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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양장) - 전정판
B. 파스칼 지음, 김형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5년 5월
평점 :
그 맥락도 정확히 모른채 여기저기 인용되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구의 출처인 파스칼의 <팡세>는 파스칼이 죽은 뒤 발견되어 유족과 출판업자들의 손을 거쳐 1620년 발간되어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고전이 되었다. 하지만 파스칼의 <팡세>는 읽기 어렵다. 이는 내용이 난해하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퍼져있는 듯한 단편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도 관련이 있다. 판본마다 다르지만, 대략 1000여 개의 단편들로 구성된 <팡세>는 그간 체계성이나 논리적 구성이 없다고 여겨져왔다. 기승전결로 연결된 스토리가 없다 보니, 이 책은 통일성이 없어 보이고 읽는 순서 상관없이 아무곳이나 펼쳐도 되는 것 같으며, 파스칼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새로운 사본의 발견과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파스칼이 <팡세>의 전체적인 구상을 기획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대 중요한 사본은 크게 제1사본과 제2사본으로 나뉘는데, 1사본을 저본으로 한 것이 라퓌마 판이고 2사본을 저본으로 하여 편집된 판본이 셀리에판이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출간한 <팡세>는 이 셀리에판을 번역한 것인데, 역자에 따르면 제2사본이 제1사본보다 더 정본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참고로, 라퓌마판을 번역한 것이 민음사판 <팡세>다). 제1사본은 편집자와 필사자 등에 의해 가필정정이 이루어져 훼손된 반면, 제2사본은 유족들의 정성어린 간수에 의해서 완전한 원형에 가까운 보존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판본이 중요한 이유는 미분류된 단편들을 가장 적절하게 보이는 순서로 배열되어 있으며, 가장 적절한 질서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판본들의 발견으로,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가 무질서하게 배열된 파편들의 뭉치가 아니라 파스칼에 의해 어떤 내적 질서가 존재함을 알 수 있고, 이로써 파스칼의 메시지 또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파스칼의 질서"란 무엇인가? <팡세>는 다양한 신학적, 철학적 논쟁을 담은 글뿐만 아니라, 기적, 은총에 관한 글, 기도와 명상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여러 주제를 다루는<팡세>의 단편 중 8할 이상은 '기독교 호교론'과 관련이 있다. 파스칼은 두 번의 회심을 겪으면서 죽을 때까지 철저한 복음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런 "파스칼에게 있어서 '호교론'이라는 말은 <팡세> 속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옹호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 작성된 내용들'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용어이다." <팡세> 전체는 호교론적인 구상으로 내용이 채워져있다. 이는 "1658년 6월의 계획"에 드러나 있다. 제1장 40편은 그가 어떤 식으로 기독교를 설득할지에 대한 단계를 예고하고 있다.
"제1부. 신 없는 인간의 비참
제2부. 신과 함께하는 인간의 행복
혹은
제1부. 본성이 타락하였다는 것
제2부. 회복자가 있다는 것. 성서에 의해서."
여기서 '비참'과 '행복', '신 없음'과 '신과 함께'이 대립구도로 설정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파스칼이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기독교야말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파스칼이 미완으로 남겨둔 채 사망하는 바람에 결국 온전하지는 않지만, 다른 단편들도 이러한 계획에 따라서 분류하려고 했다. 이러한 구도에 따라 총 28묶음으로 이루어진 "1658년 6월의 계획"은 1부 11묶음, 제2부 17묶음으로 분류된다. 파스칼의 구도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1부는 "신없는 인간들'에 관한 실존적인 연구에 해당하며, 나머지 17개의 묶음들은 이들을 '신과 함께하는 인간들'로 변화시키는 호교론적인 노력에 해당한다." 인간은 왜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신 없이 비참한 상태에 있는가? 인간의 본성이 원죄와 죄로 인하여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비참하다. 비참함을 이기려면, 신과 함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회복자")가 속죄자로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악을 대속하였고, 그것이 성서에 의해서 확신되어 있으므로 신과 함께하는 상태는 인간의 행복이다. "신앙이 없는 인간은 진정한 선도 정의도 할 수가 없다는 것. 모든 인간들은 행복해지는 것을 열망한다"로 시작하여 "신만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11장 "최고선"이 이 책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매우 유사한 얼개를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파스칼을 아우구스티니안(Augustinian)으로 규정한 필립 셀리에의 말은 새겨볼 필요가 있으며, <팡세>를 읽는 데 중요한 부분을 지적한다. "이 명언들은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기독교, 즉 거의 1,500여 년 동안 서양 세계를 지배해왔던 하나의 세계관 내지는 역사관을 제시해주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삶을 신학적 관점에서 회고적으로 성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인간의 비참함과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 인간의 평안과 행복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영혼이 당신을 등질 때에는 외도를 하는 것이고, 당신을 떠나서 순수하고 청정한 것을 찾더라도, 당신께로 돌아가지 않는 한, 결코 찾아내지 못합니다."(<고백록>, 성염, 2.6.14) 그는 하나님을 회복한 삶이 인간의 본래적 삶임을 보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고백록>에는 유려한 필체로 세상사의 온갖 질곡을 겪으며 좌절하는 인간의 실존이 묘사되고, 그 유한함의 끝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파스칼을 아우구스티니안으로 규정한다고 했을 때는, 신을 떠난 인간의 비참과 신과 함께하는 인간의 행복을 논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볼 때, <고백록>을 읽고 <팡세>를 읽는다면(혹은 그 반대라도) <팡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옮긴이의 해설을 나 나름대로 정리한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팡세>란 책을 규정할 수 있다. 이 책은 명언 모음집이 아니다. 저자가 의도한 순서와 목적이 있다. 이 책은 우선 매우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기독교 서적이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팡세>는 인간의 비참함과 인간의 행복을 말한다. 인간이 자신의 비참함, 즉 인간의 유한성을 알게 될 때, 그가 멈춰 선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이것이 그의 행복이 된다. 이것이 '생각하는 갈대'라는 단편이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인간은 미미한 갈대와 같은 비참한 처지이지만, 그 갈대는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가워진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이러한 '생각하는 갈대'의 테제는 <팡세> 전체를 통해 파스칼이 의도하였던 바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팡세>를 읽으면, <팡세>를 아주 새롭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7. 위대, $145
생각하는 갈대
내가 나의 존엄성을 찾아야 하는 것은 결코 공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조절함으로써이다. 내가 더 많은 당을 소유한다고 해서 더 우월한 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간에 의해서 우주는 나를 포함한다. 그리고 나를 하나의 점인 것처럼 삼켜 버린다. 그러나 나는 사고에 의해서 우주를 포함한다."
"$146
인간의 위대성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 있다. 나무는 자기가 비참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