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밑빠진 독이라도 되는양 들이붓던 커피를 한동안 끊었었다.
지금은 확 줄였다.
커피를 끊었던 기간동안 커피에 대해서 별의 별 생각들을 해 댔었는데,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총기(=깨어)있는 삶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쯤으로 치부하게 되었다.
뭐, EBS 지식채널 e의 '커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커피 한잔을 만들려면 커피 원두 100개 정도가 필요한데,
생산자의 커피 100알갱이의 값이 10원이라는 얘기는 실로 충격이었다.
좀 극단적인 예인 것 같지만,
요즘 길거리에 떨어진 동전 고개 숙여 줍게 되지 않는다.
어쩜 커피는 향기가 가는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만들어 놓는지도 모르겠다.
향기가 퍼지는 만큼 사람과 사람을 떼어놓고는,
커피를 제대로 마시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외로움이나 고독함 쯤은 감수해야 할 것이니...
그런 소리하지 마라, 입막음을 하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커피 향 뿐만 아니라, 마시는 커피의 양이나 진하기 와도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 게 아닐까?
이쯤되면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거나 드립을 내릴때면 이 상관 관계가 떠오를 것 같고,
그 제일 앞에 해리보슈, 이 아저씨를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블랙에코>로 말할 것 같으면 해리보슈 시리즈의 시작이다.
그동안 읽은 전작들에서 해리보슈 아저씨의 '나 마초다, 어쩔래? 꼬우면 배째'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고, 여기선 해리 보슈가 왜 마초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는지가 설명되어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었고, 그 기억으로 정신과 치료도 받았고, 아직도 밤이면 악몽에 시달린다.
뭉크의 '절규'쯤이 연상되어지기도 한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같이 참여하였던 마약중독자 친구를 이해는 할 수 있다.
그 친구의 죽음을 접하게 되고, 파헤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제약을 받는다.
베트남 참전 용사들이 왜 마약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전긍긍 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자국에 돌아와 할 일이 없어 그렇게 그렇게 인생의 밑바닥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하여 담담하게 들려준다.
이쯤에서 남의 나라 일이지만 흥분하고 분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공익을 대변해야 할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이나 원한,복수 등으로 대변되는 미친 공권력의 존재감에 대해서이다.
그러니 해리 보슈가 설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그러다 보니 외롭고 고독한 이미지가 될 수밖에 없겠다.
미국이라는 나라랑 관련하여 이런 생각도 든다.
서민을 위한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평범한 서민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정말 보호해야할 사람들은 비껴가는 묘한 행위를 연출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랑,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게 성긴 법 질서를 유지해 가는 길이라는 생각.
올 성긴 그물로는 작은 치어들도 잡아들일 수 없지만, 대어들도 그물을 뚫고 나가 버린다.
대어를 잡아 들이기 위해서는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 옹을 불러오는 수 밖에 없는걸까?
이게 우리의 롤모델 쯤 되는 미국의 일이라니 더 씁쓸한 것이다.
보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너무 세상 흐름을 따라가는 건 하수구로 향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끔 그는 자기만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세상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게 문제였다. 다들 진지하게 매진해야 하는 일 대신 취미나 부업을 갖고 있다는 것.(153쪽)
커피를 머그컵으로 두개씩도 가지고 다닌다.
담배도 줄담배에다...
거기다가 별로 먹는 걸 즐기지도 않는다.
맥주는 한번에 여섯 개 이상은 사지 않고,
칠면조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한다.
뭐, 한번 송어 요리를 주문한 건 나오는 데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하루종일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온 날은 급기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231쪽)고 하면서,
사람들의 목소리 대신 색소폰 연주를 듣는데...이건 흡사 나랑 같다.
나도 이 마음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쉽기도 한데,
재즈는 그렇게 필 충만하여 듣는 사람이, 락 음악을 뽕끼 충만하여 듣는 음악쯤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암튼,
보슈는 몸집이 크지 않았다. 키는 180센티미터에 많이 모자랐고, 몸도 가느다란 편이었다. 기자들은 기사에서 그를 호리호리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점프슈트 밑의 근육은 마치 나일론 끈 같았다. 자그마한 몸집 때문에 힘이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머리를 희끗희끗하게 물들인 흰머리는 대개 왼쪽에 더 치우쳐 있었다. 그의 눈은 거무스름한 갈색이고, 감정이나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20쪽)
고 표현된다.
전작을 통틀어 보슈의 외형에 대해 가장 자세한 설명이다.
상대를 향해 바짝 다가갔다가 물러나는 방법은 보슈가 이 작은 취조실에서 거의 1만 시간 가까이 경험을 쌓으며 터득한 기법이었다. 상대를 향해 다가가서, 상대가 자기만의 공간으로 생각하는 40센티미터 남짓의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가 원하는 것을 얻은 뒤 뒤로 물러나는 것. 이건 잠재의식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경찰서 취조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대부분 진술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진술의 뉘앙스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가끔은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은 것들이 더 중요할 때도 있었다.(217쪽)
보슈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여러군데 나타나지만, 이쯤되면 보슈과 왜 외롭고 고독한지 ...그래서 커피만 들이키는지 알 수 있겠다.
"ㆍㆍㆍ이 세상에 혼자가 되더라도 고독하지 않을 것 같아요?"
ㆍㆍㆍㆍㆍㆍ
"당신은 혼자인 건가요, 아니면 고독한 건가요, 해리 보슈?"
ㆍㆍㆍㆍㆍㆍ
"그건 나도 잘 몰라요." 마침내 보슈가 속삭였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처한 환경에 아주 익숙해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난 언제나 혼자였어요. 그래서 고독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292쪽)
처음에는 해리보슈의 과거를 알면서도 이렇게 묻는 '위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구를 믿을 수 있으려나?'로 시작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살을 섞고 몸을 내맡기는 존재도 믿을 수 없다 싶으면 좀 비참해 지지 않을까로 이어졌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해리보슈 이 아저씨가 문제라고...
그런 관계가 외로움이나 고독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그런 관계에서 헤어나오면 그때는 잠시 인식못했던 외로움이 쓰나미로 몰려온다고...
이 아저씨에게 적절한 치료법은 외로움이나 고독 대처법이 아니라,
어쩜 '에이즈 예방 특강'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딴 걸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면 못내 아쉬울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해리보슈만한 그런 동굴을 품어가질만한 그런 여자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