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이권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는 내 삶 최대의 기쁨이고, 때문에 책을 들이고 그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해 하지만,

스스로 책을 고를 깜냥이 안되는 고로 서평집이나 이곳 알라딘 서재에서 고수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권우도 그 중 한명이다.

이 책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은지 좀 되었는데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이라는 제목이 주는 뉘앙스 때문에 작법서라고 착각 하였었다.

책이 좋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니지만, 읽는 속도가 그러모으고 쌓아두는 속도에 한참 못 미쳤다.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그동안 모아 놓은 책들도 다 읽지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 싶었고,

책은 덩치가 되어 나를 내리누르는 중압감이 되었다.

무엇을 먼저 읽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읽을까 따위를 고민하게 되었고,

책을 읽은 그 순간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하여 꾸준히 글을 남겼지만,

글 잘 쓰는 법 따위는 고민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나와는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책을 잘 읽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책을 잘 읽기 위해서는 글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내게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것이고, 그걸 읽어내는 것이 독자이다.

 

이쯤에서 우리나라 입시 제도의 문제점이 나와 주시는데,

읽기는  선생님과 함께 읽고 주제어를 뽑고 요점정리를 해보는 수동적인 행위인 반면,

쓰기는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써야 하는 능동적인 창조의 행위였다.

때문에 쓰는 작가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어야,

작가가 글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읽어내는 독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겠다. 

 

그렇다고 독자가 작가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을 마냥 어렵게만 생각할 것은 없다.

읽기와 쓰기를 접목시키는 방법으로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중요한 글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독후감으로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 책을 쓴 사람의 논리구조, 논증법, 수사학까지 분석해 내는 것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는데 이경운 단순한 독후감이라기 보다는 전문적인 장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얼마전,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는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놓고,

말하자면 정해져 있지 않은 '이달의 당선작 선정기준'을 갖고 '갑론을박'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논쟁을 본게 얼마전이라는 얘기이고,

이곳이 책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이다 보니까, 그동안에도 종종 있어 왔지만, 뭐~(,.)


서평과 독후감의 그것은 이 책에서 이권우 님이 예를 들어가며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니 그걸 보면 될 것 같고,

요번 논쟁을 바라본 내 입장은 이렇다.

알리딘 인터넷서점이라는 영리회사로부터 나라는 개인이 서재라는 공간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평이 되었건 독후감이 되었건 간에 알라딘 인터넷서점의 취지는 고려하지 않고 작품성을 앞세워 바라본 적은 없다.

오히려 서재의 주인장이 나와 비슷한 취향인지에 관심을 가졌었다.

영혼에서 나는 찝찌름한 냄새가 같을까,

그리하여 서평이나 독후감이라는 형식으로 소개하는 책들이 내 수준과 취향에 맞을까, 에 집중을 했었다. 

서재 주인장의 글솜씨가 좋을 경우, 감정을 남발하거나 수사가 화려해져서 책의 원래 내용을 왜곡시키거나 흐려놓기도 하는지라 오히려 경계했다.

 

그러므로 알라딘 인터넷서점의 이익과 내 이로움이 합쳐지는 곳이 타협점일텐데,

그 접점이란 알라딘 서재 이웃들이 권해주는 책을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사 읽고 싶게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과연 누가 책 읽는 사람이 될까요?ㆍㆍㆍㆍㆍㆍ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책을 읽더라는 것입니다.ㆍㆍㆍㆍㆍㆍ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으로는 자신의 부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삶에 부족한 것이 있으나 이를 숨기고 무시하려 한다면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훗날 큰일을 해낸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인정했더라고 방금 말씀드렸지요. 성찰과 각성이라는 말은 그래서 썼습니다.ㆍㆍㆍㆍㆍㆍ성찰을 통해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면, 책을 읽어 이를 메워나가야 합니다. 책읽기는 그러니까 의미 있는 실천입니다.ㆍㆍㆍㆍㆍㆍ다음에는 그 부족한 것을 책읽기로 채우려고 애쓰느냐 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찰하고 각성해서 실천하면 누구나 다 책벌레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ㆍㆍㆍㆍㆍㆍ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자신감과 충족감을 안겨주는 책이 가장 좋은 책입니다. 주변 사람이 그런 책을 왜 보느냐고 타박해도 신경쓰지 마세요. 왜냐고요? 여러분이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그들은 알리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게 무엇이 되었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읽는 책이라면 '열독'해야 마땅합니다. 건성으로, 대충 보아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94~96쪽)

 

앞에서 잠깐 '능동적 창조의 행위를 수동적 행위가 이길 수 없다.'고 얘기하다가 말았는데,

나는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걸로 충분히 즐겁고,

그런 읽은 책의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게 기쁘다.

책을 읽은 느낌을 꾸준히 글로 남겼지만, 글이 늘지 않는다고 고민해 본 적은 없다.

연습한지 몇달 되지않는 글씨가 좋아지지 않는다고 툴툴거리기는 했었지만 말이다~(,.)

 

'알라딘' 이곳이 인터넷 서점이라는 특성 상 글 잘 쓰는 고수들이 곳곳에 숨어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서평과 독후감의 기준이 바뀌거나,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 내지는 글의 작품성 따위를 특별한 기준으로 내세울 필요는 없다는 거다.

 

 

글을 잘 쓰는 고수들이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프로 작가들일수도 있지만,

능동적 책읽기의 연장선에서 기꺼이 기록을 남기는 사람일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책읽기가 됐든 글쓰기가 됐든 능동적 창조의 행위를 수동적 행위가 이길 수 없다.

 

아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아는 것이 과연 진리인가 하는 성찰을 유도하는 글쓰기는 불가능할까요? 이미 형성된 자기를 글쓰기를 통해 깨어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도약하기 위한 몸부림을 담은 글쓰기는 불가능한 걸까요? 우리의 글쓰기에는 반성과 참회, 새로운 각오는 어울리지 않는걸까요 우리의 글쓰기에는 반성과 참회, 새로운 각오는 어울리지 않는 걸까요? 요약, 분석, 논리, 설득을 넘어서는 그 무엇 말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였지만, 이 책이 읽고 쓰는 힘을 키워져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데 이바지해주길 바랄 뿐입니다.(254쪽)

이 책이 이렇게 끝맺고 있는 걸 보면, 책읽기나 글쓰기 중 어느 하나를 힘주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능동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의 위력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이권우 님이 좋은 것은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책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만 하지 대책을 강구할 생각조차 안 하는데 반해,

그는 대책이 없다고 문제 의식을 갖는 것조차 포기하지는 않는다.

문제를 제기하고 어떻게든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보려고 한다.

노력이라도 해보자고 한다.

그러니 내가 그를 읽지않고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말이다~ㅠ.ㅠ

 

 

 

한가지 의문사항이 있는데,

108쪽에서 '우리말 어법'에 맞에 써야 한다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제목이었던 <무릎팍도사>를 예로 드는데,

네이버사전을 찾아보니,

 

라고 나온다.

그밑에 <지식백과>등장하는데, '에듀넷'에서 운영하는 건가 보다.

몇개가 나란히 등장하는데,

첫번째 것은 중2 교과과정이라고 되어 있고, 세번째 것은 초6교과과정이라고 되어있는데,

문제는 옳고 그름이 다르다.

이렇게 모호해서야, 사전을 찾고도 혼란스럽기만 하다~ㅠ.ㅠ

 

2.한글 맞춤법

  1. 1) 뜻: 우리말을 한글로 적을 때 지켜야 할 약속
  2. 2) 원칙: 표준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되 단어의 원래 형태를 밝혀 적음
    • 뻐꾸기(×) / 뻐꾸기(○), 무릎팍(○)/무르팍(×)

           교과과정 중학교 > 중학 2 > 국어 ④

  

우리말 다지기

잘못 쓰기 쉬운 낱말
몇일(×) → 며칠(○)
무릎팍(×) → 무르팍(○)
 
교과과정 초등학교 > 초등 6 > 1학기 > 국어 6-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4-01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4-01 13:59   좋아요 1 | URL
저도 그게 넘넘 궁금해요. 그래서 걍 링크해버렸어요, ㅋ~.
뻐꾸기를 날려볼까요? 뻐꾹~, 뻐꾹~!

2016-04-01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5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성인이 될때까지 타지 생활을 해보지 못했던 터라,

중ㆍ고등 학생 시절, 방학이고 명절 때면 시골에 가는 아이들이 마냥 부러웠었다.

말하자면 시골에 어떤 환상 같은 걸 가지고 있었던 셈인데,

이런 환상은 시골 출신 남편을 따라 시댁으로 처음 인사를 가던 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고소한 기름냄새 폴폴 풍기며 지지고 볶는 것이 잔치 음식이나 손님 맞이 음식의 정석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을 깨고,

마을 어귀까지 비린내가 먼저 마중 나왔다.

 

난 음식 맛이 좋기로 소문난 개성 지방 할머니 밑에서 자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입이 호사를 누리고 살았지만, 비린내 나는 생선류는 목록에 없었다.
정월이면 조랭이 떡국에, 손수 빚은 만두, 보쌈김치, 동치미를 얹은 상차림으로 시작으로 하여,
봄이면 진달래 꽃잎을 따다가 곱게 화전을 부쳐 주셨고,
들판에 쑥이 지천으로 깔리면 쑥개떡을 납작납작하게 빚어 주셨다.
여름이면 초계탕으로 몸보신을 했고,
가을이면 늙은호박 속을 박박 긁어내고 호박죽을 쑤어주셨으며, 저며 볕에 말렸다가 호박고지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다.
동지날에는 팥죽과 팥떡, 식혜를 챙겼고,
울거나 떼쓰면 내어주시던 얼음 박힌 수정과와 조청엿의 맛도 잊을 수 없다.

헌데, 시어머니의 음식은 비린내로 기선을 제압했다.

상차림의 정성은 생선의 양과 가지 수에 비례했으며,
바다에 가까웠지만, 농촌지역의 특성 상 항상 일손이 달리다보니,

음식이나 담긴 모양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고, 손이 덜 가는 조리법을 선호하셨다.
덕분에 각종 장과 젓갈, 짱아찌 등 염장음식의 천국이었다.

시어머니는 종갓집 맏며느리답게 음식 인심이 후하셨다.

모든 음식을 넉넉하게 하셨는데, 그중 최고는 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분이 드실땐 안 그러신다는데,

끼니 마다 밥을 넉넉하게 하시고도 남아, 누룽지를 눌려 숭늉을 만드시면서도,

먹다 남은 찬밥을 꼭 당신이 드시는 거다.

몇 번은 뺏어 먹어도 봤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싶었던 난, 어느날 남은 찬밥을 새로 한 밥에 섞어 버렸다.
"어머니,우리 다같이 조금씩 나눠 먹어요."
찬밥에 물 말아 드시던 것을 대가족 사회, 가부장 제도 하에서 여자들의 지난한 삶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레 맘 아파 했었던 것 같다.

 

춘분도 지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봄노래 꽃타령을 할 일만 남았다.

돌을 소화시킬 나이는 한참 지났고,

하여 밥이 한번씩 맛이 없을 법도 하건만,

먹고 나서도 식곤증에 시달린다며 병든 닭처럼 졸고 앉아 있어야 될텐데,

난 성능 좋은 스프링마냥 통통거린다.

 

오히려, 환자로 오시는 어르신들이  봄을 타시는지 영 밥맛이 없으시단다.

내가 간식으로 갖다놓는 과자 따위는 하나씩 둘씩 잘 주워 드시면서,

밥은 '맛대가리'가 없으시다면서 역정을 내시길래, 평상시엔 뭘 드시냐고 여쭈었다.

드시는 약은 많고, 빈속에 약을 드실 수는 없어서,

"찬밥 한 숟가락 물에 말아서 후루룩~!"

드셨다고 하시면서 입가를 훔치시는데, 내 눈시울이 까닭없이 뜨거워진다.

 

실내에서는 다른 재소자들 눈이 있으니까 '만기방'이라고 석방 이틀 전에 나가서 묵는 독립 사동에 가서 연탄아궁이 불에다 부침개를 부쳤다. 머리 위로는 싸락눈이 풀풀 날리고 우리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가린을 프라이팬에 녹여 김치를 섞은 밀가루 반죽을 부어서 부쳤다. 역시 김치부침개는 잘 익으면 가장자리가 아삭거리고 고소하고 제일 맛이 있다. 거길 떼어 먹다가 바라보니 준식이 눈에 눈물방울이 고였다가 톡 떨어졌다.

  "왜 그래, 뜨거워서 그러냐?"

  "아니요."

  "그럼 뭣 땜에 그래?"

  "어머니 생각 나서요."

        (44쪽, '유배지의 한 끼니'중에서)

황석영은 이 글을 쓰면서 소지 아이 준철이가 생각났을 것이고,

준철이는 김치부침개의 가장 자리를 먹으면서 어머니 생각이 났다지만,

난 찬밥에 물 말아 드시던 어머니가 생각나,

지금은 그냥 쉽게 이해 되는 일들을 그땐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싶어,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 어쩌지 못하겠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사람의 정신세계를 송두리째로 이해하려는 노력이지만,

밥 한끼 같이 먹는다고 하여,

그 사람의 정신세계와 생활방식 등을 온전히 이해하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끼를 시작으로 그렇게 점차적으로 마주보고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을 맞추게 되다 보면,

정신세계나 생활방식이나 생활습관 따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그렇게 서로서로 맞추고 엮이고 스며들거나 어긋나기도 하면서,

공통되거나 변화된 행동이나 습관, 기호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 일 것이다.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지금은 먹을 수 없다거나 만들 수가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때의 맛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이 변했든지 세월이 변했든지 했을 터이기에.(83쪽, '배고픈 날, 장떡 지지던 냄새'중에서)

 

때문에, 한솥밥을 먹던 사이이거나 같이 밥을 자주 먹던 사이라면,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 변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와 방향으로 사람도 변화할 것이므로,

변화라는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맛이 변했다면,

나는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것이므로) 세월보다는 사람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때의 사람은, 예전에 한솥밥을 먹을때나 같이 밥을 자주 먹을 때의 사람은 더 이상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삼 년 전에 김용태와 여운이 병명은 다르지만 둘다 말기 암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때문에 주변 친구들은 두사람 다 술을 끊었을 것으로 믿었지만 나중에 들려온 소문으로는 죽을 줄 뻔히 알면서 환자 둘이 몰래 만나서 음주를 계속한 모양이었다. 평론가 유홍준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직접 의사 표명한 바는 없으나, 죽음을 앞두고 음주를 계속한 것은 예술가의 위엄'을 지키려는 행위였을 거라고 한다.(253쪽, '떠나간 친구가 남긴 맛'중에서)

예전에 나왔던 이 책을 개정판으로 다시 구입한 까닭은 '1권 1식 결식아동후원'이라는 문구 때문이기도 했지만,
개정판에 김용태 님과 여운 님의 그것이 추가된 '떠나간 친구가 남긴 맛'이 궁금하기도 해서 였다.

그러고 보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간에,
예술가들은 나름 섬세한 감각을 지닌것이 틀림없고,
그 섬세함은 미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가 보다.

이러구러하고 간에 '떠나간 친구가 남긴 맛'은 단순히 맛이 아니라, '예술가의 위엄'을 지키려는 숭고한 행위였을 것이다.
찬밥에 물 말아 드시던 어머니를 좀 더 일찍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어머니가 계기가 되어 환자로 오시는 어르신들의,
"찬밥 한 숟가락 물에 말아서 후루룩~!"
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으니, 그걸로 된거다.
그만하면 된거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6-03-24 17:26   좋아요 0 | URL
있죠 ~!음 ...어느땐 참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긴가 싶게 ..
여기도 저기도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꼭 잔상처럼 있어요...누군가 남편이야기 (특히 흉을 보는 경우)를 하면 ㅡ어머머 !어쩜 ..울 집 양반이 그새 거기서 살우~?
하고 싶어져 버리고...어르신을 말해도 .. (아..그들은 대게 앞에 시`가 붙는 다는 ..?!) 그래 그래 ~여기도 그래 ..하고 맞장구를 치기 마련이니 ...아..참 세상은 신기 (?)하지 뭡니까~!
우리 일상이란 ㅡ 비슷한 모양이라고 ...최근에 ..저도 내뱉은 말들을 다시 만나게 될때. .
그런 생각이 ㅡ들어버리는군요..^^

양철나무꾼 2016-03-26 09:13   좋아요 2 | URL
맞아요, 우리일상이고 삶이라는게 늘 비슷한 모양을 띤다는 걸...늘 너무 늦게 깨달는 것이 문제예요~--;
우리 어머니들의 그것이 한겨울에도 선풍기를 끌어안고 살게 만드는 `화병`이라고 불리운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옆에서 지켜본 적이 없어서 생소했나 봐요.
입천장이 마르고 혓바닥이 갈라져서 아무 맛을 느낄 수 없어서, 맵거나 짠 것을 먹으면 오히려 쓰리고 아파서 물말아 드시는거라는 걸 이제 알게 됐지만, 좀 늦었다는거.
주변을 조금만 주의깊게 둘러봤다면 이가 없거나 당신 이가 아닌 임플란트나 틀니여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걸 깨달을 수 있었을텐데 말예요.
그러고 보면 경험만큼 큰 스승은 없는 듯 합니다.

암튼, 꿀꿀한 얘긴 잠시 접어두고...우리 맛을 느낄 수 있을때 먹읍시다~ㅅ!

[그장소] 2016-03-26 15:10   좋아요 1 | URL
굿 ㅡ!!^^
좋은 이야기 고맙습니다.^^
선풍기를 끌어앉게 한다는 표현 ㅡ좋아요!^^
저도 어제 밤 열이나서 보냉제라도 안고 있어야 하나 ...했는데 말이죠!^^
감기 유행이라는군요..기온이 오르락 내리락
딱 봄처녀 변덕 같죠..^^
좋은 컨디션 유지해나가시길 ㅡ^^
작은 우정 놓고가요!^^

2016-03-24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3-26 09:19   좋아요 2 | URL
알레르기는 방치하는 것도 괴롭지만,
그렇다고 너무 병원치료에 의지하는 것도, 약의 성분을 생각하면, 좋지 않아요~--;

맞아요~^^
그런 음식 있어요.
전 조개탕과 빈대떡이 그런 음식인데,
조개탕을 볼때마다 별거 없는 조갯살을 너무 잘 골라먹던 사람이 생각나서,
한번씩 집에서 눈물 흘리며 조개탕을 끓이고 빈대떡을 부쳐요, ㅋ~.

2016-03-24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3-26 09:26   좋아요 3 | URL
전 간을 약하게 해서, 남편과 아들이 `간을 안했냐`고 할 정도예요.
서울 음식이 좀 싱겁죠~^^

근데, 요즘은 성인병 예방차원에서라도 안짜게 먹을 필요가 있어요, ㅋ~.
그리고 한가지 더, 우리는 채식을 하면 무조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생채소도 어느 정도 이상이면 위와 간에 부담을 주는 독이죠.
뭐든 `적당히`가 좋은 것 같아요~^^

2016-03-30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4-01 13:55   좋아요 1 | URL
여의도에 벚꽃이 한창이래요.
미세먼지가 한창이라지만,
가면 벚꽃 구경이 아니라 사람구경밖에 더 하겠냐지만,
그래도 가고싶어요~ㅠ.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이론은 기하학에서만 통용되는 거창한 원리는 아닌것 같다.

왜냐하면 기하학을 모르고, 프랙탈 이론 따위에 까막눈이어도,

자연이나 주변의 일상을 한걸음 떨어져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다른듯 닮은 비슷한 패턴을 그리면서 반복되는 어떤 규칙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도, 삶을 모아 뭉뚱그린 역사란 것도...과정중에 있을 때는 깨달을 수 없을 지 모르지만,

한참 뒤에 필름을 되감듯 돌이켜보면 다른 듯 닮은 도돌이를 그리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른듯 닮은 비슷한 패턴을 그리면서 반복되는,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이론'이 있기에,

우리는 과거를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며,

변화를 모색하거나 한번씩 일탈을 꿈 꿀 수도 있는 것이고,

그걸 우리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부분으로 미루어 전체를 예측하거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여기서 '부분'은 '기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그걸 바탕으로 이론으로 정립하거나 통계화하여 학술적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사람에게 대입시키기도 한다.

 

난 한때 이렇게 사람의 보여지는 부분적인 것으로 미루어 전체를 짐작해보려 했었고,

직업의 특성 상 내가 그쪽으로 촉이 발달하였다고 착각하였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저자가 내가 애정하는 한때 알라디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저자의 글들만을 보고 내가 애정하는 과거 알라디너였다는 걸 연결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처음엔 그를 '효녀OO'로 바꿔 부를 정도로 알라딘서재의 글을 갖고는 성별조차 구별을 못했었다.

지금은 잠수를 타고 있는 a양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않아,

문체와 그림체만 보고 남자로 착각을 했었던걸 보면,

나의 그 촉이라는 것은 지극히 심플하다 못해 초라하기 짝이 없을 따름인데,

그런 내가...이 책과 그를 연결시키는 쾌거를 이룬것은,

문장의 질서를 익히고, 잘못된 글쓰기 습관을 바로 잡는 이런 설명 형식의 글 속에서도,

소설이라는 형식을 갖추면서,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고, 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만의 문체가 살아나자,

내가 페이퍼에서 아껴 읽었던 그만의 문체, 특유의 개성을 간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이 책은,

자신이 쓴 글, 즉 자신이 쓴 문장을 다듬는 법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는데,

이 책의 처음 '머리말'부분의 첫 문장이,

남이 쓴 문장이든 내가 쓴 문장이든 문장을 다듬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처럼 맞고 틀리고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다. 교정 교열자로서  내가 단지 어색하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손보고 다듬은 문장을 저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고 고집하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9쪽)

인걸 보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이게 정오로 구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이기도 하지만,

길들여지고 익숙한 것에서 탈피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그만하게 잘쓴 글들이 많은 알라딘 서재에서 내가 그 분 특유의 문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잘한 일상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과

그 자잘한 일상을,

때론 눈물방울로 굴절시키듯, 때론 볼록렌즈로 햇볕을 모아내듯이,

촉촉하지만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문장을 다듬는 특별한 원칙 따위는 없다고 하였으나,

문장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을 골라 목록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이런 종류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고하신 장하늘 님 같은 경우, 명성이나 업적, 책으로의 완성도 면에서는 더 뛰어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글쓰기 표현사전 같은 경우, 하드커버의 두꺼운 사전류여서 작정을 하고 뛰어들지 않는 이상 쭈욱 읽게 되지는 않았었다.

이 책은 기왕 읽히는거 재밌게 읽히도록 소설 같은 구성을 곁들였다는데, 그게 주효했는지, 일독에 성공하였다.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이 여럿 나열되는데,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건 생략해 주어야 한단다.

한글자라도 더 썼을 때는 문장 표현이 그만큼 더 정확해지거나 풍부해져야지, 외려 어색해진다면 빼는 게 옳단다.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다른 때였으면, 난 분명히 지적인 것과 게을러 보이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툴툴거렸을 것이지만,

저자가 가진 습도와 온도를 익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의도 또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문장론이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장론이란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일종의 방법론일테고,

마음을 전달하거나 마음을 얻는 따위의 일은,

윈칙이나 표현 따위를 골라 목록으로 만든다고 해서 나아지는 일이 아니라,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가지고 사람의 마음이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3-22 18:56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쓰신 분도 알라딘에 활동하셨던 분이었군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6-03-23 09:19   좋아요 0 | URL
네, 이 분에게 직접 여쭙고 확인을 한건 아니지만,
제가 기억하고 있는 이분의 문체로 미루어 확신합니다~ㅅ!
(그러다 아니면 어쩌지?, 아님 말고~(,.))

서니데이 2016-03-23 18:21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3-24 17:1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이젠 정말 감기는 다 나으셨겠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전 맨날 봄놀이, 꽃놀이 타령인데...타령으로만 끝날듯~--;

근데 가만히 있기엔 발바닥이 너무 간지러워서 말이죠~(,.)
 

지난 밤, 오랜 친구가 전화기를 붙잡고 울어대는 통에 잠을 못잤다.

내가 누굴 만나고 무엇을 해도 무한 너그러운 우리집 남자가 만나는걸 아주 싫어하는 (무려 여자인) 친구다.

우리집 남자가 만나지 말란다고 내가 그 말을 꼭 들을 위인은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만나지는 못 하고 가끔 전화로 안부만 묻고 지냈었다.

 

내 친구는 20대 초반에 남편이랑 이혼을 한 뒤,

대외적으론 클래식바라고 부르지만, 내가 보기엔 음침한 냄새가 나는 룸쌀롱 사장으로 살며, 악착같이 돈만 벌었었다.

2~3년 전이던가 어디 항공사 부기장이라는 남자를 만난다고 하더니,

얼마전 그 남자가 룸쌀롱을 정리하고 같이 살자고 하더라면서 좋아했었는데,

지난 밤에 전화해서는,

'알고보니 제비였네, 그놈이 해외로 튀었네' 해가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거다.

친구가 하는 얘길 추려보니,

같이 살자고 해서 다 정리를 하고 집을 얻는데 보태라고 돈을 맡겼는데, 

알고보니 같이 살자던 곳이 해외라는 것이었다.

남자가 안 데려가겠다고 했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그럼 그 사람은 틀린 말 한게 없는데, 같이 나가서 살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했더니,

자기는 체질적으로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싫고,

무엇보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곳에서 '외로워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다.

 

하소연도 들어줄만큼 들어줬겠다, 그쯤에서 좀 자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됐을것을,

빈말 못 하고 할 말 못할 말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그동안 니네 가게로 불러들여 벗겨먹은 그 남자들 중에 뉘집 남편들도 있었을텐데,

그 남편들 기다리느라 집에서 외로웠을 아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보시했다 치고 덮으라고 했다.

 

내 보기엔 그 남자가 제비도 아니었지만,

그 남자가 제비라고 치고,

제비를 따라 해외로 가든, 제비를 보내고 이곳에 혼자 머물든 간에,

그런 정신 상태로라면 외롭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의사표현 할 수 있는 언어로 말을 하고, 그런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다는 사람들이 쌔고 쌘걸 보면,

외로움은 공감이나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감성이 아니라,

한번 외로움을 알아버리면 떨쳐버릴 수 없는 일종의 버릇이고 습관인가 보다.

 

전에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인간 관계를 앞에 두느라 참았었다.

참으니까 관계는 나아지고 남들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는 듣는데, 실상 내 속은 지옥이었다.

지금은 착하다는 소릴 못 들어도 그만이고, 인간 관계에 실패하더라도 내 마음이 천국인게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할말은 하고 살자'고 하고 싶은 대로 일단 내지르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노유진'의 '생각해봤어?'를 잼나게 읽었던지라, '할말은 합시다' 또한 완전 기대된다.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쉼(도서출판) / 2016년 4월

 

 

하려던 얘긴 이게 아니고 시집 얘기인가 보다.

 

 

 

 

 시의 정거장
 장석남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예전엔 여러 시인의 시들을 묶은 옴니버스 형태의 시 모음집 내지는 시 해설서 따위가 자주 나왔었는데, 언제부턴가 뜸해졌었다.

그건 예전에 비해 시를 묶어내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시를 해설해내는 품이 형편없어서, 가 아니라,

시를 재인용할 경우 시 한편 당(시인과 그 시인의 시를 관리하는 출판사에게 각각 6만원과 3만원) 도합 9만원의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열악한 시 시장에 수지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그렇지, 시 해설서에 해설하고자 하는 원래의 시가 빠지다니,

궁색해도 너무 궁색한 변명이다.

게다가 이 책을 묶고 엮은 장석남 또한 시인이라는걸 고려한다면, 좀 비겁한 처사라는 느낌마저 든다.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그동안 내가 읽은 시 모음집이나 시 해설서 형태의 것 중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는,

(시를 재인용할때 생기는 저작권료에 대한 규칙이 이전인지 이후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안도현의 시작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인데,

시를 쓰기 위한 작법서로 뿐만 아니라,

시에 한발 다가가고 가까워져서, 시를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는 매개로써의 역할도 톡톡히 수행해 내고 있다.

 

시를 이렇게 쓰라는 얘기는 독자들이 이런 시를 읽는다는 것에 다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먼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쓰라며, 이정록을 인용한다.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전화를 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 그걸 쓰라고 한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고 한다. 단언컨데, 좋은 시는 자신의 울타리 안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 밖 사람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안도현의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중 54쪽, 이정록의 '문지방 삼천리'

 

언젠가 이정록 시인이 보내준 사진 한장이다.

이 사진을 보면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사는 것이,

시에 (그리고 시의 자리에 사람을 대입시켰을 때도 묘하게 통용된다~^^)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비법임을 알 수 있다.

 

쓸데없이 주절거리던 얘기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앉아있었던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어 께름칙해서 였다.

이 페이퍼 전체에 걸쳐서 내가 하고싶었던 얘기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할'말은 하고 살자는 것이었지만, 한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뚫린 입이라고 '아무'말이나 헤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해도 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의 경계를 지키는 일은 어렵다.

그러고보면 요즘 세상에 해도 되는 말 따윈 없는 듯 싶기도 하다~ㅠ.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3-18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2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8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2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9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2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케 2016-03-20 23:52   좋아요 0 | URL
전 반대로 `부기장 같은 제비놈`을 어디.내다 버리지도 못할 친구로 둔 처지라.
그 하소연..망할 넋두리에 치가 떨립니다. ㅎ 이 종류의 사람들은
아무나 붙잡고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 `죄사함`받는 걸로 생각해서.

양철나무꾼 2016-03-22 16:12   좋아요 0 | URL
부기장 같은 제비놈`을 친구로 두셔서 좋은 점도 있네요.
고해성사를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덕분에 `고해성사`도 하시고 `죄사함`도 하시고...
겉으로 봐선 영낙없는 `신부님`과 `신도`이지 말입니다.
덕분에 `신부님`같은 분도 되어보고 말이죠~^^
 

요즘 책이 통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봄이라고,

봄이니까 싱숭생숭한건 당연지사라고,

아지랑이가 발바닥을 간지르고, 꽃바람이 맘을 흔들어 놓는 통에, 

당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노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내가 사는 이 곳은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을 뿐이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 온국민의 정신이 쏠려 있는 동안, 조훈현이 새누리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신청을 했다.

취미가 바둑이고 IT가 전공 분야라는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 대표가 뭔가 눈에 띄는 행보를 해주길 기대했건만,

그렇게 조용히 묻혀 넘어가더라~--; 

 

어제 애인과 작은 식당에서 느즈막히 저녁을 먹는데,

건너편 탁자에 어르신 세분이 언쟁 탓인지 곁들인 반주 탓인지 불콰하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치 얘기는 가볍게 농담으로 시작해도 고조되다보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기 때문에 한편으론 불안했지만, 근래 처음 듣는 정치 얘기라서 반갑기도 했나 보다.

그 분들의 목소리는 적당한 크기였고 적당히 경쾌해서 말없는 애인과의 저녁 식사에 배경음악 삼아 듣고 있었는데,

애인이 '빨리빨리'하는 입모양을 한다.

"넌 투표 안해? 처음 투표하는건데...들어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잖아."

"배울게 있어야 들어두지.

 의견이라는게 대립되는 가운데 발전이라는게 있는건데...저 할아버지들 얘기하는거 가만 들어보라구~!

 A도 안되고, B도 안되고, C도 안 되고, D도 안되고...다 안된다고들 하시는데,

 전부다 예스라고 해도 문제지만, 전부다 안된다는데 누굴 뽑으라는거야?

 엄마가 보기엔 저분들이 지금 정치적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여?

 내 보기엔 딱 할일 없어서 시간 죽이시는 분들이구만.

 저 할아버지들 말대로라면 투표장 들어가도 투표할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나와야 하는구만.

 그럴바엔 아예 투표 할 생각조차 안하는게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안하고 나은거 아냐?

 선거자금으로 들어가는 돈이 얼마고, 선거하러 가느라 들이는 수고로움이 얼만데,

 그냥 선거 안하는게 현명한 거라구~!"

느즈막히 시작한 애인과의 데이트는 그리하여 싸움으로 끝났을 뿐이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대신할 것처럼 얘기되어 지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과 대별되는 인간의 그것으로 감성과 정서를 꼽는다.

증권사를 예로 들게 되면,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수익률 분석을 정확하게 하더라도,

인간의 감성과 정서가 그 분석에 개입해 오히려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는데,

인공지능이 분석한 예측이나 전망에 인간의 감성과 정서 외엔 다른 변수가 없는 것일까?

인공지능이 분석을 한다고 하더라도,

증권시장이란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이 반영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라는 것은 항상 부정적인 변수로만 작용하는걸까?

설혹 수익률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삶을 어느방향으로든 움직인다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소통하게 한다면 그만큼의 온기와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따지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라는 것은 인공지능은 가질 수 없는 장점이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놓고 비교를 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나를 대입시켜보자면,

난 고도의 두뇌와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에는 명함을 못내미는,

몸만을 혹사시키는 육체 노동자이면서 감정 노동자라는 생각을 한다. 

매일 저녁 퇴근하면서 감사하는건

나의 두뇌나 지식도 아니고 필 충만한 감성과 정서도 아니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나를 지탱해주는 사지와 몸뚱이인것을 보면,

인간의 친구이자 경쟁자이며 적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본일지도 모르겠다~ㅠ.ㅠ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ㆍㆍㆍㆍㆍㆍ

철조망을 끊고 굴뚝 아래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고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물질이

뺀찌라고 너스레를 떤다 올라와서도

자신을 살게 해준 건 구체적인 물질과 현상들

비닐 휘장을 찢어놓거나

굴뚝 재를 흩뿌리거나 먼지를 몰아와

언제 '노동'을 선사해준

바람에게 특히 고맙다고 한다

 

가장 가파른 곳에 서본 사람들은 안다

관념보다 귀한 게 물질임을

노동이 사람을 얼마나 사람답게 하는 것인지를

 

                                                        - '뻰치예찬' 부분 -

직접 몸을 움직여 본 사람들은 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꼴난 두뇌나 지식도 아니고 필 충만한 감성과 정서도 아니며,

하늘을 향해 뻗고 땅을 내리누르는 사지와 몸뚱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몸으로 무슨 운동이냐고

언제부터 운동이 머리로 하는 게 됐느냐고

나도 '열심히' 몸이나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철창 속 푸른 생각

                                                      - '몸철학' 부분 -

요즘은 두뇌계발운동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는 걸로 미루어,

인공지능이 하는 그것에도 운동이라는 말을 붙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그런 생각은 아주 잠시 였을뿐이고,

몸으로 하는 건 운동이고, 머리로 하는건 철학이라는 생각 또한 인간중심의 사고가 만들어낸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창만이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편견도 얼마든지 우리를 얽어맬 수 있다.

가두거나 얽애매거나 고착시키지 말자.

 

       사적유물론

 

한 선생이 말했다

당신은 공적인 삶에 과도하게 치우쳐

사적인 삶이 너무 없다고

그러면 죽는다고

 

자주 만나는 선배도 말했다

운동 이야기를 줄이고 사적 대화 비율을

최소한 칠십 퍼센트로 늘리라고

그러지 않으면 모든 관계가 말라 죽는다고

 

조근조근 사주를 봐주던 이는

당신은 나무로 태어났는데

사주에 물이 너무 없어

늘 목마른 생을 살아야 할 거라고 했다

 

사적 삶이라니, 관계론이나

역사적 정치적 생명을 들어

대들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어느 쓸쓸한 저녁

 

이기고 지는 것만이

무엇을 이루고 못 이루고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삶의 시간들

 

롤랑 바르트를 들먹이지 않아도 나는 송경동이 아프다.

그는 김수영처럼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그의 그것은 어떤 서정성이나 기교보다 힘이 세다.

 

시집의 표지에 송경동인듯한 사람이 등돌리고 앉아 있다.

등은 침묵한 채로 많은 걸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은 등이 아닐까 싶다.

들고남(入出)은 이미 정체가 아니라 흐름이고 소통이다.

 

그게 아픔이 되었든 기쁨이 되었든 간에,

통증 또는 따사로움이 되었든 간에,

인간의 삶을 어느방향으로든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싶다면 사람의 가슴보다는 등을 공략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러한 안생의 간난신고를 누구보다도 많이 겪었을 그가 변혁의 비빔밥을 하나 만들어 보자고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그부터 조금은 더 허기지고 간절해져야겠다고 하고 있다.

이 착하고 순한 사람을 어쩔 것인가 말이다~ㅠ.ㅠ 

 

요즘 책이 안 읽혔던 건 그러고보면, 책이 우리네 삶을, 즉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전문영역인 감성과 정서는, 오직 인간만이 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고 즐거움이어도 그렇고, 미움이고 화남이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3-17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8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3-17 14:37   좋아요 1 | URL
저도 지금 이 시집 읽고 있어요. 송경동 시인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죠. 김수영의 시처럼 살고 있는 송경동 시인에게 미안하고 고맙죠.... TT

양철나무꾼 2016-03-18 14:02   좋아요 1 | URL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서 부끄럽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야지 하는데, 쉽지 않아서 더더욱 그렇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