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학부를 마치고 미술사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하였으며,

선갤러리 큐레이터, 한국미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였고,

우석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 졸업한,

다소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라는 걸 책날개 안쪽에서 확인한 후에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는데,

말 그대로 '한의대생의 일기' 되시겠다.

 

제목이 독특해서 시작하게 된 이 책은,

읽기 전과 읽어가는 도중,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에 시시각각 마음이 바뀌었는데,

'a diary of a korean medicine student'라는 영문 제목처럼 개인의 일기였다면 좀더 내면의 독백 형식을 띠었어야 할 것이고,

한의학도가 꿈꾸는 이상적인 한의사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면,

타겟을 잘못 잡았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한의대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히 여기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보다 일반화된 한의대생의 모습을 제시했어야지,

고고미술사학을 전공, 석사까지 마쳤으며,

큐레이터, 연구원으로 재직하였던 경력의 늦깎이 한의대생이라니 말이다.

물론 장수생이 많은 한의대의 특성상, 특별할게 없어보일 수도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일반화시키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암튼, 머리말에서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질병의 치료를 제시한 책도, 높은 도덕심과 자부심으로 한의학계를 파헤치는 책도, 양 한방의 접격지대에서 전사처럼 돌진하는 책도' 아니며,

한의대 학생들과 한의대생(한의대 학생과 한의대생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끙~=3)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히 여기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학생의 입장과 환자의 입장에서 썼으며,

(여기서도, 학생의 입장은 저자가 한의대생을 거쳤으니 이해가 되지만,

 한의대생이면서 동시에 환자였어도 둘의 입장은 상충되고 상반되는데, 어떻게 한번에 아우르겠다는 건지 모르겠으며,

 내용을 살펴보아도 그리 환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는 못하다.~--;)

오롯이 개인의 입장에서 쓴것이라고 하는 부분은, '오로지'라고 바꿔줘야 할 것 같다.

'오롯이'라고 쓸때와 '오로지'라고 쓸때 전혀 다른 의미가 되니 말이다.

 

대부분 다른 사람의 몸이고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고, 한의사고, 그 밖의 다른 의료인들이고 간에...

사유와 성찰이 안으로 향하는 내적인 것이어서,

밖으로 향하는 울림을 만들어 내지 못해서 그렇지, 사유와 성찰,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이하림이 이런 섬세한 감성을 승화시켜 표출해 낼 수 있는 훌륭한 글 솜씨를 지닌 덕분에,

이런 내면의 독백을 엿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멋진 것은,

사유와 성찰의 깊이가 아니라,

내적인 사유와 성찰을 밖으로 향하는 울림으로 만들어내는 글솜씨인것이며,

더불어 분야를 미술사까지 뻗쳐내는 박학다식함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한의대생들이 이상적인 한의사의 모습을 배울려고,

내지는 내적인 사유와 성찰의 깊이를 본받고자,

이 책을 읽을려고 할 것 같지는 않다.

 

반면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뜬구름 잡는 식이다.

왜 한의사가 무당이 아닌지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는데,

감성적이다 보니 마음은 움직이는데, 머리로 받아들이기까지 논리적 설득력은 다소 떨어진다.

 

역사서 속에서 단서를 끄집어내 제시하고 있는데,

그걸 밀어붙이고 오늘날 일상에서 적용시키는 힘이 부족한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무녀를 동서활인서(국가에서 세운 의료기관)에 배속시켜 빈민 환자를 간호하게 했다는 대목이다. 마치 무녀의 영적인 능력을 질병 치료에 이용하겠다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무녀들에게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지워 억압한 것이다. 즉 무속의례에 쓰일 노동력을 국가가 취하겠다는 의지이다. 무녀가 의료기관에서 질병 치료를 보조했다고 해서 당시의 의료를 무당의 행위로 오인하면 안된다.(23~24쪽)

 

그동안의 독서 경험에 비추어,

마음으로는 움직이는데, 머리로까지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 경우,

또는 드물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험뿐이었다.

 

진리는 책 속에 있지 않고,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경험하고 깨우쳐 가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읽고 배우고 외웠더라도,

사유가 깊고 다방면으로 넓어지더라도,

생각만으로는 행동을 변화시키지도 못할 뿐더러,

나고 타인이고, '사람'의 그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자연이라고 부르는 우주원리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이걸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도 있고,

자기 유사성과 순환성을 가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우주원리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와는 대치되는,

자기유사성과 순환성을 가지고 눈곱만큼씩 변하는 모순된 구조이다.

그러니 다양하고 풍부한 임상경험을 제공하는 치료서보다는 직접 만난 한명의 환자의 케이스 스터디가 소개되는 것이,

이상적인 한의사의 모습을 뜬구름 잡는 식으로 제공하기 보다는 존경하는 한의사나 의사를 옆에서 밀착조명하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의학, 양의학 할것 없이 공부할 분량이 방대하고 주변학문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양의학에서는 전공과목을 세분화하고, 각 전문분야 개개인에 맞게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데 반해,

한의학에선 연관성을 생각하다보면 좀더 폭넓은, 포괄적인 접근을 요하게 된다.

경계를 넘나든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산만하고 주먹구구식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택한 타분야와의 비교는,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높아지기 위해 깎아내리는 것 같아 씁쓸했다.

 

요즘 마음 다스리기, 마음 치료 방법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인도자, 또는 상담자의 역량에 넘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수련 경험이 많지 않은데 정신분석을 한다고 심층까지 뒤흔들어 놓으면 마치 가라앉은 진흙을 건드리는 것처럼 수습하기가 곤란한 적이 많다고 한다. 여러 가지 기법의 역할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심리상담, 정신과적 접근은 주의 깊게 해야한다는 것이다.(112쪽)

 

한의사가 무당이 아닌 이유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현대인들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빈도수와

마음 다스리기, 마음 치료 방법에서 전문가가 아니거나 자격 미달의 사람을 택했을때의 문제점을 예로 들고 있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 일어나야 우울증이 생기지, 아무 원인이 없는데 우울증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전제하에...

 

심층까지 뒤흔들어놓고 수습하기 곤란해 한다거나,

상담자의 역량에 넘치는 부분을 건드리는 걸 놓고,

'수련경험이 많지 않아서'라고 완곡어법을 써서 얘기하지만,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전문가'라고 하는 것과 관련,

의사, 상담사라고 하여 모두 전문가이거나 자격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전공자도 이런 상황이니 비전공자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러면서,

정신은 골절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확실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척 보고 우울증이다, 강박증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고 선전하면 사이비이니 주의해야 한다.(140쪽)

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바로,

한의사를 무당과 혼동할 수 있는 부분이고,

한의사를 비전문가와 혼동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다.

 

척보고 알 수 있는 그런게 아니라,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 특유의 관찰력이다.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은 자극이 주어지고 감각이 오고 반응을 하는 순식간을,

연속적이지만 차근차근 스냅사진을 찍듯, 또는 슬로우비디오 동작으로 각인시키듯 감지해 낸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별것 아닌 자극에도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하다보니 쉬이 피로해질 수 있고,

과부하가 걸릴 수 있어 유별난 성격으로 오해받기도 쉽다.

 

암튼, 중요한 것은 의학적 조건으로 발생한 신체상황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 약물로 인한 감정 기복은 우울증이 아니라는데, (139~140쪽)

나도 이제 결코 한살 더먹어서라고는 안하고,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잘 까먹는 부분이니, 다시 한번 상기해야겠다.

 

158쪽 스티븐 잡스가 아이폰을 출시한 이래라고 되어있는데 '스티브 잡스'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아는 단어, 이해하고 있는 개념을 동원해서 모르는 분야를 파악하려는 속성이 있다.

한의원에서 듣는 용어들을 이미 알고 있는 양방 병명의 무엇에 해당하는지 궁금해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순우리말로 된 병명이나 용어를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해부학 용어 같은 경우, 북한의 우리말로 바뀌었는데...

알기쉽고 편안해 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아, 새로운 용어를 싹 다시 외워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양의학의 병명과 한의학의 질병 분류가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일 대일 대입되는 것도 있지만,

더 자세하거나 대충 뭉뚱그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의사는 무당이 아닌것은 물론이거니와,

중요한 것은 본인의 역량을 알고,

다시말해 분수를 알고,

그에 맞게 대입하고 치료를 할 수 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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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4-02 20:40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새로 듣는 말이라 외워야되고, 다시 용어가 바뀌면 익숙해진 것에서 다시 적응해야 하니까 , 많이 바뀌면 낯설것 같아요,
밖에 비가 많이 오고 있어요, 양철나무꾼님,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sslmo 2015-04-04 20:05   좋아요 1 | URL
익숙한 것이 편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타성에 젖어서 편견을 갖게 되는게 두렵기도 하고 그래요.

봄밤인데, 여의도엔 벚꽃이 만개했다는데,
왠지 쌀쌀한것 같기도 하고 쓸쓸한 것 같기도 해요.

님도, 편안하고 따뜻한 주말 저녁 보내세요~^^

만병통치약 2015-04-02 22:19   좋아요 0 | URL
전 오히려 현대에는 그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과거에는 한의사가 무당의 역할을 통해 심리상담가이기도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반대 의견이네요.

sslmo 2015-04-04 20:0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서 새로웠어요~^^

해피북 2015-04-03 08:27   좋아요 0 | URL
`진리는 책 속에 있지 않고,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경험하고 깨우쳐 가는 것이다`
정말 좋은 문장에 급 흥분했어요^~^ 양철나무꾼님 ㅎ

sslmo 2015-04-04 20:08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러고보면 좋은 문장 한문장에도 급 흥분하게 되고,
누군가는 생각이 많고 어렵다던데,
참 단순하고 소박한것 같아요~^^

yamoo 2015-04-03 11:06   좋아요 0 | URL
흠...책이 상당히 잘 써졌나봅니다. 저책 서점에서 몇 번 구경만 한 책인데....상당히 잘 써진 책이군요~
한의사는 무당이다...이 제목이 훨씬 더 나은 거 같긴 합니다만..ㅎㅎ
비판 지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겠습니다. 저는 이런 장단점을 뚜렷이 밝혀 놓는 리뷰가 좋은 리뷰라 생각합니다. 이런 책을 구매할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잖아요~ 유익한~~^^

sslmo 2015-04-04 20:10   좋아요 0 | URL
별 세개를 보고 `상당히`잘 써진 책이라고 하시면...아니 아니 아니~되옵니다.
저도 `한의사가 무당이다?`가 훨씬 더 자극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1인~^^

이런 장단점을 밝히는 글쓰기, 누구한테 배운거게요~?^^
 

내 소박한 기억력으론 아주 옛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언제던가, 소셜네트워크의 초창기에,

여자는 둘만 모이면 수다를 떨고, 남자는 둘만 모이면 '네트워킹'을 한다는 소릴 주워 들었었다.

그때고 지금이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만사에 귀차니즘이 발동하는 시큰둥 부류인데다가,

운동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건 여성이나 인권, 환경, 노동 등 많고 많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몸소 실천하는 것이라곤 숨쉬기 운동이 고작이지만,

저 소리를 듣고는 조국을 구한 잔다르크의 기세로,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위험한 발언이라고 발끈 했었다.

 

그때의 '발끈'을 생각한다면,

내 사전에 수다고 네트워킹이고 절대 금지 목록 되시겠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는건,

저 '발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올드한 관계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작금의 현실을 변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난 '북플'의 에 매력에 제대로 빠져들고 말았다.

 

작년, 그러니까 2014년 12월 8일 '북플 3일 사용기'(=>링크)를 올린 적이 있다.

그 전에 알라딘 '나의 서재'에 올라온 여러 통계 자료 서비스를 맛보기로 뵈준걸 가지고,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미루어 짐작하였었다.

이건 잘못하면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않고 트집을 잡기 위한 트집이 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그동안 이용하지 않았던 것은,

강한 중독성이 두렵거나 저 '발끈'과 관련해서 라기 보다는,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인데,

'북플'이라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그런 의미에서 나의 호기심을 제대로 충족시켜 주었다.

 

그동안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사람들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공통의 관심사 별로 뭉쳤었다면,

이 북플은 사람과 책이 공통의 교집합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자주 노출될수록, 독서를 할 시간이 줄어들어 독서 인구가 줄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을,

북플은 북(book)과 사람(people)을 공통기반으로 함으로써 종식시켜버린다.

 

여러가지 장단점이 있는데,

기존의 대형 포털서비스에서 제공하는 것의 경우,

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이용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모두를 독서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보는 데엔 무리가 따른다.

 

반면, 기존의 알라딘 서재는 규모는 작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는 있지만,

활동이 뜸하거나 메인에 노출되지 않으면,

다시말해 내가 활동을 열심히하여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든지,

내지는 내가 구석구석 찾아다니지 않는 이상,

알라디너이고 책이고 간에 일치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은,

말그대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나랑 공감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빈도수가 높아진다는 거지,

빈도수 만큼 많은 사람들과 공감과 소통을 한다든지,

빈도수에 비례해서 공감과 소통의 정도가 깊어지는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플은 북(book)과 사람(people)이 합쳐친 조어에 걸맞게 책과 사람을 공통의 변수로 하는데,

가족같은 끈끈한 인간애를 자랑했던 알라딘 서재와 연동되어 '책을 좋아하는'이라는 장점을 끄집어내었으며,

핸드폰을 이용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라는 면에서 사람들이 편히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때문에

그동안 알라딘을 통해 구입한 책이 많을수록,

알라딘 서재에 쓴 리뷰나 페이퍼가 많을수록,

북플을 통해 입력하는 자료가 추가되어, 내 취향에 가까워져 간다.

나이가 들면서 하나 둘 까먹는게 생겨 좌절했었는데,

그런 나같은 부류에겐 어찌보면 행운이고 축복이다.

 

북플을 통하여 알게된 숨어있던 책들과 그동안 몰랐던 친구들,

그들이 소개하는 책과 리뷰, 페이퍼를 볼 수 있게 된게 좋다.

 

알라딘서재는 컴을 통하여 짬짬이 접속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적이 있을때 그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게 용이했다면,

북플은 관심을 갖는 새로운 정보에 알람이 설정되어 있어서 그때그때 반응하기가 쉽다.

 

간혹 그때그때 바로 반응하여,

생각이나 깨달음이 없이 경솔해지거나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게 아닐까 염려스럽지만,

아직까지는 북플의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 '한의사는 무당이 아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지만, 윗글의 내용의 연장선 상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 준다.

거기 보면, 서로에 대한 오해라고 하여, 문과와 이과에 대한 선입견이 등장한다.

 

 

 

 

 

 

 

 

 한의사는 무당이 아니다
 이하림 지음 / 에이치하우스 /

 2014년 12월

 

 

극단적인 예를 제외하면 알고 있는 지식은 비슷비슷하다.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관심이 있으면 정확한 지식을 알고자 하지만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거나 틀리게 알고 있으면 알 생각도 안하게 된다. 그래서 탐구의 최대의 적은 나태와 오만이다. 문과, 이과를 떠나서 자신이 아는 분야와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는 분야에 대해 어떤 점이 다른지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눈과 귀를 닫아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다.(70쪽)

 

'서로에 대한 오해'는 문과와 이과 사이에만 존재하는게 아니라,

서로 상응하거나 상반되는 점이 있는 것들 사이에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자신이 알고있는 그것이 정확한지 아닌지, 는 차치하고라도,

자신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고,

눈과 귀를 닫아버리는 편견과 선입견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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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5-03-31 14:14   좋아요 0 | URL
북플 정말 좋아요. 컴을 켜지 않아도 쉽게 알라딘 소식과 서재 소식을 접하니 편리하네요. 글은 잘 올리지 않아도 읽은 책 관리도 편하구요.

sslmo 2015-04-01 13:30   좋아요 0 | URL
네, 장단점이 있겠지만,
전 꿈섬님의 이모티콘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꿈섬님인양 반갑다나 어쨌다나~^^

2015-03-31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1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5-03-31 18:50   좋아요 0 | URL
북플 즐겨 쓰시나봐요.
저는 조그만 화면으로 글을 읽는게 영 답답해서 자주 안 보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맘 먹고 컴퓨터로 접속하지 않으면
평소엔 알라딘에 신경도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기도 하구요.

오늘은 야근을 핑계로 잠시 알라딘 나들이를 해봅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이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드네요.

sslmo 2015-04-01 13:57   좋아요 0 | URL
전 양쪽 1.5 1.5의 시력을 자랑하고 있지만서도,(음화화화~^^)
그래서는 아니고...ㅋ~.
직장에서 여러개의 창을 띄어고 열었다 닫았다 할려면 불편해서,
오히려 알람이 있을때마다 찾아서 마실을 다니는게 더 효율적이고 편한것 같더라구요.

창밖으로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이라면, 개와 늑대의 시간인가요?
근데 어제 페이퍼도 어제 일이 아니라면서,
매일 매일 야근이시면 금방 부자되시는건가요?헤엣~^____^

해피북 2015-04-01 01:24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글 읽으니 속이 다 시원해져요 북플의 장단점에 관해 많은 공감을 하게 되는데 그중 좋은 글들 이야기를 그 시간에 놓치면 보기 힘들어진다는게 참 아쉽더라구요 그리구 책 읽고싶어요 읽었어요 방은 따로 만들었음 좋겠다는 생각을했어요

물론 좋은 책 발견했을때 기쁨도 크지만 그만큼 이웃님들의 글이 멀리 내려가서 보기 힘들면 참 아쉽더라구요

sslmo 2015-04-01 14:01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읽고 싶어요, 읽었어요 코너는 따로 관리했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책 화면에 놓고 커서를 활성화시키면,
책 메인 홈으로 연결되어 책 정보와 함께 책을 읽은 사람 읽고 싶은 사람 등과 그 책 관련 매니아 정보가 함께 뜬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역쉬 책을 꾸준히 읽으시는 분 답게, 북플에 대해서도 꾸준히 고민을 하시네요~^^

詩21 2015-04-02 07:02   좋아요 0 | URL
어쩌면 이리 좋은 북풀을 만나다니....... 감사에 감사입니다.
99% 나와 같은 느낌과 자랑.......다음에 또 자랑 하렵니다.

sslmo 2015-04-02 18:20   좋아요 0 | URL
북플을 북프렌드로 읽었습니다여.
저의 문자해독력은 거의 장해 수준입니다~--;

암튼, 저도 감사드리구요.
반갑습니다, 귀하게 아껴뵐 수 잇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분이 좋아 자꾸만 어깨를 으쓱으쓱~^^하게 됩니다.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에겐 엽기적인 버릇이 있다.

버릇이라고 하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걸 보면 버릇이라고까진 할 수 없으려나?

 

책을 읽다가 또는 드라마의 슬픈 장면을 보다가 눈시울을 붉힐라치면 수도꼭지라고 놀려대는 통에,

난 그가 남자는 평생 세번만 울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를 실천하는 부류라고 생각했었는데,

장례식장에 조문을 갈 일만 생기면,

잘 아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고,

호상이고 아니고, 를 떠나서...

무장해제하고 맘놓고 앉아서 울다오는 모습이 내동 생경해서 적응이 안됐다.

 

처음 그 광경을 봤을때는,

영정 사진과 그를 번갈아보며,

나에게 숨긴 드라마틱한 과거가 있나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었는데,

의혹의 눈길을 이내 거두고,

이해 불가한 나와 다른 종족,

그리하여 마냥 호의를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선처하게 된 것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다가도,

다른 조문객이 오면 이내 추스르고 자리를 내어준 후,

아쉬움 없이 말간 얼굴로 식당으로 향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오해와 논쟁의 소지가 있으면서도, 난 죽었다가 깨어나도 알다가도 모르겠는게 이 '호의'이다.

 

A와 B와  C가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유년시절과 성장과정을 보냈기 때문에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서 100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다.

어떤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B는 어차피 보대끼고 어울려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주의였고,

A와 어느 부분에서 상응이 되고 어느부분에서 상충이 되는지 모르더라도,

설사 상응되는 부분을 알지 못하더라도,

오지랖을 부려 A의 자녀나 배우자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자잘한 호의를 베풀고 본다.

그 과정에서 상응되는 부분과 상충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날 우연히라도 상응되는 부분보다 상충되는 부분이 크다는 걸 깨닫게 되면,

그때서야 뜨문뜨문해진다.

 

반면 C는 A와 상응이 되는 부분도, 상충이 되는 부분도 알 수 없으니 아무런 재스츄어도 취하지 않는다. 
A의 안중에도 C가 없다.

이랬을 경우, 호의를 받아들이는 A의 입장에서 보자면,

B가 호의를 베푸는 마냥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A를 향한 감정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서운한 존재일 수 있는 반면,

C를 향하여선 아무런 감정이 없다.

 

'호의'가 반복되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줄 안다는 논리가 적용되는 순간이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태어난 다음해에 만들어진 '해롤드 앤 모드'라는 영화가 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연극으로 상연되었던 적도 있다는데,

얼마전 '미생'의 강하늘과 박정자가 주인공 역을 맡아 다시 무대에 올랐다는 기사를 봤었다.

드라마 '미생'에 힘입어서인지, 강하늘의 입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엔 책으로 나왔다.

 

이 얘기의 처음에서 내가 장례식장에 조문가는 엽기 버릇남을 소개한 이유는,

이 영화의 해롤드와  모드 또한 남의 장례식장에 가는게 취미인 이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 해롤드는 19세 청년으로, 죽는게 또 다른 취미이다.

죽음을 취미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엽기적이지만,

삶에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으니, 자연 사람들과의 관계도 거부하는,

총체적인 무기력증 환자 정도 되시겠다.

 

반면, 80을 2년 앞둔 할머니 모드는 삶의 순간순간이 충만하고 축복이다.

순간순간 자신에게 충실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

 

이 둘이 누군지도 모를 이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났을때, 할머니 모드는 이런 말을 한다.

"여든 살은 너무 늦고, 일흔 다섯은 너무 이르다. 나는 일흔 여덟이고, 여든 살 되는 해에 자살할 것이다."

또 다른 의미로, 다소 엽기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삶의 활력이 넘치는 할머니 모드는,

도덕에 얽매이지 않으면 삶이 더 풍요롭다고 한다.

 

어느날 꽃밭에서 모드는 해롤드에게 무슨 꽃이 되고 싶냐고 묻고,

해롤드는 다 똑같다며, 이들 중 하나라고 대답한다.

 

모드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며,

예전에 맡았던 향기를 보관해서 해롤드에게 권한다.

 

매순간순간이 꽃봉오리이니,

매순간순간을 사랑하고 기억하며 열렬히 사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해롤드는 모드를 사랑해'하는 고백에 '모드도 해롤드를 사랑해'라고 대답한다.

모드의 80세 생일날, 해롤드는 모드에게 청혼을 하지만,

바로 그날 밤, 모드는 약을 먹고 자살해버린다.

 

그동안의 해롤드의 자살 기도가 엽기적인 취미로 보여졌다면,

모드의 그것은, 그동안 삶의 매순간순간을 충실하고 충만하게 살아서 그렇게 보여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기 스스로 택했다는데서 오는 일종의 경외심까지 생긴다.

 

모드가 죽은 후 해롤드가  엽기적인 취미생활을 또다시 시작하지 않을까 우려도 되었지만,

아마도 잘 살 것이다.

 

 

능력 이상의 오지랖을 부려,

상대로하여 '호의'가 반복되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줄 알게 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어떤 것도 해보지 않고 문을 닫아걸고 벽을 쌓아올리는 것, 또한 난 별로이다.

 

나도 남들에게 엽기적인 취미로 보여질지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열아홉이면 어떻고 일흔여덟이면 어떤가?

영화에서처럼 부잣집 철부지(물론 방점은 '부잣집', ㅋ~.)가 아니라, 주름 가득한 파파 할아버지면 어떤가? 

 

취미가 서로 비슷하고,

심성이 비슷하게 곱고,

소속되어있는 정당이 같았으면 좋겠고,

동물을 사랑하거나 환경보호 단체에서 활동을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 이 모두는 달라도 상관없겠다.

한마디 말이나 표정, 눈짓 만으로도 상대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언어가 다르면 표정이나 눈짓 만으로,

생활습관이나 가정환경, 문화적 배경이 다르면 그런대로,

충분히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살고 싶다.

 

근데,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줄 안다'를,

''호이~'가 반복되면 둘리인줄 안다' 고 알아들은 날 어쩔 것인가 말이다, 에혀~(,.)

 

 해롤드와 모드
 콜린 히긴스 지음, 정성호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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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26 17:46   좋아요 0 | URL
차를 보니..영화를 봤던것 도 같아요.
확실치는 않고.. 부딪히는 장면..어디 영화소개하는데 나왔나?
암튼..호이~가...반복되면..둘리..저도 퐝~!!!
터져서.첫줄칸 지나고부터 큭큭대고 웃다가 실컷 웃었네요.
아~..뜬금 없지만...양철나무꾼 님..저 반했어요!!!
이런 글쓰기 너무 좋아요~^^♥♥♥♥♥
별대신 하트를 날릴거예요.
고맙습니다.
눈병이 나서 한 눈이 계속 우는 데...
이번엔..웃느라 눈 물이 났어요.
ㅎㅎㅎ 시원하게 웃었네요.

sslmo 2015-03-27 09:17   좋아요 0 | URL
아~잉~, [그장소]님~^^
반 말고 하나하면 안되나요?
(우우우~, 욕심쟁이~♬)

[그장소] 2015-03-27 16:52   좋아요 0 | URL
완전..센스 갑~!!!^^
선배로 모시겠습니다.저보다 훨씬 센스가 좋으세요.반 반 만땅.드립니다..(이걸..에드립이라고..ㅎㅎㅎ)
후배가..이럽니다.ㅋㅋㅋ

sslmo 2015-03-28 09:35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봄을 맞이하야~
욕심을 전방위로 뻗치다보니까...배.둘.레.햄.이 되는듯 하여,
`배`라는 말에 엄청 까칠하게 반응하는 고로,
운동을 하여 왕복근을 자랑하는 그날까지
`선배` 말고 `행님아~`는 안될까여~?^^

2015-03-26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7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7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5-03-27 16:52   좋아요 2 | URL
제목에서 빵 터졌습니다...ㅎㅎㅎ
재밌는 글 잘 봤습니다..ㅋㅋ

sslmo 2015-03-28 09:40   좋아요 1 | URL
(눈 한번 살짝 흘겨 주고)<--왜인진 잘 아시져?^^

터진 부분이 어딘지 몰라서,
(소를 흉내내던 엄마 개구리는 배가 빵 터졌는데...)
수습을 잘 하셨는지 여쭙지도 못하고~(,.)

이사 준비로 한창 스트레스실텐데,
암튼 재밌으셨다니 다행이시네요, 헤에~^_____^

2015-03-27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8 0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