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 쓴 예배 이야기 : 다시, 예배를 꿈꾸다 쉽게 풀어 쓴 이야기
주승중 지음 / 두란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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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주인을 섬길 없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세상과 하나님을 모두 누리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잡고 있는 같지만 사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쪽에 걸치려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십자가가 아닌 세상을 택하기 때문이다(p.28)

 

예배를 향한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책은 초반부터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몽골 소녀 벌러르의 이야기는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던 내게 말로 표현할 없는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격과 감사로 잃어버린 소를 찾다가 예배 시간이 다가오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배를 드리러 달려온 소녀의 마음은 예배를 대하는 내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책은 신사참배 거부로 유명한 주기철 목사님의 손자이신 주승중 목사님이 평신도를 위해 쓰신 예배학 개론서이다. 책에서는 예배의 의미와 형식을 꼼꼼히 짚어가며 시대의 예배에서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하는지를 알려준다.

 

주를 위한 이곳에 예배하는 자들 중에 그가 찾는 없어 주님께서 슬퍼하시네. CCM 가사에 나오듯이 오늘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함을 알지만, 의미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깨달은 자는 얼마나 될까?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예배는 우리의 뜻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믿음도 역시 주님께서 주셔야 한다. 매일의 속에서 말씀에 대한 묵상이 없다면 진리로 예배드릴 없다. 나는 과연 이런 의미를 분명히 깨달은 상태에서 예배를 드리는 걸까? 성령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하면서 매일 매일 묵상하는가? 부끄럽지만 그렇지 못한 모습을 고백하게 된다.

 

진정한 예배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로 끝나지 않는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세상 가운데서의 우리 삶이 일치되어야 한다.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처럼 교회에서와 세상 속에서 모습이 너무나 다른 자들의 모습이 넘치는 시대이다. 아니 모습도 그렇다. 월요일 아침에 시작되는 모습을 보면 있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새롭게 시작된 주가 너무나 힘들고 귀찮을 뿐이다. 회사에 나가면 어떤가? 말씀이나 기도나 찬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수없는 업무에 파묻혀 허덕대며 하루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하다.

 

책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부분도 적지 않았다. 특히 예배의 형식과 안에 담긴 의미는 모태 신앙이 나도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내용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우리의 예배가 성경과 교회사에서 말하는 모습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인간 생활에서 일어날 있는 가장 중대하고, 가장 시급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라는 바르트의 말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예배가 올바로 세워지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예배를 올바르게 바라볼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영과 진리로, 또한 속에서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야 하는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바라며 책을 읽어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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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명 - 전 세계 100억 인류가 만들어낼 위협과 가능성
대니 돌링 지음, 안세민 옮김 / 알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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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스치듯 만나는 사람의 수는 아무리 많아봐야 만 명을 넘질 못한다. 내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들의 수를 보면 만 명도 참으로 많은 수치이다. 그런데 100억 명이란다. 인류가 2100년에 이르면 100억 명이 된단다. 이 수치도 중간 출산율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만약 예전과 비슷한 정도의 출산율이라면 268억 명에 달할 수도 있단다. 상상해보라. 이 좁아터진 지구에 100268억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이더라도 입고, 자고, 먹고 할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도 비관적인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설명한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말하는 논조는 이것이다. 인간은 위기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훨씬 지혜로워진다는 것이다. UN인구과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출산율이 더 빠르게 낮아지고 있고, 어쩌면 100억 명은 말 그래도 추정치로 남을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자녀가 둘 이상인 가정보다는 하나 혹은 아예 자녀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추세는 거의 대부분의 대륙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 자원이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게 함으로써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지구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소비를 줄여 지구 반대쪽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도움을 손길을 보내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식당들의 자발적 참여와 유니세프를 통한 어린이 후원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른 면에서 출산율을 낮추는 요소들은 이민, 교육 수준의 향상(특히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 등이 있다. 또한 석유 가격의 인상으로 인한 재생 에너지 기술 개발이 더욱 발전하고 있고, 현재 기술로도 세계 인구의 식량 수요를 충족시킬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의 미래가 희망의 정치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이윤 극대화라는 배타적인 탐욕이 아닌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미래의 어두움을 걷어내야 한다. 소수의 부자들이 소비하는 과도한 에너지와 자원을 서로 나누고, 빈곤을 공유하여 출산율과 빈부 격차를 줄이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면서 환경과 에너지를 보호하면서 서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구를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이런 희망의 정치가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기에 우리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인구 증가로 인한 미래의 모습을 도표와 사례 등을 들면서 설명하였기에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결코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비교급 형태를 그대로 번역한 어투가 많아 문장이 어색하다는 느낌이 있어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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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vs 권력 - 중국 역사를 통해 본 돈과 권력의 관계
스털링 시그레이브 지음, 원경주 옮김 / 바룸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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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돈이나 권력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라면....... 중에 아무 거라도 좋으니까 무조건 하나라도 달라고 하겠다. 그렇지 않나?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그런 삶을 산다.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과 권력이 있는 사람은 서로를 어떻게 대할까? 서로 존중해주는 관계인가? 아니면 서로 적대심을 드러내는 관계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 총수가 대통령이라는 권좌를 바라며 대권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거나 권력을 가진 자가 부당한 돈을 받아 결국 권력을 내놓은 작태를 보면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모습이 드러난다.

 

책은 돈과 권력의 관계를 중국의 역사 속에서 밝히고 있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권력을 가진 자와 돈을 가진 자의 다툼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는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펼쳐본 책의 내용은 돈과 권력의 역사를 따로 또한 같이 기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패가망신하는지, 또한 현명한 이들이 권력의 구조에서 빠져나와 사업가로서의 길을 개척해나가는지 하나하나 설명해나간다.

 

중국의 화교가 성립하게 배경은 권력자들의 상인에 대한 배척 때문이었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계층의 최하위층을 차지하는 상인에 대한 권력자들의 경멸은 상인들에게서 보이는 탐욕, 무자비함, 그들만의 세상에 대한 비웃음이자 경고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강남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후에 보이는 모습은 참으로 경이롭다. 권력의 속성을 파악한 상인들은 자신을 숨기는 법을 배운다. 아니다. 정권과 함께 남해안 일대에 걸쳐 이룩하는 해상왕국이나 동남아 각지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상인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이들의 본보기가 만하다.

 

5 년의 중국 역사는 권력과 돈이 서로 어우러져 이루어간 역사이다. 하지만 저자의 시각은 권력보다는 돈에 조금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돈은 가지 결함을 해결한다는 표현이나 권력의 무상함 속에 살아남는 돈의 속성을 강조한다는 , 무엇보다도 중국의 화교가 이룬 경제력으로 오늘날의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돈이 지닌 힘을 강조한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권력과 돈은 수레의 바퀴처럼 오늘도 서로를 마주보며 세계 곳곳을 굴러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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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송복 지음 / 시루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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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거리를 한바탕 후에 옷깃을 여미게 !!!

 

학창 시절에 배웠던 국사는 그저 암기 과목일 뿐이었다. 역사적 사건을 총체적으로 있는 안목을 키우는 시간이라기보다는 그저 년도에 사건이 일어났는지, 기억해야 사람은 누구인지, 사람은 어떤 업적이 있는지, 그저 외울 것만 넘쳐흘렀다. 내가 배우는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전혀 필요치 않았다. 그렇기에 율곡의 10 양병설을 당연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초반부에서 저자는 율곡의 10 양병설의 진위를 따지며 후손에 의한 역사 왜곡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xx. 도대체 배웠던 거야? 라는 욕지거리라 불쑥 솟아올랐다. 그런데......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읽을수록 울화가 치미는데 도대체가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아무리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독립된 주권 국가인데 이게 말이 되는가 싶었다. 한참을 멍한 상태로 있었다.

 

이제부터 책을 읽고 한바탕 욕지거리를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선조와 조정의 중신이라는 인물들부터 살펴보자. 왜놈들이 쳐들어와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밀고 들어오자 의주로 피신했던 선조와 조정의 중신이라는 인물들의 머릿속에는 명나라로 도망가 곳에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있었다. 나라의 왕이, 그것도 전쟁 중인 상태에서 국가도 백성도 필요 없고 오로지 자신의 왕권 유지를 위해 다른 나라로 들어가 독립국의 지위를 버리겠다고 했으니 어찌 열불이 솟지 않을 있을까? 선조는 자신의 군사도 백성도 믿지 않았다. 오로지 명나라, 명나라 군사에게만 목을 매고 있었다. 조종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과 관련해 명에 행한 변명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기대도 이들에게 남아있지 않는 모습, 아니 조선 백성의 모습을 수밖에 없었다.

 

가지 살펴보자.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병사들에게 무기를 지급할 없었단다. 뿐만이 아니다. 장수들에게 녹봉을 지급하지 못했단다. 아니, 먹을 것도 없고 싸울 무기도 없다면 도대체 전쟁은 어떻게 있단 말인가? 이처럼 어이없는 모습에 어찌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있을까?

 

이렇게 열불이 나는 상황 속에서도 옷깃을 여며야 했던 이유는 조선에 류성룡과 이순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너무나 아는 인물이고 책에서 말하는 주인공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류성룡에 대해 내가 알았던 지식은 이순신을 발탁한 인물이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류성룡이 땅에 없었다면 과연 지금 나는 자주 독립 국가인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임진왜란에서 류성룡이 이룩한 업적은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조선을 배제한 이루어진 명과 왜의 강화 협상을 저지한 이도, 나라고 백성이고 모두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치려 선조를 막은 이도,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군량을 마련한 이도, 군제를 개편해 정병을 만들어 나라를 살리려고 했던 이도, 이순신을 발탁해 수군을 담당하게 이도 모두 류성룡이었다. 무엇보다도 조선이 명에 의존하지 않고 자강,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후손들의 자의식을 깨우고자 했던 <징비록> 집필한 이가 바로 류성룡이었다.

 

책은 자강을 외쳤던 류성룡의 질타를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다시 들려준다. 스스로 일어나라고, 그리하여 나라를 다시 강하게 일으켜 세우라고. 그것은 단순히 전투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세워야 것이 결코 물리적인 힘만은 아닐 것이니.

 

마지막으로 책을 여든의 노학자 송복 교수님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땅에 이렇게 멋지고 위대한 선조가 있었음을 깨우쳐준 노고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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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팡세 - 기독교를 위한 변증 Echo Book 3
블레즈 파스칼 지음, 조병준 옮김 / 샘솟는기쁨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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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이 유명한 말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의 연약함을 갈대로 표현했다면 생각한다는 표현으로 인간의 위대함을 이야기한 파스칼. 그의 유작인 팡세는 기독교 변증을 위해 쓴 924편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원작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924편의 글 중에서 기독교 변증에 초점을 맞춘 342(옮긴이는 364편이라고 썼으나 오타인 듯^^)12개의 주제로 분류한 작품이다.

 

사실 기독교 변증이라고 하면 상당히 어렵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간을 향한 사랑을 증명해야 하다 보니 너무 광범위하기도 하고 용어 자체도 상당히 난해하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도 쉬운 책은 아니었다. 342편의 글 하나하나를 눈으로 읽고 그냥 이해하기에는 함축적 의미, 중의적 해석이 담긴 문장들이라 가볍게 읽고 책장을 넘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각각의 주제마다 주제와 관련된 QT라는 글을 담아 일반 독자들이 파스칼의 생각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였으며, 중간 중간 삽화로 글의 내용을 표현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무엇보다도 12개의 주제를 명쾌하게 설명한 짧은 문장들이 눈에 띈다.

 

파스칼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을 이야기한다. 뒤집어보자면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니 과연 사람들이 철저하게 자신의 비참함을 느낀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하고 반문하게 되었다. 파스칼이 비참함이라고 표현한 내용은 결국 인간의 죄인됨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세상의 자랑에 빠져 천성적으로 사악한 존재. 자신의 노력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룰 수 없는 존재. 미래나 구원을 바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또한 얼마나 크나큰 축복인가?

 

신앙은 개인적이라 다른 이들의 믿음이 어떤가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 신앙은 또한 함께 하는 것임을 깨달은 후부터 다른 이들의 믿음과 생각을 들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수백 년 전 천재라고 불릴만한 팡세의 신앙적 고백과 변증은 계속해서 곱씹어 보아야 할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내게 신앙과 관련해 또 다른 사고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고마운 책이었다.

 

파스칼의 팡세는 기독교인에게만 유용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분명 인간의 본성에 대한 파스칼의 깨달음을 담은 책이기에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의 본성에 대해, 우리의 가치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을 통해 기독교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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