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동네서점의 유쾌한 반란
백창화.김병록 지음 / 남해의봄날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였나?

이곳에 알라딘 중고서점 채용공고가 떴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내가 사는 동네여서 그런가 한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동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겠구나 싶은 것도 잠시,

이게 마냥 반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가본 중고서점은 종로점, 신촌점 두 곳인데,

그곳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이동하는 번화가였고,

다른 서점이라고 해도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서점이었지만,

이곳은 사람이 거주하고 터를 일구고 사는 동네, 즉 지역사회이다.

중간크기의 지역서점이 있지만,

이 동네를 오랫동안 지키고 명맥을 유지하는건 아무래도 동네 작은 서점과 헌책방이 있다.

그 중 한 곳은 내가 중학생 때부터 지나다니면서 봤던 곳이니 근 30년은 됐을 거다.

30년간 지역에 터를 닦아온 영세 서점의 기반을 흔들면서 대형서점이 거주 지역으로 깊숙히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왠지 자본주의의 횡포 같아서 씁쓸하다.

 

혹자는 자본주의의 논리라는게 원래 그런게 아니겠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형서점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가지고 생겨나고 성행하는 작은 서점이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뭐라고 할게 아니라,

동네에 그렇게 산재하는 서점들이 영업전략을 일신하고 매너리즘을 극복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점이라는 곳은 종이책을 매개로 하는 아날로그적인 곳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런 곳이라면 논리나 이성을 내세우기보다는, 정을 매개로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좀 과격하다.

 

서점 같은 업종은 더군다나 만인에게 열린 공간이다. 서점에 들어온 이들이 모두 책을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책을 살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공짜로 책을 보기 위해 입장한다고 해도 아무런 제지가 없을뿐더러 그런 행위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곳, 서점이란 이렇게 맘 편한 곳이라는 게 우리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다. 약속 시간 전 잠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들르는 곳, 친구랑 만날 곳이 저당치 않을 때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는 곳, 그런 곳이 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 시골 마을 작은 책방에서 서점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 서점이란, 그곳에 들어가면 반드시 책을 한 권이라도 사들고 나와야 하는 곳. 그곳에서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었거나 친구와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다면 더더욱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책 구매 행위로 치러야만 하는 곳.

  왜? 지금 모든 서점은 아사 직적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골목 안 작은 서점들은 이미 굶어 죽은 지 오래고, 이젠,ㄴ 대형서점, 중형서점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위기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서점들이 있어주어서 고마웠던 이들, 이왕이면 내 집 옆에 술집이 있기 보다는 서점이 있었으면 하는 이들이라면 서점에서 지갑을 열어달라는 뜻이다. 서점은 더 이상 고객의 주머니를 뒤져서라도 돈을 찾아내야 할 지경에 다다른 배고픈 좀비 상태가 되어버렸다. 무슨 수를 써서든 한 권의 책이라도 더 팔아서 수명을 연장해야 하는 중증 환자들인 것이다.(39쪽)

 

과격하고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 책을 주의깊게 읽다보면 이들이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하는 주거 지역이나 동네 골목, 지방의 산골마을에 있는 서점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 모색해야할 방법이라고 하여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대형서점과 작은 서점이 공존하며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함은 물론이다.

 

왜냐하면 서점이나 종이책이란 것은 아직까지는 정을 매개로 하며,

지식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감성도 같이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은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 불을 피우면 따뜻해'진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걸 누군가는 정이라고 할테고,

누군가는 지식뿐만 아니라 감성을 어우르는 것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힘, '품위'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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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9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9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타락시아 2015-12-29 18:11   좋아요 1 | URL
책방에 가면 책 한권씩은 사서 나와야죠. 다만, 서점 들어갔을 때 뭐 찾으세요는 안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

양철나무꾼 2015-12-29 19:34   좋아요 0 | URL
근데 지역사회의 작은 서점들은 뭘 찾는지 물을 수밖에 없는 체계인것 같아요. 골고루 갖춰져 있지도 않고...
저는 책방에 가서 책 한권씩 사서 나오는건 글쎄요~--;
원하거나 관심이 있는 책이 있으면 사는거고,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거죠.
읽지도 않거니 관심 없는 분야의 책을 체면에 물려서 사들고 나오는건 베어넘겨진 나무가 아깝잖아요~--;

아타락시아 2015-12-29 22:17   좋아요 1 | URL
음. 체면일수도 있겠네요. 전 관심있는 책이 없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정 없으면 잡지 한권 사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네책방 아끼기라고 혼자 착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동네책방도 이제는 별로 없어요. 쩝..

서니데이 2015-12-30 21:56   좋아요 0 | URL
이제는 동네 서점이 많이 없어지기도 했고, 새로 생기더라도 주로 학생들 참고서가 많더라구요,
양철나무꾼님, 편안하고 좋은밤 되세요^^

2015-12-31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옛날에 나는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여기서 방점은 '살아 있다'는 것에 찍혀야 한다.

보거나 만질 수 없어도,

이 땅 위 하늘 아래 어딘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보거나 만질 수 없는 걸,' 안전거리를 확보했다'로 치환시켜 겸허히 받아들이려 했었다.

 

그러니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은,

감정을 공유하거나 공감하는데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내 자신을 세뇌시켜왔었다.

 

그런데 나이는 공평하게 먹어서,

내가 한 살, 또 한살 먹으면, 상대방도 한 살, 또 한살 먹게 마련이다.

나이를 먹으며 주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아픈 곳도 한 곳, 두 곳 생겨난다.

곁에 있으면 이마라도 한번 짚어주고, 배라도 한번 쓸어주고, 아니 손이라도 가만히 잡아줄 수 있을텐데,

떨어져 있어 마음이 번거로워지는 걸 에방할 수 있는...안전거리를 확보하는덴 성공했지만,

아프다는데 어떻게도 손쓸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어, 좌절한다.

'아프지 마라, 아프면 안된다'는 공허한 소리만 반복한다.

'롤랑 바르트'가 어떤 의미로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아프다.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직ㆍ간접 경험을 하게 되고,

경험한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만큼 식견도 넓어졌다.

한컷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고 짱짱했던 내가 느슨해지고 둥글어졌다.

이젠 포기하고 양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함부로 욕심내면 안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대학생 때 이모에게서 걸려온 전회를 받았다. 이모는 다짜고짜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부분을 읽어주었다. 내겐 딱히 와 닿는 부분이 없는 한 구절이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내게 이모가 말했다.

"죽이지 않냐? 세익스피어는 마흔이 넘어서 다시 읽으니까 진짜 좋네. 구절구절이 너무 좋아서 다 필사할 지경이야. 너는 어려서 모르겠지. 근데 진짜 ㆍㆍㆍㆍㆍㆍ!"

나는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세익스피어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그건 읽은 것일까? 마흔이 넘어 내게도 셰익스피어의 시간이 올까? 간절히 오기를 바랄 뿐이다.(32쪽)

김민철의 이모는 마흔이 넘으니 세익스피어가 다시 읽힌다고 하는데,

나에게 고전은,

한 번쯤 읽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거나,

어디에선가 줄거리나 내용만 주워 듣고는 읽었다고 착각을 하거나,

읽지를 않았으니 다시 읽을게 없다.

게다가 그동안 앞만 보고 내달려와서,

고전이 아니더라도 읽은 책을 묶혀두었다 다시 읽을 생각을 모했다.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시 읽고 필사할 수 있는 책을 갖고 싶다.

   결혼 후, 대구 엄마 집에 내려가서 엄마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치고, 남편은 엄마의 악보를 넘겨주고, 나는 아예 건넌방에 누워 그 소리를 듣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의 위대한 음악 선생님 두 명이 그들끼리 음악으로 교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먼 방에서 혼자 감격하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즐길 줄 아니까. 그 순간에 그 음악에 뛰어들 줄 아니까. 그 정도면 넘치도록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훌륭한 선생님 두 분을 옆에 모시고도 학생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고? 어쩔 수 없다. 그게 나다.(105쪽)

 

그리고 나도 김민철, 그녀처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즐길 줄 아니까. 그 순간에 그 음악에 뛰어들 줄 아니까. 그 정도면 넘치도록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라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한해의 끝에서 돌아보고 정리하고 새해를 계획해보자면,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이 말을 하려고 넘 멀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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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2015-12-29 01:20   좋아요 1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양철나무꾼 2015-12-29 01:27   좋아요 1 | URL
넋두리인데 좋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__)

하늘바람 2015-12-29 01:25   좋아요 0 | URL
언니
서재 왔는데 언니 글 있어서 반가웠어여

양철나무꾼 2015-12-29 01:30   좋아요 1 | URL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하남요?

누군가 아픈데,
아픈걸 해결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주변의 그들에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싶어 자괴감에 빠졌습니다여~ㅠ.ㅠ

서니데이 2015-12-29 01:3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도 아프지 마시고 건강한 연말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5-12-29 01:31   좋아요 3 | URL
네, 서니데이 남 댁내에도 두루 평안하시길~!!!
어여, 주무셔요~ㅅ!

AgalmA 2015-12-29 02:07   좋아요 1 | URL
요즘 베토벤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데, 베토벤이 열렬히 좋아한 작가 중에 하나가 셰익스피어^^...곡을 쓰기도 했고.

양철나무꾼 2015-12-29 14:59   좋아요 0 | URL
베토벤의 굿 프렌은 살리에르 아니었나요?
아니다, 모짜르트의 굿 프렌이다, ㅋ~.

그랬군요, 베토벤이 셰잌 아저씨를 좋아했군요.
덕분에 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꾸벅~(__)

AgalmA 2015-12-30 04:16   좋아요 0 | URL
살리에르는 베토벤이 음악작법을 잠깐 배웠던 선생님이었을 뿐 이후 친분은 없었어요^^

yureka01 2015-12-29 08:52   좋아요 1 | URL
하기야 면역력을 높이는 노오력도 없이 건강이 그냥 주어 지는 것은 유전뿐네요..
나이들수록 운동하고..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노오력...단지 노오력이 노오력으로 끝나지 않고
조금 즐기면..더 건강해지니까요.그런데 너무 안하기도 하고..그렇다고 너무 과잉이기도 하고..
뭐든 적당한 시간이라야 하는데..참 어렵..이 적적성의 노오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은데..
저도 사실 잘 못합니다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5-12-29 15:05   좋아요 1 | URL
언젠가 헬스를 하신다는 댓글을 본 것도 같은데...
무늬만 헬스셨남여?

근데 나이 들어 운동은 조금 즐기면 더 건강해지는 그런게 아니라죠.
필수불가결한거 라는데,
이 뚱뚱한 엉덩이를 어쩔거냐구요, 글쎄~(,.)

단발머리 2015-12-29 12:51   좋아요 1 | URL
저도 뛰어들고 싶어요.
음악에도 뛰어들어서 치다 만 소나타들도 마저 치고 싶고,
책들도.... 책들도 마구마구 읽고 싶네요.

고전이 다시 읽히는 시간이네요, 저한테도 그런 시간이예요.
읽기만 하면 된다는 ㅎㅎㅎ
행복한 연말 되세요,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5-12-29 15:19   좋아요 1 | URL
저도요, 저도요.
음악에도 뛰어들고, 책에도 뛰어들고 하고 싶은데,
음반을 사고, 책들을 사 모으면...다 충족될거라고 착각하고 산다는~ㅠ.ㅠ

근데, 요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다보면,
예전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시야가 확 넓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돼요.
그 재미에 자꾸만 클래식을 찾게 된다는...ㅋ~.

님도 행복한 하루하루 되셔요~^^

해피북 2015-12-29 13:4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책들이 있는거 같아요. 이십대에 읽었을때는 뭐 이런게 다있노 했는데 삼십대에 읽어보니 아! 감탄사가 나오는 책이 말이죠. 하지만 이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게 슬프더라고요. 지극히 개인적일수밖에 없는 감정이라서요ㅜㅜ
그리고 양철나무꾼님을 올해 만난 중반까지 글을 자주 접할 수 있다가 후반기부터 드문드문 만나게 된게 참 아쉬웠지만 드물게 만날수록 더 곰삭은 맛이 나는 글이었어요. 깊이 생각하게 되고 느끼게 되는 글들 말이죠. 그래서 참 좋습니다. 올 한해 마무리 잘하시구 내년을 부탁드려요 으흐흐^~^

양철나무꾼 2015-12-29 15:22   좋아요 0 | URL
이 짧은 댓글에서도...전 님을 무한 부러워 한답니다.
삼십대셨군요~!
좋을 때예요, 즐기셔요~^^

제가 젓갈은 못 먹는데, 곰삭다고 해주셔서 좋아요.
그렇게 나이 먹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님 글 참 맛깔나거덩여~^^

2015-12-30 0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병통치약 2016-01-03 21:21   좋아요 1 | URL
복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아니라 복 많이 지으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네요. 이제는 받을 나이가 아니라 지을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두고 두고 새기겠습니다.

만병통치약 2016-01-03 21:25   좋아요 0 | URL
(사실 저 새해인사글에 단 글인데 마우스 잘못 움직였는지 이 글에 남았네요 ^^)
 

1.

보사노바풍의 음악이 좋다.

사시사철 즐겨듣는 음악은 윤상의 '바람에게'이고,

겨울 시즌을 앞두고는 김광진의 '눈이 와요'를 듣는다.

노래 잘하는 '김범수'가 리메이크 하기도 했지만,

난 김광진의 목소리로 듣는 '눈이 와요'가 더 좋다. 

올해는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위해 기우제(祈雨祭) 아니 祈雪祭용 음악으로 아껴두었는데,

그러다가 까먹고 지나갔다~--;

 

올해 들은 크리스마스용 음악은 Bing Crosby & Martha Mears가 1942년에 부른 White Christmas다.

몇 번 되돌려 듣다보니,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영화가 연상됐다.

 

 

2.

(엊저녁의 럭키문)

 

'마이 페어 레이디'가 연상된 까닭은 이 노래 전반에 걸쳐 Bing Crosby가 Martha Mears를 리드하고 있어서 였는데,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피그말리온 효과'가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이다.

 

어찌 보면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여겨지지만,

관점을 살짝 비틀어보면 이 '간절히 원하는' 게 상호적이지 않을 때는 지독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버나드쇼의 '피그말리온 효과'까지 얘기하려면 너무 거슬러 올라가게 되니, 마이 페어 레이디의 꽃파는 처자만 놓고 얘기해보자.

 

꽃파는 처자는 신사의 노력에 부응하여 상류층의 억양과 발음을 완벽하게 익히게 되는데,

(원작자인 버나드 쇼는 사회주의자였고,) 그런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 주려고 한 것은,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는 교육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반면 꽃파는 처자는 귀부인은 어떻게 행동하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하느냐(어떤 대접을 받느냐)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작품 전반에 걸쳐 항변하고 있다.

 

3.

며칠 전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김도균을 보았는데,

예능프로를 같이 하고 있는,

상대파트너 양금석이 전화속에서 '김도균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 뒤,

'거기까진 좋은데 혼자 오래 살다 보니 옆에 사람을 챙기기보다는 자기가 우선이다.'라고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양금석이 챙김을 받아야 하는데, 김도균이 제대로 못챙겨줘서 아쉬웠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 해서...왠지 씁쓸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상대방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비춰 위치를 자리매김하며, 성장하는 동물이다.

 

'우린 대화가 잘 통한다. 그래서 좋은 거지 그 외에 감정은 없다. '라고 하는데,

상대가 이성이고 아니고, 를 떠나서,

아무래도 영혼의 찝찌름한 냄새랄까, 감성의 리트머스 파장이 비슷하면 동질감을 느끼게 되나 보다.

양금석은 그 외에 감정은 없다고 하는데,

난 대화가 잘 통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4.

 

 

 

 

 

 

 

 

 흐린 세상 맑은 말
 정민 지음 / 해냄 /

 2015년 12월

 

 

정민의 '흐린 세상 맑은 말'을 읽고 있다.

저자는 겉표지에서 마음은 멀리 달아나고 내 속에 괴물이 날뛴다고 하면서,

명청 지식인들의 말을 처방전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1997년에 다른 이름으로 출간되었던 걸 재출간했단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선가 봤었던 구절 같았고,

그래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절판된 지 오래된 것을 이번 참에 체재를 다시 흔들어 평설을 고쳐쓰고 편집도 대폭 바꿔 면모를 일신했다.(6쪽)'는데,

난 책이 거듭 태어나는건 형식이나 외형이 아니라, 내용이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체재를 흔들고 평설을 고쳐쓰고 편집도 대폭 바꿔 면모를 일신했다'고 해서 새로운 탄생이라고 명함을 내밀긴 좀 민망하지 않았을까?

 

돈 주고 산게 아깝지만 내칠 수는 없으니,

책을 앞뒤로 이렇게 저렇게 마구 넘기면서, 글씨연습이나 해야겠다.

 

한참을 '흐린세상 맑은 날'로 잘못 읽고 읊조리다 보니...

그러다보니 '흐린세상 맑은 말'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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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2-26 23:53   좋아요 0 | URL
오늘 눈이 조금 왔던것 같은데, 낮에는 다 녹았어요, 어제 저녁엔 슈퍼문이 뜬다고 해서 내다 보았는데, 저런 달이 떴는데도 구름이 많아서 흐린 하늘만 봤어요, 달이 반짝반짝빛나는 느낌이예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잘 이해하고 잘 맞춰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일것 같고요,
양철나무꾼님, 크리스마스의 짧은 연휴도 하루 남았어요,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2015-12-26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5-12-27 12:56   좋아요 0 | URL
흐린 세상에 맑은 말이 많이 필요한 세상이네.
기쁜 일이 많은 연말 되시게~

cyrus 2015-12-27 18:15   좋아요 0 | URL
정민 교수의 신작이 예전에 나왔던 절판본을 새로 펴낸 책이라길래 궁금해서 책 정보를 확인했어요. 그 절판본이 《마음을 비우는 지혜》였군요. 이 책은 구입 안해도 되겠어요. 그래도 구판과 한 번 비교해보고 싶어져요.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시선 37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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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이를 먹은 것은 헛먹은 것이고,

요즘에서야 제대로 옹골차게 나이를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의 기능이 서서히 퇴화를 하고,

그에 비례해서 포기할 것이 하나 둘 생겨나는 걸 온몸과 마음으로 실감하는 요즘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포물선을 그리며 서서히, 가 아니라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뚝 떨어지는 계단의 형태를 취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다른 모든 것들에는 무방비 상태일지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삶의 또다른 이면으로 받아 들이고 대비하려고 마음 먹었었고,

늘 죽음을 직시하려 노력했었다.

 

죽음을 직시하는 순간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체념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흔히 빛을 얘기할때,

어둠이 있어야 대조하여 빛이 난다고 얘기한다지만,

난 그 어둠과 빛의 중간의 어스름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이건...어둠과 빛이 아니라,

맑은 날을 기준으로 비가 오는 것에 대해서 얘기할 때 좀더 이미지를 객관화하기 쉬울텐데,

비가 내리는 것과 그 비가 내리다가 잠시 멈춘 그 순간이나 찰나 같은 경우 말이다.

 

그걸 책 뒷표지에서 함민복 님은 이렇게 얘기한다.

손택수 시인의 시는 일단 명징해서 좋다. 무슨 문제풀이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듯 난해함을 섬기는 작금의 유행 시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탁월한 중매쟁이다. 그는 늘 무엇과 무엇 사이에 관절 튼튼한 접속사로 존재한다. 그를 만나면 세계는 벽을 벗고 경계 이전의 알몸을 허한다. 서로 영통하는 길들을 내어놓는다.

'명징'이라고 하면 어려운 말처럼 들리니까,

경계나 나눔을 명확하게 구별한다는...뭐 그런 말 대신,

번짐이나 스며듬 따위의,

경계를 허무는,

경계없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경계'라는 말을 구체화시켜야만 경계를 허물 수도 있고,

그 '경계'가 생기기 이전의 '경계 (따윈) 없음'을 형상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수묵의 사랑

 

수묵은 번진다

너와 나를 이으며,

누군들 수묵의 생을 살고 싶지 않을까만

번짐에는 망설임이 있다

주저함이 있다

네가 곧 내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

경계를 넘어가면서도 수묵은

숫저운 성격, 물과 몸을 섞던

첫마음 그대로 저를 풀어헤치긴 하였으나

이대로 굳어질 순 없지

설렘을 잃어버릴 순 없지

부끄러움을 잃지 않고 희부연히 가릴 줄 아는,

그로부터 아득함이 생겼다면 어떨까

아주 와서도 여전히 오고 있는 빛깔,

한 몸이 되어서도 까마득

먹향을 품은 그대로 술렁이고 있는

수묵은 번진다 더듬

더듬 몇백년째 네게로

가고 있는 중이다

암튼,

목련전차에서도 그랬고,

삶에서 자연스레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예비하게 하는 그를 나와 같은 나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극점'을 통하여 그는,

그동안 '기준과 방향'이 있어야 비롯함과 말미함을 얘기할 수 있다고 했던 나의 생각 또한,

선입견이고 편견이라고 통렬히 깨부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극점

 

극점엔 동서남북이 없다

오직 마주한 방향만이 있을 뿐

눈 폭풍 몰아치는 극점이

극점에만 있을까

둘 데 없는 시선이

돋보기 속 빛처럼

골똘해지는 가로수

우듬지 끝

팔랑,

잎 하나 떨어진다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는 도로변

매미 울음소리도 따갑게 이글거리는 정오

내가 한점으로 가장 단순해진

극점

거기선 네가

지워진 모든 방향이다

 

이 '극점'이라는 말은 삶의 밑바닥을 맛봐야 날아오를 수 있다는 의미로 내게 읽혔다.

때문에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처럼 무의미한 말이 없는 것이고,

내가 있고 네가 있어야,

다시 말해 '기준점과 동시에 방향'이 주어졌을때 극점을 논할 수 있는 것이고,

바닥인 동시에 꼭대기이고,

끝이면서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일게다.

 

이렇게 읽어야,

함민복 님이 얘기하셨듯이 그의 그것들이 명징함이 된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기'를 보게되면 그는 명징함으로 내게 마법을 건다.

이건 햇살이 눈부셔 실눈 뜨고 바라보는 듯 보이지만,

실은 '떠도는 먼지들이 빛나'는 형상을 바라보기 위해 햇살을 향해 실눈 뜨고 바라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ㆍㆍㆍㆍㆍ

  나는 기억한다 타이어 바퀴에 착 감기던 땅의 굴곡을, 끔틀거리던 말잔등처럼 숨결을 따라 오르내리던 리듬을

  그 리듬을 어깨 위에 싣기 위해선 적당히 바람을 뺄 줄 아는 것도 내 쓸쓸한 나이가 가르쳐준 기술이다 너무 빵빵하면 엉덩이가 아파오므로, 길바닥과 나 사이에 부질없는 긴장을 불러오기도 하므로

  땅과 바퀴 사이애, 그리고 바퀴와 나 아이에 가장 알맞은 쿠션을 위해서는 부푸는 어느 지점에서 펌프질을 그만 멈추어야 한다

  짓눌려 있던 타이어 거죽이 툭툭 꺾은 무릎을 펴고 일어선다 발굽이 땅을 짚는가 싶던니 장딴지에 제법 힘이 실리면서 시무룩하게 내려앉아 있던 인장이 올라가는 그때,

  안장 위의 하늘도 덩달아 들어올려졌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기' 중 '일부')

'차심'도 좋았고,

'쥐는 것이 아니라 벌어지는 것이,/너무 벌어지기보단 살짝 오므려지는 것이/꽃에게 가는 길인 걸 알겠다'라고 읊는 '손바닥을 파다'도 좋았다.

'물수제비 잘 뜨는 법'은 너무 황홀하여 '떠도는 먼지들'의 형태가 아니어도 내내 반짝거릴 듯 하다, 좋다.

 

물수제비 잘 뜨는 법

 

1

물결의 미끄러움에 볼을 부볐다 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미끈한 돌을 찾아 한나절쯤을 순전히

길바닥만 보고 돌아다녀본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 손바닥에 폭 감싸인 돌을 만지작만지작

체온과 맥박소리를 돌에게 고스란히 전달해본 적이 있는가

돌을 쥘 땐 꽃잎을 감싸쥐듯, 돌을 날릴 땐

나뭇가지가 꽃잎을 놓아주듯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한다

바람 한점 없는데 나뭇가지가 툭, 자신을 흔들 때의 느낌으로

손목 스냅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 그건

이별의 끝에서 돌과 함께 날아갈 채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스침에도 몰입이 있어, 딱

성냥을 긋듯이

단번에 한 점을향해 화락

타들어가는 정신,

 

2

그러나 처음 물에 닿은 돌을 튕겨올린 건 내가 아니라 수면이다 나의 일은 수면을 깨우는 것으로 족하다 그다음 돌을 튕겨올리는 건 물결들이 알아서 할 일, 앞물결의 설렘이 뒷물결까지 이어지도록 그냥 내버려둘 일

 

똑똑똑, 가능한 한 긴 노크 속에

나른하게 퍼져 있던 수면을 바짝 잡아당기면서

 

스침에도 몰입이 있단다.

난 이 시집과의 스침을 몰입으로 간직하고 싶다.

그리곤 앞물결의 설렘이 뒷물결까지 이어지도록,

앞 시집과 이 시집의 설렘을,

다음 시집가지 주욱~ 연결시켜 갈 수 있도록,

내게 다가온 이 스침을 감사하며 온몸과 마음의 감관을 열고 받아들이고 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맥낚시' 한구절을 또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물의 속내를 놓치지 않게 하는 힘은 제약과 불편이란다.

어찌보면 퇴영이라 하겠으나, 최고의 손맛은 생략에서 온다, 고 퉁치는 이 시인을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아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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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2-24 00:09   좋아요 1 | URL
문장도 아름답다는 표현 이럴때 쓰게 되나 봅니다.
타이어 바퀴에 땅의 굴곡이 착 감긴다는 표현..ㅎㅎㅎ
물수재비가 글쎄 물의 미끄러운,그리고 스침의 몰입 !~~~

와우...

양철나무꾼 2015-12-26 23:22   좋아요 1 | URL
님의 감탄사도 멋진걸요.
이 시의 옵션(플러스 알파)라는 생각이 듭니다.
럭키하고 해피한 크리스마스 되셨나요?^^

서니데이 2015-12-25 15:4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5-12-26 23:25   좋아요 1 | URL
나이 한살 더 먹는다는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나이가 됐는데,
내가 나이를 먹어야 님 같은 자라나는 새싹도 같이 풍성해질 수 있겠죠?
메리 베리 해피 크리스마스 주간 보내셔요~ㅅ!
 
홀가분한 삶 - 그들은 어떻게 일과 생활, 집까지 정리했나?
이시카와 리에 지음, 김윤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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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춥다길래 옷을 껴입었더니,

허리께는 배둘레햄인데다가,

몸이 둔해서 굴러다니게 생겼다.

 

얼마 안 있으면 돌아올 성탄절 맞이 산타할아버지와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자위 하는데,

실상 치킨집 앞의 그 할아버지랑도 닮았고,

내가 매일 만나게 되는 할아버지 ㆍ할머니들의 몸매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추위에 대한 반응은 어르신들이 더 민감하신듯,

할머니 한분이 몸의 두배는 되는 부피에다가 무게도 제법 나가는 털모자가 달린 가죽 외투를 입고 오셨는데,

얼핏 보면 입으신게 아니라, 끌고 짊어지고 다니는 듯 힘겨워 보였다.

 

"이래뵈도 작년에 L백화점에서 이백만환을 넘게 주고 산 옷이여~.

 이래 저래 무겁긴한데,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옷을 새로 장만하겠어."

하며 쓸쓸하게 웃으시는데,

꽃이 져야 열매 맺을 줄 알기 때문에 꽃잎을 떨어뜨리는 꽃송이인듯 여겨져서 마음 한켠이 쓰라렸다.

 

나는 그런 마음을 들킬세라,

"맞아요, 엄마.

 요즘은 옷이 떨어지거나 해지지도 않더라고...싫증나서 못 입지."

라며 헤프게 웃으면서 설레발을 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나에겐 못 버리는 병이 있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소유와 집착, 무소유, 정리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 프리랜서작자가 기획한 것이라서 그런가,

일본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라서 우리의 그것과는 다른 정서적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내게는 낯설기만 했다.

 

집 안에 돌아가신 분의 넋을 기리고 공양하기 위한 불단을 만드는 것도 그랬고,

이젠 우리에게도 보편화되고 있지만, 부모님이나 어른들을 요양원에 모시는 것도 그랬다.

화이트 수납이 깔끔해서 좁은 집을 넓게 보인다는 얘긴 들어봤지만, 이런 화이트 수납은 병적이지 싶다.

색깔옷이나 색깔 침구들을 감춰둔다는 것도 그랬지만, 손님이 올때는 텔레비전도 감춰둔다니 말이다.

 

집은 편하게 쉴 수 있는게 최우선이 아닐까?

효율적인 수납이 필요한 것도 적재적소에 물건을 배치해서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내게,

보이기 위한 수납으로도 부족해 손님이 올때를 대비해서 텔레비전까지 감추는 수납이라니 아이러니 컬 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외엔,

연령대 별로 삶을 홀가분하게 하기 위해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준비하여야 할지,

홀가분한 삶이라는 것이,

자신의 소유를 홀쭉하게 하는 것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쭉 벌여 놓았던 것들을 정리하고 홀쭉하게 하되,

나다운 삶을 모색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걸 어떤 이는,

긴장하며 버틸 때와 느슨하게 풀어줄 때를 구분하여 균형을 잡는다. 시간에 쫒기는 생활을 호되게 경험해본 덕분에 시간의 앞에 서서 '쫒기기 전에 리드한다'는 감각을 깨달은 셈이다.(43쪽)

라고 하고 있고,

누군가는,

 "굳이 말하자면 번창하지 않으면서도 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목표예요."(68쪽)

라고 하며,

다른 누군가는,

'평범하게 밥 먹으며 살아가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일이 생기면 '평범하게 밥 먹으며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먼지 생각한다(95쪽)

고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절벽 아래에 있는 통나무 가게를 여는 날은 금, 토, 일 사흘 뿐이다. 다른 날은 작품을 만드는데 몰두한다. 종종 두 사람의 개인전을 열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행복을 안겨주었다.(126쪽)

라고 하고 있다.

 

내가 거의 매일 만나는, 만성통증을 앓아 오신 어르신들은 주사 한 대, 침 한 방으로 단숨에 낫게 해달라고들 하신다.

당신들을 향하여 내가 녹음기 리플레이 버튼을 누르듯 하는 말이 있다.

"더 아프지 않으면 낫는거지, 어케 주사 한대, 침 한방으로 나아요?

 주사 한대, 침 한방으로 낫게 해준다는 사람들 다 거짓말쟁이다~ㅅ!"

 

이 책의 제목처럼 홀가분한 삶이란,

그동안 전투하듯 앞만 보며 치달려 왔다면,

이제 좀 느슨하게 내려놓고 홀가분해져도 좋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 방법은 각자 나름대로 모색해 볼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인 것이지,

어떤 롤모델이나 모범답안 따위는 존재할 수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누군가의 말처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은 앞날을 크게 생각하지 않아요."(67쪽)

에 격하게 동의하며,

지금 이순간을 재밌게, 바로 여기 이곳이 천국이라는 느낌으로, 내 옆에 또는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홀가분한 삶'을 꿈꾸는 나는 온천까지는 아니어도, 사우나와 찜질방을 좋아한다.

받아드리기에 따라 그걸 충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하는게 '홀가분한 삶'의 취지에 맞는것 같다.

 

이렇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난 너무 많은 것들에 샘내고 집착하는 욕심쟁이 인지도 모르겠다.

 

맨날 말로만 불끈 할 것이 아니라,  책을 들이는 것을 좀 줄여야 겠고,

여기 저기서 주는 공짜 사은품 따위도 필요없으면 받지 말아야 겠다.

필요한 물건들도 편리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로 대체할 수 있으면 구입에 신중해야 겠다.

 

하지만 이 모두를 차치하고,

일단은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다움을 회복하는게 '홀가분한 삶'의 최우선 요소일 것이다.

이젠 그렇게 줄이고 비워 홀쭉하게 살고 싶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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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12-19 20:58   좋아요 2 | URL
싸이(psy)의 dream, 노래도 가사도 너무 좋다~^^



내게 있을 땐 옆에 있는 게
그게 그렇게 소중함을 소중한지 잊는다
결국 잃는다
결국 실은 나
그렇고 그저 그런 인간이었다
감사한 걸 감사할 줄 모르는
간사한 남사스러운 사람
행복 찾아 왜 먼 산만 바라봤을까

보이는 그대로 믿기 싫어서
믿고 싶은 대로 보기 시작해
외로워지는 지름길인데
괴로워지는 기름칠인데
꿈을 잃거나 이루거나
그 다음 날을 다시 살아가잖아
걱정하지마 이 모든 게 꿈이야

이 꿈에서 깨어날 때
그 모든 게 그대로 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해 여전했으면 해
그때는 영원했으면 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
지난날처럼 다시 행복을 위해
노래 부르며 그 노래 들으며
인생이란 꿈에서 깨어날 때

믿기 어려운 일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원래 혼자 왔다가 혼자 살다가
혼자 떠나가는 외로운 길
외로움이 굳은살이 되어
그만큼 내게 피와 살이 되어
담담해져 가 점점 변해 가
무덤덤해져 나
어른이 되어가

갈 사람은 간다
또 산 사람은 산다
신이 내게 주신 가장 잔인한 감정
그 익숙함에 눈물 말라간다
해가 지면 아쉬워하다
달이 뜨자마자 아름답구나
기쁘면 꿈이 아니길 바라는 나
슬프면 꿈이길 바라는 나

이 꿈에서 깨어날 때
그 모든 게 그대로 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해 여전했으면 해
그때는 영원했으면 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
지난날처럼 다시 행복을 위해
노래 부르며 그 노래 들으며
인생이란 꿈에서 깨어날 때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짧은 순간인 것을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짧은 순간인 것을


서니데이 2015-12-19 21:39   좋아요 0 | URL
연말이라서 그런지, 정리나 간소화에 대한 책이 많이 보여요.
저는 주말에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어보려고요.
어쩌면 이 책과 생각이 많은 부분 비슷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마녀고양이 2015-12-20 16:08   좋아요 1 | URL
나 허리 또 삐긋했오.
근데 우리 집 근처의 한의원은 침을 너무 아프게 놔.... 흑, 월요일에 또 가봐야 하는뎅.
자기가 놔 줘, 침. ^^

서니데이 2015-12-23 15:12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날씨는 오늘도 그냥 많이 춥진 않지만,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