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 빅토르 프랑클 회상록
빅토르 E. 프랑클 지음, 박현용 옮김 / 책세상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고백하자면 처음에 난 '빅토르 프랑클'을 '프리모 래비'로 착각하였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남았으나,

끝내 그 무엇인가를 견뎌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 '프리모 래비'와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에 대해서 일깨워주려했던 사람 '빅토르 프랑클'

그런데, 뒤로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참 많이 닮은 듯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 읽은 뒤에는 '빅토르 프랑클'이라면 아우슈비츠에서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혹독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로고테라피'에 대해서는 몇번 들어봤었다.

'삶에서 희망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고 얘기하던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아무 의미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삶이란 결국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하여,

삶의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고 그 불안을 객관시해 정면으로 바라보고 맞서려고 하여,

삶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음은 물론 삶의 희망을 놓지 않도록 하였었다.

그리하여, 본인 자신도 80세까지 암벽등반을 즐기며 90세에 회고록을 쓰고도 2년여를 살다간...직접 실행에 옮긴 사람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처음 가졌던 '프리모 레비'와의 비교는 싹 사라졌고,

이 사람 '빅토르 프랑클'은 凡人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자서전이나 일대기 따위는 좀처럼 안 읽으려 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사람의 자서전이나 일대기는 좀 널리 알려지고 읽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 좋았다.

네 살 무렵 어느 날 저녁이었다. 막 잠들기 직전 나는 화들짝 놀라 다시 일어나 앉았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평생을 쫒아다니며 나를 괴롭혔던 의심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삶의 허무함이 인생의 의미를 파괴하지 않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깊은 사색 끝에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것은 결국 여러가지 측면에서 죽음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존재의 허무함이 존재의 의믈 파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과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 속에 안전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것 속에서 허무함을 물리치고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무슨 일을 겪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과거 속에 묻어둔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것을 다시 없앨 수는 없다.(25~26쪽)

네살 때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 나로서는, 당연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나이 90에 이루러서 쓴 회고록이니까 미화시킨 부분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친구에게 이 애기를 했더니, 친구는 다섯살 때부터 기억이 난다는 거다.

죽음은 3학년이 되어서야 생각을 했으나,

어려서부터 자의식이 강한 꼬마였으며,

무려 일곱살 때 세상은 하나인데 인식은 각기 다르다는 칸트 뺨치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고 한다.

헐~, 천재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다시 증기선을 타고 도나우 강으로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한밤중에 갑판에 누워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안의' 평형 원리를 살펴보면서, '아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열반의 경지를 깨달은 것이다. 한마디로 열반이란 '내면에 타오르던 온갖 불들이 완전히 꺼진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61쪽)

 

 

불혹을 넘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별이 총총한 하늘'은 고사하고,

'내 안의'평형원리나 '아하체험'은 물론 '열반'에 대해서도 이렇다할 이론을 정립하고 있지 못하였는데 말이다. 

 

 

(빅토르 프랑클이 그린 본인의 자화상)

 

ㆍㆍㆍㆍㆍㆍ내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은, 만약 내게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만화가로서의 재능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도 그렇지만, 만화를 그릴 때에도 제일 먼저 인간의 약점을 포착한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또는 적어도 심리치료사로서, 현실적인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자발적인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볼 줄 안다. 그리고 비참한 상황을 뛰어넘어 그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끌어내고, 그와 동시에 얼핏 보기에는 의미없는 고통을 진정으로 인간적인 업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근본적으로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본질적으로 로고테라피는 이런 확신으로부터 논의되고 체계화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신의학에 대한 욕구가 없는데 재능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무엇이 어떤 이에게 정신과 의사라는 자격을 부여하는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정신과 의사가 되도록 부추기는지에 대해서 한번쯤 의심을 해보라! 미성숙한 사람이 정신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정신의학이 타인에 대한 권력을 갖게 하여 타인을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은 권력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지식의 매커니즘은 나에게 제일 먼저 타인에 대한 권력을 부여하기 마련이다. 가장 눈에 띄는 예 중의 하나가 최면술이라고 할 수 있다.ㆍㆍㆍㆍㆍㆍ(72쪽)

 

그 친구도 만화도 잘 그릴 뿐더러 사람의 심리나 심중을 헤아리는데 밝다.

위의 저 내용대로라면, 만화뿐만 아니라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으로나...

상대의 약점을 포착하여 그 약점을 이용하여 상대를 지배하고 조종하여 우위에 서고 싶은,

어떤 권력 같은 것을 가질 수도 있었을텐데...

그럼에도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따뜻할 뿐더러,

사람의 심리나 심중을 헤아리는데도 곰살맞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내가 보기엔 빅토르 프랑클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타인을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 권한, 즉 '타인에 대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라,

만화를 그릴때 인간의 약점을 포착하는 그 섬세함으로 상대의 심리나 심중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상대의 심리나 심중을 헤아리고 배려한다는 저변에는,

꼭 도돌이처럼은 아니어도,

어딘가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귀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는건 않을까?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희망을 갖게 하고,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하루하루를 살게 한다.

 

  나는 자살하는 사람의 결심을 존중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한 생명이라도 살리고 싶은 내 원칙도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을 나 스스로 배신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동반 자살을 기도한 노부부가 우리 병원으로 실려왔을 때였다. 아내는 죽고 남편은 사경을 헤맸다. 나는 남자를 살려야 할지 갈등을 하다가 결국 애써 살리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자가 목숨을 구하게 되면 홀로 아내의 무덤에 가야 할 텐데, 내가 그 책임을 질 수 있을지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또 있다. 치료가 불가능하여 오래 살 수 없으면서,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 고통 속에도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원칙적인 가능성은 극도로 신중하게 보여줄 수 있고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런 한계 상황 속에서 자아실현의 영웅주의는 단 한 사람에게만, 즉 자기 자신에게만 요구해야 한다. 그와 같은 문제적인 상황은 '나치한테 고개를 숙이느니 차라리 강제수용소에 가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한테도 적용될 수 있다. 그 주장은 일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안전한 외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직접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이 다 끝난 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결을 내리기는 쉬운 법이다.(118~119쪽)

그의 소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난 여기에 하고싶은 얘기가 참 많지만 말줄임표로 대신한다.

시어머니의 임종을 바로 옆에서 지키면서 품위 있는 죽음과 존엄사 등에 대해서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직접 겪게되자 이런 것들은 교과서에서 배울때와,

사회적 문제가 되어 회자될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와닿았다.

그러니 본인이 흠뻑 담금질 하지 않고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이러니저러니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빅토르 프랑클, 그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는 이 회고록 말고도, 몇권의 책을 더 낸 사람이다.

글쓰기에 관해서도 그에게 배울게 참 많은데,

이걸 글쓰기라고 해야할지, 그의 삶의 방식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작가 생텍쥐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완전함은 더이상 덧붙일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생략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완벽주의자임을 고백한다.(172쪽)

나는 완벽주의자여서 스스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편이다. 물론 내 자신의 요구를 항상 스스로 충족시킨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충족되면 그 안에서 성공의 비밀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공의 이유를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게는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 원칙은 바로 아주 작은 일도 가장 큰 일을 할 때처럼 철저하게 하고, 가장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할 때처럼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한두 마디 짧은 논평을 할 때면 조목조목 세밀하게 따져 본 뒤에 메모를 한다. 그리고 수천 명이 모인 곳에서 강연을 할 때면 원고를 꼼꼼하게 준비한 뒤, 마치 열두 명 앞에서 발언을 할 때처엄 편안하게 한다.(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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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1-27 14:35   좋아요 0 | URL
요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읽는 중인데,
회고록이 나온줄 몰랐네... 실존주의 상담에서 워낙 추종하는 사람이 많아서, 우리나라에도 팬이 많은데
얼마 전에 제자가 와서 강연회를 했거든. 그런데 그때는 실망한 사람도 좀 있구... 프랭클 본인이야 돌아가셨으니.

인용 문구 참 좋다... 오늘 장바구니 채우는 중인데, 이 책은 사야겠네. 에잇, 블랙홀, 나무꾼.

루쉰P 2012-11-28 12:2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죽음의 수용소>는 저도 꽤 전에 읽었어요. ㅋㅋ

양철나무꾼 2012-11-30 22:28   좋아요 0 | URL
난 오늘 시작했음, 죽음의 수용소. ㅋ~.

목감기는 좀 어떠신가?

2012-11-27 16:12   좋아요 0 | URL
와~ 빅터 프랭클. 좋아요. "과거 속에 안전하게 보존되어 있다"니!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무의미가 이 삶을 파괴한다는 말도 맞는 것 같아요. 인간에겐 참 힘겨운 싸움이 놓여 있네요. 누구에게든.
다른 인용구들도 다 좋군요. 당분간은 못 읽겠지만 필독목록에 이 책을 올려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저 씩씩하고 따뜻한 확신이 좋아요. 글이 좋은지, 그의 삶에 대한 태도가 좋은지..라고 할만해요. 진짜.^^
(늘 좋은 책 소개, 고마워요.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2-11-30 22:32   좋아요 1 | URL
전 섬님처럼 현실적인 것도 맘에 들어요.
'당분간은 못 읽겠지만 필독도서 목록에는'하는 식으루다가...ㅋ~.
앞으로 읽을 예정인 책만 정리해보니,
(관심 없어 던져버린책 말구여) 책장으로 두개예요.
최소한 360여권은 될텐데 하루 한 귄씩 읽어도 앞으로 일년치가 있는 거잖아여~--;

아무개 2012-11-28 08:20   좋아요 1 | URL
엇 저도 빅터 프랑클이 노년에 자살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 그런 말은 없네요.
어디서 어떻게 그렇 잘못된 정보를 접했을까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다 읽고 자살한 심리학자 따위라니 뭐 이랬는데 아이쿠!!!!!!!!!

딱 만원짜리 책을 한권더 장바구니에 담으려고 했는데 아주 딱입니다^^


루쉰P 2012-11-28 12:16   좋아요 1 | URL
노년에 자살한 사람은 프리모 레비 같아요 ^^

양철나무꾼 2012-11-30 22:33   좋아요 1 | URL
이힛~^^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구나~!

2012-11-27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2-11-28 12:22   좋아요 1 | URL
빅터 프랑클은 저도 참 좋아합니다! 엘리 위젤, 프리모 레비, 빅터 프랑클은 홀로코스트의 작가 중에 참 좋아하는 삼인방이에요. 그 중 프리모 레비만 빼고 두 분은 계속해서 살아가며 악과 악과 계속 싸워가죠.

사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프리모 레비인데 그의 죽음에 대한 마음은 조금이나마 이해는 하지만, 자살은 납득을 못 하겠더라구요~~

돌베게에서 자서전을 번역 중이라고 하는 데 그 책을 꼭 읽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2-11-30 22:34   좋아요 1 | URL
프리모레비 자서전여?
아~, 기대되는군여, ㅋ~.

2012-11-29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30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02 0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제 우리가 지구를 구해요 - 나무 심기 파티
펠릭스와 친구들 지음, 김시형 옮김 / 노란상상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때, (아니 내가 학교를 다닐때는 국민학교였다.)

내가 배우던 교과서에 주요 등장 인물은 철수와 영희였다.

그래서인지, 난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뭇 '철수와 영희'라는 이름에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 감정 이입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밤 한 철수 씨는 백의 종군하여 그렇게 내 곁을 떠나갔고,

이제 한 영희 씨가 나오는 일요일밤 '거지의 품격'만을 기다리는데,

그것도 어째 예전같지 않고 심드렁하다.

 

엊그제 누군가에게

'하긴 단거 별로 안 좋아하나 보더라, ㅋ~.'

하는 문자를 보냈더니,

'단거...위험...'

'danger'

이런 답장이 돌아왔다.

내가 '혈당수치도?'

이렇게 되묻자,

'혈당완전정상'

'근데 danger 그래서 깜.놀.'
'썰렁개그'

'단 거'

'환자를 많이 봐서 내가 자꾸 걱정되나분데'

그때서야 난 '아하~, 그 당거..., ㅋ~.'할 수 있었다.

 

비단 환자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몸의 건강 상태는 살뜰하게 챙기면서,

그 몸 건강 상태의 근간이자, 기본이 되는 몸 아닌 다른 것들...

흔히 인간과 대응되는 개념으로서의 자연, 다시말해 지구에 대해서는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

 

"지구를 잘 대접하라. 이 땅은 너의 부모가 준 것이 아니라 너의 아이들에게서 빌린 것이다. 지구는 우리 조상이 물려준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 빌려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디언 속담(39쪽)

 

라는 속담을 많이 접했으면서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책 제목 '나무 심기 파티' -'이제 우리가 지구를 구해요'의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다.

이 책은 알라디너'감은빛'님의 소개에 혹하여 구해 보게 되었는데,

'헐~' 어린이 용이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다.

나무를 심는 것과 지구를 구하는 게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조목조목 따져놓았다.

지구온난화, 온실 효과, 그때 만들어지는 온실 가스 등 , 그 중에서 가장 흔하고 중요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순환과정이 사진과 도표들과 함께 실려있어서 보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있다.

난 읽고 제대로 감동받아 주시기만 하면 될 뿐이다, ㅋ~.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면 다들 이렇게 말해. "기후 변화 때문이야." 또, 한여름에 집중호우가 내리고 강물이 흘러넘치면 TV에서 종종 이렇게 얘기해. "이번 날씨는 기후 변화가 원인입니다."

하지만 날씨가 미쳤다고 해서 곧바로 기후 변화와 관계있는 것은 아냐. 기후와 날씨는 전혀 다른 말이거든.

ㆍㆍㆍㆍㆍㆍ한마디로 기후라는 건 30년 동안 지구 전체의 날씨를 모두 합쳐 평균을 낸 거야. 그래서 날씨, 즉 기상은 느낄 수 있지만 기후는 느낄 수가 없어.

하지만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지 않아요?

그래, 날씨와 기후는 대기권에 일어나는 물리적인 현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같긴하지. 하지만 이 두가지는 아주 다른 거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40쪽)

 

기후 변화를 늦추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죠?

기후를 바꾸는 요인은 크게 두가지야. 자연과 인간이지. 자연이 하는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제외해야 겠지. 그러나 인간이 하는 일은 충분히 바꿀 수 있어.ㆍㆍㆍㆍㆍㆍ지금 쓰는 에너지를 아끼는 것도 중요하고, 대체 에너지를 쓰는 것도 중요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 우선, 내가 하는 작은 일들이 모두 기후 보호에 큰 보탬이 된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해. 그래야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실천에 옮길 수 있어.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두 손 놓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 돼. 남이 크고 멋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걸 부러워할 필요도 없어. 환경을 지키고 자연을 보호하며 사는게 훨씬 멋있으니까.(42쪽)

 

암튼,

이책을 통하여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작은 것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지만 올바른 행동이 모이면 '긍정적인 흡인력'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이었고,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것은 '집에서 할 수 있는 기후보호' 란 장이었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대신 자전거를 탄다든지, 절전형 조명등을 쓴다든지 하는 얘기는 한번쯤 들어봤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냉장고로 하는 기후보호 분야에서,

냉장고를 가스레인지나 화기 옆에 놓는 것은 안 좋은 생각이라는 얘기는 어찌보면 당연하게 들리지만,

냉장고를 설치하는 장소가 주방이고,

우리나라의 집 구조상 주방이 그리 넓지 않은 것에 미루어,

가스렌지 등의 화기와 냉장고를 떼어놓는 건 미리 염두에 두지 않으면 쉽지 않다.

아직 따뜻한 음식을 냉장고에 곧바로 넣는 것은,

갑자기 냉장고 내부 온도가 높아져서 그 열을 식히려고 전기를 많이 쓰기때문에 안 좋은 방법이고,

난방을 하지 않는 베란다에 냉장고를 놓는 건 좋은 방법이란다.(냉장 온도를 2도만 높게 설정해도 15%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단다.)

 

반대로 요리를 할때도 기후를 보호할 수 있는데, 방법을 잘만 지키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가장 쉬운 건 냄비 뚜껑을 덮고 요리하는 거다.

또 보통냄비보다 압력솥을 쓰면 40%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오븐도 잘 닫고, 너무 자주 열어보지 않는다.

한번 열어볼때마다 20%의 열손실이 있단다.

뜨거운 물을 끓일때는 가스레인지보다 전기주전가가 낫다.

 

쓰레기를 줄여도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단다.

쓰레기를 줄이면 수거 요금도 줄어들지만 1kg마다 320g의 이산화탄소가 덜 생기는데,

아예 쓰레기가 안나오도록 노력하면 기후 보호는 더 잘 될테지.

 

여기서 사소한 차이가 나지만, 결과적으론 큰 차이가 나는 중요한 용어를 알게 됐는데,

재사용과 재활용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리병 재사용 횟수는 8번으로,

독일 50번, 핀란드 30번, 일본 32번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페트병은 독일,네덜란드, 덴마크 등에서는 재사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재활용되지만 유리병처럼 재사용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는 곳을 바꿔도 기후 를 보호할 수 있는데,

건물과 집을 잘 짓고 수리해도 기후를 지킬 수 있단다.

여기서 '잘'이란 단열 창문, 단열 마감재 같은 기술적인 내용을 얘기한단다.

 

그밖에도,

전기를 친환경대체에너지로 바꾸는 방법,

밥상 위의 기후 보호라고 하여 칼로리가 적은 밥상, 유기농밥상, 기후 보호 밥상에 대하여 언급한다.

시장바구니 속 기후 보호라고 하여 '로컬 푸드(local food)'즉 '지역 먹을거리'를 얘기하고 있다.

'지역먹을거리'를 얘기할때는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재배된 것'

에 덧붙여 '제철에 자라고 수확한 것'이라는 '기후친화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런 행동을 실천하기에 앞서, 책임감을 갖고 절약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아끼고 사용하는 것이 생활의 당연한 일부가 되어야 한다. 물어보거나 고민하고 따질  필요가 없이 그런 태도가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지금보다 몇 십 배의 효과가 생길거란다.

 

이 책의 103~104쪽에는 우리 친구들이 말도 안되는 공격에 멋있게 대처하는 법이 소개되어 있고,

독일의 아홉살 펠릭스가 시작한 것이, 어떻게 학생운동 Plant-for-the-Planet으로 발전했는지의 과정도 나와 있다.

지금은 전 세계 수많은 나라가 동참하는 국제 네트워크 운동으로 발전했으며,

이제 Plant-for-the-Planet은 나무만 심지 않고,

어린이 세계시민으로 공정무역과 착한 초콜릿 등,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온힘을 다하고 있다.

 

그 밖에 우리나라의 나무 심기 운동 이야기에 대해서도 잘 정리되어 있다.

식목일의 유래와

소년환경 운동가라고 할 수 있는 조너선 리와 '어린이 평화 숲'에 대한 얘기가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의 '추천사'를 마지막으로 이렇게 끝맺음하고 있다.

얼마 전 유엔에서 나온 '세계 행복 보고서'를 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나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회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돈만 아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를 걱정하고 나부터 실천하는 사람이 기후 변화 같은 것은 모른 체하면서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보다는 행복할 것입니다.(199쪽) 

 

이 말을 요즘 내 삶에 대입시켜보면 이쯤이 될것 같다.

철수 씨와 영희 씨에서 위안과 희망을 얻으려 하지 말고,

(다시 말해 다른 사람 핑계 대지 말고~--;)

내 스스로 철수 씨와 영희 씨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겠다.

그런데, 현실의 난...

지금 내겐 그 어느때보다도 얘네들이 위안이고 희망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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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1-25 04:48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제대로 못 느껴서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나 큰도시에 몰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니까
이 몰린 사람들이 쓰는 지구자원 때문에
지구가 아프답니다...

'조선일보'에조차 기사로 나온 이야기이던데,
서울 강남에서 한여름 30분만 냉방기 온도를 2도인가 낮추어도
핵발전소 두 군데를 안 돌려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서울사람이 '문명'을 얼마나 덜 누리려 하느냐에 따라
참 크게 무언가 달라진다는 소리가 되기도 해요...

양철나무꾼 2012-11-27 14:01   좋아요 1 | URL
말이나 글로 하긴 쉽지만...실천하긴 참 힘든 일들을 실천하고 계신 된장님을 보면서 배워야 할텐데 말예요~, 꾸벅(__)

감은빛 2012-11-26 12:02   좋아요 1 | URL
밥 먹으러 나가기 전, 노래 잘 들었습니다.
역시 양철님께서 정리해주시니 쉽게 이해가 잘 되네요! ^^

양철나무꾼 2012-11-27 14:03   좋아요 1 | URL
헤헤~^______^
정리는 감은빛님이 쉽게 잘 해주신거죠.
저는 걍 옮겨적기만, ㅋ~.
암튼 대박 나셔서...담 쇄에는 꼭 이름 석자 실리시길~!

2012-11-27 16:16   좋아요 1 | URL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작은 것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작지만 올바른 행동이 모이면 '긍정적인 흡인력'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좋은 말이에요.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지구에 폐 덜끼치는 세목' 잘 배우고 갑니다. ㅎㅎ
마지막, 파란 위안- 예쁘네요.^^
 

울애인이 상급학교에 진학하신 후, 휴일이라도 집에 있는 걸 볼 수 없다.

학교에, 학원에...뭐 그리 바쁘게 움직이는지,

마땅히 할일이 없어진 난 방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떼굴거리다가 보면, 낙동강 오리알이라도 된듯 처량맞게 느껴진다.

 

엊그제 저녁 그러니까 날씨도 꾸물거리고 기분도 꿀꿀하고 하여,

남편과 목욕탕에 갔다가 'ㅁ면옥'이라는 설렁탕집에 들려 양곰탕을 먹었다.

남편은 연애할때 이후로 잘 안하던,

밥을 말고 파를 적당히 넣고 소금간을 하는 풀서비스를 제공해 주셨는데,

문제는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파를 안먹는 바람에,

남편이 부어준 파를 하나 하나 골라내야 했다.

남편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겉으로는 파를 골라내며 번거롭게 되었다고 툴툴거리다가,

이렇게 예쁘게 생긴 '하트파'도 발견하게 되었으니,

제대로 기분전환이 되어주셨다, ㅋ~.

 

어제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손석희의 목소리를 잠을 깨우는 기상송쯤으로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는데, 낙동강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아들~, 잘 들어봐봐.

 저기도 엄마랑 똑같은 심정의 사람이 또 있나보다~."

아들은 가뜩이나 작은 눈이 잠에서 덜 깨, 거의 달라붙어서는 나를 간신히 쳐다본다.

"엄마, 4대강 사업 문제점 얘기하고 있는건데...

 엄마랑 4대강 사업이랑 뭐가 이심전심인데...?"

"지금 낙동강 오리알 어쩌구저쩌구...기러기 아빠처럼, 오리알 엄마 얘기하는 거 아냐?"

"무슨...?

 4대강 가운데 낙동강의 칠곡보가 물받이공이 주저앉아 보가 붕괴될 위기라는 거잖아~."

"......--;"

"난 엄마 엉뚱한 소리하는데, 보가 붕괴되는게 아니라 멘탈이 붕괴될거 같음~--;"

하는데, 나는 아무소리 못하고 밥그릇에 코를 박는 수 밖에~--;

 

나는 가방에 김선우를 주섬주섬 집어넣고 출근 준비를 하는척 할 수밖에 없었다.

가방에 집어넣은 책은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이었다.

 

 

 

 

 

 

 

 

 

 물의 연인들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ㆍ이어서 하늘 여기저기를 찢어 놓듯이 번개와 천둥이 쳤다. 손바닥의 담쟁이들이 엽맥을 곤두세우고 소스라쳤지만 괜찮았다. 너와 함께였으므로. 너는 주방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장관이야, 저런 자국! 번개 친 자리들, 하늘은 죄다 기억할 게 틀림없어.

  지구가 생긴 이래 모든 번개 친 자리들을?

  너는 내게 다가와 으깬 감자와 야채에 크림소를 얹은 샐러드를 한 입 넣어 주며 물었다.

  물론이지, 상처잖아.

  꽃일 수도.

  전선처럼 바지직거리는 꽃잎을 단?

  짜릿해. 안드로이드가 된 것 같아.(10쪽)

프롤로그부터 이렇게 감각적으로 시작한다.

책 뒷표지의,

'여기, 강을 파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한 물방울로부터 한 물방울에게로"흐르는 사람들이 있다.

 매혹의 정염과 관능적 미학이 살아 숨 쉬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그녀, 사랑을 노래하다.'

라고 되어있는걸 새삼 인용할 것도 없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다.

그냥도 충분히 재밌게 읽히는데,

4대강을 돋을새김하여, 주제를 무겁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작가 김선우가 4대강 반대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이 이를 전달하려고 일부러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한다면,

작위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될테고,

그러다 보면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비껴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했었다.

그냥 매혹과 정염과 관능적 미학이 살아 숨쉬는 사랑을 노래한 책이라고 해도...

충분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사랑해. 말해줘. 사랑한다고 말해 줘.

빗방울처럼, 아주 작게 속삭였던 것 같다.(11쪽)

숨이 막힐 것처럼 감미로운 비린내가 둘의 몸에서 동시에 피어오를 때면, 너와 함께 마지막까지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강물처럼. 삶이. 사랑이.

윤허하다, 라는 말은 훨씬 뒤에 떠올랐다. (12쪽)

 

  살살 움직여 줘. 아프지 않게. 상처가 많으니까. 물처럼 흐를 수 있게.(139쪽)

 

아ㆍㆍ! 탄성이 나오는 와이강을 모두들 굽어보았다. 무위암에서 내려다보는 와이강은 자궁 속 태아를 감싸듯 와이산과 산자락 마을들 감싸며 흐르고 있었다. ㆍㆍ우리의 몸이 저렇게 흐르는구나, 강물이 흐르듯 피가 흐르는 존재가 생명이구나, 싶은 통찰이 푸른 하늘의 황금빛 햇빛처럼 찰나에 쏟아졌다고나 할까.. 푸르고 희고 검고 붉고 노란, 가장 원초적인 색들이 가장 적절하게 제 기운들을 풀고 당기며 흐르는 강. 사람들이 흔히 풍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지되어 있는 적막한 화면이 아님을 유경은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흐르는 풍경, 흐르는 색들, 흐르는 물결, 흐르는 모래들, 흐르는 새들, 꽃들, 풀들, 흐르는 바람ㆍㆍ 몸들ㆍㆍ 흐르는 인생ㆍㆍ.

   어떤 앎은 그런 식으로도 오는 것이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벅찬 마음이 유경과 요나스를 똑같이 훑고 지날 때ㆍㆍ.

  이렇게 아름다우니 누구든 이곳에서 마음 내려놓고 쉬면 병 같은 거 나을 수밖에 없지!

  맞아요, 할머니. 나도 잘 흘러가야 할 것 같아요. 사랑해야 하니까요.

  사랑해야 하니까.

  그의 입을 통해 처음 나온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약사여래는 여전히 와이강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요나스, 이제 어쩌지? 약사여래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경이 입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린다.(197~198쪽)

 

4대강 얘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치유와 사랑을 지니고 있는 것이...바로 강과 물의 속성인데 말이다.

그래도 '작가의 말'을 빌어 '영롱한, 하나씩의 물방울인 우리들'이라고 해주어서 좋았고 고마웠다.

 

암튼 소설은,  

프롤로그

 

 

번개 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아프다

천둥 친다, 나는 여전히 당신이 아프다

 

번개 친 후 천둥소리엔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았다

 

이렇게 시작하는 연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먼저번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의 소설 버전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무도 살지 않아서 좋았다

 

번개 친다, 끊어진 길 보인다

 

당신에게 곧장 이어진 길은 없다

그것이 하늘의 입장이라는 듯

 

번개 친다, 길들이 쏟아내는 눈물 보인다

 

나의 각도와 팔꿈치

당신의 기울기와 무릎

당신과 나의 장례를 생각하는 밤

 

번개 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아프다

천둥 친다, 나는 여전히 당신이 아프다

 

번개 친 후 천둥소리엔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았다

소설은 우리에게 잘 흘러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잘 흐른다는 것은 막히거나 넘침없이 제대로 흐른다는 것이고,

그건 사랑이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일게다.

난 이 흐름을 '소통'이라고 슬쩍 바꾸고 싶다.

 

물의 속성이 흐르는 것이지만,

바꿔 말하면 흐르는 것이 막히게 되면 차고 넘칠 것이고,

차고 넘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순리를 역행하는 것 쯤이 될 것이다.

순리를 역행한다는 것은 '불통'이다.

순리를 역행하고 불통이 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마수의 그것으로 변하고 만다.

상처 또한 묵직하고 치명적이다.

 

마지막의 김연수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린 파괴에 파괴로 맞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물의 속성처럼 흐르는 것이 막히게 되면 차고 넘치겠지만, 흐르면서는 씻기고 떠내려갈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에 사람이기도 하겠지만,

또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기 때문에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소통과 불통이, 상처와 치유가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바꾸어 말하면, 사랑이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물이 나가온다면,

상처를 활짝 열고 물에 내맡기고 볼 일이다.

잘 정화된 물이어서 상처를 씻고 소독을 해서 아물게 할지,

곪게해서 덧나게 할지는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그리고 곪더라도 결국 옹이라는 훈장을 남긴다.

 

분위기를 바꾸어, 스스로 불통을 도모한 이가 있어 옮겨본다.

스스로 꿰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멋지다, ㅋ~.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이지누 지음 / 알마 / 2012년 8월

 

 

더구나 아늑한 것은 물론 고요하기까지 하니, 산중 선방이 따로 없다. 굵은 바람에 서로 부딪히는 나무들을 선실에서 사용하는 간당 틀로 삼아 선에 들고 다시 나갈 때까지 아처럼 고요한 곳에서 말을 그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더냐. 명나라의 운서 주굉(1535~1615)스님이 말하지 않았던가. 세간의 술이나 식초 따위들은 갈무리해둔 지 오래될수록 맛이 좋은 법이라고 말이다. 그 까닭은 단단히 봉해 깊이 넣어두므로 다른 기운이 스며들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서 주굉스님은 옛 선사의 말을 전한다. "20년 동안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런 후에 어찌 부처를 이루지 못할 것이냐"고 말이다. 그말을 전하며 주굉스님도 한마디 거든다. "아름답다, 이 말씀이여!"

  외롭고 높으며 쓸쓸한 정령치 마루의 마애석상틀 앞에서 열네댓 차례쯤 머물고 대여섯 밤을 자고 난 후에야, 나는 주굉스님의 마지막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어느 날부터는 이곳에 부처님을 뵈러 오는 것이 아니라 말을 멈추러 오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녕 몰랐다. 말을 멈추려면 생각부터 그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대뜸 말은 멈췄지만, 그것은 단지 말할 상대가 없는 것일 뿐 나 스스로 말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 뿐 말은 내 속에서 풍선처럼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웃자란 말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날부터 마치 종기처럼 흉측한 모습을 하고 겉으로 돋아났으니, 그 무슨 꼴불견이었을까. 그렇게 진세塵世를 떠돌다 다시 이곳으로 향하기를 예닐곱 차례, 그때서야 깨달았다. 말을 그친다는 것은 곧 남을 향한 것은 거두지만 나를 향한 것은 더욱 넓고 깊게 펼쳐야 하며, 내 속에서 생각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삭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단순한 진리조차도 산중 선방이 고요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깊이 참구해 급히 깨달으라고 했거늘, 스스로를 깊이 참구하기에 고요함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고요할 때에는 고요함도 모르고, 또한 고요하지 않음도 모르는 법이다. 움직임에 다다르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전의 고요함을 아는 것 아니겠는가. 진세에 머물지 않았다면 이 고요함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지 못했을 터이니, 아! 나에게 이곳에서 맞닥뜨리는 고요는 참으로 넓고 깊은 선물이자 아름다운 것이다.(9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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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21 03:51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대로 굳이 4대강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을 떠올리지 않아도 글이 참 좋네요. 김선우 시인이 4대강도 그렇고, 강정 문제도 그렇고 관련해서 좋은 글들을 많이 썼긴 하지만요. (참..이제 그분은 푸른기와집 떠나시면 그뿐입다만, 그가 망가뜨린 이 산천은 도대체 어찌 되려나요?)

프레이야 2012-11-21 09:17   좋아요 1 | URL
상급학교 진학한 애인과의 대화가 늘 재미나요. 전 그런 애인도 하나 없고 ㅎㅎ 하나밖에 없는 재치있는 애인과 하나밖에 없는 애정돋는 남편분과 오늘도 행복하게요.~~~ ♥

숲노래 2012-11-21 09:55   좋아요 1 | URL
오늘도 즐겁게 예쁜 이야기를 빛내는 하루 누리셔요

루쉰P 2012-11-21 11:30   좋아요 1 | URL
아,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그 시가 너무 좋네요. 노래는 지금 듣고 있어요. ㅋ 애인과 아들과 사이좋게 사시는 게 전 그게 정말 무한한 사랑인 듯 보입니다. ㅋㅋㅋ
아 근데 노래 부르는 가수 예쁘네요. ㅎㅎ 오전 근무가 여유가 있어 ㅋ 이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요. ㅋㅋ

감은빛 2012-11-21 11:42   좋아요 1 | URL
책 뒷표지 문구에 대한 말씀들 저도 공감합니다.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문구 하나 때문에 부담스러워 이 책을 외면할 이들도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양철님의 일상이야기 늘 재밌어요! ^^
 

실은 난 목숨을 걸고 하는 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남편을 만났고,

6년의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 삶이 늘은 아니고 때때로 축복이라고 믿으며 지금까지 무난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난 '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 어떤 환상이나 로망 같은 걸 가지고 있었나 보다.

처음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 이라는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도 가슴이 설레였으며,

즐겨찾는 이들의 서재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책 소개와 리뷰를 보고서는 홀라당 반해,

당장 밤을 새워 읽을 것처럼, 친구를 졸라서 구해놓고는 여태 '홀라당 발라당~'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 또는 '숨가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운명의 장난'이나 '불장난' 또는 '숨가쁘기만한 열정'이라고 대치했을 때 하등 문제될게 없는 것으로 미루어...

해피엔딩과는 동떨어진 결말로 이어지게 마련인 것을 짐작했으면서도,

난 어째서 이들의 숨가쁜 사랑을 마냥 부러워했던 것일까?

 

그들이 영화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다가 간것을 부럽다고 하기에는,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의 사생활마저도 여과없이 비춰냈으며,

심지어 어두운 단면들에 굴곡을 부여하여 심하게 굴절시키기까지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도록 운명지어진 이들이 있다지만,

운명의 신은 참으로 얄궂어 때와 장소 등 그밖의 모든 조건까지 맞춤하게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 둘의 경우가 그랬는데,

스물네 살의 나이 차이도 그렇지만,

40대 중반의 로맹가리야 그렇다고 쳐도,

스물 하나의 진 세버그도 이미 결혼을 한 후라는 것도 그렇다.

내가 진 세버그였다면 로맹가리가 아무리 멋있다고 해도,

중후한 매력을 가진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매력은 사랑이랑은 또 다른 것일 것 같은데 말이다.

 

백번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이 둘의 삶은 어느 누구 하나 일반적이지는 못하다.

스물한 살에 이미 성공과 친근해진 진 세버그도 그렇지만,

유대계에 러시아에서 출생, 프랑스로 이주하는 등의 이력을 가진 로맹 가리가,

사회적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군인, 외교관,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두루 섭렵하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로맹가리는 다양한 직업편력만큼이나 여성편력도 구사한다.

 진은 연약했다. 가리는 당시 일시적 우울 증세를 보이며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인간 본성에서 비롯한 온갖 일관성 없는 언행에 낙심했다. 그것은 전쟁 때문이었고, 그의 광적인 성생활 때문이었고, 또한 나이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가 진을 길가에 핀 개양귀비처럼 꺾어서 웃옷 주머니에 꽂았을 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115쪽)

이 책은 문장이 참 좋은데, 그걸 번역하는 과정에선 십분 발휘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수식이 화려하거나 함축적인 문장의 경우,

수사가 놓이는 위치에 따라, 문장을 이렇게 저렇게 제한하는 정도가 달라지는데 말이다.

 

문장이 좋다는 건,

로맹 가리가 레슬리와 만나는 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가리는 레슬리에게서 분신같은 나그네의 영혼을 알아보고 춤이라도 추려는 듯 그녀의 손을 잡았다.ㆍ사실 두 사람은 존재와 사물의 영靈을 제 것으로 삼아 변화시키려는 욕망을 가졌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렇게 그들은 마치 스스로 무대에 올라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바꿔놓으려는 자신들의 욕구에 응하려는 듯 했다.ㆍ레슬리는 그가 그 자신을 알게 하는 데도 분명 기여했다.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명 작용을 통해 그 역시 그녀가 최고의 자기 모습을 닮게 만들었다. 때로는 한쪽의 자아를, 때로는 상대 쪽의 '나'를 성가셔하며 레슬리와 가리는 미숙하거나 유감스런 행동의 한계를 일러주고 인도해주는 특별한 직감을 갖춘 관계를 유지했다. 은밀한 떨림이 적절한 때에 찰칵 하고 당신을 관용으로, 신중함으로,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관계 말이다.(68~70쪽)

우리는 흔히 같이 살면 닮는다는 말을 한다.

난 이 말을 '좋아하면'이나 '사랑하면'쯤으로 바꾸고 싶은데, '공명작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공명 작용'이라는 것이 상호간의 것이어야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때론 '존경한다'는 말로 이 방향성을 일방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는데,

요즘은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존경이나 사랑은 고사하고 의사 소통도 불가능할테니 말이다.

 

얼마 전에 존경하는 분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멘.붕.임~--;"

전화가 곤란하여 매번 문자를 보내는 줄 알면서도, 대번에 전화가 걸려 왔다.

"멘홀(이 붕괴되어 속)에 빠졌다구?"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가 8년을 같이 살았고,헤어져서 12년을 그렇게 지냈다고 하더라도...

책에는 숨가쁜 사랑이라고 사랑에 방점을 찍어가며 멋지게 표현하려 노력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비극적 결말은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도 가리도 육욕과 매력을 소유한 존재라는 자신들의 운명을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운명이 마술을 부려 사랑의 제1계명, "달려들라. 때가 되면 알게 되리라"를 강력히 부추길 때는 그저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 누구도 행복을 거슬러 노를 젖지 못하는 법이다.

  정신적 품성이 끌림과 유혹의 요인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품성에 감성과 매력과 아름다움까지 더해진다면 그 힘은 절정에 이른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그 모든 걸 팔고 남을 정도로 가졌으니 그들의 결합은 "행복의 비밀은 엉덩이와 마음에 있다."라고 한 자크 프레베르의 생각에 넉넉히 부합할만했다.(108쪽)

책에서는 이들의 헤어짐을 24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빚어내는 신체적 차이쯤으로 언급했는데, 비단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제 두 여자 사이에는 경쟁심까지 끼어들었는데, 그것은 소리 없이 진의 자존심을 긁었고 레슬리의 악의를 부추겼으며 가리를 괴롭혔다. 레슬리에게는 신체적 차원에서 불공정한 싸움이었다면, 진에게는 지적 차원에서 똑같이 불공정한 싸움이었다. 요컨대 서로가 상대편은 가졌거나 숙달했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한 것을 질투했다. 특히 진이 괴로워했다. 레슬리는 자신도 많은 연인을 가졌고, 누구보다 일탈적이고 모험적인 여행도 햇다고 자부하며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여자로서 자신이 이젠 스무 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였다. 그녀는 젊은 남자가 자기보다 진을 선택한 경우라면 훨씬 관대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늙은 부부의 정원에 웬 지각없는 여자가 끼어들어 논 것이라면 훨씬 관대했을 것이다ㆍ. 하지만 이 미국 여자의 침입은 레슬리에게 '그 자리에서 비켜. 내가 앉을 테야'를 의미했다.(112~113쪽)

 

 진 세버그는 왕성한 혈기로, 사회에서 소외 받은 약자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으며 흑인 인권 운동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FBI는 그녀를 빨갱이로 간주해 사생활을 감시했고 '흑인들의 창녀'라고 부르며,그녀의 명예를 실추 시킬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언론에 공개했다. 악의적인 가십은 그녀의 사생활을 파괴했고 보수적이었던 진 세버그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다. 급기야 영화 경력은 쇠퇴 일로였고, 알콜 중독에 걸렸다.

 로맹가리는 언제나 유보적이었고, 불의와 차별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 세버그에게 행동하지 않는 소설가라고 매도당했다. 하지만, 그의 출생 이력을 안다면 그가 평생을 인종차별과 소외의 경계에서 줄다리기 했다는 것도 헤아리고도 남을텐데 말이다.

세상에는 끓는점 이상으로 움직여야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낙숫물이 바위를 뚫기도 하더라, ㅋ~.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폴 세르주 카콩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진 세버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깨진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상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죠."(231쪽)

로맹가리의 죽음을 놓고서도,

이 책의 231쪽에선 그의 유서의 부분이 인용되어, 앞에서처럼 '사랑'에 방점을 찍으려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유서 전문을 보게 되면, 그의 문학적 작업의 연장선 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진 세버그와는 아무 관계없다.

상심한 마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른데다 호소하도록 초대받는 법이다.

사람들은 아마 신경쇠약 탓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 신경쇠약이라는 것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계속되어 왔으며,

내 문학적 작업을 완수하게 해 주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인가?

아마도 『밤은 고요 할 것이다 ; La Nuit sera calm』라는 내 자서전적 작품의 제목과,

‘사람들이 달리 더 잘 말할 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 마지막 소설의 말 속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암튼, 목숨을 걸고 하는'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 또는 '숨가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의 기우를 살짝 얘기해 보자면,

사랑은 꼭 그런 설정이 아닐 수도 있으며,

유명작가와 이쁜 배우가 나와 죽여주는 그림이 되어야만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보통의, (어찌보면 어떤 점에서는 보통에도 못 미치는) 사람들이 지지고 볶고 사는 일상이 사랑이지 뭐, 별거 있겠나 싶다.

아니, 죽여주는 그림 또는 순애보적인 이야기는 영화나 책 속에 나오는 것이고,

난 아주 보통의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사랑하며 살겠다.

그걸 이 책에선 멋지게 '공명작용'이라는 말로 표현하던데...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관한 유쾌한 실험과 흥미로운 이론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ㅋ~.

 

 

 

 

 

 

 

 

 사랑의 실험실
 김형자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신체적으로 좀 더 가까워지려고 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에겐 공식적인 사람과 만날 땐 상대와 나 사이에 평균 122센티미터를 유지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는 46센티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심리가 있다. 나란히 앉았을 때 상대방을 향해 다리를 뻗는 것도 '친밀 거리'인 46센티미터 안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강한 호감의 표시다.
_ ‘46센티미터의 법칙’ 중에서

언젠가 친밀거리는 사정거리내로, 손뻗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말하고,

공식적인 거리는 양팔길이에서 어깨 넓이를 뺀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럼 내가 말하는 insure safety distance에서는 안이라는 건가, 밖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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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1-14 16:58   좋아요 1 | URL
얼마 전에 주말연속극 속 국민 딸 서영(별로 효녀는 아닌데)이가 온갖 역경 속에 어렵사리 판사가 됐는데(!) 자기가 살아온 처지와 위치, 가족들과의 관계를 돌이켜볼 때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형을 내리는' 행위로 인생을 좌지우지해도 되는 사람인지 고민하다 결국 판사를 관두고 변호사가 돼요. 반드시 어떤 행동을 적극적으로 해야만 행동가일까, 소극적으로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적극적 행동가보다 그들이 옳을 수 있는 게 아닐까..보이는 상처는 물론 보이지 않는 타인의 상처까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로맹 가리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니까 슬퍼서요..

그래서 결혼을 하면요, 불 같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나요? 더 심해지나요? 저는 어떡하나요..( 먼 산..)

양철나무꾼 2012-11-21 03:22   좋아요 1 | URL
어쩌긴 뭘 어째요~?
아이리시스님은 지금처럼 알라딘 서재 이 동네를 잘 지키시면 되는 거예요, ㅋ~.
결혼을 하면 불같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지의 욕구는 말이죠~
비법 전수에 들어가니 맨입으론 곤란하죠, ㅋ~.

감은빛 2012-11-15 11:35   좋아요 1 | URL
저는 철없을 때, "이 사람이 아니면 살아갈 의미가 없어!" 라거나,
"이건 운명이야!" 라는 태도로 불같은 사랑을 몇번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열정을 태우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니나,
너무 한 사람에게 치우치다보니 생활이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더라구요.

사랑은 사람 수만큼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저는 가끔 불타오르는 사랑을 해보고 싶단 욕망을 가지곤 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2-11-21 03:28   좋아요 1 | URL
어허~~~~~!
이거 이거 아줌이 대답하기 좀 곤란한 댓글이다, ㅋ~.
패쓰하고,
날이 많이 추워요, 감기 안 걸리셨죠?
둘둘 말고 다니세요.

가끔 불타오르는 사랑을 해보고 싶단 욕망'만'을 가지고 있을뿐 실천이 안되는 우리들은 둘둘 싸고 말고 다니는 수밖에 없어요, ㅋ~.

숲노래 2012-11-15 16:29   좋아요 1 | URL
'보통'이라는 사람은 없고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보통 사랑' 또한 없이 모두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느껴요.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사랑을 말하는 글'을 쓸 수 없겠지요.

양철나무꾼 2012-11-21 03:31   좋아요 1 | URL
된장님 말씀이 맞아요.
사람이나, 사랑 따위 보통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것들이 좀 있지요, ㅋ~.

루쉰P 2012-11-20 09:31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교주는 돌아왔습니다. ^^ 먼저 복귀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 했네요. 1년 총 결산의 리뷰를 어제 저녁에야 마무리해서 올렸어요.
근데 양철나무꾼님 페이퍼에 사랑이 올라와 있다니 ㅋㅋ 뭔가 역시나 우리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기다려 주시고 또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T.T
교주 그만둘 뻔 했는데 역시나 광적인 신자가 있어야 교주도 할 수 있어요. 감사해요. 진심으로여 ^^

양철나무꾼 2012-11-21 03:34   좋아요 1 | URL
교주님 돌아오신 기념으로다가, 신도가 잠수를 타 주셔야 하려나, ㅋ~.
저도 사는 게 변변치 못하여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워 (요즘은 새벽에 돌아다니는 티는 가급적 자제하는데)저도 모르게 그만 이렇게 댓글을 달고 있네여, 헤에^________^
 
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터키'속담도 있다지만,

사랑을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 듯 느껴진다.

사랑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은 다른 것들에도 똑같이 열정적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단다.

 

그런데 가끔 열정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뜨뜻미지근한 태도, 성의없는 말투, 냉담한 눈길 같은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상대방의 그것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도,

'애정이 식은거야~--;'라고 표현하는걸 보면,

사랑을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것이,

사랑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좋은 게 정석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뜨겁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온도가 높아야 뜨거운 것이 되는 것일까?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 듯 느껴지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고 겉으로 표현하는 것만 사랑이고,

그렇지 않은 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아프게 읽었다.

너무 아프게 읽어서, 한동안...

리뷰를 쓸 수 있을까, 느낌이란 것이 나와줄 수 있을까 싶었었다.

뭔가 느낌이나 감상을 얘기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한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법이니까.

구구절절, 사무치고 아팠다.

내내 울었고 앓았다.

 

사랑의 온도, 그것은 어쩜 누군가를 태우기도 하고

누군가를 아프게도 하지만, 누군가를 치유하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갈망하였고, 넉넉히 받았고, 그리하여 치유받았다.

다시 말해 울고 앓고 주저앉는데서 멈추지 않고,

책을 통하여 치유받고 훌훌 떨고 일어날 수 있었다.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소설의 특징인 개연성을 확보하는데서 실패했고,

그래서 다소 진부하다 비춰질 수가 있겠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소한을 지키기가 이렇게도 어려운데 왜 우리는 최대한의 욕망에 휘둘려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7쪽)

 

지금은  병ㆍ의원의 업태가 '서비스'라는 단어가 빠진 '의료업'이지만, 한때 '의료ㆍ서비스업'으로 분류되던 때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정이 많은 부류였지만 내 눈에는 계산적인 여자로 보였다. 상반된 두 단어는 오늘날 같은 말이다. 정이란 보이지 않게 계산된 이익의 가시적인 산출량인 것이다.(10쪽)

이 문장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 보자면, 정(情)이란 것도 보이지않게 계산된 것이라는 얘기쯤 될테고,

그래서 '의료'에 '서비스'가 붙은 순간 지극히 계산적이 되어버리는 걸 눈치챈 사람들이,

야박함과 상술을 내세워 '서비스'라는 단어를 뺀 것일 테지만,

정(情)도 가시화하여 계산하는 사람들이 의료에 '서비스'를 붙이는 것 정도야 애교이지 싶다.

 

이 소설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쓴 그녀가 쓴 또 다른 사랑이야기라고 해야 하려나?

줄거리는 간단하다.

치매에 걸린 새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남기고 간 통장을 전해주기 위하여 남겨진 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ㆍㆍㆍ ㆍㆍㆍ사람은 한 번에 하루씩 살아야 하고, 한 번에 한 끼씩 먹어야 하는 법이다. 새엄마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나는 것일까. 사람의 머릿속에는 저마다 깊은 우물에 종이배 하나가 까닥까닥 떠 있는 게 아닐까. 심연에서 심연으로 연결된 어느 부두에서 매일 자신이 접은 종이배에 홀로 승선하고 홀로 하선하는 당일 여객들ㆍㆍㆍ ㆍㆍㆍ. 한번에 하루를 사는 인생, 하루에 하나의 종이배를 접는 일은 살아가는 자체여서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16~17쪽)

작중화자는 어린시절 오빠와 작당을 하고 새엄마의 딸인 이복동생을 집에 들이는게 싫어 어딘가에 버려두고 도망친 과거가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번에 여러가지 업무수행이 가능한 '멀티테스킹'형이 있기는 하더라.

멀티테스킹이라고 하여, 어느 하나 소홀하지도 않은 걸 보면 한번에 하나씩 차근차근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과하면 과부하가 걸리거나 체하게 마련이고,

과부하나 체하는 걸 감당할 수 있는 힘은 '부모'라는 이름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부모도 이전에 사람이고, 모두가 과부하나 체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자기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과 자신의 미움을 지키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78쪽)

'사랑'을 지키는 것과 '미움'을 지키는 것은 어쩜 상반된 의미의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깊어져 미움이 된 것이지,

사랑이 없는 사람은, 미움도 없고...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 지킬 게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뜨거운 것은 차가운 것과 어쩜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할 것은, 무심함이 아닐까?

(종교에서 무심해야 득도하고, 도통한다고 했는데...아웅~--;)

"난 사람에 대한 나름의 측도가 있어요. 자기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 그게 사람의 의리지요."

 나는 은밀한 죄의식을 뱃속에 꿀꺽 삼켰다. 헛배가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유란의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그런 일이었다. 허은경은 내 뱃속을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 사랑을 못 지키는 사람은 인생에서 모멸을 당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내 엄마 같은 사람, 유란이 엄마 같은 사람요."(235쪽)

책에선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자기의 사랑을 지킬 수 있고 없고,가 자기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좀 심하지 싶다.

인생에서 모멸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제 사랑을 못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제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세상에는 얼마든지 차갑고 냉정하게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쪽 왕이 왜 아내에게 잠드는 약을 먹였느냐고 묻는데, 그들은 욕망의 휘황한 암흑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비극 뒤에 자초하는 고독의 엄정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고 슬픔의 깊고 쓴 달콤함과 우수의 가벼움과 평온을 모르는 사람이다. 상처에서 염증이 걷히며 단단하게 응결되는 비극의 자긍심을 모르는 사람이다.(100쪽)

이 책이 슬펐던 것은,

사랑의 정도를 자꾸만 온도와 비례해서 풀어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ㆍㆍㆍ ㆍㆍㆍ부엌이 없으면 몸이 마르는 느낌이 들어요. 마음도 그렇고요. 여자들은 다들 그렇지 않나요?"(138쪽)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방식은 뭘까?

사람이 사람을 머릿 속에 넣어 기억하는 방식 말고 다른 것들도 있는 것 같다.

몸에 밴 습관처럼,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방식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걸 두고 심장이 기억한다고 할 수도 없지만, 심장에서 '찌릿~'하고 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엉뚱한 답이 될것 같다.

"이렇게 다른데도 내가 너를 한눈에 알아보다니, 이건 눈으로 알아보는 게 아닐 거야. 우리가 모르는 다른 방식이 있는 거야. 심장이 발산한다는 자기장으로 서로 알아보는지도 몰라. 너 아니? 심장에 기억이 있다는 거. 심장이 발전기처럼 전기를 만든다는 거. 심장이 자기장을 2미터 이상이나 멀리 보낼 수 있다는 거."

  심장이 기억한다면 심장에도 뇌가 있다는 소린가. 심장도 생각을 하는 걸까. 심장이 자기장을 2미터나 보낼 수 있다니, 가슴에서 가슴으로, 같은 노래 가사가 괜한 소리는 아니었던 것이다.(209쪽)

이쯤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친구로 만들 수 있을 남자였다. 그러니까, 사랑할 여자 하나조차 남겨놓지 못하고 모두를 친구로 만들 남자였다. 예전에 내가 그를 거절했던 이유를 이제 알게 된 셈이었다. 그가 외로운 얼굴로 역에 앉아 있는 이유도. 그때 나는 왜 친구가 될 수 있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211쪽)

내가 경계하려던 것은 사랑의 온도가 아니라,

사랑의 밀도라고 해야할까, 순도라고 해야 하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밀도나 순도라는 것들은, 팥으로 메주를 쒀도 믿는 '믿음'과 관련된게 아닐까 싶다.

"ㆍㆍㆍ ㆍㆍㆍ그런데 남자친구가 그러더래요. 거짓말이면 어때? 넌 신화와 설화를 믿니? 다 지어낸 이야기인 거야. 불교의 핵심이 그거잖아. 인생도 그래. 다 지어내는 거지. 사랑도 다 지어내는 거야. 하지만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가는 일이지ㆍㆍㆍ ㆍㆍㆍ."(245쪽)

 

"그 사람은 자꾸만 확인하려고 해요.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아니면 자기만 나를 사랑하는 거냐고요. 전 그게 두려워요. 전 사람들이 말하는 뜨거운 사랑을 모르겠어요. 그냥 함께 생활하는 것이 사랑이면 좋겠어요. 그 사람도 그정도면 좋겠는데, 그 사람은 열렬해요. 그리고 나를 의심하는 거 같아요. 나더러 차다고 해요. 그래서 난 상냥하게 대하려고 애를 써요. 전 혼자인 이 상태를 이제 견디기가 어려워요. 올겨울은 영하 15도까지 예사로 기온이 내려갔잖아요, 정말 얼어붙은 것처럼 춥고, 외롭고 무서워요. 올겨울이 지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어요. 좀 의지할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명서는 조급하게 말했다. 자유로운 사람을 찾아 의지하고 싶어하는 불가능한 모순을 명서 자신은 모르는 것 같았다.

 "가끔 부딪칠 때가 있는데, 그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는 당황스러워요.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번번이 무마하기 위해 사과하지요. 그는 사실은 나를 전혀 몰라요. 나에 대한 무지를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얼버무리려 하죠. 그런데 사랑이 뭐죠? 그런 게 정말 있나요?"

  명서는 마치 소문으로만 들은 괴물에 대해 묻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이 본 적도 없고 느낀 적도 없는 그것이 실제로는 없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무서워요."

  명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딘가로 힘껏 던지려던 돌멩이를 제 싸늘한 가슴에 툭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명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차가워 보이는 새하얀 손이었다. 명서의 심장도 시리도록 차가울 것 같았다.(250쪽)

 

ㆍㆍㆍㆍㆍㆍ감정 없이, 감각 없이 살아야 하는 그게 의사 처방이었어요. ㆍㆍㆍㆍㆍㆍ마치 술이나 담배가 심장에 해로우니 끊으라는 처방처럼 사랑을 끊고 고독해지라고 처방한 거예요.((284~285쪽)

 "어릴 때 버림을 받아서 그러는 거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버림받는 것이 가장 두렵잖아요. 두려워서 더 엉겨붙게 되는 거죠. 유란은 그게 더 심해요. 자기를 해치면서까지 끌어안는 사랑을 하니까요. 아마도 가장 믿었던 엄마에게서 버림받아서 그런 거 같아요."(288쪽)

 

 감정이나 감각 없이 사는 건...살아있어도 사는게 아닐 것이다.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건...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가는 노력의 과정이 아닐까?

때문에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교훈은,

이 책이 깨닫게 해 주려고 한 교훈과는 좀 다른데...

사랑의 온도로 사랑의 정도를 판단하려 할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랑의 방법이 서툴다고 해서 사랑의 순도를 의심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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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9 19:11   좋아요 1 | URL
오랜만예요. 양철나무꾼님.^^
인용하신 문장이 모두 굉장한 걸요? 전 왜 전경린을 한 권도 안 읽었었을까요?! / 사랑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든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함께 하는 게 사랑인데, 혼자서 그러는 것도 의미있는 건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양철나무꾼 2012-11-14 16:35   좋아요 1 | URL
섬님~, 잘 지내시죠?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이긴 하지만, 책은 더, 더, 더, 굉장해요. ㅋ~.
사랑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든다는 말과 관련하여...
그래서 사랑을 혼자 하면 거짓말쟁이, 둘이하면 마법사가 된다고들 하잖아요, ㅋ~.

아이리시스 2012-11-12 20:1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거기 온도는 어때요?
남쪽에서 북쪽의 온도를 떠올리는 건 잘 되지가 않아요..

양철나무꾼 2012-11-14 16:37   좋아요 1 | URL
아이리시스님, 이 책 읽으셨어요?^^
댓글이 꼭 이 책 읽으신 분 같아요, ㅋ~.
오늘, 올들어 젤 춥대요.
전 추운 건 싫어요.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살고 싶어요, ㅋ~.

아이리시스 2012-11-14 17:06   좋아요 1 | URL
아니 이봐이봐, 양철나무꾼님은 천재예요!!
(저는 읽은 티 안낼라고 쓴 댓글인데요?!)

천재님, 남쪽나라 온기를 제가 계속 드리겠어요. 금방 따뜻해지실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