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의 연결을 묻는 카를로 로벨리의 질문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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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이라는 정밀한 도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물리학의 언어를 넘어, 철학과 예술, 정치와 삶의 구체성으로 사고의 지평을 확장한다. 이 책은 과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관계적 존재론을 제시하며, 존재의 본질이 고립이 아닌 연결에 있다는 관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관계의 철학을 품은 과학자의 사유이기에 건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그만의 특유한 부드러움으로 딱딱한 과학의 흔적을 덮어 누구나 읽기에 부담이 없다.



이 책은 장자의 물고기 일화에서 출발한다. '나는 여기에서 알았다'라는 장자의 말은, 앎이 자연과 분리된 인간의 인지 행위가 아니라 세계 자체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입장은 이원론적 인식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며 주체와 객체, 인간과 자연, 감각과 진리의 경계를 허문다. 관계 중심의 사유는 과학의 영역에서도 유효하다.  작가는 원자의 정체조차 그것이 세계의 다른 부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음악 역시 음파나 악보가 아니라, 듣는 이의 뇌에서 발생하는 복합적 과정이라는 점에서 관계적 현상이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를 반사하고 변주하는 상호작용의 총합으로 설명된다. 레스보스 섬의 서정시와 고대 자연철학, 갈릴레오와 하이데거, 우주론과 양자역학, 기후 위기와 전염병까지. 겉보기엔 이질적인 주제들이 하나의 축(연결성)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독자는 장르를 넘나드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며 과학과 인문학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영역임을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과학을 객관적 진리의 집합이 아닌 관점의 전환을 통한 세계의 재인식으로 해석한다. 그는 갈릴레오의 두 세계의 대화가 과학적으로는 오류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적인 시선을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과학이 단순한 사실의 축적이 아닌 존재 방식의 전환과 맞닿아 있음을 암시한다. 그에 따르면 최고의 과학은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감각의 직관을 해체하고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사회적 통찰 또한 그의 중요한 주장이다. 저자는 단순한 과학적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생태 위기와 팬데믹, 불평등과 전쟁에 대해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 그는 권력이 해결책보다 우위를 추구하고, 폭력의 논리에 빠진 사회 구조를 비판하며, 게임이론의 발상을 전환해 경쟁의 구도를 협력의 게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적 협력 없이는 인류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경고는 과학자의 경계 너머에서 들려오는 도덕적 요청이다.



특히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존재론과 윤리가 하나의 축으로 엮여 있다는 데 있다. 존재는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며 그 관계를 인식하고 확장하는 것이 곧 윤리적 실천이 된다. 저자는 이론적 철학과 사회적 연대를 분리하지 않는다. 존재의 이해는 곧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며 이 책은 그러한 철학적 통찰과 실천적 태도를 통합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를 위하여 그는 첫 챕터에서 말한 장자 일화에 대한 독자들의 의문을 씻어주기 위하여 마무리에서 다시 끄집어 낸다. 이러한 시선은 독자 각자의 사고와 연결될 때 비로소 살아난다



관계의 철학을 품은 과학자의 사유를 모은 카를로 로벨리의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의 연결을 생각하지 않고 읽었을 때 오해하기 쉬운 책이다. 아마 첫 몇 챕터만에 길을 잃고 헤맬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론 물리학자라는 저자의 정체성을 떠올리면서 읽는다면 제각각으로 떨어져 있는 주제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장자, 전쟁, 정치, 미술, 음악, 과학, 철학까지 무엇 하나 일관성이 없지만 이 모든 것은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양자로 인식한다면 오히려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과학자가 확실성 대신 질문을 남긴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때때로 명확한 결론 없이 사유를 멈추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깊은 사고를 유도했다. 장자의 물고기 일화가 뜬금없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끝에 가서야 앎이 세계의 일부라는 메시지로 닫히는 구조는 의도적인 사유의 미로 같았다. 문장을 곱씹고 페이지를 몇 번이고 되짚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그 미로는 때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지만 그 자체로 사고의 운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갈증도 남았다. 모든 존재가 관계 속에 있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그 관계 너머의 개별성은 어디에 있을까? 세계가 얽혀 있다는 설명은 풍부했지만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간, 고유한 선택과 실존의 무게는 다소 가볍게 다뤄진 듯했다. 어쩌면 이 책은 질문을 던지는 데 집중했을 뿐 답은 애초에 각자에게 찾아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열린 태도 자체가 저자의 윤리였을 것이다. 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차원에 대한 침묵은 오히려 독자에게 더 본질적인 고민을 유도한다.



물론 이 책이 제시하는 사유는 모든 문제에 완결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저자는 과학의 객관성과 관계적 존재론의 상대성, 겸손한 존재 인식과 인간 주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 균형점은 독자에게 열린 채 남아 있으며 이는 이 책의 미덕이다. 완결된 체계보다 질문을 남기고, 통합적 시야를 제안하며, 사유의 확장을 유도하는 방식은 관계의 철학을 품은 과학자의 사유라는 그만의 컬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지식의 구조보다는 사유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본질적 가치이다.



이 책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재구성하고, 존재에 대한 감각을 재정비하며 삶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물리학자가 쓴 책이지만 이론보다 존재에 가깝고, 실험보다 질문에 충실하다.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의 사유 흐름으로 연결하며 그 안에서 독자는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게 된다. 지금처럼 전 지구적 혼란이 구조화되는 시대에 작가의 연결 사유는 사고의 방식 자체를 되묻게 만든다. 이 책은 그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된 이들에게 열려 있는 사유의 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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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
찰스 S. 코켈 지음, 이충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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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적인 잡담으로 떠나는 우주여행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찰스S. 코겔의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가 눈에 띄는 순간 무조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교양 과학서에 속하는 이 책은 단순하게 존재가 발견되지 않은 것에 관한 허황된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지의 존재를 통하여 그 시선을 우리에게 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장 쉬운 언어로 제공하는 도서이다. 따라서 창의성을 길러야 하는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으면 좋을 책이다.


영국의 우주 생물학자 찰스 S. 코켈은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에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이 책은 택시 운전사와 승객 사이의 대화를 빌려 복잡한 우주론과 생물학 이론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변환한다.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우주의 법칙, 문명의 조건과 지적 생명체의 가능성까지 저자는 일상의 언어로 우주의 경이로움을 천천히 펼쳐 보인다. 마치 천체 망원경을 들이대듯 이 책은 낯설고 광활한 세계를 눈앞으로 끌어당긴다.



책은 총 열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형식은 단순하다. 택시에 오른 한 손님과 운전기사의 대화로 제기된 문제에 대한  추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외계인, 우주 같은 과학적 개념부터, 유령, 삶과 죽음, 우연과 필연 같은 철학적 주제까지 오간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평이한 문장 속에 녹여내고 낯선 개념도 익숙한 비유로 다가오게 만든다. 이 책은 과학 입문서이자 동시에 철학적 성찰을 유도하는 일상 속 지적 탐사기다. 별과 원자, 인간과 문명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 책은 단순히 과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과학을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를 훈련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독자에게 엉뚱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과학·철학·수학 등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다. 그 여정은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주가 말을 건다는 이 상상은 SF 적 상상력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 존재를 다시 정의하려는 철학적 출발선이다. 우리는 우주를 바라보지만 결국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우리 자신이다.



지적인 잡담으로 떠나는 우주여행을 담은 찰스S. 코켈의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를 처음 접하면 의외의 방향성에 놀라게 된다. 첫 챕터인 외계인 택시 기사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마주했을 때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보다 그동안 알고 있던 지식으로 먼저 이 질문에 답해보았다. 가장 먼저 지구 밖은 산소 기반의 생명체가 살 수 없으니 메탄 환경에서도 살아야 하므로 우리가 아는 생명체와는 다를 것이다. 살 수 있다면 균류나 미생물과 비슷할 것이다.



이런 생물은 태양빛이 닿지 않을 수 있어 광합성도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우리와는 형태가 매우 다른 종류의 생명체일 것이며 다세포 생물보다는 단세포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외계인의 존재는 있을 수 있으나 다세포 생물이 아니라면 인간과 같은 지능은 어렵고 에너지 획득 방식조차 우리와 다를 테니 택시 기사까지는 없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한 후 첫 페이지를 열었다.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이니 당연하게 우주 환경에 대하여 첫 매듭을 풀 줄 알았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시선을 원시 지구로 끌고 온다. 원시 지구에는 산소보다는 메탄 등의 물질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어쩌다가 세포가 막 속에 갇히는 방향으로 진화를 하면서 미생물이 바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남세균인데 물을 분해하여 수소는 자신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산소는 노폐물로 인식하여 밖으로 뿜어냈다. 이런 행위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구 최초의 환경 오염으로 정의된다. 산소를 이용한 환경 오염.


이렇게 산소가 점차 대기에 쌓이게 되면서 다세포 생물이 생성되었고, 산소의 농도가 가장 많았을 때 출현한 것이 공룡류이다. 산소 농도가 극대화되었을 때 나타난 거대한 생물이다. 즉, 우리 인간은 지구가 원래 상태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이 된 결과물로 생성된 희한한 존재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오염된 바다에 출현하는 녹조류와 인간은 같은 조건에서 등장한 생물이다. 비관적으로 보자면 녹조류가 사라지는 상황과 인간의 멸종도 비슷하지 않을까? 



탄소 중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지구가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즉, 지금까지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환경 자체가 지구 입장에서는 고여서 썩어있던 상태와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무엇을 기준으로 오염이라 정의할지 혼란스러워진다. 이 책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확실하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누구나 이렇게 사유의 장을 펼쳐나갈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열어주는 데 이 책의 매력이 있다.



이제 이런 과거 원시의 지구 상태를 미지의 행성에 대입해 보자. 당신이 우주선을 타고 어떤 행성에 도착했을 때 산소 농도 측정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만약 거기에 산소가 없다면 우리처럼 고도의 지능을 갖춘 외계인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산소 농도라면 대화를 하고 이해를 나눌 누군가를 발견할 기대감을 가져도 좋을 테지만 공룡 시대 수준의 산소라면 생존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끝없는 사고의 과정을 일으키게 만드는 찰스S. 코켈의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는 처음에 생명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우주로 나갔을 때 외계인을 만날 수 있을지, 그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만약 우리가 어떤 행성에 정착했을 때 문제점은 무엇인지, 과연 우리가 정의하는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가 무엇인지 등 많은 부분을 다룬다. 과학적 사고 위에 펼쳐진 상상력의 기차, 그것이 이 책이 선사하는 지적인 잡담으로 떠나는 우주여행이다. 


#어느날택시에서우주가말을걸었다 #찰스S코켈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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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
리처드 바크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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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에게 『갈매기의 꿈』 작가로 알려진 리처드 바크가 『나는 자유』라는 신작 비행 에세이를 출간하였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그의 작품을 한 번쯤은 책이든 각종 미디어에서든 접해봤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이야기를 주로 쓰는 그는 스케일 크게 비행기 구매하는 이야기로 책의 처음을 시작한다. 작중 비행기의 이름은 퍼프이며 그를 사람과 같은 동료로 대한다. 덕분에 독자는 책장이 넘어갈수록 『갈매기의 꿈』 성인 버전으로 인식하게 되는 마법을 겪는다. 그가 말하는 자유의 정의와 철학에 대하여 살펴보자.


리처드 바크의 신작 『나는 자유』는 그가 시레이라고 하는 수륙양용 비행기를 구매한 후 연습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작성한 비행 에세이이다. 『갈매기의 꿈』 작가답게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비행기에게 퍼프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마치 그가 자유 의지를 가진 것처럼 비행기와 대화를 이어간다. 덕분에 비행 과정에서 겪는 아찔함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함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코믹함과 천진함이 배경에 흐르고 있어 또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작품 속에서 저자와 댄이라는 지질학자이자 법학 학위를 가진 멘토, 그리고 퍼프와 댄의 비행기 제니퍼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독자는 그가 공군 전투기 조종사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비행에 꽤 능숙하리라 생각하지만 그 텀이 길어서인지 그는 초반에 고군분투한다. 쉬울 것 같은 착륙에서 오히려 퍼프를 망가뜨리고, 날씨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상어 떼를 만나기도 한다. 매번 하늘을 향해 솟구치지만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위기에서 항상 벗어난다. 그는 이를 두고 최선을 다했을 때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 자신을 돕는다고 말한다. 때론 천사라고도 하고, 때론 수호천사라고도 한다. 토네이도, 폭우, 우박, 돌풍, 기기 결함, 예기치 못한 사고 등으로 언제나 좌충우돌이지만 저자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일을 하나씩 겪을 때마다 무사히 잘 넘어간 것에 그치지 않으며 꼭 무엇인가를 배운다. 그는 말한다. 이렇게 배운 것으로 끝나면 의미가 없다고. 다음에 꼭 꺼내서 활용해야 한다고.



총 마흔아홉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그의 비행 에세이는 언제나 시작만 있다. 매일 날아오르는 하늘의 환경도 매번 다르다. 이는 마치 리허설이 없는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다. 그 또한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이 점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말한다. 자유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산물이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희생되는 것이 있다고. 이를 위한 베이스는 열정이며 열정이 없는 삶에서 자유 또한 없다고.



책은 언제나 자신만의 목소리가 흐른다. 『갈매기의 꿈』 작가 리처드 바크의 신작 비행 에세이 『나는 자유』에는 이제 막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소년의 목소리와 혈기 왕성한 청년의 목소리가 선율을 이루어 독자에게 말을 건다. 몇 번을 저자의 나이를 생각하며 음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매일 도전하는 자의 목소리는 절대로 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저자는 자유를 획득하는 방법과 그 후에 감당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하고 있다. 이것의 선택에는 모험이 따르며 반드시 기회비용으로 발생하는 희생되어야 할 것이 존재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당장 나쁜 일로 보이더라도 그 사건의 좋고 나쁨에 관한 정의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입으로 자유와 열정, 그리고 도전을 외치지만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하고 당장 눈앞에 펼쳐진 아찔함에 시간을 주어 심리적 여유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자유를 외치면서도 안전을 확인하고, 도전을 말하면서도 결과를 보장받으려 한다. 희생은 말속에만 존재하고, 행동은 늘 계산 안에서 멈추며 그 계산마저 멀리 보는 것이 아니라 코앞에 발생한 일만을 기준으로 한다. 저자가 보여주는 그것은 고결하며 실천은 어렵지 않게 느껴지지만, 그의 고결함은 언제나 한 발짝 떨어져 보는 여유가 있다. 누구도 감당하지 않기에, 자유는 때로 신화가 된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관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날지 않고 나는 이를 구경한다.



자유는 삶을 건너는 방식이자, 끝까지 감당하지 못한 말들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날았다. 우리는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걷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말하는 순간마다 그 거리만큼 간극은 또렷해진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을 동경하며, 날지 못한 채 우리는 이를 지켜본다. 그것도 하나의 방식일까. 아니면,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 첫 선택에 가까운 순간일지도 모른다.



리처드 바크의 신작 『나는 자유』는 거창한 철학 대신 반복되는 경험을 쌓아 올려 현실적 감각을 만들어낸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믿지만, 막상 감당하려 하면 자주 물러나는 말. 저자는 사유의 자유가 아니라 실천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실패마저 다음 추진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하는 그의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상상 속의 날아오름이 아니라, 행동으로의 날아오름으로 옮겨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삶이 지루하신 분,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분, 언제나 행동 앞에서 멈추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자유 #리처드바크 #에세이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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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말과 글 - 삶을 채우는 시간, 지혜의 필사책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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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에세이, 법정 스님의 말과 글은 스님의 생전 육성 강연과 원고 중 핵심 문장을 간추려 엮은 책이다. 나, 관계, 자연, 삶과 죽음, 무소유, 삶의 지혜, 종교, 책, 여유까지 총 9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문장은 어렵지 않고 길지도 않다. 단정하지만, 사유는 깊다. 그는 모든 것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바라보았고 그 깊은 곳의 울림을 모아 절제된 언어 속에 감정과 사유, 결단을 함께 담았다. 그런 그의 가르침 가운데 필사에 적합한 핵심 문장 138개를 뽑아 좌측에는 문장을, 우측에는 필사 노트를 배치했다. 



각 장의 주제는 삶의 한 국면, 곤란함을 겪는 찰나를 담고 있다. 그 안의 문장들은 그의 말과 독자의 마음이 조용히 마주 앉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단순하게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게 하기 위한 내용이 아니다. 그의 말에 자기 생각을 얹어 삶의 철학을 만들어가도록 길잡이가 되어 준다. 좌우를 살필 겨를 없이 육체와 영혼이 따로 움직이는 현대인에게, 영혼이 따라올 여유를 건넨다. 그 여유는 텅 빈 마음을 채울 틈이 된다. 이 책은 138일 동안의 필사 노트를 통해 마음을 돌보는 마음 챙김 시간을 선물한다



138일의 필사 노트, 마음 챙김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에세이 법정 스님의 말과 글을 읽고 필사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고요함이다. 긴 문장이 아니라 그의 일반 철학과같이 무소유 즉 비워냄을 고스란히 겪은 문장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법정 스님의 글에는 강한 주장도, 이념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의 시선과 침묵 그리고 사유 속 깨달음이 있을 뿐인데 그 속에서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라는 성찰의 물음이 반복해서 떠올리게 된다. 요란스러운 말보다 성찰을 통한 평온한 삶이 먼저인 글이었다.



스님이 남긴 문장들은 짧고 단아하다. 그러나 그 단아함은 누군가를 향한 꾸짖음과 탓함으로 인한 죄책감 전달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철학을 재건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흔히 말하는 강요하는 투의 자기 계발서와 달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한 페이지씩 필사를 하다 보면 눈에 띄게 필사 속도가 느려진다. 욕심에 의한 날뛰는 욕망이 줄고 삶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고요한 사람이 되어감을 느낀다. 이 책은 읽고 쓰는 독자를 조용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중심을 찾게 한다.



또한 너무나 많음은 없는 것과 같다는 선인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많았다. 우리는 1초도 쉴 틈 없이 세상이 건네는 소리 속에 갇혀 있다. 그러나 정작 꼭 들어야 하는 것은 듣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전형적인 너무 많기에 진정한 것은 없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비워내고 멈추면 비로소 들리는 소리, 보이는 것들, 느껴지는 것들이 인간에게 소중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하여 비워내지 못하고 멈추지 못할 뿐. 이 책은 좋은 글귀로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이런 여유를 가지게 한다.



이 책을 필사하면서 글쓰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문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무엇을 남기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말이 아니라 글로 보여주었다.  스님의 글은 읽고 나면 단순하게 감동의 여운이 오래 남는 게 아니라 살아온 지난날, 앞으로 걸어야 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길게 남는다. 말을 줄인 만큼 생각은 깊어지고 침묵의 울림은 강해진다. 그는 하늘의 별이 되어서 직접 이런 진리를 전수한다. 덕분에 쓰는 이의 태도까지 배우게 만드는 도서였다.



글이란 결국 삶의 일부다. 법정 스님이 직접 살아온 방식이 그대로 문장에 녹아 있다. 굳이 삶을 설명하지 않아도 글에서 그 삶이 보인다. 고요하게, 검소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독자는 이런 그의 글을 보고 따라 쓰면서 스스로 얼마나 소란스럽고 필요하지 않은 욕심이 많으며 이런 것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자유를 스스로 박탈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요한 새벽에 그의 글을 한 글자씩 새기다 보면 자신을 속박하고 불행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세상이 아니라 스스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어떤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다. 조용히 읽고 쓰되 오래 남는다. 스님의 말과 글은 독자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울리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되고 확장된다. 삶의 진리는 말하지만 실천의 방향은 각자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모든 문장에 대한 경계심이 모두 사라진다. 세상에는 말과 글에 관한 책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말도 나의 말이어야 한다고. 타인의 말과 글에 자신을 맞춰 목적 지향형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그는 요란하지 않은 말로 일침을 가한다. 



138일의 필사 노트, 마음 챙김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에세이, 법정 스님의 말과 글은 가르침이 아니라‘함께 걸음이다.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한 생의 단면을 따라가며 독자가 스스로의 방향을 찾게 돕는 책이다.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하나의 문장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셰이크 통 속과 같은 요란한 삶을 살면서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필사를 하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슬퍼서, 감동스러워서가 아니라 나를 찾을 길을 발견한 기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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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는 순간들 - 이제야 산문집
이제야 지음 / 샘터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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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장르가 바로 시이다. 모든 글 중 가장 언어의 밀도가 높기에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싫어서가 아니라 어려워서 접근할 수 없는 장르. 이해를 기다리는 단어들은 시를 멀게만 느끼게 했던 문턱을 조금이나마 낮춰준다. 샘터에서 출간한 이제야 작가의 에세이 시가 되는 순간들에서 지독하게도 꺼리던 장르의 문턱을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었기에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이제야의 시가 되는 순간들은 총 서른다섯 개의 이야기와 에필로그, 그리고 사진가이자 시인인 이훤 작가의 해설로 구성되어 있으 그 안에는 오래도록 이해를 기다리는 단어들이 기다리고 있다. 각 에피소드마다 작가가 직접 찍은 흑백의 사진 한 장, 시 한 편, 압축된 그녀의 말과 모든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각 챕터마다 저자의 과거 경험을 따라가며 그 일상 속 깨달음들로 삶과 언어에 대한 자신의 시적 철학을 세워가는 모습을 섬세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전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려는 일이라는 말처럼, 이 책은 시인의 사적 체험과 그 감정들이 어떻게 언어로 변모해가는지를 기록한다. 예컨대 시를 쓰는 순간 기존의 믿음은 완전히 깨진다는 구절은 기존에 서로를 완벽하게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균열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시는 결과가 아니라 삶에서 다가온 감정의 잔해를 언어로 발굴하고 사라져 가는 기억 속 단어들의 모호함을 조심스럽게 모으는 작업이다.



말이 되지 못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어떤 감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제야 시인은 시가 되는 순간들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 시간, 잊고 싶지 않은 이름, 끝났지만 남아 있는 감정 등과 같은 것들로 구체화한다. 책 속 문장 하나하나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그 감정을 정확히 포착하기 위한 섬세한 채집이다. 그 과정의 첫 번째는 오랫동안 바라봄이라고 정의한다. 어떠한 것을 끈질기게 바라보며 그 안의 감정과 언어를 해체하고 그것을 압축하여 재조립하는 것이 시라고.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건 언어에 대한 겸허함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단어를 지워가며 사랑의 애초를 소중히 하는 것이라는 문장에서 보이듯, 시인은 언어를 소유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잊힌 단어, 미처 붙들지 못한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언어를 다룬다. 이 언어의 선택은 쓰는 사람이 하지만 작가는 이것이 결코 자신만의 것으로 남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감정을 던졌을 때 그것을 받아 독자 개개인의 현실에 맞게 공명하길 원한다. 가장 은밀한 단어가, 가장 보편적인 이해로 이어지기를.



시를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늘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스스로의 언어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야의 에세이 시가 되는 순간들은 그 드문 목소리 중 하나다. 이 책은 그녀가 쓴 작품과 찍은 사진, 그리고 그녀의 작품이 태어난 구체적인 배경 이야기를 함께 엮어낸 기록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시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내면을 조심스레 따라가는 탐험에 가깝다. 읽으면서 먹먹했던 지점, 위로를 받는 부분, 무언의 말을 거는 듯한 포인트 등 다양하게 느낀 점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자.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사진이다. 서른 장이 넘는 사진 중에서 한 장 정도는 컬러가 있을 법도 하지만 모든 사진은 흑백이다. 사진은 대부분 인물 없이 풍경만을 담고 있다. 오래된 골목, 휘어진 나무, 창문을 닫은 방처럼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은 침묵 속에 그 순간을 증언한다. 흑백 사진이라는 선택은 그 기억들이 지금과는 다른 시간대에 있었음을 조용히 말해주는 장치다. 이 사진들은 시와 산문 사이의 여백을 메우며 독자로 하여금 페이지의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또한 흑백 사진을 작가가 말하는 대로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작품을 쓰게 하는 순간은 허기, 상실, 아픔 등 무채색의 시간들이라는. 그러나 막상 그녀의 글을 읽고 난 독자는 오히려 이 무채색으로 인하여 독자 스스로의 경험과 어우러져 자신만의 색을 입히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는 글 전반에서 그녀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상호 연결성. 이는 마치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소에 있지만 진심은 공명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언어로 다가온다. 


이제야의 에세이 시가 되는 순간들에서 저자는 하나의 경험에 담긴 수많은 감정의 레이어를 벗겨 농축시킨 이해를 기다리는 단어들로 말하는 것을 시라고 정의한다. 다만  그것은 하나의 완성된 진술이 아니라 독자가 다시 느끼고 재구성할 수 있도록 열어둔 문장이다. 가장 내밀한 고백이 가장 넓은 감각으로 이어지는 것을 시라고 정의한 이 책은 장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는 결국 누군가의 진심에 귀 기울이는 사람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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