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다.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라는게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옛것이라고 하여 고루하거나 진부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깊이있는 사고(思考)를 요하면서도 품격을 두루 갖춘 것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난 옛날에 도스토옙스키 옹의 책을 좀 읽다가 넘 어려워서,

고전은 그렇게 다 어렵고 재미없는건 줄 알았었다는~--;

물론 세월이 흐르고,

나도 생각이 여물고,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삶을 해석하는 관점 같은 것들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실은, '안나 까레니나'를 그냥 읽게 되지는 않았었다.

어쩌다가 읽게된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가 계기가 되어 고전문학에 feel이 제대로 꽂혀 주셨다.
'김의기'와 '안나 카레리나'를 읽으면서 느끼는건,

고전문학 중에는 중고등학생들이 필독서로 읽기엔 쉽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거다.

나처럼 반 평생을 산 사람의 눈으로 전후좌우 사정을 고려하여도 어림짐작하게 되는 것들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개중에는 번역까지 난해하여 우리말로 적혀있어도 무슨 뜻인지 못 알아먹겠는 것도 있더라~--;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로마서 12:1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1부/13쪽/1줄)

 

  

 

반면,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에 나온 이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내가 갚을 것이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누구의 번역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두 번역을 놓고 봤을 때, 같은 내용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난 고민을 하다가 '로마서 12장 19절'을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여러분이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이 나에게 있으니 내가 갚을 것이라.'"

라고 되어있다.

번역의 잘, 잘못을 떠나서 적어도 원수나 복수를 갚는 주체가 '주님'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는데,

작가의 의도가 그런 것인지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안나카레니나를 읽으면서 '톨스토이'가 시대를 넘나드는 거장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의 부단한 노력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대의 사조나 조류, 유행에 대해서 폭넓고 깊이있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뿐더러, 그걸 그의 작품 곳곳에 녹여냈는데...그것이 요즘의 삶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올드하거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였는지, 달아놓은 각주를 보면서 였는지...기억이 가물가물한데...러시아어가 재밌게 느껴져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키티는 안나의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산문적인 용모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러시아어에서 '시적'이라는 말은 '예술적인'이나 '아름다운'의 뜻을, '산문적'이라는 말은 '일상적이고 범속한'이나 '무미건조한'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1권/162쪽)

 

레빈이 이런 상상을 하는 부분도 재밌다.

그럼 손님이 물을 거야. 어떻게 이런 일에 그토록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까? 남편이 흥미를 느끼는 일이라면 저도 흥미를 느끼게 돼요.(212쪽)

단순히 레빈의 그것이라고 생각했을때는, 좀 권위주의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 상대방이 흥미를 느끼는 일에 같이 흥미를 느끼게 되는 그런 사랑이라면, 참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이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
 김의기 지음 / 다른세상 / 2013년 1월

 

 

 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겹쳐 읽은 책은, 이택광의 '마녀프레임'이다.

이 책은 이웃 a님의 서재에서 보고 혹하여 읽게 되었는데 '동종요법'이나 '고대의학'관련된 장르소설을 좀 읽어줬던 터라 그랬는지 어쨌는지, 책의 내용이 너무 가볍고 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암튼~--;

  마녀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존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히브리 신화에도 마녀는 분명히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마법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다. 즉 날씨나 출산 또는 의술처럼 생존과 밀접한 일들을 마녀가 관장했다.히브리어로 마녀는 므카세파인데 이 말은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특별히 '여성'이라는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마녀하면 떠오르는 섹스와 관련한 뉘앙스도 없다. 대체로 마법은 병을 고치거나 기후를 변하게 하는 요술이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대개 여신 숭배에서 기원했다.(28쪽)

 

마녀사냥이란 "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라는 문구가 번역 문제에서 의미적 혼란 때문에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발생한 것이었다.ㆍㆍㆍㆍㆍㆍ마법사(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는 말은 이렇게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반해서 마법을 사용한 경우에 처벌하라는 말이었다. 아이를 납치하거나 질병을 퍼뜨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다 오늘날로 보면, 의학과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진 존재들이 고대의 마법사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29쪽)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해 본 것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이라는 '틀'은 '예외'를 만들고 약자, 소수자, 희생양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과거에는 그것이 마녀였고, 여성이었고, 유태인이었고, 빨갱이였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무슬림이고 동성애자고 이주노동자의모습으로 현신하고 있는 것이란다.

 

프레임은 어찌보면 군중심리 같은 것이다.

교집합, 여집합, 합집합의 관계에 따라...마녀로 지목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마녀를 지목해야 하고,

이런 상호감시체계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이 '인터넷'이다.

 

 

 

 

 마녀 프레임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나영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그리고, 그런 군중심리를 가장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연예인이 아닐까 싶지만, 잘못 틀어지면 '타.진.요'같은 인터넷 카페가 생겨나기도 하고 눈덩이나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곳이 연예계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과 호기심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된 책, 1박2일 '나영석'PD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정함'이다. 집중과 편애는 한 끗 차이다. 공정함을 잃는 순간 오해가 만들어지고 팀워크는 깨진다. 누군가를 편애해서 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받을 기량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너도 저 기회가 탐이 난다면 최소한 패스를 받을 기량 정도는 스스로 터득해서 갖춰야 한다. 그것만 갖춰진다면 언제라도 너에게 공을 주겠다. 이런 식이다. 어쩌면 야박해 보일 수 있는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호동이 형이 철저하게 유지했던 그 기회에 대한 '공정함'때문이다. 멤버들은 누군가를 질투하기보단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빠른 길임을 알게 된다. 한 예로, <1박 2일>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운 사람은 이수근이다.(143~144쪽)

 

심각하지 않게 설렁설렁 넘겨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그런 책에서 다른 어떤 책에서 깨달을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예전에 한번 김C와 술을 먹다가 인간은 대체 몇 살쯤에 철이 드는가, 라는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잇다. 김C의 대답은 이랬다. 사람은 말이야.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 30대가 되면 마흔이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근데 너는 철들었니? 아니, 하고 나는 대답한다. ...결론은 이거야.87살쯤 먹고 죽기 직전에 드디어 깨닫는 거지. 아들딸 주변에 모아놓고 숨은 넘어가는데 창피해서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거지. '아아....철든다는 건 없구나.' 이렇게 말이야. 최종결 결론을 내리고 저세상으로.

  흠. 묘하게 설득력 있는 애기. 과연 그럴듯하다. 철이 든다는 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철이 든 척.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어른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실을 직시하고 저는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 김C는 가능하면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177~178쪽)

암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날씨가 변덕스럽다거나,

(4월에 눈이 내린게 51년만에 있는 일이란다, ㅋ~.)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하여 나 또한 변덕스럽게 책 한권 읽지않고...

어쨌거나 이 봄을 건너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뭔가를 읽기는 꾸준히 읽었는데 단지 기록으로 남길 시간이 없었을 뿐이고,

내가 열심히 읽는데도 불구하고 신간은 새록새록 나와주고 계신다는 거다.

'책.탑.타.파.'를 고려하여 당분간은 책을 구입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지만...불끈~!!!

이 책 꼭 한권만 구입한 뒤로 결심은 잠시 유보다~--;

 

 

 

 

 

 

 

 

 

 로스트 라이트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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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04-12 13:18   좋아요 1 | URL
제 경우엔 러시아작가들 중엔 도스토예프스키 한 사람만 편애하고 톨스토이 이 할배는 어려서부터 정이 안가서 유명하다는 소리만 풍문으로 들었어요. 전 당분간 해리보슈 형님하곤 결별. 해리 홀레 형님하고 새 교분을 맺는 중이어서 ㅎㅎ 이 캐릭터 너무 어썸합니다.

2013-04-1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9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여전히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아직 덜깬 눈을 비비고는,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이런저런 이슈를 반찬 삼아 밥을 우겨넣다가는 어느 대목에서 목에 걸린 듯 '케겍'거린다. 눈물을 눌러 삼키느라 맨밥을 서둘러 눌러 삼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며칠전에는 쌍용차와 관련 인도 마힌드라 경영진이 제 2의 론스타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불거져 애를 태우더니,

오늘 새벽엔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되어 있던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천막이 기습 철거되고, 거기에 화단을 만들었단다.

분향소 천막이 철거된 명분이 시민들이 다니는 인도를 점유해서라고 하는데, 그럼 그 자리에 설치된 화단은 시민들이 짓밟고 다녀도 된다는 말인가, 끙~=3=3=3

내가 이 책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러니까 '시선집중'의 <토요일에 만난 사람'> 코너가 있을 당시,

누군가가 나와 손석희와 얘기를 풀어나가는데, 그게 너무 군더더기 없는것이 진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였다.

유명 만화가라는데,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끼'라는 작품으로 이미 이름을 날렸다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암튼, 그가 하는 얘기 하나하나가 다 솔깃했는데...

그는 몸으로 부딪쳐 경험한 것을 직접 만화로 그려내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노숙을 밥먹듯 한것이라든지, 허영만 문하생으로 들어가기 까지의 고생 과정...그리고 들어가서, 살아남기 까지의 과정을 하나 하나 차근 차근 밟아 나간다.

예전에 피카소가 왜 유명한 화가인지 모르겠었을 때가 있었다. 인상파 화가라 불리우는 그의 어떤 그림들을 놓고 봤을때 아이디어는 몰라도 비슷하게 흉내낼 수는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의 사실주의 작품을 봤을때 '흡~!'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기본이 제대로 됐기 때문에 다른 어떤 그림이든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생의 '윤태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이 만화를 단숨에 2권까지 읽은 지금...

난 다른 이유에서 '킹왕짱' 이 책을  재밌고 그를 멋지다고 설레발을 칠 수 있겠다.

 

처음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는 과정은 차라리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멜로 드라마다.

 

기재가 부족하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 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것보다는,

열심히 하지 않은 쪽을 택하기로 하는데...이때부터 좀 멋지다, ㅋ~.

 

그러면서 바둑을 포기하면서 들고나온 유일한 재산은 집중력이란 말을 한다.

생각이 번져가는 것은 잡념에 빠졌다는 뜻이란다.

 

이 만화책에서 또 나오는 개념.

솔직한게 진실된 거라 생각하는 착각

변명이나 핑계를 위해 사람은 얼마든지 솔직할 수 있다.

진실과는 별개로.

 

암튼, 어찌어찌하여...인턴 사원 딱지를 떼고,

신입사원으로 살아 남은 이들을 데리고 간 곳이 이곳이다.

 

 

 

근로자로 산다는 것.

버틴다는 것.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

이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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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4-05 22:27   좋아요 1 | URL
다들 '살아남기'보다 '즐겁게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알케 2013-04-05 23:35   좋아요 1 | URL
오늘 자 연재 미생...울컥. 저도 겪어 본 상황이라..윤태호는 정말.

saint236 2013-04-06 12:05   좋아요 0 | URL
흠...꼭 구매해야할 것 같네요.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
김도언 지음 / 이른아침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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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라는 제목을 보고 혹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라는 제목이 주는 뉘앙스와 여운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잘 웃지 않는 소년의 세월이 흐른 후의 모습 말이다.

지금은 잘 웃는 청ㆍ장년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고,

여전히 잘 웃지 않는 청ㆍ장년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산술적인 통계치가 아니라, 한사람의 세월의 흔적을 엿보고 싶었나 보다.

 월요일, 컨디션이 지나치게 좋다. 이럴 때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데, 친절하고 상냥한 것처럼 무서운 것도 없는 거다. 애들처럼 앙앙거리지도 말아야 한다. 어딜 가나 조숙하고 어른스럽다는 이야길 들으며 자랐다. 그런 소릴 듣는 비결은 간단하다. 웃지 않으니까 그런 말들을 하더라. 나는 정말 잘 웃지 않는 아이였고 소년이었다. 웃을 일이 좀체 없었던 거다. 나는 그래서 일찌감치, 행복하길 바라는 꿈이랑 꾸지 말고, 덜 불행하기만을 바라자, 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들의 행복을 빼앗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욕심도 없다. 그러니, 내 앞에선 그냥 마음 놓고 무장해제하시라. 긴장도 하지 마시라. 긴장은 내가 하겠다.(112쪽)

 

나는 또 다른 자칭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던 사람'을 안다.

항상 '웃는 돼지'과의 눈꼬리가 내려오고 입꼬리가 올라간 근간의 표정으로 미루어,

'잘 웃지 않는 소년'의 흔적을 읽을 수 없었는데...

언젠가 우연하게 엿본 그의 무장해제한 표정이란 것이,

돌아선 사람의 뒷모습처럼 쓸쓸한 그런 것이어서 놀라웠었다.

 

오늘 또 다른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던 그 사람과 사석원의 '서울연가'를 놓고 얘기를 나눴다.

사석원의 호가 뭔지 아냐고 묻길래,

나는,

"몰라여, 날건달? 아님 한량인가?

 나, 요번 책 읽고 이 사람 좀 별로로 바뀌었음~--; "

하고 시큰둥하게 대구했다.

사석원이 누구인가?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좋아 죽겠다고 설레발이었기에, 그는 나의 이런 변화가 의외였나 보다.

"원래 이렇게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은 잡다해서 농도랄까...그런게 없지.

 먼젓번 '꽃 먹는 당나귀' 참 멋졌는데..."

라며 애써 내게 호응을 구하려 들었다.

실은 난 요번 글의 농도를 가지고 얘기를 하는게 아니었다.

자신이 날건달이고 최고의 한량이고 최대의 수혜자이면서도,

자기가 기득권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왠지 밉상이었다.

괜히 주류이면서 아웃사이더인척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강남의 술집이나 딸내미의 옷가게 같은 얘기들은 설렁설렁 풀어놓는 것 같지만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들이니 말이다.

그의 그림을 놓고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 입네, 어쩌네...하던 사람들을 향하여 툴툴거리고 항변하던 사람들이 그가 아니고, 그의 주변 사람들라고 하니 망정이지 그였다면 좀 민망할 뻔 했다.

내가 여전히 시큰둥하자, 또 다른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던 그 사람은 뭔가 아쉬운듯,

또는 사석원에 대한 그의 호의는 변할 수 없는 것인지 '화가는 그림으로 얘기해야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림으로써 화가의 시선을 사실인양 반영시킬 수 있고,

나는 보는 관점을 개입시킴으로써 얼마든지 내 멋대로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선 즉,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 진실의 어느 일부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그림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진실을 반영시키지 못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그제서야 눈치챘는지, 또 다른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던 사람은 그제서야,

"누구나 폼 잡고 말하면 그럴듯하지만, 속속들이 알고 나면 시들한게 사람이지...

 사람이 한 측면으로 판단하면 다른 면들은 실망 투성이..." 
이런 알쏭달쏭한 말을 건넨다.

 

 

서론이 길었다.

'김도언'의 이 책'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를 읽으면서 느낀 내 느낌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쯤되겠다.

작가는 글로 얘기해야 한다.

암, 그래야 하지. 그래야 하고 말고...

두말하면 잔소리지.

나는 그의 이 책을 통해서 글쓰는 사람들의 진실의 전부를 봤다고 감히 단언한다.

이만하면 됐다.

 

실은 나는 이 책의 김도언이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른바 뇌졸중으로 말을 잃었다는 소설가의 씁쓸한 뒷얘기(아니, 퇴락한 젊은 시절의 얘기라고 해야하나?)를 좀 알고 있는지라, 그의 이런 성찰이 와닿는건지도 모르겠다.

뇌졸중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소설가의 우울에 대한 생각은 되도록 짧게 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위대한 진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당신들도 알겠지만 진화를 설명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드물다. 차라리 그것은 불가능하다.(78쪽)

그의 다음 글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언젠가 읽었던 이정록 시인의 '편애'의 심정과도 일맥상통이다.

이러니 그에게서 '진실 또는 진심의 전부'를 봤다고 할 수밖에~--;

나의 경우, 타인에게 호의를 표시하는 것이 언제인가부터 매우 불편해졌다. 호감의 표현이 어떤 관계의 신호 같은 게 되어 지극히 객관적이었던 감정 선에 변화를 일으킬까 두려운 것이다. 이것은 부모와 형제 같은 육친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다만 관습으로서의 예의만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아무도 주의 깊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메마르고 무정한 사막주의자이며 권태주의자다. 이건 자랑도 아니고 다만 장애일 뿐. 기적적으로 전폭적인 대상이 나타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인가.(84쪽)

 

 ㆍㆍㆍㆍㆍㆍ가슴속에 피멍이 들었을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방법을 모르기에, 수습은 영영 요원하다. 이 상처를 어쩔 것인가. 이런 사고를 당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훈련 받은 적 없기에 이 가족은 늘 아프다.ㆍㆍㆍㆍㆍㆍ나는 그녀가 믿는 신에게 단 한 번도 머리를 조아리며 갈구한 적이 없다. 잘나지도 않고, 따로 믿는 것도 없으면서 그랬다. 이것이 나의 우매함이며 나의 가련함이다.(119쪽)

그는 또,

플로베르의 대표작 <보바리 부인>에 대해, '여주인공의 눈동자 색깔이 작품 안에서 일치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작품을 비판하는 장면'을 인용한다. 그러면서 줄리안 반즈는 말한다.

평론가가 여자 주인공의 눈동자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찾아내느라 작품을 즐기지 못하는 사이, 오히려 독자들은 작품에 더욱 즐겁게 몰입하면서 작품이 전해주는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학작품과 새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조롱에 가두지 말고 공중에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그 생동하는 존재감의 비밀이 비로소 드러난다는 점에서.(86쪽)

이렇게 문장속의 오탈자를 잡아내느라고, 문학작품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꼬집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러고 오탈자를 잡아내고 앉아있다.

왜냐고? 책을 통틀어 딱 하나여서 신기하여서..., ㅋ~.

 

우리는 내는(리) 비(80쪽)

 

암튼, 이 책이 좋았던 것은...

글쓰는 사람들이 글 외의 것들을 향하여 데면데면한 면모를 보이는 것이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고,

작가들은 어떤 고민과 고뇌를 가지고 사는지 엿볼 수 있었으며,

그들은 주변에 어떤 이들을 친구로 두고 사는지,

따위의 자잘한 호기심을 해갈할 수 있어서 였으나,

무엇보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이것인가 보다.

어이없게도 어떤 작가들은 적막을 빌리기도 한다. 그의 내부에서는 적막이 태어나지 않으므로 할 수 없이 적막을 어디선가 빌려오는 것이다. 그것은 가짜 적막이다. 그의 곁에는 사람들이 흘러넘친다. 그러면서 그는 끝없이 외롭다고 하소연한다. 자신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고 스스로 맹렬하게 주문을 건다. 그의 적막은 인사도 잘하고 사회성도 밝은 이상한 적막이다. <백치 아다다>의 소설가 계용묵이 죽었을 때 그의 빈소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성격이 얼마나 까탈스러웠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런 자를 좋아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옆에 잘 가려고 하지 않고 거리를 두려는 자.(228~229쪽)

아무리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고 하더라도,

글 외의 것들을 향하여 데면데면한 면모를 보이더라도,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흠뻑 애정해 줄 수 있겠다.

처음 소설을 쓸 때 원고지에 썼지. 좋아하는 펜으로 원고지에 정성껏 소설을 썼지. 문장을 만들고 고통과 쾌락을 얻었지. 원고지는 부드럽고 깊었지. 그런 시절이 있었지. 어떤 날은,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원고지를 찢고 다시 쓰기도 했지.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니라 글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나는 고집이 셌지. 그래서 아름답고 가난했지. 나는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에 안도했지. 나는 헌책을 좋아하는 마음처럼 너의 작은 목소리를 좋아했지. 나는 골목과 그늘이 좋았지. 하지만 그곳에 너를 초대하지는 않았지.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부터 멀리 도망쳤지. 골목에서 마주치는 노인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묘사했지. 그들의 근육 없는 걱정을 궁금해 했지. 낮에는 방에 엎드려 숨어 있곤 했지. 저녁에는 조금 움직이며 달을 바라보았지. 밤이 깊으면 소설을 썼지. 직업이 없었지. 애인도 없고 살의도 없고 금기도 없었지. 소설을 쓸 땐 착하지 않은 상상을 했지. 내가 사랑하는 악인들의 이름도 만들었지. 그들은 아무데서나 섹스하고 사람을 때렸지. 파란 하늘을 향해 던져진 돌의 곡선을 그려보기도 했지. 나는 원고지의 빈칸을 매우 사랑했지. 하지만 사실 그 사랑은 표현할 수 없는, 표현되지 않는 사랑이었지.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안 거지.(201쪽)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폼 잡고 말하면 그럴듯하지만, 속속들이 알고 나면 시들한게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어느 한 측면으로 판단하게 되면, 다른 면들은 실망 투성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보여주지 않은 면까지 봤다고 해서 서운해한들 무슨 소용있겠으며,

그렇다고 두 눈 뜨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日新又日新, 날마다 꾸준히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자의 그것을 누가,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거창하게, 삶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예술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심지어는 신변잡기적인 이런 리뷰나 페이퍼 글들도 그렇고...

현실을 외면시키거나 소외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가슴엔 땡큐 카드 같은 따뜻함으로,

누군가의 가슴엔 아련하고 그리운 시나 글 한 줄로,

그렇게 그렇게 위로와 위안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예술이나 문학에 문외한이어서, 작품성을 논할 수 없으니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의 글 한구절처럼,

'목요일엔 나무들이 일제히 합창을 하게 하고 수요일엔 기억 속에 물이 흐르게(138쪽)'하는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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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4-03 22:29   좋아요 1 | URL
플로베르의 통상관념사전을 보고있는데 플로베르가 나와서 그냥 반갑네요. 문학작품도 새처럼 조롱에 가두지 않아야하는군요. 사람도 그럴 것 같아요. 스스로 가두든 타의에 의해 가둬지든 진면목이 나오긴 어렵겠지요. 사월, 잘 보내고 계신거죠~~^^

하늘바람 2013-04-04 16:39   좋아요 1 | URL
읽고 고개를 끄덕이고 맞아하며 눈깜박이고 갑니다
 

파파로티를 보았다.

좀 진부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걸 감안하고서도 참 좋았다.

이제훈(장호 역)은 자기의 맞춤 배역이라고 할 정도로,건달과 천재 성악가 역할을,

한석규 역시 음악 선생님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해 냈다.

개인적으로 조진웅을 좋아하기 때문에 큰 웃음을 줄거라고 기대했었는데,

그와는 달리, 이제훈(장호 역)을 거둬 주는 건달로 분해 화려한 액션과 멋진 대사 몇마디 날려 주신다.

역시나 교장선생님 오달수가 크고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다보니 '감동'을 의도적으로 전달하려 해서 좀 진부하지나 않을까 싶었는데,

나름 감동을 받았고, 나중엔 눈물과 콧물을 섞어가며 '엉엉'울기까지 한 것이 제대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멋진 영화였다.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장면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조진웅이 자신은 꿈이 없어서 가장 불쌍하다고 하는 장면과,

이제훈이 한석규를 향하여,

"언젠가는 사흘동안 말을 안한 적도 있습니다. 누가 말을 걸어줘야 지껄이지요." 하는 장면,

한석규가 건달 두목을 찾아가서,

"장호 보내주십시오. 손목아지는 피아노라도 치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안되고, 발목아지라도 끊으십시오."하는 장면에서 흘린 눈물을 합하면 손수건 하나는 적시고도 남겠다.

 

난, 친구나 동료도 그렇고, 스승도 그렇고, 한참 나이 어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내가 그들로부터 무엇 하나라도 배울게 있는 사람이 좋다.

그렇다고 입장 바꾸어서,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칠만큼의 실력과 내공을 쌓았느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올시다'이다.

예전에 지방 대학에서 한학기 강의를 한적이 있었다.

물론 자질을 놓고 봤을 때도 많이 부족해서 강의를 듣는 입장에서도 내가 못마땅했었겠지만,

무엇보다 내 안의 것을 끄집어내어 놓고 나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한시간 떠들고 나면 허기가 져 음식을 주워 삼키듯 부족한 밑천을 보충할 요량으로 책이고 자료를 들입다 팠다. 

 

음악 선생님 상진(한석규)은 제자를 위하여 건달 두목을 찾아가서 발목아지를 내놓는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서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진부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인터넷을 찾아 실상을 읽으면서는,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싶어, 뒤늦게 목이 메었다.

 

나에게 힘들고 불가능하게 보인다고, 세상 모두가 나 같으란 법은 없다.

새학년 새학기가 되어 다 새롭겠지만,

대입을 준비하는 인문계 고등학생은 새로움에,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한 학교에서 얼마 전에 모의고사를 보고 성적이 나오자,

시험을 망친 한 학생이 좌절하여 선생님을 찾아가서는 철퍼덕 넘어져 눈물바람을 하였단다.

선생님은 울고 있는 학생에게,

"내가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있는 날, 니가 와줘서 다행이다, 고맙다."

하며 달랬단다.

 

어쩜, 요즘 울 아들의 장래를 놓고 고민 중이어서 이 영화가 남달랐는지도 모르겠다.

울아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동안 무엇 하나 특별하게 빼어나게 잘하지는 못할지라도, 두루뭉술하게 잘하며 큰 말썽없이 지내왔다.

그리하여 자율고라는 곳을 단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는 이유 때문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주변 아이들이 다 자기만큼은 공부를 하더란다.

게다가 아들은 그 엄마의 오지랖을 닮았는지,

이것저것 두루두루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과 호기심도 많았다.

중3 무렵엔 맛을 탁월하게 구별해내서 그게 '맛 감별' 쪽으로 반짝하더니,

지금은 나이 또래의 '악동뮤지션'을 보고, 그애들처럼 기타 치고 작곡을 하고 싶으시단다.

문제는 자기 아들에 대해서 가장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 봤을때,

그런 콩깎지가 씐 엄마의 눈으로 봤을 때도, 아들이 기타치고 작곡을 해서 대학을 갈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것들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데, 외동이어서 경쟁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녀석은...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 그 상황이 싫으시단다.

 

적어도 밥은 굶지 않는 직업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엄마의 성화에도,

밥 몇끼 굶는게 낫지, 평생 하고 싶은 걸 못하고 불행하게 사는게 낫겠냐며...

한없이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에효~--;

 

 

 파파로티 O.S.T.
 한석규 외 노래, 강요셉 테너 /

 열린음악 / 2013년 3월

 

 파파로티
 유영아 원작, 김현정 소설 /

 탐 / 2013년 3월

 

그리고 오늘 유시민의 '어떻게 살것인가'를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정치인 유시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너무 가볍게 시류에 움직이는, 말과 행동이 다른 그가 보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정치색을 최대한 배격한 그의 글은 너무 괜찮다.

아니 그는 지식소매상이라고 표현하지만, 난충분히 마음에서 우러나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그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지음 / 아포리아 /

 2013년 3월

 

 

 

결론을 말하자면,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내 자신의 욕망을 더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삶을 얽어맸던 관념의 속박을 풀어버렸다. 원래의 ,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10쪽)

  ㆍㆍㆍㆍㆍㆍ어떻게 살 것인가? 크라잉넛은 자기네 생각을 이야기했다. '좋아한다면 부딪쳐, 까짓 거 부딪쳐!' 훌륭한 대답이다. 그들은 자기네가 좋아하는 펑크록 음악을 들고 세상과 부딪쳐 나름 성공했다.인생에서 성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신껏 인생을 사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산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포기하고 산다면, 그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다.(23쪽)

ㆍㆍㆍㆍㆍㆍ그러나 크라잉넛 멤버들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을 물질이나 지위, 사회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 어떤 이념이나 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두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설계했다. 그리고 그 삶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밀고나갔다. 주눅 들지 않고 세상과 부딪쳤다. 인생이 성공했으며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그렇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들은 좋아하는 놀이를 직업으로 삼았다. 이것만으로도 '절반'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인생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일과 놀이가 인생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사랑과 연대solidarity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크라잉넛 멤버들이 이 나머지 '절반'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절반' 성공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크라잉넛의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크게 빚졌다고 생각한다. 그 빚을 갚고 싶다. 그래서 그들도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인생의 나머지 절반도 소신대로 하기를 기대한다.(27~28쪽)

이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그는 힐링에 관해서 강신주와 같은 의견을 펼친다.

그리고, 이렇게 돌려서 얘기한다.

그런데 이 얘기가 그가 하는 말들이어서 설득력이 있고 아름답다.

미사여구보다 아름다운 말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의 소신이 담긴 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살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ㆍㆍㆍ. 이런 것들이 살아 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떠나는 것이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 일할 수도 더 놀 수도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도 타인과 손잡을 수도 없게 되었을 때, 그때 조금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면 된다.

그는 내 마음 속에 들어와 들여다 보기라도 한 듯 이렇게 담담하게 적고 있다.

'지금' 바로 '여기'를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꿈'을 얘기하는 것이고,

이것들이야 말로, 가장 소박하면서도 소신이 담긴, 설렘과 황홀과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빠르고 쉬운 방법이 아닐까?

 

그러면서, 카뮈의 스승 '루이 제르맹'을 언급한다.

그러고 보면, 유시민 그도 지식소매상 어쩌고 하지만, 선생님(즉, 교사가) 얼마나 위대한 직업인지 알고 있는 듯하며,

이제 그가 그러한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그가 여지껏 해오던 정치와는 가치를 비교할 수조차 없는 멋지고 위대한 직업일 것임에 틀림이 없고,

그라면 훌륭한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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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3-25 23:26   좋아요 0 | URL
응, 저도 유시민 읽어볼래요, 라고 쓰고 양철나무꾼님 안녕, 오랜만, 이라고 인사도 하고.
보고싶었어요. 진짜진짜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글은 잘 읽고 있었고요. 댓글 없어서 서운했어요? 안서운했어요?

숲노래 2013-03-26 05:32   좋아요 0 | URL
오늘도 좋은 하루 마음껏 누리셔요.
저는 지난 한 주 서울 인천 떠돌며 강의하고 뭐 하느라
시골마을 봄꽃을 '한 주치 놓쳤'더니
아주아주 서운하더라고요.
참말 봄에는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시골에서만 지내야지 싶어요.

아이와 함께 봄꽃 봄나무 즐기러
느긋하게 마실해 보셔요.
서로서로 마음에 걱정 아닌 즐거움을 놓아 보셔요.

북극곰 2013-03-26 09:54   좋아요 0 | URL
파파로티, 저도 진부할거라 생각했는데, 절친도 보고나서 한없이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영화 보러 갈 형편은 안 돼서 전 천천히 봐야겠어요.
유시민이 이젠 글쟁이로만 살아갈거라는데, 왠지 짠하고 씁쓸하고... 복잡하더라고요.
독자로서는 반길 일이지만.

그나저나 나무꾼님~ 저도 간만에 댓글 달아요.
봄이 되니 좋네요!

하늘바람 2013-03-26 11:18   좋아요 0 | URL
아 카뮈 질문에 대한 답 어디 적어 놓아야겠어요 멋지네요 님따라쟁이 픈!

알케 2013-03-26 13:50   좋아요 0 | URL
유시민..이번 책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 무엇보다 '훈장질'안해서 좋아요.저는 일주일 째 점심시간에만 읽습니다.
파바로티는 (제가 영화관에서 본 마지막 영화가 '아바타'이니 한 3년을 영화관에 안갔네요.)언제나 볼 수 있을지 ㅎㅎ
우리 아들놈의 장래 희망은 한국야구위원회 (KBO)기록원입니다. ㅎㅎ
 

1.

그동안 이곳, 알라딘 서재에서 책을 처분하는 차원에서,

다시말하면 '책.탑.타.파'차원에서 읽은 책이나 두권 가지고 있는 책, 또는 같이 읽었으면 싶은 책들을...

알라딘 서재 지인들에게 곧잘 선물했었지만,

정작 나는 그들이 읽고 보내주는 책을 쉽게 받아 읽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들이 책을 보내주겠다고 할 때, 거절하느라 참 힘들고 난감했었다.

그러던 차에 한 친구를 알게 됐고,

그 친구가 너무 좋았던 터라 그 친구가 읽으면서 남겨놓은 흔적과 표시가 참 좋아서 쓸어보고 만져보고 보듬어 안아보고 하였다.

그 친구 덕에, 손 때 묻은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이제는 지인들이 보내주는 책선물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며칠 전,

이곳에서 모두의 애정을 받는 OO님께서 내게 노란 종이에 눌러쓴 이쁜 손글씨 편지와 함께 책을 한아름 보내주셨다.

어머니가 아프신 뒤라 정신 없으실텐데...

내가 언젠가 이곳에서 '번역가의 꿈을 키운다고 설레발'을 쳤던 걸 기억하고 계신다.

아흑, 창피해라~--;

OO님, 제겐 취미로 설레발을 쳤던 그것들이...누군가에겐 치열한 현실이고 삶이어서...

그리고 그쪽으로 자질이 없는 걸 뒤늦게 깨닫고 접었습니다여~ㅠ.ㅠ

잊지않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여~(__)

 

 

(왼쪽 엄지발가락이 찬조 출연했네, ㅋ~.)

 

 

 

 

2.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을 '농담'이라고 한단다.

이문재의 시<농담>은 한때 좋아 외우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그렇게 잊혀졌었는데,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책(96쪽)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었다.

 

            농      담

                       - 이 문 재 -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로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한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 '농담'의 의미를 놓고 궁금해 했었다.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책에서 이 시를 인용했을 때는,

이렇게 멋진 시 내용을 읊고나서 쑥스러워서 머리 긁적이며 '농담'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짙지 싶다.

하지만 난 이 시의 '농담'을 반어법으로 해석하고 싶다.

종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종은 지금도 충분히 아픈데,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해 더 아파야 한다는 말은 '반어법'이거나 '농담'이어도 좋겠다.

이건 바꾸어 얘기하면,

아프면 아플수록 지금 더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때문에 지금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사랑하고 있지 않을 확률은 1/2,

사랑하지만 떠올리지 않는 정말로 강한 사람이거나, 진짜 외로운 사람이거나...

 

진짜 외로운 사람은 차치하고,

여기서 경계하여야 할 것은 정말로 강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제 몸을 더 세게 때려 소리를 더 크게 울려 퍼지게 하거나,

제 자신을 말끔하게 비워내 더 큰 울림을 만들어야 한다.

때리는 것도,

깎고 비워내는 것도,

정말로 강한 사람이 아니면 쉽지 않겠지만... 

그 강한 사람도 어쩌면,

한번 무너지면 연달아 무너지는 도미노마냥 속수무책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농담'으로라도...

치열하게 사랑하고,

진짜 외롭고,

더 아파하고 싶지는 않다.

난 아름답지 않고 사소한 풍경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맛을 낸 음식이 아니라 단사표음이라도 좋으니,

치열하게 사랑하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살다가도 좋으니,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저런 삶을 꿈꾸는 시인이나 작가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삶을 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제국호텔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카피는 거시기다
 윤제림 지음 / 난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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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9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3-20 07:37   좋아요 1 | URL
오늘 하루도 고운 봄볕과 함께 아름다운 이야기 누리셔요

2013-03-20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03-20 17:09   좋아요 1 | URL
호호호 저두 잘 아는 분이 보내셨군요^^
뭐야 제가 책 선물 한다고 하니 싫다 하시고는 흥흥흥!! ㅎㅎ 벌써 오래전 이야기죠~~~

mira 2013-03-20 17:33   좋아요 1 | URL
공감가는 이야기가 가득한데요. 누가 보내셨는지 저두 어렴풋알겠네요 . ㅎㅎ

cyrus 2013-03-20 19:59   좋아요 1 | URL
2년 전에 나무꾼님이 선물한 책 잘 읽었습니다. 그 해 복학하느라 책에 대한 글 한 토막 못 썼지만...^^;;
저도 선물 보내줄 수 있었는데 답글 안 달아주셔서 기다리다가 그냥 포기했습니다. ㅎㅎㅎ

2013-03-20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