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여 체력을 탕진하고,

방전된 체력을 회복하겠다고 어젠 하루종일 방바닥과 딱 달라붙어 시체놀이를 했다.

잠이 보약이란다.

 

최근 박 대통령과 만난 종교계 인사는 "박 대통령이 예상과 달리 상당히 밝은 표정과 맑은 눈이었다. 그래서 '잠은 잘 주무시나 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미소를 지으며 '잠이 보약이에요'라고 하더라"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는 보도도 있던데,

잠이 보약이라는 걸 모르는게 아니라,

너무 피곤하니 잠조차 오지 않아서 퀭한 채로 출근한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니,

밝은 표정과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니를 향하여 괜히 약이 오르고 빈정이 상하는 거라~--;

 

최진석이 쓴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을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데나 펼쳐서 읽는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친구는 최진석의 노자는 사유의 폭을 확장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거라고 하던데...그건 잘 모르겠을 뿐이고.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01년 12월

 

 

노자를 읽을 때 범하기 쉬운 오류 가운데 하나가 노자가 말하는 모든 가치를 상대적 차원으로 해소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장자에게는 어느 정도 정당하나 노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제 2장에서 선과 악, 미와 추를 상대적인 관계 속으로 해소하려는 시도들을 이미 비판한 적이 있다. 즉 악이 있어야 선도 있고, 추함이 있어야 미도 있다거나, 혹은 어떤 대상을 사람에 따라 추하게도 받아들이고 아름답게도 받아들인다는 등의 태도들이다.

  그러나 노자가 지향하는 가치는 어느 한쪽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즉 경솔함보다는 중후함, 조급함보다는 안정됨, 추함보다는 아름다움, 악보다는 선, 남성성보다는 여성성, 강함보다는 부드러움, 굳셈보다는 약함, 채움보다는 비움, 불보다는 물 등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어느 범위 안에서는 반대편과의 '관계'속에서 기능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ㆍㆍㆍㆍㆍㆍ

노자는 이 세계가 대립항들끼리의 상호 꼬임으로 되어 있다고 본다. 反이라는 운동경향을 매개로 대립항들이 서로 꼬여서 존재한다는 원칙을 도라는 글자로 나타낸다. 그런데 이런 원칙 아래 존재하는 세계나 이런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의 태도는 바로 앞에서 말한 대로 노자가 분명히 지향하는 어느 한편의 모습 즉 낮고 부러우며 여성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ㆍㆍㆍㆍㆍㆍ즉 가치론적으로 중립적이며 존재의 영역에만 관여하는 것들이다. 노자의 철학을 잘못 받아들여 가치 상대론으로 오해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여기서도 노자는 중후함이 경솔함의 근본이 되고, 안정된 것이 조급함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일반 원칙을 제시한다. 그런 후에 그것을 모델로 하여 통치자는 무기와 양식을 싣고 자신을 따신을 따르는 무거운 수레[輜重]곁을 떠나지 않는다. 즉 무슨 일을 하든지 중후함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화려함이 그를 둘러싸고 있어도 그는 조용한 곳에서 초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중후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228~229쪽)

 

그동안 노자의 도덕경을 해설해 놓은 책을 판본을 바꿔가며 들이고,

개 중 몇 권은 읽는다고 이렇게 저렇게 들추기도 하였지만,

매번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었다.

그러던 차에 강신주를 읽으면서 별개의 노자와 장자를 놓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뭉뚱그려 생각하기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그동안 나는 장자는 물론이거니와 노자도, 그 어떤 것들도...

기준을 정하고 거기서 비롯함이냐 말미암음이냐를 얘기하는 가치 상대론의 개념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것은 어떤 대상과 대립항들의 상호 꼬임인데,

이런 대립항들이 서로 꼬여서 존재하는 원칙을 '도'라는 글자로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다.

 

이걸 거칠게 요약해 보자면,

높음의 반대 개념으로 낮음, 불의 반대 개념으로 물...따위를 얘기했었고,

그걸 중간의 어떤 기준점을 놓고 비롯함이나 말미암음이나의 문제로 봤었는데,

그게 아니라,

높음과 낮춤이 서로 꼬여 존재하는데 그걸 '낮춤'으로 얘기하고,

불과 물의 꼬임을 '물과 같음'으로 얘기하는 식이다.

그러니 '낮춤'과 '물과 같음' 따위가 노자가 말하는 '도'인 것이다.

 

놀라웠던 또 한가지는,

공자, 맹자 따위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통치 이념으로 익히 알았지만,

노자 마저도 '통치자는 어떠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그런 것인줄은 몰랐다.

노자의 사상 안에서 통치자들에게 조용한 곳에서 초연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나,

자신을 고孤(부모가 없다는 의미), 과寡(남편을 잃은 홀어미), 불곡不穀(不善하다는 의미) 등으로 부르게 하는 것도 모두 자신을 낮추기 위한 외적인 장치들이라는 걸 보면,

노자가 말하는 도란 이런 것임을 알겠다.

 

하긴 나도 노자를 들먹일 깜냥은 아니고,

지금 그니에게 통치자의 통치 이념 따위를 기대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 포토 에세이
 KBS 구르미 그린 달빛 제작팀, 김민정.임예진 극본, 김성윤.백상훈 연출 /

 열림원 / 2016년 11월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박보검과 김유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구르미 그린 달빛'을 봐도 그렇고,

수렴청정이나 세도정치를 하게 되면 왕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데,

직접 순실의 코앞에 그것들을 갖다 바치고,

밝은 눈과 맑은 표정으로 '잠이 보약'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 구조는 어찌된 것일까?

뇌가 없다고 눈물 짓던 허수아비나, 대통령 코스프레 놀이를 즐긴 찌질이나 지진아는 아니었을까?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동화를 보면,

호기심 많은 공주가 물레에 찔려 영원한 잠에 빠진 것을,

잘 생긴 왕자가 나타나 입맞춤을 해줘서 잠에서 깨어난다.

 

잠이 보약이라는 또 다른 공주님은 호기심도 전혀 없는데다가,

한번 잠에 빠지면 그 미모를 보고 나타나 입맞춤을 해줄 왕자님 따윈 없으니,

옛날식 물레만 구하면 안성맞춤인데 말이다.

 

옛날식 물레가 요원하다면,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을 "찔끔찔끔' 아껴 마시면서 잠을 청해야 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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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14 17:28   좋아요 0 | URL
잠자는 청와대의 공주가 잠이 덜 깬 것 같습니다. 아니면 눈치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요.

양철나무꾼 2016-11-16 09:24   좋아요 0 | URL
잠이 덜 깬게 아니라, 잠에 취하는 마법에 걸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길라임이라니요~, 췟~(,.)

지금행복하자 2016-11-14 17:36   좋아요 0 | URL
잠이 보약은 맞는데 어떻게 자느냐가 문제일듯 해요. 이런 판국에 잠을 잘 수 있는 그 멘탈이 존경스럽기까지 해요~~

양철나무꾼 2016-11-16 09:2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물레에 찔렸든지,
마녀들의 마법으로 잠에 빠진것이라고 돌려 생각하고 싶습니다~--;

나비가꾸는꿈 2016-11-14 18:33   좋아요 0 | URL
함께 하지 못 했지만 응원하고 마음 만이라도 힘을 보탭니다. 공주님은 원래 그런 분이었죠;;; 안타까울뿐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6 09:31   좋아요 0 | URL
저도 남편이 부추기지 않았더라면 참석하지 못했을겁니다.
님과 같은 마음과 마음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ㅅ!

암튼 원래 그런 분인 것을 우리가, 우리 중의 몇명이 과대평가했었나 봅니다~ㅠ.ㅠ

푸른희망 2016-11-14 18:48   좋아요 0 | URL
보약도 잘못쓰면 부작용이 어마어마하지요 잠도 너무자면 온몸이 결리거든요...
그 공주는 잠이 덜 깼든 눈치가 없던 기본적으로 사악하다는 걸 다시 느낍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6 09:38   좋아요 0 | URL
양약은 고어구나 이어병이요 충언은 역어이나 이어행이라는데 말이지요~^^

책읽는나무 2016-11-14 19:33   좋아요 0 | URL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은 병원을 가셔야할 것같습니다
이상해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병원을 안가시니 자꾸 증세가 더 심해지시는 듯ㅜㅜ

양철나무꾼 2016-11-16 09:42   좋아요 0 | URL
병원을 가시긴 하셨는데, 길라임으로 가셨더라구요~^^
그럼 그 남자 배우랑 막 영혼이 뒤바뀌곤 하시는 건가요???^^
...

2016-11-14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6 09:47   좋아요 1 | URL
네, 노자, 장자 이론은 어려운 것 같아요.
원래도 어려운 이론이니 많은 사람들이 해석해 놨을거고,
그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석하는 과정에서 또 한번 변용되고,
거기에 그 사람들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바뀌고 한 걸 거예요.
그 복잡다단한걸 우리는 강의로 듣는 것도 아니고,
책으로 퉁치려니 더 어려운 것일테구요.

전 요즘 감산덕청이랑 비교하며 읽는데,
최진석이 그래도 열배쯤 쉬운 것 같습니다~^^

오늘은 더 쌀쌀한 것 같아요, 님도 건강하셔야 해요~^^

2016-11-16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7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쌩 2016-11-16 20:34   좋아요 0 | URL
강신주도 노자를 통치철학으로 설명했던거 같은데 동양철학은 ‘같기도‘ 갖은 해석이 많아 난해한것 같습니다.
요새 주옥같은 어록들이 쏟아져 나오는군요. 잠이 보약이란게 사실 틀린말은 아닌데...웃프네요.

양철나무꾼 2016-11-17 11:54   좋아요 0 | URL
그쵸~^^
강신주도 논문을 노자, 장자로 썼으니...나름 일가를 이루었을텐데,
강신주에서 특이했던 건 조삼모사 얘기였거든요.
최진석은 그런 얘기를 도표화해서 의미가 확연하게 들어오는게 장점이예요.
심재원이 번역한 감산덕청의 노자도 있는데,
그건 노자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려 해서 그런가 제겐 더 어렵더더라구요.

그렇네요, 주옥 같은 그 어록들만 좇아도 하루가 금방이예요.
이래 저래 책볼 시간이 줄어들어요~--;
 
악마 기자 정의 사제 - 함세웅 주진우의 '속 시원한 현대사'
함세웅.주진우 지음 / 시사IN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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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하는데 계집녀에 'ㄴ'이 붙은 욕을 섞는지라, 욕을 하지말라고 하였다.

그네 땜에 흥분하면 지는거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친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갈무리하여 보내줬다.

(관련기사 링크==>)

 

친구가 갈무리한 부분은,

◇ 김현정> ㆍㆍㆍㆍㆍㆍ힘들고 아프면 치유를 받아야 되는데 그렇다고 온 국민이 정신과 가서 지금 개인 상담 받을 수도 없고 어떻게 참고 견뎌야 되는 겁니까?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 곽금주> 일단은 장기화되지 않도록 해야 되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사가 빨리 되고 빨리 투명하게 밝혀지고 사람들은 이게 분명하지 않으면 자기 상상을 자꾸 하게 되거든요.
ㆍㆍㆍㆍㆍㆍ

◆ 곽금주> 이러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고요.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도리어 더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성장해보는 우리 개개인이 되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김현정> 순실증, 이거 긍정적인 분노로 한번 전환시켜보겠습니다. 여기까지 말씀 듣죠.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였는데,

난 곽금주가 싫다면서,

이건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도 했다.

치열하지 않으면 말하기는 쉽다...고도 했다.

 

함세웅과 주진우의 <악마기자 정의사제>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아'처럼 경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싶었지만,

그냥 '깨갱~ㅠ.ㅠ'하고 말을 말기로 하였다.

 

이 책은 그간의 몇번의 '현대사 콘서트'를 책으로 엮은 것인가 본데,

책으로 읽으니 현장감이 덜한 아쉬움은 있지만,

나처럼 국사,세계사가 구멍인 사람도 쉽네 이해되는 장점도 있다.

머리말은 주진우 기자가 썼고, 맺음말은 함세웅 신부님이 쓰셨는데,

이 둘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한권이 책이 되었고,

'누가 우리 시대 지도자인가'하는 부분에서 나의 갈증도 해소되었다.

 

주진우가 쓴 머리말을 일부만 옮겨보자.

신부님을 알아갈수록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신부님을 찾아온 분이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고 계셨습니다. 한참을 듣다가 말이 안 된다며 제가 말을 끊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저를 나무라면서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습니다. 대화가 끝나고 신부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분이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나한테까지 왔다. 신부가 말은 들어줘야 할 것 아니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부끄러웠습니다. 신부님의 삶과 말 그리고 고뇌와 결단은 항상 저를 되돌아보고 깨우치게 했습니다.

"신부님은 우리 곁에 오신 성인聖人이시구나!" 가끔 욕을 하실 때만 빼고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7쪽)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해우소'라고 할 정도로 내 하소연을 다 받아주니까,

친구가 욕을 할때만 빼고는 성인聖人으로 모셔야 하려나 보다~(,.)

 

암튼 곽금주가 하는 얘기에는 반발을 했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이 책을 한권한권을 멘붕에 빠진 사람들에게 치료서 내지는 지침서 쯤으로 권하고 싶어졌다.

 

ㆍㆍㆍㆍㆍㆍ제가 가톨릭 사제다 보니 기도 얘길 많이 합니다만, 기도는 곧 신념입니다. 기도라는 것 자체가 자기 신념의 확인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신념을 가지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원 가꾸는 분들도 말씀하시잖아요. 사랑을 준 꽃이 더 잘 핀다고요. 이 세상도 아름다워지게끔 우리가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ㆍㆍㆍㆍㆍㆍ

텔레비전에 박근혜가 나와도 그냥 이렇게 지켜봅니다. "음, 오늘은 옷을 저렇게 바꿔 입었구나."하면서요.(박장대소). 그것 때문에 흥분하면 내 건강만 나빠지잖아요. 그러니까 가만히 관찰하는 거예요. 대신 일기를 쓰세요. 이를테면 박근혜가 무리한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싶으면 집에 가서 일기를 쓰는 겁니다. '야, 참 이 사람이 이렇게 무리한 일을 하고 있다. 바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라고요. 이게 나중에 역사가 됩니다.(56쪽)

 

함세웅은 이런 성인聖人이지만,

주진우가,

"신부님은 거짓말 안 하시죠? 저는 신부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 묻겠습니다. 정말로 텔레비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오면 욕 안 하시나요?"

라고 묻자,

"아니, 저를 믿지 마시고 하느님을 믿으셔야죠.(청중 폭소). 저도요, 개인적으로는 욕 좀 해요. 그렇지만 뭐ㆍㆍㆍㆍㆍㆍ."라고 대답하고,

그런 함세웅을 향하여, 주진우는,

"그냥 문학적인 표현이다, 이 말씀이죠?(웃음)"

라고 하며 퉁친다.

 

이쯤 되면 하느님도 아니고 성인聖人도 아닌 내 친구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앉아,

나를 일기장 삼아 맘 놓고 욕이라도 하라고 톡을 보내봐야겠다.

참으면 병 된다는데,

직업도 직업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친구의 병을 키우면 좀 그렇지 않겠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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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0 16:58   좋아요 1 | URL
저도 욕 너무 자주합니다.
노가다 판에 있으니....ㄷㄷㄷㄷ

양철나무꾼 2016-11-14 14:18   좋아요 0 | URL
전에 전 ‘디비져 자라‘고 했더니,
‘자빠져 자라‘고 화답한 친구랑, 엄청 싸웠었습니다.

욕이고 뭐고 간에 모호한 것보다는 확실한게 좋습니다, 그래서.

화끈하고 질펀하게 욕 한번 하고 싶은데...
형상화되지도 않을 뿐더러 입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는~ㅠ.ㅠ

지금행복하자 2016-11-10 17:02   좋아요 0 | URL
욕의 카타르시스도 있어요 ㅋㅋㅋ

양철나무꾼 2016-11-14 14: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모든 배설에는 카타르시스가 따른다는~.
책임도 따라야 겠지만요~!

cyrus 2016-11-10 17:34   좋아요 0 | URL
박ㄹ혜에게 욕 한 번 안해본 사람은 참을성이 아주 많은 성격이거나 박사모 골수 회원일 겁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4 14:21   좋아요 0 | URL
욕도 애정의 다른 표현이랍니다.
욕 하는게 아까워요.
아예 관심 따위가 없다는~ㅠ.ㅠ

낭만인생 2016-11-10 17:50   좋아요 0 | URL
욕은 하는 사람은 좋지만.. 듣기가 어려워서리... 하여튼 요즘 욕 안하면 바보이거나 새++골통들 아닐까 싶네요.

양철나무꾼 2016-11-14 14:27   좋아요 1 | URL
전에 어떤 자료의 이면지로 ‘욕 사전‘의 일부를 봤는데,
적절한 우리 말 욕들을 어원을 따지고 보면 과학적인게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ㅋ~.
(‘아름답기 씩이나~‘ 하고 속으로 뭐라실지 모르겠지만~(,.))

하긴 맨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요즘, 대숲을 향하여 욕이나 질펀하게 하고 묻어버리고 싶은 나날들입니다.


나와같다면 2016-11-10 18:56   좋아요 3 | URL
서로 감정적으로 지지해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힘든 시기를 지내는데 힘이 되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6-11-14 14:31   좋아요 1 | URL
전 남편이 좀 부추기는 경향이 있어요.
집회나 시국 선언 참석 안하면, 매국노 정도로 취급해서리...--;

좀 더 나이 들면 대열에서 낙오되거나 힘들어 탈진 하는 등 몸이 못 따라줘서,
집회에 참여하지도 못할테니,
힘들어도 따라다닐 수 있을 때 따라 다녀야겠어요.

2016-11-10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4 14:32   좋아요 2 | URL
아핫~^^, 프로포즈 받는 기분이예요.
주무시기 전 생각나서 드렀다 하시니~^^

날이 쫌 꾸물거리는데,
그래도 님 덕분에 맘만은 환해집니다.
남은 오후 시간 우리 힘내자구요~^^

단발머리 2016-11-11 11:34   좋아요 1 | URL
읽고 싶어서 대출예약해두고 기다리고 있어요. 욕이 자꾸 나올려고 해서 괴로운 요즘입니다. 그래도 양철나무꾼님은 욕 안 하실것 같아요~~~~ㅎㅎㅎ

양철나무꾼 2016-11-14 14:37   좋아요 1 | URL
전 욕은 못 하는데 거친 표현들을 욕인줄 모르고 사용하긴 한답니다.
예를 들면 ‘디비져 자다‘ 같은 표현이요~^^
지금 대딩인 우리 아들, 예전 한글날마다 고운말을 써서 상을 받았는데,
욕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라더라구요.

이제 와 생각하면 욕은 말이죠,
문장에 스타카토 같은 것이니까 활력있는 삶을 위해선 필요하다 하는 주의입니다~^^

AgalmA 2016-11-16 01:08   좋아요 2 | URL
읽으신다더니^^
양철나무꾼님의 의도를 폄훼하려는 건 아니고요. 저는 한국의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아˝라는 경험 우선주의가 낳은 연장자 중심 위계 질서의 폐해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세월호 때도 그런 지적 많이 나왔죠. 어른들이, 전문가들(선원)들이 더 잘 아니까 믿고 따랐던 아이들의 죽음...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 심리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한국에서 해보지 않고 처음 시도해보는 많은 아이디어들과 실천들이 넘쳐 났으면 합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6 09:23   좋아요 1 | URL
님의 말씀을 폄하한 것이라 듣지는 않습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곽금주 님의,
˝이러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고요.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도리어 더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성장해보는 우리 개개인이 되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라는 부분과 관련,
이게 성장의 원동력이 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였습니다.
오히려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
얼마나 피폐해지나 직접 경험해 보라고 들이대는건, 너무 야박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였습니다.

저와 님, 결국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건데 말이죠.
다른 어법을 구사한 것이든지,
님이 저와 다른 해석 법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거죠.



감은빛 2016-11-17 15:41   좋아요 2 | URL
저도 한 욕하는 사람입니다만,
제가 만난 신부님들은 다들 욕 잘 하시던데요.
대표적으로 문정현 신부님은 정말 찰지게 잘 하시더라구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창비시선 404
이정록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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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의 시들을 읽고 있자니 세상 일로 착잡하고 어두워 있던 마음이 오랜만에 활짝 갠다. 마치 첫 햇살에 말리려고 대문 옆 담장 위에 올려놓은 어린 신발들을 보는 것도 같고 또 "어둔 저승길 미리 넘어보"려고 "달빛에 엎어놓"은 할머니의 신발들(「젖은 신발」)을 보는 것도 같다. 잘난 체하지 않는 점도 너무 좋다. 오래 헤어져 있던 친구나 형제가 옆에서 소곤소곤 들려주는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듣는 것도 같다. 시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산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라고 말하지만, 이 시집 속의 시들이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슬프고 아름답고, 맑고 깨끗한 시들이다.

책 뒷표지를 보면 신경림 시인이 이런 글을 남겼는데, 시집을 채 읽기전엔 그렇고 그런 헌사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시 한편한편에 무한위로가 되어,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한다.

 

기실 요즘의 나는 '멘탈 붕괴' 멘.붕.이었다.

정작 정치를 한다는 넘들이 국민은 아웃 오브 안중이고 자기네들 밥그릇 싸움에 연연하는게 눈꼴시어,

맨날 찡그리고 눈 흘기고 살았었다.

그러다가 이 시집을 읽게 됐는데 '웬걸~!'

시집 속 시들이 무한위로가 되는 것은 물론, 세상에 맘 붙이고 살 수 있도록 붙들어 준다고나 할까.

해설을 한 '김상천'은 그의 시들 속에 '사회시'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결손을 얘기했지만,

그의 시들이 그러한게 아니라,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에, 시를 읽는 사람의 관점에 관한 문제라고 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그동안 그의 동화나 동시, 산문들이 별로였던 것은 아니지만,

난 이런 시집을 기다려왔던 것 같다.

세상 일로 착잡하고 어두워 있던 마음이 오랜만에 활짝 개이는 그런 풍류같고 유머같은 시들을 기다려 왔던 것 같다.

요번 시집은 '제1부 가슴우리, 제2부 내가 좋다, 제3부 시의 쓸모, 제4부 우주의 놀이'로 나뉘었는데,

이런 경계나 나눔 따위가 무색할 정도로 모든 시들이 다 좋았다.

그의 시들은 일상에서 건져올린 것들인데,

그렇게 일상이 적절한 비유를 만나면 유머가 되나 보다.

 

개인적으로 '표제시'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도 좋지만,

'해 지는 쪽으로'가 더 좋았다.

 

해 지는 쪽으로

 

햇살동냥 하지 말라고

밭둑을 따라 한줄만 심었지.

그런데도 해 지는 쪽으로

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네.

 

나는 꼭,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

 

벗 그림자로

마음의 골짜기를 문지르는 까만 눈동자,

속눈썹이 젖어 있네.

 

머리통 여물 때면 어김없아

또다시 고개 돌려 발끝 내려다보는 놈이 생겨나지.

그늘 막대가 가리키는 쪽을

나도 매일 바라본다네.

 

해마다 나는

석양으로 눈길 다진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

 

돌아보는 놈이 되자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

 

그의 시는 종종 문장 끝나는 곳에 온점(.)이 마침표로 박혀있다.

'시에 무슨 마침표?' 하다가도 그것이 다짐이나 결기로 읽혀,

나도 마음을 다잡게 된다.

 

해를 좇는 것은 식물들의 속성이지 동냥을 구하는 것은 아닐진대,

해 지는 쪽으로 고개를 수그린다는 것으로 미루어,

키가 크지도 않고 키 큰 녀석들의 해 그림자에 갖힌 연약한 녀석이었나 보다.

그 연약한 녀석을 소외시키지 않고,

마음 한번 더 주고,

눈길 한번 더 준다고 하니,

그 마음을 알겠다.

나도 그 마음을 닮아 돌아보는 놈이 되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어야지.

오래 오래 여물려 종자가 되어야지.

 

늘 그렇듯 그의 시들은 내게 이중적이어서,

무한위로가 되고 숨통이 트이기도 하지만,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백두'라는 시에선 모처럼 어머니의 등장이 반갑다.

 

'사람의 영혼도 머리나 심장에 있는게 아니다 / 허벅지에 있다 위엄있게 죽는 게 소원이지만'이라고 노래하는 '영혼의 거처'같은 경우는 비유가 유머를 만난것도 아닌데 깊어서 서럽다.

 

'고정과 회전' 같은 경우는 온 지구를 아우르는 듯, 아니 온 우주를 아우르는 듯 심오하다.

 

고정과 회전

 

  들어올 때는 국밥집하고 순댓국집이 같은 식당인 줄 몰

랐지? 자네 내외처럼 식당 앞에서 옥신각신하다가 다른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많어. 이 문으로는 소머리국밥 먹

겠다고 씩씩거리며 들어오고 저쪽 문으로는 순대가 땡긴

다고 돼지 꼬랑지처럼 꼬부라져서 들어오지. 처음엔 병천

순대집이었지. 국밥집에 세를 줬는데 파리만 날리다가 나

가버렸어. 머리 잘 돌아가는 내가 벽을 터버렸지. 지 먹을

것 따라서 따로 들어왔다가 멋쩍게 한 탁자에 앉는 사람들

많어.

 

  그만 좀 웃어. 에어컨 한대 갖고 당최 시원해야지. 쓰레

기장에서 벽걸이 선풍기를 주워왔는데 회전이 안되는 거

여. 며칠 뒤 한대를 또 주워왔는데 요번엔 고정이 안돼. 그

래 메뉴판 옆에 나란히 걸어놓고 명찰을 붙여줬지. 왼쪽

놈은 "회전이 안돼요." 오른쪽 것은 "고정이 안돼요." 생각

해봐. 인생도 회전과 고정, 아니겄어. 또 잔머리만 굴리다

가 순대 속같이 잡스러워지는 거 아니겄어. 저 선풍기 때

문에 손님이 늘었어. 하나만 걸려 있으면 고장난 선풍기지

만, 둘이 붙어 있으니께 친구 같고 부부 같잖어. 동서니 남

북이니 하는 것도 서로 끄덕끄덕,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

을 한통속으로 섞으면서 살아야지. 우리 부부도 녀석들 때

문에 별명이 생겼어. 내가 회전댁이고 우리 집 양반이 정

지아저씨여. 아저씨가 오토바이광(狂)이거든. 그저 돌진이

여. 나야 얼굴 예쁘고 몸매 좋아서 쟁반 이고 나가면 사내

들 눈알이 팽팽 돌아가지. 귀가 밝아서 눈알 돌아가는 소

리까지 다 들려.

 

  선풍기 밑에 나란히 서봐. 기념사진 하나 박아줄게. 고

장난 선풍기도 저렇게 짝이 있는 거여. 둘이 끄덕끄덕 잘

살어. 메뉴 하나 양보 못하고 다른 문짝으로 들락거리지

말고. 고정과 회전이 연애고, 정치 경제고, 세상 모든 책이

여. 근데 안식구가 쎅시하게 생긴 게 고정이 잘 안되겄네.

국밥 좀 많이 잡숴야겄어. 나갈 때 갈비하고 등뼈 좀 끊어

가. 정지버튼이 안 먹히는 바가 있어야 사내답지. 그만 좀

웃으라니께.

 

심오함도 극에 이르면 유머러스해 지거나 단순해 지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시 '실소'에서 '웃기는 시를 쓰고 싶었다.'며,

'감동이 아니라면 재미라도 있어야지,'라고 하고 있지만,

시라던가 삶이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회적 현실을 직접 내지르지 않는 법이고 내지를 필요도 없는 법이다.

그냥 내지르기만 하는건 '배설'이라고 불러야지, '카타르시스'라는 시적 용어로는 무색하니 말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이라고 쓰고 '따뜻하고 웃음을 머금게 하여 위로가 되는' 것으로 읽는다.

그리고 목록 제일 위에 이 시집 속 시 한편을 올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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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1-10 16:08   좋아요 2 | URL
오늘도 추워요.
그리고 지금 비가 좀 내리구요.
덕분에 전 지금 좀 한가한데,
쌀쌀한것 같기도 하고 쓸쓸한 것 같기도 한, 그런 오후입니다.

괜히 센치해지려 하네,
마음을 추스르고,,,
우리 힘내자구요~, 불끈~!

yureka01 2016-11-09 17:10   좋아요 2 | URL
돌아보는 놈이 되자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

캬~~~그러게 말입니다..ㅎㅎㅎㅎ

양철나무꾼 2016-11-10 16:15   좋아요 1 | URL
이 구절의 대구도 좋죠?^^

캬~~하는데, 목넘김이 좋은 술 한잔 생각이 간절해 지는 것이,
오늘은 ‘비오는 날 술마시는‘ 雨酒클럽을 소집해 보아야겠습니다여~^^

나와같다면 2016-11-10 00:49   좋아요 1 | URL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거..` 사랑할때 경험해 봤어요..

양철나무꾼 2016-11-10 16:19   좋아요 1 | URL
사랑할때 경험해 봤다는 님의 댓글은 왠지 슬픈걸요.

현재진행형으로 바꾸면 안될까 싶기도 하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대‘도 생각나는 것이,
제가 노인네 티를 팍팍 내면서 한 말씀 드리자면,
한살이라고 덜 먹었을때 누리고 즐기세요~^^

2016-11-10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11-14 14:54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양철나무꾼님 좋은 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11-16 09:57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을 지금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하루를 경쾌하게 시작하게 되네요.
알파벳 님도 좀 쌀쌀하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하루 되시길~^^
 
마사지사
비페이위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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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인가 보다.

책을 조금만 봐도 눈이 쉬이 피로해져서,

예전처럼 책을 들었다하면 놓지 않고 끝을 보는 그런 끝장 독서를 할 수가 없다.

 

책을 좀 읽다가,

군데 군데 멈춰서서 곱씹으며 음미하는게 요즘의 독서법이다.

 

한편으론 '쭈욱~' 몰아 읽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긴 하지만,

그동안 혹사시켰으니,

이제는 잠깐씩이라도 쉴 수 있게 해 주어야 겠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직접 겪거나 두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는 입장이었는데,

이 책을 읽는 것과 맞물려,

(그동안 내가 읽은 소설중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았지 싶은데...)

보지 않더라도 믿을 수 있게 되었달까, 아니 보지 않더라도 믿고 싶게 되었다는 것이 적절하겠다.

 

내용은 맹인들에 관한 내용이지만,

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범주를 내 마음대로 확장시켜 해석한들 크게 비껴갈게 없겠다.

블랙홀, 화이트홀, 웜홀로 이어지는 우주나,

고아 소년 해리포터가 마법학교에 입문하게 되는 킹스크로스역 정거장까지 두루 가능성을 가지고 마음을 열었다.

 

사실 이 책의 제목 '마사지사'는 대충 아우르긴 했지만, 명확한 용어는 아니다.

이 책의 원제는 '추나推拿'라고 되어 있는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중국이 되었건 우리나라가 되었건 맹인이 아닌 일반인의 의료 행위는 불법이고,

그렇다고 마사지라고 하자니 살짝 퇴폐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지만,

이 책을 읽고 그게 치열한 삶의 기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숙연한 것이 숭고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은 섬세하다.

책 띠지 뒷면에,

"생동하는 디테일, 선명한 캐릭터. 작은 부분에서 전체를 통찰하는 힘. 예리한 시적 언어로 쓰인 문장들에서 기민한 창작력이 엿보인다."

2011년 제8회 마오둔문학상 심사평이라며 적혀 있는데, 책 전체를 아우르는 찬사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디테일을 너무 잘 살려냈을 뿐더러, 캐릭터들을 살아 움직이게 묘사하여,

책을 읽는내내 소설을 쓴 '비 페이 위'가 맹인이 아닌가 표지 뒷면이며 속지를 탈탈 뒤집어 보았다.

 

책을 찬찬히 읽다가 깨닫게 된 것인데,

맹인들만 사는 세상이고 맹인들만의 얘기였다면, 이 책은 그리 절실하지도 애절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맹인이 아닌 사람과 맹인을 구별하려 하고,

맹인만 하더라도 선천적인 맹인과 후천적인 맹인으로 경계를 나누려 하는데서 비극은 시작된다.

 

경계를 가르고 편을 나눈다는건 바꾸어 말하면 구멍을 만드는 것인데,

맹인들에겐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나,

낭떠러지나 구멍에 발을 헛딛는거나 목숨을 담보로 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두홍은 맹인이었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로 치부할 수 없었다.ㆍㆍㆍㆍㆍㆍ이제보니 맹인의 가장 큰 장애는 시력이 아니라 용기인 듯 했다.(114~115쪽)

 

이런 구절은 중의적이지 싶은데, 맹인과 맹인이 아닌 사람, 양쪽의 입장을 대변한다.

추상적으로 생각하기에 따라선 맹인의 장애는 시력인 것처럼 보이지만,

맹인들 세계에서 보게 되면, 시력은 다 똑같이 맹인이니 문제 될게 없다.

용기가 있고 없고, 에 따라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퍼질러 앉아 버리게도 되는 것이다.

 

그녀는 말에도 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푸밍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혈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었다'.(116쪽)

 

같은 凹를 가지고도 정확히 짚었을땐 '혈'이지만, 간과하고 비껴 헛딛게 되거나 넘어져 굴러 떨어지면 '구멍'이다.

 

중의학의 근거와 해법은 모두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무슨 현상이든 인체와 우주, 천지 만물을 연관시키는 음양오행 사상으로 해석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하지만 깊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학문이 더욱 오묘하고 아리송해진다. 양의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단계가 깊이 들어가도 쉽게 이해된다. 양의학에서는 신체를 다룰 때 그 자체의 물질성과 실증성만 따질 뿐 무슨 신비하고 오묘한 사상이나 명상 따위를 엮지 않는다. (55쪽)

 

이 부분은 추나를 하는 맹인 마사지사들의 관점이라기 보다는 저자 비페이위의 관점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중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된다면,

양의학을 우위에 놓고,

양의 위주의 사고를 정당화하긴 힘들것이다.

 

또 하나, 엄지손가락이 부러진 마사지사의 경우,

세상이 끝난 것처럼 묘사되고 끝내 낙향하게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추나라고 하는 맹인 마사지의 경우,

이론이나 경험도 중요하지만 손끝의 감각을 키우는게 중요할 것 같은데,

이 손끝의 감각이라고 하는 것은 손끝에 감각의 눈을 갖게 되는 것쯤으로 얘기하고 싶다.

맹인 마사지사들의 지난한 삶을 짐작컨대,

엄지손가락이 부러졌다고 하여 퍼질러 앉거나 일을 작파할 사람은 없다.

뼈는 부러지면 더 두껍고 탄탄하게 붙게 마련이고, 재활치료만 제대로 해준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설혹 신경을 다쳐서 엄지 손가락을 쓸 수 없게 되었다면,

다른 손가락이나 보조근 따위를 활용하는 법을 개발할테니까 말이다.

내용의 전개를 위해서 였겠지만, 너무 피상적으로 접근하려고 한 것 같아 아쉬웠던 부분이다.

 

맹인들의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세상에서고 경계를 나누고 편을 가르는 순간 차별은 발생한다.

 

맹인들의 감각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려 하지만,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도 이렇게 이분법적이기만 한 것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책 속엔 이런 구절들도 나온다

연애하는 사람은 이런 식이다. 이들의 입술은 언제나 뜨겁게 달아올라 있어서 입맞춤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그런데 입맞춤을 할 수 없다면? 입씨름을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연애의 기본 패턴이다.(124쪽)

연인 사이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말투다. 말투는 말 속에 숨은 뜻을 보여준다. (127쪽)

 

 

샤오쿵의 부모님이 샤오쿵에게 한 이 말을 두고 한참을 생각했는데,

세상은 뜬 눈으로 살지라도,

손끝, 발끝은 물론이거니와 온 감관을 열어 총동원하여 더듬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싶어서 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더듬으면서 살아가도, 우리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고,

그것을 통틀어 우리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니까 말이다.

멀리 선전으로 떠나기 전날 밤, 부모님은 샤오쿵에게 분명히 말했다. 네 연애와 결혼에 대해 우리는 전혀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삶이 라는 것은 '살아가는'것이지, '더듬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거라. 네가 전혀 앞을 보지 못하니, 우리는 너를 '더듬어'가며 '살아가는' 남자한테는 절대로 시집보낼 수 없다!(137쪽)

잠깐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둘 다 더듬어 가는 사람끼리라면 공감하고 소통에 이를 수 있는 부분이라도,

한명은 맹인이고 다른 한명은 맹인이 아닐 경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매워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은 떨어질 수도 있으며,

한 명은 안 보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안 들리는 다른 종류의 장애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때문에 이 책은 읽기에 따라선 맹인들의 일상을 그려낸 얘기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타성에 저항하고 사랑을 쟁취하려는 이땅 모든 젊은이들의 치열한 사랑 얘기로도 읽힌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맺는다. 

간호사는 문득 그녀가 자신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상을 바라보는 분명한 시선, 지극히 일반적이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그런 시선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간호사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았다. 무서워서,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484~485쪽)

소설을 읽고 폭풍 감동하는 것은 기본, 이런 교훈을 얻은 건 덤이다.

이렇게 맹인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선 맹인이 일반이고 맹인이 아닌 사람이 이반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맹인이 아니어서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일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본위의 지독한 이기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맹인이 아닌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인데,

인간 중심의 시각과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지극히 편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 하루 눈 멀고 귀 어두워지는,

하루 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다.

이리 생각하면 지극히 겸손하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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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1-09 01:02   좋아요 1 | URL
맹인에게 길 가르쳐 줄 때 덥썩 잡아서 안내하면 안 되고 상대가 나를 붙잡도록 조심히 다가가야 한다는 이야길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생각이 납니다. 시각이 안 보이니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우린 평소 자기 습관대로 상대를 대하니 그런 섬세함을 놓치죠. 왼손잡이들이 어려운 세상 시스템처럼 사람에 대해서도, 만물에 대해서도 섬세할 일이 많고 많아 참 어려워요.

양철나무꾼 2016-11-09 15:21   좋아요 1 | URL
며칠전 저녁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지하철에 올라타다가 맹인안내견을 보고 깜놀했어요.
그 개는 착해서 말이지 주인의 손에 붙들려있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물 흘리고 있더라구요.
맹인 주인은 한참동안을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다가,
내릴 곳에 이르러 헐레벌떡 뛰어내리는데,
그 개가 어찌나 힘들게 몸을 일으키던지...
여러가지 생각이 복잡했어요~ㅠ.ㅠ

겨울호랑이 2016-11-09 06:57   좋아요 1 | URL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종착역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의미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그래도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6-11-09 15:26   좋아요 2 | URL
전 한때 참 기고만장했달까요?
거슬리는게 없이 앞만 보고 내달려온 느낌이예요.

그러다가 요즘 들어서 내 몸들이 내 의욕을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자제하게 되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겸허해지고 겸손해지지 않고서는 다른 도리가 없답니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사는건...모든 이들의 소망이겠죠.
그러니 우리 몸을 이뻐해주고,
몸이 하는 소리에, 몸이 내지르는 비명에 귀를 기울이자구요~^^
 

그렇지 않아도 멘.붕.인데,

이런 넘은 시선집중에 왜 나오는건가 모르겠다.

어차피 중앙일보 따윈 읽지도 않지만서도,

논설위원이란 존칭이 무색하다.

 

11월 4일 신동호의 시선집중. (==>링크)

11/4 (금) "'최순실 정국'의 해법과 전망"
-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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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04 11:26   좋아요 1 | URL
세월호에서 집단 트라우마, 메르스에서 집단 안전 위기감, 지금 순실사태에서는 정치 공황상태...ㄷㄷㄷㄷ

양철나무꾼 2016-11-04 11:39   좋아요 2 | URL
모든 사태에서 핵심은 박근혜인데,
핵심은 빠지고 논란만 가중시키는 꼴이네요.

어찌되었건,
`멀쩡한 농민이 죽어도 된다`는 넘을, 참~(,.)

AgalmA 2016-11-04 12:27   좋아요 1 | URL
저 패널로 해법 전망? 말세 해법으로 풀어가실랑가.....

양철나무꾼 2016-11-04 12:34   좋아요 1 | URL
완전 막장 토론이었어요. 끝부분에 `멀쩡한 농민이 죽어도 된다`에서 신동호가 급마무리 마이크를 내리더라구요.
내내 마음이 심란하고 정신이 어수선해 죽겠습니다.

AgalmA 2016-11-04 12:34   좋아요 1 | URL
전 김진 위원 나오면 안봐요. 너무 혈압이 올라서.

양철나무꾼 2016-11-04 12:39   좋아요 1 | URL
며칠전 진중권이랑도 완전 난리 아니었더라구요. 그래야 재밌으리라 생각해서 여기 저기 등장하는건지 모르지만...정신건강에 안 좋을테니 저도 이제 안 보고 안들을래요.
옛날엔 시집 살이 3년 귀막고 눈감으랬는데, 이젠 정치판을 향하여 그리하여야 하려나 봅니다~ㅠㅠ

AgalmA 2016-11-04 13:15   좋아요 1 | URL
요즘은 김어준의 뉴스공장(tbs 아침 7~9)이 대세 아님까. 특종 팡팡~ 조국 교수, 박원순 시장 나와서 박근혜 하야를 얘기하는 속시원함! 왜 영양가없는 신동호를 듣고 피폐해지세요~ 적진 동태 파악도 좋지만 시간이 넘 아까움.

양철나무꾼 2016-11-08 22:21   좋아요 2 | URL
전 그런 의미에서 악마기자 정의사제를 장만했습니다, 음화화화~^^

cyrus 2016-11-04 16:51   좋아요 1 | URL
권석천 논설위원과 그 외의 몇몇 논설위원들은 한쪽 방향에만 치우치지 않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중앙일보에 출입한 일이 여러 차례 있어서 그분들의 진짜 생각들을 들어볼 수 있었어요. 김진 논설위원이 중앙일보 대표 논설위원으로 많이 거론되긴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진 논설위원 때문에 중앙일보 좋은 이미지 다 깎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6-11-08 22:24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전 아무래도 cyrus님보다는 올드하니까 조중동을 묶어서 생각하곤 했는데,
님의 이 댓글을 읽고보니 그냥 뭉뚱그리면 안 되겠네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신 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