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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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이었다.

그전에 고된 육체노동을 해주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하긴 한 상태였다.

아들이 침대에 누워 컴 모니터로 뭔가를 보고 있길래 잼나보여 꼽사리를 꼈다.

"뭔데~?"
"응당하라일구구칠"

"그게 뭔데?"
"장년에 인기짱였던 드라마 있어."

아들이 하는 말이 유음화되고 연음화 되어 들릴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어야 하는데,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너무 방심했다.

"근데 아들아, 쟤네들 분명 은지원이랑 서인국이랑 신봉선 같은데...

 저 사람들 왜 외국말 하고 있냐? 외국말은 언제 배워 저렇게 잘한대냐?"

울아들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엄마, 고마워.

 엄마 칠순때는 해외 여행 멀리 갈거 없이, 부산으로 가면 되겠네.

 어차피 엄마한테는 외국이나 부산이나 꼭 같이 외국말로 들릴텐데,

 뭐 힘들여 돈들여 외국 갈거 있어?"

이러는 것이다.

 

헐~--;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사는데,

어쩜 사투리가 그렇게 진하냐?

근데 실은 사투리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게 1997년의 상황이라고 하는데,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말 그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츄에이션 되시겠다.

 

울아들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자기의 지금 현실을 비관하며...

1997년의 고딩 현실을 엄청 부러워 했는데,

 

아들아, 미안하다.

1980년대 말에 고등학교를 다닌 엄마로서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란다.

그러니 그 사이에 시대가 살짝 진보와 퇴화와 진보를 거듭했거나,

아니면 부산과 서울의 현실이 달랐다고 밖에 할 수 없겠다.

암튼, 불행이고도 다행인것은...지금 현재는 대한민국을 통틀어 어느곳에서도 그같은 고딩들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겠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 책은 고딩시절 똘똘 뭉쳐 5총사로 지내던 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무리에서 한명이 절교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자키 쓰쿠루'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제외한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 남, 여 쪽수도 맞고 각기 색채도 가지고 있으나 자신만 색채가 없어서 절교를 당한게 아닐까 하고 추측만 한다.

 

항상 사람은 저마다 다른 존재이고, 나의 가치관이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안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 또 등장한다.

내가 이유도 모르고 절교를 당했더라면,

적어도 그 이유는 파헤쳐 보려고 할텐데,

다자키 쓰쿠루는 그냥 고향 마을을 서둘러 떠나온다.

 

그리고 설정이겠지만, 친구가 이 넷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불가이다.

적어도 나고야 시골마을에서 도시의 대학을 갈 정도라면,

'~카더라'는 식의 풍문이라도 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암튼, 자신만 색채가 없다고 생각하는 다자키 쓰쿠루는 그 절교사건을 떨고 일어나지 못하고,

극단적인 자살까지도 생각하며 자꾸 안으로 움추러 든다.

건강이 악화되자, 회복할 방법으로 택한 운동인 수영 또한 내가 보기엔 침잠하려 드는 그것의 다름 아니다.

나고야 시절의 네 명만이 쓰쿠루에게 진정한 친구라 할만한 존재였다. 그다음으로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하이다가 거기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라고 하는걸 보면 말이다.

 

암튼 고등학교까지의 시기가 지식과 이론을 축적하는 시기라면,

그 이후는 이론과 지식을 토대로 경험과 견문을 넓히고 확장해 가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암튼 대학에서 수영을 하면서 잠깐 만났던 하이다는 그의 아버지가 겪었다는 이상한 피아니스트 얘길 들려주는데,

여기서 '회색'과 피아니스트 미도리카와(綠)가 등장한다.

피아니스트 미도리카와는 하이다의 아버지에게 '악마의 존재'를 믿느냐고 묻는데,

여기서'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했던 '모든 진리는 회색이지만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 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이 문장이 그냥 떠올라주신것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난 그토록 기억력이 좋거나 연상작용이 뛰어나진 못해주시고,

이 책 바로 다음 읽은 '이권우'의 '여행자의 서재' 초입에 이런 문장이 나와 주신다.

무릇 지식인에게 여행이란 추상에서 구체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왜 안그렇겠는가. 지식이란 어차피 회색을 띤 이론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푸른 생명의 나무는 없다. 그러니, 박차고 나가 생명의 나무를 찾으려 할 수밖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난 회색을 흰색과 검정의 조합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어서,

회색의 대치선 상에 녹색을 놓을 생각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책 제목의 '순례'는 '여행'쯤으로 대치될 수 있겠다.

이론과 지식을 토대로 경험과 견문을 확장시켜 나가는 그것을 누구는 '영원한 것'으로, 누구는 '생명의 나무'로 보았다.

 

회색의 대치선 상에 녹색을 놓고나니, 어려웠던 이 책이 조금 이해가 되었는데...

세상은 어쩜 선과 악, 증오, 밝음과 어두움 따위의 흑백논리로만 설명될 수 있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백을 예로 들어보면,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좀더 흰색, 또는 좀더 어두운 색 따위의 희고 검은 정도가 얼마든지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 '색채가 없는'은 '투명한'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좀 모호하다.

차라리 '색채가 희미한'이라든지 '색채가 희박한'정도가 되어야 의미의 전달이 좀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투명한'이라는 말은 자기자신을 여과없이 걸러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중앙색을 두드러지게 해주는 배경색이라는 느낌으로 보아야 뜻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이건 바꾸어 말하면 '주인공'과 '지나가는 사람1,2'의 관계 같은건데...

하루키가 좀더 젊어서 썼더라면,

내가 좀 더 젊어서 읽었더라면,

이 의미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이 책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의 나이를 지나,

그가 지났을 삶을 다 지나봤으니까,

그리고 우리 아들이 지금 5총사로 지내던 다자키 쓰쿠르의 그 나이여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이젠 주인공이 되는 삶도 멋지지만,
주인공이 돋보이기 위해선,두리뭉실하고 모호하고 희미한 배경들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건 윤곽을 잡아주는 '경계선'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아무리 지식이나 이론으로 중무장해서는 소용이 없다.

직접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ㆍㆍㆍㆍㆍㆍ직접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어. 다만 한 가지 자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일단 그런 진실의 정경을 보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무서우리만치 밋밋해 보인다는 거야. 그 정경에는 논리도 비논리도 없어. 선도 악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돼. 자네 자신도 융합의 일부가 되지. 자네는 육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이른바 형이상학적 존재가 돼.ㆍㆍㆍㆍㆍㆍ"(111쪽)

 

쓰쿠루가 친구라 할 만한 상대는 없었다고 담담하게 얘기하자,

사라는 친구가 없어서 외롭지 않냐고 묻는다.

"어떨까? 모르겠어. 만일 있다해도 이런 거 저런 거 숨김없이 다 털어놓지 않을 것 같지만."

 사라는 웃었다. "여자한테는 그런 게 얼마쯤 필요한 거야. 물론 이런 거 저런 거 다 털어놓는 건 친구의 기능 중 일부일 뿐이어도."(265쪽)

나도 그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거 저런 거 숨김없이 다 털어놓지 못하고...

외롭다, 외롭다...노래를 부르고 살았었다.

하지만 이런 거 저런 거 다 털어놓는 친구를 갖게 된 지금 '외롭다'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털어놓는 것이 친구의 기능 중 일부여도 좋고, 전부여도 상관 없다.

그리고 그게 '친구'라는 호칭으로 불리워도 좋고, 다른 호칭으로 불리워도 좋고, 호칭이 없어도 상관없다.

암튼 사사롭고 소소한 것이라도 다 털어놓을 수 있고,

그게 꼭 즐거운 표정이 아니어도 진솔하고 풍부한  감정표현-다시말해 '활짝 열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한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인생이 있다. 쓰쿠루에게는 쓰쿠루의 인생이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좋아하는 상대와 좋아하는 곳으로 가서 좋아하는 일을 할 권리가 있다.

  사라가 그때 진심으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 쓰쿠루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녀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굴 전체로 크게 웃었다. 그녀는 쓰쿠루와 같이 있을 때, 그렇게 활짝 열린 표정을 짓지 않았다. 단 한번도 그녀가 쓰쿠루에게 보여 준 표정은 어떤 경우에도 늘 냉정하게 컨트롤되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쓰쿠루의 가슴을 아프고도 애절하게 찢어 놓았다.((288쪽)

 

난 어렵게 얘기했지만, 하루키는 쓰쿠루를 빌려 이렇게 얘기한다.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엇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지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363쪽)

 

암튼 그동안의 나는 하루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중ㆍ고딩시절 그의 소설 책 몇권을 읽고 난해하다고 생각했다.

나이들어서 읽는 하루키의 소설은 또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약간 미스테리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해석 불가, 이해 불가한 부분이 아직도 있지만...

온 세계 사람들이 왜 하루키에 열광하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대하는지는 알것 같다.

아무런 내공이 없는데 그냥 얻게된 명성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눈높이를 좀 낮추었으면 좋겠다.

이 알듯말듯하고 그래서 쿨해보이는 것이 하루키의 매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문학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쓰여져야 하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뭐,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했는데...나만 이해불가...미스테리 운운, 눈높이를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암튼 이 책은 내게 하루키와 화해, 다시 그의 소설들 속으로 초대해준 계기가 된 작품이어서 오래 남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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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23 21:15   좋아요 0 | URL
'삐삐' 이야기를 쓴 린드그렌 님이 노벨문학상 받았는지 알 노릇이 없는데,
문학상을 받거나 말거나
즐겁게 읽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 가슴에 남을 수 있으면
사랑스러우리라 느껴요.

세실 2013-10-24 10:10   좋아요 0 | URL
그나마 이 책은 하루키의 소설중 가장 읽기 쉬웠던 책이었어요.
에세이는 쉬운데 소설은 좀 난해하네요^^ 아직도 1Q84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나였던 그 발랄한 아가씨는 어디 갔을까
류민해 지음, 임익종 그림 / 한권의책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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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같은 숨은 '즐찾'이 여럿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이이의 글의 숨은 즐찾이었으니 말이다.

굳이 댓글을 달거나 즐찾을 공개로 설정하지 않은 이유는,

언젠가부터 이곳의 지명도, 호감도라는게...

글이나 책이랑 관련된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발품이랑 관련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댓글을 달거나 덧글을 달거나 공개로 즐찾을 설정하는 등,

열심히 발품을 팔고다니면서 블로그 활동을 하게 되면,

내 서재의 지명도, 호감도, 다시 말해 '인기도'가 올라가게 되고...

그리하여 거품이 형성된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였다.

다시말해, 이곳에서 상위에 링크된 서재나 책의 경우,

정말로 그럴만한 경우도 있지만,

그냥 본인이 발품을 많이 팔고 열심히 활동을 한 경우는 제외하고,

대형 서점이나 마케팅 전략이 개입하여 상위에 링크된 경우,

재수없으면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작전세력에 말려드는 것이 된다.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그저 소소한 삶의 기록이고,

깜박깜박하는 기억을 잡아두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또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네크워크를 형성하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알라딘이라는 업체의 입장에선,

이곳에 올라오는 리뷰와 페이퍼는 책이라는 상품의 상품평의 다름아니다.

이 개개인들의 소소한 삶의 기록의 장에,

대형서점이나 마케팅 전략, 그밖의 영업을 부추기는 행위들이 거품으로 작용하는걸 깨닫게된 그 즈음부터,

알라딘서재에서의 공개 마실 놀이를 자제하게 되었다.

 

'나였던 그 발랄한 아가씨는 어디갔을까'라는 책 제목은 우려이고 오버였다.
발랄한 아가씨는 책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었는데,

경쾌 발랄하면 웅숭깊지를 말아야 하는데, 웅숭깊기까지 하다.

내가 병들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마저 병든 눈으로바라보지 말자. 남편의 의견을 지지하지는 못해도 무시하진 말자.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남편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을까? (58쪽)

다시말해, 이땅의 전업주부-그들이 겪는 삶을 삶의 굴곡을, 경쾌 발랄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해서 퍼질러 앉아있지 않고,

그 돌뿌리를 파내고 패인자리를 매운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인지, 책은 많이 겹쳤다.

눈에 띄는 책은 '고등어를 금하노라'와 '루쉰의 편지' 두권이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경우 원 책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이이의 깨달음이 내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면 이런 깊이와 넓이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교육도 있고 이런 가족도 있는데, 친구의 전화 한 통화에 눈이 빨개져서 가나다라를 가르치던 내가 어라나 한심하던지.(119쪽)

'루쉰의 편지'도 너무 멋지다.

갖고 싶어 찾아보니 절판이다.

중고로 한두권 나와있는것 같은데 원 가격보다 더 비싸다.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자기는 봤다고 입을 '싸악~' 닦는다, 내 원~--;

 

세상 사람들의 질타와 조롱 속에서도 루쉰과 쉬광핑은 생에 단 하나뿐인 사랑을 얻었다. 그들의 사랑이 멋지고 아름답게 마무리되려면 차가운 세상사람들의 비난과 장애물에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며 현해탄 푸른 물에라도 풍덩 뛰어들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순간적인 충동에 휩쓸린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목숨을 건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살았다. 자살하지도 죽을병에 걸리지도 않고, 주변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묵묵히 감수하며 구질구질하게 살아남았다. 살면서 함께 삶을 만들었다.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는데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상대를 배려한 충고와 조국에 대한 걱정과 혁명에 대한 신념, 자신의 내밀한 고민이 쓰여 있다.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며 나란히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극적인 사랑일수록 장애물이 많아야 하고 그것들을 넘으면서 받는 고통이 클수록 진실한 사랑이 증명된다는 믿음은 얼마나 아침드라마식 사고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나눌 것은, 밀고 당기면서 얻는 감정적 승리나 서프라이즈 이벤트 따위가 아니라 공감하고 격려하고 함께하는 인생 그 자체에 있다. (280~281쪽)

내가 감동을 하게 된것은 루쉰과 쉬광핑의 엄청난 나이차이도, 주변에 이슈가 될만한 사랑 얘기도 아니었다.

이둘은 적어도 사랑을 애들 장난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른들의 사랑을 했다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지지고 볶고 산다는 것이랑 이음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느라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주변의 비난과 손가락질, 그밖의 고난들과 맞서 싸우는데,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는 것으로,

그 소통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편지'라는 것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난 이런 것이 좋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어렵지 않고 경쾌발랄하되,

상대방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것.

나도 안다. 당장 책 몇 권 읽고 글 몇 줄 끄적인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꺠를 으쓱해 본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 타인의 개입에 연연하거나 내가 만든 상자에 스스로 갇혀 무기력하게 한숨 쉬는 건 이제 그만 . 좋아하는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육아와 글쓰기를 같이 할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어제와 다른 내가 될 수만 있다면, 조금 더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얘기하는 그녀이지만,

그녀의 꿈을, 육아와 글쓰기를 같이 할 수 있는 삶을 응원한다.

LET'S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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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죽음의 한가운데 밀리언셀러 클럽 134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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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쓸쓸한 가을날, 대책없이 쓸쓸하고 고독해지고 싶다면 읽어봐야 할 책 목록 1순위에 올려 놓으면 딱 일것 같다.
우리의 주인공 '매튜 스커터'가 여전히 쓸쓸하고 고독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알콜성 해리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이때까진 심각한 알콜리즘은 아니다.

 

이때까진 쓰디쓴 에스프레소에,

쓸쓸함이랑 고독이라는 샷을 추가하거나 물의 양을 줄여 진하게 뽑은 '리스트레토'나,

브랜디 따위를 넣은'코레토'쯤이라고 하면 될까?

 

제목 '죽음의 한가운데'를 흉내내어 얘기한다면, '고독의 한가운데'쯤 되겠다.

다른 말로 '절대 고독', 또는 '고독의 정수', 또는 '고독의 고갱이'

 

그래서 그런지 이때까지 하는 짓을 보면 꼭 외톨이 같은 짓만 골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저 자식을 위해 일하고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흠. 항상 사람을 봐 가면서 일할 순 없으니까. 먹고살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는 사려 깊게 말했다.
"사는 게 그렇죠."

ㆍㆍㆍㆍㆍㆍ
"저 자식은 경찰 아닌가?"

"그런데요?"
"ㆍㆍㆍㆍㆍㆍ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혼자 있단 말이야.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아서 아티카 같은 곳으로 이송된다고 치자고. 그러면 경찰과 원수진 범죄자들로 넘치는 감옥에 가게 될 거오, 그중 절반은 경찰을 씹어 먹으려고 드는 놈들일 텐데. 콩밥을 먹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 불쌍한 자식보다 더 힘들게 형기를 사는 것도 어렵지 않겠나?"(68~69쪽)

모두가 미워하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모두가 그가 콩밥을 먹어도 싸다고 하는 사람의 편을 든다.

의뢰를 받고 돈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도 남자이면서, 남자들이란 이상한 짐승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꼭 자신은 남자가 아닌 것처럼 얘기한다.

이러니 외톨이일 수밖에 없지 싶다.

"남자들이란 정말 이상한 짐승이야."

"아이고, 남자나 여자나 다를 거 없어요, 자기. 이거 알아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 이상해요. 모두 다르죠. 가끔은 성적 취향이 특이할 때도 있고, 가끔은 또 다른 면에서 기이한 점이 드러나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모든 사람은 괴짜예요. 당신, 나, 세상사람 전부가 다 그래요."(160쪽)

그래도 대인관계는 모나지 않았었는지, 상대는 이렇게 응수한다.

남자만 이상하지 않다.

남자도, 여자도, 누구도...인간은 근본적으로 다 이상한 존재다...이런 뉘앙스로 얘기하고 있고,

그때서야 난 '이상하다'를 '나와 다르다'와 바꾸어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매튜 스커터는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남자들이란 나와 달라'이렇게 얘기하고 있는거고,

상대방은,

'남자나, 여자나 다 나와는 달라요. 나와 똑같은 사람은 이세상에 나 하나 밖에 없어요.'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다른게 이상하고 특이하고 기이하고 괴짜인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걸 당연시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

타자에 대한 이해와 소통은 거기에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려면 먼저 내 마음이 경직되거나 딱딱하게 굳어있지 않고,

말랑말랑 유연해야 할테고 말이다.

 

근데, 이 말랑 말랑 유연함에도 기준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나일수 있느냐(자아),

그 나의 경계조차 지워가느냐(무아),

에 따라 일반적인 사랑과 어머니의 그것, 또는 종교라고 부르는 것의 경계가 나뉘는 것이리라.

 

난 어머니처럼 그렇게 대단한 희생정신을 발휘할 때도 잘 없지만,

종교적인 사고방식도 갖지 못해서 그런가,

나를, 나의 경계는 잃고 싶지 않다.

 

이런 얘기의 연장선 상에서,

매튜스커터는 이틀에 거쳐 연달아 자기 타입의 여자를 만난다.

어찌 되었는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상상에 맡기겠다.

  내 타입의 여자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점점 더 드물게 일어나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일이거나 내가 변해 가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여자를 어제 만났지만 의식적인, 그리고 무의식적인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여자를 그냥 보냈다. 그런데 이제 그녀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게 돼 버렸다.

  아마도 내 뇌에 있는 어떤 멍청한 세포들이 그런 면에서 날 설득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녀의 거실 소파 위에서 다이애나 브로드필드를 안지 않는다면, 어떤 미친놈이 와서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할지도 모른다고.
  ㆍㆍㆍㆍㆍㆍ지금은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였지만 가장 슬픈 때이기도 했다. 겨울이 오고 있으니까.(105~106쪽)

 

 "적어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전에는 바람을 피우는 남자와도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ㆍㆍㆍㆍㆍㆍ. 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걸까요, 매튜?"

"좋은 질문입니다."

"제게는 좋은 질문이 아주 많답니다. 전 사실 남편을 잘 모르겠어요. 이거 참 놀라운 일 아닌가요? 그 오랜 세월 부부로 살아왔는데 그 사람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을 알았던 적이 없었던 거죠.ㆍㆍㆍㆍㆍㆍ"(95쪽)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 자기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랑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어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내가 개입할 수도 운명을 바꿔 놓을 수도 없다.

자신의 운명은 자기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지나친 운명론자가 되는걸,

자포자기하는걸,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은 잘못을 했으면 뉘우치고 반성을 하고,

그리하여 똑같은 전철을 번복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못을 하는건 인간의 일이고 용서를 하는건 신의 일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ㆍㆍㆍㆍㆍㆍ사람은 운명을 바꾸지 못해. 운명이 사람을 가끔씩 변하게는 하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지."(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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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21 20:32   좋아요 0 | URL
임창정 님 숨은가수찾기 재미있었어요.
보셨나요?

신승훈 님 숨은가수찾기도 재미있더라고요.
텔레비전은 없어도 인터넷으로 보았어요 ^^;;;

모두들 다 다른 멋과 맛으로
삶을 즐겁게 일구지 싶어요.
 
에코 파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2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2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空手來 空手去  世上事 如浮雲    

成墳土 客散後  山寂寂 月黃昏

'인생무상'이라는 시 제목을 들먹일 것도 없이, 다른 건 모르겠으나 난 혼자 노는건 자신 있다.
짬뽕공 튀듯 통통거리면서,
이리 저리 넘나들며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심심해 하지 않고 혼자 노는건 자신 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무리에 떨어져 나와 '따'가 되려는 경향이 농후한 '스''따'인지도 모르겠다.

요 며칠, 전혀 영양가 없는 엉뚱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바람에...
나름 바쁘고 분주하게 혼자 놀기의 진수를 제대로 경험해 주셨다, ㅋ~.

아무래도 영화 '관상'을 재밌게 본터라, 책으로도 읽으려고 쟁여두어서 더 그런 것 같은데...
'블랙 에코'가 처음 시작이었고,
이 책 또한 '에코'라는 단어를 포함한 '에코 파크'가 제목이어서 그랬는지,
해리보슈가 어떻게 생겼었더라?@@ 싶어 다시 찾아 보았다.
'블랙 에코' 20쪽에서 찾아냈다.

보슈는 몸집이 크지 않았다. 키는 180센티미터에 많이 모자랐고, 몸도 가느다란 편이었다. 기자들은 기사에서 그를 호리호리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점프슈트 밑의 근육은 마치 나일론 끈 같았다. 자그마한 몸집 때문에 힘이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머리를 희끗희끗하게 물들인 흰머리는 대개 왼쪽에 더 치우쳐 있었다. 그의 눈은 거무스름한 갈색이고, 감정이나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블랙 에코' 20쪽)

'블랙에코'를 읽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번역된 순서가 뒤죽박죽이라서,
그때까지 읽은 전작을 통틀어 해리 보슈의 외형에 대한 가장 자세한 설명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해리 보슈도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어,
그 안에 파란 색인표가 붙은 개별 파일들이 여러 개 담겨 있는 것을 보았지만 너무 멀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 갖고 다니기 시작한 돋보기를 끼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혀 불가능(35쪽)해 졌으며, 
담배를 끊은 지 여러 해 되었다지만,
꼭대기에 도착하자 그는 숨을 헐떡였다. 그의 뒤를 바짝 쫒아온 레이첼은 그처럼 산소 부족 현상을 보이진 않았다. 그 이전에 25년 동안이나 피운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346쪽)고 하는데,
왠지 작가 마이클 코넬리도, 주인공 해리 보슈도, 그리고 열혈 독자인 나도 그렇게 그렇게 나이를 먹는것 같아서...
그렇게 그렇게 아무 계획이나 대책도 없이 나이만 먹는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시려웠다.

암튼 '관상쟁이' 흉내를 내서 '해리 보슈'의 장래를 예측해 본다면,

부모 복, 처자식 복도 지지리 없고,
재산도 없고,
빽이라고 그러던가? 기대고 비비고 구를 언덕 또한 없다.
그런 넘(子)이 정과 낭만은 주체 못할 정도로 넘쳐나서,
평생 외롭고 고독할 상이다.

관상쟁이 흉내를 이 정도에서 끝내야 하는데,
내가 누군가?
궁금한게 많아서 먹고 싶은것도 왕 많은 오지랖 아줌이 아니던가?

사실 관상쟁이가 아니라도,
해리 보슈가 여지껏 해온 꼬락서니를 보면...말년이 명약관화하지만 말이다.

해리보슈와 함께 나이 먹고 늙어 가는 동지로서,
부디 기우(杞憂)이기를 바라면서 한마디 오지랖을 펼치자면,
해리 보슈 아자씨, 노령 연금은 들어놓으셨예예?

미국은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공적부조가 발달한 나라도 아니고,
명색이 형사이니 공무원 연금이 나오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글쎄~(,.)
물론 지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법을 고칠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나아지기야 하겠지만,
과도기로 한동안이었지만 공무원 월급도 한때 중단됐었던 걸로 알고 있다.

사람이 외롭든 외롭지 않든 간에,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노는건 할 수 있지만,
혼자서 나이 먹고 늙어 가는 건 좀 구질구질하지 싶고,
혼자서 돈도 없이 아프기까지 하면 못할 노릇이다 싶은데~--;
우리의 해리 보슈 아자씨는 나이 먹고 늙어 가는 걸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해리 보슈가 나이 먹고 늙는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에코파크가 어떤 곳인지를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LA 다운타운과 한인 타운 사이에 있는 곳으로,
요즘 류현진이 활약하고 있는 다저스 스타디움이 바로 옆에 있다.
지금은 많이 변모했다고 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흑인과 라틴계 주민들이 주로 모여 살던 빈민가였다.

해리 보슈는 에코파크에서 편모슬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베트남 전쟁에 땅굴쥐로 참전했다가 군인에서 형사가 된다.
형사가 되어서도 온갖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을 다 겪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면 좀 단단해지고 무감각해 지기도 할텐데,
십수 년이 지나도록 해결하지 못한 미해결 사건에 연연해 하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유약한 면모를 가진 걸로 되어 있다.

내가 해리 보슈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돌이켜보고 싶었던 이유는,
언젠가 (블랙 에코'였던 것 같다~@@)
그가 베트남전쟁에서 땅굴쥐를 했었다는 전력이 그의 뒤에 트라우마로 따라 다녀 마음 아팠었는데,
이 책 '에코 파크'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난 해리보슈가 강력계 형사라는 이유만으로 건강한 신체와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내맘대로 미루어 짐작했었다.
땅굴쥐의 선발요건은 왜소한 신체조건이 우선라고 하는데,
땅굴쥐였다가 살아남은 자는 얼마 되지 않고,
그들마저도 정신적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는데, 말이다.

결국 해리보슈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가족도 그렇고, 환경도 그런데다가, 본인 스스로도 노력을 하지 않으니,
평안하고 안녕한,
그리하여 심신 양면으로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는 요원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그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두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마음을 열고 내보이지 못하는걸 보고...자초했다고들 하는데,
난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에코 파크 태생이라면 비일비재한 어머니와 단 둘뿐이었던 불우한 어린시절이 그렇고,
그가 잠시 있었다고 하는 매클래런 청소년원이 그렇다.
그렇게 홀로 외롭게 컸고,
홀로 외롭게 청소년기를 맞이하였고,
군대를 다녀오고,
살아남아 형사가 되었다.

한번도 가정의 화목함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로서는,
한번도 아버지이나 누구, 자신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그(또는 그녀의) 그늘밑에서 평안하고 안녕함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로서는,
벽을 허물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이가 들면서,
해리 보슈는 에고(ego) 내지는 자아가 강해진 걸로 묘사되는 걸로 미루어,
아내와 이혼 하고 딸도 생기고,
실직이 되었다가 다시 복직하기도 한다.
돋보기를 사용하는것과
담배를 끊은것,
그리고 예전처럼 커피를 양손에 들고 다니지 않고,
술을 냉장고에 채워넣는 걸 까먹기도 한다는 점 따위 말고,
그동안은 '감정이나 속내를 거의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고 했었는데,
딸을 잃은지 13년 된 여자와 전화로 자신의 딸 자랑을 하는 푼수를 유감없이 떠는 등,
삶의 더께가 더해가는걸로 미루어,
그가 쌓아올린 외로움과 고독함의 벽으로 인한 단절 또한 점점 커져만 가는걸 짐작하고도 남겠다.
인간관계는 차치하고라도,
강력계 형사인 그가 직업적으로 전혀 지장이 없을지...
지금까진, 그럭저럭 버텨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 염려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법~!
그동안 외로움 방지책으로 사용하던 담배를 끊은 것이나,
커피와 술을 줄인 것이나,
속내를 드러내고 헛헛하게 비워내기도 하는게,
보기에 따라서는 삶의 더께가 더해가는걸로 보일지라도,
그는 나름 이 외로운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한꺼번에 상대를 향하여 마음을 활짝 열지는 못하지만,
이건 딱히 상대로부터 내가 거부당할까봐 두려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느 누구에게고 마음을 열어본 적이 없어서 마음을 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엔 그랬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만이 외로운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법'의 동의어는,
'술도 마셔본 사람만이 마신다'이거나,
'사랑도 해본 놈이 한다'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보슈는 이런 친밀감을 갈망했고 그것이 주는 해방감을 즐겼다. 그는 레이첼도 이런 기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에게 준 선물은 그를 세상사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지만 입가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174쪽)

이랬던 그가,

"그런 얘기가 아니예요, 해리. 자기 생각과 똑같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죠. 그런 건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여잔 남자한테 안전한 느낌을 원해요.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말이죠. 당신이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걸 본 내가 어떻게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겠어요. 내가 그런 식으로 하고 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난 지금 경찰 대 경찰로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얘긴 난 결코 평안과 안전을 누릴 수 없다는 거예요. 어쩌면 밤마다 당신이 영원히 못 돌아오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건 못할 짓이에요."
ㆍㆍㆍㆍㆍㆍ
"위험한 직업이잖소."
그가 변명조로 말했다.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아요. 잘 알죠. 그렇지만 오늘 내가 본 당신의 행동은 너무 무모했어요. 나는 무모한 사람에 대해 걱정하기 싫어요. 그런 일 아니라도 걱정할 게 너무 많은데."
보슈는 한숨을 토해냈다.(415~416쪽)

레이첼 월링의 이렇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걱정에 한숨부터 토해내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지니까 말이다.

같은 얘기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게 아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고 아무나를 향하여 마음을 열게 되지도,
단지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그 (또는 그녀)를 맞아들이게 되지는 않는다.

결국 해리 보슈는 나이를 먹었을 뿐 아직 어른이 될려면 한참 멀었거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적어도...누군가를 오랫동안 공들여 품어갖고 마음 속에 들이는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다, 그 얘기가 그얘기다, ㅋ~.

난 이런 사람들의 습성, 내 그것이랑도 닮아 좀 아는데,
자신의 벽을 너무 높고 견고하게 쌓아 놨지만,
어떻게든 한번 균열이 생기면 겉잡을 수 없어져 버릴까봐,
강한게 아니라 강한 척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견고하고 단단해져서 자기 자신을 우기거나 타인에게 강요하는게 아니라,
말랑말랑하고 유연해져서 숨통이 트이듯 여유롭고 성글어 지는게 아닐까 싶다.
모쪼록 해리 보슈가 한숨을 토해낼 수 있게 된 그곳으로, 
레이첼 월링, 그녀와 소통 '또한' 도모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책을 읽은 감상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겠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우울하였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 책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난 언젠가 '하찮은 장르소설'이란 표현을 반어법처럼 썼다가,
알라디너 누군가의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하찮은'이란 단어는 장르소설이 처음 생겨난 배경이,
가판대 옐로우 페이퍼가 시작이었다고 한데서 가져다 붙인 수식어였었는데,
오해를 받은 걸 보면,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부적절한 표현이었나 보다.
어찌되었건, 난 그 '하찮은 장르소설'에 울고 웃으며 목숨걸고 연연해 하는 일개 중생일 뿐이다.
난 누구보다도 우리나라에서 장르소설이 발전하고 대접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길 기대하는 한명의 독자이다.

번역이 이상하여 원서와 비교하게 만든 시작은 이 문장 때문이었다.


* 5 foot 6=>1 foot이 12inch이고 뒤의 6은 12inch에 못미쳐 그냥 적어준것이니까,
              5X12=60 inch+6inch=66inch=167.64cm
* 142 pounds Xo.45=63.9
  환산프로그램을 돌리면, 64.410117 =>둘다 어림잡아도 64kg정도이다.


원서와 비교한 건 한두 쪽인데,

난 꽤 촘좀하고 질긴 그물을 가진 낚시꾼이었나 보다.
하지만,
그러나,
다 부질없지 싶어...해리 보슈처럼 한숨을 토해 내는것으로 이만 총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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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3-10-19 17:58   좋아요 1 | URL
황색 신문, 황색 언론... 그런 말이 하찮은... 이란 말과 연관되는군요.
장르 소설 리뷰가 가을처럼 깊습니다~ ^^

그렇네요.
168에 65킬로면 적당하지만, 158에 그무게면, 똥똥하단 소릴 들을테니, 덩치가 작은~은 안 맞겠습니다.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아버지들의 죄 밀리언셀러 클럽 12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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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의 작품 중 '무덤으로 향하다'를 제일 먼저 읽었고,

'800만가지 죽는 방법'을 읽었으며,

그리고 이 책 '아버지들의 죄'를 읽었고,

그 후 '죽음의 한가운데'를 읽을 예정이다.

 

이 책을 미룬 까닭은 '800만가지 죽는 방법'의 '매튜 스커터'가 너무 멋져서 그 느낌을 해치지 않고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였고,

이제 읽게 된 것은, '죽음의 한가운데'가 나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800만가지 죽는 방법'의 그 '매튜 스커터'가 너무 강렬하였던 나로서는,

책을 좀 읽다가 어느 부분에 이르러 허를 찔린 듯, 다시 처음부터 되짚어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어설프게 초보 탐정 행세를 하는 것도,

'800만가지 죽는 방법'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심각한 알콜리즘인줄 뻔히 다 아는데도,

의뢰인을 앞에 두고 버번을 홀짝거리는 상황이 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이 책이 1976년에 쓰여진 '매튜 스커터'시리즈의 첫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작품 후 '죽음의 한가운데'가,

그 후 '800만가지 죽는 법'이 쓰여졌는데,

우리나라에선 완전 순서가 뒤죽박죽 번역되었으니...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건 어찌보면 당연지사다.

 

이렇게 오래 전에 쓰여져 순서가 뒤죽박죽인 작품이 나에게 감동을 고스란히 줄 수 있는 것을 보면,

작가 로렌스 블록이나, 역자 박산호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매튜 스커터가 짱 멋있거나,

내가 감정이입을 하는 능력이 탁월하거나 둘 중 하나인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 '아버지들의 죄'를 두고,

이 땅의, 아니 우리나라의 보통 아버지들의 삶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았었다.

1976년의 상황을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의 연장 차원에서 생각했고,

그래서 일에 치여 처자식에게 관심 갖지 못하고,

감정 표현에 서툰 그것을 '죄'라고 얘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래 구절을 읽다가,

그리고 이 책의 원서 제목이 fathers나, a father가 아닌,

'the sins of the fathers'에서 the fathers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책에서  얘기되고 있는 아버지는 그런 모든 아버지들 중 랜덤으로 추출해낸 그런 일반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아버지들을 지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구절에서 카인과 아벨로 대표되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지만,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카인과 아벨의 아버지는 아담인 것이다.

아담은 신으로 남아 영생할 수 있었는데,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내쫒기고 인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담은 구백 몇 살까지 살았다.)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할까? 뉴욕에서는 하루에 네다섯 번씩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작년 여름, 지독히도 더웠던 한 주에는 무려 쉰세 명이 살해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 친지, 연인 들을 죽인다. 롱아일랜드에 사는 한 남자는 자식들에게 가라데 시범을 보여 준다고 하다가 두 살배기 딸을 때려 죽였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걸까?
카인은 자신이 아벨을 지켜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인가? 지켜 주든가 아니면 죽이든가?(12쪽)

난 아무래도 장르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이렇게 생각이 엉뚱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장르소설 중 드라큐라가 나오는 <렛 미 인> 따위를 읽다보면,

드라큐라마저도 영생이라는 것을 그리 달가워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선악과' 라는 용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선과 악의 구별이 없고,

잘, 잘못의 구별이 없고,

그리하여 죄를 짓지 않아 벌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

인간이 되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신들의 세계라는 것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원래 논리대로라면, 선악이나 잘ㆍ잘못, 행ㆍ불행 따위가 존재하지 않아야 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삶이 굴곡없고 그날이 그날 같은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삶이 되어 재미없을 것 같다.

(게다가 신들의 세계에도 선악의 구별을 위하여 약간의 악이 존재한다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기 때문이다.)

때문에 완벽하게 다 채워져 있어서 더 채워 가질게 결여된 신들의 세계보다는,

잘못을 하고, 죄를 짓고 벌을 받는,

그리하여 뉘우치고 나아질 수 있는 '인간'의 삶이 훨씬 맘에 든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예로 들어보면,

그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온갖 악행을 일삼는데,

그리고는 차라리 죽는게 낫다 싶은 상황에서도 죽지도 못하고 고통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영원히 살아간다.

그렇게 보면, 지켜주는거나 죽이는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종의 필요악인것도 같다.

 

하지만, 이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걸 정당화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지켜주거나 죽이는걸 인간이 할 수 있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그게 인간의 과업이어서는 안되고 신의 영역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말이 오락가락, 이랬다 저랬다 이해불가라고?

 

 "좀 전에는 웬디가 희생자처럼 말하더니. 지금은 마녀처럼 말하잖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습니다."(192쪽)

모든 사람에겐 양면성이 있다지 않나?

그리고 그 사람에 나도 포함됨은 물론이고 말이다, ㅋ~.
왜  이 성경구절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들은 자기 자식들로 인해 죽어서는 안 되며 자식들도 자기 아버지들로 인해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해 죽어야 한다. (신명기 24:16)
너희는 "하나님이 아버지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 갚으신다" 하고 말하지만, 그런 말 말아라! 죄 지은 그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제 죄를 깨닫는다. (욥기 21:19)

 

구관이 명관이고,

형만한 아우 없다고 들 하는데, 

그래도 난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이 강하게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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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3-10-14 22:55   좋아요 1 | URL
800만 가지 죽는 방법, 아버지들의 죄, 무덤으로 향하다, 죽음의 한가운데. 제목도 멋져요, 로렌스 블록은ㅎㅎ(이러다 꺅! 할 기세네요. 히히) 전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는데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의 마지막 광경과 그 대사. 아, 하드보일드 스릴러 읽다 심지어 대사 한 마디로 눈물이 핑 돌긴 처음이야 싶었어요. 좋아할 수 밖에 없어요 매튜 스커더는.

양철나무꾼 2013-10-19 17:41   좋아요 1 | URL
저, 지금 죽음의 한가운데 읽고 있는데...
로렌스 블록도 메튜 스커터도 완전 좋은걸요.
아, 멋져요~^^
저런 남자, 어디 책속에서 걸어나오지 않나?
내가 버선발로 달려갈 수 있는데, ㅋ~.

재는재로 2013-10-15 02:48   좋아요 1 | URL
저는 죽음의 한가운데가 처음이고 이제 무덤으로 향하다 읽는데 매튜 스커더 재미있나요 죽음의 한가운데가 괜찮아서 이제막 시리즈 읽으려고 하는데 죽음의 한가운네 260페이지 정도인데 죽음은 460페이지 정도네요 너무 분량이 많은게 아닌지

양철나무꾼 2013-10-19 17:47   좋아요 1 | URL
장담할 수는 없지만, 두 '죽음'이 로렌스 블록의 압권인것 같아요.
전 '죽음의 한가운데'는 읽고 있는 중이어서 뭐라고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고,
'800만 가지 죽는 방법' 같은 경우는 나름 매튜 스커터만의 묘한 정서와 어조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필 꽂힐때마다 몇번이고 되새김질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단연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로렌스 블록을 또 찾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