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이상
에인 랜드 지음 / 자유기업센터(CFE)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때쯤 <정념과 이해관계>를 읽고 서평을 썼다. 그 책은 초기 자본주의 옹호론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는데, 현대의 자본주의 옹호론을 엿보고자 에인 랜드의 <자본주의의 이상>을 읽었다. 하지만 이 독서는 실패한 것 같다.

일단 저자 소개 먼저.
에인 랜드는 20세기 후반 영미의 우파와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소설가, 사상가이다. 그녀의 영향은 정치적으로는 대처와 트럼프 같은 이들을 통해서 드러나며, 경제학 사상쪽으로도 밀턴 프리드먼 같은 자유시장 신봉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녀의 대표작 <파운틴헤드>와 <아틀라스>는 미국에서는 지금도 많이 읽히는 소설이며, 과장 보태서 말하면 그녀에게서 영향을 받은 우파 지식인 정치인들이 오늘날의 개인주의적 제도를 형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소설가로서 경력을 시작했지만, <아틀라스> 이후로는 소설 집필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하여 자신의 객관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몰두했다. <자본주의의 이상>은 이때 강연 원고들과 그녀가 정기간행물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에인 랜드의 사상은 자본주의에 대한 옹호, 자유방임주의와 능력주의로 정리할 수 있다. 이만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니,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는 자본주의 옹호론을 썼을 거라 생각할 법하지만, 실제로는 학문적인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고 지루한 웅변조로 자본주의와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선전물이다. 딱 소설가가 몇 가지 학문 개념을 대충 익혀서 썼을 법한, 딱 그만큼에서 멈춘 문장과 사유의 깊이.

에인 랜드는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생산활동을 방해하는 어떠한 정책이나 행위를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나 부의 재분배를 책 전반에 걸쳐서 비판한다. 그러나 그녀는 ‘공유지의 비극‘은 말하지 않는다. 에인 랜드는 능력주의를 옹호하나, 능력주의 엘리트의 우연성, 능력주의적 세습과 그것이 불러올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에인 랜드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아무런 연관도 없기에 공공선 같은 실체가 불분명한 목적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희생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정치사상의 무지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에인 랜드는 자신을 객관주의자로 말하고 객관주의의 틀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자유방임을 정당화한다. 그녀가 말하는 객관주의란 내가 봤을 때 대공황 이전 자유주의 경제사상과 똑같은 독창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지만, 그녀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이 사상과 차별성을 주고 싶었는지 객관주의라는 조잡한 용어까지 갖다 붙인다.

진지하게 다룰 책은 아니나 나는 역설적으로 에인 랜드의 다른 책에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인 랜드의 사상 때문이 어니라 그녀의 영향력 때문이다. 에인 랜드의 사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그녀가 남긴 유산은 적지 않으며 그 중요성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소설들은 미국에서는 고전적 지위를 누린다. 고전이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책이라고 한다면, 에인 랜드의 소설들도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텍스트를 둘러싼 미국의 시대상(콘텍스트)을 읽기 위해 <자본주의의 이상>에서 일부 발췌문만 보아도 유치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소설들을, 심지어 드럽게 긴 그 소설들(<아틀라스> 번역본은 3권이나 한다)을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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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6-2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에릭 랜드 사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연구소가 미국 랜드 연구소는 설마 아니겠죠? ^^

Redman 2022-06-26 19:27   좋아요 1 | URL
ㅋㅋ 아쉽게도 아인 랜드 연구소 였습니다
 

https://blog.aladin.co.kr/739070192/12368342

작년에 이런 글을 썼는데, 그동안 더 알게 된 괜찮은 책들을 추가해봅니다.


1. 고대 그리스 비극

작년 10월까지는 아직 그리스 비극을 읽지 않았는데, 훈련소에 있으면서 본격적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서는 훈련 제외 남는 게 시간이니...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선집 <그리스 비극 걸작선>으로 읽었는데, 그리스 비극 작가 3인(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작 두 작품씩을 선별하여 엮은 것입니다. 천병희 선생의 번역으로 전집이 나와있지만, 선집으로 입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천병희, <그리스 비극의 이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읽을 때 알아두면 좋을 기본적 사항들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책소개와 달리 본격적인 해설은 하지 못했습니다. 천병희 선생은 번역에는 탁월하지만, 해설은 미진한 부분이 있습니다. 최혜영의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비극의 정치사회적 맥락과 종교사회적 맥락을 짚어주어 텍스트가 생산된 맥락 속에서 텍스트를 읽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천병희 선생의 책을 보완하는 본격적인 해설서라 할 수 있습니다.



컨티뉴엄 리더스 가이드 시리즈에서 최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입문>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아직 안 읽어봤지만 이 시리즈는 믿고 볼만하니 <오이디푸스 왕>을 읽을 때 같이 읽어봐야겠습니다.


참고로, 김기영 선생이 을유문화사에서 <오레스테이아 3부작> <오이디푸스 왕 외> <메데이아> 등을 새로 번역하여 출간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로버트 페이건이라는 학자가 영역한 penguin classic 판 소포클레스의 <The Three Theban Plays>는 번역도 좋지만, 앞에 해설도 충실하여 같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을 읽기의 끝판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라 할 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분석틀과 개념으로 그리스 비극을 읽어도 좋은 독서가 될 것입니다. 니체는 고전문헌학을 연구한 학자였다. 니체의 중요한 문제의식이 집약된 <비극의 탄생>은 쉽게 이해할 텍스트도 아니며 한 차원 깊은 비극 공부를 위해 읽어볼 만하므로, 순서상 뒤로...




2.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시학 얘기가 나왔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최근 번역출간된 뒤퐁록과 랄로의 주해서를 같이 읽으면 좋겠다. 












3. 장자

중국 도가철학의 중요한 사상가인 장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장자>


국내에 여러 번역본이 있기는 하지만, 전 일단 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으로 읽습니다. 


같이 읽어볼 책은 후쿠나가 미쓰지의 책인데, 저자는 세계적으로도 권위 있는 장자 연구자입니다. 그가 지은 장자 입문서인 <장자 - 고대 중국의 실존주의>는 저자의 깔끔하고 깊이 있는 장자 이해와 풍부한 원전 인용으로, 방대한 장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 책 후반부에 실려 있는 <장자 내편> 해제를 통해서 노자와 장자와의 차이점까지 짚을 수 있으니, 꼭 읽어볼 책입니다. 


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 내편>도 따로 번역되어 있으니 참조.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좋은 것은 한국인이 쓴 해설서이므로 전호근 선생의 <장자 강의>도 같이 읽어봐야겠습니다.












4. 마키아벨리 <군주론>

국내에 수많은 마키아벨리 <군주론> 번역서 중 추천하는 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곽차섭 역, 김경희 외 역, 박상섭 역. 






군주론뿐만 아니라 마키아벨리 자체에 대해서는 두거물 정치철학자들의 저서를 소개하고자합니다.


하나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마키아벨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하비 맨스필드의 <마키아벨리의 덕목>입니다. 스트라우스의 책에 대해서는 맨스필드의 책에서도 거론하니 이 책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합니다. 


맨스필드의 책은 이런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첫째, 서문을 읽는다. 둘째, 2부의 군주론 해제를 반복해서 읽는다. 마지막으로 셋째, 1부 '마키아벨리의 덕목'을 읽고서 통독을 한다. 녹록치 않은 글이지만, 이 순서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1부와 2부 군주론 해제만 집중적으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당대의 역사상을 알고자 한다면, 스티븐 그린블렛의 <1417년, 근대의 탄생>도 같이 추천합니다.













5. 논어


논어는 저번 글에서도 다루기는 했는데, 그때는 번역본 위주로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해설서 두 권을 소개하려 합니다.


하나는 중국인 연구자 양자오가 쓴 <논어를 읽다> 그리고 일본인 사상사 연구자 오구라 기조의 <새로 읽는 논어> 둘 다 역사적 관점에서, 사회적 맥락에서 논어의 내용을 해석한 책으로 한 번쯤 읽어볼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상사 연구에서는 잘 지적하지 않는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의 사회상을 자세하게 알려면 리펑의 <중국고대사>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6. 카를 마르크스

권위 있는 사상사 연구자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는 사상사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생애를 서술한 책으로, 아직도 최고의 마르크스 입문서로 꼽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마르크스가 영향을 받았던 당대 유럽의 사상사적 흐름들을 조명하는 한편, 그것을 마르크스가 어떻게 수용하고 자신의 저서에 녹여냈는지까지 다루어, 마르크스의 생애를 알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최적의 입문서입니다. 구하기는 어렵지만, 레셰크 코와코프스키가 쓴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제1권도, 마르크스의 사상을 청년기부터 주요 저작들에 대한 해설을 통해 살펴보므로 큰 도움이 됩니다.

토니 주트의 <재평가>를 읽으면서 알게 된 책인데, George Lichtheim의 <Marxism>이라는 책이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깊이 있게 다룬, 여전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합니다. 












마르크스의 방대한 사상 체계로 입문하려면 역시 <공산당 선언>이 좋을 것이며, 그의 사상의 절정은 <자본론>에서 정리되어 있습니다. <자본>을 완역한 강신준 박사가, <자본> 관련으로 의미있는 연구를 많이 남긴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까지 번역하였군요. 그리고 본인이 직접 <자본> 해설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은 아무것도 몰랐던 대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어려워서 반납한 기억이 나네요 ㅋㅋ 지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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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9o8p7h6i5s4t 2022-07-2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대진 선생님의 <비극의 비밀> (2013)을 읽어봤는데, 비극 입문 및 해설로 아주 좋았습니다.

Redman 2022-07-27 16:11   좋아요 0 | URL
추천 감사합니다!!
 

법가는 사마담의 <논육가요지>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학파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사마담의 개념화 이전에도 '법가'로 통칭할 만한 통일된 사상적 흐름이 존재했었다. 이들은 법의 작용을 특별히 강조하여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행위 규범도 법을 통해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법과 변법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법가적 실천은 이미 춘추 시대 관중과 자산이 보여주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이론을 제시한 인물은 이회(기원전 455~기원전 395)이다.

한비(기원전 280?~기원전 233)는 법가 사상의 집대성자다. 그의 사상사적 위치는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순경은 유가를 기치로 삼아 선진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했으며, 한비는 법가를 기치로 삼아 선진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했다." 우리가 공자와 맹자에게 쏟는 관심의 반만이라도 순자와 한비자에게 쏟으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한비는 고국 한(韓)나라의 멸망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는 취약한 국가가 부국강병으로 나아가는 길을 법치의 실행에서 찾았다. 한비에게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정법(定法), 즉 법률로 현존하는 봉건 질서를 고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군주 전제의 고취"이다. 강국의 관건은 법이다. 그러나 법치는 군주의 권력을 제약하기보다 군주전제를 고취했다. 한비에 따르면 "법이란 일 처리에 가장 적합한 것이다."(法者, 事最適者也, <問辯>) 법의 목적은 일을 다스리기 위함인데, 그 핵심은 公을 존중하고 私를 폐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은 군주이며, 사는 군주와 대치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군주와 대치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를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백성뿐만 아니라 신하들까지도 포함된다. 인치를 부정적으로 인식한 그는 통치에서 "법을 절대화한 동시에 군주를 절대화하여 군주의 절대적 권위를 수립한 것이다."

한비가 바라보는 세계와 인간은 참으로 부박하다.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이것은 개조할 필요가 없다. 이 세계는 쌍방 대립 모순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순된 쌍방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한쪽이 상대방을 압도하든가 아니면 압도당하든가, 둘 중 하나이다. 중립이나 절충따위는 없다. 정치에서의 모순 관계는 군주와 군주에 대치되는 세력의 대립이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군주를 존중하는 것이다. 군주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 중요하며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주의 이익과 상충되는 다른 이익은 배제해야 하며, 이럴 때 가장 유효한 원칙이자 수단은 '힘', 즉 실력이다. 정치란 신민의 힘을 모두 동원하여 군주에게 집중시키는 데 있다. 한비자가 정치사상의 세 영역(권력론, 정의론, 국제관계론) 중에서 권력투쟁론을 중점적으로 논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한비는 극단적으로 군주 절대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면 어떤 이가 군주이며, 군주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유가는 군주에게 수양을 통한 인격의 도야를 요구했다. 그들은 요순과 같은 이상적 성인을 모델로 삼아 현실의 군주에게 그 모델을 따르도록 요구했다. 통치방식에서 유가는 인치를 주장했다. 법을 운용하는 것도 인간이기에 현명한 군주와 현명한 재상이 있어야 법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비자는 이들을 비웃는다. "군주 대다수는 또한 그저 중간 정도의 자질을 갖추었을 뿐이다." 인치의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통치자의 질의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염없이 요순과 같은 성인이나 현명한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급박한 현실에서 군주를 수양시켜 현인으로 만드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법치는 인치의 약점을 상쇄한다. 법치가 확립되면, "중간 사람도...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법에 의한 통치가 우선시된다면, 폭군이나 범인이 다스리더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누가 집권하더라도 폭정으로 빠지는 가능성은 줄일 수 있다. 류쩌화는 이 사상이 황당하다라고 평하지만, 나름의 개혁적, 정치사상적 의의는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더 공부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가 인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또 하나 더 있다. 현인을 기용하는 것은 군주의 권위에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군주는 현인 기용에 절대 반대해야 한다. 이처럼 그의 법치 사상은 "군주 개인 독재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므로 개혁의 분위기는 희석되어 버린다." 한비자의 정치사상은 권력투쟁론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경제문제에 대해 논급한 것은 적지만, 언급한 것은 상당히 특색이 있다.

한비자를 공부할 때 눈여겨볼 것이 사상통제('백가학설의 금지')이다. 한비는 "모든 말은 법의 궤도 아래", "관리들을 모든 일의 스승으로"라는 사상통제의 원칙을 제기했다. 이는 전 백성의 사상을 법과 교육으로 결정하려 한 시도이다. 그는 법령 준수와 교육을 하나로 결합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이리위사(以吏爲師, 관리들을 모든 일의 스승으로)"를 제기했다. 한비자에게 있어서 "교육의 기능은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정치적 순화 작용이다." 유가는 교육의 독립성을 중시하나, 한비자는 교육을 정치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묵가나 유가 등 다른 제자백가 학파들을 비판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언변을 일삼을 뿐 검증이 없으며, 진부하여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사상은 어리석고 증명할 수 없는 인의 따위를 증거로 삼기에, 그들의 사상을 따르는 것은 망국의 길이다. 교육도, 통치도 마땅히 법으로만 해야 한다.

결어에서 류쩌화는 이렇게 말한다. "한비는 군주와 신하, 군주와 인민 관계의 장막을 가장 진솔하게 벗겨버렸다...그가 성인의 팻말을 건지지 못한 주요 원인은 아마도 그가 너무 사실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봉건시대에는 허위가 성실보다 더욱 유용하며 더욱더 군주를 기쁘게 하였다." 한비자의 사상은 사실을 충실하게 말해서 군주들에게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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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2세 나남 셰익스피어 선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성일 옮김 / 나남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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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감상자의 공포와 연민을 환기시켜 카타르시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비극의 플롯, 주인공은 이 목적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짜여야 한다. 서양 비극의 원형은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당대 비극을 총괄하여 비극 일반에 관한 이론을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비극의 주인공은 완전무결한 도덕적 선인이나 극악무도한 악인이어서는 안 된다. 그는 명망과 번영을 누리고 있으나, 덕과 정의에서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 결점은 범죄 때문이 아니라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다. 비극의 인물은 '사상'을 대사로써 표현한다.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와 클레온이 각각 가족주의적 윤리와 국가주의적 윤리를 대사를 통해 드러낸 것이 그 예이다. 비극의 등장인물은 사상에 따라 행동하는데, 그들이 가진 사상과 결점이 그들과 상황을 파국으로 이끈다. 더 이상의 설명이 낭비라고 여겨질 정도로 희곡과 영문학 전체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셰익스피어의 비극 역시 이러한 비극의 구성준칙이 적용된다.

따라서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사극 <리처드 2세>를 상술한 일반적 준칙을 사용하여 이해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사극으로 분류되는 작품은 총 열 개이다. 그중 8편은 두 묶음의 4부작이며, <존 왕>과 <헨리 8세> 두 작품이 다른 나머지 작품이다. 4부작은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왕인 리처드 2세와 랭커스터 왕가의 왕들을 다룬 <리처드 2세>, <헨리 4세> 1~2부, <헨리 5세>, 그리고 '헨리아드'라고도 불리는 <헨리 6세> 1~3부와 <리체드 3세>를 말한다. <리처드 2세>는 다른 사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늦게 집필되었지만, 시대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다른 사극을 읽기 전에 먼저 <리처드 2세>를 읽으면 좋을 것이다.

사극으로 분류되어도 이 극은 비극의 특징도 갖추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비극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리처드 2세>를 비극으로 읽는다 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리처드 2세는 어떠한 사상을 가진 인물인가? 그는 무슨 결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대사로 어떻게 표현되었고 결말과 어떻게 이어지는가? 줄거리를 요약하며 분석해보자.

리처드 2세는 잉글랜드와 왕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 그는 자신의 왕위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행동은 오만했다. 한마디로 폭군이었다. 그는 볼링브로크와 모브레이의 대결을 멈추고 그들을 일방적으로 추방시켰다. 존 오브 곤트가 자신을 힐책하자 그에게 격분하였으며, 곤트가 죽자 그의 모든 재산을 몰수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통치자로서 실정을 거듭한다. 세금은 무거웠고, 재정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반란 진압 원정을 떠나려하고, 자신이 그 원정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선언하여 긴급한 순간에 왕궁을 비우려고까지 했다. 2막 1장까지의 내용은 리처드 2세의 실정과 악정을 부각한다. 그가 이렇게까지 득의양양하게 행동할 수 있던 것은 자신의 왕권의 신적 정당성을 강하게 확신했기 때문이다. 리처드 2세를 질책했던 곤트도 이를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하느님 권세의 대행자, 도유를 받아 하느님을 대리하는 분"(1.2.37-38) 자연인 리처드 2세는 결점 많은 인물이지만, 그의 왕관은 신성한다. 그리고 그 신성한 권위를 부여받은 '왕' 리처드 2세 역시 신성하다. 저딴 인간이라도 왕이니까 대접받는 것이다. 그 권위는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왕권신수에 굳세게 의존하기 때문에 쉽게 자아도취에 빠지고 자신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으며, 실책을 저질러도 하느님의 은총이 보호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견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고 오만한 리처드 2세의 모습은 볼링브로크의 역모에 의해 무너져 내린다. 사실상 이 극은, <오이디푸스 왕>을 연상시키듯이, 오아권의 신성함을 믿고 자신감에 차 있던 리처드 2세가 점진적으로 자신의 확신을 잃고, 신의 대리자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3막 2장 초반에서 리처드 2세는 아직 자신의 왕위의 신성함을 믿고, 신의 대리자에게 부어지는 하느님의 보호와 은총을 확신한다. 볼링브로크의 반역은 실패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속의 인간(worldly man)들이 내뿜는 숨결은 결코 주님께서 점지하신 대리인을 폐하지 못"(3.2.56-57)하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선 리처드 위해 천상의 보수 약조 받은 영광스런 천사 기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군세가 흩어지고 패배가 확정되자, 그의 확신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극의 반전이 시작된다. 신의 대리자라는 '왕'의 신성한 신체는 '이름'만 남은 껍데기가 되고, 결국에는 그마저도 사라지고 인간의 필멸하는 신체만이 남게 된다. "무덤과 지렁이와 묘비명 이야기나 하자꾸나...마침내 죽음은 오고, 작은 바늘 하나로 군왕의 성벽을 뚫느니, 그리되면 왕군이여 안녕!"(3.2.145 이하) 3막 3장 이후 리처드 2세의 대사는 '왕'과 '인간'의 대비를 보여주는 상징과 비유들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이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 극적인 반전은 셰익스피어의 고급진 대사와 만나 한층 더 풍부해진다. 단순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그대로 되풀이하여 한탄조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무덤' '지렁이' '묘비명' 같은 은유를 동원하여 리처드 2세가 느꼈을 절망감이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모든 것을 체념한 리처드 2세는 볼링브로크의 가신 노섬벌랜드의 제안을 수용하여 볼링브로크의 추방령을 철회하고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볼링브로크가 주재한 중신회의에 불려와 왕위를 그에게 넘겨주는 탈관식을 연출한다. 왕위를 상실한 리처드 2세는 이제 런던탑으로 호송되어 그곳에서 갇히게 되는 신세가 된다. 그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후에는 볼링브로크의 부하 엑스턴과 암살자들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신의 대리자' 리처드 2세는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반대로 볼링브로크는 추방자 신세에서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가 헨리 4세이다.

<리처드 2세>는 신성한 왕좌에 앉아있던 왕이 인간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그린 비극이다. 리처드 2세는 통치의 정당성을 신적인 것에서 구했고, 왕좌가 신적 정당성을 가진다는 믿음이 견고히 유지되는 한, 자연인 리처드 2세의 결점이나 악덕은 왕위의 신성성에 의해 문제되지 않는다. 여기에 이 비극의 본질이 있다. 곧 절대적이며 신성한 왕권과 유한한 인간성의 대립이 그것이다. 존 오브 곤트가 말한 것처럼 리처드 2세는 "성유 바른 몸"을 지니고 있어도 "조심성 없는 환자"(2.1)이다. 전자는 왕으로서의 신성한 신체이고, 후자는 물리적 인간으로서의 리처드이다. 전자가 있음으로써 리처드 2세 같은 무능한 군주도 신성시될 수 있었다. 자신의 통치를 예수의 신적 통치와 동일시하던 이 폭군은 왕위를 뻬앗긴 채 인간이 되었고, 최후에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죽었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는 시적 언어를 통해 이 흠 많은 폭군의 운명을 보여주어 그를 '영원불멸한 왕의 신체'에 대한 영원한 상징으로 남게 만들었다.

그러면 헨리 볼링브로크는? 현세를 존중하고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왕이 된 그이다. 그는 신적인 것에서 와위의 정당성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리처드 2세의 살해 보고를 받은 그는 양심의 가책에 짓눌려 다시 종교적인 것으로 되돌아간다. "독을 필요로 하는 자 독을 좋아하지 않으니...나 리처드 죽기를 바랐으나, 그분을 죽인 자를 혐오하고, 죽임당한 그분을 애도한다...카인과 더불어 밤의 그늘 속을 헤매거라...나는 성지 향한 여정에 올라, 내 죄지은 손에 묻은 이 피를 씻으려 하고"(5.6.38 이하) 정치는 늘 정당성을 요구한다. 정치란 현실적 필요에 따라 행해지고, 목적을 위해서는 악을 행할 수도 있음을 아는 그였지만, 헨리 4세는 그러한 필요만으로는 왕위를 정당화하는 데 충분치 않음을 알았기에 그는 다시 신앙으로 회귀한 것이다. 리처드 2세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왕위 찬탈로 인하여 그것을 더 극적으로 깨달았을 뿐. 그렇지만 리처드 2세와 달리 헨리 볼링브로크는 이미 인간의 필멸성과 왕의 절대성에 내재한 긴장을 인지하고 있었다. 헨리의 마지막 대사에 드러나는 고뇌와 괴로움은 여기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이로 미루어볼 때 <헨리 4세> 1~2부의 갈등 구조도 <리처드 2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예상해볼 수 있다. 자세한 건 읽어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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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 -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역사가의 통찰은 중요하다. 진정한 역사가의 존재로 그 사회는 집단성을 유지할 수 있다. 과거의 일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일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나를 파악하고 성찰하는 데 중요하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과거라 하더라도, 그것을 외면하거나 없던 일 취급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폐기가 가장 최악의 것이라면, 그 다음은 고통스럽지 않다거나 그래도 좋았다며 기억 자체를 바꾸는 일일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기억을 통해서 정체성을 확립한다면, 사회는 역사로써 정체성을 정립한다. 그러므로 과거를 버리거나 과거를 옳지 못하게 기억하는 사회는 집단의 지향점을 놓치고 순간의 이익에 탐닉하는 존재로 전락하거나 자기모순적 인식을 지니며 분열된 채 살아가고 만다. 무엇보다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회는 같은 잘못만 되풀이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진정한 역사가의 존재가 필요해진다. 진정한 역사가란, 반드시 역사학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에 대한 정확한 기록과 냉철한 비평, 그리고 이를 통해서 오늘과 과거의 기억을 연결하는 자가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역사가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지식인은 일차적으로 역사가여야만 한다.

토니 주트가 이 책에서 문제삼고 있는 것도 "사상의 역할과 지식인의 책임", "망각의 시대에서 최근 역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 밝히는 것"이다. 이를 두 단어로 요약하면, '역사와 지식인'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입각점도 이것이 될 것이다. 1994년부터 2006년 사이에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엮은 이 책은 2008년이라는, 20세기가 지난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에 출간되었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미 20세기가 망각의 영역으로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20세기가 지나간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20세기의 다툼과 이념, 이상과 공포는 벌써 그릇된 기억mis-memory의 어두컴컴한 영역으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역사를 망각한 이들은 역사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득의양양하게 떠들어댄다. 그러나 바로 이전 시대에 대한 망각은 그저 사실에 대한 망각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를 이해하고 반성하는 토대의 상실로 이어진다. "우리는 20세기를 떠나보내며 지나치게 자신만만했고 성찰은 너무 부족했다. 서구의 승리, 역사의 종말, 일극 체제인 미국의 시대, 세계화와 자유시장의 피할 수 없는 전진이라는 아전인수격 절반의 진실에 젖어 대담하게 다음 시대로 발을 내딛었던 것이다."

토니 주트는 전쟁의 기억,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 냉전과 미국의 시대, 지식인과 사상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와 논점을 제기하지만,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지식인과 사상의 역할이다. 물론 학문적 대가의 냉철하면서도 정확한 현실인식을 보고 배울 수 있는 3부와 4부도 중요하나, 1부 "어둠의 심장"과 "2부 지적 참여의 정치학"에 더 집중할 것이다. 저자는 '역사가이기도 한 지식인'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사상가와 저자들을 평론한다. 앞서 말했듯, 지식인은 사태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냉철한 관찰력을 지녀야 한다. 이를 통해 지식인은 사회가 제대로 된 역사적 기억을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

저자가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당파성에 사로잡혀 아전인수격으로 사태를 해석했고, 그로 인해 발생할 피해에는 눈을 감았다. 이중에는 <혁명의 시대> <제국의 시대> <자본의 시대>라는 19세기 서양사 분야에서 괄목할 저서를 남기고, 20세기 통사를 다룬 <극단의 시대> 등 굵직하고 중요한 저사를 남긴 역사학자 홉스봄도 포함된다. 홉스봄은 일생의 대부분을 공산당원으로서 살았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헌신했다. 이러한 타협없는 삶은 개인으로서는 훌륭한 일지만, "홉스봄의 역사적 직관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홉스봄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공산당의 논평을 떠올리게 하듯 애매한 기조를 유지했으며, 소련, 스탈린, 유럽 좌파들의 과오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했다. "홉스봄은 악을 직시하기를 거부했고 악을 악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했으며, 스탈린과 그가 한 일의 정치적 유산은 물론이고 도덕적 유산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20세기 역사에서 좌파 안에 존재한 악마적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행적과 대면하기를 회피했다. 그 결과 홉스봄은 시대의 공포와 수피를 외면한 채 역사가의 허물만 쓴 채, "어둠의 심장"과 같았던 20세기를 방관했다. 그는 망각된 시대를 방기한 책임을 지닌 지식인이다.

그리고 '냉전'이라는 주제에 대해 여섯 권의 책을 저술한 존 루이스 개디스는 편파적인 시각으로 미국의 승리주의적 관점에 의한 냉전사를 썼다. 그의 책이 "미국 내에서 냉전의 성격과 냉전이 종결된 방식, 냉전의 미국 안팎에 남긴 끝나지 않은 근심스러운 유산에 관하여 오해와 무지가 널리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편으로, 한나 아렌트는 "거드름 피우는 고급 독일적 특성", "독일적인 편견" 때문에 20세기 최악의 박해인 홀로코스트와 진정으로 대면하지 않았다. 그녀의 주저는 악의 문제에 대한 의미있는 성찰을 담았지만, 이런 아렌트의 독일성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반대로 알베르 카뮈나 에드워드 사이드,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등은 지식인이 해야할 바를 수행했다. 그들은 자신의 인종적 한계나 이데올로기적 당파성에 사로잡혀 비판적 능력을 상실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대의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하여 이를 증언하였고 사람들이 간과하거나 왜곡되게 인식하는 사상의 역할을 통찰하며.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시대에 부족한 도덕적 권위를 세웠다. 이와 관련하여 살펴볼 만한 구절들을 봐보자.

"지침을 잃어버린 지식인의 상태를 꿰뚫는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이 직관 덕에, 카뮈의 윤리학은, 한계와 책임의 윤리학은 특유의 권위를 얻게 되었다." (<알베르 카뮈: 가장 훌륭한 프랑스인>)

"코와코프스키가 보기에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급투쟁에 관한 명제들 때문이 아니고,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붕괴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이행의 약속 때문도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프로메테우스의 낭만적 환상과 완고한 역사적 유물론의 독특한 혼합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에 작별을?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와 마르크스주의의 유산>)

"사이드의 영원한 업적을 꼽으라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이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의 지도자들을 무능하다고, 단순히 무능하기만 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호되게 꾸짖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주 짜증나게 만든 저평가된 카산드라였으며, 비판자들에게는 공포와 질책을 끌어들이는 피뢰침이었다. 믿기 어렵지만, 재기 넘치는 이 교양인은 진정한 악마의 역할을 떠맡았다."(<에드워드 사이드: 뿌리 없는 세계주의자>)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이라는 부제를 담은 이 책은, 망각된 20세기에서 우리가 건져올릴 역사적 유산과 교훈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독서는 반드시 20세기 한국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야만 완성된다. 세계사 속에서 한국의 20세기는 어떠하며,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은 한국의 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술하는가. 과연 한국에 '진정한 역사가이기도 한 지식인'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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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6-1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니 주트는 제가 좋아하는 역사학자인데도, 역사에 대해 저와 생각이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
아주 흔한 말이지만, 저는 카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는 결국 당파성’이란 주장이 더 현실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Redman 2022-06-10 15:58   좋아요 1 | URL
역사가 당파성을 가진다는 것과, 당파성 때문에 잘못된 일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지 않는 것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후자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고, 개디스와 홉스봄 등을 비롯하여 같은 오류를 범하는 지식인들도 당연히 비판받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