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식탁 VS 건강한 밥상
다음을 지키는 엄마들의 모임 지음 / 민음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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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누군가가 탄생한 좋은 날이라는데,

난 할일이 없어 웹서핑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보니...

나의 사랑 깔때기 정봉주께서 출소하시면서 두부 커팅식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거다.

크리스마스니까 십자가 모양으로 절단하겠다는 입담을 보니,

그가 건재한것 같아 안심이다.

 

근데, 교도소를 나오면 왜 두부를 먹을까?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독립 운동가들을 잡아다 가두고 음식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출소한 재소자들이 굶주린 상태에서 급하게 음식을 먹다 체하여 사망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이를 보고 소화도 잘되고 영양도 좋고, 구하기도 쉬운 두부를 생각해 냈고 그 관습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는 설이 있단다.

(157쪽 인용)

두어 가지 예가 더 제시되어있기는 하지만,

좀 야윈 그의 얼굴을 보니 위의 한 가지 이유와,

건강과 액운을 없애기 위해서 먹었다는 것만 옮겨 보기로 하겠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으니,

생두부 한 귀퉁이를 잘라먹고,

액운을 물리치고 앞으로는 탄탄대로이기만을 바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를 지각을 시켜도 아침을 꼭 먹여서 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이른바 등 따시고 배 불러야 힘이 솟고 기운이 난다는 아침 예찬론자, 집밥 예찬론자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 급식 검수 위원까지 했을 정도로 열혈이었지만,

그렇다고 친환경이나 유기농 따위를 위해 언니네 텃밭, 한살림, 흙살림, 두레생협 등을 일부러 찾아다니지는 않았는데,

다 비빌 언덕 우리 시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었다.

 

이제 비빌 언덕이 돌아가신 관계로다가...뒤늦게,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이런 저런 지식들을 현실에 적용시키려고 보니,

그야말로 눈과 입만 눈썹 위 머리 꼭대기에 가서 걸렸고,

손이나 몸을 놀려서 무엇 하나 해결해 낼 수 없는 그런 서글픈 상황이었다.

성질내고 까탈을 부려봐야...불안해 먹을 건 하나 없고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하는 처지다.

그런 내게, '습관이 차리는 나쁜 식탁'과 '제대로 장봐서 만드는 건강한 밥상'이 맞짱 대결을 벌이신다는 제목의 이 책은 참으로...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습관이 차리는 나쁜 식탁' VS '제대로 장봐서 만드는 건강한 밥상'>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거다.

오죽하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을까 마는...

그렇기 때문에라도, 어렸을때의 식습관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가정주부가 습관적이나 무의적으로 차리는 식탁이 나쁜 식탁이 되는 것은.

그동안의 가정주부의 식습관이 잘못되었다는 전제 하에서 나온 말이 되겠다.

 

그 주부의 식습관은 그러면 누구의 영향을 받았을까?

결혼을 했으니 주부가 되었을테니, 남편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았을테고...

남편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시부모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주부의 친정 부모에게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지방색이나 국가적인 특색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식습관이 만약에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단절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어렵지만 가정주부 자신이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각종 성인병을 얘기할때 기왕력, 가족력...해가며 유전을 들먹이는데,

정작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물림되는 성인병은 그렇게 많지 않다.

다 잘못된 식습관을 공유하는 가족에게서 공통으로 생기는 공통의 질병을 가지고 유전을 들먹이는 건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먹을거리 문제를 바라보면서 제일 많이 느끼는 것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7쪽)

수입농산물을 집 앞 슈퍼에서 싸게 사먹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고,

유독한 농약사용, 환경문제, 에너지 문제, 노동 착취 문제 따위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반드시 유기농이어야 하고 가공식품은 절대 먹지 말아야 하며 자연식만 먹어야 한다는 식의 의견 제시는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였다. 참고할 수는 있지만 이런 대안 제시가 실생활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이다. 그보다는 '보기 좋고, 싸고, 맛있고'라는, 보이는 것들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표현해 보자면 '이왕이면 이렇게', '이러고도 먹어야 하나', '조금 덜 먹어 보자'는 느낌일 것이다.(10쪽)

 

이 책에서 얘기했듯이 이런 대안 제시가 실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게 아직도 장바구니 물가가 체감 경기라고 할 만큼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게 큰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밥을 굶고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참 마리앙토와네트 같은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식생활이란 것은 대부분, 주부 스스로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아이들이 거부하고 안 먹겠다고 투쟁을 해서 쟁취를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주부 스스로가 변하고 바뀌어야 하는 문제인데...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그동안 수십년에 걸쳐서 고착된 식습관, 입맛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게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대부분의 주부들이 여기에 동의할텐데...이미 나쁜 식탁이 우리 주변에서 횡행하고 있어서,

아무리 다부진 결심을 하더라도, 나쁜식탁 아닌 건 눈 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고...

때문에 건강한 밥상을 차리려다가 손가락 빨고 쫄쫄 굶게 생기는 일이 허다하다.

 

책에 나온 여러가지 얘기들은 다 중요하고 도움이 된다.

다 옮길 수는 없고, 여러 사람들이 궁금해서 내게 물었던 것과 관련된 것만 추려보았다.

 

 쌀에 함유된 성분 중 75~85퍼센트는 전분이다. 이밖에 6~8퍼센트의 단백질과 지방, 섬유질, 회분이 각각 1~3퍼센트 정도 포함되어 있다. 현미와 백미의 영양적 차이는 섬유질과 지방, 회분에서 난다.ㆍㆍㆍㆍㆍㆍ최근 쌀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것은 그 안에 포함된 가바GABA라는 물질이다. 가바는 혈액 내 중성 지방을 줄이고 간 기능을 향상시켜 혈달을 조절해 성인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암 발생을 억제한다는 연구 보고도 나오고 있다. 가바는 현미를 발아시키면 특히 강화된다. 혈당에 문제가 있거나 비만한 경우라면 발아 현미를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20쪽)

 

잡곡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과 같은 3대 영양소와 더불어 쌀에 부족한 각종 미네랄과 무기질을 골고루 함유하고 있다. 또한 배아와 껍질까지 그대로 먹을 수 있는 통곡 섭취 음식이다. ㆍㆍㆍㆍㆍㆍ잡곡 중에는 기상 이변에 강하여 농약 및 화학 비료 등을 적게 쓰거나 안 쓸 수 있는 작물이 많아 환경적 가치 역시 높다.(26쪽)

 

근데, 책을 읽다보면 의미가 혼란스러운 부분이 생기는데,

수수는 항산화력이 있는 타닌 tannin성분을 지닌 유일한 곡물이다.(29쪽)라는 부분이다.

곡물 중에서 타닌tannin성분을 유일하게 지닌 것이 '수수'라는 얘기인가 본데,

이게 별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곡물만 먹는게 아니니까 곡물에서 섭취하지 못하는 것을 먹거리를 섭취할 수도 있는 문제이니까 말이다.

무엇보다도 항산화력이 있는 타닌tannin성분이라고 했는데,

타닌 tannin성분은 밤의 속 껍질이나 덜익은 감의 떫은 맛을 내는 성분으로 주전자에 검게 차때가 끼게 하는 성분이라고 하여 옛날에는 '가죽에 무두질을 하다'라는 의미로 씌였다.

그리고 차의 타닌 tannin성분은 따로 카테킨이라고 부르는데,타닌 tannin성분과는 약간 다르다.

그러니, 항산화를 얘기할때는 비타민E와 더불어 카테킨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말해, 타닌 성분을 지닌 곡물은 수수가 유일한 것이 맞지만,

타닌 성분을 지닌 것은 그 외에도 여러가지 포도나 감, 밤 따위가 있고,

항산화에 힘주어 얘기를 하고 싶은 상황이라면, 카테킨을 얘기하는게 낫겠고,

카테킨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녹차와 홍차 되시겠다.

 

또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20 : 80 =육식 : 채식을 잘 지켰다 싶은데, 탈이 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난 그걸 '회맹판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이는데,

그걸 이 책에서는, 몸에 좋은 채소도 한가지 문제가 있는데 '재배과정에서 과도한 농약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럼 '회맹판증후군'이란 것은 생야채, 푸성귀를 먹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재배과정에서 과도한 농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질환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해장국이라고 해서 먹는 것들,

콩나물 꼬리의 아스파라긴산,

'독이 명태를 만나면 즉각 물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태나 황태의 해독 능력은 탁월하다.

 

육식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이 전환이 필요하다.

광우병이나 공장식 축산의 폐해는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쇠고기의 맛을 따지는 등급 - 살코기 결을 따라 기름기가 퍼져 있는 정도(마블링)에 따라 A, A+, A++ 등으로 나타내는데, 이런 살코기를 얻어내기 위한 반생명적 사육 환경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반생명적 사육 환경이라는 것은,

수소의 경우 거세를 하여 근육 생성 등을 최대한 억제하고 어린 송아지 시절부터 움직임을 최소화해 좁은 우리에서 꼼짝도 못하게 하여 유전자조작 옥수수 사료를 먹여 키우는 방식으로 고기를 얻는 것을 말한다.

과연 마블링 정도에 따라 고급육 등급을 매기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또 육식에서 조리법은 상당히 중요한데,

같은 고기 부위라고 하더라도 조리법에 따라 발암 확률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들의 질병인 전립샘(선)암의 경우,

육류의 붉은 살코기를 프라이팬이나 석쇠, 그릴에 구이로 섭취할 경우 발암 가능성이 30~40퍼센트에 달한다고 하니,

고기를 구워낼 때는 코팅된 프라이팬에 직접 굽는 것은 피하도록 하고 찌거나 삶아내는 요리법을 선택한다.

 

'MSG무無첨가'에 대해서도 우리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라면이나 과자 포장지에 'MSG무無첨가'라고 적어 광고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MSG가 들어있지 않다는 얘기인줄 알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MSG무無첨가'라는 표현은 추가로 넣지 않는다는 뜻이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걸 겉 포장지에 'MSG무無첨가'라고 광고하여 MSG가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표시하여 호도한 것이다.

 

헷갈리는 간장의 종류는 한번씩 확인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으며,

설탕을 대체하는 인공당류 또한 설탕과 동일한 정제 과정을 거치는 같은 물질이라 할 수 있는데다가,

실험결과 식욕 억제 호르몬을 감소시켜 뇌의 시상 하부가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여 과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100과즙과 무가당의 함정에 속지말아야겠다.

우유의 경우,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우리의 몸은 중화를 위해 뼈 안에 있는 칼슘을 오히려 빠져나오게 한다는 것, 이런 이유로 골다공증을 심화시키기 때문에 칼슘섭취식품으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물 대신 약과 함께 먹는 걸 절대 금해야 하며, 고 콜레스테롤 식품이다.

칼슘은 우유가 아닌 참깨, 시금치, 무말랭이, 멸치 등으로도 섭취가 가능하다.

 

그리고, <타임>지에서 '암을 예방할 10대 건강 식품'이라고 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토마토'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

우리가 전림샘(선)암이나 여성의 유방암을 예방하는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토마토는,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 맛이 강하고 완숙이 잘 되지 않는 생식용 토마토가 아니다.

전림샘(선)암이나 여성의 유방암을 예방하는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토마토의 성분은 카로틴의 일종인 리코펜(또는 라이코펜)이다.

케첩은 그런의미에서 라이코펜이라는 영양소를 넉넉하게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이다.

라이코펜은 지용성이라 좋은 기름과 함께 익혀서 섭취하면 소화 흡수율이 일곱 배 정도 올라간다.

이 책에는 안 나왔지만, 흔히 비싸다는 이유로 샐러드유로 토마토를 익혀서 섭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샐러드유와 볶음용, 튀김용 기름의 경우 비등점이 다 다르니 제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이 책은 위해한 것이 증명되지 않아 사카린이 다시 사용 허가된 것으로 끝을 맺는다.

위해 여부가 증명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해도 될까...이러면서...

그러면서, 우리의 밥상을 건강한 음식을 차려서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얘기하고, 변화하는 생활환경에 맞추어 안전한 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기업과 사회들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나는 이런 어려운 얘기들을 이 한마디로 일축하고 싶다.

제철에 나는 구하기 쉬운 음식을 먹자.

원재료의 성질에 최대한 가깝게, 최소한의 가미를 하여...

 

일하는 바쁘고 게으른 엄마의 변명인가~?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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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2-25 20:10   좋아요 1 | URL
덧붙이면, 생협 회원이 되어 유기농 곡식과 열매를 알맞춤한 값으로 사다 먹는 길이 있겠지요.
그리고, 텃밭을 도시에서도 일구며 푸성귀 어느 만큼 손수 거둘 수 있을 테고요.

도시에서도 어느 만큼 '길'은 있는데,
모두 바쁘고 번거롭다며, 또 돈이 든다면서 안 하지만...
생협 물건이 '비싸지'는 않거든요.

그나저나, 아무리 '나쁜 밥'이라 하더라도,
내가 착한 마음 되어 맑은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면서 즐겁게 먹으며 예쁘게 웃으면,
'나쁘지 않은 밥'으로 내 몸에 스며들어
내 목숨을 씩씩하게 북돋워 준다고 느껴요.


2012-12-26 18:26   좋아요 1 | URL
보이는 것 vs 보이지 않는 것 으로 설명한 인용문 마음에 들어요. 이 부분만으로도 책에 대한 믿음이 생기네요~. 그밖에도 많이 배웠습니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2012-12-2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부터 적는 얘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약간의 가감이 있음을 밝혀둔다.

다만 줄거리나 내용의 가감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감정 절제이다.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조명하려고 하였으나,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기억력이 다소 감퇴하였고,

그녀도 사람인지라 쪽 팔린게 무엇인지를 아는지라...

다분히 미화하였을 수도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사실에 가깝게 접근하려 노력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시간을 거슬러 흰눈이 펑펑 운치있게 내리던 며칠 전,

그녀가 사는 집은 산꼭대기, 다시 말해 언덕 위에 있는 저층 아파트이다.

폭설에 택배차가 오르지 못한다고 하여,

어렵게 어렵게 접선하듯 하여 귀하게 받은 택배 꾸러미를 풀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초록색 식물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살아있는 것,

생명이 있는 것에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얼마전에 친구에게 받아 키우게 된 '로즈허브'에 재미를 붙이자,

동료며 친지들이 여기저기서 탐을 냈고,

그 얘길 전해 들은 친구가 특별히 신경쓴답시고, 유독 싱싱하고 똘망똘망한 것들로 골라 몇 녀석 더 보내주었던 것이다.

룰루거리며 택배 꾸러미를 풀던 그녀는,

'으악~'하고는 저층 아파트가 무너져내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하느님, 부처님, 천주님, 신령님, 천지신명님, 아버지, 엄마, 온갖 종류의 구세주 이름은 다 불러 보고...

직장 때문에 늦는 남편과 야간 자율학습에 늦는 아들을 괜히 속수무책이라고 야속해 했다.

가까이 사는 남동생한테 전화를 했더니 술이 한잔 걸쳤는지,

"누나, (이제 세돌이 막 지난) 우리 둘째 보내줄까?끌끌~"하며 놀려 먹는다.

생각다 못해 해충박멸 어쩌구 하는 사이트에 전화를 했더니,

말 그대로 해충에 대해서만 수습을 해주는데,

그것도 업무시간 외 라는 상투적인 답변인 거다.

"사람 목숨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어떻게 안되겠느냐?"고 통사정을 했더니, 주소를 대보란다.

주소를 듣던 전화기 너머에서,

"그거 산꼭대기에 있는 아파트죠? 거기 오늘 눈 많이 와서 차 올라 다닐 수 있어요?"한다.

"아니요~--;"

택배도 007접선하듯 받은게 그제서야 떠오를게 뭐람~(,.)

 

다음날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며 그 얘기를 하였더니,

점심을 같이 먹던 한명은 웃다가 턱관절(T-M joint)이 빠져 다시 맞춰주는 수고를 해야 했고,

다른 한명은 '드림파마'라는 제약회사를 대야 해야 하는데,

어이를 상실한 사람처럼 '아놀드파마'라는 의류 메이커를 대며 전화 연결을 했다.

 

이쯤되면 로즈허브에 들어있던 괴생명체를 다들 바퀴벌레 쯤으로 상상하는데,

그런데 괴생명체는 더듬이 있는것만 닮은 달팽이 되시겠다.

 

그 괴생명체가 바퀴벌레 따위가 아니라 달팽이라는 걸 안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참 가지각색이었다.

그녀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그녀가 어떤 당혹감을 느꼈고,

심지어 삶의 위협을 느꼈는지, 는 그 즈음이면 사람들의 안중에서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처음에 에 대해 잘 못랐을 때는 세상의 무시와 푸대접에 반발하여 잡초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피했지만 지금은 그런 몰이해의 역사마저 다 끌어안고 좀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 안에 잡초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의식도 없는데 굳이 단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를 바꾸어 사람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난 10년 동안 나는 의식의 변화가 아니라 유행의 변화를 목격했을 뿐이다.(5~6쪽)

굳이 단어가 주는 선입견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풀이 되었든 잡초가 되었든, 어떤 부정적인 의식이 없다면 단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듯이...

그 괴생명체가 바퀴벌레가 되었건 달팽이가 되었건 간에,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당혹감으로 호흡곤란이 왔고,

숨이 막혀서 삶의 위협을 느꼈고,

그렇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내겐 얼마든지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얘길 '황대권'님은 '고맙다 잡초야'에서 이렇게 풀어내고 있다.

 

 

 

 

 

 

 

 

고맙다 잡초야
황대권 글.그림 / 도솔 /

2012년 10월

 

 

 

꼭 농사일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농사짓는 사람들은 수확을 하고 나서 자신이 다 이룬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노동의 강도가 세고 날씨와 기후변화에 애를 태웠기 때문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을 것이나 착각일 뿐이다. 애착 또는 집착을 공(功)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농사는 근본적으로 자연이 짓는 것이며 인간은 다만 그 과정에 이런 저런 방식으로 개입할 뿐이다. 자연의 공(功)으로 농사가 이루어지는데, 그 공(功)의 주체인 자연의 본질은 공(空)이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공(空)으로서의 자연을 이해할 수가 없다. 텅 빈 가운데 무한한 조화를 부리는 자연의 공능(功能)을 믿고 그에 맡기면 다행히 굶어 죽지는 않는다. 굶어 죽기는 커녕 신선의 경지에 올라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살 수 있다. 최초의 자연농업의 원리를 세상에 밝힌 후쿠오카 마사노부 옹의 농사철학이다.

나는 다만 조연이나 보조자에 불과한데 내가 마치 주인인 양 모든 일에 노심초사하며 일희일비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보조자는 보조자답게 주인이 하는 일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내가 그렇게 애를 태우고 수고한다고 해서 자연이 하는 일에 무엇 하나 더 보탠 것이 있었던가? 비료를 주어 수확이 늘어났다고? 그것은 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잃어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벌레를 잡아주어 수확의 감소를 막았다고? 그것은 벌레를 매개로 작동하는 자연의 공능을 알지 못해 하는 소리다. 내가 잡은 벌레가 나비의 감소를 가져오고 나비의 감소가 꽃가루 수정을 감소시켜 농장 전체의 수확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물론 꽃을 보지 않고 매년 종자를 사서 쓰는 농부에게 이런 말은 황당하게 들릴 것이나, 엄밀하게 말해서 종자를 사다 쓰는 농부는 농부가 아니라 농업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물을 주어서 말라죽지 않게 했다고? 들에 핀 야생화와 숲 속의 나무는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잘 자라는데 누가 물을 주었을까?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내가 무엇 무엇을 했다'는 자의식이다. 이 자의식은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의 토양이기도 하지만 심하면 허위의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미 보조자의 역할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것 자체가 허위의식인데 거기에 하나를 하고는 열을 했다고 풍을 친다. 사실 겸손이라는 말은 유한한 존재인 사람 앞에서보다 자연 앞에서 더 필요한 덕목이다. 말 못하는 자연 앞이라고 오만에 빠져 제멋대로 굴다가 낭패를 당한 인간 지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손자병법에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는데 무한한 공능을 지닌 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가 다한 것처럼 착각에 빠져 있으니 어찌 위험에 빠지지 않으리.(117~118쪽)

 

그 출발점으로 '경물의 생활화'를 제안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물건이 가지고 있는 영적 차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물건들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경천애인'은 저절로 될 것이다. 하늘과 사람은 물건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로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건이 그러한 모심의 대상이 되냐고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설명할 것 없이 조용히 손을 잡고 박물관이나 사원으로 데려가자. 어떠한 물건이든지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 그야말로 '물건'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84~85쪽)

 

'내가 누구다', '내가 무엇 무엇을 어떻게 했다' 따위의 자의식은 대상이 다를때 뿐만 아니라,

같은 대상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사물, 기타 등등과의 비교를 통하여 우위의 순위를 매기기 때문인데...

이 모두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우월주의'의 산물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우월주의에서 탈피하는 순간에서야...

남을 위험에 빠뜨리면 자신도 위험에 빠진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늘 위험을 느끼는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옷을 벗어던짐으로써 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스스로를 유약하게 만들어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유약해진 나는 예전처럼 함부로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 좀 더 세심하게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이렇게 상대방과 동등한 관계를 맺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면 어느 순간에 자연이 벌거벗은 나를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든다.(21~22쪽)

하는 구절이 설명이 되고,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가 제시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자연회귀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먹기 | 음식이 밥상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음미하여 되도록 오래오래 씹는다.

볼일 보기 | 인도식으로 손에 물을 묻혀 씻으며 땅과 똥과 나를 일치시킨다.

옷 벗기 | 옷은 그저 피륙이 아니라 의식과 행동을 지배해온 거대한 관념이다.

추위 | 인류의 미래는 추위를 견디는 힘에 달려 있다.

운전 | 타이어의 진동과 떨림을 모두 느끼며 알아차린다.

절하기 |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반복한다.

종사 | 자연농업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무이한 농법이다.

건강 |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 몸을 자연의 질서에 맡기는 것이다.

노동 | 반복되는 단순노동을 통해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체험한다.

소통 |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다 보면 공감대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것은, 다시말해 인간우월주의의 탈피이고...

다시말해 경물의 생활화이다.

우리가 애정과 관심을 갖는 그 순간이 물건이 '물건'으로 거듭나는 순간이고,

나는 경물의 숭배라고까지 얘기하고 싶지만,

그 순간 경물 우월주의로 변해버리고 아쉬울 따름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 씹는 행위만 해도 그렇다.

음식물을 입 안에 넣고 씹을 때에 온 신경과 에너지를 씹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라즈니시 말투로 하면 '씹는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단다. 그걸, '비는 단지 흔들어댈 뿐이지만 나의 입 속에서는 격렬한 파괴와 창조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29쪽)' 라고 너스레를 떨고있다.

 

볼일보기, 옷 벗기 등 자연과 물아일체를 넘어선다.

내가 자연과의 연애를 얘기하는 건 들어봤어도, 자연과의 섹스는 또 처음이어서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순간적인 오싹함 뒤에 오는 따스함의 쾌감을 꽤 긴 시간 동안 맛보면서 섹스할 때의 오르가즘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운우지정이라 하여 남녀 간의 사랑을 자연의 움직임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날 나는 자연과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엇다고 생각한다. 따로 안식처를 찾지 못한 나는 적극적으로 자연을 향해 구애를 했고 자연은 - 물론 말 그대로 '늘 그러함'이었지만 -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애와 유사한 쾌감을 느꼈다.(51쪽)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던건,

반복되는 단순노동을 통해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체험한다는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은 어느 순간까지는 맞지만,

흔히들 명상이라고 하면 정적인 모습만 떠올리는데 매우 격렬한 동작일지라도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관(觀)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명상이 된다. 사실 도끼질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근력이 있어야 하고 연습도 필요하다. 무작정 휘두르다간 다치기 십상이다. 조급한 심정에 서투른 솜씨로 함부로 달려들어서는 장작은커녕 헛되이 기운만 쓰고 마음은 전보다 더욱 어수선해지고 만다.

ㆍㆍㆍㆍㆍㆍ도끼날과 나뭇결이 일직선이 되게 놓되 마치 제단 앞에 예물을 바치듯이 정성스럽게 놓아야 한다. 통나무의 심사를 최대한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다.바야흐로 통나무가 갈가리 쪼개지고 온몸에 불이 붙어 하늘나라로 올라가려는데 그만한 예의는 지켜주어야 한다. '예의'라고 했는데 사실은 나와 통나무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는 조율과정의 하나다. 통나무를 단단히 세워놓았으면 그 앞에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서서 호흡을 고른다. 도끼를 휘두르는 기술이나 완력보다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통나무와 나의 주파수가 일치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도끼를 휘둘러서는 안 된다.(56~57쪽)

그 순간을 넘어서면 타성에 빠지게 된다.

타성에 빠지는 순간을 넘어서면, 그 다음에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체험할 수 있으려나?

아직 나는 갈길이 멀기만 한가 보다.

(난 한때 이걸 갖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언젠가 올렸던 '그녀의 취향' 링크

다만, 나와 통나무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는 조율 과정이야말로

사람이고 사물이고 자연이고 간에, 경계를 넘어서는 소통인듯 여겨져서 눈여겨 보고 귀담아 듣고...나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난 그러고 보면 공감이나 소통이란 말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나 보다, ㅋ~.

 

차와 일체가 되면 도로 표면의 요철 상태에 따라 미세한 떨림이 지속적으로 전해온다. 바로 이 순간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이 진동과 떨림에 일일이 반응하도록 노력한다. 가령 차가 덜커덩하고 위아래로 흔들리면 그에 따라 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준다. ㆍㆍㆍㆍㆍㆍ계속 이렇게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다 보면 어느덧 차체와 혼연일체가 됨을 느낄 수 있다. 일단 하나가 된 뒤로는 제법 큰 흔들림이나 방향 전환이 와도 별 어려움 없이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ㆍㆍㆍㆍㆍㆍ

주행과 흔들림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잊고 있었던 호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왜 처음부터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가 하면 호흡은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상을 한답시고 억지로 호흡에 신경을 쓰다 보면 의식이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제는 차와 일체를 이루었으니 전신 호흡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전신 호흡이란 온몸의 주의를 기울여 최대한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되 더 이상 들이마실 수 없을 때까지 숨을 들이켜고 더 이상 폐에 공기가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숨을 내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숨을 쉬자면 온몸의 근육과 신경 - 특히 배 부분 - 을 온전히 동원해야 한다.(69쪽)

 

위 구절처럼 차와의 혼연일체를 잠깐 시험해 보려 했었다.

바로 좌절을 하고 말았는데,

스스로 '한 섬세한다'고 자처하던 나조차도...

차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떨림에 일일이 반응하려고 노력하는게 여간 힘들고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차와 혼연일체는 고사하고, 영혼의 육체 이탈, 흔히들 말하는 멘탈 붕괴를 먼저 경험하겠는지라 접어 버렸다.

다만 마음을 바치고 모으는 모든 일의 근간은 '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다시말해 공감이나 소통은 마음 바치고 모으는 일, 주파수를 맞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어떤 날'의 '출발'어디에선가 나왔던 구절이기도 한데...

이제는 세월이 한참 흘러 잊어버렸는데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있어야 할 게 제자리에 있는거다...뭐, 그런 가사였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자랄 때 신은 그것이 있어야 할 정확한 자리를 정해준다. 각 생명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을 때에 가장 행복하고 또 번성한다. 각 생명뿐 아니라 그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다른 생명들도 그렇다. 무한한 생명의 바다에서 생명들은 대단히 복잡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데 어떤 상태의 관계에 있을 때 각 생명이 행복한지 신은 알고 있다. 개별 생명이 그 자리를 찾아갈때 그것은 번성(행복)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시들어갈(불행할)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충실히 따르는 뭇 생명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찾아감으로써 삶의 의미를 완성한다(또는 자아를 실현한다). 사람들은 흉측하게 생긴 동물을 보고 진저리치면서 신이 왜 저런 걸 만들어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 의아해한다. 반대로 쓸모 있는 동식물을 보면 이들이 모두 인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멋대로 생각한다. 둘 다 터무니 없는 인간 중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이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고, 세상에 태어나면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이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할 때가 아니면 인간에 의한 부당한 간섭이 주원인이다.(96~97쪽)

 

난 이 책의 저자처럼 원시수렵시대의 자급자족을 꿈꿀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1순위도 아니고 0순위 되시겠다.

다만 인간이 전지전능하다는 생각은 적어도 버려야 한다.

인간을 위해 태어난 동식물만이 쓸모있다고 생각하는 인간 중심 주의적 사고방식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적어도 겸허해 진다.

뭇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

숙연해진다.

 

내가 '공감과 소통', '대화와 소통'에 목숨 거는줄 알았는지...이런 책이 내게 왔다.

 

 

 

 

 

 

 

 

 

가짜 우울
에릭 메이젤 지음, 강순이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12월

 

 

제목은 '가짜 우울' 이지만,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우울증은 정신장애가 아니다'는 것이다.

앞으로 멀지않은 언젠가...

정신건강 사업 팀이 생길지도 모르고,

대형할인마트의 우울증 코너에 가서,

점원에게 치료프로그램을 OX 또는 사지선다형으로 선택해서 상담받듯 처방받아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단다.

실은 이 책에서는 '만들어진 정신장애'라는 말을 벌써 쓰고 있으며,

이것은 이윤을 많이 남기는 '이름짓기 게임'일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울증이란 정신장애와 정상적인 슬픔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할텐데...

책의 한구절을 옮겨보자면 이렇다.

5.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이 어떤 느낌이고 우울증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고 주장하고, 그 두가지가 완전히 다르다고 확신한다. 이 사실이 우울증이 정신장애라는 증거 아닐까?

 

아니다. 그들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그 차이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슬픔은 살갗이 벗겨진 듯 얼얼하고 쓰라린 느낌인 반면, 우울증은 마치 눈으로 만든 장갑과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서 왜 이렇게도 삶의 온기와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지 알 수 없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느낌이 더 안 좋거나 다르다고 해서 정신장애라고 할 수는 없는일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베란다의 흔들의자에 앉아 앞뒤로 흔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롤러코스터가 위를 뒤집고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고 해서 장애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우울증을 정신장애라고 부르는 것에 딴지를 거는 것 쯤으로 끝났더라면 그저 그런 책이 되었을 것이고,

내가 이렇게 설레발을 치면서 소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울증이 정신장애인지 아닌지...에서 부터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시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변증법을 택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언젠가, 리뷰로 쓸 날이 오겠지만...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문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해서이다.

어떤 해결책을 답으로 얻었는지는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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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2-20 07:52   좋아요 1 | URL
'어떤' 농사꾼은 당신이 모든 일을 다했다고 우쭐해 할는지 모르지만,
제가 살아가는 시골마을 이웃 어르신들한테서는 그런 모습을
조금도 느끼지 않아요.

황대권 님은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요.
어차피 이 책은 도시사람이 읽을 테니,
도시사람들한테 무언가 일깨우려고 그렇게 '빗대어 보는 이야기'로 썼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농사꾼은 '모든 사랑'을 들여서 흙을 만집니다.
스스로 모든 사랑을 들여 흙을 만져 얻은 곡식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활짝 웃는 일이란,
참 아름답다고 느껴요.

아름다운 웃음은 사랑이요,
이 사랑이 있어 곡식도 열매도 한껏 무르익을 수 있구나 싶어요.
사랑받는 곡식은 더 잘 자라고,
사랑 못 받는 곡식은 알곡이 작기 마련이에요.

농사꾼은 '아무것도 안 하는 보조자'가 아니라,
농사꾼은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생각' 아닌 '사랑을 온통 바치는'
아름다운 '길동무'라고 느낍니다............

아무개 2012-12-20 08:30   좋아요 1 | URL
저는 오늘 '진짜 우울'하지만 <가짜 우울> 보관함에 담고 갑니다.

프레이야 2012-12-20 08:40   좋아요 1 | URL
님, 황대권의 저 책 소개하는걸 들은 적 있어요. 야생초편지 이후 반갑더군요. 저도 가짜우울 담아가요.

2012-12-20 15:08   좋아요 1 | URL
황대권님 너무 도인처럼 되어 버리셨어요. 아니, 뭐, 제 개인적인 느낌..^^

북극곰 2012-12-24 17:09   좋아요 1 | URL
나무꾼님~
내일이 크리스마스라도 제게는 별만 다를바 없는 휴일이지만 ^^
즐겁게 보내세요. 눈도 온대잖아요. 예쁘겠다.
남쪽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눈이 온대면 저는 괜히 설레요.
 

시인 '서정윤'이었던 것 같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꺽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제목도 '사랑한다는 것으로'라는 간단한 이 시를 읽고 외며,

이런 저런 경계를 나눌만큼의 사랑은 해보지 못했지만,

이건 필시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금을 그어 버렸던 것 같다.

 

얼마전 웹서핑을 하다가, 이 노래를 만났다.

뮤지컬 체스에 나오는 노래라는데,

제법 유명한 노랜데 난 몰랐다.

 

 

I know him so well

 

 

Nothing is so good it lasts eternally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영원한 것은 없죠.
Perfect situations must go wrong
어떤 완벽한 상황이라도 어긋나게 마련이구요.
But this has never yet prevented me
그렇지만 이런것이 날 막지는 못했죠.

From wanting far too much for far too long
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오래 지속되기를 원했으니까요.

 

Looking back I could have done it differently
되돌아보자면, 어쩌면 난 다르게 처신했을 수도 있었겠죠.

Won a few more moments, who can tell?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는 않았을지, 누가 알겠어요?
But it took time to understand the man
그러나 그 남자를 이해할 만큼의 시간이었어요.

Now at least I know, I know him well

이제 적어도 나는 알것 같아요, 나는 그만큼은 잘 아는것 같아요.

Wasn't it good?
(Oh so good)

오, 세상에! 너무나 멋졌고,
Wasn't he fine?
(Oh so fine)

오! 너무나 근사하지 않았나요?
Isn't it madness he can't be mine

그런 그를 내것이라 할 수 없다니 미칠것만 같았어요.
But in the end, he needs a little more than before Security,

그러나 결국, 그는 과거에 안주하기보다,

He needs his fantasy and freedom

미래에 대한 꿈과 자유를 동경했어요.

I know him so well

난 이제 그를 잘 알것 같아요.

 

No one in your life is with you constantly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No one is completely on your side

어느 누구도 언제나 당신 편이라고 할 수도 없죠.
And though I move my world to be with him

내가 그와 함께 하겠다는 일념으로 내 삶을 온통 그에게 맞출지라도,

Still the gap between us is too wide
나와 그 사이는 너무 넓기만 해요.

Looking back,  I could have played it differently

돌이켜보자면, 난 다르게 처신했어야 했었을지도 모르고,

(Looking back I could have played things some other way)
(되돌아 보자면, 난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었을지도 몰라요)

Learned about the man before I fell

빠져버리기 전에 알았어야 했는데
(I was just a little careless, maybe)

(아마도, 난 좀 부주의했었나봐요.)
But I was ever so much younger then

하지만 그때 난 너무 어렸었던걸요.
(At least I know him well)

(적어도 나는 그를 잘 알것 같아요.)
Now at least I know, I know him well

이제 나는 알것 같아요, 적어도 그만큼은 잘 알것 같아요.

Wasn't it good?
(Oh so good)

오, 세상에! 너무나 멋졌고,
Wasn't he fine?
(Oh so fine)

오! 너무나 근사하지 않않나요?
Isn't it madness he can't be mine

그런 그를 내것이라 할 수 없다니 미칠것만 같았어요.

 

Didn't I know how it would go
어떻게 되어 가는지 나는 알지 못했어요.

If I knew from the start

만약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Why am I falling apart?

내가 왜 그에게서 버려졌는지 알 수 있을까요?

Wasn't it good
Wasn't he fine
Isn't it madness
He won't be mine?

But in the end he needs a little bit
More than me, more security
(He needs his fantasy and freedom)

하지만 결국 그는 나보다는미래에 대한 보장을,

미래에 대한 꿈과 자유를 조금 더 원했을 뿐이예요.
I know him so well

나는 이제 그를 잘 알겠어요.
It took time to understand him

그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I know him so well

난 이제 그를 잘 알겠어요.

 

뮤지컬을 안봐서 내용을 잘 모르지만,

사랑을 잃고 엄마와 딸이 대화를 나누는 상황인것 같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상처받을까 염려되어,

내 딸을 물가에 내어놓지 않으려 할까?

보금자리까지는 아니어도,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주지 않을까?

근데 요즘은 남자만 fantasy와 freedom을 찾는게 아니다.

여자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남자든 여자든 간에 지친날개를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어깨'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입] Josh Groban -

 Chess: In Concert -

 Live from Royal Albert Hall (2DVD) (2009)
 Various Artists / Reprise / Wea / 2009년 7월


[수입] Josh Groban -

 Chess: In Concert -

 Live from Royal Albert Hall (2009)
 Various Artists / Reprise / Wea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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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12-14 22:50   좋아요 1 | URL
전 이 뮤지컬 봤는데(1999년일거예요)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단지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로 봤더니 어떤 내용인지 잘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ㅠㅠ (우리말이 아니어서)
서정윤의 저 시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시...^^ 저 대학 다닐 때 서정윤시, 완전 유행이었잖아요. 현실성은 없다 생각하면서도 참 좋아했었어요.

양철나무꾼 2012-12-19 21:2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왕부럽~--;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간택되어지는 그런 수동적인 선택 말고,
제가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그런 선택이요.
그럼 참 행복할텐데...하는 생각이요, ㅋ~.

만약에 딸을 하나 낳으면, 적극적으로...키우고 싶어요.^^

2012-12-20 15:09   좋아요 1 | URL
딸의 사랑을 생각해 보며 들으셨군요. 저는 딸이 없으니, 그냥 딸의 마음으로 가사를 읽었어요. 정말 사랑 실패담은 보편적이고 보편적이군요!!

steve 2012-12-23 18:54   좋아요 0 | URL
딸과 엄마가 아니라 한 남자를 사랑하는 두 여자입니다.
구소련의 체스 쳄피언이 미국으로 망명하며 사랑하는 미국여자와 소련에 둔 원래 부인.
어디서 찾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영어 가사도 정확하지 않고 한국말 해석도 좀 그러네요.....

양철나무꾼 2012-12-23 20:29   좋아요 1 | URL
어휴~, 감사합니다.
님 말씀을 듣고보니 상황이 좀 이해가 되는군요.
전 저 가사만 보고 모녀지간에,
'이런 이런 남자는 조심해라~'하는 정도로 생각했었거든요.

영어가사는 넷상에 떠도는걸 긁어왔고,
번역은 제가 했는데...죄송합니다.
제 실력이 이 정도랍니다, 꾸벅~(__)

이재현 2019-02-09 16:4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 해석이 맞는데요.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산문.시편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주영숙 엮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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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시작하게 된 것은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란 황홀한 제목에 홀려서였다.

한동안 좋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니던 사람 중에 '김탁환'이라는 사람이 있다.

난 한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의 전작을 두루 섭렵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탁환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탁환의 그것들은 과거,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배경들을 적절히 이용하였고...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인물들이 마치 그 시대에서 걸어나온 것처럼 유연할 뿐만 아니라,

정황 묘사가 마치 그려낸듯 상세하고 성격묘사가 섬세하고 적나라할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유명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작품들이 개연성 있게 읽혔었고, 그래서 재밌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옥의 작품집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분명 처음 접하는 사람이 맞는데, 그 글들이 낯설지가 않은 거다.

알고보니 김탁환이 젊은 실학자들을 대상으로 설정하여 쓴 소설에서,

젊은 실학자들 뿐만 아니라 이옥의 글들도 인용하였던 것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좋아서 숨이 넘어가게 설레발을 쳤던 김탁환의 필력은,

젊은 실학자들과 이옥의 것이었던 셈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김탁환이 시들해졌다.

 

또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를 통하여 연암 박지원의 작품들을 다시 접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오랫만에 김탁환 소설들을 떠올리고 비교하게 되었다.

 

요번에 느끼게 된건...

젊은 실학자를 비롯한 연암의 글들을 김탁환이 입맛에 맞게 재해석하고 인용했다고 하여서,

우리가 그 진부함을 놓고는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의 한문해석능력과 필력을 놓고는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거다.

그동안은 비교대상이 없어서 느끼지 못하던 것이었고,

이제 주영숙이라는 비교대상이 나타나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김탁환은 탁월하다는 거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쯤되면 연암의 글들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싶을텐데,

주영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은 모두 한문이어서, 오류도 많고 문학적인 해석도 아니다.

솔직히 제대로 된 해석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고 얘기되어지고 있다.

 

암튼, 이쯤되면 번역자나 해석자라기보다는 편저자라고 봐야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원작의 느낌과는 많이 달라진다.

이건 바꾸어 얘기하면,

내가 김탁환의 소설들 속에서 연암을 비롯한 젊은 실학자의 그것을 만났다고 하여 시들해질 필요가 하등없다는 것이다.

연암은 연암이로되, 편저자가 김탁환이냐 주영숙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작품으로 얼마든지 거듭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영숙은 한글전용세대인 우리들을 위하여,

친절하게 전부 한글로 해석해 놓으려는 수고를 하였나 본데...

그래도 한문을 곁들어 의미가 간단명료해지는 경우에는 한문을 같이 적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의미가 모호할 뿐더러 자칫 가볍기까지 하다.

 

편저자 주영숙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장애인 문학상인 '곰두리문학상'을 받은 경력이 있어서 확인해 보니,

어렸을때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이다.

구태여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내가 일부러 찾아본 이유는 그니의 폭넓은 오지랖 때문이다.

다시말해, 다방면에 재주가 두루두루 출중하기 때문이다.

한 국문학 박사이면서 외래교수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다가,

한국화 화가이며,

전통공예가이며,

시조, 평론 등으로도 수준을 인정받은 문인이며,

시와 소설도 쓰는,

그야말로 다방면에 걸쳐 화려한 이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들머리에서,

'연암처럼 소설도 시도 그림도 시늉이나마 해봤으며ㆍㆍㆍㆍㆍㆍ'나자신'이 적임자' 라고 해서,

웬 자만(?)인가...했었는데,

후학으로써 막중한 임무라고 생각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력과 경력이 화려한 그니라면 가능도 하겠다.

 

암튼, 연암의 글들을 갖고 쓴 글이니...그의 글들 얘기를 좀 해야 겠다.

  그래서 위험한 것을 볼 수 없다. 위험하고 안 하고의 상황 판단은 오로지 귀로만 쏠려 있다. 귀가 벌벌 떨면서 마음을 두려움에 가두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을 고요하게 가지는 자는 귀나 눈에 얽매이지 않고, 귀나 눈을 믿는 자는 보고 들음이 자세하면 할수록 병이 된다는 이치를 알아차린 것이다.

  ㆍㆍㆍㆍㆍㆍ말에서 떨어졌다 하면 바로 강물 속이다. 그리 되면 나는 강물로 땅을 삼고, 강물로 옷을 삼으며, 강물로 몸을 삼고, 강물로 성정을 삼으리라. 이처럼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 나자, 비로소 내 귀에서는 강물소리가 사라졌다. 무려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너는 동안 조금도 걱정이 되질 않앗다. 마치 자연스레 앉았거나 누워 아무 거리낌도 없이 활동하는 것같이 여겨졌다.

ㆍㆍㆍㆍㆍㆍ

  소리와 빛은 바깥에 있는 사물이다. 그런데 이것이 항상 눈과 귀에 누를 끼쳐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방해한다. 하물며 인생이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저 강물보다 더 험하고 위태로운 곳이 많지 않던가. 보고 듣는 것이 오히려 병이 되질 않던가?

  나는 곧 나의 산속으로 돌아가서 또다시 집 앞 시냇물 소리를 들어보면서 시험해보리라. 그래서 자기 몸가짐을 교묘하게 꾸미고 스스로 자기의 총명함을 믿는 자들에게 경고하리라.「일야구도하기」(20~21쪽)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일야구도하기'가 처음이었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을 고요하게 가지는 자는 귀나 눈에 얽매이지 않고, 귀나 눈을 믿는 자는 보고 들음이 자세하면 할수록 병이 된다는 이치를 알아차린 것이다.' 하는 연암의 이러한 경계를 김탁환과 주영숙을 비교하면서 깨닫게 되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일야구도하기'를 읽으면서 의아하였던 것은,

'조선의 후기 실학자'로 분류되는 그에게서 '서경덕'의 그것과 같은 '성리학'적 사상의 근간이 느껴져서였었는데...

혹 내가 잘못 헤아린 것이 아닌가 했었는데, 주영숙도 책 끄뜨머리에 언급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미녀가 머리를 숙이면 부끄럽다는 것이고, 턱을 고이면 한(恨)을 나타내는 것이다. 혼자 있으면 생각에 잠긴 것, 눈썹을 찡그리면 수심에 빠진 것, 난간 아래 있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이며, 파초 밑에 앉았으면 꿈이 있다는 뜻이다. 만일 그녀가 서있기를 반듯이, 앉아 있기를 조각처럼 하지 않는다고 나무란다면 양귀비가 치통을 앓고 번희가 머리칼을 만진다고 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미인을 관찰해 보면 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고개를 나직이 숙이고 있으면 부끄러워한다는 표현이고, 턱을 고이고 있으면 뭔가 한스러워한다는 표현이고, 홀로 서 있으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표현이고, 눈썹을 찌푸리고 있으면 시름에 잠겨 있다는 표현이다. 뭔가를 기다린다면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뭔가를 바란다면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그녀더러 서 있는 자세가 재계하듯 깔끔하지 않다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소상같은 부동자세가 아니라고 나무란다면, 이는 양귀비더러 이를 앓는다고 꾸짖거나 번희더러 쪽을 감싸 쥐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사뿐대는 걸음걸이'를 요염하다고 희롱하거나 손바닥춤을 경쾌하다고 꾸짖는 것과 같은 격이다.(157~158쪽)

위의 것은 김탁환의 소설 중에 등장하였던 글이고, 밑의 것은 주영숙의 것이다.

한편의 한문으로 된 시를 갖고 번역한 것일텐데,

글쓴이의 필체와 개성에 따라 이렇게 다른 글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서 옮겨보았다.

 

연암 박지원이 형제들과 함께 밀랍으로 된 꽃을 만들어 판다는 건 어디선가 보았었다.

다른 형제는 부지런하고 재주가 좋아 그럭저럭이었는데,

연암은 재주가 다른 형제들만 못하여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고 했었는데, 근간이 되는 이런 글을 보니 반가웠다.

  촛농은 꽃잎이 되고 고라니 털은 꽃술이 되고 부들 꽃가루는 꽃술의 구슬이 되는데, '윤회화輪回花'라 부르지요. 왜 '윤회화'라 일컫느냐고요? 원래 나무에 붙어나게 마련인 꽃이 자기가 밀랍이 될 걸 어찌 알았겠으며, 밀랍은 벌집이 있기 마련인데 자기가 꽃이 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꽃잎 다섯장이 말려 있으면서 꽃술이 나와 있지 않은 '노전'과 꽃잎 석 장은 떨어지고 남은 두 장도 떨어지려 하나 꽃술만은 싱싱한 '원이'도 영락없이 진짜 매화입니다. 꽃잎 다섯 장이 벌어진 모습 또한 아주 자연스럽지요. 오직 땅에 박히지만 않았을 뿐 바로 자연의 정취를 볼 수 있지요. 황혼의 달 아래, 비록 그윽한 향기가 풍기는 것은 없지만, 가득히 눈 쌓인 산중에 옛 선비가 누워 있는 모습을 충분히 상상하고말고요.

 

  나는 그대에게 먼저 매화 한 가지를 팔아서 그 값을 정하고 싶소. 만약 가지가 가지답지 못하거나, 꽃이 꽃답지 못하거나, 꽃술이 꽃술답지 못하거나, 꽃술의 구슬이 구슬답지 못하거나, 상 위에 놓아도 빛이 나지 않거나, 촛불 아래서도 성긴 그림자가 생기지 않거나, 거문고와 짝지어도 기이한 흥취를 자아내지 않거나, 시에 넣어도 운치가 나지 않거나, 하나라도 이런 점이 있다면 영원히 마다하셔도 끝내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을 거요. 이만 줄이오.  .「매화를 파는 편지」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아무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묘비명을 잘쓴 묘비명의 달인이었다는 것은,

'문도'라고 불리울 정도로 글재주가 비상하니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정작 연암 자신의 묘비명은 부재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슬퍼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가 아니라 '사람이 너무 슬프면 눈물도 나오지 않고 그저 멍청해진다'처럼,

이렇게 슬픔 속에 마냥 침잠해 버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잠시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 '문도'라고 찬사가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슬픔 속에서도 즐거움을 길어올리고,

눈물을 유머와 해학으로 승화시킬 줄 안다.

 

  대체로 생각은 다 망상이요, 인연은 다 악연이다.

  생각하는 데서 인연이 맺어지고, 인연이 맺어지면 사귀게 되고, 사귀면 친해지고, 친하면 정이 붙고, 정이 붙으면 마침내는 이것이 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죽음이 '사춘'처럼 참혹하고 몽직처럼 공교로운 경우에는, 평생 서로 즐거워한 기억은 얼마 되지 않는데 마침내 재앙과 사망으로 고통이 혹독하여 뼈를 찔러대니, 이 어찌 망상과 악연이 합친 원업이 된 게 아니겠는가. 만약에 몽직과 애당초 모르는 사이였다면, 아무리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더라도 이렇지는 않았겠다. 이토록 마음이 아프고 참담한 지경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으리라.

  몽직이 나를 따라다니며 더불어 노닐었어도 사춘의 경우처럼 정이 깊거나 교분이 두텁지는 못했다. 그러나 달 밝은 저녁이나 함박눈 내린 밤이면 그는 문득 술을 많이 가지고 와서 거문고를 퉁기고 그림을 평론하며 흠뻑 취하곤 했었다. 나는 고요히 지내면서 이런 생활에 익숙해 있었는데, 가끔 달빛 아래를 거닐며 서글픈 생각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몽직이 와 있곤 하였다. 어쩌다 눈 내리는 날엔 문득 몽직이 생각났고, 문밖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면 정말로 몽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만이다.(61쪽)

 

 

  그런데 어찌 구태여 비슷하게 하려는가? 비슷한 것을 구하려 드는 것은 그 자체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하늘아래 존재하는 서로 같은 것을 말할 때 '꼭 닮았다'라 일컫고, 분별하기 어려운 것을 말할 때 '진짜에 아주 가깝다'라고 일컫는다. 대개 '(참)진'이라 말하거나 '(닮을)초'라고 말할 때에는 그 속에 '(거짓)가'와 '(다를)이'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늘 아래 이해하긴 어려워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전혀 다르면서도 서로 비슷한 것이 있다. 언어가 달라도 통역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있고, 한자의 글자체가 달라도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외형은 서로 다르지만 내용은 서로 같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음이 비슷한 것'은 내면의 의도요, '외형이 비슷한 것'은 피상적인 겉모습이라 하겠다.(188쪽)

 

그러니 '창신(새롭게 창조함)'한답시고 재주 부릴 바엔 차라리 '법고(옛글을 본받음)'를 하다가 고루해지는 편이 낫다.

                                                                                        - 박제가(1750~1805)의 초기 문집 「초정집」서문

 

'창신'과 '법고'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학문이 아니어도...글을 읽고 쓰는사람이면,

아니면 하루 하루 새롭게 나아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두고 두고 되새길 만하다.

창조라는 것은 모름지기,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방에서 출발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연암 박지원과 편저자 주영숙이 가장 잘 어울린다 싶었던 장르는 '시편'이었다.

다른 장르의 경우에는,

연암 박지원은 남성 화자인데 반해 주영숙은 여성의 필치를 그대로 살려내고 있어서 살짝 겉도는 느낌이라면,

시편의 경우는,

사설시조의 형식을 따르느라 그랬는지 어법이나 필치 등 그니 특유의 어조를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데,

그게 오히려 돋보인다.

 

 

(이 그림도 주영숙의 것이다.)

 

 

유춘동

 

꽃은 흡사 가려는 손 억지로 잡아두는 것 같아라

불지 말라고 비바람더러 당부했다가 되레 꾸짖음만 받았다오,

두어라,

꽃꽂이 익힌 이래로

이 골짝 삼백 예순 날이 모두 다 봄이거늘

  (시편, 219쪽)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나는 매양 모르겠네. 소리란 똑같이 입에서 나오는데, 즐거우면 어째서 웃음이 되고, 슬프면 어째서 울음이 되는지.

 

  어쩌면 웃고 우는 이 두 가지는 억지로는 되는 게 아니라, 감정이 극에 달해야만 우러나는 게 아닐지. 나는 모르겠네, 이른바 정이란 어떤 모양이건대 생각만 하면 내 코끝을 시리게 하는지. 그래도 모르겠네, 눈물이란 무슨 물이건대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지. 아아, 남이 가르쳐주어야만 울 수 있다면 나는 으레 부끄럼에 겨워 소리도 못 내겠지. 아하, 이제야 알았다.

 

  이른바 그렁그렁 이 눈물이란 배워서는 만들 수 없다는 걸.

         - 「사장士章 애사哀辭」중에서(220쪽)

난 눈물이 많다.

그냥 조금만 슬프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처음에는 그냥 놀리기만 하던 직원들이 언제부턴가 내가 울때마다 벌금을 받기에 이르렀고,

그 벌금이 액수로가 아니라, 횟수로 집을 팔아야 할 정도라고 하여 '집.파.녀'라는 별명을 하사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벌금을 감당하기 버겁다거나, 놀림을 받는게 창피하다고 하여서 눈물을 숨길 수도 없다.

다시말해 울고 웃는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난 눈물이 그렁그렁에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콧물이 '뚝뚝~'을 들겠다.

코끝이 시리도록 콧물을 뚝뚝 떨구고 우는 건 정말로 억지로 되는게 아니다.

 

억지로 웃는 것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면 예쁘겠다고 하였더니,

일부러 이를 드러내고 웃으려 애쓰는 친구가 있다.

쉽지 않은 일일텐데, 나를 위해 노력해주는 그 친구가 마냥 고맙다.

 

친구의 그런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한마디 귀뜸을 한다면 말이다.

눈물이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어떤 눈물은 마음 한켠이 저릿 저릿 아프기도 하지만,

그럴때는 울면 나무들 나이테 생기는 것 마냥 마음에도 결이 생길 것 같았는데,

어떤 눈물은 단지 감동적이어서 흐르기도 한다는 거다.

그런 눈물은 마음의 찌든 때를 짝 쓸어가 버리는 것이 카타르시스라 할 수 있겠다.

아프게 울거나 웃으면 상처로 남지만,

때론 울거나 웃고나면 시원한 것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감정 표현을 남발할 필요도 없지만, 감정 표현에 인색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타인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 안에 들어와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감정을 드러내 말하거나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이상,

내 속을 알지 못한다.

입장 바꾸어,

타인의 속도 내가 미루어 짐작하는게 엉뚱한 오해이거나 착각인 경우가 있다.

엉뚱한 오해나 착각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는것인데, 어째 우리는 어색한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리움

 

저물녘 용수산에 올라 그대를 기다렸는데 오시지 않더이다.

강물만 동편에서 흘러와 어디론가 흘러갔습니다.

밤이 깊어 달빛 비친 강물에 배를 띄워 돌아와 보니,

정자 아래 고목나무가 하얗게 사람처럼 서 있어서

나는 또 그대가 먼저 와 계시는 줄로 착각했다오.(220쪽)

그리움이란 시를 보게 되면,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리워도 그립다 말을 할 수 있기를 한가,

흐르는 강물만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강물에 비친 달 그림자만 좇아야 하니 말이다.

 

 

필운대의 꽃구경

 

나비가 꽃을 놀린다고 하필 극성이라 나무라는가,

도리어 나비 따라 꽃을 만나러 달려가는 사람들은 어쩌고

아지랑이 노는 저 너머에 한낮의 봄이 푸릇푸릇

자줏빛 언덕머리 우물가에선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에 먼지가 자욱하고

 

새 울음 서로 다른 거야 제멋대로라도

이곳저곳에 꽃이 피는 건 하늘의 뜻이라네.

이름난 뜰에 앉아 둘러보니 소년 머리 하나 없고

서글픈 백발노인들은 작년과 또 다르네.(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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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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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손석희를 듣는데, '말.말.말'코너에서 '검붕'과 '멘붕'이라는 말이 나왔다.

아나운서 출신의 그가 '검붕'과 '멘붕'을 버벅거리며 발음한 후,

검붕은 '검찰붕괴', 멘붕은 '멘탈붕괴'하고 풀어서 얘기하는걸 들으면서 좀 아이러니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존경하는 분에게 "멘.붕.임~--;" 하는 문자를 보냈을때가 떠올랐다.

대번에

"멘홀 속에 빠졌다구?"하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멘홀이 붕괴되어 그 속에 빠진 위험천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셨던 게다.

'말'이란 건 생각이나 느낌을 누군가 대상에게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인데,

'멘.붕.'이 '멘탈 붕괴'의 줄임말인지, '멘홀 붕괴'의 줄임말인지...를 놓고,

내가 그분과 어떤 사회적인 약속도 하지 않은 상태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혼자 마음 속에 담아 두고만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우리는 내 생각이나 느낌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타내어 표현하고 전달하게 된다.

이때, 나와 그 누군가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가 다르다면,

사회적 합의나 약속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줄임말이나 은어, 속어 따위로 인하여...

'말'이 생각이나 느낌을 누군가에게 나타내어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라는 이 책은,

내 생각이나 느낌을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적절한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교감과 소통에 관한 책이라고 하고 싶고,

교감과 소통이라고 할 것 같으면,

우리 삶을 관통하는 전반적인 화두이기도 하지만,

교감과 소통이 필요한 제일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라고 하지만 말 안하고 눈빛만으론 아무것도 알 수없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 책이라고 되어 있지만,

인생 지침서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고,

사랑에 관한 명언집이나 아포리즘이라고 봐도 좋겠다, ㅋ~.

 

이 책은 나(=자신)의 언어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신은 개구리다.

당신의 부모님도 개구리다.

개구리는 개구리다운 생각과 언어를 반복한다.

개구리에겐 꿈도 없을 뿐더러 개구리 언어를 고집한다.

개구리가 공주나 왕자가 되기 위해선 사랑의 입맞춤이 필요하다.

공주와 왕자는 공주와 왕자의 언어를 사용한다.

 

내가 이 책을 사랑에 관한 명언집이나 아포리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한 이유는,

개구리가 공주나 왕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걸로 '사랑의 입맞춤' 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개구리에게 사랑의 입맞춤은, 공주나 왕자로 변신하는 열쇠다. 이 입맞춤 없이는 자신의 온전한 제 모습을 되찾기란 불가능하다. 강렬한 사랑에 빠져야 우리는 고양된다.

  사랑이란 단순히 어떤 멋진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빠지면 웃음이 많아지고, 여유와 너그러움이 생기고,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지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기꺼이 자기 헌신을 감수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자신이 먼저 사랑스럽게 변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도 스스로가 사랑스럽게 변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에 빠지고 싶은 진짜 이유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면 자기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이 신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스스로 매혹적인 사람으로 변한다.(16쪽)

 

이 부분을 곱씹어보면,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분홍분홍*^^*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는데도 분홍분홍*^^*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란다.

'기꺼이'나 '스스로'라는 단어만으로도 벅찬데...

이 분홍분홍*^^*한 신비한 에너지가 자기 자신에게서 생겨난다는 걸 깨닫게 되면 얼마나 황홀할까?

 

우리는 사랑이 주는 변화의 초점을 '나' 아닌 '상대방'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상대방을 사랑하는 주체는 '나'인 것이다.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나에게 웃음이 많아지고,

나에게 여유와 너그러움이 생기고,

나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지고,

내가 미래를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내가 기꺼이 자기헌신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은 상대방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사랑의 주체가 상대방 자신이라는 얘기이다.

 

이렇듯 사랑을 하는 주체가 '나'인 것이 중요한 이유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언어로 표현할때,기계적으로 정리해버리거나, 통속적인 일상어로 속화시키거나, 감상적 도취와 과장된 자기미화의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자신이 실질적으로 느낀 정서를 최대한 그대로 표현하는 실질언어로 표현할때야 비로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겪은 경험의 실질적 내용 그대로를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모습은 자신감 있어 보이는 미남이지만, 심층태는 '부끄러움을 심하게 타는 신경증 환자'일 수 있다.ㆍㆍㆍㆍㆍㆍ특히 우리가 어떤 사람을 솔직하게 평가할 때는 그가 어떤 생각과 언어로 행동하느냐를 잣대로 삼아 판단한다. 인간은 언어로 의식하고 사유하며, 심지어 무의식조차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어야말로 한 사람의 사유의 실질적인 작동방식이어서, 아무리 예쁜 미인일지라도 속악하고 천한 문법을 사용하면 속악하고 천한 여자로 읽힌다. 아무리 점잖은 교수일지라도 강의 내용이 식상하고 게으르다면 실질적으로는 식상하고 게으른 식충이로 여겨진다.

  한사람이 사용하는 말투, 억양과 음성, 문장구조와 내용은, 그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고 만나는 가장 실질적인 방식이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의 실질태다. 그의 직업, 나이, 재산, 학벌과 무관하게, 그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실질적으로는 개 같은 놈이거나 개만도 못한 놈이거나, 그저 평범한 사람이거나 존경할 만한 어른 등등으로 가름된다.

  그럼에도 평소 사람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일상언어의 실질태는 개구리 언어다.(23~24쪽)

 

  의미가 대충 비슷하다고 이제까지 관용적으로 관습적으로 상투적으로 써 왔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문장 길이나 문법구조뿐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태도, 가령 어휘나 악센트나 억양까지도 새롭게 다듬고 바뀌어야 한다. 말투와 자세까지 변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언어 사용의 실질적인 변화 없이 사람이 변하는 경우는 없으며, 사람이 변하면 그 사람의 언어 또한 변한다. 내가 변하지 않고 문장 기술만 훈련하는 것은 글쓰기 공부가 아니다. 이제까지의 나와는 다른 새로운 나로서의 모험을 시작하는 경험이어야 비로소 '창작으로서의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30쪽)

그런 의미에서...'세살 버릇 여른까지 간다'는 속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의 언어를, 말투와 자세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쉽지 않은 걸 바꾸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사랑에 빠져서...

누군가를 사랑할 때면 자기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그 신비한 에너지를 직접 경험해 보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것이 '글쓰기'를 얘기하면서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이유이고,

글쓰기 책이지만, 인생지침서나 사랑에 관한 명언집 내지는 아포리즘이라고 불리워도 좋은 이유이겠다.

 집필과 독서는 참으로 독특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말하는 사람은 혼자 골방에 앉아 쓰고, 듣고자 하는 사람 역시 혼자 자기 골방에 앉아 읽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스스로 귀 기울임으로써 모든 사람이 귀 기울이도록 말하는 길이 열렸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만나는 길이 열렸다. 지금 말하면서 먼 미래에게 전하는 길이 열렸고, 먼 훗날에도 귀만 기울이면 오래전에 살았던 이의 생각을 알아채는 길이 열렸다.

  가히 놀라운 충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간관계란, 멀리 있어도 말이 맞으면 가깝고, 가까이 있어도 말이 어긋나면 멀다. 만나도 말이 깊이 통하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 것이고, 말이 깊이 통하거나 서로를 자극하면 떨어져 있어도 만난 것과 같은 효과가 일어난다.

  그런데 책이라고 하는 물건이 시공간의 제약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서로 연결시켜 놓았다.(38쪽)

이 책 전체를 통틀어서 밑줄 긋고 별표 꽁약~* 그려주고 싶은 구절을 분홍색 바탕체로 바꿔보았다.

집필과 독서가 없었다면, 바꾸어 말하면 글을 쓰고 읽을 줄 몰랐다면...

사람들은 대화상대를 찾아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나가야 했을 것이다.

이곳 알라딘서재도 마찬가지이다.

책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이 글을 쓰기도 하고 쓴 글을 읽기도 하고,

자기집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넷 상을 오가며 생각을 주고받는다.

쓰고 읽기- 고급스럽게 표현하면 집필과 독서-를 통해서 성향과 생각을 파악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소통은 중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소통이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바꾸어 애기하면, 그게 누구든지 간에... 자기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을 향하여선 마음을 열어갖게 된다는 말도 될테고 말이다.

  언어는 '문자언어, 출판언어, 창작언어' 등에 의해 보다 세련되게 정련되는 역사를 걸어 왔다. 개구리가 '입말언어, 일상언어, 일반언어'로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공주 왕자의 언어는 '출판언어, 창작언어'를 통해 자신의 언어 솜씨를 업그레이드 하는 언어를 가리킨다. 공주다운, 왕자다운 언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독서를 통해 '출판언어, 창작언어'를 자기 것으로 육화하는 동시에, 실질적 정직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적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아마도 우선은 수다를 떨거나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보는 시간부터 줄여야 한다. 뉴스나 신문의 대부분이 관습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접촉이 제로 상태일수록 좋다. 반면 좋은 책을 찾아 읽는 독서 시간과 자신만의 문장을 찾아 헤매는 습작시간을 극대화해야 한다. 글쓰기 솜씨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선택을 얼마나 고집스럽게 수행하느냐, 얼마나 기꺼이 즐겁게 이어 가느냐 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온다.(52~53쪽)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은...

뉴스나 신문의 대부분이 관습 언어를 시용하기 때문에 접촉을 덜하면 덜 할수록 좋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뉴스나 신문 같은것은 문자언어 또는 출판언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관습언어'로 분류된다는 것이 특이했다.

 

만약에 나에게 이 책을 읽은 느낌이나 소감을 정리해 보라고 한다면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아무리 개떡이나 콩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분홍분홍*^^*해 지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개구리 언어를 접고 '사랑의 입맞춤'을 통하여 왕자나 공주로 거듭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사람이 지금껏 개구리 언어를 구사하였던 사람이었다면,

일부러 사랑의 입맞춤 따위를 해서 왕자나 공주의 언어로 거듭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그냥 편안하게...앞으로도 맘 편히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싶다.

'그래서'또는 '그렇기때문에'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건 참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또는 '있는그대로'또는 '본성'그대로'라는 허울 아래 이렇게 저렇게 바꾸려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고 기꺼이 사랑하고 싶다.

때문에 나의 이런 발언은 이 책의 취지랑은 좀 다른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게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고 삶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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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2-01 07:35   좋아요 1 | URL
저는 신문을 끊은 지 열 해가 넘었고, 방송을 끊은 지 스무 해가 넘었어요.
그저 들여다볼 적에는 저 스스로 길들여지지만,
숲을 바라보며 살아가니 늘 숲내음을 사랑할 말이 샘솟더라구요.

양철나무꾼 마음을 빛낼 좋은 모습을 들여다보시기를 빌어요.
'책'에서도, 이런저런 자잘한 책보다는
'삶을 사랑스레 북돋울 만한' 알맹이들을 기쁘게 찾아서
마음을 빛내는 말을 누려 보셔요.

차좋아 2012-12-03 12:32   좋아요 1 | URL
최근 알라딘 서재를 다시 찾아왔는데 길었던 잠행 탓인지 조금 어색하여 이웃님들 서재 마실 다니며 며칠 서성였어요. ㅎㅎ
그래서 제 마음도 조금은 분홍분홍 ^^*

감은빛 2012-12-04 13:57   좋아요 1 | URL
역시 훌륭한 소개글이네요!
관심 갖고 있던 책이예요.
분홍분홍 *^^* 은 어떤 상태일까요?
일단 먼저 사랑에 빠져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