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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괴테를 읽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류시건 옮김 / 오늘의책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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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괴테를 읽다>의 첫 장을 열었다. 어린 시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비극적 사랑의 희열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던 바로 그 괴테의 작품이다. 첫 장을 넘겨보니 100살이 된 노학자 파우스트는 맹인이 되지만 심안은 더욱 밝아진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파우스트였구나. 괴테하면 떠오르는 작품 중 가장 대작으로 구상에서 완성까지 60년이 걸렸다는 파우스트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작품이지만 막상 책을 펼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바로 그 책이다. 에휴, 한숨이 나온다.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파우스트는 너무 어려웠다. 다 읽기는 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하얀 백지처럼 변해버렸던 그 기억이 다시 솔솔 떠오른다. 이번에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1부를 펼치자 바로 졸음이 쏟아진다. 내일부터 열심히 읽어야겠다.

 

 

20144xx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가? 책을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가끔씩 보이는 오탈자 때문에 책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에라, 맘 편하게 읽자. 괴테라는 천재가 60년에 걸쳐 쓴 책을 한 번에 다 이해하고야 말겠다는 내가 더 웃긴 거다. 맘을 편히 먹자 책이 조금씩 읽혀진다. 희곡 형태라 빽빽하지 않아서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도 점점 빨라진다. 1부를 읽는 동안 문득 성경 욥기의 내용이 떠오른다. 주님과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내기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상 지식의 한계와 인간으로써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사실에 좌절한 파우스트 박사는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말한다면 그때는 나는 기꺼이 망하겠다.(p.90)고 말하며 메피스토펠레스와 영혼을 담보로 한 계약을 맺는다. 마법의 힘으로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는 순진한 처녀 마르가르테(그레첸)를 유혹해서 타락시킨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로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인 마르가르테가 사형 언도를 받자 파우스트는 고통 가운데서 그녀를 탈출시키려 하지만 마르가르테는 이를 거절한 채 하나님을 심판을 받은 후 영혼의 구원을 얻는다. 이 장면을 끝으로 1부가 마무리된다. 파우스트는 괴테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하는데 1부에 나온 파우스트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아, 내 가슴에는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

그것들이 서로 떨어져 나오려고 한다네.

하나는 음탕한 정욕을 불태우며

현세에 집착하여 떨어지지 않는다네.

또 하나는 어떻게든 먼지 낀 속세를 피하여,

선현이 사는 높은 영의 세계로 오르려 하네.(p. 64)

 

 

결국 파우스트는 타락한 영혼에 져버린 패배자일 뿐인가? 내일 2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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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파우스트를 다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2부를 펼쳤다. 파우스트를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중간중간 삽입되는 수많은 시들과 신화와 비유를 사용한 내용 전개 때문인 것 같다. 잠깐 읽다 책을 내려놓는다. 머리 좀 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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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 나오는 파우스트는 대마법사로 변신해 황제를 도와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전설의 미녀인 트로이의 헬레나를 저승에서 불러내 그녀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들이 죽자 헬레나는 아들을 쫓아 지옥으로 떠나버린다. 홀로 남은 파우스트는 왕에게서 하사 받은 땅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사는 땅으로 만들 상상을 하면서, ‘멈추어라!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p.583)라고 외친다. 계약에 따라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잡으려는 순간 천사들이 나타나 파우스트를 구원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책을 덮지만 상당히 당황스럽다. 파우스트가 왜 갑작스레 구원을 받는 거야??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2014 4 xx

파우스트는 어렵다. 시대적 배경과 신화적 배경 등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과연 괴테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 나는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걸까? 파우스트의 구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책을 다시 훑어보자 문득 이런 구절들이 눈에 띈다.

 

 

“산더미 같은 책들로 굴속은 비좁기 한이 없다..

이것이 너의 세계다! 이것을 세계라고 할 수 있는가?...

신은 살아 있는 자연 속에서 살라고,

인간을 만들어서 넣어 주셨건만(p.32)

 

 

시끄러운 시간의 여울 속으로

사건의 와중으로 뛰어들자!

거기에서는 고통과 쾌락,

성공과 불만이 번갈아 덤벼들어도 좋다.

쉬지 않고 활동해야 비로소 남자다.(p.92)

 

 

자유와 생명은 날마다 싸워서 쟁취하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함께 살고 싶다.

그러면 나는 그 순간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어도 좋을 것이다.

멈추어라!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p.583)

 

 

종교적인 구원은 논외로 하고 사람이 사는 모습만을 보자. 파우스트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생각이라는 혹은 사상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살아 있는 삶 속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와 생명은 시끄러운 시간과 사건 속에서 날마다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 싸움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백성들을 위한 싸움이다. 결국 사랑의 힘이다. 현실 속에서 부딪치는 사랑의 힘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과 능력은 모두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오직 사랑의 힘만이

사랑하는 이를 인도해드립니다!(p.592)

 

 

“언제나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할 수 있습니다.(p.601)

 

 

2014 4 xx

폴레옹이 인정했던 천재 괴테. 괴테의 삶이 녹아있는 파우스트.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지금도 나에게 속삭인다. 삶의 모습을 한 번에 다 알 수는 없다고. 끝없이 노력하며 애써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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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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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꼴: 김별아 작가님, 반갑습니다. 예전에 <미실>이라는 작품으로 만나 뵌 이후로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미실>이라는 작품 외에도 여러 작품들을 쓰셨죠??
김별아: 감자꼴님, 반갑습니다. <미실> 이외에도 <백범>, <논개>,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등의 작품을 발표했답니다.
 
 
감자꼴: 이번 작품 <영영이별 영이별>은 개정판인 것 같던데요?
김별아: , 맞습니다. 2005년에 초판을 발표한 후 10년이라는 세월을 덧입혀서 2014년에 다시 펴내게 되었습니다.
 
 
감자꼴: 영영이별 영이별은 무엇에 관한 작품인가요?
김별아: 잘 아시겠지만 조선의 제6대 왕 단종은 숙부였던 세조에게 쫓겨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됩니다. 단종의 죽음을 슬퍼한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슬퍼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단종의 부인이었던 정순왕후가 아닐까 싶어요? 단종을 향한 정순왕후의 지극한 사랑이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감자꼴: 작품을 보니 49에서 0까지 역순의 형태로 단락을 써내려 가셨던데요?
김별아: 눈치채셨군요^^ 이 작품은 죽음을 맞이한 정순왕후의 혼령이 중음에 머무는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답니다. 단종의 죽음으로 홀로 65년을 살아온 정순왕후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살아 있는 귀신이라고 칭해졌던 여성들의 아픔과 서러움, 저잣거리의 이름 없는 아낙들의 삶에 대해서도 나누고 싶었고요.
 
 
감자꼴: 사실 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별아: 어떤 생각이죠?
감자꼴: 시간을 거슬러 회고하면서 0이라는 시점에 도착한다는 것은 정순왕후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었던 개인적인 고통과 분노, 소소한 기쁨과 행복 등 모든 감정과 기억들을 내려놓는다는 의미, 달리 말하면 모든 세월을 내려놓는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별아: 모든 세월을 내려놓는다?
감자꼴: 단종과 처음으로 만나 애틋한 사랑을 시작했던 열다섯 살의 어린 신부로 되돌아가서 오직 단종만을 바라보며 사랑하고자 했던 정순왕후의 단 한 가지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홀로 지냈던 65년 간의 세월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지 않았을까요?
김별아: 그렇다면 감자꼴님은 <영영이별 영이별>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감자꼴: 물론 영이별이란 표현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이별 다리, 영도교에서 헤어져 결국 살아생전에는 서로 볼 수 없었던 것을 뜻하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삶 혹은 삶에 대한 기억과의 영원한 이별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뜨겁기 음욕보다 더한 것 없고
독하기 분노보다 더한 것 없네.
괴롭기 몸보다 더한 것 없고
즐겁기 고요보다 더한 것 없네.(p.15)
 
 
나는 차츰 당신을 향해 가고 있는데, 애당초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던 여든두 해는 세간에 슬쩍 부려두고 떠나려는데, 긴 목숨만큼이나 질기고 모진 추억이 갖풀처럼 끈끈하게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홀가분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당신 곁에 서려면 누항의 먼지와 때는 다 털어 벗어놓고 가야만 하겠지요(p.117)
 
 
소설의 여러 곳에서 드러나듯이, 모든 기억과 감정을 떨쳐낸 영원한 고요함 속에서 단종과의 만남만을 생각했던 정순왕후의 사랑이 여기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 영이별은 역설적으로 단종과의 새로운 만남을 위한 첫 걸음이라 볼 수 있겠죠. 중음에 있던 정순왕후의 혼령에게는 다른 어떤 선택도 필요 없고 오로지 단종과의 만남만이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김별아: 삶과의 이별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감자꼴: 거기에 삶의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단종이 죽은 이후 정순왕후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고 65년을 더 살아야 했던 것은 삶이 가진 거부할 수 없는 명령, 즉 삶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라는 것과 그 삶이 지닌 신비 때문이었겠죠.
 
나는 시간을 믿기로 하였습니다. 기꺼이 그를 받들기로 하였습니다. 어떻게든 흐르고야 마는 시간을, 시간만이 해결하는 수다한 삶의 신비를. (p.116)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있듯이, 주어진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삶을 다 살아야만 영원한 이별도 가능하겠지요. 그러면서 이런 삶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법이 결국은 사람이라고 정순왕후는 고백하고 있지요.
 
 
김별아: 단종과 정순왕후를 그토록 힘든 삶으로 몰아간 이들도 사람이었죠.
감자꼴: 그렇지요. 혈육이기에 믿고 싶었던 세조와 그 무리들은 그들을 내쳤지만 단종과 정순왕후를 보듬어준 이도 결국 사람이었죠. 그들이 있었기에 정순왕후가 삶을 온전히 끝마치고 단종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세상 권력을 다 가진 자처럼 보이지만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결국 스스로를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몰아넣는 이들을 보여주면서 사람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다고 말하지만 먹사과 하나를 나눠주는 이, 함께 울어주는 이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래도 사람이 답이라고 말씀하신 것 아닌가요?.
 
 
사람이니까 그러할 수 있다고. 오직 사람만이 사람에게 그토록 집요한 괴로움과 슬픔을 줄 수 있다고. (p.243)
 
사람에게 그토록 가혹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지만, 온기를 나누어 괴로움을 어루만지고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사람뿐이랍니다. (p.254)
 
 
김별아: ^^
 
 
감자꼴: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정순왕후의 은밀하고 간절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 드리고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별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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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기적 - 천국을 향한 기쁨의 여정 기적 시리즈 3
이영훈 지음 / 두란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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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났다면 당신의 삶은 지금과 같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가슴 절절하게 묵상될 때, 당신의 고통스런 삶이 천국으로 바뀌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십자가의 기적>은 이영훈 목사님의 <감사의 기적>, <기도의 기적>에 이은 3번째 이야기이다. 앞의 두 책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어 조금은 아쉬웠지만 과연 저자가 말하는 십자가의 기적이 무엇인지 가슴 설레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7가지 말씀인 가상칠언을 토대로 십자가의 기적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간다. 죄 사함과 용서의 기적, 구원의 기적, 사랑의 기적, 도우심의 기적, 긍휼이 여김을 받는 기적, 승리의 기적, 평안과 안식의 기적. 저자는 이 7가지 십자가의 기적을 우리가 매일의 삶 가운데서 묵상하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 이런 십자가의 기적과 축복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게 해야 한다고 선포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기적과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신 것이라고, 또한 이런 기적과 축복을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통해 용서를 받았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았기에 그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결국 저자는 우리에게 구원의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을 닮은 삶은 성령 충만한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령 충만한 삶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값없이 용서를 받았는데 왜 너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느냐? 용서하라, 용서하라, 네가 용서받은 것같이 용서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p.24).

 

사랑을 받아보고 경험한 사람만이 사랑을 베풀고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랑을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p.76).

 

성령 충만은 곧 예수 충만입니다 …. .마음 속에 불안과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고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넘쳐나는 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입니다(p.197).

 

이 책은 단순히 십자가의 기적에 대한 설명으로 그치지 않는다. 각 말씀마다 지면을 할애해 이를 묵상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십자가의 축복을 누리도록 이끌고 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선포되고 있는 듯 하다. 다만 가톨릭에서 마리아 상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을 다소 지나친 면이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이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처럼 비쳐진 부분은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표현이었다.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 책을 덮는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는 찬송가 한 구절이 계속 맴돌았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 하네.” 예수님을 믿고 어디든지 따르는 삶이 진정 십자가의 기적을 맛보는 참된 제자의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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