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의 희생은 한국 노동계급 형성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수백만명의 노동자들, 그들의 가슴속에 저항과 반항의 정신을 심어주었고, 그때까지 집단적인 목표를 위해 노동자들을 고취하고 동원할 수 있는 성스러운 상징과 존경할 만한 전통이 없었던 한국의 노동계급에 강력한 상징을 제공했다. 이 사건은 또한 급속한 수출주도형 산업화과정이 만들어낸 노동문제가 산업영역에서 감추어진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폭발적인 요소가 된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 산업노동자들이 사회적 갈등과 사회변혁의 핵심세력으로서 역사의 장에 들어선 것이다. - P112

청계피복노조의 뒤를 이어 자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서너개의 주요한 투쟁이 1970년대에 발생하였다. 흥미롭게도 이런 노조건설 투쟁의 대다수는 여성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이 시기 잘 알려진 두 가지 사례는 1972년, 원풍모방과 동일방직이라는 두 개의 대규모 방직공장에서 일어났다. - P116

여성노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는 점을 떠나서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노조활동가와 교회조직 간의 긴밀한 결합이었다. 거의 예외없이, 여성 노동운동가들은 진보적인 교회지도자들의 보호 아래 조직된 소그룹활동이나 노동자야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던 사람들이다. (중략) 중소기업에 고용된 여성들이 주도한 1970년대 자주노조운동이 주로 수도권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이 지역에 노동지향적 교회활동이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P117

고용주는 자주노조를, 특히 외부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받는 노조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자주노조의 설립이나 어용노조의 개혁시도를 막고자 했다. 노조결성을 막지 못했을 때, 회사측의 다음 전략은 독립노조를 어용노조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흔히 사용한 방법은 여성중심의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남성노동자들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 P123

회사에 매수당했다는 것 이상의 더 깊은 이유가 있었다. 여성 노조활동가들에게 동정적이었던 한 남성의 고백처럼, 남성들이 여성이 주도하는 노조지도부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남자들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여성 노조지도부를 지지하는 몇 명의 남성들은 동료 남성노동자들에 의해서 배척당했고, 노조활동에서 물러나거나 결국은 여성노동자들의 믿음을 배반해야 했다. 분명히 뿌리깊은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주된 장애물이었다. - P132

한국 민주노동운동과 노동계급 형성의 기반을 제공한 것은 용감한 여성노동자들의 개척자적인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970년대 남성노동자들의 역할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분신자살을 통해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결국 남성재단사인 전태일이었고, 최초의 자주노조를 조직해서 민주노조운동으로의 길을 열어준 사람들도 전태일의 동료인 평화시장의 남성재단사들이었다. 또한 유동우와 방용석 같은 다른 남성노동자들도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횃불을 든 것은 여성노동자들이었다. - P141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한국 노동운동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보여준 예외적인 역할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나는 경공업 여성노동자들과 진보적인 교회조직 간에 형성된 긴밀한 연계에 그에 대한 대답이 있다고 믿는다. (중략) 만약 교회조직들이 노동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여성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운동에서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인가 하는 것은 흥미로운 질문이다. 추측컨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 P145

배제적 국가조합주의 노동통제체제는 노동자들이 공식적인 노조조직 외부에서 출구를 찾도록 강요했다. 그 시점에서 기독교지도자들과 지식인집단들은 국가의 무서운 억압을 무릅쓰고 노동운동을 지원하고자 했다. 교회조직들은 1970년대 노동계급운동의 발전에 몇가지 뚜렷한 기여를 하였다. 무엇보다도 진보적인 교회들은 노동자들이 모여서 그들의 문제와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피난처와 사회적 공간을 제공했다. - P151

우리는 투쟁의 실제 주체가 누구였는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교회조직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의 놀랄 만한 연대활동을 가능케 한 것은 잔인한 노동조건과 그들의 노동경험 그리고 공통의 사회적 배경에 바탕을 둔 강한 유대감이었다. 교회지도자와 지식인들의 역할은 구조적으로 결정된 잠재성을 현실로 전환하는 촉매제 역할이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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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51
존 밀턴 지음, 이창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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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밀턴의 <실낙원>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에덴동산, 첫 인간의 타락 이야기를 담은 창세기 1~3장을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사시로 엮어낸 작품이다.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단테와 같은 선배 서사시인들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이 보이는 이 서사시는 서사시의 전통을 따른다. 예를 들면, 서사시는 늘 작품을 시작하면서 시적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그리스의 여신 뮤즈를 초대한다. 또한, 보통 도입부에서는 이 서사시의 대략적인 주제도 같이 밝힌다. 서사시의 전범으로 간주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우스>의 첫 부분을 봐보자.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일리아스, 천병희 역)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오뒷세우스, 천병희 역)


<일리아스>의 줄거리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여 그의 분노가 해소되면서 마무리된다. 첫 행에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명시하여 이 서사시의 방향과 주제가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주인공 오뒷세우스가 저승까지 갔다 올 정도로 산전수전 다 겪었던 모험담과 귀향 과정이 중심 줄거리이다. 밀턴의 <실낙원>도 호메로스의 시와 비슷하게 시작하며, 고전적인 형식을 답습한다.


“인간이 처음으로 하느님을 거역하고

금단의 열매 맛봄으로써 세상에

죽음과 온갖 재앙 불러일으키고

에덴까지 잃고 말았으나, 이윽고 한 위대한 분 나타나

우리의 죗값 치르시고 복된 자리 다시 얻게 하셨으니

노래하라, 하늘의 뮤즈여 (...)

더욱이 그대, 성령이여, 어떤 성전보다도 바르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성령이시여, 그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나니, 나를 가르치고 이끌어주시라 (...)

이 높고 위대한 주제에 걸맞게

영원한 섭리를 증명하여, 하느님의 뜻이 옳음을 인류에게 밝히도록 하시라” (1편, 1~26행)


밀턴이 부르는 뮤즈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여신 뮤즈가 아니라 성령을 가리킨다. 그는 성령님을 힘입어 “하느님의 뜻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 서사시를 썼다. 실낙원의 주제는 “악에서 선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사탄의 유혹으로 태초에 인간이 타락하고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다. 이 비극을 선으로, 희극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 이것이 밀턴이 <실낙원>에서 일차적으로 다루는 주제이다.


고전 서사시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영웅과 전쟁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서사시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나라를 세우거나 무공이 탁월한 아주 비범한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다. 길가메시,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 오뒷세우스 등을 떠올려보자. 당연히 <실낙원>에서도 영웅적 캐릭터가 등장한다. 밀턴의 제9편에서 자신은 “진정 영웅서사시라 부를 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밀턴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 부분에서 걸리게 된다. 과연 이 시에서 밀턴이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언뜻 봤을 때, <실낙원>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웅상에 가장 걸맞은 존재는 바로 사탄이다. 1편에서 가장 유명한 사탄의 대사를 봐보자.


“그러니 패한들 어떠랴?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으니, 우리에게는 아직 불굴의

투지와 불타는 복수심과 불멸의 증오심과

항복도 복종도 모르는 용기가 있도다! 지지 않기 위해

또 무엇이 필요하랴? 그의 분노와 힘이 아무리 큰들

결코 내게서 이 영광을 빼앗지 못하리라. 무릎 꿇고

허리 굽혀 자비를 빌며, 조금 전까지

그의 권세를 위태롭게 했던 이 팔로

그의 힘을 숭배하란 말인가? 그러한 비굴은

이 타락보다 못한 불명예요 치욕이다.” (1편)


비관적 상황에서도 보이는 낙관적 인식(혹은 정신승리), 강대한 적(=하나님)에게도 결코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 좌절한 부하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카리스마와 지도력. 그는 분명 절대악의 위치에 있지만, 이 부분에서는 고전적 영웅의 면모가 보인다. 지옥을 벗어나 천사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인간을 유혹하겠다는 위험한 계획을 사탄은 자진하여 맡는다. 또한 그는 전투에 능하여 매우 호전적이며, 전략에도 능하여 인간 타락의 계획도 그가 생각한 것이다.


한편,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처럼 곧게, 만물의 왕으로서 가치 있는 모습”을 보이고, “거룩한 얼굴엔 영광스런 창조주의 모습”이 빛나고 있었다. 이들은 “만물의 왕”이요 “순결한 신성”을 지닌 반신(半神)적인 존재로서 “참된 자유의지”에서 “참된 권위”를 가진다. 역자 이창배에 따르면, 이는 “고전적·르네상스적 영웅상”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사탄이 반그리스도적 영웅이라면,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영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탄과 인간은 이 작품에서 절대로 영웅이 될 수 없다. 사탄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천상 반란과 인류 유혹을 정당화하지만, 그 행위 동기는 “신에 대한, 신의 사랑을 받는 인간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며 교만과 지배욕에 불타오르는 것이 사탄의 중요한 성격적 특징이다. 이러한 그의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것이 “질투를 부르는 자, 하늘의 새로운 총아, 흙덩이에서 생긴 인간, 우리의 화를 돋우기 위해 그가 먼지에서 만든 이 한스러운 인간을 겨냥하여 내리치면 족하리라.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 것이 상책이로다.”이다.


사탄은 하와를 유혹하는 것으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하와가 혼자 있는 틈을 노린 그는 “고귀한 여왕” “세상에 둘도 없는 경” “지식의 어머니”라고 치켜세우고는 “인간에서 신이” 될 것이라고 하여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한다. 결국 하와는 넘어갔고, 하와는 다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다. 자신이 죽은 뒤 아담만 행복을 누리는 것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다. 아담은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안 된다는 명령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그대 없는 이 세상 나 혼자 어찌 살리요”라며 하나님보다 하와에 대한 사랑을 더 우선시하여 선악과를 먹는다. 하와는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사탄의 거짓말에 의해 선악과를 먹었고, 아담은 이것이 어떤 적의 소행임은 알았지만 하와를 더 사랑하여 자발적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밀턴의 관점에서 하와의 타락은 ‘이성의 부족’이라면 아담의 타락은 ‘자유의지의 남용’의 결과이다. 타락의 결과로 인간은 신적인 영광이 사라지고, 낙원에서도 추방된다.


전통적인 영웅상을 반영한 사탄과 아담과 하와의 반영웅성을 보면서, 우리는 밀턴이 전통적인, 그리고 당대의 영웅상을 거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밀턴은 9편 도입부에서 “지금까지 영웅시의 유일한 주제였던 전쟁”이 아니라 “한층 차원 높은 주제, 진정 영웅서사시라 부를 주제”를 노래한다. 그것은 “훌륭한 인내와 불굴의 정신과 영웅적 순교”이다.


9편 도입부를 한 단락 더 봐보자. 9권의 내용은 사탄의 하와 유혹과 인류의 타락이다. 이 때문에 이제 시인은 “이 노래를 슬픈 곡조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이 주제는 과거 어떤 영웅의 영웅적 행위보다도 “더 영웅적이다.” 이창배의 주석은 이 모순적 구절을 이해할 단서를 제공한다. “신의 심판과 분노는 아킬레우스 등의 분노와 달리 은총의 계기를 포함하므로 ‘영웅적’”이다. 우리는 여기서 ‘악에서 선이 태어난다’는 것이 밀턴이 <실낙원>을 통해 말하려던 주제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악을 선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섭리는 바로 ‘은총’이다.


11편과 12편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떠나기 전, 천사 미가엘이 앞으로 벌어질 구원사를 예언하는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이는 구약의 내용을 시인이 요약한 것이다. 어떤 구약은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는 창세기의 예언이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와의 후손에게서 원수를 무너뜨릴 인물이 나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사의 완성이자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절정이다. 그리스도가 있기에 죽음과 죄가 지배하게 된 인류의 역사에 희망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강력한 무력으로 사탄과 죽음을 정복한 것이 아니다. 바로 “하느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그대(아담)의 죄와 그 죄에서 나오는 그대 자손들이 받아야 할 형벌인 죽음의 고통을 받음으로써” 그가 이 땅에 온 이유가 완성된다. 그는 순종해야 하며, 인류를 위해 자신을 대속, 즉 순교해야 한다. 죽음의 고통을 인내해야 한다. ‘순종’, ‘인내’, ‘순교’. 이것은 사탄과 아담과 이브에게 없었던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로써 악을 선으로 바꾼다.


밀턴에게서 영웅은 전투 행위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내와 같은 내면적 덕을 통해 영웅이 된다. 당대 ‘인내’란 “역경에 처했을 때에 신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었다. 밀턴이 가족과 시력을 잃고, 공화정의 꿈도 무너져 인생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인내는 더욱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는 ‘인내의 덕’을 체현한 영웅을 구상했다. 이 덕은 처음에는 죄를 지었다가 회개한 아담과 하와에게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 덕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된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밀턴이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실낙원>의 속편격인 <복낙원>은 바로 그러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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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11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구약성경의 역대상을 읽는 중인데요 신에 대해 엄청 회의가 든단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신의 잘못인가, 신이 선하다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읗 하고 있어요. 자기 백성 아니면 다 죽이는 신이 저는 너무 신같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 리뷰를 읽고나니 어서 신약으로 넘어가고 싶어지네요. 밀턴이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은 어쩌면 제가 기대한 바로 그 신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Redman 2021-05-11 14:47   좋아요 1 | URL
관심 가지고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 완독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실 역대기는 열왕기와 내용이 상당히 겹쳐서 읽기 지난하실 텐데(물론 세부적으로는 다릅니다, 그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도 한 재미죠), 지혜서와 예언서를 넘어 복음서까지 무사히 갈 수 있기를 ㅎㅎ
구약의 역사서들은 지금 보면, 과연 이게 한 종교의 경전인가 싶을 만큼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더 읽기 힘드실 겁니다. 지금 역대기를 읽고 있으니, 사무엘서 열왕기 여호수아 출애굽기 등에서 더더욱 그러셨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여호와는 다른 민족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았습니다. 시편과 이사야서/예레미야/에스겔서 등에서 더 자세히 나오겠지만, 그는 단 한번도 열방의 회복에 대한 기대와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증거죠. 유대인이라는 민족적/인종적 경계를 넘어 전 세계를 회복하겠다는 하나님의 열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결실을 맺고, 그 제자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어떤 집단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자기 백성이 아니라서기보다는 이웃사랑과 공의를 실천하지 않고 약자를 억압하였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왜 굳이 죽였여야 했었나? 제가 공부가 부족하여 여기서 조리있게 설명할 자신이 없네요.. 대신 책 두 권 소개하자면 폴 코판의 <구약윤리학>과 입니다. 구약에서 일어나는 여러 윤리적 쟁점들을 다룬 변증서입니다. 김근주의 <복음의 공공성>도 관련해서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좋은 독서 되시길

초란공 2021-05-11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성들여 정리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사탄‘을 무엇으로 치환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딱 ‘제 모습‘ 같아서 놀랐습니다... ‘질투와 시기의 화신‘^^ 그러고보면 성경을 쓴 사람들은 이교도의 전통과 캐릭터의 발명과 같은 작업을 천재적으로 해낸 사람 같단 생각마져 드는데요~

Redman 2021-05-11 14:49   좋아요 1 | URL
네 밀턴이 특히 이교도적 상징을 자신의 종교시에 끌어와서 새롭게 융합시키는 데 탁월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질투의 화신은 저 역시 ㅎㅎ

scott 2021-06-04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우님의 명품 실낙원 리뷰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Redman 2021-06-05 08:11   좋아요 1 | URL
매번 감사드립니다 Scott님^^ scott님도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06-04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민우님 축하드립니다^^

Redman 2021-06-05 08: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초딩 2021-06-04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우님~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Redman 2021-06-05 08:12   좋아요 1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ㅎㅎ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 식물, 동물, 그리고 미생물 경이로운 생명의 노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최재천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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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보다 생명답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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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는 번벌 관료 중에서 근대 일본의 입헌군주제 형성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폐번치현을 가장 빨리 제기했으며, 군주권이 국가로부터 제약받는 헌법을 만들었으며, 초기 의회 이후는 정당권력에 유화적인 정당정치의 길을 촉진했다. - P5

이토가 쇼인에게 배운 것은 다음과 같다. 번주에게 무작정 복종하며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대세‘를 배경으로 바람직한 번주가 되도록 그를 교육하고 자질을 끌어내, 번주와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정치를 해가는 이토의 태도였다. 번주를 천황으로 바꾸어 놓으면 명치유신 후 이토의 천황에 대한 태도가 된다. - P25

군주는 국가에 의해 제약을 받는 하나의 기관이며, 군주가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 제약을 받아도 문제가 안 된다(군주가 입법부와 행정부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유롭게 행동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군주권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군주는 전제적으로 행동해도 좋다는 생각을 부정하기 위해 생긴 인식으로 당시 유럽 군주제에 대한 첨단 학설 즉 군주기관설이었다. 이토는 슈타인과의 대화에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천황 전제가 행해지지 않은 일본의 실정에 맞는 헌법을 만들기 위한 단서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이토는 기뻐했다. - P145

이토는, 헌법상 주권은 군주에게 있지만, 그 대권은 각 기관에 위임되어 있으며, 그것은 간단히 빼앗을 수 없다는 일본의 전통에 입각한 설명으로 군주권을 제한하려고 했다. - P148

1882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헌법조사를 하는 단계에서, 장래 일본 헌정이 성숙하면 앞으로 만들 헌법을 영국의 헌정과 같이 운용할 때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것은 천황의 정치관여를 억제하고, 행정부가 입법부의 의사를 존중하는 형태로 만들어지는(정당내각제) 것을 천황이 승인하면 되는 것이다. 후술하지만, 이토가 청일전쟁 이후에 정당과의 제휴를 지향하고, 약 18년 뒤에 이상적인 정당으로서 입허정우회를 창립하여 ‘헌법정치‘를 완성하려 한 것은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 P148

이토가 유럽의 헌법조사에서 배운 것은 헌법만이 아니라 그 헌법을 운영하기에 적합한 군주를 창출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헌법에 어울리는 군주는 전제군주가 아니다. 일상적으로는 정치관여를 삼가고 필요한 경우에는 번벌 내부의 대립을 조정할 수 있는 천황이다. - P167

천황은 신성하여 범할 수 없다는 유명한 조문은 천황이 법률적,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군주가 마음대로 관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이토가 입헌군주제로서는 강한 천황대권을 헌법에 규정한 것도 당분간은 정부가 그것을 위임받고, 재야세력이 ‘헌법정치‘에 성숙하게 됨에 따라 중의원으로 위임을 확대해갈 것이라는 전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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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층적 관점에서 볼 때 중하위계층 출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군부의 눈에 비친 민간인 정부, 즉 이승만정부나 장면정부는 무능한 정부였다. (중략) 이들은 조직 및 위기관리능력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현대적 국가를 수립하고 한국전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군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진화된 조직으로 발전해 있었다. 한국을 냉전의 전초기지로 인식하고 있던 미국에게 군은 가장 필요한 공적 조직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군에 집중 투입했던 자원의 양은 여타 부문에 비해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 P51

군에 대한 민간사회의 존중은 그다지 높지 못했다. 무엇보다 군은 열위계층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던 다소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개혁적 성향의 젊은 장교들은 박탈감이 매우 심했다. 민간정치는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불신이 강했다. 그리고 부패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컸다. 따라서 젊고 바르고 유능한 자신들이 국가운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이 점점 더 팽배해갔다. - P52

이들은 정치체제를 장악하자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적 정권을 수립했다. 이승만정부나 장면정부와는 달리 민간관료 엘리트들과 연합하여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수립했다. (민군엘리트 연합체제) - P52

박정희를 비롯한 당시의 군부엘리트들은 일본 식민통치 그리고 만주와 일본에서의 사회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민주주의 체제보다는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는 파시스트적 체제를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 P53

국가주도적 성장전략은 불균형성장전력을 수반했고 이는 결국 이승만정부 때보다도 더 강하게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도농간의 불균형, 대중소기업간의 불균형 그리고 소득분배상의 불균형이 이 기간에 비롯되었다. - P58

요컨대 박정희정부는 이전의 민간정부들에 비해 개선된 정부 능력과 강한 자율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을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통솔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결과 경제성장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점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불균형성장정책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 P69

1960년대와 비교해 볼 때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간섭은 보다 심화되었다. 박정희정부는 보다 심화된 권위주의적 체제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하고 총력적 지원전략과 수입대체산업화를 강력히 추진했다. - P79

제4공화국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한 개념은 단연 전쟁이었다. 실제로 전쟁이 발발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정치와 경제체제가 재조직되었다. 이로써 국가는 통치에 전념하게 되고 민주적 정치는 실종되었다. 경제는 통치에 필요한 자원을 산출해 내기 위해서 국가에 의해 동원되었다. - P80

중화학공업과 종합무역상사에 대한 특혜적 정부지원이 소수의 재벌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중화학공업화의 추진으로 인해 제3공화국 정부에 의해 시작된 불균형경제성장은 더욱 가속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유신체제하에서 재벌기업들은 정부의 보호에 힘입어 괄목할 성장을 경험했다. - P85

박정희정부가 1970년부터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산업화로 인해 발생한 도농간 불평등의 심화를 교정해보려는 시도였다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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