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만 해도 300페이지에 가까운, 1094항이라는 방대한 헤이그 판결은 ‘위안부‘ 문제의 집대성, 국제법의 새로운 고전, 페미니즘 사상의 결정판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평가를 받는 훌륭한 내용이었다. 이 판결의 특색은, 우선 첫째로 ‘민중법정‘의 사상적 실천적 의의를 명기한 것이다. "민중법정 같은 건, 어차피 강제력은 없지 않나,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이냐."라는 비판에 "이것은 하나의 판단을 나타내는 것이며, 형을 집행시키거나 국가에게 보상하게 하는 강제력이 없다고 해서 이 판단이 무효인 것은 아니다. 민중의 힘으로 일본 정부에 이것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민중법정의 사상을 확실히 나타냈다. - P245

지금까지 남성 중심이었던 국제법에 여성의 관점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젠더 정의‘ 사상이 판결문에는 명확하게 들어갔다. 재판관 중에서도 특히 크리스틴 친킨은 국제법을 젠더 관점으로 전면적으로 새롭게 개선하자는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생각이 판결에 확실하게 녹아들어 갔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의 국제 법정에서는, 전시 성폭력이 피해자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극단적인 경우는 적에게 강간당한 딸을 가족의 불명예라고 해서 아버지가 죽이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전시 성폭력은 피해자 여성 자신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 P247

민중법정의 사상, 젠더 정의에 이어서 최종 판결의 세 번째 특색은, 이 ‘법정‘이 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글로벌한 관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노예제의 책임을 일본 정부에만 부과한 것은 아니다. 우익 등은 "왜 일본만 책망하는가?"라고 했는데, 헤이그 판결은 일본 정부에 주된 책임은 있지만, 구 연합국의 책임까지 확실하게 밝혔다. ‘위안부‘ 제도의 존재를 미국이든 연합국이든 알고 있었다. 압수한 일본군의 방대한 자료, 포로가 된 일본 병사와 일본군이 도주한 후에 남은 ‘위안부‘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그들은 ‘위안부‘의 존재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쿄재판에서 다루지 않았다. - P248

판결의 네 번째 특색은, 이 ‘법정‘이 도쿄 재판의 연장이라고 명언한 것이다. 우선 도쿄 재판에서는 최고 책임자인 천황을 소추하지 않았다. 이것이 전후 책임 문제에서 얼마만큼 마이너스의 영향을 주었는가. 그 때문에 천황의 명령으로 움직인 군인, 병사들의 전쟁 책임의 소재도 결국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때 늦은 정의‘라는 말이 있듯, 도쿄 재판의 결함을 분명히 한 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P249

헤이그 판결의 다섯 번째 특색은 미래로 이어지는 새로운 사상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전시성폭력의 불처벌을 없애가자.‘는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그것을 더욱 전진시키는 데 공헌했다. - P249

그것은 피해자가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낸 것으로 시작된다. 또 가해국 여성이 그 목소리에 부응하여, 피해국만이 아니라 제3국 여성의 지지까지 얻어 정말 글로벌한 여성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국제법을 국가 중심에서 시민의 손으로, 남성 중심에서 여성으로, 현재 중심에서 과거와 미래로 확대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헤이그판결이 역사를 바꾼 큰 발걸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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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주의 외 고전의세계 리커버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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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라는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것도 있고, 주변에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읽기는 읽었는데, <인간 실격>은 제정신이 아니라 중간에 관두었고, <마음>도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아 중간까지 읽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작품을 읽을 때는 먼저 작품 해설을 먼저 읽고, 선이해를 얻은 뒤에야 본문에 들어가는 편인데, 당시 읽었던 번역본들(인간 실격은 더클래식, 마음은 문예출판사였다)은 그런 것이 없어 너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 문학과 나는 별 인연이 없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잊고 살다가 우연히 <나의 개인주의 외>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나츠메 소세키의 주요 평문과 강연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런 책이면, 나라도 손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왕에 나츠메 소세키를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북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해제에서 소세키의 생애와 그 시대를 읽어보자. 이 부분을 읽고 나츠메가 상당히 일찍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1867, 즉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기 바로 1년 전에 태어났다. 구체제에서 살다가 신체제를 맞이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나 나카무라 마사나오 같은 이들과 달리 나츠메 소세키는 태어나면서부터 구체제의 해체 과정을 직접 겪었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 서양 문명을 가장 일선에서 공부했다.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형식상으로는 천황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근대 체제를 확립시켰다. 이 천황은 기독교적 신과 근대적 주권자의 형상이 결합된 존재로, 일본의 인민을 문명화하고 교화할 지도자이다. 그러나 이토가 사망한 뒤, 일본의 헌정 체제는 이토가 애초에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흘러갔고, 결국 천황은 문명화의 지도자가 아니라 모든 정신적 가치를 독점하는 살아있는 신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때로부터 점점 고조되더니, 나츠메 소세키 말년에 이르러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적 열광은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메이지라는 시대 상황에서 [자신의 생애를] 분리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소세키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압도적인 열강의 압력에 항거하며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세계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다. 즉 그는 메이지 일본의 특징인 국가주의가 인간의 자유와 독립을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고 개인주의 도덕의 확립을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나츠메 소세키는 국가주의가 만연하던 메이지 후기를 살면서, 일본의 근대화에 회의감을 품었고 일본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개인의 내면까지 국가가 침투하는 국가주의에 저항하여 나츠메 소세키가 강조한 것은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와 의무, 자기본위였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의 개인주의>라는 강연은 나츠메의 문제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츠메 소세키가 말한 개인주의란, 개인의 창조적 자아실현과 능력 및 개성의 발현, 그리고 이를 위한 모든 노력을 가리키며, 개인은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이러한 자기본위의 노력을 기울인다. 왜 그것이 행복을 가져오는가. 개인이 지니고 태어난 개성이 거기에 충돌하여 비로소 안정되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자신의 개성을 발전시켜야 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타인에게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의 자유를 방해하고, 타인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려 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국가주의적 도덕은 개인적 도덕에 비해 훨씬 등급이낮으며, “개인주의의 기초에서 생각한다면 그 기준이더 높아진다. 따라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국가를 부르짖을 필요가 없고, “국가가 평온할 때에는 역시 덕의심 높은 개인주의에 중점을 두는 편이당연하다. 앞선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나츠메가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일본의 국가주의적 성향을 비판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점두록>에서는 독일의 군국주의를 낳은 트라이치케의 사상을 비판한다. 트라이치케의 사상은 단적으로 말해 국가를 위해서라면 언제 희생해도 상관없다는 신념이다. 이 국가란, 프로이센이다. , 프로이센의 승리와 번영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청년들을 수단삼아 전투에 내보내 희생시키고, 주변 국가라도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정복한다. 그는 인의박애는 입으로 말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으로 행할 사항은 아니라고 믿었다.” 이렇게 독일이 전 세계를 정복한다 하더라도, 과연 인류의 행복, 자유,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타인과 타국을 정복하여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인가.

 

이러한 나츠메 소세키의 문제의식과 사상이 어떻게 그의 문학에 반영되었을지는 이제 다음 독서의 과제이다. 평가 좋은 번역본을 골라 읽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참고가 될 수 있으니, 나츠메의 작품 몇 개의 연보도 함께 실어본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905

<도련님><풀배개> 1906

<태풍> 1907

<그 후> 1910

<> 1911

<마음> 1914

<명암>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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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02 23: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츠메 소세키를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을것 같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소세키를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처음 읽은 책이 딱히 끌리지 않아 어쩔까 했는데요. 이 책을 읽어보면 확실히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

Redman 2021-06-05 16:30   좋아요 1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scott 2021-07-07 1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민우님 이달의 당선 축하합니다
오늘 소세키의 책 들고 출근 했는데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ㅅ^

Redman 2021-07-07 23: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저는 이번에 소세키 소설을 구입해야겠습니다 ㅎㅎ

서니데이 2021-07-07 16: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Redman 2021-07-07 23:40   좋아요 1 | URL
매번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님^^

그레이스 2021-07-07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변역을 지나는 지하철안에서 격하게 축하합니다.

Redman 2021-07-07 23:40   좋아요 1 | URL
선풍기 바람 부는 제 방 안에서 격하게 감사드립니다 😊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민우님
축하드려요~

Redman 2021-07-08 01: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초딩님도 축하드립니다
 


 "영국인의 생활과 문화에 위화감을 느낀 소세키는 자신의 문학관을 배양한 동양과 서양은 문학에 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두 서양이 표준이라면 동양의 문학은 부정되고 오로지 서양인의 흉내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다." (220~221쪽, 해제)


"나는 비로소 '문학이란 어떤 것일까'하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자력으로 만들어내는 것 외에는 나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완전히 타인본위로 뿌리 없는 개구리밥처럼 그 근처를 아무렇게나 방황하고 있었으니 모두 허사였다는 사실을 겨우 알았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타인본위라는 것은 자신의 술을 타인에게 마시게 하여 품평을 듣고는 이치에 맞건 안 맞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남 흉내 내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57쪽, 나의 개인주의)

자신의 생애를 메이지라는 시대 상황에서 분리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소세키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압도적인 열강의 압력에 항거하며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세계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다. 즉 그는 메이지 일본의 특징인 ‘국가주의‘가 인간의 자유와 독립을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고 개인주의 도덕의 확립을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 P217

자기본위를 설명하고 개인주의 입장을 공언한 소세키가 자유를 수반한 의무와 타인의 개성과 자유의 존중을 강조한 것은 개인주의에 대한 세상의 오해를 고려해서였지만 한편으로는 청중인 학습원의 학생들 입장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 개인주의는 악이라고 비난받았지만 권력자의 횡포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었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국가주의가 찬미되었었다. - P232

<나의 개인주의>에서는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고자 생각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지만 이것은 자기 권력을 사용하는 자는 그에 수반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대국의 폭력을 경계하고 상호 상대국의 주권과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 표현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독일이나 일본의 무법적인 형태를 비판하는 의미이기도 했던 것이다. - P234

<점두록>에서는 전쟁의 비참함과 무의미함과 군국주의를 논하며 독일의 군국주의를 낳은 트라이치케의 사상을 해부, 정치와 사상, 문학에 대해 조명했다. 이 연재 에세이는 소세키가 최후에 남기고 싶었던 평화의 메시지였으며 - P234

언제나 상대를 제압하려 하는 군국주의는 내셔널리즘의 자연적 귀결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무서운 희생과 파멸, 문명의 황폐를 야기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계속 추구하던 소세키는 인류에게 파멸을 초래한 군국주의의 행방을 주시, 그것을 헤쳐나가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 P238

지금까지 소세키론의 상당수는 이 소세키의 사회성과 전투성을 간과하고 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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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쯤이면 한국전쟁 관련 서적이 많이 출간되고, 5월이 되면 5.18민주화운동 관련 서적이 많이 출판된다. 알라딘 신간 목록을 보며, 5.18 관련 책이 많아진 것을 보고 어느덧 5월이 되었음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 숙연함이 동시에 따라온다. 지난달, 리뷰대회의 열풍을 타고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이 상당한 화제의 중심이었다. <피에 젖은 땅>은 우리에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비극을 왜 기억해야 하며,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같은 메시지를 적용할 수 있다. 희생자와 희생자의 가족들이 아직 살아있으며, 아직 5.18을 둘러싼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5.18을 기억하고 현재로 불러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5월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또 하나 일어났던 달이다. 바로 박정희와 육사 출신 생도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5.16군사정변이다. 올해가 군사정변이 시작된지 꼭 50년째더라. 박정희 정부는 장장 19년 동안 정권을 유지하며, 한국 사회에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깊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가 죽고, 그 정권이 무너진지 40년도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그 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여기서는 5.18/박정희 시대 관련으로 읽어볼만한 책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 5.18민주화운동

김영택, <5월 18일, 광주>

노영기 <그들의 5.18>

저자 김영택은 동아일보 기자였는데, 80년에 취재차 광주로 갔다가 5.18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이후 그는 5.18운동 연구에만 매진했는데, 5.18 자체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 책은 평생에 걸친 저자의 연구 성과가 담겨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충분할 정도이다. 꼭 읽어볼 책이다.


노영기의 책도 기본적으로 5.18의 전 과정을 담고 있는데, 차이점은 보안사 등 신군부 측 자료들을 방대하게 분석한 것이 특징이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소설가 황석영이 책임 주필로 참여한 책으로, 당시 광주시민들의 증언을 통해 5.18운동을 재구성하였다.

이미 85년 초판이 출간되어 지하 베스트셀러로 유명했던 이 책은 이미 고전적 반열에 올라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가 상당하지만, 직접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꼭 읽어볼 책이다.

김영택의 책에서도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전달되는데, 학술적 언어가 아니라 시민의 증언을 복원한 이 책에서는 그때의 모습이 처절할 정도로 가슴 아프게 묘사된다.







강풀, <26년>/한강, <소년이 온다>

5.18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 강풀의 <26년>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매우 인상깊게 읽었다.

강풀의 만화는 5.18 자체보다는 그 이후 희생자와 그 가족의 상처와 원한에 더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다. 5.18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주인공들이 전두환(작중에서 '그 사람'이라고만 지칭됨)을 암살하려는 내용이다.

작품을 읽다 보면, 41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그 사람'과 현재 상황에 분노하게 된다.


한강의 이 소설은 6개의 서로 다른 6개의 시점을 통해 5.18을 재조명한다. 마지막에는 저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도 나온다. 사투리까지 구현하며 일종의 증언록과 같은 형식의 이 소설은 5.18의 상황을 그대로 복원한다기보다는 그 안에 있던 개인의 내면과 목소리에 더 집중한다. 읽기 힘들 정도로 생생한 심리묘사를 담고 있지만, 강렬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작년에는 회고록이 주로 출판된 느낌이었다면(<호텔리어의 오월노래>, <5.18 푸른눈의 증인>), 

올해는 윤상원 열사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윤상원 열사는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투사회보>라는 소식지를 발행하여 5.18 당시 언론의 기능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진압군에 의하여 30살의 나이로 사망한 윤상원 열사의 생애를 조망한 책들이 꽤 출판되었다.



<윤상원 평전>의 저자 김상섭은 5.18 당시 윤상원과 함께 투사회보 제작과 시민군 활동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이런 저작의 이력을 보면, 이 책은 평전일 뿐 아니라 저자의 회고록이기도 할 것 같다. <윤상원 일기>는 윤상원이 직접 남긴 1차 사료라는 점에서 중요하고, 그의 아버지인 윤석동의 일기 역시 그렇다. 아직 이 책들을 읽지는 않았지만, 역시 또 하나의 의미있는 책들이 나왔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참고로, <녹두서점의 오월>은 윤상원/김상집 등이 투사회보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항쟁 방향을 두고 회의하였던 거점인 녹두서점에 대한 증언록이다. 녹두서점을 운영하던 김상윤, 그의 부인 정현애, 김상윤의 남동생 김상집 이 세 가족의 증언이 담겨져 있어 이 책도 함께 읽어볼 책이다. 
















- 박정희 시대

전인권, <박정희 평전>

박정희 생애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읽어볼 만한 책이다. 조갑제닷컴, 기파랑 등에서 나오는 박정희 전기는 너무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는데, 전인권의 박정희 평전은 최대한 연구자의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박정희의 생애를 복원한다. 

강정인의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는 박정희 정치 사상을 분석하였다.







서중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저명한 한국현대사 연구자 서중석이 쓴 한국현대사 책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고, 제목처럼 사진 자료도 많아 어려운 책은 아니다. 박정희 정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들은 이 책을 참고하면 되겠다.










 정광민, <김일성과 박정희 경제전쟁>

 박정희 정부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화두는 단연코 경제성장일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박정희 덕분이었냐, 대중의 힘이었냐 같은 주제보다는 박정희 경제 정책이 어떤 것을 추구했고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집중한 책을 소개하겠다.

정광민의 <김일성과 박정희 경제전쟁>이다. 이 책은 김일성과 박정희의 경제발전 정책을 체제/이념 면에서 비교 연구한 책이다.


이 책과 함께 <뉴딜, 세 편의 드라마>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루즈벨트가 어떤 수사를 통해 경제정책을 운용했는지에 집중해서 읽으면, 박정희-김일성과 어떤 공통점이 보인다.



한국정치연구회 편, <박정희를 넘어서>

1. 박정희와 그 시대를 넘기 위하여 / 연구 쟁점과 평가
2. 박정희신드롬의 양상과 성격 - 정해구
3. 박정희신드롬의 정치적 기원과 그 실상 - 정상호
4. 유산된 민주화, 경쟁의 부재와 통합의 빈곤 - 정상호
5. 왜곡된 정당정치와 지역균열 - 현재호
6. `반체제운동`의 전개과정과 성격 - 이광일
7. 지역균열의 구조와 행태 - 박상훈
8. 동원된 민족주의와 전통문화정책 - 전재호
9. 개발독재는 불가피한 필요악이었나 - 김용복
10. 기회포착의 정치가와 세계체제의 `국면들` - 김동택
11. 한미관계, 종속과 갈등 - 김창수
12. 한일관계, 왜곡된 밀착 - 김용복


IMF 때 나온 책이라 조금 오래되기는 했지만, '박정희 시대 그 이후'라는 주제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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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5-18 0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김민우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Redman 2021-05-18 14:2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

mini74 2021-05-18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청소년들에게 소년이 온다 나 26년은 고마운 책,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준것 같아 고마운 책들.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

Redman 2021-05-18 14:26   좋아요 1 | URL
저한테도 되게 고마운 책들이었죠 ㅎㅎ 다른 책들도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광진 2021-12-15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18. 관련 귀한 책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광진 2021-12-15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읽고 있는데 <5월 18일, 광주> 책도 구입해서 봐야겠어요 ^^
 


이 책을 통해 필자가 제시하려는 주장은 단순하다. 개화당은 처음부터 외세를 끌어들여 정권을 장악하고 조선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려고 한 역모집단 또는 혁명비밀결사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1871년 신미양요를 전후해서 오경석과 유대치가 김옥균을 포섭함으로써 결성되었으며, 그 사상적 기원 또한 의역중인의 철저한 현실 비판과 과격한 사회변혁사상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 P7

집권세력에 의해 추진된 문호개방은 기본적으로 당시 국제정세에 순응해서 기존의 권력구조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에 반해 개화당의 정치적 목적은 어디까지나 외세를 끌어들여서 정권을 장악하고 조선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양자는 본질적으로 정적의 관계에 있었다. - P11

개화당의 사상적 기원을 북학파의 종장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에게서 구한 기존의 통설은, 일본인의 입장에선 자발적 부역자라고도 할 수 있는 개화당에게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식민사학과 1960년대 이후 조선사회의 주체적/내재적 근대화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을 그 소명으로 삼았던 민족사학의 의도치 않은 합작으로 이루어진 신화에 불과하다. - P12

개화당과 가장 큰 관계가 있었던 것은 기술직 중인이다...그중에서도 핵심은 의역중인이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폐쇄적인 혼인관계를 형성하고 또 요샛말로 하면 서로 자제들이 과외교습을 해주면서 기술직을 독점적으로 세습했다...하지만 아무리 많은 재산과 고상한 식견, 뛰어난 재주가 있더라도 의역중인은 조선사회 안에선 출세와 활동이 제한된 한계인일 뿐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조선을 벗어나 중국의 명망 높은 문사 및 관리들과 신분 차별 없이 인간적인 교유를 나누는 데서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개화당이 같은 조선인보다 서양인이나 일본인을 더 신뢰해서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정체와 음모를 털어놓고 도움을 청한 데는 이러한 중인의 계급적 심성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 P15

개화당은 수백 년 동안 누적되어 화석처럼 단단하고 난마처럼 얽힌 조선사회의 온갖 폐단을 척결하고, 무능하고 무지하고 몰염치하면서도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지키는 데는 놀랄 만한 능력과 단결력을 발휘하는 양반들의 폐쇄적 카르텔을 깨뜨리기 위해선 비상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조선 후기의 수많은 민란과 역모사건 중에서도 개화당의 그것이 단연 이채를 발하는 것은, 그 수단을 임진왜란 이후 누대의 원수인 일본이나 전통적으로 금수로 멸시해 온 서양의 힘에서 구한 사실에 있다. - P376

개화당의 근본 목적은 후쿠자와 유키치류의 문명개화, 즉 서구화나 근대 문물의 수입에 있지 않았다...‘개화‘라는 말은 원래 이 비밀결사가 갖고 있던 고유한 문제의식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갑신정변을 공모한 후쿠자와 및 고토와의 유대를 상징하는 기능을 했을 뿐이다. 후쿠자와가 설파한 ‘개화‘와 개화당이 생각한 ‘개화‘의 의미는 반드시 같지만은 않았으며, 또 같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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