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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ㅣ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얼마전 아들이 노래를 부르던 일렉기타를 사주었다.
아들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로 헌사를 했다.
이리저리 튕겨보더니, '아흑~소리가 완전 '죽음'인걸!'하며 흡족해 했다.
앰프랑 또 컴퓨터랑 연결해 륑가륑가하더니 컴퓨터를 망가뜨렸다.
이때 이 녀석은 세상 다 살았다는 표정으로 '죽을 거 같애.'라고 읊조리더라.
나는 사람이나 사랑 때문도 아니고 일렉기타랑 컴퓨터 때문에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이 녀석이 한심하였지만, 뭐~
이렇게 한마디하였다.
'엄마, 아빠가 니 생명의 은인이네. 낳으면서 한 번, 이렇게 죽을 것 같은 걸 살려놓은 거 한번~'
돌이켜보니, 나도 '죽음'을 이렇게 저렇게 섞어서 '과장법'을 제법 만들어 썼다.
세상은 과장이 안보태지고도 죽을똥 살똥의 연속인데, 나 때문에 아이는 삶과 죽음을 과장하여 목도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제 죽음이 들어간 단어의 선택에 신중해야 겠다.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을까?
종종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르는 자가 있기는 하지만,
죄를 미워하되 그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 따위는 없는 게 아닐까?
이 책의 원제는 'Schneewitten muss sterben'이다.
그대로 해석하자면, '백설공주는 죽어야 한다', '백설공주는 죽어 마땅하다' 정도가 되겠다.
난 백설공주를 이런 저런 버젼으로 접했었기 때문인지, 백설공주가 죽어 마땅하다는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 동화에 나오는 눈처럼 흰 백설공주로 알고 있는상황에서, "백설공주, 걔 죽어 마땅해...싸고지야." 했다면 좀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암튼,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런 저런 상황이 어우러져 다시 한번 우리말 제목을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 친구 둘을 살해하고 시체를 은닉한 자의 형량으로 10년이면 너무 짧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난 후인가, 그 즈음인가...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전도유망한 청년의 10년이 너무 안타까웠다.
뭐, 처음에만 그랬다는 얘기이다.
이 청년은 술에 만취해 그날의 일을 기억 못하는데...
나였으면 그러면 다시 술은 보기도 싫을 것 같은데...그는 또 술을 마신다.
이것이 내 안타까움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이고 그에게 감정 이입 할 수 없었던 이유이다.
물론 일단 눈앞에 뼈만 가져다주면 시간이고 뭐고 다 잊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사람(14쪽)의 일에 관한 열정이 내 맘에 들었지만 그는 어찌된 것인지 일 외의 부분에서는 완전 찌질이다.
냉철한 카리스마 수사반장 보덴슈타인도 내가 보기에는 아내가 바람 피우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예나 지금이나 자신만만하시군요. 여자가 예뻐지면 남자들은 꼭 자기 때문이라고 하더라!"(85쪽)의 당사자가 된다.
이 책의 주인공 '토비아스'로 말할 것 같으면...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것 하나 없는 게다가 얼굴까지 잘 생겼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여자 친구 둘을 살해하고 시체를 은닉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간다.
이 책은 10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그가 예전 마을로 돌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토비아스가 맘 아팠지만,
토비아스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과연 전도유망한 청년이 되어있을까?...에 대한 나의 예상을 얘기하자면 'never'이다.
왜냐하면 열아홉살 때까지의 그가 전도유망했다고 표현되는건 그의 외적인 스펙이다.
내적으로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성숙했는지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거의 속물수준이다.
외모만을 보고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갈아치는게 신발을 갈아신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던건 차치해 두고라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이 제멋대로였다.
술을 아무리 인사불성이 되도록 먹었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고도 모를 정도로 먹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범인으로 지목되었을때, 그의 결백을 증명해 줄 친구 한명 없다는 것도 그렇다.
좋다, 그렇게 그렇게 형기를 마치고 나왔으면...
술 때문에 자신이 악화일로를 걸었다면, 또다시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 않았을까?
피아는 그의 긴장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억눌려온 노여움이 작은 불꽃처럼 일렁였다. 그 불꽃은 바람만 제대로 만났다 하면 거대한 불길로 변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었다. 토비아스 자토리우스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그 자체였다.(75쪽)
복수의 칼날을 갈든 도를 닦든 10년동안 감옥에 있은 사람의 그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러니까...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았겠다.
하지만, 이게 서사를 만들어나가는 힘이지, 장르소설이 갖추어야 할 개연성은 아니다.
얘기를 직조해 냈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리저리 붓 가는 대로 쓰다가, 얘기가 안 풀린다 싶으면, 하나씩 인물을 만들어내서 억지로 꿰어맞추는 식이다.
한마을 사람들이 범죄에만 얽히고 섥힌게 아니라 관계도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섥힌게...꼭 통속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재밌지만 그뿐, 읽고나면 남는 여운 따위는 없다.
'스몰플레인스의 성녀'가 생각났는데...
스몰플레인스의 성녀에서는 그래도 한가족 사이의 비밀이어서 억지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한마을이 통째로 얽히고 섥힌 이런 사건이 10년동안이나 은폐되었다는 게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자폐아와 아스퍼거증후군의 증상이 섞여서 왔다갔다 한다.
이런 의학적 지식에 대한 자료수집도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다니 아쉽다.
책날개를 보면,
냉철한 카리스마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남다른 직관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감성 형사 피아 콤비가 등장한다고 했는데...
이 안내 문구는 바꿔야 할 것 같다.
보덴슈타인은 아내의 바람을 감지하고 뒤쫒아 다니다가 자신도 맞바람을 피우는 찌질남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남다른 직관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여형사 피아의 경우도 전남편의 도움을 받아 거쳐야 할 단계를 생략해서 사건을 좀 빨리 해결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유럽소설 특유의 허무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긴 수사반장 보덴슈타인은 다음편에서도 계속 등장해야 할테니까 그를 주인공으로 놔두어야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유럽 장르소설은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개척 분야니까 백번 양보를 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 책이 눈 깜짝 할 사이에 7쇄까지 찍어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광고, 영업, 기획력을 유심히 살펴보고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