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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의 장사법 - 그들은 어떻게 세월을 이기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나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4월
평점 :
이 책을 다읽고 뒷 표지 날개를 들춰 무심히 바라보다 보니,
그동안 그의 가게로 알려진 '로칸다 몽로' 두 곳 외에도 '광화문 국밥'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방방곡곡 음식은 언제 먹으러 다니고, 가게에서 일은 언제 하고, 글은 언제 쓰나 싶었었다.
그의 글맛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궁금증이 더할 수밖에 없었는데,
손오공처럼 머리카락을 뽑아 분신술을 행하는게 아닌가 조용히 짐작을 해 볼 뿐이었다.
그간 그의 책을 얼추 다 따라읽은 나로서는 '백년식당'에 이은, '노포의 장사법'에 경의를 표하지만,
얼핏보기에는 다 같은 가게는 아니지만 겹치는 부분도 있었고,
그 집이 그 집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책을 들이면서 그럴 줄 몰랐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가 소개하는 노포들이,
'노중훈의 여행의 맛'에서 소개하던 그 노포들이고,
그의 다른 책에서 언급되는 그 노포들이어서,
뭐,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이 책을 사 읽었느냐 하면 글맛 때문이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화려한 수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거나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저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을 써내려가는데,
그게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것이 깔끔한 맛이 난다.
요즘은 음식 만드는 법이나 맛집 소개 등 관련 프로그램의 홍수이고,
그러다보니 맛집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힘 주어 광고하는 것을 보게 된다.
힘을 주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이 과장과 반복이다.
막상 가보면 진짜 맛집인 경우도 있지만,
거품인 경우도 있고,
설혹 그 당시에는 맛집이었을지 모르지만 손님이 많아지면서 맛이 변질됐을 수도 있고,
맛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손님이 많다보니 불친절해져서 입맛이 싹 달아나 버리는 그런 곳도 있다.
며칠전 이사온 아랫집 새댁은 인사를 하는데 '자신의 직업'을 '맛집 블로거'라고 소개해서 멍했었다.
요즘 맛집은 맛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광고와 홍보를 해야 하는 것인가 싶어 씁쓸하였다.
노포를 오래 취재하다 보니 어떤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이른바 '살아남는 집의 이유'이다. 물론 맛은 기본이다. 운도 따라야 한다. 그 외에 가장 중요한 건 한결같음이다. 사소할 것 같은 재료 손질, 오직 전래의 기법대로 내는 일품의 맛, 거기에 손님들의 호응으로 생겨난 기묘한 연대감 같은 것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배포와 뚝심을 가지고 일생을 바쳐 같은 일을 지속하는 장사꾼으로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음식을 대하는 주인장의 진심이 변하지 않는다.
직원들에 대해서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별나서 몇십 년씩 다니면서 고희와 팔순을 넘기는 직원이 흔하다.(6~7쪽)
이 책을 쓰신 박찬일 님은 노포들이 취재를 거부하는 곳이 많아서 취재를 하기까지 애를 먹었고,
어떤 곳들은 여러번 찾아갔으나 끝내 원치 않으셔서 접은 곳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옛날 얘기인듯.
책에 그렇다고 한 곳 중 몇몇 곳은 먹방에 이미 여러 번 등장해서,
가게 내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곳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이게 대를 넘나드는 노포들이다 보니,
1세대 부모들이 돌아가시거나,
자식들이 가업을 이어받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해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또 한가지 생각해볼 것은, 이 노포들이 오랜 경쟁에서 살아남은 집은 맞지만,
꼭 맛집이어서 살아남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세월이 변한만큼 입맛도 변했기 때문이다.
이런 곳은 맛집 차원에서가 아니라,
노포라는 의미에서,
옛것을 보호하고 기린다는 의미에서,
다른 보존과 홍보가 필요한게 아닐까 싶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듯,
몇몇 음식들은 추억과 어울렸을때 맛이 상승할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찬일 님의 '광화문 국밥'집은 축하할 일이지만,
박찬일 님이 그곳에 상주하며 음식을 내는 일까지 하지는 않으시나 보다.
그만의 레시피를 규격화하여 요리를 해내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그가 운영하는 가게일뿐이지, 그가 요리하는 가게는 아닌 것이고,
늘 사람들에게 셰프가 아닌 요리사로 불리길 원하는 그라면,
그가 말하는 일이란 요리를 두고 애기하는 것이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만약 요즘 맛집들처럼 1호,2호 체인점을 내고 셰프라는 사람들을 곳곳에 두고 운영만하는 것이라면,
'일하고 있다'는 표현이 무색해진다.
이 책의 사진들은 단짝 노중훈 님이 찍었다는데,
다 나름 좋았지만,
이 사진은 제목과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유독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