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잘 키워보라며 '로즈허브' 가지를 몇 개 꺾어 보내준게 시작이었다.

그 과정에서 '달팽이'도 같이 보내와, 경기를 일으킬 뻔 하기도 하였지만,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아직까지 똘똘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그 후로 내 스스로 화분을 하나씩 둘씩 장만하는 취미가 생겼다.

볕이 드는, 창가에 화분을 이렇게 저렇게 놓고보니, 작은 가든이 하나 생겼다.

이름 하여 'Seo's Garden'되시겠다.

 

 

 

근데,  꽃이 있으면 새가 날아온다고...

내가 있는 이곳은 4, 5층 건물의 2층인데,

2층과 3층의 층간 공간 어디에 새가 알을 낳아서 부화시켰는지,

얼마전부터 '짹짹'거리는데 아주 시끄럽다 못해 정신이 사납다.

가만히 듣고 앉아 있자면 새가 노래하거나 지저귀는 그런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새끼들이 배가 고파서 '짹짹'대는 듯한 것이,

마음을 수선스럽고 가난하게 만든다.

도대체 어디로 그 녀석들이 들어갔는지, 어디에 둥지를 틀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꽃이 있으면 새가 날오는 것은 순리이려니 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밖에...~--;.

 

쉬는 날이면 늘 그렇듯이,

어제도 이리저리 뒹굴거리면 옷으로 방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데...

아는 분이 볼일이 있어서 집앞에 오셨다며 불러내셨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느라라,

시장 한복판 음식을 늘어놓고 파는 좌판에 앉아 해물파전에 소주를 마셨다.

누군가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소리가 지글 지글 전 부치는 소리랑 비슷해서...

비오는날이면 전이 더 땡기기 마련이라고 하던데...

모퉁이 벌어진 비닐 천막으로 내다보는 비는,

추적추적도, 지글지글도 아닌 것이,

땅바닥에 수직으로 내려꽂히고 패대기치는 것이...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쪽 구석에 있는 텔레비젼에서 '치지직~'거리며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진행자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고,

'항공기'에 조예가 깊다는 옆의 사람은  모형 항공기를 손에 들고 이렇게 저렇게 재현해 내는데,

그 사람의 손이 흉물스러운 건지, 모형항공기가 흉물스러운 건지,

내 심사가 꼬여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와중 한쪽 귀퉁이에선 SNS-스마트폰에 텔레비젼이 밀렸다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얘기하느라 내리는 빗속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나랑 같이 낮술을 마시는 이는 불콰해진 얼굴로,

"미국은 말야, 대통령이 나와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말야...

 우리나라 아시아나 항공사는 뭐하는거야? 유감 표명 한마디도 없고 말야. 쉬쉬하느라 정신없구 말야~=3"

하고 투덜거렸다.

나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요.

  저렇게 큰 일이 있는데, 무게 잡고 재빨리 수습하고 유감표명하는게 오히려 얄궂게 보일 수도 있겠다아~."

라고 하며,

"사람 일은 한치 앞도 모르는거예요.

 저렇게 큰 항공기가, 안전하여 사고날 확률도 적은 그런 항공기가,

 게다가 기장들도 하나같이 베테랑이어서 만시간 비행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던데 말예요.

 우리도 운전 조심해야 해요.

 우리가 조심해도 고장이거나 상대방이 갑자기 밀어붙이면 어찌할 수 없는 거잖아요."

라고 하였다.

나랑 같이 술을 마시던 이는,

한치 앞을 알 수가 없는 것이 인생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 지금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대비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당신은 며칠 전에도 책을 라면상자로 여남은 상자 도서관에 기증하셨다고 하시길래,

'날 주지, 도서관에 기증은 왜 하냐?'

고 타박을 하였더니,

나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거고,

그리고 나이 상으로도...

이젠 펼치고 벌여 놓기만 할때가 아니라, 소박하게 정리하고 단출하게 할때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책들은 다 불교관계 서적이어서 내가 읽기 힘들거라신다.

나는 '읽을려고 노력하면 다 읽을 수가 있지, 못 읽는게 어디있냐'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고,

당신은 나의 책욕심이 과하다고 타박을 하셨다.

 

앞으로 읽을 책을 몇 권 준비해 두는 것은 모르지만,

다 읽지도 못하고,

읽을 깜냥도 안되면서,

책을 무조건 들이기만 하는 것은 병이라고 하셨다.

 

내가 필요없는것을 사거나 사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대구하였더니,

금이나 보석을 사재기하면 값이 올라 재테크나 되기라도 하지,

언제 품절이나 절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건 다 핑계이다,

도서관 가면 다 있고,

e-book형태로 데이터베이스도 다 갖춰져 있어서,

장차, 읽고 싶은 책이 없어서 못 읽는 일은 없을거라고 하신다.

충격적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실 요즘의 난 정도가 지나쳤다.

알고 자각하면서도 책을 사들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은,

그래...인정하자, 일종의 병이라면 병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관도서가 생겨나고,

자고 일어나면...알라딘에서 이런 저런 사은행사나 이벤트를 하고 있으니,

미욱한 중생 마음이 동하였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책이 무너져 날 덮치는 꿈을 꾸기도 하고,

무너진 책을 이리저리 교차로 놓아 견고하게 책탑을 쌓아올리는 꿈을 꾸는가 하면,

테트리스 맞추기처럼 한줄을 완벽하게 맞추면 블럭이 줄어드는 것처럼 책을 빈틈없이 잘 맞춰 쌓아올리면,

한줄이 싸악하고 없어지는 그런 꿈을 꾸기도 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내 독서습관을 점검하고 앞날을 계획해볼 요량으로,

'상반기 독서목록을 정리해 보아야지...'하고 앉았는데...

 

얼마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던 아주머니의 갑작스런 부고 소식이 들려온다.

며칠전 내가 싫어하는 팥죽도 사 드리느라고 같이 먹었고,

열무김치를 담궈 국수를 매콤하게 비벼 드셨다는 얘기도 들었었는데,

주말을 지나는 사이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는것이, 인생무상이다.

 

사치스럽게 살면 안되겠지만,

인생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아등바등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살 것도 아니지 싶다.

욕심을 줄이고,

하루 하루가 축복이니 감사하여야 겠고, 따위는 어쩜 차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순한 눈, 선한 맘이 되는 것은 내가 궁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 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겠다...는 말은 곧,

내가 제대로 나이먹어가고 있나, 와 동의어 일게다~--;

 

그럼에도 새로 들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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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08 19:54   좋아요 0 | URL
그런데 그분이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셨다면...
도서관에서는 그 책들 머잖아 버릴 거예요...
겹치는 책이라면, 또 대출실적 적은 책이라면,
자리 차지한다고 다 버리니까요.

가까운 헌책방에 가져다 주는 쪽이
제대로 좋은 책손한테 가도록 하는 일이 되지요. 우리 한국에서는...

2013-07-09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7-09 12:39   좋아요 0 | URL
창가 작은 가든이 예쁘네요.
비오는 날 떨어지는 비를 배경으로 보면 운치가 있을 것 같은데요.

책이 무너져서 깔리는 꿈이라니!
그거 정말 무서운데요.
요즘 저도 책 정리할 생각에 머리가 아파요.

허름한 좌판에 앉아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양철나무꾼 2013-07-09 22:56   좋아요 0 | URL
그 이후로 비가 내린 날이 많았는데, 그간 적조하였네요.
아직도 유효하죠?
비 내리면~?ㅋㅋㅋ
 

사람들이 나를 놀려먹을려고 부를때 사용하는 단어가 몇개 있다.

어디서건, 엉덩이 붙이거나 눈만 감으면 자는 고로,

'또 자니'에서 또를 빼고 'jani'라고 부르는가 하면,

1, 2, 3초안에 '또르르~'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수도꼭지',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또 얘기를 듣다가...feel 충만하면 눈물,콧물 겉잡을 수 없이 흘려대는데,

때와 장소불문이다.

직장에서 하도 자주 눈물을 흘려대서 대책을 강구하다가 울때마다 벌금을 내기로 하였는데,

그게 너무 빈번해서 집을 팔아야 하게 생겼어서 '집.파.녀'에 이르기까지...

멀쩡하고 폼 나는건 하나도 없다.

 

오늘 점심 밥 먹으며 TV를 보다가...울었다.

따로 탕비실이 없는고로,

처치실에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대기실에 틀어놓은 TV를 멀끄러미 보다가,

오늘은 '또르르~'도 아니고 '후두둑~'도 아니고,

'흡~!'하고 참으려다가는 '꺼이꺼이~'퍼질러앉아 울고 말았다.

 

내가 본 TV 프로그램는 무슨 드라마였는데,

조재현이 클로즈업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우와~, 진짜 two thumb up이 부족할 지경이어서,

엄지발가락이라도 곧추 세우는 연습을 해서 함께 들이밀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들이 고2여서 수험생 모드에 돌입하는척 하느라고 TV를 안보기도 하지만,

실은 텔레비젼이 그렇게 재밌지도 않았다.

 

모처럼 필이 꽂힌 드라마가 내용이나 줄거리, 배우같은 점 말고도,

화면 영상 처리까지 감각적인데다가,

감정의 흐름을 끊지 않는다, 좋다~!

 

 

 

 

 

 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1979∼1996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황의웅 옮김, 박인하 감수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3년 6월

 

 미야자키 하야오 반환점 1997∼2008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황의웅 옮김, 박인하 감수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3년 7월

 

 

 

 

 

내가 또 좋아하는 영상물들이 있는데, 자그만치...만화다.

일명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는 워낙 유명하고, '너구리 대작전 폼포코'의 '다카하타 이사오'이다.

내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좋아하게 된것은,

조목조목 꼼꼼히 따지자면 아주 이유가 없진 않겠지만,

그동안 딱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냥'이라고 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엿보기라도 하듯, 요번에 두권으로 책으로 묶어 나와주셨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의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다.

『모노노케 히메』는 ‘비인(非人)’과 인간의 대립이 주된 내용인데, 신이라는 존재(유일신이 아닌 민간신앙의 신)가 ‘저주’를 받아 자연이나 인간을 오염시키는 과정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타인에 대한 사회에 대한 보답 받지 못하는 마음이 원망이나 치유되지 못한 마음을 형상화된 것이다. 그런데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사회 안에서 상처받은 인간과 자연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으로 응원이 가장 최선일까 감독은 의문을 느낀다.
『귀를 기울이면』의 주인공 소년, 소녀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응원을 얼마든지 할 수는 있지만, 눈을 조금 돌려서 마을 아래를 바라보면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이미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응원보다는 “살아라!”라고 강한 마음을 감독은 작품에 담았다. 모노노케 히메의 고대시대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나, 인간은 부조리하고 압도적인 힘을 지닌 자연에 경외심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메시지“살아라!”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게 사람의 형태를 했거나 신의 형태를 했거나, 간에...

이해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해서 상처받고 삐뚜러진 캐릭터가 등장한다.

힘(파워라고 해야 할까?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대로된 힘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을 갖고는 있지만,

그게 일반적이지 않은 고로, 어떤 의미로는 왕따이고,

그리하여 소외당하고,

그리하여 제대로된 소통에 실패한 캐릭터들이다.

 

그걸 보면서 난 요즘 이땅에서 사는 사람들, 더우기 이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가 오버랩되는 느낌이었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지 않으면 잘못되었고 실패했다고 간주해버리는 현실이 두렵고 눈물겹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다시말해, 나를 기준으로 하여 일반적이라거나 보편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어,

거기서 벗어나면 잘못되었고 실패한 것으로 굳어져 버릴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약간 비껴간 얘기인데...

그래야 정말 낙오하거나 실패를 했을때,

실패해도 괜찮아, 실패했다고 쫄지마, 가 아니라...

실패도 단지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과정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될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queer를 일반(1반)과 다른 호칭인 이반(2반)으로 부르는게 더 마음에 든다.

1반, 2반, 3반, 4반...우열반이라는 느낌이 아닌, 랜덤으로 돌려서 그 중에서 하나 무작위로 나온 느낌이다.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에 잣대를 드리우고 의존하지 않았을 때만이,

자신만의 세계를,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창조할 수 있다.

 

페이퍼를 주절 주절 길게 늘여 썼지만...하고 싶은 얘기는,

요즘의 난,

그동안 길들여지고 익숙한 것으로부터 과감이 떨어져 나오려고 애쓰고 있다.

길들이고 길들여지고...그리하여 익숙한게 좋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야말로 루틴하고 랜덤하게 누군가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려 했던건 아닌가...

그 '누군가'의 자리엔 '아들' 혹은 '남편'이나,

내가 단지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그 누군가를 향하여 '사랑해서'라며 면죄부를 남발해버렸던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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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05 19:30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씩씩하게 커서
어머니 아버지하고
나중에
빙그레 웃으며
지난날 돌아보고는 맥주 한 잔 나눌 날
머지않아 찾아오겠지요

양철나무꾼 2013-07-06 10:24   좋아요 0 | URL
아내분이 공부하러 가셔서,
님이 더 번거로우시겠어요.
그래도 사진으로 만나는 사금벼리랑...
무럭 무럭 이던걸요, ㅋ~.

왠지 다음에 내시는 책은 '아빠의 육아일기'나 뭐 그쯤 될것 같다는...
늘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여~^^
 

그제 a***님의 서재에 놀러가, damien rice의 음악을 듣다가 Terry Jacks가 생각났다.

난 Terry Jacks를 'If you go away'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때가 중3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ㅋ~.

한창 풍부한 감수성에 feel충만하여 끼고 살았는데,

그때 만나게 된 음악이 'seasons in the sun'이었다.

 

'seasons in the sun'같은 경우,

자세히 관심을 갖고 듣지 않고 제목만 보게되면,

햇살 찬란한 날들을 예찬한 음악 정도로 오해하게 되는데...

가사는,

한 남자가 술과 향락 속에 헛되이 살아온 걸 후회하며, 생을 마감하며 작별을 고하는 내용이다.

근데,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이때가 햇살 찬란한 봄이서 죽기가 너무 괴롭다는 건데,

제목과 경쾌한 멜로디를 입혀내니 전혀 다른 음악처럼 들리는 것이다.

 

 

암튼 내겐 'If you go away'와 더불어 알콜을 부르는 기우제 전담 음악 정도 되시겠다.

 

 

Terry Jacks로 말할 것 같으면,

evergreen으로 유명한 Susan Jacks와 결혼하여 "The Poppy Family"란 부부 듀오를 결성해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어려서 부터 작곡과 편곡을 공부하여 기초가 튼튼했던 사람이,

그로서는 기꺼이 아내를 뒷받침해주었다고 하지만,

아내의 명성에 가리워져 재주를 맘껏 펼쳐 보이지 못한건 좀 씁쓸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접힌 부분 펼치기 ▼

 

Seasons In The Sun

 

goodbye to you my trusted friend
we've known each other since we were nine or ten
together we've climbed hills and trees
learned of love and abc's
skinned our hearts and skinned our knees

goodbye my friend it's hard to die
when all the birds are singing in the sky
now that the spring is in the air
pretty girls are everywhere
think of me and i'll be there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hills that we've climbed were just seasons out of time

goodbye Papa please pray for me
i was the black sheep of the family
you tried to teach me right from wrong
too much wine and too much song
wonder how i got along

goodbye papa it's hard to die
when all the birds are singing in the sky
now that the spring is in the air
little children everywhere
when you see them I'll be there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ye...yeah..

good-bye michelle, my little one
you gave me love and helped me find the sun
and everytime that i was down
you would always come around
and get my feet back on the ground

good-bye michelle it's hard to die
when all the birds are singing in the sky
now that the spring is in the air
with the flowers everywhere
i wish that we could both be there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hills that we've climbed were just seasons out of time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따사로운 계절에,

 

내 믿음직스러운 친구, 잘 있어.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내온 것이 아홉 살 때부터이던가, 열살 때부터이던가?

함께 동산에 오르기도 했고 나무를 타기도 했지.

공부도 연애도 같이 했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기고 하고,상처를 입기도 하면서 말야.

 

죽는 것도 쉽지않구나, 친구야.

하늘에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귀염쟁이들이 곳곳에 뛰노는 봄이 되면 날 생각해줘.

그곳에 내가 있을거야.

 

펼친 부분 접기 ▲

 

 

 

 

 

 

 

 

정여울의 '마음의 서재'를 읽다가...나와 닮은 구절이 있어 멈춰섰다.

연애의 이상형보다는 스승의 이상형에 지착한 나는, 평생 마음의 스승을 찾아 헤매는 것이 곧 인생이라 믿었다. 그만큼 나는 걸핏하면 길을 잃어버리고, 외로움에 굴복하고, 방황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었다.(83쪽)

 

 

 

 마음의 서재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3년 2월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정여울 지음 / 메멘토 /

 2013년 5월

 

 

 

근데 난 방황을 취미로 삼지는 않고 혼자놀기의 대가쯤 된다, ㅋ~.

그러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스승이 될 수도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친구도 될 수 없다'는 이탁오의 명언을 인용하는데...

고개를 주억이고 허벅지를 아프게 찰싹 때려가며,

호들갑을 떨면서,

격하게 긍정하게 되는 구절이다.

 

사람을 가리는건 물론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스승이 될 수도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친구도 될 수 없다'는 명언에서 제외되는 사람보단 혼자 노는게 나을 수도 있다는게 나의 견해이다.

 

근데,

내가 '혼자놀기의 달인'쯤 되지만, 혼자할 수 없는 게 있다.

그게 바로 '술마시기'이다.

만약 혼자 술마시기가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조심하여야 한다.

알콜리즘의 진단 기준이니까 말이다.

'혼자 마실 수 있는가? 한잔이라도 매일 마시는가?'

 

암튼,

이런 시를 읊조리며 노는 건 안 좋다.

그리운 사람 더 그리워지고,

고이 접어 놓았던 마음, 다시 흐르고 넘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니 말이다.

 

 

 

난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는 대신,

바늘로 헝겁을 꿰매어 북커버를 만들며 혼자 놀았다.

그리고 지금은 헝겁 배낭을 손바느질 중이다.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뭐냐 하면,

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

술친구가 필요하다는 뭐~그런 얘기가 아니라,

난, 심심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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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4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4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3-07-04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 술마시는 분은 대략 술 10단계중 상위단계에 계시는 고수분이라고 할수 있어요^^

양철나무꾼 2013-07-06 10:11   좋아요 1 | URL
조지훈의 주도 유단론인가요? ㅋ~.

구태여 따지자면, 전 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에 속하는거 같아요.
소주 세잔이면 치사량 수준이니까~--;
근데 술마시는 분위기는 엄청 좋아한다는...ㅋ~.

혼자 술 마시는것보다 위험한건, 한잔이라도 매일 마시느냐 하는 거라죠~.

세실 2013-07-05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녁에 혼자 있을때 심심하더라구요.
오늘은 밤 열시에 불러주는 사람 있어 달려 나갔다는.....ㅎㅎ
가끔 술 친구 그리워~~~~

양철나무꾼 2013-07-06 10:15   좋아요 1 | URL
세실 님은 언제 봐도 초긍정, 초열정...
에너제틱의 초절정을 이루는거 같으세요.

전 밤 열 시에 누가 부르면, 큰 일 났는 줄 알고 깜.놀.한다는~--;
가끔 아무 말 안하고..
얼굴 마주보고 술 한잔 기울이거나, 차 한잔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그리워요~~~~~^^
 
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유명한 그림이나 글씨를 놓고 진ㆍ위를 따지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얼마전에는 김홍도의 작품 중 몇몇을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는 멍하니 지켜볼 따름이었으나,

그런 와중에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것이 있었는데, 바로 '감정가'라는 직업이었다.

 

'감정가'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몰랐던게 아니라,

'감정가'가 되기 위해 하는 '감정 공부'라는 것이 무척이나 광범위하여 오르기 힘든 나무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연구할 서화작품을 당시 창작 상황과 가깝게 그려보는 것, 똑같이 모사하는 것은 감정 학습의 기본이며,

감정가 스스로 붓글씨나 그림을 흉내 낼 정도는 돼야 다른 사람 작품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란다.

도장도 새길 줄 알고,

작품 표구 방식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덧붙이길...

서화 감정이 과학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창작의 실천과 재구성을 통한 검증 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쯤에서,

언젠가 김제동의 모친이 했다는 '가식도 10년이면 예절로  봐주어야 한다' 는 말이 떠올랐다.
처음엔 가식이었다 하더라도, 몸에 익어 버릇이나 습관이 되어버리면...성격이나 본성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생각이 짧은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작품이 '진짜이고 가짜이고' 를 떠나서 진ㆍ위를 논할 정도의 작품이라면, 가치를 인정받기에 충분하지 싶다.

다시말해, 작품이란 것은 남이 베낄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작가 고유의 개성과는 별개로,

예술성과 독창성으로 얘기하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의 고유한 작품일지라도...

전작 '책은 도끼다'의 연장선 상 정도가 아니라, 리바이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이고 보면,

예술성과 독창성 내지는 참신성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쩜 '책은 도끼다'가 준 감동이 워낙 대단해서 이 책 '여덟 단어'가 그에 못 미쳐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전작 '책은 도끼다'에 이어 이 책 '여덟 단어'에서도,

'쭉~'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들을 소개해 주는데,

인생을, 또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하는 안내 정도가 아니라,

모든 이의 인생과 삶이 그가 제시하는 대로 그렇게 살아져야만,

맞춤 인생이고  모범적인 삶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어버리니까,

'삐뚤어지고 말테야~(,.)' 하고 삐딱선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치켜 든다, ㅋ~.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기에게 음식을 씹어서 주는 느낌이다.

대신 삼켜주지 않는게 다행이다, 헐~!

이런 엄마는 아기가 첨 보는 이상하고 신기한 것에 관심을 보이면,

분명, '애비 애비, 지지...'할 것이다.

어찌 그리 잘 아냐고?

내가 그런 엄마였기 때문이 아니고,(난 거의 방임에 가까운 엄마이고~--;)

내가 그런 할머니와 고모들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ㅋ~.

 

그 예로 '책은 도끼다'에서 오주석이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라는 그림의 설명을 인용하는데, 감상의 방법까지 제시했었다.

 

그럴 것이다. 인생의 저녁, 저물어가는 노을빛 속에서 작품 제작의 연월일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화폭에 가득 번진 환한 봄빛이 있고, 내 가슴도 훈훈한 봄빛을 머금고 있는데, 더구나 이 늙은 가슴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따뜻한 가슴이 곁에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림을 그렸을 때 김홍도는 노인이었다. 화폭에 떠도는 해맑은 동심이 그것을 반증한다. 노인은 젊은이보다 봄을 더 많이 생각한다.(책은 도끼다, 330쪽)

 

무릇 감상이란 이렇게 해야한다...는 롤모델마냥 느껴진다.

 

기실, 나는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길 수도 있는 것들을 깨닫고 느꼈다.

그중 '가장'인 것은 지금 현재를 제멋에 겨워 살면 된다는 것과

무엇이 됐든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직장 생활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의 관계, 네트워킹에 있어서 우선 순위를 설정하는 나름의 방법을 설명하면서...

우리에게도 그 우선 순위를 힘주어 얘기하는데, 난 여기서 반대로 힘을 빼는 방법을 읽었다.

직장생활을 하는데 위계질서가 흔들리면 엉망진창이 되겠지만,

바꾸어 말하면 순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여러분이 들고 있는 가방이 명품이 아니에요. 그 가방은 단지 고가품일 뿐이죠. 명품은 클래식입니다. 고가품과 명품을 헷갈리지 말고, 진정한 명품의 세계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여덟 단어, 97쪽)

클래식, 즉 고전에 힘주어 얘기하기 위해 이렇게 얘기한걸 모르진 않지만...

이런 얘기 자체가  나누고 편가르고 하는 우월감과 자만심을 두드러지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거지만,

'인간'만을 따로 떼어내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속기를 빼고 골기만 남겨라,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 등

자연에서 본성만을 모두었을때에 남는 게, 인간이고 인문학이고 한게 아닐까?

이걸 느껴야 독서법에 있어서도, 속독이나 다독보다는 정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 예로,

난 한때, 나처럼 그림에 젬병이어도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는 피카소의 후기 그림들을 높이 평가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초창기 그림들을 보고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사실과 현상을 뭉개고,

선과 면을 이용하여 최대한 단순하고 간결하게 한 후기 작품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 그의 사진으로 찍어낸 듯한 그림 습작 시절이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됐든,

기본을 무턱대고 뛰어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가능하더라도 부실공사, 사상누각의 지름길임이 자명하다.

 

속기를 빼고 골기만을 남겼을때,

사물의 핵심에 빠르거나 넉넉하게 도달하려고 도달하려고 욕심부려도 탈나지 않는 것은,

자연, 그 중에서도 넉넉한 햇살이 으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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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정호승 시집 창비시선 36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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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나 '휴일'만 되면 어디론가 여행을 간다는 사람을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휴일이나 휴가라고 하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고 방에 콕 처박혀서 지내는 '방콕'족인 내가,

그들과 다른 종족인 것은 부인하지 않겠지만...백번 양보를 하여도,

여행이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두다, 잠을 자다, 잠시 머무르다'는 '쉬다'의 뜻에 부합된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말이다~--;

하여 내게 여행은 '휴가'와 어울리지 않는, 아니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고도의 '노동'쯤으로 간주됐었다.

 

여행

 

 

사람이 여행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 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 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 뿐이다

 

하여 시를 해석하거나 이해할 깜냥이 되지 않기도 하지만,

'여행'에 관한 시는 그런고로 더 더욱,

그냥 느낌만으로, 아니 내 맘대로 해석하곤 했었다, ㅋ~.

그러니까 일이 됐든, 유람이 됐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나가는 일을 '여행'이라고 부르는 취지대로라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그것은 무장해제 하지 못하는 고로 제대로 된 쉼이 될 수 없을테고,

그런 논리대로라면, 무장해제를 해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마음 속만이,

사람의 그런 '외로운' 마음 속만이 '오지'이고 '설산'이고 간에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등단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낸 시집이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강산이 네 번 바뀔 정도의 세월이어서 그런지,

'변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시는 많이 변했다.

처음엔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불을 피우면 따뜻해진다며 '서울의 예수'를 읊조렸고,

한동안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었던 그가,

어느날보니 운주사의 '풍경'을,

또 어느날 보니 '미륵불'을,

또 어느날 보니 '성체조배'란 시를 만들었다.

사실 종교색의 변화라고 보면 놀라운 일인데,

그가 말하는 여행은 아무래도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특정종교에 연연해 하지 않으며 '부활'이나 '해탈'을 얘기하는 듯 하여 숙연해진다.

 

번지고 스며 물들어 서서히 자연으로 영입되는 거 같다.

점묘법으로 나타내보자면,

진하고 촘촘하고 사람의 형상을 했던 점들이 연하고 성글어지지만,

그래서 사람의 형상으로는 흩어지는 거지만,

자연이나 바람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자연과 바람의 본성에 가까워진다고 해야할까?

'적멸에게'나 '차나 한찬'이라는 시를 보면 더 그런 느낌이 선명해진다.

寂滅(적멸)

자연()히 없어져 버림
불교()에서, 번뇌()의 경지()를 벗어나 생사()의 괴로움을 끊음, 죽음, 입적(), 열반()

적멸에게

 

새벽별들이 스러진다

돌아보지 말고 가라

별들은 스러질 때 머뭇거리지 않는다

돌아보지 말고 가라

이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제 다시 보고 싶은 별빛도 없다

아지랑이 이는 봄 하늘 속으로

노고지리 한마리 한순간 사라지듯

삼각파도 끝에 앉은 갈매기 한마리

수평선 너머로 한순간 사라지듯

내 가난의 적멸이여

적멸의 별빛이여

영원히 사라졌다가 돌아오라

돌아왔다가 영원히 사라져라

 

 

차나 한잔

 

입을 없애고 차나 한잔 들어라

눈을 없애고

찻잔에서 우러난 작은 새 한마리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라

지금까지 곡우를 몇십년 지나는 동안

찻잎 한번 따본 적 없고

지금까지 우전을 몇천년 만드는 동안

찻물 한번 끓여본 적 없으니

손을 없애고 외로운 차나 한잔 들어라

발을 없애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

첫눈 내리기를 기다려라

마침내 귀를 없애고

지상에 내리는 마지막 첫눈 소리를 듣다가

홀로 잠들어라

 

배반

 

심년동안

꽃 한번 피우지 않은 춘란을 뒤산에 버렸다

더이상 배반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 한번이라도 꽃 피기를 간절히 기도했으나

기도는 언제나 나를 배반하고

나는 언제나 기도를 배반했다

그래도 혹시 내가 춘란을 배반한 게 아닌가 싶어

며칠 뒤 봄비가 그친 뒷산에 올라갔다

깨어진 화분 틈으로 춘란이 허옇게 뿌리를 드러낸 채

꽃을 피우고

저 혼자 빙긋이 웃고 있었다.

 

파리

 

한마리 파리도

푸른 하늘을 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흰 구름을 사랑할 때에도

한마리 파리가

푸른 하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마리 배고픈 파리가 밥상 위에 날아와 앉는 것은

한 그릇 밥의 거룩함을 깨달았기 때문일 뿐

파리를 내리치는 파리채여

파리채를 손에 쥔 인간의 손이여

멈추시라

파리도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를 기뻐하며

새처럼 나뭇가지에 앉아 밤하늘 별을 바라볼 때가 있다

인간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인간일 뿐

인간이 지니지 못한

날개를 지닌 파리는 자유롭다

 

'배반'이나 '파리'라는 시는 '인간중심' 또는 '자기 본위'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따뜻한 나라,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들은 나름 행복하게, 삶을 즐기며 잘 살고 있는데...

우리보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불쌍하게 생각하고 눈물바람을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완전 내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과연 상대방을,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마음대로,

내 식대로,

날개를 꺾어 내 곁에 붙잡아두려 했었던게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나에 맞게 변하시키는게 아니라,

내 스스로 변하여 상대방에게 닮아가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방점은 '변하여'나 '상대방에게 닮아가는 것'에 아니고,

저 말 속에는 숨어 있지만,

'본성'이라는 말에 찍혀야 한다.

 

더우기 꽃처럼 한철만 보고 말것이 아니고,

사람은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오래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도... 오래가기 위해선, 오래 남기 위해선,

모든 고전이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렇겠듯이 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편해야 한다.

본성이라는 말 속에 숨은 자연이나 편안함 따위의 말을

느끼겠긴 하겠는데,

잘 설명을 못하겠는게...나의 한계이다~--;

지금은 좋기만 하고 그러니까 나를 꾸미거나 치장해서라도,

잘 보이고도 싶고, 잘 하고도 싶고...하겠지만,

세월이 흐른뒤에도 그런 초심을 똑 같이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본성은 초심에 대체될 수 있겠다.

얼마전에 읽은 박웅현은 그걸,

적어도 5년 뒤에도 기억될 수 있느냐 라고 표현 했는데...

난 몇년이라고 해야 할까?

변덕이 죽 끓듯하고, 싫증을 잘 느끼는 나는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성체조배

 

꽃이 물을 만나

물의 꽃이 되듯

물이 꽃을 만나

꽃의 물이 되듯

 

밤하늘이 별을 만나

별의 밤하늘이 되듯

별이 밤하늘을 만나

밤하늘의 별이 되듯

 

내가 당신을 만나

당신의 내가 되듯

당신이 나를 만나

나의 당신이 되듯

 

그런 의미에서 '성체조배'라는 시가 참 좋았다.

나나 상대방을 억지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이심전심, 물아일체를 통한 부활이나 해탈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느낌이다.

내가 여기서 상대를 物로 표현했다고 하여,

사물로 낮추여  평가하는게 아니라, 나와 동격의 그것으로 본다는 걸 의미한다.

나나 인간이나 사물이나 나름의 '본성'을 지닌,

나름대로의 의미와 쓰임으로 존중 받을 대상이라는 거다.

 

또 한가지,

요즘은 책 말고 경험의 중요함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책에서 얻게되는 단편적인 지식말고,

몸소 체험하고 경험하여 얻게 되는 그것들이 내게 다른 깨달음을 준다.

손에 대한 예의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을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손의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업이고,

그래서 손을 좀 아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시는 노동의 신성함 내지는 숭고함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먼저,

내 손에 쥔것을 버려야만,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 수도 있고,

누군가가 내미는 손을 맞잡을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깨닫게 해준다.

 

체험이나 경험이 있는 상태에서 책은 우리를 이끌어주는 스승이 될 수 있고,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만 책을 쓰다듬는 손이 경건할 수 있다.

 

그동안 그의 시들을 읽으면 사랑시라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인간'에만 국한된 것 같았다.

근데 요번 시집의 그것은 참여시까지는 아니어도,

시 하나 하나가 체험의 산물인듯 하다. 

사랑의 대상이 삶과 경험과 체험과, 그리하여 자연 전반으로 확대된 느낌이다.

 

다른 시들도 하나같이 좋다.

그냥 쉽게 읽어도 좋고,

깊이 곱씹어가며 아껴 읽어도 좋다.

 

묻지 마라 왜 사랑하느냐고 다시는 묻지 마라

바람인 나는 혀가 없다

                               ('바람의 묵비' 일부)

 

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지지 않고 어떻게 해가 뜨고

지지 않고 어떻게 너를 이길 수 있겠느냐

아무리 바빠도 아들아

오늘은 변산 앞바다에 떠오른 일몰의 연꽃처럼 왔다 가라

직소폭포 물소리에 한쪽 귀라도 씻고 돌아가라

가다가 격포 채석강 붉은 절벽에 매달려

만권의 책을 꼭 읽고 가라

                                                       ('변산에서 쓴 편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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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07-01 19:30   좋아요 0 | URL
정호승 선생은 늙지도 않아요. 그이 인생의 그 무엇이 평생을 저토록 애닯고 애탄하고 목 마르게 사랑을 구하고
초월 욕망에 시달리고 갈급하게 하는지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그래서 시인인가? 저도 이 시집 구입해야겠네요.

숲노래 2013-07-01 21:37   좋아요 0 | URL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그 모습 그대로'를 좋아하니까,
서로서로 '서로 모습 그대로'를 닮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