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미안하다고는 해야겠는데 말은 안 나오고,

코 밑에서 알짱거리면서 엉뚱한 일로 딴지를 걸면서 기회를 엿보고만 있었다.

누군가는 사람 좋게 '헤헤~'거리면서,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다고 할 태세였고,

이래저래 어쩔 줄 몰라하는 날 향하여,

급기야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음 다 보인다'고 하는 '관심법'까지 구사하는 거다.

아니,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이 그래...

내가 미안해서 쩔쩔매는 것을 모르나 싶은 것이 서운하여,

나무들 사이에 있을땐 숲을 볼 수 없다며 툴툴거리게 되었다.

그러자 나무를 많이 심다보면 언젠가는 숲도 보이겠지라며 또 '헤헤~'거린다.

 

 

 

 

 

 

 

 

 

화담집
김교빈 지음, 서경덕 원작 /

풀빛 / 2011년 12월

 

 

그때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청소년 철학창고'라는 부제를 단 <화담집>이었다.

그동안 화담 서경덕을 황진이의 요망(?)을 이겨낸 군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

성리학의 최고봉이나, 이기론의 중심 사상가 등을 외울때 서경덕을 제일 먼저 외웠으면서도...

한번도 그 서경덕으로 연관시켜 생각하지는 못 했었다.

때문에 황진이가 그토록 연모하고 어쩌고 하여도,

송도3절 어쩌고 하여도,

그런가보다 했을뿐 그토록 훌륭한 인물인지를 놓고는 심사숙고한 적이 없었다.

 

실토하자면...

옛날에 두꺼운 하드커버의 '화담집'을 한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채 본문을 들추기도 전 서문의 빽빽한 한자에 기가 죽어, 하품만 하다가 덮었었다~--;

그동안의 책들에서 서경덕은 둔갑술이나 축지법을 구사하는 신선이나 도인쯤으로 그려지고 있는 반면,

이 책에선 인간 서경덕이 등장해서 좋았다.

 

어찌되었건, 인간이라고 해야 그의 심오한 학문세계를 가히 범접해 볼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인간적이라는 얘기는,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훌륭한 군자일지라도...

그도 성리학자이기 때문에 성리학적 테두리 안에서 행동하고 사고하는 구태의연함을 버리지 못했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지고 볶더라도 구태의연한 가운데 좀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사는게 좋지,

가끔 신선이나 도인이 부럽고 좋아 보일 때는 있겠지만,

신선이나 도인을 닮고 싶지도,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그동안 내게 이와 기의 개념은 좀(=very much) 어려웠다.

기는 리와는 달리 구체적인 사물을 이루는 바탕이며 리와 기는 한 사물 속에 같이 들어 있다.(25쪽)

 

그러니 이와 기를 자유자재로 운용, 구사해야 하는 태극과 태허 개념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태극이 우주만물의 변화를 설명하고, 주역이나 우리나라 국기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 성리학 전반에 걸쳐 두루 쓰였다면...

태허는 성리학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개념으로, 장자가 가장 최고의 경지로 말한 절대 자유의 개념이란다.

하지만 서경덕은 모든 만물을 의 변화로 설명하는 철학자였기 때문에,

성리학에서 가장 궁극의 이치라고 생각하는 태극보다는 최고 변화의 경지인 태허를 중요 개념으로 삼았다.

오히려 태극을 사물의 변화 속에 담긴 변화의 궤적 정도로 낮추어 보았다.

서경덕의 관점은 도교나 불교의 관점과 다르다.그는 비록 자연과의 하나됨을 강조하는 장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도덕을 강조하는 유학자였다. 다만 일반 유학자들과 다른 점은 '내면을 닦는 공부'보다는 '사물을 관찰하는 공부'가 학문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모든 집착을 버리라는 의미에서 공(空)을 강조했지만 서경덕은 빈 듯해 보이는 '공'도 기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라고 봄으로써 존재에 대한 불교의 이해를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살고자 했지만 그런 힘 또한 장자가 아닌, 맹자가 강조했던 호연지기(浩然之氣,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도덕적 용기)에서 온다고 보았다.(58쪽)

 

암튼 서경덕은 어렸을때부터 남달랐나 보다.

열네 살때 <서경>을 배웠는데 그 다음 해까지 300회를 읽었다고 하고,

열여덟 살때 <대학>을 읽다가 "앎을 완성하는 것이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깨닫는 일에 있다."라고 한 문장을 보고 "공부를 하면서 먼저 사물의 이츠를 궁구하지 못한다면 독서가 무슨 소용이겠는가."라고 하고 

날마다 책상 앞에 사물 이름을 한 가지씩 써 붙여 놓고 그 사물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고 한다.(94쪽)

 

서경덕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떠올린 인물이 있는데, 바로 이현주 목사님이다.

이현주 목사님의 <사랑 아닌 것이 없다 - 부제;사물과 나눈 이야기 >를 읽었던 터였는데,

그때는 많은 부분이 서경덕의 그것을 차용한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고 보면, 예전 이옥의 글들을 읽다가...

과거 내가 열광했던 김탁환의 미문들이 이옥의 그것이란걸 알았을 때의 배신의 충격이랑 흡사 맞먹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서경덕의 그것은 이황의 그것과는 명맥을 달리, 이이의 그것과는 명맥을 같이 하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옛것을 배워서 새 것을 암.)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태허는 빈 듯하면서도 비어 있지 않으니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빈 것 같은 기이다. '빈 것'은 끝도 없고 무한히 펼쳐져 있으므로 기 또한 끝도 없이 무한히 펼쳐져 있다. 이미 '빈 것'이라고 해놓고 어째서 기라고 말하는가? 빈 듯하면서 고요한 것이 기의 본모습이고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 기의 작용이니, '빈 것'이 비어 있지 않은 것임을 안다면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노자가 "있음이 없음에서 나온다."라고 한 것은 '빈 것'이 곧 기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자가 또 "빈 것이 기를 만들어낸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틀렸다. 만일 '빈 것이 기를 만들어낸다.'라고 한다면, 바야흐로 아직 아무것도 생기지 않앗을 때는 기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빈 것'은 죽은 물건이 된다.

  이미 기가 없다면 또 어디에서 기가 생길 것인가? 기는 시작이 없으니 생겨남도 없다. 이미 시작이 없는데 어떻게 끝이 있겠는가? 이미 생겨남이 없는데 어떻게 없어짐이 있겠는가?

  도가에서는 허(虛)와 무(無)를 말하고 불교에서는 적(寂)과 멸(滅)을 말한 것은 리와 기의 근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니, 어찌 도를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78~79쪽)

 

이 책을 읽으면서 멈춰서서 깊이 생각한 부분이 있는데,

서경덕이 개성 국립학교 선생으로 와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대관자(大觀子) 심의에게 준 송서(送序)를 읽으면서 이다.

서경덕은 말처럼 가난하여 다른 선물을 줄 길이 없어서 《주역》을 읽다가 떠오른 글자 멈춤(止)에 대한 생각을 선물로 준 것이다.

글자를 선물로 준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그토록 가난한 비참함이 될수도 있는것인데...

그걸 선물로 줄 수 있는 마음과 받을 수 있는 마음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 마음만으로도 천하를 모두 얻은 것보다 호기롭고 넉넉할 것 같다.

 

서경덕의 그것이 그간의 것들과 다르게 와닿은 까닭은,

글자 멈춤(止)에서 사물의 사물됨이나 사람의 도리를 읽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서경덕은 그의 좋은 점을 높이 사면서도 "머물 만한 때면 머물고 갈 만한 때면 간다." 라고 했던 《주역》의 가르침을 끌어와서 벼슬이든 시 쓰는 일이든 자연의 법칙에 맡기라고 하고 있다.

 

태극과 태허도 그렇고,

글자 멈출 지'止'도 그렇고,

관점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말들이다.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에 따라서 의미가 상반될 수도 있겠다.

이럴때 학식이나 덕망이 높은 사람의 관점을 욕심내거나 탐내다가는 끝도 없을 것 같고,

자기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만 여기에 머물고 안주하느냐,

도움을 받아, 자기가 바라보는 관점의 한계를 극복하느냐, 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하겠다.

관점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들로는 책, 벗, 스승 등이 있겠다.

 

실토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불교나 도교적 얘기도 아니고, 성리학적 얘기도 아니다.

어떤 종교적 관점들을 통하여 예측하게된 미래를 놓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또는 나쁜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내 자신을 닦아 가는데 있다.

 

  '기자이(機自爾)'란 기틀이 스스로 그렇게 될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꽃 필 때 되면 꽃이 피고 바람 불 때가 되면 바람 불며, 배고플 때가 되면 배가 고파 오는 그런 계기의 변화를 뜻한다.(74쪽)

 

태극과 태허를 얘기할때도 그렇고,

글자 멈출 지'止'를 얘기할 때도 그렇고,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를 얘기할 때도 그렇고,

관점과 기준이 되는 그 '무엇' 또는 그'누군가'가 필요하게 마련인데...

내게 그런 역할을 하는 이가 이 글의 처음에서 언급한 '누군가'라는 거다.

 

때로 관점을 갖고 고민하게 될때,

누군가와 한편인가를 놓고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게,

그 누군가를 내게 거울인양 비추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합집합, 교집합, 부분집합의 빗금으로 나타낼때 마냥...

자연스럽게 나와 누군가를 제외한 나머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선비들이 왜 거문고를 가까이했는지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됐다.

선비들은 늘 거문고를 가까이했다. 그 까닭은 거문고가 한자로는 금(琴)인데, 그 발음이 잘못된 행위를 삼가한다는 뜻의 금(禁)과 통하기 때문이다.

  먼저 앞의 두 시는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이고 뒤의 두 시는 줄 있는 거문고에 대한 이야기다. 줄 없는 거문고는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줄은 소리를 내는 도구다. 하지만 소리를 통해 듣는 것보다 소리 없음을 통해 듣는 것이 한 단계 위다. 이는 글자를 통해 써진 의미를 보지만 글자의 조합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글자들 속에 담긴 의미를 보는 것과 같다.

더불어, 소리를 통해 듣는 것과 소리 없음을 통해 듣는 것에 대해서도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때론 소리와 소리 사이의 적막도 의미 있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즘은 사물의 중심을 일부러 살짝 흩고, 어질러 놓는다.

그렇게 하여, 무게 중심을 바꾸게 되면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세상에는 무엇 하나 사소하고 소홀한 것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럴거라 믿는다.

나무를 많이 심다보면 언젠간 숲도 보이겠지~.

 

  

 

   청소년 철학창고 세트 - 전30권
   플라톤 외 지음, 송재범 외 옮김 /

   풀빛 / 2012년 3월

 

 

이 시리즈의 책은 '근사록'에 이어 두번째인데, 가볍고 이해하기 쉽다.

단점이라면 한자가 병기되지 않아서 의미가 모호한 경우가 있다.

화담집은 '김교빈'님의 풀이가 단연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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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3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2-08-24 18:58   좋아요 0 | URL
오늘은 좀(very much) 어려운 내용이군요.
무식한 저로서는 도무지 따라잡기 어렵사옵니다.
언급하신 이현주 목사님의 책은 저도 살짝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저 옛날 서경덕 조상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었군요.

다 이해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배운 게 조금(a little) 있는 듯 합니다! ^^
 
함부로 애틋하게 - 네버 엔딩 스토리
정유희 지음, 권신아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난 그러니까,

우리말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더욱 아니다.

어떤때는 말로써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고 있는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때도 있다.

그런 주제에,

처음 저 제목을 보고 좀 껄끄러웠다.

그러다가 이내 나처럼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강조를 하고 어필하기 위해서,

서로 상반되는 두 단어를 사용했음으리라 짐작하게 되었지만, 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 제목은 좀 아니지 싶다.

어떻게 '함부로'이면서 '애틋하게'가 될 수 있냔 말이다.

 

암튼,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하건...

보고 싶을 때 보고싶다고 애기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엄청 부러워서 괜히 딴지를 걸어보고 있는 것이다, ㅋ~.

 

누군가 보고 싶어서,

살짝 돌 뻔 하거나 환장할 뻔 하거나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나란 사람은 그걸 표현하는데는 참 인색하다 싶었는데,

이 책에선 흐드러지고 넘친다.

그걸 엿보고 한 자락이라도 배워 갖고 싶었다.

 

그게 정 여의치 않으면,

이 책에 씌여진 글들을 좀 옮겨 적으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라도 느껴볼까 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근데, 이 책에는 '보고싶다'의 극단적이고 과장된 표현 뿐만 아니고,

처방도 나오는데,

그게 꼭 '다리를 원하거든 너의 '가장' 이쁜 목소리를 다오'하는 <인어 공주>의 마녀 feel이다.

커다란 종이 봉투에 구멍을 두 개나 뚫고 그걸 쓴 후 한참을 돌아다니는 거 라든지,

주전자, 낡은 액자, 책상 다리, 삼각자, 전화기 등...딱딱한 것들을 죄다 깨물어보는 거 라든지,

한쪽 벽에 점을 찍고 계속 보고싶은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중얼대는거 라든지...

 

 

그런데 황당무계하고 흐드러지고 넘치는,

극단적이고 과장된 표현이 흘러 넘치는 이 책이 좋은건 말이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자기 감정에 솔직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냥 그렇게 가만히 옆에 있어줘 라고도 하고,

날 보러 와  라고도 한다.

 

어쩜 내가,

'보고싶다'거나 '그래, 그냥 그렇게 가만히 옆에 있어줘'라거나 '날 보러 와'라고 얘기 못하는 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후에 오게 될 것들이 자신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 오게 될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여라도,

머저리 같은 이 사람이라고 무모한 사랑의 마음이 없을쏘냐

너를 생각하고 염두하며 하염없이 골몰하느라 내 생생하던 마음에 붉은 물이 들었다.

이런 진심이라도 만나게 되면 그땐,

나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상처를 남기게 되고...그렇게 되면 그땐,

정말 제대로 대책 없어진다는 걸 알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엄밀히 얘기하자면,

이 책이 좋은게 아니라,

이 책의 젊음이,

그들의 젊은 마인드가,

다시 말해 그들의 눈치보지 않음이 좋고 부러운 것이다, ㅋ~.

 

때문에 난 오늘도 이 책에,

씌여진 글들을 소리내어 읽으며,

그림을 손으로 쓸어넘기며,

젊음을 최대한 가까이서 흡입하고 수혈하며 자위하려 할 뿐이다.

사로잡히다

 

 

만날 수 없거나 만나지 않아도

그대 소식 내게 닿을 길 없어도

어디에서인가 숨 쉬며 기꺼이 살아만 있어도

그렇게나 좋을 사람이 있다

 

 

심봉사 같았던 내 영혼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그대라는 기이한 괴물한테 사로잡힌 탓에

그대의 존재감이 내겐 너무나 벅차

그대를 털끝만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

 

 

결국 그대가, 날 사랑하기에는 글러먹게 생긴 존재일지라도

그대는 이미 내 머릿속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걸

난 나를 완전히 잠식하고 있는 그대를

내게서 몰아낼 묘책도 전혀 없으니ㆍㆍㆍ(86쪽)

 

눈물커피

 

 

네가 혼곤한 아침을 깨우며 마시는 모닝커피는

전날 밤 내 눈물로 드립한 것인 줄 알아라

나른한 오후 3시에 네가 홀짝대는 홍차는

오전의 내 그리움을 우려낸 것이로다

너라는 삭풍으로 인해 온종일 흔들리던 나는

어느덧 구름으로 뭉쳐지다가

이윽고 비 되어 메마른 대지를 적신다

 

 

여우의 약삭빠른 전술로 노련히 사랑을 셈하는 당신

나 언제든 당신에게만큼은 자나 깨나 한결같은,

사시사철 우직한 미련곰탱이로 그대에게 임하리라 (112쪽)

 

Cat mode

 

 

사람들은 참 어리석기도 하지

'인연'이라는 걸 빙자해서 애써

관계를 연명해가곤 하니 말이야

 

 

고양이들은 인연을 구걸하거나 적선하지 않지

관계의 연을 기억할 때는 복수가 필요할 때뿐

새날이 밝았다

오늘도 신선한 우유가 배달 될 테지?

그리고 적당량의 일조량과 졸음도

신난다! (212쪽)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는 보고싶어도 보고싶다는 소리를 못하는 나를 눈치는 챘으나,

내가 흡입하고 수혈할 수 있도록 나눠줄 만큼 더 이상 젊지 않기 때문인지,

이런 돌멩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히야~, 돌멩이라니~!

하긴 루비나 사파이어나 에메랄드나 다이아몬드, 이딴 것들도...

다 보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 전에는 한낯 돌멩이에 불과하였으리라.

이 돌멩이의 용도가 송곳 대용인지 은장도 대용인지 미련한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알 수 없는지라,

난 얠 이렇게 가지고 논다.

그러고보면 나 혼자놀기의 달인?

자, 그럼 지금부터 혼자놀기의 진수를 감상해 보시겠습니다여~!

 

 

그러고 보면,

이 책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사람 모두, 혼자 놀기의 달인들이 아닌가 싶다.

감각적인 글이나 그림 따위는,

혼자 앞서도 독선이나 독단으로 비춰져,

자칫 본질을 흐릴 수도 있으나...

뭐, 내 개인적인 취향까지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고 말이다.

 

 

젊다는 건 변화무쌍하다는 의미이다.

변화는,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할때 바로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말하면, 변화==>감정에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거==>자연스러운 거, 자연의 원리.

자연==>변하는 거.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고,

 변하지 않는 가운데 변하는 부분이 있는 그런 것.)

내가 육체적으로 젊은가를 놓고라면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겠지만,

젊게 살려는 마음을 먹고 사는가는 다른 문제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 때는 실체도 알 수 없는 언어의 의미나, 마음 씀씀이,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망한 그리움 따위에 연연해 한다.

차라리 '사물'을 관찰하고,

사물의 실체 속에서 자연을 느끼되,

자연에 이렇게 저렇게 법칙들을 만들어서 자연의 원 뜻을 훼손시키고,

그 안에 사물의 실체나 도덕성 따위를 가두는 것을 경계하여야 겠다. 

 

암튼, '함부로'와 '애틋하게'가 관련된 '보고싶다'타령을 내 맘대로 재해석하다가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어차피 삼천포로 빠진 김에 가제트도 마저 구경하자.

세상에 팔과 다리가 쑥~쑥~ 길어지는 가제트형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단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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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8-19 21:34   좋아요 1 | URL
몸은 안 젊어도 마음이 젊으면 젊은 사람이지요~

하늘바람 2012-08-20 01:55   좋아요 1 | URL
ㅎㅎㅎ
돌멩이 갖고 놀기 재미나네요
잊었던 걸 상기시켜 주셨어요
제가 권신아를 넘 좋아했다는걸
왜 전 그걸 잊고 있었을까요
아 그링이 넘 좋아서 까무라칩니다.
전 늘 외국 나가는 사람한테 말하지요
돌하나만 주워와라.
제주도 갈때도 돌하나 꼭 주워 오는데
사실 그럼 안되는데~
웬지 돌들 자세히 보면 이쁘고 많은 사연을 간직한 거 같아서리
그런데 그 주워왔던 몇몇 돌들 어디로 갔는지.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이 책을 시작한 건 '이일훈'님 때문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분의 '뒷산이 하하하'를 접하게 되었는데 좋았던 터라,

한번 필 꽂히면 전작을 두루 섭렵하는 나의 취향에 맞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를 읽어 주셨다.

그런 후에 읽게 된 이 책은, 어떤 의미로든 좀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건축가야 집을 건축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손 쳐도,

송승훈 샘이야 (이때까지는 ''책.따.세'의 일원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냥 국어샘일 뿐인데,

집을 지을때 발생하는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속물스런 나는 돈과 연관시켜 생각이 이리저리 널을 뛰었는데,

땅값에, 설계비에, 건축비에...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하는 기우(杞憂)가 주를 이뤘다.

 

책을 읽다보면,

송승훈샘이 왜 이런 집을 짓게 되는 지,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하게 되는지,

가 조곤조곤 설명되어 있어...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이고 눈물 바람을 하게 되지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처럼, 그건 또 그때뿐이고...

평범한 소시민인 나로서는 복권에 당첨되거나 일확천금을 갖게 되지 않는다면,

평생 꿈꿔볼 수조차 없는 그런 집이어서 읽는 내내 부러움으로 배가 아팠던 것도 사실이다.

암튼 이 책은 중심을 잘못 잡아 읽으면 얼마든지 당혹스럽고 불편한 책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건축가인 이일훈님과 건축주인 송승훈샘이 지은 이 집의 이름은 '잔서완석루'이다.

해석해 보자면,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 이라는 뜻이란다.

건축가 이일훈 님이야 '채나눔' 이라고 하여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 늘려 살기' 따위를 주창하신 분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송승훈 샘의 그것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송승훈 샘은 국어샘 답게 서재에 힘을 주려고 하셨는데,

서재는 공부를 하는 장소이므로 너무 편한 것보다 다소 긴장감이 드는,

어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장치들을 해달라는 대목에서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송샘의 책을 대하는 자세를 미루어, 나의 책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됐다.

 

이 분이 꿈꾸고 계신 집은 이 분이 그리는 삶에 대한 이상향을 반영하고 있고,

이건 '어떻게 살것인가'하는 삶의 근원적이고 궁긍적인 문제, 즉 자아성찰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는것 같다.

다시말해, 삶이란건 외부로만 무한히 열고 소통하려 해서 되는게 아니라,

그와 보조를 맞추어 안으로 자기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삶은 넓고 풍요롭고 풍성한 동시에 안으로 충분히 깊이 있어야 한다.

 

발상을 조금 바꾸어,

건축가 이일훈 님의 이 물음들을 꼭 짓는 집에만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집을 꿈꾸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인터넷에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라면 한 번씩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고,

의미를 더 축소시켜 집을 '서재'에 국한시켜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서재를 꿈꾸고 계신가요?"

- 책을 보관하고 쌓아두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읽고 생각을 키우고 나누고 발전시키는...말하자면, 열린 소통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 넓고 깊게, 풍요롭고 풍부하게.

 물에서 뜨기 위한 전제조건은 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소통의 전제 조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소통의 아우라나 파장이 얼마나 넓고 깊세 미칠 수 있는지 따위는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멋드러지게 대답해야 겠지만...어디까지나 준비된 답변일 뿐이고,

읽지 않은 책들로 날마다 책탑을 쌓고 살아가는 일개 중생일뿐이다.

책탑은 날마다 높아지고,

난 야한 생각을 할수록 머리카락이 빨리 긴다는 속설을 믿어 매일 꾸준이 야한 생각을 해서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머리카락을 드리우면 왕자님은 아니어도 누군가 책탑에 갇힌 나를 구하러 와줄것만 같다, ㅋ~.

 

요즘 책 정리를 하고 있다.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책은 더더욱 그런고로, 책들은 그렇게 쌓여 책탑을 이루는 형국이었고,

이게 심각한 사태구나 하는것을 깨달은건 우리 아들의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일기장이나 비밀노트 따위를 안버리는거야 그럴 수 있다손 쳐도, 초1때의 알림장이 그대로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거였다.)

급기야 책을 이고 자야 되는건 아닐까 걱정되어, 난 자못 심각하게 왜 안버리냐고 묻자,

우리 아들 曰,"버리는 건 줄 몰랐어~--;"

 

책은 단지 책꽂이에 꽂아놓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읽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책은 돌려 읽고,

생각을 나누고,

생각이 이렇게 저렇게 마음을 건드리고,

그게 어떤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어디다 내팽개쳐 버렸는지도 모를 수도 있고,

보이기 위해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는 놓았으나 읽지는 않았을 수도 있고,

책을 그저 뚝딱 읽어버리고 말았을 수도 있고,

책을 읽고 이런저런 일련의 과정의 변화를 거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나는...마다했다고 우기던, 서재에 연연해 온것이 된다.

이제 책탑을 허물고 걸어나와,

책을 읽고,

책에서 배운대로 실천하도록 해야겠다.

 

비록 나의 그것은 송승훈 샘의 '구름배'같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구름배 같으면 좋겠습니다. 구름이 부드럽게 감싸 안고 공기 잘 통하는 하늘로 사람을 두둥실 띄워가는 듯 편안한 방이길 꿈꿉니다.’ (32쪽)

 

삶이란 것이 몸으로 통과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듯이,

책도 자기가 읽고 감동 받았을때,

그 감동이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 체화하는 과정을 겪었을때,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독서가 된다.

 

독서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독선이나 독단에 빠지는 것이다.

그랑제의 소설 <검은 선>에도 그런 사람이 나오고,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에도 보면,

책을 누구보다도 많이 읽지만, 해석을 자기 마음대로해서 독선이나 독단에 빠진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니 책을 읽는 사람들은 계속 자신을 돌아봐야하고, 주변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 서재는,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않고 타성에 빠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이중적인 잣대가 된다.

 

집이란 '어드메 한 구석 기둥을 부여잡고 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말이 책을 읽는 내내 입가를 맴돌았다.

이 말은 이렇게 저렇게 바꿔 적용시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둥 대용의 친구와 책은 그럭저럭 확보한 셈이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런 의미에서 이일훈 님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도 많은 물음을 던지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일훈 지음 / 사문난적 /

 2011년 1

 

숲 닮은 도시가 갖춰야할 최소한의 덕목은 '경계'를 없애는 일이다. '영역' '구획'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숲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자연의 공간의 경계가 생기지 않는다. 나무와 바위 사이에도, 계곡과 능선 사이에도 경계가 없다. 숲이 숲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그 경계 없는 자연공간들이 바로 숨통이기 때문이다. 모든 흐로고 지나가는 것들이 그 경계 옶는 사이에서 작용하고 존재하므로 숲과 나뭉와 동물들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럼 도시는? 그 반대다. 경계를 확보하려고 혈안이다. 영역 표시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구획을 지어야 마음을 놓는다. 개체의 구획이 전체를 죽인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구획된 경계는 불통의 공간이 된다. 건물이 두 체면 불통의 공간도 두 배가 된다. 그 사이를 허물어 나무 심고 사람이 다니면 그게 바로 소통이다. 숲은 자연이 소통되는 상태다. 숲 닮은 도시를 꿈꾼다면 모든 것을 통하게 하라. 그러면 아무도 콘크리트 숲을 욕하지 않으리.

 

숲이 말한다. 경계를 없애야 숲이 된다고.

도시에 묻는다. 우리는 오늘 몇 배의 불통을 참고 있는가.(40쪽)

 

자연이란 말의 의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진 무엇'이라는 정의(定義)이다. '~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이 자연스레 다가왔다'하는 자연스러움은 역시 사랑의 묘사에 제격이다. 하는 이도 모르게 저절로 맺어지는 사랑이 있는가 햐면 꾐ㆍ 설득 ㆍ도전ㆍ 쟁취의 사랑도 잇다. 저절로 이루어진 사랑이 자연의 숲이라면 계획된 작전 같은 사랑은 인곡 숲이다. 모든 사랑이 다 소중하듯이 숲도 자연이든 인공이든 다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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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2-08-16 20:37   좋아요 1 | URL
책을 쌓아두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고 소통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언니 서재 정리하실때 제게도 좋은책 보내주세요.ㅋㅋ

하늘바람 2012-08-17 01:25   좋아요 1 | URL
한 때 책으로 집을 도배하던 떄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 책은 장식용이 아니라고.
그다음부턴 책을 가능하면 모으지 않으리라 하고 있지만
그게 참 안 되더이다^^
오늘 이상하게 님 생각 많이 했는데
님이 페이퍼를 올리셨네요^^
전 사실 책을 뒤죽박죽 정리 못하기의 달인인지라
어떤 서재를 꿈꾸냐 하면 정리 안해도 되는 서재?
과연 그런 서재가 있을런지.

라로 2012-08-18 00:06   좋아요 1 | URL
이일훈, 잘 모르는 작가인데 여기서 알게 되었네요!!!
찾아서 읽어봐야겠지만 도서관에 자주 못 가는 사람이라 언제 읽을지 장담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양철나무꾼님의 페이퍼를 읽고 있자니 꼭 만나고 싶네요!!^^

2012-08-19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백하자면 난 성적소수자에 관심이 없다.

성적 소수자 뿐만 아니라 어떤 경계나눔 자체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경계를 나누는 순간 그 경계에 갖혀 소수자나 약자가 되어버린다는 걸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혹 다수자나 강자가 된다손 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건 어쩜 내가 '세상의 경계들을 향하여' 나로부터 비롯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 하는 도발적인 질문을 해대는 마리앙토와네트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김조광수.김도혜 지음 /

 알마 / 2012년 6월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건,

김조광수라는 사람이 그동안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학생운동과 인권운동의 현장의 최전선을 넘나들며 보여준 실행력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목소리라면 왠지 귀기울여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이쪽으로 닫아두려 했던건 어쩜...

이들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것으로 힘을 실어주려고 하다가,

오히려 어긋난 방향으로 이목을 집중시켜 총알받이가 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입지가 여의치 않은 이들이 설 자리를 잃고 벼랑끝으로 내몰리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김조광수라는 사람은 나의 이런 우려를 일갈하듯이...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는 이 작업을 마치 축제처럼 해내고 있다.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러면서도 객관적인 인터뷰어 김도혜는 나를 제대로 까발렸다. '이런 것까지 얘기해도 될까?' 나는 가끔씩 주춤거렸지만, 김도혜는 멈추지 않았다. 한 꺼풀 한 꺼풀 벗어야 했고 결국엔 알몸을 보여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과 드러내고 싶은 노출증 사이에서 나는 나락에 빠지기도 하고 희열을 맛보기도 하는 등 감정의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 시작되었고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 책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새롭게 돌아본 '나'는 내세울 건 별로 없고 부끄러운 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부족한 게 있어야 인간미가 있다고들 하지만, 난 부족함에 있어서 평균치를 웃돌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출간하는 것에 동의한 이유는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이 용기를 냈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인터뷰이 김조광수의 들어가는 말 중에서)

 

사실 그를 비롯한 '성적소수자'라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어둡고 우울함이 기본 정서인 사람들이다.

현실의 어두운 부분, 즉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그 부분을 인정하는 순간 삶은 더 진지하고 무거워져 버린다.

그런 '성적소수자'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작업이라는건,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깔려있는 어둡고 우울함을 한쪽으로 접고 가는 작업일텐데,

그는 그걸 밝고 명랑하게 치환시켜 축제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가되,

각자의 살아온 세월을 부정하지 않고 투영시키려고 애를 쓴다.

각자 살아온 세월을 부정하지 않는다는건,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에 발 붙인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현실에 대한 인식없이 꿈만 꾼다면 사상누각이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 기초하여 땅에 발 붙인 꿈만을 우린 희망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거다.

땅에 발 붙이지 않은 꿈은 환타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하여 김조광수가 하려고 한 얘기,

'성적소수자'들의 인권을 대변하느라 그가 하려고 한 얘기, 를 요약하면 이쯤 되겠다.

 

일반인들이 보고 '역시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로 끝나는게 아니고,

동성애자로 사는 건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는 걸 보고,

그 '행복'을 보고,

'아, 내가 그동안 너무 한쪽에서만 봤구나'라고 발상을 전환토록 유도하는걸 꿈꾸고 있다.

일반의 '선입견의 탈피'와 이반의 '행복이라는 희망'을 동시에 꿈꾼다.

 

옛날에 친구랑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우울근, 근사근 하면서 논 적이 있다.

근육을 수의근, 불수의근으로 나누는데 심장근은 불수의근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대로 심장을 뛰게했다 멈추게 했다 할 수 없는거니까,

사람의 심장은 사람의 맘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의 우울이나 근사함 따위, 감정은

쉽지는 않더라도 조금만 노력하고 연마하면 가능할 것이다.

그랬던 터라, 이 책에서 연애근육이란 단어를 보자 반가웠다.

연애근육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그의 섬세함이 좋고 맘에 들었다.

도혜 정말 못 말리는 김조광수다. 나는 선생님이 나를 친구처럼 대하는 게 기뻐서 내 맘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당신은 연애에 관해서는 아무런 장벽도 없고 매우 용감하고 꿈꾸는 사람 같다. 자신을 회상할 때도 연애와 사랑의 주체로서 자아가 아주 확실해 보인다. ㆍㆍㆍㆍㆍㆍ그러니까 연애 쪽으로는 촉수가 아주 발달한 사람이다. 그래서 열아홉 살이나 어린 애인과도 잘 사귀는 거 아닌가? 나에겐 없는 아주 센 연애근육이 당신에겐 있지 싶다.(73쪽)

이 책을 통하여 새롭게 정립하게 된 개념은 '시민결합'이라는 거다.

*시민결합 :

ㆍ 동성 또는 이성 커플이 법원에 동거계약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사회보장, 납세, 임대차계약, 채권채무 등에서 결혼에서와  같은 권리를 갖는 제도.(189쪽)

ㆍ전통적인 결혼제도를 동성간에도 허용해야 한다는 '동성 결혼 합법화'가 하나고, 나머지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행하고 있는 '시민결합'의 제도화이다. 시민결합은 성별, 애정관계 여부를 가리지 않고, 동거하는 두 사람의 연대를 인정해 결혼에 준하는 사회보장적, 법적 권리를 주는 대안적인 결합 제도다.(193쪽)

ㆍ이에 따라 남편 husband과 아내 wife라는 이성애를 전제로 하는 용어를 없애고 배우자 spouse와 동반자 partner라는 성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194쪽)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걸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성적소수자의 사랑이라고 하여 특별한 것이 아닐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저렇게 잣대를 들이대고 경계를 나누어 그들의 사랑을 분류해 낼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사랑이 있는데...

다르다는게 결코 틀린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성적소수자라고 가정했을 때,

사랑은 당사자 간의 문제이니까, 둘이 좋으면 그걸로 된거다.

'성적소수자' 라는 사회적 편견에 주눅이 들어 어둡고 힘들기만한 사랑을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그 사람도 알고 그걸 받아들여준다면...

그것으로 된거라고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리라.

 

왜냐하면 세상에는 어긋난 사랑도 많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얘기하는게 민망할 정도로 멀리 있어,

두고두고 그리워만 하는 사랑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들을 좀 편안하고 이쁜 시각에서 그려낸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라는 만화도 있고,

핏빛 그리움으로 질펀하게 풀어낸 <브로크백 마운틴>이란 책도 있다.

 

 

 

 

 

 

 

 

 

 

 

 

 

개인적으로 '애니 프루'를 엄청 좋아하는 지라, '브로크백마운틴'이 더 훅~하고 다가오는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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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8-11 00:55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읽지 못했는데 두결한장은 잼나게 봤어요. 그러고보니, 김조광수 영화를 본 게 좀 있긴 하네요.
그 사람에 대해선 잘 모르긴 하지만 영화로 말하고 있는 듯해요.
나무꾼님, 전 며칠 전 참 사랑스러운 일본영화 '하와이언 레시피'를 봤는데요,
거기서 '동성애'를 해석하는 말이 '사랑엔 국경이 없다'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물론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그 말을 푸는데, 좋은 해석이라고 노인이 청년에게 말해요.

숲노래 2012-08-11 04:51   좋아요 0 | URL
동성애를 다룬 만화는 아주아주 많아요.
한국에서도 드물게 있었고 요즈음에는 꽤 많이 나오는데,
'송채성'이라는 분이 그린 만화는 모두 '동성애'가 주제랍니다.
이제는 절판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찾아보실 수 있으면 한번 찾아보셔요.
한국만화 가운데 작품성과 줄거리와 엮음새 모두 아주 탄탄한
참 괜찮은 만화책이랍니다.
<셸 위 댄스>나 <미스터 레인보우>나 <취중진담> 같은 만화들은
여러 번 보아도 물리지 않고 좋았어요.

일본만화에는 동성애가 대단히 많은데
<방랑 소년> 같은 만화책은 초등학생 눈높이로도
동성애와 성정체성을 알아듣도록 그린 작품이기도 해요.

마녀고양이 2012-08-11 08:18   좋아요 0 | URL
내가 아는 사람한테 누가 상담받으러 와서,
처음에는 그런 말을 안 하다가 몇회기 지나서 실은 저는 '호모예요' 라고 했대.
그 순간 듣던 상담자가 입이 딱 벌어져서 다물지를 못한거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담자가 먼저 웃더래.
솔직하게 반응해줘서 차라리 고맙다고 하면서. 그리고 그 상담자는 지도 교수님께 된통 혼나고... ^^

다르다, 그걸 인정한다는 것은 참 어려워.... 모든 일에서.

하늘바람 2012-08-11 10:02   좋아요 0 | URL
와 다 긴긴 댓글 주소만 받아놓고못보내고 있네요 그냥 잊고 계시면 갈거예요 죄송해요
 

올 여름 휴가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행복의 추구'와 더불어서였다.

이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관점의 독서가 가능한 그런 책이지 싶다.

난 원제 'The pursuit of Happiness'랑 관련해서 pursuit에 좀 연연했었는데,

역자가 공경희님인데, 요번 번역은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좀 있다.

pursuit를 '추구'라고 번역한 것부터가 그렇다.

차라리 윌 스미스(?)가 나왔던 그 영화처럼 '행복을 찾아서'라고 번역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암튼 pursuit에 힘을 주어 읽느냐, Happiness에 힘을 주어 읽느냐, 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한 그런 책이어서 좋았다.

 

난 pursuit에 힘을 주어 읽었고,

pursuit의 주체로서의 나를 곧추세우는데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뭐, 내용이야 로맨스소설 같기도 하고,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처럼 얕은 앎을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할 처지는 아니구 말이다.

암튼 많이 좋고 재밌는 책이라고 그냥 들이미는 수밖에 없겠다.

 

 

 

 

 

 

 

 행복의 추구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행복의 추구 2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반대말 놀이를 했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증오 정도가 되어야 할까, 아님 누군가의 싯구처럼 '사랑했었어'라고 해야할까?

모두 아닌것 같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인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어, '용서'를 놓고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용서를 '하고 못하고'는 반의어적 성격을 가졌지만 동의어다.

왜냐하면 용서를 '하고 못하고'는 차치해두고라도 이 모두가 마음 속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어쩌면,

사랑의 반대말이라고 하는 '미움''증오''사랑했었어' 따위,

용서의 반대말이라고 하는 '용서 못함''용서할 수 없어''용서하지 않을거야' 따위,

가 아니라, 무관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에서 언어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아. 단지 약간의 제스처만이 필요할 뿐이야. 제스처는 다른 제스처로 연결되면서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지. 즉 다시 말해 누군가를 용서하면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게 되는 거야."(행복의 추구 2권, 401쪽)

다시 말해서,

사랑뿐만 아니라, 행복이나 증오, 용서 따위의 단어 모두 상대적이어서...

'더'와 '덜'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중량감이 다르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반대말이 될 수 있는 필요ㆍ충분 조건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나 행복 같은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말 뿐만 아니라, 

용서 같은 단어도 어느 정도의 애정과 관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이 모두를 상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들을 스치다가 1,2초쯤 눈이 마주쳤고, 그렇게 힐끗 쳐다본 것 뿐이었는데 45년이 흐른 뒤에도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둘은 (처음 만난게 맞아?) 할말이 뭐가 그리 많은지...

두 시간이나 하나로 이어지고 겹쳐지고 녹아드는 대화를 나눈다.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게 운명인 사람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길모퉁이의 작은 바로 갔다.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잠시도 멈추지 않고 두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게 운명인 사람들처럼. 대화가 하나로 이어지고 겹쳐지고 녹아들었다.(1권, 62쪽)

 

이 부분은 어떤 의미로든 내게도 특별했다.

특별히 할 얘기가 있어서 대화를 나누는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행복한거라는걸,

그리고 그게 어떤 것이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난 경험에 미루어 잘 알겠기 때문이다.

 

같이 있는게 좋고 그게 축복이라고 하는 건 사랑의 과정에서 누구나 한번쯤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대화를 나누는것만으로도 운명이라고 느낄 수 있는건 살면서 흔하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1940년대의 설정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인습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하지 않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ㆍㆍㆍㆍㆍㆍ내 미래를 누군가에게 의지해야한다는 개념이 무서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점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똑같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오류에 빠지니까. 배우자에게 내 미래를 책임지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모순이죠."

ㆍㆍㆍㆍㆍㆍ

"내 행복을 누군가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행복해지려는 욕구를 빼면 뭐가 남죠? 결국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거죠."

잭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당신이 말한 생의 등식에서 사랑은 인수가 될 수 없다는 건가요?"

나는 잭과 눈을 마주쳤다.

"이를테면 사랑은 '나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지?'나 '내게는 당신이 필요하고,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해.' 같은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사랑은ㆍㆍㆍㆍㆍㆍ."

나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잭이 내 손을 깍지 끼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사랑은 사랑 그 자체여야 하죠."

"맞아요,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1권, 146쪽)

인습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고 해서 딱딱하거나 무미건조하지만은 않다.

남자, 여자 편가르려 하거나 자신의 미래를 배우자에게 떠넘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사랑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멋진 말들을 만들어내는데...

그게 달콤하고 말랑말랑하고 로맨틱한 동시에 치열하고 가열차기도 하다.

 

 "사람 마음은 알 수 없어.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사랑도 그런가봐. 사람의 몸에서 가장 신비로운 부분은 심장이래. 두 분은 감정 표현보다는 심장으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한 거야."(1권, 119쪽)

 

사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가슴을 비집고 들어와 머리를 탁 치는 느낌을 주는 거라 생각해.(1권, 129쪽)

 

내가 사랑한 사람은 잭 말론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환영인지도 몰랐다.(1권,204쪽)

 

 처음에는 사랑이 나를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 기대했다. 사랑이 내 불완전한 면을 보완해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아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아픔을 들춰내고 들쑤시는 경험일 뿐이었다. 사랑은 온갖 감정의모순들로 가득찬 허구의 세계일 뿐이었다.(1권, 324쪽)

장담하고 예측할 수 있으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서 안달나거나 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때때로 기막힌 우연을 가지고 필연이나 운명 등으로 가장하려 한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여기서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아요."(2권, 6쪽) 

오히려 사랑하는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무조건 맞춰가겠다는 희생 정신이 그럴 듯 하다.

눈에 콩깎지가 씌면 곰보도 보조개로 보인다는 속담도 있듯이 말이다.

 

"ㆍㆍㆍㆍㆍㆍ산다는 건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르는 것."(361쪽)

"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새삼 깨달았어. 삶이란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앙이라는 사실을ㆍㆍㆍㆍㆍㆍ. 인생이라는 이야기에는 사실 해피엔딩도 비극적인 결말도 없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간직한 사연이 있지만 해결을 보지 못하고 그냥 끝나 버리게 돼. 대개는 혼란의 와중에 갑자기 끝나 버리지. 우리의 생이 종착점이 있는 우수라장이라는 사실만 안다면ㆍㆍㆍㆍㆍㆍ."(2권,362쪽)

다시 말해, 사랑이나 행복 따위는 따가움과 따뜻함, 달콤함과 중독, 배신과 용서 등을 동시에 지닌 양가 감정이라는 거다.

어떤 감정을 선택하는 지는 우리의 노력여하에 달린거라는 거다.

노력을 가장한 논리적 오류에 빠지면 위험한데...

사랑뿐만 아니라, 행복이나 증오, 용서 따위의 감정을 대물림 되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의 복이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얘기는, 화 또한 대물림 된다는 얘기이다.

이게 설득력 있으려면,

내가 누구의 배우자, 며느리나 사위 따위를 취사선택할 수 있듯이,

누구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들이나 딸이라는 자리는 우리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닌데,

이런 감정들이 대물림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시큰둥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임신 후 첫 삼 개월 동안은 여섯에 하나 꼴로 유산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병력 때문에 특히 더ㆍㆍㆍㆍㆍㆍ."

"셋 중 하나로 확률이 내려가겠죠.ㆍㆍㆍㆍㆍㆍ"(2권, 229쪽)

 

 

이 부분은 번역이 잘못 되었다.

확률은 '내려가다 & 올라가다'라는 표현 대신 '높다& 낮다'라고 표현하는 걸로 알고 있다.

여섯 중 하나가 셋 중 하나가 되는 것은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다.

 

어찌되었건 오랫만에 참 재밌고 좋은 책을 만났고,

그리하여 남은 이 여름, 아마도 이 사람의 전작을 들추지 않을까 싶다.

 

 

 

 
 

 

 

 

 

 

 

 

임재범 - 정규 6집 To… [CD+DVD]
임재범 노래 / 로엔 / 2012년 7월

 

행복(Happiness)의 철자는,

 'y(=why[waɪ]/왜, 어째서)(Happ'y'ness)가 아니라 'i(=I [aɪ]/나는, 내가)'(Happ'i'ness)이다.

-행복은 '왜? 나에게 없는거지?'하는게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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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8-07 17:42   좋아요 0 | URL
Y(Why) am I not happy??? 의 자세가 아니라,
I am happy, I must happy now-here.의 자세여야 한단 말인가요???

양철나무꾼 2012-08-07 17:57   좋아요 0 | URL
행복(Happiness)의 철자는,

'y(=why[waɪ]/왜, 어째서)(Happ'y'ness)가 아니라 'i(=I [aɪ]/나는, 내가)'(Happ'i'ness)이다.

-행복은 '왜? 나에게 없는거지?'하는게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라는 의미.

그래서 '추구'라는 제목이 좀 그래요, ㅋ~.

숲노래 2012-08-07 19:31   좋아요 0 | URL
어떤 모습이나 삶을 놓고 '반대말'을 찾는다면,
'사랑'이라 할 때에는,
"사랑을 뺀 모든 것"이 모두
사랑하고는 어긋나거나 엇나가는 말이 되리라 느껴요.

곧, 사랑한테는 사랑만 같은 말이고,
사랑 아닌 모든 말은 '사랑이 아니'니까
반대말이 되겠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미움이든 무관심이든 무엇이든,
사랑하고 반대말이 되겠지요.

양철나무꾼 2012-08-10 16:45   좋아요 0 | URL
저도 누구에게 배웠는데요~^^
반의 관계에 놓인 말들도 여러 종류가 있대요.

1) 모순 관계 : 두 부류로 나뉘어서 넘나듦이 없는 관계
예) 남자-여자, 암-수, 호적상 성인-미성년...

2) 단계적 반의 관계 : 정도가 강하거나 약한 거로 나누어지는 거
예) 뜨겁다-차갑다...의 사이에는 조금 뜨겁다. 미지근하다, 조금 차갑다. 많이 차갑다. 무지 차갑다...

3) 상대적 반의 관계 :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 반의 관계로 무리지어지는...
예) 조선시대 군대는 육군-수군, 지금은 육군-해군-공군...

하지만, 뭐 이렇게 나눌 필요 있을까요?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모자란 시간인걸요, ㅋ~.

cyrus 2012-08-07 20:13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를 읽고 난 후부터 이 소설도 끌렸어요. 요즘에는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 읽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

양철나무꾼 2012-08-10 16:47   좋아요 0 | URL
네, cyrus님 여름엔 달달한 사랑 얘기도 좋지요, ㅋ~.

이 책의 주제는 말이죠~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고,
행복이라고 볼 수도 있고,
용서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해요.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는 '독자'의 몫인 듯~^^

프레이야 2012-08-07 21:1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대문사진 분위기 있어요.^^
임재범 6집이군요. 노래 좋으네요. 지금 마구마구 지름신 강림하려고 해요.ㅎㅎ
더글라스 케네디의 이 책, 좋더란 말이죠? 양철나무꾼님의 그 정도 말씀이면 저도 꽤 끌리는 책이네요.
공경희씨의 번역문은 대체로 딱딱하다고 느끼게 되더군요. '추구'라는 말을 저도 한 번 붙잡고 곱씹어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행복의 반대말은 뭘까요? ......

양철나무꾼 2012-08-10 16:50   좋아요 0 | URL
대문 사진, 정말 분위기 있어요?
프레야님처럼 센스있는 분에게 분위기 있다는 소리 들으니 좋아요.^_____^
임재범도, 더글라스 케네디도 올 여름 완소 콜렉션이랍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행운'이 아닐까요?ㅋ~.
잘 지내시죠?

L.SHIN 2012-08-08 13:29   좋아요 0 | URL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동감할 수 밖에 없는 정의입니다.

갑자기, (아니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계속 추구해왔는지는 모르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대화다운 대화는 뭘까, 하고 생각을 해야만 해서 이 소망은 또 다시 무의식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2-08-10 16:55   좋아요 0 | URL
전, 대화의 기능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마음이 그 또는 그녀에게 가 닿을 수 있고,
또 그 또는 그녀의 그것이 내게 전해져 올 수 있다면...
소리가 되어져 나오고 아니고는 차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론 기다림도 대화가 되고, 그리움도 대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진짜 그러게요, 닉 까먹을뻔 했다는~ㅠ.ㅠ

감은빛 2012-08-08 15:33   좋아요 0 | URL
해피니스의 철자에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군요!
저는 자꾸만 Y가 들어간 철자의 자세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저자의 전작들 표지가 제법 낯이 익네요.
저도 한번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더위에 잘 지내시나요?
빨리 무더위가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양철나무꾼 2012-08-10 16:57   좋아요 0 | URL
올 여름은 님도 저도 바빴나 봐요~--;
작년 여름만 해도 복근을 이쁘게 만든다고 상상하며 해피해하셨는데 말예요, ㅋ~.

전 엄청 좋았어요.
근데 감은빛님은 소설 잘 안 읽는다고 하시지 않으셨었나, 쿨럭~(.,)

북극곰 2012-08-17 08:48   좋아요 0 | URL
저도 집에 있는 '위험한 관계'를 시작해보는 걸로~~ 이 리뷰에 답례합니다~
나무꾼님 잘 지내시죠? 그래보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