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손석희의 시선 집중을 들으며 아침을 먹었다.

며칠째 이명박 정부 4년 평가 논객 토론이란 걸 하고 있는데, 오늘은 '사회ㆍ문화 분야'였다.

여간해선 주파수 고정인데,

아침에 만나면 밥맛이어서 주파수를 바꾸고 마는 몇 안되는 이 중 하나가 논객으로 나와 주파수를 바꾸려는데,

반대편 논객이 내가 흥미로워 하는 이였다.

(손석희 시선집중,이명박 정부 4년 평가 논객 토론 - '사회ㆍ문화 분야')

 

디지털 진화, SNS(social network service) 관련 그들의 토론을 듣고 있다 보니,

예전에 그가 100분 토론에 나와 영화 아바타 관련 혹평을 했던게 떠올랐다.

 

요즘 내주된 관심사가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그런 얘기만 당나귀 귀가 돼서 들리는 것이다, ㅋ~.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의 개념을 알고는 있었지만, 체화하지 못하여 와닿지 않았었는데...

서동욱의 '철학연습'을 읽으면서, 이 부분의 개념을 다시 잡았다고 해야 하나?

 

 

 

 

 

 

 

 

 

 철학 연습
 서동욱 지음 / 반비 /

 2011년 4월

 

 

사실 이 책은 구한지 좀 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 서동욱은 시인이기도 해서 그런지...

책의 처음 '책을 펴내며'를 읽다가 그만 그의 화려한 수사에 질려 길을 잃고 접어 던졌었다.

그런데, 처음만 참고 견디면... 이책의 제목'철학 연습'에 걸맞게,

현대철학이론들을 현대적 삶의 측면(돈, 사랑, 외모, 스마트폰 시대의 책읽기와 글쓰기 등)에서 바라보고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몰두의 이면에는 기원적인 것, 원본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간직할수 있다는 경계가 담겨 있을 것이다. ㆍㆍㆍㆍㆍㆍ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형이상학적 주제로만 보이는 기원의 신화는 실은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으며 우리삶을 위협할 수 있다. 원형적인 순수한 인종은 누구인가?그것은 백인이다. 원형적인 성, 보다 우월한 성은 부엇인가? 그것은 남성이다ㆍㆍㆍㆍㆍㆍ.그리고 이러한 기원이 누리는 영광의 배후엔 늘 기원보다 열등한 주변부가 영광의 그늘로 자리잡는다. 순수한 원천에 대한 향수와 자만심으로부터 등을 돌리면 거기엔, 순수하지 못한 것이 섞여든 우색인종들, 혼혈아들, 불법이민자들이 있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긍정은 바로 순수한 원형적 모범의 기준을 벗어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환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가짜 인생이여, 복제와 인용으로 가득 찬 삼이여!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그런데 '나의 가짜 인생'은 좀 어폐가 있는 표현 아닌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없는데,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나'라고 불리는 순수한 것이 있겠는가? 삶은 이렇게 오리지널리티를 지니는 '자아'가 사라진 익명성의 터널로 들어간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태를 '주체의 죽음'이라 부르기도 했다. 주체가 죽은 시대에, 이 모범도 원본도 없는 복제물들의 파편을 가지고서 어떤 삶을 꾸며나갈 수 있을까?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아바타와 RPG게임이라는 시뮬라크르의 놀라운 생산자들 속에서 표류하는 우리가 오늘날 던져야 하는 윤리적ㆍ정치적 물음이란 이런 것이다.(259쪽)

 

예를 들면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관련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인터넷에서의 나는 실제에서의 나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대담한 구석이 있다.

실제에서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지 못할 정도로 대담무쌍하다.

그건 인터넷 세상이 가상이어서가 아니라, 인터넷 세상이 주는 익명성과 모호함에 나를 함께 묻어버는것이다.

어느때보다 더 나의 본능에 가깝지만, 다만 일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나답지 못할 따름이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기준이 '일상에서의 나'가 될 수 있을까?

이 논리대로라면, 일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나는 진짜가 되는 것이고,

어느때보다 나의 본능에 가까운, 솔직하고 대담한 나는 가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디지털 진화에 따른 개인화, 개인적 고립 문제로 이어졌다.

흔히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들 얘기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 지혜로워져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장르소설을 읽다보면...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독선과 아집에 빠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랑제의 소설 '검은선'에도, 내가 좋아하는 프레드 바르가스의 '죽은자들여, 일어나라'에도 등장한다.

 

그리스인들에게 지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혜에 접근하기 위해선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생각함의 도구인 이성이 '일하도록'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은 모든 사람이 나누어 가진 '보편적인 것'이기때문에, 이성은 자신이 생각한 것이 정말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사람에게 깃든 이성에게 묻고 교정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성이 노동하는 방식으로서의 '대화'이다. 그러니 당연스럽게도 철학은 '의견'을 내놓고, 그 의견을 교정하기 위해 논쟁을 하고, 교정되어 보다 나은 의견을 다시 내놓는 그런 생각함의 과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은 '의견'을 지닌 자들의 전쟁터다. 옆집 아저씨의 인생 철학도, 사장님의 경영 철학도, 철학관을 운영하는 점쟁이의 신묘한 철학도 혼자 방 안에 있을 땐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몽상이며, 나아가 "이거 맞지? 이거 맞는 얘기잖아!"라고 다짜고짜 옆사람에게 강요될 때는 사람을 피곤케하는 독선과 폭력이 된다. 그러나 개인들이 지닌 그런 다양한 생각들이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성의 전쟁터에서 생존을 시험받게 될 때 그것들은 이미 철학의 반지를 손에 넣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22~23쪽)

 

결국 사회와 문화가 발달하고, 그리하여 디지털이 진화한다고 해도,

인간은 보편적 이성을 지닌 존재이고, 자신의 이성이라는 것이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알아보는 유일한 방식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이다.

그러니 개인의 그것이 몽상과 아집, 독선과 폭력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관계와 소통 뿐이다.

 

지인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좋은 뜻으로 한 얘기였는데, 지인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를 들먹여가며 정색을 했었다.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홍지웅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3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식으로, 자기가 해온 방식으로, 우물 속에 앉아 하늘 쳐다보는 (座井觀天)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 아닌가?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나조차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대응할 것이다ㆍㆍㆍㆍㆍㆍ그래서 사람마다 스타일이 생기는 거고ㆍㆍㆍㆍㆍㆍ언젠가 김인호 사장이 나더러 <홍선배는 굉장한 스타일리스트>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이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서 좋아 보인다는 것인지(아마도 김인호 사장은 내가 만들어 온 책들을 토대로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아니면 너무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어서, 혹은 그것을 너무 금과옥조처럼 고집하고 있어서 융통성이 없다는 말인지,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 Philippe Starck은 인터뷰때 기자가 <당신은 스탁 스타일Starck Style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정한 스타일이 있는데>라고 묻자, <나는 스타일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STYLE 대신 PHILOSOPHY라는 말로 불리고 싶다>고 한적이 있다!!(82쪽)

 

더불어 또 한가지, 서동욱의 '철학연습'을 통하여 생각을 달리한게 있는데...다음과 관련해서이다.

난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건 아니어도, '경우의수'정도로 생각하고 예방하고 미연에 방지하자는 주의였다.

그런데 서동욱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건, 의지와 행위뿐이라고 얘기한다.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를 볼게 아니라...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리라.

인간의 운명은 의지와 행위를 통해 개척되는 것이지,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얼굴이나 손금이 살아가면서 변한다고 하는, 우리가 종종 듣는 견해는 바로 인간은 정해진 운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해나간다는 이런 진리를 얼마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ㆍㆍㆍㆍㆍㆍ사정이 이렇다면, 즉 우리의 운명은 지금 해나가는 행위에 달려 있다면, 우리는 왜 덧없이 관상을 보고 점을 치면서, 정해진 우리의 운명을 엿보려고 하는 것일까? 바로 '공포' 때문이다.ㆍㆍㆍㆍㆍㆍ행위가 운명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에, 공포가 발목을 붙잡고서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지 않은지 찾아볼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이 정도는 이야기해야겠다. 결혼 못한 딸들이여, 엄마가 데려온 점쟁이가 네 남자의 관상이 나쁘다고 혼인을 반대하면 그르 헤겔이 제안하 행위 지침에 따라 대하라. 취직 못한 아들들이여,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혹시 관상이 나빠서였다면 그 회사를 향해 코웃음 쳐라. 한 인간의 운명은 머리 한 군데의 평평한 공터에 모여 있는 눈,코, 입, 귀의 생김새, 그리고 머리통의 모양이 겨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타고난 운명의 행운 때문에 황제가 되고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하며 좋은 짝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운명은 오로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그의 행위 속에서만 확인되 수 있다. (307쪽)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관련된 한대목이다.

철학은 접근 불가능한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쯤되면 찬찬히 공부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정신현상학'관련 '헤겔'이 흥미로워 찾아보니, '헤겔,아이티, 보편사'라는 책이 새로 나왔다.

 

 

 

 

 

 

 

 

 

  헤겔, 아이티, 보편사 
  수전 벅모스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철학에 'ㅊ'자도 모르면서...너무 철학 얘기만 머리가 아프지만,

분위기를 몰아서 오늘 일기도 철학적으로 한번 써봐야겠다.

 

어쩌면,

한참동안 말을 잃어버릴것 같다.
제길, 뭐 어떻게 침이라도 한방 맞아 봐야 할지

탕약이라도 한제 달여 먹어야 할지

모를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
얼굴엔 우울을 클리닝 집 꼬리표처럼 달고
어슬렁 어슬렁 정해진 길을 걷다가
훌쩍 2월이 가고
훌쩍 눈물도 좀 나고
훌쩍훌쩍 콧물도 좀 나고
하루 한번은 이곳에 들어와 앉았었지만,
아무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런 댓글도 떠오르지 않아
성질 나쁜 고양이처럼 손톱을 세워
마우스만 딸깍 딸깍 긁어대다

오늘은 손톱을 찰칵찰칵 깎아야지
오랫만에 손수건을 꺼내 자판을 닦아야지.
아무래도 난 좀 어리석은 것 같다.
그리 힘든 일도 아닌데,

왜 밍기적거리고 앉아 훌쩍이고만 있는건지.

생각해 보니까,

2월이 간다는 건 3월이 온다는 얘기다.
아니, 1월이 가버렸다는 얘긴가?
지난 날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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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지 마라...

세실 2012-02-2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양철나무꾼님.....
봄앓이가 시작된 걸까요?
저두 서동욱처럼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바뀌는것 이라고 믿고 싶어요.

하늘바람 2012-02-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셔요 님
제게 힘을 주셨었는데 저도님께 힘을 드려야 하는데
진짜 봄이 되어 황사 바람 불 즈음에 제가 향긋한 봄 바람 보내드릴게요
힘내셔요

2012-02-24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2-2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뮬라크르,,, 의미가 어려울뿐더러 발음도 어렵네요, 종종 '시뮬라르크'랑 혼동하기도 해요 ^^;;
지나간 날이 한순간에 지나가버려서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러한 시간의 경과가 있어야
좋은 일도 온답니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는 날씨 속에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2012-02-2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증 꼬리표를 얼굴에 달고 어슬렁거리고, 하루 한 번 이곳에 들어오지만 아무런 댓글도 써지지 않고, 눈물도 훌쩍, 콧물도 훌쩍, 2월이 갔고 3월이 오는데 1월을 생각하는, 양철님. 왠지 멋지셔요. (힘드신데 죄송..) 여튼 잠을 못 주무신단 말은 늘 걱정스럽습니다. 불면증의 고통을 아니까요..

페크pek0501 2012-02-25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 불면증? 으음~~ 생각이 많고 깊으신 분 같군요.
세상은 그냥 대충 살아야 편히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도 각도를 달리 해서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잖아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릴 주제는 못 되지만...ㅋㅋ 제 삶을 꾸려 가는 것도 힘들어 하는 주제에...ㅋ

아휴, 나나 잘 해, 라고 생각하며 물러납니다. ㅋ 어쨌든 양철나무꾼님 파이팅!!!!!!!!!!!!!!!

잘잘라 2012-02-2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며칠 푹 풀린 날씨 탓이기도 하고
이웃님들 서재에서 불어오는 봄기운 탓도 있고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예요.
(봄 타는 메리포핀스ㅡ.ㅡ;;)

아까 낮에 냉이를 한봉지 사다가 청양고추,풋고추,빨간고추 이렇게 세가지 고추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 먹었어요. 맛이 끝내줬어요.ㅋㅋ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저녁은 드셨나요? 말이나 글은 걸러도 밥은 거르지 마세욧!!!

같은하늘 2012-02-27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주 오랜시간 댓글들과 멀리 지낸걸요.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시간들...
아프지 말고 힘내세요~~

북극곰 2012-02-27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는 일이에요?
나무꾼님 힘내요! ^__^



2012-02-27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혹(不惑 ), 혹은 부록 ( 附錄 )'
                          - 강 윤 후 -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이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전에 '닮은 듯 다른, 다른듯 닮은' 페이퍼 때도 슬쩍 얘기한 거지만...

친구야, 자기랑 나랑은 많이 닮은 듯 하지만 달라.

그걸 개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고, 다른 이름으로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거지만...

나이 마흔을 넘긴 아줌들의 그것은, 좀 거칠게 얘기하면 '고집'쯤 되지 않을까?

 

그렇게 놓고 본다면, 자기랑 나랑은 물과 오일쯤이 아닐까 싶어.

그냥 놓고봤을때는 별반 달라보이지 않지만,

기전이나 성질로 들어가면 하나는 불을 끄고, 다른 하나는 돋우어 아주 큰 차이가 나버리지.

 

물이 오일을 알기 위해서는 오일 가까이 가보아야 하고,

오일 역시 물을 알기 위해서는 물 가까이 가보아야 하겠지만...

이 둘은 기전이나 성질이 완전히 틀린 고로, 번지고 스며 물드는 따윈 꿈도 꿀 수 없겠지.

물과 오일이 서로에게 가까이 간다는 것은 어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거울 삼아 자신이 물임을, 또는 오일임을 자각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자기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 준 적이 별로 없어.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의 그 많은 친구들 중 내 곁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다섯 손가락이 남는다는 말도 했던 것 같아.

난 유리로 만든 병 안에 나를 담아놓고 그걸로 모자라서 마개로 꼭꼭 막아두기도 하고 말야.

근데, 한번씩 술을 먹고 코가 삐뚤어지면 마개 간수를 제대로 못하게 되고...

그럴때마다 한 번씩 나의 내적 자아가 됐든지, 아직 내가 화해를 못했을지도 모르는 '내면아이'가 됐든지,

한번씩 튀어나오게 되고,

그런 걸 자기답게 놓치지 않고 있다가...

내가 힘들어 할때 같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해결책을 고심하고 하는걸 보면...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그걸 자긴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더구나.

 

같은 원을 뱅뱅 도는 지인들의 흔적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점점 더 깊은 진흙 패임을 남기면서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 반복되는 흔적은 점점 밑으로 깊어져, 자연적으로 진흙 담장이 생성되고, 그럼으로써 길에서 벗어나 샛길이나 다른 길, 또는 드넓은 초원으로 들어서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또한 흔적 곁의 진흙 담장으로 인해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려워지고, 내 세상은 오직 좁은 길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길은 날이 갈수록 질척해지고, 그만큼 걷기도 힘들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만, 결국 같은 자리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 됐든...숱하게 많은 고민 중 내가 자기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그건 자기가 내 고민을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친하거나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 자신조차 구체화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말고 할게 없기 때문이야.

 

일례로 (나의 불면증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동네에 나타나진 않지만) 아직도 새벽에 깨어 있을 때가 많아.

몸이 힘들면 잠을 좀 잘 수 있겠지 싶어,

일을 더 열심히 하게되고, 몸을 더 혹사시키게 되고 했었는데...

일을 하면서 몸이 힘들고 괴로운 걸 넘어서,

가진 자들의 부에 일조하고 결탁한다는데서 오는 자괴감으로 마음마저 괴로워져 어쩌지 못하지만,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속물이어서 그런 부가 가져다 주는 편리함을 거부하지도 못하는 것이지.

 

그러니, 이 일이 나의 천직인지를 놓고 수천번, 수만번 고민하고 힘들어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들이...

매사에 결단성있으며 분명하고 똑부러지는 자기가 보기에는 속이 상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

그런데 자기야, 나 자신조차 구체화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자기가 무엇인가 해줄 수 없는 무력감을 절감할 필요는 없어.

가끔 모른척하고 거리를 둔다거나,

나도 모르는 내 "내면아이"를 대신해서 팍팍 화를 낸다거나 하는 건 한번씩 눈감아 줄게.

 

이쯤이면, 눈치 빠른 친구야.

내가 처음 저 시를 들먹인 이유를 알겠지.

요즘은 '세살이면 에고(ego)가 생긴다'잖아.

어떤 환자의 경우에 의사의 처방도 우숩고 먹혀들어가지 않기 일쑤이더라.

자기가 지금 자기의 분야에서 첫발을 내딛어

자기가 아끼는 나에게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의욕에 넘쳐서 라는 걸 알겠지만,

내 개성과 정체성 쯤으로 생각하고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면 안될까?

 

친구야.

그러니 자기가 제시한 그 문제를 자기 방식대로 해결한다면,

자기 입맛에 맞는 순하디 순한 사람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후에도 온전히 내 개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맹숭맹숭한 내가 전처럼 자기와 어울릴 수있고, 얘기가 통할 수 있고, 재미있을까?

 

지금이 최대한 열어보인거야.

그 이상 바란다면, 욕심쟁이라고 불러줄테야.

더 궁금한게 있고, 그래도 꼭 알아야겠고, 그래서 바꿔놔야겠으면...

날 취하게 하여 마개를 열고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수밖에~ㅠ.ㅠ

 

이 물음, 쉬운듯 하면서...답하기 힘들더라.

 

인간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 늘, 누군가를.

인간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 한번 내 안에 들이면 쭈욱~

인간에게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 때론, 냉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인간에 나도 포함됩니까?----> 때때로

 

 

실은, 난  '우울한 편지'의 아래 구절의 마인드를 가장 좋아해.

옛날에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지.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 가요 아는 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

 

 

                쓸쓸한 날에
                           - 강 윤 후 -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들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알려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 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 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打電하는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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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2-21 18:43   좋아요 0 | URL
서로서로 좋은 마음 오래오래 이어가시리라 믿어요~

달사르 2012-02-21 22:17   좋아요 0 | URL
빨간색 질문에 제 대답도 양철나무꾼님과 같네요. 때때로, 라는 대답도 어쩔 땐 감사하게 느낄 때도 있으니 말이죠.

캬..우울한 편지..끝네주네요. 유재하의 익숙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무개 2012-02-22 09:58   좋아요 0 | URL
친구라고 부르고 쓸수 있는 사람의 존재만으로 눈물나게 고마울때도 있더라구요. 무엇을 해주거나 해주지 않거나..그냥 친구 고마워..라고 할수 있는것 만으로도 말입니다. 친구가 그런거라 잖아요.. 내 등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가는자!

2012-02-22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2-22 12:16   좋아요 0 | URL
시가 참 좋고 님의 글도 좋습니다.

친구란 ? - (루이스는 이어서 이런 말도 했다. "친구 사이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정해 놓은 의무에서 자유롭고, 질투하는 일이 없고, 필요한 자격 조건도 없으며, 매우 정신적인 차원에 속한다. 천사들 사이에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다.")<소셜 애니멀> 316쪽.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서 옮겨 봤어요. 친구란 멋지잖아요. ㅋ
 

새벽에 메일 한통을 열어보고 심기일전(心機一轉)의 마음을 먹고 앉아 있다.

다른 곳은 벌써 태양의 기운 가득한 봄인가 본데, 나만 아직 한겨울이었나 보다.

그러고보니 입춘도 지났고, 아들은 봄방학이라는 걸 했고, 백화점 봄맞이 세일에 들어갔고...

그래도 봄인가 보다...고 하기엔 아직 "난" 너무 춥다.(서울 아침 기온 영하8도)

 

그동안 우리 부부는 손발이, 또는 쿵짝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각자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달라서, 

상의없이도 그 분야는 그 사람의 몫이 되곤 했었다.

그 분야를 나눌때 구시대적이고 전근대적인 발상으로 여자 일, 남자 일 따위로 나누거나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근데, 아들 졸업식에서 일을 쳤다.

 

나도 덜렁대지는 않지만, 꼼꼼함으론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남편 덕에...뭘 챙겨본 적이 없다.

취미가 되었든 운동이나 봉사가 되었든,

정기적으로 無價紙를 발행하는 사람의 카메라 가방에 글쎄...카메라는 없고 렌즈만 한가득 들어 있더란 말이다.

남편은 카메라 가방만 들고다니며 잔뜩 폼을 잡고,

정작 사진은 어떤 영화감독이 폼잡고 영화까지 만들었다고 광고하던 그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소위 애들이 말하는 '쪽 팔린다'가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싶더라, ㅋ~.

 

그동안 남편이 잘하는 것, 주특기엔 손을 안대고 살았다.

그래서 청소도 젬병이고(나 앉는 자리만 손으로 쓰윽 문지르고 앉는다.)

남편이 모르는 비밀도 몇가지 갖고 있는데,

내가 납땜기 들고 진공관 앰프 만드는걸 얼마나 좋아하는 줄도,

그 열기에 계란 후라이를 해먹을 정도라는 것도,

대학 방송국 신입생때, 기자재 정리를 하며 얼차려를 제대로 받아 라인 정리의 달인이라는 것도 모를 것이다.

시동생들과 컴 용어로 대화를 나누는게 부러워, 컴활 2급 자격증을 땄는데 그것도 아마 모르지 싶다.

청소는 계속 남편이 잘하도록 놔둘 생각이고,

이제 남편이 모르는 비밀 목록에, 사진 한가지를 더 집어넣어야 하는게 아닌가 심사숙고 중이다.

 

아무리 꼼꼼하고 사진이 좋다고 하더라도,

다 큰 어른이 중딩아들 졸업식이라고 멜랑꼬리해져서 카메라도 안챙기는 걸 보면,

고딩 졸업식땐 무슨 일이 생길지 안봐도 비디오, 줄줄이 청사진이지 싶다.

 

이 동네에도 숨은  고수들이 계신데...

된장님은 책에 일가견이 있으실 뿐 아니라 사진도 글도 이미 프로이시고...

중전, oren, 차좋아 , 마녀고양이의 어머니 등등...은 그냥 내 맘대로 이분들의 사진이 좋다.

 

그렇다면 당장 사진을 배워서 무엇을 찍고 싶은데...?

하고 묻는다면 말이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식으로 멋지게,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없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없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

심지어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도 없다.

ㆍㆍㆍㆍㆍㆍ

학교와 교사 화가들로부터 배운 것은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했다.

결국 나는 타인은 신경 안 쓰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진짜 중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나의 그림을 그렸다."

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실은 내게 메일을 보내준 누군가에게...

흰눈을 한가득 선물하고, 대신 밝은 태양 봄 기운을 넉넉히 얻어오고 싶어서이다.

 

흠~

밝은 태양, 봄기운이라고 하면...

사진처럼 고차원적이고 시간 오래걸리는 거 말고, 단방으로 해결되는 비법이 있긴 한데...

 

아기의 웃음소리.

-->내가 이 나이에? 이건 좀 무리수.

대리만족 시킬 조카가 있긴 한데, 웃음소리를 듣기 위하여 울음소리를 견뎌야 하니 패쓰하고~

 

이게 가장 쉽고 적절할 것 같은데...(난 이걸로 택해야 겠음)

봄 햇살 넉넉히 받고 자란 상추와 각종 쌈에 흰 쌀밥을 얹고, 쌈장 조금, 두툼한 삼겹살 노릇하게 구워 입 크기 만하게 싸서...

입을 한껏 벌리고 소주를 곁들여  '크~'하는 추임새는 필수.

봄동 겉절이가 있으면 쌀밥에 그냥 올려먹어도 그만인데...(추릅~군침 돈다.)

 

무슨 얘길 하다가 여기까지 왔더라~

사진!

그래서 구한 책이 박태희 님의 '사진과 책'이다.

 

 

 

 

 

 

 

 

  사진과 책
  박태희 지음 / 안목 /

  2011년 12월

 

사진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진가 14명의 사진집을 소개하고 사진집에 실린 사진 작품들의  해설과 더불어 삶과 연관된 사진의 본질에 대한 한 사진가의 개인적 사유를 담은 책으로,

2011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1인출판사지원사업' 당선작으로 좀 의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박태희님은 들어가는 말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게 사진공부란 사진책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사진책을 펼치면 꿈속을 걷듯이 현재의 공간과 시간을 벗어난 완전히 다른 세계가 전개되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사진책을 만나는 경우는 살면서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는 딱 고만큼의 확률로 찾아들었다. 담벼락 뒤에 숨어 남몰래 흠모하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것처럼 나는 이런 사진책을 곁에 두고 밀애의 감정에 젖어들곤 했다.ㆍㆍㆍㆍㆍㆍ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서로의 인간성을 공유하려 했고, 도처에서 펼쳐진 켜켜한 삶의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묵상했다. 창조적인 독자는 사진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볼 때마다 새로워지는 감정의 변화들 속에서 고민하고 성장한다.ㆍㆍㆍㆍㆍㆍ진정한 사진은 우리의 시선을 넓고 깊게 만들어 지난한 삶의 과정을 통과하는데 등불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암튼, 사진 책 한권 얼렁뚱땅 봤다고 하여 사진을 잘 찍게 될 것 같지는 않고...

내 시선을 넓고 깊게 만드는데 일조하여,

담벼락 뒤에 숨어 남몰래 흠모는 아니더라도,

태양빛을 넉넉히 나눠 오고 흰눈을 한가득 선물하고픈 마음이 들게는 했다.

 

실은, 요즘 난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을 궁리 중이다.

구차하고 궁색하게 지지부지 설명하느라 애쓰지 않고, 어떻게 내 마음을 전할 수는 없을까?

그걸 또 다른 사진작가 '김아타'는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설명을 한다는 것은 대화에서 실패한 경우다.

 

설명을 한다는 것은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이유를 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자신을 이해시키거나 타인의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화의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다. 대화는 타인으로 인하여 나를 비워내는 행위이며 타他로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행위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행위다. 끝없이 나를 비워내는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 환하고 밝은 세계가 빈 공간으로 들어온다. 그것이 대화의 본질인 새로움이다. 이 주석도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공감과 소통이긴 하지만,

더듬이를 그쪽을 향하여 열어두고,

같은 음역대로 얘기하기 위하여 주파수를 맞추느라 애쓰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어놓았는데 그쪽에서도 똑같은 소통법을 구사하여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 

다시 말해,

'무얼하든 그와 함께라면 소통이고 즐거움이고'에서 '그'를 제외하고,

나 혼자 해서도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을 찾아 반짝거리면서 하다가,

또 자기가 해서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을 반짝거리면서 하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그런 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태희님의 <사진과 책>중,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조지아 오키프'편을 보고 오래오래 황홀해 하였다.

'조지아 오키프'가 직접 고른 51장의 사진과 직접 쓴 서문으로 구성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아흔이었다. 스티글리츠가 세상을 떠난지 30여년이 지난 후였다. 이 책은 사진 책이 만들어진 이래 가장 아름다운 사진집으로 꼽힐 정도로 인쇄와 내용면에서 기념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97년 재발간된 사진집에는 멭,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소장하고 있던 30장의 사진이 부록에 추가되었고 비로소 조지아 오키프 컬렉션의 전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사진은 나의 정열이며 진실에 대한 탐구는 나의 강박관념이다."  -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

 

조지아 오키프 뮤지엄 바로가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야 이미 사진계의 거장이었고,

조지아 오키프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만나서 그를 발판으로 거듭났다고 회자되기도 한다.

 

언젠가 카쉬전에서 '조지아 오키프'를 봤을때도 여운이 오래 남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조지아 오키프'를 모델로 찍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카쉬전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사진을 통해서도 충분히 공감이나 소통 같은 것을 전할 수 있구나, 교감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

말하지 않고도 마음을 충분히 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아직 사진을 시작조차 않고,

고작 사진 책 한권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지만,

말로는 오해나 곡해가 빈번한 세상이지만,

잘만 하면 이런 소박한 페이퍼 하나로도...

'흰눈을 한가득 선물하고, 대신 밝은 태양 봄 기운을 넉넉히 얻어올 수 있겠다' 야무진 꿈을 꾸어 본다.

 

난 개인적으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보다는 그의 사진 속의 조지아 오키프가 더,

조지아 오키프의 사진보다는 그녀의 실물과 그녀의 작품세계가 더, 좋지만...그 얘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해야 할 것 같다.

 

여지껏 어렵게 한 얘기를 김아타의 그것으로 옮겨 보면 이렇다.

정체성正體性이란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외항선이나 군함 같은 큰 배와 항공기에는 자이로gyro라는 것이 있다.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키고 자이로는 수평과 평형성을 유지하게 한다. 선박이나 항공기의 기울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는 장치가 자이로인데, 특히 야간 운항하는 군용 제트기에 자이로가 없으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자이로는 언제나 자신의 중심을 먼저 잡아야 배나 항공기의 중심을 확인할 수 있다. 약 20년 전 일본 도예의 전설로 불리는 14대 심수관이 서울에서 세미나를 할 때이다. 물론 그의 조상이 조선 사람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가 세미나에서 정체성에 대하여 재미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 심수관이 어린 그에게 바늘을 가져오게 하여 물레 위에 있는 흙 한가운데에다 꽂고 물레를 돌렸다. "바늘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느냐?" 흙 한가운데에서 돌고 있는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어린 그가 대답했다. "움직이지 않는데요."

아들의 답에 아버지 심수관이 말했다.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찾아 가거라." 그말을 들은 어린 그는 나이 마흔이 가까울 무렵에 가서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비로소 그는 아버지의 아버지로 이어져오던 도공 심수관의 반열에 오른다.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의 물리적인 현상이 자이로이며, 정신적인 현상이 아이덴티티다. 정체성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성숙해 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떤 경우에도 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부르는 것은 인간의 나이 마흔이면 정체성을 찾을 연륜이며, 역설적으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 데 4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체성과 나이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된다고 해서 누구나 정체성이 확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동중정動中靜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인다'는 정중동靜中動과 같은 말이다. 동중정이 아이덴티티의 물리적인 현상이라면, 정중동은 아이덴티티의 정신적인 현상이다.

 

하루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다.

아니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이제 일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순간 순간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함을 찾기로 하였다.

이 일이 나의 평생 천직이라는 생각 대신,

일을 하면서 하늘이 주신 소임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에 감사하기로 한다.

 

그러고 나니, 창밖은 아직 추운 겨울이어도...

봄 햇살 넉넉히 받고 자란 상추와 각종 쌈에 흰 쌀밥을 얹고, 쌈장 조금, 두툼한 삼겹살 노릇하게 구워 입 크기 만하게 싸서 먹는 동안만큼은...태양의 기운 가득한 봄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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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2-16 18:24   좋아요 0 | URL
사진은 작가들이 찍지 않아요.
사진을 좋아하며 찍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붙이는 이름이 작가예요.

졸업사진은 즐거이 찍으셨겠지요~

알케 2012-02-16 19:34   좋아요 0 | URL
이젠 사진까지 가시는군요. 전직 주말 사진가로서 저의 사진 잠언서는 존 버거 할배의 책들이죠. 테크닉은 김주원의 책들 좋아요. 저도 나름 오디오필인데 진공관 납땜은 ㄷ ㄷ재즈도 많으셔요

cyrus 2012-02-16 21:59   좋아요 0 | URL
요즘에는 카메라에 푹 빠지셨네요.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언젠가 따뜻한 봄 기운이 가득찬 시기가 찾아오면 멋진 봄 풍경 사진 부탁 드려도 될까요? ^^;;

순오기 2012-02-17 06:11   좋아요 0 | URL
이젠 배추와 봄동을 확실히 구별하시나요?^^
배추가 겨울 난다고 봄동이 된다는 분도 있어서...ㅋㅋ
사진까지 넘보는 양철나무꾼님의 영역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요.

2012-02-17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2-02-17 10:47   좋아요 0 | URL
순간 박희태로 읽은 1인입니다. ㅎㅎ. 저도 애들이 태어난 다음에 찍기 시작했는데 친구가 말리더군요. 그냥 똑딱이 써라. DSLR 카메라 살거면 사람만 찍어라. 절대 풍경 찍지 마라. 풍경을 찍더라도 새는 찍지 마라. 패가 망신의 지름길이다....그 친구도 풍경까지만 찍고 있습니다. ㅎㅎ

2012-02-17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12-02-17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사진 참 좋아하는데, 요즘은 아이가 자라고 엄마가 우울모드라 사진찍는일이 줄어들었지만 날이 풀리면 아이 손잡고 어디라도 다니려고요,,,,우리 옆지기가 가지고 싶어하는 진공관 앰프 친구네 집에 갔더니 있더라구요 이사 가면서 아저씨가 구입한거라는데 옆지기가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하늘바람 2012-02-17 18:20   좋아요 0 | URL
뜨게질도 고수신데 사진까지 재주가 넘 많으시면 샘이 많아져요.
아드님 졸업이었네요 축하드려요 맨입 멘트만 날려서 넘 죄송한 마음뿐~
ㅠㅠ

프레이야 2012-02-18 18:36   좋아요 0 | URL
하나뿐인 귀한 아들 졸업 축하해요^^
님도 고생하셨어요. 어려운 시간을 함께 건너가는 것이죠, 특히 사춘기 아이 키우는 일은.

달사르 2012-02-21 22:22   좋아요 0 | URL
ㅎㅎ 이 포스팅은 진작에 읽고 박태희 님 책 주문 들어갔습니다요. 박태희 님 이전 책 <사막의 꽃>을 무척 감동깊게 읽었거든요. 그래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ㅎ

양철나무꾼님의 비밀목록이 추가되는 걸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는 포스팅입니닷! >.<

2012-02-24 22:30   좋아요 0 | URL
우와 왠지 양철님과 봄기운 느껴지는 삼겹살 쌈과 소주 1잔, 하고 싶어지는 글인데요!
저도 천직! 하지 말고, 이 순간의 소임! 하고,,
또 봄! 하지 말고, 이 먹을 것 속의 봄볕! 하면서 살렵니다.^^
 

지인 하나가 어깨가 아프다고 왔었다.

본인이 adhesive capsulitis라고 자가 진단하고 치료받겠다고 온 것을,

Impingement syndrome같으니 정형외과 가서 제대로 검사받고 수술하라고 보냈었다.

그 과정에서 좀 매정하게 보였었고 그게 서운했었나 보다.

이 지인은 수술 후 5일 만에 내게 치료를 받겠다고 나타나서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더니 급기야 나에게,

"나처럼 아파본 적 없죠?"

라고 하며 아프다고 툴툴거린다.

치료를 받겠다는 건지, 아픈걸 위로받겠다는 건지...언젠가 읽었던 '라인업'의 '존 코널리'가 생각났다.

 

 주인공인 사립탐정 찰리 파커는 분노와 복수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그가 받는 고통으로 규정되는 인물이다. 그는 직접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게 놔두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덕분에 그는 이기심이나 비탄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가 쫒는 부인과 아이의 살인범에게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중략)...나는 모든 것을 잃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간으로 남기 위해 애를 쓰는 남자에 대해 쓰고 싶었다. 최악의 악몽이 현실로 실현되면 거기에는 일종의 끔찍한 자유가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든 일단 그 정도로 끔찍한 일을 견뎌내면 다시는 어떤 것도 그를 그 정도로 아프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찰리 파커란 이름을 지어준 이유는 그와 같은 이름의 재즈 뮤지션인 찰리 파커의 별명인 버드에서 풍기는 비행, 자유, 영성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죽음에 얽매여 있는 그를 위로해주기 위해 그 이름을 주고 싶었다.

(라인업, 91쪽에서...)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장르소설 작가들 말고,

'라인업'을 통해서 유독 매력적으로 와닿았던 사람이 켄브루언과 존 코널리였는데...

켄 브루언은 막상 읽으니 '라인업'을 통해서 보여지던것 보다는 '아니올시다' 였고,

존 코널리는 '좀 심하다'고들 해서 여지껏 미루었었는데...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전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체해부도'식의 적출 묘사였는데, 그동안 단련될만큼 단련되어서 그런가 보다.

지극히 개인적이겠지만, 그동안 읽은 것 중 심한 것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검은선'과 '한니발'을 들겠다.

하지만, 이 둘은 꼭 읽어 볼만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모든 죽은 것
 존 코널리 지음, 강수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7월

 

 

 

암튼, '모든 죽은 것'은 작가의 필력과 역자의 번역력 모두 훌륭하여 재밌게 작품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리고 저 위에 밑줄 그은 '직접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고통받게 놔두려 하지 않는'....

소위,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불리우는 것만으로도 난 하트눈이 되어 황홀해하며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주인공 찰리 파커를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놓은것과 어느 부분부터인가 그에게 영매 끼를 불어넣어 전지전능하게 만들어 놓아...좀 심심하고 재미없어 질 수도 있겠다.

 

나만 해도 알토 색스포니스트 '찰리 파커'를 좋아했던 터라...

처음 읽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찰리 파커'도 너무 금방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알토 색스포니스트 '찰리 파커'와 이 책의 주인공 '찰리파커'의 다른 점은 흑인과 백인이라는 것뿐이다.

색스포니스트 찰리 파커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때부터 색스폰을 불기시작했고, 16살에 네살 위인 여자와 결혼을 한다.

마약, 알콜, 약물 중독에다가 여자관계까지 복잡했던 그는 음악적인 열정만 남달랐다.

그렇게 지난하게 살던 그는 딸마저 잃고 급기야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가, 서른다섯의 나이에 요절한다.

 

이 책의 주인공 '찰리 파커'는 경찰이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경찰 생활을 하던 그는, 아내와 다투고 술을 마시러 나간 사이 아내와 딸을 한꺼번에 잃게 된다.

알콜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술을 마셔서 아내와 다투게 된건지, 아내와 다투어서 술을 마시게 된 건지...의 전후 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암튼 그는 술때문이라고 자책을 하고 술을 끊고 경찰을 그만 두고 사립탐정 비슷한 걸로 나선다.

서른 네살로 등장하지만 몸매 관리를 잘해 서른 둘로도 보인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는 그는,

눈동자는 청회색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만큼 투명하고, 얼굴은 약간 길쭉하며, 고통스런 기억 탓에 눈매가 깊고 입가에도 주름이 졌다. 수염을 깔끔하게 깎고 머리도 잘 다듬고 좋은 양복에 조명발까지도 도와준다면 꽤 봐줄 만했다. 조명만 괜찮으면 서른두 살이라고 우기도라도 그렇게 큰 비웃음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운전면허증에서 적힌 나이에서 겨우 두 살을 뺐을 뿐이지만, 나이가 들면 사소한 것들이 점점 중요해지는 법이다.(95쪽)

다른 경찰이나 탐정들처럼 터프하거나 강압적이지 않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간으로 살기 위해 애를 쓰는 한 남자일 뿐이다.

또한 현실이 아무리 암울하더라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전형화와 더불어, 쉽게 맥이 빠져버린 이유는...너무 금방 범인을 예측할 수 있어서 였다.

38쪽과 60쪽에서 단서가 이미 나타난다. 나만 그 실마리를 찾았나?

범행동기라는 것도 참 어이없다.
미국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나라여서,

개인의 이해관계가 먼저이고, 가정의 화목함 따위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줄 알았는데...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내에게는 그렇고 그럴 수 있는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좀 아이러니 컬 했다. 

"ㆍㆍㆍㆍㆍㆍ그는 위험을 즐기려고 한 것 같습니다. 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이를테면 '인상'을 남기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인상. 요란한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38쪽)

 

울리치는 광대처럼 보일지도 모르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광대처럼 굴 수도 있겟지만, 뉴올리언스에서 그를 아는 사람치고 그를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ㆍㆍㆍㆍㆍㆍ

 "넥타이 멋진데." 밝은 빨간색에 양과 천사 무늬가 있는 넥타이였다.

 "형이상학적인 넥타이지."울리치가 응수했다. "조지 허버트(1593-1633, 영국의 목사. 형이상학파 시인- 옮긴이) 넥타이라고나 할까."(60쪽)

 

내가 이 책에서 눈여겨 본 것은 찰리 파커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렇게 참혹한 방법으로 어이없이, 아내와 딸을 잃고도...그가 살아가는 이유, 

그건 다른 어느 친구들보다 앙헬과 루이스를 더 가깝게 느끼는 이유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쩜 내가 장르소설을 읽는 이유,

내가 요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걸음 다가간다는게 '가까이'가 되기 보다는, 밀어내는 제스츄어가 되기도 하는걸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찰리파커는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단다.

그렇다면 앙헬과 루이스가 찰리 파커를 가깝게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 또한 그들과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읽었다거나,

그들과 별다를게 없는, 자기네와 비슷한 부류라는걸 느꼈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대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러니 '나처럼 아파본 적 없죠?'하고 툴툴거렸던 이의 저변은 둘 중 하나로 해석하는 수밖에 없겠다.

오히려 자신이 마음을 제대로 열지 못한 겁쟁이이거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한 고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 이미 고통에 잠식 당했거나...

 

그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앙헬과 루이스, 이 두사람이 괜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세계에 아무런 환상을 품지 않았다. 그것의 일부였다가 또 그것과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주는 철학적인 해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킬러였다. 그런 환상을 품을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로 인해 앙헬도 그런 환상을 품을 수 없었다. 이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도 저만치 멀어졌고, 나는 내 힘으로 나 자신을 다시 세우고 새롭게 발 디딜 곳을 찾아야 했다.(125쪽)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기라도 한것처럼ㆍㆍㆍ-->이 부분은 보충 설명이 필요하겠다.

비늘이 떨어질려면 어류의 몸이 되어야지, 사람 눈에서 비늘이 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므로,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정도로 바뀌어야 하겠다.

하지만, 이마저도 성경을 열심히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뉘앙스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눈을 덮고 있던 콩깎지가 벗겨진 것처럼'...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형사시절에도 나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을 다룰 때면 늘 조심했고, 오만하거나 주제넘는 짓을 하지 않았다. 상대가 존중하는 것을 존중해줘야 했고, 침묵에서 신호를 읽어야 했다. 그들에겐 모든 것에 의미가 있었고, 폭력을 쓸 때처럼 의사소통의 방식도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었다.(149쪽)

 

모든 건 해석의 대상이며, 모든 건 암호이다. 상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얼핏 보기에 관련이 없는 정보들 속에서 의미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걸 숙지해야 한다. 이 노인네는 그런 암호를 읽어내며 평생을 살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고 여겼다. (152쪽)

 

 "악마라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악마가 뭔지는 나도 몰랐다. 비인간성으로 말미암아 한 개인이 어떤 식으로든 '경계를 넘어서'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게 악마인 건지, 인간의 특징,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어 있는 어떤 특징을 규정하는 통념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뭔가가 있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171쪽)

 

내가 공감과 소통을 좀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쯤되면 존 코널리 아니, 이 책에선 주인공 찰리 파커의 타인에 대한 '존중'이 예사롭지는 않다.

공감할 수 없으면 그게 바로 악이고, 악마인 셈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밀려왔고, 그러자 위에 통증이 느껴졌다.(191쪽)

이런 사실적인 문장도 겪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다.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내 얼굴의 표정을 읽고 어떤 낌새를 차린 것 같았다. 확실치는 않았고, 알아야 하거나 말하고 싶은 것 이상의 뭔가가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는 눈치를 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췄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멀고 험한 길을 걷다가 서로 위로를 건네는 두 명의 여행자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느꼈다.(253쪽)

'따로 또 같이'나, '제대로 된 공감' 따위의 말이 무색하게...

그저 잠시 말을 멈추고, 걸음을 멈추고, 서로에게 일부러 위로를 건네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때문에 살면서 비슷한 고통을 겪거나,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는게 쉬운 일도 아니지만...
만나고 스치는 것만으로도, 눈치를 준 것도 아닌데...

어떤 위로 같은,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느끼기도 하는가 보다.

내 손을 잡아주는 그녀의 손길에서, 묘하게 머뭇거리는 그 동작에서 전문가의 이해를 넘어서는 뭔가가 느껴졌다. 내 희망사항이었을까? 나는 그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첫 걸음, 다시 세상 속에 들어와 자리매김하려는 어설픈 첫 시도였다. 이틀동안 무수한 일을 겪은 다음이라, 잠시나마 뭔가 긍정적인 것을 만지고 싶었고,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선한 것들을 깨워 일으키고 싶었다.(325쪽)

 

 그녀는 말을 멈췄고, 나는 이 얘기가 지금껏 속으로만 되뇌어졌다는 걸 알았다. 이건 입밖으로 꺼내서 사람들과 주고받을 얘기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는 그런 얘기였다. 가끔은 자신만의 고통이 필요했다. 자신만의 것이라고 부를 아픔이 필요했다.ㆍㆍㆍㆍㆍㆍ

"그리고 나는 지금 이러고 있어요."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가끔은 근접하기도 해요. 그리고 가끔, 운이 좋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죠.가끔은."

(438쪽)

존 코널리의,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섬세함과 세심함이 좋았다.

 

345쪽 중간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등장한다.

58, 59쪽에선 마지막 봤을때보다 몸이 불었고, 접힌 목덜미 사이로 땀이 줄줄 흐르는 거구의 사내라고 했었는데...

아내와 딸을 잃은 지 넉달 후라는 설정이 나왔으니까 아무리 길어야 넉달만에 보는 친구이니,

마지막 봤을때보다 몸이 불었고 땀이 줄줄 흐르는 걸로 봐서 여름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체구의 남자로 여겨진다.

이때 황갈색 양복이라고 표현되던 것이 345쪽에선 황갈색 정장으로 바뀌어 있다.

일반적으로 양복과 정장의 혼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단벌신사로 표현되고 있어서 단어가 하나로 통일되면 좋을 것 같고,

양복은 남자가 입는 옷이고, 정장은 여자도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넉달만에 보고 요번 일로는 뜨문뜨문 전화통화를 하다가 본 것일 것이다.
이번 사건이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진 것이 아니니까,

밑의 '처음 만났을때 이후로'는 '지난 번 만났을때 이후로' 정도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 만난건 친구 사이이니 최소한 몇 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할 수도 있을테고,

몇 년이면 얼굴 살이 빠지거나 찐게 이슈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울리치를 58, 59쪽에선 황갈색 양복을 입은 거구의 사내라고 표현했는데,

345쪽에선 '젊었을 때는 예뻤고, ㆍㆍㆍㆍㆍㆍ서른 살의 여자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앞뒤로 번역이 너무 좋아 번역 상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고, 뭔가 착오가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이 부분 때문에 몰입도가 떨어지고...화~악 깨는 건 있다.

처음 만났을때 이후로 그가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살도 많이 빠졌고,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광대뼈가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일 때도 있었다. 문득 몸이 아픈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얘기를 하고 싶으면 울리치가 먼저 말을 꺼낼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을 먹는 그를 보는데 제니 오바흐의 시체 옆에서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젊었을 때는 예뻤고, 규칙적인 운동과 신중한 식이요법으로 몸매를 유지했으며,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데도 상당히 화려한 생활을 영위했던 서른 살의 여자였다.(345쪽)

 

그런 생각을 했다.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어야 타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하여 오지랖 넓게 채워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을 욕심내어서도 안 된다.

잔에 찬 다음은 넘치게 마련이다.

두개 다 갖고 싶다고 양손에 쥐고 있다가 넘어지면 코가 깨지듯이 말이다.

 

"나처럼 아파본 적 없죠?" 라고 묻는 이에게,

어떻게 해줄 수 없어서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으면 손 떨고 수긍하는 법도 배워야 하리라.

같이 나누고 공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고,

잔혹하고 고통스러워서 내 소중한 사람은 공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일도 생길 수 있으리라.

 

색스포니스트 찰리파커는 음악에 대한 넘치는사랑으로, 음을 잘게 나누고 쪼개는 비밥을 창시했다.

음악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했지만 어찌되었건 정통에선 변형이다.

음을 그대로 지켜 연주하는 고전이나 정통은 너무 소박하고 수수하다고 하여 밀려날지도 모르겠다.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전이나 정통의 입장에서 보면 음을 조금이라도 왜곡 또는 변형시킨 경우,

찰리 파커의, 음악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라고 하여 눈감아 버리기엔, 가슴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수식이 화려한 넘치는 사랑과 공감을 할 것이냐,

소박하고 수수한 사랑과 공감을 할 것이냐, 하는 취향에 관한 문제일뿐...

모두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도 없고, 모두에게 이해되어지고 사랑받을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인식이 그리 슬프거나 처연하지는 않다.

 

이제, 존 코널리의 '무언의 속삭임'으로 달려 볼까나?

 

 

 

 

 

 

 무언의 속삭임
 존 코널리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12월

 

 

 

 

 

 

 

 

 

 

 

 

 

페이퍼의 내용이랑 전혀 상관없는 이 곡이 듣고 싶은 걸 보니, 망령 또는 드라큘라의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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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2-1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밀려왔고, 그러자 위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픔과 공감이 듬뿍 묻어나는 스타일이군요.
이 글도 그렇구요.

gimssim 2012-02-15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면 마음이 약해지요. 그래서 어딘가 투정부리고 상대는 그것을 받아주어야한다고 생각하죠.
왜? 나는 아프니가.
그러나 몸이 아픈 것만큼 철저하게 개별적인 게 어디 있을까요?
마치 죽음이 그러한 것처럼.

알케 2012-02-1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널리 문장은 묵직하게 '가오'를 잡다가 툭 던지는 유머가..ㅋㅋ "장의사를 고소하기 위해 무덤을 박차고 나온 시체처럼"이란 형용사절에서 빵 터져서 ㅎ 또 루이스와 앙헬커플의 로코식 대사치기도 재밌고..근데 근래 나온 3권 <무언의 속삭임>은 쫌...기대이하였어요..

마녀고양이 2012-02-15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실이 그리 슬프거나 처연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 한다는 사실이...

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잠시, 난 왜 그게 그리 안 되는지 몰라.
글이 쥐어짜면 물기 떨어지겠다,,, 좀 쉬어야 할텐데, 걱정하는 중~ ㅠ

2012-02-15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2-15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에 양철나무꾼님이 힘들 게 읽었다는 게 그런 거였군요! 그러면 나는 그것만 모아서..( '')
저는 뭔가 자극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ㅋㅋㅋ

페크pek0501 2012-02-1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는 위험을 즐기려고 한 것 같습니다. 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이를테면 '인상'을 남기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인상. 요란한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38쪽)

- 저도 댓글을 쓸 때 뭔가 인상을 남기고 싶어져요. 요란한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요. ㅋ

 
좌백 무협 단편집 - 마음을 베는 칼
좌백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이야 장르소설 매니아라는게 소문이 나서 주변에서 정보도 제공해 주고 책이 생기면 가져다 주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부터 장르소설을 들입다 파지는 않았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여느 내 또래가 로맨스 소설을 읽던 고 2 여름방학  무렵 우연히 읽게된 무협지가 시작이었다.

누가 번역한건지 기억 안나는 삼국지를 누런 서류봉투 종이로 표지를 입혀 갖고 다니며,

틈만 나면(화장실, 버스를 기다릴때, 길을 오가면서도...) 야금야금 읽었었다.

 

그날도 책에 코를 박고 길을 걷다가 열린 창 너머로 누가 끼얹은 물벼락을 맞았다.

물을 버린 곳은 독서실인듯 했다.

사과를 받아낼 요량에서 였는지, 다른 흑심이 있어서 였는지...쳐들어갔으나,

독서실까지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입구 사무실에서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총무 아저씨에게 제지를 당하였고,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사무실 책상 위에 잠시 놔 두었다가 다시 들고 나오는 수고를 했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볼 일을 보고 책을 마저 읽기 위하여 펼치니,

글쎄, 삼국지가 아니라 지금은 제목도 기억 나지 않는 무협지였는데...

슬쩍 들춰보니 너무 재밌는지라 까만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읽었었다.

 

살짝 옆으로 새서...내가 노트 필기에 일가견이 있다.

선생님의 말씀을 밑줄 쫘악~, 별표 꽁약, 돼지 꼬리 땡땡, 

중요한 내용을 뽑아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이고,

그 사이 유기적 연관성을 엮어 기억하기 쉽게 정리한다.

특히 연표나 족보 만들기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졸업시험을 앞두고 노트를 잃어버리고 당황했었을때,

시험은 코 앞이고 노트를 빌릴 곳은 없고, 누군가 CD아저씨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그때는 동영상 강의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라,

강의 녹음과 노트를 불법 복사해 가지고 다니면서 대여해주는 그런 사람을 CD아저씨라 불렀었다.

(이것도 족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지, 아마...)

때로는 제대로 된 족보일때도 있었고, 때로는 pseudo족보일때도 있었는데, 불러놓고 보니 내 노트의 복사본이었다.

 

암튼, 그 무협지를 인물관계도 - 족보를 일목요연하게 그려가며 열심히 읽었고,

내 무협지 인물관계도 - 족보에 재미를 붙인 아저씨는 그 후로도 몇 권을 더 빌려주었었는데...

등장인물만 조금 바뀔 뿐이지 다 거기서 거기인 내용에 흥미를 잃어, 그렇게 그렇게 끝이 났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무협지와 여러가지 공통점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 한가지는 '몸과 마음을 같이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범상치 않은 숨은 고수나 지존에 대해 떠벌리더라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 없었고,

그래서였는지, 무협 소설이나 무협 영화의 제목도 심심찮게 회자되곤 했었다.

물론 개중에는 무협소설이나 영화 따위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공부만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처럼 김용을 제 2의 참고서 취급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해야 하는데...실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어쭙잖게도 이제 무협소설을 제외한 장르소설을 들입다 판다.

그런 의미에서 좌백이 더 이상 읽을 게 없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철학적으로 무장하고 실존적 질문들을 던져대는 그의 몇몇 작품은 참 재밌게 읽었다.

그의 단점을 꼽으라면, 장편(아니 대하)소설을 몇가지나 벌여놓고 너무 오래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그의 지병으로 인한 것이 되었든 나름의 사정이었든 간에, 그 기간이라는 것이 독자가 설레이며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넘어섰다.

 

이번 단편 무협 소설집은,

그간 좌백의 무협소설을 기다려온 이들에게 좌백이라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단편소설집이라는데서 그의 다양한 시도들을 입맛에 맞춰 골라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간 읽은 무협소설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비슷비슷한 줄거리와 내용을 살짝 비트는 것만을 가지고도 그만의 독특한 무엇인가로 만들어내는 묘한 재주가 있다.

 

ㆍㆍㆍㆍㆍㆍ추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것도 상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살인이 무서워서라는 것을. 그는 여태 한 번도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람도 못 죽이는 게 무슨 고수냐!"

 

옛적에 고수는 칼을 빼면 반드시 베었고, 손을 쓰지 않으면 모르되 한번 쓰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거두었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손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되는 것이었으니, 무술을 배우며 마음을 같이 닦는 것이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혹 모양으로 배우는 자도 있었던 모양이다.(14~16쪽)

 

화상이 그에게 맡긴 일은 사람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지방의 토호로 온갖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 하나쯤 죽여도 하늘은 죄를 묻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해 고통에서 해방되는 숱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했다.

실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사람이란 의외로 약한 존재라 적당한 곳을 적당히 찔러 주면 죽게 마련이라고 했다. 삶은 고해요, 산다는 것은 악업을 쌓는 일이다. 사람은 다 서로 뜯어먹으며 살고 있으니,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라도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라고 했다.(31쪽)

좌백이 추구하는건 무조건적인 권선징악이 아니라...다분히 인간중심, 나 중심적인 시각이다.

무술에 고수인 자가 사람 찌르지 못하는가 하면,

빌어먹고 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살기위해서라면...남을 죽여도 괜찮은가 '제법 진지하게' 묻고 있다.

 

"누가 그래? 어떤 놈인지 몰라도 뻥도 세지. 대개의 무림인은 당신이랑 똑같아. 뛰면 숨차고 땀나지. 담장은 원래 못 뛰어넘으라고 만든 거야. 그걸 왜 뛰어넘어? 문으로 안 들어가고 담장을 뛰어넘는 놈이 정신 나간 놈이지."(73쪽)

개념들을 살짝 비트는 언어유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이게 오히려 재미있다.

담은 못 뛰어넘으라고 만든게 맞지만,

문이 아니라 담장을 뛰어넘는 쪽이 조금 더 무림다운 feel인데 말이다.

 

그는 어쩜 이런 언어 유희를 구사하여 생기는 대립, 강조의 개념을 이용하여 주제를 드러내고 있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야수는 이렇게 살생을 하지 않지, 당연히. 놈들에게는 그날 먹을 고기만 있으면 되니까. 사람은 달라. 사람이니까 이렇게 살생을 할 수 있는 거다. 사람이니까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죽일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잔인해질 수 있는거다."(118쪽)

라고 하는가 하면,

"죽을 놈은 죽어야지요. 요즘 열 걸음 걸으면 죽을 놈 한 놈만 봅니까. 걸음걸음 죽을 놈투성이지요. 마음 같아선 그냥 확!"

"죽 놈과 죽 놈은 다르다. 그걸 구분하지 못하면 협객이 아니라 살인마야."(134쪽)

 

죽은 칼이라고 읽을 수도 있지만 죽이는 칼이라고 읽을 수도 있지...(172쪽)

 

인자무적이라는 말의 뜻을 생각했지. 인자는 무적이다. 참 좋은 말 아닌가. 보통 사람들은 인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 인한 사람이란 즉, 좋은 사람이고, 인격자니까 그에게 적대할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생각하지.(173쪽)

그게 아니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네. 그게 내 생각의 훌륭한 점이지.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 즉, 나는 인자무적이라는 말을 '인자는 무적이다.'라는 걸로 해석했네. '인자는 너무나 강해서 이길 자가 없다.'는 뜻으로. 검객이라면, 인자 검객은 무적 검객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174쪽)

'을'과 '일' '은'과 '일' 한 글자의 차이를 가지고 두드러지게,

또는 '인자무적'이라는 한단어를 가지고 해석의 관점에 따라 큰 차이를 만들어내...글 전체를 관통하는 글쓴이의 입장이 되게 한다.

 

이 책 전체의 제목이기도 한 '마음을 베는 칼'이라고 했을 때 '세치 혀'를 떠올렸었다.

사람의 혀는 때론 뾰족하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기도 하고,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작가가 얘기하려고 했던 건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읽어낸 마음을 베는 칼이란 다른 어느것도 아닌 '자기 비하 내지는 자기 기만'이었다.

'자존감'과 '자존심' 경계도 잠시 넘나들었다.

 

펜이 되었든 칼이 되었든 간에, 몸과 마음을 '같이' 갈고 닦아야 한다는 전제도 물론이지만,

그와 더불어 도구를 ' 벼릴 준비가 되었나?'를 가늠할 수도 있어야 하겠다.

'잘'이란 '과하지도 하지도 않게' 이다.

흔히 애정이 넘쳐 술을 잔에 넘치게 따르는 것처럼 말이다.

 

단편 '마음을 베는 칼'의 경우, 겉으로 눈에 띄는 것이 아닌 자기 내면과의 싸움이다 보니,

스케일이 큰 무협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갈등의 굴곡이 작게 느껴져...좀 맹숭맹숭할 수도 있겠다.

난 비슷한 내용으로 고민해봐서 그런가...제대로 감정이입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어르신 자신이 바로 그 칼입니다. 말로, 행동으로 제 마음을 베어 버리셨죠. 그 상처로부터 회복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궁극적인 검의 경지인 심검에 당했다는 사실은 오늘 이 자리에서야 깨달았습니다."(173쪽)

 

ㆍㆍㆍㆍㆍㆍ하지만, 칼이란 뭔가 특별한 게 아닐까. 그릇이나 식칼보다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르다는 의미에서. 크게 보면 무기도 도구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릇과는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전문적으로 목숨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인 것이다. 무기라는 것은.(260쪽)

 

위와 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침은 어떠한가?

얼마전 에이즈도 뜸으로 치료할 수 있다던 구당 김남수의 침사자격증이 허위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그렇다면 30여 년동안을 자격증도 없는 사람에게 침을 맞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침은 사람의 몸에 있는 혈(穴)을 찔러서 병을 다스리는 데에 쓰는 의료 기구이지만, 잘못 찌르면 칼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절삭력이나 이런 건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기라고 할까, 아니면 공명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ㆍㆍㆍㆍㆍㆍ.칼의 울림이 손을 통해서 척추까지 전해져 찌르르 울리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 있긴 있더군요. 전통 일본도에는."

울림이 손을 통해서 척추까지 전해져 찌르르 울리게 만드는 이런 느낌은, 공명만 된다면 칼 뿐이 아니고 침이나 펜에서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요번 좌백의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는 '살기(殺氣)-남을 해치거나 죽이려는 무시무시한 기운'가 아닐까 싶다.

무사라면 누구나 살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그 살기를 적절하게 갈무리하고 살면 고수가 되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하수가 되는거다.

'마음을 베는칼'의 그 어르신은 살기를 잘 갈무리하여 심검을 구사하는 걸로 묘사되고,

또 사도(死刀)와 활검(活劍)에서 친구 간에 '베고 베이고'는 또 어떻고 말이다.

이러니, 언어 유희를 구사하여 생기는 대립, 강조의 개념을 이용하여 주제를 드러내는...역설의 미학을 제대로 사용한다고 혀를 내두를 수 밖에~

 

易擊胡蝶 難擊落葉

"나비를 베기는 쉬우나 낙엽을 베기는 어렵다ㆍㆍㆍㆍㆍㆍ. 무슨 뜻의 글귀입니까?"

ㆍㆍㆍㆍㆍㆍ

"아, 뭐 진짜 벌것 아닌데. 제 개인적인 무언武言이라고나 할까."

무언이라면 무인이 무술에 대해 깨달은 바를 표현하는 말이다.

 

"왜, 나비는 살기를 감추고 가까이 검을 움직여서 꼬드긴 다음 벨 수 있잖아. 하지만 낙엽은 떨어질 때까지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 그러다 보면 다른 생각도 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해서 아차 하고 떨어지는 순간을 놓쳐 버린다는 거지. 별거 아니야."(272쪽)

 

내가 일상에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 듯한 구절이 있어서 옮겨 보자면 이렇다.

 "대체 도사가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장선생

 "능력자가 있긴 하지만 그런 분은 잘 안 보이죠. 하지만 허풍쟁이는 셀 수 없이 많고 사기꾼도 그만큼 많다ㆍㆍㆍㆍㆍㆍ고 하면 대답이 되려나요."

 윤기자

 "그냥 전통 무술이라고 하면 장사가 안 되니까 거기에 자꾸 신비한 색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군 할아버지 때 보필했던 풍백, 우사, 운사가 쓰던 무술이라고 하는 것도 본 일이 있으니까요."

 "재밌네요."

 곽사범.

 "재밌기만 하면 다행인데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으니 문제지.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다 보면 뇌에 산소 부족 상태가 일어날 수 있거든. 이게 단전호흡을 하다가 부닥칠 수 있는 부작용의 원인인 건데, 처음에는 환각 상태에 빠지고 심각하면 죽기도 해. 숨 쉬는 걸 잊어버려서. 나도 한 번 체험한 일이 있어. 작정하고 산에 올라가서 백일 수련을 하던 때의 일이지. 산 정상의 바위 위에 앉아 단전호흡을 하고,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수련도 하던 때ㆍㆍㆍㆍㆍㆍ.근데 하루는 수련을 마치고 밤중에 산을 내려오는데 눈앞에 내가 밟아야 할 곳이 밝게 보이는 거라. 흰 페인트로 그려 놓은 것처럼 점점이. 여길 밟고 뛰어서 저기로 갔다가 그 아래로 뛰고 하는 식으로. 그렇게 했더니 정말 되는게 아니겠어. 평소 두 시간은 걸리던 하산길이 단 30분 만에 끝났지. 단전호흡이 어떤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어. 위험할 때가 더 많아서 탈이지. 그러니 단전호흡을 시도할 때는 책 보고 혼자 하지 말고 요즘 많이 있는 큰 단체들 있잖아, 거기서 여러 사범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나아.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하니까."

ㆍㆍㆍㆍㆍㆍ

"저, 그 하산법은 그다음에 또 시도해 보셨나요?"

ㆍㆍㆍㆍㆍㆍ

"다리 부러졌지."

웃고 말았다.(274~275쪽)

 

암튼,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얘기하라면 '고마움'쯤 되겠다.

기존의 그를 잃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고마웠다면 고마웠달까?

단편이라서, 그의 다양한 시도들을 입맛에 맞춰 골라 읽을 수 있었던 건 덤 쯤으로 여겨도 좋을 것 같고...

(개인적으로 호흡이 긴 대하소설 류를 좋아하지만, 완결이 안됐다고 툴툴거릴 일도 없고 말이다.)

 

그대로라는건 발전하고 나아지지 못했다는 의미니까...도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묻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좌백은 아주 복잡하고 자세한 설명은 독자가 머리 아파 대충 건너 뛸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대충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황당무개함을 자랑으로 하는 무협소설이라지만 여전히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김용의 작품들을 예로 들어 보면...비슷한 설정, 비슷한 내용 뿐 아니라 무술도 같은 무술이 두번 등장하지 않는다.

 

'자객열전'을 생각나게 하는 '신자객열전'이나,

'이백'의 '협객행'에서 출발하는 '협객행'이나,

'레베르테'의 '검의 대가' 모티브에서 출발하는 ' 쿵푸 마스터'따위의,

비슷한 설정, 비슷한 내용에서 출발하여 이런 글을 써낸다는 것은 보통의 내공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고,

자신감이 있으니까 이런 모험을 불사하는 것임을 이제 난 알겠지만 말이다.

 

매년 하얗게 골짜기며 나무를 뒤덮는 눈이 내린다고 해서,

작년에 내린 눈과 올해 내린 눈이 같지 않고,

어제 내린 눈과 오늘 내린 눈이 같지 않듯이...

어떤 눈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릴것이고,

어떤 눈은 나뭇가지를 덮어 새순을 돋게할 봄눈일 수도 있다.

 

그가 마음껏 벼리고 펼쳐놓으면, 나는 그의 재주를 신비한 눈으로 감상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그가 잠수한 동안 툴툴거릴게 아니라 같이 아가미를 키워야 하고(이건 아닌가 보다~ --;)

내가 손 놓고 쉴 일이 아니라, 감상할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하려나?

아니, 어쩜 그건 눈이 아니라 마음에 관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감상은 어쩜 '시간'에 관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잠든 듯했던 여인이 일어나 문밖에 붉은 등을 내걸고 술청 안 곳곳에 있는 초들에도 불을 붙였다. 불빛을 따라 일렁이는 그림자들이 햇살 대신 바닥을 쓸었다.

 

"바람이라. 그래 바람일 수도 있지.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곡식의 생장이나 사람들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그런 존재가 우리니 바람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냥 우리가 한번 쓸고 가면 남은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들고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며 사는 거지. 그게 그들과 우리의 차이였던 것이지."

 

그가 구사하는 이런 미문도 당근 매력적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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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2-08 14:15   좋아요 0 | URL
몸과 마음을 같이 갈고 닦기 위해 수영 강습 등록하고 왔어요. 몸이란게 신기하죠. 30년 만에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갔는데, 30년 전에 배운 그 영법(자유영)이 단번에 되더란 말입니다. 이번 여름엔 정말 30년 만에 수영복 입고 바닷물에 한 번 들어가 보려는지 어쩌는지.. 흐흐

양철나무꾼 2012-02-14 15:03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전 한때 스킨 스쿠버가 엄청 배우고 싶어서...잠실 롯데월드 수영장을 들락거렸었어요.
거기 한쪽 구석에 스킨 스쿠버 전용 풀이 있잖아요.
열쉬미 노력했는데...폐활량이 넘 작아 중도포기했다는~ㅠ.ㅠ

저, 물이랑은 안 친한데...
잠수한다는 사람 찼으러 다니려고...아가미 키우는거, 이거 하난 잘할 자신 있습니다여~^^

올 여름엔 님 계신 곳으로 수영복 한장만 달랑 들고감 되는 거예요?^^

2012-02-08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2-14 15:13   좋아요 0 | URL

숲노래 2012-02-08 17:45   좋아요 0 | URL
좋은 바람
좋은 마음
좋은 하루
즐거이 읽은 책으로
따사로이 보듬으소서~

양철나무꾼 2012-02-14 15:20   좋아요 0 | URL
된장님의 댓글을 읽다보니,
저도 뭔가 '좋은'이랑 '~소서'따위를 넣어서 '덧글'을 달아야 할 듯~!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복 많이많이 받으소서~^^

2012-02-08 20:44   좋아요 0 | URL
흠. 눈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 인용문이 마음에 특히 남습니다.
저도 이런 아름다운 게 좋아요..^^

감상은 '시간' 문제. 그렇게 오래도록 기꺼이 기다릴 작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그 작가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꾸준히 책을 내 준다는 게 전제된, 그런 기다리는 상호 관계.. 좋아요.^^) - 전 가지지 못했지만요.

아가미를 키워 같이 잠수할까 하는 말에 ㅋㅋ-.

*참, 저 좌백님 알고 있었어요. 책은 안 읽어봤고.. 진산마님의 삼돌이이시죠...ㅎㅎ (인터넷에 대유행한 진산님의 <마님 되는 법> 알고 계시죠?!)

양철나무꾼 2012-02-14 15:40   좋아요 0 | URL
흰 눈에 관한 얘기는 인용문이 아니고 제 글이고요~^^
마지막 인용문, 바람 얘기 좋죠?

전 요즘 바람이나 햇살 따위 경계나 영역 없이...맘껏 오갈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저도 당근 진산 마님, 알고말고요~^^

재는재로 2012-02-08 19:25   좋아요 0 | URL
좌백은 이책말고 대도오 후속작 흑풍도하4권이후 책이 안나와서 4권마지막에서 대도오가 등장하는데 이케 책이 않나오서 책에 유성탄과 일행의 후일담이 나오죠 드라큘과 싸우는 역시 무인은 무로 자신을 나타내고 작가는 글로 자신을 나타내는 요즘의 양판과는 틀린 사람냄새 물씬한 무협의 향기가 그립어요

양철나무꾼 2012-02-14 15:56   좋아요 0 | URL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무협의 향기라...저는 '극악서생'이요~^^
1부는 열쉬미 읽었는데...2부는 못 읽었네요~ㅠ.ㅠ

마녀고양이 2012-02-08 19:44   좋아요 0 | URL
세상에.. 이제는 무협소설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자기한테 두손 두발 다 든다. ^^

하기사 나도 김용 읽느라 얼마나 밤을 지새웠는지, 김용 소설 출간된 것은 몽땅 다 읽었는데.
지금두 영웅문 1부 2부는 샀는데, 금전적 사유로, 3부와 녹정기, 천룡팔부를 못 사고 손가락 빤다눈.
아.. 갑자기 김용 생각난다, 사고 싶다.

양철나무꾼 2012-02-14 15:59   좋아요 0 | URL
내가 전공이 무협이었다고 얘기했을텐데...
부전공이 족보 그리기~^^

김용, 다 갖고 있지롱~
줄 수는 없고, 빌려 줄수는 있어.
비디오도 있는데...안 튼지 한참 돼서 화질은 장담 못한다는~ㅠ.ㅠ

oren 2012-02-08 20:42   좋아요 0 | URL
마지막 인용문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부분이 이 글의 제목과 딱 맞아 떨어지는군요..ㅎㅎ
* * *
"나도 젊었을 때는 대문에서 초인종이 울리면 "야, 무슨 일이 있으려나 보다"하고 기대했지만, 나이가 들어 인생의 참모습을 알게 된 뒤로는 똑같은 초인종 소리가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아, 무슨 골칫거리라도 생겼나?"하고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 - 쇼펜하우어

양철나무꾼 2012-02-14 16:08   좋아요 0 | URL
oren님을 보면 항상 놀랍고 존경스러운 것이,
어떻게 적재적소에 적절한 구절들을 찾아다 넣을 수 있는 것인지, 원~ㅠ.ㅠ

책 한권을 그냥 읽기도 힘든데, 이렇게 읽기는 더더욱 힘들 것 같습니다여~^^

비로그인 2012-02-08 21:39   좋아요 0 | URL
무협지와 학교 때 노트 이야기, 재밌어요. ^^

좌백은 글을 잘 쓰는군요. 아니면 나무꾼 님의 해설을 따라 읽어서 그런가요? 저도 마침 얼마 전에 '말로도 사람을 벨 수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한 번 베이고 나면, 피해야겠지요? ^^;;

양철나무꾼 2012-02-14 16:31   좋아요 0 | URL
전 좌백 같이 온기가 느껴지는 글이 좋아요.
님과 제가 같이 좋아하는 애니 프루나, 재스퍼 포드 같은 경우...다 따뜻하잖아요.
manci님의 글도 예전엔 그랬는데~~~
요즘 통 볼 수 없으니...이사 잘 하시고 빨리 컴백하세요.

한번 베일때 아프지, 두번째부턴 내성이 생기겠죠?
곪고 덧나지 않는다면 흉터나 옹이는 때론 영광스런 훈장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요.
넘 교과서 같은가요, ㅋ~.

알케 2012-02-09 10:53   좋아요 0 | URL
좌백의 문장 좋죠. 저도 좌백의 다음 작품 기다리다 늙어죽을 기세 -.-;; 제 기준 좌백의 명작은 <대도오> <비적유성탄>.. 흠...제가 생각하는 무협 중단편의 백미는 이재일의 <칠석야>입니다. 언제 기회되시면 이재일의 작품들 장편 <쟁선계> 같은, 보시길 권해요. 트루기..캐릭터..서사구조가 완성도 높죠.

양철나무꾼 2012-02-14 16:38   좋아요 0 | URL
아, 이재일 기억해 둡죠.
전에 '제프리 구루물 유누핑구'때도 엄청 바람만 잡으시고 트랙백 안거시는 바람에 땡스투 없이 CD구입했습니다.
이재일 찾아보니, 칠석야 절판입니다.
트루기, 캐릭터,서사구조 완성도...요번에도 엄청 바람만 잡으시고, 쫌 밉습니다여~ㅠ.ㅠ

쉽싸리 2012-02-09 11:32   좋아요 0 | URL
소싯적에? 무협지 참 많이 읽었는데요. 그때는 만화방에 무협지도 함께 취급했지요. 손바닥 정도 크기에 세로쓰기였던 것 같아요. 와룡강(생?)이라는 필명의 작품을 많이 보았죠.
좌백의 것은 만화로 나왔던 작품 몇 개를 본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2-02-14 16:48   좋아요 0 | URL
전 만화방에는 못가봤지만 손바닥 크기 세로 쓰기 무협지는 알아요.
이쯤이면 쉽싸리 님과 제 소싯적이 같은 때인가요?^^
좌백이 만화로도 나왔군요?
전 글로만 읽어놔서리, ㅋ~.

루쉰P 2012-02-09 12:50   좋아요 0 | URL
루쉰P야, 루쉰P야! 뭐하니? - 죽었니, 살았니? 왠지 제목이 저를 부르는 듯 해 오랜 시간의 침묵을 깨고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ㅋㅋ 전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숨을 고르고 있는 중 입니다. 여전히 양철댁님이 보내주신 책을 노려보며 손을 델 까 말 까 하고 고민 중이며, 어둠이 찾아오는 관리사무소 안에서 스스로의 그림자는 어디에 있을까? 앉아서 사색을 하며 살아 있음에도 죽음을 느끼고, 죽음 속에서 삶의 기척을 찾아내고 말리라 결의를 하는 하루 하루의 일상입니다. 음...너무 멋있게 썼네요.

저도 무협지는 정말 많이 읽었죠. 하찮은 자신에 비해 무협 소설의 주인공도 처음에는 하찮았으나 점점 강해지는 그런 모습을 읽으며 대리 만족을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저도 읽지 않고 있지만, 양철댁님의 글을 읽으며 자신을 벗어나려 했던 제 모습을 발견하네요. ^^ 전 걱정 안 하셔도 될 정도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게 교주의 능력이지 않겠습니까! 교주라고 하면 이 정도의 상처는 쪽팔려서라도 버티고 일어나는 법. 무림의 고수는 아니어도 이 정도의 능력은 있는 교주이니 걱정마삼. ㅋㅋㅋ

인생은 무협지처럼 저에게 절세 무공을 전해 주는 사람은 없으나 무협지처럼 스펙터클 하니 이 몸 하나 건사하지 못 하겠습니까? ㅋ 오늘도 하루를 보내며 절찬리 무공 연마 중입니다. ㅋㅋㅋ

양철나무꾼 2012-02-14 16:58   좋아요 0 | URL
ㅎ,ㅎ...역쉬 교주님이셔요.

루쉰P야, 루쉰P야! 뭐하니? - 죽었니, 살았니?
이 다음 버젼도 알고 계시죠?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쿵짜라 쿵짝~!

제겐 절대무공도, 무림의 고수도, 능력 있는 교주도...다 필요없는거 알까요?
치열하게 몸무림치시는 중이어도 괜찮고, 몸무림치시다가 넘어지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그렇게 그 자리를 지켜주고 계신것만으로 족할 따름이니까요~^^

2012-02-09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4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2-03-17 14:37   좋아요 0 | URL
좌백은 무엇인가 묘하게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허무함 가운데 통쾌함이랄까 아니면 통쾌함 속의 허무함이랄까? 좌백의 여러 작품 중에서 가장 좌백스러운 작품을 꼽자면 전 천마군림을 꼽습니다. 다만 거의 10년이 되어 가는데 미완으로 머물러 있죠. 구룡쟁패의 시나리오 작가도 했었습니다. 좌백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그 회사에서 잘리기를 원했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좌백이 너무 게으른지라, 그의 부인도 그다시 생활비로 구박을 하지 않는 편인지라 경제적인 위기와 배고픔을 겪어야 글을 쓴다는 것이었죠. 아마도 꽤 오랫동안 천마군림은 꽤 오랫동안 7권이 안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