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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평점 :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이웃 알라디너의 서재에서 보고 혹해서 읽게 되었다.
난 이 알라디너의 글을 유머러스하고 재치발랄해서 좋아하는 지라,
그의 서평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 책 또한 내심 그러하리라고 기대했었나 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유머러스하고 재치발랄할 뿐더러 페이소스까지 장착했다.
소싯적부터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려고 시도는 여러번 하였었으나,
여러가지 연유에서 끝까지 읽지 못하였었다.
그 여러가지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가독성' 정도가 될 것 같은데,
도스토옙스기를 읽지 않았어도 이 책을 읽는다면,
명함 정도는 내밀고 훈수는 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각 장을 시작할때,
그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캐리커쳐처럼 그리고 그 밑에 이름을 적어넣어서,
헷갈리지않고 잘 따라읽을 수 있다.
길고 어려운 이름에 끌려다니다 보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을 할 수가 없어 집어던지기 여러번이었는데,
이 책은 그 어려운 내용들을 간략하면서도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로 잘 묶어 표현해 놓았다.
이 책을 읽으며 영원히 '을'로 표현 되는 직장인의 애환이랄까 절박한 심정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사실 내 나이가 '을'의 입장이 되기에는 좀 올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끙~(,.)
책을 다 읽고서 든 생각은 이 책의 저자 도제희 님도 보통은 아니었겠다는,
이 거친 세상을 살아나가는 그녀만의 방법이 좀 통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책과 저자에게 호의적이냐 하면,
예전 직장이 출판사들이 많은 동네여서
어디 한두 군데씩 아픈 사람들을 보아왔고,
나랑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한 사람은,
출판사 사장님이 자기 목에 빨대를 꽂고 피를(=피로 대변되는 어떤 책에 대한 아이디어나 활력을) 빨아먹는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었고,
고개를 주억이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돌이켜보니 10년도 훨씬 전이다.
나는 지적이고 싶고, 작은 제스처 하나에도 춤위가 묻어나는 사람이고 싶고,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가 하면 많은 말로 실언하지 않고 싶고, 타고난 재능에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대인 관계를 맺는 능력이 있었으면 한다. 잡념에 치우치지 않는 깔끔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면 더욱 좋겠다. 이 모든 것 중 뭐 하나 온전하게 이룬 것이 없어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질투한다.(95쪽)
이 책이 좋은 것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에 대한 처세법으로 읽히진 않는다는 것이다.
힘들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이들에게 '토닥토닥' 연대나 공감의 위안으로 다가온다.
뒷담화는 안 좋으니 해서는 안된다는 둥,
고전에서 얘기하는 권선징악을 강요하지 않는다.
'솔직히 '뒷담화'를 듣는 게 재미있다(229쪽)'고 쿨하게 얘기한다.
언제부턴가 삶이란 무엇인가, 내지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가는 것,
나이 들어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낮아지며 땅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란 걸 실감하게 된다.
'우아하게 '을'이 되는 법'이나,
'고분고분한 사람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법'이랑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암튼 앞만 보고 치열하게 내달리는 사람들이라면 보기 힘든 것들을,
도스토옙스키의 고전을 통해서,
도제희 작가님의 이 책을 통해서 엿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권해본다.
또는 낮아지고 땅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스토옙스키나 고전을 읽어볼만 하다.
이 책은 글도 글이지만,
글과 어우러진 그림들이 유머러스하고 재치발랄해서 맘에 든다.
덕분에 도스토옙스키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