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식물에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맺히는걸 보니 봄인가 보다.

 

아니, 춘곤증에 시달리는걸 보니 정녕 봄인가 보다.

요즘 같을땐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잠깐 눈이라도 붙여주면 오후 시간을 한결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

오늘은 점심시간과 동시에 뚱뚱한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두꺼운 솜 외투를 걸치고 등에는 대형 백팩을 멨는데, 입구에 꽉 들어찼다.

접수에서 점심시간이 막 시작했으니 다녀오시라고 했으나,

엉덩이를 들이밀어 앉더니 '허어~!' 목을 풀었다.

무슨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몸 전체가 울림통인양 쩌렁쩌렁 울린다.

한쪽에 누워서 눈만 감은 난 통성 기도의 폭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고 생각했는데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할머니라고 하기엔 좀 젊은 목소리가 말했다.

"예수님의 성령으로 천국으로 부름을 받으셨다구요?"

"네,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전 이미 천국으로 부름을 받았거든요."

"근데 아까 기도 하는 걸 내가 조금 들었는데,

 일부러 들은건 아니구요...목소리가 크시니까 자연 들리더라구요...

 세어보니 병이 열네 가지던데요.

 병원에 올거 뭐 있어요, 천국으로 그냥 가면 되지?

 부름을 받았으면 그에 응해야지,

 아자씨 말대로 그렇게 훌륭하신 예수님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것도 경우가 아닌거죠.

 하긴 공공장소에서 혼자만 부름을 받겠다고 이렇게 떠들어대는 걸 보면 원래 경우가 없는 분이신것두 같네요.

 천국 가셔서 아버지 만나시거든 제가 가정 교육을 그렇게 시키신게 맞냐고 여쭤봤다고 말씀 드려 주시구요."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다보면 중국에서 만난 도사 얘기가 나온다.

 

사실 제 전공이 도교인지라 가끔 도사들을 만날 일이 있습니다. 도사라고 하면 구름 타고 다니는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도교라는 종교의 교회를 도관이라 하고, 도관에서 활동하는 성직자를 도사라고 합니다.ㆍㆍㆍㆍㆍㆍ제가 만난 도사는 시골에서 수양만 하던 촌 도사였는데, 그 촌 도사가 저한테 전공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제 전공이 철학이라고 했더니 그 도사가 대뜸 이랗게 말합니다.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다. (71~72쪽)

 

위의 뚱뚱한 남자와 좀 젊은 할머니의 대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또 이런 구절도 나온다.

 

그런데 탁월한 시선으로서의 철학적 사유라는 것이 그리 쉽게 되는 일은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익숙하게 언어를 사용하지만, 시인이 하는 것처럼 언어 자체를 들여다보거나 또 시적인 높이에서 언어를 지배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차원이 달라지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시를 이해하는 사람과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는 세계를 보는 통찰의 깊이와 높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언어를 지배하는 시인과 언어를 단지 사용할 뿐인 보통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시선의 높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언어를 지배하는 시인과 언어를 단지 사용할 뿐인 보통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시선의 높이, 그 차이는 매우 클 수밖에 없죠. 사실상 철학은 아주 높은 차원에서 탁월하게 이루어지는 고도의 지적 활동입니다. 그래서 타고나지 않는 한, 훈련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97쪽)

 

 

 

 시인일기
 박용하 지음 / 체온365 /

 2015년 9월

 

내가 아마도 박용하의 '시인일기'를 읽지 못 했다면 저 부분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작인 '오빈리 일기'와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시인이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영혼과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던 터라 감흥이 더했다.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뭐라 답할 것인가. '스스로 제외된 개인'이라 답하겠다. 다시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말에 걸린 자, 말에 질린 자, 말에 올라 탄 자'라 답하겠다. 또다시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어둠이 되는 자, 빛에 긁힌 자'라 답하겠다. 이 황사 쳐들어오는 난감한 봄날,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무용지물, 무용지물, 무용지물, 천하의 무용지물'이라 답하겠다. 다시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순간을 감별하는 자, 순간을 범하는 자, 순간을 데우는 자'라 답하겠다. 또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언어가 생각하게 말하는 사람'이라 답하겠다. 봄비 추적거리는 거리에서 시인이란 무엇인가 재차 묻는다면 '고통하는 사람, 슬픔 받는 인간'이라 답하겠다.ㆍㆍㆍㆍㆍㆍ('시인일기', '서문'인용)

시인은 시를 쓰지 않았으면 무엇이었을 것이며, 무엇에 열중하고 살았을까 라고 반문한다.

책을 읽고 리뷰나 페이퍼로 느낌을 옮기는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에도 열중하지 못 했을 것이다.

 

이걸 최진석버전으로 옮겨보면 이렇다.

레고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덴마크의 한 컨설팅 회사를 찾아가서 해결책을 구하게 됩니다. 그 회사는 고객이 가져온 문제를 우선 철학적인 문제로 바꾸어서 접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레고는 원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는데, 그 컨설팅 회사의 조언에 따라 기존 질문을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으로 바꿉니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 95쪽)

 

황사가 쳐들어오지만, 봄비가 추적거리지는 않이서 다행이다.

낮잠을 제대로 못 자서 툴툴거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 페이퍼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춘곤증을 이겨내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다가 외부의 방해로 실패했다...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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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03-16 22:04   좋아요 0 | URL
저두 오늘 낮에 어찌나 졸리던지요. 쿠키 아작아작 먹으면서 잠을 쫓았어요. 왜이리 잠이 쏟아지던지...
세상엔 별별 사람 참 많아요^^

양철나무꾼 2017-03-17 09:20   좋아요 0 | URL
요즘 낮에는 졸립고, 아침에는 배고프고 그래요.
저녁 때는 당근 춥고요~^^
세가지가 한꺼번에 오면 거지라는데, 따로따로 와서 거지는 면했어요.

저는 커피 한가득 타서 님처럼 쿠키 먹으려고요~^^
 
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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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탄핵이 인용되었을 때의 일이다.

로비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던 할머니 한 분이 '그래도 불쌍하고 안 된다'며 혀를 끌끌 차시더니 이내 눈물 바람을 하셨다.

그걸 본 중년 남성이 할머니를 향하여,

'길거리에서 그런 말 하시면 몰매 맞을 수 있으니, 어서 곧장 집으로 가시라'고 하였다.

중국 동포들을 대상으로 무슨 강의를 하는 남편은 '오늘은 닭먹는 날'이라고 했다가,

수강생 한 명이 '지금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거냐?'고 항의를 하길래,

강의를 재밌게 하기 위한 워밍업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단다.

 

지극히 당연한 사안을 두고 이렇게 양가적 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니 어찌 생각하면 아이러니컬 하지만,

그런 다양함이 공존하는 곳이 세상이니,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다.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책을 보는 기준도 다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의 취향이 재미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같다면, 이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기계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30쪽)

 

알라딘 서재,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지 싶은데 분명 나와는 다른 입장들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것들로 묶였을때는 알라디너라는 소속감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 다른 입장인데도 한데 뭉뚱그리면 버겁다.

이럴땐 '냅둬, 이대로 살다 죽게~(,.)'라고 하며 내 '스스로' 를 '따'(스.따.)시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버린다.

혼자일때는 소속을 그리워하고, 더불어 있을 때는 그런 식으로 일탈을 꿈꾼다.

 

어찌되었건, 알라딘 서재 이곳에 적을 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독서인을 꿈꿀 것이다.

나도 독서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동안의 통계 자료를 찾아보니 책을 소장하는데 열을 올리는 장서인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서재활동을 시작한건 2010년 5월10일 '책의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부터니까 얼추 7년이 되어간다.

1년에 한100권정도 읽는 내가 그동안 알라딘을 통해 사들인 책은 1964권,

거기다가 이런 저런 이벤트에 당첨되거나,  선물받은 책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책을 읽는데 목적을 둔게 아니라, 장서에 목숨을 건 꼴이다.

 

그렇다고 장서를 염두에 두고 책을 들였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가지고 있고, 읽은 책들이 '오래된 새책'의 목록과 많이 겹치는 걸 보면,

저자가 권하는 책들이 소장 가치 있는 책들로 편향되기 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연배들에게 두루 읽혔던 책들이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나니 '독서만담'과 맞물려서 저자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만담 때는 유머코드 때문에 간과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본인도 책 속에서 생각을 깊고 넓직하게 펼쳐내고 있으며,

자신이 고르고 읽고 소장하는 책들을 자기주도적으로 관리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책을 고르고 읽고 소장하는 방법들을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함으로써,

소장한 책들의 격을 올린다.

 

책이 안 읽히고 안 팔리는 시대라고 체념하고 방관하지 않고,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외의 출판 영업, 마케팅, 홍보, 광고 등에까지 적극적이다.

 

똑똑하지만 얍삽하지 않다.

책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인간적인 냄새, 적당한 온기,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오래된 새책'이란 절판본이지만 독자들에게 꾸준히 회자되어 재출간 되는 책들을 말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출판 시장이 얼어 붙은 세태이지만,

책이 절판되어 사라지는 것도, 재출간되는 것도, 상당한 부분 독자의 몫이라고 얘기한다.

나 또한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책들을 개정판으로 읽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오래된 새책'의 형태이다.

 

이 책은 나온지가 좀 되었다.(초판 1쇄 2011년 9월23일, 초판2쇄 11월10일)

그 무렵 절판본이어서 어렵게 구해야 했던 많은 책들이 재출간되었고,

책 속의 내용들도 사실 여부가 바뀐 것도 있다.

사진집 '천장' 같은 경우도 그때는 '천장'이라는 풍습을 담은 유일한 책이었겠지만,

지금은 더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저자의 책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 저자가 짱 멋져보였던 순간이 있었다.

ㆍㆍㆍㆍㆍㆍ그 책은 어찌됐든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활용되어져야 했다. 날개가 필요한 것은 새만은 아닌 것 같다. 책도 날개가 필요하며 항상 읽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열성적이지는 않지만 어찌됐든 나에게 필요가 없고, 반복해서 읽거나 참고할 책이 아니라면 인커넷 카페 등의 책 나눔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59쪽)

 

'우물있는집'에서 나온 《괴테자서전》을 읽고 소장하는 이유는 순전히 아름답고 고급스러우면서도 튼튼한 장정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국내에서 출간된 책 중에서 가장 장정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 중의 하나다.(85쪽)

책의 자태와 위용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나와 닮았다.

 

이 책의 끝부분 '책 수집가를 위한 변명'을 보게 되면, 내 속에 들어왔었나 싶게 나랑 일치하는 구석이 있다.

책의 가장 큰 기능이 '장식'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할 때 내 서재에 꽂힌 책들을 바라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안정을 찾게 된다. 이것은 단지 책이 지적 욕구의 충족이나 학문적 필요로만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다.(255쪽)

 

저자 자신이 좋아서 책을 읽고 또 수집하고 하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꼼꼼하고 착실하게 책을 소개하고 권해주면 읽지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말이다.

 

'독서만담'때도 느낀 것이지만 독서처방사 같은 직업이 있다면 명품 처방으로 이름을 날릴 것 같다.

파릇파릇한 떡잎이나 새싹도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을 중년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이렇게 궁금해 보기는 처음이다.

건필을 기원한다, 고 했다가 글로만 한정시키는 것 같아 아쉬워 이렇게 바꿔본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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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3-14 15:30   좋아요 3 | URL
독서만담에서 느낀게 저와 비슷하네요.
신변잡기를 끌어다가 웃기지만,
결국엔 삶이란게 뭐 그리 대단한건 아니야~ 잡다하고 구질구질한 총체 아니겠냐는
묵직한 메세지를 주는 거 같은 느낌.

똑똑하지만 밉살스럽지 않은,
얕게 얕게 글을 쓰는 듯 하지만
읽을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맛.

박균호님의 매력을
글로 잘 풀어낸 양철나무˝꾼˝님도
˝꾼˝입니다. 역시👍

양철나무꾼 2017-03-14 21:45   좋아요 2 | URL
님~, 어케 리뷰를 쓴 저보다 제 글을 잘 해석하십니까?
개떡같이 말해도 콩떡이나 찰떡 같이 알아주는 님같은 뷴이 계셔서...알라딘 서재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꾼은 맞는데 나무를 잘하는 나무꾼~, 아니 심장을 잃고 사랑을 갈구했던 사랑꾼이었나? 쿨럭~(,.)

박균호 2017-03-14 15:52   좋아요 3 | URL
차마 좋아요를 누르기가 참 민망하네요. 첫 책이라 지금보다 글이 더 엉망이었던 시절이라서요. 그냥 책을 좋아하는 한 아재의 이런 저런 생각이라는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책속의 책들과 늙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된 새 친구‘ 같은 느낌요 ㅎㅎ 나무꾼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스타샤의 리뷰가 정말 기다려져요.

양철나무꾼 2017-03-14 21:41   좋아요 0 | URL
북플에서 쓰니까 댓글이 저 밑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다시 끄집어 올리려니 잘 안되어서~, 삐질~‘‘

서니데이 2017-03-14 16:40   좋아요 3 | URL
양철나무꾼님의 구매리스트도 책이 적지 않으시군요. 예전에는 관심이 생겨 보관함에 담았지만, 계속 나오는 새 책으로 인해 계속 책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오늘 오후도 잘 지나가네요.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7-03-14 21:26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봄볕이 너무 좋아서, 봄바람이 살랑 불어서,
또는 아지랭이가 아른거려서 힘들진 않으십니까?
매년 같은 봄이지만 또 다른 봄이라고 생각하면...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책을 읽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cyrus 2017-03-14 17:52   좋아요 1 | URL
박균호님의 책을 읽으면서 저도 헌책방에서 만난 책들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하려는 의지도 높아야 하고요. 저는 헌책방에서 책만 잔뜩 사놓고, 계속 방치해두고 있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7-03-14 21:2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님은 필요 충분 조건을 갖추셨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헌책은 물론이거니와 누가 먼저 읽은 책도 좀 버거워했었는데, 친구를 잘 만난 덕에 이제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듯 책과도 그런 인연이 있는것 같습니다.
엄청 게으른 저도 때론 운명 같은 책을 만나기도 하는 걸 보면 말예요~^^

2017-03-14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3-14 19:02   좋아요 1 | URL
어떡하죠?
제가 지금 벌려놓은 책들이 많아서 책 선물 받는거 자제하고 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죠~^^

2017-03-14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3-14 21:15   좋아요 1 | URL
거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삐질~‘‘)
여러 분들이 책선물을 해주시겠다는데 누구 건 받고 누구 건 안 받을 수 없어서 말예요.
제가 좋아하는 책읽기가 짐이 되어선 안 될 것 같아서 힘들게 말씀드렸는데, 이해해 주시니 더 감사드립니다~^^

양철나무꾼 2017-03-14 21:36   좋아요 2 | URL
지나친 겸손은 공손이 아니라 오만불손이라고 합니다~ㅅ!
개인적으로 독서만담보다 훨씬 더 좋았습니다. 책들의 자태도 사진으로 알현하는 영광도 누리고 말이죠.
예전에 그런 옷 광고 있었는데...참 좋았급니다. ‘막 사입어도 10년 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막 사 입은 듯 한 옷‘이던가요?
책도 사람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7-03-14 21:40   좋아요 1 | URL
북플에서 쓰니까 댓글이 저 밑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다시 끄집어 올리려니 잘 안되어서~, 삐질~‘‘

박균호 2017-03-14 21: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다 읽었어요 감사해요

해피북 2017-03-16 22:09   좋아요 1 | URL
우앙~~ 양철나무꾼님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게 서재의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작가님과 의견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도 실로 큰 즐거움이네요 ㅎㅎ 댓글 포함 잘 읽고 갑니다 ㅋㅋ

양철나무꾼 2017-03-17 09:50   좋아요 1 | URL
작가 분들이 서재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독자와 소통하려 한다는 건 독자 입장에선 행운이지만,
작가 입장에선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일일 거예요.
기꺼이 누릴밖에요~^^
 

한반도에 사드 배치하는 것과 관련 중국의 보복이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남편은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해서 연일 울상이다.

 

이쯤에서 중국이란 나라가 궁금해지는데,

그렇게 고매한 동양철학의 본거지인 중국에서 이런 일로 보복을 한다고 하나 하는 것과,

보복의 방법이 어떻게 그렇게 유치찬란 할 수 있나 하는 것이다.

 

그런 중에 이 책을 시작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최진석은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완전 좋았었다.

앞서 얘기했던 동양철학의 본류라고 하면 중국을 떠올리는 것과 관련,

이 시대의 구루 쯤으로 얘기되는 최진석의 입장이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2015년 건명원에서 한 5회의 강의를 묶은 것이라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서문'이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보통 수준의 생각'은 우리끼리 잘하며 살았지만,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산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수입된 생각으로 사는 한, 독립적일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산업이든 정치든 문화든 가장 근본적인 면에서는 종속적이다. 이런 삶을 벗어나고 싶다. 훈고에 갇힌 삶을 창의의 삶으로 비약시키고 싶다.ㆍㆍㆍㆍㆍㆍ남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내면화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철학적인 논의가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철학에 관한 책이지, 철학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 철학이 아니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독립성을 확보하느냐 확보하지 못하느냐다. 무엇으로 불려도 좋으나, 우리의 삶을 각성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고 덤빌 수만 있다면 그만이겠다. 최소한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감춰진 사실만이라도 스스로에게 노출되면 좋겠다.(7~8쪽)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이나 동양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대주의가 골수에 박힌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최진석은 주체성에 대해서 얘기한다.

중국의 그것으로 대변되는 동양철학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화된 사유를 확장시키는 의미로서의 '주체성'을 얘기하고 있다.

개념이 모호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명확한 개념 정리로 접근하기 쉽고 그러다보니 이해도 된다.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것을 '知'라고 하는데, '明'자는 그런 구획되고 구분된 '지'를 뛰어넘어 두 개의 대립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ㆍㆍㆍㆍㆍㆍ여기서 내적공력이란 '명'자처럼 대립된 해와 달을 동시에 품는 공력, 다시 말해 '대립의 공존'을 장악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대립의 공존을 장악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고 좋기 때문이 아니라 우선 그것이 실용적이기 때문입니다.(20~21쪽)

이렇게 의미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방식도 논리적이다.

 

흔히 그림자가 있기 때문에 '빛'이 나는 것이고,

어둠이 있기 때문에 밝은 거라고 하지만,경계가 모호하다.

경계에서 한쪽으로 아슬아슬 넘어가기는 쉽지만,

이 둘을 하나로 장악학고 아우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美나 善에서 구하지 않고 실사구시한다.

철학은 그 '내용' 자체로 규정된다기보다는, '사유' 즉 살아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일 처음 1장의 내용으로 등장하는게 서양의 산업혁명이다.

서양의 산업혁명만을 다루지 않고 그와 시기를 같이한 중국의 아편전쟁, 난징조약, 베이징조약 따위를 애기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세계사에 쥐약인 나는 머리가 뽀글거리고 읽기가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최진석은 역쉬 구루라서 전지전능, 내 속에 들어왔다 갔는지, 이런 얘기를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산업혁명이 마무리되는 시점과 아편전쟁의 발동 시기(1839년 혹은 1840년)가 일치하고 있지요. 이 일치 속에 은밀하게 담긴 많은 이야기는 흥미 차원을 넘어섭니다. 모름지기 역사에 책임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성적인 예민함으로 무장해 이를 깊고도 자세하게 음미해야 할 것입니다.(39쪽)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걸 안다면 역사적 책임감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과거사를 몰랐다면 중국의 유치한 보복 꼼수를 이해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대처 방안도 모색해 보기 어려웠을 것 같다.

중국이 이렇게 아픈 과거사를 가지고 있으니 예민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으니,

맥락이나 심정적으로 이해된다.

 

앞으로 어떤 얘기들이 펼쳐질지 완전 기대된다.

암튼 오래간만에 책을 읽으면서 눈이 맑아지고 밝아지는 느낌이다.

책을 시작하기 전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는 제목이 너무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는데,

읽기 시작하니까 탁월하다.

제목을 탁월하게 잘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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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8 19:28   좋아요 1 | URL
중국은 자신들 국가적 위상을 높일려고 할 때 ‘공자‘ 사상을 언급하는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7-03-14 15:01   좋아요 1 | URL
공자의 그것이 위상을 드높일만한 것은 틀림없지만,
공자도 성인이기 이전에 인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남덕현의 '충청도의 힘'을 제법 재밌게 읽었던 터라 이 책도 그럴 줄 알고 단숨에 들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재밌긴 재밌는데, 이상하게 내겐 말장난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웃음도 그렇지만 깨달음 또한 강요한다고 되는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어르신들의 일상에 밀착렌즈를 들이대듯 사소한(이라고 쓰고 자세하고 세세한 이라고 읽는다) 데서 웃음을 끄집어내려는 것이 지나쳐서 깨달음을 강요하는듯 여겨진다.

웃음코드의 타겟은 사투리인데,

그건 어르신들의 일상이니까 자연스러운데, 거기서 깨달음을 끄집어내려는게 작위적이다.

책을 읽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책을 쓴 작가의 몫이 아니다.

같은 물을 마시고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들듯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받아들이고 체화하기에 달린게 아닐까.

 

삶이 통속적인 것은 맞지만,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되는 웃음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하여 사투리를 사용하는 건 좀 비겁한 일 같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풍자와 해학으로 드러나는 따뜻함을 잘 장착하였다.

풍자와 해학을 장착한 글로 봤을 때도 손색이 없지만,

그냥 봤을 때 잘 벼리고 톱아낸 한편의 수필 같기도 하고 산문시 같기도 하다.

  동네 마실 나갔다가 어르신들 이야기에 말려들어 심판을 보게 생겼다.

  한동네에서 태어나 칠팔십 년을 함께 살고, 별일 없으면 한동네에서 생을 마치는 인연들이다. 짐작컨대 오늘 말고도 누누이 같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 아님은 자명하다. 서로의 소리를 듣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이지. 그들은 언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고유한 소리를 내는 악기에 가깝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수단으로서의 언어의 발화자가 아니다. 언어에서 의미체계를 걷어내고 오로지 소리만을 건져 즐기는 지음(知音)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언어의 의미체계로부터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극복한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맞수답게, 서로 질세라 최선을 다해 한 편의 아름다운 합주를 펼친다.(9쪽)

 

내가 이곳 알라딘 서재에서 관계맺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말로도 그러하지만,

글로는 한술 더 떠 시시비비를 가리는 글을 쓸 깜냥이 아니기도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 즉 네트워킹을 하는 방식 자체가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관심이 있고 없고,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 의 취향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때문에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대략난감할 따름이다.

 

"화투판이만 있구 정치판이는 읎는 게 있는디 뭔 중 아는감?"

ㆍㆍㆍㆍㆍㆍ

"그려 독박. 독박은 노상 궁민덜이 대신 쓰니께! 정치허는 것덜은 마냥 고, 궁민덜은 노상 독박!"

"그러믄 지비는 이번 슨거이서 워디를 밀거사는겨?"

"쌍눔의 개갈 안 나는 화투판 치다두 안 볼 참이니께! 내 세금으루 판돈 걸구선 마냥 고 허는 꼬라지 보는 것두 환장허겄는디, 옆이서 누구 이겨라, 누구 져라 응원까장 혀줄 일 있남?"

"그려두 슨거는 안 혀야 써?"

"참말루, 츤하에 무식헌 소리 허구 있네. 허믄 뭐헌댜?  저것 덜 뽑아놔봤쟈 다 비광이여, 비광! 서루 잡아먹을드끼 으르렁 그르렁허는 거 같어두, 겔국 서루 붙어먹으야 삼점 나는 비광들이라니께! 허, 쌍눔의 화투판!"

  살아온 내력이 진실을 직관하는데, 드잡이면 어떻고 막무가내면 어떠랴.

시골평론만 한 정치평론을 일찍이 들어본 역사가 없나니.(78~79쪽)

요즘 대통령 탄핵과 맞물려서 시국이 말이 아니다.

다른 것을 향하여선 서울과 시골, 수도권과 변두리를 나누지 않지만,

정치는 생물이라고 정치적인 사안을 향하여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계파 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지방색이라고 할까...지역마다 특색이 존재한다.

'드잡이면 어떻고 막무가내면 어떠랴'라는 말은 '목소리 큰넘이 이긴다'는 자조와 다를 게 무엇인가.

 

"다 헛꽃이지 뭐. 헛꽃 피는 게지 안 그려? 헛꽃 지는 디두 눈물 나는 게 사램이구."

북어대가리 삶는 냄새는 구수해도 아궁이 연기는 매운지라, 어르신도 나도 눈물을 질금거린다.

"나이 오십에 이깐 눔의 연기에 우는겨?"

"어르신도 우시면서 뭘 그러세요."

"나는 우는 거 아닌디?"

"그럼요?"

"속이서 새루 눈물이 나오야 우는 걸루 치는 거 아녀?"

"그런데요?"

"나는 속이서 새로 눈물 나온 지가 원젠지 까마득햐."

"그럼 지금 눈물은 어디서 나오는 건데요?"

"워디서 새루 나오는 눔이 아니라니께? 예즌부텀 배까티 매달려 있든 눔덜이 인자서 녹어 흐르는겨."

"옛날에 울었던 눈물이 아직까지 밖에 매달려 있어요?"

"잉. 사람이 한꺼번에 다 울구 마는 게지, 슬플 때마덤 새루 우는 중 아남? 사람 사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구, 애통이구 절통이구 난리를 치나마나 다 뻔한 일인디, 뭐가 맨날 새루 슬프다구 그띠마다 새루 눈물이 난댜? 사램이 맨날 새루 우는 중 알지만서두 내가 볼 띠는 한번이 다 울구 마는겨. 울기는 다 울었는디 미련이 남아설랑 차마 다 못 떨구구선 장 매달구 사는 게지. 우는 게 일인중 아느니, 우는 건 일두 아닌겨! 매달려 있는 눔의 거 미련 읎이 다 떨구구 가는 게 일이지. 아, 정 붙이는 게 일인겨, 정 띠구 가는 게 일인겨?"(247쪽)

"워떤 낭구가 수월허게 꽃을 떨구는가 알어?"

"글쎄요."

"속이 텅 빈 눔이 꽃두 잘 떨구는겨. 이따 산이 가서 아무 낭구나 손바닥으루다 두들겨봐. 속이 꽉 찬 눔은 암만 두들겨두 손바닥만 아프지 꽃이 고대루 매달려 있는디, 우덜맨치 늙어서 속이 텅 빈 낭구는 한 번 두들기믄 우수수 꽃을 떨구니께. 왜 그런 중 알어?"ㆍㆍㆍㆍㆍㆍ"제갈공명 말구는 내가 아는 공명이 읎어서 지비가 말허는 공명이 뭔 중은 모르겄지만서두  서루 속으로 생각허는 건 한거질겨. 속이 빈 눔을 켜야 깽깽이두 속으루 울어서 소리를 떨구는 거 아녀? 같은 이친겨. 사램두 늙어서 속이 텅 비야 시방 맹키루 허깨비 같은 연기가 스쳐두 속이 울믄서 눈물을 수월허게 떨구는 거니께. 그눔의 거 얼렁 떨구구 가야지 원제까장 그 무거운 눔의 걸 달구 댕기믄서 용을 쓸겨, 안 그려?"(249쪽)

마당 벚나무가 그 위로 꽃잎을 떨군다. 속이 텅 빈 나무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저것들은 벌써 진 꽃잎이 아니던가. 이미 다 울어서 오래 전 매달아놓은 눈물이나 다 떨구고 가는 것이 사람의 한 생이라면, 저것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벌써 진 꽃잎들이 매달려 있다가 이제야 지는 것이 아닌가.(250쪽)

하지만 이러쿵 저러쿵 해도 내가 두 엄지를 척하고 추켜세울 수밖에 없는건 이 구절때문이다.

인생을 앞서 살아간 사람 특유의 기지와 해학이 넘쳐난다.

그걸 벼리어낸 작가도 멋지다.

 

밑도 끝도 없는 싱거운 소리만 늘어간다. 오랫동안 열어야 할 것은 닫고, 닫아야 할 것은 열고 살았다, 그래서 '열다'와 '닫다'는 나에게 실패한 언어다. 실패한 언어의 의미, 실패한 언어의 은유와 비유와 상징을 버리는 길은 침묵뿐이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실패한 언어를 입에 담을 때에는 의미를 제거하고 소리만 내고 싶고, 그리하여 싱거워진다.(266쪽)

 

이런 문장도 너무 좋다. 사족이 될줄 알면서도 옮겨적지않을 도리가 없다.

  새벽으로 치자니 당겨 쓸만한 아침이고, 아침으로 치자니 남은 새벽이 억울할 즈음에 스님이 돌아오셨다. 얼굴을 말똥소똥 쳐다봐도 뭐 하다 오셨는가 한 말씀이 없고, 왔느냐 언제 가느냐 한 물음도 없다. 그러더니 내가 어제 일망타진한 참외 꼭지 세 개를 보고는 입을 쩍 벌리신다.(272쪽)

 

여기 저기서 심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를 외친다.

버리고 비워 홀가분해지는 홀쭉한 삶에 유형의 물건들 말고,

내가 뱉어내는 말들, 생각을 옮겨낸 여물지 않은 글이나 그림 따위도 있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숙연해진다.

더 많이 비우고 줄여야 할텐데...생각만으로 잉여이다, 행동으로 옮기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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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3-06 14:5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의 리뷰는 항상 재미나고 생기가 넘쳐서 좋아요. 그런데 저는 충청도 사투리를 참 읽기가 힘들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7-03-06 16:06   좋아요 1 | URL
좋다고 해주셔서 저도 좋아요~^^
전 서울 토박이인데, 일하면서 각 지방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르신들을 만나다보니 어느새 익숙해지더라구요.
올해 9세인 제가 이뻐라 하는 조카는 ‘불어라 미풍아‘의 여파로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너무 귀여운거 있죠.

yureka01 2017-03-06 15:05   좋아요 1 | URL
요즘 나이 오십에 찰지게 사투리하는 사람 거의 본적이 없었어요.ㅎ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3-06 16:15   좋아요 1 | URL
저희 남편 대학때 학교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했을 정도로 표준어를 구사하는데,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면 사투리가 너무 진해서 제가 못 알아먹습니다.
아마도 사투리도 마주치는 손뼉처럼 상대가 있을때 케미가 폭발하는가 봅니다~^^

북프리쿠키 2017-03-06 17:16   좋아요 0 | URL
상대방의 취향에 관심가져주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대단한 애정이 있어야겠지만서도ㅎ


양철나무꾼 2017-03-08 09:45   좋아요 2 | URL
용케 취향이 겹치면 말 그대로 케미가 폭발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취향을...자기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있는 그대로, 의 그 사람을 존중해 주는 거 어려운 일일까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봤을땐 제가 그런 밥맛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세실 2017-03-06 23:04   좋아요 0 | URL
호호 사투리 정감있네요.
저는 나름 표준말을 쓴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 그려, 그런겨, 그랴 ˝ 가 튀어 나옵니다.
알라딘에서 논쟁은 싫어요.

양철나무꾼 2017-03-08 10:01   좋아요 0 | URL
전 ‘응.팔.‘이 유행할땐 그게 어디 사투리인지도 모르면서 응팔의 사투리를,
요즘은 ‘불어라 미풍아‘의 여파로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듣던 조카가 하려면 제대로 하라면서 시범을 보이기까지 하고 말이죠~^^
세실 님은 선이 곱고 단아하셔서 사투리도 표준어 하듯 하실 것 같아요~^^

저는 일상에서의 논쟁도 버겁기 때문에 알라딘에서의 논쟁은 사절이예요.
쉬고 재충전을 위한 독서이고 글쓰기인데,
논쟁이 되어버리면 일터, 전쟁터가 되어버리죠~ㅠ.ㅠ


2017-03-07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3-08 10:08   좋아요 1 | URL
아하~, 너무 과찬에 몸 둘바를 모르겠네요.
제가 ‘이건 이래서 싫어!하고 딱 선을 긋기보다 그 선 넘어로 보이는 것들을 유연하게 풀어내는 삶과 안목‘을 지녔다기 보다는 포기가 빠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좋은 것과 중간까지는 좋은건데, 한번 아니다, 싫다 하면 놓아버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제 그릇의 소박함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거지요.
그릇 안에 담을 수 있는 것만 담고 아니면 포기해 버리세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성격이 안달루시아과여서 님한테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서두~(속닥~``)

우리 적당히 포기하고 느슨해지자구요~ㅅ!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세계문학의 숲 40
카슨 매컬러스 지음, 서숙 옮김 / 시공사 / 201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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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하는 처치나 처방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지 않고,

당신들이 요구하는 것만 잔뜩 늘어놓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내 처신의 문제인줄 알았다.

이런 현상은 어르신이라고 불리우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그 중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일수록 더 심해지는데,

당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무조건 쏟아 놓으신다.

내가 당신들의 얘길 잘 따라가고 알아먹는지 따위는 관심도 없으시다.

당신들의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고 허리가 아픈지,

어깨를 둥글게 접어 숙인걸 보고 속이 아픈지,

잡아내어 파고 들지 않으면 치료를 위한 최소한의 의사소통은 고사하고 배가 산으로 가버린다.

 

그래서 한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디가 아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들어줄 귀가 필요해서 오는 것은 아닐까,

난 그들이 얘기하는 중간에 '네, 그렇군요, 그래서요' 따위의 적당한 추임새를 넣어주면 되는 고수나 관객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었다.

 

이 책은 그 시대의 흑인이나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 장애인, 떠돌이, 나이 어린 여자 등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지만,

그것까지 얘기하면 너무 복잡해져 버리니, 난 그걸 걷어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

 

"당신은 여기서 내 말을 알아듣는 유일한 사람이야."블런트는 말했다. "이틀동안 나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어. 내 말뜻을 당신이 이해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35쪽)

 

그는 정말 수수께끼였다. 싱어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 전에도 사람들은 그를 쳐다봤다. 싱어의 눈을 보면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짐작하지 못하는 일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37쪽)

싱어를 찾아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싱어와 대화를 나누는게 아니다.

신을 찾는 사람들이 신께 답을 구하는게 아니라,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기 내면과 대화를 하게 되고 깨달음을 얻듯,

그런 방법으로 싱어를 신격화한다.

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대숲을 찾듯 한다.

자신들의 은밀한 내면을 싱어에게 털어놓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걸 원치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벙어리 싱어는 그들이 원하는 안전장치를 갖춘 셈이다.

 

그런데 정작 싱어는 신도 아니고 대숲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냥 사람들의 얘길 듣기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아무 얘기든 자신의 얘길 하고 싶다.

자신의 의사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 소리도, 대화도 없었다. 사람마다 혼자인 듯했다. 방금 일어난 사람들과 긴 밤을 끝내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불신이 모든 이들에게 소외를 느끼게 했다.(43쪽)

나도 늘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외롭다고 했었고,

누가 날 일부러 '따'시킨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따'시키려 들었었다.

그러다가 '영혼의 찝찌름한 냄새'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었고, 나를 마구 드러내려고 했었다.

내가 행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또는 그녀)에게 나를 마구 드러내는 행위들이 그(또는 그녀)를 거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질 우려가 없다는 확신 때문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보이는 것만 보려들고 보여주는 것만 봐서는 안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보이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는 걸로 미루어 들리지 않는 것까지 상상하려 들며,

행간을 이해한다는 말로 이리저리 마음대로 유추하려 드는 건 아닐까 싶었었다.

그걸 이 책에선, 믹과 포셔의 대화를 빌어 이렇게 얘기한다.

"얼굴이나 표정에 나타난다는 게 아냐. 네 영혼의 모습과 색깔에 대해 말하는 거야."(66쪽)

 

싱어에게는 그들이 함께 지낸 이후 몇 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숨 가쁘게 두 손을 움직였지만 할 말을 다 할 수 없었다. 그의 연두색 두 눈은 불탔고 이마에는 땀이 번득였다. 명랑하고 행복했던 옛날의 감정들이 빠르게 되살아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안토나풀로스는 번들거리는 검은 눈을 친구에게 고정시킨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은 바지춤을 심드렁하게 만지작거렸다. 싱어는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방문자들에 대해 말했다. 그들이 자기의 외로움을 잊게 해준다고 했다.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며 쉬지 않고 말을 하지만, 그들이 자기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싱어는 제이크 블런트와 믹과 코플랜드 박사의 모습을 재빨리 스케치했다. 그러나 친구가 관심 없다는 것을 안 순간 종이를 구겨버리고 그들을 잊었다. 하고 싶은 말의 절반도 끝내지 못했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면회 시간이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싱어는 매우 피곤하고 행복해져서 방실을 나섰다.(119쪽)

싱어는 수화를 사용하여 자신의 말을 할 수도, 소통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가 자신의 얘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안 순간, (공통의 관심사를 위하여) 종이를 구겨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싱어의 입장에서는 듣기만 하고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비극적이었을텐데,

싱어를 찾아가 자신의 얘기를 하는 입장에선 그런 싱어가 우월하게 보였다니 아이러니컬 하다.

싱어를 찾았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두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기만 하면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싱어를 부러워했다.

그들은 말했고, 그들을 지켜보는 벙어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 이유가 두 사람에게 있을까 아니면 싱어에게 있을까? 싱어는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말을 하지 않으므로 더욱 우월하게 보였다.(167쪽)

 

그런데 싱어를 찾던 사람들은, 흑인 의사를 비롯하여 하나 같이 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인데,

자신의 얘기를 하느라,

소통을 꿈꾸는 상대방의 마음 한자락 헤아리지 못한 것일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니 삶이 부질없게만 여겨진다.

그에게는 두 손이 고통이었다. 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잠이 들어도 꿈틀거렸고 깨어보면 꿈속의 말들을 자기 얼굴 앞에서 만들고 있었다. 그는 자기 손을 바라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갈색 두 손은 날렵하고 튼튼했다. 몇 년 전에는 손을 정성껏 관리했다. 겨울이면 손이 트지 않게 기름을 발랐고, 손톱 각피를 밀어냈다. 손톰은 손끝 모양에 맞게 손질했다. 그는 손을 씻고 다듬는 게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에 두번 솔로 대강 닦고 주머니에 넣었다.

  싱어는 혼자 방에서 서성거릴 때면 손마디를 꺾고 아플 때까지 당겼다.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기도 했다. 친구를 혼자 생각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혼자 크게 말하다가 들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면, 도덕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수치와 슬픔이 뒤섞여 두 손을 포개 뒤로 감추었다. 그러나 손들은 그를 편히 놔두지 않았다.(255쪽)

 

이 책을 끝까지 읽었고,

예상했던대로의 결말이었지만,

내 예상대로 들어맞은 이 책이 달갑지는 않다.

 

참 좋은 책인 것은 알겠는데,

너무 침울하고 우울한데다가 섬세하여,

그 분위기가 전염될까봐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침울하고 암울한 일로 한가득이니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정현종의 시가 있다.

난 시의 한 글자를 교묘하게 바꾸어 시를 오독하는 걸 즐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살고 싶다.'

'가고싶다'는 왠지 가닿는다는 것에 중점을 둔 말처럼 들린다.

난 섬에 가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 섬에서 사는 걸 꿈꿔보게 된다.

보대끼고 지지고 볶으면서 살다보면,

먼 우주가 그렇게 열렸듯이,

빅뱅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화학적 케미를 이룰지 누가 알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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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3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2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3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2 17:51   좋아요 1 | URL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섬이 ‘온라인 공간’입니다. 거기에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피상적인 관계로 유지됩니다. 한 번 맺은 관계가 오래 가는 경우가 드물어요.

양철나무꾼 2017-02-23 17:24   좋아요 2 | URL
cyrus님 말씀에 완전 공감합니다.

피상적인 관계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머리로는 쿨한 척 그게 되는데,
실상에선 안되니까 문제죠.

내 스스로에게 내가 상처를 주고는,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말이죠~ㅠ.ㅠ

2017-02-22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3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3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3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4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4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2 2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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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6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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