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5월은 노동절과 함께 시작된다.
때문에 나같은 평범한 사람은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라도 읽으며,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따위를 꿈꾸어야 하겠지만,
1년 열두달 연예계의 소식이나 소문 따위엔 별무관심인 나도,
노총각의 대명사인 김제동은 '이 봄 과연 결혼을 할 수는 있을까?' 따위가 궁금해도 좋을 만큼,
청춘남녀의 핑크빛 얘기가 만발한 계절이기도 하다.
지난 번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의 인세는 기부를 했다는데,
요번 <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의 인세는 결혼자금으로 쓰겠단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그래서 책 한권을 읽고 제대로 속물 노릇을 하기로 했다.
'어깨동무'라든가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따위를 김제동이 얘기하려는 방향으로가 아니라,
내 맘대로 해석해 버리는 우를 범하기로 했다.
뭐, 아무렴 어떤가?
똑같은 물을 먹고도 뱀은 독을, 소는 우유를 만든다는데...
책 한권을 인문학서로 읽든, 연애지침서로 읽든...
김제동을 어떻게 올 봄 노총각 신세를 면하게 하는데 심정적으로 일조를 하는데 의의를 두고 읽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님, 말고~--;
보통 이런 인터뷰집을 읽게 되면 인터뷰이의 이야기에 주목을 하게 되지,
김제동 같이 인터뷰어의 목소리에 주목을 하게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차근차근 되짚어 읽고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느라고 자꾸 속도가 늦어졌는데,
그렇게 그렇게 한박자 쉬어가며 읽다보면 어느새 그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 들어,
왜 우리가 그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지,
그의 한마디 말이나 행보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지, 를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이를 축복이라고 하는 거야. 서로 땡기는 것도 축복이지만 서로 전혀 안 땡기는 것도 축복이야.(136쪽)
김제동이 상대를 향하여 농담처럼 눙치는 이는 이효리이다.
그냥 농담처럼 뱉어내지만, 이 부분에 아주 심오하고 중요한 철학이 담겨 있다.
아무리 절절하고 좋은 감정이라도 상대와 같아야 축복일 수 있는 것이지, 서로 어긋날땐 그렇지 않다는 거다.
전혀 안 땡겨서 서로 밀어내는 감정이어도 상대의 것과 내 것이 같다면 오히려 축복일수도 있겠다.
*ㆍㆍㆍㆍㆍㆍ봉사하러 모인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정말 행복하더라.
->나도 그래. 봉사하면서 만난 친구와 예전에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와는 유대감이 완전히 달라. 의지하는 마음도 생기고, 동지 같다는 느낌도 있어.ㆍㆍㆍㆍㆍㆍ그냥 나와서 웃겨주고 즐거움을 주던 연예인이 안 보여서 서운하다가 아니라, 나와 뭔가를 함께 하던 동지를 잃은 안타까움을 주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느끼는 희열은 달라. 게다가 그 목표나 신념이 내 자신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것일 때 내 마음속에 채워지는 보람, 그 느낌이 너무 좋아.(139~140쪽)
*ㆍㆍㆍㆍㆍㆍ그래. 원망이나 미움이 고마움으로 바뀌는 순간 네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낀 거네? 사랑받을 때가 행복하니, 사랑할 때가 행복하니?
->당연히 줄 때가 행복하고 좋지. 내가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뭔가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피해를 감수하면서 희생했던 기억이 없었거든. 그래서 지금 행복해.(141쪽)
이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김제동과 이효리의 유대관계만은 아니었다.
김제동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주를 가졌다.
이런 저런 인터뷰이들이 다수 등장해서 산만해질 우려가 있음을 인식해서 였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뷰어로써 인터뷰이들에게 얻고자하는 대답의 포인트를 제대로 집어서 묻는다.
이미 질문이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고, 질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떤 대답들이 등장할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인터뷰집을 읽게 될 다른사람들에게 적어도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 역할을 자처한다.
봉사에서 함께하는 동지라는 개념을 끄집어내고,
그런 것들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신념을 끄집어내고,
신념의 밑바닥에는 '공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까지 이끌어낸다.
내자신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것일때 내 마음 속에 채워지는 보람을 '봉사'라고 한다는 것과,
원망이나 미움이 고마움으로 바뀌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
사랑을 받을때보다 사랑을 할때가 행복하다는 것 따위를 강요가 아닌,대화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끄집어 낸다.
'밑줄 쫙, 별표 다섯개, 돼지꼬리 꽁약' 해서 김제동 앞에 놔주고 싶었던 부분도 있었다.
김제동이 아직까지 결혼을 못한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인터뷰이가 하정우라서 더 그럴듯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전 저쪽에서 아니다 하면 '찌질'해지기 싫고, 한편으론 저쪽의 확신이 없는데 내가 표현하는 건 이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면 편하게 해줘야 한다 싶고 ㆍㆍㆍㆍㆍㆍ.
->그러면 안 되는데ㆍㆍㆍㆍㆍㆍ. 생각을 바꿔야 해요. 일단 결실을 맺고 편하게 해 줘야지, 그 전에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206쪽)
또 하나 깨달았다.
일단 결실을 맺고 편하게 해줘야 한단다.
그전에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단다.
이건 언젠가 도인이라 불리우는 이와 나누었던 깊은 속과 넓은 맘, 이 얘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싶다.
속이 깊다는 것은 한가지 사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고,
마음이 넓다는 것은 넉넉하게 둘러 감싸안아 그 안에서 맘껏 펼치고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모두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기준을 갖고 경계를 나누었을 때 의미가 있겠다.
경계를 나누기 전에, 결실을 맺기 전에 편하게 해주는 건 무관심이지 배려가 아니다.
어쩜 너무 편안해서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해주는 분도 흔치 않죠. 어쨌든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정우 씨가 가진 그릇의 크기이자 복이죠.(210쪽)
하정우를 향하여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김제동이 멋져보이는 순간이다.
김제동이라는 그릇의 크기도, 그가 가진 복의 크기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이런 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가 빚어낸 그릇의 크기이고, 그가 지은 복의 크기만큼 되돌려 받고 있는 것임을 알겠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정우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식물이 되는 느낌이란다. 자신을 달구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존재, 모든 것이 휩쓸리듯 속도감 있게 들고 나는 현실에서 자신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가 그림이란다. 처음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남들이 볼까 창피해 하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 그 자체의 가치와 매력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단점에 연연하지 않고 장점을 통해 자신감을 찾는 에너지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212쪽)
이 구절은 하정우와의 대화후 느낌을 다시 옮겨적은 부분인가 보다.
하정우의 말을 그대로 옮겨적은건지, 김제동이 약간 가감하여 적은건지 모르겠지만...
내겐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멋진 부분이었다.
살면서 누구나...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결여를 느끼게 마련이고...
그런 현실에서 자신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그리하여 자신을 달구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매개로써의 무엇인가를 갈구하게 되는데,
그게 하정우의 경우 그림이었단다.
사람에 따라서는 음악이나 책이, 또는 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시선을 타자에게서 자기 자신에게로 옮아가는 순간,
다시말해 자기 자신이나 남의 단점을 찾기보다는,
가치와 매력과 장점을 찾고 계발하는데 에너지를 집중하는게, 긍정적이고 발전적이고 건설적이라는 얘기인 것 같다.
아닌가? 아님 말고~--;
그중에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사람은 도현이 형이죠. 그리고 이승엽의 홈런 한 방이고요. 제 목표가 도현이 형이나 승엽이 같은 사람을 자꾸 확대해 나가는 것이죠. 친해지는 것을 확대해 나간다기보다 저 사람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도 아마 나만큼 기쁘지 않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승엽이가 홈런 치면 잘은 모르겠지만 나만큼 기쁘지 않을 걸, 도현이 형('나는 가수다'에서) 1등 했을 때 그 속에 안 들어가 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나처럼 기쁘지 않았을 걸, 이런 범위가 확대돼 나가는게 바로 제 행복이 확대돼 나가는 거니까요. 자아가 느끼는 기쁨을 자꾸 확대해 나가고 싶은 거죠.(249쪽)
김제동의 이 말은 은연 중에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기쁘면 그 (또는 그녀도) 기쁘고,
내가 행복하면 그 (또는 그녀도) 행복하다는...
아기가 잘 먹는 걸 보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엄마마냥 포만감을 느낀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요 며칠 아빠와 같이 움직일 일이 있었다.
아빠가 너무 행복해 하시니까, 나로선 별로 흥미롭지 않은 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행복이 내게까지 배어 물드는 느낌이었다.
행복이 배어 물들 수 있으려면 매질이라는 조건이나 환경이 같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었는데,
뭐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슬프고 안타까웠던 건, 이땅의 많은 대학생들이 학자금대출에 신경을 쓰느라고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업, 아르바이트, 과외, 집...을 되풀이 하는 것으로도 빡빡한 그들에게 동아리 생활이나 연애는 요원하다 싶었다.
*그럼 이번 학기 마치면?
호산) 또 휴학해야겠죠. 그렇게 휴학해도 학자금은 대출로 해결해요.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한 달 하숙비가 40만 원이고 학자금 대출이자 10만 원에 휴대폰 요금 내고 용돈 쓰면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이 들거든요. 등록금은 졸업하고 어떻게 되겠지 생각해요.
ㆍㆍㆍㆍㆍㆍ
소현) 학교에 종종 선배들이나 유명한 분들이 특강을 오세요. 그분들 말씀이 열심히 공부하면서 열심히 놀라고 해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그런데 진짜 말도 안 되죠. 전 동아리 생활도 못해요. 수업, 아르바이트, 과외, 집. 이게 끝이거든요. 다른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곧 방학인데, 방학 때도 잠자는 것 빼고는 빡빡하게 계획 다 세워놓고 살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