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으시든가 괴시든가/고정희

하느님......죄 없는 강물에 불지르는 저 열사흘 달빛을 거두시든가
어룽어룽 광을 내는 내 눈물샘 단번에 절단 내시든가
건너지못할 강에 다리 하나 걸리게 하.시.든.가

하느님......시월 상달 창틀 밑에 밤마다 우렁차게 자진하는 저 풀벌레 울음을
기어코 흩으시든가 내 간음의 가을을 뒤엎으시든가
짱짱한 아궁이에 장작을 피우시든가

하느님......우리 밥숟갈의 정의에 묻어 있는 독을 닦아주시든가
적멸보궁 진신사리 별밭 속을 운행하는 심판의 불칼을 멈추시든가
능곡지변 갈대밭에 늡늡한 능금나무 향기롭게 하.시.든.가

슬프다.
내가 얘기하려는 이 책은 참 좋은, 그러나 아쉽고 안타까운 책이다. 
고정희 버전으로 얘기해 보자면, 그야말로 '흩으시든가 괴시든가'해야 하는데 일관성이 없다.

장르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혹 할만한 라인업이다.
하지만, 이 중 반 정도는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이고,
그리고 소개된 작가의 작품들도 우리의 정서에 반하거나, 지명도가 떨어지거나, 옛날 옛적에 번역된 작가들이다.

아는 몇 명 작가들의 그것만으로도 황홀할 수 있었다고 얘기하기에는, 황홀함은 너무 뜨문뜨문이고 필력은 들쑥날쑥이다. 
작가의 작품 필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이 책의 글들의 필력을 얘기하는 거다.
위대한 작가들이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에 대해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말하기 위해 택한 다양하고 화려한 접근법을 보게 될 거라고 했는데, 글쎄~.

이 책의 소개글에서 어떤 이는 '일주일 치 점심값'을 걸었었다.
그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우리나라였다면...여럿에게 일주일 치 점심값을 지불해야 했을 거고, 그의 파산은 명약관화하다.

오히려 소설을 쓰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어떻게 영감을 얻고, 어떻게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지, 그 인물들에 어떻게 살을 입히고 피를 돌게 하는지에 대해서 언급한 작가들이 몇몇 있다. 

하지만, 소설을 쓰려는 사람에게도 더 좋은 작법의 책은 얼마든지 있을터. 
평점을 주기 거북하면 리뷰를 쓰지 않고,
그냥 읽은 공이 아까웠다, 툴툴 거리고 퉁 쳐 버리는데... 

나는 이 책의 번역을 칭찬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잘 다듬어진 수려한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수려한 번역을 얘기할 필요 없는 것이 이 역자는 '콰이어트 걸'에서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스물 한명이나 되는 작가의 글들을...
역자가 개입하지 않고 작가의 문체와 개성을 그대로 살려 번역하고 있는데, 군더더기 없고 맛깔스럽기가 이를데가 없다. 

전에, 내가 글을 쓸 때 문단 단위로가 아니라, 호흡대로 끊는다고 했었는데...그런 의미에서 켄브루언은 짱이다.
그의 작품은 아직까지 읽은 게 없어서 그가 얼마나 간결하고 응축된 글을 썼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이 짧은 글만으로도 간결한 문장의 반복에서 느껴지는 운율감을 맛볼 수 있었고 충분히 그에게 홀릭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엔 선셋대로를 모티브로 한 <런던대로>만이 번역되어 있단다.
런던대로를 읽어보고 괜찮으면 원서를 욕심내 봐야겠다. 

때로 상상했던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리 차일드의 '잭 리처'가 그런 사람이었는데...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못하는 그가 쓸쓸하게 느껴졌었는데,
그래서 그 쓸쓸한 등을 안아주지는 못하더라도, 한번 씩 지나는 바람처럼 툭 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키 195센티미터에 체중이 113킬로그램인데 온몸이 근육질이란다.
툭 쳐주는 것이 다독거림이 되지 못하고 튕겨져 나올 것 같다. 

그래도 리 차일드는 몇 권 번역되어 있고, 다 그런대로 재미있다. 

그 다음은 마이클 코넬리다.
나는 번역되어 나와있는 마이클 코넬리를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챙겨 읽었었고, 
그를 나름대로 분석, 내 맘대로 규정해 놓았었다.
이곳에서 비교 페이퍼도 여러번 썼었다.

해리 보슈를 가지고도 했었고,----->으으음 으으음 우~우 우우
해리보슈와 조 파이크를 가지고도 비교했었다.----->고독 계의 지존, 절대 최강자

그런 내게 마이클 코넬리의 글은 오히려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 한 구절로 나도 안도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그도 응원할 수 있겠다.
<angel flight>, 아직 번역 전인 책인가 본데, 성냥갑 점괘에 이런 말이 나온단다.
"자신의 내면에서 안식을 찾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해리에게는 그 말이 앞으로 다가올 일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힌트였다."(77쪽)
해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서 안식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라인업의 글만으로 멋진 사람을 선택하라면 단연 '존 코널리'이다.
사실 존 코널리의 작품들을 좋아하지는 않았었는데,(난 공포물이 별로다~ㅠ.ㅠ) 
이 책에 등장하는 그의 작품에 대한 변은...그의 작품관 뿐만 아니라 인생관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는 로스 멕도널드를 존경한다.
내 생각에 인간과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한 맥도널드의 따뜻한 시선이 벨린다 페레이라의 죽음에 대한 내 반응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중략)...주인공인 사립탐정 찰리 파커는 분노와 복수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그가 받는 고통으로 규정되는 인물이다. 그는 직접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게 놔두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덕분에 그는 이기심이나 비탄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가 쫒는 부인과 아이의 살인범에게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중략)...나는 모든 것을 잃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간으로 남기 위해 애를 쓰는 남자에 대해 쓰고 싶었다. 최악의 악몽이 현실로 실현되면 거기에는 일종의 끔찍한 자유가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든 일단 그 정도로 끔찍한 일을 견뎌내면 다시는 어떤 것도 그를 그 정도로 아프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찰리 파커란 이름을 지어준 이유는 그와 같은 이름의 재즈 뮤지션인 찰리 파커의 별명인 버드에서 풍기는 비행, 자유, 영성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죽음에 얽매여 있는 그를 위로해주기 위해 그 이름을 주고 싶었다.(91쪽)
찰리 파커나 버드를 이름이나 닉으로 사용해서, 무언 중에 그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다는 발상이 참 좋았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로버트 크레이스'이다. 
난 이 사람이 만들어낸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캐릭터를 다 좋아한다.
엘비스 콜은 좀 껄렁껄렁하게 작가와 수작을 걸고 있다.
난 로버트 크레이스가 엘비스 콜을 향하여,
"넌 희망을 상징하거든."
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만약 네가 경찰이거나 FBI 요원이었다면 거대한 관료 체제의 일부였을 거야. 너는 네가 등에 업고 있는 체제의 전적인 영향력과 권한을 행사했을 것이고. 내가 널 그 체제 내에서 그 권위에 반해 노력하는 인물로 묘사한다고 해도 넌 여전히 그 체제의 일부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난 그걸 원하지 않았어.
...
넌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해. 나처럼. 보통 사람들처럼. 너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니까 우리를 대변하는 메타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 
... 

저 아래 있는 사람들, 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을 사람이 자신밖에 없어.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 변속기가 고장 나고, 어떤 나쁜 놈이 새로 산 차를 훔쳐가고, 집세가 미친 듯이 올라가도 모두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지 혼자서 고민하지. 그때 네가 짠 하고 나타나는 거야."  
"난 변속기는 안 가는데."
"너도 가진 거라곤 너 자신밖에 없잖아."
"내겐 파이크가 있어."
"너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아. 이 미친 세상에서 홀로 어둠에 맞서는 캐릭터가 내게 영감을 불어넣어준단 말이야. 만약 네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나도 살아남을 수 있어. 네가 견뎌낼 수 있다면 저기 밑에 있는 사람들도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 내 말 뜻 알겠어?"(109~110쪽 부분 발췌)

좀 길지만 두 남정네의 수작이 나쁘지 않았고, 내가 장르소설을 읽는 이유와도 부합하여 옮겨봤다. 

조 파이크는 더 멋지다. 

로버트 크레이스는 어딘가 작자후기에서, 글쓰는 것도 새벽녁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것도 조 파이크처럼 한다고 해서 놀라웠고 존경스러웠다.
나는 인간에 대해 쓴다. 내가 느끼는 성취감은 드러나지 않던 플롯의 반전을 썼을 때가 아니라 독자에게 다가가 감동시키고 독자를 이야기 속에 끌어 들이고 놀라게 하는-예상치 못했던 플롯의 반전 때문에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는 여운 때문에 놀라게 되는-그런 캐릭터에서 나온다.(120쪽)
이쯤되면 난 로버트 크레이스에게 제대로 홀릭할 수 있겠다.

제프리 디버의 경우는 얘기할 것이 없다.
그의 전작을 읽은 경우라면 다 알 수 있는 이력에다가, 짧은 단편 소설 하나를 추가하였다.
그럭저럭 재밌다.
126쪽 첫 줄에 '과학 동아리와 클래식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했다.'고 되어 있는데,
클래식 음악을 지칭하는 건지, 전반적인 클래식 모든 것을 통칭하는 건지 모호하다. 

이언 랜킨은 우리나라에 '부활하는 남자들' 두권만 번역되어 나와 있는 걸로 안다. 
아무래도 취향을 좀 타는 것으로 여겨졌었지만, 참 좋았고 멋있었다.
이언 랜킨의 경우, 수없이 많은 작품을 쓴 후에 차차 빛을 발하고 성공한다.

그는 문학을 전공한 학생답게 주인공에게 책을 너무 많이 읽히고 시를 외우게 한다.
근데 주인공은 경찰관이다.
경찰이 책을 많이 읽고 시를 외워서 안 되는 법은 없지만, 스물 네 살의 작가는 경찰로 일하는 게 어떤 건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그는 여기서 소설 작법의 큰 격언을 몸소 보여준다.
"네가 아는 것을 써라." 

알렉산더 메컬 스미스의 경우, '존 코널리'와 일맥상통하는 얘길한다.

하지만 삶이 정말로 그런 것일까? 사람들이 음마 라모츠웨 같은 여자에게 망신을 당하고 야단맞았다고 해서 단지 그것 때문에 개심하고 새사람이 되는 것일까?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사실 사람의 본성이란 상당히 삐딱한 면이 있다...(중략)...용서는 큰 덕성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가끔 복수심에 사로잡혀 용서를 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증오하거나 해치려고 하는 것보다 먼저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용서를 하게 되면 과거에 사로잡히는 대신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용서는 상처를 낫게 하는 힘을지니고 있다.(494~495쪽 발췌 인용)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서정적인 구절을 찾으라면 이 구절을 꼽겠다. 

...그녀는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지만, 가끔 바다를 보는 꿈을 꾸긴 한다. 그녀는 바다에서 나는 소리를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마 유칼립투스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소리가 바다 소리와 같을 거라고 믿는다.

옮긴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장르소설, 축소시켜 탐정이야기 역시 삶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고, 이별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도 책을 읽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삶에 적용...사랑하고 이별하고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요즘 같아선 이 모두가 요원해 보인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6-22 15:28   좋아요 0 | URL
흐흐흐, 며칠 전 책 주문하면서 살까 말까 무지하게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 리뷰 보고 사자 하고 빼놨는데, 지인짜 잘 했다는 안도감에 댓글을...
땡스, 몰모트가 되어주어서. 머, 소장하기 싫으면 선물로 줘도 돼..
(뻔뻔한 마녀괭이~, 우리 그런 사이자너? 자기두 나한테 좀 뻔뻔하게 굴어도 봐줄게... 으하하)

양철나무꾼 2011-06-22 16:52   좋아요 0 | URL
잠깐만 기다려 봐봐~
요즘 내가 집을 옷 갈아 입으러 들어가는 곳으로 알고 있어서 말야.

옷도 갈아 입고 밥도 먹고 잠자는 곳이 되면...쟁여놓은 이언 뱅크스 부터 챙겨 볼게.
그러니까...그 샌들...응???^^

마녀고양이 2011-06-22 19:36   좋아요 0 | URL
헉........... 내가 아끼는 그 샌들을! ㅡㅡ;;;;;;;;;;;
모른척..... 누구세요?

2011-06-22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1-06-22 20:44   좋아요 0 | URL
고정희 시, 오랜만이네요. 매일 시를 읽어야지 하면서도 매일 시를 읽지 않고 있어요.ㅜㅜ

루쉰P 2011-06-22 21:13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의 독서 취향에는 놀랄 적이 많습니다. 양철댁님이 소개해 주신 구절들과 작가들을 보고 있으면 저도 읽어서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마구 마구 솟아요. ^^ 겉치레 말이 아니라 진짜로요. ㅋ 그전에 양철댁님이 주신 나머지 두 책을 얼른 빨리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나저나 인용문도 너무나 좋은데요. 존 코널리의 인용문이 지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양철댁님이 지존이라고 생각한 작가를 저도 읽어볼려고 합니다. 왠지 너무 기대가 돼요. 저도 지금 이 책, 저 책 사고 있어서 지금 10층 석탑에 가까워 지고 있습니다.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삽니다. 책은 나올 때 사야지 안 그러면 못 산다는 마인드를 지녔기 때문이죠. 풉!

그나저나 병 간호 하시면서 페이퍼 쓰시기 힘 드실텐데, 그런 모습 속에서 많이 배워요. 전 공부를 하는 것도 힘겨워 다른 일을 못하고 있거든요. 왠지 이 공부가 인생의 마지막 찬스인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요. 그치만 독서도 지지 않고 도전한다는 것! 양철댁님께 배웁니다. ^^

2011-06-2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1-06-23 08:03   좋아요 0 | URL
병간중에 놀라워요. 용서하면 정말 나아갈 수 있는거죠. 건강 돌보며 힘내요.♥

2011-06-23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1-06-23 13:42   좋아요 0 | URL
헉 라인업 좋은 책 소개받았어요 그런데 양철댁님고 마녀괭이님의 댓글이 넘 재미나요

같은하늘 2011-06-24 18:23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도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라는 인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시네요. -.-;;;
그 와중에도 이리 열심히 독서하시는 양철댁님 대단하세요~~~

2011-06-27 0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7 22:25   좋아요 0 | URL
제가 만화를 들입다 팔 동안, 양철댁님은 장르문학을 파셨군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세계이옵니다.
여튼 무척 알찬 글이에요.^^

잭 리퍼를 툭 쳐 주고 싶었는데, 그는 근육질의 사나이, 툭 쳤다간 튕겨 나올 뻔했다고 하신 대목에서 푸하하하하~ 웃었어요. 그치만 툭 치면 푹 날아가버리는 빈약한 허약남도 곤란은 하겠어요. 후후후..

+ 힘든 병간호 중에 이 글을 쓰셨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건강 유의하세요. 양철댁님.
 

남극의 쉐프라는 영화를 보면 라면에 환장한 남자가 '내 몸은 라면으로 이루어져 있나 봐' 하고 울먹이는 대사가 나온다.
요즘 같아선 '내 몸은 커피로 되어 있나 봐'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체액은 물론 피까지도 커피로 되어있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을 했었는데...
어제 간단한 검사를 하려고 블리딩하는데 보니 커피 빛깔은 아니더라.  

정말 피곤했었는지 죽은 듯 자고 일어나서 보니...
내가 이런데서 어떻게 잠이 들었었나 싶다, 몸이 가려운 것 같아서 북북 긁고 앉아있다.
난 청소에 관해서 너무 깔끔 떠는 남편이 싫어서 돼지우리에서도 살 수 있다고 투덜거리곤 했었는데,
지금 보니...난 돼지우리에선 살 수 없는 존재였다. 

정신이 사나와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극의 쉐프에선 '면과 스프면 돼. 고명도 필요없어.'라고 울먹이던데...
내 몸은 남편의 갈비뼈로 이루어져 남편이 꼭 필요하다...뭐, 이런 거창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청소하는 남편만 있으면 돼, 밥도 혼자 먹을 수 있고 잠도 혼자서도 잘 수 있어.'이렇게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요리는 그럭저럭 되는데 청소가 영 젬병이다. 
지금 남편을 청소하라고 불러 들이면, 내가 어머니 옆에 가 있어야 하는데...오늘 그건 좀 싫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집안이 지저분해선 그럭저럭 되는 요리도 하고 싶지가 않고,
요리를 했다고 해도 이 속에선 먹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 시를 빗대어서 남편을 불러들여야겠다.
내 實用의 마음이 남편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 정진규

남들도 다 그런다하기 새 집 한 채를 고향에 마련할 요량으로 그림을 그려가다가 늙은 아내도 동차미켜 원하는 걸 그려보라 했더니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하나와 원추리랑 채송화가 피는 장독대가 있는 집이면 되었다고 했다 남들이 탐하지 않도록 눈에 뜨이지 않게만 하라고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實用도 끝이 있구나! 나는 놀랐다 내 텅빈 實用 때문에 텅빈을 채우려고 육십평생을 소진했구나 아내의 實用이 바뀌었구나 눈물이 한참 났다 이제서야 사람 노릇 좀 한 번 하려고 實用 한 번 하려고 나는 實用의 그림들을 잔뜩 그려넣었는데 없는 實用의 實用을 아내가 터득했구나 눈에 뜨이지 않게까지 알아버리다니 다 지웠구나 나는 아직 그냥 그탕인데 마침내 一字無識으로 빈 하늘에 걸린 아내의 빨랫줄이여! 구름도 탁탁 물기 털어 제 몸 내다 말리는구나 염치없음이여, 조금 짐작하기 시작한 나의 일자무식도 거기 가서 잠시 끼어들었다 염치없음이여, 또다시 끼어드는 나의 一生이여 원추리 핀다 채송화 핀다

미이라 /정진규 

천년 썩지 않은 미이라를 두고 썪지 않았음을 찬탄하는 사람들은 썩었어야 정상이라는 정답을 내리고 싶은 거겠지만 앞으로 천년 동안 욕망의 날내가 두고두고 진동할 사람들이다 썩지 않을 사람들이다 다만 사랑은 다르다 천년동안 썩지 않을 미이라로 네게 남겠노라고 뻔한 거짓말을 한 바 있다 지우려 했으나 지워지지 않았다 사랑은 본래 형체가 없는 것이니 본래 디딜 가장자리가 없었던 것이니 거짓말이 상습常習이다 사랑은 

'몸詩 66--병원에서'/ 정진규


몸이 놀랬다

내가 그를 하인으로 부린 탓이다

새경도 주지 않았다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제 끼에 밥 먹고

제때에 잠 자고

제때에 일어났다

몸이 눈 떴다

(어머니께서 다녀가셨다)


 

어쨌든 '정진규'가 누구인지 참 좋다.

내 實用의 마음이 아직 남편에게 가 닿지 않았는지 연락은 없고,
주위를 둘러보니...여기저기서 주문하고, 선물 받고, 공수해온 책 박스가 쌓여 7층 석탑을 이루었다.

잘못했다, 심심하면 박스를 갖고 테트리스라도 해서 한칸씩 지웠어야 했다. 
잘못은 심심하다고 알라딘 이 동네에 들어온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ㅠ.ㅠ
<살인의 해석>을 읽은 내가, 제드 러벤펠드의 새 책을 보고 지르지 않고 참을 수 있냔 말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뭘 먼저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1-06-19 21:52   좋아요 0 | URL
전 청소는 좀 되는데 요리는 하기 싫어요.
그래도 오늘 삼계탕 끓였어요. 하루만 딱 더 쉬고 싶은 일요일 밤이예요. 아.쉽.다!!

양철나무꾼 2011-06-20 15:55   좋아요 0 | URL
저랑 정반대시네요~^^
삼계탕도 여름 보양식으론 그만이죠, 저도 삼계탕 먹고 싶어요, 추릅~

마녀고양이 2011-06-19 22:02   좋아요 0 | URL
살인의 해석을 읽은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
그럼 여의사 나오는 책은 제목이 머였지? 너무 더워서 머리가 멍... ㅠㅠ

청소라, 그러니까 남편은 청소기였구먼.... =======33333333333

양철나무꾼 2011-06-20 16:03   좋아요 0 | URL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공부 하는데, 제드 러벤펠드 기억해 두면 좋을 듯~^^
여의사 나오는 게 어디 한둘이어야지...
퍼트리샤 콘웰은 너무 지 잘난 맛에 사는 여자라서 난 별루고,
테스게리첸이 좀 낫더라~

성능 좋은 청소기보다는 남편이 훠~얼~씬~이지...ㅋ~.

꿈꾸는섬 2011-06-19 23:5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마녀고양이님ㅎㅎㅎㅎ양철댁님 옆지기님을 청소기ㅎㅎㅎㅎㅎㅎ 어째요. 저 마녀고양이님때문에 너무 웃었어요. 죄송해요. 양철댁님.

양철나무꾼 2011-06-20 16:05   좋아요 0 | URL
무더운 여름엔 웃음이 보약이죠.
남편도 당근 알거예요, 자기가 큰 웃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리시스 2011-06-20 04:40   좋아요 0 | URL
히히 그럼 청소는 제가 해드릴까요?^^ 양철댁님이 요리를 하실 수 있게요. 그러면 잠시만요. 금방 갈게요. 으흐흐흐.

양철나무꾼 2011-06-20 16:06   좋아요 0 | URL
아직도 꿈나라는 아니실테고...
아직 안 오셨는뎅.

아이리시스님도 청소가 낫단 말이죠?^^
으흐흐흐.

하늘바람 2011-06-20 09:01   좋아요 0 | URL
옆지기님에 대한 걱정을 청소로.
정진규 시 정말 좋네요

양철나무꾼 2011-06-20 16: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예민해서 병원 한번 다녀오면 두번씩 씻고 소독하는 남편보단,
병원 밥 20년 먹어 그쪽으로 수더분한 제가 훨~ 낫긴 한데...어젠 정말 병원 가기 싫었다는...
근데 제가 하루만 안 보여도 더 막 안 좋아지시니, 원~ㅠ.ㅠ

2011-06-21 16:03   좋아요 0 | URL
남편님께 실용의 마음이 빨리 가 닿기를요..하핫
그나저나 정진규도 그의 아내도 그의 시도 모두 좋아요. 이 시들를 소개해준 양철댁님도 좋아요.ㅎ

청소기.ㅎㅎㅎㅎ
아내를 위해 기꺼이 청소기가 되어주는 남자 있음 기꺼이 집에 들일 요량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6-22 14:35   좋아요 0 | URL
정진규 님도 정진규 님이지만, 시 곳곳에 등장하는 이 분의 아내도 참 좋았는데...역쉬, 수필가라고 하시네요.

이 분에 대해서 꼬치꼬치 찾다가 흡~중단했는데요.
이 분 사진은 글이랑은 많이 다르네요~ㅠ.ㅠ

루쉰P 2011-06-22 21:01   좋아요 0 | URL
갈비뼈이신 남편을 둔 양철댁님이 너무나 부럽네요. ^^ 실용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있어야 실용이 되는법, 청소기라 불리우는 남편 분과 청소는 싫으나 다른 것은 자신 있는 예를 들면 책으로 7층 석탑을 쌓으시는 양철댁님의 조화가 뭐랄까 수레의 양 바퀴 같다고 할까요? 양철댁님과 남편 분 두 바퀴가 짝을 이루어 지금은 병석에 누워 힘드신 어머님도 태우고 기타 좋아하는 아드님도 태우고 굴곡 많은 인생의 길을 굴러 굴러서 가고 있는 것 같아, 지나가는 양철댁님 부부 수레에 대고 행복하게 잘 사시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팍팍 솟아나는 글이네요. 그래도 씻으셔야 병 안나요. ㅋㅋ
교주도 씻기는 합니다. ^^

비로그인 2011-06-24 22:38   좋아요 0 | URL
에고고.
더운 여름에 하늘도 낮은데.. 얼른 청명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맑음이 오시길 빌겠습니다. 양철님~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 ㅁ양이 '자긴 사랑을 해야 해..드라마도 보고..^^' 이런 문자를 보내왔을 때만 해도,
'ㅋ,ㅋ...점심시간에 잤어.  드라마 볼 시간 있음 사랑을 해야 하고, 사랑할 시간 있음 잠을 자겠어. 상태가 메롱이야'
하는 답 문자를 보냈었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또 얼마전 '지인과 도인' 얘기를 들은 몸도, 마음도, 직업도 자유분망한 내 오랜 친구는, 
말 안해도 뭐든 다 안다는 듯,
나를 아프게 한 것도 사람이고, 그런 사람의 빈 자리를 대신 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사람 뿐이라며...
1,2,3...리스트를 뽑아 내 코 앞에 " 입맛 맞춰 골라봐~"하며 들이댔었다.

"또 다른 사람이라니, 친구야..."
말 안해도 다 알아주는, 한참을 어긋나 앞서 나가는 이 친구의 자유분망한 사고에 속으론 경악을 했었는데,
(당근, 이 책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오늘은  이 친구에게도, 내게 땡큐한 문자를 보내준 ㅁ양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나,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기실, 생각이 이리저리 널을 뛴다는 소리를 듣는 나는...개떡 같이 말해도 콩떡 같이 말해주는 사람에게 홀릭하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이 사람은 말을 안해도 알아듣는 묘한 재주를 지녔다.
이 사람이 건네는 시에 대한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뚫고 들어와 심장에 콕 하고 박혔고, 나를 어루만졌으며, 나를 울고 헤헤거리고 의기소침하고 지분거리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 쓴 산문들은 다소 헐거워 내 손가락이나 마음 한자락을 집어 넣어 그를 만지고 쓰다듬고 침 발라 넘길 수도 있겠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이,
"세상의 모든 정은씨, 살아서, 꼭 살아서 행복하십시오."(123쪽)
라는 구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이 사람도 '내키는 대로 아무 네나 펼쳐 읽다가 '이것이 날개다'라는 제목의 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시를 읽는데, 기습처럼 눈물이 고여들어, 그 눈물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도사려야 했다.'고 하고 있으니, 나의 눈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요즘 나는 제대로 '비틀리고  구겨지고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몸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르려는 몸부림 따위는 헛되이 느껴지던 터였다.
'파시즘의 시대에 자연을 노래하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를 내 삶에 대입시켜 보자면, '희망'이나 '행복'따위를 얘기하는 게 가혹한 형벌 같았으니 말이다.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 '이것이 날개다' 중에서  

첫째 연이다.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을 제외한다면 (이 구절, 참 야속하고 절묘하다) 죄다 덤덤한 진술로만 돼 있다. 시인이 이런 식으로 시치미 떼면 읽는 쪽이 외려 조마조마해진다.(121쪽) 

      (...중략...)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 나왔다, 다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 '이것이 날개다' 중에서 

마지막 연이다. 이제야 시인이 끼어든다. 정식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겨우 말했다. 몸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르려 몸부림쳤던 일생이었는가. 그리되어서 라정식 씨의 얼굴은 이제 이토록 고요한가......시인은 이렇게 이해해버렸고, 읽는 나도 수긍해버렸다. 그래야 망자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으니까.(122쪽)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골랐다면 이런 류의  시는 안 읽었을 것이다.
읽다보면 눈물을 뚝뚝 떨구게 마련인데...
(나는) 너무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일상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를 부러 재현하고 동정의 눈물을 흘리듯 여겨져서이다.
나는 '부러' 재현하는 그것을 막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인은 "좋겠다. 죽어서......"라는 아픈 말을 모질게 옮겨놓는 것으로 진심을 얘기했고,
이 사람은 말을 안해도 알아듣는 묘한 재주를 발휘하여,
시인이 끝내 절제한 그 문장을 경박한 내가 대신 써야겠다. "세상의 모든 정은씨, 살아서, 꼭 살아서 행복하십시오."
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시 쓰는 마음이 나온다.
당연히 시를 읽는 마음도 나온다.
시를 쓰는 마음에 시를 읽는 마음이 널을 뛰듯 화답을 하고 있는데,
나는 시 대신 사람 또는 사랑을 대입시켜 보기도 했다. 

김경주의 몽상가를 얘기하며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너를 사랑해서 내 뒤편엔 무시무시한 침묵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 
                                                                                                                  - '몽상가' 중에서 

그의 첫 시집에서 이보다 더 잘 만들어진 시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런 문장들 앞에서 유독 서성거리게 된다.
...우리를 사로잡아 사유를 강제하는 것은 절차탁마된 노회한 시들이 아니라 온몸이 악기인 자가 연주하는 이와 같은 혼신의 노래들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때로 난해하지만 그 난해함은 읽는 이를 소외시키지 않고 외려 빨아들이는 이상한 난해함이다. 이모든 것이 다 '사유하는 감각'의 권능일 것이다.(29쪽)

 
   

시 쓰는 마음 하나를 배웠다, 읽는 이를 소외시키지 않는 마음.  

문태준을 두곤 이렇게 얘기한다.

   
  부럽다. 자신의 마음을 '뒤란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에게 몽땅 주는 방심(放心)이 먼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그런 것들의 존재를 혼신으로 호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떤 것들이 단지 '있다'는 사실만을 지극하게 기록한다. 깨달음의 발설을 자제하고, 감탄문이나 느낌표를 아낀다. 혹은 그럴 때 아름다워진다.출석을 부르는 시간만큼은 모든 학생들이 평등해지듯, 그가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고 그 존재를 호명해줄 때 만물은 서정적 사해동포주의로 느릿느릿 물든다.(38쪽)  
   

시 쓰는 마음 또 하나, 그런 것들의 존재는 혼신으로 호명하되 깨달음의 발설을 자제한다.

이 사람의 문태준을 향한 마음을 옮겨보면 이렇다.

   
  몰인정의 시대에 그의 시는 갸륵하다. 그의 다정(多情) 때문이다. 이조년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라 했다. 병 맞다. 이를 다정증이라 부르려 한다. 문태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다정증 환자다. 이 환자가 우리 딱한 '정상인'들의 가슴을 찌른다. 저 환자의 눈에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휑하고 뻔한 인생일까 싶어진다. 그래서 돌연 아연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란 그런 것이다. 언제 그 맥이 끊어질지 모를 이 소중한 환후(患候)를 우리는 아껴 기린다. 그는 낫지 마라. 그래야 우리가 산다.(39쪽)  
   

손택수를 향해선 이렇게 얘기한다.

   
  앞뒤 문을 다 열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마음을 놓아 버리고 드러누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
'결심'이 아니라 '방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편히 내려놓아야 그 틈으로 시도 찭아들어오곤 하는 거이다.
그 방심은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열린 마음속으로 타인들의 곡절이 흘러들어온다. 그의 시들은 사연을 품고 있을 때 특히 아름다워진다.(42쪽)
 
   

시를 쓰는 마음 또 하나, 마음을 편히 내려놓기. 

이 사람의 사랑법, 연애하는 방식은 덤으로 얻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좀 들어야 한다. 네 말이 내 모서리를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너의 사연을 먼저 수락하지 않고서는 내가 네게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서정시가 세상과 연애하는 방식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너의 사연을 받아 안지 않으면 내 말이 둥글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손택수는 문태준과 더불어 1970년대산 서정시의 본령이다. 방심한 자가 뜨는 사랑의 눈 덕분에 얻은 성취라고 믿는다.(43쪽)  
   

내가 개인적으로 깨달음을 얻었던 구절이 있는데,
지금 내가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상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에 충분히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47쪽)
나는 충분히 지극했고... 고로, 나는 지금 떠나야 한다. 

<읽어야 할 것 투성이>는 내 직업과 관련하여 몰입하여 읽었으며,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기로 마음을 굳힌 건 <여인숙으로 오라>이다.
제대로 남자이다.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옮기기에 길기도 하지만, 너무 좋아서 나눠 갖기 아깝다. 

시에 노이즈를 도입하는법(136쪽)도 나오고,
시인을 향하여 '낫지 마라'라고 모질게 말해 놓고, 시인의 직업은 문병(137쪽)이라고 얘기한다.
또 어디서는 시인의 직업은 발굴(154쪽)이라고 얘기한다.

존 버거를 인용하지 않아도 될 뻔했다.
시의 일은 부상당한 이를 돌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위에 시 쓰는마음, 시 읽는 마음을 살짝 바꾸기만 하면...시란 마음의 빨간 약임을 알겠다.

좋은 시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할 때, 그것은 지금 이 세계가 충분히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들이 이 세계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뜻(196쪽) 이란다.

그를 사랑하기 위해선 그가 들려주는 사랑론을 귀담아 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 한 쪽이다.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다. 나는 계속 질 것이다.(12쪽)   
   

나는 내 자신에게 백전백패할 것이다.
no woman, no love 
제목을 신형철 식으로 옮겨보자면 이렇다. 

마오, 여인아, 사랑하지를 마오......땡! 
여자가 없으면 사랑도 없다......땡! 
여자가 없으니 사랑도 못하겠네......땡!

그대, 사랑할 일만 남았다......딩동댕 동~!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1-06-16 07:59   좋아요 0 | URL
양철님 흐리고 눅눅한 아침이에요.
아침부터 사랑스러운 페이퍼에 복작대는 마음 한켠 다듬어봅니다.
밑줄긋기한 문장 일부는 제가 안아서 가요~
어떤 것일까요? 너무 좋으네요.
황인숙 시인의 "사랑은 그 사람의 생을 한번더 사는 것이다"와 일맥상통하는...
지치지 마시고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하루 되길 바래요.^^

양철나무꾼 2011-06-19 16:48   좋아요 0 | URL
서울은 흐리고 눅눅하지는 않은데, 덥고 불쾌지수가 높아요.

님이 사랑스럽다고 해주셔서 참 좋아요.
실은 페이퍼를 쓸때만 해도 복작대는 마음을 어떻게 눌러 감춰야 하나 했었거든요.
요즘은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하는 가시나무가 제 주제곡 같다니까요~^^

마녀고양이 2011-06-16 11:18   좋아요 0 | URL
이거야 원, 책을 통해서 저자와 사랑에 빠졌단 말이지....
음, 안 돼 안 돼, 그건 내 처방이 아니란 말이야. 아하하.

자신을 사랑해야쥐........ 난 그거였어! 본인을 혹사 좀 시키지말란 말이야!!!!!!!! (고래고래~ 악 쓰는 중. 흐흐)

그런데, 자기 넘 바빠서 여름 번개 못 하겠지?

양철나무꾼 2011-06-19 16:54   좋아요 0 | URL
그거였군, 내 자신을 사랑해라~
난 다요트해서 바람 피우자...뭐, 그렇게 알아들었지=3=3=3

여름 번개라...이제 여름 시작이잖아.
여러 명이 만나는 번개는 시간 조율이 그래서 힘들것 같고,
어떻게 울 둘이라도 한번 보자, 여름 가기 전에~^^

루쉰P 2011-06-16 12:54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과 같은 사랑에 빠져야 진정한 독서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 전 나름 독서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깊이 있게 사랑을 하지 못하거든요. 무어랄까? 양철댁님은 진짜 책을 사랑한다고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아요. 전 항상 겉으로 또 겉으로 도는 것은 아닌지하고 생각을 해요. 아주 극심하게 사랑에 빠질 정도의 책에 대한 몰입이 저에게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기분이 우울하고 무거울 때..그럴 때 특히나 필요한 듯 싶어요. 그래도 사랑할 것을 만나 그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강함을 보여주시는 면에서 대단하십니다!! 흠...전 항상 배웁니다.

양철나무꾼 2011-06-19 17:07   좋아요 0 | URL
저, 교주님과 같은 AB형이예요.
변덕이 죽 끓듯 한걸 AB형의 전형으로들 생각하지만,
전 한번 제 안에 들여 놓으면 꾸준히 오랫동안 사랑할 자신 있어요, 들이기 전에 한눈을 좀 팔아서 그렇지...ㅋ~.

사람이랑은 사랑하다가 어긋나고 헤어지기도 하고 그래 봤는데,
책이랑은 아직 없어요.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루쉰P 2011-06-22 20:48   좋아요 0 | URL
오우 역시 어쩐지 양철댁님과 뇌파가 맞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같은 혈액형이셨군요. ㅋ 양철댁님의 지적처럼 AB형의 특징 중에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미칠듯한 스토커성 기질도 있다고 보거든요. 풉!
저도 책은 영원히 사랑할거에요. 헤헤헤

글샘 2011-06-16 14:38   좋아요 0 | URL
신형철이 힘드신 양철댁님을 잘 잡아주고 있군요.
책 참 좋죠?
매력적인 글로 가득한 책, 만나기 힘든 세상인데 말입니다.
상태가 메롱일수록 마음을 기댈 데가 있어야 돼요.
이렇게 양철댁님이 알라딘에라도 기대고 계신 거 같아서 마음이 조금 놓이네요. ^^
힘내세요~~(비록 이런 말이 힘은 안 될지라도 말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1-06-19 17:11   좋아요 0 | URL
그냥 알라딘이 아니고 샘도 계신 알라딘이라고 해야 겠죠~^^
때론 알라딘 때문이기도 하고, 때론 알라딘 덕분이 될 때도 있어요.

샘도 제가 개떡같이 하는 말,콩떡이나 찰떡 같이 알아듣는 재주 있으시잖아요.
문제는 샘이 하시는 콩떡이나 찰떡 같은 말들을 제가 개떡 같이 못 알아 들어서 그렇지...
늘, 고맙습니다~^^

아이리시스 2011-06-16 18:55   좋아요 0 | URL
저도 이거 어제 샀어요. 그런데 왜 이 사람이예요? 저도 있는데, 아하하하. 그냥 저를 사랑해요. 요즘 어때요, 좀 쉬고 계세요? 아, 이 책 실물로 만나고도 펼쳐보기 전에 양철댁님 리뷰 보게 되어서 좋아요~^^

양철나무꾼 2011-06-19 17:13   좋아요 0 | URL
지금쯤 읽고 계실까?
좋죠, 좋죠?^^

님도 읽고 나시면 저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고, 이 사람과 연애하겠다고 하실걸요~^^
저, 님의 리뷰 기다리고 있어도 되는거죠?^^

2011-06-16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1-06-18 00:39   좋아요 0 | URL
"그대 사랑할 일만 남았다" 아 사랑스러워라~~~~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이란 표현은 남용해도 좋을꺼 같아요. 불륜만 아니라면요. ㅋㅋ


양철나무꾼 2011-06-19 17:18   좋아요 0 | URL
'아 사랑스러워라~~~~'라고 표현하실 수 있는 님도 '쫌' 사랑스러우세요~^^

전 정신건강에 '사랑만큼'좋은게 없다고 생각해요.
간혹 그 사랑이 길을 잃기도 하고, 번지수를 잘못 찾아서 그렇지~

2011-06-18 22:19   좋아요 0 | URL
음. 'ㅁ'은 역시 마녀고냥님이신거죠~
전 진짜 좋아하게 될까봐 좋아한다고 못해요.ㅎㅎ 그나저나 글 참 맛있게 쓰시옵니다요.

양철나무꾼 2011-06-19 17:21   좋아요 0 | URL
헤,헤...들켰네.

전 넷상에서랑 책이랑을 향해선 좀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요.
맛있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섬님의 맛있고 멋있는 글들에 비하면 저야...쑥스~^^
 

어릴 시절 나는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병원을 드나들었다.
병원에서 받아먹는 시럽이 달콤하니 맛있어 어느 때는 일부러 였던 것도 같다.

지금은 좀처럼 아프지 않다.
감기에라도 걸렸으면 싶은데 그러지도 않는다. 

얼마전 이 동네의 누군가가,
"아픈데가 없는데 타이레놀을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괜찮아요?"
하고 묻는 데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니 마음 한켠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 마음을 내가 아는데, 그 마음을 내가 알겠는데...다독여 주는 대신 엉뚱한 댓글을 달고 도망치듯 나왔었다. 

실은,
맥이 쑥 빠지고, 목이 아프고, 미열이 나고, 어딘가 허전한 것 같고,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을 때...
타이레놀ER 한두 알이면 몇시간은 거뜬하다는 걸 안다.
약 기운이 떨어지기 전 몇 알을 더 챙겨먹는 수고만 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시련이 오는 걸 감지하고 습관적으로 먹는 타이레놀ER 한두 알 때문에, 
나의 사랑은, 나의 상처는, 나의 고통은, 그리하여 나의 삶은...몇 시간을 주기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폐암 기왕력을 가지고 계신 어머니는 내가 며칠 뜸한 틈을 타 폐렴에 걸리셨고,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로 옮기셨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주책맞은 남편은 이상한 자료를 들고와서 봐달라고 하는데, 저자가 중국출신이어서 우리말이 서툴다.
자료를 뒤집어 다시 쓰는 꼴이다.

한 사흘 감기나 앓았으면 좋겠다.
이불 뒤집어 쓰고 아무 생각없이 끙끙 앓았으면 좋겠다.
앓고 난 후, 조금은 퀭한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디 아픈데가 없냐고 당신이 물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타이레놀 ER 따위는 던져버리고, 내 이마를 짚어주는 그 손을 고마워 하며 끙끙거릴 수 있을텐데 말이다.

아침 일찍 어머니께도 들러야 하고,
자료도 손봐야 하는데,
이 책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를 이리저리 야금야금 타이레롤 ER 대용으로 들추고 있다.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일단 쉬고 다시 잘 살아볼게요. 알았어요, 좀 쉬고 다시 잘 사랑해볼게요."
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다행이다. 조금씩, 병아리 눈물 만큼일지라도, 조금 조금씩,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은 거다. 산다는 게 영 녹록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갸륵한 수고, 아 좋은 날이다. (6쪽)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존재다. 어차피 존재의 고독은 혼자 감당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고, 고독은 행복의 반대편에 있는 말이 아니다. 행복한 사람에게도 고독이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행복한 사람일수록 존재의 고독에 명민하게 깨어 있고 고독을 잘 보살피는 것이리라. 그러니 고독은 존재의 자기 증명 방식이기도 하다. 고독을 잃어버린 삶은 영혼의 어떤 부분이 마모되어버린 삶일 것이다(46쪽)

*그녀는 '가장 중요한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로빌에 살면서 여러 일에 종사했는데, 최근에 하는 일이 바로 타운홀에서 마사지를 해주는 일이다. 오로빌리언 중에서 타운홀 근무자들은 외부인들을 상대해야 하고 비교적 많은 실무에 시달리는 편이라 내면을 돌볼 여유가 너무 없어 보였단다. 조는 화도 짜증도 자주 날 수밖에 없는 타운홀 근무자들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녀는 바로 그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91~93쪽)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은 금세 친해진다. '밥힘'이랄까. 커다란 식당의 내부와 외부의 식탁을 가득 메운 오로빌리언들은 음식을 통해서 이웃의 연대감을 확인한다. 함께 밥 먹는 이 솔라키친이 오로빌의 생활의 중심이기도 하다. 마트리만디르가 영적 생활의 중심이라면 솔라키친은 몸 생활의 중심. 둥근 두레밥상에 모여 앉듯이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일상의 소소한 대화들을 나눈다.(151쪽)

*사랑에 빠진 이들은 예쁘다. 지상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깊은 친밀감과 마법 같은 일체감. 사람이 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랑의 감정이 있기 때문일 터.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지루할 것이냐. 사랑하지 않는 순간은 손해다. 설령 사랑 때문에 아프게 될지라도 사랑에 빠지는 것이 남는 장사다.(166쪽)

*풀잎을 닦아주는 여자라니!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난도 아니고, 전체가 나무며 풀 천지인 숲에서 특별해 보일 것 없는 덩굴풀의 넓적한 잎사귀를 닦아주는 여자! 가까이 다가가는 내 기척을 느끼자 여자가 고개를 돌리고,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여자는 내 게 아주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이내 풀잎 닦는 자세로 돌아간다. 매우 매우 평화롭고 맑은 에너지가 그녀 주변에 흐른다.(205쪽)


 

 

 

[수입] Bob Marley & The Wailers - Live Forever [2CD+3LP][Super Deluxe Edition]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Bob Marley & The Wailers) 노래 / Island / 2011년 3월


댓글(31)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1-06-15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 선우라면 시를 쓰는 그 김 선우, 맞나요? 에세이도 시처럼 초감성으로 썼을까요? 타이레놀을 원하는 그분에게 인간 타이레놀을 찾아보라고 댓글 달았더랬는데, 여기 종이 타이레놀이 있었네요. ER 정도가 아니라 PR (permanently의 p ^^) 어디 없을까요?
호흡곤란이 와서 중환자실로 가신 시어머님도, 사흘만 앓아누웠으면 좋겠다는 양철댁님도, 잘 버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양철댁님의 이마를 짚어주는 손길들이 여기 많이 있지 않을까요?

양철나무꾼 2011-06-16 06:08   좋아요 0 | URL
ㅎ,ㅎ...인간 타이레놀과 종이 타이레놀이요?
기발하세요.
하긴 extended release정도론 부족하죠.
제겐 김선우와 어제 읽은 신형철만으로도 어느 정도 쭈욱~ 지속될 듯 해요.
님도 감사하다고 인사드릴 많은 분들 중 한분이시지요~^^

루쉰P 2011-06-15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근하기 전에 양철댁님께 들려 잘 계시나 보고 갈려고 했더니 이건 왠걸...더 힘 빠져서 머리가 복잡한 양철댁님을 뵙네요. 중환자실에다가 자료라...날카로워진 신경을 잠재울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신 건 아닌지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그 복잡한 와중에 타이레놀 대신에 책을 읽으시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구요. ^^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마를 짚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네요. 어디 아프신지 물어도 보고 싶구요. 여러 가지로 지치게 만드는 모든 일 속에서 꼭 헤쳐나가시기를..

양철나무꾼 2011-06-16 06:09   좋아요 0 | URL
교주님을 우울하게 만들어서 어쩐대요?
오늘은 좀 나아졌어요, 덕분이예요.^^

루쉰P 2011-06-16 11:47   좋아요 0 | URL
교주는 절대 감정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신자의 고통에 동화하는 것 뿐이지요. ㅋ
그래도 좀 나아지셨다니 다행이에요. 뭔가 하는 것은 없지만 말이죠. 고민을 그리고 떨어진 기분을 어떻해야 다시 정상 알파파로 만드는가 그게 요즘 제 고민이에요. ^^ 저도 좀 기분이 다운돼 있다고 느끼거든요. -.-

양철나무꾼 2011-06-19 16:35   좋아요 0 | URL
기운이 좀 다운되셨었구나~
제가 기운 내시라고 그 동네를 향하여 염력을 마구 날렸으니,
지금쯤 바닥을 치고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계시겠죠?

날씨가 덥고 꾸물꾸물하지만,
나의 교주님이라면...쿨하고 멋진 하루 하루를 만드실 수 있을거예요.
기운 내세요~^^

루쉰P 2011-06-22 20:49   좋아요 0 | URL
넵! 충전!

2011-06-15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6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6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9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6-1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는 하벤 먹는데.... ㅠㅠ
먹으면서 먹을 때마다 반성하지.... ㅠㅠ

솔직하게 말하면, 우울증 약도 병원에서 받아놓은 상비약으로 20회치 정도 있음....
아마 머리 아프고 졸린 부작용 없었으면, 그것도 남발하고 살지 않았을까, 그러면 안 되는건데 하면서 말이지.

힘내. 글구 남편 일, 남편 얼굴에 딱 집어던지면 안 될까? 안 된다구? 그럼 내가 머리 마사지 해줄게,, 이리와.
어머님의 빠른 쾌차를 기원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6-16 06:18   좋아요 0 | URL
머리 마사지 보다 더 멋진 처방을 내 어제 들었지, ㅋ~.

남편 일은 아냐.
남편이 중간에 낀 내 일이야.
중국 전통 비방 같은 거...좀 야한데, 재밌었어.^^

마노아 2011-06-1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치료 전용 타이레놀이 필요해요.
어머님도 걱정이고 양철댁님은 더 걱정이에요.
그저 기운내시란 말만 더 보탭니다. 그 손 꼭 잡아주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1-06-16 06:21   좋아요 0 | URL
우와~승환 오라버니 멋져요.
실루엣이 장난이 아녜요, 예술이예요. 아흑~.

저도 제 자신이 염려스럽지만,
너무 많은 분들을 걱정시켰네요.

잡아주시는 손, 꼭 붙들겠어요~^^

좋은날 2011-06-15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책 주문해서 꼭 읽어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1-06-16 06:22   좋아요 0 | URL
네, 좋았어요.
신형철과 같이 종이 타이레놀 permanently정도 될 것 같아요~^^

섬사이 2011-06-15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도 저는 김선우 시인의 시집보다 산문집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저 책에도 마구 끌리네요.
사흘만 앓아 누웠으면 좋겠다는 양철댁 님 말에 후유~하고 한숨이 따라나와요.
부디 저 책이 양철댁 님께 힘이 되어주기를..

양철나무꾼 2011-06-16 06:26   좋아요 0 | URL
저는 김선우 님은 감성을 약간 불편하게 뒤흔들어 놓는 솔직함이 좋아요.
살잧에 소름을 돋게 하는 바람이 때론 위안이 되는 것처럼...

이런 위로가 있어서 자주 엄살 떨고 투정 부리게 되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잘잘라 2011-06-15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아픔을
사랑으로 감싸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어
마음이 무너질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못하는 노래지만, 마음을 담아 한 곡 부르고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1-06-16 06:27   좋아요 0 | URL
ㅎ,ㅎ...이거 라이브로 듣고 싶어요.
라이브로 들음 살만해질 것 같아요~^^

穀雨(곡우) 2011-06-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고 나면 약간의 어지러움이 있지만 개운한 느낌이 있어요. 아픈 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면역력이 증강된 느낌..
하지만 진짜 이유는 외로움이더라는...어릴 적 아플때마다 온전히 엄마를 차지할 수 있는 특권...다시 하기엔
너무 먼 현실입니다.ㅎㅎ

양철나무꾼 2011-06-16 06:30   좋아요 0 | URL
저는 앓고 나면 하나를 마무리하고 새로 시작한다는 그런 느낌이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옛날에 이불 뒤집어 쓰고 땀 흘리고 나면...베게랑 이불이랑 꼬슬꼬슬한 새거로 갈아줏는 게 너무 좋았어요.

님도 아프지 않고도 면역력이 증강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아는 처방은 종이 타이레놀인데...나름 괜찮았어요.

머큐리 2011-06-15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잇몸이 너무 쑤시고 아파서... 자다 깨어 타이레놀ER을 먹었더니...정신까지 말똥...오늘 오후 졸려서 헤롱거리다 이 페이퍼를 봅니다... 고통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웬지 약은 안먹는게 좋을거 같아서 참고 있는데...치과가기전 타이레놀을 달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ㅎㅎ

양철나무꾼 2011-06-16 06:32   좋아요 0 | URL
타이레놀 드시지 마시고, 시간 내서 치과를 가시죠~^^
혹, 치과가 더 무서워 타이레놀을 드시는 건 아니시죠?^^

2011-06-15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6 0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1-06-1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금야금 읽고 계시다는 김선우의 에세이가 눈길을 사로잡네요. 김선우의 감성에 위로가 되었다면 좋겠어요.
양철댁님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아프지 않은게 제일이에요. 너무 안타까워요. 가까이 살면 소주라도 한잔 하자고 할텐데 말이죠.

양철나무꾼 2011-06-16 06:3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부디, 제발, 플리즈, 포 더 피스 오브 올 맨카인드...아팠으면 좋겠다니까요.

저도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소박하니, 둘이 소주 한병이면 충분할텐데 말예요.^^

아이리시스 2011-06-16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너무 많이 먹어 소화가 더뎌서 늘 머리가 어지러워요. 타이레놀도 몇 번 먹었는데 사실은 컨디션이 안좋은 날이 더 많아서, 체력이 안좋은 날이 더 많아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요. 어쩜 병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간혹 들 때도 있는데 뭐 설마요.^^ 아프지 마세요.

양철나무꾼 2011-06-19 16:43   좋아요 0 | URL
병을 키우고 있는지는 모르겠어도, 적어도 몸무게는 키우고 계시군요,ㅋ~.

님도 공부하느라 쉬이 지치실텐데...
이럴때일수록 맛난 음식 챙겨 드시고 아프심 안 되는 거 알고 계시죠?^^
 


         

 
                   나 무 에 게
                                      이시영



 


어느 날 내게 바람 불어와
잎새들이 끄떡끄떡 하는구나
내가 네 발 밑에 오줌을 누고 돌아설 때
수많은 정다운 얼굴로 알은체를 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돌아서자
수많은 오늘 같은 내일의 날이 지난 뒤
내가 불현듯 참다운 네가 되어 돌아오마


                                <무늬, 문학과지성사, 1994>
 





일부분을 전체인양 보고 헤프게 맘 주는 게 내 일상이다.
물론 책 속이나 넷 상에서의 일이다.
일상에서는 비겁할 정도로 감정 표현에 서툴고 그래서 곁을 안준다는 소리를 듣는다.

헤프게 맘을 주는 만큼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럴때 책 속이나 넷 상이어서 좋은 점은 피드백이 없다는 거다.
감정적으로  뒤 끝이 없다.
  
 












이옥도 그런 이 중의 한명이다.
뭐, 그나 그의 글이 좋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가 쓴 심생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의 글들을 부비고 만지고 침 발라 넘겨가며 더듬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심생전을 읽으면서 진부하다 싶었고, 그도 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랬다는 얘기다.
이런 얘길 절절히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를 읽기전에 김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리워하다 죽으리>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심생전의 내용이 그랬고, 김려가 유배지에서 연희라는 기생으로 하여금 수발을 들게 한 것도 '좀'그랬다. 

후세에 옛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은 조심스럽다.
현재 남아있는 일부분을 가지고 옛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상상력이 과하거나 덜하면 개연성에 실패한다.
섯부른 기대는 아쉬움이나 실망감을 낳기도 한다.
옛사람의 발자취는 그 자리에 그대로 말이 없다.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너무 많은 것을 캐내려한 내 스스로를 반성하는 수밖에 없다.

난 어릴 때부터 동성 친구가 별로 없었다.
어려선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마실을 다니며 하춘화의 강원도 아리랑 따위를 부르는 재롱을 부렸고,
할아버지 바지 가랭이를 잡고 다니며 장기판에서 훈수 두는 법을 배웠다.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심심하면 공부만 했다.
 
지금도 동성의 친한 친구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물론 상대방이 생각하는 기준으론 가감이 있겠지만...)
그 친구들도 하나는 뉴질랜드에, 하나는 필리핀에, 하나는 결혼 15년 차 아이가 없어서, 또 다른 하나는 아이를 키우느라 자주 못 만난다.
다른 한 명은 이혼하고 아주 자유분망한 삶을 살고 계셔서 마음만 먹으면 애니타임, 애니웨이, 애니웨어 이건만...남편이 싫어한다. 

반면 남편은 친구라는 말 앞에 '친한'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이다.
손가락, 발가락 아니 내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한 것보다 많다. 

남편이 첫사랑이었던 나는 그게 이상하고 신기했었다.
남들은 남녀 사이의 사랑을 가지고 고민하던 그 시절, 난 남자들끼리의 우정, 여자들 끼리의 우정이 두께가 다른 것을 갖고 고민했었다.
그때 레코드 판으로 김민우의 '친구에게', '타버린 나무' 이런 음악을 들었었다.

그런 남편은 푸릇푸릇 하던 때, 친한 친구 하나와 사업을 했었다.
그리고 친구의 배신, 부도 등의 뻔한 수순을 밟았다.
10년 전인가, 도망을 다니던 남편의 친구는 아들 초등학교 입학을 시켜야 한다고 선처를 호소했었다.  
남편은 그 친구를 용서했고 그 아들은 어디선가 학교에 다니고 있을거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를 읽는 동안 잊혀졌던 그 일이 떠올랐고, 한참 전에 읽고도 리뷰를 쓸 수가 없었다. 
책의 내용은 좋았지만, 이옥과 김려와 저자 설흔의 문체가 뒤섞여 어느 하나 두드러지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어느 글이 이옥의 것이고, 어느 부분이 아들 우태의 목소리인지, 어디부터가 김려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떼어놓고 보면 하나 같이 멋진데 말이다.

<그리워하다 죽으리>에서도 그랬었기 때문에 수사가 화려한 작가 설흔의 문체를 김려의 문체인 줄 잠깐 착각했었다.
 작가의 화려한 수사 때문에 잠깐 내가 방향을 잃었지만, 작가가 그려낸 김려는 제대로이다.

김려는 툭하면 입술을 감쳐무는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웃어야 그를 따라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존재이다. 
웃다가 입을 틀어막기도 한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기억을 더듬는 척 고개를 살짝 위로 젖힐 뿐이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오랜 세월 이옥을 마음 속에 담아 둘 수 있었던 것이고 그를 추억하고 아로새겨 문집을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책이 청소년 용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들 우태가 등장하기 때문인듯 한데...
이팔 청춘을 갓 넘긴 나이로 묘사되는데...너무 조숙하다. 어투도 아버지를 빼닮았다. 
"거듭 말하지만 아버지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외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방외인이라는 말입니다. 그 글이라는 게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관찰자의 시선에 다름 아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182쪽)

벗이라고 하지만, 김려가 이옥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다.
벗의 말이라 못을 박았지만 실은 이옥 자신의 마음이 담긴 말일터였다. 젊은 날의 이옥은 술을 즐기기는 하되,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모든 일에 한 발 물러나는 게 이옥이라는 사람의 특징이었다. 뛰어들기보다는 바라보는 것, 그게 바로 이옥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의 이옥은 술에 탐닉하는 자의 모습이었다. 가슴 아픈 건 술에 탐닉하는 이유였다. 술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술 없이는 근심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마시고 또 마시는 것이었다.(109쪽)
김려는 그런 이옥의 술에 대한 탐닉을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한다.

하늘을 보았다. 나는 도대체 왜 태어난 것입니까? 내게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늘은 대답 대신 거센 바람 한 줄기만을 보내 주었다.(128쪽)

이 책을 통틀어 이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다고 하면, 이옥이나 김려에게 좀 미안한 일이 되려나?
때론 어떤 의미심장한 말이나 사건보다도 큰 울림을 주는 게 있게 마련이다.

무조건 글짓는 것은 경계해야 하네. 남들이 짓는 글이나 지어서는 안 되고 글 속의 사람이 되어야 하네.(191쪽)


이런 경계를 읽었지만, 나는 오늘도 무조건 글을 쓰고 있다.
의도하지는 않지만...누군가의 글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부분은 유사할 수도 있다.
글 속에 나를 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내 글은 내 생각을 정리하고 느낌을 붙들어 두기 위함이다.
나는 글 속의 사람 따위는 될 수도 없고 넘보지도 않지만, 읽기 쉽고 알아먹기 쉬운 따뜻한 글을 쓰고는 싶다.
내가 글을 문단 단위로 끊지 않고 내 호흡 대로 끊어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아껴 읽고 있는 <라인업>의 켄 브루언은 짱이다.
 

 

 

 

 

   

아침에도 멋지고 저녁에도 역시 멋지다. 날이 맑아도 멋지고 날이 흐려도 멋지다. 산도 멋지고 물도 멋지다.
...요컨대 그윽해서 멋진 것도 있고, 상쾌하여 멋진 것도 있고, 활달하여 멋진 것도 있고, 아슬아슬하여 멋진 것도 있고, 담박하여 멋진 것도 있고, 알록달록하여 멋진 것도 있다. 시끌시끌하여 멋진 것도 있고, 적막하여 멋진 것도 있다. 어디를 가든 멋지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 멋진 것이 이렇게도 많아라!

추억을 끌어안고 되새김질 하며 사는 삶은 멋진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난 남편이나 아들에게 이옥이나 김려 같은 삶을 살라고는 못하겠다. 
나라면 추억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택하겠다.
 
사람 사이의 거리나 간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요즘은 이 정의가 옳지만은 않다.
인터넷과 각종 통신의 발달도 한 몫 하겠지만,
거리나 간격의 가까움이나 좁음 따위는 친밀함의 척도가 아니라, 습관적인 만남의 덧씌워짐이 아닌가 싶다.

가까이 있어도 서로를 더 이상 가깝게 여기지 않는다면,
멀리 있어도 이미 멀어진 그 거리 이상 더 멀어지지도 않는다. 
거리나 간격은 소통할 수 있고 없음에 따라 가까워지기도 하고 한없이 멀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친구란, 또는 관계란 오래 입은 옷처럼 세월이 지나 몸에 익고 편안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해지고 낡으면 새로 장만해야 하는 그런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슬픈 이유는 헤프게 맘 주고픈 사람이나 대상이 점점 줄어든다는 거다.  

요즘 이 곡을 끼고 살았었다.
내게는 때때로 위안이 되던데...그댄 어떨지 모르겠다.


댓글(4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쉰P 2011-06-12 09:04   좋아요 0 | URL
흠...남편 분은 대인배가 확실하십니다. 친구의 배신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그래도 그것을 딛고 용서를 해 주시다니 아무나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 감탄스러워요.

추억을 발판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삶! 그것이 지금의 제 인생에 가장 필요한 명언인 것 같아요. 양철댁님의 글을 읽다 보면 흠칫 흠칫 놀랄 때가 많아요. 이것은 나에게 내려진 계시이지 않나란 생각에요. ㅋ

사람들과의 친구와의 관계에서 거리나 간격은 소통의 차이도 있고 덧붙이자면 마음의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냥 같이 놀기만 하는 친구와 사람들, 그런 속에서 만나도 왠지 뒤돌아서면 허무하고 외롭고, 그런 것들이 소통이 음...그러니까 깊숙이 말 못하는 그런 점 때문에 왜냐면 만남이 그와 나의 다리라고 한다면 내안의 진실한 이야기 무게가 그 만남의 가벼움의 다리에 올라가기에는 너무 가벼워 그 다리가 무너질 것 같으면 목에 나온 말도 다시 삼켜 그냥 그 가벼운 다리를 지나갈 수 있는 말만 하거든요. ^^ 그러지 않은 진실한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저도 열 손가락보다 부족한 것 같아요. 근데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곳에서도 그런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구요.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어찌보면 더 솔직하게 얘기 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ㅋ 양철댁님도 그런 분 중 한 분이구요. 헤헤헤

양철나무꾼 2011-06-13 10:19   좋아요 0 | URL
나의 교주님, 굿모닝이요~
오늘은 이 노래를, 아니 이 영화를 꼭 선물하고 싶네요~^^


루쉰P 2011-06-14 14:14   좋아요 0 | URL
으악!! 지금 컴퓨터에는 스피커가 없어서 음악을 못 들어요!! 으악!

이따가 저녁 때 들어야 겠어요. 그곳에는 스피커가 있거든요. ㅋㅋ 아 굿모닝 베트남이라 음악이 좋을 듯 해요. ^^

양철댁님도 즐거운 오후 보내시게 될거에요. 교주의 예언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1-06-15 03:15   좋아요 0 | URL
들으셨을까요?
이 음악은 아침에 들어야 제대론데...^^


루쉰P 2011-06-16 11:45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의 조언대로 이 음악을 아침에 들으려고 아까 출근했는데 시간을 놓쳐 내일 아침이 되면 일어나서 이 노래를 들으려고 일부러 안 틀었습니다. ^^
조언해 주신대로 하는 것이 저의 습관인지라 헤헤 내일 아침에 듣고 댓글 올릴께요. 이거 왠지 기대되는데요. 헤헤

양철나무꾼 2011-06-19 16:29   좋아요 0 | URL
혹, 만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시는 건지~

날씨가 후덥지근해요.
보양식이라도 드시고 기운내셔야 겠어요~^^

루쉰P 2011-06-22 20:49   좋아요 0 | URL
네 24시간 맞교대에요. ㅋㅋㅋ

2011-06-12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3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6-12 16:31   좋아요 0 | URL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일단 제목이 너무 혹해요. 그런데 읽고 싶게 생기진 않.. 그런 일이 있는데도 용서할 줄 안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결단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 마디로 대단해요. 드라마마다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거지만 실제로 용서가 얼마나 힘들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착한 사람 아닌 것 같아요. 관대한 사람도 아닌 것 같고..ㅠㅠ

양철나무꾼 2011-06-13 10:28   좋아요 0 | URL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에 혹하는 사람들은 일단 이옥을 이미 아는 사람들이 많을텐데요.
이옥을 이미 아는 사람들이라면,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가 좀 맹숭맹숭 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암튼, 남자들 끼리와 여자들 끼리의 우정의 두께가 다른 거...전 요즘도 가끔 고민하는 문제예요~ㅠ.ㅠ

세실 2011-06-12 18:33   좋아요 0 | URL
김려는 그 기생을 많이 의지하고 좋아했다니 덜 외로웠겠지요. 귀향온 사람 수발하는게 그 기생의 몫이라고 하니....
울 옆지기 처음 사무실 냈을때 화분이 백개는 들어왔다는....용달차에 화분 싣고온 가스 배달하는 분도 있더라구요.
제 옆지기와 님 옆지기가 닮은 점이 꽤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

양철나무꾼 2011-06-13 10:33   좋아요 0 | URL
참 웃기죠, 귀양 온 사람에게 기생 수발이라니 말이죠.
참 멋지다고 생각했던 김려의 사유악부가 임금도 아니고 연희를 그리는 노래라니...좀 깨는 느낌이었어요,ㅋ~.

제 남편과 닮은 점이 있으시다니...심심한 위로를 보내요.
친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열혈 효자거든요~^^

글샘 2011-06-13 00:24   좋아요 0 | URL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지요. ㅎㅎ
그치만,
그 가지에 간혹, 꽃도, 별도, 노랑나비도 잠시 머무른다면,
바람부는 날이야...
거센 바람 한 줄기 보내주시는 하느님이라도,
주신 한 생이라면 살아내야 하지 싶어 삽니다. ^^

노래, 좋네요.
저도 저 해금의 청승맞은 소리 참 좋아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1-06-13 10:42   좋아요 0 | URL
나무가 바람을 두려워 하는 것도 비겁한 일이지만,
바람을 온 몸으로 맞다보면 이리저리 휘둘리고 가지가 꺾이는 날도 있을 거예요.
다가오는 바람을 즐길 수 있을 때와 피해야 할 때를 알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니웨이,
이 바람 저 바람 큰 바람 작은 바람 많지만,
샘은 풍이라 불리우는 다른 바람을 조심하셔야 할 듯~!

눈에 핏줄 서지 않았나, 윗 눈꺼풀이 떨리지 않나...종종 거울이라도 들여다 보고 사시길~

글샘 2011-06-13 12:25   좋아요 0 | URL
집안 내력이 고혈압이에요. ^^
저도 몇 년 전부터 혈압약 꼬박꼬박 먹고 있지요.

고혈압은 스트레스가 적이니만큼, 일중독되는 게 젤 무서운데...
멍청한 인간은 늘 일을 떠안고 다닌다죠. ㅠㅜ

양철나무꾼 2011-06-14 11:20   좋아요 0 | URL
체력은 나이 탓이고, 건강은 집안 내력이고...
계속 그러심 영원히 경로우대 해버리는 수가 있어요.
춘추가 어떻게 되시는데...몇 년전부터 혈압약 드신게 자랑은 아니시죠~

일 중독에서 빨리 빠져나와 운동 중독의 세계에 입문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러는 저요? 어머니 쾌차하시기만 하면...쿨럭--;)

섬사이 2011-06-13 10:10   좋아요 0 | URL
누군가 제게 그랬어요.
'도리를 지키되 마음은 주지 않는 사람'이라구요.
그런 얘기를 듣고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마음 주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져요.
님의 글을 읽다가 우리가 소통하고 있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남들이 보면 별볼일 없는 글들을 끄적이고 있는 이유는
그저 저를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제가 죽는 날이 오면 제가 끄적여놓은 글들도 다 지워놓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양철나무꾼 2011-06-13 10:49   좋아요 0 | URL
돌이켜 보면,
'도리를 지키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은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참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님과 저는 오늘 '외로움'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 되려나요?^^
아니다, 글을 통해 자신을 정리하고 반성한다는 점에서 소통하고 있네요.
외로우면 외로운 채로 그렇게 사는거죠, 뭐~.
또 알아요,지나던 바람이 외롭다고 말을 걸어올지?^^


하늘바람 2011-06-13 11:39   좋아요 0 | URL
그냥 읽다가 가슴아파집니다
저도 주역을 좀 배워볼까봐요

양철나무꾼 2011-06-14 11:24   좋아요 0 | URL
주역을 어디서 배워야 할까요?
신문에 난 주역 강좌 같은 거 말고, 인문학 강좌 쪽에서 찾아보세요.
아님 혼자 책을 보시다가(이게 좀 위험하기는 해요~) 궁금한 거 저에게 물어보심 아는 한도 내에선 성실답변해 드릴게요.
근데, 저도 잘 몰라요~

글샘 2011-06-15 14:44   좋아요 0 | URL
아트 앤 스터디란 사이트에서 이기동 선생의 주역강의가 있습니다.
저는 포인트는 얻어놨는데, 시간이 없네요. ㅠㅜ

양철나무꾼 2011-06-16 06:42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전 영어전치사 연구 쓴 이기동님도 좋던데요~

산사춘 2011-06-13 18:11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멋진 음악 선물 감사합니다. 아, 센치해지네...

양철나무꾼 2011-06-14 11:27   좋아요 0 | URL
아, 센치해지네...를 몇번이고 따라 읽어봤어요.
흠...좋아요.

저는 바삭거리지는 않고 좀 푸석거리는 아침이예요~^^

비로그인 2011-06-14 00:48   좋아요 0 | URL
시어머니는 좀 어떠신가요?

저도 점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을 피하게 되네요. 심지어는 온라인에서 조차도요. 늙는 걸까요, 아님 나름 철이 드는 걸까요, 아니면 슬픔일까요?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고정희, 사십대>)

양철나무꾼 2011-06-14 11:35   좋아요 0 | URL
덕분에 차차 쾌차하실 거예요.^^

저도 누구에게 선물 받은 신데, 참 좋아요.
님께도 선물할게요~^^

허 허/ 김승동

그리운가
잊어버리게, 여름날
서쪽 하늘에 잠시 왔다가는 무지개인것을
그 고운 빛깔에 눈 멀어 상심한 이
지천인것을

미움 말인가
따뜻한 눈길로 안아주게
어차피 누가 가져가도 다 가져갈 사랑
좀 나눠주면 어떤가

그렇게 아쉬운가
놓아버리게
붙들고 있으면 하나일 뿐
놓고 나면 전부 그대 것이 아닌가


세상의 그립고 밉고 아쉬운 것들
그게 다 무엇인가
사랑채에 달빛드는날
묵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인것을




비로그인 2011-06-14 22:17   좋아요 0 | URL
시 선물이란 받으면 참 기분이 좋군요.

한달 반 동안 계속되던 일을 끝내서 기진맥진하고 이상한 고민에 빠져있던 오늘, 고민도 덜어주고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시였어요.

양철나무꾼 2011-06-15 03:17   좋아요 0 | URL
수고하셨어요.
잠시 쉬시고...새로 시작하는거죠, 뭐~^^

꿈꾸는섬 2011-06-14 13:28   좋아요 0 | URL
저도 친한 친구가 손가락에 꼽히는데 남편은 친구가 너무 많아요.

<멋지기 때문에...> <그리워하다...> 둘 다 궁금해요.^^

2011-06-15 0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5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6 0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6-14 14:43   좋아요 0 | URL
저는 친한 친구가 둘 혹은 셋 정도 밖에 안됩니다.
(이건 제 기준이구요. 상대방 기준은 좀 다를 수도 있겠네요.)
저도 어려서부터 친구가 별로 없이 자랐어요. 심심하면 책을 읽었구요.
제 아내는 저와는 정 반대입니다. 친구가 무척 많습니다.
초등학교 친구, 동네 친구,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일터를 옮길 때마다 친구들이 줄줄이 있어요.
처음 연애할 때, 아내가 남성 친구와 무척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좀 적응이 안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친구 문제에 대해서는 아내와 나는 생각이 달라서 가끔 불편을 겪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문제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6-15 03:09   좋아요 0 | URL
저랑 참 비슷하시군요~!!!
그러고 보면 우정의 두께는 남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 관한,사람의 마음에 관한 문제인게 되는 건가요?^^

마녀고양이 2011-06-14 22:11   좋아요 0 | URL
나보다 낫네, 나는 동성 친구라고 하면 한명 있는뎅.
그리고 더 깊이 가면,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러고보면 내가 더 곁을 안 주는 사람인가봐. ^^

항상 마음 어디선가 여기까지 라고 들려와요. 원래 사람은 여기까지 라고.
그리고 난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구,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을 곁에 두기 더 쉬워지는거 같아.
자기 글, 느낌 변했다... 좋은데. 진짜루.

양철나무꾼 2011-06-15 03:11   좋아요 0 | URL
앗싸, 칭찬 받았다~!
실은 나는 잘 몰라, 그대가 변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할뿐이지.

곁을 안 주기는...얼마나 살가운데...
부비 부비, 쪼옥~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다~^^

pjy 2011-06-17 17:59   좋아요 0 | URL
물론 대인배남푠님이시겠지만 그래도 전 모든일이 초초초절정! 대인배이신 양철댁님의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6-19 16:26   좋아요 0 | URL
우리 남편이나 저를 대인배라고 한다면...대인배란 단어가 재정의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늘바람 2015-10-23 00:56   좋아요 0 | URL
다시 이 리뷰를 읽는데 또 슬퍼집니다

양철나무꾼 2015-10-23 16:25   좋아요 1 | URL
울 하늘바람님, 센치해지셔서 가을타시나 보다~^^
가까이 계시면 제가 웃음 3종세트루다가 배달해 드릴텐데...ㅋ~.

하늘바람 2015-10-23 16:26   좋아요 0 | URL
리뷰로 위로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