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헌화가 - 번역가 이종인의 책과 인생에 대한 따뜻한 기록
이종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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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욕심이 조금씩 작아지고 줄어드는 것을 느낄 때,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싶어 씁쓸하다.

이건 다시 말하면, 마음을 몸이 못 따라준다는 얘기지만,

언행이 불일치하는것보다는 욕심을 줄이는게 나으니까,

쿨하게 인정하고 수긍하는 수밖에 없다.

 

한때, 활자화된것이라면 '모조리 읽어주겠어'라고 의욕을 부리며 달려들던 내가,

나오는 책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자 장르소설을 골라 읽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책을 보는 시선이 변해서인지,

내가 좋아하던 장르소설 번역가가 더 이상 새로운 번역물을 내놓지 않으셔서 인지,

난 다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게 되리라 기대했었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난 더 편협하고 협소해졌다.

 

요즘 읽는 책들은 동서양의 고전이나 문ㆍ사ㆍ철로 얘기되는 인문, 또는 전공 관련 서적들인데,

종류가 폭넓어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속도는 구렁이 담넘어가듯 더뎌졌고,

책을 한권 잡으면 더 꼼꼼히 끼고 앉았는다.

 

그러면서도 책을 들이는 습관은 여전해서,

읽지는 않고 책들로 탑을 쌓아올리면서,

테트리스를 해서 색깔이 맞춰지면 한줄씩 없어지는 그런 환상을 꿈꿀 정도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져만 간다, ㅋ~.

 

그런데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읽지도 않은 책을 쌓아두고서도, 또 책을 들이는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심리를 가지고 있나 보다.

 

책 속에서 '적독'이란 단어를 발견하고 위안을 느끼는 것까지 나와 똑같다, ㅋ~.

 

사설이 길었다.

내가 이 책 '지하철 헌화가'를 읽게 된 것은,

바로 전에 읽었던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의 번역이 너무 좋아서였다.

난 책을 읽다가 어느 한 사람에게 필이 꽂히면, 그 사람의 전작주의자가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전에 '번역은 내운명'을 읽은 다음 장만해 두고는 잊고 있었다.

솔직히 이 정도의 필력을 자랑하는 번역가라면 내가 진작 알아보고,

열을 올리고 설레발을 쳤어야 하는데,

이상하다 싶어 되짚어 보니까,

 

언젠가 여러명이 같이 번역했었던 '뷰티풀 마인드'라는 책이 좀 아니어서,

 

그렇게 잊혀져 버린 것이었다.

 

솔직히 산문집 한권을 가지고, 리뷰를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가볍게 코멘트를 하거나,

여러권을 함께 굴비 듯는 엮어 페이퍼로 쓸 수도 있었지만,

꼭 리뷰로 쓰고 싶었던 이유는,

번역과 일상을 대하는 그의 시선이 따뜻하고, 써내려가는 어조가 정겨워서 이다.

 

그동안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번역을 하거나, 책을 쓰거나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지만,

알라딘서재, 이 동네에도 책을 좋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소명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들 하지만,

이종인처럼 자기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본인은 그저 묵묵히 할일을 할 뿐이어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재밌어서, 즐기며 일을 하는 사람은 달라보일 수밖에 없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파장이 다른 걸 어쩌겠나?

 

이것은 단지 책을 읽거나 보는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책에서 읽거나 본 것을 내것으로 만들려는 사람,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다른 점이다.

 

사람들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책을 무조건 많이 읽는 습관을 기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책 속에 무슨 길이 있나?

책은 우리를 그저 길로 안내하는 역할을 할뿐이다.

어느 책을 읽을 것인가, 를 결정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고,

그 책을 읽으면서어떤 관점을 취사 선택할지, 를 결정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고,

그냥 선택을 하고 말 것인지,

실생활에 적용시킬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다.

 

예를 들자면,

'그가 사랑하니까 결혼한다'고 했다면,

그를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했겠지만,

책과 글이 곧 삶이어서, 흥에 겨워 기꺼이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진 못했을 것 같다.

근데, 그는 '결혼하고 나니까 사랑하게 되더라'가 더 흔하더라, 라는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함으로써,

책과 글을 삶 속으로 파고들게 한다, ㅋ~.

이집트의 고대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최고의 여신 이시스가 자연을 만들고 이어 최초의 남자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자연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러자 여신은 최초의 여자를 탄생시켰다. 여자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남자는 그제서야 비로소 인생을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ㆍㆍㆍㆍㆍㆍ나는 그런 아름다움과 생의 의욕을 번역에서 느낀다. 활발하게 걸어가는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에로스의 감정이 내 생활 속에서 펑펑 솟구친다. 이렇게 재미나고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을 너무 늦게 시작한 게 후회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진정한 직업이라는 확신이 생겼으니, 기왕 늦게 시작한거 더 오래 더 많이 번역하자는 각오를 다진다.(61쪽)

 

또 한가지, 무조건 많이 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간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 분은 번역가니까 제대로 된 번역이랑 관련하여 많이 고민을 하셨을테고,

그리하여 책을 묵혀뒀다가 또 읽고 또 읽고 했다는 얘기가 이 책의 여러 곳에 등장한다.

 

그동안의 난 책을 많이 들이는 '적독'과 싫증을 잘 내는 습관 때문에,

아무리 좋고 재미난 책이어도 두번 다시 읽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같은 책을 백번 읽지 않고 백권의 다른 책을 읽더라도,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뜻을 저절로 알게 되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분 같은 훌륭한 번역가도,

도잠같은 대문장가의 '불구심해'(깊이 파고 들지는 않았다)를 讀書百遍義自見의 연장선 상으로 보고 항상 화두로 삼았다고 하니,

읽는데 방점을 두지 말고,

읽고 깨달아 마음을 움직이고 그리하여 실천하는 것까지로 시야를 넓혀야 겠다.

 

또 한가지,

책을 읽으면서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하겠다.

그는 이걸

'사실 나도 술을 마시면 반드시 취할려고 애쓴다. 그리고 기분 좋게 취한 날에는 때때로 사정 같은 눈물을 흘린다.(156쪽)' 라고 얘기한다.

그는 이걸 몰입, 정화 같은 단어로 설명한다.

난 그때마다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눈물이 필요한 순간이 언제인지, 사정이 필요한 순간이 언제인지, 는 모르겠다.

하지만, 몰입하였다가 흘리는 눈물 또는 사정을 통하여 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그런 후의 나는 이미 그전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도 악몽에 시달린다.

그는 프로이트 이론을 들먹이며, 자체 치유에 성공한 경험을 얘기한다.

지극히 무미건조하게 얘기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이론을 들먹이고,

'~하더라'하는 '낯설게하기'라는 기법을 써서 그렇지,

그가 악몽으로 얼마나 고민했을지는 악몽으로 고민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

 

지금 악몽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프로이트의 이론 따위는 알지 못하는 고로, 들먹일 수 없고,

다시 그 악몽 속으로 들어가야 해결을 할 수 있다는 귀뜸을 나도 해주고 싶다.

혼자 들어가기 무섭다면, 나를 끌고 들어가면 된다.

그 악몽 속으로 들어가 해결을 보면 되는 거다, ㅋ~.

 

암튼,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자기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것이다.

좁게는 책에 관해서고,

넓게는 삶이나 인생 전반에 관해서,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고,

또 다시 얘기하자면, 기재필취期在必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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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22 17:24   좋아요 0 | URL
맞어요.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 재밌어서 해야 해요.
전 양철나무꾼님 서재에 와서 댓글을 다는 게 너무 재밌어요. 푸하
사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시간이 정지된 것인가, 아님 생명이 정지된 것인가 하고 놀랄 때가 많아요.
하루의 시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고 공부할 책들은 쌓여만 가고 푸하하하하
한 10분 정도는 공부해야 책들을 노려보며 대화를 할 때도 있습니다.
흠...전 요즘 한 달 한 권은 리뷰를 쓸 수 있는 책을 읽고, 나머지는 제가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는 직업을 위한 공부에 열중하고 있어요. 음 하하하
교주라고 한다면 이 정도의 파괴력은 있어야 하겠지요 음 하하하
비 와요. 나무꾼님 당분간 조심히 다니셔요 ㅎ
 
흐르는 강물처럼
노먼 F. 매클린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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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다: 결함이 없이 완전하다.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완벽한 책이란 어떤 책일까?

완벽한 책이란, 좋은 책일 수도 있고, 훌륭한 책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책일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완벽함'이란 좋음, 훌륭함, 아름다움, 이딴 것과는 별개로,

무미건조한데다가 아무맛이 없이 맹숭맹숭하기만 한데,

그 맛이 더할 것이 없는게 아니라, 더 이상 뺄것이 없는,

간결하게 응축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시킬 수 있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의 내공이 부족하여,

다양한 형태의 책들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 것이 한몫하였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은 기억에 남는 것이 '애니프루'의 '시핑뉴스'였다.

 

그런 내게,

우리나라에서 근간에 재출간된 이 책의 서문을 애니프루가 썼다고 하니, 혹할 수밖에 없었다.

 

역자의 말과, 애니프루의 서문과, 저자의 감사의 말 등이 장황하게 책의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영화로 각색되어 유명해져서 그런지,

그런 외적인 요소들을 쭈욱 연관시켜 읽다 보니까,

무미건조하여 아무맛이 없이 맹숭맹숭하여, 더 이상 뺄것이 없다, 는 그런 맛을 처음엔 느낄 수 없었다.

 

무궁무진한가 하면 흥미진진하기도 한데,

옥토를 흐르는가 하면,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결코 끊기지도 않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꾸준한 수량을 자랑한다.

4대강처럼 녹조, 적조, 부영양화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소진하고 나면 재충전될 시간을 염려할 필요 또한 없으며,

새록새록 샘솟는,

소진하거나 탕진하지도 않고,

범람하거나 고갈되지도 않고,

그렇게 안으로 흐르는 꾸준한 넉넉함에 관하여서 말이다.

 

 

'우리 집안에서는, 종교와 플라이 낚시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39쪽)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을 가만히 읽고 있을라치면, 처음에 삶은 종교나 플라이 낚시의 동의어인가 싶었다가는,

이내 흐르는 세월이나 흐르는 강물의 동의어가 아닐까 싶아진다.

그리고 결국, 흐르는 세월이나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고 변해가는 삶 속에서,

변하되 변하지 않는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걸 깨달아 갈 즈음,

이 책은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때문에,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아름답다'라는 감동의 여운으로 충만한 것이,

종교와 플라이 낚시에 관한 것인지,

흐르는 세월이나 흐르는 강물에 관한 것인지,

흐르고 변해가는 삶 속에서,

변하되 변하지 않는 '사랑'에 관한 것인지, 를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흘렀다.

 

그런 만큼 언뜻보기에 이 책의 주제는,

종교나 플라이 낚시처럼 보이기도 하고, 

흐르는 세월이나 강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흐르고 변해가는 삶 속에서 변하되 변하지 않는 '사랑'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다보면,

이 책의 진짜 주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걸 깨닫게 된다.

부처를 만나게 되면 내 안에 있는 부처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고,

조사를 만나게 되면 내 안에 있는 조사에 대한 편견을 배제할때만이,

진정한 부처와 조사를 만날 수 있게 되고,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시말해,

기준을 제대로 정할때,

자신의 현재 위치를 예측할 수 있고,

상대사물이나 상대방의 위치를 비교,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건 무엇을 얘기하냐 하면,

상대사물이나 상대방의 위치를 비교, 가늠하여...

의미를 부여해 주고 이름을 불러주기 이전에는 '한낱'이었던 것들이,

의미를 부여해 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온통'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녀는 언제나 닐을 '버스터'라고 불렀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남자와 섹스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려면 머리에 쥐가 날 것이다.(121쪽)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말 속에는,

내 안에 있는 부처와 조사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지워야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 말은 다른 의미로 하나를 포기하여야만, 다른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양손에 모두를 쥐고 있다가 넘어지면, 코가 깨지니 말이다.

힘은 아무 데서나 발휘하라고 있는게 아니고, 진정한 힘이란 그것을 어디다 쓸 것인지 아는 데서 나온다.(46쪽)

 

"그걸 뭐 하러 신경 써?ㆍㆍㆍㆍㆍㆍ플라이 두세 개를 나무에다 갖다 바치지 않고눈 하루 몫만큼의 낚시를 했다고 할 수 없어. 과감하게 물고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낚시는 영 못하는 거야.ㆍㆍㆍㆍㆍㆍ"(103쪽)

 

이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를 명확히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사람이나 사물을 객관화 한다는 의미의기도 하고,

이건 바꾸어 말하면, 삶에서 죽음을 분리해 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공기나 햇살 따위가 없으면 살 수 없으면서도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통해서 형태를 이루고 정형화 되는 것이면서도,

몸의 일부가 아파서 내게서 분리되는 경험을 해보기 전에는,인식하지 못했었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얘긴, 그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얘기이다.

삶이 자연에서 비롯되었듯,

죽어 사람은 자연으로 분해되어 흡수되고 스며들고 물들어간다.

때문에 사람이고 사물이고, 에 대하여 알게 되는 방법 중 하나는 탄생을 생각해 보는 것일테고,

또 하나는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일게다.

나는 무더운 오후 더위 속에서 비버는 잊어버리고 맥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비버를 잊어버리는 김에 처남과 올드 로하이드도 함께 잊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여기 이렇게 오래 앉아서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ㆍㆍㆍㆍㆍㆍ나는 거기 앉아서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렸으며, 마침내 흘러가는 강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만이 남았다. 강물 위에서 더위의 아지랑이들이 서로 춤을 추었고, 이어 서로 관통해 나가더니 다시 서로 손을 잡고서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마침내 강물을 바라보던 자는 사라져버리고 거기에는 오로지 강물만 남았다.

  심지어 강의 모습도 앙상하게 드러났다.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하류에는 한때 물이 흘렀으나 지금은 메마른 강바닥이 있었다. 어떤 사물에 대하여 알게 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사물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ㆍㆍㆍㆍㆍㆍ나는 또한 강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깨달음으로써 나 자신이 강이 된다.(134~135쪽)

사람이고 사물이고, 간에... 탄생과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감정이입이고,

또 바꾸어 말하면 역지사지겠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 그것이 어떤 이해와 깨달음을 주긴 어렵지 싶다.

ㆍㆍㆍㆍㆍㆍ

"누군가를 도와주기에 너는 너무 젋고 나는 너무 늙었어." 아버지가 말했다. "도움이란 초크체리 젤리 를 발라주거나 돈을 주는 것이 아니야."

 "도움이란." 아버지가 말했다.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고, 또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어떤 사람에게 네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거야. (이 부분에서 문장부호의 한쪽이 빠졌다. 예를 들자면 '"'같은 것이.)

ㆍㆍㆍㆍㆍㆍ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제대로 도와줄 수가 없어. 우리가 우리의 일부를 내어주기 싫어하거나, 아니면 그 어떤 부분이든 내어주기를 싫어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종종 그 정말로 필요한 부분은 상대가 원하지 않는거야.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필요한 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야.

ㆍㆍㆍㆍㆍㆍ"

"아버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도움이 그처럼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165쪽)

그러니, 아버지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이렇게 추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때문에,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에는,

사람의 마음을 상대로 하는 일에는,

너무 젊거나 너무 늙었다거나, 하는 때가 필요없을 뿐더러,

그것이 우리의 일부인지, 어떤 부분인지, 아니면 온통인지, 를 놓고서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형의 말과 같이,

실제로 그처럼 거창해야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들어줄 수 있는, 열린 귀와 열린 마음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생각한다는 건 말이야, 먼저 뭔가 눈에 띄는 것을 주목하는 거야. 그러(고 나)면 주목하지 못했던 것을 보게 돼. 그 결과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주목하게 돼."

ㆍㆍㆍㆍㆍㆍ"이 지구상에서 햇빛과 그늘처럼 분명한게 또 어디에 있겠어? 하지만 여기서는 날도래들이 알을 까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전까지는, 그놈들이 알을 까는 상류의 물구덩이는 대부분 햇빛 속에 있고, 이 물구덩이는 그늘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183쪽)

여기서 말하는 생각한다는 건, 햇빛과 그늘의 경계처럼, 기준을 정하고 나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위 "생각한다는 건~ 주목하게 돼."의 문장은 인과관계보다는 전후관계나 시간관계를 두드러지게 해야 의미가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늘 속이라 지하에 있는 것 같은 강물의 목소리는 저 앞쪽 햇빛 환한 강물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절벽과 맞닿은 그늘 속에서 강물은 깊어지고 또 심오해진다. 강물은 가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처럼 굽이치면서 자기 자신의 뜻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무슨 말을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러나 저 앞쪽의 강은 수다쟁이처럼 햇빛 환한 세계로 나서면서 다정하고 곰살맞게 굴려고 최선을 다한다. 강은 먼저 이쪽 강가에 인사를 하고 그 다음에는 저쪽 강가에 인사하면서 그 어느 쪽도 무시하지 않는다.

  ㆍㆍㆍㆍㆍㆍ"아주 좋은 놈들이에요?" "그래, 아름다운 놈들이지."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 아버지는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자연스러운 일상용어로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분이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그런 어법을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다.

ㆍㆍㆍㆍㆍㆍ"아주 좋은 놈들이야?" "그래요, 아름다운 놈들이지요."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았다.

ㆍㆍㆍㆍㆍㆍ

"내가 읽던 부분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되어 있어. 참 좋은 말이야. 난 예전에, 처음에 물이 있었다고 생각하곤 했어. 하지만 잘 들어보면, 말씀이 그 물밑에 있다는 것을 듣게 돼."

"그건 아버지가 먼저 목사이고, 그 다음에 낚시꾼이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요." 내가 말했다. "만약 폴에게 물어보면 말씀이 물에서 나왔다고 할 걸요."

"아니야, 넌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해. 물이 말씀 위로 흐르는 거야. 폴도 네게 같은 말을 할거다.ㆍㆍㆍㆍㆍㆍ."(186~188쪽)

 

"저 애는 아름답구나." 동생이 아버지가 방금 낚시를 끝낸 물구덩이에서 그 물고기를 잡았는데도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194쪽)

 

"제가 아는 건 다 말씀드렸다고 했잖습니까. 아버지께서 더 물어오신다면, 전 그저 그 애가 훌륭한 낚시꾼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넌 그보다 더 잘 알아야 해. 그 애는 아름다운 낚시꾼이었지."

"그래요. 아름다운 낚시꾼이었지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누가 가르쳤는데요."(199쪽)

뭐니 뭐니해도, 이 소설의 백미는 이 부분인 것 같다.

기준을 정하고,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를 정하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 그렇게 정해놓은 것이지,

흐르는 세월이나 흐르는 강물 따위, 자연은 어느 한쪽도 편가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는 거.

 

사랑도 마찬가지인거 같다.

눈멀고 귀먹지 않았으나 맹목적이다, 그냥이다.

내게도 사랑은 그런것이고, 그런 것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몸을 돌려 자신의 침실로 갔다. 어머니는 남자들과 낚싯대와 엽총들로 가득한 집에 살면서 그 침실에서 홀로 자신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과 대면해 왔다. 어머니는 가장 사랑했으나 제일 아는 것이 없었던 막내아들에 대하여 내게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아들을 사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동생은 어머니를 품에 안고서 이어 몸을 뒤로 젖히고서 크게 웃던 이 세상 유일한 남자였다.(198쪽)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고,

그런 소설을 읽느라,

덕분에 정말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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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7-18 13:35   좋아요 1 | URL
더운 여름날 잘 지내시나요?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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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집의 경우, 두가지 관점에서 읽힐 수 있다.

인터뷰어의 입장과 인터뷰이의 입장.

보통은 인터뷰 거리가 있는 인터뷰이에게 집중하게 마련이어서 인터뷰어가 도드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사람 정도가 되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인만큼,

많은 팬과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고,

이쯤되면 흔들릴 법도 한, 초심을 잃지않고,

한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인터뷰이의 삶과 전공영역을 진솔하게 인터뷰하고,

거기다가 인터뷰이가 쓴 책이나 논문이 있다면 다 읽어보고,

인터뷰이가 만들거나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 각종 영상물이 있어도 다 찾아보고,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인터뷰이의 마음이 편안해 질 것이다.

 

지난번에 읽었던 기생충 관련 서적의 연장선 상인줄 알고 별로 흥미가 없었던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싶었던 건,

내가 가끔 즐겨듣는 '라디오 북클럽, 방현주입니다' 에서 소개하는 걸 듣고 '혹~' 하여서 인데,

방현주는,

"지승호 선생님의 책으로 인터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가 하면,

이권우는 인터뷰어의 조건으로,

"너무 많은 일치감을 느끼면 독자들은 흥미를 잃기 때문에, 인터뷰이와의 대척점도 드러내 줘야 한다."

라고 하면서, 지승호의 장점을 추켜세운다. 

 

한권의 책을 내기 위해 자기가 낸 책과 논문들을 다 읽고 하면,

자연 인터뷰이의 마음이 편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게 '지승호'라는 이름만이 갖는 신뢰의 힘일 것이다.

 

 

 

기생충 얘기 같은 경우는 의학으로 분류되지는 않더라도,

전문 분야여서,

의학이나 생물, 기생충 등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공부하기엔 버거웠을텐데,

이런 노력이 그의 이름에 힘을 실어준 것 같다.

 

솔직히 난 왜 서민의 '기생충같은 인생이야기'라는 이 책이, 이 시점에서 나와줘야 했는지를 모르겠다.

그가 유쾌한 것도 사실이고 유머러스한 것도 사실이다.

이곳저곳 방송 매체에 유쾌함과 유머 코드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서울대 의대를 나온, 기생충학 박사라는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기생충학 교수라는 직업과,

언론사에 사회적 성향을 띤 예리하고 날카로운 글을 쓰며,

매년 10편 이상의 엄청난 연구 논문을 쓰는 학자이고,

엄청난 다독가,

인 것과의 두드러진 대조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나의 개인적인 호 ㆍ불호의 취향은 있지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개인의 일생과 전공 영역의 성과를 가지고 일대기 성격의 인터뷰집을 내기에는,

그가 너무 젊고,

우리가 그의 가능성에 거는 기대가 크다.

아니, '우리'를 '나'로 바꿔야 하는걸까?

나만의 기대가 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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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러니까 고상하게 말하자면, 싫증을 잘 느끼고,

평상시 나의 언어 습관대로 편하게 얘기하자면,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언젠가  어떤 책을 읽는데,

'심리학자들은 "아름다운 외모에서 생겨난 사랑의 유통기한은 1~2년"라고 입을 모은다. 길게 잡아 2년이 되면 배우자의 외모보다는 정신세계가 더 중요해져서 외모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라는 구절을 발견하고는, 2년이상을 견디어 내면 되는건가 하는 마리앙토와네트 같은 생각을 잠깐 했었다.

 

언젠가도 얘기했었지만, 나의 사랑의 선택하는 기준은 좀 독특하여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재력이나 신분도 아니었고,

아름다운 외모는 더더욱 아니었고,

그 사람의 글씨체였으니,

글씨체야말로 그사람의 모든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

구태여 따지자면, 외모와 정신세계 둘다라고 할 수 있겠다, ㅋ~.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언제였던가, 이명옥의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를 보면서도,

사랑도 공부가 필요하다 말에 공감을 할 수가 없어서 구시렁거리는 날 보고 사람들은 정말 사랑을 해보기나 한거냐면서 놀려댔었다.

난 그때, 사랑을 일종의 교통사고 같은것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가 없이,

무방비 상태에 있다가...맞이하게 되는 그런 것이어서,

본인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고, 어쩌지 못하겠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이명옥은 이일호의 글과 그림 '화염경'을 빗대어서 '사랑을 공부해야 한다'는 의견에 살을 입히고 확장시키고 발전시켜 나갔었다.

 

형체가 없는 영혼은 늘 자신의 몸을 그리워한다. 제몸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몸과 포개져야 한다. 사람은 영혼의 빈틈을 메우려는 몸부림이다. 영혼의 빈틈에는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고, 살과 살 사이에서 두려움과 환희가 대립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살과 살 사이의 빈틈을 없애려고 맹렬하게 요동친다. 하늘에서 백만 송이, 천만 송이, 억만 송이의 장엄한 꽃비를 내리게 한다. 내 몸이 네 몸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의 구별조차 할 수 없는, 남녀간의 사랑은 영겁회귀를 노래하는 화엄세계의 춤인 것이다.(이일호의 '화염경' 부분, 183~4쪽)

 

사랑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뜬금없이 웬 공부?'하면서 손사래부터 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공부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왜? 인격을 완성하고,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기적이며 축복임을 절감하는데 사랑 만한 스승은 없을 테니까.(185쪽)

 

그때는 숟가락으로 떠넣어 주어도 몰랐던 걸 좀 알겠는건,

이 책 '사랑의 역사'가 제대로 된 학습서여서 인지,

아니면 그 사이 내가 사랑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ㅋ~.

 

사랑을 만나게 되거나, 빠지게 되는 건 일종의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옛날에는 '사건의 우연성'에 초점을 맞추었었고,

그래서 공부 따위로 어쩔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사랑을 하다'라는 행위의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꾸준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이 사랑을 몸소 경험했느냐는 물음에는...'모르겠다~(,.)'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지만,

한동안 참 많이 아팠고 지금도 아프다.

머리를 옵션으로 들고 다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감성이 풍부하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마음 아플 일이 많았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마음'은 항상 죽 끓듯 끓고 있으니 관심을 가졌었지만,

육신 또는 육체라고 표현되는 몸은 쥐죽은듯 고요하니, 나를 이루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임을 간과했었다.

햇빛이 없으면 살 수 없으면서도 해가 떠있을땐 중요성을 잊고 지내듯이,

나의 거죽을 이루는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몸이 아파, 몸의 어느 특정 부위가 아파서,

그 부위가 도드라져서 나로부터 분리되는 느낌이 들고나서야,

그제서야 날 이루고 있는 부분 중,

항상 이렇게 저렇게 들끓고 있는 마음만이 아닌, 잠잠한 육체의 존재를 인식하고 돌아보게 되었고,

'그동안 날 잘 다독거리고 데리고 살아줘서 고맙다~'라며 무한 땡큐를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을 공부한다는 건 자신의 온몸으로 통과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아프다는 것과 닮았다.

주체가 자신이어야 하고,

비록 아프더라도 자신의 온몸으로 오롯이 통과하고 났을때,

한뼘쯤 성장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랑의 역사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그동안의 난,

이 나이에 창피한 얘기지만,

'남미영'의 <사랑의 역사> '프롤로그'를 빌리지 않더라도,

나또한 공부에 방해가 된다거나 엉덩이에 뿔난다는 생각에...사랑을 지레짐작하였고,

사랑은 위험한 것이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거나 사랑에 베여 피 흘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사랑 없는 삶 속으로 숨어 들지는 않았었나 돌이켜 보다가는,

책속의,

우리가 사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제대로 알지 못해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믿고, 사랑인 것은 사랑이라고 믿은 결과지요. 사랑은 탐구할 가치가 아주 높은 학문이며, 배우고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공부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ㆍㆍㆍㆍㆍㆍ

세상에는 사랑을 이야기한 수많은 소설이 있지만 사랑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탄이나 미화 혹은 한탄으로 균형감각을 잃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런 작품은 사랑을 보는 우리의 판단을 흐려놓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이야기 하되, 비판과 질문과 탐구의 시선을 잃지 않은 작품을 골랐습니다.(6~7쪽) 

라는 구절을 보면서 '그랬었다'로 이런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한가지 더,

피 흘리지 않기 위해 사랑없는 삶으로 숨어들었던 그 선택 때문에,

난 언젠가 사랑이라는 그 위험한 것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깨달음과 배움이 그렇듯 너무 늦은 때란 없다, ㅋ~.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소설들은 나에게 다양한 느낌을 주는데,

감히 내가 토를 달 수 있는 건 없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흔히 고전이라는 것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책이 담고 있는, 작가가 전달하려는, 작품세계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하여도,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서는 그게 무엇인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을뿐더러,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서른네 개의 작품 중에는 내가 읽었던 책들도 제법 되는데,

어느 것 하나 이 책에서 얘기하는 그런 의도로 읽었던것 같지는 않다.

작품이란 보는 시점이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관점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그저 편한 상대가 좋다.

서른네 개의 작품 중, 이런 나의 취향에 가장 부합한 책을 꼽으라면 '제인에어'다.

 그 후로 그는 미녀도 아니고 키도 작고 어린애처럼 왜소한 체격이지만 자기 앞에서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 아는 게 많고 자신의 생각을 짧은 문장 안에 담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아가씨, 자신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은 가정교사 제인을 좋아하게 된다.

 

  난 당신을 보면 이상한 기분을 느껴요. 내 왼쪽 늑골 밑의 어딘가에 실이 한 오라기 달려 있어서 그게 당신 작은 몸의 같은 곳에 똑같이 달려 있는 실과 풀리지 않게끔 단단히 묶여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ㆍㆍㆍㆍㆍㆍ. 그래서 당신이 먼 곳으로 떠나버리면 그 실이 끊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체내에 큰 출혈이 일어날 것 같소.(148쪽)

 

또 한가지,

이 책에 언급된 서른네 개의 작품들과 관련하여,

사랑을 공부하거나 배우는 건 책이나 독서를 통하여서가 아니고,

우리가 몸으로 경험한 것만이 그렇더라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배우는데 있어서, 머리가 아닌 몸의 법칙이 적용되는 몇 안되는 예이다.

하지만, 모든 배움이 그렇듯 너무 늦은 때란 없다, ㅋ~.

  

난 그동안 배움이랑 관련된 사람의 기억력은 머리와 연관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사랑을 배우는 것과 관련하여선 후각이나, 청각, 촉각, 내지는 공감각 등의 예민한 감각도 아니었고,

사랑을 하는 것과 관련된 몸이었다.

온몸 구석구석이었다.

난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사랑을 배웠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더라.

암튼 사람의 기억력은 머리와 연관된 것만은 아니라는걸 몸소 체험했다.

그러니, 사랑의 유통기한도 기억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싫증을 잘 느끼고,

평상시 언어 습관대로 얘기해서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깜박깜박한다는 것이다.

 

머리로 하는 기억은 몰라도,

몸으로 하는 기억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일테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줄 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다.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인지,

아니면 육체적 관계에만 탐닉하면 된다 인지~(,.)

 

근데, 정말 편안한 관계는...

힘들게 다다르게 되는 육체적 합일에서 느끼게 되는게 공감이나 소통에서 오는게 아니라,

그런 관계를 지나고 난 후에 느끼는 충만함 속의 텅빔, 가득참 속의 성김에서 불현듯 느껴지는 허허로움이 아닐런지, ㅋ~.

 

같이 엮일 얘기는 아니어서 망설였는데,

알라딘 서재의 달인이기도 하신 '된장' 님이 책을 내셨나보다.

매번 책을 받기만 하고 게을러 리뷰를 올리지 못해, 마음의 빚이 크다.

부디 판에, 쇄를 더할 수 있도록 대박나시길 빈다, ㅋ~.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
 최종규 글.사진 / 숲속여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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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11 11: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사랑이 참 좋은 거 같아요.
그게 꼭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의 사랑일 수도록 있지만 정신적인 서로의 소통도 사랑일 수 도 있고 말이에요.
ㅎㅎㅎㅎ 뭐 제가 남녀 간의 사랑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은 배워야 한다는 것은 많이 공감하는 글이에요.
아무런 준비 없이 다가가면 놀라는 것이 사랑인 것 같아요.
하~ 사랑이라 ㅋ

양철나무꾼 2014-07-17 18:19   좋아요 0 | URL
여기서 '밑줄 쫙'쳐야할 부분은 '자기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줄 안다'예요.
교주님,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랍니다.
자기 자신도, 타인도, ㅋㅋㅋ~.
 
스님, 계십니까 - 사람이 그리울 때 나는 산으로 간다
권중서 지음, 김시훈 그림 / 지식노마드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ㆍㆍㆍㆍㆍㆍ'

하는 누군가의 시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들 가운데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닌지,

난 늘 사람들과 보대끼면서도 사람들을 그리워 한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그리워하는건 나만 그런게 아닌가 보다.

이 책<스님, 계십니까>의 부제가 '사람이 그리울때 나는 산으로 간다'인걸 보면 말이다.

생각은 또 널을 뛰어 智者樂水仁者樂山하는 論語 雍也篇의 한 구절이 떠올랐는데,

이 구절을 강신주는 어느 책에선가 이렇게 해석하고 있어서 참 흥미로웠었다.

 

모든 것을 알려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모든 것을 품어주려는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사람이 그리울때 산으로 가는 대신, 책을 들입다 파는 나로서는,

모든 것을 알려는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책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있고,

저 둘 중, 굳이 부류를 나누자면 모든 것을 알려는 사람에 가깝고,

모든 것을 알려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데,

그렇게 되면 '사람이 그리울때 나는 산으로 간다'라는 기본 전제 자체가 저 해석과는 상반된다.

 

산이나 물은 아무 소리 없이 그저 그렇게 그곳에 존재하면서 모든 것을 품어주고 있을 뿐인데,

얘길 만들어내고 나누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경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또 생각은 널을 뛰어,

나처럼 산이나 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싫어하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읽으려는 사람은 그렇다면,

알려는 의욕도, 품어주려는 마음도 없다는 얘기인가?

 

'사람이 그리울때 산으로 간다'라는 저 문구에서 중간 생략을 너무 많이 해버려서 그렇지,

그들이 그리워 하는 사람은 단순히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어떤 해답을 들려 주고 제시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지친 어깨를 잠시 쉬었다 갈 수 있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얘기할 수 있도록, 

얘기를 들어주는 대빵 큰 귀와,

보듬어 안아줄 수 있는  천개의 손,

무한넉넉한 미소로 무장을 한,

신 같고 종교 같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산이 날 에워싸는 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

산이 모든걸 들어주고 보듬어 안아주는 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 은 산으로 갈 것이고,

산에 있는 절의 부처의 형상에서 그걸 느끼는 사람, 은 산에 있는 절로 갈 것이며,

산에 있는 절의 스님에게서 그걸 느끼는 사람,은 그 절의 스님을 만나러 가면 되는 것이다.

 

그걸 바다에서 느끼는 사람은 바다로 갈 것이며,

그걸 책에서 느끼는 사람은 책을 후벼 팔 것이고,

나름의 학문에서 느끼는 사람은 그 학문이 남들이 볼때 아무리 고리타분해도 기꺼이 몰두할 수 있는 것이며,

오토바이 배달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데서 그런 걸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손으로 palpation하는 직업이어서 손끝의 감각을 혹사시키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손끝을 꼼지락거리면서 그걸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걸 저마다 다 다른 이름으로들 부르고 있지만,

자기만의 종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는 대숲, 카타르시스의 전당인 해우소 등으로 대치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거창하게, 사람이 그리울땐 산으로 가야한다...이거나,

'그리움'이란 감정 따위를 느끼고 너 등 따숩고 배부르구나...따위가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자기만의 종교, 또는 대숲, 또는 해우소를 가진 나름 나약하고 외로운 존재들이다...라는 것이었고,

그걸 느끼고 나니,

외롭지만 더이상 외롭지 않은 이상한 동지 의식에 휩싸이게 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집어들때만 해도 글을 쓴 '권중서'나 그의 글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없었다.

사전 지식이 없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책을 구입할 때가 한창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어  feel 충만하였을 때라,

단지 책 표지의 그림들을 보고 그림체가 이쁠것 같아서 들였었던 터였다.

 

그런데, 작은 사이즈였을때 이뻐 보였던 그림들은 책 전면을 가득 채우는 크기로 확대되자,

선과 색이 너무 생략되고 단순화되어 단조롭다 못해 심심해보였다.

반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글은 촘촘하다 못해 빽빽해서 갑갑할 지경이었다.

글에서의 과한 넘쳐남을 그림의 여백으로 보완했다고 해야할까?

그런 기획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한쪽으로 많이 치우친듯 느껴졌다.

 

 

지인의 최신 핸드폰 카메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능을 모르길래,

손가락으로 화면을 이렇게 저렇게 좁히고 넓히기만 하면 줌 인, 아웃이 된다고 설명해주었더니,

금세 이런 사진들을 찍어 보내줬다.

뭐, 거창하게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 원리라도 느껴주어야 하겠지만,

내가 느낀 건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따사로움 정도가 고작이었다.

작은 것 하나, 일상의 사소한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그 시선을 통하여...

일상의 사소한 것에라도 무게가 실리는 그 순간, 누군가에겐 그만의 특별한 작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는 그 비싸다는 유병언의 여느 사진들보다 값지고 귀하게 느껴졌으니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지만 말이다, ㅋ~.

 

 

'들어가며'의 한 구절을 옮겨 놓는 것으로 리뷰를 맺는다. 이 책의 기획 의도를 짐작하기에 충분하지 싶다.

  어느 날, 경주 불국사 석굴암의 돌계단이 석굴암 부처님께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였다. " 우리는 모두 같은 토함산의 바위에서 나왔는데, 인간들은 어째서 나는 짓밟고 부처님은 지극히 공경하는가?" 그러자 석굴암의 돌부처님이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인간의 무수한 정釘을 맞고 참은 결과 존경받는 부처가 되었다. 그런데 너는 나처럼 정을 맞아 본 적이 있는가?"(6쪽) 

 

개인적으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서 넋두리를 하자면,

 

한때 우리나라의 국교는 '불교'였었지만, 절은 도시 한 가운데 있는게 아니라 깊은 산속에 있었다.

그래도 됐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바뀌어 절이 깊은 산속에 있다보니,

널리 대중들에게 불법을 펼 수 없는가 보다.

그러다보니, 도시 한가운데로 나와 '포교원'이란 이름을 건 무언가도 생겨난다.

그게 제대로 된 '포교원'이라면 뭐가 아쉬워서 '사족'이겠는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약점을 노린 '떴다방 포교원'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들 '떴다방 포교원'은 기존의 불교나 절, 암자, 포교원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그저 포교원이라는 이름과 스님이라는 호칭만을 차용한 가짜 약 장사이며 사기꾼들인 것이다.

이들은 그전의 다단계 건강보조식품이나 약장사와 같은 이들이지만,

이들에게로 향하는 어르신들을 어쩔 수가 없다.

어르신들은 이들이 다단계 건강보조식품이나 약장사 같은 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또는 눈치 채고서도 드나드신다.

왜냐하면 이들이 노린게, 바로 사람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다단계 건강보조식품이나 약장사 같은 이들을 탓하기만 했지,

누구 하나 이들처럼 어르신들에게 살갑게 대한 적이 있나?

어르신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을 보이며,

어르신들이 잠시 잠깐이라도 웃고 재밌을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인가 연구하고 궁리해 본 적이 있는가 하면...할말이 없다.

 

어떤 어르신들은 그들의 불법과 사기 행각을 알지만,

그건 과한 매도이고,

그들의 무형의 서비스와 노력에 대하여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말이다.

인생 백세시대라고 한다.

무조건 생명연장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삶의 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런 정신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하여야 겠다.

그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이렇게 나이먹고 늙어가는 우리들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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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6-29 18:25   좋아요 0 | URL
어느새 유월이 저물고 칠월이 다가와요.
칠월은 참말 무더운 나날.
그렇지만, 칠월은 어쩐지 시원한 소나기와 뭉게구름과 무지개,
또 수박이 익는 멋있는 달이라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느꼈어요.
즐겁게 칠월에 아름다운 이웃들을 만나셔요~

양철나무꾼 2014-07-17 18:20   좋아요 0 | URL
청포도가 아니고 수박이라~?
요즘 냉동수박 넘 비싸여~--;

잘 지내시죠?
헤에~^____^

루쉰P 2014-07-01 18:31   좋아요 0 | URL
흠 양철무적나무꾼님도 저와 같은 멘탈을 지니셨군요 ㅎ
산이나 물에 가서 품어줄 사람을 만나고 알기 위해 간다는 건 좀 이해가 안돼요 ㅋ
저도 나무꾸님처럼 집에서 책 읽다 침대에서 자는 게 제일 좋더라구요 푸하
근데 읽으며 느끼지만 나를 온전히 품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느껴요 ㅎ 요건 저도 생각을 곰곰히 해봤는 데 타인과의 공감 능력은 확대가 가능해도 나를 온전하게 이해할 사람은 매우 찾기가 힘들다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다면 홀로 고독 속에서 쓰려져야 하는 가하면 그렇지도 않더라구요 내 고독은 오로지 나만 알 뿐 그렇담 그 고독을 이해하고 혁파할 내안의 나를 찾아야 되겠더라구요 ㅎ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무거운 돌을 지닌 인생 견디는 자가ㅈ되어야 한다라고 했는 데 음 뭐랄까?
전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다고 봐요 ㅋ
다만 나를 이해하고 품어줄 나는 있다고 보구요
요건 이기주의와는 틀려요! 강건한 자신이랄까? 멘탈 갑 프로젝트라 할까? ㅋ
근데 전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죠 ㅋ
암튼 나무꾼님의 글을 보니 또다시 제 사상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ㅋㅋㅋ.
저 무슨 병은 아니겠죠 ㅡ..ㅡ

양철나무꾼 2014-07-17 18:24   좋아요 0 | URL
왠지 교주님의 댓글에서 '홍길동'의 정취가 느껴지는 거 있죠.
도꾸가와 이에야스에서 길동이라 너무 튀었나?
근데, 말이죠~.
세상이 하도 어처구니 없이 돌아가서 이건 뭐, 원~(,.)

'이상국가'따위는 꿈도 꾸지 않으니,
어느 맘 맞는 사람끼리 조용히 살 땅 한평은 없는걸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