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
정재영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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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렸지만 어렸을 때는 여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동네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려고 해야 모를 수가 없었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하면 굿을 하는 집들이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기독교인인지라 굿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몰래 가본 적이 있었다. 소리에 맞춰 방울을 단 칼을 흔들며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상당히 낯설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정재영의 소설 <바우>는 저자의 단편 8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지금은 보기 힘든 옛날 일들이 많이 있었다. <>라는 작품에 묘사된 산당굿은 지금은 자주 볼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떠올리기에 충분할 만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또한 <바우>에서 나오는 동짓달 팥죽도 어렸을 때 즐겨먹던 팥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팥이 좋다는 이야기에 팥죽 전문점이 생기는 추세지만 그 옛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팥죽만 할까? 특히 빼대기라 불리던 고구마 말린 것을 넣은 팥죽은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풍미를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8편의 작품들에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혹은 변해버린 옛 정취가 많이 담겨있다. 또한 문학평론가 신호님의 말처럼 이 작품들에는 토박이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도 있지만 구수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표현들이 너무나 정겹게 다가온다.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동지섣달 꽃 본 듯이>에는 40년 만에 만난 동창들 사이에서 보여주는 따뜻함과 푸근함이 넘쳐난다. 요즘 밴드를 통해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경험 때문일까?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함께 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즐겁고 편안했던 시간들을 작가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함께 사는 길과는 완전히 달라 보이는 작품도 있다. <그 여름의 잔해>에서 보이는 토종벌과 양벌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우리네 삶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몸통도 크고 색깔도 완연히 다른 양벌이 토종벌의 벌통을 빼앗으려 드는 모습은 우리네 서민의 삶을 빼앗으려 드는 무언가가 떠오른다. 결코 함께 살고자 하지 않는, 모든 것을 빼앗으려 들기만 하는 그런 존재.

 

작가의 말처럼, 소외된 인간들을 관심과 애정으로 살피는 길, 그 길이 바로 우리가 함께 사는 길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길이 결코 작가의 길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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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소재원 지음 / 마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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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다. 순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순정 :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pure love).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책에서 느낀 감동을 이어갈 수 없었다. 서수철 할아버지와 오순덕 할머니의 평생을 이어온 사랑, 순정. 영혼으로 이어진 그들의 삶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먹먹하고 애잔한 색상으로 물들이고 말았다. 나라면 결코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사랑, 순정에.

 

두 사람의 사랑이 따뜻함과 애틋함을 불러일으키면 일으킬수록 또 한편에서는 눌러도 눌러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 분노의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던 일제의 만행은 아무리 용서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아니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를 구하는 자가 없으니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요즘 일본의 일부 극우주의자들이 보이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더 분노했던 것은 우리의 역사를 잊어버린 바로 내 모습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하고 힘들었던 삶, 그 삶을 후세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참한 마음으로 알려주었던가? 소록도, 그저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시킨 지역으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아름다운 장소로만 생각했던 그 곳.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일제의 핍박 속에서 실험도구로 사라져 갔는지 전혀 알지도 못했다. 이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책 제목, 그 날은 언제일까?

일제 강점기 하의 그 날,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아픔으로 뒤덮인 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날,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의 슬픈 역사를 알리고자 했던 매일 매일의 그 날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서수철 할아버지와 오순덕 할머니가 다시 만나는 그 날,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는 그 날, 선조들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어린 삶을 모든 후손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그 날을 말하는 걸까?

 

욕봤다” “욕봤소


아마 내 평생에 결코 잊지 못할 단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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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 THAAD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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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진명님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현실과 소설 속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면서 다른 모든 시간과 공간은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것을 허구의 소설로만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정말 팩트로 받아들여야 할까?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이전부터 많이 들었던 얘기다. 국가 경제력이 G2로 올라서면서 중국은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를 위안화로 대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미국은 적자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자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며 이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달러 약화로 인한 미국 경제 및 세계 경제의 동반하락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또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의 묵인 하에 우경화의 길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암시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정말로 현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변호사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3년 째 취직도 하지 못하던 최어민은 식당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김윤후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개업을 한다. 세계은행 직원인 리처드 김의 의뢰를 받아 그의 어머니를 보살피던 최어민은 미국으로 돌아간 리처드 김이 의문의 살해를 당하고 이를 파헤쳐달라는 어머니의 피맺힌 절규에 결국 미국으로 건너간다. 최어민은 미궁에 빠진 리처드 김의 살해 사건을 조사하면서 MD(미사일 방어망)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싸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싸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한반도에 설치하면 중국의 대륙간탄도탄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싸드를 설치하면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설치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진다. 두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

 

소설 속 태프트 리포트도 상당히 흥미롭다. 채동욱,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김문수, 윤상현 등 오늘날 야당과 여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차기 대권에 대한 가능성을 분석하면서 각 인물들의 이전 움직임과 성향을 분석한 내용이 꽤 날카롭고 현실적이다.

 

미국은 과연 우리나라의 영원한 우방일까? 일본의 우경화를 은근히 지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 당시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중국은 또한 어떨까? 폐쇄적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인 밀려드는 자유화의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중국의 예측처럼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까? 과연 중국은 북한 대신 우리나라를 선택할 수 있을까? 중국이나 미국 모두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영원한 타인일 뿐이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겐 어떤 지혜가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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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양장)
배병삼 지음 / 사계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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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그 중에서도 동양의 고전이라고 하면 왠지 고리타분함의 전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의 삶과는 별반 관계가 없는 그저 그런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논어가 시험을 위한 책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이런 편견을 가졌던 이유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논어의 문장들 때문인 것 같다. 문장의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보는 대신에 그저 음독은 어떻게 되는지, 한문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만 암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례로 이 책 1장에 나오는 학이편의 제11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자원방래하면, 불역열호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라는 문장을 흥얼거리며 외웠지만 그 뜻만 대충 알 뿐 문장 속에 담긴 깊은 의미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고전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고전을 모르면 능력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에 대한 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너무 많은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오히려 선택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인지 성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000/ 00대학 추천 필독서 등 고전을 추려서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이런 추천 도서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책이 바로 논어이다.

 

논어는 다 알다시피 공자의 사상,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지만 한문이나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요즘은 한자 검정 시험이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한자를 잘 알기도 하지만)이 원문 그대로 읽고 이해하기에는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고민하던 저자가 내놓은 책이 바로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이다. 이 책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논어라는 제목이 주는 무게감이 사라졌다. 내용의 무게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장이나 의미가 이해하기 쉬운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기에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는 논어의 문장을 처음부터 한문으로 보여주는 대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해석부터 보여주며 그 뜻을 음미하게 한다. 그러면서 뜻에 대한 해설을 가벼운 논조로 경쾌하게 시작한다. 마치 장난치는 듯한 글쓰기로 흥미를 유발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게 될 때쯤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을 넘어 각 문장에 담긴 내용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설명한다. 또한 각 주제에 맞는 문장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독자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20편에 담긴 내용은 우리에게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얘기도 있고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인간의 도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분명한 것은 20편에 담긴 이야기는 죽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 숨을 쉬며 우리의 같이 호흡하기를 바라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올바른 사람의 길을 걸어가도록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는 이정표와 같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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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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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지상주의라는 말이 우리 주변에서 끝없이 떠돌던 때가 있었다. 이는 결코 과거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성형국가라는 말처럼 고등학생들마저 때가 되면 성형수술을 당연시 하곤 한다. 내면이니 마음이니 하는 말은 그대로 말뿐이다. 그렇기에 얼굴에 흉터가 있다면 사람들은 혹은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스스로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양선화. 얼굴에 화염상모반이 있는 여자.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흉터를 찾아보는 그녀. 자신의 흉터로 인해 세상과의 삶이 끊어진 듯한, 아니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의 관계조차 뒤틀려버린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타인의 흉터를 빤히 쳐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건 얼굴의 화염상모반 때문이었다. 누구든 상처가있다.(p.18)


언니만 싸고도는 할머니, 할머니의 말에만 전적으로 순종하는 아버지, 자신을 병신이라고 놀려대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언니, 자신을 보듬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지만 선화가 언니에게 상처를 입힌 이후로 선화를 멀리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엄마. 선화는 이미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입을 만큼 입었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와 자신과 있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언니라는 존재, 이런 언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할머니와 아버지, 자신 때문에 생긴 언니의 상처 때문에 모든 것을 양보해야만 하는 상황은 가족을 떠나 자신만의 삶을 살도록 그녀를 계속해서 밀어내기만 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과 관계를 맺을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선화는 결국 자신만의 세계인 꽃집에 틀어박힌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병준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 그러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와 언니의 각박한 삶에 다시금 발을 서서히 담그기 시작하고, 자신은 몰랐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팠던 상처가 아물어가며 새살이 올라오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은 짧지만 많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와 조금 다르다고 쉽게 상처를 주고 따돌리는 행동이 얼마나 상처를 상대방에게 주는지, 혹은 그녀의 삶을 얼마나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존재가 때로는 어떻게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는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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