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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퀀텀 패권 쟁탈전
이영우 지음 / 삼성글로벌리서치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먼저 삼성의 경제 시각을 담은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출간한 이영우의 신냉전, 퀀텀 패권 쟁탈전에서 말하는 퀀텀모프라는 단어 뜻부터 알아보고 시작하자.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용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익숙하게 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퀀텀모프는 양자역학의 연구 대상인 미시세계를 구성하는 최소의 에너지 단위를 의미하는 퀀텀과 탈바꿈을 뜻하는 모프의 합성어이다. 디지털 문명의 대변혁을 통해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연 퀀텀문명의 도래를 의미하기도 한다.
양자 기술은 이제 과학자가 아닌 외교관과 군인이 다루는 대상이 되었다. 신냉전, 퀀텀 패권 쟁탈전은 퀀텀 기술을 둘러싼 국제 질서의 전환을 분석하며 한국이 이 흐름에 어떻게 뒤처지고 있는지를 조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퀀텀 기술을 둘러싼 지정학적 충돌과 경제적 패권 경쟁을 통해 기술이 권력이 된 시대의 생존 전략을 말한다. 세계는 지금 양자 컴퓨팅, 양자암호, 양자 센서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명 질서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 경쟁에서의 승리는 곧 경제와 군사, 안보의 우위를 의미한다.
책의 시작은 푸틴과 김정은의 정상 회담이다. 북러 관계의 강화로 출발한 첫 장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신냉전이라는 판위에 새로 놓인 돌 하나로 읽힌다. 왜 내키지 않지만 굳이 푸틴이 새벽 두시에 평양까지 방문하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었는지에 대하여 그 내막이 드러난다. 단순히 총탄과 병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이 과정에는 중국의 시진핑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바그너 그룹 용병들의 행위가 단순 쿠데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울부짖음이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책은 러시아에서 중동으로 시야를 옮긴다. 우리에겐 지리멸렬한 종교전쟁으로 알려져 있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은 의외로 신냉전 체제를 형성하는데 큰 일조를 했다. 모기 한 마리가 세계를 움직인 셈이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미국 전력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묶어 두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아브라함 평화 협약 체결을 무산시켰다. 경제적 자원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로 양분화되어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길어졌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는 교활한 여론전을 펼쳤으며 중국, 러시아, 아랍, 이슬람 지지 세력이 UN과 산하 단체 및 기타 국제기구 흡수를 상당수 진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경제 지도에 드러나는 신냉전 체제가 완벽하게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큰 혜택을 본 국가가 바로 북한이며 이는 대한민국에 꽤 치명적으로 작용된다. 즉, 하마스, 이스라엘 전쟁은 종교 전쟁이 아니라 이란, 러시아, 중국이 배경으로 깔린 치밀한 정치 전쟁이었다.
이후 책은 미국의 전략, 중국의 추격, 러시아의 협공을 분석하며 이 세 국가가 퀀텀 기술을 어떻게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은 여전히 선도자이며 중국은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는 틈새를 노려 협력망을 조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 선택한 것이 일대일로이다. 우리는 단순히 이 정책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정책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 속내는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과 서방 자유주의 진영을 포위하고 패권을 가져가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이 정책이 오히려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다. 각국 간의 윈윈 전략이 아니라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 시진핑의 입장은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되었고, 여기에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거대한 칼날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다. 결국 이 신냉전 체제는 과거 냉전 체제와 달리 적당히 서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어느 하나가 완벽하게 고꾸라져야 끝나는 전쟁인 셈이다.
이 전쟁에서 패한 쪽은 향후 글로벌 패권에서 절대 강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 간의 싸움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 오면 죽기 살기로 싸운다. 이 표현을 국제 정세에 쓰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금의 형세가 딱 이런 식이다. 이 말은 미국이든 중국이든 살아남기 위하여 어떤 나라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든, 철저히 이용만 하고 버리든, 불쏘시개로 쓰든 가차 없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을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전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저자의 진단은 단호하다. 한국에는 세계대전략이 없다고 말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의 정책은 폐기되고 외교 라인은 단절되며 경제는 1%대 성장에 머무르는 것이 원인이라고 하면서. 어떤 국가이든 정당의 이익이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굵직한 세계대전략은 변함없이 이어져야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성과를 위하여 기존 정책을 엎어버리는 것을 문제점으로 삼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의 김정은마저 대통령에 따라 제멋대로 바뀌는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수차례 비난했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생존을 위하여 어떤 전략을 실행해야 하는지를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룬다. 마지막 두 장은 생각보다 냉정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어 적당한 위기감 정도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꽤 아프게 다가올 내용들이 나온다. 저자는 그 누구보다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지만 바로 그 점이 독자로 하여금 더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만든다.
삼성의 경제 시각을 담은 이영우의 신냉전, 퀀텀 패권 쟁탈전의 흥미로운 점은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펴낸 도서라는 점이다. 정부도, 학계도 아닌 기업의 시선에서 국제정세와 기술 패권을 다룬다. 국가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할 때, 기업이 분석을 대신하고 대응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현실. 단순한 이론보다는 지구라는 도화지에 지정학, 지경학적 요소와 각국의 힘겨루기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투자자라면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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