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지음, 서숙 옮김 /

 시공사 / 2014년 1월

 

 

그 소도시에는 벙어리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늘 같이 있었고 아침이면 일찍 집을 나와 팔짱을 끼고 일터로 걸어갔다.(후략)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처음 두 문장을 읽는데 가슴 속 저 밑에서부터 슬픔이 조금씩 차올랐다.

슬픔이 차오르는데 반대로 나는 침잠하고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속수무책이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저 둘 중 하나는 안토나풀로스이고 다른 한쪽은 싱어인데,

안토나풀로스가 정신병원에 보내지면서 둘은 헤어진다.

그 다음 방문이 마지막 면회였다. 싱어의 2주일 휴가가 끝나기 때문이었다. 안토나풀로스는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늘 하던 대로 병실 구석에 함께 안았다. 빠르게 순간들이 지나갔다. 싱어의 두 손은 절박하게 움직였고 갸름한 얼굴은 창백했다. 드디어 떠날 시간이었다. 일하러 가기 전 헤어질 때 그들이 매일 그랬던 것처럼 싱어는 친구의 팔을 붙들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안토나풀로스는 졸린 듯 그를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싱어는 두 손을 주머니에 푹 찌루며 병실을 나왔다.(120쪽)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린 안토나플로스를 탓할건 없다.

사람은 잊어버리니까 사람이다.

새로 기억하는 것만큼 잊어버리니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떠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두통에 시달리느라 얼굴을 찌그러뜨린 채로 살든지,

아마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베토벤을 좋아하던 그가 이렇게 쑤욱 밀고 들어올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이 입에 주먹을 쑤셔 넣으며 울던 장면을 흉내내며 눈물을 참았다.

 

믹은 갑자기 얼어붙었고 음악의 도입무만 심장 안에서 뜨거웠다. 그다음에도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몰랐지만 계속 기다리며 얼어붙은 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잠시 후 음악은 다시 더 힘차고 크게 시작되었다. 하느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이것은 자기 자신, 낮에는 걷고 밤에는 혼자 있는 믹 켈리였다. 갖가지 감정과 계획을 가지고 뜨거운 태양 속을, 그리고 어둠 속을 걷는 아이. 이 음악은 믹이었다. 확실히 믹 자신이었다.

  믹은 귀 기울여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음악이 안에서 들끓었다. 어떻게 들을까? 나중에 잊지 않기 위해 한 부분에 집중할까? 아니면 생각도 말고 기억하지도 말고 연주에 자신을 맡긴 채 각부분마다 귀를 기울일까? 와! 온 세상이 이 음악이었고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다 듣지 못할 것 같았다. 도입부가 다시 울렸고 꽉 쥔 주먹으로 가슴을 치듯 여러 가지 다른 악기들이 각각의 음을 동시에 연주했다. 그리고 1악장이 끝났다.(149쪽)

 

믹 켈리가 인생의 음악을 만나는 장면이다.

교향곡으로 쳐도 긴 편에 속하는 베토벤 3번을,

5분일수도 있고 밤의 절반일수도 있다고 표현한다.

 

분위기를 바꾸어,

내 인생의 음악은 뭘까.

그동안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Jackson Brown 의 'The road Out & stay'가 아닐까 싶다.

절정에 이르렀다 싶을때 The road Out 이 끝나고, stay로 넘어가는 그 부분에서,

같이 호흡을 멈추고 숨을 고르게 된다.

 

아아아~,

이렇게 센치해지는게,

이 책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때문인지,

아님 베토벤 때문인지,

베토벤 때문에 생각난 옛추억 때문인지,

그도 저도 아닌지 모르겠지만,

난 Jackson Brown 의 'The road Out & stay'나 돌려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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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1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2-17 13:32   좋아요 2 | URL
역쉬 님은 족집게이신듯~^^
엊저녁 내리는듯 아닌듯 비가 내려주셨고,
저는 뼈다귀해장국의 뼈를 쪽쪽 빨아가며 먹었는데,
뜨뜻한걸 먹으니까 한결 나아지더라구요~^^

ICE-9 2017-02-16 20:00   좋아요 1 | URL
아, 잭슨 브라운의 저 노래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라이브 마지막에 참 어울리는 노래죠. ‘stay‘ 부분에 이제 떠나려는 가수와 그것을 붙잡으려는 팬이 대화하는 것 같은 가사도 재밌고^^ 저 노래가 실려있는 음반 ‘running on empty‘도 무척 좋아서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양철나무꾼 2017-02-17 13:40   좋아요 2 | URL
저는 90년대에 저 노래, 저 앨범을 빽판으로 들었는데, ㅋ~.
잭슨 브라운의 아내가 자살을 한 이후로 만든 곡이란걸 알게 된 후,
(제맘대로) 그런 식으로 감정 이입해서 들었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즐겨듣던 또 한곡이 스모키 ‘왓캔 아이 두‘네요.
추억 돋네요~^^

‘왓캔 아이 두‘를 우리말로 적은 이유는,
(그렇게 귀로 들어 우리말로 옮겨적듯 고래고래 따라 불러서라는~, ㅋ~.)

[그장소] 2017-02-16 21:03   좋아요 1 | URL
잊어버리니까 ㅡ 사람이다...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데도 그런데도 잘 잊고마는걸 .. 나이 탓으로 돌리며 편하게 하룰 또 보내네요. 조금씩 어디선가 제 세상 일부들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
당신의 감상에 턱하니 순한 개 앞 발처럼 얹고 .. 끄덕끄덕~

양철나무꾼 2017-02-17 13:48   좋아요 2 | URL
늘상 느끼는거지만 님의 댓글은 뭐랄까, 감각적이예요.
통통거려서 좋아요~^^

잊지않으려고 애쓴다고 하시니 한니발 렉터가 떠올랐어요.
님도 아실텐데 한니발 시리즈 중 ‘한니발 라이징‘에 한니발의 어린 시절 얘기가 나오는데,
거기서 어린 한니발의 가정교사가 한니발에게 ‘기억의 창고‘란 방법을 통하여 기억하는 법을 가르쳐줘요.

예전엔 뭐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잊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거니와,
나이 핑계를 대며 잘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그래요~^^

[그장소] 2017-02-17 20:00   좋아요 1 | URL
세월의 무게는 기억의 창고를 아무리 잘 간수해도 때가되면 물러나지고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걸 피할수 없는듯 해요 . 그걸 그저 노화라고 하면 어쩐지 다 당위를 얻는 것도 같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주는 분이니 그리 보이죠! ^^
한니발 기억법 , 저는 스티븐 킹 에서 드림케쳐 ㅡ를 더 제게 맞는 기억창고 방식으로 받아들였는데, 이것도 재미있네요!^^
그건 읽었을텐데 ㅡ 한니발이 제겐 그닥 매력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나봐요... 어느새 밀쳐진걸 보면..!!^^

yureka01 2017-02-16 22:30   좋아요 1 | URL
제가 젝슨 브라운의 광팬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2-17 13:51   좋아요 2 | URL
잭슨 브라운은 이글스 호텔캘리포니아와 쌍벽을 이뤄줘야 제맛이죠~^^

희선 2017-02-17 02:46   좋아요 1 | URL
시간이 흘러 잊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것 때문에 잊는다면 좀 슬플 거예요 사람이 잊는다고 하는데 뇌 속에는 그게 다 있다고도 하더군요 그래서 어떤 일 때문에 잊었던 일이 불쑥 떠오를 때도 있는 거겠죠 책이 베토벤이 옛날 일을 생각나게 했나 보네요


희선

양철나무꾼 2017-02-17 13:58   좋아요 3 | URL
시간은 순차적으로 흘러가지만, 기억은 순차적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군요, 얄궂은 뇌의 장난이군요.
그래서 없어진 손가락이나 발가락 따위가 아프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거군요.

책이, 음악이, 그리고 날씨가 센치해지게 했는데...영화로도 나왔네요.
한번 훑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잠자냥 2017-02-17 12:25   좋아요 1 | URL
제가 참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리뷰로 다시 보니 좋네요.

양철나무꾼 2017-02-17 14:01   좋아요 2 | URL
님이 그 리뷰 쓰셨을때 봤었습니다.
완전 좋았었습니다.

저야 아직 리뷰도 아니고, 페이퍼일 뿐인걸요.
조만간 리뷰를 쓰겠습니다, 불끈~!

2017-02-17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7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2-18 18:35   좋아요 0 | URL
부코스키가 <고양이에 대하여>에서 베토벤에 대한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베토벤 애쓴 음악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양이처럼 내 집 거실에서 뒷다리를 들고 거시기를 핥고 있는 걸 용인할 정도까지는 아니다ㅋㅋ 고양이가 베토벤 이김ㅎㅎ 아, 진짜 이 책 읽으며 짠하면서 폭소 터트리게 하는 부분 많아 유쾌했습니다. 안 읽어 보셨음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세요. 부코스키가 괴발개발 그린 고양이 그림이 다른 책 삽화로 실리지 않은 것도 이해됨. 너무 개처럼 그려서ㅋㅋ

양철나무꾼님 본문에 누가 되는 댓글이 아니길-,-;; 조인성 주먹 울상에서 저는 코믹 코드로 넘어가 버렸다는;

양철나무꾼 2017-02-20 11:00   좋아요 0 | URL
찰스 부코스키는 익살스런 표지 때문에 기억하고 있어요.
몇권 가지고 있는 것도 같은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해서...그 매력은 아직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조인성 주먹 코믹 모드 맞는데, 아무도 언급 안하셔서...
역시나 내가 너무 진지 모드였나 했답니다~ㅠ.ㅠ
 

며칠전 사촌여동생이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사촌여동생의 딸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데 외롭다고 했단다.

사는데 치여 아들을 어렸을때부터 어린이집과 각종 학원으로 돌린 전적이 화려한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분명 호강에 겨워 요강에 밥 말아먹는다고 했겠지만, ㅋ~.

완전 애정하는 조카의 일이라,

요즘은 애들이 조숙해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며 신경을 써주라는 말로 위로했다.

 

어쩌면 조카가 진짜 외롭다고 느꼈을 수도 있지만,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의 거울이라고,

어른들이 '외로워, 외로워~'하는 걸 듣고 흉내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고.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3월

 

책을 들이기는 하지만, 읽다 보면 마음이 아플까봐 한쪽으로 접어두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렇지 않을까 한참 망설였는데,

읽다보니 웬걸...'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하고 등허리를 쓸어내려주는 느낌이랄까,

무한위로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열한 꼭지,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취향 탓이었겠지만,

네번째 꼭지 '나는 아직도 책을 먹는다 _아벨서점 곽현숙 傳'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책에 관한 내용이어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아벨서점 주인장인 곽현숙 님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키운 방식에 크게 감명을 받았던 거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자기이길 원하는 게 있어. 두 살 때 친가에 맡긴 아이를 초등학교 때 데려왔어. 아이 키우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지고 어린 아들한테 배운 것도 많아. 젊은 세대도 이해하게 되고, 무엇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키워지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 아이 환경이 어떻습니까?' 나는 그 아이가 처한 환경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고 싶었어. 물질이나 먹는 거, 메이커 사 입혀서 그 아이를 혼란스킬 수는 없었지. 외로움을 똑바로 알아야 하고, 스스로 서야 하고, 네가 지킬 건 지켜줘야 한다, 부족한 것이 우리를 키운다고 가르쳤어. 억눌리면 스스로 일어서려는 꿈틀거림이 생기고, 도전하고 발전하게 돼. 하나뿐인 귀한 아들이지만 경제적으로 절제시키고, 책임질 건 철저히 책임져야 하나고 생각했어.(87쪽)

외로움을 알고 스스로 서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가장하고 흉내내는건 좀 그렇지만,

본인이 스스로 느끼는 외로움이라면 나이가 많고 적고, 를 떠나서 존중해 줘야 하는게 아닐까.

사람의 다양한 감정과 마찬가지로,

그 감정 중의 하나인 외로움 또한 귀하고 소중한 감정이다.

사람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바깥으로 확장시키는 감정이어서, 관계를 풍요롭게 한다면,

외로울때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들여다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얼마나 고되면 그렇게 울 수 있냐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울어질 수가 있냐고? 그 울음을 누가 들을 수 있다면, 누가 그 저릿저릿한 가슴을 안 만져줄 수 있냐고? 그 울음을 누가 들을 수 있다면, 누가 그 저릿저릿한 가슴을 안 만져줄 수 있냐고? 술의 힘을 빌었곤 뭐를 빌었건 그 울음이 기도지. 내가 그 애한테 그랬어. "너 기도가 뭔지 아니? 거 찐찐하게 우는 게 기도야.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울어질 수가 있냐." 자기 몸을 갖고 이리저리 뒤적여보면서 걸어가는 그 짓이 기도 아니겠어? 눈 하나 얻으려고 수많은 눈을 쳐다보면서 애타게 스킨십 하면서 비적비적 다리에 힘도 없이 비실비실 가지만 진짜 자기를 향해 가는 거야. 균형이 안 잡혀도 하나의 눈은 자기를 보고 가. 비틀거리며 가든 똑바로 가든 움직이는 몸과 눈 속의 나를 향해 가는 게 기도가 아니겠어?

'애 썼어'하고 그냥 봐주는 눈, 그거 하나만 마주쳐도 비가 내려지고 영양분이 섭취돼. 그게 각색해서 되는 거겠어? 그냥 그래지는 거 아니겠어? 대상을 향해 걸어가지만 자기 안에서 뭔가 자라가고 눈을 얻어가는 과정이지. 밖을 향해 걸어가지만 안에서 큰 작용이 일어나. 밖에서 사건을 불러일으키고 아픔을 일으키고 그렇게 돌고 돌고 겪어내며 앞으로 걸어가게 하는 거야. 다 자기 안에 씨앗으로 인해서 일어나.(94쪽)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외로움에 몸서리쳐본 사람만이,

타인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이 사람을 도와야지 사람이 책에 매이면 안 된다는 것도 현실과 부딪히면서 깨닫고. 이 세상에서 행동하게 하지 못하는 거라면 사상이 아니라는 것도, 무엇보다 인간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도 절실하게 느꼈어. 책은 필요할 때 만나는 친구가 돼야 해. 그렇게 친구를 만나면 얼마나 재밌어?

ㆍㆍㆍㆍㆍㆍ책 속에서 만난 일이 현실에 있고, 현실에 있는 일을 책 속에서 만나. 책이 생활과 맞물리지 않으면 죽은 책이야. 소화도 안 된 책을 먹고 휘둘리고 살면 안 돼. 자기도 행하지 못하는 사상이 무슨 사상이겠어? 사람이 책을 먹어야지 책이 사람을 먹으면 곤란하지. 자기도 행하지 못하는 수많은 잣대를 남한테만 들이대게 만드는 생각만의 지식이 되어선 안 돼. (89쪽)

라고 하는데,

이건 책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난 벌써 여러 번 책 뿐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내가 책을 찾고 고르는게 아니라,

책이 나에게 다가온달까, 간택되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건 내 지식의 소박함 때문이 아니라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ㅋ~.

알아먹을 수 있는 말로 쉽게 쓰여진 책이 좋고,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그건 내가 읽어온 책들이 그렇고,

책과 연결된 삶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수행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잣대를 그대들에게 들이댈 일이 결코 없으니,

편하게 와 머무시라.

쉽게, 편하게 막대해 주어도 좋겠다, ㅋ~.

 

책을 꾸준히 읽다보면 문리가 트이듯 어느 순간 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경험이 축척되면 미립이 나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맛에 오늘도 책을 읽고,

좋은 경험을 생활화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사람 속에서 멀미를 해. 파장이 달라서 그런가, 사람이라는 게 대개 자기 기준으로 보잖아. 밀어내거나 당기거나 하는데,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들과 닿는 선이 미식거려서 웅크리고 책방에서 앉아 있기나 하고, 자기 틀을 많이 벗지 못하고 멀미를 하고 살드라고. 머리가 너무 까불면 재주를 부리려고 하니까 못 쓰는 몸이라고 하거든. 몸이 자유로워지려면 머리가 까불면 안 돼. 글을 본다는 것은 자기를 읽기를 읽는 연습을 하는 거거든. (100쪽)

어찌되었건 이 책을 통틀어 이 구절을 새기며,

그렇지만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의 거울이다'로 끝맺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알라딘 서재 책마실을 다니다 보니 이런 책이 눈에 띈다.

 

 

 

 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제목부터 재미있다.

아이는 키우면 어른이 되는데,

혼자는 키우면 외로움에 단련되려나.

아벨서점 주인장인 곽현숙 님 버전으로 '외로움은 힘이 세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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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4 20:20   좋아요 0 | URL
외롭다 ㅡ 느낌 든 적 있냐고 초등2때 그랬냐고 이 글 읽으며 물으니 어떤 외로움 이냐고 아이가 되물어요. 어떤 ㅡ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질문 괜히 했구나 ㅡ 그랬어요. 아이도 아이 나름의 고됨이 왜 없었겠어요 . 그걸 아는 것 같아서 그냥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 주고 말았네요 . ㅎㅎㅎ 좋다 ㅡ 이런 글 ..^^

책읽는나무 2017-02-14 21:21   좋아요 1 | URL
ㅋㅋ
저도 이 글을 읽고 울딸들에게 물었어요.
˝너희들 혹시 외로운적 있나?˝
처음엔 아니오~~하더니 갑자기 있다더군요.
어떤때?물으니
돌아가신 할머니랑 할아버지 생각나면 외롭다고~~~ㅜ
그래서 ‘엄마가 옆에 있어도?‘라고 물으니 그렇다는군요!!!
아이들의 외로움의 의미는 무척 난해합니다요!!!!
슬픈감정과 외로움을 혼동하는지도???^^
저도 그장소님처럼 질문 괜히 했다고 생각했었구요ㅋㅋ

[그장소] 2017-02-14 22:33   좋아요 1 | URL
외로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아이가 안다고 생각하니 참 복잡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어쩐지 기특했어요 .
ㅎㅎㅎ
음 ~ 슬픈감정과 혼동이라... 윤인 좀 커서 그런지 엄마도 알면서 뭘 물어 하는 뉘앙스가 더 많았던것 같아요 . 아직 직접적인 상실 ㅡ 죽음 이런건 아이가 안 겪어본 상황이지만 ...

양철나무꾼 2017-02-15 09:33   좋아요 2 | URL
[그장소]님이 좋다고 해주시니 아침부터 기분이 날아갈듯 합니다~^^

아~, 이 댓글 읽다가...왠지 모를 감정이 벅차 올라 좀 울었습니다.
˝아이도 아이 나름의 고됨이 왜 없었겠어요 . 그걸 아는 것 같아서 그냥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 주고 말았네요 .˝라는 구절에 그리되었습니다.
언제 님이랑 외로운 사람끼리 술잔이라도 기울이면셔~, 회포를 함 풀어야 할텐데...ㅋ~.
이 댓글 너무 좋습니다, 쪼옥~♥

양철나무꾼 2017-02-15 09:37   좋아요 2 | URL
책읽는나무 님은 참 따뜻한 엄마일거 같아요.
님 같은 말의 온도와 배려심을 가진 엄마를 둔 아이들은,
님과 마찬가지로 따뜻하게 자랄 거예요.

뚝뚝이 아들을, 것도 이제 다 큰 아들을 둔 엄마로서 완전 부럽지 말입니다~!^^

책읽는나무 2017-02-15 12:14   좋아요 2 | URL
나무꾼님!!
우리집에도 뚝뚝이 아들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저의 이중적인 무뚝뚝한 성격을 닮은 녀석이죠^^
그래서 전 아들을 둔 엄마 마음도 완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모쪼록 이쁜조카가 얼른 외로움?을 훌훌 털고 일어나길 바랍니다^^


[그장소] 2017-02-15 12:45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댓글도 최루성!! 저까지 울컥울컥 해지잖아요 ~ 아앙~~😂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서 그렇게 또 정이들고~ 🎶 하는 노래 있지요? 빈 잔 였나? 우리한테 지금 이순간 필요한 노래 같네요. 각자의 자리에서 잔하나 들고 저 공간 너머의 당신과 건배 하는 기분 ...이거 낮부터 취하겠어요!^^

순오기 2017-02-15 08:17   좋아요 1 | URL
울 아들은 독립한 것도 아닌데 외로워서 고양이를 키운대요.ㅠ 인간은 다 자기 몫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거겠죠~^^

양철나무꾼 2017-02-15 09:43   좋아요 1 | URL
연예인들이 그러더라구요.
일 마치고 새벽에 들어오면, 가족이나 배우자는 잠을 자는데,
개나 고양이는 자다가도 일어나 반겨준다고요.
그게 좋아서 키우게 된다구요.

이게 사람 위주의 편협함이지 싶다가도,
그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추운 겨울, 건강하셔야 합니다~ㅅ!

나와같다면 2017-02-15 16:28   좋아요 1 | URL
초등학교 2학년 어린 딸의 ‘외롭다‘ 는 말을 들었을때..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서늘하게 내려 앉았을까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7-02-15 17:45   좋아요 1 | URL
모든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아이의 ‘외롭다‘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조카는 그나마 젊은 고모 할머니가 같이 살면서 돌봐주는데 말입니다.
쉬는 날 졸린 눈을 비비고 조카랑 놀아주는걸보면...전 사촌동생이 좀 안쓰럽지 말입니다~--;

2017-02-16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6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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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침실 바깥에서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열린 창안으로 거세게 밀려들어오면서 커튼이 이리저리 펄럭거렸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는게 좋겠어요.

꼭 닫지는 말아요. 냄새가 예쁘잖아요. 지금 가장 예뻐요.

정답이에요.

그가 일어나 약간만 남기고 창문을 닫은 뒤 침대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거네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은, 그냥 좋네요.

이렇게 좋을 자격이 내게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그가 말했다.(109쪽)

 

너무 행복한 순간을 맞게 되면 오히려 불안해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기면 되는데,

어렸을 때부터 항상 준비하고 대비하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인지,

정상 다음은 내리막길 뿐이란걸 예감하기 때문인지,

날아가 버리거나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동안 앞만 보고 내달려와서 삶을 잘 몰랐었다.

아니 삶을 살아왔지만, 삶에 대해서 깊숙히 들여다 본적이 없다고나 할까.

삶의 숨은 이면들.

나이 들어가면서 산다는건 죽음을 대비하는 일이란걸 가끔씩 생각하게 되지만,

산다는 것은 더 멋지게, 더 잘 산다는 것으로 연결될 뿐이지,

죽음을 대비하는 것으로까지 여겨지질 않았었다.

 

그래서 였을까?

'밤에 우리 영혼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이, 노년의 사랑법이,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서 '사랑법' 자리엔 '삶'으로 대신해도 좋겠다.

 

기실, 노년의 사랑이라고 하면 이 책의 누군가 처럼 남우세스러워 좀 쭈뼛거리겠지만,

노년의 삶으로 바꾸어 얘기하면 좀 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친정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때부터 자유분망한 삶을 살아오셨고,

시아버지도 몇 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아주머니 한분을 만나 새로운 삶을 꾸리셨다.

게다가 내 직업이라는 것이 남녀노소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상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아프다고 맘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린시절의 나는 착한 아이였다.

공부도 제법 했고 행동거지도 모범적이었다.

근데 그게 내 안의 울림을 따른, 내가 하고 싶은 대로의 삶이 아니라,

어른들이나 선생님, 책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삶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남편을 만났고,

남편은 내게 무엇을 시키지도 않았고,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얘기를 귀담아주고, 내 의견을 북돋워주었기에,

그게 맏아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예스, 맘'표 결정장애인줄 몰랐었다.

넌 이곳 사람들을 지나치게 걱정하는구나.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이제 안 한다. 그걸 배웠지.

그녀한테서?

그래. 그녀한테서.

진보적이라든지 행실이 나쁜 아주머니로는 생각 안 했는데.

행실이 나쁜 게 아니야. 무지한 소리다.

그럼 대체 뭔데요?

자유로워지겠다는 일종의 결단이지. 그건 우리 나이에도 가능한 일이란다.

십대 소년처럼 구시네요.

십대 시절에도 이러지 못했다. 그럴 엄두조차 못 냈지. 하라는 일만 하며 자랐으니까. 내 생각엔 너도 너무 그렇게 살아왔어. 나는 네가 자발적이고 추진력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ㆍㆍㆍㆍㆍㆍ

아빠가 이런 얘기 할 때가 정말 싫어요. 난 나대로 살게 해줘요, 아빠. 내 인생은 내가 살 거예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ㆍㆍㆍㆍㆍㆍ(61쪽)

이젠,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하여 현재를 살기는 싫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다.

 

나는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어차피 다 알게 될 거고요. 누군가가 보겠죠. 앞쪽 보도를 걸어 앞문으로 오세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뒷골목으로 들어오면 마치 우리가 몹쓸 짓이나 망신스럽고 남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 같잖아요.(13쪽)

 

누가 됐든 밤에 따뜻하게 해줄 사람을, 함께 이야기나 나눌 늙은이를 대충 찍은 줄 알았어요?

ㆍㆍㆍㆍㆍㆍ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친절한 사람이요.(27쪽)

 

이 책이 분명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긴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 맞춤한다고는 못하겠다.

 

미국은 의료보험제도도 열악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 노령 연금 등 공적부조에서 의료보험이 지원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시골 마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여도 이렇게 멋지게 느껴졌을까?

 

혼자 자신의 먹거리를 해결하고,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하며,

집의 외부를 돌보고 가꾸는 것을 하고,

여력이 있어서 '밤에 우리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어르신들이 몇 명이나 될까.

 

거기다가 젊은 시절보다는 죽음에 노출될 확률이 많아지는데,

그렇게 서로 의지하다가,

누군가 먼저 세상을 달리한다면 그 상실감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암튼 중요한 것은 내 몫의 삶은 내가 사는 것이고, 내 취향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선택이 나의 몫인만큼, 책임도 나의 몫인 것이다.

 

내게는 언제일지 모르는, 가까울지 멀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하라는 소설일텐데,

현재에 충실하라고 읽히는 것이,

참 묘한 일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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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09 21:45   좋아요 2 | URL
흔히 노후를 대비하면 돈이 많이 모아야한다고 생각해요. 미래를 위해서라면 틀린 건 아닌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 노년을 혼자서 보낸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금방 느껴질 겁니다.

양철나무꾼 2017-02-10 16:50   좋아요 1 | URL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과 별개로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기만의 에고가 강해지는 것 같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말을 시키면,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자기 할말만 하고 딴소리 하는 걸 아주 흔하게 보거든요.
그럴때 말하는 사람은 답답하지만, 본인은 참 편할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가끔 타인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분들을 보게 되면,
다시 보여...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마음에 안 맞는 사람과 함께일바엔,
오히려 혼자가 낫다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따시키는 1인~--;

순오기 2017-02-09 23:07   좋아요 0 | URL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노년도 외롭지 않을 듯...^^

양철나무꾼 2017-02-10 16:51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은 지금도 넉넉하시잖아요.

전 님을 뵌게 한번뿐이지만,
지금도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더 더욱 이요~^^

2017-02-13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4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5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5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5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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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러스한 사람이 좋고, 글도 유머 코드가 배어있으면 좋지만,

내 성향은 유머 감각이라곤 하나도 없는 왕진지 모드이다.

때문에 책이나 넷 상에 돌아다니는 글을 읽을때 몰입하여 대성통곡을 하고 울어본 적은 여러 번 있지만,

포복절도하며 웃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어제와 오늘 직장에서 읽는데,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ㅋ~.)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어도 너무 꼬집었다.

개콘이나 SNL보다 재밌는거 같다.

 

이 책이 좋은 것은 '저자가 멋져 보이려 폼 잡지 않아서'이다.

헌책을 구하느라 찌질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다.

자신이 원하는 책 한권을 위해서라면 조금쯤 비굴해져도, 찌질해져도 좋지 않겠나.

이 책을 먼저 읽은 선배로서 책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웃다가 배꼽을 분실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라~^^

 

그렇다고 이 책이 개그 또는 유머집은 아니다.

옛 성현들이 해학으로 삶의 진정성을 비벼냈듯이,

저자는 이 책을 해학과 진지한 (하지만 비굴하고, 찌질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삶으로 버무렸다.

그걸 옛 성현들은 골계미라고 했었던 것도 같다.

 

내가 이 책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저자와 나의 연배가 비슷하거나 정신 연령이 비슷하고, ㅋ~.

저자가 나열하는 책들이 내가 읽은 것이 많으며,

무엇보다 저자가 좋아하는 작가와 책들이 내 인생의 책들로 생각하고 아끼는 책들이어서 공통분모가 쉽게 형성되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저자는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우는 버릇이 있다고 하는데,

나 또한 궁금한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게 생기면 집요하게 관계자료를 책으로 구입해서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니까 말이다.

(책으로 해결되는 게 있고, 실제 경험으로까지 연결되어야 하는게 있다는걸 이젠 알지만, 그건 차치해 두기로 하자.)

 

책 얘길 하면 생각나는 것이,

언젠가 친구 하나는 내가 이렇게 저렇게 골라 읽는 책들이 책같지 않다며 구박을 했었다.

같이 뭉뚱그릴 수 있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좋아하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에 호감을 갖고 좋아하게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을 내 기호에 맞게 뜯어 고쳐 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라딘 서재 내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공감을 할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모두와 더불어 공감하고 소통을 할 순 없다.

그런 관계 속에서 누군가와는 비껴 갈수도 있다.

비껴가는게 한두 번이라면 노력을 해 볼 수도 있지만, 반복되면 로드가 걸리기 마련이다.

관계라는건 잘ㆍ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호ㆍ불호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고 호감을 갖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의식의 흐름까지 바꿔놓을 수는 없고, 그러려고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잡식성이 됐든, 그리하여 꿀꿀이죽이 됐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뿐이고,

이곳에서의 관계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젠 내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부러 챙긴 것이 아닌데도 관심사가 겹치다보면 책이 재밌어지고 책읽기가 즐거워진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김갑수의 '나의 레종데르트', 강유원의 '책과 세계'까지 언급한다.

 

 

암튼 저자는 모든 얘기를 아내와의 냉전에 빗대어 얘기하고 있는데, 그런 설레발과 거들먹거림이 너무 좋았다.

1장 '하나도 쓸모 없는 책 이야기' 로 시작하여,

2장 '지질한 아저씨의 위대한 패배', 3장 '오늘도 나는 괜찮다' 까지 내겐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일부러 져준다고 읽혔다.

게다가 책을 읽은 리뷰나 서평 따위를 단도직입적으로 늘어놓지 않는다.

그점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책의 줄거리나 리뷰 따위는 최첨단 인터넷 시대인 만큼,

몇번의 클릭질을 해주는 수고만 거치면 찾아낼 수 있는거고,

책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랄까,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기록으로 남기니까 말이다.

 

깔깔 대고 웃거나 펑펑 울고나면 카타르시스라고 하여 허무하게 마련인데,

이 책은 뭐랄까, '다 괜찮아~'하고 위로해 주는 느낌이다.

청년들은 서재를 가꾸듯 자신을 가꾸는 법을 배울 것 같고,

장년들은 서재와 함께 늙어가는 법에서 위안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와 함께 주문한 세 권의 책은 조금 뒤적거리다가 버렸다. 나는 내가 읽고 나서 재미없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 산 책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 버리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56쪽)

새 책을 사서 실망하는 것보다는 내 서재에 있는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두기만 하고 아직 읽지 못한 『모비딕』을 마치 공부하듯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복해가는 즐거움도 크지 않을까.(57쪽)

  내 서재는 나와 함께 늙어갈 터이고 언젠가는 아내나 딸에 의해서 묘지(헌책방)로 실려 가겠지.(59쪽)

 

이젠 나도 재밌어보여 들였지만 책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이 곳 서재의 리뷰도 열심히 보고, 독서에세이나 서평집도 챙겨보게 된다.

 

이렇게 재밌는 책이었지만,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책의 여백을 일러스트로 처리했는데,

일러스트라는게 어땠다는게 아니라,

(충분히 적절했고 좋았다...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이 쓴 리뷰나 독서에세이, 서평집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서재나 책들을 실물로(실물이 안되면 사진으로라도) 구경하고 싶어하니까 말이다, ㅋ~.

 

서재의 책장도 그렇고,

귀하다는 책들도 그렇고,

책장에 책들을 배치하는 법들도 그렇고,

엿보고 싶어지는데, 그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서 아쉽다

 

책의 전통적인 또 다른 용도는 컵라면 뚜껑 누르기용이나 라면 냄비 받침대다.ㆍㆍㆍㆍㆍㆍ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역시 두꺼운 책보다는 얇고 작은 시집이 좋다는 것. 두꺼운 책을 사용하면 무게중심을 조금이라도 맞추지 못할 경우 컵라면의 몸체가 쓰러져 아까운 라면을 버리게 될뿐만 아니라 덤으로 청소까지 해야 한다.(71쪽)

 

이런 기발함은 어쩔 것인가 말이다.

이런 기발함에 동참하고 싶어서, 오늘 점심은 컵라면을 먹어야 할까 보다, ㅋ~.

컵라면 뚜껑 누르기용 책으로 시집 대신 켄트 하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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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8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2-09 17:17   좋아요 0 | URL
그쵸, 배꼽을 부여잡을만 하죠?^^
어떻게 잘 지내십니까, 2월도 어느새 1/3이 지나갔습니다.
무탈하시고 행복하시길~!

[그장소] 2017-02-08 13:43   좋아요 0 | URL
어~ 북홀릭 님 ㅡ 책 ...맞죠? 다섯번째 책이라고 본것 같은데 양철나무꾼 님 부지런 하신건 알아줘야해요!^^

양철나무꾼 2017-02-09 17:29   좋아요 1 | URL
어~(,.)
북홀릭 님 아니고, 요 밑의‘잡식성책장‘님인것 같은데~--;
북홀릭 님도 멋진 책을 내셨나 보죠?
궁금~@@

부지런하시기로 치면, [그장소]님을 따라갈 사람이 있겠습니까?
잘 보고 있습니다, 꾸벅~(__)

[그장소] 2017-02-09 20:26   좋아요 0 | URL
아 ㅡ 이쪽에서 닉넴이 다른 모양인가봐요 . 아님 제가 뭔가 헷갈린걸수도 ~^^

겨울호랑이 2017-02-08 13:45   좋아요 0 | URL
두꺼운 철학책이나 사전 등은 종이컵 받침대로 유용합니다^^ ㅋ

양철나무꾼 2017-02-09 17:32   좋아요 1 | URL
어헛~, 소심하신것 아닙니까?
하드커버라면 자고로 냄비받침 아니겠습니까, ㅋ~.

실제의 저는 소심해서 ‘종이 컵 받침대‘로도 노노~! 입니다~--;

박균호 2017-02-08 13:49   좋아요 2 | URL
허술한 제 책을 읽고 이토록 유머와 심도있는 분석을 해주시니 뭐라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치 한 권의 생활철학책을 읽은 기분이에요. 거듭 고맙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7-02-09 17:35   좋아요 1 | URL
저야말로 그토록 재미있는 책을 읽게 해주셔서, 완전 감사드립니다.
전작들 찾아 읽고 싶어집니다~^^
.
.
.
그런 의미에서 다음 책은 언제쯤?

박균호 2017-02-09 17:53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고전책을 소개하는 책을 계약 했는데 아직 시작도 안했어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7-02-10 16:41   좋아요 0 | URL
천천히 꾸준히 하시면 돼죠.
제겐 아직 읽지않은 몇권이 있습니다요~^^

북프리쿠키 2017-02-08 14:05   좋아요 0 | URL
지름신이 제 옆에 떡하니 와있네요

리뷰 중간에 ˝꿀꿀이˝님도 계시고~
소중히 읽고 있는 마리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도 나와서 반갑네요^^;

새책도 좋지만 오래된 친구 다시 만난다는 생각이 저랑 같아서 공감됩니다~
글구 한페이지 정복한다는 생각도요^^

양철나무꾼 2017-02-09 17:42   좋아요 0 | URL
모든 神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만, 지름신만은 No하셔야 합니다, ㅋ~.

이책, 기분 꿀꿀할때 꿀꿀함 퇴치용으로 그만이지 싶습니다.

yureka01 2017-02-08 14:10   좋아요 0 | URL
물론이겠지요..알라딘 서재에 이웃분들이 올라오는 책 다 취향에 맞을 수는 없겠지요..저도 꿀꿀이 책이 딱 좋더라구요 ㅋㅋㅋ

양철나무꾼 2017-02-09 17:44   좋아요 0 | URL
찌찌뽕~, 헤에~^_____^
저는 책이라면 뭐든지 다 좋습니다.

잠자냥 2017-02-08 14:26   좋아요 0 | URL
이 책 좀 궁금해지네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7-02-09 17:45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ㅅ!

서니데이 2017-02-08 16:14   좋아요 1 | URL
이 저자분도 그동안 수많은 책을 읽고, 사셨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운이 좋다면, 언젠가 제가 읽었던 책도 만날 수 있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7-02-09 17:47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 님이 읽으신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언급됩니다.

이 분이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시지만,
장서벽이 좀 있으신 듯~^^

이 책에 언급된 500원 동전 땜에 집에 있는 돼지 배 갈랐어요~ㅠ.ㅠ

세실 2017-02-09 14:11   좋아요 0 | URL
호호 저자는 컵라면 위에 두꺼운 책을 올려 놓았다가 낭패 본 경험이 있나 봅니다.
마치 우리 주변사람 같은 분이네요^^

양철나무꾼 2017-02-09 17:50   좋아요 0 | URL
이분 아내분이랑 냉전일때면 헤븐표 김밥집에서 떡라면을 드신대요.
컵라면을 드시는지는 알 수가 없다는~ㅠ.ㅠ

네, 우리 주변의 누군가처럼 친근해서 책이 더 재밌었습니다.

ICE-9 2017-02-16 00:12   좋아요 0 | URL
컵라면 뚜껑 누르기용 책 하니까 아주 어릴 때 봤던 컵라면 광고가 문득 생각나네요. 그 광고에서 컵라면 뚜껑을 책으로 누르는 장면이 나왔는데, 마당문고로 나온 ‘데미안‘이었습니다. 그 광고를 통해 ‘데미안‘이란 존재를 처음 알았어요. 무슨 책이기에 광고까지 나오는걸까 하는 생각으로 기억에 새겨두었다가 어른 책도 이제 도전해봐야지 마음 먹었을 때 가장 먼저 ‘데미안‘을 찾아 읽었었죠. 그렇게 헤르만 헤세도 알게 되고 푹 빠지게 되었네요. 컵라면 광고 때문에^^
저도 남의 집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보는 게 서재일만큼 그 쪽의 관음증이 상당해서, 이 책에 어떤 책 이야기가 있을지부터 궁금해지네요.^^

양철나무꾼 2017-02-16 18:25   좋아요 0 | URL
전 20대 초반 무렵에 컵라면을 하도 먹어서 한때는 컵라면 냄새 맡기도 싫었었는데,
요즘 다양한 컵라면이 나오고 편하다는 이유로 다시 손대게 되네요.^^

데미안도 그렇고 헤르만 헤세를 전 학창시절 삼중당문고로 만났었어요.
한권 두권 모으고 읽고 하면서 되게 뿌듯해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불편한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감상에 빠지게 되고, 덕분에 미소짓게 되는 저녁이네요.

헤르메스 님, 서재를 엿본 적은 없지만, 어떨지 상상해본 적은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좋아하는 장스소설 리뷰 엿보러 들락거렸을 때부터요~^^
 

어제 늦은 아침을 먹고 어슬렁 어슬렁 목욕탕엘 가려고 마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총각 하나가 동네가 떠나가도록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또래들처럼 귀에 이어폰을 끼고 노래라도 따라 부르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집안사 소소한 일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못 하고 이러쿵 저러쿵 내뱉는 것이었다.

혼잣말의 형태를 띠었지만, 누군가 그에게 말걸고 들어줄 귀를 애타게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목욕탕에 가느라 갈길이 바빠서 그만~(,.)

기실은 갈길이 바빠서라는건 핑계이고,

남의 가정사, 집안의 은밀한 일은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에,

타인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부분이 아니어서 였다.

 

 

 

 엿듣는 벽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9월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장르소설 한권을 재미나게 읽었다.

장르소설만을 읽을 때도 있었으니, 그간 적조한 편이었는데,

이런걸 심리 스릴러라고 하는구나 싶게 가슴 속 어딘가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쫀쫀하게 만들어놓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장르소설에 미쳐 장르소설만 읽었을 때도 있으니, 초창기의 것부터 제법 읽은 셈이다.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흰옷을 입은 여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윌리엄 아이리쉬, 존 딕슨 카, 코넬 울리치 따위...

그 맛을 알고 읽을 땐 재미 있었지만 그전까진 약간 올드하고 고루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어떤 건 장르소설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미를 생각해하며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것도 있었다.

반면 이 소설은 문체도 그렇고, 글을 서술해나가는 방식도 그렇고, 무엇 하나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요즘 나오는 소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제목은 '엿듣는 벽'이고 '벽 너머로는 들리지 않는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있다.

표지 그림은 열쇠구멍을 사이에 두고 쥐와 새가 무게감 있게 대립하고 있는데,

'Walls have ears'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까봐 극도로 자제하게 되는데, 생각 거리를 충분히 던져주는 내용이다.

'엿듣는 것'에 '몰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정보가 굴절되고 왜곡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하고자 하는 얘기는 그 부분을 살짝 비껴가는듯 여겨지기도 한다.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라도 수많은 귀와 눈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게 된다.

누군가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테고,

눈에 띌까봐 조용히 자신을 지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자신을 과장하여 드러낼 수도 있고, 감추고 일부분만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소통 부재를 얘기하고 '외로워, 외로워'하게 된다.

보고 듣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 사이의 격차가 크면 큰만큼 비껴가게 된다.

그것을 말에 적용시키게 되면,

말을 안 하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사람의 자유 의지라고 하지만,

그 말할 자유와 말하지 않을 자유 사이에서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하기 힘이 든다.

나만 하더라도 때론 너무 수다스러운 것 같고, 가끔은 말을 지독히 아끼는 것 같다.

때론 내가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하면서 사사로운 느낌이나 감상을 추가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인식하지 못 하는 사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코끼리를 한 눈에 다 넣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한 거리 두기인데,

그렇게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게 되면 코끼리의 털 같은 세세한 것은 또 간과할 수밖에 없다.

"걔도 여자야. 여자는 인생의 반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몰라. 어떻게 하라고 명령과 안내를 받아야 하지. 난 항상 자네가 좀더 고삐를 당겨야 했다고 생각했네."

"우습네요. 전 고삐를 쥔 쪽이 형님이라고 생각했는데."

길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뜻이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제가 언제 고삐를 쥐어본 적이나 있었나요. 또 전 아내를 말과 같은 부류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말과 여자는 공통점이 많아. 들판에 풀어놓으면 도망가버리지."

"대체 어디서 여자에 관해 그렇게 많이 배우셨죠, 형님?"(87쪽)

소설의 초반부에서 에이미의 남편 루퍼트가 어떤 제스츄어를 취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갖고, 그가 원하는 대로 행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자 마가렛 밀러가 에이미와 남편 루퍼트에게 감정 이입을 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그리고는 있지만,

그를 범인으로 유추하도록 해서 였을까, 하나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창가로 걸어가 두 사람 사이의 시간과 공간을 떨어뜨렸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결과적으로 버턴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버턴의 충성심에 관해선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하지만 충성심이 뭐기에? 힘을 받으면 부러지고 열을 받으면 구부러지는 것 아닌가? 거기에 진실이 얼마나 담겨 있나?

ㆍㆍㆍㆍㆍㆍ

루퍼트는 창문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사람보다는 그림자에 대고 거짓말하는 편이 더 쉬우니까.(164쪽)

이런 구절도 그렇다.

문장만 놓고 봤을땐 그럴 듯 하지만,

한개의 창문이 있고 두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

창문에 비춰진 둘의 모습을 루퍼트만 보는 것이 아니라, 비서인 버턴 양도 같이 보는 것인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게 가능할까?

거짓말을 하는게 더 쉽다는 당위는 저렇게 사람 형상을 한 그림자가 아니라,

눈과 귀와 입이 없는 까만 실루엣의 그림자래야 하지 않았을까?

둘이 같은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라 할 지라도,

각자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제각각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이라 하면 할 말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암튼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면,

남의 가정사를 잘 알 것 같다는, 또는 나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개입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확고히 할 수가 있다.

 

 

 

 독서만담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아니 읽기 시작했다.

책을 '쩜' 읽다보니, 가끔 출판사와도 궁합이란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중 한곳이 '북바이북'인것 같다.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내가 이런 책을 좋아하고, 이런 종류의 독서관련 서적에 목말라 있었다는걸 깨달았다.

저자가 이곳 저곳에 연재했던 서평을 엮은 것인가 본데,

딸이나 아내와 연관된 가족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라는데,

글이 꽁트보다도 잼나다.

 

가족 에피소드가 대부분인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아내와 딸에게 놀림감이 되고 아내와의 냉전에서 패배만 할까 하는 생각을 자주 생각해봤는데 사안별로 진즉에 읽었다면 좋았겠다 싶은 책이 늘 있었다. 사람은 다양한 이유로 힘들지만 다행히도 그 다양한 이유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책을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이 책을 쓴 동기다.(8쪽)

 

 

나이가 들면서 눈과 귀가 비껴가는걸 온몸으로 느낀다.

아무리 좋은 책도 단숨에 읽기는 힘들고,

아무리 좋은 음악이어도 귀를 혹사시킬 정도는 아니다.

때로는 내가 아주 좋아했던 음악들이 소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간만에 내가 미쳐서 리핑까지 해갖고 다니는 곡.

Marian Hill의 Down

어디 CF에서 쓰인것 같은데 뭔진 모르겠고,

누가 불렀는지 따윈 관심에도 없고, 누가 만들었는지 완전 좋다.

 [수입] Marian Hill - Act One [2LP]
 메리안 힐 (Marian Hill) 노래 /

 Republic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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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2-06 16:46   좋아요 2 | URL
부족한 제 책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7-02-06 18:13   좋아요 2 | URL
오홋~^^
‘독서만담‘의 저자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꾸벅~(--)
잼나게 읽고 있습니다~^^

yureka01 2017-02-06 16:48   좋아요 1 | URL
서재 블로그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엿보아 달라고 글을 올리는 거 같아서요.

하기야 마음 속에 있는 거 다 내뱉을 수도..
그렇다고 전혀 안 뱉을 수도 없기도 하겠지요....


양철나무꾼 2017-02-06 18:18   좋아요 2 | URL
저는 엿보아도 상관 없지만, 엿보아달라고, 는 아닌것 같습니다~^^
가끔 넷상이라는걸 빙자하여,
필요 이상으로 용감무쌍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말예요~^^


서니데이 2017-02-06 16:58   좋아요 2 | URL
그분은 다른 사람이랑 전화한 건 아닐까요. 이어폰이나 블루투스로 통화하는 것 처음 보았을 때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요즘은 속이 답답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예요.
벽에 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디선가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끔은 모르는 척 하면서 듣는 걸지도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7-02-06 18:24   좋아요 3 | URL
아~, 전에 님이랑 그런 블루투스 관계로 댓글 나눴던 것 같아요~^^

저 총각은 말예요.
섬어를 남발해서 병원 진료를 요하는 수준이었어요.
저는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할때,
사람들의 수다를 피해 빈 이어폰을 꽂기도 해요, ㅋ~.
오늘은 덜 춥네요, 따뜻하고 맛난 저녁드세요.

2017-02-06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02-06 18:54   좋아요 2 | URL
잡식성책장님이 독서만담 저자시군욤~
신기신기~*

양철나무꾼 2017-02-08 12:57   좋아요 3 | URL
저도 신기신기해요~^^
알라딘 서재가 아무래도 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보니,
출판 관계자나 편집자, 저자, 역자...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