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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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던가,

저자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을 읽고 이런 느낌을 남겼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충격도 고스란히 내몫이었다."

 

소설집은 소설이라서 자신을 전면에 배치하지 않아도 좋으니,

재기발랄하고 좀 파격적이기도 했었다.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복면가왕'에서 좀더 자유롭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가수들 마냥,

소설은 있을 수 있는 일, 있을 법한 일을 쓰는 것이니,

소설 속에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든 작가 자신일 필요는 없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망하게 펼쳐내는 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었다.

 

 

수필집은 수필집대로 좋았다.

수필집에선 그동안 내가 알라딘 서재를 통해 알던 그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알라딘 서재에서 봤던 글들도 있어서 그랬을테지만,

문장이 깔끔하고 단정한 것은 그대로이지만,

피격적이고 자유분망하다기보다는 감정을 많이 절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신 실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이 웅숭깊다. 

 

미니 에세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책은  사람, 생활, 책, 일상, 글과 관련된 것들이라는데,

가볍다기 보다는, 좀 학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신변잡기라고 하기엔 학구적인 고찰이 돋보인다.

영화나 책 따위에서 뻗어나가는 발상의 전환들이 그러하다.

 

암튼 이 책을 님의 조언대로 손길 가는 대로 편하게 펼쳐서 읽다가,

옳다구나 하고 학문하듯이 자세를 고쳐 앉았는데,

그게 '잔소리'라는 꼭지였다.

 

부모는 말하고 자식은 거부하는 것, 그것이 잔소리의 속성(28쪽)이라는데,

나도 요즘 '나의 두번째 애인'이었던 아들만 보면 잔소리를 시전한다.

너무 힘들어서 주름이 깊게 패이고 늙는게 느껴진다.

 

아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맘에 안드는데,

힘들면 씹어보지도 않고 뱉으려 한다.

친구에게 하소연하였더니,

신세대라서 그렇다는데,

그렇다면 요즘 신세대는 무엇을 씹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이빨이 약한가 보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책의 곳곳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하여 하는 잔소리가 내게도 통용되는 것 같아서,

따뜻한 온기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 말이다.

 

타자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긍정하도록. 나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타자의 시선도 나를 곡해하게 된다. 호의적인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껏 스스로를 옭아매고 몰아쳐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스스로 버리는 사람부터 버린다.(57쪽)

 

판단의 무능은 사고와 성찰이 부족할때 생겨난다. 악의 평범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을 경계할 수 있는 사고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게 문제라는 말. 악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 철학적 사유의 반성으로 거듭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 그것이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니었을까.(129쪽)

 

'작가의 말'에서 님은 일천 글자 쓰기를 거의 매일 하셨단다.

다시 잠들지 못하는 새벽을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작업이었다며 겸양을 부리신다.

말이니까 하기 쉽지 육백여편이면 2년이라는 세월이다.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일천 글자 쓰기'라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님의 글쓰기는 계속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엄청 좋아서 손가락으로 꼭꼭 눌러가며 읽다가,

보이지 않는 밑줄을 계속 긋다가,

외워버렸다.

ㆍㆍㆍㆍㆍㆍ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이나 하고, 망원경으로 새나 관찰하는 독신녀 제인 마플. 별일 하지 않는 척, 아무 것도 못 본 척하는 그녀는 시골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요란 없이 꿰차는 노파 탐정이었다.

  미스 마플이 될 수도, 그럴 마음도 없었던 나는 다만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무심해 보이는 그녀도 멜랑콜리에 젖은 옷소매를 말리기 위해 바람 드는 새벽 창가를 찾는 일이 잦았을 거라고. 단단해 보이는 한낮의 미스 마플일수록 울지 않는 새벽은 드물었을 것이다. 해결하지 못할 숱한 과제 앞에서 눈물짓는 미스 마플이야말로 내 오랜 친구였다.('작가의 말' 중에서)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수필은 소설과는 다르게 겸손하고 두루뭉술하다.

한낮에 단단해 보이는 미스 마플에겐 늘 울면서 맞이하는 새벽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제일 앞쪽을 보면,

곱게 미소짓는 님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ㆍㆍㆍㆍㆍㆍ여전히 바닷가 소도시에서 좋은 사람들과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나누며 살아간다. 책장을 넘기는 횟수만큼 감사하고, 백스페이스나 딜리트 키를 누르는 횟수만큼 용서를 바라는 그러저러한 나날이다.'

라고 되어있다.

그렇게 그렇게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누리시길 기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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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1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6-01 17:54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거의 다 읽어가는데, 문장이 간결해서 좋던데요.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이고요.

오늘부터 6월 시작입니다.
6월엔 더 좋은 일들 많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기분 좋은 금요일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8-06-02 09:12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매력인것 같아요.
간결하고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서 어디서 부터든지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님은 또 어떤 감상을 올려주실지 기대가 돼요.
요즘 손글씨로 올려주시는 거 잘 보고 있거든요~^^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울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진 열어놓은 창문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네요.
오늘도 힘내자구요~!^^

세실 2018-06-02 06:41   좋아요 1 | URL
아 전 아직 시작하지 못했는데 님은 벌써...
스마트폰 만지는 시간만 줄여도...그쵸?
팜므님 글 정갈하고, 사람내음이 나죠. 매일 일천자 쓰기... 참 대단하신, 멋지신 팜므님^^
그리고 훌륭한 애독자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8-06-02 09:20   좋아요 1 | URL
아마 님은 일로도 여러 가지 책을 접해서 더 그러실거예요.^^
요즘 나이가 드는건지 부쩍 책 읽기도, 음악 듣기도 버거운데,
이 책은 아무데나 펼쳐서 한꼭지씩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팜므님 멋지신거야 웬만한 알라디너야 다 아는 것이고,
저에게까지 덕담을 날려주신 세실 님,
님은 분명 천사이십니다~!^^

2018-06-02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6-02 16:23   좋아요 0 | URL
ㅎ, ㅎ....잘 지내세요?
꼼꼼이 읽으시고 댓글 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폰에선 수정이 불가능해요. 월욜날 출근해서 수정하겠습니다, 꾸벅~(__)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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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들이 알고 지내던 스물네 살 짜리 청년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아들이 형이라고 부르던 그 청년은 키와 몸무게의 숫자가 막상막하여서 주변 사람들이 건강을 염려할 정도였단다.

장례식장에 간 아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 형의 부모가 이혼을 하여 살아 생전 엄마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단다.

위로 누나들이 있었으나 일찍 출가를 하였고,

그 청년 혼자 비만이라는 질병과 싸우다가 그렇게 세상을 달리하고 만 것이다.

뭐, 내가 남의 가정사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고,

인생의 한창때를 의지하고 의논할 부모가 없이 산다는건 참 외롭고 불우한 일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개인적으로 그냥 스릴러나 장르소설보다는 사람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그런 류의 소설을 좋아한다.

이 책도 그런 류의 심리소설인줄 알고 시작하였으나,

열두 살 아이의 심리 상태를 왠지 어설프게표현한다.

어쩜 아이의 심리 상태가 어설픈게 아니라,

쉰 다섯이 넘었을 작가의 심리 상태가 자꾸 개입을 해서 아이가 애늙은이처럼 표현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시선으로 열두 살 아이의 마음을 개입하고 간섭하려 하니 좀 삐그덕거리는 것일까.

어쩜 프랑스 아이들은 우리보다 조숙한 것일 수도 있고,

이 책의 앙투안 또한 부모가 일찍 이혼을 한터라,

애늙은이 같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앙투안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내용이나 줄거리 따위는 책 소개를 봐도 알 수 있을 것이고 여기저기서 언급되니 차치하고,

(실상 줄거리가 중요한게 아니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을 말해 보겠다.

 

열두살 짜리가 여섯살짜리 아이를 때려죽인 것은 그렇다 치고,

그런 후에 혼자 고민하고 갈등하고 그런 과정이 작가라는 어른이 개입한 열두살짜리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내가 여기서 속상했던 것은 열두살짜리 아이의 시선이 겉늙어버려서가 아니라,

부부가 이혼하고 엄마와 단둘이 자라는 외톨이 아이의 그것 때문이었다.

만약 이 아이가 누군든 어른과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적어도 어른과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 수 있었다면,

내지는 함께 얘기를 나눌 친구라도 있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엇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아이가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을 하거나 의견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어른들이 이 아이를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보호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여기선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제하겠다.)

「앙투안, 네게 혹시 고민이 있다면 말이다ㆍㆍㆍㆍㆍㆍ」

의사는 나직하고도 억제되고도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ㆍㆍㆍㆍㆍㆍ

「만일 내가 널 입원시켰다면ㆍㆍㆍㆍㆍㆍ일은 다른 식으로 진행됐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ㆍㆍㆍㆍㆍㆍ? 하지만, 지금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ㆍㆍㆍㆍㆍㆍ.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온 거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ㆍㆍㆍㆍㆍㆍ그러니까,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넌 날 찾으면 된다고, 날 부르면 된다고 네게 말해주려고 말이야ㆍㆍㆍㆍㆍㆍ언제든지 부르면 돼ㆍㆍㆍㆍㆍㆍ. 자, 그거야. 불러서 내게 얘기하면 돼ㆍㆍㆍㆍㆍㆍ. 언제든지.」

  앙투안도 그리고 이 마을의 그 누구도, 디윌라푸아 박사가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만일 앙투안이 자기 말을 듣고 있다면, 이 말의 메시지를 충분히 받아들일 시간을 주기 위해 오랫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 다음 일어나서 아까 들어왔던 것처럼 방을 나갔다. 마치 어떤 초자연적 존재처럼.(158~159쪽)

앙투안을 돌보러왔던 의사의 그것이 진정한 어른의 그것처럼 비춰져 눈물겨웠다.

 

그리고 열두살의 나이로는 이해하기 버거운 어른들의 애정 관계도 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볼 수 있는,

진짜 어른들의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지난한 삶의 과정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이 떠오른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삶의 어려운 고비를 만났을때,

질병으로 고통받을때,

의지하고 의논할 부모나 형제자매, 친구가 없이 산다는건 참 외롭고 불우한 일이다.

그리고 이건 어린 나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외롭고 불우한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말이다.

 

어떻게 무게중심을 잡으며 살아나가야 할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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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5-24 11:30   좋아요 1 | URL
가정이라는 그릇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발에 의해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발이 한 개여도 서 있을 수는 있겠지만, 서로 의존했을 때 보다 안정적으로 물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양철나무꾼 2018-05-24 11:43   좋아요 2 | URL
이 책에서는 결국 어머니와 누군가 보이지않게 앙투안을 배려했다는걸 앙투안이 아주 오랜 후에 깨닫게 돼요.
하지만 사건을 저지르고 어쩌지 못해 할때 적절한 도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 위에 표현되는 의사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언어와 방법으로 위로와 도움을 주려하는데...

아이에게 적절한 부모의 역할이 뭘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관심은 갖되 간섭은 않는,
아이는 부모의 애정과 관심 속에 무럭무럭 크는 존재들인것 같습니다~^^
 
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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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고 해야겠지만, 솔직히 그리 재밌진 않았다.

그게 유홍준 님의 필력 때문은 아닌 것 같고,

너무 한문이 많이 나오다보니 맥이 끊기는 느낌이어서 그랬다.

완당 평전을 읽은 것 같기는 한데 오래전 일이라서 내용은 까마득하고,

거기다가 완당평전은 다 거둬들이고 내용을 보완하여 나온 것이 이 책이라고 한다.

유홍준 님의 오랜 추사 연구의 결과물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의의가 있겠다.

 

내가 추사를 알고 있는 방법이 소박(?)하여 민망하지만, 

언젠기 김탁환이 쓴 '열하광인'이었나, 백탑파 시리즈에 박제가와 더불어 등장해서 알게 되었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뒤에 참고문헌이 빽빽한 것이 만만히 볼 책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추사 김정희에 관한 책이지만,

박제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솔직히 난 추사 김정희보다는 박제가에 더 열광했었고,

자연 박제가에 대한 궁금증이 더했지만,

박제가에 대한 책은 몇 권 안 되었는데,

이 책에 추사 김정희의 스승으로 비중있게 등장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더우기 청조학이라고 하여 중국의 사상들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궁금하였는데,

그런 시대적 배경이 나와있는 것이 좋았다.

추사 김정희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중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추사 김정희의 집안이 빵빵하여 그리 될 수 있었던 것이니까 말이다.

중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그 시대 내로라 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시서화 따위 선물을 주고받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옛 위인의 전기이니까 웬만하면 호의적으로 뭐든지 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을텐데,

그의 인간상을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까칠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미국 갔다 온 지식인들이 말끝마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며 남을 면박 주며 잘난 체하곤 했는데, 그런 오만과 치기가 추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추사는 그런 식으로 남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고, 간혹 그것이 심하여 사람들도부터 미움도 받았다(73쪽)

 

어찌 되었건 그런 추사 김정희에 대한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보다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에 의해서 활발하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의 사후 과천 문화원에 기증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후반기 글씨를 일컬어 대교약졸이라고 하나 보다.

글씨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파격적인 글씨들이 몇 있었으나 졸렬해 보이지는 않는다.

 

글씨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부람난취'라는 이 글씨가 가장 좋았다.

가만히 넋을 놓고 쳐다보다 보면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봄날의 푸른 산'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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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포의 장사법 - 그들은 어떻게 세월을 이기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나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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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읽고 뒷 표지 날개를 들춰 무심히 바라보다 보니,

그동안 그의 가게로 알려진 '로칸다 몽로' 두 곳 외에도 '광화문 국밥'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방방곡곡 음식은 언제 먹으러 다니고, 가게에서 일은 언제 하고, 글은 언제 쓰나 싶었었다.

그의 글맛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궁금증이 더할 수밖에 없었는데,

손오공처럼 머리카락을 뽑아 분신술을 행하는게 아닌가 조용히 짐작을 해 볼 뿐이었다.

 

그간 그의 책을 얼추 다 따라읽은 나로서는 '백년식당'에 이은, '노포의 장사법'에 경의를 표하지만,

얼핏보기에는 다 같은 가게는 아니지만 겹치는 부분도 있었고,

그 집이 그 집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책을 들이면서 그럴 줄 몰랐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가 소개하는 노포들이,

'노중훈의 여행의 맛'에서 소개하던 그 노포들이고,

그의 다른 책에서 언급되는 그 노포들이어서,

뭐,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이 책을 사 읽었느냐 하면 글맛 때문이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화려한 수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거나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저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을 써내려가는데,

그게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것이 깔끔한 맛이 난다.

 

요즘은 음식 만드는 법이나 맛집 소개 등 관련 프로그램의 홍수이고,

그러다보니 맛집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힘 주어 광고하는 것을 보게 된다.

힘을 주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이 과장과 반복이다.

막상 가보면 진짜 맛집인 경우도 있지만,

거품인 경우도 있고,

설혹 그 당시에는 맛집이었을지 모르지만 손님이 많아지면서 맛이 변질됐을 수도 있고,

맛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손님이 많다보니 불친절해져서 입맛이 싹 달아나 버리는 그런 곳도 있다.

며칠전 이사온 아랫집 새댁은 인사를 하는데 '자신의 직업'을 '맛집 블로거'라고 소개해서 멍했었다.

요즘 맛집은 맛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광고와 홍보를 해야 하는 것인가 싶어 씁쓸하였다.

 

 노포를 오래 취재하다 보니 어떤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이른바 '살아남는 집의 이유'이다. 물론 맛은 기본이다. 운도 따라야 한다. 그 외에 가장 중요한 건 한결같음이다. 사소할 것 같은 재료 손질, 오직 전래의 기법대로 내는 일품의 맛, 거기에 손님들의 호응으로 생겨난 기묘한 연대감 같은 것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배포와 뚝심을 가지고 일생을 바쳐 같은 일을 지속하는 장사꾼으로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음식을 대하는 주인장의 진심이 변하지 않는다.

 직원들에 대해서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별나서 몇십 년씩 다니면서 고희와 팔순을 넘기는 직원이 흔하다.(6~7쪽)

 

이 책을 쓰신  박찬일 님은 노포들이 취재를 거부하는 곳이 많아서 취재를 하기까지 애를 먹었고,

어떤 곳들은 여러번 찾아갔으나 끝내 원치 않으셔서 접은 곳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옛날 얘기인듯.

책에 그렇다고 한 곳 중 몇몇 곳은 먹방에 이미 여러 번 등장해서,

가게 내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곳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이게 대를 넘나드는 노포들이다 보니,

1세대 부모들이 돌아가시거나,

자식들이 가업을 이어받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해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또 한가지 생각해볼 것은, 이 노포들이 오랜 경쟁에서 살아남은 집은 맞지만,

꼭 맛집이어서 살아남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세월이 변한만큼 입맛도 변했기 때문이다.

 

이런 곳은 맛집 차원에서가 아니라,

노포라는 의미에서,

옛것을 보호하고 기린다는 의미에서,

다른 보존과 홍보가 필요한게 아닐까 싶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듯,

몇몇 음식들은 추억과 어울렸을때 맛이 상승할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찬일 님의 '광화문 국밥'집은 축하할 일이지만,

박찬일 님이 그곳에 상주하며 음식을 내는 일까지 하지는 않으시나 보다.

그만의 레시피를 규격화하여 요리를 해내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그가 운영하는 가게일뿐이지, 그가 요리하는 가게는 아닌 것이고,

늘 사람들에게 셰프가 아닌 요리사로 불리길 원하는 그라면,

그가 말하는 일이란 요리를 두고 애기하는 것이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만약 요즘 맛집들처럼 1호,2호 체인점을 내고 셰프라는 사람들을 곳곳에 두고 운영만하는 것이라면,

'일하고 있다'는 표현이 무색해진다.

 

이 책의 사진들은 단짝 노중훈 님이 찍었다는데,

다 나름 좋았지만,

이 사진은 제목과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유독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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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5-17 18:23   좋아요 0 | URL
사진 속의 주전자가 빈 공간에 시선이 머무릅니다.
누군가의 테이블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요.
그분들은 저 주전자를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하겠지, 그런 생각이 이어집니다.

양철나무꾼님, 오늘도 비가 오고 있어요.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 드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8-05-18 13:56   좋아요 1 | URL
오홀~^^ 눈썰미가 좋으신 서니데이님.
님의 눈썰미와 상상력이 부럽습니다~^^
저는 저 주전자를 보면서 불 위에는 한번도 올라간적이 없을 막걸리 전용 주전자로군 했는데 말예요.

아픈 건 어떠세요?
사나흘 지나면 본격적으로 아파지던데,
비가 와서 더 찌뿌둥 하시려나?
잘 돌보시기를~^^


서니데이 2018-05-18 17:08   좋아요 1 | URL
저기 주전자 너무 새 것 같아요. 반짝 반짝하고 찌그러진 부분도 하나도 없고요.
어쩌면 그만큼 아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불 위에서 끓어서 넘치는 일은 아직 없었을 것 같은 느낌이, 저도 들어요.

며칠 지나면 더 아픈 거군요. 어제부터 조금 더 아프더니, 앗 그런 비밀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는데요.;;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5-17 18:33   좋아요 0 | URL
잘 되는 집 사장님에서 프랜차이즈 기업인으로 바뀔 때 우리가 기억하는 맛집의 모습을 더이상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낍니다...

양철나무꾼 2018-05-18 14:06   좋아요 1 | URL
같은 상호의 프렌차이즈라도 지점마다 맛이 약간씩 다른듯 해요.
계량화 되고 수치화된 그것 말고,
맛을 이루는 그 나머지 것들, 이를테면 손맛 같은 것, 그리고 뜸들이기, 적절한 타이밍에 김빼기 같은 온도나 습도에도 좌우될테니 말예요.

제가 기억하는 맛집은 어릴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집밥입니다.
그래서 아플때는 그 할머니 딸인 고모를 찾아가요~^^

지금행복하자 2018-05-17 18:52   좋아요 0 | URL
책 제목을 보고 양철나무님 글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8-05-18 14:07   좋아요 0 | URL
체가 박찬일 님을 좀 애정하는게...그곳까지 소문났나요?^^

북다이제스터 2018-05-17 22:38   좋아요 0 | URL
‘광화문 국밥’ 꼭 가보고 싶네요.
알게되어 고맙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8-05-18 14:09   좋아요 1 | URL
몽로는 퓨전 주점 느낌이라면 이곳은 왠지 서민 냄새 폴폴 풍기는 국밥집일것 같아서 정겨워요.
저도 함 가보고 싶네요~^^

북다이제스터 2018-05-19 11:36   좋아요 1 | URL
덕분에 와 봤습니다.
지금까지 먹은 평양냉면 중 가장 압권입니다. ^^ 장난 아니네요. ㅋ
다음엔 국밥도 꼭 먹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2018-05-17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5-18 14:13   좋아요 1 | URL
저는 상큼한 오이고추에 쌈장 찍어서 막걸리 먹고 싶어요.
요즘 같은 꿀꿀한 날씨에는 신김치 송송 썰어넣고 국물도 얼마간 쪼옥 따라넣은 빈대떡도 좋겠네요~^^

2018-05-21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1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이다.

5월로 접어든지도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

독서는 일단 멈춤이다.

꽃들이 자신을 봐달라고 손짓을 하는데 어떻게 책따위를 읽을 수 있겠어...는 아니어 주시고,

인터넷으로 들어야할 강좌가 있어서 밍기적거렸다.

참으로 안 좋은 버릇인데, 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도,

옆으로 읽고싶은 책을 펼쳐 독서대 위에 올려두고 호시탐탐 읽을 기회를 노리는데,

옛날에는 한번에 두가지, 세가지 일을 거뜬하게 하며 멀티테스킹을 구사하였는데,

언제부턴가 한가지 일만 하기에도 버거워 머리를 콕 들이박는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5만원이라는 제한된 범위내에서 들이려는데,

왜 한 권 읽고 또 사고 그러지 않고 5만원이냐고 한다면,

책 쿠션이 갖고 싶어서라고나 할까?

조신하게 고르고 보니 '안평'이 빠진다.

친구에게 추사 김정희는 샀고 안평은 못 샀다고 했더니,

안평은 좀 거창하다고 하길래,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그래도 돈 있으면 사두고는 싶다고 했더니,

글쎄~--;

나보고 정신을 차리란다.

가정집과 도서관을 구분하란다.

 

하긴, 미니멀 라이프를 꿈꾼다며,

하루에 한권씩은 버리자고 하는데,

물건도 한 점씩은 버리려고 하는데 쉽지 않은 나의 현실을 꿰뚫어보고 있는게다.

 

 

 

 왕의 하루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암튼 요즘 펼쳐뒀던 책은 '왕의 하루'이다.

제목은 '왕의 하루'지만 왕의 하루나 일과에 대한 책은 아니고,

역사 속의 그날들을 드라마틱하게 재조명해 내고 있다.

 

왕의 하루라고 해서 생각이 난건데,

어제가 문대통령 취임 1주년이었다.

잘 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여론조사(갤럽) 결과 지지율이 10%P 급등하여 83%에 이른다는 것만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평화가 일상이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울컥하였다.

'사는 것이 나아졌다'는 말을 꼭 듣고 싶다는데, 조만간 그렇게 되리라 희망해 본다.

 

분위기를 바꾸어,

'왕의 하루'를 읽다 느낀건데, 왕도 삶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을것 같다.

문안 인사도 아침마다 드려야 했고,

조회와 경연에도 참여해야 했으며,

밥도 초조반이라고 하여 새벽부터 시작하여 계속 먹어야 했던걸 보면 말이다.

아침 수라를 10시경에 시작하였다고 하니,

수라를 한시간 정도 들었다고 치고,

11시부터 정사를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도 통상 5시면 하루의 일과는 끝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평화가 일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왕의 하루'식으로 해석해보자면,

전쟁이나 당쟁 따위로 다툴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니,

백성들의 삶이 나아진다는 것이 되겠다.

부디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윤시윤이 나온 드라마 '대군'의 모티브가 '안평대군'이라는 말이 있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으니 큰 의미는 없고,

'안평'을 사려는 타당성을 확보중이다, ㅋ~.

 

 

 

 안평
 심경호 지음 / 알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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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5-11 11:46   좋아요 0 | URL
^^:) 양철나무꾼님께서 「안평」을 구입하시는 타당성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을 믿고 ‘신뢰성‘으로 선택하심이 어떨런지요^^:)... 가격의 부담은 조금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ㅜㅜ

양철나무꾼 2018-05-11 11:57   좋아요 1 | URL
ㅎ,ㅎ,ㅎ...겨울호랑이 님께서 타당성에 한표 힘을 실어주셨으니,
조만간, 곧...들여야겠어요~^^
감사~(__)

근데 연의 어린이 머리가 많이 자랐네요.
두갈래로 묶여지다니, ㅋ~.
정말 예뻐요~^^

겨울호랑이 2018-05-11 12:10   좋아요 1 | URL
^^:) 연의가 얼마 전 감기걸렸는데, 아프고 난 후에는 키가 좀 자랐어요. 아픈만큼 성장하는 것을 아이를 통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8-05-11 18:17   좋아요 1 | URL
아이들은 한번씩 아플때마다 부모는 속을 끌이고 마음을 쓸어내리고,
그럴때마다 아이들은 크는 것 같아요~^^
연의도 이제 제법 어린이 티가 나는 걸요.

제가 지금 무슨 공부를 하는데,
거기서 말하는 성인의 기준 만 8세부터예요.
아무리 양보해도 만8세가 성인이 되긴 좀 그렇죠?^^

겨울호랑이 2018-05-11 20:17   좋아요 0 | URL
^^:) 예전에는 결혼할 나이라지만 8살 성인이면 많이 이른 것 같네요 ㅋ 8살에 부양 의무를 던다면 저야 좋겠지만요

2018-05-11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1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타락시아 2018-05-12 10:48   좋아요 0 | URL
왕의 하루, 안평 모두 관심이 가네요.^^ 한반도 평화와 교류가 정착되면 좋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5-14 10: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아타락시아 님~^^
왕의 하루는 님 처럼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번쯤 접했을 내용들을 이한우 님의 주관으로 펼쳐나가신 책이었고,
안평은 가격이 후달려고 저도 벼르고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