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전생 체험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였을때,

텔레비젼에 한 여자연예인이 나왔었다.

그녀는 전생에 가난한 집의 사내아이였는데,

구걸을 갔다가 부잣집 딸을 보게 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암튼 전생의 그 사내아이가 죽은 이유가 죽은 이유가 상사병이었는지, 아사(餓死)였는지는 가물가물 하지만,

그 여자연예인의 현재모습은 부잣집 딸의 모습과 꼭 같았단다.

얼마나 그리고 염원하였으면 그렇게 꼭 닮은 모습으로 태어났을까 싶어...꺼이 꺼이 울었었다.

 

'배 부른 돼지보다 배 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둥 육체적ㆍ정신적 경계를 나눠가며 행복해지라고 강요할 만큼,

'행복해지소서~'하는게 어찌보면 괜찮은 덕담처럼 들리는 세상이지만,

고인 물은 썪는다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과학이고 철학이고 종교고,

하찮은 장르소설에서조차 행복할때는 아무런 역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불행의 기록이고 소산이다.

 

왜 이런 연결도 안되는 것 같은 엉뚱한 얘길 하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너무 행복해서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고 하고 싶은건지,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고 하고 싶은건지,

내 자신을 나도 모르겠으니까 말이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오랫만에 빼꼼, 고개를 내민 이유는...

'Y씨의 최후' 라는 너무 너무 근사한 책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책 뒷표지에 '영문학과 소속이지만 물리학심리학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 에어리얼 만토.'

그리고 '영리하고, 우아하고, 아찔하고, 그리고 매우 위험한 스릴러'

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쉬운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레 겂을 먹어 이렇게 근사한 책을 놓치는 것 또한 정말 너무 너무 아쉬워서 이렇게 떠벌인다, ㅋ~.

 

 

 

 

 

 

 

 

 Y씨의 최후
 스칼렛 토마스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이 책의 주인공은 에어리얼 만토라는 여자다.

대학교 영문학과 소속이라고 해서 알 수 있듯이,

지적 호기심은 풍부하지만, 육체적ㆍ정신적 경계를 나눌 것도 없이 최저의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지도교수가 관심을 갖던 'Y씨의 최후'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고,

그로 인하여 그녀 또한 인생에 최후를 맞게 되는데...

 

 

 

 

 

 

 타나토노트 1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9월

 

 타나토노트 2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 / 2000년 9월

 

 

옛날에 '타나토 노트'를 읽었을때 그런 내용이 있었다.

그때 죽음을 체험하는 게 묘사되는데,

죽음의 세계가 너무 근사하여...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면 누구나 그쪽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형수 중에서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을 뽑아,

그중에서도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야 하는 타당한 개연성을 부여했던게 관건이었다.

이 책 'Y씨의 최후'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내가 이 책을 너무 너무 근사하다며 침을 튀기는 이유는,

과학, 철학, 심리, 물리, 천문 등...온갖 학문의 여러가지 학설들이 경계도 없는 듯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에드거 앨런 포' 같은 경우 '검은 고양이'를 쓴 작가로만 알고 있었지, 과학적 사고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장르소설에선 경험과 실험외에도 과학적 사고 또한 필수불가결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연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실험과 같이 검증된 방법으로 얻어낸 체계적 지식과학이라고 한단다.

하지만, 과학이라고 하여 논리정연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우리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유효기간은, 새로운 진리나 법칙이 발견되기 전까지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올레르스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사고실험의 원칙들을 이용했다. 그리고 혹자는 그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족히 몇백 년 앞서 사고실험의 원칙들을 이용하여 대폭발이론을 만들어 낸 거나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그는 산문시 '유레카'에서 자신의 다양한 과학적, 우주론적 사고들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포는 실험적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러한 이론들은 사고실험 형태로, 혹은 그가 무한을 묘사하는 방식이라고 했던 '생각에 대한 생각'으로서 발현되었다. 그가 올베르그의 역설을 풀어 낸 방식은 역사상 가장 우아한 사고실험들 가운데 하나이다.ㆍㆍㆍㆍㆍㆍ에드거 앨런 포는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고 "우리의 망원경이 셀 수 없이 많은 방향에서 찾을 수 있는 빈 공간들"에 대한 더 간단하고 개연성 있는 해답은 별들 가운데 일부가 단순히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빛이 아직 우리에게 도달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134~135쪽)

 

삶은 무 자르듯,그렇게 흑백논리로 명확히 잘라낼 수 없는 게 아닐까?

좋고 나쁜 신념이란 것만 해도,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 에 따라 결과는 엄청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글쎄, 그 남자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자네는 좋은 사람들에 속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좋은 사람들은 무엇을 대변하지? 자네가 그들과 싸울 예정이라면 왜 그들과 싸우는건지 이해할 필요가 있어."(310쪽)

 

 말을 하는 동안 내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내가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는 것뿐이라는 걸 깨닫는 지점까지 간다. 그러나 나는 울 수가 없다. 울면 끝장이다. 아드레날린이 모두 씻겨 나갈 텐데. 아드레날린이야말로 내게 남은 유일한 것이다.(330쪽)

이 부분은 그동안 내가 생각하던 눈물이랑 다른 견해여서 옮겨봤다.

울기까지 감정이 고조되고,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은 맞지만,

난 울고난 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난 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오히려 개운하고 홀가분함을 느끼는데,

이 책에서는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무기쯤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얘기하면, 이 페이퍼의 제일 처음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가열차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행복에 겨워 우는 사람이 '울면 끝장이다'라고 하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나는 자기 파괴적인 사람이에요. 적어도 잡지에선 나를 그런 식으로 분류하더군요." 내가 말한다.

 "자기 파괴적이라. 흥미로운 용어네요. 나는 나야말로 자기 파괴적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좀 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그렇죠. 그것이 바로 도(道)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이거든요. 자신을 파괴하고 자아를 제거하라."애덤이 말한다.(346쪽)

"나는 내가 신을 잃어버렸고, 그 다음엔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일반적으로 종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찾고 그리고 신을 찾도록 돕는다는 걸 당신도 알 거예요.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데 성공했죠. 나는 그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욕망을 버리고 자아를 버리는 것에 관해 내가 읽은 모든 책들ㆍㆍㆍㆍㆍㆍ그것은 모두 문자 그대로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었죠. 그 모든 책을 읽었어도, 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종교의 일부분이 아닌 상태에서 종교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요. 성경은 다른 여느 책들처럼 그저 한 권의 책이 되었어요. 나는 여전히 그것을 읽을 수 잇었고, 이런저런 부분이 의미하는 그것을 읽을 수 있었고, 이런저런 부분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걸 믿을 수는 없었어요."

 "영혼을 파괴하는 거죠. 자아를 파괴하는 것처럼."

"그래요. 난 진정 무아(無我)의 상태를 경험했어요. 그리고 그건 빌어먹을 만큼 무서웠죠."

"애덤ㆍㆍㆍㆍㆍㆍ."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 그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는 것.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은 지옥이에요. 타인은 지옥이라고 누가 말했죠?"

"사르트르요."(348쪽)

게다가,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우리가 흔히 절대적이라고 얘기하는 종교도 결국 입장에 따라 변하더라 하는 걸,

또 다른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얘기하고 있다.

'도(道)를 자신을 파괴하고 자아를 제거하라'라고 해석한 것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모두 쿼크와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면ㆍㆍㆍㆍㆍㆍ."그가 운을 뗀다.

"뭐라고요?"

"우리는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그것은 쿼크와 전자를 서로 비비는 것에 지나지 않겠군요."

"그보단 낫죠.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실제로 '서로 비비지' 않아요. 사실 물질은 다른 물질을 결코 건드리지 않죠.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원자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전자는 다른 전자들을 밀어내면서 원자의 외부에 자리를 잡는다는 걸 명심해요.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나누지만 동시에 서로를 밀어낼 수 있는 거죠." 내가 말한다.(352쪽)

이 글을 읽으면서, 처음엔 과학자들은(음, 물리학자들은)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멋대가리 없이 사랑을 표현할까 싶었었다.

하지만, 다른 수식이나 미사여구 없이도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고갱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도(道)를 '자신을 파괴하고 자아를 제거하라'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언어학자들은 좀 나은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언어는 끝없이 어긋나면서 맞물리기도 하는 등,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어쩜 불가능하기 때문에...

표정이나 몸짓, 주변 상황 등을 고려하는 상호적인 것이다.

그래서 자아는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라캉은 의식이 언어와 연결외어 있다는 정신분석학적 주장을 폈다. 그에 의하면 옹알이 하는 아기, 즉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상징 질서'의 일부가 되는 것(즉 의식적인 세계를 갖는 것)으로의 도약은 정확히 우리가 언어를 획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세서 개별적인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아니다. (주여, 고맙습니다.)우리는 자아라고 불리는 무언가가 되는데, 자아는 오직 타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는 언어로 만들어져 있다. (혹은 적어도 나의 세계는 언어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시뮬라크르이다. 그것은 수학처럼 닫힌 체계로, 모든 것은 오직 그것이 다른 무언가가 아닐 때에만 의미가 있다. 2라는 숫자는 그것이 1이나 3이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ㆍㆍㆍㆍㆍㆍ나는 오직 내가 다른 누군가가 아니기 때문에 나이다. 이것은 기의 없는, 오직 기표만 있는 존재의 체계이다. 이 모든 존재의 체계는 마치 자물쇠를 채워놓은 호버크라프트처럼 무(無) 위를 떠다니는 닫힌 체계이다.(466쪽)

그렇다면 언어 외에  표정이나 몸짓, 주변 상황 등에 제약이 따른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할까?

자아는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타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 시 되는 수밖에 없다.

 

'언어' 만으로 사랑을 할때는,

그래서 '언어'가 서로를 어루만지고, 비비고, 느끼면서 사랑하는,

자아를 드러내고 타자를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감정(emotion)을 그냥 '움직임(motion)'으로 부를 수도 있을걸세. 실제로 감정이란 단어가 단순히 움직임, 혹은 한 가지에서 다른 것으로의 이동을 의미했다는 걸 나는 기억하네. 언어로 만들어진 이 세계에서는, 의미가 실제로 쓸모없어지는 경우는 결코 없어. 이 경우 움직임은 질량을 가지지 않는 어떤 것, 즉 움직임 그 자체에 관한 것일세. 그래서 그것이 운반하는 의미는 불가해한 속도로 이동할 수 있지. 자네를 거꾸로 이동시킬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도 말이야.ㆍㆍㆍㆍㆍㆍ.(478~479쪽)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과학은 없다
 맹성렬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8월

 

 

이 책에서 나는 현대 주류 과학의 입장에서는 '아웃사이더'나 마찬가지인 UFO와 미스터리 서클, 초능력과 죽음 뒤의 삶을 논할 것이며, 이들의 향후 과학의 경계선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아는 과학은 모두 허구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것은 무조건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며 인류의 사고를 일정한 틀 안에 가두려 하는,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오류를 걷어내자는 것이다.

 

 창조는 파괴를 필요로 한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최첨단 주류 과학에 갇힌 현대인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넓혀주고 싶다. 주류 과학계가 애써 외면하는 초상현상을 탐구하는 일은 과학의 재도약을 준비하는 첫번째 작업이다. 이 작업은 우리 스스로 머릿속에 그어놓은 상상력의 한계를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류가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축복된 재능은 빛을 보지 못하고 녹슬어버릴 것이다.(12~13쪽, 프롤로그 중에서)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과학이라고 하여 논리정연하고 절대불변은 아니라는 거다.

그것들의 유효기간은, 새로운 진리나 법칙이 발견되기 전까지이다.

우리가 절대불변이라고 알고 있는 신이나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새롭게 유일신이나 절대 종교가 나타나기 전까지로 보면 된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최근접 체험은 공군 조종사들이나 관제요원들에 의해 비교적 먼 거리에서 목격되는 사례와는 구분되는 현상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책 제목에 '정확히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여러 유사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하는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그 후 다양하고 면밀한 연구ㆍ조사를 거치면서 그 모든 현상을 동일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63쪽)

 

그렇다고 내가 이 글을 이렇게 멋대가리 없게 끝낼까?

절대 그렇지 않지, ㅋ~.

세상에 절대불변한 것이 있긴 하다.

그건 '사랑'이다.

'사랑'이 절대불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눈 멀게 하여 물불 안가리게 되면,

세상은 온통 분홍분홍*^^*하게 변하고,

그땐 절대불변이 되고,

마냥 행복해진다.

 

하지만, 마냥 행복해지는 이 상황을 경계해야 할지 말지를 놓고 고민하는건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다들 각자의 고민으로 이 가을 秋男, 秋女가 되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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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0-22 17:56   좋아요 0 | URL
물질과 물질은 '서로 건드리거나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양자물리학에서 밝힌 이야기예요.

따지고 보면, 이 댓글을 쓴다며 자판을 두들긴다 하더라도,
자판과 내 손가락은 '본질로는 서로 스치지도 부딪히지도 않'아요.

어쩌면, 이 댓글에 담기는 제 마음도
어느 곳으로도 안 간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떤 씨앗을 살며시 뿌린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

아이리시스 2012-10-22 18:15   좋아요 0 | URL
다시 봐도 저 세 종류의 책은 양철나무꾼님 아니면 연결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뭐하느라 행복하신지 저도 좀 알려주세요, 책 좀 집어치우게요( '')
청춘을 책과 보내기에는 좀 억울하다는 느낌이 어제쯤부터 들기 시작했거든요.........
그동안은 아무도 저더러 책을 덮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저는 이 글도 책 덮고 사랑하라는 말로 읽혀요 히히

자주 오세요^-^

프레이야 2012-10-22 22:4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이 있어서 저도 있군요. 동감~
타자에 대한 배려가 결국 자아를 존중하는 길이군요.
진리! 새삼 이렇게 풀어주시니 참 좋아요.
절대불변은 없는 것 같구요. 마냥 행복해지는 순간을
경계하라. 저에게 내리는 명령ㅋ
자주오세요2.ㅎㅎ

감은빛 2012-10-23 11:18   좋아요 0 | URL
저는 추남입니다. ^^
양철님 글 오랫만에 읽네요.
가을을 맞아 관심있는 소설 몇 권을 주문해서 일터 책상 한쪽 구석에 쌓아놓았는데,
바빠서인지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한번 들춰보지도 못하고 며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온이 갑자기 확 떨어졌어요.
따뜻하게 입고 다니셔요!
 

나는 그러니까 기다리는 걸 잘 못한다.

어려서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컸었다고는 얘기했었고,

그러니 무엇 하나 아쉬워서 기다릴 일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다섯 명의 고모들 중 결혼 안하고 남아있던 고모들은 내가 분부만을 내려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인줄 알았다.

이러고 성장한 나는,

커서 단체 생활, 집단 생활을 하면서 그 차이에서 버거워했었지만,

그래도 직업 자체가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다보니 그럭저럭 잘 견뎌내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시간 약속을 철저히 잘 지키는 줄 알지,

그게 안달이 나고, 불안과 초조의 소산이라는 걸 모른다.

 

지난 주에 남동생이 상의할 일이 있다고 만나자고 하였다.

남동생은 만나기로 한 주점에 잠깐 얼굴을 들이밀었다가는,

무슨 전화를 받고 급히 나갔다가 한참만에 들어왔다.

남동생은 딸 둘을 둔 이른바 '딸딸이'아빠다.

첫째와 둘째의 나이 차이가 무려 열 살이나 난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키워져 오던 큰조카는 갑자기 생긴 동생으로 인하여,

관심이 분산되었고...

올해 중1인 사춘기 소녀답게 나름의 방식으로 온갖 일탈을 감행하여 남동생의 속을 있는대로 썪이는 중이었다.

 

동생을 향하여 별로 해줄 얘기가 없었던 난, 위로주나 살 요량이었는데...

그때 동생에게 걸려 온 전화 한통이 나까지 광분케 하였고,

그리하여 술독에 같이 빠져 버렸다.

얘기인즉,

학원에 가기 싫다고 친구와 패스트푸드점에 앉아있는 조카를 발견하여,

집으로 들여보내는 과정에서,

조카 친구의 부모에게도 연락을 하겠다고 하여 부녀 간에 말다툼이 있었나 보다.

그걸 순찰을 돌던 순찰차가 보고 조카가 탄 마을 버스에 같이 타서는,

누구냐

아빠다.

가정폭력이냐?

아니다.

꼬치꼬치 캐묻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실적 위주의 업무 행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그 부녀를 가정폭력으로 엮을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번엔 더 기가 막히는 얘기를 들었다.

부녀는 화해를 했고...

어찌 어찌하여 기분이 좋아진 조카는 마을 버스 안에서,

마을 버스 밖의 남동생을 향하여 손바닥을 자기 입술에 쪼옥~ 댔다가 날리는 손바닥키스를 날렸고,

남동생도 마을버스 밖에서 조카를 향하여 똑같이 화답하였다고 한다.

마을버스가 떠난 뒤, 남동생은 뒤에 서있던 순찰에게 아동 성폭력 전과가 있는지 조사를 받았는데...

불쾌하였지만, 자기도 딸 둘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어쩌지 못하고 응할 수밖에없었다고 했다.

 

어제, '노자 할아버지 같이 놀아요!'란 그림책의 발상에서 참 좋았던게,

헝겁을 이렇게 저렇게 짜집기 한것도 물론이거니와,

거기다가 노자 '도덕경'의 몇 글자를 발췌하여 수실로 한땀 한땀 수놓은 정성이었다.

요즘은 어디서고 바빠 바빠를 외치는 속전속결의 세상에,

자기밖에 모르는고로,

남을 기다리거나, 남에게 정성을 들일 줄 몰라서 참신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수실'하면 떠오르는 책이 바로, '나는 기다립니다'이다.

 

 

그림책의 '끝'을 '끈'으로 바꾸어 표현해 놓았지만, 사실은 수놓을 때 쓰는 수실이다.

 

 

 

  나는 기다립니다...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즈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어린이 / 2007년 7월

 

책의 표지로 미루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듯,

사람 사이의 관계, 삶을 '빨간 수실'로 표현해 놓았다.

이쯤에서 난 딴지를 걸고 싶어지는데,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더 복실거리고 탐스러운 털실뭉치도 놔두고,

하필 탄력 제로, 툭툭 잡아당기는 대로 끊어지는 수실을 사용했을까 하는것이다.

 

난 원색의 옷을 좋아하는데,

그런 옷의 단추가 떨어지면 단추를 달 실이 없어 난감할 때,

알록달록한 수실을 이용하여 단추를 달때가 있다.

작은 단추는 그럭저럭 견뎌내는데,

겨울 외투의 큰 단추는 반나절도 못 버티고 떨어져 단추마저 잃어버리는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단추 마저 버텨내지 못하는 수실을,

기다림의 용도로 표현하다니,

사실을 알고보면 아이러니컬 하다.

 

기다림의 용도로는 짱짱한 고탄력 스타킹을 만드는 함섬섬유실이나,

필라테스할때 쓰는 고무로 된 밴드,

또는 자전거포에 가면 자전거 바퀴 속에 들어 있는 짱짱한 고무를 갈라만든게 짱이다.

폼은 안나더라도 무릇 인연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수실처럼 어디에선가 조금만 힘을 주어 잡아당기면 툭툭 끊어져 버려선,

어디 성질 나빠져서 도 닦듯 인내하며 놓아야 하는 수인들 제대로 놓겠는가 말이다.

 

찰떡이나 점성 좋은 치즈도 좋겠다.

쭈욱 잡아 당기면 늘었다 줄었다 자유자재여서,

연결은 되어 있으면서 자신의 본성은 유지하는 그런 인연이어야 하겠다.

왜냐하면 '세살 버릇 여든까지'라는 속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나이에 자기 자신이 나아지는 쪽으로의 변화라고 하여도 쉽지가 않은데,

누굴 내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고 바꿀려고 하느냐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관계는 발전할 수 있고, 인연은 유지될 수 있다.

수실처럼 '톡톡~' 끊어져 버리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진다.

 

그렇다면 기다리는걸 잘 못하는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석봉이 시험에 합격하기를...?

아니, 석봉이 건강하게 시험을 치르기를...

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몸 상하거나 하지 말고,

셤 마치고 무탈하게만 일상으로 돌아와 주기를 기다린다.

모든 석봉 모친의 마음이 그렇듯~!

 

'다비드 칼리''세르주 블로크' 커플의 책이 한권 더 있다, '너에게 뽀뽀하고 싶어'

 

 

 

 

 

 

 

 

 

 

 

 

 

 너에게 뽀뽀하고 싶어
 다비드 칼리 지음, 길미향 옮김, 세르주 블로크 그림 /

 아트버스(Artbus) / 2012년 8월

 

이 책도 '나는 기다립니다'처럼 참신하고 이쁘다.

 

다비드 칼리 홈페이지 링크 클릭~!

세르주 블로크 블로그 링크 클릭~!

 

웹서핑을 하다가 든 생각인데,

불어판의 경우,

저자가 '다비드 칼리'라고 되어 있고,

그 밑에 저자의 다른 작품들로 링크되는 란에 가서,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 블로크' 두명이 나란히 놓여있다.

두 명은 공저자일수도 있는데,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우리의 관행상 '한명은 글, 한명은 그림' 이렇게 적어준 게 아닐까 싶었다.

 

둘 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사람들인데,

한명은 글만 쓰고, 한명은 그림만 그렸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정작 본인들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뽀뽀'니 '키스'를 '성인'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편협하고 낡은 가치관 속에 빠져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

'너에게 뽀뽀하고 싶어'는 참으로 예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책이다.

누군가는 결혼한 사람들의 '프렌치 키스'에 방점을 찍어 한정시켜 생각 했었는데,

그런 키스도 있는가 하면,

굿모닝 키스,

갈구하거나 허기질때 하는 키스,

가슴 설레이는 첫키스의 추억,

그 장소여서 아름다운 키스,

그 사람이어서 의미가 있는 키스,

화해의 몸짓으로서의 키스,

프로포즈로서의 키스,

영화를 보다가 필이 동하는 키스,

장엄한 광경에 동화되어 하는 키스,

등 갖가지 키스가 예쁘게 그려져 있는게,

프로포즈할때 한권쯤 준비해도 좋을 것 같다.

난 낭만적인 비오는 날 우산 속의 뽀뽀도 좋을 것 같고,

언덕 위에, 까만 하늘 아래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노라면,

뽀뽀를 하지않고서라도 두고 두고 황홀할 것 같다.

 

 

 

 

그림은 파스텔톤의 손톱달이 뜬 이런 분위기가 맘에 든다.

 

 

 

당근,

아이디어는 돌맹이를 하트로 표현한 게 가장 맘에 들고...ㅋ~.

그리고 잠든 여자의 사랑스런 눈썹 그늘과,

그 눈썹 그늘을 바라보는 남자의 그윽한 눈빛이,

뽀뽀가 없어도 가장 맘에 들었다.

(남자가 들고 있는 책이 분홍분홍*^^*하다.)

 

 

 

책은 '나는 기다립니다'와 '너에게 뽀뽀하고 싶어', 두권 다 참 예쁘고 좋았다.

하지만, 남동생네와 관련된...'폭력과의 전쟁'관련 에피소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실적이나 성과 위주의 보여주기 식으로 끝나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우려하는 건 나혼자만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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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9-28 11:09   좋아요 0 | URL
동생네 부녀의 일은 정말 웃지못할 에피소드네요.ㅠ
늘 풍성한 책 이야기, 독자로서의 찐한 사랑이 느껴지는 리뷰~ 언제나 좋아요!
명절 잘 지내시고 올해가 저물기 전에 한번 봐야지요.^^
 
노자 할아버지 같이 놀아요! 학고재 그림책 2
정현주 글.그림, 목우스님 한자도움 / 학고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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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님이 카카오 스토리에 올려놓은 이 사진을 보고 어디냐고 물으셨는데,

이 사진은 그러니까 선암사 꽃담이다.

그러니까 이 사진을 거기에 올린 이유는 바로 이 책'노자 할아버지 같이 놀아요'를 읽고 제대로 필 충만 하셔서이다.

 

선암사 꽃담 사진이 이 책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냐 하면 한자 도움을 주신 목우스님 이란 분이,

'마하연 명상선원'과 '선암사'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명상을 지도하고 있다고 책 날개에 적혀 있길래 수선을 떨어봤다.

 

내가 리뷰의 제목에서 엄지 손가락이 두개 뿐인게 못내 아쉽다고 한건 실은 잘못된 표현이다.

내노라 하는 영화 평론가 둘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려가며 two thumb up한데서 연유한 말이니,

흉내를 내려면 좀 그럴 듯 하게 냈어야 하는데 말이다, ㅋ~.

 

암튼, 날 이렇게 홀라당 발라당 반하게 한 이 동화책을 만든 사람은 정현주란다.

글ㆍ그림 정현주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고,

잠시 미국에 머물면서 텍스타일 작업에 몰두하였다.

'천자문아! 나와라''너, 나 우리' '아제 아제 바라아제''멸치' 들에 그림을 그렸다.

라고 되어 있는 걸로 보아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인가 본데,

이번 동화책은 글도 이사람이 심혈을 기울였는데 빼어나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실은 내가 이렇게 설레발을 치는 이유는,

이 책의 겉표지와 관련 떠오르는 분이 계셔서이다.

 

해님을 가려 보겠다고 아무렇게나 밀짚모자를 눌러쓰셨던 분.

바람을 갈라 보겠다고 자전거의 페달을 설렁거리며 돌리셨던 분.

농약 대신 오리를 풀어 벼 농사를 지으셨던 분.

 

自 스스로 자, 然 그럴 연.

스스로 그러함.

어떻게 되어야만 한다고 정해지지 않은 것.

그걸 '자연'이라고 해.

 

어찌보면 자연같으신 분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신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범인의 눈으로 세태를 바라보니, 못내 아쉬울 따름이어서 그렇지.

 

분위기를 바꾸어,

내가 정현주 이분의 내공 운운하는 이유는,

이런 기법 때문이다.

이걸 패치워크라고 하는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땀 한땀에 땀방울들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듯하다, ㅋ~.

 

 

 

아주 옛날, 노자 할아버지가 말했어.

가장 좋은 마음은 물을 닮았대.

왜 그런지 궁금하지?

 

이 구절을 난 이렇게 읽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아주 옛날, 노 할아버지가 말했어.

 

 

물은 세상 모두를 도와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면서 말이야.

가다가 큰 바위가 막아서면 클클클

작은 돌이 막아서면 잘잘잘

돌아서 내려가지.

다투지 않고 흘러가.

 

 

샘물은 퐁퐁

시냇물은 졸졸졸

물길따라 아래로 흘러가지.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러.

흙탕물에 섞여 더러워지기도 하지만

물은 가지 않는 곳이 없어.

 

 

어느새 바다에 이르지.

 

 

그래서 좋은 마음은 물을 닮았대.

 

얼마든지 어려워질 수 있는 애기를 쉽게 풀어냈다.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는 것도 그렇겠지만,

어려운 애기를 쉽게 하는 것은...

본인이 직접 깨닫고 체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 연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아, 좋다.

그림이고,

글이고,

억지스러운 구석이 없고 자연스러워서 좋다.

이런 그림책을 보다 보면,

그림 책을 아이들만 봐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오랫만에 단순해질 수 있어서 좋았고,

분홍분홍*^^*한 동심에 빠져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 마음을 붙든 문구는 이것이었다.

動善時

(무엇을 하면) 좋을지 때를 맞춰 행동하는 (마음)

 

집을 만들때도 안이 비어 있어야 우리가 그 안에 머물러 쉴 수 있듯이,

우리 마음도 비어 있어야,

사랑도 담을 수 있고, 호기심도 솟아나 마음이 재미있어 진단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처럼

모든 생겨난 것들은 언제나 사라지지.하지만 다시 돌아와.

우리네 사랑이나 삶도 그런 것이리라.

달도 차면 기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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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9-24 16:31   좋아요 0 | URL
가끔 정신이 피곤할 때나 빽빽한 활자의 책 때문에 눈이 피로하면 그림책 한 권의 삶의 비타민인거 같아요. 선암사 꽃담 사진이랑 책 속 삽화가 좋습니다. 잠시나마 학교 생활에 대한 피곤함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사진과 그림, 감사합니다. ^^

잘잘라 2012-09-24 17:55   좋아요 0 | URL
휘둥그레~~~~~ 사진도 글도 그림(이라기보다는 작품 사진..인건가요? 아무튼)도 참 좋네요.
리뷰 쓰신 님의 마음도요. 진달래 분홍빛이 너무 고와서 오랜만에 인사 남기고 갑니다요~~~

프레이야 2012-09-25 16:58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진 그림책이네요. 맛배기만 봐도 느낌이 온다는...^^
제 손가락 두 개도 같이요.ㅎㅎ

하늘바람 2012-09-25 22:17   좋아요 0 | URL
선암사 꽃담이었군요

하늘바람 2012-09-25 22:26   좋아요 0 | URL
홀딱 반할만한 그림책이네요 꼭 봐야겠어요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와 '칠칠 최북'을 번갈아 가면서 읽는다.

화두는 어제가 좋은 서평, 좋은 글이었다면...오늘은 그 연장선 상에서 '좋은 그림'이다.

글은 쓰레기 같이라도 내 감정을 표현해 내지만,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란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림도 서평이나 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화단에서 얘기하는 진짜 좋은 그림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경험과 삶을 얼마간 반영한 그림이 난 좋다.

 

최북의 이 그림 '공산무인도'를 놓고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무성의하다고 하고,

내가 애정하는 손철주는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최북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가 있다는 걸 주목할만 하다.

이유는 다름아닌, 그림 속의 시 한수 때문이란다.

 

최북이 인용한 '空山無人  水流花開'는 어떻습니까? 빈산에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없는데 물은 흐르고 꽃은 핍니다.ㆍㆍㆍㆍㆍㆍ'공산무인 수류화개'가 가지고 있는 속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자연은 원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인가니작위적으로 그 자연의 섭리에 가입할 수 없는 것이다.' 보십시오. 물이 흐르고 꽃이 지는 것은 자연이 원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빈산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필 때 알아서 피며, 떨어질 때 알아서 떨어진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화가 최북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원래 그러한 이치를 그림 속에 표현해 본 것이죠. 다른 사람들은 물이 흐로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제 가끔의 흥에 겨워 그렇게 탄성을 지르거나 한숨을 쉬는데, 최북은 그렇지 않은 자연의 딴 마음을 그려 보고 싶었던 겁니다.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필 때면 저절로 피는 것이다. 인간이 피어라 한다고 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슬프다고 떨어질 꽃잎이 안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심상을 이 그림에 드러낸 것이죠. 그래서 최북의 이 그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획득한 겁니다. 어떤가요, 결코 만만한 산수화가 아니지요.

 

실은 '서서비행'과 관련한 페이퍼의 어울리는 음악으로 내가 골랐던 음악은 '임재범'의 '비상'이었다.

 

 

 

 

 

 임재범 - 2집 비상
 임재범 노래 / 새한(km culture)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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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상

                                                            작사/채정은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감당할 수 없어서 버려둔 그 모든건 나를 기다리지 않고 떠났지.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상처 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거지.고독이 꼭 나쁜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걸 깨닫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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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페이퍼를 쓰는 동안 마음이 바뀌어 내가 요즘 끼고 듣는 'The one'의 '그남자'를 페이퍼에 올려 같이 듣고 싶어졌다.

이 노래로 말할 것 같으면, 예전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OST로 남자 버전 '그남자'와 여자 버전 '그여자'가 있다.

아마, 백지영이 '그여자'로 부른걸,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남자 주인공이 '그남자'로 바꿔 불렀었나 보다.

그때도 분명 같은 가사였을텐데,

미처 그렇게 아슴아슴하고 절절한 줄 모르다가,

The one이 부른 버전을 듣는데...제대로 몰입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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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남/여)자

 

 

한 (남/여)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 (남/여)자는 열심히 사랑합니다

매일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 (남/여)자는 웃으며 울고 있네요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람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네가 나를 사랑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여)잔 웁니다

그 (남/여)자는 성격이 (소심합니다)
그래서 웃는 법을 (배웠답니다)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가 많은 상처투성이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람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네가 나를 사랑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여)잔 웁니다

그 (남/여)자가 나라는 걸 아나요
알면서도 이러는 건 아니죠
모를 거야 그댄 바보니까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여)잔 웁니다

 

펼친 부분 접기 ▲

 

내가 이 노래에 제대로 몰입한 이유는,

그 (남/여)자는 성격이 (소심합니다)
그래서 웃는 법을 (배웠답니다) 

라는 구절 때문이다.

주변에서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들을 간혹 보고 듣기는 하지만,

오랜 사회생활에 닳고 닳아서 (좋게 말하면 둥글려져서) 그런지,

'성격이 아무리 소심하기로 웃는 법을 배워야 할 사람이 있을라고~'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때 나는 사람들의 웃음을 부러워 했었다.

사람들이 흩뿌리는 웃음을,

내리쬐는 햇살이랑 동격으로 여겼고,

그들이 흩날리고 가는 웃음의 조각들만을 모아서라도 좋으니...

나도 밝고 (넉넉하지 못하면) 잔잔하게라도 웃어보고 싶었었다.

나의 웃는 모양새는 '배시시 해시시 자연스럽게'가 아니라,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억지로 마지못해 웃는 흉내를 내는 꼴이었다.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가 많은 상처투성이가 아니라,

친구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 얘기를 한 친구가 없었다.

 

그러면서 내게 다가오는 이를 향하여 난 도리어,

이를 드러내 놓고 얼굴을 터트려가면서 웃지 못한다고 툴툴거렸었다.

 

그대도 나도 성격이 소심한가 보다.

그래서, 그대도 나도 웃는 법을 배워야 하나 보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대도 나도 성격이 소심하다는 걸 수긍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배우기만 하면 제대로 웃을 수 있게 될테니 다행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행인건,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상처로 얼룩진 그 얘기들을,

그대에게는 버선목 뒤집어 보이듯 털어놓을 수 있다는 거다.

 

암튼,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이 책은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의 강의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강의실에 가서 그의 구수한 입담에 빠져보고 싶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랑 달리 추가된 내용은, 초승달과 그믐달의 구별법 정도인것 같다.

손철주가 공개한 특별 구분법을 살짝 공개하면 이렇다, ㅋ~.

"초승달을 모르는 사람은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기억하시면 됩니다. 초승달은 'ㄱ'자 형태거든요. 그믐달은 'ㄴ'자 쪽입니다. ㆍㆍㆍㆍㆍㆍ초승달은 해가 지고 난 뒤에 저 서쪽 하늘에 뜬 것을 잠시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해가 지고 나면 얼마 안 있어서 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침에 해가 뜰 무렵에 뜨는 것이 초승달입니다.

 

 

어제 저녁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하늘에 떠 있던 조각달.

손철주의 초승달ㆍ그믐달 구별법 특강을 참조하여 달의 이름과 시간대를 가늠해 보시기 바란다.

퀴즈로 내볼까?^^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체험판) : 팸플릿 1
 손철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칠칠 최북
 민병삼 지음 /

 도서출판 선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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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서비행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금정연의 서서비행(書書飛行)을 읽었다.

읽는 내내 '난 왜 리뷰를 쓰나?'내지는 '난 왜 페이퍼를 쓰나'하는 자문에 시달렸다.

왜냐하면 책 겉표지의 '생계 독서가 금정연 매문기'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난 서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서평자는 아니다.

내가 쓰는 글들이 '서평'이라는 대접을 받을 정도의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럼, 내가 쓰레기 같은 글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김경민이 쓴, '시 읽기 좋은 날'의 프롤로그를 인용해야 할 것 같다.

 

 

 

 시 읽기 좋은 날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12월

 

아홉 살 때 <플란다스의 개>를 읽은 후 한 동안 힘들었다. 이건 그 전에 읽었던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이야기, 혹은 예쁘고 착한 여자가 멋진 왕자와 결혼하는 따위의 해피엔딩 동화와는 뭔가 질적으로 다르게 느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플란다스의 개>는 나에게 최초의 문학적 정서체험을 선사했던 셈인데, 그 체험의 강렬함이 아홉 살꼬마가 감당하기에는 좀 컸다.

이 동화는 나에게 세상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걸, 문학은 그걸 감추지 않고 기어이 드러내기에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때때로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아프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그 아픔엔 슬픔뿐 아니라 마약 같은 중독성과 모종의 희열과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도 함께 들어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주었다(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것이고, 당시의 난 그저 네로와 파트라슈가 너무 불쌍해 마냥 눈물이 났다).

 

읽은 뒤에 밀려오는 감정의 압도성과 그 감정을 제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언어의 빈곤함 말고도 나를 안타깝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그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아홉 살 아이의 눈치로도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너무 바빠 보였고, 내가 기대하는 만큼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감정의 공유와 좀 비슷하면서 다른 감정일 수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의 감동, 기억하거나 붙잡아두고 싶었던 순간의 느낌을...

읽는 순간 만큼 생생하게는 아니어도 가끔 되새기고 싶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억력이 감퇴해가자, 그걸 기록해보겠다고 시작하였다.

때문에, 책소개나 줄거리 따위 클릭질 한두번하는 수고로 알아낼 수 있는 걸 적는게 아니라,

감동이나 느낌을 형상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럼 알라딘 서재에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평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전정기관과 반고리관쯤 되겠다.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을 쉬이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곳이고,

같은 책을 읽고도 각자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도 이 곳이다.

이곳에서 난 사람사는 세상 지지고 볶고 다 똑같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하고,

제각각 개성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독선과 아집에 빠지거나,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이중적인 잣대가 되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서평자 대접을 받을 정도도 아니지만,

굳이 서평자로 불리우길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책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난 책과는 전혀 관계없는 직업이지만,

 직장이 출판사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보니...책이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지는지 어렴풋이 안다.

 아니, 객관적이고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오히려 잘 안다고 해야 하려나?)

그런 책들을 한마디 말로 쉽게 평가하는 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좋지않은 책을 그저 좋다고 하는 건 또 베어넘겨진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다.

 

이런 내가 금정연을 서평자로 '아흐~, 멋져.'하고 생각하게 된건,

'온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픈 책과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진심어린 각자의 이야기들'과,

'좋아하는 책에 사랑을 고백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참을 수 없는 책에 불평하기를 망설이지 않으며 쓸데없이 공정한 체하지 않는 것' 이란 내용을 볼드체로 돌출시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정연은 좋은 서평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다독이나 정독, 사람을 홀리는 글빨이나 말빨을 꼽지 않고...

정직함(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정직할 것)을 꼽고 있는데, 나는 솔직함으로 바꾸어 말하고 싶다.

 

알라딘은 이익기업이고,

그런 알라딘으로부터 내가 블로그를 빌려쓰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책팔이 노릇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읽는 노력을 기울인 책에 대하여 '나쁜 말을 조심하는 것'이 알라딘서재를 빌려쓰는 대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금정연은 좋은 서평자라는 게 나의 견해이다.

금정연은 '좋은 '서평'이전에 좋은 '글'이어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그의 서평은 좋은 글이라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겠다.

 

그의 글은 좀 가벼운 듯 하지만, 폼 잡지않아서 좋다.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것이 좀 대책 없는 듯 하지만,

그의 경험과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어서 좋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을 일갈하는,

 물론 그들 입장에서야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니 독서에 맞춤한 계절이라 말하고 싶겠지만, 건강한 영혼이라면 이런 날 방구석에 앉아 책이나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법이다. 낮이면 문득 떠나고픈 마음을 주체할 길 없고, 밤이면 살갗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에 술 생각 간절하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세상엔 책보다 아름답고 또 즐거운 것들이 존재한다. 출판 관계자들이 독서의 계절이란 문구를 떠올린 것도 어느 나들이나 술자리에서였을 거라는데에 소주 두 병과 오뎅탕을 걸 수도 있다.(52~53쪽)

 

이프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독서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문장도, 힘차거나 화려한 서사도, 유쾌한 말장난과 온갖 지식의 나열도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은 개미 같은 활자들은 나의 시선을 벗어나 저마다의 세상으로, 아마도 건강할 그들만의 세상으로 유유히 걸아간다. 나는 그들의 생기를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은 나의 병약함에 신경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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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나는 내가 언제나 사랑하는 도시인 부산에 갔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집에 돌아왔고, 아팠다. 아무래도 아무 생각 없이 나이만 먹다 체해버린 것만 같아 마음이 더 아팠다.(75~76쪽)

 

이 책을 읽으면서 직ㆍ간접적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나의 책탑 행각과 관련하여 에코의,

"아니요. 저 가운데 읽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어요. 이미 읽은 책을 무엇 하러 여기에 놔두겠어요?" 정답!(24쪽)

이 그 하나이고,

그의 가벼움을 젊음의 그것이라 치부하고,

나의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대책 없는 짬뽕공 같은 행각과 감히 동격으로 놓는 것이 그 하나이다.

 

서평집을 읽는 이유는 이쯤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시평집, 내지는 시 해석집을 읽는 이유도 별다르지 않다.

'김경민'의 '시읽기 좋은 날'을 통하여, '이성복'의 '서해'를 처음 만났는데,

그니의 해석도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나중에 사별을 하고 쓴 시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뭐 어쩔 것인가?

내가 필 받았으면 그 뿐, 난 그 순간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싶을 따름이다.

 

      서   해

                                       -이 성 복 -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이란 결국 어떤 공간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엇던 곳,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었던 곳은 나에게도 특별한 곳이 된다. '서해'는 그런 곳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추억이 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말하고 있지 않으나, 어쨌든 서해는 특별한 곳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가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유를 밝혔는데 그 이유란 것이 사람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나의 진짜 속마음은 뭘까?

나는 당신이 너무나도 그립기에 지금 당신이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아프고, 영영 당신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무섭다. 나는 당신이 서해에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찾아갔는데 만약 그곳에 당신이 없다면, 나는 당신의 부재를 실감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당신을 찾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당신이 그곳에 계시리라고 믿고 있는 편이 나에겐 더 위안이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과잉된 슬픔을 표현하는 연기나 노래에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아직 그 슬픔에 공명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건만 먼저 대성통곡을 해버리면 당황스러워 오히려 뒤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교요한 눈빛 뒤에 숨겨진 '진펄' 같은 속마음을 엿보게 될때,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애써 누르고 나오는 담담한 목소리를 엿듣게 될 때,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은 심하게 동요한다. 그리곤 문득 궁금해진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도리어 나는 '서해'에 가보고 싶어진다. 나만의 서해에. '여느 바다와 다를'바 없는 그곳에 말이다.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볕이 좋다.

인간이 아무리 책을 읽고 애를 쓰고 소리 높여 자신의 철학을 늘어놓아 본댔자 하늘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금정연의 말을 이렇게 인용하여, 이런 말이 하고 싶다.

하늘이 높건 말건, 볕이 좋건 말건 나는 꿈쩍도 하지 않고 책을 읽어야 할텐데~--;

 

책의 내용이나, 이 페이퍼랑은 전혀 상관없는...내가 요즘 푹 빠져있는 The one.

(짬뽕공 마인드를 십분 발휘하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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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9-20 15:21   좋아요 1 | URL
'서서비행' 책의 교정, 편집상태가 좋아...딴지를 걸자면,
102쪽의'미치오 카쿠'가 103쪽엔 '미치오 가쿠'가 되어 있다.
한쪽으로 통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책읽는나무 2012-09-20 18:21   좋아요 1 | URL
좋.다.
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좋고,님이 이글을 쓸 수 있게 만든 작가도 좋고,
거기다 노래도 좋군요.
좋은 가을이에요.

프레이야 2012-09-21 09:14   좋아요 1 | URL
님, 아침부터 마음을 울리는 노래^^ 좋아요~~~
남자의 사랑은 뿌리 같아요. 여자의 사랑이 잎사귀 같다면요.
가을하늘 만끽하며 마음에 평화가 늘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님에게도 저에게도^^

서평이든 어떤 글이든 기본, 즉 '좋은 글'이어야 한다는 말에 동감이에요.
문제는 좋은 글을 써야겠다고 너무 의식하다보면 좋은 글이 안 나올 우려가 많다는 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