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그리모의 특별 수업
엘렌 그리모 지음, 김남주 옮김 / 현실문화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매일은 아니어도 출근할때 종종 지나다니는 길이었지만, 길 옆으로 공터가 있는 줄도 몰랐었다.

엊그제 보니 그 공터에 이런저런 꽃과 풀들이 싱그럽게 피어올라 자라 나고 있었다.

꽃과 풀이라고 여겼던 건 눈여겨 보니 상추, 고추, 호박...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 사이 보랏빛 예쁜 꽃이 내 발길을 붙들어 잠시 멈추어서 보니, 

그렇게 이쁜 보랏빛으로 피었던 건, 

거창한 이름의 꽃이나 풀들이 아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고 또 먹기도 하는 흔하디 흔한 가지의 꽃이었다. 

내 발길을 붙들었던 것이, 가지의 꽃이었다는 사실이 어떤 깨달음을 줬다.

쉽게 접하게 되고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는 가지라는 거무튀튀한 채소의 꽃이 그렇게 예쁘게 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순간,

행복이 뭐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내가 마음을 열고 눈 떠 바라보기만 하면...행복은 우리 옆에 늘상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깨닫게 되었달까?

 

그리고 그 무렵 '엘렌 그리모'의 특별 수업'을 읽게 되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어느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는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여자가 늑대와 같이 뒹구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녀를 알게 된게 음악을 통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보다 한살 많은 그녀의 곡에 대한 해석이 깊으면 얼마나 깊겠으며, 음악 세계라는 것이 방대하면 얼마나 방대하겠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나이에 관계없이 매혹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그럴 경우 대부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렇게 매혹적인 인물로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부모나 스승 등 숨은 공신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이 책은 여행기의 성격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여행기인지 소설인지,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인지 상상한 바를 쓴 글인지, 도통 모르겠었다.

그녀는 피아니스트이긴 하지만, 글도 수준급이어서 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고 성찰하게 하는 바도 컸었다.

때문에 경계를 나누다보면,

그녀를 피아니스트로 분류해야 될지 글을 쓰는 작가로 분류해야 될지 혼란스러워지는데,

이런 느낌을 연예인 구혜선과 첼리스트 장한나에게서도 받았었다.

예술도 종교처럼 어떤 경계를 넘고 나면 하나로 통하고 연결되어 있어서,

마치 성긴 그물 망을 자유자재로 왔다갔다하는 바람이나 공기와도 같아서

경계를 나눠 이름 붙이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었다.

 

암튼, 그녀는 피아니스트로 이름 붙여졌다.

피아노 곡을 해석하다 슬럼프에 빠지게 되고,

극복하기 위해 오른 여행 길 위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과 보대끼면서 얻은 깨달음을 '특별 수업'이라고 명명한다.

 

살면서 내가 보통 이상의 넘치고 과분한 복을 받았다고 느낀 경우가 세번쯤 있었는데,

좋은 부모, 좋은 스승, 좋은 친구를 만났구나 싶었을 때...

그들을 통하여 습관처럼 물들기도 하고, 보고 배우고 익히고 가르침을 받기고 하고,

닮고 싶어 흉내내다 은연 중에 스며들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나를 한뼘 성장시키고 나아지게 한다 싶어 무한 감사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엘렌 그리모 - 그녀는 나랑은 좀 다른데,

"스스로 배우는 것이고, 스스로 배우는 것은 스스로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 아찔한 공부로부터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고 얘기하며 그녀 자신 내부에서, 그녀의 음악에서 행복을 찾아내려 하고 있었다.

부모나 스승이나 친구에게 배우는 것이됐든, 스스로 배우는 것이 됐든 이 모두 '도를 닦는 과정'이고,

어떤 형태로든 배움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으면 그걸 '득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부모나 스승이나 친구를 통하여 배우고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경우라서,

여느 때는 책도 사람 못지 않은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라서,

스스로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거니와 스스로를 가르쳐서 나아질 것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나랑은 좀 달랐고,

그래서 독특했으며,

이미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는 느낌 -'득도'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나랑은 다르게, 득도했거나 도통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은,

고백하자면 이 책을 시작부터 한참 난해하게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몇 번을 되풀이 해서 읽고, 툴툴거리며 주위 사람에게 의견을 물은 후에야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내가 원하는 소리, 공격적일 정도로 절실하지만 명징한 동시에 어둡게 남아 있는 그런 긴박하고도 직접적인 소리를 끌어내야 했다.ㆍㆍㆍㆍㆍㆍ소리? 당연히 명료해야 하지만 물리적인 공격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람을 휘감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16쪽)

예를 들면, 위의 문단에서...

그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명징(깨끗하고 맑다)한 동시에 어둡게 남아있는 그런 긴박하고도 직접적인 소리'라는게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명료한 소리가 물리적인 공격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람을 휘감지 말아야 한다'는 부분도 그랬다.

여기서 이렇게 얘기되어지는 곡은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 C플랫 단조이고, 그 중 3악장은 우리에게 장송행진곡으로 알려져 있다.

 

암튼 번역이 이상한 건지 아님, 엘렌 그리모 - 그녀가 애시당초 이상하게 쓴건지 종잡을 수 없지만~--;

"그렇지만 정말 멋진 직업이지요! 특히 평범한 교사에서 한 사람의 '스승'이 되는 마술 같은 순간엔 더욱 그렇지요. 청년기의 우울한 하늘에 담황색 번개 같은 빛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되는 거죠."(42쪽)

 위의 문장도 도대체 뭐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낙원이 원래의 에덴동산 낫다는 데 내기합시다.(47쪽)

->그 낙원이 원래의 에덴동산보다 낫다는 걸 두고 내기합시다.

위 문장은 이 정도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50쪽의, '어떤 청년과 처녀가 있었답니다.' 란 문장에서도 청년이란 단어보다는 '총각'이란 단어가 적절할 것 같다.

사전을 찾아보면, '청년'의 뜻으로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 나이가 20대 정도인 남자를 이르나 때로 그 시기에 있는 여자를 포함해서 이르기도 한다.'라고 되어있는 반면,

'처녀'는 '결혼하지 아니한 성년 여자'라고 되어 있고, 내가 제시한 '총각'은 '결혼하지 아니한 성년 남자'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제가 되찾고 싶었던 건 죽음이란 걸 모르는, 순간과 그 평화, 시간의 음악, 다시 말해서 침묵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의 무구함이었어요."

"더 이상 삶을 사랑하지 않았었나 보죠?"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경솔함을 후회했지만, 그녀는 그 말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금은 죽음을 아는 상태이고, 죽음이란걸 몰랐던 그때로 돌아가 천진난만, 순진무구하게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녀는 '그동안 삶을 사랑하지 않아 딱 죽고 싶었다가 다시 살고 싶어진거냐?'고 묻고는 이내 후회하나 보다.

 

이런 부분은 트집을 잡자면 끝도 한도 없을 것 같으니 이쯤에서 끝내야 할 것 같다.

 

암튼 이 책의 내용 '특별 수업' 과 직접 연관이 있는 내용을 발췌 요약해 보면 이렇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공부하고 심화시키는 데 만족하지 말고, 적절한 때에 전인미답의 것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열의를 배움이라고 하는데, 배움의 과정엔 열의와 헌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엔 현재 있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 겸손과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오만을 가져야 한다.

 

또 좋은 학생(=최상의 것을 성취하는 학생)을 순간을 타는 곡예사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도 재미있다.

 

이전의 지식을 답습하는데 만족하지 않는 학생,

그렇다고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만들어내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학생,

현재 존재하는 걸 포착할 채비가 되어 있는 학생,

순간의 신비를 관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 등이 좋은 학생이란다.

"아! 교육!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답니다!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ㆍㆍㆍㆍㆍㆍ얼마나 큰 자기희생이, 상호적인 희생이 필요한지요. 교사는 자기 학생을 억누르지 말아야 하고, 학생은 교사를 배신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상호 교환, 신뢰, 타인에 대한 사랑 속에 헌신하는 걸 뜻합니다. 자기희생이란 상대에게 주는 것이지만 또한 상대가 주는 것을 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스승은 수련이 끝났다고 판단하면 제자를 떠나보냅니다. 이런 떠나보냄 속에는 자신을 넘어서 달라는 권유가 담겨 있지요.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이런 청출어람이 없다면 그 전수는 실패인 셈이고, 나아가 그와 관련한 인류의 발전은 없는 셈이지요."(46쪽)

그녀가 교육을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해서 좋았던 점 한가지는,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에 이르기까지...상호신뢰만이 아니라 상호희생도 필요하단

다.

난 한번도 교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질 못했었다.

언젠가 한학기 가르칠 기회가 있었는데, 엄청 스트레스였었다.

내가 아는게 열개라면 열개를 다 내어놓으면 안될 것 같아서 쭈삣거렸을 뿐더러,

그나마 개중 몇개라도 내놓으면 허전하고 헛헛해져서는 다시 책을 들입다팠었다.

그런데, 모두 나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기가 가진 걸 하나라도 더 내어주고 싶어하고,

자신을 뛰어넘는 제자를 배출하는데서 보람을 찾는 그런 스승도 존재하기는 하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희생이란, 상대에게 주는 것이지만 또한 상대가 주는 것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는 의미도 그랬고...

청출어람 청어람 관련, 수련이 끝났으면 제자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부분도 내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새의 날개를 꺾어 곁에 두려 하기보다는 편히 쉬었다가 날아갈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한다는 시의 한구절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당신은 스승에게서 특별한 그 무엇을 기대했나요?"

"오! 그럼요.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지만요. 저는 어떤 전수, 어떤 깨우침을 기대했어요. 제게는 깨우침이 필요했어요. 새로운 세계로 나와야 했던 만큼 스승이 저를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게 해주기를 기대했지요."(54~55쪽)

 

실은 윗 부분은 '스스로 배우는 것이고, 스스로 배우는 것은 스스로를 가르치는 것이다.'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스스로 가르치고 스스로 배우는 것이라고 얘기할 때는 언제고, 스승에게 무언가를 기대고 의지하고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 저는 기다리고 있어요. 적어도 바라고 있지요. 솔직히 말해서 제 기다림은 줄곧 막막한 채로 남아 있지요. 하지만 막막한 기다림이야말로 인간존재의 특징 아닐까요?" 하고 말하며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다림 없이는 인내할 수 없으니까요. 고백하건대, 저는 언제나 조바심을 내는 편이랍니다."

"무엇을 기다리는데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음악을 더 잘 해석하는 거죠. 작품의 열쇠를 찾는 것, 그럼으로써 사랑을 찾는 거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ㆍㆍㆍㆍㆍㆍ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습니까, 마드무아젤? 당신은 음악을 해석하는 것 이상으로 그걸 경험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56~57쪽)

 

내가 아둔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걸 경험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라는 문장에서 '그걸'이 가리키는 게 무엇일까 혼란스러웠다.

그게 '기다림'인지 '인내'나 '조바심'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지...

그러다가 61쪽에 이르러 '음악을 경험해 보라는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그 곡을 연주하면서 나는 음악의 진실이란, 음악을 통한 실존의 진실이란 행복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행복의 비극성을 단숨에 간파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기쁨과 행복은 고통과 삶 사이의 화해, 죽음이 제기한 그 모순적인 일치에서 생겨난다는 것을.(68쪽)

설정 자체가 그런 것이겠지만, 그녀가 여행에서 이런저런 누군가를 만나다는 것도 그랬고,

그렇게 만난 누군가와 똑 참하게 적절하고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도 번역과 더불어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저는 릴케의 <어떤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를 막 읽은 참입니다. 그 편지의 수신인인 마그다 폰 하틴베르크는 시인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늘의 해나 꽃 핀 나무처럼 그저 존재하는 대신 뭔가를 요구하지요. 자연은 '그 대신 무엇을 줄 것인가?'를 묻지 않은채 인간을 키워주는데 말입니다. 당신은 그저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둘도 없는 행복이라는 것을 자각할 줄 아는 누군가를 아직 만나지 못하신 것 같아요. 스스로가 자기 실존의 성취이자 약속인 만큼 자신이 성취한 것 속에 결여된 것이 그저 존재하는 데 있다는 걸 깨닫고 있는 누군가를 말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왜 당신이, 당신과 나눈 행복한 대화가 떠올랐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지요.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이 창조해 낸 작품을 좀 더 잘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요.

 ㆍㆍㆍㆍㆍㆍ

 우리는 또 자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지요.경험에 의거해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아니 당신의 기다림에 특별히 걸맞은 자유의 정의를 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유란 몸을 통해 그 몸에 국한되는 것 이상의 힘을 만들어내는 것, 생각을 통해 그 의식에 국한되는 것 이상의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을 다른 말로 정신이라고 하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정신은 육체와 더불어 살고, 육체는 정신과 더불어 삽니다. 다시 말해서 정신이 삶을, 자신의 삶을,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육체는 정신을, 자신의 정신을, 지금 여기의 정신을 살아야 하는 거죠.

ㆍㆍㆍㆍㆍㆍ음악을 경험한다는 것은 우선 당신의 삶이 음악의 연장선상에 놓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드무아젤.(93~95쪽)

이 부분은 언뜻 보기에는 인간과 자연의 대비처럼 보였지만,

찬찬히 읽다보니 스승과 제자의 대비, 또는 좋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대비로도 읽혔다.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그들의 존재는 하나의 강을 이루는 많은 지류처럼 나에게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는 순간 일종의 공생 관계가 작동되기 시작한다. 내 존재가 사랑하는 이들의 생각과 심장과 음악과 풍경과 시선으로 화한 것 같은 영매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가 어떠하든 간에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고 당신이 결코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나의 영혼은 서로 닮아 있다. 자유로운 가운데 영원히 그러하리라.(105쪽)

부모나 스승이나 친구 등 어떤 이름으로 불리워도 상관없지만, 자연과도 같이 아무 조건이나 요구사항없이 나를 키워주는 이가 존재하기는 한다.

그런 이와 나의 영혼은 어쩜 서로 닮아 있을 지도 모르고,

그런 이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만으로 엄청난 행운이자 행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불현듯 내가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를 사랑하므로,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대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은 좋지만 실상과 달랐다. 그것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다.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든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든, 시작되었다고 해서 상호적인 강렬한 친밀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 관계는 줄곧 가꾸어나가야 한다. 관계의 설정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내어줄 것도 없다. 귀한 관계일수록 - 늑대와의 관계는 얼마나 경이롭고 귀하며 특별한가 - 깨어지기 쉽고 통제하기 어려운 법이다.

 사고나 파경을 피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볼더의 그 사전을 통해 나는 특정한 행동 양식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이후 우리에 들어갈 때면 나는 언제나 그 규칙을 되새긴다. 머릿속에 내가 아닌 늑대의 표현방식과 리듬과 관점을 주입시킨다. 늑대가 내게 보여주는 우정의 표시는 멋진 선물이다. 하지만 늑대가 아무리 너그럽다 해도, 심지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다 해도 나로서는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나는 어떤 순간 관계에 극도의 집중력을 기울이는 법, 온 신경과 근육을 강하게 긴장시키는 법을 배웠다. 늑대와의 관계에서 효과적이었던 이 방법은 음악과의 관계에서도 유효했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언제든 무력감이 솟구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절망이 엄습할 수 있다. 그럴 때면 온 힘을 기울여 자신을 통합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환기시켜야 한다. 그런 빛살, 그런 열정, 그런 문장 없이는 자신 안에서 그 무엇도 완벽해질 수 없다. 내게는 그것이 음악과 늑대인 셈이다.

 어떤 행위 속에, 어떤 생각 속에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해서는 강한 에너지와 견고한 믿음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 모든 상황, 무수한 상황들을 모두 통제한다는 것은 충족시키기 어려운 바람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 없이 기적은 과거에도 일어날 수 없었고, 지금도 일어날 수 없을 터.(134~136쪽)

이건 언젠가 내가 고민했던 Let it be와 Let it grow의 관계랑도 닮았다.

대상이 사람이 됐든지 동물이 됐든지 간에 시작을 하기만 했다고 해서 상호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건 아니다.

시작을 했으면 줄곧 일정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거다.

적어도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건 긴장이라는 말로 대치되어도 좋을텐데...

끊어지기 일보직전까지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 당기는 활시위가 아니라,

적당히 통통 튕겨지는 경쾌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잘 조율된 현의 그것이고...

그건 적당히 가슴 떨리는 설레임이고,

그런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만, 저는 감상적이지 않은 사랑을 본 적이 없답니다."

"정말 딱한 분이군요!" 하고 하마터면 나는 입 밖에 내어 말할 뻔했다.

 ㆍㆍㆍㆍㆍㆍ

"문학 속에서나  영화 속에서 감상이 아닌 사랑을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현대 회화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거기서 보이는 것은 욕망과 쾌락과 기쁨과 섹스, 나아가 자기애 뿐이죠. 자기 파멸에 정도의 자기 열중과 자아도취 말입니다. 또한 비명과 고뇌와 고독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뇨? 대문자로 시작되는 특별한 사랑은 제가 생각하기에 이 시대의 퇴물입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죠. 우리 시대는 현대적 형태의 사랑에 대한 훌륭한 실전 매뉴얼을 만들어냈으니까요."

"무척 신랄한 말이군요."

"하지만 현실을 반영합니다. 지금 이 세상이 그렇거든요."

 ㆍㆍㆍㆍㆍㆍ

"저는 삶이 제게 주는 것에 만족할 뿐입니다."

"당신 말에 따르면 사랑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무엇에 만족한단 말인가요?"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좋으니까요. 이도 아프지 않고 마음도 아프지 않다면 말이죠. 제겐 아스피린도 있고 향정신성 약도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골칫거리를 찾아나서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누가 사랑 같은 걸 한답니가? 혹시 사랑을 하는 이가 있다 해도 사랑이 무슨 보상을 해준답니까? 실리와 선의 중에 무엇이 최고일까요? 나아가 생각해 보십시오.. 선의 곧 사랑이 지성의 증거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지요? 반박하려 하시지 마세요. 아니란 말입니다."

"당신 말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옳은 건 아니에요. 사랑이란 잘 모른다고 해서 과소평가할 게 아니거든요.사랑은 언제나 자신의 은신처, 자신의 거점을 갖고 있어요."

 ㆍㆍㆍㆍㆍㆍ우리는 이제 타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할 뿐입니다. 버스나 열차나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셨습니까? 아무도 먼저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모두 자기 가방을 움켜쥐고 단추를 목까지 꼭꼭 채우고 있습니다. 타인이 공포의 대상인 겁니다. 이제 우리는 말을 건네는 것조차 겁냅니다. 더 이상 마음대로 말할 권리도 없는 겁니다. 이게 누구의 잘못이겠습니까?"(155~157쪽)

좀 길지만 이 부분을 옮겨 적은 이유는,이 책 처음에 나왔던 그녀의 가치관이 이랬었기 때문이다.

이랬던 그녀가 여행 길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깨달아가고, 그걸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한다는 설정이 작위적이지만 의미는 충분히 있다.

"ㆍㆍㆍㆍㆍㆍ그 이듬해 여름, 저는 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었습니다. 천사의 날개가 갑자기 꺾이고 말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재앙인 이 사건을 통해 저는 제가 어디 있는지, 제가 처분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음악도, 예술도 처분할 수 없는 것이 아님을 단숨에 깨달았습니다. 그것들은 처분 가능한 것이었지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은 제게도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 가장 깊숙한 우리 존재를 환기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저는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긴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을 위해 살지는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는 가장 기본적인 것만으로 만족하고 살겠다는 생각으로 파리를 떠나 고향인 함부르크로 돌아왔습니다.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기본적인 것은 정말이지 적더군요.그런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저는 희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재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유 말입니다."

"자유라고요?"

"그렇습니다. 자유, 다시 말해서 원치 않는 것을 사랑으로 거부하고, 원하는 것, 받아들일 만한 것을 받아들이는 선택권 말입니다. 저는 불필요한 것들에서 벗어나 빛에 도달했습니다. 사고가 있기 훨씬 전부터 제 눈은 이미 멀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악착같이 스스로를 채우려 들었고, 제 경력이나 찬사, 자아도취로 변한 그 절대적인 완벽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려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줄곧 가속기를 밟고 있었습니다. 그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그와 더불어 저 자신도 휩쓸려 가는 그런 흥분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단번에 음악이 제 몸을 통해, 제 마음을 통해 되돌아오더군요. 번개처럼 말입니다. 이제 저는 매일같이 연주를 합니다만, 오직 저만을 위해 연주합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 어느 때보다도 훌륭한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ㆍㆍㆍㆍㆍㆍ

"혹시 당신의 슬픔도 그 연원이 같지 않을까요?ㆍㆍㆍㆍㆍㆍ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제가 완벽을 추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제가 완벽을 추구했던 건 음악을 구현해 내는 제 능력을 믿지 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슬픔은 사물을 뒤쫒는 데에서 생겨납니다. 진실을 뒤쫒고, 음악을 뒤쫒고, 낙원을 뒤쫒는 데에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자기 밖에서 찾습니다. 거기에는 그것들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것들을 찾기 위해서는 영혼의 명징 속으로, 우리 존재의 내부 속으로 깊숙이 침잠해야 합니다. 피상적이고 경박한 세상이 들어오도록 당신이 방치한 바로 그 균열을 틈타 슬픔이 찾아옵니다.ㆍㆍㆍㆍㆍㆍ"(235~237쪽)

이 얘기의 화자는 아까 바로 위와는 또 다른 사람이지만, 이것 또한 여행을 떠나기 전의 그녀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에게서 이런 얘기들을 듣는 것도 그렇고,

그걸 흘려버리지 않고 자기 삶에 대입해 비교하고 반성하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전반이 의미가 있다.

 

그녀의 여행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주는 구절들이 있는데,

그러니까 나는 내 집에, 내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 세계를 여행한 셈(241쪽)이었고,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닫아 건 코모의 그 청년과 다를 바 없었다(243쪽)는 걸 깨달았으니 그걸로 충분한 거다.

 

책의 끝부분에 가면, 그녀는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처음 그녀가 '스스로 배우는 것이고, 스스로 배우는 것은 스스로를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어깃장을 놓은 것은 아래의 깨달음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나를 풍요롭게 해주고 각성시켰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웅장한 교향곡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면 그런 심오한 관점이, 청중이 없는 그런 연주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서로 나누지 않는다면 사랑, 예술, 음악, 자연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성인이 광야에 있다면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완벽한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244쪽)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청중은 아닐지라도,

내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나무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됐든, 예술이 됐든, 음악이 됐든, 자연이 됐든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오늘 한권의 책을 허름하게 읽을지라도,

같이 읽고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행운이고 행복이지 싶고,

그 누군가와 그런 관계를 시작하였다고 해서 상호적인 친밀감이 생기는 건 아닐진데,

그 관계를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 함께 노력한다는 사실이 더 행운이고 행복임을 알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트랑 2012-07-03 23:1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읽어본 관계로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저는
그리모를는 철학자로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녀의 연주 역시 철학자다운 면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제게 그리모는 건반위의 철학자이고
성스러움을 주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알브레이트 마이어는 베를린 필의 오보 수석이라고 그러더군요
그의 독집 앨범도 국내에 들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주들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들...하데요^^
이 페이퍼에서 그리모와 마이어의 연주를 듣으니
참 좋습니다.. 양철나무꾼님..

글샘 2012-07-04 07:19   좋아요 0 | URL
무지 많은 생각들을 담고 있는 글이네요. ^^
엘렌 그리모의 여행이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현주 목사님의 '물과 나눈 이야기'처럼, 자기 생각을 표현하려는 창작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꼭 여행지에서 만난 그 사람들은 진짜 실존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자기 마음과의 대화일 수도 있잖을까요?
행복을 찾으러 꼭 어디로 가야할 필요가 없는 것 처럼 말이죠.

하늘바람 2012-07-04 09:56   좋아요 0 | URL
가지는 꽃도 보라색이군요
넘 곱네요 가지꽃은 첨 봐요

나는 불현듯 내가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를 사랑하므로,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대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은 좋지만 실상과 달랐다. 그것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다.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든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든, 시작되었다고 해서 상호적인 강렬한 친밀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 관계는 줄곧 가꾸어나가야 한다. 관계의 설정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내어줄 것도 없다.


저 부분의 내용이
참으로 많은 밤을 속상하게 했던것같습니다

2012-07-06 0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7-06 06:29   좋아요 0 | URL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못 배우고 못 가르치기 때문에,
언제나 '내'가 '나한테' 가장 좋은 스승이자 제자가 돼요.
양철나무꾼이 둘레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한테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느끼지 못하더라도 양철나무꾼 스스로 '좋은' 마음과 생각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마음으로 바랄 때에 찾아오고,
생각으로 지을 때에 찾아나서요..

2012-07-06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의 상식』에서 조선의 4대 명산으로 금강산과 지리산과 구월산과 묘향산을 꼽으며 서산대사의 의견을 빌어 그 중 최고가 묘향산이라고 한 까닭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통해서도 에울러 짐작된다. 소설의 한 대목에 작중 인물이 금강산과 묘향산을 비교하다가 "금강산에서는 간혹 사람이 상하기도 하지만 묘향산에서는 그런일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덜 다치고 덜 상하게 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덜 상처 주고 덜 상처받는 것이야말로ㆍㆍㆍㆍㆍㆍ좋은 삶이 아닐까?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며칠째 '김별아'의 '괜찮다, 우리는 꽃 필 수 있다'를 들고 이리저리 떼굴거린다.

난 '김별아'의 소설은 잘 모르겠는데...

지난 번에 읽은 산행에세이와 겹쳐 요번 에세이도 찰기어린 것이 먹고 나서 한참 후까지 든든하고 속을 平하게 해주는 찰밥을 먹는 것 같다.

그림도 예뻐 찾아보니, 일러스트 정윤미라고 되어 있다.

솔직히 홈페이지의 것들은 책만큼은 아닌데,

책의 것들은 은근히 시선을 끄는 것이...화려하지 않지만 정겹다.^^

 

내가 이렇게 주절거리고 앉은 것은 "사람을 덜 다치고 덜 상하게 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덜 상처 주고 덜 상처받는 것이야말로ㆍㆍㆍㆍㆍㆍ좋은 삶이 아닐까?"하는 저 구절 때문이다.

그냥 생각했을때는 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 덜 상하게 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라는 저 말이 그럴듯 한데,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니까, 그렇다.

'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 덜 상하게 한다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인간 중심의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자연은, 산은...명산이라는 수식어 따위는 애초에 관심도 두지않았었는데,

인간들이 그들의 편한대로, 그들의 편리대로, 그들에게 이로운 대로 맘대로 이름붙여 놓은게 아닌가 싶다.

 

사람을 덜 다치고 덜 상하게 한다는 건, 기준이 사람이었을 때에만 '덜과 더'를 구분할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자연이나 산은, 사람이 덜 다치고 덜 상하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연 그대로인것이다.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사람이 덜 다치고 덜 상한다는 건...

자연이, 산이...잘 품어갖는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너무 깊고 깊어 웬만한 사람이 접근할 수조차 없어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않고,

그래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어 명산이 되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산세가 험해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상하게 하고 자시고 할 것없이 전혀 품어가질 수 없어서 천형 그대로의 산세를 간직하고 있게 되는 것도...자연이나 산의 입장에서는 명산이 될 수 있는 조건이다.

 

갑자기 언젠가 아침  손석희 방송에서 들었던 산악인 엄홍길님의 말이 생각났다.

 

 

 

 

 

 

 

 내 가슴에 묻은 별
 엄홍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3월

 

 

저는 그 동안 많은 8000미터의 산을 도전하면서 수 없이 많은 생과 사를 넘나들었거든요. 진짜 그 과정에 여려 명의 동료들을 잃고 그런 사고를 경험하고 50대를 경험하면서 좌절도 경험하고, 제 자신도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경험하면서 생각할 때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은 어떤 제가 이런 저런 일에 대해서 더 얘기하자면 8000미터 고도라는 것을 만났을 때는 인간의 능력으로 밟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은 결국 산이 저를 받아 줘야하고 산이 허락해야하고, 신이 저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히말라야 모든 어떤 산이든지 마찬가지기 때문에 저는 모든 산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산에 올라갈 때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산에 올라가야지, 순리를 역행하고 거기에 어떤 욕심을 내고, 사심을 가지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절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질 때에야 산이 선택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항상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이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진인사대천명을 들먹이는 것도...

너무 나이 들어 진인사대천명을 얘기하는 것도...부족하거나 넘친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러고보면, 어쩜 나는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의 시기가 아니라,

'그대들 맘껏 꽃 피워라. 심도를 충분히 낮춰 배경이 되어주겠다'의 시기인것도 같다.

 

무엇이고 사람 위주의 입장에서 바라봤을때는 '덜과 더' '부족하거나 넘치는'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해야 했던 것들인데,

입장을 조금 바꾸어 자연과 산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 보았을 뿐인데, 참 한없이 넉넉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명산의 자리에 '좋은 사람'을 대입해 보는 것도 재미  않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2-06-24 22:24   좋아요 0 | URL
명산...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덜 상하게 하는 산이라..
끄덕끄덕~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군요.^^

다비치의 이해리네요? 순간 이해리의 옆모습만 보고서
예전에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의 장혜리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네요.ㅋㅋ
개인적으로 이해리의 목소리 참 좋더라구요.
책도 책이지만,나뭇꾼님은 노래 선곡도 참 잘하세요.

2012-06-24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6-24 23:02   좋아요 0 | URL
야~ 내가 좋아하는 이해리다~ ㅋ 다비치 좋아요~~ ^^

좋은 사람도... 인간의 욕심으로 얻을 수 없는 거군요. ^^ 그렇네요...

숲노래 2012-06-25 05:23   좋아요 0 | URL
사랑스레 살아가면 좋은 사람이겠지요..

사랑스레 누릴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으면 좋은 산일 테고요..

cyrus 2012-06-25 21:33   좋아요 0 | URL
저는 세월이 변해도 늘푸른 녹음을 유지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줄 주는 아는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요.
글 마지막 이해리 노래 잘 듣고 갑니다. ^^

차트랑 2012-06-26 00:36   좋아요 0 | URL
높은 산을 오르는 분들께서
자연을 대상으로 도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사적으로는 안타까운 표현이라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자연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
인간 스스를 자연에서 소외시키고 있는 것 같아서요^^
자연과 인간은 괴리되어야 할 관계가 아닌데 말입니다.

자연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용어가
저는 바로 그 도전이라는 용어에서 출발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생각을 할 때가 더러 있답니다.

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어떤 산을 명산이라 말하는 것 처럼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페이퍼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난 그동안 세 종류의 나무들을 모두 보리수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혼동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빨갛고 조그만 열매가 열리는 보리수,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에 나오는 보리수,

그리고 부처님이 그 나무 아래에서 해탈하였다는 보리수,

어떤 때는 보리차를 끓이는 그 보리까지 이 보리로 혼동할 때가 있을 만큼...

백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도 타성에 젖어있을 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예가 없었다.

 

먼저 슈베르트의 가곡에 나오는 나무는 원어로 Lindenbaum이고 해석이 보리수로 되어있지만 오역으로 보인다.

Lindenbaum은 피나무류이지만, 보리수나무가 됐을때는 밑에서 단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Lindenbaum정도 되어야 그래도, 가지마다 많은 추억이 걸려 있는 우물가 나무 곁을 지나 마을을 떠나는 한 실연한 젊은이의 심정이 될 수 있다.

샘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스쳐가는 나뭇잎들의 수런거림 등이 묘사된 이 노래를 수없이 부르고 들었지만,

결국 절실하게 부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부처님이 해탈하였다는 나무는 보리수가 아니라, 인도 보리수라고도 불리우는 '반얀나무'이다.

멀리서보면 수천그루가 모여 숲을 이룬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숲은 단 한 그루의 반얀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얀나무 가지들은 위로 올라가다 구부러지는데, 그 구부러진 가지가 땅에 닿으면 다시 뿌리가 되어 번져 나간다고 한다.

단 한그루로 숲을 이루는 나무.

그런 나무 밑에서 부처님은 해탈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곽재구의 이 시집 '와온바다'를 만났다. 

 

 

 

 

 와온 바다
 곽재구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2년 4월

 

 

 

 

와온바다가 먼저였는지, 선암사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아님, 그 둘다 아니었을 수도 있고, 그 둘 모두 였을 수도 있다.

 

나무

 

인간인 내가

인간이 아닌 나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모르는 이들은

만행 중인 바람이

나무의 심연을 헤적인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나무는 제 앞에 선 인간에게

더덕꽃 향기 짙은 제 몸의 음악을

고요히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나무는 춤을 출때

잎사귀 하나하나

다른 춤의 스텝을 밟는다

인간인 당신이 나뭇잎 속으로 들어와 춤을 출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러다가 홀연 당신 또한

온몸에 푸른 실핏줄이 퍼져나간 은빛 이파리가 된다

 

인간이 아닌 나무가

인간인 내게

시를 읽어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땅에 누우면

당신도 나란히 나무 곁에 누워

눈보라가 되거나

한 소쿠리 비비새 울음이 된다

먹기와집 마당을 뒤덮는 채송화 꽃밭이 된다

 

 

이 시를 읽다가 선암사 와송이 보고싶다는 생각을 주체할 수 없어 어쩌지 못할 무렵,

시인은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간 듯

'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이란 시를 '짜잔~'들고 나타난다.

 

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

 

내 마음이 가는 그곳은

당신에게도 절대 비밀이에요

아름다움을 찾아 먼 여행 떠나겠다는

첫 고백만을 생각하고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때 나는 조용히 웃을 거예요

알지 못해요 당신은 아직

내가 첫여름의 개울에 발을 담그고

첨벙첨벙 물방울과 함께 웃고 있을 때에도

감물 먹인 가을옷 한벌뿐으로

눈 쌓인 산언덕 넘어갈 때도

당신은 내 마음의 갈 곳을 알지 못해요

그래요 당신에게

내 마음은 끝내 비밀이에요

흘러가버린 물살만큼이나

금세 눈 속에 묻힌

발자국만큼이나

흔적 없이 지나가는 내 마음은

그냥 당신은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난 '와송'하면 꼬리를 물고 생각나는 나무가 있는데, 그게 이 페이퍼를 시작하며 장황하게 늘어놓은 '반얀나무'이다.

 

나는 일찍이 사람이 나무뿌리 같은 걸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나무뿌리 또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한심한 생각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이날 밤 나는 사람이 나무를

사람이 밤 열차의 쓸쓸한 뿌리를

사람이 먼 밤하늘의 별과 별들의 노래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노인의 빛나는 뿌리를

누운 채 바라보며 생각했다

                                   '반얀나무' 중 일부


참, 이상하게도 난 시인이 '와온바다'를 노래하는 그 순간에도 선암사와 그 곳을 버티고 섰을 (이름을 아는 와송과 이름을 모르는 그 밖의...) 나무들이 생각났다.

 

근데 또 참 이상하게도 시인은 어떤 이유에선지, '반얀나무'를 '벵골보리수'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러가며 시를 쓴다.

ㆍㆍㆍㆍㆍㆍ

나무의 긴 팔 하나가 나를 붙든다

나무 이파리들이 한숨처럼 가벼이 흔들린다

작은 벌레들이 나무 이파리의 가장자리를 고요히 갉고 있다

우리는 떠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한몸으로 바람 앞에 뒹구는 것도 아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인연의 눈이 있다

ㆍㆍㆍㆍㆍㆍ

서로 연결된 끈은 지니지 못해도

시체를 하루 세 끼 먹을 열정은 지니지 못해도

너는 가난한 내 시를 기억하고

너는 나와 함께 떠나지 못하는

세상의 어느 곳이든 함께 있는 마음 안에 머물 것이다

                    '구근이 가게 앞 벵골보리수에게' 중 일부

 

시인에게 나무는 엄마 대신의 위안일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시도 있다.

ㆍㆍㆍㆍㆍㆍ

어릴 적엔 햇살이 나무들의 밥인 줄 알았다.

수저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맞이하는 나무들의 식사시간이 부러웠다

 ㆍㆍㆍㆍㆍㆍ

                                         '무화과' 중 일부

이렇듯 바다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바다는 또한 바람이기도 하다.

이 얘기는 바꾸어 말하면, 나무는 바람이기도 하다는 거다.

그리고 시인은 그런 바다와 나무와 바람을 하나인듯 넘나든다는 거다.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바로 전에 읽은 안도현의 시집과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곽재구 시인의 그것은, 사평역에서 때도 치열하다기 보다는 따뜻했지만...

요번 시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따뜻하다고 해서 치열한 것보다 덜 묵혀둔 것도 아니고 덜 우러나온 것도 아니라는 걸 이 시집은 보여준다.

오히려 삶의 구비구비에서 만날 수 있는 체험과 연결되어 시쓰기의 밑거름이 되는 동시에

체험이 없는 자기복제야 말로 경계하여야 할 것임을 오랫만의 시집으로 보여준다.

이 부분이 안도현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너무 잘 쓰려 욕심부리지 않아서라고 해야 하려나?

 

밀어

 

달천에서 상봉 오는 길에 돌개바람이 불었다

주꾸미구이집 플라스틱 의자가 바람에 날아갔다

나무들에서 푸른색 열매가 우수수 떨어졌다

나무와 바람은 억센 포옹을 하는 듯도 보인다

저런 식의 밀어도 우두커니 사랑스럽다

어린 열매를 다 떨군 뒤에도 바람은 나무 곁에 머물며 해와 달의 비늘을 반짝일 것이다

 

참 소박하고 작지만, 그래서 예쁜 시도 있었다.

 

여뀌꽃밭에 사는 바람은

 

키가 작고

얼굴도 작고

손도 작아서

 

내가 그이의

작은 손을

가벼이 잡을라치면

 

마른 풀밭 위

무릎을 접어야 하는데

 

그때쯤엔

그이 또한 환히 웃으며

내 눈썹 위

어린 초승달 하나를 띄우기도 하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시는 '칠카하르'라는 시였다.

'칠카하르'는 네팔과 가까운 인도의 국경도시란다.

 

칠카하르

 

 당신이 나를 이곳에 오라 불렀나요? 칠카하르, 어두운 불

빛들이 이제 막 도착한 새벽 열차를 향해 뽀얀 입김을 불어

넣어주고 송장처럼 나란히 누운 산 사람들의 막막한 꿈을

바라보고 있네 길, 시간, 운명, 세월......사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삶의 눈망울들은 파란 밤하늘 곳곳에 땀띠처

럼 솟구치고 어디선가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거적을 끌며

오네 너무 많은 것을 당신에게 주고 싶었고 그보다 많은 것

을 당신에게 받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병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알았지요 천천히 새벽 열차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어둠속에 송장처럼 누워 바람이 기

차의 레일을 쓰다듬는 소리를 듣습니다 칠카하르, 당신에

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삶

이라면 난 차라리 당신에게 어둠이 레일 위에 튀기는 고요

한 불꽃들을 보여드리지요

이 시를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신들의 봉우리>라는 소설이 생각났고,

그 소설의 주인공 산 같았던 사나이 '하부'가 남겼던 마지막 말도 생각났다.

 

그렇다.

이미 온 힘을 다하고 있을때는 힘내라는 말은 할 필요도 없고 들을 필요도 없다.

말이 필요없을 때 진정 필요한 것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말이 필요없을 때 진정 필요한 것은 레일 위를 튀기는 고요한 (하지만 미욱한) 불꽃들을 '보여'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정 위로가 되는 건 말이 아니라, 소박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행동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 말이 필요없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이 한마디의 위력은 믿는다.

"꿈꾸어 봐~"

내가 '꿈꾸어봐'라고 했더니, 어떤 이는 '상상해'라며 '하부'의 원전을 들이대는데 말이다.

상상이 불가능할 것 같은 그 막막한 순간에도 꿈꾸는 건 가능하다는 이 시'칠카하르'를 읊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꿈길 밖에 길이 없다는 황진이의 '상사몽' 버젼이기도 하고 말이다.

 

암튼, 인도 기행 후 쓰여진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일초들>이 생각나게 하는 시 '우리 곁을 흘러가는 따뜻한 일초들'도 좋았다.

하루 24시간을 초로 환산하면 86,400초란다.

 

우리 곁을 흘러가는 따뜻한 일초들

 

미스티 가게 앞

자전거를 멈춘 연인들은

 

세월이 잠시 그들 곁에

멈춘 것을 알지 못하지

 

페달 위에 올려진

푸른 밤의 발 하나

 

죽은 시인의 언어들이

페달 위에서 가벼운 탄식을 올리는 동안

 

남은 한 발이

지상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와 입맞춤하네

 

한초

한초

우리에게 남은 시간들은 흘러가지

 

당신이 내게

내가 당신에게

 

보낸

한초 한초를 싣고

 

우리는 또

반딧불이 날아오르는 산티니케탄 대로를 달려가지

 

때문에 당신이 내게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의 한초 한초가,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한초 한초가...

가장 따뜻한 시간이고,

오로지 우리를 위해 멈춘 시간이란 걸...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알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2-06-18 20:08   좋아요 0 | URL
웅산도 음반이 여러개군요. 딱 하나 같은 거 보여요.ㅎㅎ
곽재구의 '사평역에서'가 좋아 두고두고 읽었던 옛날옛적(ㅋㅋ)을 떠올립니다.
님이 가장 좋다시는 시도 좋으네요. 그의 산문집, 패스했었는데 읽어보고 싶어져요.
읽을 건 많고 눈도 아프고 힘은 딸리고,,, ㅋ 조용한 저녁에요, 양철나무꾼님^^

책읽는나무 2012-06-18 20:23   좋아요 1 | URL
비가 내려 멈춘 조용한 저녁에 참 잘 어울리는 페이퍼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시들도 좋지만,마지막 문구들이 순간 가슴 설레었어요.^^
웅산 음반 맨 첫 번째 것만 가지고 있는데 음반을 참 많이 냈네요?
노래 참 잘 부르는 가수에요.
편안하게 시도 읽고,노래도 듣고 가네요.
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글샘 2012-06-18 22:44   좋아요 1 | URL
너무 많은 것을 당신에게 주고 싶었고 그보다 많은 것
을 당신에게 받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병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알았지요(칠카하르)

페이퍼를 읽다 보니 내일 결근하고 확 선암사로 가고 싶은 생각이 몰려 옵니다...... ㅠㅜ

비로그인 2012-06-18 23:41   좋아요 1 | URL
때문에 당신이 내게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의 한초 한초가,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한초 한초가...

가장 따뜻한 시간이고,

오로지 우리를 위해 멈춘 시간이란 걸...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알지 못할 뿐이다.



저는 바다로 갈까봐요.. 확~~

하늘바람 2012-06-19 10:10   좋아요 1 | URL
아웅 마음을 흔드는 페이퍼네요 어떻게해요 책임지셔요^^

차트랑 2012-06-19 19:56   좋아요 1 | URL
시를 잘 읽지 않는 제게(이건 좀 별로인걸요)
시를 접할 기회를 이곳에서 접하게 됩니다.

저도 시를 읽지 않으면서
시를 읽지 않는 사회를 뭐라하곤 하지요..
시와 함께하는 삶은
결코 때묻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말입니다...


2012-06-20 23:37   좋아요 1 | URL
푸른 밤의 발이 얹힌 한 페달과 다른 페달의 대비가 눈에 들어옵니다. -시인이 탄식하는 일 초와 연인이 사랑하는 일 초가 번갈아 한 땀 한 땀 세월을 수놓고 있는 것.

오로지 우리를 위해 멈춘 따뜻한 일 초 일 초들.. 이 일 초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이렇게 헤매고 살지는 않겠지요.

오랜만에 왔어요. 양철님. 여전히 잘 계시는 듯 합니다. 페이퍼를 읽으니..^^
 

철학자 '김영민'은 사람들이 흔히'동무론'이라고 하는, '동무와 연인'이라는 책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었다.

그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겨레21'에 연재되었던 것을 한권으로 묶어 책으로 낸 것이라는데,

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품과 '수식어'라 불리우는 형용사나 부사의 사용을 남발하지 않아서 글이 소박하면서도 투박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봄날은 간다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요번에 책을 내셨다는 걸 좀 지나서 알게 되었고,

그랬던 터라 책의 내용까지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은 못하고 일단 책을 구하고 봤다,'봄날은 간다'

어째 제목부터가 그동안 접해왔던 철학서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딱딱한 것보단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게 낫지, 뭐~...

이런 말로 내 자신을 위로하기엔 제목부터가 너무 신변잡기적이었다.

앞의 몇 장을 들추다가 문체가 너무 낯설어, 내가 아는 그 '김영민'이 맞나 책 겉장 앞날개의 프로필을 한참 들여다 봤다.

철학자가 '봄날' 운운하며 날씨나 자연을 들먹이는 것부터가 생경하기만 했는데,

내용이 신변잡기 위주인 걸로도 부족해서 길이까지 짧은 것들이 많아...

그런 길이의 글로는 철학자 아니라, 철학자 할아버지라도 생각을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으로 펼쳐나가기 힘들것 같았다.

과연 글들이 날 것은 아닌지, 풋내가 나는건 아닌지, 뜸이나 들었는지, 상상력이 이리저리 널뛰기를 하는건 아닌지, 지나친 생략으로 심한 비약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익기를 놔두었다가 물러버린건 아닌지, 나의 걱정이 기우가 되길 바랄 뿐이었지만 솔직히 그마저도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수필집을 읽는 기분이었다.

어느 부분까지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누워 설렁설렁 넘기다가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고,

두번, 세번 거푸 읽고는 '서문'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내 곁의, 치자꽃에 물드는 것은 운명이다. 그 운명을 값싼 낭만주의로 벗겨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허영이다. 그러므로 내 물듦을 가장 낮게 예찬하는 것은 (R.지라르의 말이 아니라도) 겸허한 개종이다. 오직 그 개종에서야 치자꽃의 진정한 향기는 다시 피어오른다!

 

 

 

나는 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말보다 빠르게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 그 말은 다시 허영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음을, 오직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서 증명하는 것만이 유일한 개종이다.

 

내 선물은, 마치 내 편지처럼, 네게 너무 쉽게 전달되거나 영영 전달되지 않는다. 그 사이 선물은 온통 오해이거나 허영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방식 그 전체가 하나의 선물로서 (어느 순간, 휘영청!) 떠오를 때에만, 그 선물은 자신을 잊은 채 고스란히 네게 도착한다.                                                          ('치자꽃'  전문)

내가 두번, 세번 거푸 읽고 자세까지 고쳐 앉아 가며 다시 읽은 글은 '치자꽃'이다.

이 말은 곧 행동이나 실천이 동반되지 않은 말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고, 그걸 여기서 '허영'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말보다 빠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그럭저럭 너 없이 살아간다는 거다.

결국 빠다 발린 말(= 감언이설)이었고, 위 문단의 표현을 따르자면 '허영' 또는 '오해'이다.

행동이나 실천이 하나도 약속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저렇게 위험한 일인데,

그래도 한번쯤 감언이설을 꿈꾸는 걸 보니, 내 운명은 치자꽃에 물드는 것이든지 값싼 낭만주의 쯤은 두눈 질끈 감고 극복해 낼 수 있다는 배포인가 보다~--;

 

3. 산책은 술보다는 차(茶)와 같아, 혼자 걷는 게 좋다. 물론 혼자 걸으면서 '생각'을 하라는 게 아니다. 혼자 하는 생각은 대개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종종 자익적(自溺的)이다. '공부'하지 않는 이들에게 오히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산책의 요체는 오히려 생각과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거울의 바깥으로 몸을 끄-을-며 외출한다.

동무들과 나누는 산책의 기쁨도 결코 적지 않다. 하늘과 나무와 바람에다가, 다정하고 서늘한 대화까지 섞인다면 인생의 천국을 따로 구할 노릇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요체는 중용인데, 말이 걸음을 죽여도 곤란하고, 걸음이 말을 놓쳐도 안 된다. 다변(多辯)인 자는 말수를 줄여야 하고, 눌변인 자는 걸음에 의지해서 입을 벌릴 수 있다.

  

3-1. 그러면 동무가 아니라, 연인과 산책할 수 있는가? 내 답변은 '노'(努)! 즉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연인과 더불어 산책하기 어려운 것은, 우선 연정은 욕심이지만 산책은 의욕이기 때문이다. 양보, 눈치 보기, 그리고 들뜸은 모두 산책에는 치명적이고, 연정이란 무릇 의도의 옹두리에 얹혀 근근이 성립하는 것이니, 산책이라는 그 허소의 길과 어긋난다.                                     ('산책, 극히 실용적인 지침들' 중 부분)

그가 '봄날은 간다'며 우리에게 무덤덤하게 들려주고 있는 얘기는 언뜻 보기에는 붓 가는대로 쓰여진 신변잡기 위주의 글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런 글에서도 자연의 이치는 배어나오고 있다.

방심하고 잊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극도로 절제된 문장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인생과 인간이라 불리우는 것들의 존재의 의의를, 다시말해 자연의 이치를, 소위 '철학'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흔히 철학자들이라고 하면, 어려운 철학사상이나 철학이론 들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어여삐여겨서 쉬운 한글을 만들었다지만,

철학자는 어려운 철학사상이나 철학이론을 일부러 어려운 철학용어를 써서 구사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원어로 된 철학 사상이나 사람이름을 따라읽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난,

철학용어를 쉬운 우리 말로 풀어쓰는 건 엄두 내기 힘들더라도,

예를 일상 생활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적당한 쉬운 말이 없다면 자연에서 일례를 찾아 연관시켜서 생활에서 터득하게 하려 노력한다.

일상에서 깨닫게 되고, 깨달은 연후에야 비워내게 되는 그런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일상, 자연과 철학을 연결하는 그 비워냄의 매개가 그에게는 걷기로 대표되는 '소풍'또는 '산책'이다.

 

ㆍㆍㆍㆍㆍㆍ

인문은 한 치 타인을 포섭하지 못한 채 제 그림자 주위를 실없이 돈다. 볼테르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식은 심오한 방식으로 도덕을 불러오지 못하며, 선의와 계몽은 심오한 방식으로 동무를 불러오지 못한다.

 

'동무'는 무엇보다도 그 '폐허'를 피하는 길이었지만, 적조했던 동무 셋을 만나 맥주를 마시는 오늘, 다시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폐허의 속도를 무력하게 바라볼 뿐.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폐허' 중 부분)

 

계속 신변잡기 위주의 일상, 또는 자연만을 얘기하나 보다 했는데...어느 순간에 홀연히 본심을 드러낸다.

아무래도 그는 '인문'이 타인을 포섭하고 설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듯 하고,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물어 일상으로 대중 속으로 다가오려 한다.

그 일련의 노력 과정이 '산책'으로 나타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무는 그 '비워냄'의 노력이 '산책'이 될 수 있는 연유이다.

 

그녀가 내 사랑을 증명하라고 하였다. 차가운 달을 보면서 먼 길을 홀로 걸었다. 길은 무서운 곳이다. 길 위에 놓인 몸이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길의 기하학 위로 좌표 속의 사랑이 증명될수록 그녀는 점점 멀어진다. 식(蝕)이다! 증명하고 죽을 텐가? 아니면 길이 되시려는가?   ( '식(蝕), 혹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법(1)' 전문)

연정은 욕심이기 때문에, 연인과의 산책은 그저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는데...

노력은 시간이 개입된 일이고, 연정이 그렇듯이 사랑도 몸이 먼저 알아채는 것이 인지상정인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랑을 증명하라는 그녀 너머로 차가운 달이 보인다.

왠지 모르게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생각나고,

'시간이 좀 먹느냐?' 던 말도 생각난다.

시간을 좀 먹듯, 차고 이우는 달을 바라보며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것이 사랑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식(蝕), 혹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법(4)' 에서 시간의 벌레(蝕)와 함께 과거 속에 기억을 양도하거나, 부지런히 욕망하다가 벌레처럼 죽는 길...둘 중 하나라고 하였고 난 부지런히 욕망하는 '버러지(蝕) 과'인가 보다~--;

왜? 나의 사랑은 머리나 마음이 아닌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걸 보면 말이다.

적어도 나의 사랑은 몸으로 하는 것인가 보다.

 

암튼 나는 이 책의 저자 '김영민'의 가는 봄날을 스토킹 하였나 보다.

그는 오전 11시쯤 일어나 저녁 해질 무렵에 산책을 나갔다가 하루 일식을 한다.

일식의 반려로 차를 한다.

독신이다.

(여기서 독신은 제도로서의 혼인 여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일종의 장소이므로 장소를 대하는 방식에 의해 독신의 질이 결정된다고 한다.)

 

나는 나의 봄날이 가는 걸 아쉬워 하진 않는다.

다만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물고 비워내지 못한건,

그리하여 늘 욕심내고 더 많이 사랑하려 한건 후회하여야 한단다.

왜 증명하고 죽어야 하는가?

사랑하다가 죽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다.

 

오랫만에 읽는동안 우아하게 말하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책이고,

솔직히 말하면 변덕이 죽끓듯하며 읽었던 책이다.

 

 

언젠가 썼던 '동무와 연인'의 리뷰도 있어서 옮겨 본다.

 

 

 

 

 

 

 

 

 동무와 연인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3월

 

류종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도록 그노력을 함께 하는 사람을 '동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의 제목 <동무와 연인>을 놓고 한참 생각을 했다.

 

'서문'의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

가능하지만, 오히려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진 사연들을 일컬어 연인이라고 부른다.

가족을 버리지 않으면 스승을 따를 수 없었던 경험처럼, 스승 혹은 그 지평으로서의 도움의 가능성을 증명해주는 세속의 덕으로 우리 모두는 친구를 구하고 연인을 사귀며 가족을 얻어 다시 세속에 보은한다.'

를 보고,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버린 나는...

뭘 이렇게 길고 구구절절히 얘기해 놓았나 싶었으나,

<한겨레21>에 한동안 실렸던 글들이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들을 요약해 보면,

  • 동지:이성적 일체감(말)
  • 친구:정서적 일체감(몸)
  • 동무:이성적 일체감 + 정서적일체감(말+몸)

동지나 친구라면 몰라도, 동무가 되기위해선 둘 중 어느 하나만을 갖곤 충족시킬 수가 없는데...

몸으로 맺어진다는 게, (어릴 적 부터 친구가 아니구선)...

동성 간이라면 좀 힘들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동성애자가 되니까.

→그래서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라고 서문에서 얘기한다.

그리고, 이성의 경우는 연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데...

영원을 맹세하지만, 영원한 경우는 거의 없는고로...결혼 후에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불륜'으로 불리운다.

→그래서 '가능하지만, 오직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지는 사연'이 되는 것 같다.

 

결국,저자는 문장화하지 못하지만,최선은 동무,차선은 연인이라는 얘기다.

 

이러면서 여러가지 관계설정이 나오는데...

일반적인 '이성관계'에서 여자들은 육체로만 승부하려 했기에 '연인'밖에 될 수 없었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경우

'보부아르가 두려워 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여자가 아니라,'지적반려의 자리'였다.'

에서 알 수 있듯이...

'몸으로 맺어진 관계'즉 성욕 이후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지적반려'에까지 이르렀으므로 동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이책에서는,

<볼테르와 에밀리 샤틀레>의 경우도 동무의 범주에 집어넣었는데...그들의 말년을 제법 자세히 알고 있는 나로선 찬성하기 힘든 부분이다.

 

동성의 관계에서도,

<부처님과 가섭>의 염화시중의 미소나,

<유영모와 김흥호>의 관계처럼,

동성애가 아니고도 동무가 될 수 있었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이런 사제 관계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극복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기에,

'동무'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처럼 배신자가 될 수도 있다.

 

-무릇 아버지는 죽여야 하고,스승은 능가해야 제맛이다-

이걸 동무론 제1義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책이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은, 동무와 연인의 구별과 나열에 끝나지 않고 이상향을 제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타성에 젖어,

'연인의 살이 고기肉로 느껴질 때에도 그 고기를 다시 살로 되돌리는 법은 오직 말 밖에 없다.'

라고 얘기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 통하게 되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려 주고 하는 배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기다려 달라고 목놓아 부르짓는 김광석을 한번 떠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책을 읽은 느낌은...이정도로 정리하여야 하겠다.

'동무'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 불가능함을 뛰어넘어 '동무'가 된 경우엔 박수를 쳐주어야 하지만,

그외 경우에는 그냥 적당히 몸과 마음을 보대끼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자라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이 책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중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구절이 인용되고 있어 옮겨본다.

 

언어는 살갗이다.ㆍㆍㆍㆍㆍㆍ나는 그 사람(연인)을 이 말 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이 만짐을 얘기하며, 우리 관계에 대한 논평을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

 

 

 

 

 

 김광석 - 다시 부르기 1,2 [재발매] [2CD]
 김광석 노래 / 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

 2009년 7월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2-06-16 03:13   좋아요 0 | URL
사람 몸을 빌어 태어났을 때에는 즐겁게 살고,
몸이 기운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면 넋으로 예쁘게 사는 길도 있겠지요..

하늘바람 2012-06-17 10:49   좋아요 0 | URL
봄날은 간다 영화가 생각나네요.
그 영화 오래오래 기억에 남고 다시 봐도 마음에 여러가지가 남았는데
같은 제목으로 책이 나왔네요.
그러게요 이제 우리 봄은 아니죠
하지만 언제나 봄처럼 싱그럽게 살아요 님.

2012-06-20 23:46   좋아요 0 | URL
흠. 그러고보면 양철님은 어디서 이렇게 양질의 책들을 잘도 찾아내어 읽으시는지! 김영민님의 이 책, 예기치 않게 참 좋군요. 철학자의 수필인데, 여느 시보다 더 시예요.!
+ 이 페이퍼의 양철님 글도 좋아요. 기분이 상큼해졌습니다.
 

가계부는 쓴 적 없다.

직업과 관련된 업무 일지는 간간히, 케이스 스터디 노트는 맘 내킬때...

하지만, 낙서 식의 그림일기는 자주, 거의 매일 쓰다시피 한다.

 

배우 유준상의 유쾌하고 엉뚱한 일상 모험.

유쾌하고 엉뚱하면서도 일상을 벗어나지 않은 모험이라는 구절,

이게 유준상이 쓴 '행복의 발명'이란 책을 보게 된 이유이다.

그렇다면 유준상은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되었을까?

 

 

 

 

 

 

 

 

 행복의 발명
 유준상 지음 / 열림원 /

 2012년 5월

 

 

'배우는 일지를 써야 돼.'

유준상이 '아버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하는 안민수 동국대 석좌 교수의 이 한마디를 가슴에 새기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만의 '배우 일지'를 써왔단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행복의 발명'이라니...ㅎ,ㅎ~.

 

발명-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생각하여 만들어 냄

발견-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

 

한때, 발명과 발견의 단어 차이를 놓고 고민을 했었으니, 이들 단어를 놓고 착각했을리는 없고...

내가 행복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되짚어 보았다.

 

행복:1.복된 좋은 운수

       2.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우리는 해가 바뀌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건네게 되는데, 이때 '복 많이 지으라'는 말이 생략 됐다.

새해 복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복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것과 마찬가지로 잉과응보의 개념이다.

 

다시말해, 유준상은 행복을 길 가다가 어느날 그냥 우연히 얻어지는 소극적 개념의 것, 발견으로 보지않고,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처럼, 능동적이고 적극적 개념의 것으로 보았다.

거창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 행복은 노력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면,

새벽은 새벽에 눈 뜨는 자만이 볼 수 있듯이, 행복은 발견이 아닌 발명하는 것이다.

 

<이 책의 판매에 따른 인세 수입은 지은이의 뜻에 따라 전액 소외된 어린이를 돕는 일에 기부됩니다>

 

솔직히 책에서 위의 저런 구절을 보지 않았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책을 내는 세상이라며 툴툴거리고 읽으려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준상의 '배우 일지'가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아마추어적인 신변잡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생각이란 것이 하나로 고착되지 않고 이리저리로 넘나드는 것이, 유쾌하고 엉뚱하고 대책없어보여 좀 멋있어 보였지만...

그걸 배우의 그것이라고 놓고 봤을땐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하다 못해 소박하다 싶었고,

그의 글과 그림은 심지어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책을 낸게, 어떤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란게 보라색 문장으로 밝혀지는 순간...

(뭐, 너나 할 것 없이 책을 낼 수 있다...이런 교훈을 얻자는게 아니라,)

'일기 또는 일지'라는 건 어느 누구나 쓸 수 있는거고,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사는 배우라고 하여 꼭 '배우 일지'라는 삶의 기록조차 휘황찬란하지는 않다는 거다.

다만, '일기나 일지'를 통하여 그날 그날 삶을 반성하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유준상은 '발명'이라고 본 듯 하다~^^)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 책의 키워드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사람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일기나 일지를 쓰는 삶'으로 보고싶은거다.

그가 그린 뼈다귀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은 너무 단순하여 누구든 따라 그릴 수 있겠지만,

사물을 몇 개의 선이나 단어로 요약해 내는걸 보고 있노라면, 신선이나 禪의 대가를 보는 듯 하다.

산다는 건 가끔 너무 어렵고 철학적이다가도 또 어떨 땐 너무 단순하고 쉽게 풀린다.

아마 그 가운데에서 저울질하다가 나 스스로 그 무게를 잘라내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그 삶 속에서 나는 자연을 보게 되었고,

삶은 자연 속에서 아주 커다란 진리를 보여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14쪽)

너무나 놀라웠던건 '초긍정자아'라고 생각했던 그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다.

생일이 얼마 전에 지났다.

생일은 꼭 우울하거나 아프거나 쓸쓸하거나 아쉽다.(28쪽)

 

생일이 얼마전에 지났다.

생일은 꼭 바빠 정신 없어서 미역국도 못먹고 지나간다.

처음 일기나 일지를 쓰기 힘든 사람들은 이런 놀이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밑줄 친 부분에 적당한 단어들을 넣는 걸 연습하다 보면, 자연 일기나 일지 쓰기나 수월해 지지 않을까?

 

이렇게 바꿔 보는 또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사람이다.(46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있어야 할게 제 자리에 있는 거다.

 

불꽃이 디즈니(Disney) 하늘 위를 새하얗게 수놓고 있었다. 나는열심히 촬영을 했고 아내는 분수대 앞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 모양의 불꽃이 퍼졌다 사라지고 하늘에는 온통 불꽃의 수가 놓였고 쿵쿵쾅 소리는 모든 이의 숨소리를 멈추게 했다. 불꽃놀이가 끝난 뒤 아내가 내게 다정스레 한마디를 했다.

 

"바보, 계속 찍기만 하면 뭐해. 이런 건 같이 봐야지."

순간 얼굴이 빨개지려 했지만 꾹 참고 모른 척했다.

다음엔 꼭 같이 봐야지.(59쪽)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감명 깊었던 구절이다.

가끔 너무 아름답거나 장엄한 광경을 보면, 누군가와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카메라나 동영상에 담느라고 정작 그 순간을 놓치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어쩜 가장 아름답거나 장엄한 광경은 카메라나 동영상에는 담을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가장 아름답거나 장엄하거나 멋진 광경이 따로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과 같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마법의 금가루를 뿌린 듯 가장 아름답고 장엄하면서 멋지기도 한 광경이 되기도 하는 걸 여러번 보아 왔기 때문이다.

 

허름하고 소박한 일상이라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을 허락해 주신 그 분,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모두에게 감사하게 된다.

 

그 연장선 상에서, 일상의 매 순간순간에 감사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유준상이 '아버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하는 안민수 동국대 석좌교수님이, 당신의 병환이 일조하였다.

"앉아서 돌아가신 스님이 누구시지" 물으시고 "OO스님 맞지! 그래, 대단하신 거야! 아픈 몸으로 앉아만 있어도 몸이 부서질 듯할 텐데 그걸 견디시니 말이야. 그래, 수련을 해야 해. 내 생명을 더 주셨으니 이제 병원에서 나가면 수련을 해야지. 인생은 극복하는 수련의 과정이야. 야, 괜찮다, 적어둬야지. 극복하는 수련의 과정!" 다시 눈을 감으신다. 똑바로 앉으신 모습 속에서, 우리는 스승님이자 어른이신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의 퍼짐을 막느라 입술을 꼭 깨물었다.

 

PS."숨을 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숨을 쉴 수 잇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모두들 모르고 있어. 우린 바보들이야."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게 행복해. 모두 다 기쁜 일만 있으면 재미없잖아. 이렇게 아프기도 하고 그걸 또 이겨내기도 하고. 아프지만 이렇게 또 가족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말이야."(64쪽)

 

끝없이 달려가다 멈춰본 사람은

멈춘 만큼의 깊이를,상처를,

껴안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꿈의 동반'중에서(119쪽)

'꿈의 동반'이 뭔가 했는데, 유준상이 시나리오도 쓰고 아들을 위한 동화도 쓰고 했는데...그 중 하나의 제목인가 보다.

이 구절은 내가 이해를 못해서 그런가,

표면적인 것만큼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지도 않았고, 멋진 얘기도 아닌 것 같았다.

 

끝없이 달려가는 것은 달려가는 것이고,

달려가다가 멈추는 순간, 더 이상 끝없이 달리는 게 아닌게 된다.

멈추는 순간, 땅과 수직으로 중력의 영향을 받게 될테고,

그걸 깊이와 상처라고 표현했나 보다.

깊이와 상처를 껴안는게 감수해야 하는 '수고로움'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이 말 속에는 멈추어선 이후의

땅이 보여주는 기다림과 인내라는 치유의 힘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은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누구의 말마따나,

상처라는 건 함몰되지만 않는다면 때론 살아있다는 명징한 증거이니까 말이다.

 

다시 곱씹어 읽어보니,

어쩜 이말은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류의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장애물도 없이 계속 달리기만 하던 사람들은 내달릴것이다.

달리다가 넘어져 본 사람만이 비로소 깨져 피가 날수도 있고,

상처 입을 수도 있고,

흔적도 없이 아물기도 하지만,

때론 옹이를 남기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도 있고,

또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는 말이지 싶기도 하다.

 

사람과 나무의 닮은 점은,

어디든 땅과 수직인 곳에 잠시라도 멈추게 되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 든다는 것이고,

우리는 사람들의 그것을 '깊이'와 '상처'라고도 부르지만...대부분의 경우'삶'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내가 만드는 영화가

내 나이가 늙어가는 거지

영화가 늙어가는 건 아니야.

-강우석 감독님

 

 

내가 나이를 늘려가는 거지

그 감성마저 늙는건 아니다.

배우의 삶이라고 하기엔 다소 소박한 일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놓고 책의 값어치를 매겼을땐 아까운 생각마저 드는 이 책이 아깝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의 발명'이라는 책의 제목을 이해하고,

보라색으로 썼던 인세수입 전액 기부 부분,

안민수 교수님에 대한 간접 가르침,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나이를 늘려가는 거'라고 담담히 말하는 저 부분,

내 한번 뿐인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나자신'이니까,

잘사는 것(be rich)이기 전에 잘 살아야겠다(be good) 마음먹게 해주는 저 구절 때문이 아닐까 싶다.

happily ever after~.

 

 

 

 

 

데이브레이크 - 3집 SPACEenSUM
데이브레이크 (Daybreak) 노래 /

해피로봇레코드 / 2012년 4월

 

 

 

접힌 부분 펼치기 ▼

 

데이 브레이크(Daybreak) - sunny sunny

 

sunny sunny 눈이 부셔 볼 수가 없어
바보처럼 웃음만 나고
사랑 이런 기분일까
햇님도 날 보고 웃네

baby 한번만 만나줄래 두 두 두루두
baby 대책없이 너의 집앞에서 매일 기다려
baby 운명이 장난치나 두 두 두루두
baby 보고또보고 또 봐도 보고싶은걸

한발 두발 세발 니가 가까워질 때면
두근 두근 두근 촌스럽게 왜이래 no no no

sunny sunny 눈이 부셔 볼 수가 없어
바보처럼 웃음만 나고

 

펼친 부분 접기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2-06-13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1등이에요(으쓱으쓱) 이런 거라도 1등 해야죠. (인생에 1등이 없어요 없어 ㅜㅜ)
배우가 좋을 때는 자기가 재밌게 본 작품 얘기해줄 때인데요, 그것도 속이 꽉 차야 나오는 것 같아요.
밤도 밤에 깨어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데(ㅋㅋㅋ) 제목을 보면서 뜨끔한 게 새벽을 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근데 왜 댓글이 없지?!

저도 눈팅 좋아하는데 안쓸 수가 없었어요ㅎㅎㅎ

숲노래 2012-06-13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면,
풀도 먹어 본 놈이 먹겠지요... ㅋㅋㅋ

참말 그런 듯해요.

글샘 2012-06-1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을 내는 일도, 행복을 발명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네요. ^^

내가 나이를 늘려가는... 그런 거도 좋겠지만... ㅋ
바보처럼 웃음만 나고... 이런 거도 좋지 않겠나요?

하늘바람 2012-06-1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쟁이인 저는 저런 책을 보면 예쁜 노트나 수첩을 먼저 준비하고 하루 이틀 만지작거리며 쓸거리 고민하다 막상 일주일 쓰면 잘 쓴 거라는~
그걸 알면서도 꼭 따라하고 싶어지네요
아들을 위한 동화도 쓴다니 멋지네요
하긴 노력하고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다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