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안녕 - 도시의 힘없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위로!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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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무래도 대책없는 바보이거나,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이렇게 어떤 이의 시 한구절을 내맘대로 바꾸어서 읊조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옛 여인들은 보고싶은걸 어떻게 견뎠을까

지금처럼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도 못했을텐데

지금처럼 잊기 위하여 취하도록 마실 술도 없었을텐데

 

시의 원문을 옮겨 보면 이렇다.

 

옛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를 견뎠을까
지금처럼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도 못했을텐데
이 강을 어떻게 건넜을까 

        - '정철훈'의 이도백하((二道白河) 중 일부 -

 

암튼 이쯤되면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명약관화해진다.

보고 싶으나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보고 싶은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

잊기 위하여 마시는 술에 대충이란 있을 수 없다, '취하도록'이다.

그런데, 말이다.

잊자고 술을 마셨는데, 이젠 초록 술병만 보면 자동으로 떠오른다.

 

이 책에서 저자 '김현진'은, 남자는 가도 가게는 남는다.

자고로 먹던 음식이 좋고 마시던 술이 좋고 얼굴 익힌 주인이 편하므로 남자 하나 바뀌었다고 그거 처음부터 다시 공사할 생각하면,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생각만 해도 귀찮다'고 염소 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나는 저 문구를, 남자는 가도 독서 취향은 남는다.

이렇게 바꾸고 싶다.

남자 바꾸기가 신발 바꿔 신기만큼이나 간편하다는 얘기가 하고 싶은것인지,

독서 취향 바꾸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가 하고 싶은것인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으나,

독서 취향이 달랐던 이들이 만나 서로의 독서취향에 흡수되어 버린 연후에는,

상대가 떠난 후에도 서로에게서 흡수되고 동화된 독서취향이 남아 쓸쓸하고 때론 씁쓸하더라...

뭐, 그런 얘기가 하고 싶은 것이다.

 

아는 사람(=知人)이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 나와 독서 취향이 똑 같아서,

'김소희'가 '한겨레 21'에 쓴 '오마이 섹스'를 몰래보고 있을라치면 같이 보자고 고개를 들이밀었고,

성석제가 재밌다고 키득거리면, '나도 성석제 완전 좋아하잖아.'하면서...

'성적제는 이기호랑 세트로 읽어줘야 재미가 배가 된다.'며 몇 권 가져다 주기도 했다.

지금은 날려버린 옛 블로그를 용케 발견하고는, 김소희 다음으로 글을 잘쓰는 여자라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는데,

그런 그가 나와 김소희보다 글을 더 잘쓴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던 이가 바로 '김현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김소희나 김현진보다 글을 더 잘 쓴다거나, 잘 쓸 수 있다거나, 잘 써보고 싶은 마음 따윈 없지만...

그의 눈에 콩깎지가 씌어서 '김현진보다 눈곱만큼이라도 더~'라는 아부성 멘트를 한번쯤 날려주기를 기대했던 적은 있었다.

 

질투에 눈이 멀었던 난, 그녀의 글을 볼때마다 이 책 추천사를 쓰며 고종석이 언급한 친구의 그것처럼,

 '글에 멋부림이 지나치고 자아가 너무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다'

고 투덜거렸고, 그럼 그는 고종석의 그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화하는 가난 속에서도 따뜻하고 고결한 마음씨를 어기차게 간직한 어떤 이웃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고 변호하고 나섰었다. 

아는 사람은 이제 '예전에 알던 사람'이 되었지만, 김현진을 읽는 나의 독서 취향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때 그가 말한, 그녀는 가지고 있고 내게는 없었던 건...인생의 바닥을 쳐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치열함이었다.

 

김현진에 비하면 난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인 것은 맞다.

온실 속의 화초라고 해서 나름 견뎌내야할 병충해가 없었겠냐마는...각설하고,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 가출이란 걸 하여 광화문의 햄버거점에서 알바를 했었다.

채 하루를 채우지 못한 그 가출은 알바 후 원인불명의 고열 때문에 친구의 밀고로 아빠에게 알려졌었고,

내 인생에 있어서 알바는 그날 하루, 4시간이 전부였다.

그날 나를 교육시켰던 알바 오빠의 이름이나 얼굴 따위는 잊었지만, 알바생에게 힘들때 쉴 수 있는 곳을 제일 먼저 알려주었던 그 오빠의 따뜻한 마음씨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를 조용히 화장실로 데려가 좌변기의 뚜껑을 덮더니 시범을 보이며,

"힘들면 이렇게 뚜껑을 내리고 앉아 있는거야. 시간이 좀 지날때마다...물을 한번씩 내려주는 건 센스~"

라고 했었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내가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했어야 될때도 있었고, 반대로 누군가를 내 밑으로 두어야 할때도 있었다.

나이를 먹다보니, 어딜 가나 나만의 숨어있기 좋은 곳 하나쯤 가지는 건 기본이 되었다.

내 밑의 누군가 들에게도 제일 먼저 '힘들 때 숨어 있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하라고 귀뜸해 주는 건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

 

한동안은 인생의 바닥을 쳐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치열함이 어떤 것일까 싶어서 몸을 혹사시켰던 적이 있다.

일부러는 아니었지만,

수해복구현장에 비닐을 걷어내는 봉사를 따라나섰다가 겨우 하루하고 일주일을 앓아 눕기도 했었고,

시댁의 땅콩 밭에 쭉정이를 주우러 갔다가 탈진으로 쓰러져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었다.

 

지금은 물질적인 빈부를 가지고 무조건 인생의 상류층이나 밑바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풍요롭거나 가난하고의 여부가 인생의 상류층이나 밑바닥을 결정 짓는다고 생각한다. 

고독해서 사랑을 한 게 아니라 혼자 있기 싫어서 사랑을 했는데, 그러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그냥 막 살고 있었다. 나야 연애에 목숨을 거는 것뿐이었지만 남들 보기엔 그냥 막 나가고 막 사는 걸로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울고 또 울어도 또 멍청한 짓을 되풀이하는 한심한 여자아이였는데, 그건 어른이 된 지금도 그다지 나을 것 없다. 나는 그냥 죽도록 사랑받아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했고,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아예 마음이고 감각이고 다 마비될 때까지 술을 마시는 짓을 되풀이했다.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는 삶을 도대체 누가 좋아해주겠느냐는 말도 맞지만, 누군가에게 죽도록 사랑받아보면 조금 안심이 될 것도 같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런 일이 한번 일어나면 자신을 좀 좋아하게 될것만 같았다. 하지만 연애해볼 만큼 해봤고 나름의 생계와 고뇌를 짊어지고 있는 성인 남자들은 귀찮은 강아지처럼 구는 나를 부담스러워했고,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구석에 시무룩하게 앉아서 술을 마시는 것뿐이었다.(87~88쪽)

 

사실 아저씨도 나도 우리는 다 똑같은 종자였다. 외로워서 술 마시고 사람 냄새 그리워서 민폐를 끼치고 그러면서도 내가 이렇다고 말 못하고 나 주인아저씨고 내가 대장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는 한심한 종자들. 외로워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더 외로워지는 바보 같은 종자들. 아저씨에게는 마구 기어들어가 내가 대장이라며 난리를 칠 세입자들이 있고, 나는 누구의 대장도 아니며 어떤 세입자도 없었지만, 죄 없는 남자친구나 몇 안 되는 친구들이나 마구 조진다는 면에서는 똑같이 한심하고 덜떨어졌다.(129쪽)

 

외로워서 미칠 것 같은 밤에 안방에서 창문을 열면 한강과 동호대교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던 우리 집, 미칠 것 같은 밤에도 방이 세 개나 있어서 고독을 내려놓을 공간만은 충분했던 우리 집. 그때 나는 젊었고, 피는 지글지글 뜨겁고 종종 토할 만큼 외로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지금은 다 무너진 그 집은 삼성 래미안이 될 것이라 했다. 그 생각을 하면 또 덜컥 외로워진다. 다행인 것은, 그 뜨겁던 피가 약간 식어서 이제 토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 정도다. 어쨌거나.(147쪽)

그런 의미에서 마음의 가난은,  외로움이나 고독 따위와도 등가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그것을 인생의 밑바닥의 그것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따갑지요. 근데 그럼 어떡하겠어요, 비닐장갑 끼면 손이 둔하니까 느낌이 안 와서 골고루 양념이 안 들어가 맛이 없어지고, 좋은 결과를 내려니까 그 과정에서 반드시 참아야 되는 것도 있지요.(106쪽)

 

 할아버지들은 영차 영차 하며 이번에는 냉장고를 날랐다. 아, 다들, 이렇게 미친 듯이 열렬하게 살고 있었다.(163쪽)

 

이 책을 읽다보면, 도처에 술을 마시고 싶게 만드는 문장들이 포진해 있다.

김현진의 글이야 그냥도 수려한 것은 분명하지만,

술꾼들에게는 더없이 유혹적이고, 대단한 위용을 과시한다.

그러니 혹, 부도 위기의 주류회사나, 술집이 있다면...과감하게 김현진의 이 책을 술을 자제하거나 끊은 잠재 술꾼들의 가시는 걸음걸음에 고이 놓아드리면 될 일이다.

 

ㆍㆍㆍㆍㆍㆍ술에 취해 길에 누워 자고 있는 웬 아가씨를 발견한 그 산책길에서 그 신랑과 신부는 아마 손잡고 가로등 아래를 다정하게 거닐다가 내 친구를 발견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정답게 서로 도우며 친구를 낑낑 데리고 내려오고, 막걸리 냄새 풀풀 풍기는 우리가 그 친구를 떠메고 사라진 다음에는 참 다행이라고 웃다가, 황당한 일도 있다고 다시 한 번 웃다가, 서로 이불 잘 펴고 그 침대에 누워 꼭 껴안고 다정하게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남자 잘 만나 어떤 호화로운 대접 받고 사는 여자보다 자그마한 살림이라도 반질반질한 침대와 말간 얼굴 가진 남자와 정답게 사는 그녀가 부러워서, 그래서 더 외로워져 목 메일 때도 있었고, 그러면 하는 수 없이 막걸리로 씻어 내렸다. 그런 정결함은 아직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고 앞으로도 기약없다. 그저, 부디 그들이 그 침대가 떵떵거리며 제 자리 찾아 위용을 자랑할 수 있는 몇 십 평짜리 넓은 집에서 잘 살기를. 레미안이니 브라운스톤이니 이런 데 가서 여봐란 듯이 살라고 세속적으로까지 빌어주고 싶을 만큼 참 정다운 무릎을 가진 부부였다.(17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잘 먹지도 못하는 막걸리가 마시고 싶었고...

정다운 무릎이 어떤건지 시험해보고 싶어, 작은방에 반질반질한 침대를 놓고 자그마한 살림을 살고 싶어졌다.

 

'글에 멋부림이 지나치고 자아가 너무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더라도, 그걸 감수할 수 있을만큼 수려함의 정수를 이루는 구절은 이 구절이다. 수사의 화려함과 수려함이 정수와 극치를 이룬다. 도넛을 먹을건지, 고로케를 먹을건지,의 쉽지않은 결정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미루어 두는 수밖에 없겠다.

우리가 모두 따뜻한 빵이라면 나는 한 개의 도넛,  동글동글 귀여운 찹쌀 도넛이 아니라 뻥, 하고 뚫린 큰 구멍 있는 그런 도넛의 숙명이다. 그놈의 구멍에는 별별 게 다 들어간다. 유난스러운 외로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관심병과 애정결핍, 지난밤 부끄러운 기억, 꼴에 쓸데없는 동정심, 독한 술, 추억이라 부르기도 비참한 순간들, 이런 것들이 이커다란 구멍을 통해 밀물처럼 썰물처럼 오고 또 갔다. 사람은 원래 혼자라는 걸 알면서도 잠깐 그 구멍을 메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아무나 사랑하고 아무에게나 상처받는다. 만약 당신이 고로케라면 이런 고통 모를 것이다. 얼마든지 몰라도 좋을 고통이다. 금방 튀겨져 따뜻하고 감자나 당근 같은 포근한 속이 들어 있는 당신, 야무지고 빈틈없이 속이 꼭꼭 찬 당신은 구멍 같은 걸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당신도 나름의 고통이 있겠지. 더 채우고 싶어서 괴로울 테니까. 그래서 당신은 더 맛있고 특별한 속재료를 찾는다. 존경스러운 당신의 추진력, 당신이 정말로 고로케인 건 아니니까 당신이 채우려고 하는 것들은 감자 양파 햄 당근이 아니라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스펙 같은 근사한 속재료. 당신이 아자 아자 파이팅! 할 수 있어! 하고 외치며 도톰하게 속을 채우려고 참 열심히 사는 동안 뭘 넣어도 텅텅 비어버리는 도넛들은 당신이 부럽고 신기하고 가끔은 무서워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면 당신은 우리를 이렇게 부르지, 루저!(238~239쪽)

 

제자리라고 마음대로 정해놓은 구석 자리에 앉아 대낮부터 술국과 막거리를 청해 마신다. 그러면 조그만 마루에 앉아 계신 할머니 옆으로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괜히 이것저것 묻는다. 사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순대국을 끓여온 할머니의 대답은 늘 명쾌했다.

 

- 할머니, 회사 대리가 괴롭혀요.

- 아가야, 속 좁은 놈들은 별것도 아닝 게 무시해버려라잉.

- 할머니, 저 회사 그만뒀어요, 인제 어떡해요?

- 아가, 앞으로 돈 벌 날 하고 많응게 쪼매 안 벌어도 돼야. 안 굶어 죽는다.

- 할머니, 저 이렇게 술 많이 마셔서 어떡해요?

- 아가, 걱정하지 말아라. 들어갈 때 실컷 마셔라. 안 들어갈 날이 곧 온다.(244쪽)

이 책을 통틀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이렇게 우문현답을 구사하시는 할머니만 있다면, 대낮부터가 아니라 하루 24시간 내내라도 술국과 막걸리를 먹어댈 수 있겠다.

술을 너무 먹어 알콜성 치매보다 더 무서운 병에 걸리게 된다 해도, 이 할머니만 사부로 모실 수 있다면 내가 앞으로 사십 년 동안을 순대국을 끓이는 보조로 일해도 행복하겠다.

 

"아가, 걱정하지 말아라. 들어갈 때 실컷 마셔라. 안 들어갈 날이 곧 온다."

누군가 나에게도 이렇게 얘기해 준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알콜성 치매보다 술 안들어갈 그날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천형 같을테니,

블랙아웃이나 머릿 속의 지우개보다 더 무서운게 술이 안들어가는 그날일테니,

들어갈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실컷'은 아니고 야금야금 아껴 마실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냥 지금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술이 들어가면, 들어가는 만큼만 욕심부리지 말고 마시고,

마셔서 취하면, 취하는 만큼만 술김을 빌려 하고 싶은 말 하게 하고,

마셔서 취하면, 취하는 만큼만 술김을 빌려 잊고 싶은 건 잊고 살 수 있다면,

그럭저럭 감사하고 살기로 했다.

 

김현진의 책제목 <뜨겁게, 안녕>은 'Goodbye To Love-Carpenters'를 본문에서 인용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Goodbye의 의미로 사용했겠지만, 난 Carpenters의 또 다른 곡 Close to you를 떠올리며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책의 뒷표지에 있는 이런 문구를 간과할 수 없어서 라고 하면 너무 감성충만, 필 충만이 되려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접힌 부분 펼치기 ▼

 'Goodbye To Love-Carpenters'

 

 

I′ll say goodbye to love, no one ever cared if I should live or die

Time and time again the chance for love has passed me by

(And all I know of love is how to live without it

I just can′t seem to find it)

So I′ve made my mind up I must live my life alone

And though it′s not the easy way

I guess I′ve always know

I′d say goodbye to love

There are no tomorrows for this heart of mine

Surely time will lose these bitter memories

And I′ll find that there is someone to believe in

And to live for something I could live for

All the years of useless search

Have finally reached an end

Loneliness and empty days will be my only friend

From this day love is forgotten

I′ll go on as best I can

What lies in the future is a mystery to us all

No one can predict the wheel of fortune as it falls

There may come a time when I will see that I′ve been wrong

But for now this is my song

(And it′s goodbye to love

I′ll say goodbye to love)

 

 

책의 가사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옮겨 적지 않았다.

304쪽의 '문'은 '분'의 오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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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3-02 13:49   좋아요 0 | URL
杯山(배산)- 전겸익

山如一酒杯(산여일주배)-산이 하나의 술잔 같아서
湖水嘗灌住(호수상관주)-호수는 벌써 물을 댄다
我愛杯中物(아애배중물)-나는 술잔 속의 풍물이 좋아서
還乘此杯渡(환승차배도)-다시 이 술잔을 타고 건너간다


2012-03-02 15:46   좋아요 0 | URL
요즘 양철님 글이 왜 이리 잼있지요? 김현진보다 눈곱만큼 더 잘 쓰시는 것 아닐까요? 후후
저도 김현진 글 좋아했는데, 재치에 두 점 주고, 자기애와 자기연민에 한 점 깎고, 혼자 막 그랬었지요.
이 글 읽으니, 김현진 양의 저 에세이 당장 사서 읽고 싶습니다...
남자는 가도 가게는 남는다니, ㅋㅋ.
어느 인연과 섞였다가 헤어진 후, 남은 자취엔 추억만 있는 게 아니군요. 섞였다가 흔적으로 혹은 자산으로 남은 독서취향이라. 재밌어요.

sslmo 2012-03-02 16:02   좋아요 0 | URL
ㅋ,ㅋ...칭찬에 약한 양철댁~
제가 읽은 책 보내드릴게요.
사지마세요. 후하게 줘서 별 넷이지만, 소장가치까지는 장담 못해요~^^

2012-03-02 21:13   좋아요 0 | URL
양철님은 진짜 책 인심이 후하시군요.. 하지만 저도 염치가 있지 우예 또 받겠습니까~ㅎㅎ
저도 살 생각은 아니었어요. 지금 무급휴직에 막 접어들어서, 긴축이거든요.
서점에 놀러가서 읽거나, 시립도서관에 구입신청하거나 할 거였답니다.
여튼 양철님 고마워용~! ^^*

cyrus 2012-03-02 22:26   좋아요 0 | URL
리뷰 속에서 술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도 술이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개강인데 제 주위 친구들이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고기만 배불리게 먹고 나왔거든요 ^^;;
신입생 때는 정말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밤새도록 술 마셨던 기억이 그리워지네요.



하늘바람 2012-03-03 11:08   좋아요 0 | URL
저도 어떤 책보다 양철님 글이 더 멋지고 좋아요 마음도 편해지고 하지만 이렇게 글을 잘 쓰시면 질투에 눈이 멀지도 몰라요
 

* 습관 : 1.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2.<심리>학습된 행위가 되풀이되어 생기는, 비교적 고정된 반응 양식.

 

* 중독 : 1.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2.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3.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그러니까 어제 아주 낯선 장소와 상황에서 눈을 떴다.

그렇지 않아도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고생을 하는데,

낯선 장소와 낯선 상황에서 눈을 뜬다는 것 자체가...뭔가 심상치않은 기류가 느껴졌다.
방의 풍경도 낯설었지만,

내 옆에 누워 있는 인물들도 의외였다.

동생의 딸인, 울보 공주들은 잠잘때 잠투정이 더 심해  내가 하나 뿐인 고모이긴 하지만 한번도 같이 자본 적이 없었다.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거실로 나가니 거실 풍경은 더 가관이었다.
아빠와 남동생과 남편이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아휴~"

하는 탄성의 원인이 그 광경을 보고서 였는지, 내 머리가 흔들려서였는지 확실치 않았다.

화장실을 찾아들던 나는,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던 동생의 처, 올케와 마주쳤다.

"형님, 일어나셨어요?"

평상시 같으면 나를 붙들어 세우고, 거실의 풍경에 대하여 열번은 '블라블라~'거리고도 남았을 올케와 나는 평소 죽이 잘 맞아 '형님'이라는 호칭 대신 언니, 동생하는 사이였다.  

난 채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닭살 돋게 웬 형님?"

하고 의아해 했다.

"어제, 아니 새벽에 형님이 그러셨잖아요."

올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심드렁하다.

"언니라고 부르지도 말라고 하셨잖아요!

 언니,동생은 피를 나눈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에나 사용하는 호칭이라고...

 우리 아빠 달랑 마른김에 깡소주 마시게 하는 못된 올케에게 언니로 불리우고 싶지 않다고 그러셨잖아요!"

사태파악을 채 못하고 애먼 눈을 이번엔 껌벅거렸다.

 

"저~언~혀 기억 안나는 거예요?"

나는 '저~언~혀'를 강조하기 위하여 고개를 위아래 끄덕이려다가 골이 흔들려 이내 멈칫거리고는 시선을 돌려 거실을 가리켰다.

"새벽에 저한테 전화하셔서, 울아빠가 마른김에 깡소주를 먹고 있는거 아냐고 하면서 막 우셨잖아요."

"고모부한테는 전화하셔서, 너네 아빠 우리 아빠 하면서 우셨대요."

"내가 초딩이야?"

"그러게 말예요. 아니면 고단수이던가...

 혼자 사신지 6개월밖에 안되는 니네 아빠한테는 왜 자주 연락하라고 하면서,

 평생 혼자 살다시피한 우리 아빠한테는 전화 한번  안하냐고 따지셨대요."

얘기인 즉슨, 엊그제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가 음주를 해 주셨(?)고,

대부분의 음주는 약한 자와 길치에 대한 배려로다 동네에서 이루어지는데, 아니었나 보다.

귀가 길에 집과 두어정거장 떨어진 친정아버지 댁에 들르게 되었는데,

때마침 심심하셨던 아빠가 마른김에 깡소주를 드시고 계신 걸 보게 된다.

동네방네 전화해서 울고불고 통곡을 하고 난리를 치고는, 혼자서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잠이 든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새벽에 자다가 전화를 받은 남동생 내외와 남편은 놀라서 달려왔고,

내가 한 얘기가 틀린 얘기는 아닌지라 각자 나름대로 회개와 성찰과 반성을 하고,

술파티를 하다가 저렇게 널부러지게 되었단다.

 

 

그렇게 그렇게...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낸  듯한 머릿속을 이리저리 조각맞추기를 하고 있을때, 이번엔 시아버님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셨다.

시아버님께서 내 핸드폰 번호를 알고 계시는지 조차 의문일 정도로 한번도 내게 먼저 전화를 하신 적이 없으셨다.

늘상 나를 향하여 말을 많이 아끼신다는 느낌이었고,

며느리를 부르는 호칭도, 박사도 아닌 나를 '서박'으로 부르셨다.

"...속은 좀 어떠냐?"

호칭은 생략하고,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셨다.
"네?...네."

"아범한테 콩나물국이라도 끓여달래서 먹어라. 딸깍."

 

 

"새벽에 사돈어른한테 전화해서 가관도 아니더라...내가 흉내 내보랴?

 아버님, 아버님 하지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아버님, 있잖아요...저희 친정 아빠는 말이죠~

 저희 올케한테 '아가야~'이렇게 다정하게 부르는데 말예요.

 아버님은 왜 저 박사도 아닌데 무뚝뚝하게 서박이라고 하세요?

 아버님은 제가 미우신거죠?"

아빠는 고개를 모로 꼬며 흉내를 낸다.

"아휴, 창피해~ㅠ.ㅠ 그래서?"
"아무리 미워도 대놓고 밉다고 하시겠니?

 역시 선비 집안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

 대대로 선비 집안이어서 가정교육을 엄하게 받아놔서 그렇다...뭐, 그렇게 달래시는 거 같더라.

 넌, 거기다 대놓고...

 아버님, 저희도 양반 집안이예요.
 OO서씨 OO공파 OO대손이요,

 그렇지만 저희 아빠는 올케한테는 '아가야~', 저한테는 '따알~'이러고 부르세요.'이러더라구."

하면서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아올린다.

"ㅎ,ㅎ...아버님이 창피하시다고...형님 또 한번 그러시면, 짐 싸들고 애너벨리(유료 양로원)로 들어가신대요."

올케는 옆에서 깔깔거린다.

남편은,

"너 어제 나 모르는 누굴 만나더니, 뭔가 사줄 받은게 틀림없어."하며 툴툴거린다.

올케는 나중에야,

"언니, 난 술 취한 언니 모습 처음 보지만...그래서 언니가 오히려 인간적이랄까...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라고 한다.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따윈 지금 중요한게 아니다.

술을 먹고 필림이 끊기는 건 알콜리즘의 시초이다. 

예전부터 술을 아무리 먹어도 행동이나 자세가 그다지 흐트러지지 않아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술을 끊어야 하는데...이제 끊기엔 술이 너무 달다.

 

습관이나 중독이나 되풀이된다는 점에선 같다.

단지 장애나 병적이나 비정상 상태일태 우리는 '중독'이라고 이름 붙인다.

술이 중독이 아닌 습관이 되게 할 방법은 정녕 없는건가?

 

 

 

 

 

 

 

 

 

 뜨겁게 안녕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2월

 

몸이라는게, 조금 놀아보면 그 맛을 기가 막히게 알아서 계속 편하게 살려고 그래요. 자꾸자꾸 게으름 피우게 놔두면 막 놀고 자빠지고 싶어 해. 아주 습관이 돼서 놀려고만 드니까 좀 후둘겨 패서라도 움직여줘야 돼요.ㆍㆍㆍㆍㆍㆍ그래야 아 이거 내가 해야 되는구나, 싶어서 하지.(104쪽)


김현진은 지금 알콜 치료 전문 기관에서 치료를 받는단다.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술은 술이상의 어떤 것, 이를테면 '소울 푸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때문에 중독되지만 않는다면 습관정도는 공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말이다.

 

ㆍㆍㆍㆍㆍㆍ의사선생님은 독을 한 컵 마시나 한 병 마시나 뭐가 다르냐고 대꾸했다. 사실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얼울할 것도 없었다. 평생 마실 술을 지난 십 년 동안 죄다 마셔 버렸으니까. 내 몫뿐이 아니라 평생 술 한잔 입에 대지 않고 살아오신 부모님 몫까지 카드빚 당겨쓰듯 싹 쓸어 마셨으니 끊어도 억울할 것 없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버틴다. 그 좋아하는 술을 어떻게 끊느냐고, 같이 술 마시고 싶다고 간 크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맙기는 한데 사실은, 너무 사랑해서 차마 가까이 갈 수 없는 마음을 아십니까. 이 애절한 마음을.(256쪽)

 

김현진의 '뜨겁게 안녕'의 부제가 '88만원 세대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전하는 도시의 힘없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위로!'이다.

88만원 세대하면, 우석훈이 생각나고, 우석훈의 새 책 '1인분 인생' 도 나올 예정이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수필집이란다, 기대된다.

 

 

 

 

 

 

 

 

  1인분 인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보람의 의미와 보람의 가치, 우린 그걸 너무 잊고 살아가고 있다. 개인들에게 ‘보람 있는 삶’이 사라진 자리를 ‘보람상조’가 대신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뭘 해야 보람 있는지는, 그거야말로 “그때그때달라요”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보람 있는 삶을 살겠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순간, 행복은 파랑새와 같은 것이라는 걸 문득 깨달을지도 모른다. 참 멋진 얘기 아닌가? 집 안에 있는 파랑새를 두고 세상을 헤매고 다녔던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돈 좀 원 없이 있으면 좋겠다”고 IMF 이후 10년을 “부자 되세요”를 입에 달고 살았던 우리들은 하마터면 집 안에 있는 파랑새를 굶겨죽일 뻔했다.(193쪽)

 

 지금 즐겁지 못한 삶이 언젠가 즐거울 수 있을까? 지금 즐거운 사람이 나중에 즐겁게 공부할 수 있고, 또 즐거운 일들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참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행복은 그리고 마음의 평온은 그렇게 해서 오지 않는다.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고, 지금 행복을 찾지 못하면, 영원히 행복을 찾지 못한다. 자신이 고통을 참고 있으므로 남에게도 고통을 참으라고 말하는 사람. 아마 그 사람이 지옥에 먼저 가지 않을까?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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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2-02-27 20:19   좋아요 0 | URL
자연스럽게 그려주신 풍경이 전 왜 부러울까요?
한번도 그래 본적이 없고 그럴리 없는 옆지기, 그럴리 없는 시댁 그래서 일까요
그런데 그렇게 술을 많이 드셨는데 속 괜찮으세요?

쉽싸리 2012-02-27 20:34   좋아요 0 | URL
흠, 술 자시고 그럴 정도는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약간 자제하심이...
매일 조금씩? 마시는 것도 좋아요. ㅎㅎ 그러면 습관 됩니다.

2012-02-28 00:12   좋아요 0 | URL
ㅋㅋ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위가 넘 안좋아서 알콜릭도 될 수 없는 사람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ㅠ

마노아 2012-02-27 21:59   좋아요 0 | URL
진정 취중진담이었나봐요. 그래도 하고 싶은 말 다 하셔서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건강 조심이요!!!

잘잘라 2012-02-27 22:23   좋아요 0 | URL
후후훗. 김동률의 취중진담, 오랜만에 불러봅니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나, 불안해할지도 몰라아아앙~~~

프레이야 2012-02-27 23:20   좋아요 0 | URL
헉, 양철나무꾼님 필름이 끊어져 기억이 안 나실 정도면 좀..
그래도 이쁘게 다들 봐 주시는 거 보면 그동안 님이 어떻게 하고 살아오셨는지 감이 오네요.^^
제 동서도 일전에 술 취해 완전 필름 끊기고 난리난 적 있는데 저와 다른 사람 한 명만 그 현장을 똑똑히
기억하거든요. 그래도 동서가 워낙 착하게 잘 해와서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졌어요, 제가요.

아무개 2012-02-28 10:13   좋아요 0 | URL
김현진씨 책 읽고 오히려 더 술이 땡겨서...금주중이라는 작가를 꼬드겨서 함께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어요^^:::
두달정도 하루도 안 쉬고 마셔 본적도 있고, 아닐땐 일주일에 4일 이상 계속 마셔왔는데 이주전쯤 부터 왜인지 술이..글쎄 맛이 없는겁니다. 심지어 엊그제 제 생일엔 생맥주 두잔으로 끝을 냈어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술이 안땡기니까...내가 죽을때가 됐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ㅜ..ㅜ 습관과 중독은 어휘상의 차이일 뿐이지 특히나 술 문제에 있어서는 습관은 곧 중독이 될 바로 아주 바로 전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위험하죠.... 저도 술마시거나 책보거나 그게 제 여가의 전부이거든요.그래서 뭔가 몸을 움직이는 활동적인 일을 찾아보려고 노력중이에요.

글샘 2012-03-01 20:40   좋아요 0 | URL
음악이 정말 열정적이고 뜨겁네요. 술마시고 필름 끊어지는 일이야 병가지 상사이거늘... ^^
나중을 위해 고통을 참고 있으라고 말하는 사람... 그래요, 지옥으로 보냅시다. ㅎㅎ

같은하늘 2012-03-06 02:52   좋아요 0 | URL
취중진담~~~~~~
저도 얼마전 무지하게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이 방법을 써 볼걸 그랬나보네요.
만약 그랬다면 우리시어머니는 어떤 반응이 나오셨을까? ^^;;
 

오늘도 손석희의 시선 집중을 들으며 아침을 먹었다.

며칠째 이명박 정부 4년 평가 논객 토론이란 걸 하고 있는데, 오늘은 '사회ㆍ문화 분야'였다.

여간해선 주파수 고정인데,

아침에 만나면 밥맛이어서 주파수를 바꾸고 마는 몇 안되는 이 중 하나가 논객으로 나와 주파수를 바꾸려는데,

반대편 논객이 내가 흥미로워 하는 이였다.

(손석희 시선집중,이명박 정부 4년 평가 논객 토론 - '사회ㆍ문화 분야')

 

디지털 진화, SNS(social network service) 관련 그들의 토론을 듣고 있다 보니,

예전에 그가 100분 토론에 나와 영화 아바타 관련 혹평을 했던게 떠올랐다.

 

요즘 내주된 관심사가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그런 얘기만 당나귀 귀가 돼서 들리는 것이다, ㅋ~.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의 개념을 알고는 있었지만, 체화하지 못하여 와닿지 않았었는데...

서동욱의 '철학연습'을 읽으면서, 이 부분의 개념을 다시 잡았다고 해야 하나?

 

 

 

 

 

 

 

 

 

 철학 연습
 서동욱 지음 / 반비 /

 2011년 4월

 

 

사실 이 책은 구한지 좀 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 서동욱은 시인이기도 해서 그런지...

책의 처음 '책을 펴내며'를 읽다가 그만 그의 화려한 수사에 질려 길을 잃고 접어 던졌었다.

그런데, 처음만 참고 견디면... 이책의 제목'철학 연습'에 걸맞게,

현대철학이론들을 현대적 삶의 측면(돈, 사랑, 외모, 스마트폰 시대의 책읽기와 글쓰기 등)에서 바라보고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몰두의 이면에는 기원적인 것, 원본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간직할수 있다는 경계가 담겨 있을 것이다. ㆍㆍㆍㆍㆍㆍ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형이상학적 주제로만 보이는 기원의 신화는 실은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으며 우리삶을 위협할 수 있다. 원형적인 순수한 인종은 누구인가?그것은 백인이다. 원형적인 성, 보다 우월한 성은 부엇인가? 그것은 남성이다ㆍㆍㆍㆍㆍㆍ.그리고 이러한 기원이 누리는 영광의 배후엔 늘 기원보다 열등한 주변부가 영광의 그늘로 자리잡는다. 순수한 원천에 대한 향수와 자만심으로부터 등을 돌리면 거기엔, 순수하지 못한 것이 섞여든 우색인종들, 혼혈아들, 불법이민자들이 있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긍정은 바로 순수한 원형적 모범의 기준을 벗어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환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가짜 인생이여, 복제와 인용으로 가득 찬 삼이여!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그런데 '나의 가짜 인생'은 좀 어폐가 있는 표현 아닌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없는데,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나'라고 불리는 순수한 것이 있겠는가? 삶은 이렇게 오리지널리티를 지니는 '자아'가 사라진 익명성의 터널로 들어간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태를 '주체의 죽음'이라 부르기도 했다. 주체가 죽은 시대에, 이 모범도 원본도 없는 복제물들의 파편을 가지고서 어떤 삶을 꾸며나갈 수 있을까?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아바타와 RPG게임이라는 시뮬라크르의 놀라운 생산자들 속에서 표류하는 우리가 오늘날 던져야 하는 윤리적ㆍ정치적 물음이란 이런 것이다.(259쪽)

 

예를 들면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관련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인터넷에서의 나는 실제에서의 나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대담한 구석이 있다.

실제에서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지 못할 정도로 대담무쌍하다.

그건 인터넷 세상이 가상이어서가 아니라, 인터넷 세상이 주는 익명성과 모호함에 나를 함께 묻어버는것이다.

어느때보다 더 나의 본능에 가깝지만, 다만 일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나답지 못할 따름이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기준이 '일상에서의 나'가 될 수 있을까?

이 논리대로라면, 일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나는 진짜가 되는 것이고,

어느때보다 나의 본능에 가까운, 솔직하고 대담한 나는 가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디지털 진화에 따른 개인화, 개인적 고립 문제로 이어졌다.

흔히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들 얘기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 지혜로워져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장르소설을 읽다보면...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독선과 아집에 빠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랑제의 소설 '검은선'에도, 내가 좋아하는 프레드 바르가스의 '죽은자들여, 일어나라'에도 등장한다.

 

그리스인들에게 지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혜에 접근하기 위해선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생각함의 도구인 이성이 '일하도록'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은 모든 사람이 나누어 가진 '보편적인 것'이기때문에, 이성은 자신이 생각한 것이 정말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사람에게 깃든 이성에게 묻고 교정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성이 노동하는 방식으로서의 '대화'이다. 그러니 당연스럽게도 철학은 '의견'을 내놓고, 그 의견을 교정하기 위해 논쟁을 하고, 교정되어 보다 나은 의견을 다시 내놓는 그런 생각함의 과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은 '의견'을 지닌 자들의 전쟁터다. 옆집 아저씨의 인생 철학도, 사장님의 경영 철학도, 철학관을 운영하는 점쟁이의 신묘한 철학도 혼자 방 안에 있을 땐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몽상이며, 나아가 "이거 맞지? 이거 맞는 얘기잖아!"라고 다짜고짜 옆사람에게 강요될 때는 사람을 피곤케하는 독선과 폭력이 된다. 그러나 개인들이 지닌 그런 다양한 생각들이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성의 전쟁터에서 생존을 시험받게 될 때 그것들은 이미 철학의 반지를 손에 넣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22~23쪽)

 

결국 사회와 문화가 발달하고, 그리하여 디지털이 진화한다고 해도,

인간은 보편적 이성을 지닌 존재이고, 자신의 이성이라는 것이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알아보는 유일한 방식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이다.

그러니 개인의 그것이 몽상과 아집, 독선과 폭력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관계와 소통 뿐이다.

 

지인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좋은 뜻으로 한 얘기였는데, 지인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를 들먹여가며 정색을 했었다.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홍지웅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3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식으로, 자기가 해온 방식으로, 우물 속에 앉아 하늘 쳐다보는 (座井觀天)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 아닌가?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나조차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대응할 것이다ㆍㆍㆍㆍㆍㆍ그래서 사람마다 스타일이 생기는 거고ㆍㆍㆍㆍㆍㆍ언젠가 김인호 사장이 나더러 <홍선배는 굉장한 스타일리스트>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이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서 좋아 보인다는 것인지(아마도 김인호 사장은 내가 만들어 온 책들을 토대로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아니면 너무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어서, 혹은 그것을 너무 금과옥조처럼 고집하고 있어서 융통성이 없다는 말인지,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 Philippe Starck은 인터뷰때 기자가 <당신은 스탁 스타일Starck Style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정한 스타일이 있는데>라고 묻자, <나는 스타일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STYLE 대신 PHILOSOPHY라는 말로 불리고 싶다>고 한적이 있다!!(82쪽)

 

더불어 또 한가지, 서동욱의 '철학연습'을 통하여 생각을 달리한게 있는데...다음과 관련해서이다.

난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건 아니어도, '경우의수'정도로 생각하고 예방하고 미연에 방지하자는 주의였다.

그런데 서동욱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건, 의지와 행위뿐이라고 얘기한다.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를 볼게 아니라...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리라.

인간의 운명은 의지와 행위를 통해 개척되는 것이지,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얼굴이나 손금이 살아가면서 변한다고 하는, 우리가 종종 듣는 견해는 바로 인간은 정해진 운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해나간다는 이런 진리를 얼마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ㆍㆍㆍㆍㆍㆍ사정이 이렇다면, 즉 우리의 운명은 지금 해나가는 행위에 달려 있다면, 우리는 왜 덧없이 관상을 보고 점을 치면서, 정해진 우리의 운명을 엿보려고 하는 것일까? 바로 '공포' 때문이다.ㆍㆍㆍㆍㆍㆍ행위가 운명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에, 공포가 발목을 붙잡고서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지 않은지 찾아볼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이 정도는 이야기해야겠다. 결혼 못한 딸들이여, 엄마가 데려온 점쟁이가 네 남자의 관상이 나쁘다고 혼인을 반대하면 그르 헤겔이 제안하 행위 지침에 따라 대하라. 취직 못한 아들들이여,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혹시 관상이 나빠서였다면 그 회사를 향해 코웃음 쳐라. 한 인간의 운명은 머리 한 군데의 평평한 공터에 모여 있는 눈,코, 입, 귀의 생김새, 그리고 머리통의 모양이 겨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타고난 운명의 행운 때문에 황제가 되고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하며 좋은 짝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운명은 오로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그의 행위 속에서만 확인되 수 있다. (307쪽)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관련된 한대목이다.

철학은 접근 불가능한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쯤되면 찬찬히 공부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정신현상학'관련 '헤겔'이 흥미로워 찾아보니, '헤겔,아이티, 보편사'라는 책이 새로 나왔다.

 

 

 

 

 

 

 

 

 

  헤겔, 아이티, 보편사 
  수전 벅모스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철학에 'ㅊ'자도 모르면서...너무 철학 얘기만 머리가 아프지만,

분위기를 몰아서 오늘 일기도 철학적으로 한번 써봐야겠다.

 

어쩌면,

한참동안 말을 잃어버릴것 같다.
제길, 뭐 어떻게 침이라도 한방 맞아 봐야 할지

탕약이라도 한제 달여 먹어야 할지

모를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
얼굴엔 우울을 클리닝 집 꼬리표처럼 달고
어슬렁 어슬렁 정해진 길을 걷다가
훌쩍 2월이 가고
훌쩍 눈물도 좀 나고
훌쩍훌쩍 콧물도 좀 나고
하루 한번은 이곳에 들어와 앉았었지만,
아무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런 댓글도 떠오르지 않아
성질 나쁜 고양이처럼 손톱을 세워
마우스만 딸깍 딸깍 긁어대다

오늘은 손톱을 찰칵찰칵 깎아야지
오랫만에 손수건을 꺼내 자판을 닦아야지.
아무래도 난 좀 어리석은 것 같다.
그리 힘든 일도 아닌데,

왜 밍기적거리고 앉아 훌쩍이고만 있는건지.

생각해 보니까,

2월이 간다는 건 3월이 온다는 얘기다.
아니, 1월이 가버렸다는 얘긴가?
지난 날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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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지 마라...

세실 2012-02-2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양철나무꾼님.....
봄앓이가 시작된 걸까요?
저두 서동욱처럼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바뀌는것 이라고 믿고 싶어요.

하늘바람 2012-02-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셔요 님
제게 힘을 주셨었는데 저도님께 힘을 드려야 하는데
진짜 봄이 되어 황사 바람 불 즈음에 제가 향긋한 봄 바람 보내드릴게요
힘내셔요

2012-02-24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2-2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뮬라크르,,, 의미가 어려울뿐더러 발음도 어렵네요, 종종 '시뮬라르크'랑 혼동하기도 해요 ^^;;
지나간 날이 한순간에 지나가버려서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러한 시간의 경과가 있어야
좋은 일도 온답니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는 날씨 속에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2012-02-2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증 꼬리표를 얼굴에 달고 어슬렁거리고, 하루 한 번 이곳에 들어오지만 아무런 댓글도 써지지 않고, 눈물도 훌쩍, 콧물도 훌쩍, 2월이 갔고 3월이 오는데 1월을 생각하는, 양철님. 왠지 멋지셔요. (힘드신데 죄송..) 여튼 잠을 못 주무신단 말은 늘 걱정스럽습니다. 불면증의 고통을 아니까요..

페크pek0501 2012-02-25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 불면증? 으음~~ 생각이 많고 깊으신 분 같군요.
세상은 그냥 대충 살아야 편히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도 각도를 달리 해서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잖아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릴 주제는 못 되지만...ㅋㅋ 제 삶을 꾸려 가는 것도 힘들어 하는 주제에...ㅋ

아휴, 나나 잘 해, 라고 생각하며 물러납니다. ㅋ 어쨌든 양철나무꾼님 파이팅!!!!!!!!!!!!!!!

잘잘라 2012-02-2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며칠 푹 풀린 날씨 탓이기도 하고
이웃님들 서재에서 불어오는 봄기운 탓도 있고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예요.
(봄 타는 메리포핀스ㅡ.ㅡ;;)

아까 낮에 냉이를 한봉지 사다가 청양고추,풋고추,빨간고추 이렇게 세가지 고추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 먹었어요. 맛이 끝내줬어요.ㅋㅋ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저녁은 드셨나요? 말이나 글은 걸러도 밥은 거르지 마세욧!!!

같은하늘 2012-02-27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주 오랜시간 댓글들과 멀리 지낸걸요.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시간들...
아프지 말고 힘내세요~~

북극곰 2012-02-27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는 일이에요?
나무꾼님 힘내요! ^__^



2012-02-27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혹(不惑 ), 혹은 부록 ( 附錄 )'
                          - 강 윤 후 -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이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전에 '닮은 듯 다른, 다른듯 닮은' 페이퍼 때도 슬쩍 얘기한 거지만...

친구야, 자기랑 나랑은 많이 닮은 듯 하지만 달라.

그걸 개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고, 다른 이름으로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거지만...

나이 마흔을 넘긴 아줌들의 그것은, 좀 거칠게 얘기하면 '고집'쯤 되지 않을까?

 

그렇게 놓고 본다면, 자기랑 나랑은 물과 오일쯤이 아닐까 싶어.

그냥 놓고봤을때는 별반 달라보이지 않지만,

기전이나 성질로 들어가면 하나는 불을 끄고, 다른 하나는 돋우어 아주 큰 차이가 나버리지.

 

물이 오일을 알기 위해서는 오일 가까이 가보아야 하고,

오일 역시 물을 알기 위해서는 물 가까이 가보아야 하겠지만...

이 둘은 기전이나 성질이 완전히 틀린 고로, 번지고 스며 물드는 따윈 꿈도 꿀 수 없겠지.

물과 오일이 서로에게 가까이 간다는 것은 어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거울 삼아 자신이 물임을, 또는 오일임을 자각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자기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 준 적이 별로 없어.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의 그 많은 친구들 중 내 곁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다섯 손가락이 남는다는 말도 했던 것 같아.

난 유리로 만든 병 안에 나를 담아놓고 그걸로 모자라서 마개로 꼭꼭 막아두기도 하고 말야.

근데, 한번씩 술을 먹고 코가 삐뚤어지면 마개 간수를 제대로 못하게 되고...

그럴때마다 한 번씩 나의 내적 자아가 됐든지, 아직 내가 화해를 못했을지도 모르는 '내면아이'가 됐든지,

한번씩 튀어나오게 되고,

그런 걸 자기답게 놓치지 않고 있다가...

내가 힘들어 할때 같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해결책을 고심하고 하는걸 보면...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그걸 자긴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더구나.

 

같은 원을 뱅뱅 도는 지인들의 흔적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점점 더 깊은 진흙 패임을 남기면서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 반복되는 흔적은 점점 밑으로 깊어져, 자연적으로 진흙 담장이 생성되고, 그럼으로써 길에서 벗어나 샛길이나 다른 길, 또는 드넓은 초원으로 들어서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또한 흔적 곁의 진흙 담장으로 인해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려워지고, 내 세상은 오직 좁은 길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길은 날이 갈수록 질척해지고, 그만큼 걷기도 힘들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만, 결국 같은 자리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 됐든...숱하게 많은 고민 중 내가 자기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그건 자기가 내 고민을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친하거나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 자신조차 구체화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말고 할게 없기 때문이야.

 

일례로 (나의 불면증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동네에 나타나진 않지만) 아직도 새벽에 깨어 있을 때가 많아.

몸이 힘들면 잠을 좀 잘 수 있겠지 싶어,

일을 더 열심히 하게되고, 몸을 더 혹사시키게 되고 했었는데...

일을 하면서 몸이 힘들고 괴로운 걸 넘어서,

가진 자들의 부에 일조하고 결탁한다는데서 오는 자괴감으로 마음마저 괴로워져 어쩌지 못하지만,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속물이어서 그런 부가 가져다 주는 편리함을 거부하지도 못하는 것이지.

 

그러니, 이 일이 나의 천직인지를 놓고 수천번, 수만번 고민하고 힘들어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들이...

매사에 결단성있으며 분명하고 똑부러지는 자기가 보기에는 속이 상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

그런데 자기야, 나 자신조차 구체화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자기가 무엇인가 해줄 수 없는 무력감을 절감할 필요는 없어.

가끔 모른척하고 거리를 둔다거나,

나도 모르는 내 "내면아이"를 대신해서 팍팍 화를 낸다거나 하는 건 한번씩 눈감아 줄게.

 

이쯤이면, 눈치 빠른 친구야.

내가 처음 저 시를 들먹인 이유를 알겠지.

요즘은 '세살이면 에고(ego)가 생긴다'잖아.

어떤 환자의 경우에 의사의 처방도 우숩고 먹혀들어가지 않기 일쑤이더라.

자기가 지금 자기의 분야에서 첫발을 내딛어

자기가 아끼는 나에게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의욕에 넘쳐서 라는 걸 알겠지만,

내 개성과 정체성 쯤으로 생각하고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면 안될까?

 

친구야.

그러니 자기가 제시한 그 문제를 자기 방식대로 해결한다면,

자기 입맛에 맞는 순하디 순한 사람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후에도 온전히 내 개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맹숭맹숭한 내가 전처럼 자기와 어울릴 수있고, 얘기가 통할 수 있고, 재미있을까?

 

지금이 최대한 열어보인거야.

그 이상 바란다면, 욕심쟁이라고 불러줄테야.

더 궁금한게 있고, 그래도 꼭 알아야겠고, 그래서 바꿔놔야겠으면...

날 취하게 하여 마개를 열고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수밖에~ㅠ.ㅠ

 

이 물음, 쉬운듯 하면서...답하기 힘들더라.

 

인간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 늘, 누군가를.

인간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 한번 내 안에 들이면 쭈욱~

인간에게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 때론, 냉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인간에 나도 포함됩니까?----> 때때로

 

 

실은, 난  '우울한 편지'의 아래 구절의 마인드를 가장 좋아해.

옛날에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지.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 가요 아는 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

 

 

                쓸쓸한 날에
                           - 강 윤 후 -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들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알려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 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 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打電하는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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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2-21 18:43   좋아요 0 | URL
서로서로 좋은 마음 오래오래 이어가시리라 믿어요~

달사르 2012-02-21 22:17   좋아요 0 | URL
빨간색 질문에 제 대답도 양철나무꾼님과 같네요. 때때로, 라는 대답도 어쩔 땐 감사하게 느낄 때도 있으니 말이죠.

캬..우울한 편지..끝네주네요. 유재하의 익숙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무개 2012-02-22 09:58   좋아요 0 | URL
친구라고 부르고 쓸수 있는 사람의 존재만으로 눈물나게 고마울때도 있더라구요. 무엇을 해주거나 해주지 않거나..그냥 친구 고마워..라고 할수 있는것 만으로도 말입니다. 친구가 그런거라 잖아요.. 내 등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가는자!

2012-02-22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2-22 12:16   좋아요 0 | URL
시가 참 좋고 님의 글도 좋습니다.

친구란 ? - (루이스는 이어서 이런 말도 했다. "친구 사이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정해 놓은 의무에서 자유롭고, 질투하는 일이 없고, 필요한 자격 조건도 없으며, 매우 정신적인 차원에 속한다. 천사들 사이에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다.")<소셜 애니멀> 316쪽.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서 옮겨 봤어요. 친구란 멋지잖아요. ㅋ
 

새벽에 메일 한통을 열어보고 심기일전(心機一轉)의 마음을 먹고 앉아 있다.

다른 곳은 벌써 태양의 기운 가득한 봄인가 본데, 나만 아직 한겨울이었나 보다.

그러고보니 입춘도 지났고, 아들은 봄방학이라는 걸 했고, 백화점 봄맞이 세일에 들어갔고...

그래도 봄인가 보다...고 하기엔 아직 "난" 너무 춥다.(서울 아침 기온 영하8도)

 

그동안 우리 부부는 손발이, 또는 쿵짝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각자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달라서, 

상의없이도 그 분야는 그 사람의 몫이 되곤 했었다.

그 분야를 나눌때 구시대적이고 전근대적인 발상으로 여자 일, 남자 일 따위로 나누거나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근데, 아들 졸업식에서 일을 쳤다.

 

나도 덜렁대지는 않지만, 꼼꼼함으론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남편 덕에...뭘 챙겨본 적이 없다.

취미가 되었든 운동이나 봉사가 되었든,

정기적으로 無價紙를 발행하는 사람의 카메라 가방에 글쎄...카메라는 없고 렌즈만 한가득 들어 있더란 말이다.

남편은 카메라 가방만 들고다니며 잔뜩 폼을 잡고,

정작 사진은 어떤 영화감독이 폼잡고 영화까지 만들었다고 광고하던 그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소위 애들이 말하는 '쪽 팔린다'가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싶더라, ㅋ~.

 

그동안 남편이 잘하는 것, 주특기엔 손을 안대고 살았다.

그래서 청소도 젬병이고(나 앉는 자리만 손으로 쓰윽 문지르고 앉는다.)

남편이 모르는 비밀도 몇가지 갖고 있는데,

내가 납땜기 들고 진공관 앰프 만드는걸 얼마나 좋아하는 줄도,

그 열기에 계란 후라이를 해먹을 정도라는 것도,

대학 방송국 신입생때, 기자재 정리를 하며 얼차려를 제대로 받아 라인 정리의 달인이라는 것도 모를 것이다.

시동생들과 컴 용어로 대화를 나누는게 부러워, 컴활 2급 자격증을 땄는데 그것도 아마 모르지 싶다.

청소는 계속 남편이 잘하도록 놔둘 생각이고,

이제 남편이 모르는 비밀 목록에, 사진 한가지를 더 집어넣어야 하는게 아닌가 심사숙고 중이다.

 

아무리 꼼꼼하고 사진이 좋다고 하더라도,

다 큰 어른이 중딩아들 졸업식이라고 멜랑꼬리해져서 카메라도 안챙기는 걸 보면,

고딩 졸업식땐 무슨 일이 생길지 안봐도 비디오, 줄줄이 청사진이지 싶다.

 

이 동네에도 숨은  고수들이 계신데...

된장님은 책에 일가견이 있으실 뿐 아니라 사진도 글도 이미 프로이시고...

중전, oren, 차좋아 , 마녀고양이의 어머니 등등...은 그냥 내 맘대로 이분들의 사진이 좋다.

 

그렇다면 당장 사진을 배워서 무엇을 찍고 싶은데...?

하고 묻는다면 말이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식으로 멋지게,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없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없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

심지어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도 없다.

ㆍㆍㆍㆍㆍㆍ

학교와 교사 화가들로부터 배운 것은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했다.

결국 나는 타인은 신경 안 쓰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진짜 중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나의 그림을 그렸다."

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실은 내게 메일을 보내준 누군가에게...

흰눈을 한가득 선물하고, 대신 밝은 태양 봄 기운을 넉넉히 얻어오고 싶어서이다.

 

흠~

밝은 태양, 봄기운이라고 하면...

사진처럼 고차원적이고 시간 오래걸리는 거 말고, 단방으로 해결되는 비법이 있긴 한데...

 

아기의 웃음소리.

-->내가 이 나이에? 이건 좀 무리수.

대리만족 시킬 조카가 있긴 한데, 웃음소리를 듣기 위하여 울음소리를 견뎌야 하니 패쓰하고~

 

이게 가장 쉽고 적절할 것 같은데...(난 이걸로 택해야 겠음)

봄 햇살 넉넉히 받고 자란 상추와 각종 쌈에 흰 쌀밥을 얹고, 쌈장 조금, 두툼한 삼겹살 노릇하게 구워 입 크기 만하게 싸서...

입을 한껏 벌리고 소주를 곁들여  '크~'하는 추임새는 필수.

봄동 겉절이가 있으면 쌀밥에 그냥 올려먹어도 그만인데...(추릅~군침 돈다.)

 

무슨 얘길 하다가 여기까지 왔더라~

사진!

그래서 구한 책이 박태희 님의 '사진과 책'이다.

 

 

 

 

 

 

 

 

  사진과 책
  박태희 지음 / 안목 /

  2011년 12월

 

사진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진가 14명의 사진집을 소개하고 사진집에 실린 사진 작품들의  해설과 더불어 삶과 연관된 사진의 본질에 대한 한 사진가의 개인적 사유를 담은 책으로,

2011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1인출판사지원사업' 당선작으로 좀 의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박태희님은 들어가는 말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게 사진공부란 사진책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사진책을 펼치면 꿈속을 걷듯이 현재의 공간과 시간을 벗어난 완전히 다른 세계가 전개되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사진책을 만나는 경우는 살면서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는 딱 고만큼의 확률로 찾아들었다. 담벼락 뒤에 숨어 남몰래 흠모하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것처럼 나는 이런 사진책을 곁에 두고 밀애의 감정에 젖어들곤 했다.ㆍㆍㆍㆍㆍㆍ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서로의 인간성을 공유하려 했고, 도처에서 펼쳐진 켜켜한 삶의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묵상했다. 창조적인 독자는 사진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볼 때마다 새로워지는 감정의 변화들 속에서 고민하고 성장한다.ㆍㆍㆍㆍㆍㆍ진정한 사진은 우리의 시선을 넓고 깊게 만들어 지난한 삶의 과정을 통과하는데 등불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암튼, 사진 책 한권 얼렁뚱땅 봤다고 하여 사진을 잘 찍게 될 것 같지는 않고...

내 시선을 넓고 깊게 만드는데 일조하여,

담벼락 뒤에 숨어 남몰래 흠모는 아니더라도,

태양빛을 넉넉히 나눠 오고 흰눈을 한가득 선물하고픈 마음이 들게는 했다.

 

실은, 요즘 난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을 궁리 중이다.

구차하고 궁색하게 지지부지 설명하느라 애쓰지 않고, 어떻게 내 마음을 전할 수는 없을까?

그걸 또 다른 사진작가 '김아타'는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설명을 한다는 것은 대화에서 실패한 경우다.

 

설명을 한다는 것은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이유를 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자신을 이해시키거나 타인의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화의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다. 대화는 타인으로 인하여 나를 비워내는 행위이며 타他로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행위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행위다. 끝없이 나를 비워내는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 환하고 밝은 세계가 빈 공간으로 들어온다. 그것이 대화의 본질인 새로움이다. 이 주석도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공감과 소통이긴 하지만,

더듬이를 그쪽을 향하여 열어두고,

같은 음역대로 얘기하기 위하여 주파수를 맞추느라 애쓰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어놓았는데 그쪽에서도 똑같은 소통법을 구사하여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 

다시 말해,

'무얼하든 그와 함께라면 소통이고 즐거움이고'에서 '그'를 제외하고,

나 혼자 해서도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을 찾아 반짝거리면서 하다가,

또 자기가 해서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을 반짝거리면서 하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그런 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태희님의 <사진과 책>중,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조지아 오키프'편을 보고 오래오래 황홀해 하였다.

'조지아 오키프'가 직접 고른 51장의 사진과 직접 쓴 서문으로 구성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아흔이었다. 스티글리츠가 세상을 떠난지 30여년이 지난 후였다. 이 책은 사진 책이 만들어진 이래 가장 아름다운 사진집으로 꼽힐 정도로 인쇄와 내용면에서 기념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97년 재발간된 사진집에는 멭,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소장하고 있던 30장의 사진이 부록에 추가되었고 비로소 조지아 오키프 컬렉션의 전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사진은 나의 정열이며 진실에 대한 탐구는 나의 강박관념이다."  -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

 

조지아 오키프 뮤지엄 바로가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야 이미 사진계의 거장이었고,

조지아 오키프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만나서 그를 발판으로 거듭났다고 회자되기도 한다.

 

언젠가 카쉬전에서 '조지아 오키프'를 봤을때도 여운이 오래 남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조지아 오키프'를 모델로 찍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카쉬전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사진을 통해서도 충분히 공감이나 소통 같은 것을 전할 수 있구나, 교감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

말하지 않고도 마음을 충분히 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아직 사진을 시작조차 않고,

고작 사진 책 한권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지만,

말로는 오해나 곡해가 빈번한 세상이지만,

잘만 하면 이런 소박한 페이퍼 하나로도...

'흰눈을 한가득 선물하고, 대신 밝은 태양 봄 기운을 넉넉히 얻어올 수 있겠다' 야무진 꿈을 꾸어 본다.

 

난 개인적으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보다는 그의 사진 속의 조지아 오키프가 더,

조지아 오키프의 사진보다는 그녀의 실물과 그녀의 작품세계가 더, 좋지만...그 얘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해야 할 것 같다.

 

여지껏 어렵게 한 얘기를 김아타의 그것으로 옮겨 보면 이렇다.

정체성正體性이란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외항선이나 군함 같은 큰 배와 항공기에는 자이로gyro라는 것이 있다.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키고 자이로는 수평과 평형성을 유지하게 한다. 선박이나 항공기의 기울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는 장치가 자이로인데, 특히 야간 운항하는 군용 제트기에 자이로가 없으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자이로는 언제나 자신의 중심을 먼저 잡아야 배나 항공기의 중심을 확인할 수 있다. 약 20년 전 일본 도예의 전설로 불리는 14대 심수관이 서울에서 세미나를 할 때이다. 물론 그의 조상이 조선 사람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가 세미나에서 정체성에 대하여 재미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 심수관이 어린 그에게 바늘을 가져오게 하여 물레 위에 있는 흙 한가운데에다 꽂고 물레를 돌렸다. "바늘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느냐?" 흙 한가운데에서 돌고 있는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어린 그가 대답했다. "움직이지 않는데요."

아들의 답에 아버지 심수관이 말했다.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찾아 가거라." 그말을 들은 어린 그는 나이 마흔이 가까울 무렵에 가서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비로소 그는 아버지의 아버지로 이어져오던 도공 심수관의 반열에 오른다.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의 물리적인 현상이 자이로이며, 정신적인 현상이 아이덴티티다. 정체성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성숙해 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떤 경우에도 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부르는 것은 인간의 나이 마흔이면 정체성을 찾을 연륜이며, 역설적으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 데 4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체성과 나이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된다고 해서 누구나 정체성이 확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동중정動中靜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인다'는 정중동靜中動과 같은 말이다. 동중정이 아이덴티티의 물리적인 현상이라면, 정중동은 아이덴티티의 정신적인 현상이다.

 

하루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다.

아니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이제 일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순간 순간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함을 찾기로 하였다.

이 일이 나의 평생 천직이라는 생각 대신,

일을 하면서 하늘이 주신 소임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에 감사하기로 한다.

 

그러고 나니, 창밖은 아직 추운 겨울이어도...

봄 햇살 넉넉히 받고 자란 상추와 각종 쌈에 흰 쌀밥을 얹고, 쌈장 조금, 두툼한 삼겹살 노릇하게 구워 입 크기 만하게 싸서 먹는 동안만큼은...태양의 기운 가득한 봄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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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2-16 18:24   좋아요 0 | URL
사진은 작가들이 찍지 않아요.
사진을 좋아하며 찍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붙이는 이름이 작가예요.

졸업사진은 즐거이 찍으셨겠지요~

알케 2012-02-16 19:34   좋아요 0 | URL
이젠 사진까지 가시는군요. 전직 주말 사진가로서 저의 사진 잠언서는 존 버거 할배의 책들이죠. 테크닉은 김주원의 책들 좋아요. 저도 나름 오디오필인데 진공관 납땜은 ㄷ ㄷ재즈도 많으셔요

cyrus 2012-02-16 21:59   좋아요 0 | URL
요즘에는 카메라에 푹 빠지셨네요.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언젠가 따뜻한 봄 기운이 가득찬 시기가 찾아오면 멋진 봄 풍경 사진 부탁 드려도 될까요? ^^;;

순오기 2012-02-17 06:11   좋아요 0 | URL
이젠 배추와 봄동을 확실히 구별하시나요?^^
배추가 겨울 난다고 봄동이 된다는 분도 있어서...ㅋㅋ
사진까지 넘보는 양철나무꾼님의 영역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요.

2012-02-17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2-02-17 10:47   좋아요 0 | URL
순간 박희태로 읽은 1인입니다. ㅎㅎ. 저도 애들이 태어난 다음에 찍기 시작했는데 친구가 말리더군요. 그냥 똑딱이 써라. DSLR 카메라 살거면 사람만 찍어라. 절대 풍경 찍지 마라. 풍경을 찍더라도 새는 찍지 마라. 패가 망신의 지름길이다....그 친구도 풍경까지만 찍고 있습니다. ㅎㅎ

2012-02-17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12-02-17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사진 참 좋아하는데, 요즘은 아이가 자라고 엄마가 우울모드라 사진찍는일이 줄어들었지만 날이 풀리면 아이 손잡고 어디라도 다니려고요,,,,우리 옆지기가 가지고 싶어하는 진공관 앰프 친구네 집에 갔더니 있더라구요 이사 가면서 아저씨가 구입한거라는데 옆지기가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하늘바람 2012-02-17 18:20   좋아요 0 | URL
뜨게질도 고수신데 사진까지 재주가 넘 많으시면 샘이 많아져요.
아드님 졸업이었네요 축하드려요 맨입 멘트만 날려서 넘 죄송한 마음뿐~
ㅠㅠ

프레이야 2012-02-18 18:36   좋아요 0 | URL
하나뿐인 귀한 아들 졸업 축하해요^^
님도 고생하셨어요. 어려운 시간을 함께 건너가는 것이죠, 특히 사춘기 아이 키우는 일은.

달사르 2012-02-21 22:22   좋아요 0 | URL
ㅎㅎ 이 포스팅은 진작에 읽고 박태희 님 책 주문 들어갔습니다요. 박태희 님 이전 책 <사막의 꽃>을 무척 감동깊게 읽었거든요. 그래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ㅎ

양철나무꾼님의 비밀목록이 추가되는 걸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는 포스팅입니닷! >.<

2012-02-24 22:30   좋아요 0 | URL
우와 왠지 양철님과 봄기운 느껴지는 삼겹살 쌈과 소주 1잔, 하고 싶어지는 글인데요!
저도 천직! 하지 말고, 이 순간의 소임! 하고,,
또 봄! 하지 말고, 이 먹을 것 속의 봄볕! 하면서 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