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과 논쟁을 벌여봅시다 - 12명의 천재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물리학 이야기
후위에하이 지음, 이지수 옮김, 천년수 감수 / 미디어숲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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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문 공부를 시작하면서 기술주들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어 시작한 과학 도서 읽기가 벌써 열두 권째다. 처음에는 완벽하게 투자 목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흥미가 생겨 꼭 투자와 관련이 없더라도 이제는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이번 달에 선정한 책은 과학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있는 후위에하이의 아인슈타인과 논쟁을 벌여봅시다로 정했다. 교양 물리 이야기라고 하여 가볍게 시작했지만 나의 짧은 지식 탓인지 쉽지만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한 실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수학자들은 가장 먼저 숫자'0'을 떠올릴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0'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p.33



목차만 보고서는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각 장마다 주요 논제부터 살펴보자. 1장은 빵을 매개체로 물질의 구성에 대하여 말하면서 원자 구조로 넘어간다. 원자, 전자, 원자핵, 중성미자, 쿼크 등등을 발견하게 된 과정과 순서를 설명하며 당연하게 우주로 넘어간다. 우주가 생성되게 된 과정을 짧게 말하며(이유는 뒤의 챕터에 굉장히 상세하게 나오기 때문) 우주의 탄생은 '0'이라는 특이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첫 번째 챕터가 끝난다. 쉽게 말해서 소제목의 빵은 호기심 자극용에 불과하다는 것.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계는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로 프록시마, 센타우루스 A, 센타우루스 B 세 개의 항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략) 이 세 개의 항성이 함께 삼체 구조를 이루는데 각자의 궤도는 나머지 두 개의 항성의 영향을 받는다."

-p.44



두 번째 챕터는 프랙탈 이론에서 자연계의 자기 복제와 천체의 운행과 관련된 삼체문제 그리고 난류 문제와 나비 효과를 주로 다룬다. 이는 세 번째 챕터는 빛의 입자와 파동에 대하여 수많은 과학자들이 논쟁하면서 서로 증명해 가는 과정을 다루며 네 번째 챕터에 오면 이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특수 상대성 이론, 에테르의 존재 유무 실험, 중력파 등에 관하여 다루는데 수식이 정말 많이 나온다. 다음은 양자 물리학 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나오며 이후 파동 함수, 초끈 이론 등이 이어진다.


"시간의 흐름은 사람 혹은 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세상에는 절대적인 혹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공간이나 시간은 없다는 의미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p.116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상대성 이론에 나오는 쌍둥이 역설이었다. 쌍둥이인 톰과 제리가 20살이 되던 해에 톰은 광속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떠났고, 동생은 지구에 머물렀다. 30년이 지난 후 톰이 지구로 돌아왔을 때 제리는 50살이 되었다. 이때 제리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 팽창 효과로 인하여 제리의 시간은 3년밖에 흐르지 않아 23살인데 톰의 관점에서 보면 그 반대가 된다. 과연 이런 경우 누가 시간의 기준이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고 뮤온 실험으로 해답을 얻은 케이스였다.


"블랙홀의 놀라운 점은 부피가 0에 가깝지만 질량은 거대하다는 것이다."

-p.186


과학 베스트셀러 후위에하이의 아인슈타인과 논쟁을 벌여봅시다는 12명의 천재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물리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펼치고 안으로 들어가면 몇 배는 많은 과학자들이 나온다. 가령 예를 들자면 2장에서 후크, 뉴턴과 함께 실험해 봅시다라고 나오지만 유클리드부터 시작하여 그리말디, 후크, 뉴턴, 호이겐스, 토마스 영, 프라운 호퍼, 헤르츠를 지나 아인슈타인, 드브로이까지 빛이 파동인지 입자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이 모두 나온다. 아마 살면서 들어본 물리학자는 모두 나온다고 보면 된다.



"정보의 전달(양자의 얽힘은 고려하지 않는다) 속도 역시 광속을 초월할 수 없다."

-p.296


일단 목차의 귀엽고 호기심 가득하게 만드는 소제목만 믿고 책을 펼치면 상당히 후회할 수 있다. 일단 수많은 이론과 이를 설명하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하나하나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식과 공식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쉬웠던 것은 피보나치수열이었으며 상대성 이론까지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을 때 울면서 공부했기에 수월하게 넘어갔다. 그러나 벡터, 허수, 베타 함수 등 온갖 그리스 문자가 난무하는 공식이 나오면서는 아예 이해를 포기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주가 칠흑같이 캄캄한 공간이라고 해서 텅 비어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p.331


읽으면서 저자가 상당히 물리학에 대하여 어지간한 물리학자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타인에게 많이 알려주려는 열정이 많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최대한 쉽게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나의 과학 지식이 바닥인 것인지 저자가 일반인의 수준을 너무 높게 잡은 것인지 개인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과학 베스트셀러 후위에하이의 아인슈타인과 논쟁을 벌여봅시다를 꼼꼼하게 읽으면 기존의 사이언스 지식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한데 이러한 이론은 우주 초기의 모습을 설명할 때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p.381


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이번만큼 검색을 많이 하고 필기를 많이 하고 계산을 많이 한 적은 처음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 도서에 시간을 더 투자해 볼 생각이다. 이 책을 깔끔하게 이해하면 앞으로 그 어떤 물리 이야기가 실린 도서도 무서울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어렵고 좋은 책을 붙잡고 씨름한 대가로 독서 기술을 향상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이 도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렵다는 말만 듣고(어려운 것을 쉽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인슈타인과논쟁을벌여봅시다 #후위에하이 #미디어숲  #물리이야기 #과학베스트셀러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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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세계문학 6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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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사랑은 이성적인 부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블랙홀과 같은 영역이다. 게다가 이 늪에 한번 빠진 후에는 자신만의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경우도 많다. 그야말로 에로스가 인간을 시기해서 파놓은 늪과 같은 존재. 열림원 세계문학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는 이런 인간의 원초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람에게서 교육, 체면, 사회적 시선, 예의 등등 세월이 지나면서 짐승과 달라 보이기 위하여 만든 모든 것을 걷어낸 모습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카슨 매컬러스 작가 소개

1917년 미국 남동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6세부터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세에 자전적 소설인 『천재』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듬해 결혼하였으나 서로의 양성애적 성향으로 바람을 피우며 삼각관계까지 가면서 결혼 4년 만에 이혼한다. 저서로는 1940년에 집필한 장편 소설 『마음의 외로운 사냥꾼』, 『황금에 비친 모습』 등이 있으며 두 작품 모두 영화화되었다. 1967년 50세의 나이로 뇌졸중으로 인한 투병 중 하늘의 별이 되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인 『슬픈 카페의 노래』 또한 1991년에 영화화되었다.





영화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줄거리

성별을 알 수 없는 창백한 얼굴에

회색빛 사팔눈은 너무 심하게

가운데로 쏠려 있어서

두 눈이 남몰래 간직한 슬픔을 나누며

서로 은밀히 마주 보고 있는 듯하다.

p.10

황량한 마을에 사는 미스 어밀리어는 과거에 딱 열흘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전남편 마빈이 있다. 마빈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결혼을 했으며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돈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전 재산을 양도하지만 어밀리어는 견디지 못하고 쫓아낸 것. 이후 별다른 일 없이 조용하게 흘러가던 마음에 그녀의 사촌임을 자처하는 꼽추 등을 가진 라이먼이 등장한다. 타인에게 개인적인 마음을 나누어주지 않기로 유명해한 그녀지만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다. 이때 카페도 열고 황량한 그곳은 점차 사람들의 휴식처로 바뀌게 된다.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만은

단 몇 시간이라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세상에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쓰라린 생각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p.106

처음 그녀 앞에 등장할 때만 하여도 사람의 몰골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자존감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그녀의 사랑과 관심으로 점차 달라진다. 며칠 사이에 교활한 라이먼은 어밀리어 위에 군림하다시피 하며 그곳에 지내게 되며 온갖 마을 사람들에게 이간질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에 간 전 남편인 마빈이 출소하여 이곳에 오게 되고 그를 처음 본 라이먼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라이먼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던 마빈. 마빈의 관심을 얻기 위해 라이먼은 별짓을 다 한다.

신 외에는 그 누구도 이 같은 사랑

아니 다른 그 어떤 사랑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p.66

그러던 어느 날 서로에게 원수 같은 사람인 어밀리어와 마빈은 말 그대로 몸으로 싸움을 하게 된다. 그녀의 키는 180이었고 마빈은 그녀보다 4센티 작았으며 둘 다 7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비등비등한 몸의 소유자였기에 팽팽한 싸움이 진행된다. 그러나 갑자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고 이후 이 마을은 예전의 황량함을 다시 되찾게 된다.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어밀리어, 마빈, 라이먼의 결말은 어떻게 끝났을까? 영화로도 나온 이 영화는 꽤 성공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생각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p.50

열림원 세계문학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무려 세 페이지에 걸쳐 길게 나와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딘가 조금은 비틀린 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로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만 열렬하게 상대를 품는 것. 이는 작가 자신의 삶과 작품 속 어밀리어의 삶이 오버랩되면서 애정 문제에 상처를 많이 받았음을 느끼게 된다. 작중에 어밀리어는 철저하게 이 정의에 따라 움직이는데 독자가 보기에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함도 느끼게 된다.

그녀는 가게에 맥주를 사러 들른

손님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신랑을 대했다.

p.;59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인데 작품 속 마을은 우리의 마음과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라이먼을 만나기 전 그녀는 오로지 돈과 일 그리고 소송만을 즐기던 여자였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그의 등장으로 한낱 가게에서 마을의 많은 사람이 모여 쉴 수 있는 카페로 변모하게 된다. 덕분에 마을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소통을 하며 지내는 공간이 된다. 그래서 배경 자체는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우리들의 확장된 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꼽추는 그가 밟고 있는

마룻바닥의 널빤지 하나하나까지도

다 자기 소유인 양 거만하게,

그리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p.36

다음으로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부정적인 새싹을 키우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마빈의 애초 행실은 양아치에 가까웠지만 어밀리어한테는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신을 희생한다. 그 결과는 매일 얻어맞다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것.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밀리어는 라이먼을 만나 마빈의 위치로 들어가게 된다. 물론 라이먼이 그녀에게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 심각하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돌려주었다. 단지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군림한 것이다.

인생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하나의 길고 어두운

싸움일 뿐이었다.

p.105

등장인물 중에 생김새부터 마음씨까지 정상적인 사람은 하나도 없는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는 제목처럼 결말이 행복하지는 않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행복과 불행 이분법으로만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작게는 개인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크게 보면 인간 종족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모든 것을 걷어낸 본능적인 인간의 사랑이 어떤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작가가 쓴 이 책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슬픈카페의노래 #카슨매컬러스 #고전문학 #열림원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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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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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에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가 양극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용어의 기본 개념과 그것의 생성 원리, 작동 방식,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무지하다. 갈등과 갈라 치기에 휘둘리지 말자고 하면서도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드는지, 그 책임자가 누구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여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오늘 소개할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책은 얇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것의 실체를 파헤쳐놓았기에 소개해 본다.



바르트 브란트스마 작가 소개

지역과 국가 문제에 대하여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의 컨설턴트이자 실용 철학자로서 경·검, 경영진, 언론인, 정치인, NGO 활동가 및 다양한 전문가들을 가르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일하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 항상 존재하는 역학을 탐구하기로 결정했다. 분쟁 지역에서 양극화 전략을 테스트했으며 유럽 각지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양극화 사고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기업을 설립하고 책을 집필하여 전문가들에게 양극화의 역동성과 그러한 역동성 내에서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자 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미디어 시대에 증가하는 양극화에 대한 깊이와 품질에 답변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 속으로

1장에서는 양극화의 세 가지 기본 법칙부터 논한다. 그 내용은 사고 구조, 연료, 직감의 역학이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하여 상대의 정체성을 만들어 구분하는 사고 구조에서 시작된다. 나쁜 점은 오늘의 주제이며 좋은 점은 사고의 구성하는 개념과 프레임을 살펴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현재 사회의 문제에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료 공급이 필요하며 이때의 연료는 의도의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고 이용되는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 기본 원칙 중 세 번째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바로 이런 현상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직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양극화가 증가함에 따라 합리성은 감소한다는 것. 심지어 명확하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나와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해야 하는 순간에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음모론을 들고나온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말하는 자신은 스스로의 발언에 대하여 무조건 논리적인 진실만 말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극화 작동 방식에는 다섯 가지 역할이 있는데 순서대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자가 있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중요한데 바로 자신이 정치나 미디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기본 개념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주동자는 사고에 연료를 공급하는 임무를 띠고 있으며 동조자는 주동자의 견해를 완벽하게 찬성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일 때는 지지자의 진영에 들어간다. 방관자는 말 그대로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중간자이며 중재자는 양쪽의 대화를 주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치이다.

희생자는 정확히 중간 지대에서 찾으며 중간 지대의 허용 범위에 따라 양극화 압력을 측정할 수 있다. 웃긴 것은 이 희생자의 역할에 가장 알맞은 후보군이 중재자라는 것이다. 주동자는 자신의 편을 만들 때 동조자가 아닌 중간에 위치한 방관자나 중재자를 타깃으로 잡는다. 어느 쪽이든 이미 내 편을 더 내 편으로 만드는 노력보다는 세력을 넓히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3부에 가면 이런 현상을 바로잡는 방식이 나와 있다. 흔히 말하는 서로를 알기 위한 대화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한 후 제시하는 방법이기에 꽤 몰입도가 높았다.

나의 생각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이다. 좋은 의미로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지만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상대에게 정체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줌과 동시에 양극화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 내에서 같은 것에 대하여 욕구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과정을 전문적이지 않은 용어와 많은 예시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이야기를 우리의 현실로 잠시 접목하면 TV에서 방영하는 정치인의 토론은 결코 상대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거나 상대를 이해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조자이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 편에 서지 않은 국민과 중간 지대에 있는 방관자들을 좀 더 확실하게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는 행위. 눈은 상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말은 TV를 보고 있는 국민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를 파악하면서 미디어를 마주한다면 조금은 덜 휩쓸리지 않을까 한다.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기존의 관련 도서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도서이다. 현재와 같은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사고방식을 정립하고 판단력을 키워 그 파도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원인을 인간 본성에서 찾으며 철저히 구조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그래서 독자가 자신의 편협함으로 인하여 사회의 파도에 맹목적으로 휩쓸렸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책 속에 빠질 수 있다.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양극화 현상을 우리는 누구나 느끼고 있다. 남과 여,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노인과 청년, 부자와 빈자, 고학력과 저학력, 도시와 농촌 등등 이름을 붙이기만 하면 일단 시작되는 갈라치기 현상. 이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하기는 하지만 명확한 대책이 없어 위기감만 느끼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유지하면서 이런 위기를 잘 넘겨보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우리는왜극단에서는가 #바르트브란트스마 #양극화분석 #한스미디어 #안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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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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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죽으려고 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고 하는 자가 아닌 자신이 살면서 대조되는 모든 것을 넣고 생각하다가 보면 천재적인 작가의 생각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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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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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를 처음 만났던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처절했던 디스토피아 소설인 더 로드를 통해서였다. 서점가에 블록버스터 영화를 개봉하는 것처럼 광고를 하던 책이었기에 속는 셈 치고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 몇 년을 책의 그림자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후 이 작가의 책은 심력 소모가 심하다는 것을 깨닫고 멀리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미리 밝히지만 그만큼 잘 쓰인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나였지만 죽을 듯이 더운 더위를 넘기고 나니 그의 그림자가 그리워져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를 손에 잡았다.


코맥 매카시 작가 소개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1933년 미국 태어난 매카시는 1951년 테네시 대학교에 입학해 인문학을 공부했다. 1965년 첫 소설 『과수원 지기』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1985년 작 『핏빛 자오선』으로 명성을 얻었다.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을 출간하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출간작으로는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 『바깥의 어둠』 『신의 아들』 『서트리』 등이 있다.


줄거리

내 이유의 핵심은 점차

환상을 믿는 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뿐이에요.

현실의 본질을

점차 깨닫게 된 거지요.

세계의 본질을.

p.116



이 작품은 꽤 단조로운 희곡 형식으로 전개된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오로지 두 남자의 대화로만. 한 남자는 백인이며 교수이다. 문명에 대하여 더 알아가면서 어느 순간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선셋 리미티드(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달리는 급행열차)에 몸을 던진다. 다른 남자는 흑인이며 살인으로 교도소를 다녀온 목사이다. 그는 자신의 생일날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백인을 구해 자신의 집 탁자에 앉혀 놓았다.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는다며 토론의 장을 벌인다.


모든 걸 포기해버렸어.

그런데 문득 그 말을 해버렸어.

이렇게 말한 거야.

날 좀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살려주시더라구.

p.103

백인은 흑인의 도움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여전히 그 장소를 벗어나 자신의 고집대로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며 흑인은 그를 어떻게든 길게 그를 잡아 두고 신의 존재를 피력하면서 백인이 열차에 몸을 던지는 일을 막아보려고 한다. 교수가 생을 마감하려는 이유를 이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아닌 독자도 있을 정도로 모호하다. 목사는 교수가 더는 스스로 선셋 리미티드에 몸을 던지지 않으려는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생각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져서

어떻게든 크게 한 걸음을

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하느님이 눈여겨보는 것

같다는 거야.

p.51

이 작품에서 선셋 리미티드는 열차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책 속에서는 현실에서는 절망에 빠져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넓게 본다면 인류의 운명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sunset은 해 질 녘이라는 뜻이지만 마지막(끝나가는)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정된 마지막. 이것이 느껴지는 순간 그의 작품 더 로드의 이미지가 이 도서와 겹치기 시작했다.


만약 사람들이 슬픔 때문에

자살을 하는 거라면,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해가 지기 전에 죄다 땅속에

묻는 것만 종일 해야 할 거야.


p.125

사실 현실적인 삶만 보자면 교수의 삶이 빈민가 목사의 삶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게다가 교수가 느끼는 절망은 한 개인으로서 사적인 의미의 감정이 아니기에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절망적인 삶에서 희망과 생명을 보고 이를 전하는 흑인과 죽음을 말하는 백인. 시니컬한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백인의 사고에 빠지게 되고,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흑인의 설득에 빠지면서 그의 안타까움을 심장 끝에서 끓어오듯이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건, 교수 선생.

인생에 괴로움이 없다면

자신이 진짜로 행복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거 아니겠소?

뭐에 비교할 건데?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자동으로 니체의 고통에 관한 부분과 연결이 된다. 인간이 고통을 싫어하고 저주하는 이유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 때문이라고. 그러니 고통으로부터 멀어지지 말고 용기를 내어 그 심연을 들여다보며 고통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는 흑인의 주장으로는 어느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인의 의견에 매료되었다. 아마 홀로 삶의 피곤함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교수의 주장에 빠져들 것이다.

빛이 선생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선생이 어둠밖에

보지 못할 뿐이다.

그 어둠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그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

p.114

그러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면서 오히려 단면만 바라보며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스스로의 생명을 끊으려는 교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신을 내세우며 타인을 설득하려는 목사가 편협한 것일까? 아니면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를 자신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생명을 끝내려는 고집을 꺾지 않는 교수가 편협한 것일까? 마지막 흑인 목사가 하나님을 향해 울면서 하는 기도를 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글쎄. 사람들은 가끔 어떤 걸

손에 쥐고 나서야 그걸 자기가

쭉 원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던데.

p.84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삶과 죽음을 말하는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는 형식이 보여주는 것처럼 연극 무대로 올랐으며 2011년도에 토미 리 존슨과 사무엘 잭슨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삶과 죽음의 대비를 백과 흑으로 나눈다면 흑인이 삶인 백쪽에 있고 백인이 그 반대쪽에 있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죽으려고 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고 하는 자가 아닌 자신이 살면서 대조되는 모든 것을 넣고 생각하다가 보면 천재적인 작가의 생각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셋리미티드 #코맥매카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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