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한국사를 조작하고 은폐한 주류 역사학자를 고발한다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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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이목을 끈다. 이 책의 지은이 이주한은 숭실대 사학과를 나와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역사 비평가로 활동중이다. 이주한의 저서 <노론 300년의 비밀>을 통해 나는 이미 그의 성향을 충분히 파악했고, 그가 구구절절 들려주고픈 이야기에도 충분히 공감한 바 있다.

이 책은 특별히 일제 식민사관의 아류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잡아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포커스를 잡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가 종식을 고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식민사관을 논하는 데에 불만이 제기될 법도 하지만 실상을 좀더 들여다 보면 우리의 주류 사학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식민사학의 폐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왜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한 것일까. 도대체 우리 국민 중에 내 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이가 얼마나 된다고 거창하게 나라의 흥망성쇠까지 들먹이는 것일까. 경제 상황은 갈수록 암울해지고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는 현실에서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 따위가 무슨 대수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많겠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자긍심을 갖지 못한다면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눈부신 성장 신화도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말 지 모른다. 역사를 배우고 기억함으로써 한 민족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견고히 하지 못한다면 세계화의 광풍 속에 또한번 속박과 타율의 비극에 나뒹굴어야 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정의가 불의를 이기지 못했고, 상식이 몰상식을 넘어서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가 지배권력에 빌붙어 독립 운동가의 후손을 고문하고 억압했던 부조리가 판쳤다.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 부끄러운 과거를 말끔히 청산할 수 있었던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린 뼈아픈 역사가 불과 수십년 전의 일이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 산하에서 우리 역사를 철저히 왜곡했던 조선사편수회의 주축들이 해방 이후 한국 주류 역사학계로 승계되어 현재까지 한국사를 은폐하고 조작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고조선(단군)의 실체에 대한 인식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임라일본부설을 둘러싼 논점들이다.

이주한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단군을 하나의 신화로 치부하고 고조선을 역사적 사실에서 철저히 배제하려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단군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 세력인 위만과 기자을 한국사의 기원으로 삼음으로써 타율성과 사대성이 한민족 고유의 DNA였다고 부지불식간에 인식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한사군의 위치를 대동강 유역과 한반도 북쪽으로 비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역사적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교과서에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고 배웠다. 교과서에서는 중국의 우수한 철기 문화가 한반도에 유입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문화적, 경제적 수준이 발전했다고 기술함으로써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학적 역사관을 심어주는 데 앞장섰다.

이것이 일본인 스승에게서 그릇된 식민사관을 배운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로 끊임없이 이어진 우리나라 주류 사학의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 왜곡과 조작을 이른바 '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치장했고, 학계에서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해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국수주의자로 매도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중국 또한 자국의 영토 내 존재했던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이 합심해 주변국과의 역사 전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주류 사학계는 식민 사관과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다.

이대로 간다면 한중일 세 나라가 펼칠 '역사 삼국지'의 결말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그리고, 그 결말이 가져올 엄청난 후폭풍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지금 우리는 견고한 주류의 틀을 깨고 합리적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보다 큰 미래를 위해 주식과 부동산, 토익 점수에만 매몰되어 버린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고 새로움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바로 그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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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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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풍운은 많이 일고
해와 달은 사람을 급급하게 몰아붙이는데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1910년 12월 30일 밤. 불혹을 훌쩍 넘은 나이에 접어든 우당 이회영은 여섯 형제와 함께 전 재산을 팔아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다. 편안한 앞날이 보장된 고국을 떠나 북풍이 넘치는 국경을 넘어야 했던 우국지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개인의 안위 보다는 국권 회복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신념의 바탕이 무엇이었을 지 새삼 궁금해진다.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2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처분하고 망명길에 올랐지만 그의 앞날은 가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부었지만 정작 자신은 중국의 빈민가를 전전해야 했던 아버지를 지켜봤던 아들은 "일주일에 세 끼를 먹으면 잘 먹을 정도였지만, 궁핍이 아버지의 독립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고 회상했다.

흔히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고 해서만 그를 칭송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작 우리가 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가 바라고 꿈꿨던 독립된 조국의 모습이 어떠헀는 가를 살펴봐야 한다. 그가 평생 열망했던 것은 단순한 조국의 독립이 아니라, 누구도 억압하지 않고 누구도 억압당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누구나 평등하게 함께 어울려 사는 대동세상이었던 것이다.

우당 이회영은 일본 관동군 사령관을 암살하기로 하고 상하이에서 다렌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결국 예순 여섯의 나이로 1932년 11월 17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식민지를 벗어나 독립을 이룬 지 벌써 일흔 해가 다 되어가지만 정작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만인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고, 공평하게 행복을 누리며,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될 수 있는 사회, 지배 없는 세상, 억압과 수탈이 없는 세상'이 독립된 대한민국에 실현되고 있는 지 다시 한번 살펴 볼 일이다.

EBS와 국사편찬위원회가 공동기획했던 EBS 역사채널e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진 역사e에는 앞서 얘기했던 우당 이회영을 시작으로 총 21편의 에피소드가 담겨져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세 가지 파트로 나뉘어진 각각의 에피소드 들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혹은 알면서도 미처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들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잔혜 속에서 무엇을 캐내고, 켜켜이 쌓인 먼지를 닦아내 무엇을 바라볼 수 있을 지는 순전히 우리에게 맡겨진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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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 백석 시집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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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이후 시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게 백석의 시 한편은 놀라움이었다. 한편으론 신선함이었고 쓸쓸함이었으며 결국은 안타까움만 남았다. 마음을 다치고서도 그의 시집을 사고야 말았던 것은 백석이란 시인의 신비로움에 이끌렸던 탓이 크지만 그가 쓴 다른 시들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하는 궁금증도 컸었다.

사실 시를 잘 모른다. 좋은 시를 쓰는 것은 애시당초 꿈도 꾸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인의 멋진 시를 제대로 읽어내는 능력 또한 만무하다. 그럼에도 호기롭게 백석 시집을 손에 넣고야 만 무모한 열정에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끝을 알 수 없는 갈증과 결핍이 계속 나를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백석으로 더 알려졌지만 그의 본명은 백기행.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고보와 일본의 아오야마 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했다는 것이 그의 간단한 약력이다. 1935년 조선일보에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해방 이후 고향에 머물다 1995년에 사망한 것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이 시인 백석에 대한 정보의 모두다.

주로 이북에서 활동했던 탓에 백석이란 존재가 '오랫동안 현대시사의 광상 속에 매몰되어 있다가 뒤늦게 발굴된 보석'처럼 빛나게 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정본 백석 시집>을 펴낸 고형진은 백석의 시가 지상의 진열대 위에 놓이면서 찬란한 빛깔과 광택을 지닌 보석으로 광채를 뿜기 시작했다며 그의 시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시에는 문외한인 나로서는 고형진이 얘기하고 있는 백석의 시세계와 시사적 의의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긴 어렵다. 하지만 백석의 시들을 한편 두편 읽어가노라면 "지용이 우리 시에 최초로 현대시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놓은 시인이라면, 백석은 그 생명체에 다양한 조직과 기관을 이식시켜 활발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시인"이라는 그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도 첫 정이 무섭다고 하지 않았던가. 수십여편의 시를 읽어봐도 내게는 백석의 첫 시였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가 역시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줄 만 하다. 왠지 이 시는 나와 같은 백석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다. 애잔해서 좋고 쓸쓸해서 좋고, 또한 외로워서 좋다. 백석처럼 나 또한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난 것은 아닐까.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울력하는 듯이
눈길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널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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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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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여전히 이병률스럽고, 내노라하는 10명이 쓴 글 또한 그들답다. 2012년 11월에 출간된 <안녕 다정한 사람>이란 책은 은희경, 김훈, 신경숙, 백영옥, 이병률 등 이름만으로도 독자들을 압도하는 글쟁이들은 물론 박칼린, 이명세, 장기하, 박찬일, 이적 등 끼와 재능이 넘치는 예술쟁이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남긴 여행의 기록들이다.

'여행'이란 단어는 언제나 날 흔들어 깨우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은 그 시간대로, 여행지에서의 순간 순간은 또 그나름대로,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 온 후의 추억은 또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사실 의미가 없는 시간이란 것이 있을까. 그저 사람들이 그 시간들을 어제와 같은 오늘로 방치해 두지만 않는다면 나름의 독특한 의미로 누군가의 삶에 쌓여 화석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겐 화사한 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병률. 그 남자가 부럽다. 열 명이 여행을 떠나는 프로젝트에 모두 동행하고, 그들의 짧은 일상 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으니까. 깊이가 느껴지는 그의 글, 건조한 듯 하면서도 독특한 감성이 느껴지는 그의 사진을 보며 하늘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소설가 은희경은 와인이라는 애인에 흠뻑 취하러 호주에 갔다. 영화감독 이명세는 콰이강의 다리에 올라 새로운 영화를 디자인 했다. 시인 이병률은 12월의 핀란드를 찾았고, 소설가 백영옥은 중경삼림의 배경 홍콩에서 열아홉 살의 꿈을 맛보았다고 했다. 이렇듯 열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행선지를 찾아 지구별을 누볐고 그 여정은 이병률의 사진 속에 담겨 이렇듯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해외를 나가 본 것이라곤 의도치 않았던 중국 여행이 유일한 지라 아직까지도 해외 여행기에 대해선 끌리는 맛이 덜하다. 물론 단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아직도 난 언제든 마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우리땅의 숨겨진 보물들에 더 끌린다. 그것 또한 여행의 재미라고 할 지 모르지만 이름 모를 외국의 공항에서 기약없는 밤을 지새거나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래도 이 책에 소개된 열 곳의 여행지들은 은근 매력적이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나만의 해외여행 일정을 미리 짜두는 것도 재미날 것 같다. 벌써 머릿 속 상상의 나래가 한없이 펴져 저 먼 캐나다의 어느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는, 밤 하늘을 수놓은 오로라가 선보이는 빛의 향연에 흠뻑 젖어 있는 나를 멀찍이서 바라본다. 나에게 여행이란 도대체 뭘까?


은희경에게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

이명세에게 여행은 책상을 걷어차고 이미지 만들기

이병률에게 여행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

백영옥에게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도돌이표

김훈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

박칼린에게 여행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

박찬일에게 여행은 좋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

장기하에게 여행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타게 된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이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

신경숙에게 여행은 친숙한 나와 낯선 세계가 합해져서 넓어지는 일

이적에게 여행은 현실을 벗어나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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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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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는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가 있다며 독자들을 유혹한다. 난 솔직히 멋지게 나이 드는 것 까진 바라지 않는다. 이근후 교수처럼 멋진 노후의 삶을 보낼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늙어 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손가락질을 받는 노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정도는 한다.

또하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는 책에 이끌리게 된 것은 어느새 불혹의 나이를 성큼 넘어선 나 또한 자연스럽게 늙어갈 것이고 종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인데 하루라도 조금 빨리 그 준비를 해 나가는 편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 요구 때문이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듦에 대해 거부감을 보인다.아름다움의 반대가 추함인 것처럼, 선악의 대비처럼 늙고 병들어 가는 자신을 이야기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지독스럽게 싫어한다.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고 선(善)인 반면, 늙음은 그 자체로 추한 것이고 악(惡)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젊음과 늙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젊음과 늙음이라는 것 자체가 생각의 차이다. 물론 생물학적인 젊음과 늙음의 구분은 가능할 지 모른다. 2-30대의 청춘까지가 젊음이라고 좁게 구분한다면 그 나머지 인생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미 지나가버런 청춘을 덧없이 추억하고, 하루하루 나이들어가는 삶을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평균수명이 80세에 가까워진 요즘이라면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죽음의 위기를 몇 차례 넘기고 지금도 일곱 가지 병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늘 유쾌하게 살아가는 노학자 이근후 교수의 삶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엿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서서히 늙음과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이 땅의 중년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늙고 병들어 있더라도 삶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일단 그들은 쉬 철들려 하지 않는다. 피부는 탄력을 잃어가고 주름은 깊게 패여가지만 가슴 속에는 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그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얘기한다. "아직까지 나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노라고.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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