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대하는 이들 중엔 정신이 잠깐씩 출타하여 호칭에 혼란을 느낄 연세의 분들이 있기는 하다.

얼마전의 일이었다.

우리 대장을 향하여,

"아저씨 밥 잘먹는 약 좀 없어?"

하는 소리와,

"아저씨라고 그러면 대답 안해줘."

하는 소리,

"내가 우리집 아저씨 물어봤지, 은제 의사 슨생한테 아저씨라고 그랬어?"

하는 소리가 오락가락하여 나가보니,

"그리고 으사 슨생도...나 만치로 나이들어봐. 그나마 아줌마라고 성별 안바꿔 부른걸 감사하게 될걸~?"

하시면서,

내심,

'호칭의 혼란쯤이야 나이듦의 현상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지,뭐 그리 유난이냐?'

말이 더하고 싶으신 표정으로 날 쳐다보신다.

나까지 구경을 나가자이번엔 현장에 계셨으나 귀가 먹통이어서 상황을 관망만 하던 올해 아흔의 쉰떡 할머니가  끼어든다.

"아줌니 올해 몇이여?"

"먹을멘치로 먹었어요."

쉰떡 할머니가 엉덩이를 떨고 일어나며 재촉을 하자, 마지못해,

"......여든이여."

라고 하며 창피한듯 '나이만 먹었어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데,

귀가 먹통인 쉰떡 할머니는 진짜 알아들으신 건지,

입모양을 보고 미루어 짐작을 하신건지,

용케 알아들으시고는...

"얼마 안 먹었구만, 아직 젊구만, 뭐~."

마냥 부러워 하시는 눈치다.

그동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하던 예순의 대장와 마흔 몇 살의 나는 명함도 못내밀어보고 깨갱거리 수밖에 없었다.

 

모든게 그런것 같다.

기준을 정해놓고 보면, 기준의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입장은 바뀔 수 있는거다.

 

'산사나무 아래'라는 로맨스소설을 읽어주셨다.

내 또래 다른 애들이 로맨스소설을 읽을 때 난 무협지를 읽었었다고는 벌써 여러 차례 얘기했었고,

그래서 그런지 난 로맨스 소설은 금세 심드렁해지는 경향이 있다.

갈등 구조가 단조로운 것이,

쉽게 말하면 밀고 당기는 '밀.당.'이 맘에 들지 않는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아닌 거지,

좋아도 좋아한다는 얘기도 제대로 못해서 이런 저런 오해가 생기고 하는 것,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좋아하는 사람을 놓치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이 나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답답하다.

섣불리, 경솔하게 마음을 함부로 드러낼 일도 아니지만,

한번 사는 인생이고,

그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사랑한다면,

마음을 표현하는데,

감정을 전달하는데,

인색해서도 안되겠다.

 

나는 상대방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게 아니므로,

표현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상대의 마음을 간파하는 묘한 기술이란 것이,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뿐인데,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게 아니고,

상대적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일 뿐인데,

촉이 좋아 짐작이 맞을 수도 있지만, 착각은 자유일 확률도 반이나 된다.

 

말 그대로 착각은 자유이고, 콩깍지가 씌어도 내눈에 씌는건데 웬 참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큐피트의 화살이 제대로 들어맞았을때 애기이고,

어긋났을때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 일례가 요번에 생긴 스토커의 법적 기준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암튼,

이 모두가 풋풋한 젊은 이들의 얘기니까 이토록 애절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ㅋ~.

지금 마흔을 훨씬 넘어선 내가,

처음 읽는 로맨스소설이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어서  징치우처럼 철떡서니 없이 굴면...

그땐 고도의 주책이 되는 거다.

 

분위기를 바꾸어,

난 이 '산사나무 아래'를 영화로 봤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언젠가 페이퍼로도 남겼다고 생각했었는데,

(부산에 가고싶다, 또는 버섯만두가 먹고 싶다.<--링크)

되짚어 보니, 같은 '장이모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산사나무 아래'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책을 보고나니, 영화도 필히 찾아보고 싶어졌다.

책 속의 '징치우'랑 나랑 정서적으로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 속에서 징치우가 본인은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때는 아주 괜찮은 외모로 묘사되고 있는데,

영화를 보고 맞춤한 캐스팅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져서이다.

하긴, 징치우랑 나랑 정서적으로 닮았다고 느낀 것도 이런 '잡념'에 빠져 있을 때 뿐이고,

난 배구도, 탁구도 실력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신통치 않고,

밥을 빌어서 죽을 쒀먹진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닥 살림도 야무지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피로와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징치우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손을 파고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모든 신경을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오랫동안 연습한 특기를 발휘하여 온몸을 짓누르는 아픔을 잊기로 했다. 바로 잡념에 빠지는 것이다. 생각에 깊이 빠지면 종종 영혼이 몸을 빠져 나가 다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 자신은 상상 속 인물이 되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징치우는 산사나무를 생각했다.(19쪽)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지금도 중국은 침술과 민간의학이 발달하여 아무곳에서나 구급약과 침, 뜸을 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때에도 제대로된 의학은 불모지에 가까웠고 민간요법과 대체의학이 발달하여,

그걸 널리 전파하였나 보다.

사람을 묘사하는데도 그래서 그런가...은연 중에 그런 식의 관찰과 묘사가 눈에 띈다.

 

웃을때 입은 웃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아 차가운 눈빛을 띠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사람은 웃을 때 코 양옆으로 주름이 잡히며 눈도 가늘어졌다. 꾸며낸 웃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웃음이며 조소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웃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만 사탕 먹으라는 법 있나요." 그가 다시 사탕을 내밀었다.(30쪽)

이 책이 나한테 놀라웠던 것은,

지금 마흔을 넘은 나보다도 훨씬 더 속 깊고 어른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의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날텐데, 대화를 가만 들어보고 있을라치면 파파할머니, 할아버지의 대화 같다.

 "겸손이 사람을 키운다고, 이렇게 겸손한 걸 보니 금세 성장하겠는데요." 그가 멈춰 서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착한 아이는 거짓말하지 않아요. 아코디언 연주할 줄 알죠? 가져왔어요?"(31쪽)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그때는 사람의 교통편이나 운송 수단도 발달하지 않았을때여서,

특히 여행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하룻밤 제대로 묵을 수 있는 방조차 구하기 힘들었는데...

자신의 짐조차 자기가 짊어질 수 잇는 만큼이 고작이었을텐데,

아코디언을 가지고 왔냐고 묻는 게...참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낭만이라든가, 음악적 감수성 같은게 로맨스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는 하겠지만...

들고다니는 손풍금이라고 불리우는 아코디언의 소리는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처량 내지는 청승 맞다고 하는게 낫지 않겠나, ㅋ~.

 

그래도 로맨스소설답게 아슴아슴한 문장은 나와주신다.

참 바보같지만, 저런게 사랑일 것이다.

한참 나이 먹어선 부러운 마음에, '바보같다'는 소리나 하고...

어쩜, 되돌릴 아스라한 기억 따위조차 없는 내가 진정 '바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람이 떠난 뒤에야 사랑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갑자기 그 사람을 볼 수 없게 돼서야 바로소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징치우는 두려웠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심장을 그의 손에 건네줬고, 지금은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징치우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다면, 손 안의 심장을 한 번 꽉 쥐기만 하면 되고, 징치우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싶다면 그저 미소를 한 번 짓기만 하면 된다. 징치우는 자신이 왜 그렇게 경솔했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게 됐다니.(47쪽)

 

 

산사나무 아래
 아이미 지음, 이원주 옮김 /

 포레 / 2013년 4월

 

 

 

 

 

 

 

 

그리고 연결해서 읽은 책이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이다.

'산사나무 아래'를 읽으며 이 책이 생각난 것은 아마도, 두 소설에서 모두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변기가 언급되고 있어서 인것 같다.

그리고 '산사나무'의 그것보다는 다소 나이가 든 이'쑨위에'와 '허징후'의 사랑이 등장한다.

이들의 사랑은 나이가 다소 있다고 하여,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하여...사랑마저 애틋하지 말란 법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사상이나 이념이기 이전에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역자가 '신영복'이라는 사실은 예전엔  깨닫지 못했던 흥미유발의 원인이다.

 

 

 

 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 호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호 젠후의 태도는 대단히 훌륭하지 않으냐. 하지만 사물을 모두 정반(正反) 양면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그에 대해서 지나쳤다, 이것이 한 면이다. 반면, 그에게 잘못이 있었던 것도 확실하다. 사상의 과격성, 감정의 불건정성. 그가 거기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환영해야 할 일이지. 우리 당은 일관해서, 과거의 잘못을 장래의 교훈으로 삼고 병을 고쳐서 사람을 구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으니까......."(106쪽)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어느 누구도, 그를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수가 없다.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그의 경우 영원히 말뿐이고 개념뿐인 것이다.
생활이란 것은 참으로 사람을 교육시키는 힘이 있다.(165쪽)

 

인생이란 것은 과거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과거에 상상했던 것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인생일 따름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고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바로 인생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삼켜버리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드높이 단련시키기도 한다. (367쪽)

 

페이퍼를 이쯤에서 마무리하려던 차에,

내가 좋다고 설레발을 치는 번역가 한분이 신변 잡기적인 책을 내셨다는 얘길 며칠 전에 들었었는데,

알라딘 신간 알리미가 '띵똥'거린다.

알라딘 신간 알리미, 땡큐다.

일빠로  구입해야쥐, ㅋ~.

 

 

 

 

 

 

 

 

 하찌의 육아일기
 이창식 지음 / 터치아트 /

 2013년 5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13-05-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던 그 감동이 생각나네요..
 
골방이 너희를 몸짱 되게 하리라! - '빠삐봉' 정봉주의 맨손 헬스
정봉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니까 난 사춘기때도 하지 않던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사춘기때 아이돌 스타들을 따라 다니며 '악~'소리 한번 질러보지 않았고, 그들의 사진을 코팅하여 책받침이나 부채로 써보지도 않았다.

하긴 애들이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 빠졌을때, 난 무협지를 탐독한걸 보면...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분명 늦된 거였는데,

그때 애들의 눈에는 '쫌' 유니크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내가 지금 하려는 얘기는 내가 늦되고 덜떨어졌었다는게 아니라,

(난 책 사는데 들이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워 하는데,

 브로마이드 화보집을 내 돈 주고 사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연예인 얼굴이 실린 사진집을 사는 걸 이해 못하는 부류였다~--;)

내가 브로마이드 화보집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게 없는 이 책을 내돈 주고,

게다가 리뷰나 페이퍼 안내글조차 없어서 '땡스투'조차 못 눌러  적립금마저 포기하며 샀다는 거다.

 

나는 깔때기 정봉주의 그것이라는 사실 하나면,

그렇고 그런 브로마이드 화보집이었어도 과감하게 구입해 주셨겠지만,

20여년을 사람 뼈다귀랑 살, 지방 덩어리 등을 공부하고 지낸 내가 보기에도,

책 안의 내용이 사실적이고 책이 주는 파급 효과는 컸다.

무엇보다 이 책의 모델이 '정봉주'라는 사실이 그러했는데,

내가 맨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 대장보다 겨우 한살 적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장 또한 머리는 둘째 가라면 서럽고,

한번 마음 먹은 일은 꼭 끝을 봐야 하고,

건강과 몸매 가꾸기에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봉주에는 미치지 못했다.

 

우리 대장이 가지지 못한, 오늘 날의 빠삐봉 정봉주를 있게 한 그 하나는 '긍정에너지'이다.

그의 말마따나 억울하게 간 감옥이라고 하여 요즘 유행하는 '힐링서적(?)'을 읽고 읽는다고 한들,

모든 얘기가 결국엔 자기 잘났다로 귀결되는 깔때기 정봉주의 성격 상 얼마나 힐링이 되겠는가 말이다.

차라리 감옥에서 나갈 그날, 보여줄 몸을 만들며 기다리는게 한결 수월하였을 것이다.

그니까 가능한 일이다.

'긍정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꾸준히 하여 조금씩 나아지는데서 희열과 만족을 느끼고,

누군가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면 신 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그니까 가능한 일이었지...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해보기 전에 지레 겁먹을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옛날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옛날이 아니고 1년전, 감옥에 들어가기 바로 전의 '정봉주'의 몸매되시겠기 때문이다, ㅋ~.

 

암튼, 내가 설레발을 치면서 이 책을 리뷰를 써주는 이유 중 하나는,

그에게서 '긍정에너지'를 전수받고 싶어서라고 위에서 애기했었고...

또 하나는 '운동을 하자'는 흔한 얘기나, 정봉주처럼 빠삐봉이 되자는 얘기가 하고 싶어서가 결코 아니다.

운동을 하기는 하되,

오랫만에 한번씩 먹는 특식 먹듯 하지 말고,

매일 밥을 먹었으면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화장실을 가듯 일상적으로 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이자는 것이다.

아무리 진수성찬 맛난 것이라도 매일 먹으면 물리니까 말이다.

일주일에 하루정도 출근 안하는 날 세수를 거르기도 하고,

저녁에 음주가무로 정신없이 널브러져 잠이 들면 이 닦는걸 까먹을 수도 있듯이,

그렇게 가끔 까먹을 수 있게 운동을 습관을 들이자는 거다.

 

일단 준비물이 거창하거나, 날씨에 좌우되는 운동은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적당하지 않겠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

ㆍㆍㆍㆍㆍㆍ

"정 의원님. LSD( Long Stead Distance)를 할때 어느 구간이 가장 힘든지 아세요?"

"언제가 가장 힘들어요? 몸 속 에너지가 다 고갈되는 30km지점인가? 그쯤에서 죽을 것처럼 힘들다고 하던데."

"큭큭, 그렇지 않아요. 제일 힘든 구간은요ㆍㆍㆍㆍㆍㆍ.신발 신고 현관을 나서는 그 구간이에요."

 

깔때기 정봉주가 책의 첫머리에서 힐링서적을 읽는다고 무슨 힐링이 되겠나 해서...

책은 전혀 읽지도 않았나보다 했더니 그건 또 아닌가 보다.

그럼 그렇지...

힐링은 차치하고라도,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의 깊이는 읽는 책의 양이랑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론 설정이겠지만, 책 제목들도 궁금해 죽겠다~--;

책 곳곳을 이 잡듯이 뒤져 몇권의 제목은 확보했다, ㅋ~.

책 제목은 알아서 뭐할려고 하냐고 묻는다면 말이다.

나도 정봉주처럼 운동할때 벽돌 대용으로 쓸려고...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목을 확보한 '중용한글역주'와 '논어한글역주'는 비슷한 건 본적이 있어도 같은 것은 못봤고,

'공감의 시대'와 '3차 산업 혁명'은 전혀 보지도 못한 책이다~--;

 

내가 이러고 앉아 있으면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책에 욕심내지 말고, 차라리 트레이닝복 메이커가 어디 것인지 쳐다보고,

옷이라도 걸쳐입고 바깥으로 나갈 생각을 하라고..., ㅋ~.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5-06 10:00   좋아요 0 | URL
어디에서나 누구나 할 수 있지요.
저도 집에서 두 돼지(두 아이)를 다리에 얹고 올렸다 내렸다 비행기를 태운다든지,
두 팔로 안아서 비행기를 태운다든지 하면
근육마다 펄떡펄떡 뛴다고 느껴요.

집에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불 털고 뭐 하고 그러면...
저절로 생활근육 붙지요.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누구나 생각 잘 가다듬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느껴요.

저도 학교에서 수험생으로 있을 때
수업을 들으면서
걸상에 엉덩이 안 걸치고
두 팔로 버티며 팔근육 늘리기를 하기도 했어요.
쏟아지는 졸음 참으려고 하던 건데
해 보니 평행봉 선수처럼 팔근육 늘리기에도 좋더라구요 ^^;;;

세실 2013-05-06 10:04   좋아요 0 | URL
진정한 몸짱, 정봉주!!
전 요즘 운동을 안해서 그런가 온몸이 아파요.
어제도 집에서 끙끙 앓았네요.
무언가 당장 시작해야 할텐데.....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잘잘라 2013-05-06 16:32   좋아요 0 | URL
와우~ 1년 동안의 변화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네요. 1평 독방에서 저라면.. 으아~ 단 하루, 아니 한나절, 아니 한시간, 아니 아니 단 10분도 못 버티고 정신줄 놨을거예요. 아마도. ㅠㅠ 목숨 걸었다는 표현이 와닿습니다. 정봉주.. 제 스타일이 아니라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 돌아온 그를 환영하는 의미루다가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

프레이야 2013-05-06 22:41   좋아요 0 | URL
우와! 정봉주 대단하네요. 다시 보여요. 몸은 정직한 거 같아요.

같은하늘 2013-05-08 19:11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렸다 정봉주의 책이라는데 눈이 확~~해서 보고갑니다.ㅎㅎ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시지요?
 
당신들의 기독교 - 환상의 미래와 예수의 희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예수나 기독교를 인식하게 된 것은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가 시작이었나 보다.

시 속에서,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라고 읊조리고 있는데...

나는 어린 나이에, 모든 예수나 기독교는 저 시 속에 등장하는 예수 같은 줄 알았나 보다.

그랬으니 종교로서의 기독교,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지지고 볶는 삶 자체로, 내지는 연장선 상에서 받아들이려 했었을 테고 말이다.

암튼, 내가 정호승의 저 시집을 읽었을 때가 스물 언저리였고,

그로부터 그때 그 나이만큼의 세월이 흘렀고,

저 시 속에 등장하는 예수가 이제 실재(實在)하지 않는다는 걸 믿어가려던 찰나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 불을 피우면 따뜻해지는 것'을 희망해도 좋으려나?

부질없는 희망,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예수가 있었으니 반드시 '(당신들의) 기독교'가 필요치 않으나, 굳이 기독교인으로 남고자 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에 불과한 신자가 아니라 제자의 길, 그러니까 어렵사리 몸을 끄-을-고 남을 따르려는 삶의 양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제자란 '타자성의 소실점을 향해 몸을 끄-을-고 다가서는 검질기고도 슬금한 노력'입니다. 쉽게, '자기 십자가를 지기'로 고쳐 말할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제자는 촛농의 힘에 의지한 이카루스처럼 어렵고, 신자는 쓰레기통의 파리 떼처럼 번성합니다. 이제 '신자'의 파리 떼와 그 파리대왕들의 틈 속에서 유일한 가능성은 '제자'이지만, 아,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것이 그 스승을 '믿지' 않은 채 그보다 앞서 '걸어가는' 공전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처럼, 다만 불가능한 꿈을 지피면서, 걷고 걷다가, 죽어버리십시오.(5쪽,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그동안 김영민의 전작들을 읽어 김영민의 논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커다란 제목 '당신들의 기독교'와 목차, 소제목들만을 훑어보고 책의 내용을 대충 미루어 짐작하는 사람들은 낭패를 볼 수도 있겠다.

물론, 큰 제목과 목차, 소제목 등 모두 다 잘 뽑은 것은 맞지만,

큰 제목 '당신들의 기독교' 아래 엮인 10개의 소제목이 어떤 서술도 없기 때문에...

그냥 그렇고 그런 구태의연한 내용이겠거니 하다가는 허를 찔리는 꼴이 되고 만다.

 

이책을 끝까지 차근차근 읽고 나야,

비단 '예수'나 '기독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쪽으로 시야를 확장시킬 수도 있고,

'기독교' 대신에 여타 다른 종교나 각자가 맹목하는 '철학적 신념'을 대입시켜 볼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말이다,

이 책에 나온 10개의 예시 중에 난 저 시집에 나왔던 예수의 실재(實在)를 본 것도 같다.

그러니 이 책 '당신들의 기독교'를 읽고,

'사람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 불을 피우면 따뜻해지는 것'을 희망해 보게도 된다.

 

좀 길지만 부분, 옮겨 보겠다.

j는 기독교인이다. 스스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그리 밝힌 까닭에 그를 기독교인(개신교인)이라 여기긴 해도, 체계가 승인하는 '사회적 동화(social assimilation)'의 지표에서 보자면 j를 굳이 종교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좌표는 희미하다. 우선 그는 정한 교회를 두고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는다. 전라도의 외진 향리에 거처하는 j는 전형적인 농사꾼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눈매가 맵고 말씨가 담담해서 선비풍을 짐작할 수 있는 데다가 일없는 날에는 정갈한 한복을 입은 채 매양 책을 읽고 앉았으니 마을에서는 그를 일러 '농사(農士)'라고 추켜주곤 하였다. ㆍㆍㆍㆍㆍㆍ그가 유독 골독하는 책은 신약성서인데,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지만, 마치 신약성서의 원어가 한글이기라도 한 듯이 ㆍㆍㆍㆍㆍㆍ일견 다석 일파를 연상시키기도 하였다.

 

언젠가 나는 j의 글과 그 필체를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얼핏 초등학생의 글씨를 방불케 해, 비록 잠깐이었지만 지역의 근면하고 학식 있는 처사로 고명한 그에 대한 기대가 일순간 허물어지는 듯도 하였다. 물론 '박필이 천재'라고도 하고, 심지가 곧고 깊으면 오히려 그 겉가량이 어렵기도 하다.

ㆍㆍㆍㆍㆍㆍ

덕망과 재식을 갖춘 지역의 처사인 j는 유능한 지관으로도 이름을 얻었는데, 특히 동기감응설에 근거한 음덕풍수는 기독교의 교리와 양립할 수 앖는 이치를 지녀, 인근 주민들의 상사(喪事)에 도움을 주고자 한 데서 비롯한 선의가 그가 충실히 섬기는 교회의 적의로 되갚음을 당하는 꼴이 몇 차례 있었다. 이웃의 요청에 응해 그가 지관 행세를 할 적마다 손바닥만 한 마을에 소문이 흐르는 게 당연해서 그가 종종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거나 징벌적 교도의 메시지를 보내곤 하였다.

 

j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람살이'인데, 거기에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풍수를 비롯하여 지역의 민속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더러 과감하게 지원하는 이유도 '지금-이곳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는 그의 일관된 '세속적'관심 - 이것은 가히 사이드(E.Said)를 따라 '세속적 관심'이라고 할 만하다-때문이다. 대개의 종교가 '어느 먼 곳'이나 '어느 다른 때'의 유토피아를 명분으로 내거는 대신 지상의 삶을 부차적으로 폄하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j의 개신교는 차라리 일종의 '삶의 종교'-니체가 기독교를 '삶을 고사시키는 종교'로 타매한 점에 착안한다면-로서 그의 일탈적인 행위 속에서 역설적으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j가 기성교회와 불화하는 부분은 교리적 각론이라기보다 사실 어떤 총체적인 '분위기'에서 더 깊어진다. 한결같이 양복에 넥타이를 맨 인간들 사이에서 강기갑 의원이나 처음 등단한 유시민의원의 입성이 되려 낯설게 보이듯이, 일할 때가 아니면 늘 정갈한 한복을 챙겨 입고 입을 열면 동아시아의 고전에다 한시를 주워섬기며 좀처럼 개신교회에서 통용되는 어휘들에 마음을 열지 않는 j의 동태에는 마치 눈엣가시처럼 여타의 교인들과는 쉽게 동화되지 않는 이물감이 있었다.

 

나는 종교의 완성-종교는 결국 믿는 자의 일생에 근거한 한시성과 실존성에 제한적으로 유효하므로 '완성'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긴 하지만-이 어떤 정서와 분위기에 젖어 있는 생활양식, 그리고 그 생활양식에 의해 검질기게 몸을 끄-을-고 다가서려는 어떤 희망에 의해서만 가능해지리라고 전망한다.ㆍㆍㆍㆍㆍㆍ마치 못난 인간들이 못난 신을 제 꼴처럼 품은 채로 역시 못난 생활과 못난 욕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거꾸로 좋은 사람들의 좋은 생활과 좋은 희망은 종교를 완성하고, 그 속의 신을 아름답게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26~133쪽.'j혹은 창의적 스캔들'부분 인용)

 

또 다시 5월이다.

이땅의 꽃들이 피고 지는,

이 땅의 숨은 넋들이 피어나고 스러지는 5월이다.

'예수'나 '기독교' 자리에는 어떨지 몰라도,

저 시의 '예수'나 '기독교'에는 '사람'또는 '삶'을 대입시켜도 좋겠을 5월이다.

 

적어도,

나는 '신'이나 '신성' 대신에 '지금-이곳의 삶'을 대입시키겠다.

때문에 가장 신적인 것은 가장 육체적인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ㅋ~.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5-01 21:56   좋아요 1 | URL
5월 한 달도 즐겁게 누리셔요~
 

밤새 비가 몹시도 내렸다.

바람은 또 얼마나 거세게 불던지,

꽃이 져야 열매가 맺을 수 있다는 말은 다 까먹어버리고,

비바람에 꽃이 떨어져 버리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었다.

점심시간에 친구랑 베란다 캐노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운치있다면서 카.톡.으로 노닥거렸다.

창문을 여니, 해가 환하길래...

서울은 해가 쨍쨍이라고 했더니,

그 동네의 해를 이곳으로 출장보냈기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ㅋ~.

 

어찌 되었건,

지난 주말 난 꼼짝 안 하고 이런 책을 봤다.

 

두명의 만화가가 쓴 책, 두권...ㅋ~.

 

 

 야구생각
 박광수 글.그림 / 미호 /

 2013년 3월

 

 미생 6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요즘 아무래도 일이 힘들어서 그런지,

아니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읽든지 간에,

거기에서 '열정과 재미'라는 글자가 돌출되어 다가온다, ㅋ~.

 

이숭용  그날 땅이 너무 불규칙해서 다칠까봐 못했어.

           우리들은 몸이 재산이잖아.

나        야, 우리는 맨날 그런 곳에서 해.

이숭용  그러니까 나 사실 그날 형네 팀에서 뛰고 많은 걸 배웠어.

        정말? 프로인 니가 아마추어인 우리한테 뭘 배워?

이숭용  프로인 우리에게 없는 것. 열정과 재미.

        열정과 재미?

이숭용  나도 처음에는 야구가 좋아서 시작했거든.

           근데 시간이 지나고 그게 직업이 되니까 어느 순간 내가 야구를 즐기지 못하고 있더라고.

           근데 그날 형네 팀에서 뛰어보면서,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야구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반성했어.
           그날 이후 내가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야구가 즐거워지더라고.(88쪽)

 

 

 평소 생활이 자유롭지 않을 만큼 연습을 하면 운동장에서는 그만큼이 더 자유로워진진다.박광수 (155쪽)

 

 

 

 

봄...하면 아무래도 프로야구가 먼저 떠오르는걸 보면,

그동안 남편과 아들의 주입식에 가까운 세뇌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ㅋ~.

 

또 한권,

내 마음의 겨울에 불을 지른 또 한 권, 미생 6권 되시겠다.

 

기존의 판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후,

나 역시 판 위에 있었음을 새삼 자각했다.

판을 흔들려는 자가 함께 흔들리는 것은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50쪽)

 

 

 

 

술은 열을 올리거든.

즐겁지 않은 기운으로 술을 마시면 뇌가 울어.

크게 울어.

그러다 후회가 쌓이게 되는 거야.

 

기쁘고 싶을 때,

가장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마셔.(158~159쪽)

 

 

 

 

일을 기획할때까진 불덩이를 껴안은 심정으로 확 태워버려야 해.(154쪽)

 

불이다!

 

바둑의 고수들은 대개 다혈질이다.

승부를 결정하는 그 순간만큼은 불이다.

불이어야 한다.

난 불을 꺼내지 못해 프로가 못 된 것이다!(258~259쪽)

 

 

 

 

 

 

 

양미리는 언제 어느 계절에 먹어야 하는건지,

그래야 통통한 알이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난 오늘 양미리에 소주 一盞을 하며,

내린 봄비를 기념하든지,

또는 출장 나온 해님을 환영하든지, 해야겠다.

쩝~(,.)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3-04-29 20:29   좋아요 1 | URL
이상하게 5월 대구의 날씨는 예전 같지 않네요. 서울 경기도는 날씨가 많다던데 여기는 비 오다가 흐리네요. 흡사 선선한 가을 날씨 같아요. 옛날에 대구 날씨는 봄이 아니라 초여름 정도였는데..

하늘바람 2013-04-30 02:49   좋아요 1 | URL
만화책을 보셔도 시집같은 느낌으로 ㅎㅎ

세실 2013-04-30 10:40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예요. 바쁘셨나보다~~
미생 볼수록 재밌더라구요.
봄이라 그런가 저두 많이 파곤하네요.
밤이면 꾸벅꾸벅 졸아요. 어제도 11시에 취침. 애들 시험공부하는 동안 옆에 있어주어야 하는데.....

다크아이즈 2013-05-01 18:45   좋아요 1 | URL
양철님 잘 계시지요?
미생을 여기서 만나네요.
지인 왈, 아들이 말하길 어른들께 선물할 마땅한 거리가 없다면 미생 1,2권을 포장해서 말 없이 드릴 거래요.
그 다음 권은 알아서 사보게 될 거라네요. 사실 전 내용 모르거든요. 양철님 덕에, 지인 덕에 읽어볼게요.
오월도 잘 맞이하시어요.^^*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책을 읽어도 문장들이 내 눈을, 음악을 들어도 선율이 내 귀를...비껴갈 때가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꽃들이 만발한 봄날에 독서나 음악 감상 따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만...

만발하다는 건 다른 의미로 흐드러졌다는 얘기이고,

흐드러졌다는건 이내 지고 열매 맺는다는 말일테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쿨하게 털어버리고 일어나야 할텐데 요번엔 자꾸 엉뚱한 상념에 젖는다.

 

요즘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다고 이곳 서재에 광고를 했더니,

누군가 땡큐하게도 톨스토이는 '박형규' 번역본으로 읽어야 한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어디선가,

국내 번역가 1세대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 권위자라는 기사를 봤었던 것도 같다.

올해 82세인 그는 내년 말까지 '톨스토이 전집'(뿌쉬낀하우스)을 펴낼 계획인데,

그 뿌쉬낀 하우스에서 현재 '안나 까레니나' 한권이 먼저 나왔다.

요번 '안나 까레니나'는 문학동네에서 나와 현재 반값에 후려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뿌쉬낀 하우스의 것을 한권 한권 콜렉션하고 싶은 마음에 구입해 주셨다, ㅋ~.

 

 

 

 

 

 

 

 

 안나 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13년 4월

 

암튼,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새 책을 집어들도록 내 마음을 움직인건 '권위자'라는 단어였는데,

시대에 뒤지지 않도록 유행어를 바로 바로 반영해야 하는 언어의 속성 상,

나이 80이 넘어 시대상을 반영하는게 가능할까 하는 우려를 했었고,

또 간담회에서 노환으로 청력이 떨어져 같은 질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해 전달받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 한 구석에선 한분야에 60년 이상을 매진한 노학자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유명한 이 첫문장을 보는 순간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청력은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청력외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시대와 소통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당신 만의 더듬이로 언어에 대한 감을 유지하고 계셨던 거다.

'권위자'란 그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를 일컫는단다.

언어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언어에 대한 감을 유지하는게 중요한데,

그 감이라는건 세월이 흐를수록 무디어져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허를 찌른 것이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박형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민음사)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김의기)

 

자신의 분야에서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나 권위자까지는 아니어도,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신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의 신뢰 구축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의 '영거한 외모'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내 스스로는 이미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뻑.하고 있지만, (언젠가 썼던 '타인의 취향' 링크)

그런 나도 한 번씩 좌절을 겪긴 한다.

내가 이 부분에서 자.뻑.이 아니고 진짜 달인이어도 해결을 볼 수 없는 세 부류가 있는데,

환자가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이어서 의학의 효능을 신뢰하지 않거나,

치료방법을 신뢰하지 않거나,

치료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그런 예이다.

 

이들 부부를 알고 지낸건 7, 8년 정도 된다.

할머니는 키 크고 곱고 늘씬하였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활달하였다.

음식 솜씨 좋아 음식을 해서 나눠 먹기를 좋아하여 주변에 할머니 친구들이 끊이질 않았다.

반면 할아버지는 곱상하게 생기신데다가 말을 많이 아끼셔서 선비 같은 성품이라고 짐작했었는데,

한번 화가 나면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손찌검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고 살아온 세월 때문인지 잘 참고 살아오셨다.

 

나의 오너께서는 엄청 부자니까 비싼 약재 팍팍 넣어 약을 권하라고 종용하셨지만,

구시대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의 최첨단을 걸으시다가도,

둘이 합해 이천 원 남짓한 진료비를 계산할때만 되면,

신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더치페이를 구사하시는 이분들에게 이도 안들어갈 소리 같았다.

내가 결정적으로 이들 부부, 아니 할머니에게  충격을 받은건,

할머니가 편찮으시다고 동네에서 왕계란 두판을 들고 병문안을 왔는데,

계란말이 좋아하는 손주들 오면 해주려고 모셔 두느라고 하나도 드시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를 들었을때 였다.

 

그런 할머니가 얼마전에 오셔서는 많이 편찮으시다면서,

좋은 약재 넣어 약 한재 지어달라고 하셨는데,

당뇨가 심하여 인슐린 주사까지 맞으시는 기왕력에다가,

요즘은 그나마 그 인슐린 주사로도 혈당 수치를 조절하지 못하시는 듯 하여...

더구나 등쪽 날개쭉지 끝나는 부분이 아프다는 말씀에,

간에 부담을 주는 한약이라니 싶어,

큰병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시라고 돌려보낸게 한달쯤 전이었다.

다른 한의원에 가서 보름치 한약을 지어 드시고는 차도가 없으셨는지 여기저기 병원을 돌고 돌았으며...

검사 결과, 췌장암이란다.

 

물론 내 말이 설득력 있게 작용하여 한 달 전에 큰 병원에 가셨다고 한들,

검사결과나 진단명을 번복하지는 못했을테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좀 길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내가 일하는 분야에 있어서 나의 권위나 신뢰라는 것은,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할 정도,

나중에 후회하며 연락해 올 정도, 밖에 안되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것이다.

 

박형규 님의 안나 까레니나를 읽으면서 단어와 문장을 벼리는 품이 남다르다는 걸,

언어를 가다듬는 센스랄까 하는게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이게 타고나기만 한 게 아니라, 오랜 삶의 체득을 통하여 둥글린 느낌이다.

그렇다고 세월이나 나이만큼 올드하거나 고루하지도 않다.

소위,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깨닫는다는 '온고지신'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박형규 님의 권위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권위나 신뢰라는 것이, 외모나 나이 같은 것으로가 아니라  그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성으로 판가름나는 것이니 좀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 하다가도,

내가 가꾸고 노력해야 할 것이 외모나 나이 따위 또는 학문에 힘쓰는 등 나의 노력으로 성취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성이라는, 어찌보면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인 다른 사람들의 판단력이 개입되는 문제라고 생각 하니...앞으로 무엇을 더 갈고 닦아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며칠전에 읽은 <뇌미인>이라는 이 책을 보면,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해야만 뇌에 알통이 생긴다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더하다.

 

 

 

 

 

뇌미인
나덕렬 지음 / 위즈덤스타일 /

 2012년 10월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해야만 뇌에 알통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뇌 알통을 만드는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 방법은 신체 운동이다.ㆍㆍㆍㆍㆍㆍ우리 치매 연구팀에서는 뇌 유연성에 대한 연구를 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들에게 뇌 유연성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젊은 사람에게서 근육 알통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노인들에게서 오히려 뇌 유연성이 좀 더 많이 나타났다. 물론 똑같은 과제를 하면서 젊은 사람과 노인을 비교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ㆍㆍㆍㆍㆍㆍ노인들은 은퇴 이후에 아무래도 뇌를 덜 쓰게 된다. 고령이 될수록 더욱 그렇다. 따라서 쓰지 않던 뇌에 자극을 주면 더 큰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인도 뇌를 사용하는 횟수를 늘리거나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뇌 알통이 생긴다는 것이다.(28~29쪽) 

 

박형규 님을 보면서 든 생각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행운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행운이지만,

적어도 그 일을 하면서 밥을 안 굶을 수 있고 가족들 밥을 안 굶길 수 있어야겠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자리가 잡히고 가족들 밥은 안 굶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준비는 갖추어 졌는데,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배우고 또 배운대로 실천할 수 없다면 다 부질없다.

 

그러니 한번 사는 인생,

죽을 때 돈을 싸들고 갈 수 있는것도 아니니,

아등바등 하고 참지 말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 하고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라는 저 자리에 대입시켰을때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건,

'보고싶은 사람' 이다.

보고싶은 사람들이 많아 미치겠는,

미치고 팔짝 뛰겠는,

근데 아직 '꼴까닥~'내지는 '깰꾸닥~'까지는 아닌,

그런 비 내리는 봄밤이다.

이 비 그치면 목련이, 그리고 벚꽃이 이울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4-21 09:24   좋아요 0 | URL
번역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또 저처럼 한국말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헌책방에서 박형규 님 '여러 가지 번역책'을
일부러 하나하나 사서
견주어 읽기도 해요.

박형규 님이 번역한 톨스토이는
'시대에 따라' 말투가 조금씩 다르답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책이 나온 때에 따라서
말투가 조금씩 바뀌곤 해요.
스스로 꾸준하게 가다듬고 손질하시거든요.

늘 스스로 번역을 새로 하고
당신 스스로 한국말을 날마다 새롭게 배우시거든요.

북극곰 2013-04-22 09:18   좋아요 0 | URL
안나 까레리나의 저 첫 문장은 아주 어릴 적에 보고도 참 기막힌 말이다. 싶었는데. ^
삼중당 문고판이었던 것 같은데, 같은 번역가였을까요? 꼭 저 문장이었거든요.
나름나름, 고만고만.... ^^

나무꾼님 잘 지내시죠?

간만에 어젠 남한산성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너무 과식하는 바람에
저녁도 건너띄고 아침도 조금 먹었는데도 아직 위가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소화도 못 시키면서 식탐이 이렇게 많아서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