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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조지 손더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이번 달에는 평상시 들어보진 못한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읽었다. 그것도 단편집으로만. 이복구의 <맨밥>과 조지 손더스의 <12월 10일> 바로 그 작품들이다. 특이하게도 두 작품 모두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다. 아마 <맨밥>은 죽음과 현대인의 상실감을 표현하였고 <12월 10일>은 기묘한 인물들의 기묘한 이야기들(손더스의 작품에도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을 표현하면서 둘 모두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맨밥>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달리 <12월 10일>은 어두우면서도 그 속에 유쾌함과 즐거움을 느낄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담겨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의도적인 오자나 약품명으로 쓴 단어들을 보면 조지 손더스라는 작가가 상당한 장난꾸러기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유쾌함과는 달리 작품의 내용은 오히려 무겁게 느껴진다. 인간이고 싶어 하는, 너무나 평범한 인간이고 싶어 하는 이가 결국은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이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는 아이의 모습은 또 왜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슬퍼 보이는지? 일을 하기로 하고, 그 일을 잘하기로 동의하지 않았느냐는 직장 상사의 은근한 목소리는 또 얼마나 공포스럽게 들리는지? 죽음을 결심한 이가 누군가를 구하려 하는 모습이 주는 감동은 또 얼마나 따뜻했는지?
보다 보니 모두가 다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낯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직장에서 느끼는 압박감이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또한 타인의 아픔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이나, 어쩌면 우리 모두에 마음속에 담긴 정체모를 악한 본성까지, 우리네 평범한 이들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손더스의 작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가 보다. 기묘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은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니 말이다.
평소 단편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손더스의 작품들이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0편의 짧은 이야기가 이렇게 무겁고 즐거울지 미처 몰랐다. 한 장 분량의 짧은 이야기에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그래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니. 손더스의 다른 작품들은 얼마만한 무게로 다가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