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몰락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4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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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 'Fall of Giants'를 우리말로 '거인들의 몰락'으로 번역해 놓았는데,

2권까지 다읽은 지금 드는 생각은 '제(대)국들의 멸망'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중에 거인이라 불리울 정도로 굵직한 거물들도 있긴 하지만,

몰락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살아남아 성장하는 사람도 있어서, 

제목으로 삼을만큼 일반화시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싶은 반면,

Giant의 의미를 나라로 확장시키게 되면,

하나 같이 강대국이라 불리우던 나라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어떻게 쇠락하고 멸망하여 가는지 하는 과정을 보는데 무리가 없는듯 여겨져서 이다.

 

암튼 한세기 전의 일들인데,

오늘날의 현실이 묘하게 오버랩되어서,

읽는 내내 분노를 삭히고 열을 식히느라고,

책을 제법 오래 붙들고 있었다.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를 '제국'이라고 한단다.

내가 Giant를 제국이라고 해석한 것은 영국은 국왕이, 러시아는 짜르가 다스린 나라였지만,

그런 나라들 말고도 오스트리아나 독일, 프랑스 또한 그런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식민지를 거느리고 지배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런 강대한 제국들을 멸망시킨 요인은 편견과 선입견, 독선, 망상 등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실제 힘을 가늠할 수도 없으면서,

헛된 상상이나 자존심을 내세워,

사람들을 오지로 내몰고 있는데,

 

자본주의 국가라서 돈 앞에 평등하다면 할말이 없지만,

자신이 선택하여 태어날 수도 없는 신분 체계나 남녀 성별 따위로 그리한다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고,

바로 그런 요인들이 제국들을 쇠락시킨 요인이지 싶다.

 

"이 나라 모든 남자에게는 원칙적으로 병역의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할지 말지 결정을 내릴 때는 모두가 참여하지 못합니다."ㆍㆍㆍㆍㆍㆍ"오만 명의 사상자 가운데 이만 명은 죽었습니다."ㆍㆍㆍㆍㆍㆍ

"누가 잘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전쟁을 벌이자는 결정을 내릴 때 참여 못한 사람들이 전쟁터에 나가 학살당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겁니다."ㆍㆍㆍㆍㆍㆍ"또다시 우리가 전쟁에 나갈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모든 사람의 찬성 없이는 안 될 겁니다."(27쪽)

 

역사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다소 복잡하지만, 적당히 통속적이어서 잘 읽힌다.

하지만 그런 통속적인 설정마저도 하나의 장치이지, 그냥 재미를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여자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는데,

피츠허버트 백작의 동생 '모드'와 빌리 윌리엄스의 누나 '에설'이다.

러시아에서 온 피츠허버트 백작의 아내 비 같은 경우는 다소 소극적이고 전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반해,

모드와 에설은 그런 의미에서 남녀 평등과 계급철폐를 부르짖게 되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나온다.

물론 모드와 에설 사이에도 신분 차이 등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나중에 에설과 결혼하게 되는 버니의 경우,

'직관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이지적이었다.(132)' 라고 묘사될 정도의 인물인데도,

자신이 추대될 줄 알았던 자리에 아내 에설이 추대되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세기 전의 일이라면 이마저도 파격적일 수 있겠다~--;

 

지난 토머스 하아디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를 읽으면서 영국사를 공부해서 영국에 대해서는 좀 나은데,

러시아가 지뢰밭이었다, 하나도 아는게 없었다.

 

책 속에서 뜨문 뜨문 레닌을 만나게 됐는데, 매력적이었다.

폼만 잡고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는 책속의 수많은 거물들의 탁상공론보다는,

다혈질이고 드세더라도 무엇인가 실행하려는 레닌 같은 인물이 훨씬 멋지게 느껴졌다.

 

그런데, 레닌은 나같은 소음인이 봐야만 매력적인 것이지 실상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켄폴릿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사혁명위원회로 이름을 바꾼 투쟁위원회는 트로츠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에 압도당했다. 그는 큰 코에 이마가 넓고 테 없는 안경 너머로 툭 튀어나온 눈이 노려보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잘생기지 않은 남자였지만,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레닌이 소리를 지르고 약자를 괴롭힐 때 트로츠키는 설득하고 달랬다. 그리고리는 트로츠키가 레닌만큼이나 억세지만 그걸 더 잘 숨기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360쪽)

암튼 레닌을 자세히 알고싶어 '러시아 혁명사'라도 읽어 보고 싶게 만드는데,

그전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아는게 먼저이지 싶다가도,

읽다보면 현실과 비교되어 눈물 날 것만 같다.

편안한 만족감이 그리고리의 온몸을 휘감았다. 전선에 있을 때 그가 꿈꾸던 광경이었다. 작은 방, 음식이 있는 식탁, 아기, 카타리나. ㆍㆍㆍㆍㆍㆍ" 이런 게 얻기 힘들면 안 되는데."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나 나나 멀쩡하고 튼튼한 몸으로 열심히 일하잖아요. 내가 원하는 건 이게 다예요. 방, 먹을 것, 하루 일이 끝나면 쉬는 것. 매일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해요."(51쪽)

책 속에서 한세기 전의 일을 묘사한 부분인데 오늘날의 현실이 오버랩 되어 어쩌지 못하겠는 걸 보면 말이다.

음식이 있는 식탁, 아기, 하루 일이 끝나면 쉬는 것...따위는 얻기 힘들면 안 되는데,

청년실업이니 조기명퇴니 해서 인구론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신조어가 생겨나는 요즘 우리의 세태를 보면,

역사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세상은 영원한 도돌인가 보다.

 

역사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세상은 영원히 되풀이 되는 것이라면,

제국을 쇠락시킨 바로 그 요인으로 오늘날의 우리를 몰락시킬 것이니,

명심하고 경계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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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몰락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4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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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에선가 일본의 안보법안과 관련, '평화주의를 버리고 항시 전쟁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한번도 평화주의를 수호한적이 없지 않나, 항상 전쟁을 도발한 호전적인 나라가 아니었나 싶다.

 

항상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뿐,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도처에서 수시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띠지에 '20세기 3부작, 그 웅장한 시작'이라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고,

제목도 '거인들의 몰락'이라고 해서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재밌는걸 보면,

역시 켄폴릿은 거장이다.

 

내가 켄폴릿을 좋아하는 것은 내용이 재밌기만 해서는 아니다.

관점이나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고,

다방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좀 많아서 좀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라는걸 알게 되면 그 웅장함이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책은 웨일스 탄광촌에 사는 빌리가 열세살이 되자 아버지처럼 탄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어느날 안전사고를 겪게 되고,

그 사고 수습의 선봉에 서게 된다.

1권의 비교적 앞부분에 빌리가 많은 사람 앞에서 처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척 감동적이다.

탄광에서 안전 사고를 직접 겪고, 그 사고 수습의 선봉에 섰던 빌리에게는, 

아버지가 예배에서 호흡보조장치와 양방향 환기장치에 대한 법률을 어긴 탄광 경영진의 부정을 용서할 수 있도록 넓은 아량을 달라고 기도하는걸 보고, 그저 치유를 구하기만 하는 건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듣기 좋은 말과 성경 구절을 들먹이며 마치 설교라도 하는 양 기도를 올리지만,

그는 늘 진심에서 우러난 단순한 기도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며 예배가 끝날 무렵 마음속에서 말과 문장을 구체화 (118쪽)하여 사람들에게 전하는 식으로 기도하게 된다.

이게 계기가 되어, 빌리는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게 되나 보다.

 "더 굳센 신앙심을 달라고 기도하는 편이 좋았을 거다. 그럼 머리로 이해하지 않더라도 믿게 되니까."(122쪽)

머리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믿게 되는 굳센 신앙심이란,

맹목적이란 말과 바꾸어 쓸 수 있겠고,

절대적인 위안과도 바꾸어 쓸 수 있겠으나,

열세살난 아들에게 강요하기엔 좀 가혹하지 않나 싶다.

"사람에게는 감정이란 게 있어요, 아버지." 거침없는 말투였다. "아버지는 항상 그걸 깜박 잊으시죠."

아버지는 할말을 잃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이제 그만해!"

에설은 빌리를 보았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뿌옜지만 빌리는 놀라고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에설은 용기를 얻었다. 코를 훌쩍이고 눈가를 손등으로 훔친 다음 말했다. "아버지와 노조, 안전 수칙, 성경 말씀 모두 중요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아버지가 사람들 감정까지 없앨 순 없어요. 저도 언젠가 사회주의 덕분에 노동자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필요해요."(124쪽)

빌리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빌리의 누나 에설의 성격을 한번에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다.

 

굳센 신앙심, 맹목적, 절대적인 위안은 동의어로,

이건 책이나 글을 읽으면서 때때로 직면하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책이나 글을 읽다보면 어려운 말로 적어놔 폼나기는 하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아 먹을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삶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미사여구를 쓰거나 책 속의 구절을 인용했을 경우,

어떤 형식을 갖추어서 폼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말로 풀어 설명하는 과정에서 늘어지게 마련이다.

어느 경우 더 쉽게 이해될 수 있고, 그리하여 더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단정짓지는 어렵다.

그러니까, 머리와 마음의 관계 또한 그렇게 유연하게 접근하고 이해되어야 하겠다.

빌리는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여자들이 탄광에서 남편을 잃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단 말인가? 남편도 없는데 집까지 없는 신세가 되어야 한다는 건가? "회사가 이럴 수 있어요, 아버지?" 누추한 잿빛 거리를 따라 탄광 쪽으로 향하며 빌리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우리가 그래도 된다고 용인할 때만. 노동자는 지배계급보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힘이 있어. 지배계급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기대고 있지.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짓고 옷을 만드는 건 우리야. 우리가 없으면 그들은 죽어버릴걸. 우리의 용인 없이 지배계급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항상 그걸 명심해라."ㆍㆍㆍㆍㆍㆍ"하지만 그래서 폭발이 일어나거나 광부들이 죽은 건 아니지." "폭발이 일어나고 광부들이 죽은 게 위반사항 때문이라고 입증하지 못했을 뿐이죠."(176~177쪽)

또 한군데, 빌리의 아버지가 도덕 교과서적으로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웠던 부분이다.

노동자가 지배계급보다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힘이 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책을 읽다보면 경과와 결과가 나오지만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하겠다.

 

"한 달 전 자살 기도를 했어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정말이니까. 스스로가 너무 하찮게 느껴지면서 내가 죽는다 한들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그때 당신이 현관에 나타났어요. 당신은 정말 다정하고 정중하고 사려 깊었죠. 내게 사는 게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어요. 당신은 나를 소중히 여겨주었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지만 캐롤라인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키스했을 때 당신은 행복해했어요.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니, 나도 아주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생각 덕분에 계속 살아갈 힘을 얻었어요. 당신이 내 목숨을 살렸어요, 거스. 신의 은총이 함께하길 빌어요."

거스는 거의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럼 나한테는 뭐가 남죠?"

"추억이죠. 남은 추억을 소중히 간직해줬으면 해요. 나도 그럴 테니."(221~222쪽)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어쩜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면으로는,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확인'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나를 가치있게 생각하고,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그리하여 내가 아주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면,

사람은, 특히 여자는 그 추억만을 간직하면서도 남은 여생을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아직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내가 이렇게 리뷰를 쓰는 까닭은 켄폴릿을 믿기 때문이라는 게 하나이고,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제목이 암시하는 '거인들의 몰락'에 우리나라의 요즘 현실이 겹쳐져서 앞날을 예견하겠어서...씁쓸해서라고 해야겠다.

(거인들도 고모양 고꼴로 몰락하니, 예비를 하라고 까진 못하겠다~--;)

 

평상시 책을 만드느라고 베어넘겨진 나무를 생각해서 별점에 과한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엄지손가락이 두개뿐인게 못내 아쉬워서,

엄지발가락까지 꼬물거리게 만든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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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9-21 17:40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 보는 이름의 작가인데 양철나무꾼님 리뷰를 읽다보니 마구마구 관심이 생기네요~~
제 기도도 듣기에만 그럴듯하건 아닌지 반성도 하게 되구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5-10-05 16:23   좋아요 0 | URL
켄폴릿은 저도 우연히 알게 된 작가인데, 정말 좋아요.
누구든지 붙잡고 막 추천하고 싶어진달까요~^^

cyrus 2015-09-23 03:35   좋아요 0 | URL
소설 속 배경이 웨일스라고 하기에 아버지의 모습이 영국탄광노동조합원의 성격과 비슷한 것 같아요. 탄광노동조합이 마거릿 대처 정권에 맞서서 파업투쟁을 벌인 적이 있을 정도로 과거에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컸었어요.

양철나무꾼 2015-10-05 16:2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 책 속에선 제 1차 세계대전이 주무대인데,
언제 어디서인지,를 막론하고 앞장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뒤따르는 무리도 있게 마련인가 봐요.

근데, 이 책 속 아버지는 너무 반듯하고 고지식해서 좀 불편해요~^^

2015-09-26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5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5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리 없는 빛의 노래
유병찬 지음 / 만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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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북플에서 유레카 님이 이벤트 하는 것을 보았었다.

그땐 북 데이터베이스 등록도 안 되었었는데, 등록이 되고 바로 주문했는데 이제서야 받아보았다.

눈먼 적립금이 있는, 다른 인터넷 서점 한곳을 검색해 보았더니 그곳은 배송이 더 더디다. 하루라도 빨리 읽고 싶은 마음 말고는 읽을 책이 산처럼 쌓여 있어서 별반 아쉬울 것이 없는 나로서는, 당일 배송이라는 인터넷 서점들의 광고는 대형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상술인가 보다~--;

뭐, 이벤트를 하는 걸 보고도 고고히 책을 샀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유레카 님이랑 완전 친하거나 아님 오지랖 넓은 아줌이거나 사진에 무한 관심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냥 내가 사서 읽고 싶었다.

참 구차한 구실이랄 수 있는데, '유레카'라는 닉이 내가 사용하는 이메일 계정의 의미랑 같아서 동질감을 느꼈달까?

아르키메데스가 외쳤던 그 '유레카'가 영어로는 'I found'니까 'ifound~'로 시작하는 이메일계정을 오랫동안 사용해서,

유레카를 닉으로 쓰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실은 가끔 그의 서재에 들러 읽는 글들이 어렵지 않아서,(오지랖 넓은 아줌으로서, ㅋ~.)

훈수 두기 좋았달까?

아니, 읽고 무슨 말인지 알아 먹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라딘 서재 마실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가 사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다'라고 한다지만,

기준을 아는 사람이 경계를 구별해 낼 수 있고,

바닥을 쳐본자만이 그 바닥을 치고 다시 날아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있고,

그런 의미에서 소리와 빛은 서로 상충되는 공감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가수 김정호의 '작은새' 얘기가,

멋내지 않고 김정호를 가수라고 부를 수 있는 그의 글이 수수하다.

 

글과 사진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걸,

넘치거나 한쪽으로 이울지 않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노래도 듣고, 사진도 보자.

사진은 사진만 가지고는 별 쓸모가 없다. 다 그런 거다.(31쪽) 

 

그래도,

'우울도 예술이야', '빛에게 안길 수 있다면' 따위는 오랜 세월을 지극히 관조하면서 극도로 응축시킨 혜안이 엿보이는건 어쩔 수 없다.

 

모든 글들이 다 좋다고 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론,  '산내면에는 별다방이 있다'와 115쪽의 사진이,

118쪽 사진과 119쪽 명당 자리가 제일 좋았다.

 

가을이다.

우리네 인생도 가을이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건,

사랑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말이다.

변하지 않는 건 없지만,

그래도 변치 않고 지켜야 할 기본이란게 있다고 본다.

변해야 하는 것과 변치 않아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잘 조율하고 질서를 유지하면서 사는거, 그게 인생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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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0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09-18 17:43   좋아요 0 | URL
It`s my pleasure~^^

[그장소] 2015-09-10 11:57   좋아요 2 | URL
오...저는 사실..이젠 사진은 도구라고 생각을 해서요.다..아무리 멋져도 그려보고픈 대상에 불과해..져 버리거든요. 그런데 린다 매카트니 사진을 보고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말하는것이 있다는 것.
예술사진 예술가 많겠지만
얘기거릴 만들어 주는 사진은 다
좋은 사진이란 생각을 해요.


양철나무꾼 2015-09-18 17:46   좋아요 1 | URL
린다 매카트니가 누군지 몰라~(우흑, 땀나라~``) 네이버 도움을 받았습니다~^^
전, 남편이 사진을 열쉬미 찍다보니 관심을 잘 안 갖게 되더라구요.
분업과 협동의 묘를 잘 아는 가족인지라, ㅋ~.
암튼, 그 장소 님 프로필 가득한 사진들을 보면서...보통 내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장소] 2015-09-18 18:14   좋아요 0 | URL
에 공~ 땀은 제가 삐질 ㅡㅡ;; 흘려야 할 판 입니다. 사진하시는 분을 곁지기로 두고 계신분께..전. 눈만 달고 볼줄만알면 그나마 다행인 처자..입니다..넙죽~

cyrus 2015-09-10 16:07   좋아요 2 | URL
노래와 사진이 서로 어울려져서 생기는 아름다움. 그래서 책의 제목이 ‘빛의 노래’인 것 같아요. ^^

양철나무꾼 2015-09-18 17:50   좋아요 1 | URL
저는 그림이나 사진, 이딴 예술적인 거랑 관련하여선...이상하게 님 생각이 많이 나는거 있죠, ㅋ~.
암튼 르네마그리트의 많고 많은 작품 중 저 중절모의 뒷모습, 의 포스 작렬도 그렇고 말이죠.
책도 좋지만, 님의 제목 해석도 멋진걸요~^^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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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쯤으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잘 살펴보면 내 몫의 다름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건 아주 미세하고 미미한 변화이지만 순환이 만들어 내는 원은 눈곱만큼씩이라도 커지기 마련이다.

 또 사람들 사는게 천차만별이고,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과 개천에서 태어난 사람은 태생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사람들 지지고 볶고 사는 모습은 고만고만한 것이 다 거기서 거기다.
 프랙탈 이론의 창시자는 자연과 우주의 모든 것을 프랙탈로 보았다. 난 여기서 우리네 삶 속에도 이런 것들이 숨어 있음을 읽어내고는 스스로 대견해 했는데, 장강명과 이 책 속의 남자는 이걸 '패턴'이라고 얘기하고, 패턴을 두세개로 단순화시키면, 마침내 어떤 외부 자극에도 비슷한 반응(9쪽)을 보이기에 이른다고 한다.

  패턴을 돈다는 것은 궤도를 움직인다는 것이고, 패턴을 지워가다 보면 두세 개만 남고 마침내 하나도 안 남게 되었다는 것은 궤도를 이탈한다는 것일게다. '처음'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겠고 '시작'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이렇게 조목조목 의미를 되짚는 것은 기준 뿐만 아니라 방향 또한, 나로 '비롯함이냐, 말미암음이냐'처럼 엄청나게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구별이기 때문이다. 

  남자여자에게 '처음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한 이 말은 '굉장히 인간적인 것'을 가장한 인간적이지 못한 인간 말살 행위이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자신의 잘못 앞에서는 '처음'이라는 잣대나 기준을 들이대고 너그러워진다. 나로 비롯함은 처음이고 몰라서라던 관대함일 수 있지만, 상대방으로 방향성이  바뀌는 순간 말미암음이 돠어 지나침으로 돌변한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개념을 버려야 해'라는 말은 내게 선입견이나 편견을 배제하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말言과 칼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기준을 정한 후의 방향성과 시간적 경과를 사이에 두고, 말을 한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이, 칼을 휘두른 사람과 그 휘두른 칼에 맞는 사람이, 정반대 선상에 있다는 것을 종종 간과하게 된다. 우리는 비롯함에 대해서는 시작의 서툼이라는 이유로 관대한 경향이 있지만, 말미암음이랑 관련하여선 숙련된 것의 편안함만을 얘기하지 달관이 만들어낸 매너리즘이나 지나침(또는 과함)으로 인한 실수를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비롯함이건 말미암음이건 간에, 기준점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와 시간만큼 경과한 것일 뿐이다. 꼭 칼을 휘둘러야만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고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데도 자신의 상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게도 되고, 환상통처럼 잘려져 나가 이미 없는 부위의 통증을 가지고 소리지르기도 한다.

  진실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함께 경험하고 깨우쳐 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이유이고, 누군가에게는 책을 쓰는, 누군가에겐 칼을 벼리는 이유일 것이다. 세상은 같은 패턴의 무한반복이지만,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그럴 것이라고 믿으며 살고 싶다. 우리가 흔히 자연이라고 부르는 우주원리의 근본은 변하지 않지만, 자기유사성과 순환성을 가지고 눈곱만큼씩 변하는 모순된 구조이기도 해야 희망적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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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05 00:53   좋아요 0 | URL
멋진 글입니다.잘 읽고 가요! 프렉탈이 나오는 군요! ^^

양철나무꾼 2015-09-18 17:52   좋아요 1 | URL
멋진 글이라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곳에서 간혹 엿보게 되는 님의 문학적 내공이랑 감수성은 보통이 아니신듯 하던데,
그런 분한테 칭찬을 받으니 기쁜 걸요~^^

[그장소] 2015-09-18 18:08   좋아요 0 | URL
그..감수성~!!^^ 장군~!?
감수성을 사수하고 지키고 있는 ㅋㅎ.. 장군임을..알아봐 주시다니..제가 더 기쁩니다. ^^ (언제적 유머 인지..그춍?) 칭찬에 어후~ 저야말로후덜덜...
양철나무꾼 님에 전 곁가지일 뿐입니다. 저는 솔직히 내실없음..속이 텅빈 문학 ㅡ문학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ㅡ그냥 읽기쟁이 일뿐..저 위의 글같이 좀 일목이 요연하게 보고 정리해 쓰는 능력 이라도 있었음..싶은걸요..완전 과찬에 손발 다리 몸 통이 어쩔 줄 모릅니다. (이렇게 칭찬토스로 밤을 꼬박 지새우..응?!^^ 아하하)
 
[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을 선악이나 정오(正誤)처럼 이분법으로만 나누어야 할까?

예를 들어 '비가 내리는 것과 그 비가 내리다가 그치는 것이 잠시 멈춘 시간' 따윈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침묵하지 않고 말은 하되 섞지는 않는다'정도가 될까?

이 책은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황량하고 황폐하지만,

오아시스를 품고 있어서 아름다운 사막 같은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다 읽고난 지금은,

1권 중반부를 읽을때까지만 해도 뻥이라고 생각했던 호킹지수에 대한 신뢰는 어느정도 회복됐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줄거리를 따라가며 읽어도,

중후반에 이르면 스토리라인이 뛰어나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

워너브라더스사에서 판권을 확보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책을 읽은 사람 중에 몇 퍼센트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도나타트는 '비밀의 계절'때도 '천재작가'라는 소리를 들었었다지만,

이번 작품도 명성에 걸맞게 다분히 중의적으로 읽힌다.

겉으로는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라는 그림을 모티브로,

미술관테러에서 엄마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소년의 성장과정을 그리고 있는듯 보이지만,

중의적으로는 아인슈타인도 설명하려다가 실패한 이론이라는,

자연과 우주의 근원을 물질과 힘에 있다고 믿는 '통일장이론'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담고 있다.

 

통일장이론과 비교되는 초끈이론이 있는데,

수학적으로 완벽할지라도 실험을 통한 실제적인 끈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이라기 보다는 수학적 이론이나 불완전한 이론, 철학적 차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인 운명이나 신 따위도,

보는 '관점'이나 '기준'을 강조하는 등 '우연'을 가장하는 듯 보이지만,

그 마저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철학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ㆍㆍㆍㆍㆍㆍ나는 좀 지쳤어. 내 방이랑 우리 개, 내 침대가 그리웠지. 그때 아빠가 행사장에서 나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 달을 보라고 했어. 아빠가 말했지. '집이 그리우면 하늘을 봐. 어딜 가든 달은 똑같으니까.' 그래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베스 이모네에 같을 때, 아니 뉴욕에 사는 지금도, 보름달을 보면 꼭 아빠가 나한테 말하는 것 같아. 뒤돌아보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어디든 내가 있는 곳이 집이라고 말이야." 엄마가 내 코에 입 맞췄다. "아니. 네가 있는 곳이 내 집이야, 우리 강아지. 나라는 지구의 중심은 너야."(1권, 344쪽)

꺼벙한 안경을 쓴게 해리포터와 닮았다고 하여 '포터'라고도 불리우는 '시오'가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이 말은 '관점'이나 '기준'을 강조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관점'이나 '기준'은 우리가 어찌 증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나와 파브리티우스에게 무작위로 닥친 재난은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보지 못했던 똑같은 지점에서, 즉 우연이라는 점에서 만났다. 아빠는 그것을 빅뱅이라고 불렀는데, 비꼬거나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의 힘을 존중하며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몇 년 동안 연구해도 인과관계를 절대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나로 합쳐지는 것들, 여러개로 나뉘는 걸들, 시간 왜곡, 엄마가 미술관 앞에 서 있는데 시간이 흔들리고 빛이 이상해지는 것, 광대한 빛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불확실성. 모든 것을 바꿀 수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는 길 잃은 확률.(1권, 413쪽)

과학적인 용어처럼 들리는 '빅뱅'은 '우연'이라는 용어로 바꿀 수 있겠고,

'우연'이 반복되면 '신' 또는 '운명'이 되는데,

그걸 몇 년 동안 연구해도 인과관계를 절대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며,

'시간왜곡' 또는 '불확실성'이라고 하며,

바꿀 수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는 '확률'이라는 수학적인 용어를 과학적인 용어인양 사용하지만 과학용어는 아니다.

 

"왜냐면 웰티는 말하자면 광장기호증이었거든. 사람을 정말 좋아하고 시장을 정말 좋아했지. 시장의 그 끊임없는 움직임을 좋아했어. 거래, 상품, 대화, 흥정, 전부 말이야.ㆍㆍㆍㆍㆍㆍ웰티는 골동품상으로서 재능이 있었단다, 누구에게 어떤 물건이 맞는지 잘 알았지. ㆍㆍㆍㆍㆍㆍ학생이 물건을 보고 감탄하며 구경하려고 들어오면 웰티는 조그맣고 비싸지 않은 판화를 내놓는 식이었어. 모두가 행복했지. 웰티는 모두가 이 가게에 들어와서 크고 중요한 물건을 살 형편은 아니라는 걸 잘 알았어. 중매를 하는 것, 맞는 집을 찾아주는 게 중요했지."ㆍㆍㆍㆍㆍㆍ"웰티는 자기한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좋은 판매원이 될 수 있는 거라고 항상 말했는데, 나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동정심이 가는 절뚝발이.' 딴 속셈이 없어. 항상 외부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는 사람인 거지."

"아, 웰티는 어디서도 절대 외부인이 아니었어."(1권, 538쪽)

 

물건을 치켜세우면서 팔 때는 (한발 물러나서 속이기 쉬운 고객이 덫으로 걸어 들어오게 놔둘 때와 반대로)고객을 평가하여 그들이 투사하고 싶은 이미지를, 즉 실제 모습(잘난 척하는 실내장식가나 뉴저지의 주부, 남들 눈을 의식하는 동성애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을 파악하는 것에 승부가 달려 있었다. 아주 훌륭해 보이는 사람도 교묘한 속임수일 뿐이었고, 다들 무대 세트를 꾸미고 있었다. 비결은 내 앞에 서있는 자신감 없는 사람이 아니라 투사된 환상 속의 인물 - 감식가, 안식이 있고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약간 머뭇거리면서 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나는 곧 옷 입는 법(보수와 유행의 경계)을 배우고 공손함과 오만함의 정도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까다로운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어떤 유형의 고객이든 골동품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가정하고 얼른 비위를 맞추다가 딱 적절한 순간에 얼른 흥미를 잃은 척하거나 한발 물러나는 것이었다.(2권, 44쪽)

골동품상을 하는 '웰티'와 '시오'를 묘사하는 대목인데, 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비교가 된다.

웰티는 고객들을 향하여 '관점'과 '기준'의 잣대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딴 속셈이 없는 마음.

반면 시오는 고객을 평가하여 그들의 유형을 나누었고, 주관적으로 가정하고 비위를 맞추다가 어긋나기도 한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고나 할까?

그러니  '관점'과 '기준'의 잣대에 따라 딴 마음, 속셈과 동의어가 될 수도 있는 셈이고,

'관점'과 '기준'의 잣대라는 것은 일정하게 유지하고 볼 일이다.

영혼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와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안개 낀 어딘가에서 다른 영혼들 사이를 떠다니는 것 같았다.(2권, 134쪽)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편의 책들이 겹쳐졌는데,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그 하나였고,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데이워치'나이트워치''더스크워치' 시리즈가 또 하나였다.

 

'관점'이나 '기준'의 잣대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멋지구리한 말로 탈바꿈한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으면 말이야."

ㆍㆍㆍㆍㆍㆍ

"그 여자를 사랑하는구나. 너무 많이는 아닌 것 같고."

"왜 그렇게 말해?"

"미친 듯이 화를 내지도 않고 난리를 피우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네 손으로 그 여자 목을 조르겠다고 펄펄 뛰지 않잖아! 그건 네 영혼이 그 여자의 영혼과 너무 깊이 얽혀 있지 않다는 뜻이거든. 좋은 거야. 내 경험을 생각해보면, 너무 사랑하는 사람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아. 네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널 죽일 사람이거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여자는 자기 삶이 있고 너에게도 네 삶을 갖게 해주는 여자야."(2권, 237쪽)

그동안 '너무'나 '아주' 따위의 수식어가 사용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사랑 또한 일방적인 '너무, 아주, 많이'는 '집요함'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ㆍㆍㆍㆍㆍㆍ나한테 먹을 것도 주고, 이야기도 나누고, 시간도 같이 보내고, 자기 집에 들여보내주고, 옷도 주고ㆍㆍㆍㆍㆍㆍ. 넌 아빠를 정말 싫어했지만 너희 아빠는 어떤 면에서는 좋은 사람이었어."

ㆍㆍㆍㆍㆍㆍ기백이 대단했어. 그래서 정말 힘드셨던 거야! 너희 아빠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줬어.ㆍㆍㆍㆍㆍㆍ"(2권, 441쪽)

 

그리고 '부모에게서 자식으로의' 한방향으로의 맹목적인 그것 또한,

나 또한 부모 보다는 자식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바라본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내경험으로는 선이 틀린 적도 많아. 선과 악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야.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는 존재할 수 없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면서 내가 아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넌 -판단에 둘러싸여서 항상 과거를 후회학, 자신을 저주하고, 자신을 탓하고, '만약에 이랬다면.''만약에 저랬다면.'묻지.'삶은 잔인해.' '그냥 죽어으면 더 좋았을걸 그랬어.' 음 - 이렇게 생각해봐. 신이 볼 때 너의 모든 행동과 선택이 선하든 악하든 아무 차이가 없다면? 패턴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아니, 아니야-기다려봐-이건 고민해볼 만한 문제야.우리의 악함과 실수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고 우리가 선에 다가가게 만든다면? 만약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길을 통해서만 그곳에 도달 할 수 있다면?"(2권, 444쪽)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때로는 세상을 선악이나 정오(正誤)처럼 이분법으로 보는 데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분법으로 보는 세상마저도 '관점'이나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경우의 수로 나뉠 수 있다.

 

흔한 예로 '내가 아는 최선'이라는 것마저도,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에 따라서 결과가 천양지차이다.

 

저 그림 속의 '황금방울새'도 그렇다.

발목에 매단 쇠고리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족쇄가 되기도 할 것이고,

편안하고 안락한 새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할테니까 말이다.

 

시오의 그 무엇도 부럽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보리스 같은 친구를 두었다는 사실이 내내 부러웠고,

이 책의 호킹지수 98.5%에 일조한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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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8-27 22:04   좋아요 1 | URL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 저는 참 좋아라하고 봤는데...^^ 그 워치 시리즈 3개 ..흥미로웠어요. 악과선이 태어나는 것을 마법사들이 지켜보는 것도..어스름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도.. 이 황금 방울새 열어놓고 얼른 나가지지는 않는 다는...ㅡㅡ;(빨리 읽는 편인데 요즘은 게으름이 포텐 터진 게 틀림없어! 그러는 중! 입니다~) 건강하게 8월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양철나무꾼 2015-08-28 08:59   좋아요 2 | URL
`세르게이 루키야넨코`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던데, 반갑습니다, 와락~((__))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또 다른 영역이 있다는 발상은, 그 시리즈를 읽은 후여서 자유로웠다고 할까요~^^
1권 중반부만 넘기면, 속도가 붙으실겁니다~!!!

마녀고양이 2015-08-28 15:16   좋아요 1 | URL
책보다는 자기 리뷰가 더 좋다눈~
참으로 꾸준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네. 나는
성격이 하두 끈기가 없다보니 한동안 열나게 쓰던 리뷰는 거의 손 놓았어.

말을 하되 섞지는 않는다, 그거 슬픈 관계지... 아무 상관 없는 사이인거네. ^^

[그장소] 2015-08-30 23:49   좋아요 1 | URL
루키야넨코~♥ 좋지않아요?^^전 이런 차원이 화기애애~한 스토리가 좋아요!^^저도 양처나무꾼님과 동지애가 모락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